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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안쪽지 호텔로비에 꽁초버리듯“슬쩍”/김 장학사 정답유출 시나리오

    ◎대기한 부인이 주워서 한씨에게 전달/함씨 세딸,시험날 휴식시간에도 외워 대학입시 학력고사정답 유출사건 주역들의 「악연」은 90년 9월초 어느날 북한산의 한 암자에서 시작됐다. 이 절의 독실한 신도인 한승혜씨는 재수생인 맏딸과 고3인 둘째딸의 시험일이 불과 두달여 앞으로 다가온 탓에 부쩍 절 출입이 잦을 때였다.그날도 두딸의 합격을 기원키 위해 절을 찾았던 한씨는 같은 신도인 김광옥장학사의 부인 김영숙씨를 예불시간에 처음 알게됐다. 목례정도만 건네던 두사람 사이는 남편의 직업이 학원재단이사장과 교육부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금세 가까워졌다.자연스레 집안얘기들을 주고받게 됐고 한씨는 특히 낙방이 뻔한 두딸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으면서 도움을 호소했다. 마침 김장학사부부도 노후대책용으로 경영할 여관을 물색하고도 돈이 모자라던 터라 선뜻 한씨의 청을 받아들였다. 처음 만난지 한달쯤뒤인 10월중순 마침내 세사람은 한자리에 모여 전대미문의 「입시부정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며칠뒤 한씨는 1억원짜리수표 3장을 김영숙씨에게 선불로 지급했다. 김장학사부부는 만의 하나 뒤탈을 생각해 이 수표를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양도성예금증서(CD)로 세탁한뒤 곧바로 전세보증금 1억원과 은행대출금 1억원을 보태 도봉구 수유동의 4층짜리 영빈장여관을 구입했다. 11월 22일 김장학사는 대학입학 학력고사 출제본부 기획위원으로 용산구 이태원동 K호텔에서 25일동안의 「연금생활」에 들어갔다.이에앞서 부인과 한씨에게 답안을 빼내 전해주는 수법을 여러차례 반복해 알려주었음은 물론이다. 입시일 사흘전에 최종확정된 문제지와 답안지를 인쇄를 맡고 있는 대한교과서측에 넘기는 날 호텔로비에서 미리 베껴적은 답안지를 부인에게 건네주는 수법이었다. 91학년도 전기대 입시일 나흘전인 12월16일 밤,작업실에서 다음날 맡길 문제지와 답안지 원안을 정리하던 김장학사는 출제를 마친 위원들과 다른 동료들이 그동안의 피로탓에 일찌감치 잠자리로 돌아갔음을 확인한뒤 별도로 복사해둔 답안지를 펼쳐놓고 9과목의 주·객관식 정답을 16절지3분의1크기로 베껴적었다.불안속에 임무를 끝낸 김장학사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보안위원에게 통화내용을 보고하면 가족통화는 허용됐다.이미 짜둔대로 부인에게 『몸이 아프냐…』는 등의 안부말로 「1단계 작전」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재인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내다시피한 김장학사는 이튿날 다른 직원 3명과 함께 인쇄원안을 전달키위해 호텔로비로 내려갔다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부인이 자신을 보고 다가오자 슬쩍 뒤처져 담배꽁초를 버리는 척하면서 몇겹으로 꼬기꼬기 접은 답안지를 떨어뜨렸다.간첩들이 암호문 전달을 위한 접선장면 그대로 였다. 정답을 받은 부인 김씨는 급히 호텔을 빠져나와 한씨집으로 달려가 전해주었다.보안유지를 신신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씨는 불안과 반신반의속에 답안지를 이틀동안 지니고 있다가 입시전날인 17일 아침 원본은 「내려간 다음에 보라」고 쓴 봉투에 넣어 둘째에게 준뒤 대전모호텔에 있는 맏딸을 찾아가 복사본을 넘겨 주었다.『잘 아는 선생이 준 거니 시험 잘봐라』는 말과 함께. 큰딸은 답을 암기하면서 교재여백에 기재,쉬는 시간마다 다시 외우는 방법으로 시험을 쳤다.내신 10등급인데 3백6점을 맞아 충남대의대 3등을 했다. 둘째는 전화번호를 외우는 방법으로 정답을 외워 시험을 봤다.답안지를 가방에 넣어갔지만 겁이 나서 꺼내 보지는 못했다.내신 7등급 학력고사 3백9점으로 단국대의대 천안분교에서 수석. 셋째딸도 무사히 대학을 다닐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같은 방법으로 올 전기대에 충북대 의대에 응시,3백8점을 얻었지만 유난히 3백점이상 고득점자가 많아 내신10등급으로는 부족했다.그래서 후기 순천향대 응시에서는 하나하나 철저히 암기,화학 1문제만 틀려 역대 학력고사 최고점수와 같은 3백39점을 얻었다.그러나 점수가 너무 높았던게 화근이었다.대학에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영문을 모르는 아버지 함기선씨가 학교로 불려갔고 끝내 합격을 포기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광운대 입시부정등으로 각 대학에 대한 교육부 감사가 시작됐고 지난달 15일의 순천향대 감사에서 이같은 사실이 적발됐다. 김장학사와 함씨부부는 교육부에 불려가 자술서를 썼고 김장학사의 사표제출로 묵혀지는 걸로 알았다.그러나 지난 17일 교육부에서 이를 발표,검찰에 수사의뢰를 하자 김장학사 부부와 함씨부부는 잠적했다. 하지만 3일만인 19일 함씨부부는 자수했고 김장학사부부는 속초로 피신해있다 검찰수사관에 의해 검거되고 말았다. 셋째딸의 부정만을 주장하던 김장학사부부와 한씨는 끝내 모든 것을 자백하고 20일 구속됨으로써 「악연」의 끝을 맺고 말았다.
