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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산적인 경제청문회 준비/盧成泰 한화경제연구원 원장(대한광장)

    청문회,증인,위증 같은 단어들이 나돌기 시작하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두 인물이 있다. 한 사람은 성추문 때문에 탄핵의 위기까지 몰렸던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고,또 한 사람은 지난해 4월7일부터 25일간 계속된 우리 국회의 한보 청문회에서 거침없는 언변으로 스타의 위치에까지 올랐던 어느 남성 클리닉 의사이다. 이들과 함께 또 한가지 연상되는 것이 로마의 관행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증인이 선서를 할 때 요즘처럼 오른손을 위로 들거나 성경 위에 얹었던 것이 아니라,오른손을 자신의 몸 주요부분에 대고 진실만을 말하겠노라고 맹세했다고 한다. 만약 추후에 위증임이 밝혀졌을 때는 내시 신세가 되고 마는 중형이 내려졌다고 한다. ○책임소재 명확히 밝혀야 金大中 대통령과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는 그간 개최 여부로 논란이 많았던 경제청문회를 다음달 8일부터 열기로 합의하였다. 세계적으로 기적이라고까지 칭송받던 한국경제가 삽시간에 이렇게까지 주저앉게 된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고 책임소재를 확인하여 또다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청문회의 의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 그러나 청문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충분한 사전준비가 없다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별무소득으로 막을 내리고 말아,결국은 국민들의 허탈감과 실망감만을 깊게 해줄 우려가 있다. 준비해야할 일은 우선,사안이 경제에 관한 것이고 증언대에 설 사람들도 경제전문가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심문에 나설 국회의원들로서도 이에 맞설 수 있을 만큼 이론이나 실무경험을 빌려 무장하고 나와야 할 것이다. 지엽적인 문제나 말꼬리를 잡고 노니느라 핵심을 비켜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증인들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게 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습득해야 할 것이다. 호통이나 치고 인상이나 써서 실토를 받아내겠다는 태도는 구시대에나 통했을 것이고,지금은 시간낭비에다 국민들의 혐오감만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면에서 상대방인 증인보다 훨씬 불리한 상황하에서도 진실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에 관해서는 경제학 쪽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며,특히 96년에는 이 분야의 연구자 두 명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다. 경제학,심리학등 인간행동에 관한 여러 연구결과를 원용하여 좋은 질문들을 던져준다면 훨씬 생산적인 청문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거짓을 말하는 증인에 대하여는 엄청난 불이익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위증자 단죄 제도개선 긴요 현행 제도 하에서는 위증한 사람을 고발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는데다 위증에 관한 벌칙도 무겁다고 하기는 어려우므로 증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실토할 만한 인센티브가 없게 되어있는 것이다. 고대 로마만큼의 중형은 아니더라도 위증자는 반드시 고발되고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긴요하다. 마지막으로 청문회의 운용을 감시하고 평가해줄 기관이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날 그날 청문회의 결과를 요약하고 잘되고 못된 부분을 강조하여 보여줌으로써 청문회에 임하는 모든 인사들의 자세가 보다 진지해지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인기만을 의식해 수세에 놓인 증인에게 고함만 질러대며 인권을 침해하는 의원들이나 친분이나 세력관계 때문에 미리 주눅이 들어 질문하는 의원들에게는 가차없는 국민들의 질책이 내려지게 해야 할 것이다.
  • 공포에 휩싸인 韓銀 국제부/吳承鎬 기자(경제 프리즘)

    “발설자를 색출하라” 외채통계 작업의 실무를 맡고 있는 한국은행 국제부 직원들은 요즘 ‘공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범인으로 내몰리면서 일손이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이런 기류는 지난 9일 밤부터 형성됐다. 대한매일이 외채통계 엉터리 관련기사를 단독 보도하자 발설자 색출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공식 발표하기 이전 한은에서 그 내용이 미리 새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보안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며 언론에 흘린 사람을 밝혀내 책임을 추궁하겠다고 다그치고 있다. 심지어는 일부 임원(부총재보)들마저 “라인 관리를 잘못했으니 책임지고 밀고자를 밝혀내라”는 지시를 받고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색출명령이 한은내부 또는 외부기관에서 나왔는 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沈勳 부총재가 재정경제부에 관련자료를 넘겨주기 이전인 지난 주말 쯤 국제부실무자로부터 외채통계 수정작업 결과를 결재하면서 “보안을 잘 유지하라”고 지시했다는 얘기가 들릴 뿐이다. 며칠 안에 외채통계의 문제점과 수정작업 결과를 발표할 재경부도 한은 간부들에게 적지 않게 호통을 치고있는 것이 감지된다. 그러나 외채통계의 허점은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할 밀고자 색출작업에 혈안이 돼있는 당국의 모습은 어딘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긴다. 조직의 발전을 가로막고 외환위기의 조기 극복도 더디게 하는 암적 요소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國監 이대로는 안된다/호통·반말 등 고압적 자세 여전

    ◎대안 제시보다 국민 눈길 끌기/보좌진 강화·시민감시 확대 시급 국회의원들의 ‘정책감사’는 먼나라 얘기인가. 국회 국정감사 6일째인 28일,13개 상임위별 각 국감장에는 질의 의원들의 반말과 훈계조 어투가 여전했다. 지난 5일 동안의 국정감사에서도 의원들의 저질 발언은 끊이질 않았다. 낯뜨거운 육두문자도 터져 나왔고 상대 의원과의 멱살잡이가 낯선 풍경만은 아니었다. 이런 사이 국회 다른 한쪽에선 ‘의원후원회’란 행사가 그치질 않고 있다. 국정감사 기간임을 헤아려 특별히 후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의원 스스로 “짧은 국감기간”이라고 지적하면서도 이같은 행태를 보이는 데 시민들은 의아할 뿐이다. 이러한 문제는 우선 의원들이 20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정부의 1년 공과를 감사해야 하는 등 제도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는 의원 개개인이 세련된 ‘대화 방법’을 갖지 못하고 있는 데서 이같은 행태가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정신이 부족하고 상대 의견을경청하는,‘듣는 훈련’이 덜 돼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의회 전문가들은 국감 도중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의견이 나올 경우 “우선 경청하라”는 제언이다. 일단 경청한 뒤 문제가 있으면 소속 위원장에게 신상발언을 요청,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을 상대로 호통을 치거나 고압적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대안 제시’보다는 대부분 ‘튀는 행위’로 관심을 끌려는 심리에서 나온다는 분석이다. 그만큼 질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행위에 다름아니다. 의원들의 질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예산문제이기는 하지만 보좌진의 정책보좌 기능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하지만 보좌진을 개인비서 정도로 착각하는가 하면 보좌진 자리를 ‘친·인척의 밥벌이’ 정도로 인식하는 의원들도 적지않은 게 현실이다. 좀더 장기적으로는 국회 상임위원회의 상설화,지구당에서의 상향식 공천제도 조기 확립,시민단체 감시활동의 완전한 보장,상임위원장의 권한 확대,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운영 내실화를 하루빨리 실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國監 이대로는 안된다­舊態 그대로

