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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셰익스피어에 빠진 소년의 고민

     열 네 살은 늘 괴롭다.어린이도 아닌,어른도 아닌,청소년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어른들 세계를 기웃거려도 보지만 집과 학교에서 부모와 선생의 간섭은 여전하다.하지만 어느새 훌쩍 커져 있는 마음의 키높이를 볼 수 있게 된다.  ‘수요일의 전쟁’(게리 슈미트 지음,김영선 옮김,주니어랜덤 펴냄)은 1967년 가을과 1968년 여름 미국을 배경으로 그 무렵 아이들이 겪는 성장통과 갈등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펼쳐낸다.미국 최고 청소년문학상으로 꼽히는 ‘뉴베리 아너상’,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우수도서 등을 휩쓴 ‘수요일의 전쟁’은 카밀로 중학교 7학년(우리의 중학교 2학년) ‘홀링 후드후드’의 얘기다.본의 아니게,수요일 오후마다 다른 친구들이 종교수업을 들으러 간 사이 선생님과 단 둘이 시간을 보내다가 ‘곰팡이와 먼지 냄새가 나는 셰익스피어’를 소개받는다.그리고,셰익스피어에 푹 빠지게 된다.  “장래를 내 스스로 결정하고 싶었다.…잔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햄릿에 나오는 구절)을 뚫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볼 기회가 아예 없을까봐 두려워요.”  셰익스피어를 읽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주시하며 끊임없이 고민했던 후드후드는 이미 ‘주체적 자유의지’의 정수를 꿰뚫어버렸다.의젓하게 성장한 열 네 살이다. 중·고등학생은 물론,독서 지도가 곁들여진다면 초등학생도 유익하게 볼 수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개인회생 중 실직… 변제금 못 갚으면?

    Q외환위기로 실직해 1억원 이상 빚을 졌습니다.2006년에 개인회생을 신청해 월 120만원씩 5년간 변제하는 계획을 인가 받았고 지금까지 성실하게 냈습니다. 그런데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최근 두 달은 임금까지 주지 못하더니 드디어 어제 경영진도 잠적해버렸습니다. 개인회생 월부금도 못 내게 되었는데, 그동안 힘겹게 갚아온 것은 인정 받을 수 있습니까. 다시 취직하기도 어렵고 답답합니다. -한수영(45세)- A통합도산법에 따르면 변제계획의 인가가 있다고 해서 그 범위 내 원래의 채무가 당연히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인가 받은 변제계획을 전부 다 이행하였을 때 법원이 나머지 채무를 포함하여 채무 전부에 대하여 면책결정을 해야 합니다. 채무자가 인가 받은 개인회생계획을 이행하지 못하면 법원은 개인회생폐지결정을 하게 되며 개인회생이 없었던 상태로 돌아갑니다. 따라서 개인회생계획에 따라 채무자가 기존에 납부한 금액은 원래의 채권 원리금에 충당하는데, 보통 고율의 연체이자를 먼저 계산하니 원래의 채무는 거의 줄지 않습니다. 통합도산법은 채무자가 납입을 하지 못해 개인회생절차를 폐지하는 경우라도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첫째, 개인회생은 폐지된 경우라도 언제든지 새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잃어 먼저 개인회생변제계획을 이행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새로 여건을 갖추면 그에 맞춰 새로운 변제계획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에 변제한 금액을 감안하여 새로 부채금액을 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새로이 5년의 변제기간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채무자에게 가혹한 면이 있습니다. 둘째는 개인회생 변제계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합니다. 채무자가 변화된 여건에 맞추어 변제액을 줄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여 다시 인가를 받는 방법입니다. 개인회생절차의 새로운 신청에 준하는 것이지만, 기존의 변제계획에서 정한 기간 중 남은 기간만 변제를 한다는 점에서 채무자에게 이익이 있습니다. 셋째는 곤궁한 사정으로 인한 특별면책입니다. 채무자가 과거 파산을 선택하였더라면 채권자들이 변제 받을 수 있었던 금액 이상을 개인회생절차에서 갚았는데 채무자가 책임 질 수 없었던 사유로 인하여 실직 기타 사유로 인하여 앞으로는 갚지 못하게 되었을 때 법원은 즉시 면책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과거 파산절차가 진행되었던 상황보다 불리하지 않게 하겠다는 것으로서 타당한 입법적 결단입니다. 폐지 이후 파산신청도 가능합니다. 개인회생절차를 통하여 변제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이행하지 못하였기에 이런 경우 실무상 관대한 면책기준을 적용합니다.
  • “소수자 보호하는 법률가 돼야”

    “소수자 보호하는 법률가 돼야”

    “여러분은 성찰하는 법률가가 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돼보는 상상력을 기르십시오.” 2004년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영란 대법관은 19일 오후 2시 고려대 신법학관 강당에서 ‘법치주의와 법률가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미래의 법률가를 꿈꾸며 모인 150여명의 대학생에게 김 대법관은 “대학 시절 법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대법관은 자신의 학창 시절 얘기로 강연을 시작했다.1975년 엄혹한 유신 시절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김 대법관은 “민주화운동과 법률가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느라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했다.”면서 “법률가를 꿈꾼다면 대학 시절 공부도 좋지만 글로벌 시대에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27년간의 판사 생활에 대해 소회를 털어놓으며 김 대법관은 “엄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은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않고 약점을 보이기 싫어하는 등 직업병이 심하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김 대법관은 최근 종부세 판결, 하리수씨 성 전환 판결 등을 예로 들며 모든 것을 법으로 귀결시키는 법환원주의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로널드 드워킨 뉴욕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법은 도덕원리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법관은 “소수자를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사회의 다원성을 유지시키는 사람이 여러분들이 꿈꿔야 하는 법률가”라고 말하며 강연을 끝맺었다. 김영란 대법관은 서울대 법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1981년 서울민사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가정법원 등에서 근무했으며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 중이던 2004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읽기] (98) 인조, 백성에 사죄하다

    [병자호란 다시읽기] (98) 인조, 백성에 사죄하다

    전란은 끝났지만 인조 정권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당장 도성 안팎에 버려져 있는 시신들을 치우고, 하나 둘씩 모여드는 생존자들을 구휼(救恤)하는 문제가 시급했다. 또 전쟁을 불러오고, 임금으로 하여금 일찍이 없던 치욕을 겪게 만들었던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것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당장 척화신들의 ‘경거망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척화신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 흉흉한 민심을 달랠 수는 없었다. 백성들은 청군에게 죽고, 붙잡혀 끌려가고, 삶의 터전까지 잃어버렸다. 그들의 아픔과 분노를 다독이려면 결국 인조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화약이 맺어지고 인조가 환궁한 직후 조정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우선 무신들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병조판서 신경진(申景 )은 회의석상에서 문관들을 매도했다.“쥐새끼 같은 자들이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며 목청을 높였다.‘쥐새끼 같은 자들’이란 문관들, 그 가운데서도 척화신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구굉(具宏) 또한 척화신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인조의 인척이자 반정공신이기도 했던 그는 “윤황(尹煌)이 척화(斥和)를 주장하여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그의 목을 베어야만 한다”고 일갈했다. 일찍이 정묘호란 당시부터 후금(청)과의 화친 시도를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던 윤황을 정조준했던 것이다. 나만갑은 ‘기세가 오른 무인들이 문신들을 종이나 하인들처럼 여기고, 남한산성에서 내려온 것이 마치 무슨 중흥의 계기나 된 것처럼 여긴다.’고 귀경 직후의 조정 분위기를 적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척화신들 호전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점차 답답한 현실에 짜증을 내게 되고 편안한 것을 찾기 마련이다. 더욱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병사들을 이끌고 산성의 방어를 담당했던 무신들이 보기에 문신들, 그 가운데서도 척화신들은 목소리만 컸을 뿐, 성을 방어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이미 1637년 1월, 지친 병사들 사이에서 ‘척화신을 묶어 보내라.’는 시위가 일어난 바 있었다.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던 그들에게는 거창한 대의명분보다는 당장 따뜻한 밥 한 그릇과 편안한 잠자리가 더 절실했다. 그럼에도 ‘전원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결사 항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척화신들의 주장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우활(迂闊)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항복이 다만 ‘시간 문제’가 되고, 청이 전쟁의 책임을 척화신들에게 돌리고 그들을 묶어 보내지 않으면 항복을 받아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판에 척화신들의 결사 항전 주장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조가 항복했던 직후, 도성의 민심은 척화파에게 부정적이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도성으로 돌아온 백성들 앞에 보이는 것은 시체가 나뒹굴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처참한 모습뿐이었다. 절망 속에 눈에 핏발이 설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을 유린한 청군에 대한 적개심과 아울러 대의명분을 앞세운 척화신들의 ‘경거망동’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망가졌다는 원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2월19일 김류, 홍서봉, 이성구, 신경진, 최명길 등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나라를 그르친 사람들의 죄를 따지는’ 자리였다. 윤황, 이일상(李一相), 유황(兪榥), 홍전(洪 ), 조경(趙絅), 유계(兪棨) 등 척화신들의 ‘과오’가 도마 위에 올랐다. 논의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인조는 이들 모두의 관작을 삭탈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조경은 문외출송(門外黜送), 윤황·유황·홍전·유계 등은 유배, 이일상은 가장 무거운 절도(絶島) 정배의 명령을 받았다. 척화신 대부분을 조정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야흐로 척화신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인조, 백성 원성에 위기감 척화신들을 처벌했지만 인조 또한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2월8일, 심양으로 끌려가는 소현세자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인조는 한 노파의 원망 섞인 통곡 소리를 들었다.‘여러 해를 두고 강화도를 수리하여 백성들을 의지하게 했는데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더냐. 나라의 책임을 맡은 자들이 날마다 술 마시는 것을 일삼아 백성들을 모두 죽게 했으니 이것이 누구 탓인가? 자식 넷과 남편이 모두 죽고 다만 이 몸만 남았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이런 원통한 일이 있단 말인가.’ 가족을 모두 잃은 노파의 한탄은 사실 인조를 향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이번 전란 때문에 삶이 망가진 모든 백성들의 원망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조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월19일 인조는 내외의 군인과 백성들에게 내리는 교유문(敎諭文)을 발표했다. ‘덕이 부족한 내가 대위(大位)에 있은 지 15년에 오직 대의(大義)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뜻밖의 화를 만나 외로운 성에서 포위 당한 채 봄을 맞았다. 나는 지금 해진 갖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이 일반 천민과 다름이 없고,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은 천성인데 나는 지금 두 아들과 두 며느리를 모두 북쪽으로 떠나보냈다. 돌아보건대 백성을 기르는 자리에 있으면서 나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모든 백성에게 화를 끼쳤다. 군사들은 전장의 원혼(魂)이 되게 했고, 죄 없는 백성들은 모두 포로가 되게 하여, 아비는 자식을 보호하지 못하고 지아비는 지어미를 보호하지 못하게 하여 가슴을 치고 하늘에 호소하게 하였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이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머금고 오장이 에는 듯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솔직하고 처절한 내용이다.‘나의 죄’ 운운하면서 전란 발생과 백성들의 고통이 모두 자신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낮추고 백성들에게 머리를 숙인 국왕은 일찍이 없었다. 인조는 그러면서 백성들에게 다짐했다.‘이제 묵은 폐단과 가혹한 정치를 모두 없애며, 사당(私黨)을 없애고 공도(公道)를 회복하며, 농사에 힘써 남은 백성들을 보전하려 한다. 그대 팔도의 신민들은 지난날의 잘못 때문에 나를 버리지 말고, 상하 합심하여 어려움을 널리 구제할지어다.’ 이제 잘 해보겠으니 도와달라는 당부이자 호소였다. ●의심받는 인조의 진정성 처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과 성명’을 읽으면 인조는 분명 병자호란을 계기로 대오각성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성명 발표 전후 인조가 취한 조처들을 보면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강화도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빼앗고, 엄청난 수의 백성들을 죽거나 포로가 되게 했던 장수들에게 군율 적용을 기피하려 했던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637년 2월 삼사 신료들은, 특히 죄가 무거운 김자점·김경징·장신 등에게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종사를 위태롭게 하고 수많은 생령들을 죽거나 끌려가게 만들었느니 복주(伏誅)해야만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인조는 김경징과 장신에게 극형을 내리는 것을 꺼려했다. 신료들의 채근에 ‘김경징이 거느린 군사는 매우 적었고, 장신은 조수(潮水) 때문에 배를 통제할 수 없었다.’며 두 사람을 비호했다. 강화도를 방어할 준비를 내팽개쳤고, 함께 싸우자는 부하들의 호소도 묵살하고 달아났던 두 사람의 실제 행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인식이었다. 인조는,‘제대로 정죄(定罪)하지 않으면 종묘사직의 영혼을 위로할 수 없고 신인(神人)의 분노를 풀 수 없다.’는 신료들의 거듭된 요청에 밀려 마지못해 두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 하지만 김자점은 끝내 유배형에 그치고 말았다. 김경징과 김자점이 모두 인조를 왕위에 올려놓는 데 앞장섰던 공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조의 태도가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비호하려 했던 인조의 자세는 ‘사당을 없애고 공도를 회복하겠다.’던 교유문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20&30] ‘직장인들의 樂’ 점심 시간

