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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정신적 충격 우려” 어린이 법정진술 안한다고/ 성폭행 피고인 무죄 선고

    법원이 성폭행 사건 선고공판에서 피해 아동이 법정 진술을 거부하자,증거 부족을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동안 수사기관에서는 13세 미만 성폭력 피해아동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진술할 때 2,3차 정신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진술을 VTR로 녹화해 증거로 사용하는 ‘진술녹화제’를 시행하는 등 변화를 모색해왔다.여성단체 등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피해 아동 보호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서울지법 서부지원 안승국 형사1단독 판사는 30일 미성년자 의제강제추행 혐의로 3년을 구형받은 유치원 운영자 홍모(59)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재판부는 이날 직접 증거가 되는 피해 아동 이모(10) 양의 법정진술을 요구했고,이양의 어머니 송(44·성폭행 피해자 가족모임 대표)씨가 이를 거부하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측이 법정 진술을 거부한 채 증거로 제출한 검찰과 경찰 진술조서를 형사소송법 314조의 예외 조항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 사건의 경우 예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는 진술조서 등 전문(傳聞)증거의 증거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형사소송법 314조는 진술 당사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 및 기타 사유’로 출두할 수 없고 진술조서를 신뢰할 수 있을 때에 한해 예외적으로 증거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양이 피해를 당한 지 5년이 지나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법정 진술 과정에서 제2의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질병’이나 ‘기타 사유’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양이 기억하지 못하느냐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고,법정 증언이 이양에게 정신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의사 진단서의 내용도 314조가 규정한 ‘질병’이라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홍씨는 지난 98년 이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된 뒤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그러나 송씨의 5년에 걸친 노력으로 헌법재판소에서 불기소 처분 취소 결정이 내려져 지난해 12월 기소됐다. 송씨는 “나와 아이에게 당시 성폭력 사건을 되새기며 법정에 서라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항변했다.여성계는 “남성과 성인 위주의 재판”이라며 반발했고,검찰은 다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세영기자 sylee@
  • 책 /유럽의 탄생

    /장 바티스트 뒤로젤 지음 유럽은 서양사의 중심이다.근대를 형성한 사회구조와 그것의 근간이 된 철학·정치(민주주의)·과학·경제(자본주의) 등의 발원지가 바로 유럽이다.그러나 유럽이라는 것이 언제 어떻게 역사 속에 등장했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유럽은 우리에게 언제나 ‘단일한’ 실체로 인식돼 온 측면이 없지 않다.우리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럽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서구에서 들여온 지식체계에 근거를 둔 것이다. ‘유럽의 탄생’(장 바티스트 뒤로젤 지음,이규현 등 옮김,지식의풍경 펴냄)은 유럽중심주의를 철저하게 부정한다.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저자는 유럽이 어떻게 ‘탄생’됐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제우스 신에게 몸을 빼앗긴 아름다운 요정 에우로파로부터 그 이름을 빌려 온 유럽.이 좁지도 넓지도 않은 땅덩어리에서 오랜 세월 여러 종족과 국민들이 서로 어울려 살고 싸우면서도 유럽인들은 오늘의 유럽을 특징짓는 공통된 문화와 문명을 가꿔왔다.하지만 그것이 곧 역사상 하나의 실체로서 유럽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유럽은 헤로도토스에게는 단순한 지리학적 명칭이었으며,플리니우스에게는 최선의 질을 갖춘 대륙이었고,중세에는 기독교 세계 혹은 서방이었다.또한 17∼18세기 구체제 시대에는 세력균형 원리에 묶여 대립하는 국가들의 총체였으며,이탈리아의 마치니와 같은 19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는 서로 연대감을 느끼는 국민국가들의 집합체였다.1차세계대전을 전후한 20세기에는 냉혹한 민족주의적 대결의 장이었다.그렇게 볼 때 하나의 정치 단위로서의 유럽은 비교적 최근에 고안된 ‘발명품’임을 알 수 있다. 유럽합중국운동에 뜻을 두기도 했던 저자는 오늘날 유럽연합이 탄생했다고 해서 유럽이 번영과 화합의 공동체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자기도취적 환상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어쨌든 유럽의 통합은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한 현실이 됐다. 유럽연합은 2004년이면 서유럽뿐만 아니라 전 유럽대륙에 걸친 명실상부한 국가연합체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25개 회원국에 4억 5000만명의 인구를 지닌 세계 최대의 단일 경제권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미국 중심의 세계체제 혹은 제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는 우리 지식사회에 유럽의 본질적 중요성을 알리는 작은 계기가 될 만하다.1만 6000원. 김종면기자
  • 이 주일의 어린이 책/잔혹한 세계사

    테리 디어리 글 / 마틴 브라운 그림 남경태 옮김 / 문학동네어린이 펴냄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단언처럼 과연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을까.문학동네어린이에서 펴낸 ‘잔혹한 세계사’(테리 디어리 글,마틴 브라운 그림,남경태 옮김)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책이 주목한 대목은,역사의 큰 흐름에 묻혀 잘 드러나지 않았던 ‘잔혹한 인간성’의 역사.인간의 무자비함이 빚어낸 세계사속 핏빛 일화들을 걸러내 크고 작은 교훈을 넌지시 던져준다. ‘네안데르탈인에서 히틀러까지’라는 부제를 붙인 책은 사람으로 치면 재담꾼이다.위인전이나 역사책에서 얼핏 접해본 듯도 한 자잘하고 기발한 이야기 소재로 전혀 다른 시각의 ‘역사보기’를 권유하는데,그 솜씨가 놀랍다. 예컨대 대탐험가 쿡 선장의 죽음.1779년 하와이 원주민들이 선장을 자신들이 끔찍히도 신봉하던 전설의 신(神)인 줄로 엉뚱하게 오해한 나머지 그를 죽이고만 이야기를 지면위로 끌어올린다.그러고는 생각의 문을 다시 열어보지 않겠냐고 권한다.“신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닐 것”이라고. 비화나 야사로만 여겨졌던 역사의 편린들이 재현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고 재기넘친다.편지,일기,신문기사,포스터,만화 등으로 편집돼 지루할 틈이 없다.악인(惡人)들의 생애가 시대순으로 정리된 부록(악인열전)도 챙겨볼 만하다.10여권으로 나뉘어 출간된 ‘앗!시리즈’가 발간 10주년을 기념해 한권으로 재탄생한 소장본.1만 8800원.초등고학년 이상. 황수정기자 sjh@
  • [길섶에서] 단풍길

    가을이 깊어가면서 사람들도 덩달아 들떠 부산을 떤다.승용차도 지프차도 관광버스도 이른 새벽부터 해뜨는 동해,단풍 드는 설악산을 향해 ‘앞으로 나란히’이다.서울 강남 사람들은 올림픽대로를 타고,강북 사람들은 북부간선도로를 타고 길고긴 탈서울 행렬을 이룬다. 차량들은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숱한 해장국집 마당에 사람들을 쏟아놓는다.선지해장국,뼈다귀해장국,콩나물해장국,올갱이해장국….술을 마신 이든 아니든,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단풍놀이 나선 행락객들은 아침 나절 해장을 한다.다행히도 해장국집엔 차별이 없다.간밤에 1000만원이 넘는 고급 양주를 마신 이도,1000원짜리 소주를 들이킨 이도 모두가 해장국 한그릇에 연신 ‘시원타!’를 외친다. 팔당·양수리·양평·홍천을 거쳐 설악산까지 간 행락객들은 저녁 무렵 지친 몸을 이끌고 귀환한다.돌아오는 길가엔 토종닭·매운탕 등을 파는 가든이 즐비하게 늘어서 행락객들을 유혹한다.낮시간 단풍 숲을 거닐며 잠시나마 세상사를 잊고 사색에 잠겼던 사람들은 일상의 고단함으로 복귀하기에앞서 또다시 술독에 빠져든다. 김인철 논설위원
  • “수해도 서러운데 복구비마저 압류…”/사천시 신용불량 100여가구 피눈물

