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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기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 /비채

    이 책의 제목에 얽힌 사연이 재미있다. 작가가 고백한 출판사 편집자와의 대화 내용이다.“나 말이오, 얼마 전 조간신문에서 고은 시인의 짧은 시 한 편을 읽고는 울컥해서 하루 종일 서성거렸다오.‘그 꽃’이라는 짧은 시였는데, 그런 절창 앞에서 나의 산문집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어 하루 종일 우울했다오.” 이렇게 해서 ‘내려올 때 보았네’라는 제목이 붙게 됐는데, 작가는 이렇게 부연했다.“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올 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고백하거니와 나는 아직 난망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가. 모름지기 산문은 다른 창작과 달라 진정의 토대에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가이자 신화연구가인 이윤기 순천향대 명예교수가 신작 산문집 ‘내려올 때 보았네’(도서출판 비채)를 냈다. 산문집에는 인문의 향기, 사람의 향기가 그윽한 69편의 글이 실렸다. 신화와 환경, 역사를 넘나드는 글들이다. 70년대 초 월남에 파병된 그는 나중에 당시 주둔지였던 다농 강가를 찾아 겪은 아픔을 이렇게 전한다.‘강변은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다. 그 희고 곱던 모래와 해초는 시커멓게 뒤엉킨 채 썩어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통일베트남 당국은 한국인(아마도 한국군을 말하는 듯)이 수천 수만 드럼의 배설물을 묻고, 수천 수만 드럼의 경유를 부어 오염시킨 그 해변의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일대를 공장지대로 조성했는데, 이 공장지대가 주변 환경오염을 치명적으로 가속시켰다고 한다.’면서 ‘다농 강가에서 많이 울고, 많이 마시고 돌아왔다.’고 적는다. 이런 술회가 어찌 감상일 뿐이겠는가. 이는 그가 한국인을 대신해 우리에게 까닭 없이 피해를 입은 그 땅과 그 사람들에게 보내는 참회 아니겠는가. 또 이런 글편은 글쓰는 이의 고뇌와 맞닿아 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산궁수진의무로(山窮水盡疑無路·산이 막히고 물이 다하여 길이 없을 줄 알았더니)라는 남송대의 시인 육유의 시구를 떠올린다는 그는 “(좌절감 때문에)나는 땅바닥에 엎어졌다가 그 땅바닥을 짚고 일어선다.”며 다음 구절을 소개한다.‘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버들 그윽하고 꽃 밝은 또 한 마을이 있네).’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만 불거지면 우리가 거칠게 쏟아내는 ‘일본놈’이라는 적대적 호칭에 대한 견해도 흥미롭다. 작가는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바, 나 자신도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는 2001년 아키히토 왕의 진술을 제시하며, 일본인들이 지금 애써 이런 역사를 감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면 그들의 역사적 과오가 크나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들을 ‘일본놈’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겠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일본인과 국가로서의 일본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책은 ‘진짜 공부’가 무엇인가를 논한 1부, 일본에 대한 생각을 피력한 2부, 베트남 이야기와 환경문제를 담은 3·4부와 명창들 앞에서 노래 부른 사연을 적은 5부 등으로 구성됐다.1만 2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단독]‘우리’ 상표권 싸움

    법원이 우리금융지주회사로 대표되는 ‘우리’라는 상표 사용권에 대해 다른 판결을 내렸다.‘우리’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있느냐의 판단은 다른 회사와 영업 유사성이 있느냐를 기준으로 삼았다. 특허법원 특허5부는 22일 우리기술투자㈜가 우리금융지주㈜를 상대로 “피고가 상표등록한 ‘우리캐피탈’은 원고의 상표와 유사해 등록 무효해야 한다.”면서 낸 등록 무효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우리기술투자와 우리캐피탈은 호칭면에서 앞 부분의 ‘우리’로 인해 일부 유사한 면이 있다.”면서 “또 두 지정서비스업은 모두 금융 관련업과 부수업무로 서로 동일·유사한 데다 관념면에서도 ‘기술투자’가 벤처캐피탈로 호칭되기도 해 동일·유사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어 “두 상표가 동일·유사하기 때문에 수요자나 거래자들에게 오인과 혼동을 줄 우려가 있다.”면서 뒤에 등록한 ‘우리캐피탈’에 대해 무효 판정했다. 하지만 같은 재판부는 우리기술투자가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인 ‘우리은행’과 ‘우리투자증권’의 상표에 대해 낸 등록무효 청구소송에선 “기술투자와 은행·투자증권의 관념이 서로 다르다.”면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래서 우리금융지주사는 법원의 판단에 따라 최근 한미캐피탈을 인수한 뒤 ‘우리캐피탈’이라는 상표를 사용하려던 방침을 바꿔 ‘우리파이낸셜’이라는 차선책을 택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지주 측은 “우리캐피탈이란 상호를 등록해 두고 실제로 사용하진 않았다.”면서 “최근 한미캐피탈을 인수해 이 상호를 사용하는 문제가 내부적으로 논의되긴 했지만 여러 요인들을 감안해 ‘우리파이낸셜’로 상호를 결정하고 26일 열릴 주주총회에서 의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금융지주의 주력사인 우리은행은 현재 신한·국민은행 등 시중은행 8개사가 낸 상표 등록 무효 청구소송에도 휘말려 있다. 지난 7월 특허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해둔 상태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이영하·선우은숙 부부 26년만에 이혼

    이영하·선우은숙 부부 26년만에 이혼

    연예계에 대표적인 잉꼬부부로 알려졌던 이영하(57)·선우은숙(48)씨 부부가 결혼 26년 만에 협의이혼했다. 최근 파경을 맞은 박철·옥소리 부부에 이어 또다시 전해진 연예계 잉꼬부부의 파경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씨는 이혼 사실이 외부에 알려진 21일 전화통화에서 “지난달 말 이혼서류를 접수해서 최근 마무리됐다.”면서 “서로 편하게 놓아주기로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단지 부부가 오래 살다보면 회의가 들기도 한다.”면서 “(협의이혼 뒤에도)변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주위에서는 몇 달 전부터 불화설과 별거설이 돌았으나 당사자들은 부인해 왔었다. 이씨는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어서 이혼을 결정한 게 아니라 그저 나이가 들다보면 서로에 대한 감정이 변하고, 그럴 바에야 서로를 편하게 놓아주자고 한 것”이라며 “얼마 전 서로에게 자유를 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들도 다 컸고 우리를 이해해준다.”면서 “헤어졌지만 군대에 간 둘째아들 면회를 같이 다녀온다.”고 덧붙였다.1970∼80년대 나란히 전성기를 구가하며 톱스타로 떠 오른 이영하·선우은숙씨 부부는 지난 1981년 결혼해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장남 이상원씨는 부모의 대를 이어 배우로 활동 중이다. 이영하·선우은숙씨 부부는 ‘젊은 느티나무’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만나 결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연예계 대표 잉꼬부부’라는 호칭을 들을 정도로 사이가 좋다는 말을 들었었다. 현재 이씨는 KBS 2TV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에, 선우씨는 MBC 일일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에 각각 출연하고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서울광장] 대통령 하겠다는 분들이…/ 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 하겠다는 분들이…/ 육철수 논설위원