    [20&30] ‘직장인들의 樂’ 점심 시간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다면 직장인들에겐 점심시간이 있다.복잡한 업무를 제쳐놓고 누리는 잠깐의 여유는 하루의 유일한 낙이다.낮 12시가 가까워질수록 직장인들의 손놀림은 바빠진다. 온라인 메신저로 친한 동료들과 약속을 잡기도 하고,인터넷에서 회사 근처 맛집을 검색하기도 한다. 불황으로 인한 얄팍한 주머니사정,점심 메뉴를 놓고 동료들과 벌이는 실랑이,점심시간에 못다이룬 로맨스까지…2030 직장인들의 점심메뉴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경기 불황의 파고는 직장인의 점심 메뉴에 가장 먼저 들이닥쳤다.허리띠를 졸라맨 직장인들은 밥값부터 줄이기 시작했다.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홍보팀장을 맡고 있는 김모(37)씨도 예외는 아니다.그는 매일 점심마다 부원들의 밥값을 대신 내느라 골머리를 앓았다.회사의 긴축경영으로 법인카드 사용도 금지됐는데,선배가 밥값을 내야 하는 관행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지갑을 여는 것이다.팀원 5명의 밥값을 내느라 한 달에 50만원이 날아갔다.머리를 쥐어뜯던 김씨는 ‘도시락’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점심 때가 되면 김씨는 도시락을 싸왔다며 식사 대열에서 쏙 빠졌다. ●신입사원 환영회때도 ‘더치페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닌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맞벌이를 하는 김씨의 부인 정모(35)씨가 “힘들어서 못 싸겠다.”며 손을 놓아버렸다.다시 빈 손으로 회사에 출근하게 된 김씨는 점심을 먹으러 우르르 몰려가는 팀원들을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김씨는 “아무리 선배라지만 한 사람이 밥값을 전부 내는 건 요즘 같은 불황에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소규모 벤처회사에 다니는 황모(22)씨는 몇 달 전 처음 입사한 날의 점심시간을 잊지 못한다.사장이 점심시간에 신입사원 환영회를 하자며 회식을 제안했고,황씨는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오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드디어 점심시간.몇 명 안 되는 회사 사람들을 이끌고 사장은 어디론가 갔다.사장이 들어간 곳은 회사 근처의 한 가정식 백반집.성대한 환영회를 기대했던 황씨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그래도 곧 마음을 바로잡으며 메뉴보다는 회사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모였다는 데 의의를 찾자고 생각했다.  식사시간은 화기애애했다.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했다.식사를 끝내고 나오는데,사장 이하 전 직원이 지갑을 꺼내 더치페이를 하고 있는 것.황씨도 5000원을 보태야 했다.“더치페이가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그래도 신입사원이 들어온 첫 날인데,저한테까지 밥값을 내라고 하니까 서운하더라고요.” 이제는 더치페이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졌는데도,첫 날의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고 황씨는 전했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박모(30)씨는 “그래도 밥값은 못 줄인다.”는 생활 신조를 갖고 있다.월급의 50% 이상을 밥값으로 지출하는 그의 카드명세서에는 서울 시내 유명한 밥집과 커피 전문점의 이름이 줄줄이 찍혀 있다.점심시간에 남들보다 일찍 회사를 빠져나와 삼청동,이태원 등지의 점찍어둔 맛집에 가는 게 오전의 주요 일과다. 박씨는 “아침에 출근하면 점심에 뭐 먹나,점심을 먹고 나면 내일 점심엔 뭐 먹나 생각하는 게 나만의 작은 행복”이라면서 “이런 행복을 포기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고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오히려 그의 식비 지출을 증가시켰다.그동안 밥값으로 쓰느라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 돈이 한 푼도 없는 탓이다.잃은 돈이 없기에 그는 더 자유롭다고 말했다.“지난해 펀드가 잘 나갈 땐 내가 남들보다 뒤처지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그런데 주위 동료들이 구내식당 밥 먹으면서 아등바등 모아놓은 돈이 다 날아간 지금,맛있는 밥 행복하게 먹으면서 한 푼도 안 날린 제가 더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시락을 놓고 벌어지는 직장인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는 최모(33)씨는 도시락 웰빙족이다.그의 신념은 ‘무엇을 먹느냐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것.아침엔 직접 짠 100% 유기농 오렌지주스와 드레싱을 얹은 샐러드를 먹고,저녁엔 유기농 과일과 생식을 먹는다.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최근 직장생활을 시작한 최씨의 고민은 점심이었다.동료들과 밖에서 먹는 점심은 너무 맵거나 짜서 위장에 자극적인 데다,원산지도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무턱대고 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와 중국발 멜라민 파동 등을 지켜보며 고심을 거듭하던 최씨는 급기야 도시락족이 될 것을 선언했다.동료들은 죄다 외식을 하니 왕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최씨는 “그래도 돈도 아끼고 건강도 챙기니 만족스러워요.혼자 밥 먹는 외로움쯤은 참아내야죠.”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초등학교 교사인 이모(27)씨와 김모(27)씨는 친구 사이다.같은 대학을 졸업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학교로 배치받게 됐다.게다가 옆반 담임을 맡고 있어 인연이 깊은 둘에게는 딱 한 가지의 차이점이 있었다.이씨는 미혼이고,김씨는 기혼이라는 것.  학교에 급식시설이 없어 두 사람은 매일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며 점심을 함께 먹었다.하루 이틀 지나자 기혼자인 김씨는 이씨에게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혼자 사는 이씨의 도시락엔 항상 태국식 볶음밥,유부초밥 등 매일 다양한 메뉴들이 넘쳐났다. 반면 김씨의 도시락은 김치에 계란,멸치볶음이 고작이었다.결혼은 했지만 부부 교사로 맞벌이를 하는 탓에 아내가 도시락을 싸줄 겨를이 없었던 것.반면 요리를 좋아하는 이씨는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자신이 먹을 도시락을 직접 준비했다.미혼인데도 자신보다 훨씬 화려한 이씨의 도시락을 보고 김씨는 생전 처음으로 결혼한 것을 후회할 뻔했다고도 했다.“결혼했다고 해서 점심시간의 행복까지 보장받진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맛집 전문가 된 사연은…  지난 7월 유명 보험회사에 입사한 유모(27)씨는 지점의 막내다.점심회식이 있을 때 식당에 예약을 하는 것은 그의 몫이다.팀원 몇몇이 갈 때도 있고,보험영업사원들까지 합류해 30명이 넘게 갈 때도 있는데,동행자의 특색에 딱 알맞은 식당을 선택하는 게 그의 가장 큰 임무다.유씨는 “처음 입사해선 나이 따라,성별 따라 너무 다른 취향을 맞추는 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눈치가 빨라졌다.”며 흐뭇해했다.  대부분 40~50대 아주머니인 영업사원들과 회식을 할 땐 조용한 한정식집에 간다.주 메뉴는 샤부샤부나 수제비 등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아주머니들은 식사를 하고 나서도 오래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빙 시간이 긴 음식을 좋아한다.거기에 차나 과일까지 후식으로 나오면 100점 만점이다.부장이나 주임 등 상사들과 갈 때는 양이 많고 든든한 음식이 좋다.유씨가 자주 고르는 곳은 근처의 삼계탕집.함께 일하는 경리 임모(28)씨와 갈 때는 파스타나 샐러드바에 주로 간다.유씨는 “많은 사람들을 접대하다 보니 저절로 맛집전문가가 돼버렸다.”면서 “이런저런 눈치 안 보고 친한 사람들끼리 먹는 점심이 제일 좋다.”고 했다.  맛집 전문가가 되는 것은 승진의 지름길이기도 하다.작은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모(28)씨는 동료들도 인정하는 맛집 전문가다.TV에 나오는 맛집은 이미 섭렵했고,남들이 모르는 맛집을 수십 군데 알고 있을 정도로 정통한 김씨다. 그는 회사에서 상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데,이유인즉 점심시간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상사들에게 맞춤형 맛집을 기가 막히게 안내하기 때문이다.김씨의 이런 재능은 지난달 사장에게까지 알려지게 됐다.중국에서 중요한 바이어가 왔을 때 김씨는 접대 장소로 자신이 알고 있는 비장의 한정식집을 제공했고,바이어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라며 매우 흡족해했다.사장은 “김대리 덕분에 계약을 따냈다.”며 크게 칭찬했다.김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맛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업무에도 연결이 되니 일석이조 아니겠느냐.”며 호쾌하게 웃었다. ●보신탕에 날아간 로맨스  사내연애를 하는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단둘이 오붓한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그런데 이모(33)씨에게 그 점심시간은 씻을 수 없는 악몽으로 남아 있다.이씨는 얼마 전 신입사원 최모(26)씨의 ‘사수(멘토)’가 됐다.입사 초기에 일에 치여 고생한 경험을 한 이씨는 최씨를 최대한 배려해줬다.모르는 게 있으면 가르쳐주고,일도 나눠 하는 등 회사에 적응하는 걸 도와주려다 보니 자주 어울리게 됐다.자주 어울리다 보니 호감이 갔다.점심시간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파스타 가게 등 20대 여성인 최씨의 입맛에 맞춰주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날,꽤 친해진 최씨에게 이씨는 먹고 싶은 걸 말해보라고 했다.그러자 최씨는 서슴없이 “대리님,저 보신탕 사주세요.”라고 말했다.이씨는 “정말 충격적이었어요.여자가 개를 먹어서 놀란 게 아니라,평소에 우아하게 칼질하고 파스타를 돌돌 말아 오물오물 씹던 그녀의 고고한 이미지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죠.”라고 그때를 회상했다.  보신탕 집에서 이씨는 삼계탕을 먹었다.집에서 키우는 개 ‘향숙이’를 생각하니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맞은편에서 들깨와 식초를 맛깔나게 섞어 고기를 찍어 먹는 최씨의 모습을 보며 이씨는 가슴이 내려앉았다.게다가 “사람들이 안 먹어서 그렇지,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거든요.우리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여기에 와요.”라고 말하는 최씨의 해사한 얼굴을 보며 이씨는 남몰래 키워온 호감을 미련없이 접었다.  김민희 이재연 장형우기자 haru@seoul.co.kr
  • [특파원 칼럼] ‘가니코센’과 일본의 그늘

