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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野 “책임총리 취지 집중 부각”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 하루 만인 25일 총리 후보 집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으로 출근했다. 김 후보자는 이곳에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명의로 총리 후보자 임명동의 요청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그로부터 15일 이내에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된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대상인 대법관(1988~1994년)과 헌법재판소장(1994~2000년) 등을 지냈지만 인사청문회장에 선 적은 없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김 후보자가 법복을 벗은 2000년 도입됐기 때문이다. 야당이 ‘현미경 검증’ 의지를 드러내는 이유다. 민주통합당은 김 후보자 지명이 책임총리제 취지와 삼권분립 원칙에 맞는지 등을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국민통합 능력과 국가경영능력을 두루 갖췄는지, 박 당선인이 공약한 책임총리제 취지에 부합하는지, 헌법재판소장 출신이 총리를 맡는 게 삼권분립에 맞는지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위장 전입이나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두 아들의 병역·재산 문제 등 도덕성 검증에도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김 후보자는 대법관이던 1993년 첫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29억여원을 신고한 재력가다. 당시 김 후보자는 “대부분 상속 재산”이라고 해명했다. 만 20년이 지난 현재 재산이 얼마나, 어떻게 늘었는지에 관심이 쏠린다. 최근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특정업무 경비 논란이 김 후보자 청문회에서 재연될 수도 있다. 김 후보자 역시 헌재소장 등을 역임했기 때문에 특정업무 경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정치권은 보고 있다. 행적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된다. 김 후보자는 2000년 헌재소장 퇴임 후 닷새 만에 법무법인 율촌으로 자리를 옮겨 10년 동안 고문으로 활동했다. 지금도 넥서스 고문이다. 실제 사건을 맡지는 않았지만, 억대 연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011년 1월 당시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법무법인에서 받은 억대 연봉 등이 논란이 돼 중도 사퇴했다. 김 후보자가 대선 공동선대위원장과 인수위원장, 총리 후보자 등을 연이어 맡은 만큼 ‘회전문 인사’, ‘측근 인사’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 여부 등 민감한 정치 쟁점에 대한 의견 제시를 요구받고, 답변에 따라 자질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한편으로 민주당은 김 후보자가 50년 남짓 법조계에 몸담은 ‘원로 법조인’이며 역대 총리 후보자 가운데 최고령이라는 점을 다소 부담으로 느낀다. 혹독한 검증은 필요하지만 호통이나 인격모독 수준의 청문회 구태를 답습하다 보면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때문에 가능한 한 인사청문특위 위원에 젊은 의원들을 배제하고 3선 이상 또는 장관을 지낸 중진들을 전면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박 당선인 취임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이 있는 김 후보자의 부인 서채원씨에 대한 검증을 ‘투트랙’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세종청사 행정낭비 대책 절실

    [세종로의 아침] 세종청사 행정낭비 대책 절실

    정부세종청사가 문을 연 뒤 한 달이 지났다. 입주 초기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눈에 거슬리던 문제점들도 서서히 개선되고 있다. 전체 공무원의 3분의1에 해당하는 공무원이 장거리 출퇴근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부족한 기반시설을 제외하면 겉으로는 정부과천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점으로 속은 곪아가고 있다. 예상했던 행정의 낭비와 비효율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시도 때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공무원의 서울 출장. 장·차관이 국무회의나 정책조정회의 등 주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업계 신년교례회 등 꼭 참석하지 않아도 될 행사에 얼굴을 비치기 위해 하루 일정을 거의 비워둬야 하는 장·차관이나 고위 공무원들도 많다는 점이다.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라고 하지만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 국가 주요 정책을 논의하는 대면회의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서울에 남아 있는 부처와의 업무 협의를 핑계로 행해지는 잦은 출장과 이로 인한 행정 낭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두 시간짜리 회의를 위해 서울에 가려면 하루 대여섯 시간을 도로에 버려야 한다. 이러는 사이 정작 실무진과의 대면회의는 미뤄지고 결재가 이뤄지지 않는다. 당연히 정책결정이 지연되고, 행정 서비스의 질은 떨어진다. 국회도 공무원들의 출장을 부채질하는 한 축이다. 국토해양부 A과장은 최근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실의 호통에 혼쭐이 났다. 지역 민원을 챙기던 국회의원이 “중앙부처 공무원이 얼굴 한번 비치지 않느냐”며 호통을 치는 바람에 부랴부랴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 A과장은 산하기관과 업무 협의를 거쳐 지역 주민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한 만큼 굳이 서울 출장이 필요없다고 판단했지만 느닷없는 국회 호출에 불필요한 출장을 다녀와야 했다. 장·차관의 국회 출석에 실무자들이 줄줄이 따라나서는 것도 문제다. 국회와 장·차관이 나누는 대화가 정책 어젠다이거나 주요 정책 조율이라면 굳이 실무자들이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공무원이 장·차관을 수행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엽적인 성격의 지역 민원성 질문이 툭툭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정부는 행복도시 조성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예견했다. 부처 이전 전에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놨어야 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을 갖고 있다. 정부청사마다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전시용에 불과하다. 총리실을 중심으로 행정부 스스로 화상회의 활성화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의 불필요한 출장은 없는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국회는 공무원을 마음대로 불러올려도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행정 낭비는 국민 세금을 갉아먹는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chani@seoul.co.kr
  • [이동흡 인사청문회] 李 “비즈니스석이 관행” 밝혔지만… 헌재 내부규정엔 없어

    [이동흡 인사청문회] 李 “비즈니스석이 관행” 밝혔지만… 헌재 내부규정엔 없어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21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대부분 단호하게 부인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아 많은 질타를 받았다. 근거가 되는 자료제출을 하지 않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한 ‘송곳 질문’에는 두루뭉술하게 답변하며 넘어가려는 경향이 짙었다.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해명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청문회가 질타와 호통 위주로 진행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항공권깡’ 의혹과 관련, 최재천 민주통합당 의원이 구체적인 항공권 내역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검토해보겠다”고 답변해 의원들의 공분을 샀다. 최 의원은 “(버럭 화를 내며) 선별해서 제출할 권리가 후보자에게 있는 줄 아느냐”면서 “후보자는 선출된 공직자가 아니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에 더 위험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도 “기본적으로는 의원님들이 요청한 자료에 대해서 ‘성실하게 제출하겠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 사적 유용’과 ‘항공권깡’ 의혹에 대해 “사실이라면 사퇴하겠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반박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특정업무경비 근거 내역을 공개하며 의혹을 인정하라고 다그쳐도 “통장이 여러 개라서…”라며 얼버무렸다. 이에 대해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자료를 가져와서 명확히 해명해야지…”라면서 “답변 태도를 보면 애매모호하고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은 오전 질의 과정에서 추가 자료제출을 요구했지만, 이 후보자는 청문회가 속개된 오후 2시 30분까지 자료를 준비하지 않아 회의가 정회될 뻔하기도 했다. 이 후보자는 오후 내내 자료 제출을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청문회는 오후 내내 같은 질문이 반복되며 겉돌았다. 이 후보자의 이런 답변에 대해 헌재 관계자들조차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9차례의 해외 출장 가운데 5번이나 부인을 동반한 것을 ‘관행’으로 치부한 데 대해 한 헌재연구관은 “이 후보자는 해외출장이 다른 분들에 비해 잦았고, 그것을 관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고 조심스럽다”면서 “부인과 함께 자주 나간다는 것은 공무라는 출장의 목적 자체를 흐릴 수 있기 때문에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행위를 청문회에서 ‘헌재의 관행’이라고 해명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고도 했다. ‘항공권깡’ 의혹에 대해 이 후보자가 “출장시 비즈니스석이 관행”이라고 밝혔지만, 헌재 내부규정이 존재하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헌재 관계자는 ‘항공권깡’ 의혹과 관련, “헌재 규정은 아니고 행안부에 관련 규정이 있다”면서 “장관급(재판관이 장관급)은 1등석을 제공하지만 기관 사정에 따라 감액할 수 있다. 때문에 헌재는 감액해 통상 비즈니스석을 제공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도 이 후보자의 답변 태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았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항공권깡’ 의혹을 해명하는 과정에 대해서 “구질구질하고, 투명하지 못하다”고 평가했고, 해외출장 부인 동반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는 분들이 간혹 있긴 하지만, 관행이라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영화 닮아서 식상하다? 스크린 속 ‘광해’는 잊어 주세요”