    5년 전 서울시청에 출입할 때다.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이명박 당시 시장의 어릴 적 사연을 알고 목이 멘 기억이 있다. 기자로서 출입처 장(長)의 됨됨이를 파악할 필요가 있어 출입 첫날 그의 자서전을 구해 밤새워 읽었다. 그가 고교시절을 회상한 대목이었던 것 같다. 여동생과 자취할 때, 매달 양식이 모자라자 봉지 30개에 쌀을 나눠담아 하루하루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배고픈 삶을 근근이 이어가는 오누이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그만 눈물이 맺히고 말았다. 그런 연유로 치열하게 살아온 이 전 시장을 모질게 비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빼곡하게 담겨 있을 과거사가 자꾸 떠오른 탓이다. 이 후보는 지금 대통령을 향해 정신 없이 뛰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 가까이서 지켜보니 그도 특별한 게 없었다. 가끔 함께 식사하다 보면, 그도 국물 흘리고 밥풀 떨어뜨리면서 밥을 먹었다. 말실수가 잦아 거슬릴 때도 있었고. 그런 그가 청계천 복원 때 주변 상인들을 수천번 만나 설득하고, 기어이 성공시켜 놓은 걸 보면서 보통사람하고는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며칠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도 인간승리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형 넷을 전쟁통에 잃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으며, 시장에서 삯바느질한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대학을 나왔다. 유신을 반대하다가 강제징집을 당하는 등 힘겨운 시절이 있었다. 스타 앵커에서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한 이면에는 분명 이런 고난들이 밑거름이 됐을 것 같다. 민노당의 권영길 후보, 민주당 이인제 후보, 국중당 심대평 후보, 그리고 문국현·정근모·이수성·장성민씨 등 대통령이 되겠다고 바삐 움직이는 인물들도 직·간접적으로 평판을 듣고 있다. 다들 나름대로 열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누려온 분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살고 점잖은 양반들이 대권 욕심에 상식 이하의 언동을 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상대의 업적 폄하와 인신공격 발언이 지나쳐서 하는 얘기다. 공개 연설에서조차 상대 후보에 대한 호칭이 이따금 무례한 경우가 있다. 이름 석자 뒤에 ‘후보’라는 말을 붙이면 어디가 덧나나. 열세 후보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나, 그래도 기본예의를 갖추는 게 상호존중의 출발점이다. 후보중 한 명에겐 머잖아 ‘대통령’이란 묵직한 직책이 따라붙는다. 서로 옆집 강아지 대하듯 함부로 부를 이름이 아니다. 영영 안 볼 것처럼 남의 공약을 헐뜯고, 여전히 지역가르기나 하는 행태도 역겹다. 후보별 공약 평가는 국민에게 넘기고 당사자들은 자신의 정책만 잘 챙기면 될 일이다. 박터지게 지지고 볶아도 끝나고 화해하면 된다고? 하지만 말이 쉽지 악감정을 걷어내기가 어디 쉬운가. 의혹이 있으면 확실한 근거로 공격하는 게 정도다. 과잉충성 국회의원들이 국감을 파행시키는데, 이들을 절제시키는 일도 결국 후보의 몫이고 책임이다. 대통령이란 하늘(민심)이 내리는 자리다. 앞으로 5년동안 대한민국을 빛낼 대표 브랜드이자 대표 상품이다. 품격이 변변치 않아도 중책과 국민 지지도, 언론으로 적당히 포장하면 카리스마가 절로 생길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선거과정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대통령은 제대로 건사하기 어려울뿐더러, 세계무대에 내놓기도 머쓱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은 국가의 핵심 지도자다. 나중에 어느 분처럼 “대통령으로서 말과 자세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한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데스크시각] 지자체 의정비 현실화와 전제조건/ 노주석 지방자치부 부장급

    얼마전 살고 있는 동네의 의정비 심의위원에 위촉됐다. 구(區) 의원들이 내년도에 받을 보수를 이달말까지 결정하는 임무이다. 지역발전을 위해 작지만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선뜻 응했다. 하지만 회의가 거듭될수록 섣불리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위원들도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이미 몇몇 자치단체가 의정비를 최고 두 배까지 현실화하기로 결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끝이어서 몸조심을 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의정비 심의위원들이 ‘대략난감’한 처지에 놓인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유급제가 첫 시행된 지난해 너무 낮게 ‘급조’된 의정비를 적정수준으로 현실화해줄 것을 요구하는 지방의원들의 높은 기대치에 비추어 지역사회는 이를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때문이다. 합리적인 의정비를 정하기 위한 적절한 산정기준이 없다는 점과 지방의회와 지방의원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부족 및 ‘비호감’에서 기인하는 요인도 있는 듯하다. 산정기준의 부재는 해답이 없는 수학문제를 풀라는 격이다. 그나마 있는 몇가지 기준도 모호하고 주관적인 근거들뿐이다. 의정비중 문제가 되는 부분은 월정수당이다. 월정수당은 지역주민의 소득수준, 지방공무원의 보수인상률과 물가상승률, 의회의 활동실적과 자치단체의 재정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토록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난해 3804만원을 받은 서울 서대문구 의원들에 반해 충북 증평군 의원들은 절반수준인 1920만원을 받았다. 또 지난해 서울시 25개 자치구 의원의 월 평균 수령액은 276만원으로 계약직 환경미화원의 최고액 405만원에 한참 못 미쳤다. 오죽했으면 전국시군구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차라리 정부가 나서서 광역, 기초의원별로 월정수당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달라고 했을까. 지방자치법과 지방공무원법이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바람에 원칙에도 없는 보수(報酬)가 결정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보수산정 때 공휴일을 공제하지 않는 공무원과 달리 의정비를 회의출석의 대가인 것처럼 잘못 계산하는 등 의정비 결정이 보수결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대해 의회에 거의 상근하다시피 하는데 회의일수 80일을 근거로 보수를 결정하는 것이 웬말이냐고 의원들은 항변한다. 지방의원은 선거에 의해 뽑힌 정무직공무원이기 때문에 공무원에 준한 보수체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방자치 전문가도 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지방의회와 지방의원에 대한 여전한 이해부족과 비호감은 의정비 현실화를 저항에 부딪히게 하는 요인이다. 서로를 ‘의원님’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호칭하는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일부 의원들의 ‘방각하식’ 권위주의와 비전문성이 낳은 자업자득의 산물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능한 지역인재의 수혈이나 주민자치 시스템의 업그레이드를 바라는 주민들이 정작 필요한 ‘총탄’지원에는 인색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배경에는 지방자치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불신이 도사리고 있다. 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자체 정화와 자기엄격성이 절실한 대목이다. 무엇보다 지역사회와 주민들은 유급제가 시행된 이후 지방의회와 지방의원의 질적인 변화를 별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설령 의정비 현실화에 동의하더라도 윤리조례 제정과 외부인사가 포함된 윤리위원회 운영, 보다 엄격한 겸직금지제도의 도입, 상근 의무화, 의원 개개인의 의정활동평가제도 도입 등을 전제조건으로 내놓는 까닭이다. 노주석 지방자치부 부장급 joo@seoul.co.kr
  • ‘그림 되는’ 강동원 주연 영화 ‘M’의 이명세 감독