    ◎정책은 없고 정쟁만 판친다/욕설 대결·음주추태에 난투극까지/한건주의 공세·눈치보기 답변 재연 국정감사에 정책은 실종되고 정쟁(政爭)이 판을 친다.한건주의와 음주 추태에 욕설과 멱살잡이도 여전하다.여든,야든 피감기관의 시선은 아랑곳없다는 투다.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빌미로 근거없는 정치공세도 남발하고 있다. 27일 정무위의 국가보훈처 국감장.국민회의 국창근,한나라당 李思哲 의원이 멱살과 넥타이를 잡은 채 난투극을 벌였다.鞠·李의원은 “어린 놈의 ××가 여기가 아직도 검찰인 줄 알아”“이 ××야 나이를 들먹이려면 나이값 좀해”라며 10여분간 뒤엉켜 싸웠다.전날 교육위의 서울시 교육청 감사에서는 국민회의 盧武鉉,한나라당 李在五 의원이 “거지 같은 ×”“×만한 ××,너 죽어” 등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주고 받았다. 노골적인 ‘한건주의’도 변함없다.농림해양수산위의 한나라당 尹漢道 의원은 23일 농림부 감사에서 TV 카메라기자들을 불러오라고 호통을 쳐놓고 이들이 도착하자 싹이 돋은 볏단을 들이대며 질의를 시작,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음주 행태도 빠지지 않는다.국방위의 23일 국방부 감사에서는 일부 여야 의원들이 저녁식사 시간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 잡담을 하거나 술에 취한 목소리로 질의를 해 빈축을 샀다.특히 국민회의 權正達 의원은 27일 국방부 2차 감사에서 “본인은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다.충혈을 막기 위해 간간이 눈을 감는 습관이 있는데 술을 먹고 잠을 잤다는 언론 보도는 억울하다”고 해명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여야간 신경전이 ‘절름발이 국감’을 자초하기도 한다.총풍사건으로 얼룩진 법사위의 27일 서울지검 국감에서는 여당이 자정 이후의 국감을 거부하는 바람에 朴舜用 서울지검장의 답변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재경위의 지방국세청 감사도 ‘국세청 불법모금 사건’을 둘러싼 여야간 줄다리기로 공전에 공전을 거듭했다. 국감을 지역 민원 해결용으로 여기는 의원도 있다.건설교통위의 철도청 감사에서 국민회의 李龍三(강원 철원·화천·양구),자민련 吳長燮(충남 예산) 의원은 안보관광코스의 개발과 장항선의 복선화를 요구했다.피감기관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호통을 치는 권위주의도 사라지지 않았다.행정자치위원장인 자민련 李元範 의원은 27일 광주시 감사에서 吳炫燮 광주시 기획관리실장의 업무보고 도중 “힘이 없다.똑똑히 보고하라”고 몰아세웠다. 법사위원장인 한나라당 睦堯相 의원은 같은 날 朴舜用 서울지검장에게 “검찰이 총풍수사 발표문에 ‘3인방’의 구속기간 연장 불허를 요청한 본인 명의의 공문 발송을 적시한 것은 정치적인 의도에 의한 것”이라며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여러차례 역정을 냈다. 근거없는 정치공세성 발언도 여전하다.국민회의 鄭漢溶 의원(재경위)은 뚜렷한 물증없이 26일 국세청 감사에서 金泳三 전 대통령의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설’을 제기했다가 金전대통령측으로부터 고소당했다.한나라당은 법사위와 정무위 등에서 “안기부의 고문 사례와 현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일부 피감기관장들의 눈치보기식 답변도 재연되고 있다.裵洵勳 정보통신장관은 23일 야당의원들의 집요한 감청관련 자료제출 요구에 “정통부가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가 “상임위 결의사항으로 요구하면 제출하겠다”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申樂均 문화관광장관도 같은 날 야당의원들이 언론의 편파보도를 문제삼자 “개인적으로는 유감으로 본다”고 했다가 여당의원들의 문제제기로 “편파 왜곡보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 “장교 정원 증가” 국방개혁 추궁/國監 이모저모

    ◎“장마 종료발표 성급” 주장에 기상청장 미소짓다가 곤욕 국회는 27일 5일째 국정감사를 계속했다.법사위 등 일부 상임위를 빼고는 여야 의원간에 별다른 충돌이 빚어지지 않았다. ▷국방부◁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감사에서 국민회의 金元吉 의원은 “인력과 예산 절감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 없다”며 “획득본부 신설은 작은 정부 구현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꼬집었다.같은당 張永達 의원은 “국방부와 주요 사령부 간부진의 90%가 육군”이라며 육·해·공군 균형발전을 주문했다. 한나라당 河璟根 의원은 “국방개혁을 통해 기구와 인원 감축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내년도 장군 정원은 단 한명도 줄지 않고 영관장교는 137명,위관장교는 139명이 오히려 증가했다”고 지적했다.같은 당 許大梵 의원은 “체육부대 해체로 절감하는 예산은 연간 31억원에 불과하다”며 체육부대와 간호사관학교 폐지 계획을 백지화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자민련 朴泰俊 총재는 오후 국감장에 나와 국방위원들을 격려했다. ▷기상청◁ ○…과학기술정보통신위의 기상청 감사에서는 지난 8월 집중호우사태 당시 기상예보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국민회의 金榮煥 의원은 “평소 존경하는 文勝義 기상청장께 이런 말씀을 드리게 돼 대단히 미안하지만…”이라고 서두를 꺼낸 뒤 “기상청이 지난 7월28일 장마 종료를 발표한 것은 성급한 게 아니었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文청장이 “의원께서 잘못 생각하신 것 같다”며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얘기하자 여야 의원들이 동시에 “지금 여기가 어떤 자리인데 비아냥 거리는 투로 대답하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나 감사에 나선 의원들은 준비를 소홀히 한 탓인지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 高宗 밀서사건(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0)

    ◎을사조약 강제성 낱낱이 들춰/영지게재 6개 조항 1면 논설통해 소개/일제 정정요구 거부/밀서 사진으로 전재 “고종 진의 확인” 공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뒤 발생한 ‘고종 밀서사건’은 언론을 통해 을사조약의 강제성과 대한제국의 주권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것이다.한국침탈을 강행한 일제는 이 사건으로 이미지를 크게 손상받았고 한반도 정책에서 더욱 강경책을 시도하게 된다. 특히 이 사건은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국내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반일감정을 급속히 확산시켰고 결국 일제가 대한매일 등 민족지를 탄압하고 노골적인 침략정책을 진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이다. 고종 밀서사건은 대한제국 황실과 영국의 런던트리뷴 특파원인 더글러스 스토리 간에 극비리에 진행된 일종의 작전이었다.스토리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주한 미국공사 모건을 만나 을사조약 체결전말을 들은 뒤 고베에서 통감부 총무장관으로 새로 임명된 스루하라 일행과 함께 한국에 온 것은 1906년 초. 서울의 지인들과 두루 접촉한 끝에 고종을 만난 스토리는1906년 1월29일 고종의 밀서를 전달받는다.밀서는 모두 6개 조항으로 고종이 ▲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고 ▲조약을 일본이 반포하는 데 반대했고 ▲독립권을 한치도 타국에 양여할 수 없고 ▲이 조약의 외교권도 근거가 없으므로 내치상 한건도 인준할 수 없고 ▲통감의 주둔을 허락하지 않는 동시에 황실권도 외국인에 허가하지 않고 ▲세계열강이 한국을 집단보호통치하되 그 기한은 5년이 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고종의 붉은 옥쇄가 찍힌 이 밀서는 고종의 측근들이 일본측 정탐꾼들 눈을 피해 바짓가랑이 속에 감추고 나온 것이다. 스토리는 이 밀서를 대한매일 사주 裵說에게 보여준 뒤 일본군의 경계망을 뚫고 제물포에서 노르웨이 배에 올라 2월7일 중국 지부에 도착한다.영국영사 오브라이언 버틀러를 찾아가 고종의 밀서사실을 알리고 밀서내용 기사를 런던트리뷴 본사로 송고했다. 다음날 트리뷴 3면 머리에 이 기사가 실렸다.“을사조약은 고종의 재가를 받지 않았고 고종은 실질적으로 포로의 신세”라는 내용이었다.을사조약 체결 경위와밀서 6개항이 영문으로 함께 번역 게재됐다. 일본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주영 일본대사관은 트리뷴의 보도가 전혀 사실무근임을 주장하고 나섰다.또 고종이 보호조약에 날인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오히려 고종이 이 조약에 동의했다고 억지를 부렸다.그러자 스토리는 2월10일자 또 다른 기사로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다.일본이 한국 황제와 대신들을 협박해 보호조약을 체결하게 된 상세한 전말을 고종 측근의 말을 인용해 썼다. 이 기사는 트리뷴에 실린 뒤 로이터 통신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대한매일은 2월28일자 1면 논설 ‘保護’에 트리뷴의 기사를 소개했고 코리아 리뷰도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을 인용,한국황제가 을사조약의 신빙성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고종 밀서사건은 영국·일본·중국·한국 신문에 계속 보도됐고 1907년 1월부터 한국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는다.스토리는 1906년 10월부터 트리뷴에 ‘동양의 장래’란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다섯번째로 12월1일자에 문제의 밀서를 크게 실었고 대한매일은 이 밀서 사진을 1907년 1월16일자에 그대로 올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통감부가 적극 나서기 시작한다.밀서가 근거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무색해졌고 고종의 진의를 한국민들이 확실하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통감부는 “고종이 밀서를 준 일이 없다”고 강력 부인한 뒤 대한매일에 제동을 걸었다.裵說 추방책을 영국정부와 타진하기 시작했다.먼저 “밀서는 불순한 자들이 한일 양국의 친의(親誼)를 해치려고 날조한 것”이라는 내용을 1월21일자 관보에 실었다.또 한국정부 외사국장 李建春을 시켜 “대한매일에 실린 밀서기사는 사실무근이니 이를 정정하라”는 공문을 裵說에게 보냈다. 몇몇 친일계열 신문이 관보에 실린 내용을 게재했지만 대한매일은 오히려 밀서가 진짜라는 주장으로 맞섰다.1907년 1월23일자에 “이 밀서가 거짓이 아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까지 갖고 있으나 그 증거를 제시하면 관련 한국인들에게 보복이 떨어질 것이므로 이를 내놓을 수 없다”는 기사를 싣고 기사정정 요구를 무시했다. ◎고종 밀서 전말/한국의 중립화 목표/미·러 협조 실현안돼/외지에 일 음모 고발 고종의 밀서사건은 국내 반일감정 악화에 따른 통감부의 여론통제 방침을 더욱 강경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다.통감부는 밀서사건 뒤 곧바로 대한매일 등 항일 민족지의 논조를 희석시키고 통감부의 정책을 그대로 대변할 수 있는 친일지들을 만들어 갔다. 그러면 이처럼 일제를 자극한 고종의 친서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외세 강점기 이 밀서가 나오기까지 고종의 생각은 한국이 시종일관 중립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종은 일제 강점을 막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방향으로 열강의 협조를 구했고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세계 각국에 이를 알리기 위한 비밀문서까지 만들어주게 된 것이다. 밀서사건 때까지 고종의 이같은 노력은 수차례에 걸쳐 추진됐었다.1900년 주일 한국공사 李夏榮이 처음 제기한 ‘한국의 중립화’안은 러일간에 고조된 긴장상태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 사실.그리고 4년 뒤인 1904년 1월21일 고종의 명을 받은 외부대신 李址鎔이 한국의 엄정중립을 명기한 성명을 냈다.각국 주재대표 11명이 각국 정부에 이 선언서를 알렸지만 결국 2월23일 한일의정서가 체결됐고 이같은 중립화 정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고종은 열강의 힘을 본격적으로 빌리기 시작한다.1905년 2월 고종은 러시아 육군소장 데시노를 통해 러시아 황제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밀서를 보냈다.이 밀서는 주한 러시아 공사였던 파블로프를 통해 러시아로 전달됐다.또 을사조약 직전인 그해 10월에는 헐버트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프랑스 주재 한국공사 閔泳瓚을 미국에 보내 미국의 개입을 요청한 것도 유명한 사건이다.민영찬은 12월초 현지에 도착해 미 국무장관 루트에게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했으나 미국은 무심한 입장표명을 했다. 결국 고종은 이같은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국내에 와있던 외국기자를 통해 만국에 알리는 방안으로 밀서를 쓰게 됐던 것이다.
  • 고종의 강제 퇴위(秘錄 南柯夢:26)

