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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농구] 농구코트 ‘도하 한파’

    `도하발 한파´가 프로농구 코트에 몰아친다. 새달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농구대표팀에 차출된 프로선수 8명이 6일부터 합숙에 들어감에 따라 삼성, 전자랜드 등 일부 구단이 된서리를 맞게 된 것. 팀의 기둥 서장훈(207㎝)과 간판슈터 이규섭(197㎝)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삼성은 직격탄을 맞게 됐다. 팀득점(평균 81.7점)의 32%인 26.2점을 합작하고 8.9리바운드를 낚아내는 이들의 공백으로 삼성은 전력의 3분의1을 떼어놓고 15경기 안팎을 치러야 한다. 설상가상 올루미데 오예데지(201.8㎝)가 발목을 다쳐 안준호 감독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당초 서장훈과 이규섭이 떠나기 전 최소 5승을 건진다는 계산이었지만 6일 현재 3승4패.‘도하 혹한기’를 어떻게 버티느냐에 따라 플레이오프 진출이 갈릴 전망이다. 안준호 감독은 “위기의식이 높지만 식스맨급 선수들에겐 되레 기회”라면서 선수들의 의욕에 기대를 건다. KT&G와 LG를 연파하고 겨우 자신감을 되찾은 전자랜드는 해결사 김성철(195㎝)의 공백이 뼈아프다. 성공률 60%에 달하는 고감도 3점포를 앞세워 평균 17.4점을 몰아친 김성철이 빠진 동안 3할 승률만 거둬도 성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희암 감독은 “외곽슛은 (조)우현이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2·3쿼터 파워포워드 역할은 (김)택훈이와 (석)명준이가 힘을 내야 한다.”면서도 답답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동부와 모비스, 오리온스도 탄탄한 ‘잇몸’의 활약에 기대를 건다. 아시안게임 동안 4할 승률만 유지하면 상위권 수성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 센터 김주성(205㎝)이 빠진 동부와 포인트가드 양동근이 차출된 모비스는 포스트플레이와 게임 리딩에도 일가견이 있는 만능용병 앨버트 화이트(동부)와 크리스 윌리엄스(모비스)가 있어 전력 공백을 최소화할 전망이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무농약·청정 신토불이만 팝니다”

    “무농약·청정 신토불이만 팝니다”

    “무농약·청정 신토불이 농산물만 판매합니다.” 전국 27개 하나로클럽과 하나로마트를 운영하는 이승우(56) 농협유통 사장은 “농산물은 안전과 신선도가 보장돼야 한다.”며 “하나로 매장에서 파는 과일·채소는 농약 잔류검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하나로클럽·마트가 농산물 판매 1위 매장으로 성장 가능했던 비결은 농민 사랑과 소비자 보호였다.”고 말했다. ●농약 잔류 검사…안심 먹을거리 공급 이 사장에게는 안전성과 품질과 관련한 몇 가지 철칙이 있다. 일반 식품 유통점과 달리 하나로 매장의 과일·채소·육류는 100% 신토불이 제품만 반입한다. 생선류도 대부분 국산이지만 국내에서 잡히지 않는 것만 원산지 표시로 판매한다. 이 사장은 “소비자들이 하나로 매장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우리 농산물을 살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나로 매장이야말로 우리 농산물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자랑한다. 이 사장이 내세우는 또 다른 자랑거리는 안전성이다.“과일과 채소는 70가지 살충제·살균제 성분이 남아있는지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샘플 조사가 아닌 전수 조사를 실시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하나로 매장에서 실시하는 하루 평균 농약잔류 검사만 2600건에 이른다. 잔류 검사에서 불합격 제품을 출하한 생산자는 1개월 동안 하나로 매장에 얼씬도 못하게 한다. 두 번째 걸리면 3개월, 세 번째는 영구 출하중지 조치를 내린다. 이 사장은 “생산자에게 가혹한 조치 같지만 소비자의 안전 먹을거리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속 출하제로 품질확보, 유통 단계 줄여 값싼 제품 공급 최고 품질의 농산물만 내놓는다. 전국 1300여개 회원이 생산한 물건만 공급받아 1차로 단위농협에서 안전성과 품질을 따진 뒤 엄선된 제품만 판매한다. 당도 높고 신선한 농산물이 아니면 하나로 판매대에 올라갈 수 없다. 이 사장은 “전속출하제도를 고집하는 것도 생산자들의 품질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다.”라고 설명했다. 축산물은 DNA 검사를 거쳐 순수 국산 한우만 판다. 생산 이력제를 도입, 소비자가 상품의 출생·사육·유통 과정 등 상품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했고, 이를 농협이 보증한다. 하나로클럽 양재점은 햇셉(HACCP·식품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인증을 얻었고 전국 매장으로 이를 확산하는 중이다. 문제는 가격 경쟁력. 엄선된 제품만 고집해 일반 유통 시스템으로는 가격을 맞출 수 없다. 일반 농수산물 유통매장은 5∼6단계의 유통 경로를 거치지만 하나로 매장의 농산물 유통은 생산자-종합유통센터-소비자에 이르는 3단계다. 신선도가 높은 제품을 식탁에 올릴 수 있는 것도 유통 단계를 줄인 덕분이다. 이 사장은 “많은 소비자에게 우리 농산물을 많이 보급하기 위해 도심 속 매장을 확대하고 e쇼핑과 학교급식사업을 확충하는 한편, 무농약 농산물 식당을 직영으로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유통은 농협이 출자한 농산물 유통 회사로 하나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해 1조 7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지난 2월 사장에 취임한 이 사장은 35년 동안 농협에 근무한 농협맨. 주로 농협 공판장과 유통센터를 두루 거쳤다. 업계에서는 농산물 유통 전문가로 꼽힌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케리 실언에 물만난 부시

    이라크 참전 군인을 비하하는 듯한 존 케리(민주당·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의 한 마디가 미국 중간선거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공화당은 케리의 실언(?)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안고 대공세에 나섰고 민주당 역시 백악관에 역공으로 맞섰다. 케리 의원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지원유세를 하다 대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숙제도 잘 하고 똑똑해지려고 노력해라. 안 그러면 이라크에 처박혀서 고생한다(get stuck in Iraq).”고 우스개로 말했다. 공화당측은 즉각 발언을 문제 삼았다.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은 “이라크에서 전쟁을 수행 중인 14만 장병들을 모독한 것”이라며 사과를 요구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 31일 조지아주 유세 중에 “우리 군인들은 대단히 똑똑하고 애국자이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복무하고 있다.”면서 “(이라크 미군이) 제대로 배우지 못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은 모욕이고 부끄러운 일로 케리 의원은 사과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파문이 커지자 케리 의원은 시애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농담이 서툴렀다.”고 일단 실수를 인정했다.하지만 자신의 발언은 부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그는 “백악관과 공화당측이 발언의 진의를 알면서 이를 왜곡해 이라크 정책 실패를 호도하려 한다.”면서 “우리 병사들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미국을 전쟁으로 잘못 이끈 부시와 체니”라고 반격했다. 민주당측도 ‘심각한’ 사태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평소 케리 의원과 절친한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까지 케리에 등을 돌리는 등 민주당에는 분명 의도하지 않은 ‘악재’임에 틀림없다. 압승을 꿈꾸던 민주당의 한 고위인사는 당혹한 나머지 “이미 그 사람 때문에 한 차례 선거에 졌는데 제발 선거 끝날 때까지는 입을 다물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AP통신은 케리와 부시의 설전이 2004년 대통령 선거전 이후 가장 격렬하게 붙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케리 의원은 2008년 대선에 재기를 노리는 상황인데 먹구름이 하나 더 끼게 됐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맛깔 나는 브랜드 쌀 반질반질해야 제격