    ‘그림 되는’ 강동원 주연 영화 ‘M’의 이명세 감독

    “21세기의 신인감독.” 이명세 감독은 스스로를 이렇게 불렀다.“모든 장르가 다 진화하는데 영화만 제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내 영화도 진화하는 중”이라는 그의 말이 마치 무슨 선언처럼 들린다. 2년 전 파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던 ‘형사’로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또 한번 강동원과 손잡고 한번 더 밀어붙인 신작 ‘M’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예감이 좋다. ‘덜 시적으로, 더 구체적으로(less poetic,more specific)’. 영화에서 소설가인 주인공 민우가 받는 주문은 원래 여성작가 아나이스 닌이 받던 스트레스였다. 그녀는 ‘더 시적으로’ 글을 썼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이 감독은 설명했다. 아나이스처럼 그는 타협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반응이 남달랐다. 기분이 어떤가. “글쎄….‘형사’ 때는 반응이 홍해가 갈라지듯 갈라졌다. 일단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다. 늘 그렇듯 (관객들에게)연애편지를 보내 놓고 기다리는 심정이다. ▶첫사랑 이야기에 미스터리를 입히니 새로운 느낌이다. “주인공의 혼돈을 관객들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하나씩 풀어 나갔으면 한다. 멜로 영화가 넘쳐나는데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보면 되겠다.” ▶M은 언제 구상했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잘돼 미국에 영화 찍으러 갔는데 액션 하라더라. 이건 아니다 싶어서 공포를 해보자 했다. 흔한 공포가 아닌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공포를 보여 주고자 머릿속에 그렸던 것이 ‘M’의 출발이었다. 그 때 제목은 트루먼 카포티의 단편 주인공 이름인 ‘미리엄’이었다. ▶M은 무슨 뜻인가. “자료에 나와 있듯 미스터리, 미스티(안개), 주인공 이름 민우, 미미 등 여러가지 뜻이 다 있다. 혼돈 끝에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 영화에 도움이 되면 영어든, 한글이든 다 갖다 붙인다. 하하.” ▶서사의 빈약함을 이미지 과잉으로 채운다는 평가에 대해서는.(그는 이 부분에서 가장 긴 대답을 내놓았다.) “영화의 기본은 비주얼이다. 무성영화 시대가 끝나고 영화에 문학이 들어오면서 텍스트가 모든 걸 다 덮어 버렸다. 사진작가가 사진으로 승부하듯 감독에게 비주얼은 기본 언어다. 브레송의 사진전에 가서 왜 사진만 있냐고 따지나? 피카소, 마티스에게 왜 그렇게 그렸냐고 비난하나? 피카소가 살아 있다면 묻고 싶다. 당신도 이런 질문을 받았느냐고. 결국 살아 남은 것은 피카소이고 마티스다.” ▶영화에 나오는 ‘루팡 바’는 신출귀몰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인가. “일본 긴자에 실제로 있는 가게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가 즐겨 찾는 곳이다. 내 기억에 그곳에는 보라색 벨벳 소파와 벽에 액자가 가득했다.‘형사’ 일본 프로모션 때 두 번째 찾았는데 가게가 그냥 휑했다. 분명 있었는데 말이지.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불투명한 거다. 이 때 받은 느낌도 ‘M’의 영감이 됐다.” ▶강동원과 정신적 유전자가 같다고 했는데. “처음 봤는데도 바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이 친구가 그랬다.(이명세 감독은 친한 사람들에게 ‘형’이란 호칭을 붙인다. 당연히 강동원은 “동원이형”이고 맞담배 피우는 사이라고 옆에 앉은 오수미 프로듀서가 농담처럼 덧붙인다.) ▶데뷔 20년이다. 젊은 사람들과 이렇게 격의 없이 어울리는게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인가. “영화는 ‘젊고(young) 영원(永)해야 한다.’는 게 대학 시절 때 갖게 된 신조다. 권위는 위험하다. 딱딱하니까. 딱딱하면 죽는 거다.” ▶비주얼을 강조하니 어떤 각도에서도 그림이 되는 강동원을 좋아하는 것 아닌가. “연기자에게 이미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가게에서 한 제품만 팔아서는 경쟁력이 없듯 배우도 골고루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많은 제품이 있어야 한다. 동원인 그걸 가졌고 확실한 브랜드가 될 자질이 있는 친구다. 그래서 동업하는 거다.” ▶정훈희의 ‘안개’가 이토록 분위기 있는 노래인지 처음 알았다. “노래방에 가서 우연히 한 스태프가 노래를 불렀는데 공교롭게 가사가 영화 내용에 딱 들어 맞았다. 처음엔 옛날 노래라는 선입견 때문에 반대도 있었다.” ▶민우의 집이 굉장히 럭셔리하다. “그렇게 보였다니 다행이다. 거울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샹들리에 하나 없이도 빛이 나고 공간이 넓어지고 깊어졌다. 외국 사람들도 한국에도 그런 펜트하우스가 있었냐고 묻더라. 영화 속 펜트하우스를 짓는데 딱 2000만원 들었다. 보통 이런 거 지으려면 2억∼3억원은 각오해야 한다.” ▶이번에 ‘빛나는 어둠’을 추적했다. 다음에는 무엇을 좇을 계획인가. “화면의 쾌감이다. 액션 장르고 시대극이 될 것이다. 아직 시나리오 한 줄 쓰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촬영할 거다.‘본 얼티메이텀’이 무지 빠르다는데 그 이상 달려야겠지.”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女談餘談] 그녀들의 귀환/이순녀 국제부 기자

    독립영웅의 딸로 태어났다. 두살때 국부로 추앙받던 아버지를 정적의 손에 잃었다. 열여섯살에 인도로 떠난 뒤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정치와 경제, 철학을 공부하며 학자의 길에 몰두했다. 그러나 1988년 잠시 들른 고국땅에서 군부가 시위대에게 무차별적으로 발포를 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명망있는 총리의 딸로 태어났다. 스물여섯살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부친이 처형되자 부친이 창당한 정당의 중앙위원이 되어 반정부 운동에 앞장섰다. 두 차례 총리로 재임하며 이슬람국가 최초의 여성지도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미얀마(버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와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지도자인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나이는 수치 여사가 62세로 부토 전 총리보다 여덟살 많지만 둘 다 부친의 정치적 영향력을 물려받았다는 점, 외국 유학파 출신이라는 점, 군부정권에 맞서는 정당의 지도자라는 점 등이 판박이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부토 전 총리는 2005년 여성세계상을 받았다. 오랫동안 정치적 자유를 잃고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도 비슷하다. 수치 여사는 1989년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인 가택연금에 시달리고 있다. 부토 전 총리는 페르베스 무샤라프 현 대통령이 무혈쿠데타에 성공한 98년 런던으로 망명해 10년 가까이 외지에서 머물고 있다.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군부정권에 의해 수족이 묶이고, 언로가 막혔던 그녀들이 다시 국제사회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수치 여사는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민주화시위에서 변함없는 영향력을 드러냈다. 유엔 특사가 수치 여사를 면담하는 등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미얀마 군부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대화를 제의하며 유화책을 펴고 있다. 부토 전 총리도 장기집권을 노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의 권력분점 제안에 따라 오는 18일 망명생활을 접고 귀국할 예정이다. 그녀들의 귀환이 폭력과 독재로 얼룩진 두 나라에 평화와 민주주의의 새 기운을 불어넣길 기대한다. 이순녀 국제부 기자 coral@seoul.co.kr
  • 성북 30→20개, 중랑 20→16개 洞으로

    자치구의 동(洞)구조조정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9일 성북구와 중랑구에 따르면 동 구조조정안이 최종 확정되거나 윤곽을 잡았다. 성북구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10개 동을 줄이는 동 통폐합안이 포함된 ‘동사무소명칭 등에 관한 조례 개정조례’가 성북구의회 본회의에서 표결처리, 가결됐다고 밝혔다.30개 동으로 전국 기초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동을 보유,30여년간 통폐합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었다. 동 통폐합안이 구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후속 절차로 각종 공부정리, 통합청사 리모델링 등을 올해 안으로 모두 마치고, 내년 1월 새로운 행정조직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또 남는 인력 재배치 등 구청조직도 일부 개편한다. 감사부서 재편, 도시자인과 신설 등을 검토 중이다. 한편 법정동이 다른 지역과 선거구가 변동되는 지역인 안암동, 보문동, 돈암1동과 향후 뉴타운이 추진되는 장위1·2·3동과 지리적 여건상 통합이 곤란한 정릉1·2·3·4동 등 10개동은 통합대상에서 제외했다. 중랑구는 인구 2만명 이하의 소규모 동을 통·폐합하고, 새로운 과를 신설하는 등 조직 개편을 추진한다. 동을 20개에서 16개로 줄이기로 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면목1동과 면목6동은 면목본동으로 합치고, 중화2·3동과 망우1·2동은 각각 중화2동, 망우본동으로 개편한다. 면목3동과 면목8동은 통폐합을 할 예정이나 아직 동 호칭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다. 또 구 본청은 3개과를 새로 만든다. 구민의 정보화를 지원하고 행정전산화를 담당하는 ‘전산정보과’, 교육 환경과 수준을 높이기 위한 ‘교육지원과’, 간판과 불법광고물 등을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도시디자인과’가 신설된다. 이같은 내용의 ‘서울시 중랑구 행정 기구 설치 조례’ 개정안을 10일 개회하는 제137회 중랑구의회임시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안건이 통과되면 내년 1월1일부터 개편안이 시행된다.김성곤 최여경기자sunggone@seoul.co.kr
  • 日’연예계 대모’ 와다아키코 “사와지리가 여왕입니까?”

    日’연예계 대모’ 와다아키코 “사와지리가 여왕입니까?”