    [특파원 칼럼] ‘가니코센’과 일본의 그늘

    올해 일본 출판계의 화제는 단연 ‘가니코센(蟹工船·게 가공선)’이다. 지난 1929년 6월 고바야시 다카시가 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고전이다.80년이 지난 올해 재조명과 함께 무려 60만권이나 팔렸다. 만화로 그려졌는가 하면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다. 가니코센의 붐이다. 소설은 “어이, 지옥으로 들어가나.”로 시작된다. 엄동의 오호츠크해에서 게를 잡아 통조림으로 만드는 배인 ‘히로미쓰마루’ 선원들의 참혹한 삶과 분노, 투쟁의 과정을 담았다. 영양 실조와 질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산량의 그래프에만 신경쓰는 선주 측의 무자비한 폭력과 착취, 인내의 한계를 넘은 노동자들의 파업 시도, 국가로 상징되는 해군에 의한 강제 진압…. 소설은 “그리고, 그들은 일어섰다. 한번 더”로 끝을 맺는다. 일본에서 가니코센의 재출현은 사건이나 다름없다. 과거의 역사에나 머무를 법한 내용인 까닭에서다.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연구자나 관심있는 독자들의 몫으로만 여겨졌던 터다.1980년대 ‘1억 총인구=중류층’이라고 자랑하던 경제대국, 일본에서 ‘빈곤’이나 ‘궁핍’이라는 단어 자체는 사어(死語)에 가까웠다. 하지만 일본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가니코센을 찾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가니코센의 내용에 “공감한다.”는 답변이 51%에 달했다. 열악한 고용의 현실에다 양극화 즉,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일본의 비정규직 실태는 심각하다.2007년 취업구조 기본조사 통계에 따르면 파트타임이나 아르바이트, 파견사원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35.5%다.1737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다. 젊은 층의 신규 인력은 대부분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처지다. 때문에 일하는 빈곤층인 워킹푸어를 비롯,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저임금의 프리터,PC방을 드나드는 젊은 층의 홈리스인 ‘넷카페 난민’ 등 격차 사회를 빗댄 용어들도 범람하고 있다. 격차 문제의 진단은 쉽지 않다. 다만 대체로 시장의 역할을 중시한 ‘고이즈미 개혁 ’의 후유증 탓에 가속화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은 1990년대 버블 붕괴 뒤 기업의 실적 회복을 위해 인건비 삭감에 초점을 맞췄다. 정부도 노동자파견법 등의 규제완화로 호응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저임금과 해고의 유연성에 대한 보장이다. 결과적으로 작은 정부의 지향속에 고용·사회보험·공적지원 등의 안전망은 느슨해졌다. 일본의 사회적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다.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자기책임론’에 짓눌려 할 말을 제대로 못하던 젊은 층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자기책임만이 아닌 정치·사회구조의 희생양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니코센에의 자기 투영이다. 지난달 19일 도쿄 시내에서 열린 ‘반(反)빈곤’ 집회에 참가한 비정규직들은 “인간다운 생활과 노동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외쳤다. 중의원 선거에 격차 문제를 쟁점화할 만큼 조직화되고 있다. 최근 1년간 일본 공산당에 가입한 신규 당원은 1만명을 넘었다. 물론 ‘가니코센 현상’을 일본 사회 전체의 움직임인 양 과대 평가할 수는 없다. 일본 정부나 기업도 격차 문제의 해소를 위한 처방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생활 제일’,‘생활자 중시’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이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시행하고 있다. 또 일용직 파견을 금지하는 법안도 추진중이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겨울을 앞두고 감원 바람에 비정규직들이 내몰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보다 구체적인 안전망의 재구축, 안정된 노동환경의 조성이다. 지금 경제대국, 일본에 가니코센을 탄 듯한 젊은이들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박홍기 도쿄 특파원 hkpark@seoul.co.kr
  • 채권안정 펀드 ‘풍선효과’ 부르나

    채권안정 펀드 ‘풍선효과’ 부르나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새 돈이 들어오지 않는 한 풍선효과만 유발할 것이다.”(채권 딜러) “팔 비틀어 기금조성했던 과거 추억 때문에 시장이 과민반응한다. 들어오게 싶게끔 매력적으로 설계할 것이다.”(금융위)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출범도 하기 전에 시끌시끌하다. 시장 일각에서는 효과는커녕 문제점만 더 노출시킬 것이라며 냉혹한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펀드출범 후 시장상황을 보자.”며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금융위,“국고채 매입 배제안해” 14일 금융위원회와 시장에 따르면 채안펀드에 냉소적 시선을 보내는 측의 가장 큰 우려는 “새로운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류승선 HMC증권 채권팀장은 “정부 구상은 은행, 보험사 등 기존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들여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이들도 현재 여윳돈이 없어 결국 기존에 갖고 있던 국고채를 내다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날에 이어 국고채 금리가 이틀 연속 급등한 것도 이같은 구축(驅逐)효과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대우채 사태 때의 채권시장안정기금처럼 강제로 돈을 갹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부위원장은 “은행이나 보험사가 투자 메리트(장점)를 느끼도록 상품(펀드)을 매력적으로 설계하고 있다.”면서 “투자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 국고채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채안펀드가 회사채뿐 아니라 국고채도 사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수급 악화 우려는 지나친 기우라는 얘기다. ●한은,“금리 맞으면 산금채 사줄 수 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고채 금리는 한때 진정되는 듯했으나 시장의 불안감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채안펀드의 최우선순위는 회사채 시장 활성화에 있는 만큼 국고채 매입 비중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칫 국고채와 회사채를 모두 살 수 있게 했다가 국고채에 매수가 집중되면서 제 기능을 못한 채안기금의 실패 전철을 되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위원장은 “채안펀드는 막힌 곳이면 어디든 자유롭게 찾아가는 리베로 펀드”라며 “결국 채권금리가 떨어지며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효과를 자신했다. 산업은행과 연기금 출자액은 사실상 새 돈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박도 덧붙였다. 여기서 시장이 의문을 제기하는 또 하나의 대목은 산은이 채안펀드 출연을 위해 발행키로 한 산업금융채(산금채) 2조원의 매수 주체다. 이재만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매수 주체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위는 드러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내심 한국은행이 사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대상에 금융채를 포함시키면서 (산금채와 같은)특수채도 추가했다.”며 “금리(조건)만 맞는다면 산금채를 못 사줄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가 성공하려면 한은의 직매입이나 RP지원 만기확대 등과 같은 신규 자금지원이 있어야 한다.”며 정책 공조의 필요성을 강하게 지적했다. ●시장,“새 돈 수혈·정책공조 필수” 채안펀드의 매입대상을 트리플B+ 이상 채권으로 제한한 것도 시선이 엇갈린다. 현재 BBB+ 이상 등급의 기업비중은 49%가량이다. 동양종금 이 연구원은 “실제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업은 나머지 절반에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위측은 “평균 등급을 BBB+로 가져가겠다는 의미”라며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CBO)에 편입되는 개별 기업의 신용등급은 그보다 낮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한 투자위험은 신용보증기금 등의 신용보강을 통해 보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채권 부실화에 대해 정부가 나중에 책임을 지겠느냐는 회의도 나온다. 자칫 국고채 금리는 금리대로 뛰고 회사채금리는 기업전망 불투명 때문에 안정되지도 못하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잃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소장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콜금리 인하 등 채안펀드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추가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안미현 조태성기자 hyun@seoul.co.kr ■용어클릭 ●풍선효과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오르는 것처럼 한가지 문제를 풀면 다른 문제가 불거지는 현상
  • 영화제 걸작이 몰려온다

