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혹한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유혹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재계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패스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 해운
    2026-08-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046
  • 신용불량자 급증… 해법은 ‘감감’

    “밤을 새워서라도 (대책을)만들라.” 재정경제부의 청와대 업무보고가 있던 지난 28일.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불호령을 내렸다.순간,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노 대통령이 밤샘근무를 해서라도 내놓으라고 주문한 것은 다름아닌 신용불량자 대책.이 소식을 전해들은 금융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모처럼 핵심을 짚었다.”면서 “내수 회복을 위해서는 신용불량자 대책이 시급한 데도 정작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꼬집었다.호된 질책을 받은 재경부는 허둥지둥 작업에 착수,이르면 다음주 초에 신용불량자 추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신용불량자 400만명 육박 지난해 말 현재 신용불량자 수는 372만 31명.경제활동인구 6명 중 1명꼴이다.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08만 4308명(41.1%)이 늘었다.한창 왕성하게 소비할 나이인 20∼30대의 증가율(68.9%)이 두드러졌다.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健) 전무는 “400만명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소비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신용불량자가 가파르게 늘다 보니,신용회복지원위원회에 ‘구원 요청’(채무 재조정)을 내는 신용불량자 수도 한달에 1만명(12월 1만 920명)을 넘어섰다.그러나 이자 탕감 등 채무 재조정이 확정된 신용불량자는 지금까지 총 3만 7640명으로,전체 신용불량자의 1%에 불과하다. ●대통령 호통에 재경부 화들짝 재경부와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금융권 공동채권회수프로그램을 만든 이후 “이제 경기가 살아나는 것 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며 신용불량자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왔다.심지어 “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무책임한 공언을 되풀이하기까지 했다.궁극적으로는 신용불량자 제도 폐지가 바람직하지만,그러기 위해서는 이 제도를 대체할 ‘민간 신용평가회사’(CB)의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전기료·연금보험료 등 ‘공공정보’의 금융기관 제공 의무화가 시급하지만 공공기관들의 반발에 부딪혀 손도 못 대고 있는 실정이다. 노 대통령은 “연체금액이나 죄질에 따라 신용불량자를 세분화,불이익의 정도를 달리하고 경미한 신용불량자는 구제하는 방안을 강구해보라.”고 김 부총리에게 지시했다.사실 이는 김 부총리가 지난해 도입하겠다고 밝혔던 내용이다.늑장을 부리다 역공당한 셈이다.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죄질을 따지지 않고 신용불량자들을 무조건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신용불량자 등급 세분화)효과가 크지는 않겠지만 일단 도입할 필요성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이 최근 발표한 ‘카드깡 이용자 최고 7년간 신용불량자 등록’도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된다.카드깡을 한번 했다고 해서 무려 7년이나 신용불량자 족쇄를 채우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일 뿐 아니라 자칫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신용회복委,“소액연체자 전결권을” 신용회복위원회 김승덕 팀장은 “개인 워크아웃을 확정하려면 금융기관의 승인을 일일이 얻어야 해 2∼3개월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면서 “신용불량자의 상당수가 소액 연체자인 만큼 일정금액 이하의 채무자에 대해서는 위원회에 처리 전결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신용회복연대 임동현 부장은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려면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있어야 하는 등 민간차원에서 채무자를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통합도산법의 개인회생제도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미현 김유영기자 hyun@
  • 주말매거진We/그 영화 어때?

    지난주 영화와 음악 시상식이 열린 미국의 베벌리힐스와 프랑스 칸에서는 세계적인 ‘은막의 요정’들과 ‘디바’들이 눈부신 의상과 현란한 몸짓을 선보였다.우승 트로피보다 이들의 관능미가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니콜 키드먼은 ‘몬스터’의 찰리 데론에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빼앗겼지만 금빛 비늘에 싸인 ‘인어공주’로 변신,시상식에 참석한 전 남편 톰 크루즈 등 뭇남성들의 시선을 독차지했다.금발로 염색한 머리와 금구슬이 박힌 헤어밴드,금줄무늬가 들어간 핸드백에 금팔찌,금반지까지 몸 전체를 그야말로 영화제 이름처럼 ‘골드’로 통일시켰다. 유럽 라디오그룹 NRJ의 뮤직어워드에 참석하기 위해 칸에 도착한 팝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가슴이 절반 넘게 드러난 원피스를 입고 건강한 육체미를 과시했다.최근 고향 친구와의 결혼 소동이후 다소 체중이 늘어 더욱 풍만해진 모습. 역시 NRJ어워드에 나타난 미국 여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지중해 분위기에 맞춰 헤어스타일과 눈화장,드레스,목걸이,귀걸이,왼쪽 팔꿈치 안의 문신까지 이집트풍으로 연출했다. 최근 미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여가수 비욘세는 흑인혼혈 특유의 탄력있고 풍만한 몸을 한껏 과시할 수 있는 짧은 의상을 입고 NRJ 시상식에서 공연했다.사자갈기 머리를 젖히고 뒤를 돌아보며 던지는 눈웃음이 더욱 뇌쇄적이다. 이도운기자·외신 dawn@ ●신설국-사랑은 눈 녹듯이… 새달 말 개봉하는 ‘신설국(新雪國)’은 196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모티브로 한 동명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영화의 무대는 제목처럼 눈이 지천에 깔린 마을 츠키오카(月岡).절망적 상실감에 자살 여행에 나선 50대 남자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젊은 게이샤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이야기다.그 분위기는 화면을 가득 메운 눈처럼 따스하다. 온 마을이 눈으로 덮인 마을 츠키오카역에 뭔가 사연을 간직한 듯한 쿠니오(오쿠다 에이지)가 내린다.특별한 대사없이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영화는 그가 당돌한 게이샤 모에코(유민)를 만나면서 속도를 낸다.연인이 교통사고로 죽는 장면을목도한 상처를 지닌 그녀인지라 직감적으로 쿠니오의 황량한 내면세계를 감지한다.상처입은 과거사를 징검다리로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튼다. 고토 감독이 영화 기획단계에서 염두에 뒀다는 일본의 인기배우 에이지의 우수어린 연기가 은은하게 빛나고 풋풋한 이미지의 유민은 적극적이고 발랄한 연기로 화답한다.지난 2001년 한국으로 건너와 왕성하게 활동하는 일본인 탤런트 유민(일본명 후에키 유코)이 주연으로 데뷔한 영화인데 한국에서는 인터넷에서 누드신이라는 ‘비틀어진 논란’으로 화제를 모았다.정작 영화 속 정사 장면은 그녀의 깔끔한 이미지를 더해준다. 그러나 영화의 따스한 메시지는 갈수록 그 밀도가 떨어진다.별다른 반전 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자연히 산만해지고 식상해진다. 이종수기자 vielee@ ●구루-사랑은 사고처럼… ‘유쾌하고 발랄한 러브스토리.’ 30일 개봉하는 ‘구루(The Guru)’는 존 트래볼타 같은 스타가 돼 부와 명성,인기를 얻겠다고 미국으로 건너온 인도의 댄스 강사 라무 찬드라 굽타(지미 미스트리)의 꿈과 좌절과 사랑 등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재미있고 달콤하게 엮어가는 사랑 이야기,성적 이미지와 유머를 결합시킨 참신한 발상에 젖다 보면 94분의 상영시간이 휙 지나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날아온 라무를 기다리는 것은 냉혹한 현실뿐.울며 겨자먹기로 친구들과 월세방에서 합숙을 하면서 시작한 인도식당 웨이터 일이 성에 찰리가 없다.그러다가 영화사를 찾아가 배역을 맡았는데 알고 보니 “주연이지만 대사가 너무 적은” 포르노 영화다.실의에 빠진 그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뉴욕 상류층 만찬에서 주방일을 거들다 우연히 인도 영적 지도자의 대역을 맡아 정신적 지도자인 ‘구루’로 떠오른다.비결은 포르노의 파트너 샤로나(헤더 그레이엄)가 들려준 성 관련 표현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 미스트리의 신선한 연기가 매력을 뿜고 진지한 조연을 주로 맡아온 마리사 토메이의 코믹연기 변신도 인상적이다. 이종수기자 ●곰이 되고 싶어요-사랑은 함께 하는 것… 30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곰이 되고 싶어요’는 한마디로 기존의 질서를벗어나는 ‘대항적’인 영화다.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인 미국과 일본이 아닌 덴마크·프랑스·노르웨이 합작으로 만들어진 점도 그렇지만,형식과 내용면에서도 기존의 틀을 과감하게 깨버린다. 얼음이 뒤덮인 그린랜드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엄마 곰과 에스키모 부부의 출산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갑작스러운 늑대의 습격으로 새끼를 잃은 엄마 곰은 슬픔에 잠긴다.아빠 곰은 대신 인간 부부의 갓난아이를 훔쳐와 자식처럼 키운다.이번엔 행복했던 인간 부부가 곰이 겪었던 비탄에 똑같이 빠지게 된다.한참 뒤 에스키모는 곰을 죽이고 아이를 되찾아 오지만,아이는 이미 정체성을 잃어 버린 상태.외모만 인간일 뿐 곰으로 자라난 아이는 다시 사람이 되길 거부한다.결국 에스키모 부부는 아이를 곰의 세계로 돌려보내고,아이는 고통의 시간을 거쳐 다시 곰으로 살아간다.‘사랑=함께 있는 것’이라는 평범한 상식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 영화는 아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재미와 감동을 줄 것 같다. 이영표기자 tomcat@
  • 주말매거진We/이 공연 놓치면 후회-쇼팽·비틀스를 좋아하나요

    피아니스트 강충모는 1999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바흐 전곡 시리즈’에 도전했을 만큼 학구적이다.그런가 하면 음대 재학 시절에는 강의실에서 엘튼 존의 노래를 피아노를 치며 불러서 ‘엘튼 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가 이번에는 ‘강충모의 뮤직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3차례에 걸쳐 팬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눈다.31일 첫번째 펼쳐놓을 이야기는 ‘피아노와 나’.그를 피아노 앞에 머물도록 유혹한 쇼팽의 즉흥환상곡과 예원학교 입시곡으로 그를 음악도의 길에 접어들도록 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그리고 얼마전 바흐 전곡 시리즈에서 선보인 바흐-부조니의 샤콘,또 젊은 시절 음악가가 아닌 보통사람으로 좋아했다는 비틀스를 들려주고,이야기를 나눈다. ‘피아노와 사랑’을 주제로 새달 28일에는 스승 정진우,부인 이혜전이 나서 사랑과 음악을 이야기한다.‘피아노와 친구’라고 제목을 단 3월27일에는 소프라노 김영미,바이올린 김남윤,비올라 오순화,첼로 박상민,클라리넷 오광호,콘트라베이스 이호교 등 음악적 동반자들과의 우정을 과시한다.오후7시30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580-1300. 서동철기자 dcsuh@
  • “내 남편 유혹해줘” 엽기주부

    ‘내 남편좀 유혹해줘!’ 가정주부 김모(43)씨는 지난해 7월 친구 박모(43)씨에게 ‘엽기제안’을 했다.‘남편과 이혼하려고 하는데 위자료로 3억 5000만원짜리 아파트 등 6억원을 받아내려면 간통 현장을 잡아야 한다.’며 자신의 남편 조모(43)씨를 유혹해 정을 통해달라고 한 것. 김씨는 박씨에게 그 대가로 이혼위자료로 식당을 차리면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이혼한 후 직장없이 혼자 자녀를 키우던 박씨는 제안에 선뜻 응했고,두 여자의 ‘작전’은 시작됐다.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조씨에게 몇차례 살갑게 접근하던 박씨는 같은 달 22일 “오늘이 생일인데 같이 지내자.”며 조씨를 유혹,노래방을 거쳐 서울 관악구 모 여관에 함께 투숙했다.조씨는 김씨와의 약속대로 잠자리에 들 즈음 김씨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현장 위치 등을 알려줬다.김씨는 메시지를 받은 지 30분후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급습,옷을 벗고 있는 남녀의 모습을 촬영해 증거를 확보,간통사건 현행범으로 경찰에 고소했다. 박씨의 접근 및 아내의 간통현장 급습등 처음부터 사태 전개를 이상하게 여겼던 남편 조씨는 수사 과정에서 이같은 아내의 행각을 진술했고 검찰이 수사한 끝에 부부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됐다.서울지검 형사8부(부장 金永哲)는 28일 김씨를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하고 조씨를 유혹한 박씨를 불구속입건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길섶에서] 온돌을 생각함