    ◎“천리 거역땐 변고”… 이완용 잇단 傳位협박/이토 사주업고 매국노들 음모 미리 눈치챈 정환덕 황제께 비밀리에 봉서/일본군,함녕전 포위하고 기관총까지 설치 위협/사면초가 고종 마침내 조칙/‘섭정’으로 일격당한 일제 강제 양위식으로 퇴위시켜 그러나 이토 미간에도 풍진이… 이토 히로부미는 역시 교활한 여우였다.‘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던 그는 차제에 숙원사업으로 남아있던 고종의 양위를 실행하기로 결심했다. 1907년 7월3일 먼저 고종황제에게 “음험한 수단으로 일본의 보호권을 거부하였으니 차라리 당당하게 선전포고 하시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고 위협하고 3일뒤에 총리대신 이완용을 불러 “헤이그 밀사는 일본에 대한 공공연한 적대행위이니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선전(宣戰)할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협박했다.그리고나서 “당신 책임하에 고종을 양위시키시요”라고 명령했다.정환덕은 이 음모를 미리 알고 고종에게 은밀히 알려 드렸다. 하루는 강창희씨가 찾아와서 말하기를 “근간에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증응 임선준 이재선 등이 한적한 곳에 모여서 비밀리에 의논하는 것을 엿들었더니 바로 전위변혁(傳位變革=황제를 바꾸는 일)음모였습니다.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극히 위험한 일이 아닙니까.그러니 대감이 먼저 황제께 아뢰어 이 일을 미리 아시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일이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가 조석지간에 망하게 되었습니다.황제에게도 참화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나 이를 어떻게 하실지 걱정만 됩니다”고 하였다.그렇지만 국가의 운명이 경각에 달린 이 마당에 이것을 알면서도 아뢰지 않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라 생각돼 드디어 글을 써 봉함하고 서상궁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상감께 드리도록 했다. 주상께서는 봉서를 보신 뒤 긴 한숨을 내쉬며 서상궁을 불러 은밀히 하교 하시기를 “이 일을 어찌 조처하면 되겠는가.정환덕에게 속히 대답하라고 일러라”하시었다. 이에 나는 상서하기를 선위(禪位)하시는 문제는 주상폐하의 확고한 용단으로 결정하실 일이며 또 이 문제는 폐하의 집안일이신지라 소신이 간여할 일이 아닙니다.다만 금년 정미(丁未)년은 폐하의 역수(歷數,즉 운수)가 끝나는 해이온데 만일에 이를 거역하신다면 성상의 수명에 불리한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선위하신다면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우니 이런 난감한 일은 폐하께서 직접 조처하실 일이지 신이 감히 입을 열 처지가 못됩니다.참으로 황공하여 다시 말씀드릴 수 없겠습니다. 선전포고란 헛소리요,공갈이었다.고종이 이 말에 속아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이완용과 송병준이 무엄하게도 대궐의 문턱을 넘어 들어와서 “양위하셔야 합니다”고 아뢰자 호통을 치며 이를 물리쳤다. 이완용과 송병준 등 대신들은 함녕전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가서 전위(傳位)문제를 주달하였다.“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신지 이미 44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났고 동궁 전하(융희를 일컬음)의 성년(聖年)도 벌써 40이 가까웠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황상폐하께서는 동궁전하께 선위하심이 천리(天理)를 따르고 중의(衆議)를 저바리지 않으시는 것으로 압니다.감히 말씀드립니다”고 하였다.이에 황제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경들은 모두 여러대에 걸쳐 나라의 두터운 은총을 받은 신자(臣子)들이다.만일 전위의 의논이 있었다면 상소를 올려도 되고 간쟁(諫爭)을 하여도 가하거늘 어찌 무두무미(無頭無尾:밑도 끝도 없이)졸지에 여러사람이 궁궐에 들어와 전위를 강권하는가.이게 무슨 도리인가.비록 경들이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전위문제는 짐이 먼저 알아서 할 일이다.그러나 아직 짐의 정신과 기력이 쇠하지 않았고 동궁의 나이 40이 가깝다고는 하나 몸이 약하고 견식이 아직 미흡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결행하지 못한 것이다.물러가 짐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 가하다.절대로 강제로 하지 못할 것이다”고 하셨다.이에 이완용 등은 감히 다시 권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며칠 뒤 저들은 다시 일행을 거느리고 함녕전 대청에 들어와서 엎드려 말씀드리기를 “폐하께서 끝내 천리를 거역하시면 밖에서 부터 혹시 불칙한 변이 있을지 모릅니다”하였다. 이에 상감께서 말씀하시기를 “밖에서부터 불칙한 변이 있다니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하셨다.여러 사람이 소리내 주달하기를 “폐하의 운명이 이미 다 되고 하늘의 운수도 동궁에게 돌아갔으니 전하께서는 속히 전위하시어 천지신명에 따르고 옥체를 보존하는 것이 가하실 것으로 아옵니다.또 세계 열강들의 공론도 속히 전위하시는 것이 좋다고 하오니 폐하께서 빨리 용단을 내리시는 것이 옳은 줄로 아옵니다”고 하였다. 그들은 ‘세계공론’이라는 있지도 않은 허튼 말을 하고 있었다.이토는 이때 일본정부로부터 “저 놈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을 받고 있다고 공언하였다.다시말해 고종의 목을 베어 가져가겠다는 폭언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이토는 일본군을 동원,덕수궁 대한문을 밀고 들어가서 함녕전을 포위한 뒤 기관 총 4문을 설치하고 고종황제를 위협했다.또 남산에도 포대를 설치,서울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문자 그대로 전쟁상태였다.이같은 상태에서 고종황제는 마침내 조칙을 내리니 바로 1907년 7월19일 오전 3시였다. 짐이 대통을 이은 뒤 생민은 도탄에 빠지고 사직은 위태로워 망할지 모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환란과 재난이 없는 해가 없었던 것은 치안유지에 실패한 탓이었으며 짐이 부덕한 탓으로 그 화가 2천만 국민들에게 미쳤다.지금 뉘우친들 무엇하겠는가.세부득하여 동궁에게 전위한다.천지신명과 종묘사직에 성심으로 이를 고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조칙은 양위조칙이 아니었다.나라의 대사를 황태자로 하여금 대리케 한다는 섭정(攝政)조칙이었다.놀란 것은 이토였다.또 한번 고종황제에게 얻어 맞은 것이다.그는 황급히 본국으로 전보를 쳐 일왕이 고종의 양위를 축하한다는 전보를 치게했고 이튿날 오후 중화전에서 양위식을 거행하였다.그뒤 고종과 순종은 덕수궁과 창덕궁으로 격리돼 떨어져 살게 되었다. 대체로 태상황(고종)께서 신황제(순종)와 식탁을 같이 하고 침실을 함께 하신지 34년이다.그런데 하루 아침에 서로 떨어져 사시게 되었으니 부자간의 정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이토의 하수인으로 공을 세운 이완용은 대한제국 역사상 가장 부패한 인사행정을 자행하였으니 그 여독은 오늘에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신황제가 즉위한 뒤 개각을 단행했으나사실은 모두 저들이 멋대로 조각한 것이었다.총리대신에 이완용,내부대신에 송병준,탁지부대신에 고영희,군부대신에 이병무,궁내부대신에 이재선,외무대신에 조중응 그밖의 경무사(警務使)와 13도 장관,360주의 군수들까지 모두가 저들의 친족들과 인아(사돈),그리고 사돈의 사돈까지 줄줄이 차지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토는 고종 황제에게 이겼다고는 볼 수 없다.정환덕이 이토의 관상을 보았는데 그의 양미간에 풍진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몇해전 이토가 조선통감으로 부임했을 때 잠시 돈덕전(敦德殿)에서 보았는데 겉으로는 영웅같이 보였으나 가슴속에 끝없는 흉계를 갖고 있었고 양미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풍진(風塵)이 드러나 있었다.
  • 목표점을 바로 세우자/崔一道 목사·다일공동체 대표(서울광장)

