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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느낌 극락같은·천년의 수인/개성강한 연출자의 두 무대

    ◎느낌 극락같은­불상 코러스 연출로 원작 난해성 줄여/천년의 수인­재미 곁들여 비틀린 한국현대사 조명 연극 ‘느낌,극락같은’과 ‘천년의 수인’.공통점이라야 대표적 전업 극작가 신작이다,6월14일 끝난다는 등이 고작이어 뵌다.하지만 보고 나면 둘다 연출의 개성이 그 정도의 동굴을 파냈다는 걸 수긍하게 된다.정체성 모를 평면 무대가 난무하는데 연출자 나름의 자장과 힘을 느끼게 하는 공간을 만나는 건 기쁨이 아닐 수 없다.안겨 볼 만한 깊이와 그늘을 거느린 동굴인 건분명하되 막다른 골목,절벽은 없는지 발밑도 살펴보자면. 이강백씨 신작 ‘느낌,극락같은’은 우선 연출자 이윤택의 ‘탈각’ 몸짓이 진지하다.천성이 화려하고 공격적인 연출자는 불교가 형식이냐,내용이냐 설왕설래하는 고전적 대본을 받아놓고 한호흡 졸라맨 것 같다.불상 코러스는 생각보다 요란스럽지 않게 희곡의 굳은 반죽을 무르게 하는 일등공신이 됐다.뒤쪽까지 넓힌 무대를 시원스럽게 써 공백만 보면 채우고자 하던 기질을 억제한 티도 역력했다. 문제는 희곡.이강백작품의 관념성이야 고유 세계라 치더라도 신작이 그의 연대기에서 뚜렷한 발전으로 뵈지 않는다.소재만 불교로 옮아갔을 뿐.예를 들어보자.형식보다 부처 마음이 중요하다고 돌부처를 만들며 떠도는 불상 제작자 서연.죽은 스승 함묘진은 그를 뒤쫓는 딸의 환상에 나타나 “돌부처 있는 길에서 못 만났거든 없는 길에서 기다려 보라”고,비워야만 찾아지는 삶의 비의를 은유한다.이는 방황 장면의 초현실적 정황에서 울림있는 상징으로 설득력 있다.그렇다면 이 대목.‘형식’파 동연과 형태니 마음이니 숱한 논쟁을 벌이다 집나간 서연이 오랜만에 돌아와 “사람사는 곳 돌아다녀 보니까 모든 것을 형태가 결정하더라”고 또 되뇐다.이 정도 되면 형태며 마음은 더이상 상징이 아니다.구호다.이런 날말들을 쏟아부으며 연출가에게 살을 붙이라는 건 너무 가혹한 것 아닐까. 게다가 연기.역사적 맥락이나 일상이라는 안전장치가 없는 은유적,우화적 작품에서 연기자는 어쩌면 유일한 도구다.그는 서사 전달을 넘어 울림의 공간을 보여줘야 한다.사투리며 혀짧은 소리는 부수적이라고 접어두자.본질로만 따져도 젊은 연기자들은 한참 수련을 요한다.예술의전당 토월극장.580­1880. ‘천년의 수인’ 이전에 근엄한 표정의 한국현대사를 누가 감히 ‘개그’로 건드려 볼 생각을 했을까.연출가 오태석은 안두희,비전향 좌익수,80년 광주 진압병 등을 통해 한국현대사 고름의 진원지를 꿰뚫을 기도를 한다. 그런 류의 기도는 흔했다.그런데 방법이 전복적이다.총 한발에 평생을 저당잡혀버린 안두희 가족의 불운이,명령복종한 죄로 살인자가 돼버린 저격병의 광기가 드러나려 할 때마다 람보같은 상사가 이끄는 감시군이,노란 비옷차림의 간호사가 떼로 나타나 쇼를 벌이며 미꾸라지처럼 감정이입의 상황에서 관객을 빼간다.‘수인’들의 푸념과 초현실같은 코미디가 끝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연극은 일단 재미있다.그 숨가쁜 호흡이 때론 빠른 컷으로 돌아가는 컬트영화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연극에서 한국현대사 처지는 불운하다.현대사를 이리저리 비틀어 관객에게 낯설게 보이게 하자니 무얼 다시 봐야 하는가.안두희며 저격병이며 수인들도 따지고 보면 피해자이고 책임질 권력자가 따로 있다? 그걸 누가 모른단 말인가.“저처럼 역사에 잘못 발목잡히면 피보기 쉽다.그저 조용히 살아야지”하는 역사 허무주의와 상대주의에나 빠지게 만들 위험이 없는지.이 ‘조울증’ 연극은 재미로는 성공했지만 ‘현대사 다시보기’에 새롭게보탠 뭔가는 없어 뵌다.동숭아트센터.3673­4466.
  • 교정공무원 격려를(사설)

    우리 사회에는 아무나 선뜻 하기 어려운 업무를 천직(天職)으로 알고 묵묵히 일하는 숨은 일꾼들이 적지 않다.일의 어려움에 비해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누가 특별히 알아주지 않아도 맡은 일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훌륭한 일까지 하는 자랑스러운 분들이 있다. 22일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공사가 공동으로 마련한 제16회 교정대상(矯正大賞)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과 본상,특별상을 받은 17명의 수상자들이 바로 그 대표적인 분들이다.축하와 함께 깊은 존경의 뜻을 표한다.수년동안 가혹한 여건속에서 직접 복역해보아 누구보다도 교도소의 실정과 교도관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있는 金大中 대통령이 수상자들을 위해 오찬을 함께 하며 노고를 격려하고 교도행정의 개선을 약속한 것도 수상자들은 물론 1만2천500여명에 이르는 전국의 교정공무원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교정행정의 중요성은 새삼 예기할 필요도 없다.그러나 사회와 격리된 재소자들과 교도소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을 교화하고 선도해야하는 교정공무원들의 어려움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교도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상적인 생활의 제약은 물론 긴장과 격무를 이겨내야 한다.그야말로 수인(囚人)아닌 수인생활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교정대상의 참 뜻은 수상자들을 비롯하여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소리없이 맡은 임무를 충실히 다하고 있는 모든 교정공무원들을 격려하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재소자들을 새 사람으로 만드는 것 못지않게 이들을 사회에서 알아주는 일도 중요하다.오로지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재소자들의 교화는 물론 출소자들의 사회정착을 정성으로 뒷바라지해주고 있는 종교위원·교정위원들의 희생과 노고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번에 영예의 대상을 받은 공주교도소 朴甲敦 교위는 재소자들에게 가구제작과 자수등 전문기술을 가르쳐 자립의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에 그치지않고 이들이 사회에 나가 정착하는 데까지 정성을 쏟았다.삭막한 교도소에서도 재소자들로부터 형님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모든 교정공무원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재소자들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교정공무원이나 종교위원·교화위원들의 역할이 막중하다.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란 사실을 잊지말아야 하겠다.
  • ‘민주화 재조명’ 학술회의 姜萬吉 교수 기조연설

    ◎“抗日 열사­민주희생자 역사성 동일”/개인 투쟁이 釜馬­光州­6월 항쟁 잇는 고리역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의장 李昌馥)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회장 裵恩深)는 22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민족민주열사·희생자정신계승과 명예회복을 위한 학술회의’를 가졌다.‘한국현대사에서의 열사·희생자들의 지위와 역할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명예회복의 원칙과 방향’을 주제로한 고려대 姜萬吉 교수(한국사)의 기조연설을 요약 소개한다. 朴正熙 정권에서 全斗煥·盧泰愚 정권까지로 이어지는 30여년간의 군사독재시대에는 釜·馬 항쟁과 광주민중항쟁,그리고 87년 6월항쟁과 같은 대규모 민중항쟁이 일어났다.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 아래 이들 대규모 민중저항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이들 대규모 민중저항이 일어나기까지에는 수많은 개인차원의 의열투쟁이 계속되었고,이같은 개인차원의 투쟁이 계속 공백을 메워줄 수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민중항쟁이 가능했다. 이 개인차원의 의열투쟁은 첫째,윤봉길·이봉창·나석주 등 일제 강점시대 개인차원 항일열사들과 그 역사적 역할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둘째,李承晩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4·19 희생자나 군사독재정권의 재등장에 대항했던 5·18 희생자와도 그 역사적 역할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다만 그들이 희생된 경위가 다를 뿐이다. 4·19 희생자나 5·18 희생자들은 시위와 ‘전투’의 현장에서 희생되었다.개인차원의 민주열사들은 시위현장에서 희생된 경우도 있지만 혹은 고문실에서 희생되거나 희생된 장소가 분명치않은 의문사의 경우도 있다.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는 더 조사해야겠지만 분명한 경우는 그 역사성이 4·19 희생자나 5·18 희생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일제 강점시대의 독립유공자와 마찬가지로 해방후 민주열사의 경우도 집단적 희생과 개인차원의 희생 사이에 차별을 둘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역사적·민주주의적 정통성이 강한 정권일수록 양심수 및 민주열사에 대한 정책이 강화되기 마련이라 생각해보면,양심수정책이 거의 답보상태였고 개인 차원 의열투쟁에 대한 명예회복 조치가 없는 점은 金泳三 문민정권의 민주정권으로서의 한계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5·16 세력 일부와의 연합정권임에도 불구하고 金大中 정권이 짊어진 역사적 과제의 중요한 부분은 역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민주주의의 획기적 발전과 평화적 통일에의 적극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획기적 발전문제 속에는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金泳三 정권이 군사정권 집권자들을 사법처리하고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정당성을 회복한 후에 성립된 金大中 정권으로서는 이제 개인 차원에서 활동한 민주열사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사업,그리고 양심수 석방의 과감한 확대를 통해서 金泳三 정권과의 또하나의 중요한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 토머스 탤리스,라틴교회음악(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2)