    영화제 걸작이 몰려온다

    “나 이제 담배 끊으려고.” “난 뭘 끊을까?” “너? 모두에게 너무 착하게 대하는 거.” “나쁠 거 없잖아? 다 웃고 살자는 건데.”( ‘해피 고 럭키’ 중에서) 울림이 있는 대사가 그리운 계절이다. 겨울의 초입. 허전함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심란하다면 한시름 놓아도 될 듯하다. 세계적인 영화제를 휩쓴 화제작들이 속속 국내 스크린에 안착하기 때문이다.‘해피 고 럭키’를 비롯해 ‘눈먼자들의 도시’,‘추적’,‘바시르와 왈츠를’이 20일 일제히 개봉한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올해 제61회 칸영화제 개막작으로 숱한 화제를 낳았던 작품.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출신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1995년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만약 세상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고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이란 기상천외한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극적인 상황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 작품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영화화를 원치 않았던 주제 사라마구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스크린에 옮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시티 오브 갓’,‘콘스탄트 가드너’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은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뛰어난 완성도와 높은 대중성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마크 러팔로와 줄리안 무어의 명연기도 감상 포인트의 하나다. 미스터리 심리극 ‘추적’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특별상을 받은 작품.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는 숨막히는 추격전을 담고 있다. 각각 젊음과 부를 소유한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둘러싸고 벌이는 두뇌게임이 시종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2005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해럴드 핀터가 각색에 참여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촌철살인의 대사와 희극적인 감각이 돋보인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의 출연 배우이기도 한 케네스 브래너가 메가폰을 잡아 영국 대표 배우 주드 로와 마이클 케인의 환상 호흡을 이끌어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영화제 기간 내내 끊임없는 찬사를 얻은 작품이다. 아리 폴만 감독은 자신이 실제로 겪은 1982년 레바논 전쟁의 불편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외피에 담아냈다. 실사 영화로 먼저 찍은 뒤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는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 했지만, 두 장르의 절묘한 결합으로 드라마성과 현실성 모두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무장 단체를 소탕하기 위해 감행한 전쟁에서 무고한 레바논 시민들이 학살당한 참혹한 역사가 환상적인 영상에 입혀져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해피 고 럭키’는 광합성 부족으로 우울지수가 높아진 사람에게 강력 추천할 만하다.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배우 샐리 호킨스가 ‘대책없는 낙관주의자’ 주인공 포피 역을 맡아 강력한 ‘해피 바이러스’를 전염시킨다. 포피는 초등학교 교사로 자유분방하고 편견이 없으며 무엇보다 멋진 유머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의 서른 살 독신 생활에 끼어든 까칠한 운전교사와 키다리 매력남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네이키드’,‘비밀과 거짓말’,‘베라 드레이크’ 등을 만든 영국의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은 ‘해피 고 럭키’에서 행복의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유쾌한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이와 함께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 벤쿠버 영화제 비평가상을 휩쓴 ‘이스턴 프라미스’가 새달 11일 개봉을 대기하고 있다. 우연히 목격한 소녀의 죽음으로 러시아 마피아 조직의 비밀을 파헤치게 되는 여인을 그린 범죄 스릴러다. 영화제 걸작들의 잇따른 개봉으로 관객들은 연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특히 그저 그런 오락영화에 식상해진 관객이라면 독특한 스토리에 깊이 있는 작품성까지 만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고정출연’ 김종국, ‘패떴’에 득일까, 실일까?

    ‘고정출연’ 김종국, ‘패떴’에 득일까, 실일까?

    8주 연속 주말 예능 1위 자리를 지키며 예능 최강자로 떠오른 ‘패밀리가 떴다’(이하 ‘패떴’)에 김종국까지 합세했다. 12일 ‘패밀리가 떴다’의 제작진은 “김종국이 고정으로 출연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이 갖는 성격과 김종국의 자연스런 모습이 잘 어울리고 촬영에도 열심”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김종국이 ‘패떴’의 고정출연이 확정되면서 과연 ‘패떴’의 거침없는 인기행진에 어떤 결과를 안겨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26일 ‘패떴’에 첫 출연한 김종국은 오랜 기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아 예능감을 잃었을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를 깨고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안겼다. 이날 김종국의 출연한 ‘패떴’은 27.5%의 자체 최고 시청률(시청률 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을 기록하며 김종국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패떴’ 신선한 재미 + 캐릭터의 재발견=시청자들을 사로잡다 사실 지난 6월 15일 첫방송 당시만 해도 ‘패떴’은 5.5%의 부진한 시청률로 경쟁프로그램인 KBS 2TV ‘해피선데이’와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한참 밀렸다. 또 당시 ‘패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아류작이라는 오명과 함께 언론과 네티즌의 가혹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패떴’은 방송 2달만에 식상하다는 평을 깨고 진화된 리얼리티함을 선보이며 일요일 예능 1위 자리로 올라섰다. 패밀리의 멤버인 유재석과 이효리를 중심으로 김수로, 이천희, 윤종신, 박예진, 대성은 스타의 화려한 이미지를 벗고 각자의 캐릭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또한 매회 새롭게 투입되는 특별 게스트들은 자칫 식상해 질 수 있는 고정 멤버들의 빈틈을 잘 메워주고 있다. # 김종국의 고정 출연…득일까? 실일까? 이처럼 인기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패떴’에 김종국의 합류가 과연 어떤 결과로 이루어질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종국의 고정출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시청자들은 이효리와 김종국이 만들어내는 러브라인과 김수로와의 알게 모르게 펼쳐지는 힘 대결이 재미를 더해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평소 터프하던 이효리는 김종국의 등장에 얌전한 이효리로 변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겼고 게임마왕 김수로도 힘 하면 어디에도 뒤쳐지지 않는 김종국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극의 긴장감을 더했다. 하지만 김종국의 고정 출연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종국과 김수로의 캐릭터가 중복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과연 김종국이 시청자들의 응원과 우려를 등에 업고 ‘패떴’에서 어떤 모습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을지 기대된다. 사진=sbs 캡쳐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일요영화]나인야드2

    ●나인야드2 (SBS 영화특급 밤 1시20분) 기대치 이상의 폭소를 선사했던 ‘나인야드’의 속편. 역시나,‘전편보다 나은 속편 없다’는 징크스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나인야드2’는 전편의 코믹 캐릭터를 옹골차게 밀고 나가며 ‘킬링타임용’으로서의 본분에는 충실했다. 전편에서 17명을 죽여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냉혹한 킬러 지미(브루스 윌리스). 그는 획기적인 변신으로 시작부터 반전(?)의 쾌감을 던진다. 토끼 슬리퍼에 깜찍한 앞치마를 두른 전직 킬러는 이제 청소와 요리는 기본. 집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닭에게 애칭을 붙여줄 정도로 곰살맞은 주부로 살고 있다. 부인이자 초보 킬러인 질(아만다 피트)은 이제 위험한 남자도, 나쁜 남자도 아닌 재미없는 남편의 모습에 슬슬 진력이 난 상태. 이런 사소한 불만을 빼면 모든 게 평화로운 이들 부부에게 ‘방해꾼’이 나타난다. 바로 오랜 친구인 치과의사 오즈(매튜 페리)다. 전편에서 고골락 일당을 해치우고 지미와 막대한 돈을 나눠 가진 오즈의 인생은 남 부러울 것 없이 풍족하다. 소심한 데다 뭘 해도 어설펐던 그는 아름다운 아내(나타샤 헨스트리즈)와 결혼한 데다 좋은 차, 좋은 집에 곧 태어날 2세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어느날 갱단인 고골락(케빈 폴락) 일당이 침입해 아내를 납치하고, 아내를 살리고 싶으면 지미를 찾아내라고 협박해오면서 행복에 금이 간다. 지미를 처리하고 엄청난 보험금을 차지하려 했던 고골락은 외려 막대한 예금을 이들에게 뺏기고, 아들 야니까지 잃은 복수를 하려 한다. 완벽한 주부로 변신한 지미와 여전히 어리버리한 오즈가 과연 고골락의 응징을 멋지게 맞받아칠 수 있을까. 시트콤 ‘프렌즈’의 챈들러 캐릭터를 끈질기게 고수하는 매튜 페리, 선 굵은 액션보다 빈틈 많은 코믹 연기가 더 잘 맞아보이는 브루스 윌리스의 호흡이 절묘하다. 미국 영화 특유의 말장난, 엎어지고 구르는 슬랩스틱도 여전히 힘이 세다. 신선한 얼굴도 잠시 등장한다. 브루스 윌리스와 데미 무어 사이에서 태어난 세 딸 중 막내, 타룰라다. 부모의 피를 이어받아 깜찍한 외모를 지닌 이 소녀는 영화 초반 걸스카우트 단원으로 등장해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원제 The Whole Ten Yards. 98분.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8일 TV 하이라이트]

