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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요부’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클레오파트라, 조국을 위해...

     빅토리아 베컴, 패리스 힐턴, 비욘세, 킴 카다시언, 린제이 로한...  결혼과 이혼, 출산 같은 사생활은 물론이고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즐겨 찾는 마사지숍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에서 사용한 포크나 한입 베어 물은 사과조차 인터넷 경매에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리는 그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셀레브러티’(유명인)라고 부른다.  셀레브러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도 존재했다.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와 같은 왕실의 여인들이 대표적이다. 미국과 유럽 호사가들의 최대 관심사가 ‘사교계의 여왕들’에 대한 얘기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 과연 실존인물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셀레브러티는 누구였을까.  이 물음에 관한 한 영국의 문학평론가 헤럴드 볼룸의 답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540년부터 1905년까지 발레 5편, 오페라 45편, 연극 77편으로 만들어진 여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왕이자 위대한 왕국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 바로 클레오파트라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이번 호에서 인류 최초의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를 집중 탐구해 보기로 했다.  역설적이게도 클레오파트라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던 그의 미모나 업적은 역사책 어느 곳에서도 자세하게 묘사돼 있지 않다. 심지어 그는 변변한 초상화나 조각조차 남기지 않았다. 클레오파트라는 ‘패자’(敗者)였고,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철저히 ‘승자’(勝者)의 시각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많은 고고학자와 미술사학자들이 클레오파트라를 찾기 위해 이집트와 이탈리아를 뒤지고 있다. 트로이의 경국지색 헬레나와 거대한 목마가 등장하는 어릴 적 동화의 실체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1822~1890). 그의 노력으로 트로이 유적이 실제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꿈을 좇는 사람들의 소망대로 클레오파트라의 무덤과 기록이 발견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여인과 마주하게 될까. 실존했지만, 아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만 살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와 가상 대담을 통해 해답의 실마리를 구해보자.  ‘인류 최초의 유명인’으로 불리는 당신과 내가 마주 앉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다. 2000년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당신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결국 내 치세 중에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쑥스럽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얼마나 인기가 있다는 건가.  웬만한 상품에는 종류마다 다 당신 이름이 붙어있다고 봐도 된다. 고급스런 상품은 물론이고 슬롯머신, 보드게임, 드라이클리닝 세제도 ‘클레오파트라’ 상표가 꽤 유명하다. 밸리댄서들 사이에선 여전히 인기있는 이름이고. 태양계의 한 소행성에도 ‘216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지중해 오염 감시 프로젝트의 명칭도 당신이름이다. 중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담배 상표도 당신 이름과 같다던데.  -그런가. 하지만 내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는 흔한 이름이었으니 별로 놀랍지는 않다.  뜻밖이다. 원래 왕의 이름은 아무나 못 쓰는 것 아닌가. 예전에 우리 한국에서도 왕의 이름에 쓰는 한자는 백성들이 못 쓰도록 했는데.  -그건 이집트 왕조의 전통을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내 정확한 이름은 ‘클레오파트라 7세’다. 내 앞에도 이미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가진 왕비나 여왕들이 여럿 있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뜻으로 우리 라지드 왕조에서 상당히 인기있는 이름이었다. 라지드 왕조는 혈통을 중시했기 때문에 내 묘비는 ‘엄청나게 많은 왕들로부터 나온 여왕’으로 시작한다.  그 시절에는 왕의 이름에 호칭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다는데, 당신도 별칭이 있었나.  -‘필로파토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뜻이다. 뭐 별칭이라고 해봐야 사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 일단 부모를 신격화한다. 그래야 그 다음 왕도 역시 신이 되지 않겠나. 그 결과 대부분 ‘필라델페’(형제와 누이를 사랑하는 사람)’라거나 ‘테오이 필로파토레스’(아버지를 사랑하는 신들)같은 식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왕조의 시조답게 ‘소테르’, 구원자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있었다.  지면 관계상 빨리 진행하자. 당신은 이집트인인가.  -그렇다. 이집트 여왕인데 당연한 것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한다. 실제로 당신은 그리스인 아닌가.  -(당황하며) 음... 사실 난 그리스인이면서도 이집트인이다.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과 동일한 혈통이다. 굳이 따지자면 마케도니아인이라고 해야겠지. 시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대왕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세운 알렉산드리아가 우리 왕조의 근거지였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 우리 왕조를 ‘마케도니아 왕조’로, 나는 ‘마케도니아 공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내가 혈통으로는 마케도니아인이고, 문화는 그리스인(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식 교육을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에서는 여성은 교육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왕족이었고,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였다.)이라고 해도 난 이집트의 기반 위에서 통치를 했다는 거다. 내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을 대표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인 전체를 통솔했기에 난 분명 이집트의 파라오다.  당신은 18세에 13세인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면서 여왕이 됐다. 말하자면 근친혼이었는데,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나.  -남동생과 결혼하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우리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모두 여동생과 결혼해 왕이 됐고 여동생들은 여왕이 됐다. ‘신’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이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방법 뿐이었다.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는 탁월한 정치가였다.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페르시아 왕조에 탄압받고 있는 상황에서, 정복을 멈추지 않았던 로마를 교묘히 이용해 페르시아를 몰아냈다. 처음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다만 로마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은 게 문제였다. 아버지가 줄리어스 시저에게 매년 바친 돈이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많았다. 결국 내가 왕좌에 올랐을 때는 파라오의 창고 따위는 별 의미가 없었다.  당신의 정치는 결국 로마 장군을 상대로 한 미인계 아니었나.  -그렇게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미인계를 쓴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다. 나와 동생은 친척과 친구, 궁정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상당히 효율적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그러나 이집트는 주변 국가들 입장에서 정말 탐나는 존재였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우리 이집트를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겠나. 당시 인구가 700만명(이중 그리스인이 150만명 정도를 차지했다)이나 됐고 엄청난 양의 곡물을 생산하는 농업국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고 해서 가만히 내버려둘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이집트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사실 그랬다. 국가는 파피루스나 기름, 발효 음료수 같은 품목들에 대해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이미 내 시대에는 이런 체계가 무너져 있었다. 무엇보다 관리들이 장부에다 무조건 ‘가득 차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게 문제였다. 실제로는 텅 비어있는 곳간이 서류에는 가득차 있다고 표기되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가 이집트의 발목을 잡았다. 로마와 로마 군단은 점점 다가오는데, 군대를 키울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로마를 이집트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국민들은 나 역시 믿지 않았다. 완전히 내우외환인 상황이었다.  결국 그래서 미인계를 썼다는 얘기 아닌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게 뭔가. 로마와 동맹을 맺거나, 로마 장군 한 명을 포섭할 수 있다면 싸우지 않아도 원하는 걸 얻고 이집트를 지킬 수 있지 않겠나. 무엇보다 그 로마 장군 한 명이 시저나 안토니우스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지 않나.  이쯤에서 오늘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트로이의 헬레나와 함께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람들의 머릿 속에 박혀 있다. 그런데, 실제 당신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 없다. 얼굴이 정확하게 나와 있는 초상화나 조각은 한 점도 없고, 찌그러진 동전에 옆 얼굴이 새겨진 게 전부다. 당신 정말 미인 맞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뭐랄까 미(美)를 가꾸는 데 많은 공을 들인 건 사실이다. 당나귀를 항상 데리고 다니면서 그 젖을 짜서 목욕도 했고. 내가 자부심 높은 여인이기는 하지만 내가 미인이네 아니네를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모은 정보에 따르면 경국지색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웅전’으로 유명한 그리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당신에 대해 “그의 미모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로 빼어난 것은 아니었다.”고 썼다. 다만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논쟁할 때 보여주는 설득력이나 의견을 개진할 때 드러나는 개성과 어우러져 도발적인 매력을 자아냈다.”고 했다. 결국 미모가 아닌 ‘말발’이 당신의 주무기였던 것 아닌가.  -내 목소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악기의 선율’이라거나 ‘듣기만 해도 즐거운 목소리’라는 평가를 내리기는 했다. 하지만 내 화술은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난 누구와 말할 때도 통역이 필요 없었다. 에티오피아인, 아프리카 동굴인, 히브리인, 아랍인, 시리아인, 메데스인, 파르티아인과도 그들의 말로 얘기할 수 있었다. 마케도니아어와 그리스어는 기본이었고, 당연히 내가 통치하는 이집트인들의 민간언어도 잘 할 수 있었다. 질 높은 교육과 유능한 스승들이 있었지만 결국 난 내 힘으로 ‘지적이고, 교양 높으며, 대화에 능란한 여왕’이 된 거다.  제왕 ‘시저’의 연인이었고,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안토니우스’와 함께 살았지만 지나칠 정도로 당신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자료조차 없는데. 심지어 전기 작가인 마이클 그랜트는 당신을 ‘생존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수많은 허구와 추문에 가려져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결국 내가 방패로 삼았던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 지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 셈이다. 좀 더 강대한 이집트를 만들어, 로마에 대적하고 이겼다면 그들 대신 내 이름이 모든 문서에 기록됐을 텐데 말이다.  당신의 실체를 찾기 위한 학자들의 노력이 드디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무덤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패배자이기 때문에 변변한 무덤조차 없을 거라고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의 후예인 이집트 정부조차도 타포시리스 마그나에 있는 오시리스 신전의 유적 속에서 곧 당신과 안토니우스의 무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신화나 전설은 그대로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신비로 포장돼 있는 영원한 안식에서 갑자기 깨어나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래도 패배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묻혀진 ‘나의 이집트’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후손들이 좀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이집트인인지 아닌지, 미인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말년에 난 ‘필로파트리스’라고 스스로를 칭했다. ‘조국을 사랑하는 왕비’라는 뜻이다. ‘요부’, ‘유혹의 화신’ 같은 불명예스런 이름도 난 부끄럽지 않다. 모두 내 조국을 위해 한 일이었다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내셔널지오그래픽 7월호  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마르탱 콜라·임현/ 해냄)  클레오파트라, 파라오의 사랑과 야망(에디트 플라마리옹·지현/ 시공사)  클레오파트라(아델 제라스·이정아/ 맑은가람)  클레오파트라(래티시아 앵그라오·김이정/ 종이비행기)
  • 생모는 ‘이모’ 양모가 ‘엄마’… 美 족보 꼬인다