    ◎20세기,멸망과 화해하는 법 1.가장 인간적인 것은 멸망이다.인간이 죽음을 알았다.그리고 모든 인간적인 행위가 눈물겹고 아름답다.그렇게 노동이,종교와 역사가,예술의 생애가 시작된다.종교는 죽음을 삶 속에 끌어들이고 죽음 이후를 유토피아로 제시한다.그것은 멸망과의 화해를 좀체 용인하지 않는다.그리고,그렇게 종종 광신으로 치닫는다. 우리는 멸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좌우냉전과 절멸전,동유럽 제국의 거대한 몰락을 가슴에 품은 20세기가 바야흐로 저물고 있다. 세기말 천년말의 낭떠러지 앞에 우리는 나침반 없이 서 있다.오늘의 경제난국과 가난연습은 사실 고마운 선물인지 모른다.생계 걱정이야말로 세기말의 광란을 극복하는 말짱한 정신의 교량일 것이므로. 2.그러나 그것 뿐인가.이 현기증나는 흔들림의 의미를 그렇게 무마하고 망각하면 그만인가.16세기 영국 작곡가 탤리스의 라틴 교회 음악이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묻는다.그대 죽음을 아는가.그대 멸망을 아는가…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그 질문,그 흔들림이,악기 반주 없이 인간의 목소리 만으로,절망을 넘어선 화해의 경지를 구성한다.절망이 아름다운 공의 건축물로 들어선다.스펨 인 알리움 하부이…내 희망은 오로지 당신 뿐…광신인가? 아니다.음악은 흔들림을 매개 삼아 더 드높은 아름다움의 경지를 연다.그리고,그렇게 더 우월한,이성과 이성 바깥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음악예술 이성의 길이 펼쳐진다. 유토피아? 아니다.그 길은 절망을 머금은 길이므로 실패가 없고 시각의 독재를 벗어나 귀의 상상력을 무한 자극한다.그 상상력은 펼쳐질 뿐 아니라 온몸을 적신다.그래서,어떻게? 비데테 미라쿨룸(보라 기적을)…호모 쿠이담(어떤 사람이)…아우디비 보쳄(목소리 들린다)…칸디디 파크티 순트(휘황한 백열로)…탤리스의 라틴 교회음악은 그렇게 이어지다가,가사의 종교성을 벗으며 잠시 침묵이 더 무겁다가,에 도달한다. 이 음악에 이르러 우리는,귀를 가진 우리의 몸은 벌써 고통의 비(우)에 흠씬 젖은 세상으로,드러난다.20개 성부가 주선율을 모방하면서 연속적으로 등장,그 세상이 여러겹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마치 끊임없이 펼쳐질 것처럼.선율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닮아가고 목소리가 끊임없이 선율을 닮아간다.음악의 몸과 우리의 몸이 구분되지 않는다. 끊임없이,끊임없이…그러는 사이 어느새 또다른 20개 성부가 새로운 주제를 갖고 들어선다.그,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지만,음악도 우리 몸도 음악의 세계이므로,단절일 수 없고 단순한 이어짐일 수 없다.아나는 역사 속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모든 유토피아들의 절규들이 단절을 넘어 위대한 공을 이루는 광경을 보고있는가…고통이 의미로,의미가 의미 충만의 세계로 펼쳐진다. 그렇다.삶은,끊임없이 살만한 것이다.죽음이,멸망이,흔들림이 있으므로 더욱 아름답게.음악은 현실 속을 파고 들면서 좌절하지 않는다.오로지 슬픔을 형상화하는 까닭이다.유토피아는 언제나 실패한다.기쁨의 환각을 위해 현실보다 못한 까닭이다. 3.40성부 모테트 은 영국음악이 이룩한 종교음악의 최고봉이다.탤리스는 영국사 중 가장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흔들리면서,그 흔들림을 가장 영롱한 음악으로 전화시켰다. 그는 헨리 8세,에드워드 6세,메어리 여왕,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등 모두 4명의 군왕을 섬겼다.이들은 종교에 대한 태도가 각각 달랐다.탤리스는 어떤 때는 영어로 어떤 때는 라틴어로 작곡을 해야했고 음악양식도 그때마다 달라졌다.그리고 그는 때때로 군왕의 명령을 어겼다.그렇다.그는 끝내 음악의 명령을 따랐다.숭고한 비탄이 아름다움의 뼈대로 들어선다.그리고 아름다움은 다시 그 숭고한 비탄이 열려가는 통로로 작용한다. 그러나 탤리스의 음악은 당시 영국의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룩된 업적이 아니다.사실,베토벤의 음악에서조차 완벽한 ‘불구하고’는 없다.그것은 음악이 지닌 진혼과 평화지향의 성격에 위배된다.특히 탤리스의 은 크게 보아 음악에 대한 영국민의 깊은 사랑,그리고 다른 나라보다 깨인 정치의식의 소산이고,그러므로,베토벤이 독일적이듯,영국적이다. 역대 군왕은 모두 탤리스의 음악을,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존중해 주었다.엘리자베스 여왕은탤리스와 버드에게 21년 동안의 음악출판독점권을 주었다.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독일­프랑스의 그것과 달리,왕족 몇몇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 백성 전체를 기아와 공포,그리고 살륙의 장으로 내몬은 종교전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그리고 그것이 향후 300년 동안 영국의 부강을 보장하는 것이다.그렇게 탤리스의 슬픔은 낙관적인 희망의 그것이다. 탤리스가 살던 16세기 말,영국은 서정적 선율의 극치로써 서양음악의 주도권을 꿈꾸고 있었다.그 소원은 이루어지지만,기간이 너무 짧았다.그리고 곧 언어가 따따부따한 이탈리아 음악의 ‘일상적인’ 대공세가 시작된다.프랑스는 가까스로 감미로운 비무장지대를 형성한다.그리고 ‘더 크게 흔들린’ 바흐 음악이 강한 성으로 구축된다.이 전쟁은 사상자가 없는,아름다운 전쟁이다.어쨌거나,그렇게 영국음악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야 다시 세계성을 되찾는다. 4.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정격연주로서 탤리스 당대의 ‘흔들림 속 영롱함’을 정밀하게 재현하면서 그 후의 질문들을 더욱 영롱하게,마치 촉촉한 눈동자처럼 덧붙인다.연주자와 작곡가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게 질문은 영국음악 자체의 그것으로 확대된다.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멸망을 맞는,아니 멸망을 한없이 슬퍼하는 자들의 고통 대신 들어서는 것이다. 흔들려라,끊임없이.흔들림이야말로 고요와 평정의 요람이나니.그대 죽음을 아는가.그대 멸망을 아는가?… 그것은 이미 말(언)이 아니다.음악도 아니다.음악과 말에 존재하면서,그 ‘사이’로써 세계를,멸망의 낙관적 희망을 담지하는 어떤 것이다. 1989.EMI CDC 7 49555 2 테버너 콘소트/태버너 합창단 지휘:앤드류 패럿 ◎왜 명반인가/토머스 탤리스(1505∼1585)/짧은 무반주합창/당대 악기 연주 존중/정격연주의 절정 모테트는 길이가 짧은 무반주 합창곡.16세기 종교음악의 최절정을 구현했다.바흐에 이르는 역대 음악 거장들이 모두 모테트 걸작을 남겼다. 정격연주는 작곡자 당대의 악기와 연주 관행을 최대한 존중하는 음악 해석 방식이다. 콘소트는 ‘콘서트’(협주)의 옛말.통(통,whole) 콘소트는 관악기,현악기등 같은 그룹의 악기들로 만 구성되며 분산(분산,broken)콘소트는 혼합 구성이다. 앤드류 패럿(1947∼ )은 영국태생의 지휘자.16,17세기 음악 연주 관행을 연구하면서 1973년 정격연주단체 테버너 합창단을 창단하고,테버너 콘소트와 연주단을 추가했다. 데뷔는 1977년 몬테베르디의 .그후 바흐 ,,,헨델 ,모짜르트 등 대작을 포함한 숱한 정격연주가 있다.
  • 향락… 범죄… 저질 상혼…/빛바래는 ‘문화의 거리’

    ◎대학로­밤이면 폭주족… 광란의 10대 난무.유흥업소 난립·외설 연극도 판쳐/인사동­국적 불명 싸구려 노점상 도로 점령.화랑·골동품상 술집 뒤로 밀려나 ‘문화의 거리’ 대학로와 인사동이 병들고 있다.대중 전통문화의 산실을 꿈꾸던 두 명소는 최근 유흥 퇴폐업소들이 급속히 들어서면서 향락과 범죄의 거리로 변질되고 있다. 건전한 청년문화의 요람을 표방하며 지난 85년 조성된 대학로는 이제 청소년들의 비행을 부추기는 공간으로 바뀌고 말았다.연극과 콘서트 등 문화행사를 찾는 발길은 점점 뜸해지고 있고 외국 관광객들도 외면하고 있다. 대학로의 밤풍경은 중병을 앓는 환자의 모습이다.한마디로 ‘방종의 현장’이다. 18일 자정쯤.한 10대 폭주족이 굉음을 울리며 오토바이를 몰고 지나갔다.신호도 무시하는 곡예운전에 행인들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앳된 소녀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짙은 화장을 한 10대 소녀 3명이 또다른 폭주족들과 몇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오토바이 뒷좌석에 스스럼 없이 타곤쏜살같이 사라졌다.공원 안 이곳저곳에는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술판이 벌어졌고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빈 술병과 신문지 과자봉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혜화역에서 성균관대쪽으로 빠지는 속칭 ‘소주방거리’에는 수십명의 호객꾼(속칭 삐끼)들이 득실거린다.끈질기게 달라붙는 호객행위에 행인들은 달아나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일대 유흥업소들은 IMF 먹구름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고 있는 추세다.음식점만도 360여개에 이른다.노래방,비디오방은 요란한 음악과 옥외 TV의 선정적인 화면으로 행인을 유혹한다.대학로의 최후의 책방 ‘정신세계’는 이미 95년 9월 문을 닫았으며 그 자리엔 호프집이 들어섰다.대학로의 유흥화는 외설스런 연극과 포스터들이 판을 치게 만들고 있다. 건전한 연극 관람객들은 급속히 줄고 있다.한국연극협회 沈載燦 부이사장은 “손님들이 눈에 띄게 줄면서 공연 작품수가 예년보다 30% 이상 감소했다”고 말했다.종로구청의 한 관계자는 “유흥업소들은 대학로를 벗어나 주택가를 침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국동 사거리에서 인사동 사거리까지 이어지는 1.8㎞의 인사동길도 저질상혼의 온상으로 변했다. 지난 해 4월 ‘일요일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면서 가족동반으로 나들이를 나오는 시민들이 눈에 띄게 늘었지만 길을 점령하고 있는 노점상들 때문에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다.국적불명의 싸구려 공예품이나 액세서리를 파는 이들 노점상들로 전통문화의 거리로서의 의미는 퇴색되고 있다. 인사동의 상징인 골동품가게나 화랑,표구사 등은 술집과 음식점 전자오락실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최근에는 단란주점만도 5곳으로 불어났다. 인사동 문화특구 지정을 추진 중인 인사전통문화 보존회 金炳旭 사무국장은 “우리 문화의 자존심이자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코스인 인사동길의 제모습 찾기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5·18을 어떻게 볼 것인가/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특별기고)