    금융기관들이 태풍피해를 입은 신용불량자에게 지급된 수해복구비와 생계보조금·위로금 등을 압류해 가혹한 처사가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비록 법적인 하자는 없지만 곤경에 처한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는 지적과 함께 이번 경우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3일 경남도에 따르면 시·군별로 수재민에게 복구비와 위로금 등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일부 신용불량자의 계좌가 압류됐다.이들은 입금된 구호비 등을 인출하지 못해 당장 생계가 어려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천시가 지난 6일 태풍으로 주택이 파손된 수재민 751가구에 복구비와 위로금 명목으로 15억 6500만원을 개인계좌로 지급하자 이들중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100여 가구의 계좌가 압류됐다.그러나 일부는 가족 등의 명의로 통장을 새로 개설,압류를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 35조는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지급된 수급품과 이를 받을 권리는 압류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그러나 금융관계자는 “관계법상 구호자금에 대해서는 압류할 수 없지만 개인통장으로 이체된 순간 예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압류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말썽이 일자 도내 시·군은 지원금 지급에 앞서 신용불량자를 파악,대체계좌 개설을 권유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이날 현재 가족·친지 명의의 대체계좌에 지원금을 입금한 사례는 마산시가 7가구이며,통영이 11가구,사천 30가구,거제 42가구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앞으로 지급할 농·어업 피해자가 많아 사전확인에 어려움이 있고,특히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사실을 모를 경우 구제방법이 없어 골치다.도내 시·군은 지원금 지급이 늦다는 지적에 따라 이번 주 내로 복구비 등 지원금을 일제히 지급할 예정이다. 사천시는 앞으로 1000여가구의 소상공인에게 각각 200만원씩 특별위로금을 지급할 예정이며,거제시도 소상공인 위로금과 이재민 구호금 등 80여억원을 지급할 방침이다.또 남해군도 주택파손 1000여가구와 소상공인 400여가구,농·어업피해 1800가구 등에 대해 54억 7000여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군은 이들중 5% 정도가 신용불량자로 등록됐을 것으로 추정하고사전확인에 나섰다. 이재민들은 “평소 가계 사정이 어려워 신용불량자로 지목돼 어려움이 많다.”면서 “이번 태풍으로 생계조차 어려운 형편을 감안,현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달라.”고 입을 모았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
  • 서울서 보는 ‘악의 꽃’/유럽영화제 22일 개막

    ‘도심에서 즐기는 유럽영화 잔치.’ 올해로 네돌을 맞는 ‘서울유럽영화제-메가필름 페스티벌’이 22일부터 5일 동안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열린다. 지난해 좌석점유율 90%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끈 이 영화제의 특징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유럽의 최신 영화를 한 자리에 모은다는 점.올해도 프랑스 러시아 등 13개국 28편의 따끈따끈한 작품들이 ‘다변성’을 갈망하는 관객을 맞는다. ●거장들은 지금…마스터스 초이스 누벨 바그의 산 역사인 프랑스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신작 ‘악의 꽃’이 단연 눈길.영화제 개막작으로,프랑스 지방 부르주아 집안의 삼대에 걸친 음모·배신·살인을 다룬 블랙 코미디다. 영화계의 전설 빔 벤더스의 ‘블루스의 전설’도 놓치면 후회할 작품.아시아에선 처음 상영되는 것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마틴 스코시즈,마이크 피기스가 공동연출하는 ‘블루스’연작 시리즈의 하나로 미국 초창기 흑인 블루스 음악가의 삶과 예술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유럽의 흥행작-하트 브레이커스 올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대상과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창문을 마주보며’가 화제. 가사와 육아 등 일상에 눌려 사는 여인이 건너편 창문으로 보이는 신비로운 남자에게 끌리는 이야기를 다룬 이탈리아 영화. 이밖에 올 칸 영화제 화제작인 노르웨이의 ‘키친 스토리’와 아이슬란드의 화제작 ‘나 같은 남자라도’ 등 스칸디나비아 작품도 색다른 재미를 줄 듯. ●떠오르는 신성-라이징 디렉터스 ‘잃어버린 주말’로 세계의 주요 단편영화제를 휩쓴 다구르 카리의 장편 데뷔작 ‘내 이름은 노마’를 비롯,올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 선보인 에밀리 영의 ‘키스 오브 라이프’ 등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영화제는 심야 상영 코너를 마련 마니아들을 유혹한다.예매는 www.meff.co.kr와 (02)538-0211. 이종수기자
  •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 ‘바리스타’/ 커피 좋아하세요?