    ‘누가 엄마고 누가 이모야?’ 불임 부부와 동성 부부 등이 늘면서 정자 기증을 통한 출산과 입양이 흔해진 미국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전통적 가족 관계가 허물어지고 가계도가 복잡해지면서 개인의 정체성 혼란은 물론 상속 등을 둘러싼 새로운 분쟁거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인 자매인 로라 애슈모어와 제니퍼 윌리엄스가 미국의 달라진 가정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6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언니와 동생으로 단순했던 이들 관계는 ‘한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복잡해졌다. 애슈모어가 결혼한 뒤 아이를 갖지 못해 고생하자 언니인 윌리엄스가 대리모를 자처, 정자은행으로부터 정자를 기증받아 딸 ‘맬러리’를 낳았고, 동생 애슈모어가 이 아기를 입양한 것이다. 윌리엄스에게 맬러리는 배 아파 낳은 딸이었지만 법적으로는 조카였던 탓에 이들 자매는 가족 관계 설정을 두고 몇 달 간 고민해야 했다. 그러고는 결국 생모(生母)인 윌리엄스가 이모, 양모(養母)인 애슈모어가 엄마가 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엄마’, ‘이모’의 호칭 문제를 정리하자 더 복잡한 골칫거리가 이들 자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인 윌리엄스는 또 다른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인 재미슨을 낳았다. 재미슨과 맬러리는 생물학적으로 엄마가 같은 남매지만 법적으로는 사촌이 된다. 가족 구성이 복잡해지면서 학교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가족 관계를 가르치는 데 애를 먹는다. 뉴욕시 브롱코스 지역의 상담교사인 코헨은 “학교 선생님들이 가족관계를 가르치려면 대리모, 정자 기증인, 동성 부모 등에 대한 얘기도 준비해야 한다.”고 전했다. 실제 미국 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비혼(非婚) 가구가 결혼한 가구보다 더 많아졌고 많은 동성 부부가 대리모나 정자 기증자, 입양 등을 통해 아이를 갖고 있다. 또 미국에서 가장 큰 정자은행인 캘리포니아 정자은행은 2009년 자신의 고객 중 레즈비언 비율이 3분의1에 이른다고 밝혔다. 10년 전 7%에 비해 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이제 미국에서는 윌리엄스·애슈모어 자매 같은 고민을 하는 가정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시대 변화를 반영해 출생증명서도 바뀌고 있다. 증명서에는 당사자가 생식 기술을 이용해 태어났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 등을 꼼꼼히 적도록 돼 있다. 가계도가 복잡해지면서 호칭 문제뿐 아니라 상속 등 사회적 논란이 될 만한 난제도 떠오르고 있다. 멜린드 러츠 번 미국 족보학자협회 회장은 “가족들이 생물학적 친척이 사망했을 때 누가 상속을 받느냐 궁금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복잡한 가족 관계를 알게 되면서 느끼는 고통 등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외교부, 첫 파견 판사 직급 고민 중