    역사는 늘 새롭게 쓰여져야 한다.1980년 5·18 당시의 분위기로는 이 전국적인 규모의 민주화항쟁이 광주폭동이라는 누명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그뒤 ‘5·18사태’라고 했다가 ‘5·18광주항쟁’을 거쳐 이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그 역사적 평가와 함께 용어가 정립되었고,관련인사가 범죄자에서 민주투사로 그 본연의 영광스러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더우기 그들은 엄청난 ‘폭동’‘반란’‘변란’‘내란음모죄’에서 전원 무죄판결을 받았으니 사면복권과 함께 그 처절함,고통,수모,학대,인고의 세례로부터 축복받는 광명 영광 환희의 광장에 나서게 되었다. 그로부터 18년이란 세월이 경과하였다.이제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이의 실마리는 군사정권의 군사독재와 특정지역 때리기 및 낙후방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1961년 5·16군사정변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현역 소장 출신의 박정권이 18년만인 79년 10·26사태로 종말을 고하면서 또 현역 육군소장 전두환이 그 시해범을 수사하는 과정에서신군부의 정치세력이 싹트게 됐다.권력의 냄새를 맡고 도취된 것이다.12·12 하극상 사건을 거쳐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동지 노태우 정호용과 함께 서울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대학생 중심의 민주화운동을 관망하며 혼란 소요를 키워오다가 이를 수습한다는 명분속에 느닷없이 5·17비상계엄을 선포,혼란을 수습한다고 나선 것이었다. 그때 서울의 봄을 만끽한 3김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심판을 받는 선거로써 대통령을 꿈꾸었다.그러나 12·12이후 실권을 장악한 정치군인들의 ‘은밀히 계획된 정치일정’은 자신들이 일선에 나서겠다는 것이었다.그때문에 서울에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철저히 탄압했다. 결국 휴교령으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 일부와 빛고을 광주의 대학생들이 섞인 민주인사들이 그 다음날인 5월18일 무장 군인과 결전을 전개하면서 5·18은 터졌다.처절한 살육 전시회가 낭자한 피로 얼룩진 가운데 전개됐다.대치국면은 광주와 전남지역으로 확산되었고 무고한 시민만 죽임을 당한 역사상 매우 잔혹한 민주화 투쟁이 일어나게된 것이다. 이때 계엄군과 시민군의 결전은 곧 광주의 민주화투쟁 이었으며 이는 광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국적인 민주화운동 이었다.마치 동학혁명(1894­5)이 이곳에서 일어나 북상,반봉건 반제국 항일운동으로 확대되었던 것과 같다.또 일제강점하의 광주학생항일운동(1929)도 농민,노동자의 투쟁(소작쟁의,노동쟁의)도 광주 나주 완도 하의도 등에서 먼저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되어 일제타도의 애국적 분위기를 선도하였다. 5·18 역시 서울의 5·17 민주화 투쟁이 광주에서 성숙되어 전국으로 물결져 간 것이다.따라서 5·18은 광주 전남만의 민주화운동 차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의 횃불이 된 것이다.광주의 5·18민주화운동은 곧 군사독재와 신군부의 민간 억압 책동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수준을 높였고 동참의식을 도출해낸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그러나 당시 광주는 폭동 소요 탈취 암흑의 광장으로 신군부와 권력지향적 철새 정객들에 의해 선동되었고 그에따라 그 지역에 대한 혐오감,증오심을 증폭케 하였다. 그렇지만 막상 광주시민들은 생필품이 떨어져도 매점매석하지 않았고 자체조직으로 질서를 잡았다.식량이 떨어진 이웃에 온정을 베풀었으며 부녀자들은 따뜻한 음료수와 끼니로 시위대의 사기를 돋구어 민주화 의지,신념을 달성케 하였다.의사,간호사가 구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였고 학생들이 금융,정부기관을 지켰으며 헌혈에 온시민이 동참하였다.비록 신망의 정치인인 金大中이 ‘내란음모사건’이란 누명으로 투옥되어 고문을 받았어도 그것 때문에 광주민주화운동이 더 불타올랐던 것은 아니었다. 특정인을 위하기보다 민주화는 필연적 과제였기 때문이다.이제 그 분은 국민에 의해 대통령이 되어 바웬사 사하로프 만델라와 함께 민주의 투사요 지구 인권의 파수꾼으로 손꼽히는 반열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한다.불의,부정을 배격한 동학정신이 팽배한 이 지역의 5·18은 곧 우리 모두의 민주화운동이다.6·10항쟁,6·29선언(1987)도 그 뿌리가 여기에 있음을 새삼 주목해야 한다. 영원히 저주받을 지역감정,지방색의 차별화 등은 망각의 저 여울속으로 보내야 한다.그래야 진정한 국민의 정부,신명나는 국민으로 거듭나서 화합의 대열로 들어가게 되지 않겠는가.또 복받은 대한민국이 달성되어 통일조국 대한민국 건국의 50주년을 환희와 벅찬 희망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 보증때 借主 재산·평판 고려를

    ◎종류따라 부담 큰 차… ‘연대’·‘보통’ 확인 필수/기간 짧게… 빚 대신 갚은후엔 구상권 행사해야 빚 보증을 섰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잦다.어렵게 모은 재산을 보증 한번 잘못 서서 일순간에 날려버리기도 한다.보증을 섰다가 불량거래자로 은행에 등록돼 일정기간 대출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한다.친지나 직장동료 등으로부터 보증 부탁을 받으면 채무자(차주)의 재산상태나 직업 등을 잘 파악하는 등 신중을 기해야 한다.가령 재산이 없거나 주위의 평이 좋지않은 사람일 경우 가능한 한 지혜롭게 보증을 거절하는 것이 좋다.보증은 빚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보증의 종류를 철저히 확인하라=은행이 가장 선호하는 보증은 연대보증이다.그 이유가 있다.은행은 1∼2개월 대출금을 연체하면 연대보증인에게 보증채무를 이행하라고 통보한다.채무자에게 빚을 빨리 갚으라고 독촉하지 않고 보증인에게 채무자를 대신해서 빚을 갚으라고 할 수 있다.채무자나 보증인 중에서 채권자 입장에서 유리한 쪽을 골라 대출금을 받아 내기 위해서다.가령 두사람의 연대보증을 받아 1천만원을 대출받고 연체할 경우 은행은 보증인 두 사람에게 절반씩(5백만원) 갚도록 하지 않고 어느 한쪽에 1천만원을 다 갚으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연대보증을 서면 이른바 ‘배분이익’ 혜택을 누릴 수 없다.연대보증은 이런 점에서 보증인에겐 가장 가혹한 보증의 종류로 볼 수 있다. 반면 ‘보통보증’은 그렇지 않다. 보통보증을 서면 은행으로부터 보증채무 이행청구를 받아도 보증인은 “채무자에게 먼저 청구하라”고 제동을 걸 수 있다.항변할 기회를 갖는다. 보증인이 채권자로부터 보증채무를 이행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서 채무자에게 먼저 청구하라고 요청할 수 있다.채권자 조사결과 채무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보증인은 채무자를 대신해서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또 근보증인지 여부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근보증은 한번 보증을 서주면 채무자가 추가로 돈을 빌리더라도 그 부분에 보증책임을 져야 하기때문이다.그러나 특정채무보증은 한번 대출받은 부분에 한해 책임을 지면 된다. ■보증기간은 짧게 하라=회사원 A씨는 친구의 부탁을 받고 지난 95년 8월 보증을 섰다.그러나 A씨는 최근 은행으로부터 1천만원을 갚으라는 통보를 받았다.갚지 않으면 전세금이라도 압류하겠다는 것이다.대출받은 친구가 연체하고 있기 때문이다.A씨는 보증을 설 당시 대출기간이 1년인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3년이었다. 이처럼 보증기간이 길면 채무자의 재산상태나 직업 등이 대출 당시와 판이하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때문에 보증인의 책임도 커진다.보증기간이 짧을수록 위험부담은 줄어든다. ■보증인이 돈을 갚았을 때에는 채무자에 구상권을 행사하라=보증인이 자기 재산으로 돈을 갚았을 때에는 채권자 입장에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채무자의 부탁에 의해 보증을 섰다면 보증인이 대신 돈을 갚은 날부터 법정이자 외에 대신 빚을 갚아준 데 따라 생기는 비용도 청구할 수 있다.
  • 건국이후 인구변화(대한민국 50년:19)