    ”사와지리가 무슨 여왕마마입니까?” 일본 연예계를 대표하는 가수 와다 아키코(和田アキ子·57)가 인기스타 사와지리 에리카(沢尻エリカ·21)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지난달 30일 TBS ‘앗코에세 맡기세요’(アッコにおまかせ)라는 방송프로그램에서 사와지리 에리카의 소식을 다룬 신문기사를 소개하다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 아키코는 영화 ‘클로즈드 노트’의 기자회견에서 주연배우인 사와지리 에리카가 팔짱을 끼고 성의없는 태도로 무대인사를 한 것에 대해 거침없이 지적했다. 또 아키코는 방송에서 “사와지리 에리카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녀를 만나면 ‘에리카 사마’(様·님)라고 불러드려야 하느냐?” 며 “왜 언론이 그녀에게 ‘사마’라는 호칭을 쓰는건가? 여왕마마라도 되는가?”라고 비꼬았다. 또 아키코와 함께 자리한 출연자들은 “기자들이 ‘영화를 찍으면서 에피소드는 없었느냐’는 질문에 사와지리는 귀찮은듯 ‘특별히 없다’라는 대답만 했다.”며 “그녀의 코멘트가 기자회견장을 차갑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와지리 에리카는 지난 2005년 후지TV 인기드라마 ‘1리터의 눈물’로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으며 오는 4일부터 열리는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지자 국내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TBS ‘앗코에게 맡기세요’ 캡처 나우뉴스팀@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주공 ‘직무급제’ 시행 2년 성과 쏠쏠…공기업들 도입 저울질

    주공 ‘직무급제’ 시행 2년 성과 쏠쏠…공기업들 도입 저울질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들도 직무급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에 대한 혁신이 강조되고 있는 데 따른 움직임이다. 일반기업에 비해 관료적이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고임금을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임금체계 개선을 부추기고 있다. 특히 최근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으로 업무에 따른 임금의 차별화 작업이 불가피해지면서 임금체계 개선은 공기업들의 경영혁신 차원에서 적극 검토되고 있는 추세다. 임금체계 개선 전문 컨설턴트인 임종호 노무사는 “공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날로 늘어나는 고령 근로자의 고용안정 등을 위해서는 직무와 직급 등 업무와 능력에 따른 차등화된 임금체계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주택공사 2년 전 첫 도입 임금체계 개선에 가장 앞선 공기업은 대한주택공사. 변화와 혁신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한 것으로 지난 2005년 1월, 직무급제로 전환했다. 공사가 도입한 임금체계 개선방식은 직무급제. 기존의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에서 탈피해 개인의 역량을 중요시하는 이점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공사는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우선 3급(팀장급) 이상의 상위직급을 대상으로 했다. 대상자는 약 400명으로 1,2,3급의 직무에 대해 S,A,B,C 등 3등급으로 나누어 적용했다. 직무평가를 실시하고 직무등급에 따라 차등화된 직무급을 설계하고 이를 기존의 기본급에 추가했다.1급 직무의 경우 등급에 따라 급여는 최고 30만원까지 차등 지급된다. 차등은 개인의 업무능력이라기보다 직무가치에 대한 차등이다. 물론 도입초기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서열화하고 차별화하는 데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부전문가에 의한 직무평가로 공정한 업무평가가 이뤄지고 개인보다는 직무에 대한 평가로 인식되면서 반발은 수그러들었다. 직무급제가 도입된지 2년이 지난 지금은 상위직급의 업무 효율성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각 업무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 기피부서가 사라지고 자리 이동에 대한 부담감 해소 등 업무효율이 크게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근로자와의 협의가 관건 현재 노동부가 실시하고 있는 임금체계개선 컨설팅 지원사업에 50여개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공기업은 3∼4곳에 불과하다. 대구광역시지하철공사, 충남도시가스 등 일부 지방공기업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반 기업체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공기업들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노조의 반발 등 부작용을 의식해 공론화하기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임금체계를 바꾸는 데는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임금규정 변경에는 일정 요건이 필요하다. 전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 과반수 이상이 참여하는 노동조합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 지난해 이미 임금체계 개선과 관련된 외부용역을 마쳤다. 내년부터 연공서열식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내부 반발이 워낙 커 실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공사 관계자는 “자기 업무에 대한 평가로 임금을 달리한다는 생각에 10명 중 9명이 반대하는 입장이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노동부 관계자는 “일부이긴 하지만 공기업들도 일반기업과 마찬가지로 임금체계 개선에 점차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공기업의 경우 고령 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 방식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산업인력공단 “회의문화 바꿔라” 관공서나 공기업의 회의도 기업처럼 바뀌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회의는 절대 1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문제해결을 위한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아무리 중요한 회의라도 마찬가지다. 김용달 이사장은 회의를 주재할 때 책상 한편에 시계를 놓아 둔다. 평균 40∼50분이면 회의를 마친다. 공단은 올들어 혁신차원에서 회의문화를 개선하고 있다. 장시간 지속되거나 잦은 횟수 등 관공서, 공기업 등의 고질적인 회의문화를 효율적으로 바꿔보자는 취지다. 이른바 ‘1+1+1 캠페인’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회의 일정과 자료 등은 하루 전에 알려주고, 회의는 1시간 이내에 끝내고, 회의 결과는 하루 내에 모두 전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LG전자의 111캠페인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아울러 회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회의에 참석하는 구성원의 명패나 지정석을 폐지했다. 토론형식의 회의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호칭에 직위를 뺐다. 회의 자료의 분량도 원칙적으로 5쪽을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가끔은 워크아웃 타운미팅도 활용하고 있다. 조직원들이 작업장, 사무실 등에서 벗어나 직위를 잊은 채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회의하는 형식을 말한다. 이는 미국 GE그룹의 잭 웰치 회장이 조직의 관료화 현상으로 상·하 직원간의 쌍방향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창안해낸 회의기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산업인력공단도 직원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이 방식을 자주 활용한다. 특히 공단은 효율적인 회의가 될 수 있도록 사업본부 간, 공단본부와 소속기관 간, 부서 상호간에 회의시간을 체크하고 만족도 조사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회의문화를 개선하면서 훨씬 생산적이고 활기찬 회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盧 ‘평화체제’-부시 ‘先핵포기’

    |시드니 박찬구특파원|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은 7일 정상회담에서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종착역’과 양국의 역할에 방점을 찍었지만, 미국은 ‘핵포기’라는 전제 조건을 강조하며 북한에 공을 넘겼다. 부시 대통령은 여러 차례 북한의 결단을 촉구했다. 회담 직후 15분간 진행된 언론 발표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의 신경전도 연출됐다. 부시 대통령은 언론 발표에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결정은 그쪽(김정일)에서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노 대통령은 “똑같은 얘기”라면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고 거듭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조건절’보다는 ‘주절’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되받았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도 6자회담 과정이 중요하며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측은 “통역상의 문제 때문에 비슷한 질문이 반복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비핵화가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 개시를 위해 필요하다.”며 원론적인 의견으로 대신했다. 한 참석자는 “결과 발표 시간 15분을 포함,1시간 10분 동안 두 정상이 빠른 속도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을 미스터 프레지던트(Mr.President)라 불렀고,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을 썼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각각 ‘김정일 국방위원장’,‘김정일’이라고 했다. 언론 발표 직후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생큐 서(Thank you,sir)”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우리는 친한 친구 사이니 김정일에게 얘기를 전해 달라.”는 취지로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6자회담이 가능했던 것은 당신(노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덕담을 하자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이 없었으면 6자회담이 진전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ckpark@seoul.co.kr
  • [씨줄날줄] 퍼스트 래디/육철수 논설위원