  • “짧은걸음도 계속하면 정상오른다”/김 차기대통령 도봉산서 인사구상

    ◎“막중한 감사원장 인선,총리와 함께 발표/치안사범 감소는 새 정부에의 기대 영향” 김영삼차기대통령은 30일 자문교수·수행비서·상도동주민등 20여명과 함께 대통령당선이후 처음으로 4시간30여분동안 도봉산을 등반했다. ○…김차기대통령은 이날상오 11시쯤 승용차편으로 도봉산 입구에 도착,대기하고있던 민주산악회 산행대장인 이우태씨(빨치산 소설 남부군 작가)등 산악회간부들의 환영을 받은뒤 등산나온 시민들에게 다가가 『자주 산을 찾느냐』며 반갑게 인사. 특히 산을 오르면서도 중간중간 시민들과 날씨와 건강등을 화제로 담소를 나누거나 사진촬영 제의에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는등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다른 「시민과 같이하는 대통령」이미지 부각에 신경쓰는 모습. 김차기대통령은 산행이 주는 교훈에 대해 『짧은 걸음도 계속하다보면 정상에 오를 수있고 정상에 오르면 내려가야하는 법』이라며 『등산보다 좋은 운동은 없다』고 등산 예찬론을 피력. 그는 과거 야당시절 어려운 때에 지리산등을 찾았던 기억을 되새기며 『생각해보니 1년만의 외출이 아니라 1년만의 산행』이라고 의미를 부여. 1시간30여분만에 도봉산 거북바위앞 산중턱에 도착한 김차기대통령은 연대 최평길 숭실대,김홍진교수등 일행과 함께 도시락에 소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며 국무총리등 요직 인선시기와 취임준비등에 대해 환담. 김차기대통령 일행이 오찬을 한 장소는 지난 91년 3당합당 하루전 민주산악회회원들과 함께 등반했던 곳. 그는 감사원장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가운데 『싱가포르와 대만에서는 감사원이 4부중 하나』라며 『우리 감사원장도 실제 10여명의 차관급 인사를 거느리는 막중한 자리인만큼 취임식 며칠전 총리인선과 같이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특히 대선후 치안사범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새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있다는 증거』라며 『국민 모두가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만드는게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비장한 각오. ○…김차기대통령이 대통령당선자신분임에도 당선이전과 다름없이 즐겨하던 산행에 나선 것은 경호팀관계자나 측근보좌팀들에게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전직대통령이나 대통령당선자가 경호상 무방비상태나 다름없는 산행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선례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차기대통령은 예정된 산행일정을 당일아침 발표하는 정도로 경호문제에 대범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 김차기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20여년간 해오던 상도동주민들과의 조깅및 야당시절부터 즐겨찾던 설렁탕집·국수집등 대중음식점에도 들러 주민들과 식사하는등 특별히 대통령당선자로서의 신분을 고려치 않고 있다. 김차기대통령의 이같은 평소 생활습관 고수는 김차기대통령의 고집스런 외곬자신감과 국민속에서 같이 호흡하겠다는 의지 때문이긴 하지만 경호관계자들은 김차기대통령의 경호문제에 고충이 많음을 은연중 내비추기도 한다. 일례로 행사장에 들르기위해 호텔로비를 지나던 김차기대통령이 호텔종사원들과 악수를 나누는 순간 경호원들이 접근하는 시민들을 다소 완력으로 분리시키자 김차기대통령이 「과잉경호」라고 역정을 낸적도 있다. 김차기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뒤에는 청와대 경내에서 새벽조깅을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김차기대통령이 취임이후 누구와 조깅을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김차기대통령의 측근인 이원종 민자당부대변인은 시민들과 같이 뛰고 산에 오르는 일이 여의치 않을 경우 『대통령은 굉장히 외로워할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 섬광에,폭음에… 호텔 아비규환/미의 이라크 2·3차공격 이모저모