    ●다큐멘터리 3일(KBS1 오후 10시10분) 찰나의 순간. 탄식과 환호가 뒤섞이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 숨가쁜 인생의 레이스가 펼쳐지는 곳, 경륜장. 여기, 삶의 페달을 힘차게 밟아나가는 선수들과 그 승부에 모든 것을 건 관중들이 있다. 인간의 질주본능을 깨우는 짜릿한 경륜장의 72시간을 기록한다. ●특파원 현장보고(KBS1 오후 11시) 어느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했던 미국 44대 대통령 선거 결과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역대 최다 득표수로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오바마 당선자는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도 한국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바마 당선자의 승리 배경과 향후 한국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KBS2 오후 9시5분) 우리말 소리가 가진 비밀을 알게 된 세종은 성삼문, 신숙주 등의 학사들과 더불어 모음 ‘ㅗ’가 들어가는 소리들을 찾아내느라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그러나 세종의 안질은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급기야 어의는 서책을 멀리하고 정무에 마음 쓰지 않으면 실명을 피하기 힘들 것이라 진단을 내린다. ●TV속의 TV(MBC 오전 11시) ‘스포츠 매거진’은 한 주간의 스포츠 소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스포츠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관심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이번 주 ‘TV 돋보기’에서는 종합 스포츠 프로그램 ‘스포츠 매거진’에 대해 알아본다.‘TV 시간여행’에서는 입동을 맞아 겨울나기를 준비하던 그 시절 풍경을 다시 본다. ●내 여자(MBC 오후 10시35분) 홍민예는 동진에서 박 사장 땅을 먼저 계약한 것을 알고 충격에 휩싸인다. 장 회장은 태희와의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현민이 동진으로 오는 수밖에 없다며 현민에게 말하지만 현민은 거절하고, 태희는 결국 유학길에 오른다. 한편, 장태성은 홍민예에게 SP조선과 신성조선이 공동경영방안을 협의할 것을 요구한다. ●유리의 성(SBS 오후 8시50분) 이모 인숙의 식당에서 석진을 만난 준희는 불현듯 석진의 뺨을 때리며 지금껏 잘 살았냐며 울부짖는다. 한편 유란은 남편의 변호사 사무실 개업식에서 과거의 연인이자 남편의 후배인 형석을 우연히 만나 그로부터 봉투를 건네받는다. 그 속에는 승하의 엄마이자 남편의 옛애인인 지연의 사진이 담겨 있는데…. ●토론광장(EBS 오후 10시10분)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시행된 고교 평준화 제도는 중학교육의 정상화, 사교육비 절감, 명문고가 밀집한 대도시의 인구 집중을 막기 위해 실시되었다. 하지만 학력의 하향평준화, 학교 선택권 침해, 교육 경쟁력 약화 등의 문제 역시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교육 평등화 등의 장단점을 살펴본다. ●토마토(YTN 오전 8시25분)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에는 말만 살찌는 것이 아니다. 가장 먼저 찌는 건 뱃살이다. 그건 더 이상 중년의 인격이 아니다. 각종 성인병을 유발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고혈압, 당뇨를 부르는 복부 비만의 위험성을 알아보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운동과 식이요법에 대해 알아본다.
  • [오바마의 미국] “미국산 차별땐 보복 불보듯”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 O)에 제소한 각국의 불공정 무역 사례는 연 평균 11건이었다. 그러나 현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임기 중 미국의 WTO 제소건수는 연간 3건에 불과하다. 민주당의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지난 5일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의회 역시 민주당이 장악하게 되면서 향후 미국이 보호무역의 장벽을 얼마나 강화하고 나설지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정강 정책에서 유난히 ‘공정무역’을 강조하고 있다. 자국산 상품이 해외에서 차별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하고 외국산 제품이 공정한 방법으로 생산돼 공정하게 자국에 수입돼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특정 국가에서 지나치게 많은 재정 보조금을 주어가며 산업과 기업을 키워 미국에 제품을 수출한다든지, 저임금과 가혹한 노동 조건에서 제품을 생산한다든지, 지나치게 값을 후려쳐 덤핑을 한다든지 하는 데 대해 미국의 국익 보호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것을 대외 교역 정책의 모토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는 선거 과정에서 “기존에 미국이 체결한 협정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미국에 불이익이 없는지)를 재점검하겠다.”는 전형적인 보호무역주의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정재화 국제무역연구원 통상연구실장은 “앞으로 대미 교역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산업계가 각별히 신경써야 할 것”이라면서 “미국산이 한국에서 차별받는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고 덤핑 수출의 의혹을 살 만한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대형마트에서 미국산 고기를 판매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국내 업계의 선택이므로 당장 문제 제기를 할 수 없겠지만 이런 사례들이 하나둘 쌓이면 다른 분야로 전이돼 보복성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예시했다. 어려운 국내 사정 때문에 민주당 정부가 과거처럼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구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바마가 선거 과정에서 줄곧 보호무역주의와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지만 자국 입장만 내세우기에는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위축 등 현재 상황이 너무 안 좋다.”면서 “다른 나라와의 통상에서 마찰을 빚을 경우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트라도 6일자 보고서에서 정권 초기에는 국내 문제가 중요시되기 때문에 통상에 신경 쓸 여지가 줄어들고 설령 보호주의 정책이 실시되더라도 선별적 규제를 적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임기 중반기에 접어들면 자유무역 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데스크시각] 거꾸로 가는 사교육대책/김성수 사회부 차장

    [데스크시각] 거꾸로 가는 사교육대책/김성수 사회부 차장

    1980년 여름, 과외가 전면 금지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중·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입시학원에 다니는 것도 금지됐다. 이른바 ‘7·30교육개혁조치’다. 전두환씨가 주축이 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내놓은 ‘깜짝카드’였다. 초헌법적인 조치라 뒷말도 많았다. 그래도 사회분위기는 찬성하는 쪽이 우세했다.‘과외망국론’은 당시에도 넓게 퍼져 있었다. 기자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다. 과외금지 조치라는 뜻밖의 행운(?)을 톡톡히 누렸다.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과외를 한번도 안 받았다. 학원도 다닐 필요가 없었다. 국가가 나서서 강제로 사교육시장과 격리해 준 덕분이었다. 과외금지 조치는 1989년 대학생에 한해 과외교습을 허용하는 식으로 완화된다.2000년 4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내린다.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신군부의 극약처방이 나온 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다. 한국사회에서 사교육비는 여전히 불치병으로 남아 있다. 뿌리가 너무 깊어 손을 대기조차 어렵다. 사교육시장은 양적인 팽창을 거듭했다. 지난해 기준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시장의 규모만 20조원이 훌쩍 넘는다. 그만큼 서민들은 아이들 과외비, 학원비 대느라 헉헉댔다.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은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때도 그랬다. 본고사를 없애고, 수능을 등급제로 바꾸는 식으로 대입제도에도 손을 댔다. 하지만 사교육은 곧바로 변화에 맞춰 다시 기승을 부렸다. 이명박 대통령도 ‘교육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이라는 교육공약을 내걸었다. 평준화 정책을 버리고 수월성(엘리트)교육으로 돌아섰다. 역시 현재까지 결과는 실망스럽다. 새 정부 들어 가계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 최근엔 경기까지 바닥이다. 다른 지출은 줄여도 사교육비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학부모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이 대통령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지난 9월23일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를 꺼냈다.“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교육비 절감 종합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불과 한달여 뒤인 10월28일 교육과학기술부,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등이 합동으로 ‘해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진단과 처방이 거꾸로 간다는 의구심이 든다.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시행, 자율형사립고 추진, 학교정보공시제 등을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대책들은 명백한 사교육 확대정책이다. 자율형 사립고만 봐도 ‘제2의 특목고’로 여겨진다. 또 다른 입학경쟁을 불러온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국적으로 일제고사가 보편화하면 학원을 찾는 학생은 더 많아진다. 이미 온라인 교육업체는 물론 시중 오프라인 학원에는 일제고사 대비 프로그램이 성업중이다.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밀어붙인 서울의 국제중 설립이나 외국인학교 입학기준 완화도 사교육 수요를 새롭게 유발하는 조치다. 대학자율화의 부작용으로 사교육시장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고려대의 수시모집 1차 합격자 발표를 보면 알 수 있다. 학교측은 내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특목고생을 많이 뽑기 위해, 비교과성적에 가중치를 두는 편법을 썼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고려대에 가려면 일단 외고에 들어가야 유리하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준 셈이다. 외고대비 입시 학원에 줄을 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번 경제위기로 적어도 2,3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처지에 사교육비 부담까지 가중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이다. 김성수 사회부 차장 sskim@seoul.co.kr
  • 추운 극장가 달굴 색색깔의 한국영화가 온다