    역술이란 세월이 지나면 대개 별것 아니지만 예언 당시에는 그럴듯한 게 많다. 몇달 전 어느 역술인은 한국에서 몇해 안에 여성 대통령의 탄생 가능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 근거는 지금이 음기가 충천하는 하원갑자(下元甲子,1984∼2043년)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 나라를 다스려야 혼란스러워진 음기를 잘 다독이고, 정치·경제·사회가 안정돼 나라가 번성한다는 얘기다. 역술에 의하면 음양기의 순환에 따라 상원갑자(1864∼1923년)를 남성상위시대, 중원갑자(1924∼1983년)를 남녀평등시대, 하원갑자를 여성상위시대로 나눈다고 한다. 상원갑자 시기에 여성이 남성에게 대들다가 혼쭐났듯이, 하원갑자 시기엔 남성이 여성을 이기려다간 큰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나, 세계에 여성 대통령 6명과 여성 총리 4명이 배출된 데다, 국내외 각계에 여풍(女風)이 거세지는 현실로 미루어 하원갑자의 음기론을 도외시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시대적 변화는 바다 건너 미국에도 뻗쳤다. 퍼스트 레이디를 지낸 힐러리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유력해지면서 남편 클린턴 전 대통령을 어떻게 부를지 벌써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물론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남편에 대한 호칭은 이미 클린턴 부부가 묘안을 내놓긴 했다. 힐러리는 4년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남편을 ‘퍼스트 메이트’(First Mate)로 부르라고 했다. 며칠 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클린턴은 ‘퍼스트 래디’(First Laddie)란 새 호칭을 추천했다. 래디는 스코틀랜드 구어로 ‘젊은이’라는 뜻이니, 음운상 퍼스트 레이디와 잘 어울리는 대칭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참가하는 여성 정상들의 남편을 ‘퍼스트 젠틀맨’으로 부른다니까, 이 세 가지 호칭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될 것 같다. 우리도 여성 대통령의 탄생에 대비해 ‘부군’(夫君)이나 ‘영부군’(令夫君) 같은 고유 존칭을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 시대가 변하고 남녀의 입장이 바뀌면 새로운 호칭이 생기게 마련이다.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 호칭은 우먼파워 시대를 알리는 또 하나의 증거인 셈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MB와 DJ의 씁쓸한 설전

    [한종태 정치전문기자의 정가 In&Out] MB와 DJ의 씁쓸한 설전

    이번 주 정가의 화제는 이명박(MB)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설전이 아닐까 싶다. 수요일(29일) 있었던 DJ와 MB의 만남은 대선을 앞둔 두 사람의 정치적 무게를 반영하듯 상당한 관심을 끌었고, 실제 나눈 대화 역시 기대(?)에 부응했다. “각하께서 대통령을 했으니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나라당도 좀 도와달라.”(MB) “내가 알아서 판단하겠다. 한나라당이 너무 센데 도와줄 필요가 있겠나.”(DJ)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설전의 골자다.MB는 DJ에게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유력 대선 후보인 MB는 한나라당 소속이면서도 호남 지지율 1위다. 범여권의 단일후보 선정에 깊숙이 개입 중인 DJ는 호남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호남권으로의 외연 확대를 노리는 MB나,MB에 맞설 대항마를 만들기 위해 이 지역 수성에 나선 DJ 모두 미묘할 수밖에 없는 관계다. 치열한 대선 구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의 설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판이하다. 보수 진영에선 ‘제대로 지적했다.’는 반응들이다.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의 발언처럼 ‘DJ가 너무 관여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반면 범여권은 MB가 지지율 1위를 무기로 국가원로를 ‘협박’했다며 불쾌하다는 반응들이다. 두 사람의 설전을 ‘뉴 패러다임’과 ‘올드 패러다임’의 충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의 정치지형 변화 가능성과 관련해 능력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뉴 패러다임의 상징성은 MB가 갖고 있고, 지역주의와 세력간 연대를 핵심으로 하는 올드 패러다임은 DJP연합을 통해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DJ로 대표된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이번 대선은 과거와 같은 구도로 선거를 치르려는 올드 패러다임과, 지역과 연대의 고리를 끊고 미래지향적으로 정당체제의 ‘재편성’을 염두에 둔 뉴 패러다임의 대결”이라면서 “MB와 DJ의 설전은 그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밝혔다. 그런 관점에서 범여권의 정권 재창출에 온힘을 쏟고 있는 DJ에 맞서 MB는 지역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치르지 말자는 ‘부탁’과 함께 혹여 박근혜 전 대표와 연대를 생각하고 있다면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를 전달하려 했을지 모른다. 여하튼 전직 대통령이자 손꼽히는 국가원로가 대선 후보와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대선 정국의 중심 인물이 돼 있는 것은 곁에서 볼 때 민망하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 그것도 쓴소리를 잘 하는 조순형 의원이 후보가 된 뒤 DJ를 찾아온다면 그와도 설전을 벌이겠는가. 반면 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찾아오면 반색하며 미주알 고주알 지도할 것인가. 박명호 동국대 교수(정치학)는 “정치현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국가원로의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면서 “국민들은 원칙적인 언급 정도만 듣고 싶어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더욱이 뭔가를 노리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 것은 원로의 모습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차기 정권에서 혹시 전직 대통령이 탄압받는다는 얘기가 나온다면 그것 역시 불행이다. jthan@seoul.co.kr
  • [어떻게 지내십니까] 부천署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어떻게 지내십니까] 부천署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 명지대 교수

    “소개팅 시켜드릴까요?” 권인숙 명지대 교수의 거침없는 활달함에 엉뚱한 질문을 던져봤다.“좋지요. 그런데 남자들이 나를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을까요.” 막히지 않고 바로 응답이 있기에 다시 물었다.“어떤 타입이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인기를 모은 TV드라마에서 남장 여자로 나왔던 윤은혜 같이 작고 예쁜 남자가 좋다고 했다. 예전에는 홍콩배우 장국영의 팬이었다면서…. ●부천서 사건, 이젠 담담하다 권 교수에게서 이제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아픔, 투사적 이미지는 느껴지지 않았다.169㎝의 후리후리한 키와 얼굴 전체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 그리고 학문의 열정이 넘쳤다.TV드라마를 즐기고, 소주보다는 와인이 입에 맞는다는 당당한 이혼녀다.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의학자 보리스 시릴뤼크는 불행에 맞서는 인간의 치유능력을 분석했다. 아무리 큰 고통이라도 약간 뒤로 물러서 객관적인 연극처럼 대하면 곧 견딜 만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그의 연구결과. 권 교수의 분위기가 그랬다.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 부천서 사건을 그녀는 타인의 경험인 듯 담담하게 얘기했다.“(과거의 아픔을)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학생·노동운동이) 당시에는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했고, 그 사건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해자 문귀동에 대해 용서하고 말고, 그런 차원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한다. ●다시 학생운동하면 남성과는 안 하겠다 권 교수는 20년 전의 운동권 활동 역시 ‘학자적’으로 객관화시켰다. 그녀의 현재 전공 분야는 여성학. 그녀는 “여성학 공부는 20대 이후 내가 내린 선택 가운데 가장 적절한 것”이라고 했다.“운동권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남성들과 같이 안 했을 겁니다. 다른 방법으로 했겠지요. 서구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했다가 3∼4년 지난 뒤 반발하거나 독립적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90년대 중반 연세대 성(性)정치문화제에서 그런 목소리가 나타나더군요.” 80년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운동권 토양이 그녀는 영 못마땅한 듯싶었다. 여성을 남성화시키면서도 남성의 보조로 여겼던 풍토. 화장 안 한 맨얼굴, 치마는 안 되고 청바지, 남녀 구분 없는 형 호칭, 욕과 담배·술…. 권 교수는 “그때도 저는 담배는 안 피웠어요.”라며 웃었다. “이기주의보다 개인주의가 나쁘다는 게 당시 운동권의 분위기였습니다.1960,70년대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위계적·서열적 집단문화가 형성되었고, 폭력을 효율적 수단으로 본 것이죠.” 폭력적 수단의 장단점을 따지지 않은 게 80년대 운동권의 실수라고 지적했다.“평화적 수단을 찾는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이죠. 일본은 핵무기에 의해 전쟁에 졌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이겼다고 생각들을 합니다. 평화적 수단의 힘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절대 정치 안 한다 자연스레 화제는 386 남성 정치인들로 넘어갔다.“정치 디테일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아요. 기본호흡이 너무 달라서….” 권 교수는 일단 발을 빼려 했다. 집요한 질문에 “저 사람들이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은 합니다.”고 운을 떼었다.“386들이 잘 해보려고 했는데 상상력과 콘텐츠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사회 전반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기본성찰이 있어야 했습니다.” 80년대 운동권 가운데 여성 비율은 20∼30%. 남성 386들의 활발한 정계진출에 비해 여성 386들은 어디서 뭘 하는지 존재감이 없다. 권 교수에게 민주화의 공로자로서 명성을 업고 정치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학문의 영역을 넘어 실천의 영역에서 여성 권익 신장에 앞장서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살짝 긁어 보았다. 그러나 “없어요.”라고 짧고 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김대중 정권 시절 전국구 의원을 제안받기도 했지만 사양했다고 했다. 그리고 권씨 종친회에서도 국회의원 출마 얘기가 있었지만 한 귀로 흘렸다.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부담스럽게 살고 싶지 않아요.” 교수로서 가르치고, 책·논문 쓰는 일에만 몰두하겠다고 강조했다.“정치뿐 아니라 다른 사회활동, 시민단체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걸요. 중학생 딸과 집에 있는 게 좋아요.” 권씨는 1998년 이혼했다. 운동권 동료와 결혼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역시 가부장적이더라고 했다.“전 남편 얘기는 더 하고 싶지 않네요.” 현재 대선주자 가운데는 한명숙 전 총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 1명, 여성 총리 1명보다는 국회의원, 장관, 행정직 안의 비율이 늘어나 여성이 정치세력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차별적 집단문화 탐색 하겠다 권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군사주의가 만연하면서 여성이나 소수자의 인권이 억압되는 과정을 집중 탐구하고 있다. 자전적 에세이집 ‘선택’에 이어 2005년에는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통해 군사주의 타파를 역설했다. 얼마전 펴낸 ‘권인숙 선생님의 양성평등 이야기’는 한국출판인회의에 의해 ‘8월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한국사회에서 가부장적 문화, 군사주의 문화가 횡행하는 주요 요인으로 징병제를 꼽았다.“부국강병을 중시하는 전통과 70,80년대 군인들이 근대화, 현대화를 주도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군대 복무 경험의 영향이 큽니다. 여성이 남성들의 군대 문화에 따라가지 말고, 독자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징병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여성 학자로서 목소리를 낼겁니다.” 성차별적인 집단문화와 함께 진정한 남자다움은 무엇인지를 탐색해보겠다고 했다. 이목희 논설위원 사진 도준석기자 mhlee@seoul.co.kr
  • [이명박 A to Z] 회의 스타일