    외교부, 첫 파견 판사 직급 고민 중

    외교통상부가 이르면 이달 말쯤 외교부 본부로 파견 근무를 나올 예정인 정재민(35) 판사(대구지방법원 가정지원 소속)에게 부여할 직급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사법부인 법원에서 행정부인 외교부로 파견을 오는 첫번째 사례이기 때문에 외교부 내에서도 정 판사에 대한 직책 등 예우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분위기다. 4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외교부는 독도 관련 소설을 쓰는 등 독도 문제 전문가로 인정 받은 정 판사를 1년 간 국제법률국 산하 영토해양과로 스카우트하면서, 소속 과에서 그에게 부여할 직급 등 대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사법부에서 오는 첫 파견인 만큼 그의 전문성 등을 감안해 직책을 부여해야 하는데, 소속 과에서의 역할 등을 고려할 때 딱 맞는 직급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법고시에 붙어 판사가 되면 바로 4급 상당이 되는데, 외교부를 기준으로 하면 1등 서기관으로, 본부 과에서는 차석 위치가 된다. 따라서 정 판사의 경력을 고려하면 외교부에서는 과장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에서 법률자문관 등 별도 직책으로 파견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담당 과로 배치되기 때문에 이미 과장이 있는 상황에서 과장을 2명 두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 판사를 우선 차석 자리로 배치하되 연구 업무 등 특수한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각 과의 차석은 과의 살림살이도 맡아야 하기 때문에 정 판사가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과장이든 차석이든 직급과 상관없이 외교부 내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직급이 어떻게 정해지든 상관없이 호칭은 ‘정 판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사법부와 외교부가 ‘윈윈’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김무열 “5000원도 비싸, 무료공연 선뵈고 싶어”

    김무열 “5000원도 비싸, 무료공연 선뵈고 싶어”

    김무열(29). 그를 지칭할 때는 뮤지컬 배우, 영화배우, 탤런트, 연극배우 등 여러 호칭이 사용된다. 장르야 어떻든, 그는 배우다. 특히 뮤지컬계에선 존재감이 남다르다. 우선 키 183㎝에 몸무게 71㎏의 ‘모델 몸매’다. 이미지도 요즘 대세인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이다. 하지만 그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멋진 외향보다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열정과 성실함에 더 반한다. 조직도 있다. 이름하여 ‘반상회’. 김무열이 신인이던 2006년, 동료 배우 김대명, 한지상과 함께 결성한 극단이다. 초심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해마다 사비를 털어 소극장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2007년 ‘강택구’를 시작으로 ‘물고기남자’(2008), ‘동물원이야기’(2009)를 선보였다. 올해는 일제 말기 소록도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 ‘한 놈, 두 놈 삑구타고’(이하 ‘한 놈’)를 선보인다. 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더씨어터에서다. 공연 준비로 분주한 그를 지난 28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10분 만에 전회·전석 매진됐다고 들었다. 가격이 착한(5000원) 덕분도 있겠지만 김무열 팬클럽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 아닌가. -하하. ‘반상회’의 취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한 때문 아닐까. 티켓 추가 판매 요청이 많아 매회 20석씩 보조석을 놓기로 했다. 반상회 공연을 꾸준히 사랑해 주시는 관객들을 위해 예년보다 좀 더 크고 좌석이 편한 극장을 골랐다. 반상회가 이제 5년 됐는데 10년은 넘겨야 더 의미 있는 모임이 될 것 같다. 10년, 20년, 늘 하던 대로 지킬 것은 지켜 나가며 (관객에게) 보답하고 싶다. →작년에는 왜 건너 뛰었는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절친했던 (박)용하 형도 세상을 떠났다(김무열은 박용하가 생전에 세웠던 기획사의 소속 배우였다. 고인과 영화 ‘작전’에도 함께 출연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좀 쉬고 싶었다. 반상회에 불참했는데 참고 기다려준 두 멤버와 관객들에게 빚을 졌다. ●“초심 잊지말자” 동료 김대명·한지상과 ‘반상회’ 결성 →‘한 놈’ 원작은 이만희 작가의 ‘호적등본’이다. 원작을 읽는 순간 올해는 무조건 이 작품이다, 했다는데. -작품이 갖고 있는 힘이 너무 좋았다. 세 명이 각각 10여편씩 읽고 검토했지만 이 작품으로 단박에 의기투합했다. 대본 연습 때 감정을 빼고 읽었는데도 울었다. (공연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워낙 힘 있는 원작… 대본연습 때 감정빼고 읽어도 눈물이” →등장인물, 공교롭게 세 남자다. -우연의 일치다(웃음). 세 남자 모두 한센병 환자다. 한 남자는 소록도에서 탈출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또 한 남자는 현실을 담담하게 관조하고, 또 다른 한 남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이야기다. →극 중 다른 두 남자(김대명, 윤석원)와의 호흡은 어떤가. -군대 간 한지상씨 대신에 윤석원씨가 들어왔는데 워낙 친하다 보니 서로의 단점을 거리낌없이 지적한다. 그러다가 싸운 적도 많다. 어제도 밤 늦게까지 연습하다가 버스가 끊겨 방을 잡아 같이 잤는데 서로의 연기에 간섭하다가 또 싸웠다. 그래도 너무 좋다. 하하.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매일매일이 에피소드다. 요즘은 (연습장 근처의) 낙산공원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은근히 재밌다. →연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만능 엔터테이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르는. -장르보다는 반상회 공연에 가장 마음이 많이 간다. 욕심이 넘쳐 점점 바라는 게 많아져 큰일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넘어가는 과도기 같기도 하고 사춘기 같은 느낌도 있다. →관람료가 파격적이다. -좀 더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정했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시간적 비용을 생각하면 5000원도 비쌀 수 있다. 공연이 더 잘 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무료공연을 하고 싶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구하라 송지효 도발…버럭 송지효 “내가 열살 언니다”