    “악마같이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탕처럼 달콤하다.”(프랑스 작가 탈레랑) “천번의 키스보다 황홀하고/마스카드 술보다 달콤하다./커피,커피/커피는 멈출 수가 없다./나에게 뭔가를 주고 싶다면/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환영한다.”(바흐의 칸타타 中) 가을을 머금은 쌀쌀한 날씨 속에서 커피는 그 향과 맛으로 많은 사람들을 유혹한다.커피의 매력을 한층 더하는 사람들,이들을 우리는 ‘바리스타(barista)’라고 부른다. 바리스타는 이탈리아어로 ‘바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다.주로 술·칵테일 등을 다루는 사람을 바텐더라고 한다면,바리스타의 주력 메뉴는 커피.국내에서 바리스타라는 단어가 퍼진 것은 외국 커피브랜드가 들어오면서부터다.이 때문에 국내 바리스타 문화의 시작을 상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음카페 ‘바리스타(cafe.daum.net//baristar)’의 회원들에게서는 비록 아마추어지만,최고의 커피 전문가를 지향하는 대단한 각오가 느껴진다. 청담동 카페에서 4년째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임종명(26)씨는 “바리스타는 가장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미묘하게 같은 듯 다른 커피의 맛과 향을 찾아내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 개개인의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어떤 커피가 좋을지 고민하는 손님에게 자신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커피를 권할 수는 있지만 ‘이것이 정통 커피니 이것을 마셔라.’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바리스타로서 기쁨과 자부심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서 ‘정말 맛있다.’는 진심과 표정을 엿볼 수 있을 때이지요.” 종명씨에게 또 하나의 기쁨은 자신의 커피를 손님이 5분 이상 바라보고 있을 때다.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종명씨의 커피 거품 장식은 말 그대로 예술.이 때문에 커피를 내놓은 뒤에는 곳곳에서 디지털카메라의 불빛이 번쩍이기도 한다. 압구정동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바리스타 2년차 추새싹(20)씨는 처음부터 바리스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커피가 얼마나 삶의 여유를 주고,자유를 느끼게 하는지 알게 됐어요.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커피 맛을 느끼지 못하잖아요.이렇게 좋은 커피를 더욱 맛있게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보다 깊이 배우고 있죠.맛있는 커피를 내놓고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바리스타로서의 즐거움입니다.” 손님에게 시럽과 크림을 넣는지,양은 얼마나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을 신진영(26·테이크아웃점 바리스타)씨는 ‘커피에 정성을 담는 과정’이라고 말한다.“바리스타는 좋은 맛과 더 나은 질의 커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손님이 가장 맛있어 하는 커피를 주고,작게라도 손님이 ‘아,맛있다.’라고 할 때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죠.”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성격을 바꾸기도 한다.신가람(20·대학생)씨는 “이전에는 상당히 내성적이었어요.사람들이 말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죠.바에 들어가 손님에게 원하는 커피 스타일을 물어보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되면서 점점 성격도 바뀌었어요.처음 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얘기하게 되더라고요.” 가을에 추천하고 싶은 커피를 묻는 기자에게누구도 선뜻 대답하려 하지 않는다. 채기석(27·회사원)씨는 “커피라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뭐가 맛있고,뭐가 정석이고,뭐가 최고급이라고 말해봤자 마시는 사람이 수용하지 못하면 이미 그것은 맛있는 커피가 아니다.”라는 설명으로 이유를 대신한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즐기는 커피가 있을 텐데….새싹씨가 좋아하는 것은 설탕을 넣지 않은 아메리카노와 치즈케이크를 함께 먹는 것이다.커피의 향과 치즈케이크의 달콤함이 어우러지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 든다고. 진영씨는 아이스카푸치노를 즐긴다.우유와 어우러진 커피 맛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계핏가루 향을 즐기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웹디자이너를 하다가 커피 관련 회사에 입사하면서 바리스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홍준호(27)씨는 아침식사 대신 먹는 카푸치노를 좋아한다.“어떤 사람은 밥을 먹고 난 뒤 카푸치노를 먹으면 ‘넌 밥을 또 먹냐.’라고 할 정도로 카푸치노는 식사 대용이 되기도 한다.바쁘게 출근한 뒤 마시는 카푸치노는 여유도 찾고 허기짐도 달래는 데 최고”라고 말한다.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말하는 ‘하루 식량의 전부’라는 것도 이런 뜻이었을까.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길 꺼려하는 바리스타에게 부득부득 졸라 얻어낸 커피 추천작.조금은 색다르게 커피를 즐기고 싶다면 이렇게 해보는 것은 어떨까.아침에 식사 대용으로 카푸치노를,점심 식사를 한 뒤에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이 그만이다.열심히 일한 오후 잠시 짬을 내서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해가 뉘엿뉘엿 질 때에는 향이 좋은 모카를 마시는 것이 분위기를 더하는 데 좋다. 글 최여경기자 kid@ 사진 도준석기자 pado@ 바리스타란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로,기원은 이탈리아에 있으나 미국에서 발전해 우리나라에 유입됐다.커피의 생산에서부터 각종 커피의 향과 맛·특징 등을 익혀 어떤 원두를 어떻게 쓰고 얼마나 볶을 것인지,어떻게 커피 머신을 사용할 것인지를 결정해 손님의 입맛에 맞는 최적의 커피를 제공한다.이와 함께 손님에게 커피에 관한 조언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소믈리에,바텐더는 일정한 과정을 수료하거나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바리스타는 그런 것이 없다.커피 마니아들의 평가가 일종의 자격증 역할을 한다.에스프레소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바리스타도 오랜 경력을 갖고,커피전문가로 추앙받는 사람으로 바리스타에 따라 커피값이 달라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바리스타는 올해로 4회를 맞는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이 성황을 이룰 만큼 큰 관심을 끌고 있다.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단어로,정식 직업으로 인정되지 않은 상태다.10일에는 사단법인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K)가 공식 출범한다. 최여경기자 어떤 커피가 맛있을까? ●에스프레소 커피의 원액으로,커피의 심장이라 불리며 진하고 순수한 커피의 향과 맛을 음미할 수 있는 이탈리아식 커피의 진수.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는 독할 수 있으나 커피의 쓴맛,신맛,단맛 등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마니아들은 ‘인생과도 같은 커피’라고 한다.이 위에 미세하고 부드러운 우유 거품을 살짝 얹으면 ‘에스프레소 마키아토’,산뜻하고 고소한 휘핑 크림으로 장식하면 ‘에스프레소 콘 파냐’가된다. ●카페 아메리카노 진한 농도의 에스프레소와 뜨거운 물로 만든다.에스프레소보다는 연하지만 에스프레소의 맛과 향이 그대로 살아 있는 미국 스타일의 커피. ●카페 라테 에스프레소 위에 데워진 우유를 듬뿍 넣어 만든 부드러운 맛의 커피로,풍부한 우유와 커피맛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부담없는 커피.우유에 들어 있는 유기산이나 우유 단백질 같은 성분이 위장 속에 흡수되면서 위벽을 보호해줘 위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아침에 식사 대용으로 마시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부드러운 우유 거품의 섬세한 첫 느낌이 매력적이다. ●카푸치노 커피의 풍부한 향과 우유거품의 호화로운 맛을 즐길 수 있는 감각적인 커피.카페 라테보다는 우유의 양은 적지만,우유거품을 풍부하게 얹어 입술에 닿는 느낌이 부드럽다.거품에는 취향에 따라 계핏가루,초코가루 등 향신료를 첨가한다.우유거품을 뒤집어쓴 모습이 이슬람 종파인 카푸치노 교도들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카페 모카 정통 에스프레소 커피에달콤한 초콜릿 시럽을 섞은 후 데운 우유를 붓고 그 위에 신선한 생크림과 초콜릿 가루를 토핑한 달콤한 커피.달콤한 초콜릿이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줄여준다.여성들에게 사랑받는 인기 메뉴. ■ 도움말 할리스커피 이지현 주임 최여경기자
  • [길섶에서] 어머니의 겨울

    30년 전쯤 초겨울이었던 것 같다.앞마당에 있던 우물 옆을 지키던 수도꼭지가 안방 옆 부엌으로 자리를 옮겼다.어머니는 그날 밤 뜬눈으로 지새우며 부엌을 들락날락했다.밤새 수도꼭지를 틀며 물이 계속 나오는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단다. 그 전에는 겨울이 찾아들기가 무섭게 어머니의 월동준비는 수도꼭지와 파이프를 새끼줄로 동여매는 것으로 시작됐다.두 겹,세 겹으로 감싸도 한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이기 위해 어머니는 새벽부터 주전자에 물을 끓여 부어야만 했다.덜 추울 땐 2∼3 주전자,혹한이 몰아칠 때면 5∼6 주전자를 부어도 수도꼭지는 감감 무소식이었다.칠순이 넘은 어머니는 지금도 당신이 시집온 후 수도꼭지를 부엌으로 옮기던 날을 가장 행복했던 날로 기억한다.꽁꽁 얼어붙었던 손이 절로 녹는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며칠 사이에 아침 저녁 기온이 큰 폭으로 뚝 떨어졌다.문득 잠이 깰 때면 아들 녀석들이 이불을 차 던지고 자지나 않을까 돌아보면서 떠올리는 어머니 생각이다. 우득정 논설위원
  • 宋교수 국외추방 검토

    검찰과 국정원 등 공안당국은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신병처리와 관련,공소보류한 뒤 국외추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핵심관계자는 5일 “송씨가 1973년 노동당에 가입했고,북한당국이 송씨에게 정치국 후보위원 임명을 통보한 것도 확인됨에 따라 기소요건은 충분하다.”면서 “그러나 공소보류 후 국외추방도 검찰권 행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3·4면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송 교수는 그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해 이해가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유인태 정무수석은 송 교수 문제에 대해 “너무 한 쪽(북한)에 발을 깊숙이 담근 것 같다.”며 “검찰이 원칙대로 잘 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참모진의 이같은 언급은 송 교수에 대한 정치적 배려보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국외추방이나 기소 등 강경처리가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 관계자도 “수사가 마무리된 뒤 기소여부를 최종 결정하겠지만 국외추방도 하나의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안당국의 관계자는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등도 송씨의 국외추방을 촉구한 바 있으며 송씨에게는 처벌보다 국외추방이 가혹한 조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다른 정부 관계자는 ‘공소보류 후 국외추방’검토 배경으로 ▲송씨가 올해 노동당 탈당 의사를 밝혔으며 ▲포용정책 호응 등 개전의 정을 보였고 ▲독일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점과 함께 엄정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을 모두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무엇보다 송씨에 대한 재판이 열리게 되면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 1년여 동안 국내외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될 뿐만 아니라 실형선고 후 추방하는 것은 국제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신속한 해외추방을 위해서는 공소보류가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출입국관리법 53조는 ‘공공질서나 국가이익에 대한 위협이 우려될 경우 외국인을 국외퇴거할 수 있다.’고 국외추방을 규정하고 있다.국외추방은 법무부장관이 출입국관리소장을 통해 할 수 있으며국외추방자는 5년 동안 입국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도운기자 dawn@
  • 인터넷 ‘스너프’ 동영상 급속 확산

