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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모독 근절하려면… 혁명의 원천 ‘사회적 힘’을 재평가하라

    5·18 모독 근절하려면… 혁명의 원천 ‘사회적 힘’을 재평가하라

    나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 광주항쟁을 정면으로 왜곡한 지만원씨의 행동이나, 이런 식의 공청회를 개최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정치적 자질이나, 이것이 논란이 된 상황에서 ‘역사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 한국당 지도부의 속내에 대해서 따로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에 국회와 정부가 법률과 국가정책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한 사안인 데다 내년이면 40주년이 되는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퇴행적 행동이 대낮에 버젓이 일어나게 되는 우리 사회의 특수한 상황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필요성을 느낀다.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로만 구성된 지상낙원은 없었다.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더러 목표로 삼는 유럽에도 나치주의자들이 있고 미국에도 인종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문제는 착하지도 않고 순수하지도 않은 사회적 부류의 과잉 확산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상낙원의 정반대 편에 서게 됐다는 안타까운 사실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독 우리 사회에서 빈발하는 역사적 퇴행성에 대해서는 별도의 해석이 필요한데 그 성격과 원인을 다음 다섯 가지 관점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는 사회구조적 해석이다. 과거의 쓰라린 교훈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퇴행적 경향은 현실에서 극단적 반공주의, 배타적 지역주의, 재벌추종주의, 배금적 황금만능주의, 이기적 부동산투기, 종교적 근본주의, 지역토호, 개발주의, 냉전주의, 부패주의, 사이비 언론집단, 성적제일주의, 정치적 모리배 등 매우 다양한 양태로 폭넓게 존재한다. 일부 영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언론, 공직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만연된 구조적인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도취돼 양극화된 사회적 상황과 존재들을 간과한다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둘째는 역사적 해석이다. 우리의 근현대 200년은 고단한 역사적 과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유일한 목표가 됐다. 생존이 유일한 목표가 되면서 생존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이 정당화됐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생존투쟁이 절대적인 진리로 자리잡게 됐다. 당연히 생존 및 생존을 위한 수단을 제외한 모든 사회적 가치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되어 포기됐다. 결국 살아남아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사적 상황이 조성됐고 독재와 쿠데타와 정경유착과 부패를 거듭하면서 ‘천민 자본주의 공화국’으로 고착됐다. 그러므로 오늘의 대한민국은 식민지배의 정서와 분단의 토대 위에서 형성된 천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결합한 기형적 결과물이다. 셋째는 엘리트주의적 해석이다. 고단한 역사에 대한 사회적 대응은 저항과 굴종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통상 소수는 저항하고 다수는 굴종한다. 이때 저항하는 소수가 굴종하는 다수를 포용하는 정도에 따라 역사의 진로가 결정된다. 소수가 다수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모범의 창출이 필요하다. 민족사 전개 과정에서 모범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지는 미국의 워싱턴, 남미의 볼리바르, 터키의 케말 파샤, 유고의 티토, 베트남의 호찌민, 중국의 마오쩌둥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애굽에서 모세나 켈트족에서 아서왕의 역할도 마찬가지였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구슬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보배로 단결시키는 모범의 창출이 필요한데 근현대 200년의 과정에서 저항의 지도자들은 유효한 국민적 모범을 창출하지 못했다. 넷째는 성찰적 해석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개선의 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기회를 놓쳤다. 해방이 분단과 전쟁으로 역행하는 상황에서 해방정국의 지도자들이 분단을 막고 친일파를 처단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민족적 역량을 결집하기보다는 권력투쟁에 매몰돼 친일파와 결탁해 외려 분단을 조장했다. 다시 1960년 4월 혁명에서는 정권을 장악한 민주당의 분열로 혁명에서 표출된 국민적 여망은 좌절됐고, 이런 경험은 10·26과 6월 항쟁에서도 거듭 되풀이됐다. 민주화의 중대한 과도기에 군부와 야합해 몰락 직전의 군부독재세력에 면죄부를 발급하고 민주화의 방향을 틀어버린 ‘3당 합당’은 실패의 극단이다. 그 결과 우리는 친일파 청산에 실패한 후 다시 군부독재 청산에 실패함으로써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역사청산을 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했다. 다섯째, 분단 기원론이다. 적어도 해방 이후에는 이 모든 상황의 중심에 분단이 존재한다. 분단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아니지만 기왕에 존재하던 문제들을 포함한 모든 상황을 악화시켜 사회적 극단주의를 창출한 원천적 주범이다. 분단은 또한 전쟁과 남북대결로 확장되면서 극단주의를 유지 재생산하는 자양분이 됐다. 분단의 입장에서 분단을 위해서라면 참혹한 전쟁도 마다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분단이 부과한 해악과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 통일 이상의 지상명령은 없다”고 말한 장준하의 발언이 가진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다섯 가지 해석에는 크고 작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고 모든 역사적 해석은 당대의 실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증명되는 것이므로 결국 누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물론 당연하게도 대통령과 정권이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려가 없이는 불완전하다. 민주화가 국가의 민주화와 사회의 민주화를 병행하는 이중 민주화의 과정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처럼 분단을 극복하고, 사회적 극단주의를 해결하면서,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할이 병행돼야 한다. 일찍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화”로 표현했던 불발된 명제를 다시금 화두로 제기하는 이유는 우리 역사에서 사회가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해방 전의 의병운동이나 독립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해방 후의 변화 역시 예외 없이 사회적 힘에 의해 시작됐다. 4월 혁명과 6월 항쟁은 물론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힘은 변화의 유일한 원천이자 동력이었다. 사회적 힘이 혁명을 가능하게 했고 그 혁명은 태풍처럼 홍수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태풍을 구성하는 모든 바람이 한 방향으로 질서정연하게 부는 것이 아닌 것처럼 홍수를 만들어낸 모든 물줄기가 오와 열을 갖추어 흘러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 혁명 또한 크게 일어나 여러 갈래로 움직이면서 빠르게 소멸됐다. 결국 사회적 힘은 혁명의 원천이되 스스로 권력으로 승화되지 못했다. 혁명은 사회가 시작했지만, 권력은 정당의 몫이었다. 혁명은 태풍처럼 기존 권력을 붕괴시켰지만 힘의 분산으로 소진됐고, 권력의 공백은 정당이 장악했지만 이미 태풍은 아니었다. 태풍의 소진으로 정당에 대한 강제력은 상실됐고 혁명의 보조세력일 수밖에 없는 정당은 집권과 동시에 혁명의 대의에서 이탈했다. 이 과정을 반복한 것이 한국 민주화의 특징이자 본질적인 한계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원천인 사회적 힘이 재평가돼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도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대한민국에서 미래를 전망하는 작업은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실천됐던 사회적 힘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사회가 해야 할 일이지만 정권도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상지대 총장
  • “서비스는 그대로인데 요금 올린다니”…16일부터 서울 택시요금 3800원

    “서비스는 그대로인데 요금 올린다니”…16일부터 서울 택시요금 3800원

    서울 택시요금, 3000원에서 3800원으로 인상담배냄새나는 차량 안, 승차 거부, 퉁명스러운 대응 등서비스 개선 없이 요금만 인상하자 시민 반응은 시큰둥3000원인 서울 택시 기본요금이 16일 오전 4시부터 3800원으로 인상된다.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적용되는 심야 기본요금은 3600원에서 4600원으로 오른다. 택시 요금 인상은 지난해부터 예고됐지만, 시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정비되지 않은 차량 안, 승차 거부, 택시 기사의 퉁명스러운 대응 등 고질적인 서비스 문제는 요금이 아무리 올라도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서울 택시요금은 지난 2013년 10월 24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랐다. 6년 동안의 물가 인상, 택시 기사들의 열악한 처우 등은 이번에 요금을 인상하는 이유기도 하다. 15일 서울시에 따르면 인상된 요금은 16일 오전 4시 이후 탑승부터 적용된다. 기본요금 뿐 아니라 미터기가 올라가는 속도도 빨라진다. 100원당 거리요금이 현행 142m에서 132m로 줄면서 요금 100원이 추가되는 시간도 35초에서 31초로 줄어든다. 요금미터기가 개정되지 않은 택시에 탑승한 경우에는 차량 내부 요금표를 기준으로 내고, 요금미터기가 개정된 차량에 탑승한 경우에는 요금미터기 금액대로 내면 된다.택시 요금 인상 소식에 시민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직장인 이현진(37)씨는 “택시 기사 분신 소식을 들으면 안타깝다가도 주말에 홍대나 종로에서 승차거부하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이 사라진다”며 “이런 와중에 요금까지 오른다니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권모(28)씨는 “요금이 오른다는 소식 이후에는 승차 공유 서비스인 ‘타다’를 이용하고 있다”며 “내 돈 내면서 담배 냄새에 쩔어 있는 시트나 불친절한 말투,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 툴툴대는 등 불편함을 느낄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물론 지난 6년 동안 물가가 오른 만큼 택시 요금을 올려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법인택시(2인1차제 기준)를 모는 택시기사는 하루 평균 10.8시간을 근무하고, 하루 평균 납입기준금(사납금)은 13만 5000원을 내야 한다. 월 217만원 정도를 받는 열악한 수입 구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요금 인상에 걸맞은 서비스 개선 없이는 택시업계 전체가 고사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카카오택시, 티맵택시 등 모바일 기반의 택시 호출 서비스뿐 아니라 카카오카풀이나 타다 등 기술의 발전에 따른 승차 공유 서비스의 도입을 언제까지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도 승차거부를 비롯한 서비스 개선 요구에는 동감했지만, 요금 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선에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법인택시를 모는 이모(49)씨는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자는 것”이라면서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장시간 근무하는 게 일상이지만, 운전이라는 노동의 대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독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재 전국민주택시노조 정책국장은 “승차거부가 없어야 하고, 택시가 손님을 고르기보다는 손님이 택시를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서비스가 개선돼야 한다”면서도 “지금까지는 요금 인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납금을 올리면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이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요금 인상에 앞서 승차거부 택시 퇴출하고 심야시간 택시공급을 확대하는 등 서비스 개선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택시요금 인상으로 시민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운수종사자 처우개선을 통해 서비스가 개선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관리할 것”이라며 “지도·감독을 소홀히 한 택시회사는 예외 없이 법에서 정한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12살 아이 몸무게가 10㎏…사진 한 장이 보여준 잔혹한 현실