    [이명박 A to Z] 회의 스타일

    이명박 후보가 회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편한 자세로 환담을 나누던 최고위원들이 거의 벌떡 기립했다. 환한 표정의 이 후보는 좌정하기에 앞서 “악수나 한번 합시다.”라며 원탁을 한 바퀴 순례했다. 측근인 이재오 최고위원에게 “어제 산에 다녀왔다고(들었다.)….”라는 인사말을 건넸고, 이종구 제1사무부총장에게는 “그 교수 잘 만났어요?”라고 물었지만, 미처 대답할 새가 없을 만큼 이 후보의 ‘악수 회전율’은 높았다. ●메모 해오고도 앞만 보고 연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27일 오전 9시 여의도 한나라당사는 이 후보의 ‘데뷔’열기로 후끈거렸다. 이 후보는 당사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대선후보 자격으로 처음 참석하는 참이었다. 회의 분위기는 이 후보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집중됐다.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이 후보에 대해 “후보님”이라고 깍듯이 호칭했으며,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당겨 공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농담을 주고받던 회의 전 풍경은 오간 데 없었다. 첫 학기 1교시 수업과 같은 긴장감이 실내를 잔뜩 지배했다. 이 후보는 카메라 맞은편의 상석에 앉자마자 상의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뭔가가 메모돼 있었다. 하지만 시선은 수첩 대신 정면을 향했고, 얼굴은 무표정했다. 가끔씩 턱을 매만지거나 주먹을 말아 입에 대고 헛기침을 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훔치거나 참석자들의 발언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박계동 전략기획위원장이 “민주신당의 선거인단에 대리모집 의혹이 있다. 하루만에 30만을 모집했다는데…”라고 보고하자, 이 후보는 곁에 앉은 김형오 원내대표에게 “30만명?”이라며 확인하기도 했다. 발언 순서가 되자 이 후보는 마이크를 당겨 입으로 바짝 가져갔다. 수첩은 거의 외면한 채 앞만 보고 일사천리로 말했다.“강 대표를 중심으로 역사에 없는 큰 일을 한 데 대해 감사말씀 드린다.”는 말로 입을 연 그는 시종 “고맙다.”,“부탁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후보는 일종의 ‘비화’를 거침없이 털어놓기도 했다.“지난번 국회에서 회의 끝나고 강 대표가 별도로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만났는데, 신상문제를 후보와 상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했다.”면서 오른 편의 강 대표 쪽으로 시선을 옮긴 그는 “함께 하기로 했고 앞으로 잘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즉석에서 ‘신임’을 부여했다. 강 대표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재정´ 대신 ‘살림´이란 말 즐겨 사용 이 후보는 “지난주 제가 당무 보고를 받았는데 살림을 알뜰하게 잘 사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는 등 ‘재정’같은 용어 대신 ‘살림’이라는 말을 즐겨 썼다. 비공개 회의를 위해 취재진의 퇴장을 요구하는 당직자들의 안내에도 불구, 기자들이 머뭇거리자 이 후보는 맞은편에 앉은 나경원 대변인을 보면서 “대변인 말발이 안 서네.”라고 농담을 던져 폭소를 부르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큰 욕심 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사는 은정과 지훈. 얼마 전엔 그토록 바라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열심히 중도금을 부으며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풀어 있을 즈음, 지훈은 실직하고 허리디스크에 시달린다. 보다 못한 은정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야간 대리운전에 나서는데….   ●라이프n조이(YTN 오후 8시35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작은 섬들이 총총히 박혀 있고 태고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 선유도.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낸 기암석이 예술작품처럼 펼쳐진다. 은빛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진 명사십리와 바다의 신선함이 고스란히 전해오는 먹거리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는 선유도의 여름을 찾아 떠나본다.   ●다큐 여자(EBS 오후 9시20분) 공방이라기보다 그릇가게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곳에 넉넉한 안주인 52세 양순씨가 있다. 다른 가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손수 바느질을 해 만든 수예품과 남편이 직접 조각한 작품들로 더 특별한 곳. 부부가 함께라면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는 인사동 공방의 행복한 안주인 양순씨를 만나본다.   ●신동엽의 있다!없다?(SBS 오후 6시50분) 한 주간 인터넷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 ‘뜨거운 사진 BEST 4’가 공개된다. 자전거로 한강을 건널 수 있는지 없는지, 우리동네 우산리에는 오직 우산만으로 고기를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 살펴본다. 또, 빨간 땀을 흘리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스님이 있는지 없는지도 살펴본다.   ●김치 치즈 스마일(MBC 오후 8시20분) 39세 노처녀 혜영은 자신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미국 여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덜렁이 노처녀가 미국으로 떠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닌데…. 한편, 자신이 다니는 대학 학장에게 은숙의 헬스장을 이용하는 비용을 30% 할인해주겠다고 말해버린 병진은 은숙의 허락을 얻고자 애를 쓴다.   ●문화지대(KBS1 오후 11시30분) ‘우리’를 닮은 소박함을 빚어내는 조각가 김주호. 그는 20년 남짓한 기간 동안 10차례의 개인전과 100차례 이상의 단체전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의 재료는 늘 소박하다. 자연에서 얻은 흙과 나무 등으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쉽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조각가 김주호를 ‘예술 1330’에서 만나본다.
  • 中 ‘연약女’ 뜬다