    “영화 닮아서 식상하다? 스크린 속 ‘광해’는 잊어 주세요”

    “윤대는 세 마디만 하면 된다. ‘들라 하라’, ‘다음’, ‘경의 뜻대로 하시오.’ 해 보아라.” 굵은 목소리로 허균(박호산·김대종)이 말한다. “경…경의 뜻….” 안절부절못하는 하선(배수빈·김도현)이 연방 더듬대자 호통이 따른다. “낮고 근엄하게!” 이래저래 읊조려 보지만 허균 일행에게는 만족스럽지 않다. 안 될 일이라는 눈빛을 교환하는 순간, 위엄과 호방함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광대 하선이 조선의 15대 왕 광해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서울 종로에 있는 한 극장에서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 연습이 한창이다. 트레이닝 바지, 면 티셔츠 등 차림은 제각각이지만 배우들의 말투와 행동으로 연습실은 조선 궁궐이 됐다. 광해(하선)와 허균, 조내관(손종학), 박충서(황만익), 중전(임화영) 등 출연진은 ‘배역의 옷’을 갈아입고 움직임을 맞추고 있었다. 16일 연습실에서 만난 배수빈(37)은 저지 소재의 편한 검은색 트레이닝 복장이었지만, 수염을 길러 ‘사극용 모양새’를 갖추고 광해와 그의 닮은꼴 하선을 오갔다. ‘광해’는 이미 영화로 관객 1200만명을 모은 흥행작이고 소설도 만만치 않게 관심이 쏠렸다. 두 영역의 작품들과 비교된다는 부담이 클 터. 또한 “왜 또 광해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은 상상력을 자극할 여지가 훨씬 많습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사실적인 연기를 하고 있지만, 인물의 이면을 볼 수 있는 여지가 더 크죠. 영화는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지만 연극은 관객 스스로 자신의 시선과 편집해서 보고 싶은 점을 찾을 수 있거든요. 그게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고, 연극 ‘광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명쾌하게 대답한 배수빈이 설명을 이어갔다. “눈앞에서 배우들이 땀 흘리고 울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성을 느끼는 건 공연에서만 가능합니다. 설사 내용이 같아도 무대를 통해서 나왔을 때는 또 다른 의미로 전달되겠죠.” 영화와 TV드라마에서 많이 알려졌지만, 연극 경험은 ‘다리퐁 모단걸’(2007)과 ‘이상 12월 12일’(2010)뿐인 그가 ‘광해’를 선택한 것은 “대중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잘 만들어진 연극 작품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컸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싶은지와 배우로서 실험 가능성을 많이 고려해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라는 그는 ‘광해’에 대해 “어떤 사람이 권력을 잡아야 하고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에 확실한 방점이 찍혀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너무 진지하게 파고들지만은 않는다는 게 또 연극 ‘광해’의 미덕이다. 실제로 자유로운 광대 하선이 갑갑한 궁중 생활에 몸이 뒤틀려 툭툭 내뱉는 음담패설이나 궁중의 격식에 아연실색하는 장면 등 키득 댈만한 부분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신사복이 잘 어울리는 ‘실장님’ 연기를 많이 했던 그에게 ‘하류인생’ 하선도 꽤나 잘 어울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처럼 대단히 비장하거나 무게를 잡는 작품이 아닙니다. 즐겁고 재치 있는 장면이 많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보시면 되죠. 물론 의미나 감동이 웃음에 가려지는 일 없이 잘 전달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인터뷰는 두 가지 의문을 풀지는 못했다. 광해와 하선이 1인 2역인데, 둘이 만나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또 하나. 어떻게 끝맺을 것인가. 영화는 비교적 해피엔딩이고, 소설은 광해가 광기를 드러내면서 하선의 죽음을 암시했다. “정말 말해 줄 수 없다”는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을 던졌다. “무엇을 생각하든 놀라게 될 겁니다. 직접 와서 확인하셔야죠.”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 2월 23일~4월 21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3만 5000~5만원. (02)3014-2118.
  • 겉으론 독립국, 실제론 보호국… 조선 명운 가른 문서들