    ◎49년 첫조사 20,188,641명… 96년엔 갑절로/55년 간이조사 전에는 추계… 정확성 의문/6·25전쟁기간 150만명 희생… 사망률 4%/60년대부터 공업·도시화 영향 대규모 이동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49년 5월1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회 인구조사’였다.이 때 인구는 2천18만8천641명으로 파악됐다. 한국전쟁 중인 50년과 51년에는 보건사회부의 발표가 남아있다.50년 2천35만6천명,51년 2천44만1천명이었다.그런데 이 인구조사 발표는 실제 조사를 한 것이 아니라 49년의 조사를 토대로 각도 도지사의 보고에 의한 추계였다. 52년과 53년에는 내무부의 추계가 남아있다.52년 2천52만6천명과 53년 2천1백54만6천248명이었다.53년의 인구가 전년도보다 1백만명 이상 급증한 것은 배급을 늘리기 위한 유령인구 때문으로 추측된다.54년 보건사회부의 인구통계는 2천1백91만3천명이었지만 이도 실제조사가 아니라 전년도에 기준한 추계이다.결국 정부가 발표한 50년부터 54년 사이의 인구 수는 정확하지 못하다. 55년 제1회 간이 총인구조사가 실시됐는데 상주인구가 2천20만2천256명이었다.이는 현역 군인과 형무소 수형자 등을 뺀 숫자이다.한국전쟁 시기의 인구 증가율은 1.1%였다.그러나 한국전쟁후 베이비 붐이 일어 55년 이후 66년까지 인구 증가율은 2.8%를 기록했다.그러다가 산아제한 정책이 실시된 66년부터 85년까지는 1.7%로 떨어졌다. ○증가율 2.8% ‘베이비 붐’ 정부 수립후 인구의 변동은 경제문제와 가장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1인당 국민소득은 44.5달러에 불과했다.따라서 국민총생산의 5분의 1에 달하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액 1억7천9백59만3천달러는 기아를 막기 위한 것으로도 부족했다.한국전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인구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생산시설은 ‘저고용­저소득­저고용’의 악순환 고리를 이어갔다.폭발적인 인구문제의 해결은 60년대 경제개발을 통한 지속적 성장 밖에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인적 피해로 인한 가장 직접적이고 충격적 결과는 무엇보다도 특이한 인구구조를 형성시켰다는 점이다.우선 한국전쟁은 일시적 사망률의 상승과 출생률의 저하를 초래했다.한국전쟁으로 인한 인명 손실 중 사망자는 약 1백만∼1백5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한 인구의 사망률은 1천명당 36∼47명,즉 4% 안팎으로서 평소 한국인의 사망률인 평균 2%의 2배나 됐다.이같은 현상은 60년과 66년의 인구 센서스에서 각각 30∼49세 및 35∼49세의 연령층에서 과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된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반면 전쟁기간 동안의 0∼9세의 영아 및 아동의 사망자 가운데는 남아보다 여아가 더 많았다.이것은 새로 태어난 신생아들과 아이들의 경우 전통적 남아 선호사상으로 인해 남아를 되도록 보살핀 때문으로 사회학자들은 보고 있다. ○45만∼72만명 월남 추정 전쟁기간 중의 출생률은 극도로 저하돼 같은 기간의 높은 사망률과 더불어 인구의 절대 감소현상을 초래했다.이때의 출생률은 평상시보다 1%나 낮아졌으나 인구 증가율이 당시에는 1년에 1천명당 23명으로 늘어났었던 데 비해 전쟁기간 중이었던 49∼55년 사이에는 연평균 1천명당 11명 정도 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한 인구변동의 또다른 충격은 인구의 대규모 이동현상이다.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월남인구의 추정치는 45만∼72만명에 이르고 있다.반면 남한에서 북한으로 강제로 납치되거나 그 밖의 이유로 넘어간 이들의 수도 대략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시작된 것은 60년대부터인데 60년대 이후의 인구이동은 물론 공업화의 영향을 받은 도시화의 결과였다. 61년 이후 인구 분포에 있어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지역은 수도 서울이었다.서울은 정부수립 직후인 49년에는 전인구의 7.1%를 차지했고 11개 시·도 중 인구 수로 따져 9위에 지나지 않았으나 75년에는 이미 전인구의 20%에 해당하는 6백90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또 오늘날에는 전인구의 22%가 넘는 1천여만명의 인구를 갖게 됐다. ○86년 도시인구가 65% 그러나 서울과 부산,그리고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는 전국 인구에 대한 구성비에 있어 감소 추세를 보였다.인구이동을 도시와 농촌으로 구분하면 도시인구의 비율은 55년 25%에 불과했던 것이 80년에는 57%,86년에는 65%에 달해 도시인구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70년 이후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어느 정도 둔화되는 추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농촌인구가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특히 마산 울산 포항 등의 새로운 공업도시와 수도권의 성남 안양 수원 등에는 우리나라 전도시의 평균 인구증가율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수립후 49년 첫 인구조사에서 남한의 인구는 2천18만8천여명이었으나 96년 조사된 인구는 4천6백43만4천여명으로 50년동안 두배로 불어났다. ◎日 전쟁 동원 인구 해방후 엄천난 逆유입/日帝와 美 군정 시기의 인구/도시주변 戰災民으로 반공체제 정착 큰 역할/46년 1,936만명 조사/이듬해 국민등록 실시 한국은 일제 식민통치 기간 동안 특히 37년 이후의 전시 총동원체제 아래서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경험했다.가혹한 수탈로 인해 농촌을 떠나 일본과 만주 등으로 이주했다.또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 기간동안 이른바 노무 동원 또는 강제 징용 등에 의해 북한의 광공업지역과 일본으로 동원됐다.39년에서 해방 전까지의 기간에 국내외에 걸쳐 전시체제와 관련한 유동인구는 약 7백만명으로 45년 현재 국내 총인구 수의 약 30%에 달한다는 사실은 인구이동 규모의 방대함을 말해 준다. 일제 말기의 인구이동 현상은 해방직후에는 역으로 대규모의 인구유입 즉 귀환을 초래했다.여기에다 남북 분단의 체제대립적 성격을 반영하는 이른바 월남민들이 발생했다.해방 직후 남한사회는 단기간 안에 엄청난 인구유입을 경험했다. 이는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첫째는 유입인구가 자신의 성장지역인 농촌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도시지역의 경제활동 인구로 흡수되지도 못하면서 상당수가 도시 주변에 전재민(戰災民)으로 퇴적된 것으로 보인다.이는 해방정국의 사회적 불안정성과 긴장을 높이는 주요한 변수가 됐다. 둘째는 유입인구가 계급적 성격과 사회적 경험 등에 따라 비교적 뚜렷한 정치적 지향성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해방정국의 정치적 격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해방 직후 월남민들이 우익세력의 선봉대였으며 남한사회가 반공체제로 귀착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점은 역사가들이 입증하고 있다. 해방 후 최초의 인구조사는 미군정청에 의해 46년 8월25일 실시되었다.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은 제외됐다.이 통계는 44년 조선총독부의 국세(國勢)조사 인구에 미군측이 파악한 식량배급 인원과 외부로부터의 유입인구를 고려해 작성됐다.이 때 조사된 남한 인구는 총 1천9백36만9천270명이었다.따라서 이 통계는 실제 인구수를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미군정청은 이어 47년 국민등록을 실시했다.등록 인구는 총 1천9백88만6천234명.다음해 다시 실시한 국민등록에서는 2천2만7천393명의 인구가 등록됐다.미군정청이 실시한 국민등록은 의식주 및 생활 필수품의 확보와 배급계획의 수행,앞으로의 선거 등을 대비한 것이었다.
  • 무법천지 자카르타 “죽음의 도시”/印尼 유혈폭동 5일째 이모저모

    ◎미·일 자국민 탈출 군용기 대기/치안 실종… 불 11시간뒤 소방차 【카르타 외신 종합】 검게 타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들과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건물로 참혹한 모습을 드러낸 요그야백화점 화재 현장은 수하르토정권의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듯했다.폭도들의 방화로 250명 이상의 희생자를 부른 이번 사건은 인도네시아국민들의 민심이 얼마나 빨리 수하르토로부터 이반되고 있는지를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다. ○…요그야백화점의 불은 14일 하오 1시 발생했으나 소방대원이 도착한 것은 무려 11시간이난 늦은 자정 무렵.약탈과 폭동이 부른 자카르타 시내의 무정부상태가 이같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가져왔는데 그바람에 애꿎은 희생자들의 수만 터무니없이 높아졌다. ○…자카르타는 15일에도 시내 곳곳에서 약탈·방화가 자행되고 학생들의 집단시위가 이어지는 등 5일째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을 연출.군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대통령궁 주변과 고급호텔 주위에 탱크와 군병력을 집결시켜 경계를 펴고 있으나 곳곳에서 벌어지는 약탈과폭동에는 사실상 포기한 듯한 모습.자카르타는 여전히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는 검은 연기 속에 갈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자카르타 시내 전역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사망자 외에도 시내 병원들은 보안경찰과의 충돌로 부상한 수백명의 환자로 북새통.자카르타경찰은 약 800명의 시민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이날 유류가격과 전기요금 인상율의 하향조정을 시사하고 수차례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폭도들에 대한 강경대처 방침을 밝히는 등 폭동사태 수습에 분주한 모습. 폭동사태로 이날 상오 앞당겨 귀국한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날 군토로 망구수브로토 광업·에너지장관에게 유류가격 인상 조정문제를 재검토할 것을 지시.망구수브로토 장관은 이날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민 부담을 덜기 위해 (가격인상과 관련한)2개의 대통령령의 폐지를 검토할 것”이라고 언급.유류가격과 전기요금 인상은 최근 전국적인 폭동의 주요 원인이 돼왔다. ○…중부 자바의 세마랑시에선 수천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라디오 방송국을 점령하고 수하르토의 하야 등 철저한 정치개혁과 물가 안정을 촉구하는 방송을 했다. ○…외국인들의 철수 러시 속에 미국,타이완,일본 등 각국은 15일 자국민탈출을 위해 군용기를 대기시키는 등 비상대응체제에 돌입.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들은 이날 직원과 가족들을 전세기편으로 자카르타에서 철수시키기 시작. ○…일본 정부는 15일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사태와 관련,긴급관계 각료 회의를 열고 인도네시아에 머물고 있는 일본인 구출을 위해 자위대기를 긴급 파견할 수 있도록 준비에 나서기로 했다.
  • 亞 위기 장기화 경제 더 악화 가능/美서 비관론 제기

    ◎한국 파업위기·印尼 소요/사회·정치불안 촉발/IMF 가혹한 요구도 부작용 【워싱턴 연합】 한국의 노동절 과격시위와 인도네시아의 소요사태 등을 계기로 미국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위기 여파가 당초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비관론이 대두되고 있다. 미 경제전문가인 로버트 새뮈엘슨은 13일 워싱턴 포스트지 기고를 통해 “아시아 경제위기는 사회·정치불안을 촉발시키고 있으며,이는 당면한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미국제금융연구소(IIF)의 자료를 인용,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96년 7.3%,97년의 5.5%에서 올해는 마이너스 5%로 급속히 위축될 것이며 이로 인한 실업과 파업 등 사회불안이 고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실업률이 지난해 8월의 2.1% 수준에서 현재 6.5% 수준으로 3배 이상으로 급등했으며 10%까지 치솟아 실업자가 3백만명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면서 소득감소와 생활수준 저하 등으로 인한 사회적 현상은 金大中 대통령 정부의 경제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말했다. 이와 관련,국제통화기금(IMF)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불가능한 수준의 가혹한 개혁을 요구함으로써 사회불안의 부작용을 낳고 이러한 사회불안이 경제회복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새뮈엘슨은 이처럼 아시아 국가들이 사회불안을 겪고 있는 한 국제 민간은행들은 경제개혁을 위해 필요한 자금공여를 꺼릴 우려가 있다면서 아시아국가 주민들은 이같은 사태를 ‘대공황’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개고기 먹는 문화와 동물의 권리/金箕洙 加메모리얼대 교수(기고)