    외설적이거나 잔혹한 장면을 묘사한 스너프(snuff·불법 영화나 비디오)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엽기 붐’에 편승한 일부 네티즌끼리 소수의 스너프 파일을 은밀하게 주고 받는 수준에 그쳤지만,최근에는 인터넷상의 파일저장 공간인 사이버 폴더를 통해 무차별로 퍼지고 있다. ‘스너프’라는 키워드만 입력하면 일본,러시아는 물론 국적 불명의 동영상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동영상에는 잔혹한 호러영화를 뺨치는 장면들이 여과없이 담겨 있다.현재 국내 네티즌 사이에 떠돌고 있는 스너프 파일만 30종이 넘는다. 업체 관계자들은 대부분 연출된 장면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사이버폴더 업체 A사 관계자는 “일부 네티즌이 자극적인 제목을 적어 놓았지만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찍은 것은 아니다.”면서 “지나친 장면들도 있지만 수십만건이 넘는 게시물을 업체에서 일일이 스크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건국대 부설 민중병원 유승호(정신과)교수는 “도착적인 엿보기 심리를통해 전파되는 스너프는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아동은 물론 성인에게 까지 스트레스 등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아동과 청소년에게 비뚤어진 성의식이나 인명경시,죄책감 없는 모방범죄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찰은 상업적인 목적 없이 네티즌끼리 동영상을 주고 받는 행위를 처벌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검색팀 관계자는 “실제 사이버 폴더나 P2P(개인간 파일공유) 등을 통해 유해한 내용을 담은 파일이 퍼지고 있지만 실제 범행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
  • 新4당체제 현안 어떻게/일부 개혁법안 ‘도루묵’ 우려