    겉으론 독립국, 실제론 보호국… 조선 명운 가른 문서들

    동북아역사재단이 1876년 일명 강화도조약을 비롯해 1882년 미국·영국 등과 맺은 국제조약을 정리한 ‘근대한국외교문서’ 제3~5권 2차분을 내놓았다. 조선왕조의 명운을 가른 일본·미국·영국과의 조약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을 위원장으로 한 근대한국외교문서편찬위원회가 10년 이상의 장기적 계획을 세워 진행하는 이 작업의 최종 목표는 모두 30여권을 발간하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국가사업의 일환으로 공식 외교자료집을 발간했다. 한국은 뒤늦게 2009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공식적으로 외교문서집을 내기 시작했다. 체계적으로 정리한 외교문서가 없다는 것은 외교사 연구와 현안으로서의 외교 문제 해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문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역사연구가나 외교전문가를 위한 자료집이다. 영문, 일문, 한문의 조약문들이다. 부록인 ‘문서부록’에서 한글이 비로소 나타나는데, 각 문서의 작성 시기와 출전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일반인들은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 등이 펴낸 ‘한국근대외교사전’(성균관대학출판부·2012년)과 최덕수 고려대 교수가 펴낸 ‘조약으로 본 한국 근대사’(열린책들·2010년) 등을 권한다. ‘근대한국외교문서’ 1권은 ‘제너럴셔먼호사건·병인양요’, 2권은 ‘오페르트사건·신미양요’였다. 3권은 ‘조일수호조규’(통칭 강화도조약), 4권은 ‘조미수호통상조약’, 5권은 ‘조영수호통상조약’을 각각 다루었다. ‘조일수호조규’(1876년)는 메이지(明治) 초기의 일본정부가 1871년 청과 맺은 ‘청일수호조규’에 이어 서구의 외교방식에 의해 조선과 맺은 것인데, 제3권은 이들과 관계되는 제반 문서를 망라했다. 이 조일수호조규는 ‘강화도사건’을 일으킨 일본이 “만국공법에 입각해 조선과의 관계를 다시 수립해야” 서구열강이 납득할 수 있다는 명분 아래 체결된 것이다. 그러나 고종은 옛 우의(友誼)를 회복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조일수호조규’ 체결에서 조선과 일본은 이해를 달리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조일수호조규 제1조의 ‘조선은 자주지방(自主之邦)’이라는 규정이 문제였다. 이 책에서는 이 규정이 자주와 독립의 대립이었다고 설명한다. 자주는 사대교린 질서 내부에서의 자주이므로 독립과 다른 개념이었다. 조선은 ‘자주지방’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일본 메이지 정부는 만국공법의 명분에 따라 조선을 독립국으로 간주했다. 정한론을 펴기 위한 첫번째 술책이었다고 해석한다. 1880년대 들어서 조선은 청나라의 권유로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조영수호통상조약(1883) 등을 체결한다. 겉으로 조선이 독립된 나라임을 표방했지만, 조선은 조약을 체결한 뒤, 뒤로는 청나라의 보호국임을 통보했다. 우습게도 조선은 만국공법에 따라 서양열강과 대등하게 국제조약을 맺으면서, 한편 ‘종주국’임을 자처했던 청의 ‘조공·책봉체제’를 병존하게 됐다. 유길준이 ‘양절체제’라고 이름 붙인 과도기다. 결국 이런 모호한 조선의 지위는 청일전쟁으로 비화했다. 이번에 발간된 3권의 근대한국외교문서는 조선이 동아시아의 전통적 외교질서 체제였던 ‘조공·책봉체제’로부터 서구의 ‘조약체제’로 이행하는 시기를 다룬다. 당시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의 패권 다툼 양상을 잘 보여주는 이 책들은 21세기 동북아 상황과 비교·검토해 볼 수 있다.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근대 한·중·일 3국이 신구 국제 질서 체제 속에서 각기 어떠한 위치에서 어떻게 대응했으며, 또 그 대응방식에 따라 3국의 명운이 어떻게 갈라져 나아갔는가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고 평가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사설] 인수위, 보안과 소통 균형 맞춰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본격 활동에 들어가면서 ‘불통’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인수위 구성 과정에서 지적된 ‘밀실 인사’ 논란이 인수위 활동 개시와 함께 ‘철통 보안’으로 이어지면서 ‘깜깜이 인수위’라는 비아냥을 자초하는 모습이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정부 부처 업무보고만 해도 인수위는 각 분과별 논의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의 보고내용조차 대부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설익은 정책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국민들에게 혼란과 혼선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자신을 ‘인수위 안의 단독기자’라 칭하며 “저 말고 익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은 결과적으로 오보가 될 것”이라고 호언하는 모습은 실소마저 자아낸다. ‘조용한 인수위’는 분명 옳은 방향이다. 과거 우리는 인수위가 넘치는 의욕을 주체하지 못해 구상 단계의 정책들을 확정된 것인 양 마구 쏟아내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혼란을 안겨준 기억을 갖고 있다. 인수위가 마치 점령군이라도 된 듯이 정부 관계자들을 불러 호통을 치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적도 여러 번이다. 업무보고에 앞서 인수위원들이 돌아가며 일어서서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지금 모습은 겸양의 인수위 상(像)을 바로 세운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태도라 할 것이다. 그러나 보안과 소통의 경계를 인수위가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모습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정부 보고만 해도 국민은 현 정부가 내놓은 현실 진단과 문제점 등을 통해 ‘박근혜 공약’의 허실을 가늠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하다시피 하고 있다. 명백히 알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수위와 차기 정부에도 결코 이롭지 않은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강조해 온 협치(協治)의 개념과도 조응하지 않는다. 정부의 견해와 박 당선인의 공약을 비교하고 따져 사회 각 부문이 보다 나은 대안을 모색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새 정부가 원활하게 정책을 추진해 나갈 호기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것이다. 그제 불거진 최대석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의 돌연한 사퇴에 대해 ‘일신상의 이유’라며 뭉개듯 넘어가는 것도 온당치 않다. 인수위원은 엄연히 국민의 세금으로 활동하는 공인이다. 인선 과정에서의 검증 부실이 원인인지, 아니면 인수위원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던 건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고, 인수위는 밝혀야 할 책무가 있다. 공식 출범한 지 열흘도 안 된 인수위가 ‘유신 시대의 보도통제를 연상케 한다’거나 ‘언론에 대못을 친 노무현 정부보다 나을 게 없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은 여러모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정부 조직개편과 조각 등 앞으로 중차대한 과정이 남아 있다. 비판 여론을 겸허히 새겨 심기일전해야 한다.
  • [지금&여기] 보수의 나라/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지금&여기] 보수의 나라/안석 정책뉴스부 기자

    미국 공화당은 오바마 이전까지 10차례 대선에서 7차례 승리했다. 이코노미스트 기자들이 쓴 ‘더 라이트 네이션’(the Right Nation·보수의 나라)은 미국 보수주의의 배경에 정치만이 아닌 학계와 지역운동가, 인구학적 요인 등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는 입법부와 언론에 더욱 친화적이다. 의원과 기자 입장에서 요점이 잘 정리된 이들의 보고서는 진보 싱크탱크의 그것에 비해 가독성도 높고 기사화하기도 쉽다. 미국에서는 총기, 낙태 등의 이슈가 첨예한 논쟁을 일으킨다. 특히 전국총기협회 회원들의 투표 참여율은 95%가 넘는다. 조지 부시는 이들 우파에 안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이제 한국 이야기를 해보자.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현재 거주지가 달라도 새벽 일찍 고향으로 내려가 투표하는 많은 유권자들 가운데 민주통합당 지지자들도 많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소 앞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린 유권자는 문재인 후보 지지자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이들도 투표율이 75%를 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졌다. 이유는 뭘까. 우리 사회의 보수가 그동안 손을 놓고 정권 재창출을 기다렸던 것이 아닌 것 같다. 이름도 생소한 뉴라이트 학자들이 이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그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차기 정부의 밑그림을 그렸던 셈이다. 대선 동안 정치평론을 쏟아낸 종편은 미국의 폭스TV처럼 좌파와 인터넷에 뺏긴 미디어 영향력의 균형을 맞췄다. 박근혜 당선인은 의원 시절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이끌며 야당이 이끌던 복지 이슈를 중간지점으로 수렴시켰다. 이제 대다수 부모들은 학교 담벽이 더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직접 경찰서를 찾아 “초등학생 납치범을 잡으라”고 호통을 칠 만큼 안전은 안보보다도 중요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 지역사회에서 학교 담장 허물기가 유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변화다. 학교 담벽이 높아야 하고, 경찰은 더 많아야 하며, 흉악범은 반드시 사형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지는데 진보는 여기에 어떤 대답을 내놔야 할까. 답이 있다면 이번 대선 결과를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ccto@seoul.co.kr
  • 시민발언대 1년… 12일부터 ‘시민청’서 운영

    “파손된 볼라드에 걸려 넘어졌어요. 규격화된 볼라드로 정비해 주세요.” 지난해 1월 청계광장 시민발언대 ‘할 말 있어요’엔 이런 건의가 올라왔다. 해당 구청 도로관리과는 “문제의 볼라드를 즉시 정비하고, 단계적으로 전체를 정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답변했다. 서울시는 11일로 운영 1년을 맞은 시민발언대가 총 46회를 개최해 시민 398명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0일 밝혔다. 엄마에게 감사인사를 보내는 6세 어린이의 최연소 메시지부터, 사회병리를 겨냥한 최고령 83세 노인의 호통까지 다양했다.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일자리를 갖게 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상황은 어렵더라도 여유와 희망을 갖고 생활하자”던 시민은 올해 노숙인 저축왕에 선정되기도 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인이 되라고 목소리를 높인 초등학생, 에너지가 부족한 나라에서 에너지 좀 아껴 쓰자는 청년, 외국 관광객의 방한 소감까지 지름 2m 남짓한 반원형 연단에 다양한 목소리가 터졌다. 발언 중 개인사연을 제외하고 35%인 136건이 뉴타운, 재개발 등 주택문제와 보육이나 복지에 얽힌 것이었다. 건의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부서의 검토의견을 시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또 매달 시민과 시장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는 ‘시장과의 주말 데이트’ 안건으로도 상정돼 답변을 듣는 기회를 갖는다. 12일 신청사 시민청으로 옮기는 발언대 참가 희망자는 시 및 시민청 홈페이지에 참여시간을 예약하거나 당일 현장에 오면 된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나 웃긴다고? 니들 탓이야 !