    12살 아이 몸무게가 10㎏…사진 한 장이 보여준 잔혹한 현실

    내전 국가 중 하나인 예멘에 사는 12세 소녀의 모습이 공개돼 충격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파티마 쿠오바라는 12세 소녀는 예멘의 내전으로 궁핍한 삶을 이어가는 수백만 명의 예맨 국민 중 한 명이다. 현재 파티마의 몸무게는 고작 10㎏. 2세 영아의 몸무게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기아 상태와 부족한 의료서비스 탓에 몸무게뿐만 아니라 뼈와 피부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 상황이다. 그나마 파티마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 것은 파티마의 언니가 동생이 죽을 것을 염려해 간신히 병원까지 업고 간 덕분이다. 파티마를 진료한 의사인 마키아 알-아슬라미는 “체내 모든 지방이 이미 다 소진됐고, 오로지 뼈 밖에 남지 않은 몸상태”라면서 “현재 이 아이는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려있다”고 진단했다. UN에 따르면 현재 내전이 한창인 예멘에서 파티마와 같은 영양실조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미 10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근으로 고통받고 있다. 의사인 알-아슬라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이 병원의 문턱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이번 달에만 40명이 넘는 임신부가 심각한 영양실조로 실려왔다”면서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이 병원에서 심각한 영양실조로 숨진 사람은 14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파티마의 언니는 “우리는 음식을 살만한 돈이 없다. 우리가 가진 것은 이웃이나 친척이 준 것 뿐”이라면서 “60대인 아버지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저 나무 아래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 호소했다. 이어 “만약 우리가 이곳에 계속 머문다면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새 굶어 죽을 것”이라면서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덧붙였다. 알-아슬라미는 “내전으로 인한 이 같은 기근은 재앙과 다름없다. 예멘 사회와 가정은 모두 파괴됐다”면서 “유일한 해결책은 이 전쟁을 끝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박현갑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러 극동 개발 지휘 트루트네프 부총리·초대 북방위원장 역임 송영길 의원

    박현갑 논설위원이 만났습니다…러 극동 개발 지휘 트루트네프 부총리·초대 북방위원장 역임 송영길 의원

    극동 러시아는 ‘얼음 속 보석’으로 불리운다. 수산, 광물, 산림자원이 널렸지만 눈보라 등 혹한의 날씨로 동토의 땅이다. 석유, 천연가스 자원이 널린 북극해의 야말반도에서부터 우리의 슬픈 역사와 망향의 한이 서린 사할린주, 러시아 유일의 부동항이자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핵심 요충지인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연해지방 등 9개 극동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극동관구의 총면적은 640만㎢로 러시아 국토의 36%, 남한의 30배 크기이지만 인구는 630만명으로 러시아 전체 인구의 4.3%에 불과하다. 도로, 철도 등 교통수단이자 물류 인프라도 미흡하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2010년대부터 ‘신동방 정책’을 통해 극동 러시아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유리 트루트네프(62) 부총리가 극동연방관구 전권대표로 개발을 진두지휘한다. 2012년에는 극동 경제문제를 전담할 중앙부처로 극동개발부도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는 러시아, 몽골, 중국의 동북 3성 등 유라시아 국가와의 경제협력 확대를 골자로 한 ‘신북방정책’을 추진 중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4개월 만인 2017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에서 9개 사업(조선, 항만, 북극항로, 가스, 철도, 전력, 산업단지, 농업, 수산)에서의 한러 간 협력을 제안했다. 이를 추진할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도 출범시켰다. 한러 간 극동 러시아에서의 경제협력 전망에 대해 러시아 부총리와 초대 북방위원장을 지낸 송영길 민주당 의원에게 각각 들어 봤다.■“韓기업 러 물류·조선·보건 등 관심…양국 상호 장점 공유하면 좋을 것”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지난 12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영빈관은 극동 러시아에 관심 있는 국내 기업과 러시아 기업인들로 북적댔다. 2017년 9월 동방경제포럼 당시 코트라와 러시아 극동투자수출지원청이 한러 기업의 극동지역 비즈니스 협력 확대를 위해 맺은 업무협약에 따라 해마다 갖는 한국 투자자의 날 행사 참석자들이었다. 올해로 세 번째 행사인데 서울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참석자 가운데 가장 돋보인 인물은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관구 대통령 전권대표였다. 매년 행사 때마다 국내 기업인들을 1대1로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해소하는 민원해결사를 자처하고 있다. 트루트네프 부총리는 페름(Perm)시 시장, 주지사를 거쳐 러시아 천연자원환경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가라테 6단 소유자로 러시아 무술연맹 회장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2박 3일간의 방한 일정을 끝내고 귀국하는 13일 오후 서울 롯데호텔에서 했다.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의 핵심인 ‘9브리지(bridge)행동계획’에 서명했다. 러시아 입장에서 9가지 협력사업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해 주기를 기대하는 분야가 있나. “우리가 어디에 투자할지를 정하는 게 아니라, 투자자가 정해서 하는 것 아니겠느냐. 한국 투자자들이 관심 있는 분야는 물류, 조선, 수산가공, 건설, 보건 등으로 알고 있다.” -부총리가 매년 외국기업의 투자 프로젝트를 점검하는 게 인상적이다.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희 업무란 게 사무실에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 한러 협력에 대해 말하자면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도 있지 않느냐. 두 나라 간 신뢰, 거래의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직접 기업인들을 만나 장벽이 있다면 그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을 한다. 우리는 투자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조각처럼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 가고 있다. -올해가 3회째 행사인데 성과가 있나.” “예전보다 (투자자들의) 질문이 구체화됐다. 옛날에는 한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투자 시 러시아에서 뭘 해 줄 수 있는지, 부지 선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면 지금은 그러한 검토를 다하고 실질적인 투자에 대해 얘기한다. 예를 들어서 산업단지를 조정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혜택받고 싶다는 등 실질적인 내용으로 진행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 내 국제의료특구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 의료기관이 진출하면 기대효과는. “한국병원을 국제의료특구에 설립하면 러시아뿐만 아니라 한국·중국·일본 등 주변국에서도 많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거리상으로 보자면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스크가 2~3시간밖에 안 걸린다. 많은 사람이 의료관광을 할 수 있다. 극동지역 러시아인들은 현지에서 바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국 의료기관 진출을 계기로 양국 간 의료기술 공유를 통한 의료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의료분야는 의료법 등 규제가 복잡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를 통해 환자들이 받는 의료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만든 극동개발부의 성과가 궁금하다. “숫자로 말하겠다. 극동 러시아에 대한 직접 투자는 16배 늘어났다. 러시아 전체 지역에서 차지하는 극동 투자비중이 종전에는 2%였는데 지금은 32%다. 그리고 새로 운영되는 기업이 180개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도 1500개다. 일자리 2만 7000개도 창출했다.” -3년 전 한국 경제부총리와의 면담 때, 사할린의 스키 리조트 건설에 한국 기업 참여를 제안했더라. 리프트, 도로 등 인프라는 러시아가 책임지고 한국 등 외국인 관광객 유입을 기대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고 있나. “극동지역의 해외관광객 증가율이 연 30% 정도다. 한러 비자면제협정, 2012년 이후 연해주 일대 항공자유화 등의 덕분이다. 사할린으로 말하자면 아직은 개발 중이다. 스키 트랙은 2개에서 14개로 늘었다. 호텔도 계속 늘고 있다. 현재 사할린 주 정부가 주최하는 제1회 아시아청소년 동계 스포츠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한국팀이 1등을 하고 있다.” -극동 러시아에서의 한러 경제협력을 전망한다면. “한러가 우정과 신뢰가 강화되고 상호 장점을 공유하면 좋겠다. 두 나라는 경쟁국가가 아닌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느냐. 임업, 수산, 북극항로 개설, 물류 등에서의 협력을 강화해 서로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eagleduo@seoul.co.kr■“초당적 북방정책 野 비판 없지만 美·유럽 경제제재로 상당히 위축” 송영길 민주당 동북아특위 위원장 민주당의 동북아 평화협력 특별위원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북방정책을 구체화할 대통령 직속기구인 북방경제협력위원회의 당 버전이다. 동북아특위 위원장이자 북방위 초대 위원장을 지낸 송영길 의원을 만나 한러 경제협력 방안을 들어 봤다. 인터뷰는 지난 8일 의원회관에서 했다. -역대 정부의 북방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을 평가한다면. “노태우 정권 시절 박철언씨가 주도했던 북방정책은 냉전시대 붕괴로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부산물로 우리가 소련과 (1990년에) 국교를 수립하면서 됐던 반면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은 냉전이 다시 부활하는 그런 시기에 하려니 대단히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더 보람 있고, 역설적으로 더 필요하다는 것이 큰 차이다. 북방정책은 여야 불문하고 초당적으로 추진돼 야당이 비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도 러시아와의 가스관 도입 문제를 메르베데프 대통령과 합의한 바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협의해 왔다. 그런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이유로 유럽과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하는 바람에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일본은 러시아 제재에 어떤 입장인가. “일본은 겉으로는 미국과 공조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실리를 다 취한다. 예를 들자면 범중화 경제권 구축 프로젝트인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B) 사업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오히려 미국, 호주와 함께 자유로운 인도·태평양 항해원칙에 따라 중국 포위전략에 참여하지 않느냐. 이에 비해 우리 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공식적으로 참여한다고 발표한 상태인데 실질적 투자는 일본이 더 많이 한다. 러시아(제재)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미국과 공조하면서, 러시아를 제재한다지만 훨씬 더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비즈니스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러시아 제재에 빠져 있다. 우리는 겉으로는 러시아에 친한 척하면서 실질적 진전이 별로 없는 외화내빈이다.” -이런 점에 대해 러시아가 불만을 표시한 적 있나. “트루트네프 부총리가 불만을 토로한 적 있다.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에) 실질적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노바텍이 개발한 시베리아 북극해 연안 야말반도의 액화천연가스(LNG) 개발프로젝트가 있지 않느냐. 거기는 천연가스 매장량이 엄청나다. 카타르에서는 천연가스를 영상 40도에서 영하 160도로 압축·액화하는 것에 비해, 야말은 기온이 영하 40도라 액화비용이 훨씬 적다. 거리가 먼 단점은 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야말 개발 프로젝트에 우리 정부가 참여해 주기를 여러 차례 권했으나 박근혜 정부 때 왜 안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전이다. 지금은 중국 기업이 다 들어가 있다. 대우건설이 참여하고 싶어 했는데, 파이낸싱 문제로 못했다.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눈치 보느라고 말이다.” -외교정책 때문에 경제적 실리를 챙기지 못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소극적으로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서 미국도 러시아를 제재하지만 미국의 엑슨모빌은 사할린 가스전 개발에 25% 지분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트럼프 회사 등 미국 기업도 600개 이상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미국도 예외적으로 한다면 우리는 왜 못하느냐. 외교력 때문이다. 정부가 외교적으로 풀어 줘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기업들은 자신 없어 투자를 못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리 보고 ‘나토’(NATO)라고 한다. 행동은 없고 말만 한다는 것이다. 나진·핫산 프로젝트도 박근혜 정부 때 하자고 해 놓고 명태 쿼터나 받은 정도다. MB 정부 때 천연가스 도입 문제도 하나도 안 됐다. 이제야 한국가스공사가 (러시아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이랑 같이 검토, 용역하고 있다.” -러시아는 왜 한국 기업 투자에 목매나. “중일 견제를 위해서다. 연해주가 원래 중국 땅을 뺏은 것 아니냐, 1860년 북경조약 때 뺏은 땅이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동방을 정복했다’는 뜻이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그런 이름을 지었겠느냐. 극동관구의 제일 큰 도시라는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로프스크, 모두 인구가 60만명이다. 그런데 1억명이 넘는 중국의 동북 3성이 옆에 있다. 중국이 밀고 들어오면 어찌 되느냐. 한국이 같이 있어야지.”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10주기 추모도 낮게…약자의 손잡던 바보가 그립습니다