    신(新)4당체제에서 주요 정책현안 처리문제가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여당이 사라지면서 개혁과 민생 등 주요 법률안을 입안 단계에서부터 당정간 긴밀한 협조체제속에 효율적으로 추진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여당인 통합신당이 있으나 ‘미니당’으로서 특정 현안을 놓고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이 뭉칠 경우,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이로 인해 참여정부가 추진하려는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늦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민주당·통합신당이 갈라서면서 정책 변화가 일어난 부분을 점검한다. ●적자예산 편성 여부 당장 117조 5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 통과가 과제다.정부는 국채 발행없이 세입내 세출을 원칙으로 초긴축 균형예산을 편성한 상태다. 그러나 민간기업을 중심으로 경기활성화를 위해 적자재정 편성 필요성이 일고 있다.이와 관련,통합신당은 정기국회 대정부 질의나 대표연설을 통해 이를 촉구할 예정이다. 정세균 통합신당 정책위의장은 “우리 당의 입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그대로 채택한것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다만 예산편성에 있어 경제활성화를 위해 적자재정 편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바뀐 부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김성식 정조위원장은 “예산은 균형예산이 기조”라면서 “세출내역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예산안 심사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행정수도 및 원전센터 입지 민주당의 입장변화가 감지된다.위도 원전센터 문제의 경우,정균환 원내총무 등 민주당 대다수 의원들이 정부의 부지선정과정에 문제점이 있다며 선정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행정수도 이전문제는 충청권 의원들이 한명도 없는 상태라 재논의가 불가피한 실정이다.정책위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문제는 민주당 대선공약이었으나 노 대통령 탈당과 충청권 의원 이탈로 재논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지적,수도 이전에 적극적인 자민련과 통합신당간의 공조여부가 주목된다. ●경제법안도 난항 예상 증권관련 집단소송법,통합도산법,계좌추적권 5년 연장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소득세법 등 각종 예산부수법안 통과도 여야간견해차이로 쉽지 않을 전망이다.각 당이 경기침체와 경제개혁에 대한 상이한 진단을 하고 있어 정부와의 조율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정책개발 신중해야 신4당체제에서 정부로서는 무엇보다 정책개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판교 신도시 학원단지 조성계획 백지화나 윤성식 감사원장 인준안 부결에서 드러나듯 행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은 입법부에서 가혹한 검증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김영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무조건적인 지지에서 벗어나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릴 것”이라고 밝혀 행정부가 입법부에 좋은 ‘상품’을 먼저 내야 함을 강조했다. 한편 4당 정책위의장들이 다음달 7일 4당체제 이후 첫 정책위의장단 회의를 갖고 정책협의체 구성 등 무(無)여당 시대 입법부와 행정부의 관계정립 방안을 논의한다.통합신당의 정세균 의장은 “여야를 떠나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협조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피력했다. 박현갑 이지운기자 eagleduo@
  • “폭발적 에너지 가득 독창적 공연”/‘난타’ 美 첫무대 뜨거운 호응 ABC·NBC 방송 잇따라 출연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창작 비언어 퍼포먼스 ‘난타’(영어제목 Cookin)가 현지 언론의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개막전 이미 4주간의 전 공연 티켓이 매진된 ‘난타’는 첫 공연의 성공에 힘입어 29일(현지시간) 미국 전국방송인 ABC의 간판 아침프로그램 ‘Regis&Kelly’에 생방송 출연하는데 이어 10월6일에는 NBC의 프로그램 ‘투데이쇼’에 소개될 예정이다.뉴욕의 권위있는 공연전문 인터넷 사이트인 ‘시티가이드’는 ‘이주의 작품’으로 ‘난타’를 꼽았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작품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난타’는 지난 25일 저녁(한국시간 26일 오전)브로드웨이 중심부인 42번가의 뉴빅토리극장에서 첫 무대를 성공리에 마쳤다.공연은 새달 19일까지 계속된다.뮤지컬 ‘명성황후’가 지난 1998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한 적이 있으나 당시 공연은 극장만 빌린 대관공연이었고,‘난타’는 극장측으로부터 개런티를 받은 정식 초청작이라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첫 브로드웨이 진출 사례이다. 500석 규모의 뉴빅토리극장은 세계적 수준의 패밀리쇼를 고집하는 가족극 전용극장이다.이 극장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마리 로즈가 지난해 한국에서 공연을 보고 ‘2003∼2004년 시즌’의 오픈작으로 초청했다.‘난타’가 4주 공연의 대가로 받은 개런티는 14만달러(한화 약 1억7,000만원).평소 해외공연에서 받는 주당 6만달러에 견주면 액수는 적지만 브로드웨이 무대의 상징적 가치는 비할 바가 아니다. ‘난타’브로드웨이 공연의 관객은 대부분 자녀를 동반하고 온 젊은 가족들이다.공연 분위기도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주도했다.공연 시작 전 한국 인사말을 배우는 시간에 ‘안녕하세요’를 힘차게 따라하는가 하면,배우들의 코믹한 연기에 웃음으로 즉각 반응했다.4명의 요리사가 각종 주방기구로 사물놀이 장단을 선보이고,틈틈이 요리까지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공연에 어른 아이할 것없이 모두 흥겨워했다.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낸 장면들은 특히 호응이 뜨거웠다.객석을 양편으로 갈라 만두빚기 시합을 벌이는 대목에선 흥분한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열띤 응원을 펼치는바람에 극장안이 시끌벅적한 잔치판으로 변했다. 남편,딸과 함께 공연을 본 엘리자베스 샌포드씨는 “공연 내내 웃음을 참지 못했다.”면서 “에너지 넘치고,매우 독창적인 공연”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7살,5살 두아들을 데리고 온 조앤 갠터버그씨도 “주방기구를 활용한 독특한 리듬이 인상적이었다.아주 재밌게 봤다.”고 호평했다. 반면 한국인 관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제작사인 PMC프로덕션은 교민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은 대작이라도 관객이 ‘노’하면 하루 아침에 막을 내려야하는 냉혹한 브로드웨이에서,철저하게 미국 현지인을 대상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공연 초반부이긴 하지만 일단 관객의 반응만 놓고보면 ‘난타’의 브로드웨이 입성은 순조롭다.그러나 아직 맘을 놓기엔 이르다.이번주부터 뉴욕타임스 등 유력 언론들의 평가가 속속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까다롭기로 정평난 이들 일간지 리뷰에서 어떤 평점을 받을 지가 ‘난타’의 흥행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 이순녀기자 coral@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0)박경리-물질문명 시대, 생명의 가치 회복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무참히 죽어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잡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내리고 있었다.“그렇지,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잡나무를 휘여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소설 ‘불신시대’중에서 혹시라도 선생을 그냥 찾아뵙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근방에서 슈퍼마켓을 찾는데 퍽이나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갖추어 놓은 게 없다.선생은 당뇨가 있다고 했던가.단 것을 드시지 못한다니 무과당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결전의 준비라도 마친 양 용감하게 토지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선생의 집 문턱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소문이 아닌데 미리 약속을 얻은 탓인지 선생은 무척 친절하게 일행을 받아주신다.감읍할 지경이다. ●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화두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을 쓰시다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요.” “내가 ‘현대문학’ 잡지를 참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나비야,청산 가자’ 연재를 시작해서 석 달,3회까지 연재했거든요.한 회 한 회 원고 분량이 많아서 3회까지 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재작년에 넘어져서 다친 허리가,연재 시작하면서 더 안 좋았어요.절실하게 써보려 했는데.이걸 쓰면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어요.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결국 쉬고 있어요.독자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 나는 선생의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린다. “몸이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고,그러면서 내 존재가 뭔가,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스럽게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선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문학지 ‘숨소리’를 편집하고 계신 연세대학교의 최유찬 교수를 만나뵙게 되었다.두 분에게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나로 인해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선생은 ‘숨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문학이라는 것도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없는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최유찬 선생에게 부탁 드려서 ‘숨소리’라는 책을 내는 까닭도 그런 데 있어요.지금 이 토지 문화관도 다른 분들은 다 문학관으로 오해하고 있어요.내가 문학을 하니까 문학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나는 처음부터 그건 반대고 문화관으로 하자고 했어요. 생태계,환경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거기에서 문학도 있고 모든 게 있을 수 있는 거죠.작년 초엔가,‘자연과 시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시인 선생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선도가를 불러 달라,그런 의식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내가 당부를 드렸어요.예술가들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무슨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은 사람들 임의에 따라서 참여도 하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라는 건 예외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되니까.하다못해벌레 한 마리나 풀 한 포기도 다 관련이 있잖아요.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는 거지요.” “예전에 손수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았습니다.여기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여기는 농사가 더 많아요.밑에 밭뙈기가 상당히 있고 산 안에도 밭이 있어요.여기로 와서는 농사가 더 절실한 게,작가들 와서 묵는 창작실에 부식을 대야 하니까요.전부 다 댈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야채는 내가 농사지어 대고 있어요.금년에는 부토를 했는데 흙이 잘 안 맞아서 농사가 좀 시원찮게 됐어요.여기 와서도 농약과 화학 비료는 절대 안 쓰고 작으면 작은 대로 땅 힘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기왕이면 작가들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서 먹거리도 무공해로 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옥수수와 배추를 실패하고.그래서 토마토,고추,상추 이런 것 좀 더 대고 했어요.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줄 수 있을 것 같아요.또 자연적으로 나는 것들이 있거든요.두릅이라든지.산에 도라지도 많이 심어놨어요.더덕,취나물,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물들도 많아요.봄에는 냉이나 두릅 등 계속 농사지은 걸 먹죠.” 선생의 말씀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리듬과 흥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며칠 전 멕시코의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우리들은 모두 땅의 자식들인데 내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인터뷰를 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의 말씀과 정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을 순 없어 “선생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것은 자연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 아니겠어요? 땅에서 가꿔서 우리가 존재한다는.농부를 찬양하는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아니고 전부 소비성이거든요.땅을 가꾼다는 것은 규모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생산이 있어요.그건 뭐냐면,생산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땅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에요.지난번에 내가 여기 중·고등학교 캠프에 갔었어요.사실은 내가 어디 나가서 얘기를 잘 못해요.어지러워서.그래도 애들이니까 한마디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첫마디는 예절에 대한 것이었어요.예절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이다,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정제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이것이에요.옛날 농부들이 말하기로 내 자식 목에 젖 넘어가는 소리하고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그것은 땅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본이고 본질적인 거예요.지금 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고 지구가 사막화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앞으로 곡식이 참 귀하게 되면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고 배를 불리겠어요? 한줌의 쌀이 있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그런데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옛날 말로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고,많은 분들이 그저 설마 설마하면서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겠지,내 당대에는 괜찮을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데,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몇년도에 가면 다 녹는다고 그래요.이거 다 녹으면 노아의 홍수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의 일 같이 생각들 하신단 말이에요.들으면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단 말이에요.일반 대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자들부터 인식을 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끌고 나가야 할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더 못해요.대중들은 절실히 인식하는데 지도자들은 표밭만 생각하니까.사람이 먹고 사는,곡식 나는 밭 생각은 안 하고 표밭만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생존하고 관계 없는 일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리고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나는 연방 머리를 끄덕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시장을 가봅시다.둘러보면 직접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보다도 없어도 되는 게 더 많아요.없어도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은 말도 못할 낭비예요.낭비하면 쓰레기가 나와요.낭비와 쓰레기 이중적인 문제지요.쓰레기는 뭡니까.숨통을 막는 거예요.새만금이나 시화호,이런 문제는 그렇게 야만적일 수 없는 일이에요.나 혼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요.몇 사람의 이득,화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겁니까.그렇게 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것을 영구히 없애버리면 다시 재생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야만국인가를 입증하는 것이죠.지금 있는 농지도 농사 안 짓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새만금,그걸 죽여서 농지를 만든다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내가 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또 사람만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데요.어떻게 이렇게 먼 곳 원주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듣고 보시는지요?” “서울이 시골보다 더 좁아요.직장이라든지 아파트라든지 하는 공간은 넓어도 좁아요.나는 공간이 없으니까 산 보고 하늘 보고,그러니 알죠.” “옛날에는 물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물질이 더 많아져서 고통인 것 같습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이란 가두지 않고 풀어주는 것 “그렇죠.모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거든요.순환이라는 것은,먹이사슬도 하나의 순환이지만 우리 한 개인으로 보아도 일을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먹고 하면 이게 순환이거든요.그럼 일은 뭐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증권 주식 한다고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는 것,그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죽어 있는 일이지 살아있는 일이 아니에요.살아 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일,그것이 일이에요.예술가도 생명이 주예요,사실은.문장 하나,상황 하나,인물 성격 하나,이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정치라는 것도 살아있는 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죽음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죠.이 시대엔 전쟁과 핵무기가 있어요.이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에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어요.모두 다 잘 살려고 한다는데 과연 그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농약 주고 화학비료 주고 해서 질적으로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게 잘 사는 건지……모든 걸 가둬 놓는 것…… 생명이라는 건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주는 거예요.이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게 정상일 수가 없죠. 농촌에도 얼마나 이상한 병들이 많은지 몰라요.농약 때문에 그러는지.지금 이런 상황의 먹거리가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그런데도 잘 산다는 게 이게 전부 양(量)으로 말하는 거죠.사람이 원래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거든요.행복의 축이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에요.그런데 지금 질은 점점 나빠지고 마치 옛날의 그 질을 옆으로 펴다 보니까 얇아져서 그게 양이 된 거예요.어떤 면에서 보면 더 생겨나는 건 없어요.있는 것에서 얇아지면양이 늘어나는 거고 양이 좁아지면 질이 좋아지는 걸 보여주는 거고.” 나는 사투리 억양이 강한 선생의 말씀을 교정하는 지금의 내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선생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앞으로 나갔다 뒤로 가고 중복되거나 건너 뛰면서도 살아 있는 생생한 감동이 있었다. “선생님 옛날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창작집 ‘불신시대’,장편소설 ‘시장과 전장’…… 그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이 아주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는 싫어요.결백하다기보다는 자유롭고 싶은 거죠.얽매이기 싫고.” 이하의 내 물음과 선생의 말씀은 생략이다.안타깝게도.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내가 여쭈어 본 것은 더 내밀한 선생의 과거며 인생살이 같은 것이었으니까.선생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그러나 나는 선생의 사상만큼이나 선생의 인생을사랑하는 것 같다.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기록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감상벽인지? 탐구벽인지?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각 박경림 ●가혹한 운명 딛고 선 문학사 거봉 박경리는 1920년대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작가이자 광복 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게 빛나는 설봉(雪峰)이다. 1927년 통영에서 출생,진주고녀를 졸업하고 잠시 후 결혼,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계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박경리를 오늘의 박경리로 만든 하나는 선생의 작중 인물만큼이나 결벽하고 의지적인 선생의 성품이며 다른 하나는 가혹한 운명이다.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을 잃고 이후 아들을 잃고 다시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가혹한 고통은 선생 문학의 산실이다. 창작집 ‘불신시대’(1963)와 장편소설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시장과 전장’(1964),‘성녀와 마녀’(1967),‘파시’(1967)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초기 소설은피폐하고 불순한 현실을 배경으로 결벽성 있고 의지가 강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운명과 맞서는 삶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1969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이르기까지 5부작으로 완성을 본 대하소설 ‘토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지의 극점이다.세대를 누적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새로운 생을 모색하는 ‘토지’의 인물들은 삶의 만화경이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속수무책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피안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박경리의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구경적 세계관이다.그것은 종교가 아니되 감히 종교와 ‘맞먹는’ 힘을 갖는다. ●시집에 담긴 또렷한 이미지 박경리 선생 댁은 몇 년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허허벌판 가운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어 한결 찾기가 쉬웠다.그때 허허벌판 가운데 약간 둔덕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것이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보통 사람들은 선생을 소설가로 생각하고 또 인정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이미지가 또렷하다.나는 선생의 시의 애독자여서 몇 권 안 되는 선생의 시집을 새책방,헌책방에서 다 사보았고,그 간결한 어휘,담담한 어조,비약의 미(美),삶의 태도를 절절한 심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박경리가 아니라 인간 박경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시집을 읽어야 하리라. 몇 년 만에 뵙는 선생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예전보다 따뜻해 보이는 실내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다.나는 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의지적이고 결벽성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 [열린세상] 일본문화개방, 새로운 기회