    과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반공(反共)’이었다.그러나 ‘반공’은 차츰 중심부에서 밀려나 ‘경제회생’에 자리를 물려주었다.반공 이데올로기가 가장 큰 힘을 떨치던 시절,이와 대립되는 가치는 우리 사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반면 반공의 깃발 아래서는 모든 불의가 용납됐다.정의가 불의로 왜곡되어 전달되었고 비겁함이 현명함으로 포장되었다. 우리는 한 공동체의 최우선적 가치가 비뚤어졌을 때 얼마나 많은 고통이 뒤따르는지를 경험했다.지금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호령을 하며 우뚝 서있는 ‘경제회생’이라는 가치는 과연 올곧은 것일까? 과연 우리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는가? 요즘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다.예전에는 다일공동체 무료식당으로 공짜밥을 먹으러 오는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일해 제 돈으로 사 먹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됐다.정말이지 일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모두들 생존을 건 고민을 하고 있다.‘어떻게 내 밥그릇을 지켜낼 수 있을까? 먹거리를 어떻게 해결할까?’ ○나눔과 섬김의 자세 상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암울한 터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희망으로 터널 끝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다.사회의 여론을 이끌어 가는 이들은 백성들을 독려한다.‘더 열심히 일하고 더 아끼고 더 모아들이자’고….경제회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더…’해법은 우리를 이 어둠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 같지 않다.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근본 원인은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상실한 데 있다.지금이라도 가진 자가 나누기만 한다면,가난한 사람끼리라도 자기 것을 이웃을 위해 내놓을 수 있다면,위정자들이 자신을 조금만 더 낮출 수 있다면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이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사실 앉은뱅이는 일어나 걷는 것보다 동전 한닢을 더 구걸할 따름이다.왜냐하면 그의 불구는 그에게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체는 주저앉아 있다.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전 몇푼이 아니다.두발로 일어서서 걷고 뛰는 것이다. ‘경제회생’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올바로 세워가는 일’은 어려운 지금도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사항이다.이웃과 더불어 살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가치가 굳게 서 있는 사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최선의 선택보다는 차선을 택해왔다.그리고 차선의 선택은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공동체적 가치 회복을 어려운 때일수록 가장 올바른 것들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남북의 하나됨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통일이 되면 이 나라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는 한 형제자매이기 때문이다.노숙자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그들이 사회불안을 조장해서가 아니라 그들도 이 땅의 백성이고 또 가장 약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복지,교육,환경 등의 가치들을 다시 올바로 세워야 한다.뒤틀린 푯대를 가리키며 고통분담을 요구할 때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할 수 없다.올곧은 목표점을 향한 행진에는 그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는 백성들이 우리 백성들이다.
  • 정치권 사정과 검찰(사설)

    대전 경성그룹이 한국부동산신탁으로 부터 거액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정·관계 인사 15명의 명단을 발표하고도 돈 받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수사할 수 없다던 검찰이 청와대로부터 호통을 받고 재수사에 착수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국민을 외면한채 여기저기서 거액뇌물이나 받고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얽매여 있는 정치권에 대해 눈치를 보며 수사를 미뤄오다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고서야 관련 정치인 소환 등의 수사계획을 밝히는 등 뒤늦게 법석을 떨고 있다.아직도 검찰 본래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기아·청구·개인휴대통신(PCS)·종금사 비리 등 각종 사건이 터질때마다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없은 적이 없었다.그러나 그 때마다 검찰은 금품수수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관련 정치인 명단공개는 물론 수사자체를 미뤄왔다.이번에 터져나온 ‘경성리스트’만 하더라도 ‘정치인들의 이름만 거명될 뿐 범죄혐의는전혀 포착되지 않아 사실상 수사를 종결한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었다.검찰은 심지어 각종 비리연루 정치인 리스트가 증권가의 정보 생산꾼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생산품쯤으로 여긴다는 태도를 보이며 무시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같은 태도와는 달리 각종 금품수수 의혹사건에는 반드시 정치권 인사들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성역없는 철저한 수사와 관련,정치인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검찰 스스로 강력한 의지로 비리척결 수사에 착수하지 못하고 미적거리다가 ‘수사종결’ 선언에서 ‘재수사’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은 보기에 너무 좋지 않다. 검찰의 사명은 두말할 나위없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서 사회의 모든 비리를 척결,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그러나 우리 검찰은 권력에 예속된채 한번도 제대로 이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이번 비리연루 정치권 인사들에 대해서도 그토록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을 보면 아직도 그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그러나 이들 정치권 인사들을 제외한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병무청 차장,지자체장,기업체 사장 등 각계각층을 상대로 한 사정(司正)의 칼날은 날카롭기만해 대조를 이룬다.변호사업계 부조리 수사에서도 검찰은 브로커나 경찰관들만 구속해 빈축을 샀다.검찰이 바로 서지 않으면 사정은 불가능하며 사회개혁도 기대할 수 없다.
  • 국민회의 “개혁 전위대” 재다짐/DJ 질책이후 움직임