    맛깔 나는 브랜드 쌀 반질반질해야 제격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쌀 독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있다. 그만큼 쌀은 우리와 뗄 수 없는 ‘먹을거리’이다. 민족혼이 담겼다. 올 햅쌀이 요즘 식탁에 오르면서 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올해 처음 ‘밥쌀용’ 수입쌀이 들어왔다. 중국쌀과 미국쌀도 뒤주를 채워간다. 최근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찬반 논쟁도 따지고 보면 먹거리 문제이다. 값싼 수입쌀이 식탁을 차지하면 이 땅에서 논밭이 사라질 공산이 커지게 된다. 이럴 경우 수입쌀이 다시 우리의 지갑을 털어갈 수도 있다. 식량안보 우려 때문에 우리쌀을 지키려는 농민과 농협,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이 다양해지고 있다. 쌀의 이름을 짓는 브랜드화가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다. 브랜드는 우리 쌀의 우수성을 알리고, 친근함을 더해준다. 기능성과 친환경성을 내세운 쌀도 많다. 온갖 재미난 이름들이 쌀 포대에 인쇄됐다. # 개성 넘치는 브랜드 쌀 올해 농림부 후원으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우수한 브랜드쌀 12개를 뽑았다.‘한눈에 반한 쌀’,‘상주풍년일품쌀 골드’,‘김포금쌀’,‘에머니티 서천쌀 미감쾌청’,‘드림생미’,‘안성맞춤 Head Rice’,‘청원생명쌀’…. 밥맛과 외관 등을 종합 평가했다고 한다. 향수를 불러으키는 쌀 브랜드로는 ‘왕건이 탐낸쌀’,‘산청 메뚜기쌀’,‘임금님표 이천쌀’,‘철원 오대쌀’,‘생거 진천쌀’,‘황금빛 노을쌀’,‘지평선쌀’,‘대숲 맑은쌀’…. 브랜드만 들어도 정겹다. 기능성을 강조한 쌀도 있다.‘백암 게르마늄쌀’은 아미노산과 무기질이 많이 들어있다는 점을 강조한다.‘한눈에 반한쌀’은 키토산에 목초액 농법을 재배했다. 현미 찹쌀에 동충하초 균사체를 과학적으로 배양한 ‘동충하초쌀’, 비타민A 성분인 베타카로틴을 코팅한 ‘칼슘·철분강화쌀’…. 소비자들의 손길을 유혹한다. 이름만 들어선 쌀인지 헷갈리는 브랜드도 많다.‘상상예찬’,‘자연담은’,‘황토랑’,‘백구옛바다이야기’,‘땅끝애’,‘프리미엄 호평!’,‘우렁각시’,‘사계절이 사는집’…. 기발한 브랜드 작명에 개성이 넘친다. 쌀인 것을 알고는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 브랜드보다는 품질을 이런 브랜드 쌀이 무려 19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농협의 집계다. 브랜드 범람이 달갑잖다. 비슷비슷해 헷갈리는 브랜드도 많다. 우리쌀의 경쟁력 강화는 이름짓기 차원 이상이다. 일부 몰지각한 상혼도 판치고 있다. 우리 쌀에 값싼 수입쌀을 섞어 파는 악덕업자도 있다. 원산지를 위조하기도 한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품질을 인증한 브랜드 쌀은 불과 250여개에 불과하다. 때문에 쌀을 살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수입쌀 유통 과정의 투명화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유통이력제와 체계적인 단속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쌀은 품종과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20㎏들이 한 포대가 3만 9500원인 것도 있고,5㎏짜리가 2만 2000원인 것도 있다. 보통 ‘추청’과 ‘일미’ 품종이 인기가 높다. 이 품종들은 벼를 백미로 도정했을 때 투명도가 높다. 겉모양도 예쁘다. 밥을 지으면 윤기와 찰기가 있다. # 광택이 나는 쌀이 좋아 좋은 쌀은 쌀알이 통통하고 반질반질한 광택이 난다. 손에 가루가 묻지 않는 쌀이 좋다. 부서진 낟알이 있거나 쌀 표면에 잔금이 많은 쌀은 피하는 게 낫다. 밥을 지을 때 쌀의 부서진 면에서 전분과 냄새가 흘러나와 질척해져 밥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밥알 모양도 쉽게 흐트러진다. 쌀은 도정한 지 보름 이내에 밥을 지어 먹어야 가장 맛이 좋다. 매일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면 즉석에서 도정한 쌀을 조금씩 구입하면 된다. 즉석 도정 쌀은 손님이 원하는 대로 도정해준다. 쌀의 껍데기층인 미강층을 20%가량 깎은 7분도는 현미식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권할만하다. 쌀을 오래 저장하면 쌀의 수분이 떨어진다. 그래서 밥맛도 떨어진다. 쌀을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게 좋다. 햇볕에 많이 노출되면 쌀이 바짝 마른다. 금이 가 변질되기도 한다. 브랜드쌀 전성시대, 재미난 이름 만큼이나 밥맛이 좋은 쌀이 많기를 기대해본다.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씨줄날줄] 엘니뇨 경제

    기후가 역사를 바꿔 놓았다면 믿을 수 있을까.‘엘니뇨-역사와 기후의 충돌’의 저자인 로스쿠퍼 존스턴은 중국 명나라의 멸망은 1641년에 발생한 엘니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당시 명나라에는 엘니뇨에 의한 혹독한 가뭄으로 굶어 죽는 백성이 속출하는 바람에 몰락의 단초가 됐다는 것이다. 이어 들어선 청나라의 멸망도 1878년에 발생한 엘니뇨가 대기근을 몰고 온 게 결정타였다고 한다.1812년과 1941년에 각각 러시아 원정에 나섰던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폭설과 혹한에 갇혀 참패한 원인도 결국 엘니뇨 탓이란다. 엘니뇨는 전 대륙에서 혁명·대이주·식량부족 등의 원인을 제공해 역사의 줄기를 바꿔놓았다는 존스턴의 주장은 그럴듯하며 상당한 근거도 있다. 엘니뇨는 동태평양 페루 인근지역에서 주로 시작되며 바닷물의 온도가 0.5도 이상 높은 상태로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계절의 변화를 방해하고 생태계를 파괴한다.1973년에 발생한 엘니뇨는 세계 1위이던 페루의 수산업을 몰락시키고 이 나라 경제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페루 연안에서 많이 잡히는 안초비(멸치류의 작은 물고기)는 가축의 사료용이었는데, 이게 떼죽음을 당하자 미국의 축산 농가들이 콩을 대체사료로 대거 사들이는 바람에 한국도 한바탕 콩값 파동을 겪었을 정도였다. 역사를 바꿀 만큼 무서운 엘니뇨가 올 연말과 내년 초 사이에 또 발생할 것이란 예보다. 그래서 나라마다 기상이변에 따른 재해는 물론이고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곡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어서 벌써 투기자금은 국제곡물시장에 몰려들고, 밀과 옥수수 값이 폭등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 곡물 수입의존도(73%)가 높은 우리나라는 불황에다 물가까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올까봐 걱정이다.1998년과 2003년에도 엘니뇨 때문에 경제가 고전한 터라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엘니뇨가 있었던 1998년에 GNP 9조달러의 11%인 1조달러가 날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는 산업의 70%가 날씨 영향권에 있다는데, 변변한 엘니뇨 전문연구기관 하나 없으니 올해도 꼼짝없이 당해야 할 신세다.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하재봉의 영화읽기] 호텔 르완다