    ◎투숙객 문짝에 깔리고 곳곳에 유리파편/다란시 스커드 피습설… 공습경보 소동 ○“미·영 정상 긴밀 협의” ○…미국이 주도한 서방동맹국의 이라크에 대한 3차공격은 존 메이저 영국총리와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지난 주말 밀도있는 협의를 가진 끝에 단행된 것이라고 영국의 한 고위관리가 밝혔다. 이 고위관리는 메이저총리와 부시대통령이 17일 밤 미국의 미사일공격과 18일 미·영·불 3국 항공기의 공습이 단행되기 전인 지난 16일과 17일 6차례에 걸쳐 전화통화를 가졌다고 전했다. ○터키,북부지역 공격 ○…터키 남부 인시리크 공군기지의 다국적군 전투기들이 18일 상오(현지시간) 단행된 다국적군의 대이라크 3차공습에서 이라크 북부 레이더기지와 미사일포대를 공격했다고 한 미군대변인이 확인. 이날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전화로 접촉한 인시리크기지의 마이크 워터스 소령은 인시리크기지에서 발진한 전투기들은 북위 36도 이북의 북부비행금지구역내에 위치한 모술 남서부의 레이더 기지와 모술 북동부 바시카지역의 한 미사일 포대에 타격을가했다고 밝혔다. ○“사이렌 잘못 울렸다” ○…이라크가 사우디아라비아 동부의 석유도시 다란에 스커드미사일 한 발을 발사했다는 소문이 18일 퍼지면서 다란에는 지난 91년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공습경보가 울리며 급박한 상황에 휩싸였으나 이내 소문은 허위로 밝혀졌다. 서방의 한 군사소식통은 이라크가 스커드 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발사,대서방 보복공격이 나섰다고 전했으나 곧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정정,걸프전 당시의 악몽으로 혼비백산했던 다란 시민들은 안도했다. 한편 워싱턴의 한 국방부 관리는 미국의 조기경보위성에는 이라크로부터 어떠한 미사일도 발사된 바 없다고 확인했다. ○공격소요에 20여분 ○…걸프전이 일어난지 만2년이 되는 17일 밤 10시(현지시간) 조금 지나 걸프해와 홍해에 정박중인 미국의 이지스급 순양함 카우펜스와 휴이트·스텀프 등 2척의 구축함,그리고 홍해에서 대기중이던 구축함 케이론 등 4척은 각각 1천파운드의 재래식 탄두를 장착한 초정밀 미사일들을 목표물을 향해 발사했다. 2년전 제1차 걸프전때귀신같은 정밀도를 과시했던 이 순항(크루즈)미사일들이 지상에 떨어지면서 바그다드 시내에서는 3발의 폭발음이 연달아 들린 뒤 검붉은 연기기둥이 이곳저곳에서 치솟았다. 미국측 공격에 소요된 시간은 20∼30분.작전 소요시간은 2시간이었다. ○“미군보호”명분 따라 ○…미국으로서는 폭격기 한대도 출격시키지 않아 자신들의 발표대로 『미군을 최대한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위험부담이 따르지 않는 작전을 의도대로 마친 셈. 미CNN­TV는 이 광경을 바그다드발 생중계로 방영하면서 공습사이렌에 이어 대공포가 발사됐다고 전했으나 영국의 BBC 방송은 이라크 당국이 분명 공격에 대비한 경고를 하지 않았으며 공습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다고 엇갈리게 보도. ○곳곳 TV장비 널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한 2차 공격에 나선 17일 바그다드의 밤하늘은 지상에서 날아 올라가는 대공포화가 작렬,섬광으로 밝게 빛나는 모습. 미군 크루즈 미사일들이 바그다드 교외의 핵시설로 알려진 목표들을 명중시키고 있다고 보도된 그시간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화호텔인 알라시드 호텔은 폭음과 함께 로비가 파괴되면서 파편들이 어지러이 날았다. 미국 NBC­TV의 필름 편집원 데리크 윌킨슨은 『뭔가가 휭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들더니 바로 내가 있던 앞에서 폭음이 났다』고 CNN에 피격 순간을 전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문짝에 내가 깔려있었다』면서 『살아난 것만도 천운』이라고 진저리 쳤다.NBC가 바그다드 사무실로 쓰고 있던 그의 객실은 창문이 온통 문틀에서 떨어져 나가고 TV 카메라 장비들이 온 방에 널려있는 모습이었다. ○핵부품공장 파괴설 ○…미 크루즈 미사일 공격을 받은 바그다드 근처 시설은 우라늄 농축용 전기부품을 생산하는 한 공장이라고 빈 소재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데이비드 키드 대변인이 발표. 키드대변인은 문제의 공장이 바그다드 남쪽근교 약 20㎞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난 91년 걸프전때 파괴된 투와이타 우라늄 농축공장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계제조 공장” 주장 ○…이라크는 미국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라크 목표물은 미국측이 주장한 것처럼 핵시설이 아니라 기계제조공장이라고 주장. 이라크 공보부의 한 대변인은 유엔 사찰관들이 이 시설을 수차례 방문한 바 있으며 『무슨 시설』인지를 알고 있다면서 이는 『피츠워터의 주장처럼 핵시설이 아니라 금형을 뜨는 기계공장』이라고 반박. ○“프론트여급도 참변 ○…바그다드를 방문하는 외신기자들이 대개 묵는 시내 소재 알라시드 호텔에서 여자 종업원 2명이 미국의 재공격으로 사망했다고 이라크 고위 관리가 18일 밝혔다. 