    추운 극장가 달굴 색색깔의 한국영화가 온다

    늦가을이 지나고 찬바람 부는 초겨울이 훌쩍 다가온 가운데 극장가는 관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으로 치열하다. 꽃미남 4인방을 내세운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이하 ‘앤티크’)와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도발적인 상상력에서 출발한 ‘미인도’를 비롯해 ‘소년은 울지 않는다’, ‘순정만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이리’까지 수많은 한국영화들이 피할 수 없는 전쟁을 치르게 된다. 장르도 색깔도 서로 다른 다양성으로 무장한 이들 영화는 최근 한국영화의 불황으로 다소 움츠려든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따끈한 영화들을 소개한다. # 수능생을 노린다! ~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국내에서도 인기를 끈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앤티크’는 만화적 상상력과 기발하고 독특한 4명의 주인공들이 케이크숍 앤티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화 발표 후 원작만화 팬들 사이에서 이미 캐스팅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만큼 드라마 ‘궁’의 주지훈, ‘커피프린스 1호점’의 김재욱를 비롯해 유아인, 최지호 등 훈남배우들의 캐스팅은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 배우들은 촬영 2개월전부터 개인 일정을 미룬 채 파티쉐, 불어, 복싱, 댄스 등을 배우며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고 남남사이의 애정공세와 아찔한 키스장면 등을 위해 몸을 사라지 않는 연기를 선보였다. 또한 오감을 자극하는 케이크, 고풍스럽고 화려한 앤티크 소품들로 채워진 영화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라고 불릴만큼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여심을 자극한 훈남 배우들에게 빠져보고 싶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 은밀하고 치명적이지만 아름답다! ‘미인도’ 영화 ‘미인도’는 남자로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여성화가 신윤복(김민선 분)과 그의 스승 김홍도(김영호 분), 신윤복을 사랑한 남자 강무(김남길 분), 김홍도를 사랑한 여자 설화(추자현 분) 등 네 남녀의 치명적인 사랑을 담았다. 개봉 전부터 배우들의 파격노출과 수위 높은 묘사로 화제를 모았던 ‘미인도’는 자극적이기보다 네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배우들이 펼치는 성숙된 연기와 영속 속 숨은 문화재를 찾아보는 것도 볼거리 중에 하나.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봐야 되는 영화. # 전쟁을 겪은 두 소년의 감동이야기 ‘소년은 울지 않는다’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1953년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두 소년이 살아 남기 위해 비정한 어른들에게 맞서야 했던 전쟁 휴먼 드라마다. 이완과 송창의가 차음으로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전쟁에 두 배우의 젊은 에너지와 열정이 빛나는 영화다. 이성보다는 감성,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종두 역을 맡은 이완은 고난이도 액션을 선보였고 송창의는 이성적이고 명석한 소년 태호 역을 위해 자진 삭발을 감행하는 열정을 선보였다. # 원작만화의 인기를 이어간다! ‘순정만화’ 강풀의 인기 동명만화를 영화화한 ‘순정만화’는 사랑에 수줍고 서툰 네 남녀(유지태,이연희, 강인, 채정안)의 특별한 연애이야기다. 원작 만화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로 화제작이었기에 영화 제작은 개봉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멜로가이로 컴백한 유지태와 이연희가 그리는 풋풋한 로맨스와 연상녀 채정안과 연하남 강인이 그려나가는 특별한 러브 스토리가 추운 겨울 관객들의 마음을 놓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 열아홉 게이 소년들의 퀴어로맨스 ‘소년, 소년을 만나다’ 소년들 사이의 끌림을 풋풋하게 묘사한 퀴어 로맨스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청년필름의 대표이자 메가폰을 잡은 김조광수 감독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탄생된 영화다. MBC 일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김혜성과 MBC ‘김치 치즈 스마일’로 이름을 알린 이현진이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은 15분 분량의 단편 독립영화를 통해 성숙된 내면연기를 선보였다. 소년 사이에 오가는 묘한 감정에 빠지고 싶다면 두 소년의 로맨스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이리역 폭발사고’를 기억하나요? 지워지지 않은 상처 ‘이리’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건을 겪은 두 남매가 여전히 그 도시에 남아 상처를 끌어 안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이리’는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이 타인의 시선으로 그리고 동포의 시선으로 이리를 들여다 보고 있다. 영화는 이리역 폭발사고가 얼마나 참혹한 사고였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 사고를 통해 상징적으로 대변될 수 있는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그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외에도 주인공인 윤진서, 엄태웅의 내면 연기는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양성으로 관객들의 입맛을 자극할 이들 영화가 한국영화의 불황에 어떤 새로운 활기를 넣어줄지 기대된다. 사진=’앤티크’, ‘미인도’, ‘소년은 울지 않는다’, ‘순정만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이리’ (위에서 아래로)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6) 처참한 나날들