    나 웃긴다고? 니들 탓이야 !

    프로농구가 3라운드를 마치고 시즌 반환점을 돌았다. 누구보다 좌불안석인 이들은 각 팀 사령탑. 선두권에서 버티는 팀이나 하위권을 맴도는 팀이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긴 마찬가지. 그러다 보니 감독들이 빚는 해프닝은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게 큰 웃음을 안기기도 한다. 지난 3일 11년 만에 7연승을 거두며 독주 체제를 굳힌 SK의 문경은 감독은 상대 선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곤 한다. 지난달 29일 오리온스전에서 연세대 후배 김승원을 가리켜 “한국애, 키 큰 애 맡아”라고 작전지시를 내리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해설자가 흉내 내 시청자들을 웃겼다. 전날 연습 때는 오리온스의 김종범을 “이종범”이라고 불러 선수들을 키득거리게 했다. 작전타임을 불러 놓고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한다며 전광판 시계 대신 자신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몸개그도 선보였다. 전창진 KT 감독의 ‘멘붕 7단계’는 널리 알려진 일. 1단계에는 바른 자세로 여유 있게 지켜보다가 경기가 꼬이는 2단계에는 팔짱을 낀다.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는 3단계에는 선수들에게 호통을 치며 두 손이 허리춤에 올라간다. 4단계에는 어이없다는 듯 벤치 광고판에 몸을 의지하고, 점수 차가 벌어지는 5단계에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장을 쳐다보다 한숨도 쉬고 허허실실 웃는다. 6단계에는 다시 벤치에 앉아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다. 경기를 포기하는 7단계에 접어들면 의자에 팔을 걸거나 솥뚜껑만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과 동작들이 재미있어 경기장을 찾는 팬까지 생길 정도. 61세로 역대 최고령인 삼성 김동광 감독은 경기가 안 풀릴 때마다 몸을 혹사시킨다. 100㎏짜리 바벨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소리를 내지르면 절로 스트레스가 풀린단다. 집에선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강아지와 씨름한다고 측근이 귀띔했다. 꼴찌 KCC를 지휘하는 허재 감독은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엄청 줄였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2006~07시즌보다 더 줄었단다. 지난 2일 LG를 누르고 시즌 첫 2연승을 거뒀을 때 선수들이 마치 챔피언전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단다. 김진 LG 감독과 악수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해 민망해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동부는 4일 강원 원주 치악체육관에서 열린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이승준(20득점)의 활약에 힘입어 80-75로 이기고 10승(18패)째를 올렸다. 동부는 경기 시작 5분여가 지나도록 김주성과 박지현, 이광재를 쓰지 않고 벤치 멤버로 싸웠음에도 1쿼터를 27-18로 앞섰다. 4쿼터 들어 오리온스의 거센 추격을 받았으나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울산에서는 모비스가 LG를 66-61로 꺾고 4연승을 달렸다. SK에 이어 두 번째로 20승 고지에 안착한 모비스는 전자랜드와의 승차를 1.5경기로 벌리며 2위를 굳건히 했다. 강동삼 기자 kangtong@seoul.co.kr
  • [커버스토리-1983 과천 vs 2013 세종] 행정 비효율성 ‘불만’ 주거·의료시설 ‘불편’ 초등학교 교실 ‘부족’

    ‘정부세종청사 시대’가 열렸다. 수도권 집중현상을 막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해 2002년 대선 공약으로 등장한 지 10년 만이다. 하지만 주거시설과 편의시설, 초등학교 교실 부족으로 입주민의 불편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교실 부족은 수요예측이 빗나간 탓이다. 가장 큰 문제는 행정의 비효율성. 특히 국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수시로 서울을 오가느라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물리적인 부처 이전은 이뤄졌지만 행정 형태는 여전히 중앙집권적이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에 부합하는 ‘행정 콘텐츠’가 도입되지 않은 탓이다. 행정 전문가들과 공무원들은 행정 콘텐츠가 바뀌지 않는 한 고위직 공무원들의 자리 비우기로 인한 행정공백 사태는 과천청사 때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과천청사에서는 외부 회의 참석에 한나절이 걸리지만 세종청사에서는 하루를 허비하고도 다음 날 출근이 빠듯하다. 자리를 비우는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국회를 핑계댄다. 주요 정책 결정이 이뤄지기까지 국회와 수없이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울 여의도의 국회를 오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의 한 공무원은 “지금처럼 공무원들이 우르르 국회에 몰려가야 하는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행정 비효율, 낭비는 불 보듯 뻔하다”며 “국회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이 떼 지어 국회를 방문하는 이유로 ▲국회의원의 권위의식 ▲대면보고 관행 ▲소신없는 공무원 행동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화나 서면보고로 가능한 업무도 직접 자료를 갖고 들어와 보고하도록 강요 아닌 강요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공무원은 “서면 제출이나 전화로 업무를 처리할 경우 ‘국회의원을 무시하는 것이냐’는 호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의도를 방문한다”고 말했다. 별것 아닌 것도 대면보고를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수준 낮은 질문도 공무원들을 국회로 출근토록 만드는 원인이다. 한 공무원은 “국가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 지엽적인 문제까지 들고 나와 장차관을 호통치는 바람에 해당 실·국 사무관 이상 간부들이 모두 국회로 출근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소신 없는 정치 공무원의 ‘눈도장 찍기’ 관행도 문제다. 국회의원에게 밉보이면 국정감사를 비롯, 예·결산 때 질타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유력 의원들이 부처 공무원의 승진·보직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무시할 수 없어 국회 방문을 고집하는 공무원도 있다. 행정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 의사결정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김권집 충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의사결정을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청와대·국회 눈치를 살피거나 사전 내락받는 행정 관행에서 벗어나 장차관이 업무를 확실히 파악하고, 부처별 책임을 강화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한 지방분권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세종시에 ‘국회 분원(分院)’을 설치하는 방안도 대안이다. 박수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할 수는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것도 행정 비효율을 막자는 취지이다. 박 의원은 “세종시에서도 국회 상임위 등 일부 회의 개최를 가능하게 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주거 부족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는다. 이미 분양한 대부분의 아파트가 입주하는 내년 말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종합병원, 대형 쇼핑몰 등도 2~3년 안에 들어설 예정이다. 의료시설 부족 문제는 충남대병원이 2016년까지 3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지을 경우 급한 불이 꺼진다. 병원 설립에 따른 행정 지원이 필요하다. 교실 부족 문제는 아파트 입주 시기에 맞춰 단지 주변에 학교를 짓되 수요를 정확히 예측, 교실 수를 조정해야 풀린다. 대중교통체계 정비를 위해서는 인접 지방자치단체의 협조가 요구된다. 생활권이 대전, 조치원, 천안 등과 연계됐기 때문에 이들 지역을 잇는 서민 교통수단 확충이 필요하다. 도시정주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세종시로 이전하는 대학, 민간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행정적 지원을 해줄 필요도 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文, 安과 세번째 공동유세… 종반 메시지는