    구하라 송지효 도발…버럭 송지효 “내가 열살 언니다”

    구하라 송지효 도발이 화를 불렀다. 구하라의 반말 도발에 송지효가 ‘불량지효’로 변신 버럭 공격을 퍼부은 것. 26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에서 구하라와 노사연이 게스트로 출연해 ‘런닝맨’ 멤버들과 두 명씩 짝을 이뤄 ‘여왕벌 레이스’ 미션을 펼쳤다. 북서울 꿈의 숲(서울 강북구 오동근린공원)을 배경으로 진행된 물총 게임은 상대방의 이름표에 물총으로 얼룩을 남겨야 승리하는 방식. 구하라 송지효 도발은 그룹 카라 멤버 구하라가 배우 송지효에게 반말 투 호칭을 쓰면서 시작됐다. 이어 두 사람은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며 재미를 선사했다. 분홍색 우산으로 이름표를 가린 구하라는 송지효가 시선을 돌린 사이 물총을 쏘며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송지효에게 “지효가 달라졌다”며 뒷걸음질 쳤다. 구하라의 반말 도발에 송지효는 “지효가 달라졌다고? 내가 너보다 열 살 언니다”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구하라의 우산을 잡아챈 뒤 거칠게 물총 공격을 퍼부어 웃음을 자아냈다. 구하라의 보디가드 김종국은 하라가 위기에 처하자 몰래 송지효의 이름표에 물총을 쏴 결국 우승은 구하라가 차지했다.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구하라 송지효 도발, 딱 내동생 같아”, “버럭 송지효 매력 완전 빠졌다”, “김종국 너무해” 등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소비자 인지도·오인 여부 따라 ‘엇갈린 운명’

    소비자 인지도·오인 여부 따라 ‘엇갈린 운명’

    카페베네, 장수돌침대, 페라가모, 아디다스, 라코스테…. 모두 상표권 분쟁으로 법정에 선 브랜드다.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브랜드의 이름, 디자인 등 상표권을 둘러싼 분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상표, 디자인 등의 산업재산권과 문화, 음악, 미술 등의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 관련 민사소송도 매년 늘어 2006년 90건에서 지난해 222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렇다면 법원은 어떤 기준으로 상표권을 판단할까. 상표권은 입체적 형상, 색채, 홀로그램, 동작 등 다양하지만 실제 소송은 디자인과 상품명이 대부분이다. 이를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되는 것은 ‘일반 소비자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이다. 누구나 아는 단어라면 독자적 상표로 인정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외국어는 독자성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뜻이다. ●식별력 있는 상표인가  경기도 지역에서 ‘피자베네’라는 가게를 운영하던 최모씨는 지난해 커피전문점 ‘카페베네’를 상대로 서비스표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했다. ‘베네’(bene)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선’(善)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국내 일반 수요자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식별력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1심 재판부는 “‘베네’라는 문자를 포함하는 레스토랑이 다수 존재하고, 오히려 수요자들이 어떤 관념을 도출해 내기 어려워 식별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최씨는 항소했고 항소심 결과는 다르게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4부(부장 이기택)는 최씨가 카페베네 측으로부터 현금 5000만원을 지급받고 상표권을 이전하라는 조정결정을 내렸다.  이처럼 일반 상표가 유명 브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드물지만, 반대로 유명 상표가 일반 상표를 상대로 하거나 대기업들끼리 상표권을 지키기 위한 소송은 흔하다. 하림은 교촌의 ‘핫골드윙’이 자사의 ‘핫윙’ 상표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두 상표의 이름은 비슷하지만, 핫윙이라는 단어가 닭 날개를 지칭하는 단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장수돌침대도 마찬가지다. ㈜장수산업은 대리점을 운영하던 직원이 ㈜장수돌침대를 차려서 나가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재판부는 “‘장수돌침대’는 제품의 종류를 나타내는 ‘돌침대’에 오래 산다는 뜻의 ‘장수’를 결합시킨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이름이 비슷해 상표권 침해라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 LG생활건강의 샴푸 브랜드 리엔(ReEn)은 웅진코웨이 화장품 브랜드 리엔케이(Re:NK)를 상대로 한 상표권 침해금지 소송에서 승소했다. ●혼동할 우려가 있나  디자인은 상표명보다 난해하다. 1심과 2심 판결이 반대로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강아지 모양 액세서리로 유명한 아가타는 스와로브스키가 유사한 모양의 목걸이 펜던트를 판매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두 제품이 외관이나 관념이 유사해 수요자가 오인·혼동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두 상표가 외관상 유사하지 않고, 유사 상품에 다양한 형태의 개나 강아지를 형상화한 상표가 존재하는 점에 비춰 볼 때 수요자가 오인·혼동할 우려가 없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패션브랜드 라코스테와 싱가포르 크로커다일이 악어 로고를 두고 벌인 소송에서는 라코스테가 이겼다. 대법원은 “외관상 차이는 있지만 호칭과 관념이 동일하고, 상표 위치가 티셔츠 왼쪽 가슴으로 동일해 수요자가 혼동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페라가모가 금강제화를 상대로 구두 장식 오메가(Ω) 상표를 침해했다며 낸 소송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금강 제품의 장식은 약간 변형됐지만 전체적으로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금강은 즉각 항소했고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아디다스의 3선 줄도 독일 본사가 인터넷 쇼핑몰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스포츠 의류 수요자 대다수가 이 표시를 아디다스로 인식한다.”면서 승소 판결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씨줄날줄] 유엔사무총장/주병철 논설위원