    [하재봉의 영화읽기] 호텔 르완다

    북아일랜드 폭탄 테러 사건으로 체포된 평범한 아일랜드 청년의 무죄를 증명하는 과정을 그린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테리 조지였다. 그는 북아일랜드에서 체포되어 런던에서 재판을 받았던 청년의 실제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완벽하게 자료 수집한 후, 실화에 바탕을 둔 뛰어난 극영화를 만들었다. <호텔 르완다>는 1994년 르완다 전역에서 벌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종족 분쟁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외형적으로도 잘 구분이 안 가는 후투족과 투치족은 르완다가 20세기 초 벨기에 식민지로 있을 때부터 갈등관계를 빚어 왔다. 벨기에는 르완다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후투족과 투치족을 구별하는 부족 신원카드를 만들었고, 소수의 투치족을 서구식 교육으로 훈련시켰다. 1960년대 초 벨기에가 철수하고 식민지는 르완다와 부룬디로 분리된다. 르완다는 후투족이 통치하고 부룬디는 투치족이 다스리지만, 르완다에도 수많은 투치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투치족은 르완다애국전선을 만들어서 후투족의 살육으로부터 투치족을 보호하려고 했다. 2500명의 유엔 군대가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을 막기 위해 르완다에 배치되었지만 유엔평화유지군은 그들의 행동을 감독만 할 수 있었다. 1994년 4월 6일, 후투족 과격주의자들은 평화협정을 맺은 르완다와 부룬디의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공격해서 모두 살해하고 르완다에 있던 투치족 고위 인사와 중도파 후투족들을 살해한다. 그로부터 약 백일 동안 백만여 명에 가까운 르완다인이 살해되었다. 이 끔찍한 종족 분쟁은, 함께 살아온 타종족을 증오해서 그 종족의 씨를 말리기 위해 어린이와 부녀자를 표적으로 참혹한 살해가 전개되었다. 하지만 서방 각국은 애써 이 학살을 외면하려고 했다. 영화 <호텔 르완다>는 인류 사상 가장 잔혹한 학살이 벌어졌던 바로 그때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동은, 실화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는 생생한 소재 발굴과 디테일한 묘사로 사건 현장의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데서 비롯된다.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있는 벨기에 기업 소유의 특급호텔 ‘밀 콜린스’의 지배인인 폴(돈 치들 분)을 중심으로 백만 여 명이 학살된 비극적 현장의 참혹함을 긴장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밀 콜린스 호텔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머물고 있고 유엔군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지대로 생각되자 과격 후투족의 학살을 피해 많은 투치족 피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지배인 폴은 후투족이지만 부인은 투치족이었다. 폴은 후투족의 학살로부터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후투족 장군에게 지속적으로 뇌물을 주고, 또 그 동안 밀 콜린스 호텔을 방문했던 해외의 저명 인사들에게 수없이 전화를 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르완다 사태에 대한 국제적 여론을 환기시킨다. 밀 콜린스 호텔에는 무려 1268명의 투치족 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한 방에 수십 명이 머물고 복도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후투족 과격파의 살해 위협에 떨고 있었다. 평범한 호텔 지배인 폴이 처음부터 영웅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존엄성,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고 있는 보통의 시민이었다. 하지만 끔찍한 대량학살로부터 자기 가족을 지키려는 그의 노력은 점차 이웃들로 손을 뻗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그를 믿고 밀 콜린스 호텔로 모여든 1268명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마치 아프리카판 <쉰들러 리스트>를 보는 것 같은 폴의 용기 있는 행동은 <호텔 르완다>가 발생하는 감동의 원천이다. 이야기의 긴박감으로부터 우리는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폴이 지키려고 노력하는 가장 소중한 인간의 생명, 존엄성, 가족의 가치 등이 우리에게 깊은 공감대를 주기 때문이다. <호텔 르완다>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내전을 본격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킬링 필드>같은 학살 장면의 직접적 노출은 최소화해서 표현되고 있다. 이야기는 철저하게 호텔 지배인 폴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영웅이 되어 가는 그의 모습은 우리를 깊게 감동시킨다. 그가 자기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굳게 지키려고 노력했던 그 가치가 우리 삶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기 때문이다. 테리 조지 감독의 의도대로 관객들은 <호텔 르완다>를 보고 난 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이처럼 생명의 소중함을 짓밟고 인간적인 권리를 말살하는 비인간적, 비윤리적 학살이 쉴새없이 자행되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안락하고 소중한 삶만을 생각한 채 그런 비극적 현장으로부터 자신을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폴 역의 돈 치들은, 주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아카데미 수상작 <트래픽>(2000년)에서 스티븐 소더버그와 처음 만난 후 계속해서 <오션스 일레븐>부터 <오션스 투엘브>를 거쳐 <오션스 써틴>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흑인 중에서도 석탄처럼 검은 가장 새까만 피부를 갖고 있는 그는, <애프터 선셋>(2004년)과 <대통령을 죽여라>(2004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크래쉬>(2004년) 등에서 조연급으로 활약한 바 있다. 타렌티노의 <재키 브라운>의 원작 소설을 쓰기도 했던 엘모어 레오너드의 소설을 각색해서 영화로 만든 <티쇼밍고 블루스>로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그 외에도 르완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올리버 대령 역으로 출연한 닉 놀테는 로버트 드니로와 공연한 <케이프 피어>(1991년)에서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바 있지만, <호텔 르완다>에서는 평화 유지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되어 가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호텔 밀 콜린스의 소유주인 벨기에 기업 회장으로 출연한 장 르노, 르완다의 종군 기자로 등장하는 <글래디에이터>의 로마 폭군 호아킨 피닉스 등은 각각 자신의 존재감만으로도 영화를 꽉 채워주는 좋은 배우들이다. 테리 조지 감독은 돈 치들이 맡은 호텔 지배인 폴을 중심으로 균형감각 있게 인물을 배치하고 사건을 끌고 가면서 르완다 학살의 야만적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외형적으로는 르완다 사태의 핵심에서 비켜서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디테일한 세부 묘사와 살아 있는 캐릭터 확립으로, 종족 분쟁의 비극적 모습을 훨씬 더 리얼하게 그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월간 <삶과꿈> 2006.10 구독문의:02-319-3791
  • [서울광장] 세금 때문에 늘그막 이혼이라… /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세금 때문에 늘그막 이혼이라… /육철수 논설위원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본다. 세금이 아무리 무겁다고 해서 백년해로해야 할 부부가 늘그막에 갈라서기도 불사한다니 못 말리는 세상이다. 물론 돈 많은 부유층 일각에서 벌어지는 몰지각한 행태다. 땀흘려 번 돈은 아닐 테고 대개 불로소득이나 투기소득일 텐데, 세금 내기 싫어 가짜로 이혼까지 한다면 정상적인 사람들은 분명 아닐 것이다. 재산과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국가에 더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 돈 빼돌릴 궁리만 하고 있으니 그들의 머리엔 대체 뭐가 들었을까 궁금하다. 얼마전 서울가정법원은 26년 이상 한 이불을 덮고 잔 부부의 ‘황혼이혼’이 결혼 3년 이하의 ‘신혼이혼’보다 더 많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그땐 그저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하고 무심코 넘겼다. 그만큼 같이 살았으면 서로 지겹기도 하고, 부부간 애정이나 정력도 예전만 못할 테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까딱 잘못하면 그런 처지가 될지 몰라 나름대로 몸과 마음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런데 정력과 애정 문제가 아니라 세금 때문에 이혼하는 부부가 꽤 있다는 게 신문에 나고, 주변에 실제로 그런 인물이 있는 걸 보고는 무척 놀랐다. 수억대의 세금을 피하려고 재산 좀 있다는 사람들의 위장이혼이 요즘엔 더 눈에 띈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세무사와 은행 재테크상담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위장이혼을 해서라도 세금만은 못 내겠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게 사실이었다. 하기야 1가구2주택 소유자의 경우 내년부터 양도소득세가 양도차익의 50%로 중과되고, 종합부동산세가 크게 늘어나니까 납세 당사자들로서는 답답하고 시간이 촉박하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해괴한 세금회피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9억원대 주택 두 채를 가진 부부가 집 하나를 팔면 양도세를 3억원쯤 내야 하는 경우를 보자. 같이 살면 3억원을 고스란히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이혼하면 세금이 5000만원으로 확 줄어든다. 이혼과 동시에 세대분리가 되고, 한 채씩 나눠 가지면 1가구1주택 비과세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가구별로 합산 과세하는 종합부동산세도 적잖이 낮출 수 있다. 돈에 욕심이 있고 양심에 털이 난 사람이라면 딱 좋은 유혹 아닌가. 더구나 부부가 서류상으로 이혼하고 한 집에서 같이 살다가 국세청에 들킨다 해도 “마음이 바뀌어 다시 합치려고 한다.”고 우기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야말로 합법적인 ‘완전탈세’가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나라의 주택관련 세금이 과연 온 국민에게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소리를 들을 만큼 혹독한지 따져봐야겠다. 국내에는 총 1800만 가구가 있는데 이 가운데 1가구2주택 이상은 5% 정도다. 올해 종합부동산세 대상도 전체 가구의 1.2%인 21만 가구 남짓이고, 이 중 99%가 서울·수도권에 몰려 있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 과세대상인 것이다. 집 평수가 크든 작든 2주택 이상을 서울 강남에 갖고 있다면 웬만큼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마 소득계층으로 상위 2∼3% 안에 거뜬히 들 것이다. 강남은 최근 5∼6년 사이에 집값이 두세 배 뛰었다. 그 불로소득에서 절반이 세금이라고 해서 이혼이나 가족해체를 무릅쓸 만큼 가혹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이혼도 ‘세(稅)테크’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 그건 골병이 들어가는 사회다. 이러다간 “세금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란 신판 결혼 주례사가 조만간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새영화] ‘잔혹한 출근’