    서양에서 살다 보면 곤혹스런 경우가 종종 있다.한국에서 흔히 ‘동물애호가’라 부르는 동물권리론자들이 한국인을 곱지 않은 눈매로 보기 때문이다.개 먹는 풍습 때문이다.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면 대뜸 “당신도 개를 먹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이런 경험이 어찌 나 하나에 그치랴.그러니 개 먹는 문화의 시각에서 정답을 한번 궁리해 보자. 비위가 약한 나는 개를 안 먹는다.개는 커녕 돼지도 안 먹는다.그러나 “나는 한국인이지만 개는 안 먹는다”는 말이 선뜻 안 나온다.아무래도 비겁하다는 생각 때문이다.그래서 역공으로 개 먹는 것이 어째서 나쁜가고 반문한다.소나 돼지는 먹으면서 개만은 먹지 말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고대부터 식용 동물로 사실 개는 인류가 일찍부터 식용으로 쓰던 동물 가운데 하나다.은허(殷墟)의 고고학적 발굴보고서를 보면 주거지에서 으레 개뼈로 그득한 독이 나온다.은대에 개를 일상적으로 먹었다는 증거다.또 은대에 생겨난 한자에는 먹는것과 관련된 글자에 흔히 개견(犬)자가 들어있다.그릇기(器)자는 개 한 마리를 사람 넷이 둘러싼 모습이고,향연의 향(饗)에는 본래 밥식(食)자 대신 개견자가 들어있었고,싫어할염(厭)자는 개고기를 잔뜩 먹어 실증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이처럼 오랜 역사의 식용동물을 이제 와서 먹지 말라니 될 말인가. 그러나 이런 역사적 증거가 강력한 반론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은허의 주거지와는 달리 유목생활을 하던 백인의 주거지에서는 개뼈가 무더기로 나오지 않는다.중동의 농경문명을 꽃피운 수메르인의 주거지에서도 마찬가지다.개를 식용으로 쓰고 안 쓰고는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하겠다.그러니 남이 안 먹는 것을 너희만 먹어야 할 이유가 뭐냐면 뭐라고 대답하겠는가.아마도 강력한 반론은 바로 이 질문을 뒤집어서 마련할 수 있지않을까 한다.자기 문화에서 개를 안 먹는다 해서 어찌 개 먹는 남의 문화를 나무랄 수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역시 설득력이 충분하지 못하다.왜냐 하면 일반적으로 소나 돼지는 잡아먹을 목적으로 기르지만 개는 그러지 않는데,잡아먹기 위해 기른 것을 잡아먹는 경우가 개처럼 매일 품고 지내는 동물을 잡아먹는 경우와 어찌 같다고 보이랴.게다가 개는 유난히 주인을 따르고 주인에게 충직하다.그런 것을 어찌 잡아먹어도 좋다 하랴.그러나 말만 잘하면 여기에 대해서도 변명할 여지는 있다.한국인 가운데는 아무리 복날이라 해도 자기 집 개를 선뜻 잡아 잔치를 벌일 사람은 흔치않다.게다가 요즘은 개도 소나 돼지처럼 식용으로 사육한다.그리고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개의 주인에 대한 충직함이란 먹을 것과 주인이 원하는 행동을 결합한 조건반사적 반응에 불과함을 안다. ○문화상대주의의 옹호론 그러니 결국 개 먹는 문화에 대한 비난을 막아낼 길은 없지 않다고 하겠다.그러나 길러서 잡아먹는 ‘방법’을 트집잡으면 변명할 길이 막힌다.개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기쁨을 구별할 줄 안다.고통을 느끼면 낑낑거리고 기쁨을 느끼면 꼬리를 흔든다.그리고 지나치게 먹으면 비만증에 시달리고 고혈압이나 당뇨도 생긴다.이런 동물을 식용으로 기르기 위해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목에 쇠줄을 매는 행위나,급속비만을 강요하는 행위,그리고 고기맛을 내기 위해 때려 죽이거나 불태워 죽이는 행위는 아무래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개를 길러 잡아먹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런 짓을 안 해도 된다. 활동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지 않고도 사육할 수 있을 것이고,때리거나 불태우지 않고도 간단하게 목숨을 빼앗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불필요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잔혹한 행위라 할 수밖에 없다.(개의 목젖을 자르거나 불알을 까는 서양인도 잔혹하기는 마찬가지다.) ○잔혹 행위 피하는 지혜를 그런데 잔혹한 행위는 비인간적이다.동물권리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결코 개나 다른 동물을 ‘사람을’ 대하듯 대하라는 뜻은 아니다.오히려그것을 ‘사람이’ 대하듯 대하라는 뜻이다.이것을 동물의 처지에서 보면 동물한테도 잔혹한 대접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 된다.따지고 보면 인권론의 본질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내 이익의 추구로 남이 겪게 될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예방하려는 것이 인권론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내 입맛에 취해서­아니면 내 몸보신에 몰두해서­개나 다른 동물이 당하는 고통에 무감각한 분한테서 남의 고통에 대한 이해를 쉽사리 기대할 수 있을까. 올여름 보신탕집을 찾을 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 생명공학 시대/제레미 라프킨(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실험물 세상밖으로 내보내자/유전공학 신기술은 또다른 경제적 기회/‘섬뜩한 창조물’로 매도… 외면해선 안돼/윤리적 문제 충분히 따진뒤 활용 필요 과학자들이 실험물이나 대상들을 연구실 안에서만 가지고 있는다면야 아무도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실험물이나 대상들이 우리의 우려를 자아내는 신종 바이러스나 어떤 돌연변이 생물,혹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섬뜩한 생물 등일 경우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실험실에서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하루 아침에 프랑켄슈타인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일 수도 있다.다만 그것들이 비커안이나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상태하에서는 문제가 없다.그러나 영화에서 항상 보듯이 그섬뜩한 창조물들은 언제나 실험실 밖으로 도망간다.또 시험관 속을 기어가던 것들 역시 언제나 유리병을 깨고 나와 선량한 생명체 속에 침입한다.그렇다면 언제나 그렇게 도망가는 위험한 것들을 왜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에 답하는 책이 바로 제레미 라프킨의 최근 저서 ‘생명공학 시대(BiotechCentury)’이다.그러나 라프킨은 이 창조물들을 왜 만들어내는 가에 대한답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실험실에만 가두지 말고 실제 세상에 적용할것을 주장하고 있다.때문에 라프킨은 지난해 돌리라는 복제 암양을 만들어낸 스코틀랜드의 과학자들이 포유류 세포차원에서 이룩해낸 과학적 업적을 바탕으로 내놓은 주장들을 따르고 있다.지금 세간에는 이보다 더 나아가 유전자 차원으로 옮겨가 송아지를 복제해낸 미 위스콘신주 생명공학회사,원숭이를 복제하려한 오레곤주의 한 회사,그리고 돈만 있다면 실험실에서 복제 인간을 만들 것이라고 선언한 리처드 시드 등의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라프킨은 물론 이 책에서 숨쉬는 어느 생명체건 마구 복제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생명체를 유전적으로 변형시켜내는 것 등 더 심각한 결과를 예측하고 있기도 하다.이에 덧붙여 체력조건과 모양새,지능차원에서 누가 이 창조물들을 만들어내고 하는 일을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라프킨 혼자만이 이같이 가치있는 우려에 대해 나름대로의 주장을 한것은 아니다.그가 이 문제에 대해 지적한 첫구절은 우리는 이 모든 우려에 대해 준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그는 “지평선상위에 떠오르는 새로운 기술과 경제적 기회,그리고 도전과 모험에 대해 인류가 역사상 지금처럼 대비를 하지않은 때도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다.적용에 앞둔 조심성을 각성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는 인류사를 논하면서 불을 가질 수 있게된 인류가 불에 대해 가졌던 철학과 불의 역사에 대해 논한 부분이 있다.여기서 그는 인류 초기 불은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다.그래서 불은 아무나 만질 수 없었으며 가장 신성시 되는 주술인 아니면 족장 등 만이 불에 대한 접근 권한과 결정권한이 있었다고 적었다.지금의 실험실내 위험한 창조물들과 같은 처지인 셈이다.다만 지금은 신성권한이 전문지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그는 그러나 “불에 대한 신성불가침권한은 지금 어떻게 됐나.너저분한 뒷골목에서 어린 아이들도 불을 지펴 놀 수도 있는 정도가 아닌가”고 반문한다. 라프킨은 또 이 책의 “새로운 환경적 위협”이라는 장에서 버클리대학 유전학자인 스티븐 린도우가 처음으로 연방정부로부터 신종 박테리아에 대한 야외실험 허가를 받았을 때를 또하나의 예로 들고 있다.이 실험의 요점은 곡물의 냉해방지였다.즉 박테리아가 가진 혹한에 이겨내는 유전인자를 곡물에 이전시켜 서리나 급작스런 기온저하를 이겨내도록 하는 것이었다.그래서 이같은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를 보유한 딸기를 캘리포니아 북부에 심으려 하자 그곳 사람들은 잔뜩 긴장했었다.라프킨도 이것에 반대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그가 속해있던 ‘경제추세’라는 단체는 그 실험을 중지시키기 위한 소송도 냈었다.그러나 그 실험은 계속됐다.그 결과는 어떠했던가.냉기에 내성을 보유한 박테리아가 번져나갔나.아니면 문제가 발생했었나.대답은 라프킨 스스로가 “별로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의 말미에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생명공학을 더욱 더 적극적이고 모험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도가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여기서 라프킨은 우리가 사는 사회가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한다는 측면을 고려해 자연세계를 고안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즉 산업혁명 시기 이전에 우리는 동물들이 기계로 사용된 것을 잘 안다.지금 우리는 컴퓨터를 통해 자연세계를 보기 시작했다.유전인자의 복잡한 암호는 컴퓨터의 암호와 동격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뇌의 활동 역시 같은 속성에서 연구되고 있다.그같은 언어는 우리로 하여금 초자연적인 활동을 자연적인 것으로 보이게 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초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새나 벌,늑대,닭 등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더 이상 생물이 아니라 거대한 유전자 덩어리로 와닿는다”는 것이다.이것은 많은 생물학자들에게 하나의 충격이다.이는 생물연구가 이제는 다양한 렌즈를 갖는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데서 오는 여러가지 이점을 소홀이 취급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라프킨은 자연을 이처럼 보게 만든 시각들과 관련된 여러가지 우려와 관심들에 대해 이 책에서 적절히 소개하고 있다.우리가 새롭게 지니게된 이같은 엄청난 힘을 무분별하게 적용하기 이전에 관계된 사람들이 제기하는윤리적 문제를 들여다 보게한다.라프킨은 우리를 위한 미래에 대해 풍부하고 튼튼한 논쟁과 논의를 거친 뒤 나온 윤리적 기본을 전제로 하자고 끝을 맺는다.그의 책은 언쟁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놓치기 쉬운 토론에 충분히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원제: THE BIOTECH CENTURY.‘제레메 P.타처/풋남’출판사.271쪽.24.95달러.
  • 5·10 제헌국회총선 의미/徐仲錫 성균관대 교수·사학(특별기고)