    中 ‘연약女’ 뜬다

    중국에서 연약한 여성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중국 반관영통신인 중국신문 인터넷판은 19일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을 중시해온 추세가 ‘연약하고 어린 여성’으로 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인형처럼 단정히 붙인 머리 모양에 아동복 같은 넓은 소매,7부 바지, 미니스커트,A자형 치마, 큰 귀걸이 등 연약하고 어려 보이는 옷과 소품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유행의 이면에는 성인이 됐어도 행동, 정신적인 면에서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함을 유지하고 싶은 여성들의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중국 남성들이 여성의 연약하고 어린 이미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남성들을 사로잡고픈 여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국 여성들은 아시아지역에선 독립심과 자기 주장이 강한 편에 속했다. 올 여름 여성들 사이에선 이런 경향을 중시하는 부류를 호칭하는 용어로 ‘좡넌쭈(裝嫩族)’란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佛 ‘방리유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2005년 10월27일. 프랑스 파리의 방리유(banlieue, 도시외곽지역) 클리시부아에서 아프리카 이민자 2세 소년 두 명이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하다가 감전사했다. 이들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송전소의 담을 넘다가 변압기에 떨어져 사고를 당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프랑스 언론들은 일제히 “주변에 일어난 절도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이들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는 경찰쪽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주변 지역에서 절도사건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분노한 방리유의 청년들은 이내 차량과 건물에 불을 지르는 등 일어섰고, 이는 이른바 ‘프랑스 방리유 소요사태’라는 이름으로 전세계에 전파를 탔다. ‘공존의 기술: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이기라·양창렬 등 지음, 그린비 펴냄)은 이 방리유 사건의 의미와 원인, 파장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진단한 책이다. 현재 프랑스에 체류 중인 필자들은 프랑스 내 또다른 이방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들이 체험하고 목격한 프랑스라는 나라의 본색을 보다 실감나게 전한다. 이들의 통찰은 비단 방리유 사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주변인, 소수자, 이방인에 대한 안목까지 넓혀준다. 책은 먼저 1990년대 이래 뚜렷한 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프랑스가 사회 통제를 위해 강화하기 시작한 ‘치안논리’에 주목한다. 필자인 이기라씨는 “최근 20여 년 동안의 치안논리와 그에 기반한 낙인과 처벌의 정치가 소외지역 청년들의 절망과 증오를 누적시켰다.”면서 “치안담론은 주권을 재정당화하고 권력강화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통치기술로 사용돼 왔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필자인 양창렬씨는 ‘시테의 야만인’이란 장에서 1889년 파리 지방 선거의 한 후보자가 사용한 뒤 널리 퍼지게 된 ‘방리유자르’라는 호칭에 주목한다. 방리유 주민을 일컫는 이 용어는 16세기부터 도시민들이 방리유 주민들에 대해 가져온 ‘무례’‘야만적임’ 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히 통념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씨는 “방리유자르는 프랑스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지만, 프랑스 정부에서는 그들이 아직 동화되지 않았다며 끊임없이 유예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정신과 ‘톨레랑스’라는 보편적 가치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그늘을 조명함으로써 방리유 소요가 단지 일회적 사건이나 예외적 사태가 아님을 보여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07년 3월27일 파리 북역에서 무임승차한 청년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소요나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방리유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방리유 사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세계 어디에나 이같은 가능성이 잠재해있다고 알려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대대적인 불법체류 단속 이후 외국인 노동자 수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차가운 거리에서 얼어 죽었다. 또한 이주노동자정책은 아직도 근본적인 개선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방리유와 화해하고 공존하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한 걸까.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최재천 인간견문록] 소신과 처신