    1919년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이 창설될 때 사무국 총괄자 호칭을 ‘총서기 혹은 서기장’ ‘의장’으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난상토론 끝에 유연하고 모호한 ‘사무총장’(Secretary-General of the United Nations)으로 했다. 1945년 유엔이 출범하면서 산파역을 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세계의 중재자’란 표현을 원했지만 종교계에서 사용하고 있어 못 바꿨다. ‘사무총장’이 국제기구 수장의 직함으로는 너무 겸손한 호칭이라는 게 루스벨트의 생각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의 모든 기관과 협의하며 권고할 수 있고 국제분쟁 예방을 위한 조정·중재 업무를 맡는다. 예우는 세계 최고의 외교관으로 국제사회에서 국가원수 내지 행정수반에 준한다. 사무국 직원(1만 6000여명)과 산하기관까지 포함해 4만여명의 인사권을 갖는다. 연봉은 22만 7254달러로 우리나라 대통령(1억 7909만 4000원)보다 많고 미국 대통령(40만 달러)보다 적다. 유엔 사무총장의 리더십은 출신 지역과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제2대 사무총장인 다그 함마르셸드는 ‘빈 공간이 있으면 채워라.’는 논리를 폈다. 유엔 사무총장은 평화와 안전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유엔의 법적 기구라는 것이다. 미얀마 출신의 제3대 사무총장인 우 탄트는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지원 방안 등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평직원에서 사무총장에 오른 제7대 코피 아난은 국제사회가 방관하지 말고 ‘인도주의적 간섭’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유엔 사무총장이 갖는 별명도 다채롭다. ‘평형추’, ‘블랙박스’ 외에 유엔 사무총장의 영문 이니셜을 본뜬 희생양(Scape-Goat)도 있다. 올 10월로 임기 5년을 채우는 제8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그제 ‘더 신뢰받는 유엔으로 거듭나겠다.’며 연임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2007년 취임 초반에는 설득과 중재를 앞세운 그의 리더십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발로 뛰는 그의 리더십을 회원국들이 믿고 따르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어려운 질문을 요리조리 잘 피해 간다고 기자들이 붙여줬다고 한다. 유엔은 지금 다양성을 존중하고 융합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럴 때 반 사무총장의 조정자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본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출신으로 북한 문제에 관해 그만큼 더 좋은 관점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도 없다. 반 사무총장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장기하와 얼굴들’ 의 장기하, 전격 감독 데뷔

    ‘장기하와 얼굴들’ 의 장기하, 전격 감독 데뷔

    독특한 음악 색깔로 마니아 팬층을 보유한 뮤지션 장기하가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한다. 정규 2집 ;장기하와 얼굴들‘ 타이틀 곡인 ’TV를 봤네‘와 ’그렇고 그런사이‘의 뮤직비디오는 장기하가 연기와 연출을 도맡아 색다른 느낌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집 발매에 앞서 일주일 먼저 공개될 ‘TV를 봤네’는 장기하 특유의 말하듯이 노래하는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원씬/원컷 (one scene/one cut)으로 장기하가 혼자 노래하는 모습을 담았다. 능청스럽기도 하고 구슬프기도 한 장기하의 표정이 노래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는 게 이 뮤직비디오의 핵심이다. 또 다른 타이틀곡 ‘그렇고 그런 사이’의 뮤직비디오는 2집 콘셉트에 맞게 밴드 멤버가 모두 출연한다. 멤버들이 선보이는 일명 ‘손가락 댄스’가 신나는 노래와 함께 적절하게 어우러지는 것이 주요 관람 포인트. 장기하의 감독 데뷔작에는 조상윤 촬영감독(불신지옥/체포왕), 우승미 미술감독(살인의 추억/페스티발), 홍승철 조명감독(김종욱 찾기/심야의 FM) 등 평소 그의 음악적 행보에 관심을 가져온 영화 스태프 들이 대거 참여했다. 장기하는 “평소 음악과 영상이 어우러지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서 “영상은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라 낯설지만 난생 처음 ‘장감독’이라는 호칭을 듣고 오랜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아 감개무량했다.”고 밝혔다. ‘TV를 봤네’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수록된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은 6월 9일 발매된다. 그에 앞서5월 27일부터 각 매장에서 예약 판매가 진행되고 있다. 두 곡의 뮤직비디오는 각각 6월 2일 과 9일 공개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씨줄날줄] 각하(閣下) /이춘규 논설위원