    [병자호란 다시 읽기] (96) 처참한 나날들

    인조가 항복의 예를 마치고 환궁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청군은 아직 철수하지 않았고, 그들은 조선 조정에 이런 저런 요구들을 쏟아냈다. 용골대와 마부대는 말을 탄 채 대궐을 무시로 들락거렸다. 그들은 홍타이지를 전송하는 데 예를 갖추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명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수군과 전함을 내놓으라고 닦달했다. 눈앞에 펼쳐진 전쟁의 상처는 참혹했다. 도성의 관아와 인가들은 불타고 여기저기서 시신들이 나뒹굴었다. 살아남은 어린애와 노인들은 굶어 죽거나 얼어죽기 직전의 상황에 몰려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 것인가. 어렵사리 목숨을 부지하고 종사를 보전했지만, 인조와 조정 신료들은 또 다른 ‘전장’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처참한 도성의 모습 인조가 창경궁으로 돌아온 것은 1월30일이었다.46일 만에 돌아온 궁궐은 궁궐 같지 않았다. 백관들은 흩어지고, 서리들과 하인배들도 가족들을 찾아 떠났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해도 누구에게 시켜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궁궐 바깥의 도성 모습은 참혹했다. 광통교 주변을 비롯하여 곳곳의 관아와 민가들은 불에 타버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 곳곳에는 참혹한 형상의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널려 있는 시신들을 보다 못한 한성부가 인조에게 건의했다.‘백골(白骨)을 묻어 주는 것이야말로 왕정(王政)의 급선무입니다. 길가에 버려진 시신들을 차마 볼 수 없으니 남정들을 징발하여 매장토록 하소서’.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도성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10살 미만의 어린애들과 70살이 넘은 노인들뿐이라는 보고가 올라왔다. 그나마 그들은 굶주린 채 추위에 방치되어 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었다. 호조에서 긴급 대책을 내놓았다. 노인들은 진휼곡을 풀어 구제하고, 아이들을 데려다 기르는 자에게는 노비로 삼을 수 있는 권한을 주자고 했다. 살아남은 자들, 그 가운데서도 그나마 힘이 남아 있는 어른들은 청군 주둔지 주변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청군의 철수가 곧 시작되려는 판에 포로가 된 가족들을 행여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조바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청군이 몰려 있던 살곶이(箭串) 부근이며, 마포 서강(西江)의 성산(城山) 부근으로 모여들었다. 당시 ‘청군 진영에 있는 사람 가운데 절반이 조선인’이라는 풍문이 돌 정도로 피로인(被擄人)들의 수는 엄청났다. 하지만 청군은 피로인들이 가족과 만나는 것을 엄중히 차단했다. 피로인들이 행여 청군 진영 바깥으로 나가려 하거나, 가족을 찾는 사람들을 향해 두리번거리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청군의 철편(鐵鞭)이 날아들었다. 서강 등지를 오가며 피로인들의 참상을 목도한 나만갑은 ‘적진에는 이미 죽은 사람, 화살을 맞았는데 아직 죽지 않은 사람, 무엇인가를 기원하며 합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했다. 참혹한 장면이었다. ●거듭되는 인조의 굴욕 1637년 2월2일, 홍타이지가 철수 길에 올랐다. 아니 홍타이지의 입장에서는 개선(凱旋)하는 길이었다. 그는 피로인 호송과 가도( 島) 공략 등 조선에서의 나머지 일들을 도르곤을 비롯한 부하들에게 맡기고 먼저 출발한 것이다. 살곶이에서 마장(馬場)을 거쳐 양주 쪽을 통해 북상하는 길을 잡았다. 홍타이지는 철수 길에서도 도르곤 등에게 수시로 전령을 보내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무엇보다 피로인들을 차질 없이 심양까지 끌고 오라고 강조했다. 인조는 홍타이지를 배웅하기 위해 거둥해야 했다.‘인조실록’에는 ‘청한(淸汗)이 철군하여 북쪽으로 돌아가니, 상이 전곶장(箭串場)에 나가 전송했다’고만 간략히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인조는 홍타이지를 전송하면서 다시 한번 삼배구고두례를 행해야만 했다. 거듭되는 치욕이었다. 인조는 치욕을 삼키며 홍타이지를 배웅했다. 하지만 홍타이지가 멀어져 간 길 위에서는 ‘차마 못 볼 장면’들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피로인들을 끌고 가는 청군 부대가 홍타이지의 뒤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청군은 조선인 피로인들을 세 줄로 세워 연행했다. 수백 명의 피로인들이 지나가면 그 뒤에 감시병이 붙고, 다시 수백 명을 줄 세워 끌고 가는 장면이 하루종일 반복되었다. 인조는 이 처참한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오던 길과는 다른 길을 잡아 도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홍타이지가 지시한 상황은 용골대와 마부대가 대궐을 드나들면서 인조에게 전달했다. 그들은 먼저 가도를 공격하는 데 협조하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공유덕 등이 전선을 수리하는 데 협조하고, 조선의 수군도 동원하라고 했다.‘요구‘라기보다 사실상 ‘지시’이자 ‘명령’이었다. 한창 기세가 등등한 그들의 요구를 뿌리칠 처지가 아니었다. 조정은 당장 신천(信川) 군수 이숭원(李崇元)과 영변(寧邊) 부사 이준(李浚)에게 황해도의 수군을 이끌고 청군과 합류하라고 지시했다. 인조는 수군을 청군에게 보내라고 지시한 뒤, 호조참의 신계영(辛啓榮)을 급히 강화도로 보냈다. 선박을 수리한다며 서해 연안으로 간 공유덕 일행에게 강화도 등지의 주민들이 약탈당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는 명목이었다. 더욱이 당시까지 원손(元孫)이 청군을 피해 교동(喬桐)에 은신해 있는 상태였다. 한편에서는 청 측의 요구를 이행하기 위해, 다른 한편에서는 그 과정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전전긍긍’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용골대 일행 가운데는 조선인 통역 정명수(鄭命壽)도 끼어 있었다. 그는 본래 은산(殷山) 출신의 노비였다. 일찍이 청에 투항한 뒤, 홍타이지의 신임을 받아 통역으로 조선을 드나들었다. 이제는 더 출세하여 어엿한 ‘상국의 통사(通使)’가 되어 조선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는 말을 탄 채로 창경궁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못했다. 정명수에게나, 조선 신료들에게나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소현세자, 심양으로 출발하다 병자호란 직후, 인조는 갖가지 치욕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런 그에게 무엇보다도 슬픈 일은 소현세자, 봉림대군과의 이별이었다.2월3일, 소현세자는 창경궁에 들러 부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그의 행차에는 청인 대여섯 명이 감시인으로 따라붙었고, 정명수는 빨리 돌아가야 한다며 성화를 멈추지 않았다. 2월8일 소현세자 일행이 떠나는 날, 인조는 창릉(昌陵) 근처까지 거둥하여 배웅했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만났을 때 백관들의 통곡 소리가 이어졌다. 인조는 세자 일행을 데려가는 도르곤에게 깎듯이 예의를 갖추었다.‘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자식이 이제 떠나니, 대왕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오랑캐’로 치부했던 청인, 그것도 아들보다도 나이가 어린 청 왕자에게 자식의 모든 것을 맡겨야 했던 아비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인조는 도르곤에게 또 다른 부탁을 빼놓지 않았다.‘자식들이 궁궐에서만 자랐는데, 지금 들으니 여러 날 동안 노숙(露宿)으로 벌써 병이 생겼다고 합니다. 가는 동안 온돌방에서 재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르곤은 그러겠다고 답한 뒤 출발을 채근했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절을 올려 하직하자 인조는 눈물을 쏟으며 당부의 말을 이어갔다.‘지나치게 화를 내지도 말고 청인들에게 가볍게 보이지도 말라’. 백관들이 통곡하면서 소현세자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세자 일행은 신하들의 통곡 속에 심양으로 떠났다. 인조와 소현세자의 이별 장면 또한 눈시울을 적시지 않고는 읽기 어렵다. 애틋하고 슬픈 인조의 부정(父情)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심양으로 들어간 소현세자는 이후 인조에게 ‘뜨거운 감자’가 되고 말았다. 청인들은 소현세자를 지렛대로 인조로부터 충성을 이끌어 내려 했다.‘여차 하면 인조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소현을 즉위시키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 와중에 인조와 소현세자는 서로 ‘경쟁자’가 되고 ‘정적’이 되어 갔다. 그 귀결이 소현세자의 돌발적인 죽음이었다. 병자호란은 그렇게 인조의 부자 관계부터 파괴시켜 가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제 버릇 못고친 日 해임 항공막료장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미화한 논문을 써 경질된 자위대 공군참모총장격인 다모가미 도시오(60) 전 항공막료장이 지난해 5월 항공자위대 자체 월간지에도 “침략은 거짓”이라는 취지의 글을 기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합참대학인 통합막료학교의 학교장 때인 2004년에도 같은 잡지에 자신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을 담은 글을 게재했다. 이른바 골수 우익이자 상습범인 셈이다. 3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모가미는 항공자위대 간부들에게 배포되는 월간지 ‘호유(鵬友)’의 지난해 5월호에 ‘일본인으로서의 긍지를 갖자’는 제목의 글에서 “침략·잔학행위 자체가 거짓, 날조”라는 왜곡된 지론을 폈다. 다모가미는 이 글에서 “전후(戰後) 교육 가운데 우리나라의 역사와 전통은 매우 무고한 죄를 뒤집어썼다.”면서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을 침략해 온갖 잔혹한 행위를 다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거짓, 날조한 것이라고 증명됐지만 많은 일본 국민은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는 느낌이 있다.”고 억지 논리를 전개했다. 난징 대학살과 관련, 그는 “혼란의 와중에 순수한 민간인이 포함됐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군이 중국의 민간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일은 전혀 없었다.”고 썼다. 그러나 방위성의 다모가미에 대한 조치는 달랐다.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은 지난달 31일 다모가미의 경질에 대해 “정부 견해와 다른 의견을 공표한 것은 항공막료장으로서 부적절하다.”고 밝힌 반면 지난해 월간지 기고는 당시 문제를 삼지 않았다. 항공자위대 측도 “지면에 발표된 의견은 공적인 견해가 아니다. 공인이 아닌 개인의 사고 방식으로 받아들였다.”는 엉뚱한 이유를 댔었다. 더욱이 다모가미는 학교장 시절, 자위대원들에게 일반 매체에 자신과 같은 역사관을 투고토록 권장했다. 한편 방위성은 이날 다모가미가 스스로 퇴임할 의사를 밝히지 않음에 따라 경질을 사유로 강제로 정년퇴직시켰다. 다모가미는 이날 밤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견해와 달라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지만 국민을 위해 신념을 갖고 썼다.”며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hkpark@seoul.co.kr
  • 이 가을, 체호프 ‘갈매기’ 한편쯤!

    이 가을, 체호프 ‘갈매기’ 한편쯤!

    안톤 체호프는 올 가을 한국 공연계가 유난히 사랑한 극작가다. 말리극장의 ‘세자매’, 타바코프극단의 ‘바냐아저씨’ 등 러시아 유명 극단의 작품들이 성황리에 공연된 데 이어 이번엔 러시아의 촉망받는 연출가 유리 부투소프가 한국 배우들과 공동작업한 ‘갈매기’가 무대에 오른다. 예술의전당이 개관 20주년 기념작으로 공들여 기획한 작품이다. 유리 부투소프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이나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부조리극을 독창적인 해석과 과감한 생략법 등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연출가로 이름높다.2003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보이체크’로 한국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인 ‘갈매기’는 여배우를 지망했다 좌절하는 니나와 작가를 꿈꾸는 청년 트레플레프, 은퇴한 여배우 아르카지나, 위선적인 작가 트리고린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통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투소프는 체호프 특유의 비판적 사실주의극인 이 작품을 삶의 부조리한 이면에 초점을 맞춘 현대적 부조리극으로 재해석해낸다. 그는 “체호프는 현대 연극사의 첫번째 부조리극 작가”라면서 “의사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냉혹한 작가인 체호프는 다른 작가들이 다루지 못했던 인생의 진실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작품 안에 담긴 많은 테마 중 한 두개에만 집중하면서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줄이는 그의 연출 기법은 원작과 차별되는 독창적인 ‘갈매기’를 선사할 예정이다. 번역과 협력연출을 맡은 김종원은 “2004년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갈매기’가 원작에 충실했다면 부투소프의 ‘갈매기’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들의 고민을 담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부투소프와 여러 차례 작업한 무대디자이너 알렉산드르 슈시킨이 함께 한다.‘보이체크’‘꼽추, 리처드3세’등 한국 무대 경험이 풍부한 슈시킨은 음습하고 우울한 세상과 비정상적인 캐릭터들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높고 삐딱한 무대, 상식을 뛰어넘는 소품과 의상 등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출연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영화배우 겸 탤런트 김태우가 트레플레프역을 맡아 연극에 처음 도전하고, 남명렬·정재은·이호성·김소희·김경익 등 탄탄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다.7~2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02)580-1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다빈치 통해 읽는 진화생물학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김동광·손향구 옮김, 세종서적 펴냄)은 다윈 이래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의 진화학자 스티븐 J 굴드가 잡지 ‘내추럴 히스토리’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진화의 개념과 발전사를 중심으로 서술한 이 과학 에세이에는 ‘인문주의적 박물학자’로서의 저자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책은 르네상스 시대 천재 예술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조개화석에 쏟은 열정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다빈치는 노아의 홍수에 의해 해양생물 껍질이 산으로 이동했다는 식의 당시 화석이론이나 ‘화석은 암석에서 자라나는 것’이라는 신플라톤주의자들의 이론에 반대했다. 대신 철저한 고생물학적 관찰을 바탕으로 ‘땅의 융기설’을 주장했다. 저자는 이같은 다빈치의 연구를 단지 ‘시대를 앞서간 외계인’의 성과쯤으로 접근해서는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위대한 과학의 업적도 모름지기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배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새로운 화석이론에도 ‘지구를 살아 있는 인체에 비유하는’ 중세의 인문학적 관점이 깔려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루터에 대한 이야기 또한 인문학적인 시각과 자연과학적인 관점을 연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준다. 종교개혁가 루터를 단죄하기 위해 1521년 신성로마제국 보름스에서 제국의회가 소집되지만, 루터는 성경이나 명백한 논리에 의해 잘못이 입증되지 않는 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루터의 반대파는 물론 루터파마저도 금서, 분서, 교의 말살, 박해 같은 독선적이고 잔혹한 학살을 서슴지 않는다. 이같은 불관용과 폭력이라는 인간 행위를 규명하기 위해 저자는 진화생물학적 근원을 더듬는다. 예컨대 소집단을 이뤄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인 조상들이 생존을 위해 저지른 행위에 대한 기억이 ‘저주받은’ 유전자가 돼 대물림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모두 21편의 에세이를 통해 자연과학의 가장 깊고 넓은 주제인 ‘진화’가 불러 일으킨 희망과 편견, 갈등과 오류 등을 유머러스하고도 적나라하게 펼쳐 놓는다.2만 5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5) 三學士의 최후