    [최재천 인간견문록] 소신과 처신

    오랫동안 인하대학에서 사학을 가르치시다 퇴임하신 정광호 교수님이 몇 년 전 ‘선비, 소신과 처신의 삶’이라는 책을 내셨다. 무턱대고 곧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군자의 도를 어겼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내 나름대로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독특한 개성의 조선 선비 16명을 조명한 책이다. 무릇 이 땅에서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만일 정광호 교수님이 이 시대의 학자(감히 선비라고 부르기 꺼려짐은 무슨 까닭일까?)들에 대해 비슷한 책을 쓰신다면 과연 어떻게 평가하실까 무척 궁금한 분이 있다. 당신은 소신을 달리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많은 이들의 눈에는 영 처신을 잘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바로 그분이다. 1994년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서울대학으로 갓 부임한 나는 텔레비전 대담 프로그램에 나와 김숙희 당시 교육부 장관에게 교육의 자율성에 대해 초지일관 ‘쓴소리’를 하던 김신일 선생님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교육의 자율성이 기본권 수준에서 보장 받던 미국 대학에서 갓 돌아온 나로서는 사실 무엇이 이슈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교정에서 나는 내 쪽을 향해 걸어오시는 선생님을 발견하고 정중하게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셨겠지만 점잖게 답례의 인사를 해주셨다. 소신이 말로 표현된다면 처신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선생님의 논리정연한 ‘강의’와 대쪽 같은 몸가짐에 나도 모르게 경의를 표한 것이다. 선생님은 당시 내게 언행일치의 처사(處士)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다시 그분을 만나도 더 이상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는 드리지 못할 것 같다. 그 놈의 감투가 뭐기에. 소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김신일 부총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양반이 한 분 있다. 지난 몇 달간 그가 쏟아낸 말들이다.“헌법소원은 국가공권력 때문에 기본권이 침해 당한 국민이 하는 것이지 국가공권력의 주체이자 핵심인 대통령이 하는 게 아니다.” “정치세력 중심 통합이 어렵다고 후보 중심으로 당을 만들면 그거야말로 대선을 위한 일회용 정당을 급조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실패하면 다음 대선에 또 하고, 우리 세대가 실패하면 다음 세대에 넘겨주고, 정당이 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17대 총선에서 국민이 열린우리당에 과반 의석을 준 것은 노 대통령을 도와서 국정 수행을 잘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국정 실패의 책임은 다 노 대통령에게 돌리고 탈당이니, 당 해체니 하는 것은 정당·책임정치에 위배되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죄로 촛불시위의 희생양이 되었다가 화려하게 부활한 정치인만이 내뱉을 수 있는 소신 있는 발언들, 정식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선비라는 호칭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정치인 조순형 의원의 발언들이다. 어떤 문제든 그 핵심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허구한 날 국회도서관에서 문헌을 뒤진다는, 그리고 일단 옳다고 판단하면 상대가 누구라도 직언을 주저하지 않는 그는 영락없는 딸깍발이다. 소신이 뚜렷하면 처신이 자유롭다. 우리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에 부쳐 조순형 의원은 “협상 타결 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소신과 결단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지지 세력의 이탈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소신 있게 밀어붙인 노 대통령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냈다. ‘쓴소리’와 ‘단소리’를 모두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몇 안 남은 올곧은 선비 조순형. 나는 아직 조순형 의원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그를 뵈면 예전에 김신일 선생님에게 했듯이 깍듯하게 인사를 올릴 것이다.5000년 역사 내내,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 나라는 선비들의 소신이 붙들고 갈 것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jaechoe@ewha.ac.kr
  •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본인 유학생 사가와 준코가 ‘학점을 빌미로 대학 강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 충격적인 발언은 우리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다.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성희롱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누구나 ‘성희롱’이라는 말에는 분노하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정작 현실은 다르다. 피해자는 소문이 날까 쉬쉬하고 가해자는 당당하게 무용담을 늘어놓는 뒤틀린 현실은 우리네 직장과 학교 등에서 일상화된 지 오래다. 성희롱을 당했던 끔찍했던 경험담과 함께 성희롱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등 성희롱과 관련된 남성·여성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 봤다. ●주관적인 성희롱 잣대 ‘대략난감’ 지난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취업 재수생 소모(34)씨는 전 직장에서의 기억에 몸서리가 쳤다. 부서 회식에서,‘킹카’라 불리던 회사 동기가 한 동료 여직원에게 지난해 인기를 모은 한 노래 제목을 인용하며 “가슴이 예뻐야 여자죠.”라고 말하자 “당근이죠.”라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소씨가 분위기를 맞춘다며 “엉덩이까지 예쁘면 금상첨화 아닌가?”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됐다. 소씨는 “당시 그 여직원이 저를 성희롱으로 고소하겠다.”며 난리였죠. 그 친구가 다른 동료 직원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상황에서 내가 한 말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에 모멸감을 느꼈어요.”라면서 “그 여직원이 ‘넌 못 생기고 매력도 없으니까 나한테 성적인 농담 따윈 꺼내지도 마라.’라며 비웃는 것 같았거든요.”라고 말했다. 간접적이긴 해도 그 여직원에게 성희롱을 당한 것 같다는 것이 소씨의 주장이다.“‘장동건이 뚫어져라 쳐다보면 ‘생유(고맙다는 뜻)’고 내가 쳐다보면 ‘소송’하겠다.’는 말인데…. 어떨 때 보면 여자들은 ‘주관’이라는 잣대를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들이대는 것 같아요.” 대학원생 최모(27)씨는 남자들의 성격을 걸고 넘어지는 일부 여자들을 볼 때마다 성희롱을 당한다는 느낌이 든다고.‘남자가 난쟁이 똥자루만 해가지고, 밴댕이 소갈딱지까지’ 등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남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주입하려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여대생이 졸업 작품으로 성인 남성이 무릎을 꿇고 자위 행위를 하는 조각상을 만들어 화제가 됐었다죠. 만약 남학생이 여성이 자위하는 조각상을 만들었다면 여자들이 가만 있었을까요.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성희롱일 텐데요.” ●남자들도 성희롱에 분노한다 오는 8월 미국 유학을 떠나는 문모(30)씨는 아직도 떠오르는 ‘아찔한(?)’ 기억이 있다.2002년 제대를 한 뒤 놀이공원에서 허드렛일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30대 초반 여성 두 명과 한 조가 됐는데 이미 결혼한 ‘아줌마’들이라 문씨는 누나처럼 따랐다. 이들도 “꼭 친동생 같다.”며 문씨를 살갑게 대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누나’들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한 아줌마가 가끔씩 “허벅지가 진짜 굵은 걸 보니 힘 정말 잘 쓰겠네.”라며 문씨의 허벅지를 손으로 움켜쥐면 다른 아줌마 역시 “그래? 나도 한번 만져 보자, 진짜 살결이 영계 같아 좋네.”라며 맞장구를 치곤 했다. 고민 끝에 문씨는 상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야, 그 미시 언니들 예쁘기로 소문났는데 고맙다고 해야 되는 거 아냐? 그 언니들한테 내 것도 굵다고 전해 드려.”라는 상사의 어이없는 답변에 결국 ‘GG(젊은이들 사이에 ‘항복하겠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게임용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들은 원래 남동생 허벅지를 막 만지기도 하고 그러나요. 그때는 제가 어려서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성희롱이 꼭 여자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요. 어떤 남자들은 ‘남자가 여자한테 성희롱·성추행당했다.´고 하면 되레 부러워하던데 이런 안이한 태도가 남성을 피해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봐요.” 얼마 전 결혼한 회사원 한모(32)씨는 직장에서 들려오는 ‘새신랑’이라는 호칭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이제 결혼했으니 알 건 알아야 한다.”며 몇몇 여자 상사들이 한씨에게 들려주는 노골적인 성담론(?)이 무척 귀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눈썹이 진한 게 밤에 일 잘하겠어.”라거나 “와이프를 위해 틈틈이 운동하고 마늘을 많이 먹으라.”는 얘기는 재미삼아 들어줄 만하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아내를 만족시키는 노하우’나 ‘밤에 차로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 같은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설명할 때는 민망하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라고. “아마 저도 결혼을 했으니 이른바 ‘한팀’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남자들한테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얘기를 나이 차가 많다고는 해도 여자들에게까지 들어야 하나요? 한국 사회가 직장 상사에게 싫은 내색 하기 쉽지 않다는 걸 잘 알텐데 알아서 자제해 주면 좋겠어요.” 회계사 박모(29)씨는 지난해 출근길에 실제 ‘성추행’을 당했다. 승객 많기로 유명한 지하철 2호선에서 박씨 바로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자신의 팔에 가슴을 밀착시켰던 것. 흠칫 놀란 박씨가 혹시나 오해를 살까봐 재빨리 손을 치우려 했지만 오히려 여자가 몸을 더욱 심하게 밀착시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고. 결국 승객으로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박씨는 천장만 바라보며 상황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하도 화가 나서 인터넷에서 법조문을 찾아보았는데 성폭행의 경우 남자는 아예 대상이 안 되더군요. 여자는 남자를 강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성범죄와 관련해선 때로는 남자가 역차별받는 부분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직장 그만두게 만드는 성희롱의 악몽 남자 동료들이 많은 회사에 다니는 6년차 김모(30·여)씨에게 성희롱은 일상이다. 회식 자리이나 노래방에서 술에 취한 듯하면서 손을 잡거나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얹는 ‘스킨십형’은 보통이고 허리에 팔을 쓰윽 감는 ‘노골적인 성희롱형’ 상사도 적지 않다. 김씨가 발끈하기라도 하면 상사들은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냐….’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받아넘긴다. 언어 폭력도 견뎌야 한다. 지난달 부서 회식에서는 40대 중반의 상사가 빨간 블라우스를 입은 김씨를 보더니 “여자가 빨간 옷을 입는 것은 프로이트 심리학에서 볼 때 ‘(잠자리를) 하고 싶다.’는 의미라던데….”라며 농을 걸어왔다. 화기애애하던 회식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김씨는 “그런 건 아니고 아침에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기분 전환할 겸 입었어요.”라고 받아넘겼다. 하지만 찜찜하고 분한 마음은 가슴 한켠에 고스란히 남았다. 김씨는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극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부분들도 이제는 웃어 넘기는 경우가 많아졌어요.”라면서 “물론 정도가 심할 땐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죠. 아니면 좋아서 가만히 있는다고 생각하는 정신 못 차리는 남자들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회사원 송모(30·여)씨는 첫 직장에서 있었던 끔찍(?)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모 은행의 지점에서 일하던 송씨는 어느날 회식을 마친 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마침 비슷한 방향에 사는 지점장이 “걱정되니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택시에 동승했다. 지점장은 송씨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지만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현관문에 들어가는 걸 봐야 마음이 놓인다.”면서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지점장은 갑자기 송씨에게 키스를 하려 했다. 송씨가 두 팔로 밀쳐내면서 “뭐 하시는 거예요.”라고 따지자 지점장은 능글맞게 “네가 너무 예뻐서….”라고 말했다. 송씨가 “지점장님 딸이 이런 일 겪는다고 생각해 보세요.”라며 화를 내자 지점장은 “난 딸 없으니까 괜찮아.”라며 뻔뻔하게 나왔다. 마침 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이 타서 위기를 넘겼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러내린다. 은행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지점장과 마주칠 때마다 소름이 끼쳤던 송씨는 결국 석 달 만에 힘들게 들어간 은행을 그만두고 직장을 옮겼다. ●‘준코형’ 성희롱도 대학가에 만연 대학생 박모(25·여)씨는 대학 강사가 학생을 노린 이른바 ‘준코형’ 성희롱에 시달렸다.2005년 ‘영국민중생활사‘란 과목을 듣다가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내용을 듣곤 했다. 40대 중반의 강사는 틈나는 대로 “여러분도 다 성경험이 있겠지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한국 여자들은 마늘을 많이 먹어서 그런지 (잠자리) 힘이 좋다.”는 등 수업과 전혀 관계없는 음담패설을 하곤 했다. 한 여학생이 강사가 보낸 메일을 확인하지 않자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까 남자 친구가 없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기도 했다고. 당시 수업을 듣던 10여명의 여학생들뿐 아니라 일부 남학생도 “여기가 미국도 아닌데 강사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며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대학 강사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준코를 보면서 많이 공감했어요.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학생에게 할 말이 있고 못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자격미달의 강사가 아직도 학생들에게 그런 이야기로 수업을 진행해 여학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거라고 생각하니 아찔해요.” 현재 전업 과외교사로 활동중인 조모(30·여)씨는 학생들의 성희롱도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중·고교 남학생은 물론 초등생들까지도 자신을 ‘여자’로 보고 성적인 발언을 내뱉어 당혹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그룹과외 도중 한 학생이 “선생님 첫 경험 얘기해 주세요.”라고 말을 던지면 나머지 학생들이 박장대소하며 수업 ‘판’을 깨거나 쉬는 시간에 자기들끼리 조씨의 몸매 이야기로 열을 올리는 일도 있다고. “학생들이 나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긴다고 느껴질 때가 당황스럽죠. 특히 제가 못 듣는 줄 알고 자기들끼리 성적 농담을 하면 부끄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직장생활 10년차인 최모(36·여)씨는 우리 사회가 ‘성희롱 왕국´ 아니냐는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편다. 섹시바 등 길거리만 나가도 여성을 상품화하는 업소가 즐비하고 ‘베트남 처녀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같은 현수막에 여자를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여자로 살면서 한두 번 성희롱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여자들이 직장에서 뭔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려고만 하면 곧 ‘그 여자 성적으로 문란하다더라.’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기도 해요. 얼마 전 직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는데,‘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어처구니없는 강사의 결론으로 끝을 맺었어요. 전문가·일반인 모두 진일보한 성 인식이 필요하다고 봐요.”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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