    우리에게 온돌은 고구려의 혼이 담긴 생활유산이자 민족동질성의 유전자 같은 것이다.고구려로 대표되는 한민족 북방계는 혹한의 기후조건을 이겨내기 위해 온돌이라는 독특한 난방방식을 창안했다.오늘날 우리가 방바닥에 앉아 생활하는 것도 따져보면 온돌의 영향이다.이는 한민족 남방계가 창안한 마루라는 독특한 공간과 함께 우리 생활문화를 견인한 양대 축이었다. 중국의 정사(正史)인 신·구당서(新·舊唐書)의 동이전 고(구)려조에 ‘그곳 백성들은 장갱(長坑)을 만들고 여기에 불을 때 따뜻하게 겨울을 난다(…其俗貧者多冬月皆作長坑…)’고 적고 있다.‘장갱’이란 바로 방구들 아래로 파인 고래다.당시의 온돌 유적이 지금도 남아있거니와,유명한 사신총이나 쌍영총에는 온돌방에 가부좌하고 앉아 있는 묘주(墓主)의 모습이 생생히 남아 전한다.고구려가 자국의 일부라는 중국측 주장은 이런 점에서도 황당하다.우리 민족의 선대와 후대가 온돌을 통해 체온을 나누는 한 고구려를 두고 벌이는 원적(原籍)시비는 무의미하다.새삼 말하거니와,역사는 결코의도로 짜깁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심재억 기자 jeshim@
  • ‘부동표 잡기’ 자정까지 표밭누벼/美민주 뉴햄프셔 예비선거

    |맨체스터(미 뉴햄프셔) 백문일특파원|“20%에 이르는 부동층을 잡아라.”뉴햄프셔 예비선거를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섭씨 영하 15도의 혹한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벽부터 자정 무렵까지 표밭을 누볐다.그러나 유권자들에 호소하는 방법은 후보들의 성장 배경과 성격을 반영하듯 ‘각인각색’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존 케리 상원의원이 3∼20%포인트 차의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가 뒤쫓는 양상이다. 이어 남부 출신임을 내세운 웨슬리 클라크 전 나토군 사령관과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이 3,4위를 다투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27일 새벽 0시에 첫 투표하는 작은 마을 딕스 빌에선 클라크 후보가 8표로 선두를 차지,이변을 연출했다.케리 3표,에드워즈 2표,딘과 리버맨 후보가 각 1표씩 얻었다.예비선거는 이날 오전 8시에 시작,오후 8시에 끝난다. ●토론형의 케리,선동형의 딘 유세하는 스타일과 장소에서부터 두 후보는 완전히 대비됐다. 케리 후보는 체육관이나 강당 같은 곳에서 청중들에 둘러싸여 빙빙돌며 연설하는 반면,딘 후보는 극장 무대나 학교 강단 같은 높은 곳에서 청중을 마주하고 섰다. 케리 후보는 연설 도중에도 청중들과 손바닥을 마주치거나 직접 마이크를 들고 질문과 환호를 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재혼한 부인 테레사 하인즈와 자녀들을 동반,연설을 시키는 등 가정의 화합을 과시하는 전략도 ‘트레이드 마크’다. 딘 후보는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쏟아내면서도 하나씩 사례를 드는 웅변조의 연설을 했다.그러나 이날만큼은 웃옷을 벗고 팔을 걷어붙이는 특유의 제스처를 포기했다.맨체스터 팰리스 극장에서의 연설도중 한 청중이 벌떡 일어나 “딘은 거짓말쟁이”라고 소리쳤어도 못들은 척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 패배한 직후 ‘광적인’ 연설로 상당한 표를 잃자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는 이미지를 연출하려 했다는 분석이다. ●진군형 클라크와 변론형 에드워즈 군출신답게 클라크 후보는 이날 아침 6시50분부터 밤 11시20분까지 뉴햄프셔 10개 카운티를 버스로 도는 강행군을 벌였다. 딕스 빌에서 마지막 유세를 벌여 이곳 투표에선 1위를 차지했다.그는 특히 다른 후보들이 청중과의 질의응답으로 한 장소에서 1시간 이상씩 머무는 것과 달리 5분 미만의 즉석 연설을 했다.2주 전부터 유세를 시작,충분한 토론을 거친 탓도 있으나 ‘군인정신’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클라크 후보는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도 강조했다.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교육비가 들지 않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으며 다른 후보들과 달리 워싱턴의 ‘아웃사이더’임을 거듭 강조했다. 에드워즈 후보는 변호사 출신답게 청중을 설득하고 즉석에서 대답을 유도하는 연설로 일관했다. 그는 현 부시 행정부의 문제를 지적하고 반드시 사례를 들면서 미국을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도자가 요구된다는 점을 논리정연하게 지적했다. 그리고 마치 배심원들에게 묻듯 “누가 적임자냐.”고 묻고 “에드워즈”라는 대답을 얻었다. 포츠마우스에선 600명이 넘는 예상 밖의 청중이 몰려 크게 고무됐으나 참신성 이외에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보여주진 못했다. mip@
  • 휴대전화 2題

    번호이동 ‘설 마케팅' 불발 연휴5일 고작 11287명 KTF와 LG텔레콤의 설연휴기간에 ‘번호이동 특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6일 번호이동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21∼25일 번호이동 신청자는 KTF 9498명,LG텔레콤 178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휴가 시작되기 전 하루 평균 1만명 이상이 번호이동을 신청했던 것과 비교할 때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업계는 전국에 불어닥친 혹한이 상당수 고객들의 대리점 방문을 막은 것으로 분석했다.여기에 고향 방문과 번호이동 서비스 시간의 단축,대리점 영업에 대한 홍보 부족 등도 ‘손님 몰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했다.이에 따라 ‘설 특수’는 일상 생활로 돌아온 지금부터라는 것이 이동전화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경두기자 홍보용 통화연결음 눈길 대장금 패러디서 社歌까지 이동통신 3사의 ‘번호이동 격전’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자사 홍보용 휴대전화 연결음도 다양해 관심을 끌고 있다. KTF는 무려 22종의 홍보용 연결음을 마련,전직원이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TV드라마 ‘대장금’을 패러디한 통화연결음.‘마마님! 이폰도 아니고 저폰도 더 더욱 아니시라면,도대체 어떤 폰을 가져오라는 말씀이시옵니까’.어린 장금이의 에피소드를 주제곡과 곁들여 듣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LG텔레콤의 홍보용 통화연결음은 CF광고와 일체감을 나타낸다. 연초 ‘SK텔레콤 네트워크’라는 통화연결음을 넣어 논란을 일으켰던 SK텔레콤은 사가(社歌)를 홍보용 통화연결음으로 이용하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한지붕 두가족 ‘숙명의 혈투’/현대·기아車 국내영업 사령탑 전현찬·김중성 부사장

    ‘한지붕 두가족의 양보없는 판매전쟁’ 국내 자동차 판매시장의 71.5%를 점유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국내영업 사령탑이 처한 현실이다.전현찬(60) 현대차 부사장과 김중성(60) 기아차 부사장 동갑내기의 선의의 경쟁이 한겨울 혹한을 녹일 정도로 불을 뿜고 있다. 두 사람은 현대차 판매에만 30년 가까이 보낸 정통 세일즈맨들로 사활을 건 전투를 치르고 있다.입사년도는 다르지만 그룹내에서는 ‘동기’로 통하는 두 사람은 상무-전무-부사장 승진을 같은 시기에 해 ‘숙명의 라이벌’로 꼽히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내수시장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아 두 사람은 그동안의 경영능력을 ‘올인’하는 승부수를 띄울 것이라는게 회사 안팎의 전망이다.전·김 부사장의 양보없는 경쟁은 내수시장에 판매활성화로 연결된다는 점에서도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자동차 판매업계의 산증인 ‘현대차 최고참 세일즈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전 부사장은 지난 69년 공채 2기로 입사,울산공장에서 근무한 8년여를 제외하면 27년을 영업일선에서보냈다.지난 81년부터 10여년간 상용차 판매부문에 근무하면서 현대차가 대형 덤프트럭시장을 석권하는데 ‘1등공신’ 역할을 했다.판매 일선에서는 앞만 보고 달리지만 일선 영업점 직원의 경조사에까지 참석할 정도로 따뜻함을 발휘하는 ‘외유내강’형이라는 평이다. 전 부사장은 요즘 극심한 내수부진에 대한 타개책을 찾는데 골몰하고 있다.올해는 지난해 실적에 13%만 증가한 71만대 판매를 목표로 잡았다.하지만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그는 “지난해에 신차가 한대도 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장점유율을 소폭이나마 올린 저력을 발휘해 리딩 컴퍼니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위기 때마다 투입되는 소방수 김중성 부사장은 전 부사장보다 5년 늦은 74년 현대차에 입사했지만 관리본부 인사담당 이사를 거쳐 국내영업본부 승용사업부장,국내판매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초고속 승진코스를 밟았다.2001년에 판매실적이 급속도로 떨어진 기아차를 구하라는 정몽구 회장의 특명으로 현대차에서 기아차로 말을 바꿔 탔다. ‘불도저’라고 불리는 그의 저돌적인 기질이 기아를 살릴 수 있다는 정 회장의 믿음 때문에 이뤄진 인사라는 평이다.파격적인 인사는 자신의 후임으로 자리를 옮긴 전 부사장과 피할 수 없는 일전을 치러야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됐다.그러나 김 부사장은 정회장의 기대대로 적극적인 판매 드라이브를 걸어 1년 만에 시장점유율 27%를 차지,기아의 영화를 되찾아 전 부사장을 긴장케 했다. ‘판매의 귀재인’ 김 부사장에게도 올 한해가 버겁게 느껴지기는 전 부사장과 마찬가지다.김 부사장은 “판매 총력체제를 가동하는 정면승부로 RV(레저용 차량) 전차종의 1위 브랜드 구축,봉고 트럭의 시장점유율을 50% 석권을 달성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이종락기자 jrlee@
  • ‘한상궁’과 떠나는 북한요리기행/특집 ‘MBC 스페셜’ 31일 방영

    ‘수라간 최고 상궁’ 양미경이 북한을 다녀왔다.드라마에서는 요리를 만들기만 한 그이지만 오는 31일(오후 11시10분) 방영될 MBC 스페셜 ‘북한 전통음식 기행’에서는 북한의 다양한 요리를 두루 맛본다.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방북한 양미경은 북측 리포터와 평양,개성,원산,함흥 등 북한 4대 도시의 명승지를 둘러보고 향토 음식을 섭렵했다.국내 방송사가 북한을 찾아가 명승지와 음식을 소개하기는 처음으로,조선중앙TV와 공동으로 촬영했다. 양미경은 이 프로그램에서 먼저 평양을 찾는다.을밀대와 대동강을 유람하면서 남녘 사람들에게도 비교적 익숙한 평양냉면과 온반,어복쟁반을 소개한다.대동강 숭어국과 최근 북한에서 뜨고 있다는 타조고기도 맛본다. 고려의 옛 도읍인 개성에서는 정몽주의 혼이 서린 선죽교를 찾아가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인삼닭곰,정성이 듬뿍 배인 약과와 편수에 대해 알아본다.해산물이 풍부한 원산의 대표적 유적지는 송도원이다.얼큰한 가자미냄비탕에 털게찜으로 속을 채운다. 혹한에 시달리는 함흥 주민들은 어떤음식을 먹으며 겨울을 견딜까.꽁꽁 언 감자로 만든 언감자송편,가자미식혜에다 원조 함흥냉면은 빠질 수 없는 고유의 맛.‘함흥차사’라는 말이 유래한 함흥 본궁과 만세교는 덤이다. 또한 북한 최고의 요리 학교인 ‘장철구 상업대학’의 수업장면,그동안 남쪽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북한 가정의 설맞이 모습도 엿볼 수 있어 먹거리뿐 아니라 볼거리도 풍부하다.북한의 먹거리를 살펴봄으로써 단절된 남과 북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 제작 취지.실향민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다시 새길 수 있는 기회가,늦은 밤 출출한 시청자들에겐 간식 생각이 간절해지는 즐거운 ‘고민의 시간’이 될 것이다. 박상숙기자 alex@
  • [박완서의 살아가는 이야기] 덜 답답한 세상을 위하여