    [병자호란 다시 읽기] (95) 三學士의 최후

    인조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상징되는 치욕적인 항복과 함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귀천을 막론하고 조선 사람들의 참혹한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인조를 대신해 볼모로 끌려가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화친을 방해하여 전쟁을 불러왔다는 ‘죄목’으로 연행되는 삼학사, 경향 각지에서 청군에 붙잡힌 수십만의 포로. 그들은 청군의 엄중한 감시 속에 심양(瀋陽)을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했다. 그들 앞에는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통 속에 끌려가는 사람이나, 슬픔을 삼키며 그들을 보내는 사람이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통곡했다. 그리고 곧바로 삼학사의 죽음 소식이 날아들었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삼학사 가운데 가장 연장이었던 홍익한(洪翼漢·1586~1637)은 당시 52세였다.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진사 홍이성(洪以成)과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습( )이었는데 뒤에 익한으로 개명했다. 이정구(李廷龜)의 제자였던 그는 1615년 소과(小科)를 거쳐,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주에서 정시(庭試)에 급제했다. 이후 언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병자호란 직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윤집(尹集·1606~1637)은 당시 32세였다. 본관이 남원이었던 그는 현감 윤형갑(尹衡甲)과 황씨의 소생으로 일찍이 백형 윤계(尹棨)에게 수학했다.1627년 소과에 급제하고 1631년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했던 그는 1636년 당시 홍문관 교리(校理)였다. 윤집은 김상헌의 조카딸과 결혼하여 3남을 두었는데, 후일 증손녀가 홍익한의 손자에게 출가하여 사후에 홍익한과 사돈 관계로 인연이 이어졌다. 오달제(吳達濟·1609~1637)는 당시 29세였다. 그는 해주가 본관으로 오윤해(吳允諧)의 셋째 아들이자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조카였다.1627년 소과를 거쳐 1634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고, 병자호란 당시 홍문관 수찬(修撰)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조정에는 삼학사 말고도 많은 척화신들이 있었다. 윤황(尹煌), 유철(兪 ), 이일상(李一相), 유계(兪棨), 정온(鄭蘊), 조경(趙絅) 등이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세 사람이 청군에 넘겨지는 ‘희생양’으로 낙점된 까닭은 무엇일까?그것은 홍타이지의 칭제건원(稱帝建元)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이들이 누구보다 격렬하게 홍타이지의 ‘참월(僭越)’을 비난하고 주화신(主和臣)들을 성토했기 때문이다. 홍익한은 1636년 2월 ‘홍타지이가 보낸 사신의 머리를 베어 명나라에 보내든가, 그것이 싫으면 나의 머리를 베라.’는 극렬한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오달제는 1636년 10월 ‘공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하고 거리낌없이 화친을 시도하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최명길을 겨냥하여 직격탄을 날렸다. 윤집은 더 나아가 ‘명나라의 은혜를 배신하고 오랑캐와 화친을 주도하는 최명길은 진회(秦檜)보다 나쁜 자’라고 극언을 퍼부은 바 있었다. ●홍익한의 절개 청군이 철수할 때, 홍익한은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있었다. 조정은 2월12일 증산현령(甑山縣令) 변대중(邊大中)을 시켜 홍익한을 적진으로 압송토록 했다. 변대중은 홍익한을 결박하여 심한 모욕을 주었고, 음식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홍익한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결박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조정은 청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그를 신속하게 압송했는데, 2월20일에 벌써 만주의 통원보(通遠堡)에 도착했다. 통원보의 청인들은 그가 끌려온 사연을 듣고 음식물을 내어 후히 대접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만갑은 ‘병자록’에서 ‘개돼지 같은 청인들이 변대중 같은 조선 사람보다 훨씬 나았다.’고 통탄했다. 심양에 이르러서도 홍익한은 의연했다. 용골대가 그에게 ‘너의 나라 신료들 가운데 척화를 주장한 자가 퍽 많은데, 어찌 유독 너만 끌려왔는가?’라고 묻자 홍익한은 ‘작년 봄에 네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소를 올려 너의 머리를 베자고 청한 것은 나 한 사람뿐’이라고 응수했고, 용골대는 웃으며 가버렸다고 한다. 홍타이지는 홍익한을 회유하기 위해 그를 별관에 가두고 연회도 베풀어 주려고 시도했다. 과거 수많은 명나라 이신(貳臣)들을 받아들인 경험이 있는 홍타이지의 입장에서 홍익한은 ‘전향’시켜야 할 중요한 대상이었다.‘조선의 골수 척화파까지도 결국 홍타이지의 은덕에 감화되었다.’는 소문은 향후 조선을 제어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익한은 단호했다. 그는 글을 써서 자신을 회유하려는 홍타이지의 기도를 정면에서 반박했다.‘대명조선국(大明朝鮮國)의 잡혀온 신하 홍익한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감히 글로써 밝힌다. 지난해 봄 금나라가 맹약을 어기고 황제라 칭한다는 말을 들었다. 맹약을 어겼다면 이는 패역한 형제이고, 황제라 칭했다면 이는 두 천자(天子)가 있는 것이다. 한집안에 어찌 패역한 형제가 있을 수 있으며, 천지간에 어찌 두 천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하여 본래 예의를 숭상하고 직절(直截)을 기풍으로 삼는 언관으로서 맨 먼저 이 논의를 주장하여 예의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상소 한 장을 올림으로써 가정과 나라에 패망을 초래하였으니 만 번 도륙당한다 할지라도 진실로 달게 받을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속히 죽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명조선국의 신하.’이 말 속에 이미 홍익한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나는 조선의 신하이자 명의 신하이니 그대들 오랑캐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 홍익한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홍익한의 의지를 확인한 홍타이지는 곧바로 그를 처형했다. ●윤집과 오달제의 최후 윤집과 오달제는 청군 후발대에 이끌려 1637년 4월15일 심양에 도착했다. 홍타이지는 두 사람도 회유하려고 시도했다.4월19일 용골대가 두 사람을 앉혀 놓고 홍타이지의 말을 전했다.‘너희들이 척화를 외쳐 두 나라의 틈이 생기게 했으니 그 죄가 매우 중하다. 죽여야겠지만 특별히 살려주고자 하니 처자를 데려와 이곳에서 살겠는가?’ 윤집은 ‘난리 이후 처자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고, 오달제는 ‘고통을 참고 이곳까지 온 것은 만에 하나라도 살아서 돌아가면 우리 임금과 노모를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면 죽는 것만 못하다. 속히 죽여 달라.’고 응수했다. 격분한 용골대는 그들을 묶어다 심양 서문 밖에서 죽였다. 청인들은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뒷날에도 뼈들이 쌓여 있는 형장에서 두 사람의 시신을 찾을 길이 없어 집안의 종들을 시켜 초혼(招魂)하여 온 것이 전부였다. 오달제에게는 노모와 임신한 아내가 있었다. 심양으로 끌려갈 때 그가 남긴 시구(詩句)들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그는 인조와 노모를 생각하면서 “외로운 신하 의리 바르니 부끄럽지 않고/임금님 깊으신 은혜에 죽음 또한 가벼워라/이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있다면/홀로 계신 어머님 날 기다리는 거라오”라고 읊었다. 아내에게 부치는 시도 절절하다.“부부의 은정 중한데/만난 지 두 해도 못 되었구려/이제 만리에 이별하여/백년 언약 헛되이 저버렸구료/땅 멀어 편지 부치기 어렵고/산이 첩첩하여 꿈조차 더디오/나의 살길 점칠 수 없으니/뱃속의 아이나 보호 잘하오” 윤집 집안의 사연도 처절하다. 병자호란 당시 남양부사(南陽府使)로 있던 윤집의 형 윤계 또한 전란 중에 순절했다. 그는 의병을 일으켰는데 기습을 받아 붙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윤계 또한 청군 앞에서 무릎 꿇기를 거부하다 혀가 잘리는 등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후손들은 왜란 당시 순절한 할아버지 윤섬(尹暹)과 윤계, 윤집의 글을 묶어 ‘삼절유고(三節遺稿)’를 펴낸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죽이기는 했지만 청조는 이후 삼학사의 절의를 인정했다. 그들은 삼학사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비석을 세웠다. 강희제(康熙帝)는 훗날 ‘조선이 명나라 말년에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은 것은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찬양한 바 있다. 삼학사로 대표되는 조선의 ‘절의’는 청인들이 보기에도 분명 이채로웠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사설] 본격 불황 이제 시작이다

    미국발(發) 국제금융 불안이 국내 금융시장에 이어 실물경제에서도 충격파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11월1일 2085.45를 기록했던 코스피 지수는 1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1년만에 반토막 난 것이다.3·4분기 경제성장률은 3.9%로 3년여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반영하는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전 분기 대비 3%, 작년 동기 대비 3.2% 줄었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수출이 전 분기 대비 1.8%의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문제는 이제 막 불황의 터널에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사실만 확인될 뿐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는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은행과 건설업체에 돈을 쏟아붓고 있으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고 있다.1,2금융권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과 가계도 닥쳐올 혹한에 대비해 지갑을 굳게 닫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변수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장률 하락-소비 및 투자 위축-고용 불안-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다. 금융시장의 총체적 붕괴, 백화점 매출 둔화와 고용 사정 악화, 수출 증가세의 급격한 둔화 등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적신호가 켜졌음에도 정부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내년도 성장률 5%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뻔히 예고되고 있음에도 재정운용의 키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말로만 선제대응이다. 정치권 역시 ‘100년만의 쓰나미’라는 선진국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 사이에 빈민층과 영세 서민들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던 이명박정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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