이라크 공보부에 소속된 이 관리는 로이터통신 회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호텔 투숙객중 국제 회교회의 참석 대표 11명도 다쳤다』고 덧붙였다. 사망한 종업원들은 프론트 근무중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도됐다. ○…미국의 두번째 공격이 감행되기 직전인 17일 상오(현지시간) 약 2만명의 이라크 국민들은 수도 바그다드 시내에서 걸프전 발발 2주년 기념식을 갖고 다국적군의 공격에 대한 항의 시위를 개최. 후세인 대통령은 이날 90분여의 대국민 TV연설에서 『투쟁과 지하드(성전),그리고 희생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이라크 국민들의 대미항전을 거듭 촉구. 한 시위자는 『우리는 미국 전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전쟁없는 생활은 우리의 꿈』이라고 심정을 밝혀 이라크가 이란과의 8년 전쟁,걸프전및 이에따른 유엔 경제제재조치 등으로 상당한 고통에 처해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국인도 구조 활동 ○…미국이 이라크에 2차공격을 감행한 시각 바그다드의 알 라시드호텔에 묵고 있던 한국인 이윤우씨는 『밤9시20분쯤 갑자기 엄청난 폭음소리가 들려 잠자리에 일어나보니 유리창이 모두 깨지고 유리조각이 방안을 온통 덮고 있었다』고 현장 상황을 전했다. 국제이슬람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바그다드를 방문한 이씨는 이어 『문을 열고 옆방의 ABC방송단에 들어가보니 기자 한명이 다리를 다쳐 구해달라고 소리질렀다』고 말했다. 상황이 급박함을 안 이씨는 부상당한 기자를 부축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했으나 마침 고장 나 층계로 내려가보니 호텔로비는 완전히 파괴됐고 수도관이 터져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등 아수라장이었다고 말했다.
  • “대평양 조공외교 일서도 거센 비난”

    ◎자민·사회당사절단 “빈손” 귀국 언저리 일본의 대규모 방북사절단이 16일 돌아왔다.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의 「방북외교」에 비판의 소리가 높다.방북사절단은 김일성의 화려한 생일축하행사에 묻혀 가시적인 외교성과도 없이 돌아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방북사절단은 국회의원 29명(자민당 16명,사회당 13명)을 포함,1백40여명의 대규모였다.방북사절단은 떠날때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일본 언론들은 정치개혁,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 등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논의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대규모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자민당 내에서도 개인의 생일축하를 위해 국회의원단을 파견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비판의 소리가 많았다.일본의 유력주간지 주간문춘 최신호는 김일성생일에 대규모 국회의원단을 파견한 것은 「세계적 코미디」라고 혹평했다. 일본대표단은 당초 기대했던 정치회담을 갖지 못했다.자민당과 사회당 대표단은 김일성과 김정일과의 회담을 희망했으나 형식적인 인사정도로 끝났다.사회당은 특히 김일성과의 인사도 자민당보다 늦게 함으로써 「홀대」를 받은 꼴이 되었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지적한다. 사회당의 다나베(전변)위원장은 김용순로동당서기에게도 수모를 당했다.다나베위원장은 지난13일 김서기와의 회담을 위해 호텔로비에서 밤11시까지 기다렸으나 김이 나타나지 않아 회담이 16일로 연기되었다. 정치평론가들은 그러나 일본 방문단이 김정일과 만난 것은 하나의 의미있는 성과라고 평가하기도 한다.김정일이 공식석상에서 일본정치인과 대화를 나눈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하지만 형식적인 인사에 불과했다.더욱이 다나베위원장은 『김주석의 위업을 계승하여 국가발전의 착실한 진전을 희망한다』고 말해 김정일에 대한 지나친 「아부」라는 비판이 높다.다나베위원장을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은 김정일과의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본대표단 방북의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는 일­북한국교정상화회담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이번 방문이 국교정상화 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미지수다.