    기나긴 명절기간이 지나갔다.어려서는 명절기간이 길수록 좋았다.농촌에서 설과 추석은 농사와 깊은 관계가 있었다.먹을 것이 귀하고 기후가 혹독하던 시절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추석은 명절 중의 명절,하늘이 내린 축복이었다.설 명절 또한 추수한 곡식이 아직은 충분히 남아있고 소와 돼지는 살찌고 해는 길어질 때다.날로 도타워지는 햇살이 언 땅에 깊이 파고든다는 건 곧 농사꾼들에게 잔인한 계절이 올지니 그 전에 실컷 먹고 충분히 놀아둬야 한다는 신호 같은 거였다. 며느리는 친정나들이를 보내고 시집간 딸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도 설 동안이었다.짧게는 보름 길게는 정월 한달이 때때옷 입고 먹고 마시고 놀고 나들이 다니는 명절기간이었다.냉장고가 없던 시절 음식을 아무리 넉넉하게 장만해 둬도 쉬거나 썩을 걱정이 없다는 것도 하늘이 주는 혜택이요 편리였다.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군량미가 다급해진 일제는 식민지의 이런 느긋하고 풍요한 세시풍속조차 묵과하지 못했다.농사지은 양식을 거의 다 공출 당해 그렇게 오랫동안 즐길 수도 없었지만 음력 설 자체를 말살하려들었다.양력으로 1월1일이 진짜 새해이기 때문에 음력으로 설을 쇤다는 건 비과학적이라고까지 몰아붙였다.점점 더 강제성을 띠다가 말기로 접어들면서는 도시에서는 떡방앗간의 영업을 못하게 했고 농촌에서는 떡 치는 소리만 들려도 고발의 대상이 됐다.설 명절이 새 해의 뜻보다는 오랫동안 우리의 정서에 뿌리내린 민속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는 걸 인정하려들지 않았다.그러자 편의상 양력으로 차례를 지내던 집까지 양력 정초는 일본설이라고 배척하고 음력을 조선설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듯이 비장한 용기로 음력설을 쇠게 되었다. 우리 고향은 아주 보수적인 산골 마을이고 그런 마을에서도 드물게 할아버지는 상투를 틀고 계실 만큼 고루한 어른이셨는데도 설은 양력으로 쇠도록 하셨다.이유는 간단했다.대처에 나가 학교 다니는 손자들이 방학해서 내려와 있는 동안 차례도 지내고 음식장만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그때나 이때나 음력설이 겨울 방학 안에 드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우리 집안의 상투 튼 진보 덕분으로 손자들은 귀향의 기쁨과 설에만 맛볼 수 있는 지방색 짙은 음식과 놀이문화에 대한 풍부한 추억을 갖게 되었다.또 하나 그 어른에게 고마운 것은 차례나 제사 지낼 때 여자들도 참예토록 한 것이다.오빠하고 똑같이 차례나 제사 참예를 했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었다.그러나 훗날 내가 여자로 사는 데 있어서 주눅 들거나 허세 부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광복이 되니까 사람들이 마음 놓고 구정을 쇠게 되었지만 공휴일을 지금처럼 구정에 더 많이 주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그런 변화에 상관없이 나는 어렸을 때 버릇으로 신정이 명절 같다.내 자식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 할아버지와 똑같은 이유로 신정을 지냈고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도 늙어가면서 음식장만하고 손님 치르는 일이 힘들어지니까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고,미리 지내고 나서 신정보다 훨씬 심해지는 교통체증,물가고,품귀현상,혹한 따위 구정풍경을 남의 일 보듯이 느긋하게 구경하는 맛도 그럴듯하다.좀 얄미운 심보인지는 몰라도.그밖에도 나처럼 딸만 여럿 있는 집은 설이 두 번이나 된다는 게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여럿이다 보니 자연히 사돈끼리 지내는 설날이 달라지기 때문에 내 자식이 몸과 신경을 쪼개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점점 외아들 외딸이 늘어가는 추세인데 만일 양가가 전통적으로 지내 온 설이 같고 서로 그걸 고집한다면 어쩔 것인가.그럴 때는 남자 쪽 부모가 양보하는 게 좋을 것 같다.뭐니뭐니 해도 아직은 권력을 쥔 쪽이 아들 가진 쪽이니까.하나밖에 없는 자식도 나눠가진 사이가 둘 있는 명절을 하나씩 나눠 갖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겠는가.우리의 사소한 배려가 우리 자식 우리 손자가 살아나갈 앞으로의 세상을 지금보다 덜 답답한 세상으로 만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소설가)
  • 국제플러스/중국인 춘절 해외관광 러시

    |베이징 상하이 연합|중국인들은 자국 외환보유고가 4000억달러에 이르고 작년 9.1%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경기 호황이 지속되자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설) 연휴를 맞아 연초부터 해외 관광 러시를 이루고 있다.올들어 태국을 관광할 중국인은 약 100만명으로 예측되고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도 각각 90만과 70만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다녀갈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의 문회보(文匯報)가 25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를 인용,보도했다. 올 들어 자국의 혹한을 피해 호주를 찾은 중국 관광객도 2만 4000명에 달했다.지난해 독일을 여행한 중국 관광객 수는 60만명으로 5년 만에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최근 베이징에 관광 사무소를 열고 있다.
  • 귀성포기 비상근무/기습한파에 서울시직원 1만7000여명

    “시민들은 흡족하지 않았겠지만 저희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설 명절을 전후한 폭설과 혹한이 서울시 재해대책본부와 상수도사업본부 직원들의 ‘귀성 발길’을 꽁꽁 묶었다. 24일 시 재해대책본부와 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 20,21일 이틀간 내린 14.1㎝의 눈과 영하 15도 안팎의 기습한파로 연인원 1만 7000여명이 비상근무에 동원됐다. 제설작업에는 20일 제설대책이 발령된 이후 23일까지 1만 4425명이 투입됐다.본청 상황실 요원을 비롯,자치구·사업소·시설관리공단 직원들이 올림픽대로 등 자동차전용도로와 간선도로 등에 염화칼슘을 뿌리며 철야작업을 벌였다.서울시내 등에 살포된 염화칼슘은 17만 1427포대(포대당 25㎏)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 건설기획국 도로관리과 나철흠(7급)씨는 “명절 연휴였지만 방재시스템이 잘 가동돼 큰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면서 “비상근무조에 편성된 대다수 직원들은 명절 고향길을 포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이같은 사정은 15년 만에 찾아온 혹한을 접한 상수도사업본부 직원들도 마찬가지.수도계량기 동파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설명절을 사실상 반납했다.11개 사업소를 포함,3000여명의 직원 중 적게는 700여명 많게는 절반가량의 인력이 매일 파손수리작업에 투입됐다.지난 21일 이후 24일 오후까지 접수된 서울시내 수도계량기 동파신고 건수는 1만 750건. 사업본부는 설 귀성객이 귀경하면 동파사고 신고건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최용규 장세훈기자 ykchoi@
  • 폭력남편 살해 아내·딸 호흡기 뗀 아버지 “法은 관대했지만 마음은 늘 감옥에…”

    가치 상실과 혼돈의 시대를 맞아 우리의 가정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가정폭력과 불치병 치료에 따른 가계파탄에서 헤어나기 위해 남편과 딸을 살해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이들은 역설적이지만 “가족을 지키고 싶다.”고 절규한다.이웃 중의 하나일 수 있는 이들의 가슴속에 담긴 고통과 회한을 들어보며 다시한번 사회와 가족의 뜻을 되새겨본다. “그냥 언젠가 하느님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이제 가정을 지키고 싶습니다.” 술을 마시고 자신과 두 딸의 생명을 위협하던 남편을 살해한 노모(46)씨와 희귀병을 앓던 딸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내 숨지게 한 전모(50)씨.지난 15일 이례적으로 둘다 집행유예를 법원에서 선고받고 구치소에서 풀려났다.외부와의 일절 연락을 끊었던 이들은 18일 기자와 만나 간신히 입을 열었으나 여전히 마음의 감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법원은 노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전씨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면서 “피고인들이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할 형편이고 범행경위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숙박시설과 집 등으로 돌아온 이들은 그나마 가정에 대한 지푸라기 같은 미련과 의지로 삶을 지탱하고 있다. ●고통의 나날 계속되는 ‘비극의 가정’ 노씨와 두 딸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지난해 10월 사건 이후 세상 사람의 눈을 피해 이들은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서울 은평구 쉼터에서 숨어 지내고 있다. 어렵게 접촉한 큰딸 최모(24·전문대 졸업 예정)씨는 “우리 세 식구는 모두 심신이 피폐한 상태”라며 자신들을 돌봐주고 있는 원 베네딕트(37)선교사를 만나보라고 했다.원 선교사는 2001년부터 청소년 선교재단을 통해 최씨와 동생(22·대입 준비중)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들을 위로해왔다. 원 선교사는 “두 자매는 사건 뒤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고,노씨는 정신적인 고통과 지병인 자궁암·협심증으로 구치소에서 사경을 헤맸다.”고 전했다.노씨가 수감된 석달 동안 두 딸은 하루도 빠짐없이 구치소 면회를 다녔다.노씨는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지만치료비는 물론 생활비조차 막막하다.유일한 재산인 집을 내놨지만 소문 탓인지 사려고 나서는 이가 없다.친척들도 ‘남편과 아버지를 죽였다.’며 인연을 끊었다. ●‘아버지가 쫓아오는 꿈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최씨가 그동안 원 선교사에게 보낸 수십통의 이메일에는 가족의 참혹한 삶이 담겨 있다.“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쉼터로 처음 도망간 날,아버지가 칼을 들고 쫓아오던 꿈이 갑자기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랐다.그냥 다 놓고 쉬고 싶다.”(2003년 4월4일) “‘다 죽이고 나도 죽으면 그뿐’이라는 아버지의 눈빛이 너무 무섭다.”(5월16일) “화장품이 그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두껍게 바르면 아버지께 엊어맞은 눈밑의 멍이 잘 안보인다.”(7월22일) “‘아버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썼다가 스스로 놀랐다.”(9월29일)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다.”(10월9일)….10월 26일 새벽,어머니는 술에 취해 두 딸을 칼로 찌르겠다고 위협하는 남편을 흉기로 살해했다. 원 선교사는 “사건 발생 전 법원이 남편에게 접근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면서 “남성중심적인 법과 의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이런 불행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이 사건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노씨의 큰딸은 다음달 전문대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 중이다.둘째딸은 지난 연말 대입 수능을 치렀다.이들 자매는 “우선 어머니와 가정을 지키고,앞으로 언젠가,누군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래도 희망은 역시 가족” 서울 용산구 후암동 전씨의 집 앞에는 쓰레기봉투에 담긴 수북한 담배 꽁초와 빈 소주병이 널려 있었다.몇차례나 거절하다 겨우 말문을 연 전씨는 “아직도 내가 딸을 왜 죽여야만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느냐.”면서 “더 이상 세간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떨궜다. 전씨는 “5년 넘게 딸아이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아내는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돼버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퀭한 전씨의 얼굴에는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지난 98년 15살의 딸은 경추탈골증후군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택시운전을 그만두고 집까지 팔아 2억여원을 치료비로 쏟았지만,딸은 회복될 가능성이 없었고 빚만 1억원 가까이 지게 됐다.지난해 10월 12일 전씨는 딸의 인공호흡기 전원을 직접 껐다. 전씨는 기자와 헤어지면서 “가족을 죽여야만 했던 심경을 어떻게 얘기한들 세상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은 가정을 지키는 일”이라고 되뇌었다. 유영규 채수범기자 whoami@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6)백제인의 사랑 질표율사(하)