    최고권력자 황제는 제국 군주의 존호다. 동양 황제의 어원은 중국 건국신화의 ‘삼황오제’(三皇五帝)에서 비롯된다. 하위개념 왕은 상나라·주나라 군주가 칭했다. 왕을 칭하는 자가 많아 가치가 폭락하자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나라 시황이 황제(皇帝)라고 처음 칭한다. 황제 난립시대도 있었지만, 청나라까지 사용된다. 당 고종은 ‘천황’(天皇)이란 칭호도 사용했다. 우리는 고조선부터 왕을 사용했다. 조선 고종은 대한제국 황제로 칭해졌다. 각하(閣下)는 관직·외교에서 사용하는 경칭 중 하나다. 많은 나라에서 최고권력자나 고위관리가 각하(excellency)로 호칭된다. 주로 외교 의전용으로 사용된다. 외국의 군주 이외에도 대통령 등 국가원수나 각료, 그리고 대사에서 영사까지 고위 외교사절에 대한 경칭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귀족에 대한 경칭으로도 사용된다. 국제 외교에서는 각하를 영어인 오너러블(honorable)로도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국 초기에는 각하라는 호칭이 폭넓게 사용됐다. 인촌 김성수는 부통령에게도 각하를 사용하자 1955년 비민주적이라면서 각하 호칭 폐지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엔 대통령만이 독점하게 된다. 1979년 10·26 때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경호실장을 겨냥해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라고 했다는 진술이 있다. 현장에 있던 가수 심수봉이 “각하, 괜찮으세요.”라고 했다는 법정진술도 전해지며 각하가 부각됐다. 문민정부까지 사용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청와대는 각하라는 호칭을 폐기했다. 각하가 권위주의적이기 때문에 ‘대통령님’이라고 하겠다고 당시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이 밝히자 청와대 출입기자나 국민들은 정권 교체를 실감하는 용어로 받아들였다. 이후 참여정부로 이어지며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이 굳어지고 각하는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사회 일각에서는 각하라는 호칭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지도자 동지’ ‘위대한 영도자’ ‘혁명의 수뇌부’라는 경칭과 함께 ‘김정일 각하’라고 칭한단다. 북한에서 각하는 ‘외교 관계에서 지위가 높은 인사들에게 쓰는 공식적인 존칭’이기는 하다. 그런데 북한의 대남 심리전 방송이 김일성 주석 사망 다음 날인 1994년 7월 9일 ‘친애하는 김정일 각하’라고 호칭한 뒤 가끔 매체들이 사용한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권위적인 직책명을 배격하는데, 이례적이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사설] 이채필 후보자 의혹 투명하게 정리해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돈봉투 수수 논란에 휩싸였다. 2003년 노동부 총무과장 시절 인사청탁과 함께 부하 직원 김모씨로부터 1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다. 그동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숱한 자질 논란이 제기돼 왔지만 수뢰 의혹은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인사청문회에서도 핵심 이슈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폭발성을 안고 있다. 이 후보자는 의혹을 극구 부인하는 만큼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이번 논란을 살펴보면 과연 이 후보자가 수뢰, 즉 인사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았느냐가 핵심이다. 먼저 김씨는 이 후보자의 자택을 찾아가 이 후보자의 부인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가 직접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졌다. 남은 의문은 이 후보자가 언제 돈을 돌려줬느냐 하는 것이며, 사실상 이것이 수뢰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이 후보자가 곧바로 돌려줬다면 수뢰 의사가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반대로 한동안 보관하고 있었다면 흑심을 품었다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씨는 서너달 뒤 되돌려 받았다고, 이 후보자는 다음 날 반환했다고 주장하는 만큼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하면 된다. 인사청문회는 물론이고 검찰이나 경찰 수사를 통해서라도 밝혀내야 한다. 이 후보자가 되돌려줄 당시 민원실 직원 3~4명이 지켜봤다고 하니 이들에 대한 조사도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 후보자와 김씨를 불러 대질 신문도 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퇴진 여부를 정하면 된다. 이 후보자는 옛 노동부를 포함해 고용노동부에서는 처음으로 내부 승진으로 장관 후보에 올랐다. 30년 가까이 고용노동부에 몸담아 노동행정의 달인이란 호칭까지 얻었다. 그런 그가 참담한 심경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에는 정정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본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공방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국내 문단에 작가 부부는 꽤 된다. 얼핏 떠올려 봐도 구중서(평론)-김윤희(시), 조정래(소설)-김초혜(시)부터 시작해 남진우(시)-신경숙(소설), 홍용희(평론)-한강(소설) 등을 거쳐 김도언(소설)-김숨(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금세 여러 쌍들이 꼽아진다. 그렇다면 형제 작가는? 김원일(소설)-김원우(소설), 황현산(평론)-황정산(시), 박용재(시)-박용하(시) 등 흔하지는 않지만 드문 것 또한 아니다. 여기 쌍둥이 자매 소설가가 있다. 희귀한 예다. 스스로 “우리는 싱크로율(일치율) 95%예요.”라고 깔깔거리는 서른다섯 살의 장은진, 김희진이다. 30분 먼저 세상에 나와 언니가 된 장은진이 200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먼저 등단하면서 혹여 헷갈리지 말라고 성을 ‘김’에서 ‘장’으로 바꿨다. 문장(文章)의 ‘장’이거나 장편소설의 ‘장’(長)이라는 뜻이란다. “장이라는 성도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천연덕스레 거드는 동생 김희진은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들은 지난해 같은 인터넷 웹진(인터파크)에서 나란히 연재했던 작품을 나란히 같은 출판사(자음과모음)를 통해 내놓았다. 언니의 작품은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동생의 작품은 ‘옷의 시간들’이다. 지난 20일 책이 나온 직후 쌍둥이 소설가들과 만나 나눈 유쾌한 대화를 옮겨 본다. 장은진(이하 은진) 광주 집 한방에서 같이 살고, 같이 소설 써요. 속옷하고 신발 빼고는 다 함께 쓰죠. 소설 구상과 창작 과정조차도 나누죠. 김희진(이하 희진) 그래도 소설 쓰는 장소는 달라요. 얘-두 사람의 호칭은 ‘야’, ‘너’다. 자매라기보다 친구에 가깝다-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엄청 크거든요. 난 안 써져서 괴로운데 그 소리까지 들으면 더 기분 나빠져요. 그래서 얘는 방에서 쓰고, 저는 거실에서 써요. 은진 제가 좀 세게 치는 편이긴 해요. 헤헤. 희진 얘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좀 엉뚱해요. 학교(목포대 국문과)에서 단편소설 써 오라는 과제가 있어서 끙끙거리는데, 얘가 쳐다보더니 ‘꼴 같지 않은 짓을 하고 있네.’ 하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래서 “너도 써봐.”라고 권했죠. 은진 전공(전남대 지리학과)은 달랐지만 바로 그날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희진 여차저차 설명한 뒤 그 소설을 대학 교수님(유금호)께 보여 드렸더니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보니까 제가 쓴 것보다 낫더라고요. 위기감을 느꼈지요. 은진 지금도 위기감 느끼는 것은 아니고? 하하. 장은진은 소설집 한 권과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등 세 권의 소설을 이미 낸 상태다. 2009년에는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반면 김희진은 등단이 늦은 만큼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이 유일한 작품이다. 뼈 있는 농담으로 들린다. 진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까. 희진 지난해 연재하는 동안 숫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댓글 숫자, 조회 수 등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라고요. 은진 서로 눈치 보고 했죠. 하나라도 제 댓글이 많으면 희진이는 기분 안 좋아했고, 저는 조금 미안하고 그랬고요. 희진 얘는 이미 책을 3권 냈으니까, 뭐, 그럴 수도…. 