    일본은 언제부턴가 경제왕국으로 떠오르더니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산업에서도 국제적인 점유율과 인지도를 확보한 지 오래다.미국 영화에서 보면 일본의 사시미가 고급스러운 음식으로 취급되고 홈웨어 대신 유카타와 하오리가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그만큼 일본에 대한 선호가 곳곳에 파고 들어 있다는 의미다.그렇다면 우리에게 일본은 경계해야 할 만한 대상인가. 이번 일본대중문화 완전개방을 두고 네티즌들은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일제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일본에 대한 유감이 남아 있지만 청소년들은 일본을 특별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우리 주변에 있는 여러나라중의 한 나라로서 일본문화가 아닌,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자는 식이다. 주체적인 문화수용력이 성숙되지 못한 시점에서 일본 대중문화를 무제한적으로 개방하는 것은 역시 시기상조가 아닌가.또는 사회전반에 끼칠 충격과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도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은 만만치 않다.그러나 일본영화 체험은 저질로 지칭되는 원조교제·폭주족·이지매 등이 우리나라에 침투하여 이미 회오리바람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98년 이후 단계적 개방을 거치는 동안 일본적인 과묵하고 차가운 폭력과 무자비하고 가혹한 폭력 등을 우리 청소년들은 역설적 비디오 게임이나 서바이벌 게임 정도로 받아 들인다는 보고가 있었다.우리나라엔 수많은 일본영화 동아리가 있고 최근에는 ‘메가박스와 함께 하는 일본영화 여행’이 진행중이다. 이처럼 일본대중문화 개방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수없이 되풀이된 논의선상에서도 뾰족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그 시기를 언제로 잡느냐만 남았을 뿐 서서히 개방한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다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돈이 되는 것이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입업자들의 역할이다.국민은 모든 것을 다 향수할 권리가 있으므로 마구잡이로 불량품을 들여온다면 그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 혼돈양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거기에 걸맞은 냉엄한 여과장치가 필요할 수밖에없다.따라서 영화등급 역시 청소년 보호와 국민정서 순화 차원에서 적절하고 현명한 잣대를 가져야 한다.그러자면 수입업자가 제시한 관람 신청등급이 제한상영이 되는 예가 속출할 수도 있다. 또 일본문화 베끼기에 급급했던 가요나 방송 등 저작권 문제도 가차없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전면개방 전까지는 눈감고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시퍼런 칼날을 들이댈 것은 뻔하다.그러나 이 역시 언젠가는 부닥쳐야 할 현실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찾고 무장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대중문화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문화상품이 된 것은 저급문화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핵심에서 고급문화가 도도하게 군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전후 두 차례나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영화에서도 70여개가 넘는 국제영화제상을 거머쥐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이에 비해 우리는 남의 잘난 꼴을 보지 못한다.고급문화나 저급문화를 한꺼번에 뒤섞어 놓고 모든 것은 똑같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려 든다. 일본은 고급문화를 극진하게 대접하면서 대중문화는 고급문화가 자생시킨 또다른 문화의 형태임을 엄연히 차별시키고 있다.그들은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하고 승복할 줄 아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인생이란 머무는 일이 없는 변화의 연속이다.우리는 지금 정치구도 전체의 변화뿐 아니라 문화구도의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변화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피폐의 파장이 조장될 수도 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문화교류의 파트너로 받아 들이는 것이 자연스럽다.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면서 오늘의 개방과 변혁을 발전의 기회로 삼아 나가야 한다. 이세기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前 대한매일 논설위원
  • 기고/ 안전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