    삼국시대 후반 백제는 신라와의 지루한 전쟁으로 몹시 불우한 시대를 이어갔다. 신라는 백제를 넘어서 당나라와의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국력을 키우고 싶어했고,그러자면 백제는 신라에 가장 골치 아픈 장애물이 되었다.두 나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였다.신라의 집요한 침략전쟁 속에서 백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미륵신앙을 껴안았다.단순한 전쟁 회피나 불안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서가 아니라 신라의 군사 공격을 꺾어 응징하는 힘과 근원적으로 죽고 죽이는 살상전이 없는 세계에 태어나 살고 싶다는 구원을 향한 절절한 신앙이었다. 미륵신앙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백제인들은 백제 땅이 미륵부처가 강림하실 약속의 땅으로 선택되기를 희망하면서 미륵사를 크게 짓고 미륵부처가 오시기를 기다렸다.미륵사가 삼국시대를 통하여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은 백제인들의 그같은 소망이 투영된 백제인의 마음으로 이룩한 신앙의 결정체였다. 미륵신앙은 100년이 넘도록 뜨겁게 달아올랐다.온 나라가 미륵신앙의 성지였다. 이같은백제의 미륵신앙을 유심히 살펴보던 신라가 뒤늦게야 슬며시 미륵사상을 배워가더니 백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륵신앙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다. ●신라에 정복 뒤 좌절빠진 백제 유민 화랑도와 미륵사상을 연결시켜 현실적인 국력으로 바꿔낸 것이다.미륵신앙을 표방하는 사찰을 짓기도 했지만 미륵사상이 현실화된 화랑도를 통하여 군사력을 극대화시킨 신라는 그 힘을 바탕으로 삼아 백제를 정복해버렸다. 어이없게도 신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진 백제는 그들의 염원으로 이룩한 미륵성지들과 함께 소망의 땅에서 절망의 땅으로 쫓겨난 셈이 되고 말았다. 좌절감은 크고 깊었다.이제 백제인들은 백제 유민이란 말로 바뀌는 가혹한 운명에 놓였다.그 때부터 처절한 저항의 날들이 시작되고,원한 또한 깊어졌지만 한번 뒤바뀐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신라는 아주 천천히 백제 땅과 사람을 신라의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갔다.먼저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년(新羅紀年)으로 고쳐 신라기(新羅紀)에 삽입시켰다.백제를 정복한 지 100년이 가까워진 757년(경덕왕 16) 진표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땅 이름을 원래 지명인 두내산현에서 만경(萬頃)으로 바꾸었다.이는 정복지 백제에 대한 신라의 완전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진표는 이제 만경들판에서도 그치지 않는 백제유민들의 원한과 저주의 나날들이 미륵신앙의 힘으로 해원되어 신라와의 상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이같은 격변속에서 진표는 아버지와 진지한 의논 끝에 금산사(金山寺)의 숭제(崇濟)법사를 의지하여 출가하기로 결심했다. ●유민들 고난 해결위해 ‘망신참회법’ 수행 숭제법사 또한 백제 유민으로서 일찍 당나라 정토종을 이끌던 선도(善導·613∼681)화상 법맥을 이어온 스님이었다.이제 진표는 스님이 되어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숭제법사는 진표스님께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주면서 각별한 수행을 권했다.점찰경이라고 부르는 이 경전은 말법시대(末法時代)가 되면 불교를 신앙하는 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장애에 부닥쳐 수행에 곤경을 겪게 되고,산란한 마음때문에 갈피를 잡지못할 경우가 많게 된다고 했다.이때 숙세의 선악업보가 현재의 고락길흉을 점찰하여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안락을 얻도록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숭제법사는 진표스님에게 계법(戒法)을 지니고 미륵과 지장보살에게 참회하여 직접계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할 것을 당부했다. 진표스님은 백제 유민들이 100년 가까이 겪고 있는 그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과 능력을 구하기 위해 17년 간의 긴 고행에 돌입했다.육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수행법의 하나인 망신참회법(亡身懺悔法)을 선택했다.육신을 버리지 않고는 깨달아지지 않는 수행법이었다.백제 유민들이 한 세기토록 겪은 육신의 고통을 자신의 한 몸으로 다 받아내겠다는 각오였다. 참회의 참(懺)은 산스크리트 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비는 것,뉘우치는 것을 뜻한다.내가 범한 죄를 부처 앞에서 고백하는 것,회개한다는 것인데,원시불교에서 비구는 자기가 범한 죄를 석가세존 또는 장로비구에게 고백하여 심판받도록 되어 있었다.비구는 보름마다 모여서 우포자타(uposatha·포살·布薩)라는 의식을 행하고,계율의 조목을 읽힐 때 마다 죄가 있을 때는 스스로 말하고 일어서야 했다.이렇듯 대승불교에서는 자기의 죄를 인정한 자는 모든 부처 앞에 참회하고,온몸을 던져 진리에 귀의하는 맹세를 하며,부처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의 잘못을 거두어주는 은혜를 입음으로써 죄의 공포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이같은 의식의 궁극 목표는 죄의식이 전혀없어진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라 하였다. 진표스님이 이같은 망신참회법을 선택한 것은 직접 자신이 진리를 체험하여 확신하기 위해서였다.그런 뒤 백제 유민들에게 참회의 필요성을 말하고,참회를 통하여 진정한 해방을 누리고 자유를 숨쉬고 사는 삶을 권하려는 것이었다.육신의 고통을 극복하는 참회법은 일찍이 석가모니 시대부터 있어왔다.하루에 한 끼,이틀에 한 끼,사흘에 한 끼를 먹거나,나무 열매나 꽃으로 요기를 하거나,한 다리를 들고서 있거나,진흙 먼지 속에 누워있거나,가시덤불 위에 누워있거나,물과 불 위에 누워있거나,어깨쭉지의 살에 구멍을 뚫고 그 속으로 끈을 밀어 넣어 나무가지에다 묶어놓고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는등의 육신을 고통속으로 몰아 넣어 그 고통을 잊어버림으로써 위대한 정신을 깨달으려는 수행법이었다. 진표스님의 망신참회법은 이들 전통적 수행법보다 훨씬 더 처절했다. 760년(경덕왕 19) 쌀 20말을 쪄서 말린 것을 가지고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면서 백제 유민의 고통을 구원할 수 있는 깨달음을 구하지 않고는 살아서 그 방문을 걸어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했다. 미륵부처 앞에서 부지런히 계법을 구했다.대부분의 출가승려들이 해온 전통적 수행법에 따른 정진이었다.그러나 3년이 넘도록 미륵불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았다.그때 진표스님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경전에 쓰여있는 수행법에 따라 참회하는 것만으로 백제 유민들의 그 오래고 참혹한 고난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신라가 백제를 정복한 것은 땅 위에 백제 한 나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서로 경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인정할 때는 피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세상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 모든 것의 상관성 깨달아 진표스님이 망신참회법 수행을 결심한 것은 신라의 백제 침공을 꾸짖고 회개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그보다는 백제인들이 한 세기가 넘도록 미륵신앙을 지니고 혼신껏 기도했지만 그에 대한 회답이 신라의 지배 아래서 굴욕적인 삶을 살도록 한 것이라면,왜 그래야 했는지를 알고 싶었으며,장차 백제유민들은 어떻게 살아야 원한과 저주의 불길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그 해답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진표스님은 자신의 고통이 모든 백제유민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으며,그 끈은 모든 신라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에서 홀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없고,태어나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은 모든 것과 관계있다는 깨달음이 진표스님의 확신으로 차올랐다.백제인들의 고통이 소멸되지 않고는 자신이 결코 안락할 수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이제 남은 문제는 백제인들의 고통을 없애줄 방법을 터득하는 일이었다.그 방법은 수행자 자신의 죄의식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참회법으로는 불가능한 차원에 닿아야만 깨달을 수 있음을 알고는 육신을 버리기로 했다.온 우주는 마음의 문제이지 육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장한 결심으로 21일 동안 육신을 던져넣는 참회수행을 단행했다.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나타나 진표스님을 안아 바위 위에 올려 놓고 사라졌다.다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수행을 강행했다.3일째 되자 팔과 다리가 부러져 일어서 걸을 수도,물건을 쥐기도 어려웠다.이제는 온몸을 굴려 언덕 아래로 떨어지는 참회수행을 계속했다.오직 마음으로 미륵을 불러 대답을 원했다.차츰 고통을 잊는 상태로 몰입했다.이제 온전한 것은 머리 뿐이었다.머리 마저 깨뜨려버림으로써 살고죽는 불편함마저 초월하고 싶었다.7일째 되던 날 밤 지장보살이 나타나 팔과 다리를 고쳐주고,가사와 발우를 전했다.수기(授記)가 내려진 것이다.그때부터 새로운 수행을 시작했다.21일을 다 채웠을 때 그토록 갈망했던 고통을 치유시키는 지혜가 터득되었다.금산사로 다시 돌아온 것은 29세 때였다.금산사에다 청동으로 빚은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그 아래서 외치기 시작했다.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것이다. ●신라 지도자들에도 참회 설파 만경들에서 농사짓던 이들이 미륵불을 기다렸지만 미륵불이 오지 않는 까닭을 말하면서 진정한 미륵을 만날 수 있는 비법을 설파했다.백제인의 마음속에는 신라를 향한 증오와 저주로 꽉 차있기 때문에 미륵의 소식이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이미 미륵은 와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고 했다.증오와 원한과 저주로 피흘리고 죽이는 일이 그치지 않는 한 미륵은 영원히 만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신라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백제인들뿐이며,백제인의 용서를 통해서만 신라가 나라다울 수 있고,신라가 나라다워야만 백제인의 마음에서 증오와 저주가 사라질 수 있으며,그래야만 공존과 상생을 이룰 수 있다고 절규했다. 신라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외쳤다.백제인을 능멸하고,빼앗고,죽이는 통치법으로는 신라도 끝없는 고난속으로 빠져들 뿐이며,오만과 편견과 무력으로 이룬 한 때의 번영이 더 큰 재앙으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참회하는 길뿐임을 설파했다. 신라인의 참회가 있어야만 백제인과 공존할 수 있음을 타일렀다.마침내 신라의 왕과 귀족,지도자들이 진표스님의 법문에 무릎을 꿇었다.진정한 통일신라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진표스님의 온 몸을 던진 백제 사랑은 한 시대의 고난과 불행을 극복해 내는 위대한 지도자의 참모습이었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5)백제인의 사랑 진표율사

    진표 스님을 뵙기 위해 금산사(金山寺) 가던 날은 절기로 소한이었다.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는 겨울 속에 봄 날씨를 차려 입고서 뜬금없이 진표 스님의 안부를 묻는 나그네에게 개구리는 왜 우느냐고 되물었다.이 질문은 금산사를 찾아가는 모든 길손에게 던지는 것이면서 금산사에 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대답을 알았느냐고 또 묻는다고 했다. 그날은 잿빛 참나무 숲에서 우는 동박새 울음소리에 실려서 물어왔다.어떤 때는 봄날 노고지리 노래나 겨울 갈가마귀떼 울음으로도 물어온다 했다.눈보라로 울부짖거나 천둥번개로 절규하기도 하며,살모사 눈빛이나 하현달의 쓸쓸함으로 물어올 때도 있단다. ●견훤이 물었다 “후백제를 아시오?” 개구리가 왜 우느냐고요? 실은 저도 오늘 그걸 여쭙기 위해 찾아가는 길인 걸요.돌아갈 때는 꼭 대답을 들려주고 가란다.걸음이 무거워졌다.금산사 일주문 조금 못미쳐 돌로 된 굴다리 앞에 이르자 이번엔 안내판 글자 속에서 견훤이 걸어나오더니 나그네를 붙들었다.후백제를 아시오? 후백제라….신라와 당나라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한 660년에서 무려 240년이나 지난 뒤에 옛 백제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건국한 나라가 아니냐고 대답하자 견훤이 버럭 고함을 쳤다. 연합군이라고? 이런 시러베아들놈 같으니라구.연합군은 뭔 연합군이야,늑대 같은 외세지. 외세 끌어들여 욕심 채우려다가 시퍼런 증오와 원한의 늪에다 백제인들을 처밀어놓고,고구려 저 광활한 영토 몽땅 다 빼앗기고서 반도 남쪽 구석에 내몰려서 쭈그리고 사는 꼴 하고서는….그 잘난 신라가 저질러버린 엄청난 과오를 당신도 지금 보고있지 않은가.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즈그네덜거로 한다며 떵떵거리고 있는데도,그 뭣인가 대한민국 정치인이라는 얄궂은 것들은 입 딱 봉하고 있담서.외세 끌어들여 민족 영토 거덜내버린 신라 정치인들이나,중국 눈치 살피면서 몸사리는 정치인들이나 모조리 다 거시기할 것들이여. 참으로 두렵고,아프고,무거운 해후였다.견훤은 백제 유민인 전주지방 인민들의 회고적 감정에 호소하며 후백제를 세울 수 있었는데,그때 가장 결정적인 힘이 백제 유민들의 그 회고적감정이었다.백제가 신라 역사에 편입된 지 240년이 지날 때까지도 옛 백제를 못잊어하고,신라의 지배질서에 원한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단순히 옛 일만이 아닌 것 같다. ●금산사에 계신 진표 스님을 뵙다 진표 스님은 금산사 대웅전 뒤편 조사당(祖師堂)의 영정 안에 계셨다.오른 쪽에는 은사이신 숭제법사(崇濟法師)께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나그네와 진표 스님 사이에는 1200년이라는 시간적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우주는 마음으로 짓고 허무는 것이라는 진표 스님의 법문을 믿고 오직 간절한 마음으로 스님께 여쭈었다.스님은 고요속에다 말씀을 풀어놓으셨다.그렇게 조사당문답(祖師堂問答)이 시작되었다. 나그네: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라크 국민들은 참담한 좌절감에 빠져 있습니다.목숨을 내건 테러로 살상과 증오의 날들이 쌓이고 있습니다.이 불행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을 먼저 여쭙고자 합니다.오늘날 이라크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스님께서 목숨을 건 망신참회(亡身懺悔) 수행을 통하여 백제인들과 신라 집권자들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던 그때 상황과 매우 닮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진표 스님:미국과 이라크는 인간이 지닌 모순의 두 측면을 각각 대변하고 있구나. 자신의 견해만이 옳다고 여기는 쪽과 일체의 사물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는 또 한 측면의 충돌이지.똑같으니까 싸우는 것이지.나는 그때 백제인들에게는 무모한 저항을 하지 말도록 설득시켜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신라의 지배자들에게는 잔혹한 탄압을 중지시켜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이 문제는 매우 미묘한 것이어서 자칫 잘못하면 어느 한쪽만의 이익을 위해 편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그리되면 약자들로부터는 굴종을 강요한다는 원성을 들을 수 있고,강자한테서는 저항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는 불만·투쟁 잘 다스려야 나그네: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다스리되 군림하지 않는 사람이다.인간이 사는 세상은 불만과 투쟁이라는 두 축 위에서 절규하는 것일 수도 있다.좋은 지도자는 두 원인을 잘 다스리되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자랑이란 욕심을 만드는 종자이기 때문이다.백제인들에게는 신라의 지배질서를 따름으로써 누릴 수 있는 이익을 제시해야 하고,신라 지도자들에게는 비폭력적 방법으로 백제인을 끌어안을 수 있는 구체적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그런데 그 방법을 터득하는 데는 엄청난 장애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그네:가장 큰 장애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진표 스님:내가 왜 이 일을 맡아야 하는가 하는 의심이었다. 나그네:어떻게 해결하셨는지요? 진표 스님:비상한 시름은 평범한 물건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백제인들은 한 세기 가깝도록 신라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왔다.증오는 저주로 변했다.신라의 편견도 지배자라는 타성에 젖어서 점점 더 폭력적인 지배방법만 강구했다.서로의 견해 차이가 워낙 커서 웬만한 조정능력으로는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었다.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다.과거의 인연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얻고자 했다.그 능력으로 나와 타인의 과거에 얽힌 인연과선악에 관한 것을 알고자 했다.이를 숙명통(宿命通)이라 하느니라.또 하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인과응보를 확인시켜줌으로써 눈에 안 보이는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이지.이것은 천안통(天眼通)이라 하느니라.번뇌가 끝나서 얻은 지혜로서 현재의 번뇌를 끊어버리는 능력을 얻는 누진통,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는 능력인 천이통,타인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능력인 타심통을 합한 육신통(六神通)과 해탈법을 깨닫기 위한 결심을 한 것이다.이 육신통이야말로 비상한 시대 문제를 풀 수 있는 비상한 물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그런 능력이 있어야만 양쪽 모두를 조화시킬 수 있으리라고 깨달았다.지배자와 민중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적대감정을 해결하여 공존과 상생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율자가 되기로 한 것이지.그런 조율자로서의 능력과 방법을 지장보살님과 미륵부처님께 물었다.내 몸을 던져서 답을 구했다.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망신참회라 부른다. 나그네: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수행법인 망신참회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내 개구리는 업장을 깨우쳐 주었노라 진표 스님:동기라고 했느냐?(스님은 오른쪽에 있는 그의 스승이신 숭제법사 쪽을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머금었다.)너는 개구리가 왜 우는지 아느냐? 나그네:생물시간에 배우기로는 암컷과 수컷이 교미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만. 진표 스님:그래야겠지.그런데 내 개구리는 울어서 내 미혹과 업장을 깨우쳐주었다. 나그네:무슨 말씀이신지…. 진표 스님:나는 열 살 이전에 활을 잘 쏘아 명궁 소리를 들었다.자주 사냥에 나가 활솜씨를 자랑하곤 했지.어느날 사냥가던 길에 개구리떼가 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놈들을 잡아 구워먹고 싶었다.크고 살진 놈만 잡아서 버들꿰미에 꿰었다.돌아올 때 갖고 가기위해 냇가에 두었는데 사냥길이 어긋나는 바람에 그만 집에 오면서 잊어버렸어.일년 뒤 다시 그 길을 지나다가 작년에 내가 잡아서 꿰어둔 개구리들이 그때까지 살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 순간 개구리들의 처량한 모습이 내 이웃 사람들로 느껴졌고,나는 내 이웃 사람들을 박해하는 신라 지배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부끄러웠다.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금산사 숭제법사님을 의지하여 출가를 했다.
  • 한겨울·한여름 단전 못한다