    노동 인권·민주화 등 현대사 질곡 관통 ‘세상 속 교회’ 기치로 민주적 가치 실현 분열된 사회, 자비·사랑으로 포용 실천 선종 후 ‘바보 정신’ 재단 통해 유지 이어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여야 4당이 문제 발언을 한 의원 제명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역사전쟁으로까지 치닫는 분위기다. 그 와중에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과 광주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정치적 입장을 앞세운 발언이라지만 민주화운동 폄훼와 왜곡은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 5·18 민주화운동을 놓고 김수환 추기경은 이런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어디 5·18 민주화운동뿐인가. 김 추기경은 생전 약자 편에 선 채 불의에 강하게 맞선 쓴소리와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1987년 1월 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중 일부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많은 이들은 김 추기경을 떠올린다. ‘김 추기경이 계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까.’ 16일은 김 추기경이 선종한 지 10주기가 되는 날. 그날을 중심으로 추기경의 사랑과 배려 정신을 되새겨 실천으로 옮기자는 행사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추모 미사(16일 오후 2시 명동성당), 추모 사진전(23일까지 명동성당 지하 1898광장), 유품 전시회(16일~6월 20일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기념 음악회(18일 오후 8시 명동성당), ‘내 기억 속의 김수환 추기경’ 토크콘서트(17일 오후 5시 명동대성당 꼬스트홀)…. 그런데 이어지는 그 추모의 몸짓들이 요란하지 않다. 천주교의 최대 지도자, 시대의 사표, 민족의 양심…. 그 막중한 수식어들만 보더라도 성대한 행사가 있을 법한데 영 딴판이다. 그 조용하고 잔잔한 추모 열기를 놓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신부들은 귀띔한다. “일회성 행사가 아닙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본받아 우리 삶 안에서 하루하루 살아 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그분의 가르침’은 무엇일까. 김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을 맡은 30여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무려 8배 넘게 교세가 불어났다. 그 종교적 위업에서 비롯된 존경과 추모만일까. 김 추기경의 어록을 다시 뒤져 보았다. “교회가 모든 것을 바쳐서 사회에 봉사하는 ‘세상 속 교회’가 되어야 한다”(1968년 서울대교구장 취임 미사), “항상 가난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고 싶은 열망을 갖고 살았지만 그러지 못해 답답했다. 추기경이란 직책 때문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1998년 서울대교구장 퇴임 소견)김 추기경은 그랬다. 인류 구원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 편에 기꺼이 서야 한다고 믿었다. 단순히 종교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현대 시민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섰으며 각 개인의 양심을 일깨워 주고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그 인권과 노동, 생명 사랑의 족적은 너무 혁혁하다. 경제성장이 지상의 과제였던 1960, 1970년대 추기경은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된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1967년 5월 강화도 심도직물의 노조원 해고 사태 당시 김 추기경의 건의에 따라 주교회의는 사회 정의와 노동자 권익 옹호를 위한 교단 공동 성명서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김 추기경이 처음으로 대사회 메시지를 던진 사건이다. 이것 말고도 유사한 노동 탄압 사건이 있을 때마다 추기경은 노동자 인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더 적극적인 사목을 펼쳐야 한다.’ 서울 상계동 철거 사태 등 정부 주도의 반강제적 철거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던 무렵 추기경은 스스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을 수시로 방문했다. 직접 도시 빈민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에 참가해 당시 정부의 정책이 빈민을 양산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1987년 4월 28일 도시빈민사목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지금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바로 그 추기경의 의지를 담아 탄생한 단체다. 그렇게 현대 한국 천주교회를 이끈 주역이었지만 그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유신독재,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외면하지 않고 한가운데서 뚫고 나갔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명당성당에 들어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던진 말은 아직도 쩌렁쩌렁하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그런가 하면 1971년 12월 24일 전국에 TV로 생중계된 성탄 자정 미사에선 이렇게 소리쳤다.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입니까.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한테 막강한 권력이 가 있는데, 이런 법을 또 만들면 오히려 국민과의 일치를 깨고 그렇게 되면 국가안보에 위협을 주고 평화에 해를 줄 것입니다.” 또 1972년 10월 유신 개헌 소식을 로마에서 접하곤 큰소리로 외쳤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뜨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랬던 추기경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기도를 남겼다.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주님 앞에서 박정희를 불쌍히 여기소서.”스스로를 ‘바보’라 부르면서 ‘밥이 되고 싶다’고 외쳤던 김 추기경의 아호는 옹기다. “옹기는 먹는 것도 담지만 더러운 것도 담는다. 우리 자신도 여러 가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웃었던 추기경의 유지와 정신을 이은 사랑과 봉사의 물결은 추기경 선종 이후 도도히 흐르고 있다. 박신언 몬시뇰이 설립을 건의해 김 추기경이 사재를 털어 2002년 설립된 옹기장학회와 김 추기경의 바보 정신을 이어받아 2010년 설립된 (재)바보의나눔은 대표적인 단체들이다. 갈라지고 분열된 세상을 사랑과 자비로 포용하려는 김 추기경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옹기장학회는 통일 이후 북녘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할 사제 양성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현재 북한과 중국은 물론 아시아 선교에 뜻을 둔 신학생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해 놓고 있다. (재)바보의나눔은 종교와 지역, 계층을 초월해 국내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지원한다. 형편이 어려운 아동과 청소년 돌봄이 필요한 노인, 편견에 휘청이는 장애인과 다문화가정 등을 돕고 있다.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편 신자와 국민을 위해 눈물 흘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지도자.’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이다. 물신주의 팽배와 경쟁 심화, 고통을 호소하는 가난한 사람들…. 그 어두운 모습 탓에 김 추기경이 더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김 추기경의 마지막 유언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살고 싶지 않아요”…따돌림·폭행 당하던 6살 소년의 근황