그래도 속으로는 쟤 소설이 내 것보다 뭐가 낫다고 그래 하는 생각은 여전했지요. 은진 초기 작품들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각자 길을 찾아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진 (상대방의 장점은 뭐냐고 묻자) 은진이는 문장이 맛깔스럽고, 작품이 단정해요. 은진 희진이는 에피소드가 신선하고, 대사도 유머러스하고, 사유하는 스타일도 저보다 나아요. 저희는 소설 창작 과정에 대해서도 늘 상의해요. 서로 첫 독자죠. 희진 설령 내가 쓴 게 아무리 형편없어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근데 우리끼리는 가차 없이 말해도 괜찮아요. 상대방 컴퓨터 비밀번호까지 다 알고 있어요. 은진 성장과정도 같고 성격, 취향, 심지어 좋아하는 이상형까지 같으니까요. 싸울 일은 없겠다. 과연 그럴까. 희진 한번 다투면 일주일에서 한달까지 서로 말도 안 하곤 해요.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노트북에 있는 소설을 몽땅 지워 버리면 쟤는 끝장이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화해하고 난 뒤 내가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하려고 했더니 바로 말을 가로채더라고요. 은진 제가 그랬어요. “너, 내 소설 다 지워 버리려고 했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동글동글한 얼굴에 짧은 단발머리, 까만 뿔테 안경, 전라도 사투리 담긴 음색까지 거의 비슷하다. 외모만으로는 영 구별이 쉽지 않다. “그냥 복제인간이 다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라고 김희진이 말하자 “공동 창작 소설은 쉽지 않겠지만 나중에 영화 시나리오는 한번 같이 써보려고요.”라고 장은진이 덧붙인다. 서로 거들고 다투며 성장하는 사이가 분명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윤곽 드러나는 사법개혁안] 존폐 기로에 선 중수부… ‘스타검사’ 후일담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20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명운을 최종 결정한다. 중수부가 위치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11층은 현대사의 줄기를 바꾼 곳이다. 비리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뇌물 기업인들은 한번 이곳에 들어오면 다시 본래 모습으로 현관을 나서기 어려웠다. 검찰 최고 엘리트로 인정 받는 검사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세도가가 치열하게 맞붙은 전장이었다. 하지만 부실수사 등으로 특검을 부르는 등 공과가 교차한다. 중수부 출신 역대 ‘스타 검사’들의 후일담을 추적해 본다. ●승승장구 1981년 4월 발족된 중수부의 첫 작품은 1982년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어음 사기 사건.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으로 불렸던 이 사건에서 ‘스타 검사’가 양산됐다. 다수가 평검사에서 주목받는 스타로 떠올랐다. 서울지검에서 중수부로 파견됐던 이명재, 김성호, 안대희, 박주선 검사는 훗날 검찰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명재 검사는 이후 승승장구, 1998년 중수부장이 됐다. 2002년에는 검찰총장까지 올랐다. 김성호 검사는 중수부 과장을 지내다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2006년 법무부 장관이 됐다. 2년 뒤에는 국정원장을 맡았다. 안대희 검사 역시 2003년 중수부장을 맡아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총지휘했고, 2006년 대법관이 됐다. 중수부가 처음으로 대통령 가족에게 ‘사정의 칼’을 댄 사건은 1988년의 5공 비리 사건. 장세동 전 안기부장 등 전두환 전 대통령 측근 47명이 구속됐으며, 이때부터 정권 실세도 검찰의 ‘칼날’에 떨게 됐다. ‘스타 검사’도 많이 나왔다. 중수2과장 신승남 검사는 대검 차장을 거쳐, 2001년 검찰총장이 됐다. 중수4과장 이종찬 검사는 1999년 중수부장을 맡았고, 2008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됐다. 중수부에 합류한 서울지검 특수부장들도 훗날 비약했다. 심재륜 특수1부장은 1997년 중수부장이 돼 한보비리 수사를 총지휘했고, 최경원 특수2부장은 법무부장관까지 올랐다. 강신욱 특수3부장은 2000~2006년 대법관을 지냈다. 하지만 한보비리에서 미적거리는 수사로 최병국 중수부장이 도중하차했다. 중수부가 1993년 진행한 율곡사업비리 사건에서 주목받았던 검사는 함승희 검찰연구관이었다. 당시 ‘수표 추적의 귀재’로 불렸던 그는 이듬해 서산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고, 이후 정계에 입문해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7년 5월 15일 대검 특별조사실. ‘한보비리’에 연루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방에 들어섰다. “들어오기 전 아버님과 통화했는데, 조사 잘 받고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나 주임검사인 이훈규 중수3과장은 “당신한테는 아버님이지만, 국민에게는 대통령이오. 공무원으로서 듣기 거북하니 그런 표현은 삼가 주십시오.”라며 냉담하게 응대했다. 현철씨를 구속한 이 과장은 2008년 인천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중수부에서 활동한 검사 상당수가 검찰에 남아 있다. 전직 대통령 비자금을 수사한 김진태 검사는 현재 대구지검장을 맡고 있다. 한보비리 수사팀에 파견됐던 홍만표 검사는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김경수 검사는 서울고검 형사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우여곡절 중수부 ‘검객’에서 이름을 떨쳤지만, 이후 평탄치 못한 길을 걸었던 검사들도 적지 않다. 장영자 사건에서 중수4과장으로 활약했던 신건 검사는 중수부장과 법무부 차관을 거쳐 국정원장에 올랐지만,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에 연루돼 후배들에게 조사를 받아야 했다. 신 검사는 현재는 18대 국회의원이 됐다. 박주선 검사는 1998년 대통령비서실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되는 등 승승장구하다 이듬해 ‘옷 로비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그는 ‘세번 구속 세번 무죄’라는 이른바 ‘3종3금’의 시련을 겪었다. 2008년 총선에 출마해 광주 동구에서 전국 최고인 88.73%의 득표율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신승남 검사는 2002년 검찰총장 재임 시절 동생이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돼 중도 퇴진해 특검을 불러왔다. 이후 수사기밀 누설 혐의로 중수부에 소환돼 13시간 동안 후배에게 밤샘 조사를 받았다. 2007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아 유죄가 확정됐다. 중수부에서 활약한 검사들이 꼭 출세가도를 질주했던 건 아니다. 장영자 사건의 중수2과장이자 주임검사였던 성민경 검사는 ‘비운’의 스타다. 성 검사는 ‘전형적인 전투형 검사’라는 호칭과 함께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검사장에 오르지 못했다. 1987년 서울 북부지청장에서 승진 대열에서 탈락, 옷을 벗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해병대사령관에게 인사·예산권 준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오는 21일 전체회의에서 해병대 인사와 예산 독립성 등을 대폭 강화한 내용의 국군조직법과 군인사법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국방위 법안심사소위가 지난 15일 관련법 개정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킴에 따라 전체회의 통과도 순탄할 전망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군인사법에 규정된 장교 임용과 중요 부서장, 병과장 임명권과 진급권 등 해군 참모총장의 권한을 해병대사령관이 위임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의 인사와 예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새로 임관하는 해병 초급장교의 호칭은 기존 해군소위에서 해병 소위로 바뀌고 해군참모총장 명의로 발급되는 해병들의 전역증명서도 해병대사령관 명의로 바뀐다. 이와 함께 해병대에 필요한 전력도 해군과 분리해 독자적으로 요구하고 국방부와 합참의 승인을 받게 된다. 이 밖에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육·해·공군참모총장이 위원인 합동참모회의에 배석, 의견을 낼 수 있게 된다. 군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합동참모회의에서 해병대의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개정안은 해병대의 임무를 ‘상륙작전’으로 규정했다. 현행 국군조직법상 해상 및 상륙작전이 해군의 임무로 포함돼 있던 것을 해병대에도 별도의 임무로 명확히 주어진 셈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다큐야? 예능이야?