    제헌국회총선거가 오는 10일로 50주년을 맞는다.1948년 5월10일 치러진 5·10선거는 분단을 고정화하였다는 점에서 부정적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역사상 최초로 보통선거를 통하여 민주공화국을 탄생케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역사상 첫 보통선거 1947년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치열해짐에 따라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정에 의한 통일 임시정부 수립이 어려워지자 그해 9월 미국은 한국문제를 국제연합에서 다룰 것을 제안하였다.그리하여 국제연합 총회에서는 11월14일 남북 총선거를 통한 한국정부 수립안과 가급적 조속히 가능하다면 90일 이내에 미소 점령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것을 결의하였다.그러나 예상한대로 소련과 북측은 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이 38도선을 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국제연합 소총회에서는 1948년 2월26일 가능한 지역에서만의 선거 실시를 건의하여,미군정에 의하여 5월10일 선거가 치러지게 되었다. 5·10선거에는 각 정치세력의 폭넓은 참가가 이루어지지 못했다.한국은 그때까지 분단을 경험한 적이 없어 한반도에는 하나의 단일 민족국가만이 존재하여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고,통일정부의 수립만이 우리 민족의 살길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좌익은 단선단정 반대운동을 격렬히 벌였다.金九 金奎植 등 민족주의자들은 남한만의 선거는 미소가 획정한 38도선을 국제적으로 합법화시키는 행위이고,따라서 남과 북에 들어서는 정부는 미소의 영향력 아래서 자주성을 갖기가 어렵고,참혹한 동족상잔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하여,5·10선거를 반대하고,4월에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선거에 통일운동세력도 참가해 제헌국회에서 통일과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였다. 曺奉岩과 지방의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은 부분적인 현상이었지만 이 선거에 입후보하였다.金九 金奎植같은 지도자들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기 때문에 해방이 분단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또 민족의 대의를 위해서도 통일운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데 국제관계로 분단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이 선거에는 되도록 각 정치세력이 많이 참여하여새 정부에 대한 지지를 폭넓게 할 필요가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李承晩·한민당 세력은 중도파 민족주의자들이 출마하는 것에 대하여 민중은 그들의 정체와 야욕을 간파하여야 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그만큼 그들은 편협성 편파성이 강하여 자신들이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고 그것은 새 정부와 자유민주주의에 짙게 암영을 드리우는 것이었다. ○전체유권자 75% 투표 5·10선거에서는 만 21세 이상의 남녀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고,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친일파를 제외하고 25세 이상이면 피선거권이 있었다.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러졌고,제헌국회였기 때문에 임기는 2년으로 제한하였다. 의원후보자는 선거인 명부 등록자 200인 이상의 서명 날인이 있는 추천장을 첨부하여야 했는데,이 제도는 李承晩이 출마한 동대문구에서 악용되었다.5·10선거에는 8백13만여명의 유권자중 7백84만여명이 선거인 명부에 등록하고,그중에 7백48만여명이 투표한 것으로 발표되었다.전체 유권자의 75%가 투표한 것이다.제주도의 두 지역에서는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하여 198명이 당선되었다.북측에서 선출할 의원 100명은 공석으로 놔두었다. 이 선거에서는 한민당이 미군정 시기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위세가 대단하였기 때문에 다수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그러나 개표 결과 한민당 이름으로 나온 후보들은 불과 29명밖에 당선되지 못하였고,李承晩을 영도자로 한 독립촉성국민회의가 55석을 차지하였으며,무소속으로는 85명이 당선되었다.우리나라 선거는 이변이 적지 않은데,바로 첫 번째 선거가 예상을 뒤집은 것이었다. ○우리선거사상 첫 이변 5·10선거에서 시행된 보통선거에 대해서 그것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많은 정치학자들은 이 선거가 미국에 의하여 이식된 것이라고 말한다.선거도 민주주의도 모두다 이식된 것이라는 주장이다.그렇다면 이 선거가 보통선거가 아닌 제한선거로 치러질 수 있었을까.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이후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는 놀랍게도 일찍부터 민주공화국을 세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일제침략기에 왕정복고를 생각한 사람은 극소수였다.또 공화국은 보통선거로 수립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독립운동세력한테는 일반적이었다.이미 상해임시정부가 만들어질 때부터 그것은 등장하였고 趙素昻의 삼균주의에서 정치의 평등이란 보통선거를 가리켰다.일제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은 처음에는 민주공화국을 상정하였다가 나중에는 인민공화국을 내세웠고,1930년대에는 소비에트 체제까지 구상하였다. 해방후의 혁명적 분위기에서 모든 정치세력은 당연히 보통선거를 실시할것을 주장하였다.이러한 분위기에서 보통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을 것이다.다만 李承晩·한민당세력은 나이 먹은 사람들일수록 보수적이고 봉건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권자의 연령을 높이려고 입법의원때부터 노력하였지만,그것도 성사될 수 없었다.따라서 한국인은 선거할 자격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독재자들의 지나친 권력욕때문에 선거가 요식행위나 치장물에 불과하게 되었다는 비판을 듣게 된 것이다. ○소장파의원 발언 강화5·10선거 이후 제헌국회에서 소장파들의 발언이 강화된 것도 주목하여야할 것이다.정부수립 얼마후부터 ‘소장파 전성시대’라는 말을 듣게 되거니와,소장파의원들은 金九 金奎植과 입장을 같이하여 통일운동을 벌였고 친일파 처단을 올바로 하여 민족정기를 세우고자 하였다.그들은 농민위주의 농지개혁을 위하여 보수세력과 싸웠고,민주주의적인 지방자치법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제헌국회내 소장파 의원들은 金九 선생 암살이 있었던 시기에 일어난 국회프락치사건으로 무력해졌다.이로써 의회민주주의는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다. 1948년 5월31일 소집된 국회는 제헌국회라는 이름 그대로 헌법제정에 힘을 쏟았다.권력형태는 李承晩의 고집으로 하루밤 사이에 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로 바뀌었다.이 헌법은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실현시키기 위한 경제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도 특색이다.한마디로 헌법자체는 서유럽의 그것에 별반 손색이 없었다. ○민중 우습게 알면 안돼 7월17일 헌법이 공포된후 제헌국회에서는 대통령에李承晩,부통령에 李時榮을 선출하였다.국회의장은 申翼熙,대법원장은 金炳魯가 되었다.8월15일 정부수립이 공포되었다.金九 金奎植은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착잡한 심정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는 6월4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5·10선거는 두가지의 교훈을 주고있다.그것은 정치인들이 민중을 우습게 알거나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선거는 결코 말의 유희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청와대 구경 쉬워졌다/내일부터 개별관람 허용

    ◎녹지원 등 사진촬영 가능 오는 8일부터 일반 방문객들의 청와대 경내 관람이 허용되며,방문객들은 개인사진기를 휴대하고 춘추관,녹지원,본관 대정원 앞,영빈관 앞 등 지정된 장소에서 사진촬영도 할 수 있게 된다. 청와대는 국민에게 보다 친근한 청와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단체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해왔던 청와대 관람을 일반인에게 개방하기로 했다고 6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일반인이 개별적으로 청와대 경내 관람을 원할 경우,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앞 광장에 설치된 ‘청와대 관람 안내소’에서 하오 1시부터 3시까지 선착순으로 관람권을 교부받아야 한다.관람권을 신청할 때는 신분증과 신분증 사본(외국인은 여권사본)을 제출해야 하며,관람권을 교부받게 되면 국립민속박물관 정문 앞 광장에 시간대별로 집결,20분에 100명씩 춘추관으로 이동하게 된다. 일반인 관람은 봄(4,5월)과 가을(9,10월)에 매주 금,토요일 하오 2시부터 5시까지로 하루 1천명까지 관람이 허용된다. 또 여름·겨울 방학기간의 초·중·고교 학생들과 장애인,노인,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한 특별관람은 연중 허용된다. 30인 이상의 단체관람은 혹한기(1,2월)와 혹서기(7,8월)를 제외하고 연중 실시하며,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상오 10∼12시,하오 2시∼5시까지 두차례 이뤄진다. 청와대 관계자는 “제도개선으로 단체관람 9만6천명,일반관람 3만5천명 등 총 13만1천명이 청와대 경내를 관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청와대 경내관람 안내전화는 상오 9시∼하오 5시까지 가동되며,인터넷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안내정보가 실린다.전화번호는 (02)­737­5800.
  • 日 법원 판결문 요지