  • “정말 어려운 일 해냈다”… 감격의 악수·환호

    ◎서울 총리회담 마지막날 표정/“우린 서로 궁합이 잘맞는 모양”/정 총리/“이처럼 역사적인 서명은 처음”/연 총리/북 기자,“「장군의 아들」 주인공이 김정일이냐” ▷서명식◁ ○…정원식국무총리와 연형묵북한정무원총리는 13일 상오9시 역사적인 남북합의서 서명을 위해 서울쉐라톤 워커힐호텔 컨벤션센터무궁화홀에 마련된 회담장에 입장. ○기자와 가벼운 조크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송한호통일원차관등과 함께 비교적 차분한 표정으로 회담장에 들어선 정총리는 북측기자들에게 먼저 『다들 표정이 밝아 보이는군요』라며 인사를 건넨다음 우리측 기자들에게도 『수고많으셨습니다』라고 격려. 연총리는 백남준조평통서기국장·김광진인민무력부,부부장등과 함께 입장했으며 정총리가 『잘주무셨습니까.표정이 밝군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예,어제 약속한대로 초저녁부터 잘 잤습니다』라고 화답. ▷합의서 채택◁ ○…상오9시 정각에 개최된 본회의에서 북측 백남준대표와 우리측 송한호대표는 전날 실무대표접촉에서 타결한 합의서를 감격한듯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각각 낭독,보고함으로써 합의내용을 공식화. 쌍방 대표의 보고가 끝난 뒤 사회를 맡은 정총리는 북한측에 『어떻습니까』라고 물었고 연총리가 이에 『이의 없습니다.좋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정총리는 『그러면 합의서는 채택되었습니다』라고 상오9시30분쯤 공식 선언. ○6차회담 일정 이견 ○…이어 쌍방은 6차 평양회담 개최 날짜를 놓고 협의를 시작했으나 상호 입장이 엇갈려 30여분동안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계속. 이날 진통은 전날 밤 실무대표접촉에서 우리측이 내년 1월중 6차회담 개회를 제의,북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았으나 연총리가 2월21일 개최를 주장하는 바람에 비롯. 우리측은 1월말 또는 2월초 개최를 주장했으나 북측은 2월 중순이후를 고집해 결국 북측안에 가까운 2월18일 개최로 결정. ○…정총리는 이어 10시20분쯤 『합의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업인만큼 일단 서명합시다』라고 제의했으며 연총리가 『이처럼 역사적인 사인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하자 『우리의 궁합이 잘 맞아서 된것 같다』고 대답. ○일제히 일어서 박수 이어 쌍방 총리는 각각 만년필로 2부의 합의서에 역사적인 서명을 한뒤 1부씩 교환하면서 굳게 악수를 하자 쌍방 대표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서 환영. 정총리가 『참 어려운 일을 했다』며 『다함께 악수하자』고 제의하자 쌍방 대표는 전원 악수를 교환했으며 역사적인 장면을 다시한번 담기를 희망하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합의서를 멋쩍은 표정으로 한번 더 교환. 이어 쌍방 총리의 폐회발언을 한뒤 상오10시40분쯤 5차회담은 종료. 양총리는 이어 10시50분쯤 나란이 대기실 밖으로 나가 호텔앞에 대기하고 있는 승용차에 같이 탑승,청와대로 직행했는데 정총리는 뒷좌석 오른쪽의 상석을 연총리에게 양보. ○…대표단이 청와대를 예방하는 사이 북측기자단은 쉐라톤 워커힐호텔내 가야금홀에서 「장군의 아들Ⅱ」를 관람했는데 일부 북측기자들은 『장군의 아들이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아들인 김정일동지에 관한 영화냐』며 관심을 표명. 북측기자들은 그러나 우리측 관계자들이 『일제하에 만주등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김좌진장군의 아들 김두한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다』라는 설명에 다소 실망하는 눈치. ○「안기부장 독대」 부인 ▷기자회견◁ 우리측 대표단의 이동복대변인은 이날 하오 이번 고위급회담을 마무리 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회담의 성과및 앞으로의 전망등에 대한 우리측 입장을 상세히 설명. 이대변인은 먼저 이날 본 회의가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것과 관련,『6차회담 날짜를 잡는데 남북양측간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우리측은 합의서의 발효일을 앞당기기 위해 내년1월안에 6차회담을 갖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이 1월중에는 내부적으로 바쁘고 2월16일에는 김정일생일이 있고 해서 2월하순경에 열자고 주장해 진통을 겪었다』고 소개. 이대변인은 이어 연형묵 북한총리가 우리측 서동권안기부장을 독대했다는 일부보도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기도. ○호텔관계자와 작별 ▷호텔→판문점◁ ○…연총리를 비롯,3박4일의 일정을 모두 마친 북측대표단 90명은 이날 하오3시 판문점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들을배웅하기 위해 호텔로비에 도열한 호텔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작별 인사. ○“정 총리 고생 많았다” ▷판문점◁ ○…북측대표단의 수행원과 기자들은 우리측지역 평화의 집을 도보로 출발,중감위 회의실을 거쳐 조평통소속 「여성일꾼」들의 환영을 받으며 10여분만인 하오4시52분 입북을 완료. 이들은 『오늘은 매우 기쁜날』이라며 자신들을 배웅나온 우리측 안내원들과 악수하고 더러는 포옹하며 아쉬움속에 작별. 한 판문점 북측요원은 『통일각에는 조평통의 전금철부위원장이 영접나와 있다』며 『연총리는 평양까지 열차편을 이용할 것』이라고 귀띔. ○…대표단이 잠시 휴식을 취하며 환담하는 동안 자신을 조평통간부라고 소개한 북측의 한 수행원은 『회담이 잘되고 합의서가 채택돼 평양에 돌아가는 체면이 서게됐다』고 말문을 연뒤 『연총리의 공이 컸지만 정원식총리선생도 수고가 많았다』고 추켜세워 회담성과에 만족하는 북측 분위기를 반영. ○…북측 대표단은 이날 4시40분쯤 남측지역인 평화의 집에 도착,배웅나온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등 6명의 남측 대표들과 10여분간 환담. 연총리는 떠날 시간이 돼 『각자 가자니 섭섭하구만』이라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남측대표 2∼3명이 동시에 『도로 서울로 가시죠』라고 했으며 이에 북측 백남준 대표는 『잡으려면 서울서 남으라고 해야지…』라고 응답.