    文, 安과 세번째 공동유세… 종반 메시지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는 13일 부산, 경기 군포에 이어 대전에서 세 번째 공동 유세를 가졌다. 문 후보는 대선을 6일 앞두고 ‘안보 불안 지우기’에 집중하며 ‘북풍 차단’에 초점을 맞췄다. 안 전 후보는 전과 다름없이 ‘새 정치’를 강조하며 시민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문 후보는 대전 중구 으능정이 문화거리에서 안 전 후보와의 공동 유세를 시작으로 충남 논산 화지시장, 전북 군산 수송동 사거리와 전주 전북대, 광주 금남로 등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문 후보는 여권의 안보의식을 꼬집으며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고 호통을 쳤다. 그는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 측이 “민주당은 안보가 불안하다.”고 몰아세우는 것과 관련해 “적반하장”이라면서 “도둑이 도망가면서 앞에 가는 선량한 시민보고 ‘도둑이야’라고 외친 뒤 자신은 아닌 체하는 그런 속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보통 국민들은 당당하게 군 복무를 하며 안보 의식도 투철하다. 신체조건 되는데도 군대 안 간 사람은 특권층들”이라면서 “특권층이 모인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은 전부 군 미필에 애국심 없고 소총 한 번 손에 잡아 보지 못했고, 보온병과 포탄도 구분 못하는데 무슨 안보를 말하는가.”라고 쏘아붙였다. 문 후보는 또 군 당국이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예측하지 못한 것을 ‘이명박 정부의 무능’으로 규정했다. 대선을 앞두고 불어닥친 ‘북풍’(北風)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측의 ‘안보’를 내세운 정치적 공세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안 전 후보는 사회 격차 해소의 필요성과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언급하며 문 후보 지원 유세에 동참했다. 그는 문 후보와 가진 공동 유세에서 마이크를 들고 자신의 말을 한마디씩 따라하는 ‘소리통’ 연설로 시민들에게 투표에 참여할 것을 호소했다. 안 전 후보는 “제가 선거에 나선 이유는 새 정치와 격차 해소 때문”이라면서 “새 정치는 기득권 내려놓기부터 시작한다. 손에 쥔 것을 국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사퇴했지만 저는 계속 이 길(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갈 것이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이 한 몸 바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치와 격차 해소의 출발점은 정권교체”라고 힘주어 말했다. 문 후보와 헤어진 안 전 후보는 청주를 찾아 지원 유세를 이어갔다. 한편 문 후보는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직 정확한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고 전제한 뒤 “국가기관이 여론을 조작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면 심각한 문제”라면서 “의혹이 사실대로 규명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전주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길섶에서] 아파트 겨울나기/정기홍 논설위원

    갑자기 추워진 어젯밤, 잠을 청하려는데 아내가 꼼지락거리며 신문 포개는 작업에 열중이다. 밤에 해야 할 일이냐며 지청구도 해봤지만 그칠 기세가 아니다. 웬걸,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 도와달란다. 매년 이맘때면 하는 수도계량기 보온커버 씌우기 작업이다. “오늘 하자.” “내일 해라.”는 실랑이가 오가기를 수차례. 아내는 포기했는지 혼자 작업에 나설 낌새다. 나는 결국 한밤의 작업에 손을 보탰다. 수도계량기 보호통을 신문지로 덮고 비닐커버를 씌운 뒤 접착테이프로 붙이는 일. 나의 유일한 ‘아파트 겨울나기’ 작업은 20분 만에 끝났다. 계량기 동파는 면했다는 듯 아내의 얼굴이 금세 환해지는 것 아닌가.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란…. 올겨울에도 수도계량기 동파사고 소식은 어김없이 들려올 것이다. 요즘엔 수도계량기 보온커버 제품도 퍽 다양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보온커버 작업은 겨우살이 추억을 되새기면서 마무리됐다. 김장김치에 연탄만 있으면 그만이었던 시절,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말이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사이버대 특집] 세종사이버대학교

    세종사이버대는 다음 달 1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2013학년도 전기 입시를 실시한다. 모집 분야는 인문사회학부, 사회복지학부, 경영학부, 부동산경영학부, 호텔관광경영학부, 정보보호통신학부, 디자인학부 등 7개 학부 24개 학과다. 온라인을 통한 지원 동기 작성(50%)과 인적성검사(50%)를 통해 선발한다. 세종사이버대는 모든 학생이 졸업 때까지 한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자격과정을 커리큘럼에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또 신·편입생 전원에게 1년간 수업료 30% 감면 혜택을 부여하며 학사 편입생에게는 1년간 50%의 수업료를 감면해 준다. 구체적인 전형 내용은 홈페이지(www.sjcu.ac.kr)에서 직접 확인하거나 본교 입학관리본부(02-2204-8000)에 문의하면 상세한 입학 상담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세종사이버대 대학원에서도 다음 달 12일까지 정보보호학과 및 MBA학과 석사과정 전기 신입생을 모집한다. 자세한 내용은 세종사이버대 대학원 홈페이지(http://graduate.sjcu.ac.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말싸움이 총싸움으로… 총 27발 맞고 사망한 남자

    길에서 벌어진 가벼운 시비가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이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오토바이를 타던 남자가 보행자와 시비 끝에 27발 총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라과이라의 플란 데 만사노에서 벌어진 사건은 가볍게 사과만 했으면 없었을 일이다. 피살된 남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던 보행자를 가볍게 스쳤다. 보행자는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남자에게 “당장 사과하라.”고 호통을 쳤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제대로 보고 다니라.”고 훈계를 했다. 언성이 높아진 가운데 보행자가 내린 자동차의 운전석에서 또 다른 남자가 내려 시비에 가세했다. 보행자의 친구였다. 그는 “친구에게 사과하라.”고 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콧방귀를 뀌며 “길을 걷던 사람이 잘못했다. 내가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끔찍한 사건은 이때 벌어졌다. 오토바이에 가볍게 스쳤던 보행자가 어디선가 총을 꺼내 오토바이 운전자의 다리에 1발을 쐈다. 그리고 토스하듯 총을 곁에 있던 친구에게 던져 줬다. 친구는 총을 받아 무자비하게 26발을 난사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총격을 가한 두 사람은 쓰러진 남자를 뒤로 하고 자동차에 올라 도주했다. 피살된 오토바이 운전자의 가족은 “사건을 목격한 증인이 두 사람 있다.”면서 경찰이 행방을 추적하고 있지만 아직 용의자를 잡진 못했다.”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유권자들 정책 제안 “응답하라, 朴·文·安”