    주식투자로 가진 돈을 몽땅 다 털린 실직 가장. 이 모든 사실을 가족들에게 감쪽같이 속여온 남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채 이자를 갚기 위해 급기야 여고생을 유괴한다. 유괴범 딱지를 붙인 것보다 기가 막힌 건 오히려 그 다음이다. 여고생의 몸값을 받아내기도 전에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딸이 유괴된다. 새달 2일 개봉하는 ‘잔혹한 출근’(제작 게이트픽쳐스)의 이야기 얼개는 이의를 달지 못하게 기발하다. 유괴범이 자신의 딸을 유괴당해 벌이는 해프닝이라면 드라마 전복의 묘미만도 기준치 이상은 녹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충무로가 인정한 애드리브 스타 김수로가 주연했다면 기대치는 더 솟을 수밖에. 그러나 영화는 기대감의 수위를 ‘대략난감’으로 꺾어내린다. 유괴 소재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영화는 김수로에게 끊임없이 코미디를 요구하는 반면, 정작 그는 희극배우의 전력을 털어버리려 안간힘을 쓰는 듯한 불균형이 내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배우와 영화의 목적의식이 엇박자를 타는 어정쩡한 코믹 서스펜스물로 주저앉고 말았다. 사채 이자에 허덕이는 동변상련으로 가까워진 두 남자 동철(김수로)과 만호(이선균)가 어린 여자아이를 유괴했으나 아이의 부모가 협박전화를 받지 않는 바람에 첫 작전은 실패한다. 다시 여고생(고은아)을 납치했지만, 난데없이 동철의 딸이 유괴당해 일이 엉뚱하게 꼬여간다. 이중유괴라는 희소성 높은 소재를 내세운 영화는 스릴러물 치고는 비교적 단순한 인물구도를 택했다. 경찰에 쫓기는 두 남자, 이들을 뒤쫓는 사채업자(김병옥), 뒤늦게 진한 부성애를 드러내는 유괴된 여고생의 부자 아빠(오광록)가 그들. 실업문제가 빚은 사회적 부조리를 에둘러 고발하려는 여유는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다. 하지만 ‘김수로 표 코미디’에 연연하는 전반부와 유괴범과 경찰, 사채업자의 쫓고 쫓기는 과정에 집중한 후반부는 따로국밥이다. 코미디와 스릴러가 유기적으로 고리를 엮지 못하는 요령부득의 한계를 빤히 드러낸다. 기자시사회 무대인사에서 김수로는 “내가 추구한 코미디”라고 자신있게 영화를 소개했다. 주특기인 애드리브를 최대한 차분히 구사하며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긴 했다. 그러나 그가 추구했다는 코미디의 정체는 영화 속에서 끝내 오리무중이다. 김태윤 감독의 장편 데뷔작.15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염주영 칼럼] 부동산정책 실패에서 배울 점