    “살고 싶지 않아요”…따돌림·폭행 당하던 6살 소년의 근황

    동급생들로부터의 따돌림에 상처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던 소년의 근황이 알려졌다. 호주 시드니에 사는 잭 윌킨슨(9)은 3년 전인 여섯 살 무렵, 친구들로부터 극심한 따돌림을 받았다. 불안장애를 앓던 윌킨슨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씩 늘어갔다. 또래와 다소 달랐던 이 소년에게 동급생들은 ‘미쳤다’ 등의 비난과 폭력으로 상처를 주고 따돌리기 일쑤였다. 윌킨슨은 결국 옆 반 선생님의 책상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은 진심을 내비쳤다. 그 쪽지에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아요. 신이여, 제발 절 데려가 주세요”라는 간절함과 절망을 담은 말이 적혀 있었다. 아들의 가혹한 일상을 알게 된 어머니는 너무 어린 나이에 삶을 포기하려는 아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윌킨슨의 가족은 곧바로 윌킨슨에게 특별 상담 프로그램을 받게 하는 동시에, 평소 아이가 관심을 보인 미술 치료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윌킨슨의 어머니에 따르면 윌킨슨은 그림 그리는 것을 매우 좋아했으며, 이를 통해 서서히 마음의 상처가 치유할 수 있었다. 동급생의 따돌림과 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던 여섯 살 소년은 그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더 나아가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티셔츠를 제작한 뒤 이를 팔고, 수익금을 ‘키즈 헬프라인’(Kids Helpline)이라는 어린이 상담센터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윌킨슨의 어머니는 “모든 사람이 내 아들과 같은 전폭적인 도움을 받지는 못한다. 그렇게 때문에 일부 어린이들은 익명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면서 “내 아들에게 그런 (따돌림이나 폭력과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아들은 자신의 고난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자신의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는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따돌림이나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도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대 영화에 포함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76년 작품 ‘택시 드라이버’와 1978년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만든 ‘디어 헌터’의 공통점은 뭘까.우선 주인공이 로버트 드니로라는 점. 그리고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삶이 망가져 버린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전장이나 예상치 못한 지진해일(쓰나미), 지진, 화산 같은 자연재해와 대형 사건사고에 노출된 사람들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새겨진 트라우마 때문에 남은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광유전학이나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삶 자체를 위협하는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족집게처럼 콕 찍어 없애는 방법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기초과힉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신희섭 단장팀은 시각자극을 통해 PTSD를 치료하는 방법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공포기억과 관련한 새로운 뇌 회로를 발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4일자에 실렸다. 현재 신경정신과에서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때 환자가 공포기억을 떠올리도록 한 뒤 빛을 이용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시각자극을 주는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을 활용하고 있다. EMDR은 트라우마로 남은 공포기억을 회상하면서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활성화시켜 두려웠던 기억을 저 멀리 사라지게 만드는 기법이다. 실제로 2001년 미국 9·11테러, 2004년 발생한 태국 쓰나미 사태, 1995년 일본 고베지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포기억을 치유하는 데 EMDR이 활용된 바 있다. EMDR이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작동돼 공포기억을 제거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특정 소리와 함께 전기충격을 줘 소리에 대한 공포기억을 심어 줬다. 공포기억이 생긴 생쥐는 소리만 들려도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을 보이게 된다. 연구팀은 생쥐가 소리에 공포반응을 보일 때 좌우로 반복해서 깜박거리는 LED 빛을 보도록 하면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이 빠르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시간이 지난 뒤나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려도 공포반응이 나타나는 비율이 낮다는 것도 확인했다. 사람의 트라우마 치료에 사용되는 EMDR의 치료 효과가 생쥐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빛과 유전공학적 기법을 결합해 특정 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을 통해 뇌에서 안구 운동과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상구와 중앙 내측 시상핵을 거쳐 기억이 저장되는 편도체에 이르는 신경회로가 공포기억을 관장하는 새로운 통로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신희섭 단장은 “PTSD는 단 한 번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형성되지만 기존의 약물과 심리치료 방식으로는 치유기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번에 발견한 공포기억 억제회로를 조절하는 약물이나 기술을 개발해 PTSD를 좀더 손쉽게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IBS 신희섭 단장팀 연구 이전에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컬럼비아 의대 공동연구팀은 뇌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포도당과 유사한 물질을 대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노시톨 대사효소를 제거하면 공포기억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해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월 28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그 기억, 콕 찍어 지워드립니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대 영화에 포함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76년 작품 ‘택시 드라이버’와 1978년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만든 ‘디어 헌터’의 공통점은 뭘까. 우선 주인공이 로버트 드니로라는 점. 그리고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삶이 망가져 버린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전장이나 예상치 못한 지진해일(쓰나미), 지진, 화산 같은 자연재해와 대형 사건사고에 노출된 사람들은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새겨진 트라우마 때문에 남은 삶을 정상적으로 영위해 나가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광유전학이나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삶 자체를 위협하는 고통스러운 기억만을 족집게처럼 콕 찍어 없애는 방법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기초과힉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신희섭 단장팀은 시각자극을 통해 PTSD를 치료하는 방법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공포기억과 관련한 새로운 뇌 회로를 발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4일자에 실렸다. 현재 신경정신과에서는 트라우마를 치료할 때 환자가 공포기억을 떠올리도록 한 뒤 빛을 이용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시각자극을 주는 ‘안구운동 민감 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을 활용하고 있다. EMDR은 트라우마로 남은 공포기억을 회상하면서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뇌의 정보처리 기능을 활성화시켜 두려웠던 기억을 저 멀리 사라지게 만드는 기법이다. 실제로 2001년 미국 9·11테러, 2004년 발생한 태국 쓰나미 사태, 1995년 일본 고베지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포기억을 치유하는 데 EMDR이 활용된 바 있다.EMDR이 트라우마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알려져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작동돼 공포기억을 제거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특정 소리와 함께 전기충격을 줘 소리에 대한 공포기억을 심어 줬다. 공포기억이 생긴 생쥐는 소리만 들려도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을 보이게 된다. 연구팀은 생쥐가 소리에 공포반응을 보일 때 좌우로 반복해서 깜박거리는 LED 빛을 보도록 하면 몸이 얼어붙는 공포반응이 빠르게 감소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시간이 지난 뒤나 다른 장소에서 똑같은 상황에 맞닥뜨려도 공포반응이 나타나는 비율이 낮다는 것도 확인했다. 사람의 트라우마 치료에 사용되는 EMDR의 치료 효과가 생쥐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빛과 유전공학적 기법을 결합해 특정 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을 통해 뇌에서 안구 운동과 주의집중을 담당하는 상구와 중앙 내측 시상핵을 거쳐 기억이 저장되는 편도체에 이르는 신경회로가 공포기억을 관장하는 새로운 통로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신희섭 단장은 “PTSD는 단 한 번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형성되지만 기존의 약물과 심리치료 방식으로는 치유기간이 오래 걸린다”며 “이번에 발견한 공포기억 억제회로를 조절하는 약물이나 기술을 개발해 PTSD를 좀더 손쉽게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IBS 신희섭 단장팀 연구 이전에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와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컬럼비아 의대 공동연구팀은 뇌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포도당과 유사한 물질을 대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노시톨 대사효소를 제거하면 공포기억이 빠르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해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PNAS’ 1월 28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中 국민당 도움받아 충칭 정착…中 공산당, 조선의용대 탈영 부추겨 팔로군 편입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中 국민당 도움받아 충칭 정착…中 공산당, 조선의용대 탈영 부추겨 팔로군 편입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출범해 1945년 해방 때까지 중국에서 활동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뒤 일본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옮겼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각지를 떠돌았다. 임정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서남부 쓰촨성의 작은 도시 충칭이었다. 임정은 1945년 11월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5년 넘게 독립을 준비했다. ●임정, 충칭서 5년 넘게 한국 독립 준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의 최종 목적지 충칭. 1937년 11월 중국이 일본에 수도 난징을 빼앗기자 임시 수도로 정한 곳이다. 주민 수가 3100만명에 달해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자 유비와 제갈량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세력을 길렀던 촉(蜀)의 옛 땅이다. ‘안개 도시’라는 별명답게 한겨울에도 뿌연 안개가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서울신문 취재에 동행한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예전에 이곳은 안개와 매연이 결합해 공기 질이 나빴다고 한다. 김구(1876~1949)의 맏아들 인(1917~1945)도 여기서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임정은 중일전쟁으로 난징이 함락되자 후난성 창사로 피신했다가 1838년 7월 광둥성 광저우로 내려갔다. 국민당 정부가 충징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곳은 인구 20만명 정도의 소도시였지만 국민당 정부가 오자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주택과 학교, 도로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임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결국 중국의 도움으로 류저우(1938년 10월~1939년 3월)와 치장(1939년 3월~1940년 9월)을 거쳐 2년 뒤인 1940년 9월에야 입성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임시정부에 있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은 절대적이었다. 이 사실을 외면하고 독립운동 성과를 우리만의 노력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국뽕 사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임정의 리더십 회복과 좌우합작 성사 일본은 지상군 병력이 닿지 않는 이곳을 파괴하려고 5년여간 200여 차례에 걸쳐 공습을 감행했다. 영화로도 제작돼 잘 알려진 충칭 대폭격(1938~1943)이다.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47)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를 보면 당시의 공포가 잘 묘사돼 있다. “(공습경보를 듣고 대피소인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일본 비행기가 폭탄을 수없이 떨어뜨렸다. 석굴이 심히 흔들리며 당장 무너지는 듯했다. 동굴 안에서는 천둥·번개 치듯 불빛이 번쩍였고 천장이 내려앉는 듯 작은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폭격이 끝나고) 굴 밖으로 나왔더니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있었던 집의 앞과 뒤, 오른쪽, 왼쪽이 불바다였다. 참혹한 시신도 많았다.”(1938년 12월 5일) 역설적이지만 임정은 공습에 시달리던 충칭 시기에 리더십을 회복했다. 중국이 모든 독립운동 세력을 임정 중심으로 합작해 나설 것을 촉구했고, 한인 내부에서도 일본의 패망이 머지않았다고 느껴 단결에 나섰기 때문이다. 임정은 처음으로 청사에 ‘대한민국 림시정부’ 간판도 내걸었다. 독립운동 중심체로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1940년 5월 김구의 한국국민당과 조소앙(1887~1958), 홍면희(1877~1946)가 주도한 한국독립당, 이청천(1888~1957)이 이끈 조선혁명당은 충칭에서 우파 통합정당을 만들었다. 임 정 여당인 한국국민당의 지분이 가장 컸지만 당명은 ‘한국독립당’을 계승했다. 한독당은 해방 뒤 한국에서도 민족주의 정당으로 활동했다. 임정에 비판적이던 사회주의 계열도 태도를 바꿔 1941년부터 하나둘 합류했다. 임정이 설립 20여년 만에 제대로 된 위상과 권위를 갖추게 됐다. 승려 출신의 사회주의자로 1942년 임정 내무차장이 된 김성숙(1898~1969)의 증언이다. “우리나라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 권위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임시정부만한 것이 없었거든. 임정이 계속해서 일본하고 대립하고 싸웠기 때문에 ‘(진정성을 인정해) 임정을 중심으로 모여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지.”●조선의용대, 팔로군 주둔 화베이 이동 1939년 말 중국 후베이성 라오허커우. 중국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단체들이 조직한 조선의용대의 부대장 김학무(1912~1944)가 동료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우리 손으로 적(일본군)들을 쓰러뜨려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이런 ‘가짜 항일’ 전선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너무도 수치스럽소이다.”조선의용대는 임정이 만든 한국광복군보다 2년 앞선 1938년 10월 결성됐다. 대원 상당수가 중국 군관학교나 일본의 유명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이들은 일본군과 직접 싸우기를 원했지만 중국은 인원이 많지 않은 의용대에 전투 대신 정보 수집과 선전 공작 등 보조 업무를 맡겼다. 이들은 후방에서 선전전이나 하는 현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전체 대원 300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1941년 3~5월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 있던 화베이 지역으로 떠났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이들이 한반도와 가까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 국내에 진격하려고 북상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충칭에서 만난 이선자(55) 전 충칭임시정부기념관 부관장은 “중국 공산당의 치밀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고 전했다. 공산당이 조선의용대를 팔로군에 편입시키고자 의용대에 밀정을 심어 탈영 분위기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중국 공산당 출신 역사학자 쓰마로(100·미국 거주)가 홍콩에서 출간한 회고록(2004) 등에 수록돼 있다.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한국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이라고 놀라워했다.조선의용대 주요 전력이 화베이로 올라가자 최고 책임자였던 김원봉(1898~1958)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따르는 대원이 100명도 남지 않았다. 이 관장은 쓰마로의 회고록을 토대로 “당시 김원봉도 남은 부대와 함께 화베이로 가려고 했지만 중국 공산당 저우언라이(1898~1976)가 이를 막았다. 화베이 부대의 새 리더로 김무정(1904~1951) 등을 세운 뒤여서 더는 김원봉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갈 곳을 잃은 그는 한국광복군 합류를 고심했다. 임정과 김원봉 간 통합 협상이 길어지자 중국군사위원회가 직접 나섰다. 1942년 5월 광복군에 부사령관 직제를 신설하고 그를 임명했다. 조선의용대는 광복군 제1지대에 편제됐다. 군사 분야에서도 좌우합작이 성사됐다. 늘 대원이 부족했던 광복군으로서는 이들이 그야말로 단비 같은 존재였다. 임시정부 좌우통합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이슈가 있다. 바로 김구의 ‘백색 테러’(우익에 의한 테러) 논란이다. 그가 일본군이나 친일파를 상대로 ‘의열 투쟁’을 벌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이념이나 성향이 다른 일부 독립운동가에게도 같은 방식의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있다. 김구가 ‘대한민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어 언급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공론화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김구는 상하이 임정에서 초대 경무국장(경찰청장)을 맡아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처형을 주도했다. 1922년 2월 사회주의자 김립(1880~1922)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백범 자신이 “김립이 (소련이 준) 임시정부 공금을 사사로이 사용해 처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 등에 따르면 당시 소련은 임정이 아닌 한인 사회주의 진영에 자금을 제공했다. 김구가 주장하듯 김립이 이 돈을 사적으로 썼다는 증거도 없었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립 암살 사건은 임정이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근거해 단행한 국가 폭력”이라며 “같은 독립운동가라도 정견과 조직이 다르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해 독립운동계에 큰 해를 끼쳤다”고 비판했다. 해방 뒤인 1945년 12월 말 동아일보 주필이자 한국민주당 초대 당수 송진우(1890~1945)는 김구가 살던 경교장에서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를 두고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벌였다. 그는 우파진영이 미국을 적으로 돌리면 공산당이 어부지리를 본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반탁을 고수하던 김구를 비판했다. 송진우는 밤샘 토론을 마치고 자택에 돌아가자마자 살해됐다. 브루스 커밍스(76)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사건의 배후를 김구로 본다. 김구는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1889~1939)과 안창호(1878~1938)의 후견인 옥관빈(1887~1933)의 암살에도 간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 군정은 친일파 출신으로 한국민주당 정치부장이던 장덕수(1894~1947)가 살해되자 김구가 개입했다고 보고 재판정에 세웠다. 좀더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 과거 갓난아기 죽인 범인, 33년 뒤 보복 살해된 사연