    ◎중진모임 등 잇달아 열어 ‘새출발’ 결의 국민회의의 움직임이 분주하다.뒷전에 처졌던 중진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별 의원 모임도 전에 없이 활발해졌다. 이 모두 지난 2일 趙世衡 총재권한대행과 당3역의 청와대 주례보고때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탓이다.‘개혁의 전위대’로 나서야 할 집권당이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있다는 金대통령의 호통(?)이었다. 7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당내 중진들이 자리를 함께했다.金相賢 金令培 金琫鎬 安東善 金台植 朴尙奎 의원과 鄭大哲 부총재 등 중진 10여명이 참석했다.韓和甲 원내총무가 인사차 마련한 자리였지만 “당이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론’이 줄을 이었다.특히 金相賢 의원 등 일부 중진들은 ‘중진 소외론’을 앞세워 당 지도부를 질타했다는 후문이다. 의장 사퇴소동까지 빚었던 정책위도 이날 새출발의 각오를 다졌다.金元吉 정책위의장과 南宮鎭 제1,張永達 제2,李錫玄 제3 정조위원장 등 4인은 조찬회동을 가졌다.張위원장은 “야당식 사고에서 벗어나 집권당의 정책산실로 탈바꿈하자는 결의를 다졌다”고 전했다. 6일엔 金台植 崔在昇 張永達 金珍培 丁世均 의원 등 전북 의원들이 모였다. 도지부장을 겸하고 있는 鄭均桓 사무총장은 지역구 활동 미비 등 金대통령의 ‘경고 메시지’를 전한 뒤,“대통령이 의원 개개인에 대해 상세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갖고 있더라”고 밝혀 의원들을 긴장시켰다.지방선거 당시 불거져 나왔던 금품 수수설 등 공천 잡음도 거론됐다고 귀띔했다. 鄭총장은 “지역 구민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개혁정책을 뒷받침 하지 못한 자성의 목소리가 많았다”며 ‘심기일전’의 결의를 전했다. 6·4지방선거에서 지역구 관리 부실과 공천 실패 등을 지적받은 전남 지역의원들도 9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오찬 모임을 갖는다. 광주지역 의원들도 6일 오찬에 이어 내주 중반쯤 다시 모일 예정이다.
  • 1박2일 연찬회서 자기비판 쏟아져/행자부 깨어나나

    ◎전화부터 상냥하게 공복으로 거듭나자/앞으론 원성없도록 부처지원기능 충실 “호통치는 ‘상전’이 아니라 국민을 받드는 ‘공복’으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지난 17일 밤 경기도 성남시 새마을운동 중앙연수원 강당에서 열린 행정자치부 직원 토론회.참석자 410명은 金正吉 장관 앞에서 진솔한 자기비판을 털어 놓았다.갖가지 제안도 했다.2시간 동안 계속된 토론회는 시종 진지한 분위기였다. 토론회는 18일까지 1박2일로 열린 행자부 직원 1차 연찬회 행사의 하나였다.연찬회는 서로 화합하지 못해 ‘따로 국밥’으로 불리는 옛 총무처와 내무부 출신을 융화시키기 위해 마련됐다.2차 행사는 19∼20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자치행정과의 柳淳鉉 사무관은 “시 도는 사무실 입구에 직원 이름과 업무를 표시해 민원인이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우리는 우선 전화 상냥하게 받는 일부터 시작하자“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교부세과의 崔光澈 주사는 “몇달전 내무부 폐지가 거론되자 자치단체들이 박수를 칠 만큼 과거 내무부는 원성의 대상이었고 총무처 역시 중앙에서 같은 평가를 받았었다”고 전제하고 “본연의 지원 기능에 충실해 새 이미지를 쌓아 나가자”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장관과 직원들이 함께 영화를 보는 등 한가족처럼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세제과의 金鍾範 주사보는 “최근 지방세 감면요청이 엄청나게 늘어 일이곱절이 됐다”면서 “아무리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일손이 필요한 부서에는 사람을 늘려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시 도,시 군 구,기업체와 교환근무를 실시해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 넣자”고 주장했다. 토론회에 이어 즐거운 여흥시간도 가졌다.18일에는 하루종일 方榮玟 재경부 경제정책심의관의 ‘최근 경제현황과 경제난국 극복방안’,陳德奎 이화여대 교수의 ‘21세기 민족국가의 발전과 통합의 과제’ 등 강의를 들었다.
  •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한화 金 회장 사보통해 임직원 분발 촉구 金昇淵 한화그룹 회장이 6월호 사보에서 임·직원들에게 호통을 쳤다.창의력과 순발력이 부족하다고 분발을 촉구했다.“알토란 같은 회사를 팔아 빚을 갚는게 구조조정이냐”고 정부의 기업정리 방침을 비판하며 진정한 구조조정은 ‘의식개혁’이라고 강조했다.‘회사 차례대로 팔고 정리하는 것이 구조조조정 아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중 골자를 요약한다. ■치고 빠지는 전략을 구사하라=한화종합화학의 수맥돗자리는 상품이 없어서 못파는데 뒤늦게 공장을 풀가동하다 후발 업체에게 추월당했다.더욱이 그룹 유통망인 갤러리아 백화점은 상품을 제대로 진열하지도 않았다. ■전략적 판단력을 갖춰라=한화정보통신은 개인휴대통신(PCS) 시장이 포화상태라고 분석했으면서도 PCS폰 개발에 적잖은 투자를 해 신제품을 만들고 있다.앞뒤가 맞지 않는다.외식사업의 다른 경쟁업체들은 주요기관과 병원,심지어는 고등학교까지 파고 들며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는데 한화국토개발은 초보단계다.IMF 시대에 콘도사업이 좋은지 외식사업이 잘될 지를 판단해야 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다=죽을 각오를 하면 살고(必死則生) 어설프게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生則死).콘도와 골프장 공사판을 벌여놓고 분양이 안되니 매각이라도 하자는 식의 무책임한 발상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정리해고는 없다=서구식 정리해고는 우리나라의 전통과 풍습,정서에 맞지 않는다.인건비는 줄일 수 있지만 부작용과 후유증은 더 크다.다만 경쟁력 없는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고용조정은 불가피하다.
  • 反民특위 강제 해체/‘6·6사건’의 의미(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파 ‘미완의 단죄’로 민족사 굴절/제헌국회,48년 반민족처벌법안 통과/화신재벌 朴興植 등 검거 재판대 세워/본격 활동 앞두고 李承晩이 강력 제동/조사대상 30%만 기소… 결국 흐지부지 일제 강점기 친일 행각을 벌인 반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이 특위는 李承晩 대통령의 집요한 방해로 활동에 제약을 받아오다가 마침내 이듬해 6월6일에는 강제 해산을 당하고 말았다.반민특위 활동의 미완성은 이후 49년 동안 우리 현대사 굴절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해왔다. 1949년 6월6일 아침 8시.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경찰을 가득 태운 2대의 드리쿼터가 들이닥쳤다. 습격대 지휘자는 尹기병 당시 중부경찰서장.尹을 비롯한 40여명의 경찰은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 출근하는 특위 직원들을 연행했다.반민특위 金尙德 위원장과 金相敦 부위원장이 “국립경찰이 헌법기관인 특위를 강점하고 직원을 불법체포하니 이게 무슨 행패냐”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막무가내였다.金부위원장은 책상을 치며 울분을 터트렸다.검찰총장 겸 특별검찰관장 權承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그 역시 안하무인의 경찰에게 권총을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지휘권자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호통도 소용없었다. 연행된 사람은 모두 35명.특경대원 24명,직원 및 경호원 9명이었다.직원을 면회온 민간인 2명도 엉뚱하게 같이 끌려 갔다.연행자 중 22명이 입원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날의 ‘6·6사건’은 해방후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분수령이었다.경찰력이 제헌국회가 설치한 반민특위를 사실상 해체,李承晩 독재의 길을 열었다.친일파 제거에 실패함으로써 헌정사 왜곡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입법부가 행정부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반민특위가 구성된것은 48년 9월29일.올해가 50주년이다.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제대로 정리했다면 李承晩 독재는 물론,이후 군사정권도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제헌국회는 48년 9월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을 통과시켰다.반민특위 위원은 각도 출신국회의원 중 선임됐다.金相敦(서울) 趙重顯(경기) 李鍾淳(강원) 朴愚京(충북) 金明東(충남) 吳基烈(전북) 金俊淵(전남) 金尙德(경북) 金孝錫(경남) 金庚培(제주·황해) 등이었다.金炳魯 대법원장을 재판관장으로 하는 특별재판부,權承烈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특별검찰부,李元鎔 총무과장이 이끄는 중앙사무국이 각각 구성됐다.진용을 갖춘 반민특위는 49년 1월5일 공식업무를 시작했다.특위는 1월8일 화신재벌 朴興植을 검거하는 것을 필두로 전광석화같이 친일파 색출에 나섰다. 그러나 출범초부터 친일세력의 심한 반발이 일어났다.일제 경찰 출신들이 반발세력의 중심이었다.해방직후 발족된 새 경찰의 50%이상이 이들 출신으로 추산된다.친일파 세력을 집권 기반으로 한 李承晩도 반민특위가 눈엣가시였다.李承晩은 盧德述 崔燕 등 심복인 경찰간부들이 특위에 체포되자 특위 해체를 추진,‘6·6사건’에 이르게 된다. 결국 특위는 49년 8월31일 조사대상 682명 중 221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활동을 끝냈다.이중 1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5명은 집행유예,나머지 7명도 형집행정지 등으로 석방됨으로써 친일파 단죄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다른 나라의 사례/佛,나치협력 3만∼4만명 처형/시민법정 설치… 9만5천여명 시민권 박탈/中·대만 정부 친일파 漢奸 색출 상당수 처벌 2차대전 직후 독일과 일본의 전범처리가 있다.뉘른베르크재판에서는 22명의 1급 전범이 기소되어 나치군 원수 괴링 등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7명이 종신형∼10년의 금고형을 받았다.도쿄재판에서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이 내려졌다.기도 고이치(大戶幸一) 등 18명에게는 종신형∼금고 20년이 선고되었다. 우리의 친일파 문제와 비슷한 것은 유럽국가의 나치협력자 숙청과 중국·대만의 한간(漢奸·친일파)재판이다. 프랑스의 드골은 나치멸망 직후인 44년 6월부터 11월에 걸쳐 나치협력자 처리를 위한 4개의 훈령을 내렸다.이 훈령에 따라 조사받은 인원은 150만∼200만명.드골은 회고록에서 1만842명이 나치협력자로 처형됐다고 밝히고 있다.드골은 작가,언론인,학자 등 나치에 협력한 지식인들도 엄히 다스렸다.현대사가 로베르 아롱은 “3만∼4만명이 재판에 의했든지, 그렇지 않든 간에 민족반역자로 사형당했다”고 추정했다.프랑스는 형사재판권이 없는 시민법정도 설치,9만5,000명을 ‘비국민’으로 판정해 시민의 권리를 박탈했다. 덴마크는 1만4,000명,네덜란드는 4만명,벨기에는 5만명, 노르웨이는 2만명의 나치협력자를 각각 민족반역자로 무기에서 유기징역형에 처했다. 중국과 대만정부도 2차대전이 끝난후 친일파 제거에 나섰다.한간재판은 중국공산당 정부와 장제스(蔣계石)의 국민당 정부에 의해 46년 4월부터 48년 9월까지 따로 진행되었다.중국·대만정부에 의해 한간으로 판명된 상당수 인사들이 처형됐지만 개별처리 사실만 알려질뿐,전체적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다. ◎특위 총무과장 역임 李元鎔옹/“민족정기 바로서는 날 두눈 감기전 보았으면” “金大中 대통령이 명실공히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되찾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반민특위 총무과장과 조사관을 역임했던 李元鎔옹(78)은 국민의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반민특위에관계했던 인사들이 대부분 타계한 현실에서 그는 당시 특위의 고위 중앙요원으로는 유일한 생존자다.서울 공대 전신인 광산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48년 10월 반민특위 구성때 민간인 신분으로 행정실무를 주도했다.다음은 李옹과의 일문일답. ­현재의 심경은. ▲오늘 이 땅위에 사는 구세대 치고 일제의 학정과 인간 이하 대우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이러한 일본의 관헌에게 우리 조국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던 애국지사를 밀고,또는 체포해 넘긴 반역자가 있었습니다.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두 눈을 감기전 바르게 처리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반민특위가 소기의 목표를 달성 못한 이유는. ▲국내사정에 어두운 李承晩 대통령이 친일파들의 간계에 현혹되어 경찰력을 동원,하루 아침에 반민특위를 와해시켰습니다.제헌국회의 결정에 따른 헌법기관이 불법적으로 무너짐으로써 헌정사에 크나 큰 오점을 남기게 됐지요.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는. ▲金泳三 정권이 들어선 뒤 역사 바로 세우기를 기치로 내걸어 혹시 하며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실효없이 용두사미격이 되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이라도 관계 각료나 관련 인사들이 모여서 기구를 만들어 과거에 처단치 못한 민족반역자를 처벌해야 합니다.그래야 이 나라의 기초가 탄탄해집니다.金대통령은 해박한 경제관과 탁월한 국제 외교력을 겸비했습니다.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많은 선열들의 넋을 위로해주는 데도 힘써주실 것으로 믿습니다.그것이 경제 등 다른 난국의 극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반민특위 활동 일지 ▲48년 8월5일=제헌국회,‘반민족행위 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 ▲9월7일=‘반민족행위 처벌법’ 국회 통과 ▲9월29일=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반민족행위 조사특위(반민특위)’구성동의안 국회 가결 ▲10월1일∼11일=반민특위 10명 조사위원 선임 ▲10월23일=반민특위 1차위원회 ▲49년 1월5일=반민특위 사무실 개소,업무 개시 ▲1월8일=화신재벌 총수 朴興植 1호 체포 기록 ▲1월13일=崔麟 검거 ▲1월25일=盧德述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검거 ▲2월7일=崔南善 李光洙 검거 ▲2월15일=李承晩 대통령,반민처벌법 개정 필요성 특별담화 ▲3월28일=李琦鎔 朴興植 등 반민자 첫 공판 ▲5월하순∼6월초=정부,1·2차 국회 프락치사건 발표 ▲6월6일=경찰,반민특위 습격,조사요원 불법체포,특경대원 무장해제 ▲6월26일=金九 선생 암살 ▲8월31일=반민특위 공식해체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성급한 7호선 운행(사설)