    ◎위안부 제도는 기본적 인권침해 사례/국회 배상입법 의무 소홀로 피해 가중/日 정부는 원고에 30만엔씩 지불의무 ▲종군위안부 국가배상책임에 관해=종군위안부제도는 철저한 여성차별,민족차별이며,일본국 헌법이 인정하는 기본적 인권침해로 볼 수 있다.피고인 국가는 종군위안부 여성들에 대해 피해의 증대를 초래하지 않도록 배려,보증할 의무가 있음에도 다년간에 걸쳐 방치해 고통을 배가시켰다. 93년 8월 내각관방외정심의실의 조사보고서에서는 일본 헌법상 배상입법의 의무가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으나 합리적 입법기간인 3년을 경과했음에도 국회의원이 입법을 하지 않아 국가는 입법부 작위에 의한 국가배상으로서 위안부 원고에 대해 각 30만엔의 위자료를 지불할 의무가 있다.그러나 공식사죄의 의무까지는 없다. ▲근로정신대 국가배상책임에 관해=근로정신대 원고 등은 속임수를 당해 어린 시절 가혹한 조건에서 근로 동원된 점은 인정되지만 위안부 원고 등과 비교해 그 성질과 정도에 차가 있어 일본 헌법상 중대한 인권침해를 초래했다고는 볼수 없다. □종군위안부 관련 일지 ▲90년 6월:일 정부,“종군위안부 구일본군과 관계 없다” 답변. ▲91년 12월:위안부 출신 金學順씨 등 도쿄지법에 제소. ▲92년 1월:가토 고이치 당시 관방장관,군의 관여 인정. ▲92년 12월:한국피해여성 4명 야마구치(山口)지법 시모노세키(下關)지부에 일본 국가상대 사죄와 배상청구 소송 제기. ▲93년 8월: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 강제연행 인정. ▲95년 7월:일 정부,‘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 발족 ▲96년 4월:유엔인권위,일 정부에 법적 책임과 개인보상 권고. ▲98년 4월:한국 정부,생존 위안부 1인당 3천8백만원 지급 결정.
  • 우즈베키스탄 히바 이찬 칼라(세계 문화유산 순례:69)

    ◎중앙亞 이슬람 문화 집약된 ‘옥외박물관’/古代 실크로드 요충 도시… 한때 하레즘 王國 수도/19세기때 왕궁·학교·첨탑 등 복원… 건축미 탁월 이찬 칼라는 우즈베키스탄의 고대 도시 히바의 중심에 위치한 도시 유적지이다.중국을 출발한 낙타대상들이 중앙아시아의 기나긴 실크로드를 지나 이란으로 향하는 험난한 사막을 앞에 두고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는 휴식처였다.10m 높이의 벽돌이 둘러싸고 있는 이찬 칼라의 원래 유적은 얼마되지 않지만,중앙아시아 건축예술의 전형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이런 연유로 중앙아시아 유적지로는 드물게 1990년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히바는 하레즘 오아시스의 남쪽에 있는 고대 실크로드 교역도시이다.북으로 크즐쿰 사막과 남으로 카라쿰 사막이 가로막은 황량한 중앙아시아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예술과 문화를 갖춘 도시가 히바이다.11∼12세기까지만 해도 히바는 이름없는 한 자그만 성채도시였다.그나마 중앙아시아의 운명을 바꾼 몽골의 대침략에 히바도 예외가 될수 없었다.폐허의 사막위에 16∼17세기가 되자 다시 생명의 기운이 솟았다.당시 하레즘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히바는 화려한 복귀를 세상에 알렸고,중앙아시아의 가장 중요한 교역도시로 성장하였다.그러나 18세기에 들어 침략과 약탈이 종종 주요 경제 취득의 수단이 되곤 하던 중앙아시아의 혼란과 내전은 히바의 파괴를 가속화시켰고,이란의 침략이 겹쳐 다시 한번 히바는 망각의 수렁에 빠져들었다.그리고 러시아의 잔혹한 억압과 정신적 고통을 당해야 했다.그러나 러시아도 히바의 문화를 말살시키지는 못했다.이리하여 19세기에 또다시 옛 영화를 재건하는 강인한 복원력을 히바는 보여주었다.마졸리카의 청색이 주는 은은한 타일 모자이크의 조화,사막 모래 색깔과도 같은 매끈한 대리석,햇볕에 구운 벽돌,그리고 그모든 재료를 기가 막히게 조합해내는 신기어린 예술혼과 석각기법이 모스크를 만들고,궁궐을 짓고,학교를 세우고,하늘 높이 우르러는 첨탑을 도시 한가운데 심어 놓았다.이 모든 작품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곳이 바로 이찬 칼라이다. 이찬 칼라는 내성(內城)이란 의미이다.고도 히바의 심장부를 이루는 이찬칼라는 중앙아시아 터키­이슬람 문화가 집약된 일종의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다.시대와 문화를 달리하는 여러 다양한 인간의 건축 작품들이 이찬 칼라의내용을 구성한다.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이찬 칼라를 동서남북에 열려있는 4대문을 통해 출입한다.다시 그 밖으로 외성을 의미하는 디샨 칼라가 10개의 문과 수많은 첨탑으로 감싸면서 히바의 도시를 보호하고 있다.히바의 중심은 중앙아시아 성채도시들이 항상 그러하듯 모스크라는 정신적 주춧돌로부터 시작된다.사막과 오아시스에서 제한된 경작과 국제교역을 통해 국가를 꾸려가던 시대에 강인한 정신력과 신앙의 힘은 필연적인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이찬 칼라 정중앙의 주마 모스크는 히바의 정신적 요람이다.213개의 나무기둥위에 10세기경 세워진 주마 모스크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의 하나이다.폐허가 된 본체는 흔적만 남았고,나무기둥 하나하나에는 전체가 아라베스크와 코란구절이 조각된,그 자체가 화려한 예술품이다.모스크는 단순한 종교 기능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교육과 과학,의학의 중심지였다.그리하여 모스크 옆에는 반드시 메드레세라는 학교가 있다. 이찬 칼라에는 수많은 메드레세 건물이 남아 있다.그래서 히바를 메드레세의 도시라고도 한다.그만큼 학문과 과학이 발달했던 중앙아시아의 중심도시였다.무하마드 아민 칸,쉬르 가지 칸 메드레세가 규모나 기능면에서 단연 이찬 칼라를 압도한다.특히 무하마드 아민 칸 메드레세 옆에는 짓다 만 첨탑이 있다.그 이름도 칼타 미나르(낮은 첨탑)이다.히바 군주 무하마드 아민 칸이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짓고자 했으나,그의 죽음으로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마무리되었다.타일의 배치나 조각,기학학적 문양 등은 중앙아시아 건축예술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바로 옆의 이슬람 호자 메드레세도 빼놓을 수 없다.현재의 건물은 20세기초의 모습이지만,이 메드레세에서 알­비루니나 호레즘과 같은,중세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배출되었다. 화려한 역사와 학문의 중심지는 이제 시민들의 휴식처가되었다.둥근 모자를 쓰고 마냥 웃고 있는 듯한 사람들이 느슨한 동작으로 앉아 있다.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표정에는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여행 가이드/타슈켄트서 비행기로 40분/호텔없어 인근서 민박해야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 아시아나와 우즈베크 항공이 주2회 직항로를 개설하고 있다.타슈켄트에서 국내선으로 40분을 날아 우르겐치 공항으로 가서 히바까지는 자동차로 다시 약 30분 소요.자동차로는 타슈켄트에서 약 10시간이 걸린다.‘국영 우즈베크 투리즘’ 히바지점(전화:3652­232276)을 통해 히바 여행을 안내받을 수 있다.히바에는 호텔시설이 없고 인근 우르겐치에 작은 숙박시설과 민박이 가능하다.
  • 政界개편과 國難극복(社說)

    金大中 대통령이 23일 서울 국제경제회의 연설에서 정계개편문제를 처음 공식 언급,“국민의 다수가 정계개편을 해서라도 정국안정을 실현,오늘의 난국을 극복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을 우리는 중시한다.아울러 경제 파탄과 국가적 좌절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파간 다툼으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으며 여야는 조속히 초당적(超黨的) 자세로 정국안정을 이뤄 국민 모두가 경제회생에 매진할 여건을 만들어야만 할 것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날 金대통령이 연설한 회의가 국내외 기업·금융인,외국인 투자자와 언론인들에게 우리의 정치·경제 상황과 투자여건을 설명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金대통령은 인위적 정계개편보다 “멀지않아 한국정치가 튼튼한 안정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개편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특히 강조한 것으로볼 수 있다.金대통령은 정국안정이 국민의 절대적 여망이며 국민의 70∼80%가 현정부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가까운 시일내 정국안정을 이룩하겠다는 결의와 자신감을 분명히 했다. 金대통령은 취임직후부터 경제난국 돌파에 정국안정이 절대적 전제임을 강조하며 위기 극복에 필요한 기간만이라도 ‘거대 야당’이 협력 해줄 것을누누이 당부해왔다.그러나 총리임명 동의안 및 추경예산안 처리와 선거법개정 협상 등에서 야당측은 의석수의 힘을 빌려 사사건건 명분이 약한 정치 적이유를 들어 제동을 걸며 정국을 경색(梗塞)시켜온 게 현실이다.金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제 더 이상 야당의 협조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분명히 하고 차선책(次善策)인 정계개편을 통해서라도 정국안정을 이뤄나가지 않을 수 없다는 자신의 결의와 국민의 요구를 밝힌 것이다. 우리의 경제상황은 여유롭지 못하다.정부와 재계,국민모두가 해야할 일이산적해 있다.정치권이 이를 앞장서 이끌어 나가도 경제회생이 순탄할 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대사는 대한상공회의소 연설에서 한국이 기업·금융 구조개편과 외자유치 노력을 서두르지 않으면 지난 몇달 동안보다 훨씬 가혹한 시련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지난 30년대 경제공황기에 대통령 4선의 기록을 세우며 뉴딜정책으로 미국의 경제회생 길을 닦은 플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대통령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한 국회의 초당적 지원을 바탕으로 그같은 역사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金대통령은 아직 여야간 협력을 통한 경제난 극복과 개혁작업 추진을 희망,야당측 새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하며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야당은 정계개편을 새로운 정치쟁점으로 삼으려 들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시각에서 발상을 전환,여야간 협력이 노사(勞使)의 협조,그리고 국민의 경제회생 총력전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 보스워스 주한 美 대사 대한상의 간담회 주제발표