    앞으로 일반주택에 사는 주민들은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도 한 여름이나 한 겨울에는 단전조치를 당하지 않는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지난해 8월부터 월 100㎾h(사용료 6780원)이하의 전력을 사용하는 저소득층이 전기요금을 미납할 경우 단전을 유예해주고 있지만 올해부터 약관을 개정,일반 주거용 주택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대신 유예 시기는 7∼8월 혹서기와 12∼1월 혹한기로 제한된다.단전조치는 통상 한 가구가 3개월간 전기요금을 내지 못할 경우에 취해진다. 한전은 저소득층이라는 용어가 애매해 공정위로부터 ‘기초생활 보호대상자이면서 월 100㎾h(사용료 6780원)이하의 전력을 사용하는 저소득층’에 대해 시행해달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대상자 확인 과정에서 입증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일반주거용 주택 거주민들로 대상을 확대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안미현기자 hyun@
  • 수도권 택지보상금 새 투자처 찾기 7조원 떠돈다

    올 상반기까지 수도권 택지개발지구에서 토지 보상금 7조원이 풀린다. 한꺼번에 풀린 보상금을 유치하기 위해 금융·증권·부동산업계는 보상금 유치 경쟁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일부 택지지구 주변에는 토지 브로커와 사기 도박단까지 몰려들고 있다. 13일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보상이 시작된 성남 판교지구를 비롯,수도권 13개 택지지구 보상금이 무려 4조 48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올 상반기 수도권에서 보상이 실시될 파주 운정지구 등 5개 택지지구 보상금 2조 2000억원이 추가로 쏟아질 계획이다.협의 보상 과정에서 보상금액이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상반기까지 무려 7조원에 가까운 돈이 시중에 풀릴 전망이다. 엄청난 자금이 풀린 것과는 달리 주식·부동산 시장의 불황으로 땅주인들은 돈을 굴릴 만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보상금 대부분이 시중에 떠돌고 있다.이를 틈타 증권·금융·부동산업계는 부동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투자 유치경쟁을 치열하게 펼치고 있다. 은행·증권사들은 마땅한 투자처를 잃은 땅주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수도권 지점에 본사 직원을 파견하는가 하면 원주민들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증권사들은 경쟁적으로 수도권 지점을 돌며 투자설명회를 열고 있다.은행도 장기 투자상품을 내세워 고객잡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 일용직을 고용하고,원주민이 사는 동네를 돌며 투자 안내 홍보 전단을 연일 돌리고 있다. 장우철 대신증권 분당지점장은 “한꺼번에 엄청난 돈이 풀린 것과 달리 보상금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징후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 대토(代土)마련 종용 부동산중개업자들은 주변에 토지를 다시 사두는 것이 투자의 지름길이라며 땅주인들의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다.이들은 수도권 택지지구 보상비는 올해 수도권 토지시장을 흔들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규모라고 말한다. 보상금을 받은 원주민들은 대부분 다시 땅을 사는 경우가 많다.대부분 이 일대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어서 장사를 하는 데는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원주민들 사이에서는 보상금을 다시 땅에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다.과거 신도시 건설 당시 보상받았던 원주민들 가운데 수도권에서 땅을 산 사람은 재산을 유지하고 있지만 주식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한 사람은 대부분 몰락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수도권에서 보상을 받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신도시 때 보상받은 돈으로 땅을 산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토지와 함께 분당이나 용인 등에 10억∼20억원의 상가 건물이나 업무용 빌딩을 매입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보상을 받은 상당수는 아직 투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보상액 한도에서 다른 지역에 땅을 살 경우 취득·등록세가 비과세되는 혜택이 1년간 유효한 데다 이미 주변의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보상금 노린 검은세력도 가세 보상금을 노리고 서울 등에서 사기도박단이 잠입했다는 소문도 나돈다.원주민들이 대부분 가까운 곳에서 땅을 다시 산다는 것을 노린 토지 브로커들도 활동 중이다. 판교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토지보상이 시작되자 외지에서 사기꾼들이 잡입했다는 소문이 지난주부터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사기도박단도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판교주민들의 상당수는 농민이어서 농한기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돈과 시간이 많은 이들을 도박단이 공략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판교 일대 거주자로 이번에 밭 600여평을 수용당해 9억원 안팎의 보상금을 받게 된 이모(48)씨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디에 가면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돈다.”면서 “대부분 현지인을 끼고 있어 의심없이 판에 끼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번듯한 이름의 컨설팅사나 대부업체 명함을 뿌리는 경우가 많다.이들은 ‘어디를 사두면 돈이 된다.’는 식의 얘기로 주민들을 유혹한다.그럴 듯한 도면이나 개발계획 등을 지니고 다니면서 투자를 권유한다. 용인 H부동산 K사장은 “판교 보상이 이뤄지면서 이 일대에만 10여명의 토지브로커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류찬희 김성곤기자 chani@
  • 독자의 소리/ 국군포로 문제 전향적접근 필요 외

    국군포로 문제 전향적접근 필요 지난달 중국에 억류되었던 국군포로 전용일씨의 귀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그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아팠다.더욱 아쉬운 것은 북한 내 국군포로 문제가 너무 쉽게 다루어졌다는 점이다.이런 무관심 속에 북한 내 생존 국군포로는 북한 사회의 최하위 계층으로 연명하면서 갖은 고충을 겪어야 했다니 가슴이 아프다. 정부는 국군포로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전향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그동안 북한 내 생존 국군포로들은 남한이냐 북한이냐 선택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또 그로 인해 그 자식들까지 참혹한 생활을 감수했다.그렇다면 국군포로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다시 찾아주는 것이 최소한의 답례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미온적 자세를 벗고,정부 내에 ‘국군포로 진상조사위원회’를 신설하여 정확한 실태부터 확인하고,유엔과 유엔 인권위원회,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북한 내에 생존해 있거나 사망한 국군포로의 송환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장태호(충남 아산시 선장면) 수능 자격고사로 공교육살려야 안병영 신임 교육 부총리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을 공언했다.그러나 대개는 한번쯤 들어본 대책들이다.요컨대 그런 처방들로는 입시지옥 해소와 사교육비 경감을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하지만 공교육 살리기의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일단 수능시험을 자격고사화하는 것이다.그것이 어렵다면 수능시험을 교과서 안에서만 출제하고,정규수업외 1교시나 보충수업 등 비정규 수업을 금지시켜야 한다.궁극적으로 정규수업만 받고도 높은 수능점수를 얻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학생,학부모에게 심어줘야 한다.이때 유념할 것은 편법 수업금지 지침을 늘 어기는 학교의 교장을 문책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또 하나 명심할 것은 전임자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정말이지 이제 시간이 없다.무엇보다도 풀어야 할 난제가 무엇인지 이미 명명백백하게 나와 있는 상황이므로 신속하게 실행에 옮기면 된다. 장세진(전주시 덕진구 송천1동)
  •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타원형 감옥의 외부-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과 그 맥락