    서울지하철 7호선이 침수된 지 열흘만에 다시 운행을 시작해 시민들을 수송하고 있다.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아 승객들의 불편이 크지만 지하철 운행중단 기간 동안 지상 교통수단으로 이 구간을 지나는 데만 40분∼1시간씩 걸리던 극심한 교통혼잡을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임시 응급복구작업을 벌여 지난 9∼10일 이틀동안 193회의 시험운행을 거쳐 우선 전동차를 움직일 수 있는 동력과 궤도,기관사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뒤 운행재개가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그렇지만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측은 현재 15분이나 되는 배차시간을 정상적인 2∼3분으로 줄이고 에스컬레이터를 재가동하는 등 시민불편을 빠른 시간내에 해소할 수 있도록 계속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현재 지하철 7호선은 수동운전과 수신호로 움직이기 때문에 특히 안전운전사고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따라서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는 이번 재개통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운행재개를 즉각 중단하고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안전진단을 실시한 뒤 개통시기를 다시 결정하라고 촉구한 점에 유의하여야할 것이다. 실제로 단기간의 육안검사와 장비시험만을 거쳐 안전상 문제가 없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며 더구나 하룻만의 시운전을 통해 운행을 재개하는 것은 안전사고를 자초할 위험성이 크다.때문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지하철 안전평가위원회’구성도 검토할만한 것으로 생각된다.그냥 지나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하철 7호선의 운행주체인 도시철도공사 노동조합이 제기한 문제점은 훨씬 전문적이다.우선 이번 침수사고로 고장난 11개 역의 신호통신설비를 교체하거나 수리하는데 드는 비용은 3천억∼5천억원이며 기간은 9개월 걸리고 열차자동운전장치는 6개월,열차자동제어장치는 1개월,환기시설은 1∼2개월이 소요된다는 주장이다.아울러 침수된 상봉역의 수전변전소가 완전복구되는 데도 9개월이나 걸리며 이 기간 동안 이웃 역에서 전력을 끌어와 쓸 때 과부하(過負荷)가 생겨 연쇄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완전복구이전에 지하철을 운행하는 것은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와 같다고 강조한다. 하루빨리 지하철 운행을 재개하려는 서울시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러한 우려에 관심을 갖고 대처해줄 것을 촉구한다.특히 노조측은 지하철안전사고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운행주체라는 점에서 그들 주장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성급하게 운행을 재개하기보다 시민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어린이 만화 학교이미지 훼손 심각