    [염주영 칼럼] 부동산정책 실패에서 배울 점

    음식점 주방에서 요리사가 요리를 해 손님 상에 올렸다. 그것을 먹은 손님들은 음식이 너무 싱겁다고 했다. 간을 맞추려면 간장을 더 뿌려야 한다. 그런데 간장 대신 설탕을 뿌리고 간이 맞을 것이라고 우겨대는 요리사가 있다면 그 얘기를 계속 들어줘야 하는가.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딱 그 격이다. 정부는 집값 폭등을 저지하기 위해 힘겨운 전쟁을 펼쳐왔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세금을 주무기로 사용했다. 부동산 부자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물려 항복을 받아낼 계획이었다. 세금을 중과하면 부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소유한 부동산을 헐값에 내다 팔 것으로 생각했다. 종합부동산세라는 첨단 신무기도 개발했다. 이런 세금 신무기로 중무장한 ‘8·31대책’을 발표하고 총력전에 들어갔다. 매스컴 등을 통해 “세금 앞에 장사 없다. 세금으로 때려 잡자.”고 외치면서 시장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러고는 “이제 부동산 투기는 끝났습니다.”라고 단언했다. 마치 간장 대신 설탕을 뿌리고 간이 맞을 것이라고 우기는 요리사처럼.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 정부의 예상은 또 빗나갔다. 서울과 수도권 곳곳에서 집값이 다시 폭등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다급해졌다. 주무부처인 건교부의 추병직 장관은 “지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가 장담했던 세금 신무기는 힘을 쓰지 못했다. 세금 맹신이 또 한번의 정책 실패를 자초하고 있다. ‘집값 상승→세금 중과→집값 더욱 상승‘의 악순환은 집 없는 계층과 집 가진 계층간의 부의 격차를 회복불능의 상태로 벌려 놓았다. 집 없는 사람들이 참여정부의 피해계층이 됐고, 집 가진 사람들은 수혜계층이 됐다. 한마디로 못사는 사람들을 더 못살게 만들었다. 분배와 균형을 국정운영의 철학으로 삼고 출범한 참여정부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어디서부터 비틀린 것일까.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는 일부 정책결정자들의 세금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전임 한덕수 경제팀은 금융과 세금, 그리고 공급 확대라는 세가지의 선택가능한 정책수단을 갖고 있었다. 이 가운데 세금을 동원했다. 세금과 집값 상승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막연히 ‘세금 앞에 장사 없다. 세금으로 때려 잡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값을 잡는 데는 금융긴축과 공급 확대가 유효한 정책수단이다. 세금을 정책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간을 맞추기 위해 간장 대신 설탕을 넣은 요리사와 다를 바 없다. 부동산 부자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물리는 것은 경제정의 구현에 부합한다. 그러나 경제정의를 구현하는 것과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전혀 별개의 정책목표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관련 세금, 그 중에서도 특히 보유세 부담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근로소득자들이 땀흘려 버는 돈의 수십곱절을 가만히 앉아서 벌어들이는 불로소득 계층은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 논리가 성립하는 것은 여기까지다. 경제정의 구현 의지에 충만한 나머지 부동산 세금을 올리면 부동산 가격도 안정된다고 주장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세금을 올리는 데도 값이 떨어지는 상품이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공급자 우위인 주택시장에서는 오히려 값이 오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에서는 집값과 세금 사이에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실증분석 결과도 있다.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이슬람 문명과 도시] (21) 우리와 닮은 친근감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는 어딜 가나 길이 있다. 하얀 포플러 줄기가 끝없이 가로수가 되어 길을 잇고 길을 만든다. 실크로드의 길이다. 그리고 길에는 사람이 있고 양떼가 가끔씩 길을 메운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를 떠나 대상들이 지쳐버릴 때쯤 나타나는 오아시스의 도시가 비슈케크다. 중앙아시아의 지붕인 천산산맥을 따라 펼쳐지는 풍요와 설렘의 길이다. 3개월은 족히 걸렸을 실크로드 길을, 비행기로 5시간 반 만에 비슈케크에 도착한 것은 가을이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소비에트 시절 뚫어 넓은 길에는 마로니에 낙엽이 나부끼고 하얀 수염을 바람에 흩날리는 노인과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 인상은 우리와 매우 닮았다는 친근감이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 이웃의 다른 투르크계 사람들보다도 훨씬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었다. 해맑은 웃음을 싱긋 건네는 아이들의 웃음은 석류보다도 눈부시고, 포도만큼이나 싱그럽다. 다음날 날이 밝자 무작정 시내로 걸어나왔다. 소비에트 시절의 계획도시답게 인적도 드문 길은 사통팔달 시원하게 뚫려 있다.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시내 중심가 관공서 건물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단층으로 된 초라한 벽돌집이다. 키르기스스탄이 오랜 소련연방 통치를 벗어나 독립한 것은 1991년. 그렇지만 공산당 출신의 아스카르 아카예브가 초대 대통령이 되어 독재권력을 유지한 결과, 지난해에는 민중혁명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서방화를 꾀하며 3000명가량의 미군주둔을 허용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꿔보지만, 이웃 강국인 우즈베키스탄의 위협과 자원의 제한으로 삶의 질은 쉽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흉노 역사를 밝힌 노인 울라가 발굴한 유물 처음 찾아보는 이 나라의 역사와 과거를 더듬어 보기 위해 습관처럼 역사박물관부터 들렀다. 시내 한복판 대통령궁 옆의 역사 박물관에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직원들 몇 사람만 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소비에트 시절의 홍보 전시관 같은 2층을 지나 3층에는 키르기스의 역사시대 유물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3층 난간에는 투르크 시대 석상들을 초원에서 옮겨 놓았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을 연상시키듯이 7∼8세기 무덤을 지키던 수호신상들이다. 원래 유목전사들은 죽으면 화장을 했다는데,10세기 이후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매장관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석상들의 오른손은 물그릇을 들고, 왼손은 칼을 들고 있다. 물을 마시면서 칼을 잡던 돌궐시대 유목전사들의 맹약의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놀랍게도 흉노역사를 세상에 알린 노인 울라의 발굴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1924년 러시아 지리학회 소속의 코즐로프 탐험대가 212개의 고분을 발굴하게 되는데, 그 중 상당수가 기원 전후 흉노귀족의 것으로 판명되었다. 아직도 색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2000년 전 인류최초의 카펫을 바라보는 감동은 표현할 길이 없다. 그밖에도 각종 금속제품과 펠트 위에 아플리게 기법으로 장식한 수공예품 등을 보며 책에서만 읽었던 흉노의 역사적 실체를 확인하는 기쁨을 혼자서 만끽했다. 키르기스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의 현장을 호흡하기 위해 대시장인 오쉬 바자르로 달려갔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찾아 온 상인들이 눌러 앉아 장사를 해 오던 곳이다. 빼곡히 들어선 가게 사이 길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길을 걷는다기보다는 인파에 떠밀려가는 느낌이다. 인구 100만의 키르기스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 같다. 좁은 골목 길마다 각기 다른 물품들이 줄을 잇고, 거대한 삶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오쉬 바자르에서 만난 고려인 아주머니 없는 것이 없단다. 코너를 돌 때마다 과일, 공산품, 토산품, 수입 잡화, 음식점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하게 생긴 전통 모자다. 염소 털로 곱게 짜서 금실로 수를 놓은 칼팍이라는 모자는 키르기스 남성들의 명예와 존재의 상징이다. 처음 뜨거운 목욕탕에서 머리의 열기를 보호하기 위해 썼다는 칼팍이 이제는 모든 공식행사나 축제 때 빠질 수 없는 전통 모자가 됐다. 식품코너에서는 어김없이 하얀 김치가 등장하고, 고려인 아주머니가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손님을 맞이한다.“안녕하세요.”란 말에 대뜸 “코리아에서 왔수까?”라는 질문과 함께 표정이 달라진다. 먼 길을 찾아온 서울 한국 손님에게 좌판 한 구석을 가리키며 앉아서 김치국시 한 그릇 말고 가란다. 이곳에도 1만 8000명가량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1937년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에서 시작된 스탈린에 의한 한국인 강제이주의 한과 핏줄에의 강한 집착은 이처럼 중앙아시아 전역에 슬픈 역사를 남긴 채 이어지고 있었다. 양고기 꼬치구이인 샤슬릭 두 줄에 모처럼 고향의 맛이 담긴 국시 한 그릇을 비우고 40숨을 주었다. 그래야 우리 돈 1000원 남짓한 값이다. ●아타 베이릭 학살 현장에서 서서…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천산산맥 줄기를 따라 북쪽으로 달렸다. 비슈케크에 온 김에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바깥 세상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아타 베이릭 학살기념관이다.1938년 11월15일,138명의 키르기스 지식인들이 스탈린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한 채 매장된 엄청난 사건의 현장이다. 당시 공산정권에 협조를 거부한 작가와 교수, 민족지도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비밀리에 체포되어 갖은 고문 끝에 모두 처형당하게 된다.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서 행해진 세기의 학살은 우연히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한 농부의 몫으로 남는다. 농부는 임종을 앞두고 가슴에만 품고 있던 그 비밀을 18살의 딸에게 전하고, 조국이 독립을 쟁취하는 날 이 사실을 알리라는 유언을 남긴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자주독립을 선포한 후, 이미 70대의 노파가 된 딸이 이 사실을 공표함으로써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릴 뻔했던 잔혹한 역사가 빛을 본 것이다. 홀로 묵념하고 서서 조용히 감회에 젖어 있는데, 백발이 성성한 관리인 할아버지가 희생자 중에는 한국인 2∼3명이 들어있다며 자료를 들쳐주었다. 윤상신·강태주 같은 이름이 분명하다. 연해주에서 겨나 낯선 땅에서 정치적 희생이 되어 한 많은 생을 마감했을 원통함과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며 그들의 영혼에 한 줌 간절한 위안을 실어 보낸다. 길거리에서 만난 비슈케크 시민들은 반갑게 눈웃음을 보낸다. 남자들은 칼팍 모자를 쓰고 여성들은 면화로 된 편안한 점박이 치마를 입었다. 놀랍게도 이곳 주민들의 거의 8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고 있음에도 차도르를 쓴 여성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이슬람 국가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 모스크도 찾을 길 없었다.120년 가까운 소비에트의 점령 하에서 전통적인 삶의 방식은 변질을 강요당했고, 이슬람 문화는 철저하게 말살되었다. 금요일 주일 예배가 열리는 날, 비슈케크에서 몇 안되는 모스크를 힘들게 찾아보았다. 오후 1시쯤 예배하러 몰려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젊은 남성들이었다. 독립한 지 이제 겨우 15년. 조금씩 잃어버린 종교와 전통을 찾아가는 비슈케크 시민들의 발길에서 희망을 읽었다.
  • [19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25분) 한글과 중국어로 쓰여 있는 옌볜 시내의 상점 간판. 조선족 자치주 운영 규정에 따른 것이다. 시민이나 관광객들은 많은 한글 간판에 놀라고 읽을 수만 있고 뜻을 몰라 또다시 놀란다. 맞춤법이 틀린 한글을 사용하고 중국어를 잘못 번역해 왜곡된 경우도 많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신장의 기운을 보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흑미의 효능 등 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전체 인구의 90%가 경험한다는 두통. 그 중에서도 가장 골칫거리는 메스꺼움과 구토까지 동반하며 반복적으로 재발하는 편두통. 편두통의 원인과 증상은 물론 생활 속 예방법과 치료법을 알아본다.   ●무적의 낙하산요원(SBS 오후 9시55분) 순진은 강이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걱정한다. 선은 형 걱정은 하지 않고 LK연구소로 가게 되었다고 자랑한다. 강은 출근하던 주연을 만나 자신의 휴대전화에 기록된 파일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정보국으로 찾아간 순진과 대치는 아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수길에게 거세게 항의한다.   ●레인보우 로망스(MBC 오후 6시50분) 기범은 마지막으로 은아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은아를 자상하게 챙겨주는 것은 물론 멋진 이벤트까지 준비하는데….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명훈. 그런데 치킨집 사장의 딸 박슬기라는 아이가 명훈에게 한눈에 반한다. 슬기는 명훈에게 자신에게 오면 돈과 명예를 주겠다며 유혹한다.   ●해피투게더(KBS2 오후 11시5분) 외모는 훤칠한 장군감. 그러나 하는 짓은 반 내 최고의 까불이, 박상민. 박상민에게 할 말 많고 추억 많은 초등학교 친구들이 출연하여 따뜻하고 즐거운 만남을 가진다. 여자들과는 달리 유독 남자들에게 사납게 굴었던 안선영. 개그우먼에서 연기자로 거듭난 안선영과 부산 친구들의 반가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KBS1 오전 10시) 잠을 잘 못 자고 일어나거나 고개를 잘못 돌렸을 때 몸을 꼼짝 못하고, 특정 부분의 근육을 건드리면 극심한 통증이 생겨 고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같은 근육통이나 감각 이상과 관련한 것을 흔히 담이라고 표현한다. 담이 생기는 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예방법 등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알아본다.
  •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김인식-선동열 사제충돌