    과거 갓난아기 죽인 범인, 33년 뒤 보복 살해된 사연

    과거 갓난아기를 살해하고 징역을 살았던 50대 전과자가 보복 살인으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됐다. 영국 메트로 등 현지 언론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데이비드 거트(54)라는 이름의 남성은 1985년 당시 생후 15개월의 갓난아기를 살해한 죄로 징역 32년 형을 선고받았다. 형을 모두 마치고 사회로 나온 그는 웨일즈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지난해 8월 우연히 그의 전과 기록을 알게 된 이웃 3명이 그를 직접 ‘단죄’하기로 결심하고 살인을 모의했다. 각각 51세, 47세, 23세의 이웃 남성 3명은 사건 당일 기차표를 사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한 거트를 뒤쫓은 뒤, 그를 집으로 유인해 칼로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들은 그의 죄질이 흉악하다는 이유를 들며 칼로 150여 차례 찔렀고, 숨이 끊어진 후에도 26번을 더 찌르는 잔혹함을 보였다. 이후 이들은 살해현장을 청소한 뒤 그의 시신을 태운 차량을 불 질러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 그러나 살인사건이 발생한 지 몇 시간 후, 이웃 3명은 거트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재판이 이어지면서 용의자로 지목된 47세 남성과 23세 남성은 범행을 부인했고,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41세 용의자 남성만이 자신의 범행을 인정했다. 현지 법원은 체포된 3명 중 1명에게만 무죄를 선고했으며, 현재까지 이들의 잔혹한 범죄를 둘러싼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현지 경찰이 배심원단에게 공개한 영상은 거트가 살해되기 직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 33년 전 갓난아기를 살해했다가 자신 역시 잔혹한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거트의 마지막은 청바지에 흰 셔츠와 짙은 색의 재킷을 입은, 매우 평범해보이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었다. BBC는 이 남성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CCTV 영상을 보도하며 “아이를 죽인 살인자의 마지막 여행”이라고 보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男유권자 성희롱과 스토킹에 시달리는 일본 女의원들

    男유권자 성희롱과 스토킹에 시달리는 일본 女의원들

    지난해 2월 일본 도쿄도 마치다시 시의회 선거에서 당선된 여성의원 히가시 도모미(34)는 선거운동 기간 동안 일부 몰지각한 남성 유권자들의 괴롭힘에 시달려야 했다. 거리유세 도중 갑자기 술에 취해 나타나 껴안고 간 남성도 있었고, 자신의 성적인 체험을 들어달라며 주절주절 늘어놓은 남성도 있었다. 선거 후에는 지지자로부터 “그래서야 의원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욕설을 들기도 했다. 거리연설 중에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남자 동료의원과 함께 하는 게 아니면 거리연설을 하지 않는다.이는 지난해 12월 히가시 의원이 자신이 겪어온 유권자들로부터의 성희롱에 대해 SNS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일본에서 여성 정치인에 대한 남성 유권자들의 성희롱 등 괴롭힘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12일 전했다. 일본의 여성의원 비율이 주요 국가 중 최저 수준인 데는 이런 가혹한 환경도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여성 정치인들의 SNS 등에는 남성 유권자들이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다반사이고, 자신의 어린시절 성장과정 등 의정활동과 무관한 내용을 메일 등으로 보내기도 한다. 특히 보좌관 등을 대동하는 국회의원과 달리 지방의원은 혼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도모미 의원은 “의원의 입장에서는 유권자를 무조건 거부할 수 없기 때문에 활동에 큰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사이타마현 고시가야시 시의원 마쓰다 노리코(40)도 피해자 중 한 명이다. 지지를 호소하면 성적인 제안을 한다든지 하는 남성 유권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아이를 낳자 “일은 하지 않고 아이를 만들었나”라고 공격을 해오기도 했다. 상담을 하겠다며 찾아온 남자가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해서 거절했더니 “나는 고민이 많은데 차갑게 대응했다. SNS에 이를 알리겠다”고 협박을 해오기도 했다. 심야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도 많았다. 마쓰다 의원은 “다른 여성의원도 일부 지지자들의 전화나 메일 스토킹을 견디다 못해 전화 착신을 거부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서 “정계에 뛰어든 젊은 여성이 이렇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뒤를 이으려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푸념했다. 미우라 마리 조치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많기 때문에 여성의원에 대한 차별적 공격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일본에는 구미 각국과 달리 이런 행태를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는 것이 문제인데, 서둘러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움켜 쥔 시신의 손엔 독립선언서… 아우내 만세운동 ‘진짜 주역’

    움켜 쥔 시신의 손엔 독립선언서… 아우내 만세운동 ‘진짜 주역’