    ◎서울 YMCA 3∼4월 발간 잡지 분석/비상식적 폭력·일탈의 온상지로 묘사/문제 해결보단 과장·비꼼… 웃음거리로 어린이 잡지속의 만화에서 학교가 사제간·급우간 관계가 비인간적인데다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어 문제가 큰 것으로 지적됐다.서울 YMCA 만화모니터회는 지난 3월1일부터 지난 4일까지 발간된 소년소녀만화잡지속 만화에 나타난 학교 이미지를 모니터한 결과,몇몇 만화속에서 학교가 비상식적 폭력과 일탈의 온상지로 그려지고 있다는 보고서를 펴냈다.입시위주 교육현실과 학원폭력 등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이 아니라 과장하고 비꼬아 웃음거리로 전락시키는 장면이 비일비재하며 요즘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 자살을 조장하고 있는 듯한 장면도 발견됐다. 가장 빈번하게 나타난 문제장면의 하나는 사제간 파행적 관계. ▲학생이 입고온 꽃무늬 사복바지를 탐내며 만져보는 교장(미스터부·소년챔프,이하 앞은 만화,뒤는 게재잡지) ▲쉬는 시간을 제대로 안줬다며 호통치는 학생앞에서 벌벌 떠는 선생(체인지가이·〃) 등은약과 ▲불량학생 추방을 위해 학교 조직깡패와 손잡는 교장(미스터부·〃) ▲학생의 기를 제압한다며 셔츠 단추를 가슴까지 풀고 귀찌,체인목걸이,색안경을 쓴 채 교탁에서 침을 뱉는 선생(반항하지마·소년매거진찬스) 등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일그러진 선생상이 문제로 지적됐다. 친구간 관계도 극단적이기는 마찬가지. ▲‘작은 책상에 앉아 공부당하는 지구상의 불쌍한 존재’인 친구들을 자유롭게 해주겠다며 창밖으로 집어던지는 장면(미스터부·소년챔프) ▲교내에서 패싸움을 벌이며 쌍절곤,쇠사슬,쇠파이프 등을 동원하는 장면(체인지가이·〃) 등도 있었다. 한편 이지메를 당한뒤 너무도 쉽게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난간에 서는 학생을 그린 한 만화(반항하지마·소년매거진찬스)는 자살을 너무 쉽게 표현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샀다.
  • 법사위,검찰총장 출석 공방(초점상위)

    ◎여­검찰 중립성에 악영향… “불가” 주장/야­“비자금 수사유보 등 서면답변 부실” 20일 국회 법사위는 ‘뒤바뀐 세상’을 실감케 했다.검찰총장 출석 문제를 둘러싸고 여야는 서로 3개월전과 180도 다른 논리를 폈다.야당때 ‘약방의 감초’처럼 총장 출석을 요구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검찰 중립성을 이유로 ‘출석불가’로 선회했다.답변석의 박상천 법무장관도 거들었다.반면 한나라당은 검찰권 행사의 적정성을 들어 김태정 검찰총장의 출석을 강력 촉구했다. 사단은 김총장의 3쪽짜리 서면 답변서에서 생겼다.김총장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의결한 법사위 출석을 거부하고 대신 한나라당이 해명을 요구한 ‘DJ비자금’ 수사유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에 대한 정치적 발언의 배경을 서면으로 법사위에 제출한 것이다.김총장은 각각의 사안에 대해 “심각한 경제난을 고려했다”“경위야 어떻든 유감스럽다”는 뜻을 피력했다. 포문을 연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은 “김총장의 답변이 불과 12줄로 무성의하다”며 “출석 거부는 국회를 무시한 처사”라고 반발했다.이에 박장관은 “성실한 답변은 필요없는 말은 빼고 요점만 밝히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그러자 안의원은 “박장관이 야당의원일때 이런 답변을 받았다면 누구보다 호통을 쳤을 것”이라고 쏘았다. 이어 자민련 정상천 의원은 변정일 위원장(한나라당)을 겨냥,“96년 7월21일 법사위에서 변모의원은 검찰총장 출석을 요구할 실정법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고 적시했다.또 97년 3월6일 한보사건,96년 12월27일 ‘20억+알파’ 사건 등과 관련한 검찰총장 출석요구를 당시 여당이 어떤 논리로 일축했는지 일일이 예시했다.
  • “유통거품 빼라” 농수축협에 불호령/비대위­회장단 간담

    ◎신용사업 축소… 도농직거래 등 경제사업 확대/생산자지원 기능 등한히 하면 조직대수술 경고 ‘농·축·수산물의 다단계 유통구조를 혁신하라’ 비상경제대책위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측 대표들은 11일 원철희 농협,박종식 수협,송찬원 축협 회장과 최동혁 임협상무 등 4인의 회장단을 불러 ‘호되게’질책했다.“농어민을 위한 단체가 돈놀이에 치중하지 말고 설립목적에 맞도록 유통개선과 생산자지원의 경제사업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비대위는 “본연의 임무를 계속 등한시 할 경우 중앙회 조직 자체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수 밖에 없다”는 강력한 채찍(?)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즉 일본처럼 ‘농업금고’ 등의 형태로 신용사업을 이들 단체에서 분리시킬수도 있다는 경고인 것이다.산지와 최종 소비지간의 유통 거품을 최대한 걷어내 물가안정에 나선다는 김당선자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김용환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유통구조를 개혁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논의해 달라”고 주문했고 김봉호 위원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문제점을 감추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라”며 호통을 쳤다. 현재 비대위는 현재 20%수준에 불과한 이들 단체의 경제사업을 궁극적으로 50%까지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생산지 점포들은 농수축산물의 수집기능을,도시의 점포들은 직판기능을 갖추도록 전국에 걸친 직거래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는 방침이다. 비대위의 강력한 주문에 따라 농협은 민간단체와 자매결연을 맺는 ‘농도불이 직거래’ 사업을 추진키로 했고 수협은 대도시 권역별로 직거래 장터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 놓았다.축협의 경우 금융점포 내 축산물직판 코너를 운영키로 했으며 임협도 임산물 물류센터를 설치할 계획이다. ◇농·수·협·임협의 유통 구조개선방안 관계기관 추 진 방 안 농 협 ○전 금융점포의 농산물 직판장화 ○지역단위별 ‘농협 금요 직거래 장터’ 장례화 ○지방자치단체 협력사업으로 대형 ‘하나로 클럽’ 설치 ○‘직거래 사업단’ 설치·운영 수 협 ○대도시권역별 직거래 장터 조성 ○산지조합 직출하를 위한 자금지원 ○협동조합기간 직거래물량 교류확대추진 ○수산물 유통정보 및 종합전산망 구축 축 협 ○식육특장차량을 이용한 이동판매 실시 ○금융점포내 축산물 직판코너 운영 ○공판장에 권역별 집배송 센타 설치 ○직거래 주말장터 개설운영 임 협 ○임산물종합유통센타 설치 운영 ○임산물 물류센타 설치 ○지역단위 임산물 유통시설의 확충
  •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전쟁(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불 저널리스트 장 귀스넬/인터넷 역기능의 심각성 제기/실증 접근 방식 통해 21세기 정보전 예측/선전국의 통상·군사정보 ‘점령’ 폐해 기술 【파리=김병헌 특파원】 인터넷.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인터넷의 필요성과 중요성,장래성에 대해 서술한 책들도 홍수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다.부분적이기는 하나 역기능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사이버 스페이스에서의 전쟁’이다.비밀정보 시스분야에서의 ‘전쟁’를 집중적으로 다루고있다.부제도 ‘비밀정보서비스와 인터넷’. 저자 장 귀스넬은 학자가 아니다.저자는 프랑스의 유명 시사주간지 푸엥에서 기자생활을 한 저널리스트.국방문제전문가로 명성이 높다.어떤 면에서는 인터넷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실증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인터넷이 21세기의 정보전에 미칠 영향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비밀정보 서비스는 군사분야에서 비밀보장을 생명으로 하는 첩보 및 정보전의 핵심이다.그리고 점차 활발해지는 기업의 경제전쟁에서 비밀정보 서비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저자는 이책에서 과거 암호통신의 형태에서 새로운 통신 총아로 떠오른 인터넷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의 비밀정보 서비스를 둘러싼 세계의 새로운 전쟁을 예견하고 있다. 저자는 인터넷을 하나의 혁명이라고 정의한다.그는 인터넷은 지혜에 다가서는 최첨단 도구라는 설명도 곁들인다.그동안 인간이 몰랐던 것들에 완전히 새로운 지혜로 다가가는 ‘통로’라고 말한다.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인터넷의 순기능을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여기서 인터넷의 양면성을 도출해낸다.특히 ‘지혜의 통로’라는 점에서. 저자는 그래서 인터넷 혁명은 양립되어 있다고 말한다.통신혁명의 기수이지만 냉전종식과 함께 이미 전세계의 새로운 전략이 된 경제 및 군사 첩보전같은 정보전쟁도 인터넷의 세계인 사이버 스페이스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따라서 이미 현재의 역사자체도 이같은 엄청난 전쟁과정속에 있다고 말한다. 즉,초능력적인 인터넷 연결체제의 도움으로 비밀정보 서비스는 인터넷 망과 망사이에 그들의 가지를 계속 치고 있다는 설명이다.이미 무역분야에 있어 전자상거래에 대한 논의가 최대의 이슈가 되고 있다는 대목에서도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지닌다.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컴퓨터에 정보를 주고 받고 이런 와중에 상대방의 정보를 가로채는 터전이 사이버 스페이스내에 빠른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사이버 스페이스로의 거대한 전쟁에 말려들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그동안 인터넷에 비교적 소홀했던 유럽국가들이 미국의 사이버 스페이스 완전 점령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사이버 스페이스를 이미 무주공산의 영토개념으로 ‘제7의 대륙’,‘21세기의 신대륙’으로 보고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비밀정보 서비스로 대별되는 정보전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전쟁은 시작됐다.군대는 인터넷 통신망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또다른 새로운 군대는 새로운 무기인 정보기기를 들고 나서고 있다.그러나 여기에 필요한 군사전략은 아직 자신의 길을 닦지 못했다.또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필요로 하는 군수품을 자기의 창고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길,그리고 지키는 길을 건설하지 못한 상태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인터넷 혁명의 전혀 새로운 면인 셈이다.지구상의 어느누구라도 정보의 목적이 되는 시장에 동분서주 하지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를 가질 수 있다면 물론 해커 등의 등장이 시작종은 울린 셈이지만 보다 체계적이고 대규모의 획득과 노획물을 지키기 위한 조치는 추진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처럼 시작된 정보전이 인터넷의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을 가져다준다는 경고가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가장 큰 핵심이다.“인터넷의 발전이 세계민주주의를 새롭게 진전시키면서 예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지구상의 발전을 가져다 줄지는 모르지만 운명적 탄생을 거부할 수 없는 비밀 정보서비스는 그렇지 않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공존공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한다.혼돈주의,중앙집중주의,자유로운 출발과 도착,통제없는 공권력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인터넷을 통한 통신은 정보수집,구매 및 판매,오락 등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전파하지만 비밀정보 서비스는 돈을 벌고 가치를 훔치는 수준을 결코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미 모든 분야에 있어 비밀정보 서비스는 인터넷 상의 새로운 영역에서 굳게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그래서 저자는 세계가 자칫 인터넷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21세기의 신경이자 핏줄인 통신의 유일한 수단인 인터넷이 보다 빨라지고 힘세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달았다.단지 그것들은 상업적이거나 개인적인 통신에 영원성을 부여하려 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컨대 군사적인 분야에서는 공격적인 정보망으로 이용될 것이고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세계무역의 철학과 전통에 반대되는 의미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그러면 인터넷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해야 하는가.이러한 움직임을 거부할 수 있는가.저자는 거기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내놓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해답 대신 이렇게 말한다.“인터넷은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유리한 존재다.변화의 요소로서 인터넷은 더욱 영광스러운 것이다.이 자체가 어떠한 연결방식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제 Guerres dans le cyberespace.프랑스 라데쿠베르트 포쉬 출판사.310쪽.81프랑.
  • 참다운 자식 사랑은 이게 아닌데(박갑천 칼럼)