    스승과 제자가 적으로 만났다. 오는 21일부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전4선승제)에서 맞붙는 한화 김인식(59) 감독과 삼성 선동열(43) 감독은 20년 전 스승과 제자로 인연을 맺었다. 김 감독은 1986년부터 4년 동안 해태(KIA 전신) 투수코치로 일했고, 이 기간 동안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을 만들었다. 이들이 이룬 막강 마운드를 바탕으로 해태는 당시 한국시리즈 4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1990년 김 감독이 신생팀 쌍방울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별을 하게 됐다. 당시 신참이던 선동열은 김 감독으로부터 투수의 모든 것을 전수받은 셈이다. 때문에 두 감독은 각별한 사이일 수밖에 없다. 이들의 ‘찰떡 호흡’은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다시 빛을 발휘했다. 김 감독이 사령탑으로, 선 감독이 투수코치로 참가해 ‘난공불락’의 마운드를 운용하면서 한국의 4강 진출을 일궈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를 잊어야 한다. 아름다운 추억을 뒤로하고 냉혹한 승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선 감독은 한국시리즈 2연패를, 김 감독은 팀의 7년만의 정상 탈환을 위해 결코 양보 없는 혈전을 준비 중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만큼 힘든 승부가 예상된다. 특히 두 감독 모두 투수 출신으로 마운드 싸움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지키는 야구’를 표방한 선 감독은 하리칼라-브라운-배영수 등 선발진과 권오준-오승환으로 이어지는 막강 계투진으로 나선다. ‘믿음의 야구’를 내세운 김 감독은 상황에 따라 문동환을 중간계투로 투입하는 변칙작전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뒤에는 구대성이라는 든든한 마무리가 버티고 있다. 선 감독으로서는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현대든 한화든 누구라도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내심 많은 고민을 했다. 현대에는 정규리그에서 8승10패로 열세를 보였고, 한화에는 11승7패로 우위를 지켰지만 상대 사령탑이 김 감독인 만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삼성과 한화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트시즌에서는 3차례 만났다.199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이 한화의 전신인 빙그레를 2연승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1988년과 1991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빙그레가 삼성을 3전 전승으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었다. 물론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당시 두산 감독이었던 김 감독에게 패해 정상 문턱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삼성으로선 김 감독을 상대로 한 설욕전인 셈이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연가/염주영 논설실장

    남이섬 메타세쿼이아 길은 연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키가 60∼70m나 되는 키다리 나무들이 길을 따라 열병식을 하고 있다. 무성한 잎으로 하늘을 가린 나무숲 터널이 연인들을 유혹한다. 그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오라고. 인기 드라마 ‘겨울연가’의 두 주인공 배용준과 최지우가 거닐던 바로 그 길이다. TV화면에서 그 장면을 본 이후로 나는 다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그 길을 걸어봐야지. 그러나 마음뿐 아직 가보지도 못했다. 그러던 차에 지난 추석 연휴에 전남 담양에서 똑같은 길을 보았다. 광주에서 29번 국도를 따라 담양읍내로 들어서자 한눈에 보였다. 원래는 담양에서 순창 경계 부근까지 메타세쿼이아 길이 이어져 있었는데 도로확장공사로 군데군데 끊어져 지금은 그 일부만 남아 있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차에서 내렸다. 따사로운 가을햇살과 산들바람이 일렁이는 나무숲 터널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마음속으론 ‘가을연가’를 연상하며. 메타세쿼이아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염주영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Book Review] ‘히말라야 주역’으로 우뚝서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아래 타메라는 마을에 사는 셰르파 네 사람은 모두 합쳐 스물아홉번이나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라크파 리타는 다섯 번, 그의 동생 카미 리타는 네 번 올랐으며, 사십대 초반인 아파와 앙 리타는 각각 열 차례나 등정했다. 만일 이들이 미국에 살았다면 나이키와 펩시의 홍보 대가로 수백만달러를 벌고,‘뉴스위크’,‘피플’ 등 유명잡지의 표지모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지 맬러리, 에드먼드 힐러리 등 히말라야 거봉을 오른 유명 서구 등반가들과 달리 이들 셰르파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셰르파, 희말라야의 전설’(조너선 닐 지음, 서영철 옮김, 지호 펴냄)은 그동안 히밀라야 등반의 이름없는 조연으로만 인식됐던 셰르파들을 당당한 주역으로 복권시킨 책이다. 셰르파는 500여년 전 티베트에서 살다가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로 넘어오면서 집단을 이룬 부족의 이름이다. 뿌리 없는 이방인이었던 그들은 당시 최하층 계급으로 편입되어 짐꾼이나 인력거꾼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들이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은 100여년 전부터다. 히말라야의 존재가 서구에 알려진뒤 백인 등반가들이 몰려들면서 등산에 필요한 짐을 운반하기 위해 이들을 고용했던 것. 셰르파들은 백인 등반가들을 위해 식량과 의복, 텐트, 산소통, 연료, 의약품 등 한 사람당 적게는 20㎏, 많게는 50㎏에 달하는 짐을 지고 산을 올랐다. 등반가들은 이들이 운반한 고기, 치즈 등을 실컷 먹으며 두꺼운 방한복을 입었지만, 셰르파들은 빵과 얇은 옷에 만족해야 했다. 악천후에 짐을 나르다 목숨을 잃는 일도 잦았다. 1977년 대폭풍이 불어 네팔 전역에서 트레킹여행자 일행이 눈속에 갇혔을 때 많은 외국인들은 헬리콥터로 구조되었지만, 이들의 짐을 날랐던 셰르파들은 그대로 남겨졌다. 아무도 그들의 구출비용을 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중 여럿이 사망했다. 히말라야 남체 근처 루크라 뒤쪽 고개에서 혹한에 포터 한 사람이 사망했는데 그의 등짐에는 트레킹 여행자들을 위한 야영 침낭과 오리털 재킷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가 이 짐을 운반하는 대가로 받은 돈은 하루 3달러였다. 책은 이같은 혹독한 상황에서 셰르파들이 일구어낸 성취를 세밀하게 그려낸다.1939년 K2에서 셰르파가 정상 공격조 일원이 된 일, 하산 과정에서 미국 등반가가 혼자 고립됐을 때 모든 백인 등반가들이 포기했음에도 셰르파들만이 그를 구하러 올라간 일,1954년 톈징 노르가이라는 셰르파가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하는 과정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은이는 이 책을 위해 수개월간 셰르파 마을에 거주하며 셰르파 말을 배우고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익혔다고 한다. 또 실제 역사적인 등반에 동반했던 노인들과 그들의 가족을 여러차례 인터뷰했다. 많은 변화와 개선이 있었지만 상당수 산악인들은 여전히 셰르파를 자신들의 편의에 의해 고용한 ‘짐꾼’이나 ‘하인’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그런 편견과 몰이해를 넘어 셰르파의 진정한 삶과 역사를 알리기 위한 저자의 애정 어린 기록으로 읽혀지는 책이다.1만 8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7)진짜 살인미소는 ‘방울이’ 나라고~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7)진짜 살인미소는 ‘방울이’ 나라고~

    “욘사마 비켜. 김재원 너도 저리 가. 진짜 살인미소는 바로 나라고” 서울대공원 동물원 해양관에는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돌고래 못지 않게 인기를 끌고 있는 바다사자가 한 마리 있다. 주인공은 올해로 열 일곱 살이 된 캘리포니아 바다사자 ‘방울이’. 익살스러운 눈빛으로 관람객들을 모두 쓰러지게 만드는 ‘미소 천사’다.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방울이는 공연용 바다사자로 거듭나기 위해 멀리 제주도까지 갔었다. 하지만 냉혹한 프로들의 세계에서 실력이 부족한 방울이가 설 틈은 없었다. 결국 팀에서 퇴출된 방울이는 지난 2002년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방울이의 삶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바다사자는 원래 수컷 한 마리가 모든 암컷을 거느리는데, 방울이가 오기 전 이미 무리를 장악하고 있는 다른 수컷이 있어 방울이는 발붙일 곳이 없었던 것이다. 너무 심심해서였을까, 사육사들은 어느날 방울이가 혼자 ‘표정연기’를 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혀를 내밀면서 씩 웃는 모습을 처음에는 신기하게 생각했던 사육사들은 이 표정을 연습시켜 방울이를 작은 무대에 세우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미소를 지을 때마다 먹이를 주고, 수염을 들어 올려 입꼬리가 올라가게 하면서 2달 동안 맹훈련을 한 끝에 방울이는 지난해 5월 드디어 미소 공연을 시작하게 됐다. 방울이는 눈을 감고 웃거나 혀를 내밀고 웃는 등 다양한 표정 연기와 뜀뛰기, 인사하기 등 왕년의 실력까지 함께 뽐내며 동물원 최고 인기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하루에 두번씩 무대에 올라 미소를 선사하고 관람객들과 사진도 찍는다. 한번에 세 팀씩 사진을 찍으니 지금까지 방울이와 함께 한 관람객만 수천명이 되는 셈이다. 오랜 무명의 설움을 딛고 화려하게 데뷔한 방울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방울이는 오늘도 웃는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가을의 초대 축제속으로