    풍성해야 할 추석을 풍마(風魔)와 수마(水魔)가 덮쳤다.태풍 ‘매미’로 해일이 발생하고 건물은 무너지고 잠겼다.농어촌은 만신창이가 됐고,대형 크레인들은 고철덩어리로 변했다.남부지방의 약 200만명이 전기 없는 암흑의 밤을 보낸 가운데 쓰레기 더미 위에 이재민의 눈물방울이 낭자하다. 사망 또는 실종자가 130명에 이르고 재산피해만 4조원을 훌쩍 넘은 이 지옥도(地獄圖)는 낯설지 않다.지난해 이미 GDP(국내총생산) 기준 경제성장률의 0.3∼0.8%포인트를 감소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태풍 ‘루사’를 겪은 바 있고 똑같은 피해가 1년 단위로 재발하는 탓이다. 지난 10년간 자연재해로 인한 우리나라의 피해 규모는 한 해 평균 사망 106명,이재민 1만 6726명,재산피해 6800억원을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에 달한다.그리고 그 피해는 대부분 농어민과 영세상인 등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매년 증가 추세로 경제성장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는 실정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발생하는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격렬하게 들끓어 올랐다.그러나 한 때 반짝 달아오른 여론일 뿐,피해 가족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똑같은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곤 했다. 태풍의 엄습은 통제할 수 없는 비정한 자연의 몫이며,토지나 건물은 움직일 수 없는 부동산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중장비·자동차 등은 움직일 수 있는 동산임에도 불구하고 저지대나 해일 위험지역에서의 비상식적인 인명 및 동산 피해가 발생했다.반면 해일이 강타하기 직전 150척의 선박을 뭍으로 끌어 올려 해안마을에 피해가 전혀 없게 만들었던 울산지역 어느 공무원의 대비는 이번 피해 역시 철저한 사전 대책이 시행되고 안전의식이 있었다면 규모를 상당부분 경감시킬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는 뼈아픈 교훈이 되고 있다. 또 같은 태풍이 지나간 일본의 경우 그 위력이 더욱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 1명,부상 90명에 그쳤다는 언론보도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재난에 대한 선진국의 대처 역량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뇌하게 한다. 막을 수 있는 피해가 재발된다는 사실은 정부와 국민 모두가 예외 없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점이다.우리 모두는 안전불감증이라는 집단 고질병과 어제의 비극을 금방 망각하는 위험한 기억상실증,방재대책을 철저하게 시행하지 못하는 무사안일 증후군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반성해야만 한다. 재난방지는 쉽고도 어렵다.우선 사고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그러한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의 대책을 수립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쉬운 해법이다. 반면 어제의 비극을 끝까지 망각하지 않는 일은 어렵고,방재 대책을 끝까지 철저히 시행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그런데 이 어려운 일은,노력하는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만약 막을 수 있는 재난을 방치했다면 이 부분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함께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져 묻는 일도 이뤄져야 할 후속 조치다.그 임무를 과연 철저히 수행했는가,혹여 안일한 사전사후 대처로 인명과 재산피해를 확대시키지 않았는가,피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철저히 따져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비극의 재발방지를 위한 추상 같은 교훈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수천 년전부터 변치 않는 지도자의 가장 큰 의무였다.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인 현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안전제일의 전향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동시에 국민 모두가 자연재해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척결하고,무엇보다도 안전을 우선시하는 광범위한 공감대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불행을 당한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사후수습이나마 잘 되길 바라면서,유가족의 오열과 태풍 ‘매미’의 교훈을 또다시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안전은 국민의 기본권이자 의무로,우리는 과오로부터 학습하는 인간이며,그동안 ‘피와 눈물’이라는 가혹한 수업료를 진저리나도록 대단히 많이 지불해 왔기 때문이다. 오상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 [씨줄날줄] 유리알 지갑

    세금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가혹한 세금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도 있다.논어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에서 유래한 말이다. 공자가 인적이 드문 험한 산중을 지나가다 새로 만든 무덤 앞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사연을 물어본즉 그 곳이 워낙 깊은 산중이어서 시아버지와 남편이 차례로 호랑이에게 물려가 돌아가셨는데,이번에 또다시 하나뿐인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빼앗겼다는 것이다.“이렇게 무서운 곳을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여인은 “그래도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리(稅吏)들은 피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우리가 빵과 콜라를 사서 먹을 때의 빵값에는 부가가치세가 들어 있으며,콜라값에는 특별소비세가 들어 있다.그리고 택시를 타고 가면 택시요금 속에 부가가치세가 들어 있으며,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경우에도 극장입장료에 부가가치세가 들어 있다. 문제는 형평성이다.세금이 지나치면 납세자의 저항을 불러오게 된다.특히 사회가 발전하고 복지수요가 커질수록 사회 구성원들의 ‘조세평등’ 요구는 높아지고 납세자들은 세금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이에 따라 ‘저항이 적고 손쉽게 걷을 수 있는 세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십상이다. 봉급생활자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매달 소득이 그대로 명세서에 찍혀나오고 회사가 친절하게도 원천징수까지 하기 때문에 소득을 감추고 말고 할 것이 없다.한마디로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투명한 ‘유리알 지갑’이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1998년∼2002년 사이에 자영업자의 세금부담은 30%가 늘어난 데 비해 봉급생활자의 세부담은 그 두배인 60%나 늘었다.그 결과 전체 국세에서 근로자들이 낸 세금의 비중이 지난 1999년 5.7%에서 2001년에는 7.4%로 높아졌다.특히 지난 2000년에는 목표액이 4조 1000억원인데 실제로는 6조 5000억원을 걷어 56% 초과징수를 기록한 사례도 있다. 일부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검은 지갑’이 ‘유리알 지갑’을 가진 봉급생활자들에게 떠안긴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풀 것인가? 염주영 논설위원
  • 국제 플러스 / 美대학 동아리 신고식서 학생 사망

    |뉴욕 연합|미국 뉴욕주립대의 남학생 동아리의 가혹한 신고식 끝에 한 학생이 숨진 사건을 계기로 학교당국이 이와 같은 악습의 근절에 부심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15일 보도했다.지난 3월 플래츠버그 뉴욕주립대 인근 한 건물에서 월터 제닝스라는 신입생이 10일간에 걸쳐 신고의식의 일환으로 행해진 물먹기 의식 끝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스어 알파벳에서 따온 ‘프사이 엡실론 치(ΨΕΧ)’라는 남학생 동아리에 가입했던 그는 선배들의 요구에 못이겨 토할 지경에 이를 때까지 거듭해 물을 마셨다. 검시관이 밝힌 사인은 저(低)나트륨 혈증(血症).혈액중 나트륨(염분)이 위험할 정도로 감소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 기계는 침수되고… 지원은 생색내기/ 中企 “울고 싶어라”

    “억장이 무너지고 심장이 멎는 기분입니다.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회사가 하루 사이 흙더미에 묻혔는데 눈에 보이는 게 있겠습니까.”15일 대구 달성논공산업단지의 SK텍스 정현분 사장은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공장에서 울분을 토로했다.정 사장은 “2∼3명의 인력 지원으로 생색을 내고 있는 관계 당국이 과연 중소기업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체 높은 양반들의 방문보다 한 사람의 일손이 아쉽다.”고 하소연했다. 부산·대구·경남의 주요 산업단지내 수출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이와 비슷하다.주요 설비가 물에 잠겨 교체가 불가피하며 원자재도 폐기 처분해야 할 판이다.특히 770개 업체가 입주한 녹산국가산업단지는 지역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나 되지만 해안가의 160여개 업체가 모조리 공장건물 파손이나 기계·원자재 침수로 1주일에서 보름이상 가동을 못할 처지다. ●재해지역 지정돼도 지원은 고작 200만원 김해 진례면 동남인젝션은 강풍으로 공장 창고와 제품들이 모두 파괴되는 막대한 피해를 봤다.김종석 사장은 “창고를 세우고 기계를 돌리려면 자금이 있어야 하는데 1∼2개월 걸리는 금융 대출 전까지 버틸 재간이 없다.”면서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되더라도 경영안전자금이 업체당 200만원선밖에 지원되지 않는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이어 “정부가 특별재해지역 지원 대상에서 상가와 공장을 제외해 놓고서는 재해보험에 가입하라고 종용하지만 비용 과다 지출을 우려한 보험사들이 난색을 표명하는 바람에 이마저도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사장은 이왕 특별 재해지구로 지정할 계획이면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는 “관계 당국 어디를 가도 중앙 정부의 특별 재해지구 선포가 있어야 나설 수 있다는 말만 하고 있다.”며 “정부가 계속 미적댈 경우 태풍으로 쓰러진 중소기업들을 두번 죽이는 꼴”이라고 말했다. ●“인력 및 원자재 확보 지원을” 창원공단의 가전업체인 성철사는 원자재 부족으로 공장 가동이 늦어지고 있다.여기에 공장 복구에 필요한 자재들도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또다른 피해를 볼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관계자는 “공장 지붕이 강풍으로 날아가 임시 패널이 필요하지만 구할 곳이 없다.”면서 “이번주에도 비 소식이 많아 가까스로 수리한 기계들이 또 비에 젖을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인력 지원도 제때 이뤄지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공장 복구 및 도로 보수,전기·전화 개설 등은 대규모 인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구색 갖추기에 그쳐 일부 중소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납기일 못맞춰 수출차질 대구 달성단지의 가구부품업체인 현대정밀은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30%(연간 30억원) 수준.그러나 주요 생산 설비가 물에 잠겨 수출 납기일을 맞추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관계자는 “바이어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있지만 모두 연기해 줄지는 의문”이라며 “부산항 하역작업마저 차질을 빚고 있어 원자재 수입도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마산 수출자유무역의 가전기기 부품업체인 한국중천은 사무실과 공장 등이 완전히 물에 잠겨 현재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관계자는 “사무실 2층만 피해를 면했을 뿐 이 곳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라며 “당분간 수출과 내수에 신경쓸 여력이 없고 물빼기에도 바쁘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시설 복구가 최우선 과제”라며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이같은 참혹한 상황을 다들 믿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
  • 조롱하고 떠나고 싶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창작집 장편 동시에 펴낸 이만교