    옥중 투쟁을 하다 잔혹한 고문을 받고 순국한 유관순 열사가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대하다. 열사가 1919년 4월 1일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주역이었음도 분명하다. 유관순은 3·1운동과 동일시되고 있고 항일의 표상이다. 그러나 유독 유 열사만 부각된 데는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연구 논문이 여러 편 있다. 친일·우익 인사들이 광복 직후 자신들의 과거를 정화하여 정치적·도덕적 권위를 찾으려고 열사를 ‘한국의 잔다르크’로 형상화했다는 것이다. 유관순의 항거는 이화여중 동문 박인덕과 교장 신봉조 등이 기념사업회를 발기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일제에 저항했다가 친일로 돌아선 인물로 광복이 되자 자신들의 행적을 덮으려고 유관순을 이용했다고 한다. 또 하나는 우익 인사들의 유관순 기념사업이다. 미 군정하인 1947년 9월 결성된 유관순기념사업회는유관순 기념비, 영화를 만들고 ‘조선의 잔다르크’라는 제목의 전기를 간행했다(정상우, ‘3·1운동의 표상 유관순의 발굴’).그중에는 유관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맡은 조병옥이 있다. 조병옥은 광주학생운동 배후 조종 혐의로 3년 동안 복역해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하지만 친일 의혹도 함께 받고 있다. 조병옥은 유관순과 두 집 건너 살던 이웃으로 그의 아버지 조인원도 아우내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대한민국 정부 경무부장이던 조병옥은 정부의 정통성을 찾는 방편으로 유관순을 한국의 잔다르크, 해방의 여전사로 부각시켰다(전해주, ‘성공회 병천교회의 3·1 아우네 만세운동에 대한 기여’). 이런 연유로 아우내장터 시위를 주도한 다른 인물들의 공적은 거의 파묻혔다. 실제 주동자로 현장에서 총에 맞아 숨진 김구응 의사(義士)도 그런 사람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된 신한민보는 아우내 만세운동을 유관순이 아닌 김구응, 박종만이 주도했음을 밝히고 특히 모친까지 학살당한 김 의사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천안군 병천시(川市·아우내장터)에서 의사 김구응이 남녀 6천4백인을 소집하야 독립을 선언할 새 일경이 아민(我民)의 기수(旗手)를 자(刺)코져 하거늘 기수는 적수(赤手)로 검도(劍刀)를 집(執)하니 유혈이 임리(淋·뚝뚝 흘러 흥건하게 떨어짐)할 시에…” 김병조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사략’에 이렇게 씌어 있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도 거의 똑같이 서술하면서 주모자를 김구응이라고 했다.김 의사는 임진왜란 진주대첩의 명장 김시민 장군의 12대손으로 1887년 7월 27일 천안 병천면 가전리 9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한학을 깨우친 의사는 청신의숙, 장명학교를 거쳐 병천 진명학교 훈도(교사)로 일하며 제자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유관순의 오빠 유관옥과 조인원의 아들 조만형은 그의 제자였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충청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김 의사는 서울 이화학당에 다니다 3월 13일 고향 병천에 내려온 유관순과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 조인원 등과 만세운동을 벌일 계획을 치밀하게 짰다. 유관순과 지역의 학생, 교인들은 진명학교와 교회 등에서 밤낮으로 태극기를 만들었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나이 어린 유관순에게 최일선 연락 책임을 맡긴 것도 김 의사였다. 그는 천안 동부 6개 면과 오창, 청주, 진천, 연기 등 각지와 비밀 연락망을 짜고 봉화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총궐기하도록 밀령을 전달했다. 유관순이 연락과 봉화 책임자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의사는 전체 계획을 짠 리더였다. 조인원은 현장에서 군중을 이끈 행동대장 격이었다. 김 의사의 어머니 최정철 여사도 장년층과 노년층을 설득하고 부녀자를 동원하는 역할을 했다. 1919년 3월 그믐날 밤 유관순은 매봉산에 올라 봉화를 올렸다. 이를 필두로 천안 주변의 총 24개 봉우리에서 봉화가 타올랐다. 거사 일로 정한 4월 1일 아침 아우내장터에는 전날 밤 타오른 횃불을 보고 장꾼을 가장한 군중 3000여명이 모여들었다. 군중은 점점 불어나 오후 1시가 넘어가면서 6000명을 넘어섰다. 김 의사는 두루마리로 된 독립선언문을 펴 낭독했고 유관순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다. 불과 50보 거리의 지척에 헌병주재소가 있었다. 만세운동은 극히 평화적이었다. 군중이 점점 늘어나고 만세 소리는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커졌다. 오후 2시쯤 천안헌병분대에서 헌병들이 트럭을 타고 도착했다. 헌병들은 군중을 향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둘렀다. 유중권을 포함해 여러 사람이 사망했다. 발포에 놀라 군중은 일단 흩어졌지만, 오후 4시쯤 발포와 살인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져 1500여명이 주재소로 몰려갔다. 김 의사는 독립선언문을 말아 들고 대열의 선두에 섰다. 헌병들은 깃발을 들고 있던 기수를 칼로 찌르려 했고 기수가 맨손으로 칼을 잡자 그대로 찔러 숨지게 했다. 의사는 그들의 잔인무도함을 비난하며 꾸짖었다. 황망한 중에도 정연한 논리로 대응했다. 일본 헌병은 논리에서 밀리자 김 의사를 총으로 쏴 쓰러뜨리고는 총검으로 머리를 짓이겼다. 의사는 시신이 되어서도 독립선언서를 손에 말아 쥐고 있었다. 오후 6시쯤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아들이 참살당한 말을 들은 의사의 어머니 최 여사가 달려왔다. 여사는 헌병의 멱살을 잡아채며 “이놈들아,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나라 독립을 찾겠다고 만세를 부르는 것도 죄가 되느냐”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헌병은 사정없이 총을 쏘아 즉사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총검으로 마구 찔렀다. 김 의사의 나이 32세, 최 여사의 나이 66세였다. 아우내장터 시위로 김 의사 등 19명이 죽고 적어도 30명 이상이 크게 다쳤다. 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병천면 가전리 뒷산에 의사의 시신을 묻었다. 김 의사의 사후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선생의 손자 김운식(70)씨에게 들은 가족사는 비극적이다. 김 의사는 아들 셋을 뒀는데 맏아들이 열 살이었다. 살길이 막막해지자 김 의사의 부인, 즉 김씨의 할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경기 안성 친정으로 갔다고 한다. 의사의 맏아들은 그 후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돌아와 인천에서 조선기계제작소라는 작은 공장에 취업했다. 광복 후에는 좌익 활동을 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친일파들은 위세를 떨치고 김원봉 같은 독립운동가는 도리어 빨갱이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한 저항감에 좌익 사상에 빠졌다”고 말했다. 맏아들은 6·25가 터진 후 공장 인민위원장이 됐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공산주의와는 다르다고 판단해 9·28 수복 후 국군에 자수했다. 자수했지만 방면되지 않고 인천감옥에 수감됐다. 몇 달 뒤 1·4후퇴 때 국군이 후퇴하면서 인천감옥의 좌익사범들을 총살했는데 그때 희생되고 말았다. 시신도 찾지 못했다. 다른 후손들도 천안을 떠나 곳곳을 전전하며 가난에 시달렸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날 아우내장터를 찾았다. 두 개의 내(川)를 아우른다(竝)는 뜻인 아우내를 일본인들이 병천(竝川)이라는 한자어로 지명을 바꿨다. 근처엔 유관순기념관도 있고 해마다 만세운동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만세운동 현장임을 알려주는 표지도 없고 순댓집 간판만 즐비했다. 단지 시장 입구 헌병주재소가 있던 곳엔 ‘아우내독립만세운동기념공원’이 있다. “아우내에는 순대만 있고 역사는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새영화] ‘살인마 잭의 집’ 보도스틸 공개

    [새영화] ‘살인마 잭의 집’ 보도스틸 공개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신작 ‘살인마 잭의 집’이 주인공 잭의 살인 고백이 담긴 보도스틸 10종을 공개했다. ‘살인마 잭의 집’은 잔혹한 살인을 저지르며 이를 예술이라 믿는 살인마 잭이 저지른 다섯 개의 범죄에 대한 고백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잭’은 자신을 지옥으로 안내하는 ‘버지’를 따라가며 12년간 이어진 자신의 연쇄살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개된 보도스틸에는 그와 마주쳤던 4명의 피해자 모습이 담겼다. 강렬한 오프닝을 선사하는 첫 번째 피해자는 세계적인 배우 ‘우마 서먼’이 맡아 살인마 잭과 아슬아슬한 대화를 나눈다. 공개된 스틸 속에는 빨간 밴을 탄 잭을 시작으로 얼굴과 손에 피가 잔뜩 묻은 그의 모습이 끔찍한 상상을 자극한다. 또한, 외젠 들라크루아가 그린 ‘단테의 조각배’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지옥도 장면과 비닐 사이로 상대방을 응시하는 잭의 서늘하고 날카로운 눈빛을 볼 수 있다. 자신이 만든 미니어처 집을 응시하고 있는 잭의 모습은 영화 ‘살인마 잭의 집’에 담긴 또 다른 의미를 궁금케 한다. 오는 2월 2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영상부 seoultv@seoul.co.kr
  • “크래커총이 진짜라면”… 금지의 시대 꼬집다

    “크래커총이 진짜라면”… 금지의 시대 꼬집다

    1960~1990년 주제… 13개국 100명 참가 탈식민지·독재·산업화 등 사회변화 유사“박정희 군사독재 시대였기에 (예술가들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하지 못하는 시대였지만, 언제나 새로운 걸 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었어요.”(한국 전위 미술의 대가 김구림) “(수하르토)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제 입장을 대놓고 얘기할 수 없어서 총 모양 크래커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인도네시아 ‘신미술운동’ 주요 멤버 FX 하르소노) 금지의 시대에 무엇이라도 했던 예술가들. 외부로부터 이식한 게 아니라 철저히 자생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열망이 그들을 들끓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시작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얘기다. 전시를 열고자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가 4년여 동안 조사·연구했다.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의 아시아 13개국 주요 작가 100명의 작품 170여점이 이렇게 모였다.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아시아는 탈식민, 이념 대립, 베트남전쟁, 민족주의 대두, 근대화, 민주화운동 등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경험했다. 전시를 기획한 배명지 학예연구사는 “(국가들 사이에) 직접적인 상호 작용은 없었지만, 그들 간 예기치 않은 공명을 발견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국가별 전시가 아닌 초국가적인, 비교문화적인 방식으로서의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구조를 의심하다’, ‘예술가와 도시’, ‘새로운 연대’의 3부로 구성했다. 동시기 각국의 작가들이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유사한 표현 방식을 차용한 것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전시장 입구에서 한 무더기 핑크빛 총과 맞닥뜨린다. 인도네시아 작가 FX 하르소노의 ‘만약 이 크래커가 진짜 총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다. 1965년 수하르토 통치 이후 1966년을 기점으로 표방한 이른바 ‘신질서’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치적 성격의 예술과 미디어는 늘 검열 대상이었다.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작가는 부지불식 간 일상에 잠입한 폭력성을 크래커 총으로 은유했다. 독재정권이라는 정치상과 더불어 소비 자본주의 침투라는 달라진 경제상에 대한 두려움도 엿보인다. 전시장 한쪽에는 ‘0엔’짜리 모형 지폐가 자리한다. 1000엔짜리 모형 지폐를 제작했다가 통화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일본 작가 아카세가와 겐페이. 그는 이후 지폐에 ‘0’이라는 숫자를 의도적으로 삽입했다. 한국의 오윤 작가는 조선시대 불화를 차용해 물신주의를 ‘지옥’에 비유했다.(‘마케팅Ⅰ: 지옥도’) 군데군데 인간 군상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 이 그림에서 펄펄 끓는 물에 내던져지는 화탕 지옥은 휘발유 제품명 ‘CX3’, 거대한 나무 판에 짓이겨지는 석개 지옥은 코카콜라와 연계된다. 소비사회를 상징하는 코카콜라의 메타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옥도 옆에는 콘돔을 씌운 콜라 유리병이 자리한다.미술관의 큐레이팅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보는 것도 전시를 즐기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가령 관객이 무대 위에 앉은 오노 요코의 옷을 자르는 영상 ‘컷 피스’는 당대에는 폭력과 전쟁(특히 베트남전쟁)에 대한 항의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엔 페미니즘 작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전시 말미 ‘젠더와 사회’에서 만나는 ‘생각하는 누드’에서는 필리핀 여성미술연대 ‘카시블란’ 창시자인 줄리 루크가 제왕절개수술의 상처가 역력한, 모성 경험으로서의 자기 신체를 드러낸다. ‘폭력’과 ‘모성’이라는, 여성의 신체에 각인된 제각기 다른 키워드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를 보면 “아시아 현대미술의 새로운 경향이 외부나 서구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내부의 정치적 자각, 이전과 다른 예술 태도, 새로운 주체 등장을 따라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미술관 측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 제1·2전시실, 중앙홀을 아우르는 방대한 규모에 각 나라 역사를 되새기느라 작품들 앞에서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오랜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음미할 것을 추천한다. 오는 5월 6일까지. 글 사진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주80시간 전공의·태움 간호사… ‘과로사 시한폭탄’ 또 터진다