    ◎한국 더 가혹한 시련 겪을듯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국 대사는 22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초청간담회에서 ‘미국의 시각에서 본 한국경제의 개혁,경쟁력 및 외국인의 투자에 관한 조망’을 주제로 발표했다.그는 한국경제가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경쟁,투명성,개방의 원칙에 입각한 경제전략을 수립해 강력히 실행해나가야 한다고 충고했다.발표문을 요약한다. ○실업률 상승·인플레 가중 최근 한국의 경제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단기외채의 중장기채 전환,40억달러에 달하는 국채발행 성공 등으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경제는 국내투자와 소비수요가 감소함에 따라 재화와 용역의 생산량 감소,기업들의 도산,실업률의 상승,원화가치의 평가절하에 따른 인플레이션 효과로 인한 실질소득의 감소 등 지난 몇개월 보다 더 가혹한 시련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3개월동안 한국의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것은 수출 증가보다는 수입이 대폭 감소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따라서 앞으로 수입의 감소는수출증가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한국경제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한국이 양질의 노동력,현대화된 경영능력,노동윤리,풍부한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金大中 대통령이 취임해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등 정치적으로 성숙된 면을 보이고 있다.한국인들은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제운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국가경제가 세계경제에 통합되어감에 따라 정부나 소수의 사업가 또는 중앙집권화된 시스템에 의한 경제운용은 효율성을 확보할 수 없다.한국의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은 신속히 실행되어야 하며 한국은 강력한 금융시스템애 대한 구조조정이 단행해야 한다. ○자본시장 투명성 확보돼야 자본시장은 투명성만 확보된다면 효율적으로 기능하며 기업회계제도의 개혁,계열사간의 상호지급보증의 해소,소액주주의 권익 신장은 향후 한국경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외국인 투자,인수·합병,전략적 제휴등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金대통령을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대폭적인 개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높은 저축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생활수준의 향상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국내 소비와 수출을 위해 생산활동을 하는 외국인 투자가 필요하다.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더욱 투명하고 자유로운 사업·무역환경이 요구되고 있다.그럼에도 외국인 투자유치 확대가 빨리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본인이 많은 미국 기업인들과 의견을 나눈 경험에 의하면 미국 기업인들은 향후 몇년동안 어려움을 겪게 될 한국 경제를 고려할 때 한국 기업의 자산가치가 비현실적으로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은 경영권을 공유할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본인에게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답할것이다.그러나 투자환경이 개선되었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외국인 투자가 몰려오는 것은 아니다.외국인 투자 유치에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외국인 투자유치 노력 부족 한국의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은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수반할 것이다.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은 이러한 개혁을 피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대안은 침체 뿐일 것이다. 미국의 경제개혁 과정을 살펴보면 중소기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즉 1990년 이래 미국에서 중소기업은 새로 창출된 일자리의 3분의 2를 차지하였다.또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가 가장 개방된 경제체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이것은 미국 기업이 세계의 모든 기업과 완전경쟁을 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현재의 위기에 대해서만 단기적으로 대처해 나간다면 이마저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며 경쟁,투명성,개방의 원칙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전략을 실행해 나갈 때 한국경제는 경쟁력을 가진 역동적인 경제로 변할 것이다.
  • 한국·조선에 답한다(社說)

    신문의 비판은 동업 영역에도 해당 되어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동업 한국일보와 조선일보가 각각 사설로써 본보의 경영진 인사에 관해 비판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본보는 두 신문의 사설에 대해 잘못된 내용의 진실과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한국일보(4월18일자) 사설은 몇가지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서울신문사장에 대통령 친인척이 기용되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마치 대통령 전 부인의 성씨와 신임 사장의 성씨가 같다고 하여 그런 억측이 나돈 것 같은데 사실과 다르다. 다음으로 대통령 장남의 처남이 전무로 임명된 것을 비판한 대목이다.그는 이미 널리 알려진 광고전문가이며 경영인이다.IMF 한파로 신문경영이 광고수입의 축소로 대단히 어려워진 마당에 유능한 광고인이 경영에 참여하여 흑자경영을 해보려는 것은 시도해볼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그리고 대통령 아들의 처남까지 친인척에 해당되는지,그리고 대통령의 친인척은 아무리 유능해도 취업을 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세번째는 주필이 비언론인 출신이란 지적이다.목수가 대학강단에 서고 탤런트가 대학교수로 취임하는 세상이다.더구나 신임 주필은 엄혹한 독재시절 야당기관지 주간으로 반독재 자유언론의 길을 걸어왔다. 네번째는 감사의 임명에 지역적인 고려가 작용했다는 지적이다.지난 50년동안 서울신문의 편중된 인사문제를 이해한다면 크게 문제삼을 것이 없다고 본다. 다음에는 조선일보(19일자) 사설이다.정부기관지라는 숙명을 안고 있는 본보는 대통령과 새정부의 정책과 철학을 잘 아는 사람이 경영진에 임명될 수밖에 없다.일반 언론사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따라서 앞서 밝힌 바대로 친인척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한정하는지,측근은 아무리 유능해도 공직취임이 배제되어야 하는지,일반 언론사의 경우 친인척은 철저히 배제되고 지역성은 균형을 유지하는지 의문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본보 주필과 관련,“언론유관 매체와 관련이 있는 일을 했다고 해서 중책을 맡겼다면 언론의 기능을 너무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우리의 견해는 다르다.언론인이 정치인으로,교수가 언론인으로,경영인이 대학강단에 서고 있다.마찬가지로 언론계도 외부 직업인이 얼마든지 참여해서 새로운 수혈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더욱이 야당기관지 주간을 지낸 사람이 정권교체로 집권했으면 정부기관지 주필을 맡은 것은 오히려 상식적인 일이 아닐까.그것이 왜 언론의 기능을 무시한 처사라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신문의 새 경영진은 이 신문이 과거 보여온 여러가지 부정적인 역할에 대해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 수 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경영과 지면쇄신에 노력하고 있다. 서울신문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 동업의 언론계나 일반 국민은 우리의 고뇌를 이해하실 줄 믿는다.두 신문이 보여준 ‘우정있는 비판’에 감사를 드리면서 좀더 인내를 갖고 서울신문의 달라진 모습을 지켜봐 줄 것을 바라마지 않는다.
  • 달 남극에 유인우주기지 세운다

    ◎ESA ‘유로문2000’ 프로젝트 추진/얼음 탐사로봇 시험주행 완료… 2001년 발사 예정/달 얼음 활용땐 수소·산소 얻고 기지비용도 절감 【朴建昇 기자】 미국 달탐사선 ‘루나 프로스펙터’가 지난 3월초 달 극지대에서 얼음 형태의 물 흔적을 발견한 이후 달에 유인(有人)기지를 건설하려는 작업이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달에는 북극 4만6천㎢와 남극의 1만8천500㎢에 걸쳐 최고 3억3천만t의 물이 얼음 형태로 흩어져 존재하고 있다.이 얼음 형태의 물은 2인 가족 1천가구가 100년이상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지구에서 2㎏의 물질을 달궤도에 올리는데 2만달러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달에 매장된 얼음의 경제적 가치는 줄잡아 60조달러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달에서 물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우주탐사에는 이미 일대 혁신적 발전이 예고됐다.우선 물을 화학분해하면 상설 우주기지를 건설할 수 있는 연료와,다른 행성으로 쏘아 올리는 로켓의 추진연료를 얻을 수 있다.얼음을 녹이면 생명수가 되고,이를 전기분해하면 로켓연료인 수소와 산소가 나오기 때문이다.로켓추진제로 쓰이는 액체산소와 액체수소를 달에서 얻을 수 있으니 지구를 떠날 때 돌아올 추진제까지 싣고 갈 번거로움이 없어진다.이런 맥락에서 과학전문지 ‘뉴사언티스트’는 “달의 얼음을 활용하면 유인기지 운용비용을 적어도 60% 남짓 줄일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게다가 본격적인 달기지 건설에 나섰을 때 물에서 산소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곳에서 식물을 경작하는 방식으로 식량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얼음이 달의 남극과 북극의 햇볕이 전혀 들지 않는 크레이터(분화구)에 매장되어 있다는 점.이 곳 대부분은 온도가 섭씨 영하 173도이상 오르지 않는 혹한지역인 데다 인간이 그동안 유력한 달기지로 꼽았던 적도부근에서 무려 3000㎞나 떨어져 있다.이론상으로는 흙을 파헤쳐 얼음덩어리를 꺼낸 뒤 적도지역으로 옮기면 되겠지만 이같은 작업에는 실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추진하고 있는 유인기지 건설작업이 유럽우주국(ESA)의 이른바 ‘유로문 2000(EuroMoon 2000)’ 프로젝트. 유럽우주국은 달의 얼음을 가장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달 남극 크레이터 주변지대인 이른바 ‘만년광봉(萬年光峰)’에 유인기지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만년광봉’은 직경이 수㎞에 불과하며,남극인데도 늘 햇볕이 드는 매우 희귀한 지역.얼음덩어리가 매장된 곳과 인접해 있으며 온도는 섭씨 영하 30도 안팎으로 기후조건이 매우 양호하다.유럽우주국은 빠르면 2001년 첫 왕복선을 쏘아 올려 탐사로봇을 얼음이 매장된 근처의 크레이터에 떨어뜨려 놓을 계획이다. 얼음탐사용 로봇의 제작도 순조롭다.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 레드 휘태커 박사팀은 최근 달의 가장 깊은 지대인 크레이터에 매장된 얼음덩어리를 탐색,발굴할 수 있는 시험용 탐사로봇을 공개했다.휘태커 박사팀은 지난해 칠레아타카마 사막에서 이 얼음탐사용 로봇의 시험주행을 마쳤다. 달의 물을 이용해 유인기지에서 작물을 재배하려는 연구는 일본에서 활발하다.일본 로카쇼무라 환경과학연구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끝에 최근 월면(月面) 경작용 벼품종을 개발했다.이 벼는 ‘무츠 호마레’라는 품종의 돌연변이로 실험실에서 온도·일조량·이산화탄소량을 적절히 조절,월면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1년에 세차례 수확할 수 있으며 미질(米質)은 보통 쌀보다 떨어지지만 달에서 식량으로 쓰기에는 손색이 없다고 로카쇼무라연구소측은 설명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일본은 오는 2005년까지 달에 1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식민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일본의 건설회사인 시미츠사는 이를 위해 위험한 우주광선을 차단하고 극한온도(섭씨 영하 190도∼영상 137도)에서 견딜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건축기술을 연구중이다. 이와 함께 유성과 충돌하더라도 피해가 없는 나선형주택의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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