    가을의 초대 축제속으로

    지금 전국 곳곳은 푸짐한 축제의 열기에 휩싸여 있다. 주제도 다양하다. 남도의 음식부터 국화, 갈대, 쌀 등 가을에 어울리는 이벤트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왕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런 축제가 열리는 곳은 어떨까.10월의 축제는 단순히 눈뿐만 아니라 입, 코 등 온몸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자 떠나자.10월의 축제 속으로.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산해진미가 다 모였어요 우리 음식의 고향 ‘남도’는 풍성함과 맛깔스러움의 대명사. 수십 가지의 젓갈과 바다, 육지, 하늘에서 나는 갖가지 음식으로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온다. 허리띠 한 칸 정도는 늘어날 각오를 하고 찾아보자.‘맛을 찾아 떠나는 가을여행’이란 주제로 제13회 남도음식문화 큰잔치가 오는 18일부터 26일까지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 열린다. 전남 22개 시·군의 유명한 음식점과 음식들이 총집합해 남도 음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맛보기는 물론 판매도 한다. 또한 매일 가족단위로 ‘돌산갓김치담그기’,‘열전 달리는 음식 5종’,‘남도 음식 기네스 대회’,‘우리 가족 요리’ 등 다양한 참여 행사가 열려 남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시간도 있다. 이밖에 한국의 대표적인 추수감사제인 ‘상달제’가 흥겨움을 더한다. 대취타대와 전통 복장의 행렬들이 신나는 음악과 함께 행진하는 모습에 어깨가 절로 들썩이며, 열기구 탑승·탈 만들기·마당극·민속공연 등 음악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남도 여행에는 커다란 밀폐용기를 하나 가지고 가기를 권한다. 수십가지의 밑반찬을 남기는 것보다 ‘환경적’으로도 좋고 하루만 지나도 머릿속에 가득한 남도 음식의 여운을 남게 해준다.(061)286-5242,www.namdofood.or.kr # 노란 바다 속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국화 축제인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가 오는 27일부터 11월5일까지 경남 마산 돝섬에서 열린다. ‘아니 마산에서 무슨 국화 축제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마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화 재배를 시작한 지역이며 90년에 이미 전국 국화 생산량의 60%를 넘는 최대 산지이다. 전국 각지에 국화를 생산하는 농가가 많아졌지만 그 품질에 있어서는 역시 으뜸을 자랑한다. 기후가 온난하며 안개가 적고 일조량이 풍부한 마산의 기후가 색깔이 선명하고 꽃송이가 풍성한 국화를 키워내는 최적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지역 국화에 비해 꽃꽂이 했을 때 수명이 길어 더욱 인기다. 이처럼 국화 재배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마산의 돝섬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에서 마산의 파란 바다와 국화의 노란 바다를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다. 봄부터 자식처럼 가꾼 2만점의 국화 작품과 모두 200여종의 품종에 50만본 이상의 오색 국화들이 기다린다. 또 국화를 이용한 베개 만들기, 소망 등달기, 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와 국악공연, 시낭송회, 발레공연 등 볼거리가 축제를 수놓는다.(055)240-2271,www.gagopa.org # 청자의 본고장을 찾아서 ‘남도 답사의 일번지’ 전남 강진에서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 강진청자문화제가 열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도자기 만들기 체험’에서 비색청자의 신비감을 학술적으로 토론하고 접하는 청자 심포지엄까지 80가지가 넘는 행사가 연일 열린다. 특히 아이들이 진흙을 뭉쳐서 밥그릇이나 예쁜 꽃병을 만들어 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체험형 축제의 대표격이다. 또한 문양 넣기, 청자 모자이크 만들기, 상설물레체험 등 신비한 청자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또한 맛과 역사의 고장인 강진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얼이 느껴지는 다산초당, 백련사,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 등 돌아볼 곳이 많으며 전국에서 유명한 강진 한정식, 돼지불고기백반 등 맛난 먹을거리가 즐비해 1박2일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꼭 권하고 싶은 축제이다.(061)430-3228,www.gangjinfes.or.kr # 엄마, 로봇들이 악기를 연주해요 절도 있는 움직임과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군무, 악기연주에 어린아이들은 ‘로봇’이 연상되나 보다. 화려한 제복,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가을을 즐기고 싶다면 오는 16일까지 강원도 원주에서 열리는 군악축제인 원주따뚜를 권하고 싶다. 단순히 듣는 음악에서 보고 즐기는 음악 축제인 원주따뚜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뉴질랜드·러시아·프랑스 등 9개 나라 군악대가 깊어가는 가을의 추억을 선사한다. 또한 폐품으로 만든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는 ‘폐품악기 체험’,‘댄스경연대회’, 문희준, 김범수 등 연예병사들의 참여행사가 열린다.(033)741-2183,www.wonjutattoo.com # 이런 축제도 있어요 전남 순천만에서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 순천만 갈대축제가 열린다.800만평의 갯벌과 70만평이 갈대밭이 어우러진 순천만의 가을을 느껴보자. 유람선을 타고 순천만을 돌아봐도 좋고, 갈대밭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좋다. 어린이 뮤직컬, 갈대작은음악회 등도 열린다.(061)749-4293,www.reedsfestival.co.kr ‘이천쌀로 지은 세계최고의 밥맛’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는 놀이마당’,‘이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전통농경문화’라는 주제로 이천쌀문화축제가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다. 특히 농업인과 예술인, 전문놀이꾼들이 참여하는 풍년마당, 문화마당, 놀이마당, 햅쌀마당, 주막거리, 햅쌀장터, 난전 등이 가을의 풍성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031)644-2607,www.ricefestival.or.kr ‘감의 천국’ 경북 청도에서 청도반시축제가 오는 21∼22일 이틀동안 열린다. 감따먹기 체험을 비롯해 달콤하고 사각사각한 맛이 일품인 아이스홍시, 감와인 시음도 빼놓을 수 없는 흥밋거리. 이외에도 감식초, 감카스텔라, 감말랭이, 감잎차 등 감으로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가 풍부하다.(054)370-6376.
  • [北 핵실험 파장] 김정일 “고생끝에 낙을 보게 되었소”

    북한은 핵실험이라는 `깜짝 쇼´를 벌인 뒤 하루 만인 10일 노동당 창건 61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북한 관영 매체들은 핵실험 관련 보도를 일절 중단한 채 당 창건 관련 프로그램만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핵 실험 당일인 9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실험 성공´을 첫 보도한 이후 9일 밤까지 라디오와 TV 방송 뉴스시간마다 이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10일 당 창건일을 맞아 눈에 띄는 것은 북한의 언론 매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당 수뇌부 사수와 단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신문과 방송에서 김 위원장과 노동당의 영도를 찬양하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을 뿐이다. 핵실험 강행 이후 북-미 대결 구도가 한층 심화되고 있는 국제 정세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이날 인터넷판을 통해 “동무들, 이제는 고생 끝에 낙을 보게 되었소. 우리에게 여명이 밝아오고 있단 말이요.”라는 김 위원장의 9월8일 발언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한달 전에 이미 핵실험을 예고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뉘앙스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당 창건일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내부 행사들이 돌연 자취를 감춘 것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박길연 대사는 자국의 핵실험을 찬양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우리의 핵실험 성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유엔 안보리는 사악하고 쓸모없고 가혹한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보다 북한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을 축하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유엔 안보리가 추진하는 대북 제재를 비난했다.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北선박 검문·전면적 금융제재 추진