    주80시간 전공의·태움 간호사… ‘과로사 시한폭탄’ 또 터진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 야간당직 일주일 2.11회… 실질적 휴식 6.94시간뿐 법적 면피용으로 ‘가짜 당직표’ 만들기도 간호사 31% “밥 먹을 시간도 없다” 호소 국민 안전 위협할 수도… 인력 충원 시급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에 이어 30대 전공의(레지던트)가 근무 도중 숨지면서 보건의료업의 과로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주 80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와 태움 문화로 대표되는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병원 내 과로사가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만성 수면부족으로 몽롱한 상태로 일하는 것은 시민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병원 내 잔혹한 과로는 전공의, 수련의(인턴), 간호사에게는 일상이다. 10일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전국 전공의 수련병원 실태 조사(2018)에 따르면 전국 82곳 병원 전공의의 주 평균 근무시간은 77시간이다.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근무하는 야간당직은 일주일 평균 2.11회이고, 당직 근무가 끝난 뒤 실질적인 휴식 시간은 6.94시간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야간당직을 서지만 당직 이후에도 적절한 휴식은 보장되지 않는다.전공의들은 입원 환자의 건강을 시시각각 체크하고, 때맞춰 알맞은 처방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근무 중에도 쉴 틈이 없다. 2년차 영상의학과 전공의 A씨는 “어제 24시간 응급실 근무한 후배가 오늘도 다시 일하러 나왔다”며 “최근에는 법적 면피용으로 가짜 당직표를 만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법적으로는 근무시간 중 휴식시간을 가져야 하지만 지킬 수 없다. 본인의 휴식보다 환자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 센터장도 설 연휴 기간 진료 공백을 막으려 추가근무를 하던 중 돌연사했다. 사인은 관상동맥경화에 따른 급성심장사로, 과로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그뿐만 아니라 설 연휴 전날인 1일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24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하던 30대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숨졌다. 전공의특별법상 전공의는 주당 80시간 근무에 8시간 초과근무가 허용된다. 단 연속 근무는 36시간으로 제한된다. 지난해 7월부터 노동자(300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근로시간을 주말근무와 연장근로를 모두 더해 주당 52시간 이상 넘길 수 없도록 한 것과 대조적이다. 보건업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제한을 받지 않는 특례업종이다. 간호사 과로도 전공의 못지않다.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다 보니 “근무 내내 한 번 앉지도 못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보인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보건의료노조의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간호사는 전체의 54.4%, 식사시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경우도 31.1%에 달한다. 5년차 대학병원 간호사 B씨는 “간호 업무는 특성상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일이 많다”며 “인력 충원으로 담당 환자수를 줄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한미정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장시간 노동의 근본 원인은 업무량에 비해 부족한 인력 때문”이라며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로 문제는 환자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 질은 물론 의료 사고 등 국민 안전과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요즘 애들’ 유재석, 10년 후 미래 예능 체험→처참 “너무 두렵다”

    ‘요즘 애들’ 유재석, 10년 후 미래 예능 체험→처참 “너무 두렵다”

    MC들이 10년 뒤 예능을 경험하고 화들짝 놀랐다. 10일 방송 예정인 JTBC ‘요즘애들’에서는 MC들의 잔혹한 미래 예능 체험기가 펼쳐진다. 예능 경력 30년을 향해가는 국민 MC 유재석부터, 김신영, 안정환, 하온, 그리고 게스트 안영미까지 전에 본적 없던 예능 미션에 도전하게된 것. 최근 진행된 ‘요즘애들’ 녹화에서 “미래 예능 아이템을 만들어 예능계의 4차 산업 혁명을 보여주겠다”는 ‘요즘 애들’의 제안에 유독 큰 관심을 보인 유재석은 “출연자를 물속으로 날리는 ‘플라잉 체어’는 사실 내 아이디어다”라며 레전드 예능템의 탄생비화를 밝혔다. 20년 가까이 사랑받은 ‘플라잉 체어 부심’에 빠져 있던 중, 괴짜 발명가 ‘요즘 애들’의 기발한 아이템들이 이어지자 곧 “우리 집에 와서 한 시간만 아들 지호랑 놀아 달라”며 러브콜을 보냈다는 후문이다. 한편, 괴짜 발명가가 구현한 10년 후 미래 예능 현장에 도달한 MC들은 모두 아연실색했다. 복장은 ‘무한도전’을 떠올리게 하는 쫄쫄이에, 미래 예능 아이템은 상상 이상으로 잔혹했던 것. 쏟아지는 검은 물, 타게팅이 정확한 물 공격에 모든 게임을 마친 MC들의 모습은 처참 그 자체였고, 예능 달인 유재석 조차 “10년 뒤 예능... 너무 두렵다”는 말을 남겼다. 국민 MC 유재석마저 벌벌 떨게 만든 ‘미래 예능 체험’은 어떤 모습일지, 전에 없던 예능 미션에 도전한 MC들의 맹활약상은 10일 오후 10시 50분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여기는 인도] 잠자던 5세 여아, 납치 후 성폭행·살해 당해 충격

    [여기는 인도] 잠자던 5세 여아, 납치 후 성폭행·살해 당해 충격

    ‘강간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가진 인도에서 또 한 건의 충격적인 성범죄가 발생했다. 미국 CNN 등 해외 언론의 8일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의 주도인 뭄바이에 살던 5세 여아가 괴한에 납치 및 성폭행을 당한 뒤 잔혹하게 살해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여아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7일 이른 새벽 부모 및 형제 3명과 함께 잠들어 있다가 괴한에 납치됐다. 딸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아챈 부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에 돌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종된 여아의 시신은 집 인근 길목에서 발견됐다. 부검 결과 피해 여아는 살해되기 직전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용의자 1명의 신원을 파악한 상태이며, 인근 건물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며 용의자 및 공범의 행방을 찾고 있다. 납치 및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된 5세 여아의 소식이 알려지자 인도 여성들은 또 다시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다. 2012년 뉴델리를 달리는 한 버스에서 20대 여학생이 집단성폭행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분노가 촉발됐지만, 13.3분당 한 건 꼴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는 등 여전히 ‘강간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채 잔혹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사우디 정부, 카슈끄지 계획살인”… “빈살만이 1년 전 제거 지시”

    “사우디 정부, 카슈끄지 계획살인”… “빈살만이 1년 전 제거 지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계획적으로 자국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유엔이 결론 내렸다. 뉴욕타임스(NYT)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1년 전 카슈끄지 제거를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AP통신 등은 7일(현지시간) 아네스 칼라마르 유엔 특별보고관 보고서를 인용해 “터키에서 수집한 증거를 볼 때 카슈끄지는 사우디 정부가 계획하고 실행한 잔혹한 살해의 희생자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칼라마르 보고관은 “사우디 관료들은 범죄 현장을 조사하려는 터키의 노력을 방해했다”면서 “터키 정보기관이 입수한 카슈끄지 피살 사건 당시의 음성 파일을 들을 수 있었다.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재판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면서 사우디를 방문해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우디에 촉구했다. 앞서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해 현장 책임자 등 11명을 기소했다. 법원은 이 가운데 5명에 사형 선고를 내렸다. 사우디 정부는 칼라마르 보고관의 보고서에 대해 논평하지 않았다. 같은날 NYT는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빈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피살되기 1년 전인 지난 2017년부터 카슈끄지 살해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빈살만 왕세자는 당시 고위보좌관과에게 “만약 카슈끄지가 사우디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고 귀국하지 않을 경우 그에게 ’총탄‘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 보좌관이 빈살만 왕세자에게 카슈끄지를 상대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위험하며 국제적 비난을 초래할 수 있다고 조언했으나, 빈살만 왕세자는 오히려 “사우디인을 다루는데 국제적 반응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며 보좌관을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빈살만 왕세자는 카슈끄지의 영향력 커지는 데 불만을 가졌으며, 카슈끄지의 기사와 트윗이 진보적 개혁가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퇴색하는 것에 반감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NYT는 또 “한때 자신의 개혁을 지지하던 언론인으로부터의 비판인 만큼 보다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드러난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 전말

    드러난 사우디 언론인 카슈끄지 살해 사건 전말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자국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피살되기 1년 전인 2017년부터 카슈끄지 살해 의사를 표명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7일(현지시간)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당시 고위보좌관과의 대화에서 “만약 카슈끄지가 사우디에 대한 비판을 중단하고 사우디로 귀국하지 않을 경우 그에게 ‘총탄’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타임스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입수한 이 대화가 빈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당하기 훨씬 전부터 살해를 고려해왔음을 보여주는 가장 상세한 증거라고 지적했다. 타임스는 이 대화가 정보기관들이 카슈끄지 살해 책임 규명을 위한 증거 수집 일환으로 최근 녹취,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가안보국(NSA)을 비롯한 미 정보기관들은 가까운 우방을 포함해 외국 정부 최고위 관리들의 대화를 일상적으로 감청, 녹음해왔으며 현재 빈살만 왕세자의 수년간에 걸친 음성과 대화록을 면밀히 분석 중이라고 타임스는 전했다. NSA는 지난 수개월간 빈살만 왕세자의 대화에 관한 정보보고를 다른 정보기관들 및 백악관과 동맹국들에 회람했으며 미 중앙정보국(CIA)은 카슈끄지 피살 수 주 후 1차 평가를 마무리 짓고 빈살만 왕세자가 살해 지시를 내린 것으로 결론지었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관리들이 카슈끄지의 사우디 정부에 대한 비판에 경각심을 나타내던 2017년 9월 최측근 보좌관인 투르키 알다힐과 문제의 대화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우디 최고위 관리들은 워싱턴 포스트(WP)에 사우디 비판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 카슈끄지를 사우디로 불러들이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당시 대화에서 빈살만 왕세자는 “만약 카슈끄지가 (회유를 통해) 사우디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강제로 귀국시켜야 할 것이며 이 방법들이 모두 통하지 않는다면 총탄으로 그를 추적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보분석가들은 그러나 빈살만 왕세자가 당시 총탄 언급을 통해 문자 그대로 ‘사살’을 의미했다기보다 만약 카슈끄지가 돌아오지 않을 경우 그를 살해할 의도가 있음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타임스는 전했다. WP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던 카슈끄지는 지난해 10월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방문했다. 이후 본국에서 파견된 암살단에 의해 현장에서 살해된 뒤 시신이 사라졌다. 사우디 정부는 카슈끄지 피살에 빈살만 왕세자의 개입을 극구 부인해왔으며 평소 빈살만 왕세자를 두둔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의회 등의 강력한 규탄에도 불구하고 사건 규명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한편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즉결처형에 관한 보고관은 7일 “터키에서 수집된 증거를 볼 때 카슈끄지는 사우디 정부가 계획하고 실행한 잔혹한 살해의 희생자로 보인다”고 보고서를 통해 말했다. 지난달 25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이 구성한 카슈끄지 피살 사건 진상 조사단 단장으로 임명된 칼라마르 보고관은 이달 3일까지 3명의 조사관과 터키에서 독자적인 조사를 벌였다. 사우디 정부는 사건 연관성을 부인하다가 사건 현장 음성 파일 등 증거들이 나오자 카슈끄지의 귀국을 설득하려고 터키에 파견된 현장 팀장이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했다고 말을 바꿨다. 칼라마르 보고관은 “사우디 관료들은 범죄 현장을 조사하려는 터키의 노력을 방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터키 정보기관이 입수한 카슈끄지 피살 사건 당시의 음성 파일을 들을 수 있었으며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내용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우디 정부는 칼라마르 보고관의 보고서에 대해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사우디 검찰은 카슈끄지 사건과 관련해 현장 책임자 등 11명을 기소했고 이 가운데 5명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칼라마르 보고관은 재판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면서 사우디를 방문해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줄 것으로 사우디에 촉구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월드스타’를 꿈꾸는 ‘월동스타’, 개그맨 김경진의 물고기愛