    2000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만교(36)가 왕성한 글쓰기를 자랑하듯,중·단편집 ‘나쁜 여자,착한 남자’와 장편 ‘아이들은 웃음을 찾지 못한다’를 민음사에서 동시에 펴냈다. ‘나쁜 …’에는 이만교의 재치와 감성이 잘 스며들어 있다.영화로도 만들어진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보여준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성풍속도 등을 포착하는 솜씨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중편 4편과 단편 2편으로 이뤄진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는 시선을 넓혀 우리 시대의 성과 사랑을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그린다. 표제작은 아내와 사별한 중년남자인 ‘나’가 젊은 여직원 ‘그애’와 주부사원 ‘그녀’를 대상으로 주고받는 욕망을 통해 현대인의 사랑 방정식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몸은 욕망에 맡기고 정신은 세태에 순응하는 ‘나’와 ‘그애’와는 달리,‘그녀’는 회사의 편법거래를 감추기 위해 관행적으로 저질러 온 서류변조에 반대하다가 화를 자초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순수파다.대조적인 두 인물 유형을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의 맹점을 꼬집는다.그는 “이 냉혹한 세상을,이 세상의 기만성을,비웃고 싶었고 경고하고 싶었던 마음의 결과물이 이번 작품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소설로 세상과 맞서는 방식은 ‘시비걸기’만은 아니다.자전적 소설인 ‘너무나도 모범적인’에서처럼 진리를 믿는 이들의 예쁘고 귀여운 마음을 대조적으로 그리면서,그래도 세상은 아직은 살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들려준다. 평론가 김미현은 “세상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넘어서기 위해서 농담과 웃음이 필요함을 아는 발랄한 작가”라고 치켜세운다. 한편 장편 ‘아이들은…’는 시골에서 목회자의 아들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의 체험이 오롯이 녹아 있는 작품.어느 시골마을 소년 동이가 읍내의 공장에 다니는 큰누나로부터 공을 선물받으면서 맛본 권력을 둘러싼 우쭐함과 갈등을 축으로 전개된다.이후 싸움이 어른들로 번지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을 다룬다. 작가는 “소설 속의 공은 근대문명이 던져준 욕망의 대상들을 은유한다.”며 “그 달콤함을 맛본 뒤그를 지키려는 측과 앗으려는 측 사이에 생기게 마련인 다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그는 “그런 의미에서 공은 공(空)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작품 의도에 대해서 우리가 끝없이 다투고 싸우는 까닭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고 했다.그는 “남과 북,좌와 우,진보와 보수 등 싸움과 논쟁은 그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었는데,그 내막은 복잡하고 심지어 후안무치까지해 그곳에서 도피하려고 시골 소년들 이야기로 숨었지만 그곳에도 나름대로 힘겨운 다툼과 갈등과 상처가 있었음을 새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종수기자 vielee@
  • [마당] 법치 리더십이 없다

    “인간의 사사로운 마음보다는 인간이 한 공과(功過)만을 따져라.” 공명정대한 법치를 절규한 비운의 천재 한비(韓非)의 말이다.한비는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공자(公子)였다.당시 그의 조국은 전국칠웅(戰國七雄) 가운데 가장 작고 약하여 비애와 굴욕을 처절하게 느껴야 했다.조국의 위태로움을 바라보다가 군주에게 엄정한 법치를 건의했으나 외면당하여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울분을 토로한 책이 바로 ‘한비자’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한 한비는,골육상잔이 난무하고 오직 힘만이 지배하는 냉혹한 현실에서 군주가 아무런 원칙없이 인의(仁義)라는 도덕 리더십으로 다스리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고 보았다.한비는 그들을 다스리는 최선의 방법으로 법치를 제시했다.그가 보기에 강제와 구속을 생명으로 하는 법은 강력한 통치수단이었다. 한비는 군주가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방법에 일곱 가지가 있다고 했다.첫째,상과 벌은 옳고 그름에 따라 준다.둘째,화와 복은 선과 악에 따라 내린다.셋째,죽이고 살리는 것은 법에 따라 내린다.넷째,덕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는 사사로운 애정과 증오에 따르지 않는다.다섯째,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가릴 때는 다른 사람의 비난과 칭찬에 좌우되는 일이 없다.여섯째,기준이 있어서 마음대로 헤아리는 일이 없다.일곱째,법의 집행에 신뢰가 있어서 사기치는 일이 없다. 물론 법을 빈틈없이 정비했다 해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군주 혼자 천하를 다스리긴 불가능하므로 많은 관리를 두어 법을 운용하게 한다.하지만 군주와 신하의 이익은 상충하기 마련이므로,신하가 제대로 따라오게 요령을 발휘해야 한다.무엇보다도 군주는 신하에게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지략이나 지혜를 감추어야 한다.그래야만 신하들이 신중하게 처신하면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다는 것이다.군주는 신하가 하는 대로 일을 맡겨두고 철저히 성과에 따라 상벌을 단행하는 것이 통치술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결국 현실주의에 입각한 한비의 법치를 받아들인 진시황은 서쪽 변방의 진나라에서 출발하여 동쪽 여섯 나라를 차례로 무너뜨리고 마침내 드넓은 중국을 통일하고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을 일사불란하게 다스리게 된다.물론 진시황의 통치 방식에 문제가 없었던 바는 아니지만,‘죽은 진시황이 13억 중국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이에 비해 한비의 간언을 무시한 한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최근 청와대 모 인사의 향응제공 사건의 수사 진행 과정,대구 U대회의 진행과정,현대자동차 파업해결과정이나 지금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화물운송노조의 파업,그리고 행자부 장관 해임안 제출을 둘러싼 여야의 끊임없는 대치,이런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정 홍보부족 탓이라고 말하는 현 정부의 무사안일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인 우리는 빠지고,그것도 중국이 회담결과의 요약문을 발표하는 냉혹한 현실에서 현 정부의 리더십의 부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내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상호간에 이해관계가 복잡미묘하게 얽혀 있어 실마리조차 찾기 힘든 요즘,공평무사한 법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것은 간단하다.법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하여 추호의 사사로움을 두지 말며,털끝만큼의 흔들림이 없이 일관되게 밀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김 원 중 건양대 교수 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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