    “범도 새끼둔 골을 두남둔다”는 속담이 있다. 등에도 나와 있으니 오래전부터 쓰였음을 알게 한다.호랑이같은 짐승도 제새끼를 그렇게 사랑하고 보호하는데 하물며 사람이랴 하는 뜻.그 속담 그대로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자식을 떠안으며 그느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 예뻐하면 옷에 똥칠한다”는 속담도 있다.오냐오냐 뜻 받들며 불면 날아갈세라 기른 자식이 나중에 늙은 아비 수염 뽑는다는 경우다.세상사란 항상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만 못한 법.그러므로 이 속담에는 사랑은 하되 엄격한 훈육을 곁들여야 한다는 뜻이 담긴다.“예쁜자식 매로 키운다” “어린아이 예뻐 말고 겨드랑이 밑이나 잡아주라”따위 속담이 그를 뒷받친다. 그래서 옛어버이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엄하게 잡죄었다.어려서뿐 아니라 나이도 들고 사회적인 지체가 높아졌는데도 서릿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굽잡는 사례도 적지 않다.에 적혀 있는 이조참판 이행진,부제학 이행우의 아버지 이후기의 경우는 그런 가운데서도 유별난 것 아니었나 싶다. 벼슬높은 두 아들은 몸을 삼갔다.그렇건만 그 아버지는 종 다루듯 꺼둘렀으며 특히 술을 못마시게 닦달했다.어느날 한 벼슬아치가 부제학집에 술병을 차고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다.이를 안 아버지는 쫓아와 꾸짖으며 매질을 하려 했다.벼슬아치가 이를 말리려는데 문을 지키던 하인이 와서 교자가 문밖에 대령해 있으니 어서 타고가라 한다.그말따라 나가는 벼슬아치에게까지 호통을 쳤다.이 얘기를 쓴 정재윤은 논평한다.“옛선배들의 자식 단속하는 법이 이와 같았다” 한 조사에 의할때 우리나라 중고생들은 평균 17개 60여만원어치 외국제품을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자식요구 들어주는걸 자식사랑으로 생각하는 어버이들의 눈먼 애정표현에 연유하는 현상이다.이런마음들이 큰 흐름을 이루면서 오늘의 경제위기를 불러왔다고 해야겠다. “사대부 자제들이 길을 잘못들면 호랑이가 되고 좀이 되며 송충이가 된다”는 말이에 나온다.사람인 종을 팔아먹으니 호랑이같고 책을 팔아먹으니 좀과 같으며 조상묘소 소나무를 팔아먹으니 송충이 같다는 뜻이다.집안을 거덜내는 그 사대부 자제들이 누구인가.엄격을 모르고 버릇없이 붓날리면서 자라난 경우들이 아닌가.자녀에 대한 참사랑이 어떤 것인가 깊이 생각들 해봐야겠다.
  • 자린고비상(외언내언)

    지독히 인색한 사람을 일컬어 자린고비라고 한다.자린곱이·자린꼽쟁이·꼬꼽쟁이·꼽재기·자리꼽쟁이라고도 한다. 그 인색한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한 구전설화 또한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구두쇠 영감이 자반생선 한 마리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식구들에게 밥 한숟가락에 한번씩 쳐다 보게 했는데 아들이 어쩌다가 두번을 쳐다 보았더니 “얼마나 물을 켤려 하느냐”고 호통쳤다는 것은 그중 가장 흔한 이야기.자린고비의 어원은 지독한 구두쇠 양반이 부모 제사때 쓸 제문의 종이를 아껴 태우지 않고 접어 두었다가 두고두고 써서 제문속의 아비 고와 어미 비자가 절었다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자린고비상을 만들어 내년부터 시상하기로 했다.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 지원을 받는 어려운 국가경제를 감안해 근검·절약생활을 실천하는 주민에게 이 상을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절약하는 것이,갖고 있는 것을 소비하고 구걸하게 되는 것보다 낫다”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했다.그가 지금 IMF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미국의 18세기 정치가라는 점이 새삼스러운 상황에서 자린고비상은 나름대로 뜻이 있다.그동안의 허황했던 생활태도를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런 절약운동만으로 우리가 이 난국을 헤쳐 나갈수 있을지 의문스럽다.‘1달러 해장국’ 등 각종 기발한 외화모으기 아이디어와 소비절약캠페인이 지금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다.순하고 착한 국민성의 발로이겠지만 자칫 사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는 과열양상이 보이기도 한다. IMF체제는 경제의 구조조정뿐 아니라 우리식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총성없는 전쟁인 문명충돌의제3차대전의 결과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이 냉엄한 현실을 우리는 아직도 정서적 차원에서만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막연한 절약운동 보다는 구체적인 사태해결 방안을 찾아내고 따뜻한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로 이 난국을 극복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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