    “기초수급자 선정에서 탈락됐는데,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굶어 죽을 것 같습니다.”, “사립학교재단 개혁과 부패방지법 강화는 대선 공약에 꼭 포함시켜야 합니다.” 18대 대선이 가까워지고, 주요 후보들의 정책 공약들이 하나둘 공개되면서 각 후보 캠프에는 일반 유권자들의 정책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정치권이 미처 눈길을 돌리지 못한 사각 지역의 민원이나 하소연도 캠프마다 잇따르고 있다. 28일 유력 후보 캠프들에 따르면 하루 수백 통씩의 이메일과 전화, 편지 등이 유권자들로부터 접수되고 있다. 구미 불산가스 유출사고 주변 지역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 달라는 등의 집단 민원형 제안이나, 정치권이나 권력자의 부패에 강력하게 대응해 달라는 등의 촉구형 정책 대안은 캠프마다 골고루 접수되고 있다. 한 30대 직장인은 ‘바람 이야기’라는 이름을 붙인 정책집을 만들어 전달했고, 70대 할아버지는 600쪽짜리 정책집을 직접 작성해 접수시켰다. 각 후보 캠프에서 정책 공약을 내놓고는 있지만, 일반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추기에는 여전히 격차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을 찾는 후보를 만나 직접 호소하거나, 당과 캠프를 찾아 장문의 편지를 전달하는 사례도 있다. 개인의 곤궁한 처지를 해결해 달라는 하소연부터 정치권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야 한다는 호통까지 내용도 다양하다는 것이 각 캠프의 설명이다. 물론 “노모가 치료비가 없어 병을 못 고치고 있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라는 식의 개인 민원이 접수되기도 한다. 불구속 기소됐다가 무죄 확정을 받은 40대 강모씨는 “이런 경우 국가가 배상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캠프 측에 냈다가 ‘형사보상제도 개선안’에 대한 후보 공약에 반영되기도 했다. 국민이 직접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캠프가 이를 정책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후보와 유권자 간 쌍방향 공약 마련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집’을 둘러싼 유권자들의 하소연은 일찌감치 ‘하우스 푸어’ 관련 정책으로 각 후보 측의 공약에 반영됐다. 각 캠프 측은 “접수된 민원이 많다 보니 일단 데이터베이스(DB)화 작업을 먼저 하고, 처리 상황을 알려 주고 있다.”고 전했다. 캠프 관계자들은 “선거 초반 정치 이슈 공방으로 정책이 매몰되는 바람에 유권자들의 각종 정책 제안에도 불구하고 정책화 작업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각 캠프는 최근 ‘콜센터’를 개통하거나 접수 인원을 대폭 확대하는 등 유권자들의 정책 제안이나 민원 접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현정기자 hjlee@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2) 개항초 희비 가른 ‘소금’

    [선택! 역사를 갈랐다] (32) 개항초 희비 가른 ‘소금’

    ●소금의 격동기 : 쓰러진 사람과 뜬 사람 소금이 넘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소금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러나 60여년 전만 하더라도 소금 1석에 쌀 1석이 맞교환되던 때가 있었다. 소금을 구하기가 어렵고 비싸다 보니 소금에 울고 소금에 웃는 자들이 생겨났다. 특히 구한말은 소금 시장을 둘러싸고 극한 변동이 있었던 시기였다. 개항 이후 일본의 소금과 청나라의 값싼 천일염이 밀려왔고, 일제는 우리나라 소금을 재원으로 하여 식민지 경영 자금을 확보하려 하였다. 이러한 염업사의 격동기는 온몸으로 저항하다 쓰러진 사람과 시류에 편승하여 뜬 사람을 갈라놓았다. 삶의 선택이 자유로운 만큼 역사의 평가가 냉혹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과연 알았을까. ●이토 통감 마차 가로막은 꼿꼿한 소금장수 김두원 1907년 10월 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원산항에 사는 김두원씨가 일인에게 소금값을 찾으려고 여러 해를 호소하더니 일전에 경시청에 잡히어 갇혔다더라.” 소금값을 받으려는 김두원을 경시청에서 잡아 가둔 까닭은 무엇인가? 김두원은 비록 항일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일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었다. 좀처럼 변하지 않고 단단한 육각형의 결정체인 소금처럼 그는 일관되고 굽힘 없이 일제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 방식은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핵심 인물을 찾아서 호통을 치는 일이었다. 구속되기 불과 3개월 전인 7월 10일에도 그는 오른손에는 직소(직접 호소한다)라고 쓴 종이를, 왼손에는 편지를 들고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의 마차 앞을 막았다. 일곱 번이나 시도를 하였지만, 한국통치를 위한 일제의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와의 직접 대화는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환갑을 몇 해 앞둔 노인을 이렇게 꼿꼿한 집념의 사나이로 만든 자는 일본인 사기꾼이었다. 때는 8년 전인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소금을 대규모로 매매하는 거상이었다. 함경도에도 영흥·문천과 같이 소금 생산지가 있었지만, 원산의 거상들은 경상도를 넘나들었다. 강원도와 영남 일대를 통틀어 최고의 소금 생산지는 경상도의 김해와 울산이었다. 김두원은 이곳에서 소금을 사서 원산에서 파는 방식으로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당대의 소금 시장에서는 파는 자나 사는 자 모두가 신뢰를 기반으로 하였다. 믿음이 한 번 깨진 사람은 다시 상대하지 않았으니 소금 매매는 정말 짜디 짠 상거래였던 것이다. 이런 신뢰의 공동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 때는 개항 이후였다. 개항 이후로 일제의 전오염(우리나라의 자염처럼 끓여서 만드는 소금)이 부산과 원산 등 개항지로 유입되었고, 일본인 상인들도 조선의 소금 시장에 직접 나섰다. 속칭 포대가리가 생긴 것도 이때였다. 일본인 상인들은 간수가 많은 일본의 저질 소금을 조선의 가마니에 담은 뒤에 조선 소금이라 속여 팔았다. 이런 일본인들을 믿은 것은 김두원의 큰 실수였다. 1899년 5월에도 김두원은 동해안과 낙동강을 오가면서 소금을 매입하여 한 포구에 모아두었다. 이렇게 모은 소금이 자그마치 1088석이었다. 당시 시세로 따지면 약 5100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기무라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 형제가 객줏집에 머문 김두원에게 다가섰다. 고기 절이는 데 소금이 급하게 필요하여 소금값을 후하게 줄 테니 자신들의 배에 소금을 싣고 울릉도까지 가자고 속였다. 보름간의 항해를 거쳐 울릉도에 도착하자 기무라 형제는 김두원에게 소금 짐은 다음 날 하역하고 뭍에 내려 푹 쉬라고 하였다. 순진했던 김두원이 깊은 잠에 든 사이에 사기꾼 형제는 배를 띄워 유유히 동해를 건너 시무라 현으로 사라졌다. 희대의 ‘소금 먹튀’ 사건에 김두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분통이 터져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조선의 외부대신에게 청원해 보았지만 이미 쇠멸해 가는 조선 정부는 자국민의 피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후 김두원은 직접 일본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기꾼들이 이미 징역을 살고 있고, 소금값을 물어낼 형편이 못 된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분기탱천한 김두원은 1903년 일본 공사인 하야시를 직접 찾아가서 소금값을 내놓으라고 고성을 질렀다. 인력거를 타고 가다가 놀란 하야시는 그만 종로의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렇게 김두원은 일본 공사뿐만 아니라 조선 통감, 일본 총리, 중의원을 상대로 청원하고 투쟁하였지만, 일제는 소금값을 지불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휼금 얼마를 주겠다며 그를 회유하려 하였다. 김두원에게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구휼금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는 경시청 총감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이를 거절하였다. “일본 선박이 홍주군 바윗돌에 부딪혀 파손된 것을 그 바윗돌이 조선에 있다 하여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배상금 3000원을 받아가고, 공주군에 있던 일본인이 조선의 군인과 시비하다 구타를 당하였다고 치료비로 5000원을 받아간 즉, 전례와 같이 나의 소금값도 일본 정부에서 물어내는 일이 당연하다.” 참으로 논리정연하고, 당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장장 20여년에 걸친 배상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그가 정당히 받아야 할 소금값은 식민지의 역사 속에서 ‘소금이 물에 녹듯이’ 사라져 갔을 것으로 보인다. ●탁지부 대신 고영희, 소금세 높여 염민에 큰 고통 1907년 10월 김두원이 영문도 모른 채 경시청에 잡혀간 이유는 일본 황태자의 조선 방문 때문이었다. 일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김두원이 황태자의 앞을 가로막고 ‘소금값 배상하라.’고 외칠 것이라 여겼다. 김두원이 일제에 의하여 불법 구금된 동안, 일본 황태자를 극진히 모시고 환영행사를 주관한 자가 있었으니 바로 탁지부 대신 고영희이다. 1849년생인 고영희와 김두원은 서로 나이도 엇비슷했으나 황태자 방문 앞에서 전혀 다른, 반대편의 삶에 서 있었다. 차가운 유치장에서 지내야 했던 김두원에게 그해 10월은 지옥과 같은 반면, 황태자 방문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제로부터 훈1등 욱일대수장(旭日大授章)까지 받은 고영희에게는 천국과 같았다. 1867년 역과에 합격한 고영희는 일제의 부상으로 호기를 맞았다. 1876년 김기수 수신사 일행으로서 일본어 통역을 맡아 일본을 시찰한 이후로 그는 순탄한 등용의 길을 걸었다. 1885년 연천 현감에서 사직하면서 잠시 가시밭을 만나는 듯하였으나 1895년 주일공사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고관대작의 지위를 한껏 누렸다. 특히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탁지부 관리로서 승승장구하였다. 1907년 5월에 출범된 이완용 내각에서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탁지부 대신에 임명된 것도 그간 쌓아온 탁지부 스펙 때문이었다. 탁지부 대신인 고영희의 주요 임무는 일제가 식민지 재정을 수립하기 위하여 파견한 고문들을 충실히 돕는 일이었다. 그중 하나가 조선의 소금을 가지고 식민지 경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1907년 9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명일에 총리대신 이완용, 농상대신 송병준, 내부대신 임선준, 탁지대신 고영희 4대신이 인천 주안리에 나가서 소금 굽는 마당을 시찰한다더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친일파 4대신이 당시 한적한 어촌인 인천 주안리에 행차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행사를 주관한 자는 탁지부의 고영희와 탁지부 소속의 재정고문이었던 메가타 다네타로였다. 1907년 우리나라의 인천 주안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천일염 시험장이 건설되었다. 수천년간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생산해 왔던 조선에서 바람과 햇볕으로 결정되는 천일염업의 등장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천일염 시험장을 건설한 내막에는 ‘불편한 진실’이 깔렸었다. 일제가 조선에서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재원이었다. 일제는 자국에서 담배, 소금 등의 전매제도를 통해서 침략전쟁의 군비를 마련했고, 식민지 타이완에서도 아편, 소금 등을 전매시켜서 재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렇게 상품을 전매하여 톡톡히 재미를 본 일제에 늘 위협적인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동아시아를 휘젓고 다니는 청나라의 값싼 천일염이었다. 중국산 천일염에 대항하는 방법은 천혜의 갯벌이 깔린 조선의 서해안에서 직접 천일염을 생산하는 길밖에 없었다. 염화나트륨 함유량이 높은 천일염은 화학공업과 무기산업의 원료가 되었으므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제에는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다. 이때 고영희와 메가타 다네타로는 서로 합심하여 주안에 최초의 천일염전 시험장을 건설함으로써 일제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다. 또 하나, 고영희는 일제의 의도대로 충실히 소금세를 걷어줌으로써 재원 확보에 도움을 주었다. 일제는 소금세가 궁내부에 귀속되어 왕실의 금고로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조선의 금고를 빼앗기 위해서 먼저 왕실의 금고에 들어가는 소금세를 국가의 금고로 들어가게 했다. 소금세를 많이 매기기 위하여 탁지부를 시켜 염세 규정도 치밀하고 까다롭게 바꾸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영희의 취임은 일제에는 희소식이었지만 소금 생산자인 염민들에게 큰 악재였다. 소금세가 갑자기 늘어나자 여기저기서 백성의 시위가 일어났다. 일본 순사들이 염민들을 잡아들이자 대규모 시위가 뒤따랐고, 이내 일본 군인들의 총칼 진압이 시작되었다. 일제와 탁지부의 강압적 소금세 징수로 인하여 결국 수많은 백성들이 죽음을 당했다. ●매국노 고영희 후손, 친일재산 환수 반환소송 나서 고영희는 일제에 수많은 재원을 넘겨 준 덕에 한평생 영화를 누렸다. 탁지부 대신으로서 한일합병조약의 체결에 앞장선 그는 이후 중추원의 고문이 되어 매년 1600원의 연금을 받기도 했다. 1916년 고영희가 사망하자 일제가 준 자작 작위는 장남인 고희경에게 세습되었다. 고영희 집안이 대를 이어서 호의호식할 때 소금장수 김두원은 여전히 소금값을 받지 못하고 허망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영희의 증손자가 국가의 친일재산 환수에 반발하여 반환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반환 소송이라면 억울하게 1088석의 소금을 일인에게 강탈당한 김두원의 후손들이 일본 법정에 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역사 앞에 부끄러운 자는 떠들고, 당당한 자는 조용하니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란 말인가. 유승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美아줌마 호통에 혼비백산 달아난 거대 흑곰