  • 치기 가득찬 김정일/82년 평양 「국제클럽」 근무 일 여성 폭로

    ◎손에 담배·술잔 들고 “밥먹여 달라” 추태/파티 끝나면 1백달러짜리로 팁뿌려/“1억엔·벤츠 줄테니 평양 살라” 유혹도 지난 82년 북한이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만든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 국제클럽의 개점에 참여했던 요시무라 게이코(35·가명)라는 일본 여인이 6일 발매된 주간문춘에 평양에서의 체험을 수기로 기고했다. 김정일의 파티에서 그를 직접 접대하기도 했던 이 여인은 수기에서 김정일은 자신을 마마상이라고 부르며 음식을 떠먹여줄 것을 요구하는 등 철부지 같은 추태를 보이기도 했으며 국제클럽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거의 없어 일본·태국인 등 여고용원들은 사실상 김정일을 위한 국제호스티스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의 수기 중 김정일이 주최했던 파티장면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82년 9월 평양에 도착한 후 김정일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평양 남서쪽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열린 심야파티에서였다. 그 이후 평양의 김정일 저택 등 여러 파티에 초대를 받았으며 그때마다 김의 바로 곁에서 그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파티에 나오는 술은 주로 중국의 마호타이인 경우가 많았으며 파티는 중국식·일식·프랑스식 등 다양했다. 그런데 한 번은 김정일이 한 손엔 담배,다른 손엔 술잔을 들고 나에게 음식을 떠먹여 달라고 요구했다. 주위의 권고에 못 이겨 음식을 떠 입으로 가져가니 서슴없이 받아 먹으며 좋아했다. 그는 이때 나를 마마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정일은 또 담뱃재를 재떨이에 떠는 법이 없었다. 담뱃재가 흰 시트 위에 떨어지면 진공청소기를 든 여자가 항상 김정일 뒤를 따라다니며 이를 청소했다. 김정일은 60명 이상의 고위급 인사가 참석한 한 파티에선 교향악을 직접 지휘하는 치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가 지휘자 옆에서 맨손으로 지휘를 시작하자 지휘봉을 그에게 넘겨주고 황공한 태도로 그의 지휘모습을 지켜보았으며 지휘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김정일은 파티가 끝나면 수고했다며 언제나 빳빳한 1백달러짜리 지폐로 팁을 주곤 했다. 1개월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나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20여 일 만에 또다시 초청을 받고 평양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김정일이 직접 초청하는 것이라고 해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이때의 조건은 월 50만엔에 준비금 20만엔이었다. 두 번째로 평양에 도착한 나는 김정일의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훌륭한 유럽식 정원이 딸린 저택에는 대낮부터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다. 3시간 정도 기다리니 이제 막 잠자리에서 깨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의 김정일이 나와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정일의 오른 쪽에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왼쪽에는 내가 앉았다. 오른손을 젊은 여자의 무릎 위에 얹어놓고 있던 김정일이 왼손을 내 무릎 위로 뻗쳐왔다. 내가 손으로 저지하자 그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호텔로비에 걸려 있는 대형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그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1억엔에 집과 벤츠를 줄테니 여기서 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조국에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며 거절했는데 이날의 파티는 김정일이 술에 취해 의자 밑으로 넘어지면서 황급히 끝났다. 요시무라씨는 한편 이 수기에서 몇 명의 태국여성들이 일본에 직장을 알선해주겠다는 미끼에 걸려 평양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쓰고 있다.
  • 남북축구 서울경기 열리던 날

    ◎만찬에 남 선수단 제외… 체육회 못난 발상/30분 전까지 관중 안차자 “통일열기 부족”/남북 기자들,숙소ㆍ가정 방문… 밤새 못다한 얘기 나눠 ○선수들 손잡고 트랙에 ○…개회식이 열리기 1시간여 전 북한선수들은 본부석쪽 스탠드에서 트랙으로 내려오며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 이때 본부석 서쪽 전광판에는 「환영 남북축구대회 북측 선수단」이라고 쓴 큰 글씨 아래에 「북측 선수단 여러분의 서울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작은 글씨가 새겨졌다. ○…붉은색 유니폼의 우리측 선수와 흰색 유니폼을 입은 북측 선수들은 하오 2시48분 서로 손을 잡고 트랙에 모습을 나타냈다. 