    ‘월드스타’를 꿈꾸는 ‘월동스타’, 개그맨 김경진의 물고기愛

    MBC 개그맨 공채시험에서 당당히 수석으로 합격. 보기만 해도 빵 터지는 얼굴과 언밸런스한 목소리로 ‘나의 사랑, 너의 사랑 김경진’을 유행시킨 개그맨 김경진(36)씨. 요즘은 방송일이 많이 없어 영어학원, 피아노학원을 다니며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하고 있다는 김씨.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이 혹한의 겨울을 잘 견디며 살고 있다는 그는, 지금의 자신을 ‘월동(越冬)스타’로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마치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권의 잠룡들’처럼 대중들에게 핵폭탄급 웃음을 선사할 ‘개그개의 잠룡’이라며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는 셈이다. 올해는 그에게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듯하다. 김씨는 83년생 황금돼지띠다. 돼지의 좋은 기운을 받아 개그인생 황금기에 흠뻑 빠져보기를 기대해 본다. 지난 29일 ‘월드스타’를 꿈꾸며 ‘월동스타’신분으로 이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김씨를 강서구 양천구 자택에서 만났다. 방송에서 보여줬던 유쾌한 모습과는 달리 그의 첫인상은 차분하면서도 따뜻했다. 그는 물고기 덕후로 잘 알려져 있다. 한 때는 집안이 ‘아마존’과 같았다고 할 정도로 온통 수족관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와 거북이들을 키우다 자식과도 같았던 녀석들을 떠나버리게 된 아픔의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어머니의 등쌀에 지금은 수족관 한 개만 달랑 남았다. 김씨는 사극에서 거지나 천민 역할을 주로 했고, 현대극에선 변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물고기를 키우고 있는 그의 신분은 드라마 속 신분과 천양지차다. 김씨는 사극의 왕 역할이나, 현대극의 재벌 역할이 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한(恨)을 물고기를 키우면서 대리만족하고 있는 듯 하다. “물고기가 살고 있는 수족관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우주가 보이는 듯 해요”, “제가 그 광대한 우주를 다스리는 신(神)과 같은 존재라고 느껴져요”라는 말에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물고기 찬가를 부르던 그의 진지함이 참을 수 없는 웃음으로 어깨가 들썩 거려 민망한 순간도 있었지만 누가 뭐래도 ‘뼈 속 개그맨’ 임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칭 ‘개그개의 잠룡’ 김씨가 수면 위로 올라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현실 속 ‘개그개의 왕좌’에 앉게 될 그날을 기대해 보며 그와의 만남을 정리했다. (Q) 요즘 근황은요즘 방송일이 많이 없어서 자기개발에 힘쓰고 있다. 영어 학원도 다니고 피아노도 배우고 있다. ‘월드스타’를 꿈꾸는 ‘월동스타’라고 말하고 싶다. (Q) 물고기는 어떻게 관심 갖게 됐는지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셔서 늘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잡으신 물고기들을 집에 가져 왔다. 쏘가리, 메기, 빠가사리, 가물치, 붕어, 잉어, 향어 등 웬만한 민물고기는 욕조에 넣고 다 길러봤다. 물고기 기르는 게 너무너무 재밌다. 좀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집 안에 있는 수족관을 들여다보면 우주가 보인다. 물고기들을 위해 물도 갈아 줘야 되고 사료도 줘야 된다. 마치 내가 신(神이) 된 느낌이다. (Q) 키우는 물고기 비용도 만만치 않을텐데‘금용(金龍)’이라고 불리는 아로아나 같은 경우는 족보 있는 강아지하고 똑같다. 30만원 정도 하는 폴립테르스를 길러 봤다. 잘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날 밖에 나갔다 돌아왔는데 수족관 위로 점프해서 바닥에 떨어져 말라 죽어있는 걸 보게 됐다. 애지중지 하면서 길렀던 물고기라 세상 다 잃은 느낌이었다. 외출하면서 뚜껑을 잘 닫았는데도 불구하고 뚜껑을 뚫고 나와 버린 거다. 삼가 고어(故魚 )의 명복을 빌었다. (Q) 애완용 물고기 키우는 매력 혹은 심리적인 효과가 있다면밥을 주려고 박수를 치면 오기도 하는 귀여운 면도 있다. 물론 강아지, 고양이 만큼의 친밀도는 없지만 다른 매력들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고기도 살려고 열심히 움직이고 먹이 찾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과 똑같은 거 같다. 서로 눈 마추치면서‘오늘 하루 잘 지냈니?’,‘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이런 대화들도 가끔 하면서 지낸다. 물고기 아이큐가 ‘3’이란 말이 있지만 훈련하면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Q) 애완용 토종자라 ‘자뻑이’를 키우다 죽게 된 사연은‘자뻑이’만 생각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물고기와 함께 거북이 기르는 걸 너무 좋아한다. 후배가 낚시하다 발에 밟히는 조그마한 자라를 발견하고 종이컵에 담아 선물로 줬고 3년 정도 키웠다. 집에 들어오면 목을 쭈욱 빼면서 “안녕, 왜 이제 왔어”라고 말을 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가 다시 몸 속으로 쏙 들어간다. 너무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지난 해 너무 더운 여름날 에어컨을 끈 채로 나갔는데 창가로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로 죽게 됐다. 전기세 아까워하지 않고 에어컨만 틀고 나갔다면 그런 일을 없었을텐데. 전적으로 내가 부주의한 탓이다. (Q) 애완용 물고기를 처음 키우려는 사람들에게저도 강아지, 고양이를 너무나 좋아한다. 하지만 심한 비염 때문에 키울 수가 없다. 물고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수조는 가습기 역할을 할 수 있어 쾌적한 실내환경을 만들 수 있어 좋다. 물고기를 처음 키우시려는 분들에겐 비싼 물고기나 큰 물고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기르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키우기 쉬운 ‘구피’ 같은 종류를 키워 보는 것도 좋은 거 같다. (Q) 어장 물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물을 한 번에 갈아주면 물고기들은 쇼크사로 죽는다. 물 전체의 20% 정도만 환수해 주면 물고기를 아주 건강하고 재미있게 죽이지 않고 키울 수가 있다. 여과기도 6개월이 되면 막히기 때문에 갈아줘야 한다. 환수나 청소하는 게 귀찮아서 잘 못해주기도 하는데 지금은 정성껏 청소도 해주고 물도 열심히 갈아주고 있다. 강아지, 고양이처럼 물고기 키우는 것도 정성과 사랑이 없으면 힘들다. (Q) 결혼 후에도 계속 키울 계획인지한창 물고기 많을 때는 집 자체가 아마존이었다. 어머니가 오셔서 ‘제발 수족관 버려라’라고 많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다 정리하고 지금은 하나 남았다. 나중에 결혼해서 아내가 ‘정말 버려라’라고 말해도 한 개 정도는 놔둬야 맘이 편할 거 같다. (Q) 힘들다는 아로아나 번식도 성공할 뻔 했는데중학교 때 돈을 조금씩 모아서 당시 새끼 한 마리에 5~6만원 하는 아로아나 한 마리를 샀다. 아버지가 먹던 홍삼, 흑마늘 등 보양식을 많이 주면서 키웠다. 아로아나는 날아다니는 새나 곤충을 잡아먹기로 잘 알려진 물고기다. 물 갈아준다고 하다가 이 녀석이 점프해서 바닥에 떨어졌고 뇌진탕으로 몸을 파닥파닥 거리며 떨었다. 겁이 나서 다시 물속으로 넣었지만 몸이 계속 뒤집어 졌다. 기포기를 입에다 넣어줬는데 죽고 말았다. 어렸을 때라 그랬는지 마음이 너무 아팠다. SBS 예능프로그램 강심장에서 이 사연을 말했더니 다시 한 번 키워보라고 아로아나 한 마리를 선물로 줬다. 큰 수족관도 사서 60cm까지 키웠고 60cm 아로니아 한 마리를 추가로 입양했다. 어느날 주황색 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수컷으로 추정했던 아로니아가 알을 옆으로 누워서 먹는 것을 봤다. 재빨리 뜰채로 알들을 건지다가 많이 깨뜨렸다. 결국 번식은 실패했다.(Q) 앞으로의 활동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사극에서는 ‘거지’, ‘천민’, 현대극에서는 ‘변태’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 변신을 하고 싶다. 사극에서는 ‘양반’, 현대극에서는‘재벌’역할을 해보고 싶다. 물고기 잘 키워서 번식도 도전할 거고, 유튜브 ‘깽진TV’도 열심히 할 예정이다. 지켜봐 주시고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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