    강 경 석 1.기율과 충동의 사이 백민석의 소설들은 낯설다.그래서 그는 활동 초기부터 비상한 주목을 받아왔다.그러나 그런 만큼 오해와 풍문속에 내버려져 있기도 했다.그에 관한 논의들 대다수가 “긍정과 부정의 양 극단에 서”(하상일)있다는 지적은 여기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작가 백민석은 과장된 지지와 일방적 폄하 사이에서도 소설적 기율에 대한 자의식과 하위문화적 충동 간의 길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어 문제적이다.이는 그의 소설을 전위주의(avant garde)나 키치적 신세대론으로 소급하게 만든 흔한 실마리이기도 했다.그러나 이 길항이 가지는 가시적 면모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그보다는 하위문화소들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 작가가 무엇을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90년대적 공통감각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 혹은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261면)진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다.그의 소설들이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범주로의 손쉬운 편입을 수락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들은버려지고 배제된 것들(abjection) 말하자면 “병원 수술실에서 나온 적출물더미”(74면)의 잡종교배를 통해 태어났다.하위문화적 기시감으로 얼룩진 “적출물더미”들이 작중현실을 대신하면서 이들을 단순한 상징이나 알레고리로 보이게끔 만들지만,백민석의 서사전략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는 비유적 세계의 너머에 있다. 우리가 길어 올리고자 하는 주제들은 모두 그의 네 번째 장편 ‘목화밭 엽기전’(이하 엽기전)을 경유한다.‘헤이,우리 소풍 간다’(이하 헤이)로부터 본격화된 백민석의 소설 작업은 자못 활력적이었다.그리고 그 도정의 옥매듭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엽기전’이다.이후 출간된 소설집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하 장원)이나 장편 ‘러셔’도 이 텍스트의 장력 바깥은 아니다.‘엽기전’은 백민석의 성공과 실패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창이다. 2-1.기생(寄生)과 평질변이의 공간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것을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점이 있는 타원과 같다.”라고 썼다.이처럼 ‘엽기전’ 또한 두 개의 초점을지닌 타원 구조를 띠고 있다.그러나 카프카의 작품이 현대사회의 알레고리적 재현이라면 ‘엽기전’은 그 ‘재현’의 재현이다.은폐된 두 개의 초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적절한 축척의 개략도 한 장을 준비하기로 한다. 주인공 한창림은 대학 강사이다.그에게는 수학과외 교사를 하는 아내 박태자가 있다.과천에 살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분명한 사회적 신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괴한 작업에 몰두한다.그것은 미소년들을 자신들의 집 지하실로 납치해 스너프필름을 찍는 일이다.이는 시종 “흰 연기”(281면)에 비유되는 공포스러운 존재 “펫숍삼촌”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펫숍의 영어표기 pet에’는 ‘성애의 개념도 포함되어’ 있으며 거기에서는 “도착적인 냄새”(128면)가 난다고 설명되듯 그가 한창림 부부에게 돈을 지불한 뒤 얻는 것은 관음증적 쾌락이다.이야기는 박태자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년 윤수영이 이들 부부에게 납치·살해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한 회계사를 양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폭행하게 되고,그 때문에 오장근 형사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일이 “질서에서 어긋나”(188면)자 펫숍삼촌은 박태자를 살해한다.한창림은 오장근과 펫숍삼촌에 대해 복수를 꿈꾸지만 결국 실패하고 체포된다.이 파국의 막바지를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그는 “모자이크 처리가”(280면)된 “목화밭”을 발견한다. 물론 이상과 같은 개략도만으로 우리의 목적지가 금세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도착적 수사들을 일단 괄호치고 나면 텍스트는 의외로 쉽다.그것은 실존공간에 틈입한 우발적 폭력이 파국의 빌미로 된다는,매우 익숙한 플롯을 배면서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맥락에서 “햇빛 때문에” 한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뫼르쏘(‘이방인’) 이야기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한창림과 뫼르쏘가 행사한 폭력은 부조리한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양담배”나 “햇빛”은 사후에 조작된 것일뿐 폭력의 본질적인 동기는 아니기 때문이다.요컨대 ‘엽기전’은 지식인 주인공의 지리멸렬한 일상이 폭력적 충동 앞에 느닷없이 노출된 상황과 이질적이고 도착적인 수사들의 짜깁기로 구성되어 있다.이 발견을 열쇠로 삼아 텍스트에 좀더 가까이 가 보자. 우선 제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전(傳)이라는 이름의 작품 형식표지 때문이다.이것은 한 인물의 인생유전을 시간의 흐름에 입각해 서술하는,동아시아 고전문학의 대표적 형식 중 하나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현대적 굴절을 거듭해왔다.인물의 궤적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그것은 ‘박씨부인전’‘홍길동전’ 혹은 ‘라울전’(최인훈)‘유자약전’(이제하)과 같이 인물 지시와 이어지게 마련이었다.필경 전 형식을 새롭게 전유하면서 그 스타일이 고안되었을 ‘한씨연대기’(황석영)도 사례에 포함시킬 만할 것이다.그러나 엽기(獵奇)는 인물이 아니라 어떤 사태를 지시하는 말이다.그로테스크(grotesque)의 일본식 번역어일 가능성이 높은 이것은,최근 폭발적인 유행과 함께 하나의 문화적 화두가 되기도 했다.그러므로 ‘엽기전’은 엽기라는 문화적 표상들의 탄생과 성쇠를 기록한 형식이다.그러나 텍스트에 파종된 엽기들은 발생·성장·소멸이라는 시간적 체험과는 무관하게비선형(非線型)적으로 뒤엉켜있다.이런 측면은 자연스레 공간적 상상력을 유도한다.텍스트의 문면에 돋을새김 된 모티프들이 “동물원”“펫숍 건물”“지하작업실”“서울랜드”“목화밭”“과천” 등의 공간 표상들임은 시사적이다.지하분묘(grotta)의 벽에 표현된 반인반수의 기괴한 신체들로부터 파생,매스미디어적 운반을 거치면서 그로테스크는 엽기로 굴절되었거니와 엽기는 먼 기원에서부터 이미 공간 자질(지하분묘/일그러진 신체)을 보유했던 것이다.그런 면에서 ‘엽기전’의 전(傳)은 교란부호 내지 착란이다.그것은 엽기가 전(傳)이라는 선형(線型)적 시간에 뿌리내리면서 빚어진 형질변이의 결과여서,결국 의식의 ‘적출물더미 하치장’을 표상하는 공간 기호로 작동한다.이것의 대표적 작중 용례는 일상의 표면에 묻힌 한창림 부부의 “지하작업실”일 것이다.이곳에서는 마치 무의식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설정 자체는 나체의 주술사가,흰 피부의 사내애와 벌이는,섹스의 향연이다.신께 제를 올리는 것이다.제물은 섹스이고,체액이고,신체이다.(212면) 재갈과 가죽 끈으로 포박당한 희생자는 끊임없는 린치의 반복앞에 저항할 힘조차 잃고 있다.한창림 부부는 카메라를 설치하고 상황을 연출하면서 마치 마계의 제사장처럼 행동한다.악마숭배의 제의적 모티프는 하위문화의 단골 레퍼토리이기도 하다.헤비메탈 밴드의 라이브 공연장은 가장 적절한 참조 대상이다.이들은 “무시무시한 대형 두개골 모형이 놓여 있고,사방에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체 조각 뼛조각들”(‘장원’146면)이 널린 무대에서 연주하곤 했다.그들은 관중을 향해 “날엉덩이”까지 흔들어대는 퍼포먼스를 서슴지 않는다.작가가 여기에 깊은 공감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의 미학”(‘장원’ 147면)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은 한창림의 지하작업실과 유사한 공간 자질을 갖는다.성스러운 신의 전당들이 지상으로부터 영원을 향한 상승 이미지라면,엽기전적 공간은 지하로 숨어든 하강 이미지이며,그것은 서구 고딕(Gothic)소설들이 공간적 배경으로 흔히 채용했던 폐쇄공간들(외딴 성,숲속의 저택 등)과도 통한다.한창림의 지하작업실이 “서울랜드와 동물원이 지어질 때 고립”(18면)되었다고 진술되면서부터 이들과 일정한 상호텍스트성을 획득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오트란토 성’(H 월폴) 같은 작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지하실이나 비밀통로,폭력적인 남성형상 등의 모티프들이 두루 겹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엽기전’이 일반적인 공포물이나 고딕소설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소재주의에 함몰된 비약이다.상호텍스트성이 아무런 매개도 없이 동질성으로 전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이를 과장하다보면 최인훈의 ‘웃음소리’나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또는 이승우의 몇몇 근작조차 고딕소설의 일종으로 배분해야 지 모른다. ‘오트란토 성’이 봉건 이념의 종식을 징후적으로 포착한 경우라면,‘엽기전’은 근대 자본주의의 세포단위인 부르주아 핵가족의 내파(內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내력부터 다르다.이 앞뒤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심연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인데,그렇다고 텍스트에 드러난 고딕적 요소를 일방적으로 부정할 수만은 없다.그것은 ‘신체 상해’의 문학적 상관물들이 동시대의 한국문학에서 적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이것이 도시 체험의 축적에서 유래하는 일탈의 감각과 깊이 연루된 것이고 보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던 징후의 하나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그런데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포스트모던 자체를 오히려 “고딕의 뒤늦은 부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그에 따르면 고딕이란,“편파적 시선에 의해 내던져진 괴기스러움의 그림자이며,허구 속에 안전하게 봉인된 팬터지이자 분노이기도 한,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의 포스트모더니티를 과장하는 일도,서구적 맥락에서 고딕을 규정하는 일도 아니다.고딕환상물들이나 하위문화 양식들이 다양한 방향의 역사적 분절과 매체 전이를 경험하면서도 “중간계급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기원적 동질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에서 말한 ‘재현(가상)의 재현’이란 무엇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하다.‘무의식”이라는 표현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하위문화적 충동의 1차적 재현이란 이미 “안전하게 봉인된” 저항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백민석이 수행하고 있는 ‘재현의 재현’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버려지고 배제된 “적출물더미” 혹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들”(166면)은 “지하작업실”이나 “펫숍건물”에서 벌어지는 린치행위들(악마적 희생제의)과 함께 표면적으로는 위반의 정치학을 구사하면서도,내면적으로는 “사회체계”의 안전망 안에서 자기보존의 영속적 지위를 획득한 것들이다.그것은 또,하위문화 기제들의 비교(秘敎)적 무대공간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엽기전’은 이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그리하여 텍스트는 반항의 에네르기를 통제하는 봉인,“과천의 위생 처리된 맨홀 뚜껑”을 해체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이때부터 텍스트 전개의 중심축은 지하작업실의 은폐된 사실들이 표층으로흘러넘치면서 발생하는,파국을 향해 이주한다.한창림이 지하작업실을 불태우는 장면(234면)은 그 전환점이다.이 상상적 봉인해체 작업을 통해 백민석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이 얼마나 안일한 기초 위에 축조된 것인가를 묻는다.한창림은 이를 “몰락”(232면)이라고 말한다.이것은 그의 목소리를 빌려 미리 암시된 것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세상의 위협적인 눈들로부터 폭넓게 노출되어 있는지 깨닫곤 놀랐다.사람들은 다만 망상증에 걸리지 않기 위해,자기가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았다.(68면) 첫 장편 ‘헤이’의 “퐁텐블로”나 ‘엽기전’의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낸 과천”은 중간계급의 이상(理想)을 외화시킨 인공낙원이다.그리고 이 공간들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작업은,그 전제에서부터 “사회체계”의 기초를 탐색하는 작업과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그것은 ‘엽기전’의 전략을 논리적 비약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듯하다.이러한 종류의 탐색 작업은 늘 집 또는 가족의 문제와 관계 맺는다.근대문학의 전통이 끊임없이 물어왔고 또 동시대의 문학적 상상력들이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백민석 또한 가족이라는 공간에 대해 묻는다.그곳은 “우리의 지옥”(‘헤이’,244면)이다. 2-2.집의 포자(布子)들과 두 갈래의 초월 근대적 가족 이미지의 거처(topos)로 기능해온 ‘집’은 백민석에게 와서 다시 씌어진다.그는 가족 이념의 내파를 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오버랩시키는 실존주의 모티프를 통해 보여준다.임신 중인 박태자가 “가족 없이도(…)그럭저럭 결혼까지 하며 제법 꾸려져왔”(142면)던 자신의 삶을 강변하며 아버지의 방문을 거절하는 장면,그리고 화장실에서 사산(死産)하는 장면.이 두 장면의 연속배치는 결정적이다.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면서 재생산의 고리마저 끊어낸 ‘집’(또는 가족)이란 그 자체로 전복적인 하위문화 공간이자 “지옥”이다.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강렬도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아무도 이타카(Ithaca)의 회복을 욕망하지 않는다.이런 점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은 기억의 서사를 추구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과 대조적이다.그곳에는 어떤 기억이나 회상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부조리한 충동은 거의 언제나 우발적인,비가역적 동시성의 소산이기 때문이다.기억의 돌출은 기껏해야 한창림이 자기 어머니를 떠올릴 때처럼 파편적 이미지로 던져지거나(154면),박태자의 경우처럼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암페타민의 환각”(99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이나 행위가 작가의 궁극적 주제를 직접 매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이는 작가가 한창림과 박태자의 교차진술을 통해 작중 상황을 반복 객관화시키면서 더욱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주인공의 욕망이 작가론의 직접적 상관물로 환원될 수 없다는,일견 단순한 사실이 지금껏 무시되면서 ‘엽기전’은 냉소나 허무주의적 저항담론의 일방통행로에 갇혀 버렸다.물론 ‘헤이’와 같은 초기작의 경우,하위-충동의 허무주의를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결국 세대론적 인정투쟁에 희생된 측면이 없지 않다.그러나 충동의 무정부적 방출을 일삼는 주인공이란 하나의 설정일 뿐이지 궁극은 아니다.이들을 다루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스크린 속에서 만난 괴기사건을 독자들에게 전달,‘재현의 재현’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듯 담담하다.작중인물들에 대한 연민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근본적으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우호적이지 않다.그러므로 허무주의적 세계관 또한 출발점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헤이’ 이후 작가에게는 단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출발점의 진화를 위해 망설임없이 밀고나가는 길,그리고 부조리한 충동들의 존재근거를 되짚는 길이 그것이다.앞의 것은 “목화밭”으로 가는 길이고 뒤의 것은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이 친구를 보라’로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길이다.그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이다.“목화밭”으로 가는 길 끝에서 한창림 부부가 몰락한다는 것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자칫 이 끔찍한 존재들의 실패담이 무책임한 냉소로 비칠 수 있겠지만,하위문화의 봉인된 저항이 늘 그런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태생적 한계에 의해 몰락하는 것뿐이다.그것은 기원 혹은 자신의 존재근거(집)를 스스로 거절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백민석은 이것을 “괴물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그러나 그렇다고 해서,‘숙명’이라는 말에 이미 전제된 것처럼,한창림 부부의 몰락은 단지 기성질서나 사회체계의 견고함을 인정하고 확인하는 충격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아니 좀더 일반론적으로 말해서,주인공의 몰락은 늘 체제에 대한 굴복을 뜻하고 마는가.우리는 그 반대의 사례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쥘리앙 쏘렐((적과 흑))의 몰락이 단지 타락한 욕망의 몰락일 뿐이며 이동혁((객지))의 실패가 영웅주의의 실패에 불과한 것처럼,한창림의 파멸은 가상의 식민지 위로 흘러넘친 그 무정부적 충동의 패배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다.(엽기전)에서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토대는,기억의 환원작용을 철저히 단속하면서 “훗날,그의 기억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끔”(234면) 집이라는 상징을 소각시켜 버린 데에 있다.그것은 다만 지하작업실의 끔찍한 린치와 패악들을 포장하는 초월적 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위-충동의 공간으로 전락한 집(獵奇傳)은 단순한 상징이기를 멈추고 마치 암세포나 포자식물들이 그렇듯 확산 증식한다.지하작업실에서 “섹스”와 “신체”가 “제물”(212면)이 된다는 진술은 그래서 설명 가능해진다.근대적 주체 재생산의 전제가 되는 남녀간의 성적 교환을 악마적 제의로 탕진하면서,출산과 배설의 이미지를 등치시켰기 때문이다.이 공간이 지닌 능력은 통상적 상상을 넘는 것이어서,거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에 필적한다.이 “지하작업실의 깜깜한 자궁”(91면)에서 길러져 나온 포자들이란 비정상적 과정을 통해 탄생한 비정상적 존재들이며 체계의 관리망 안에서 “도착적”으로 왜곡된 인공 “수컷성”의 담지자들이기도 하다.“학교 안의 새끼 수컷들”(69면)이나 “동물원의 독방에 갇힌 만드릴 육식원숭이”(175면),“정신병원의 조울증 환자들”(138면) 등은 바로 그 증식의 사례들이다.지하작업실의 포자들은 훈육시설 즉 사회체계의 관리 시스템에서 기생한다. 이것은 빅토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어두컴컴한 실험실이 괴물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자궁으로 기능한다는 지적(G 스피박)을 연상시킨다.그러나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년)이 여행(모험)의 구조를 통해 비정상적 존재(괴물)의 정신적 성숙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면,‘엽기전’에는 성숙 혹은 교양(Bildung)의 과정이 삭제되어 있다.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조화로운 가족서사에 대한 강렬한 향수(괴물은 빅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를 지닌 반면 후자는 가족서사 자체를 히스테리에 부쳐버린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이것은 전(傳)이라는 시간적 형식이 왜 엽기라는 그로테스크의 변종과 만나면서 공간화 되는지를 부연한다.가족은 주체의 인큐베이터이며 성숙이란 그 시간적 진화 과정이다.텍스트는 전통적인 소설의 중심축이라 할 성숙의 문제를 수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성의 장력으로부터 이탈하려 한다.이 텍스트가 읽기의 습속에 저항하는 것은,한편으로 비선형적이고 공간적인 그래서 공시적 사유방식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서사의 절연과 접합된 공시적 사유방식은 의미심장하다.근대적가족 이미지가 학교나 군대와 같은 훈육시설들의 이미지와 함께 자본주의에 의해 수행되는 상징조작의 일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이었다는 성찰과 맞닿으면서,90년대에 등장한 이른바 신세대 작가들은 가족의 문제를 자신들의 중심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집단적 주제로부터 ‘엽기전’은 그러나 조금 더 전진해있거나 약간 비켜 서 있다. 약간의 비약이 허락된다면,분단 이후의 한국소설사는 가족의 균열을 중요한 축으로 설정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이것은 주로 결손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는 아비부재에 집중되어 있었다.이것은 김소진에 이르기까지 승계되었다.이 전통은 근원적 실향의식과 친족관계를 형성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발산해왔다.그러나 90년대의 풍속 주체들은 그것을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이들의 공과를 떠나서라도,가장 급진적인 작가로는 배수아가 적임일 것이다.그는 동요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이미 파산선고를 내린 듯이,“어머니”를 새로운 해체대상으로 설정한다.그러므로 결손의 모티프를 구사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아비부재가 아니라 어미부재로 나타난다.그러나 “어머니,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어머니의 아이가 아니겠어요”(‘부주의한 사랑’)라고 외치는 배수아의 “아이들”마저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강렬한 향수야말로 이 도저한 거부의 진정한 추동력인 셈이다.‘엽기전’을 동시대의 유사한 징후들 속에서도 분별하게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텍스트는 가족서사의 부정적 연혁을 작성하면서도 기원에 대한 향수를 음각(陰刻)하고 마는 평균적 해체작업에 만족하지 못한다.그 거부의 의지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혹독한 양상을 띤다.