남북 선수들이 2열로 손을 잡고 들어오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자 8만여 관중들은 박수를 치며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이날 경기장에 나온 북측 선수단 임원들과 기자들은 경기시작 30분 전인 하오 2시30분까지도 잠실구장이 관중들로 채워지지 않자 『남측 인민들의 통일열기가 부족한 게 아니냐』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 중앙방송 김남수 기자는『평양에서 1차경기가 열렸을 때는 3시간 전에 15만 관중석이 꽉 메워졌는데 이곳에서는 겨우 반절정도 찬 것 같다』며 『기대했던 만큼 관중들의 성의가 보이지 않아 실망했다』고 말하기도. ○“통일위한 축제되기를” ○…정동성 체육부 장관은 이날 경기에 앞서 행한 환영사에서 『오늘은 7천만 겨레의 뜻깊고 역사적인 날』이라며 『통일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잠실벌을 힘차게 달려달라』고 당부했다.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답사에서 『우리는 모두 보고싶고 그리워하던 한 동포들로 일일이 손을 잡고싶은 심정을 억제할 수 없다』고 말한 뒤 『이번 통일축구가 통일위업 수행에 적극 이바지하는 축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북측 선수단과 기자단은 이날 저녁 7시 잠실 롯데월드 3층 그랜드 볼룸에서 김종렬 대한체육회장이 베푼 만찬에 참석. 김종렬 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오늘 경기에서 양팀이 서로 승부에 관계없이 잘싸워 남북 국민들을 모두 기쁘게 해줬다』고 말했다. 답사에 나선 김유순 북측 단장은 『북남 체육인들이 북에 살건 남에 살건 모두 민족의 일을 우선하는 애국적인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면서 『북남 유일팀을 탄생시켜 국제무대에서 우리 민족의 용맹과 슬기를 과시하고 통일의 전기를 마련하자』고 호소. ○연회장 문밖서 쫓겨나 ○…대한체육회의 어처구니 없는 발상으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끝난 23일 밤 남북연회의 주빈이 되었어야 할 축구 남녀대표선수들이 연회장 문밖에서 쫓겨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날 하오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북한선수들과 화합의 축구잔치를 벌여 전 국민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던 한국 남자축구대표 20명과 여자대표 18명 등 38명의 남녀대표선수들은 박종환ㆍ박경화 등 남녀대표팀 코칭스태프와 함께 숙소인 올림픽유스호스텔을 출발,대한체육회 김종렬 회장이 주최하는 롯데월드 3층 만찬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주최측은 처음부터 한국축구대표선수단은 초청대상이 아니라고 입장을 사절,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곤혹스런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자선수들은 너무나 예상치 못했던 사태에 어이가 없는 듯 『선생님,창피합니다. 빨리 나갑시다』고 발걸음을 재촉했으며 파트너격인 북측 대표선수들도 영문도 모른 채 테이블 옆자리에 앉은 초청자들에게 『남측 축구선수들은 왜 안 오느냐』고 묻기도 했다. 체육부 공보처 등에서 배포한 남북통일축구대회 세부일정에는 23일 경기직후 숙소 도착,숙소 출발,롯데월드 3층 크리스탈볼룸 대한체육회장 만찬회 참석으로만 되었을 뿐 관계자들이 남북대표 선수들의 연회참석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술마시며 모처럼 흉금 터 ○…통일축구를 취재하는 남과 북의 기자들이 23일 밤 가정과 호텔에서 함께 만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얘기꽃을 피웠다. 그동안 운동장과 관광장소 호텔로비 등에서만 만나 얘기를 했던 남과 북의 기자들은 이날 북한선수들이 머물고 있는 워커힐호텔 16층에 올라가 그동안 만나고 싶던 기자들의 방을 드나들며 격의없는 환담을 나눴다. 북측 기자들은 오랜만에 남측기자들과 술잔을 같이 들며 그동안 하지 못한 개인적인 얘기와 회사ㆍ정치이야기 등으로 밤가는 줄을 몰랐다. 또 북한 중앙통신의김광일 부처장 등 일부 기자들은 남측 기자들의 가정을 방문하기도 했다.
  • “공해없는 거리”… 중국의 자전거 행렬(서울시론)

    ◎출퇴근때 장관… 또다른 삶의 생동감 자가용에 사람 많이 들어가기 경연을 했는데 28명이나 탔다고 합니다. 중국을 말하자면서 무슨 이야기냐 하시겠지만 결코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백두산 천지행을 위하여 중국을 여행하면서 누구나 하룻밤은 머물게 되는 상해의 하룻밤은,이조 17대 임금 인조의 둘째 아드님 효종이 8년간 볼모로 가있던 심양으로 다음날 여행일정이 잡혀 있다는 안내인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마음을 상심과 불면으로 쓸쓸히 해 주기에 넉넉했습니다. 중국기행이 가히 시론이 될 만큼 중국의 호텔로비나 엘리베이터나 관광지에는 한국사람과 한국어만 판을 치고 있으니 삼태기로 쏟아 붓듯이 중국으로 한국의 금쪽같은 외화가 유입되는 것이 정녕 눈에 보였습니다. 국가정책을 담당한 분들은 어떤 기상천외의 복안이 있으시기에 이러한 사태를 관망만 하시는지,아니 심지어는 정부예산으로 숱한 사람들을 중국에 보내기까지 하시는지,더욱이 90년 북경아시아올림픽에 우리가 가져다 퍼부을 외화를 생각하면서 나는 중국을 여행하고 있는나 자신에 대해서까지 끈끈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다 우리는 이산 40년을 만들어 놓은 전쟁가해국인 중국의 음흉한 속셈에 이렇게 놀아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민간차원의 개방을 가장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외화를 쓸어 모으고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공룡이 낮잠 자는 시늉을 하면서 작은 생명체들로부터 생존의 기력을 흡수해 들이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고성능 흡입기로 우리의 재화를 빨아들이고 있는 곳에 우리가 무방비의 자세로 자진해 다가서고 있으니,옛날 효종의 볼모는 강요받은 볼모였지만 오늘 우리의 무절제한 중국행은 자기선택의 정신적인 볼모됨이 아니겠습니까. 