    美아줌마 호통에 혼비백산 달아난 거대 흑곰

    커다란 흑곰을 쫓아버린 미국 아줌마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는 ‘곰이 니산토를 만났다.’(The Bear Meets Nishanto)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와 현재 180만 명이 넘는 네티즌이 감상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3일(현지시각) 영국 일간지 메트로에도 소개된 이 영상은 한 아마추어 카메라맨이 자신의 정원에 나타난 흑곰 한 마리를 촬영한 것이다. 공개된 영상을 보면 촬영자가 집 앞 정원에 나타난 커다란 곰을 촬영하고 있는데 곰이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더니 천천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자 촬영자가 “니산토, 곰이 여기 있어!”라고 소리친다. 곰은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더니 잠시 주춤하지만 이내 계단을 오르려 한다. 만약 집 안에 사람이 있다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다. 그런데 집에서 니산토로 보이는 한 중년 여성이 나오더니 곰을 향해 “지금 당장 내려가! 안돼! 안돼! 안돼! 내려가!”라고 호통을 치며 내쫓는다. 그러자 곰은 놀랍게도 뒷걸음질을 치며 계단을 다시 내려가더니 재빨리 달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영상은 불과 1분 5초라는 짧은 시간을 촬영한 것이지만 네티즌들은 곰을 쫓아낸 여성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은 “그녀는 참을(bear의 동사적 의미) 수 없었을 것”이라며 언어 유희적으로 말하며 즐거워 했고, 또 다른 이는 “나 역시 그녀의 목소리에 겁먹었을 것이다. 화난 엄마의 목소리였다.”면서도 “니산토가 그 곰에 맞서는 용기를 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냉전 집착증’ 적나라하게 드러난 케네디