텍스트는 가족서사에 대해 “너무나 흔해서 얘깃거리조차 안”(48면) 된다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이미 논의한 바와 같이 주인공들의 이러한 진술 자체가 텍스트의 궁극적 주제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다.이것은 잠정적으로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라 부를 만한,근대적 가족제도의 구체적 질곡을 겨냥하는 것으로 보인다.작가는 이것을 요약하기 위해 “수컷성”이라는 특유의 조어를 반복 사용하고 있다. 그 외피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적 환원이란 심층에서 남성적 지배질서를 지속시키려는 “사회체계”의 작동 방식을 함축한다.‘아버지와 아들의 경쟁’으로 상징되는 오이디푸스적 세계 안에서 성숙이란 결국 남성적 성숙에 다름 아니며,이는 근대적 가족 제도를 경쟁 이데올로기의 기초로 삼는 자본의 요구이자 동력이기도 하다.텍스트의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수컷성”이란 “영역싸움”“패권주의”“위계질서” 등으로 예시되는데 이것들은 경쟁 구조의 자기보존 양식을 말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이 질서에 붙들린 존재들은 어떠한 준거로도 윤리적 판단대상이 될 수 없다.이 세계에서는 선악의 이분 구도 따위가 처음부터 허락되지 않는다.충동적 가상들(수컷성)만이 거주하는 끔찍한 세계이기 때문이다.이는 전작(前作) ‘불쌍한 꼬마 한스’에서 오이디푸스적 성숙의 발생학을 탐사했던,백민석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꼬마한스는 프로이트의 주력 개념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전형적 사례이다.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에 대한 공포를 낳고,그것이 다시 말(言)에 대한 공포로 전이되어 꼬마 한스의 신경증을 구성한 것이다.백민석의 주인공들도 공포의 기척 앞에서 실어증을 경험하곤 한다. 한창림은 공포에 전율할 때마다 “누군가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박아넣은 것”같다고 느낀다.이 공포감은 “사회체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이는 백민석의 끈질긴 문제의식 중 하나인데,표현의 추상성을 넘어 은연중 역사적 환기력을 구체적으로 회복한 경우는 그에게 ‘엽기전’이 처음일 것이다.그는 ‘엽기전’의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이 소설을 구상한 건 이곳 안양 평촌으로 이사오고 나서,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그게 94년이니까 벌써,칠 년 전의 일이다.(…) ‘뭔가 된’ 것은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97년의 일이다.그저 엮어 놓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컸던 것이다. 97년은 국내 경제를 준 공황시대로 내몰았던 IMF 외환위기 사태 혹은 신자유주의의전경화가 본궤도에 오른 시점이다.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엽기전’은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가공할 위력에 대한 충격적 확인을 내면화한,우리들의 보고서다.한창림 부부와 그 혈육들이 하나같이 실업자이거나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뷰티풀 피플”의 남편이 파산한 사업가로 등장하는 것은 흥미로운 예증이 된다.“퐁텐블로”나 “과천”이 보여주는 위장된 혹은 상상적 안온함은 생산자본이 투기자본에 압도된 ‘거품경제’ 만큼이나 “텅 빈”,그리고 아슬아슬한 것이다.그가 작중현실로 설정하고 있는 하위문화적 충동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그것은 파국의 예감을 이기지 못한다.작품 구상 단계의 모호함이 명료한 의지를 얻게 된 것도,무정부적 충동의 발산에 기울어 있던 작품세계가 일정한 전환점을 획득한 것도 모두 동시대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엽기전’은 우리 시대의 집단신경증(부조리한 충동)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관철 혹은 “수컷성”의 일방통행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이는 백민석이 의도적으로 성숙의 문제를 삭제한 결과이다. 그런데 성숙의 문제를 괄호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가능한 일인가.하위문화적 충동의 무잡한 전경화 뒤에는 이런 의문들이 도사리고 있다.성숙은 블랙홀의 심처와 같이 끊임없는 소환의 인력을 발산한다.성숙의 저 끝 간 곳은 초월의 영역일 것이며 이것은 텍스트 내부에서 두 갈래의 길을 연다.하나는 수컷성의 최상층을 차지하는 “펫숍삼촌”을 제거함으로써 빅 브라더(‘1984’)에 필적하는 질서의 지배자 혹은 신적인 관람자(펫숍은 모든 것을 알고,또 본다)가 되는 길이며,다른 하나는 무정부적 충동을 끝까지 밀고나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편의상 앞의 것을 상승초월,뒤의 것을 하강초월이라고 이름 붙여 본다면,텍스트는 이 두 개의 극점을 지닌 일종의 타원 구조를 갖고 있다.텍스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두 개의 극점이 발산하는 인력 사이에서 진동하는 존재들이다.이는 일반적인 성숙의 서사와 그 음각인 ‘프랑켄슈타인’류의 ‘하위-충동’ 서사를 양 극점으로 삼는 구조이기도 하다.앞에서 벤야민의 카프카론을 예시했던것도 이 때문이다. 하위문화적 충동의 포자들은 소설적 기율(또는 성숙의 플롯)에 기생하면서 ‘엽기전’이라는 변종을 만들어낸다.이 변종의 변종성은 텍스트 내부의 공간 배치,확산에 의해 이루어지며 두 갈래로 나뉘어 각각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의 공간으로 작동한다.이들의 공동 거처는 “제2정부종합청사”“서울랜드”,“동물원”이 있는 공간 과천으로 설정되어 있다.이곳은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시로 뽑힌”(165면) 곳이며 그 이유는 “좋은 냄새가 나쁜 냄새들을 죄다 몰아”냈기 때문이다.이곳은 그러므로 엄연한 실재이기를 그치고 ‘헤이’의 “퐁텐블로”처럼 중간계급적 이상의 재현물로 전도된다.“냄새”나는 “적출물더미”들을 은폐하면서 보편적 행복을 가장하기 때문이다.여기서 “나쁜 냄새”란 “수컷성”의 기화작용 혹은 확산을 말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의 상징 조작이 최고의 효율성을 발휘할 때 “살기 좋은” 계획도시 과천의 지하에서는 배제의 프로그램이 가동 중이었던 것이다. 이 배제의 희생물이 되지 않으려면 초월적 수컷이 되는 수밖에 없다.실제로 “펫숍삼촌”의 수컷성은 배제 프로그램(사회체계)을 넘어서 있다.“세상의 눈은 그걸 볼 수가 없”(125면)는 상승초월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다.“어디에도 없으면서 어디에나 있는”(117면) “펫숍 공간”은 삼촌이라는 이름의 친숙성과 결탁하면서,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그에 반해 한창림의 엽기전 공간은 “뷰티풀 피플(사업실패로 와해된 가족 형상)”과 함께 프로그램의 희생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다.그들의 충동은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들은 그저 “쫓겨난 나쁜 냄새들의 익스트랙트”(166면)들이다.영역 싸움과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한 수컷들인 셈이다.‘엽기전’은 “흰 연기”(281면)로 표상되는 “펫숍삼촌”의 신적인 수컷성(상승초월)과 결국은 거름이 되고 말,야수의 수컷성(하강초월) 사이에서 전율하고 있는 텍스트다. 2-3.타원형 감옥에서 목화밭으로 ‘야수적 하강’과 ‘비교(秘敎)적 초월’의 두 갈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갖고 뻗어나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장소-표면에서다시 만나기도 한다.그것은 타원 구조의 양 극점이 자신의 몸을 뒤틀어 다시 만나는 뫼비우스의 띠이다.그 장소란 린치의 장소-표면이다.거기에서는 감시와 처벌,혹은 임의적인 폭력이 끊임없이 미끄러진다.등장인물들의 모든 탈출 기도가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텍스트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마치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반복재생되는 스크린처럼,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감옥이자 부서지지 않는 벽들이다. 작중 공간에서 가장 높은 위치인 펫숍공간은 가까이 다가가 “정체를 머릿속으로 짜맞춰보다가는,금세 덩치나 안전문이 떠올라 스스로 사고를 정지해버리”(123면)도록 만들면서 영역침범을 가로막는다.이것은 감시의 내면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태어나기 전의 공간”(122면)인 펫숍에 구체적 형상을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벽,“시멘트벽”이다.텍스트 내에서 하강의 경험적 한계인 한창림의 지하작업실 또한 피범벅의 벽들이다.거기서는 린치의 흔적이 끊임없이 번지고 미끄러지지만,벽면들에 안전하게 둘러싸인 채이다.그러므로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은 주인공들의 폭력적 도주를 이끄는 강한 유혹이자 인력의 중심이면서,동시에 막혀 있는 어떤 것이다.“사회체계”의 어두운 핵심으로 직핍하는 길은 아무 데도 없다.저항도 발악도 체계의 허가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뿐이다.이 출구 없음은 그들이 중심 혹은 주체가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 즉 “사회체계”로부터 호출받은 타자들이기 때문이다.그들은 한갓 게임속의 평면 캐릭터에 불과한 자신의 실존을 증언한다. 그도 아내도 이 사회에서,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존재들이었다.(…)괴물스러운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든,바깥에 존재(타자성-필자)하는 한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물은 장난감 수준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잠들어 있던 괴물을 억지로 깨워 불러들여 놓곤,재미로 쫓아다니며 괴롭히고,종국엔 괴물이 왔던 곳,사회 체계의 바깥으로 다시 쫓아보내는 악취미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이다.(261면) 그들이 줄곧 “내면 없는” 존재로 진술되는 이유가 그것이다.그들은 오직 표면만을 가질 뿐이며 마치 “뷰티풀 피플” 공간에 진열된 “웃는 플라스틱”(인형)들처럼 속이 텅 빈 존재들이다.신체상해 혹은 “린치”는 텍스트의 시작점에서 끝점까지 수도 없이 자행된다.“텅 빈 목소리” 혹은 “사색하지 않는”과 같은 수사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린치 장면들.‘엽기전’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 내면이란 기껏해야 히스테리나 조울증·분노 등으로 표면화된다.신체는 하나의 표면이고 그 내부는 또 다른 해부학적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참혹한 인식이 텍스트를 무심히 곁눈질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이 피비린내 나는 일상 어디에도 사색이란 물건은 없다.”(134면) 이것은 상승초월과 하강초월이 막힘 혹은 “육중한 안전문”,“지표면”과 같은 일종의 벽면(표면)으로 제시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이것들은 끊임없는 표면들의 연속체로 구성되어 있다.“펫숍의 공간 구조는 자연스레,네 번째 공간,다섯 번째 공간,여섯 번째(…)갈수록 안전문은 육중해지고 접근 불가능해”(123면)지는 것이며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바닥없는 심연으로 사라지는” 것이다.그것은 그들이 스크린의 격자에 갇힌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견고한 감옥의 구조 안에서,한창림은 윤수영을 린치하고,펫숍삼촌은 한창림을 공포로 길들인다.여기서 초월의 전망은 ‘성숙한 깨달음’을 통해 생성되는 것도 아니고,절망적 추락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차라리 두 극단의 장력이 이루어내는 벡터 운동의 산물이다.실제의 공간 과천을 주무대로 배치하면서 실제의 실제성을 마음껏 왜곡하고 있는 ‘엽기전’은 표층 차원의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현실주의의 산물이 된다.여기서의 현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벡터운동이라고 했듯 생성과정 중인 어떤 것이다.그것은 근대적 가족이념의 이데올로기적 침윤 혹은 수컷성의 영역 분쟁으로 요약할 만한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작동방식을 기괴하게 드러낸다.“현실을 직시하는 날엉덩이의 미학”은 여기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텍스트는 현실을 괄호안에 묶는 팬터지도 아니고 은연중에 독단적 현실을 들이대고 마는 낡은사실주의도 아니다.텍스트는 생성과정 중인 현실 자체이며 끊임없이 포자 증식하는 전경화된 공간 표면들의 연쇄이다.이것이야말로 비가역적 동시성의 산물이다.이 찢어지지 않을 것 같은 혹은 “육중한 안전문” 같은 표면들은 박태자가 늘상 바라보는 “텔레비전 화면”이기도 하다.이 표면들의 연쇄는 단지 화소조합에 불과했던 한창림이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들면서 파국을 맞이한다.이때 자신의 근원적 종속성을 지각한,이 불길한 주연배우의 두 눈 앞에 “목화밭”이 출현한다.“목화밭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3부 제목) 한창림은 파국의 절정을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마치 우연인 듯,이 거대한 감옥의 바깥을 본다.그것은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표면들의 완고함 앞에서,마치 자유의 계시인 것처럼 나타난다.그것은 언어적 해석의 대상이 아니다.너무나 낯설어서 오히려 공포감을 일으키는 어떤 것이다.텍스트는 그것을 “목화밭”이라고 부르지만,이미 통상적 기호로는 지시할 수 없는 대상이다.마치 최초의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떼듯,“목화밭”이라고 우연히 발음된 것뿐이다.그것은 숭고(崇高)한 대상이다.체계에 붙들린 어떤 의미도 허락하지 않은 채 그저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거기 목화밭이 있었다.(…) 그는 알 수 없었다.어째서 여기가 목화밭인가? 씨는 아직 뿌리지도 않았는데,언제부터 목화밭인가? 그는 볼 수도 없었다.둔덕 전체에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있었다.(…) 그는 목화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다.그는 삽을 놓고,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린 다음 울기 시작했다.누군가 그의 입 속에 비닐 빵봉지를 쑤셔넣은 것 같았다.커다란 쇠뭉치를 그의 입에 처넣은 것 같았다.(280면) 파멸의 순간에 우발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던져진 ‘그것’은 그러나 ‘엽기전’을 허무주의로부터 구원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운반해간다.이것은 획기적이다.백민석은 언어적으로 지시하지 않는다.다만 하나의 자족적인 사물을 생성시키고자 한다.그는 텍스트 위에 어쩌면 자기 자신과도 전혀 무관한 자유를 창조하려한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어느 누구의 승리도 견인하지 않는다.우리는 모두 참패한 것이다.작가도 독자도 또 그 사이의 주인공들도 이 무시무시한 자유의 숭고한 출현을 그저 흔적의 형태로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그것은 “모자이크” 너머의 현실,진정한 현실이다.“목화밭”이라는 우발적이고도 가난한 기호가 ‘진짜 현실’의 숭고한 출현을 계시하고 있다.존재의 근본적 종속성을 깨닫는 순간 “아주 작은 한 구멍”으로 그것도 “모자이크”에 가려진 채로 그것은 나타났다.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타난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처럼 자신의 가난함을 최대치로 드러내면서,이 타원형 감옥의 외부로부터 자유의 기억이 도래하는 것이다.그것은 “자유라는 이름의 형벌”(사르트르)일지도 모르지만,그 형벌은 해방의 약속과 함께 하는 형벌이다. 3.어쩌면 위험하기도 한 미래 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과 스크린 속의 괴물들은 서로를 되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엽기전’은 결국 한창림의 실패담이 우리 자신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어쩌면 우리들 관객조차도 스크린의 표면에 붙들린 디지털 화소조합에 불과할지도 모른다.“인간은 누구도 예외없이,아직 자기 자신이 되지 못했다”는 아도르노의 말처럼,우리는 하나이면서도 여럿인,전지구적 자본주의·수컷성의 경쟁 이념·패악의 은폐전략인 가족로망스·안전처리된 저항의 초월적 가상들에 중독된 채로,우리 자신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다.이 중독성은 그 바깥을 사유하지 못한다.‘엽기전’은 바로 이 가상의 세계에서 가상을 껴안으며,동시에 가상의 근본적 존재구속성을 뛰어넘으려는,우리들 모험의 기록이다.동시대의 소비적 재현들이 보여주는 무분별한 질주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청신하게 환기시키는 것,이 거대한 감옥에 길들지 않은 ‘고통스러운 자유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것은 ‘엽기전’이 ‘재현의 재현’을 전략적 준거로 삼으면서 얻어진 결론이며,어떠한 질서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간고한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목화밭 엽기전’이 도달한 자유의 가능성은 매우 아슬아슬한 역학 장(場) 속에 놓여 있다.그는 알레고리적 재현 전략이 갖고 있는 근본적 허무감과 형이상학적 환원주의를 힘들게 벗어나면서,90년대의 평균서사를 딛고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 중 하나를 열었다.그러나 또 다른의 수준의 위험 앞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해체와 전도의 전략은 얼마든지 동어반복에 떨어질 수 있다.이제는 자신의 전제들조차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그가 출발한 전제들에 동의하지 않은 채로는 텍스트를 거의 읽을 수 없을 만큼 부자유스럽다.특히 그의 유난한 반인간주의가 그렇다.그가 그려내는 인간의 모습은 모두 알 수 없는 장력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들이다.이것은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소급시키는,전형적인 구조주의식 사유법이다.반인간주의야말로 진정한 인간주의의 전제조건일 테지만,그것은 주장되고 선언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그것은 반인간주의가 지니는 미학주의적 성격 때문이다.계몽이성을 독단으로 몰아붙이면서,그 자리에 광기와 착란을 대신 들어앉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물론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숨쉬고 있는 n개의 가능성들을 하나하나 살려내는 가운데,그것은 소멸해갈 것이다.미래를준비할 시간은 아직 필요하지 않은가. 지면 관계상 당선자의 양해 아래 원고 일부를 줄였습니다. ■당선 소감 먼저 심사를 맡아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그 분들은 내게 조그마한 오솔길 하나를 터 주셨다.다만 성실한 보행객이 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당선 소식을 접했을 때 당황했다.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세상을 보는 눈과 귀는 여태 어둡고 그것과 반드시 겹쳐져 있을 문학도,몸과 마음에서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그러나 이왕 엎질러진 물이니 헐거운 공부와 삶을 조금씩이라도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그것이 이 무책임을 모면하는 유일한 길이겠다. 이런 자리에서 문학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일은 내 깜냥도 깜냥이려니와 풋내기로서 주제넘은 짓이다.그러나 한 시대와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역동적 협업으로서의 ‘문학’이라는,큰 그림 하나는 잊지 않으려고 한다.이 협동작업의 작은 일원으로 미력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내게는 스승 아닌 분이 없다.은사님들은 물론이고 선후배 친구들,가족들까지도 모두 스승이었다.나는 그저 한 장의 백지가 된 것처럼 그들의 말없는 가르침에 어두운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다.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이 나를 이리로 오게 했다.그래서 오늘의 이 고마운 자리는 영광이 아니라 갚지 못할 부채다.이 또한 잊지 않으려고 한다. 우선 고생하시는 부모님과 하나뿐인 내 여동생 경희에게 공을 돌린다.모자란 글줄이나마 더듬더듬 쓰는 법을 가르쳐준 인하대 국문과의 선생님들,선후배 동료 분들께는 소주라도 한 잔 올려야 할 것이다.학부 시절을 내내 함께 했던 청하 동인들에게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아득하다.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마음 뉠 곳을 마련해준 나의 든든한 후원자 금희에게는 사랑과 고마움을 함께 전해야 하리라. 약력 1975년 대구 출생.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 ■심사평 강정구씨의 ‘세상을 떠도는 목어들’은 차창룡의 시 세계를 풍자의 범주 안에 넣고 차창룡만의 특별한 풍자의 양식을 찾아내려고 애를 쓴 글이다.텍스트의 고유한 경험을 최대한 되살리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평론의 길이라면 강정구씨는 평론의 ABC를 안다고 할 수 있다.다만 문학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언어의 경험이지 주제의 그것이 아니다.주제를 가지고 경험의 세계를 휘젓다 보니 글이 겅중거리고 성길 수밖에 없다.김용하씨의 ‘비윤리적 세계의 재현과 윤리적 풍경의 기원’은 시적 직관을 통해 순간적으로 구현되는 창조적 공간으로서 시를 이해하고 그 창조적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화의 경험을 읽겠다는 의욕이 두드러진 글이다.그러나 하나의 형식에 끈덕지게 매달렸다는 것이 개성의 표지가 될 수도 있지만,글을 도식적으로 만드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이원동씨의 ‘떠도는 가족,주변부 삶을 보듬는 결곡한 서사’는 공선옥의 소설을 길동무처럼 따라 읽으면서 공선옥 소설의 존재의의를 설득력있게 부각시킨 글이다.그럼으로써 이 글은 독자에게는 개안을,작가에게는 위안을,그리고 글쓴 이 자신에게는 텍스트와 더불어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텍스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큰 미덕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글이다. 강경석씨의 ‘타원형 감옥의 외부’는 백민석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와 미학적 경험 사이의 상관관계를 폭넓게 조망한 글이다.생의 적출물의 의미,폭력적 충동의 존재 형식,고딕의 정치적 무의식,가족 이념의 내파,세계의 남성적 지배와 타원형 감옥 구조,디지털 화소조합으로서의 삶의 경험 등등 현대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망라하는 한편 문학의 글쓰기가 그 주제들과 동일체를 이루면서 또한 해체·변형을 행하는 가운데 도출되는 미학적 경험의 굴곡을 잘 보여주고 있다.당선을 축하하며 정진을 바란다. 김인환 정과리
  • [서울광장] 북한, 인도적 재앙만은 막자