알루미늄 새시로 테를 두른 통유리창 하나 볼 수 없는 상해에서 제일 고급에 속하는 곳이 홍교호텔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티스푼은 갈신스런 양은 조각이었고 음식그릇이나 커피잔은 이빠지고 금가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부산대학교 C교수는 쇼핑 할 때에 거스름 돈을 덜 받았고,나는 시종일관 그들을 의심하며 끝까지 사기 안 당하려고 조심했는 데도 드디어 눈속임에 넘어가 역시 손해를 보았고,연세대의 N교수는 환금 후 돈을 세어보니 부족하여 따졌는데 마치 준비나 하고 있었듯이 『죄송합니다』하며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내 주더라는 것입니다. 무서운 사람들의 무서운 나라입니다. 「민간 차원의 개방 및 여행 자유화」라는 슬로건으로 민주화의 냄새를 풍기면서 실은 여행객의 돈주머니 달러화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집단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이 친근해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땅도 아닌 중국땅을 마치 북한으로 착각하고 우리 남한인들이 외화를 생각없이 마구 씁니다. 봉황호텔은 심양에서 최고라고 하지만 치약에서는 6ㆍ25 직후에 우리가 쓰던 박하와 석회 냄새와 떫은 풋딸기 맛이 나서 나는 미리 준비해 간 한국산 치약을 썼습니다. 수건은 얇고 갈신스럽고 전날 묵은 손님의 땀냄새가 밴 채 다시 접어만 놓았으니,그곳의 실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중국약과 비단과 발모제를 사라고 충동 구매욕을 부채질하던 상해의 한족여인가이드와는 달리 심양의 조선족 여인 가이드는 유창한 모국어로 우리의 감동을 불러 일으키며 조선 여인의 슬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풍 곽씨 곽태순이구요,저의 남편은 김수영입니다. 남편은 정부 기관에서 일합니다. 이곳 여성들은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남성,남편을 좋아합니다. 저의 조선어가 부족하더라도 여러분은 교수님들이시니까 제자나 후배로 여기시고 잘 배워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아버님이 일제 때 이곳으로 오셨기 때문에 저는 심양에서 태어나 심양에서 자라났습니다. 여기서는 목수나 기술자나 운전수들이 벌이가 좋습니다. 선생질 하는 교수는 월급이 눅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돈은 적게 벌어도 모든 인민들이 교수를 존경합니다. 기술이 제일 높은 사람을 일류 공정사라고 부르는데 교수님은 바로 일류 공정사입니다.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누구든 대학을 필업해야 좋은 직업을 얻습니다. 고등학교를 필업하면 70%가 대학을 가는데 그중에서 조선족이 제일 많습니다. 우리 요령성 인민은 3천6백만명이고 심양 교구민은 5백70만명입니다. 소수민족이 40만명인데 그중에서 조선족이 9만명입니다. 조선족은 농사를 잘 지어 개인기업을 합니다. 정부가 농민에게서 벼 5백g을 20원 주고 사서 가공해 입쌀 5백g을 18원60전에 배급합니다. 그러나 야미로는 입쌀이 80원입니다. 농작물을 내다 파는 것은 큰 개인 기업입니다. 조선족은 부지런하기 때문에 입쌀을 배급받고 게으른 사람은 옥수수 가루를 배급 받습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백성입니다. 7군부 지도자 중에서 한명 꼴이 조선족입니다』 이렇게 가이드하는 조선족의 딸은 모국어로 일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만난 조선족의 딸 가이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부디 서울에서 한국어 문학과를 필업할 수 있도록 입학허가를 구해 주세요. 북경대학교 조선어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 저의 인생 목표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조선의 딸은 미래 첨단사회의 좌표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이 아닌 중국에서 조선의 딸이 말입니다. 그러나 야바위꾼들이 설치는 나라 중국을 여행한 후,그래도 내가 다녀오기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도시의 장관을 보고 깨달은 감동 때문입니다. 출퇴근 시간에 볼 수 있는 자건거의 행렬과 무궤도 전기버스는 12억 인민이 사는 중국을 거의 공해 없는 나라로 유지해 주고 있었습니다. 중국에 다녀온 후 요즘 나는 갈등하고 있습니다. 나도 자전거를 탈까? 나부터 자가용을 없앨까? 한사람 출퇴근하자고 구르는 저마다의 차들이 서울거리를 메우고 있으니 서울의 공해를 어찌하나. 자가용을 타면 지각하고 자전거를 타면 지각을 안할 만큼 극심한 서울의 교통지옥을 어떻게 치유한단 말인가. 이 노릇을 어찌하나. 사람 28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가용을 내몸 하나 태우고 끌고 다니다니. 그래서 요즘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환상의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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