    존 F 케네디(1917~1963년) 전 미국 대통령은 우주 경쟁은 물론 하키 경기까지 러시아를 이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냉전 집착증’을 보였다. 자신의 성공은 가문의 이름에 빚진 것이라며 돈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케네디의 맨얼굴이 그가 재임 시절 최측근들도 모르게 백악관 집무실에 설치해 놓은 녹음기에 담긴 260시간 분량의 대화와 전화 통화, 구술 기록으로 드러났다고 뉴욕타임스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가운데 주요 내용이 존 F 케네디도서관재단이 25일 펴낼 책 ‘존 F 케네디의 백악관 비밀 녹음을 엿듣다’로 공개된다. 1962년 케네디는 제임스 웹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과의 회의에서 인간의 달 착륙이 자신의 최우선 관심사라고 밀어붙였다. 웹 국장이 “우주 환경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자 대통령은 결국 직설적인 속내를 드러냈다. “나는 러시아를 때려눕히는 데만 관심 있지, 우주 따위엔 관심이 없다고!” 냉전에 대한 그의 집착은 러시아와의 하키 경기에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1963년 3월 미국 남자 하키팀이 스웨덴에 17대2로 패하자 그는 국가대표 하키 선수였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빌어먹을, 우리가 대체 누굴 (경기에) 보낸 거야? 여자애들?”이라며 불평했다. 화가 나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전화통화도 서슴지 않았다. 같은 해 케네디 전 대통령은 군 측근들이 영부인 재클린 여사가 산기를 느낄 때에 대비해 케이프코드 공군기지 내 군 병원에 침실을 만들고 5000달러(약 558만원)짜리 가구를 사들였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들에게 반감을 살 뿐 아니라 의회에서 군 예산이 깎일 것을 우려한 탓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케네디는 언론 담당에게 전화해 “가구를 취소하고 내 사진을 침대 옆에 걸어 놓은 바보 같은 놈과 책임자들을 알래스카로 전근 보내라.”고 호통쳤다. 이후 공군 참모인 가드프리 맥휴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 속 사진에 등장한 참모에 대해 “멍청한 개자식”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토머스 퍼트넘 케네디도서관장의 소개대로 “날것 그대로의 역사”인 셈이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엄마, 아들 둘, 딸 하나…가족 강도 일망타진

    아르헨티나의 한 지방도시에서 가족강도가 일망타진됐다. 10대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강도행각을 벌인 엄마는 아들이 붙잡히자 뻔뻔하게 경찰서로 달려가 “아들을 풀어달라.”고 항의하다 함께 수갑을 찼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건은 아르헨티나의 관광도시 바릴로체에서 최근 발생했다. 엄마, 큰아들(19), 둘째 아들(16), 딸(10)등 가족으로 구성된 강도단이 초콜릿 전문점을 털었다. 가족강도단은 역할을 분담했다. 엄마와 딸, 16세 아들은 정찰병 역할을 했다. 사건 당일 세 사람은 초콜릿을 살 것처럼 상점에 들어가 내부 사정을 살펴봤다. 그리고 상점을 나가는 척하면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행동대원(?) 19살 큰아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아들은 바로 상점으로 들어가 권총을 빼들고 종업원을 위협, 화장실에 가둔 뒤 카운터에 있던 현찰 1500페소(약 35만원)을 훔쳤다. 피해자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바로 출동, 감시카메라에 찍힌 내용을 확인한 뒤 범인들이 도주한 방향을 알아내고 추격에 나섰다. 경찰은 현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범인과 동일한 옷을 입고 있는 청년을 발견했다. 청년은 경찰이 접근하자 총을 빼들고 저항하려다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지만 체포됐다. 경찰이 청년을 조사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무고한 시민을 왜 잡아갔냐?”고 호통을 치며 문울 박차고 경찰서로 들어섰다. 그러나 당당하게 경찰에 따지던 여자도 결국 수갑을 찼다. 핏발을 세우며 고함을 치던 여자는 비디오에 등장하는 가족강도단의 우두머리인 엄마였다. 경찰은 “가족이 상점에 들어가 경계심을 풀게 한 뒤 바로 권총강도행각을 벌였다.”면서 “단순하지만 지능적인 범죄였다.”고 말했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열린세상]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열린세상]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머지않아 다음 달이 되면 언론 매체들은 앞다투어 한글 찬양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영어, 프랑스어와는 달리 한글은 쉽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언어다. 한글 읽기를 깨치는 데는 하루면 족하다.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며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 마치 도돌이표를 붙이기라도 한 듯 해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물론 한글은 과학적으로 대단히 우수하다. 해외의 저명 언어학자들도 한글의 과학성에 토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한글이 다른 문자보다 과학적이고 편리하다는 게 ‘당연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글은 일본의 ‘가나’(假名)보다 600년, 영어의 원형인 로마 글자(알파벳)보다 무려 2000년 뒤에 ‘발명’된 최신형 글자이기 때문이다. 신형 컴퓨터가 구형 컴퓨터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당연한 일을 찬양하는 건 공허하고 진부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과학성 예찬이 식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과학성’이 뛰어나면 ‘경쟁력’도 우수한 걸까? 일본 교토산업대의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영어를 못해 물리학을 택했다.”고 농담할 만큼 영어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대학원 시험 때 지도교수가 그의 외국어 시험을 면제해줄 정도였고 평생 외국도 못 나가 여권도 없었다. 하지만 일본어밖에 할 줄 몰랐던 그는 200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어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학문적 성취가 가능했음을 뜻한다. 과연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글만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지적 성취가 가능할까? 물론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글의 콘텐츠가 턱없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스카와 교수가 입증했듯이 일본어로는 그것이 가능하다. 1980년대 VTR 시장에서, 앞선 기술력의 베타(β) 방식이 풍부한 콘텐츠의 VHS 방식에 밀려 도태된 역사적 사실이 떠오른다. 시인 김수영(1921~1968)은 1930년 이후 태어난 신세대 문학청년들을 ‘뿌리 없이 자라난 사람들’이라고 혹평하곤 했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는 까닭에 세계문학의 흐름에서 차단된 그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지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더미같이 밀린 외국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 한글 콘텐츠를 일본어 못지않게 늘리는 일이야말로 국운(國運)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질타했다. 그렇다, 김수영의 시대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도 문제는 결국 ‘번역’이다. 뛰어난 과학성에도 불구하고 한글의 콘텐츠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시원스럽게 뚫린 8차선 고속도로에 어쩌다 한 대씩 자동차가 달리는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세종이 만든 최고 성능의 도로(한글)에, 우리는 수많은 자동차(콘텐츠)를 채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녀야 했다. 우리는 조상(세종) 자랑, 과학성 타령에 바쁜 나머지 이 시대에 마땅히 할 일을 하지 못한 게으르고 못난 후손이 아닐까? 최신형 고성능 DSLR 카메라(한글)를 들고 거들먹거리면서 근사한 사진 한 장 찍을 줄 모르는 풋내기 사진사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낡아빠진 필름카메라(가나)로 멋진 작품을 뽑아내는 노련한 사진가의 모습이다. ‘번역 왕국’ 일본의 현주소다.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과제는 정부 주도의 번역 사업을 통해 한글 콘텐츠를 대대적으로 확충하는 일이다. 한시바삐 정부 내에 ‘번역청’을 설립해야겠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 직후 정부 내에 ‘번역국’을 따로 두고 단기간에 수만 종의 서양 고전들을 번역했다. 그들이 19세기 말에 번역한 서양 고전 가운데 아직도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만일 세종대왕이 지금 다시 온다면 조상 자랑, 과학성 타령이나 하고 있는 우리의 게으름을 엄히 꾸짖을 것만 같다. 당장 대대적인 번역 사업에 착수하라고 호통칠 것만 같다. 세종이 최고의 문자 한글을 발명했다면, 우리는 그 한글에 최고의 콘텐츠를 채워 후손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역사의식’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종에겐 세종의 할 일이 있었고, 우리에겐 우리의 할 일이 있다. 이걸 못한다면 우리는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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