    어제 아침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유엔 북한인도주의 조정관 마수드 하이더의 글은 그동안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지해온 많은 이들을 당혹케 했다.우리정부는 DJ정부 5년 동안 대북 햇볕정책을 펴왔고 햇볕정책의 계승자를 자임한 참여정부 역시 지난 1년 동안 대북화해협력정책을 펴왔다.그런데 전해지는 소식이 “북한 어린이 10명중 4명이 영양실조로 발육장애를 겪고 있고 식량부족량이 100만t에 이른다.”는 참혹한 생활상이라니. 지난 9년 동안 북한에서 지원활동을 계속해왔다는 그의 전언은 묵시록의 한 구절처럼 말세의 어두운 기운을 전하고 있다.300만명의 어린이들이 영양부족에다 깨끗한 식수,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북한에서 활동하던 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해 말 300만명에 달하는 취약계층 어린이들을 먹이기 위해 부득이 나이 든 주민 270만명에 대한 식량지원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다. 그는 북한핵 문제가 악화되면서 지난해 말부터 국제사회의 지원이 지지부진해졌다고 했다.한국을 포함한국제사회가 제발 정치와 연계시키지 말고 인도주의 지원을 늘려달라고 그는 호소했다.굳이 그의 글이 아니더라도 북한의 어려운 사정은 WFP,유엔아동기금(UNICEF)등 북한내에서 활동해온 여러 구호단체들에 의해 지난 연말 여러차례 외부세계로 전해졌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지난 5년간 국제사회에서 북한땅으로 보내진 식량지원만 800만t이다.그런데 아직도 100만t의 식량이 부족하다면 언제까지 이런 식의 지원이 계속돼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나온다.우리가 지난 한해 보낸 쌀만 모두 40만t.비료가 30만t 갔고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한 말라리아 방역지원,UNICEF를 통한 옥수수가 10만t 보내졌다.모두 1600억원의 예산이 쓰여졌고 금년에도 같은 액수의 예산이 책정됐다. 국내여론으로 볼 때 핵문제 해결 없이 더 이상 지원액을 늘리기는 어렵다.더구나 북한은 우리가 요구해온 금강산 면회소 건설,이산가족 상봉 확대,개성공단 건설,금강산 관광 활성화 등을 여러 파급효과를 우려해 머뭇거리고 있다.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북한지원을 핵문제해결의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미국은 2차 6자회담 개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지난 연말 WFP를 통한 6만t의 대북식량지원 방침을 밝혔다.앞서 지원한 4만t을 합쳐 모두 10만t이 지원되는 셈이다.북한의 식량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북한을 6자회담장으로 이끌어내려는 유인책임을 북한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1980년대말 동유럽에서 자고나면 체제가 무너지는 대변혁이 몰아치고 소연방마저 해체된 뒤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중 하나는 ‘북한은 언제일까’라는 것이었다.많은 서방학자들이 내놓은 답은 북한이 2년,길어야 5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김정일체제는 계속된 경제난 속에서도 여전히 완고하게 버티고 있다. 5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의 근거는 인류역사상 주민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정권이 살아남은 적이 없었다는 소위 ‘역사의 논리’였다.그 생존기간이 이미 10년을 넘어섰다.하지만 과연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구호단체들의 지원호소는 이 체제가 더 이상 외부지원으로 버텨나가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는 경고처럼 들린다. 오늘부터 미국 민간단체들의 방문이 예고돼 있다.북한당국이 이번 방문을 부디 제2의 핵보유선언 등 또다른 벼랑끝전략을 쓰는 기회로 삼지 말기를 바란다.그럴 경우 정말 구호단체들이 우려하는 인도주의적 재앙이 북한땅을 휩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