    北선박 검문·전면적 금융제재 추진

    |워싱턴 이도운·도쿄 이춘규·베이징 이지운특파원|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9일(미국시간) 북한의 핵 실험과 관련, 대북 제재 결의안을 금명간 채택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미국과 일본은 이날 유엔헌장 7장에 따른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 회원국들에 회람시켰다. 유엔헌장 제7장은 전면적 경제적 제재 및 외교관계 단절을 규정한 41조와 군사적 제재를 규정한 42조가 핵심이다. 중국도 북한의 핵 실험과 관련한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한국과 미국, 일본 등에 밝혀왔다고 베이징의 한 정통한 외교 소식통이 10일 밝혔다. 그러나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북한에 대한 어떤 군사행동도 결단코 반대한다.”고 밝혀 제재는 어디까지나 외교·경제적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존 볼턴 유엔 주재 미 대사가 이날 제의한 13개항의 결의안 초안은 대북 금융제재를 전 세계 은행으로 확대하고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과 관련된 물자의 대북 교역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측 초안은 또 북한의 핵 무기와 핵 기술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선박이 북한을 출입할 때 해상에서 검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측 초안은 또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30일안에 북한의 행동을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추가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 안보리에 제출한 결의안 초안에는 ▲북한 선박의 입항과 항공기 이·착륙을 허용하지 않고 ▲북한산 모든 생산품의 수입을 금지하며 ▲북한 고위관리의 입국, 통과를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북한인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제재위원회를 설립하는 등 미국안보다 강경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안보리 결의안과는 별도로 10일 각료회의를 열어 북한의 핵실험이 확인되기 이전이라도 독자적인 경제 제재를 발동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후유시바 데쓰조 국토교통상은 기자회견에서 독자제재 방안에 대해 “특정 외국선적 선박들의 입항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보리 회원국들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채택될 결의안에는 북한이 조건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 촉구하는 내용도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박길연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핵 실험 성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안보리도 쓸모없고 가혹한 결의안을 채택하는 것보다 북한 과학자들과 연구자들을 축하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 복구 더딘 발라코트는 ‘지옥의 변방’

    파키스탄 발라코트의 파즐 레흐만 가족은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다. 텐트 속에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얼려 버린다는 ‘히말라야 혹한’을 견뎌야 한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동쪽으로 200㎞ 떨어진 발라코트. 이곳은 지난해 10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한꺼번에 3만여명이 숨지면서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한 곳이다. 아내와 5명의 자녀를 부양하는 레흐만의 인생도 지진으로 산산조각났다. 그는 지진으로 숨진 형과 장인·장모의 무덤 인근에서 1년째 텐트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요리사로 일했던 호텔이 무너지면서 직업도 잃었다. 8일(이하 현지시간)은 지난해 7만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키스탄 대지진이 발생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오전 8시52분 발생한 진도 7.6의 강진은 진앙지에서 700㎞ 떨어진 남부까지 파키스탄 전역에서 감지됐다.●“강진 또 온다”… 공포에 떠는 발라코트 CNN은 1년이 지났지만 발라코트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변방’이나 되는 듯 여전히 참혹하다고 전했다.BBC도 다가오는 혹한, 관리들의 구호금 횡령 등 생존 자체가 고통스러운 파키스탄인들의 삶을 소개했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이날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주도인 무자파라바드의 ‘아자드 잠무 카슈미르 대학’ 운동장에서 열린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오전 8시52분이 되자 사이렌이 1분 동안 울렸다. 시내 번화가에서도 길을 멈춘 채 묵념을 올렸다. 파키스탄 정부는 최근 또 다른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파키스탄 정부는 1만여명의 생존자 전부를 2007년까지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은 더디기만 하다. 발라코트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부딪치는 바로 위의 지표면이다. 아시프 칸 국립지질연구센터 소장은 “인도판이 1년에 3.3㎝씩 북쪽으로 이동, 유라시아판 밑을 파고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히말라야 단층에 충돌이 발생, 에너지가 축적되면서 연이어 강진이 발생하는 원리다. 상점 주인인 무니르 후세인은 “살아 남은 자들도 떠나고 싶지만 쉽지 않다.”고 말한다. 굴 후세인은 “주민 90%가 농민이다. 농사지을 땅도 없는 곳으로 가면 우리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수 있는가.”라고 울분만 토한다. ●관리들은 구호금 횡령… 히말라야 혹한 피해 우려 BBC는 7일 이슬라마바드에서 지진 생존자 1000여명이 1주기를 맞아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일부 관리들이 구호기금을 빼돌리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생존자 고하르 레만은 “지난 5개월 동안 단돈 1페니도 받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부정부패와 별개로 도움의 손길도 여전히 절실하다. 얀 반데무르텔레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최근 “이 상태에서 혹한이 오면 심각한 상황을 맞게 된다.”고 지원을 촉구했다.그는 “1년 기한의 ‘조기복구계획(ERP)’을 위해 4000만달러를 요청했지만 모금액은 1400만달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ERP 전체 예산 2억 7000만달러 중 지금까지 모금된 액수는 64% 수준이다. 국제적십자사는 살을 에는 히말라야 혹한이 불어 닥치는 북부 산악지역에서는 생존자 40만명이 텐트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겨울을 나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첫 겨울이 이상기후로 예년보다 따뜻했지만 올해는 한파가 예상돼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난해 지진은 라마단 사흘째 발생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시 라마단이 왔다. 먼저 떠난 가족들의 무덤가에서 흐느끼며 기도를 올리는 파키스탄인들의 얼굴에는 지워지지 않는 공포와 깊은 슬픔이 여전히 교차하고 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논·밭 관광상품으로 겹풍년 들었네

    “흐드러지게 피어난 메밀꽃 구경오세요.” 전북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학원농장’. 지난봄 ‘청보리밭 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렸던 이곳에는 청명한 가을 햇살 아래 하얀 메밀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백설을 흩뿌려놓은 듯 펼쳐진 18만 7000평의 메밀밭은 가산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7∼8월에 심은 메밀은 황토구릉을 따라 꽃망울을 터뜨려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메밀밭 사이로 난 산책길을 걷노라면 살랑거리는 메밀꽃 향기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메밀밭 가운데 아담한 주막은 길손을 유혹한다. 자리를 잡고 메밀국수, 메밀전, 메밀묵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면 가을은 어느새 가슴속에 둥지를 튼다. 지난달 16일 시작된 ‘2006 경관농업 메밀꽃 잔치’에는 가을을 찾아온 관광객들로 줄을 잇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에는 가족, 연인, 친구, 사진작가 등이 몰려 목가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됐다. 이곳에 관광객들이 몰리는 것은 지난해 이 일대가 경관농업지역으로 지정됐기 때문. 경관농업은 농민들이 일반 농사 대신 경관이 좋은 작물을 심어 길러 놓으면 정부가 일정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농민들은 정부로부터 300평당 17만원의 보조금을 받고, 작물도 수확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 특히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음식물과 특산품을 팔아 짭짤한 소득도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8만여명이 메밀밭을 찾아 7억 5000만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 전북지역에는 이같은 경관농업지역이 모두 네곳 98㏊나 된다. 전국 경관농업지역 470㏊의 21%에 이른다. 고창군 부안면 송현리 미당 시문학관 주변은 25농가가 2만 4000평의 농지에 들국화를 심었다. 이달 말쯤이면 노란 감국이 피어나 관광객들을 유혹할 전망이다. 지난 2004년 처음으로 5000평을 심었다가 반응이 좋아 지난해에는 2만평, 올해는 2만 4000평으로 참여 농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주민들은 메밀밭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들국화 꽃가루, 국화차, 국화주, 토종두부, 복분자, 막걸리 등을 팔아 적잖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5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올해는 이달 하순부터 11월 중순까지 열리는 들국화 축제에 7만여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무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혼불문학관 주변 3만 4000평과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석불산영상랜드 주변 3만 9000평에는 추수가 끝난 뒤 유채를 심을 계획이다. 이들 두 곳은 내년 봄에는 노란 유채꽃이 뒤덮이게 된다. 농민들은 경관농업직불금을 받고 유채를 거름으로 사용, 고품질 쌀을 생산하게 된다. 전북도는 경관농업이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을 보이자 자체사업으로 20㏊ 정도를 추가로 추진할 방침이다.전북도 관계자는 “경관농업은 전원생활에 향수를 느끼는 도시민들과 농산물수입개방, 일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좋은 제도”라면서 “앞으로 도내 모든 시·군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창 들국화 경관농업지구 추진위원장 국지호(49)씨는 “경관농업이 농촌에 새로운 활력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직불보조금이 평당 1000원은 돼야만 농가소득을 제대로 보전해줄 수 있다.”며 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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