    다큐야? 예능이야?

    학계에만 ‘통섭’이 있는 것이 아니다. 방송가에도 장르 간 벽을 허무는 ‘크로스오버’가 유행이다. 다큐멘터리가 예능과 접목되고, 예능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와 통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SBS ‘짝’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혼 남녀가 자신의 짝을 찾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올 1월 신년 특집 3부작으로 방송한 뒤 반응이 좋아 지난달부터 매주 수요일 밤 11시 15분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예능 요소가 대거 가미된 것이 눈에 띄는 특징이다. 가수 싸이가 진행자 격인 ‘연애 컨설턴트’로 투입됐다. 7명의 남자와 5명의 여자가 외딴 애정촌에 모여 서로의 이상형을 찾아가는 설정은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인 ‘짝짓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의 속성을 버리지는 않는다. 출연자 이름 대신 남·여 1, 2, 3, 4호라는 호칭을 붙였다. 개인보다는 그들의 심리나 행동에 초점을 맞추려는 의도다. 감정을 배제한 다큐멘터리 특유의 내레이션(해설)도 빠지지 않는다. SBS는 올 초 예능국과 교양국을 아예 합쳐 제작국으로 통합했다. ‘짝’은 그 첫 실험작이다. KBS, MBC도 다큐멘터리 연성화가 두드러진다. 연예인을 내레이터에 과감히 기용하는가 하면 생활 밀착형 소재도 주저 없이 채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 김남길, ‘아프리카의 눈물’에 현빈을 내레이터로 기용해 재미를 톡톡히 봤던 MBC는 6월 초 방송되는 50주년 특집 다큐 시리즈 ‘타임’ 내레이터에도 연예인을 발탁했다. 첫 회 ‘새드 무비를 아시나요?’의 내레이션을 배우 공효진에게 맡긴 것. 술, 소리, 비밀, 돈 등 각기 다른 주제어를 통해 대한민국 근현대사 50년을 돌아보는 이 다큐멘터리는 이명세, 권칠인, 김현석, 류승완 등 4명의 영화감독이 연출에 참여한다. ‘전화이야기’편은 아예 드라마의 형태로 제작된다. MBC 측은 “기존 다큐의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 각계의 명사, 작가 등이 스토리 발굴 단계부터 참여하는 신개념 하이브리드 다큐”라고 강조했다. 앞서 SBS도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에 고현정을 내레이터로 기용했다. 다큐멘터리에 미국 할리우드 액션영화 촬영 방식을 도입한 예도 있다. 케이블 채널 tvN이 오는 15일과 22일 밤 9시에 방영하는 ‘익스트림 다큐:인간 vs 고래’는 감독이 직접 인도네시아 오지에 들어가 인간과 고래의 처절한 승부 현장을 현실감 있게 담았다. tvN 교양국 관계자는 “‘방송 다큐멘터리도 할리우드 액션영화처럼 흥미진진하게 만들 수 없을까’라는 실험적 질문에서 출발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점점 다큐멘터리화되고 있다. MBC ‘무한도전’, KBS ‘1박2일’ 등 대표적 예능 프로그램은 대부분 다큐멘터리 요소를 접목한 것들이다. 지리산 등반, 설악산 종주, 레슬링 도전 등이 그 예다. 특별한 대본이나 연출 없이 출연자들이 주어진 임무(미션)를 수행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형식도 다큐멘터리에서 빌려왔다. 요즘 최고 인기인 오디션 프로그램도 다큐멘터리 요소가 흥행 성패를 좌우할 정도다. 케이블 채널 엠넷의 ‘슈퍼스타 K’가 본선 진출자들의 다큐멘터리로 시청률을 확 끌어올린 것처럼 MBC ‘위대한 탄생’과 SBS ‘기적의 오디션’도 출연자 다큐멘터리에 지대한 신경을 쏟고 있다. ‘기적의 오디션’ 제작을 맡고 있는 김용재 SBS 제작본부 차장은 “(오디션의 기본 요소인) 서바이벌보다 다큐 재미를 얼마나 살리느냐가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라면서 “예능과 다큐 경계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경기2청, 미군에 한국어 가르친다

    경기2청, 미군에 한국어 가르친다

    경기도 제2청이 미군 장병들의 한국 생활을 돕기 위해 동두천 미군 교육센터에서 한국어 강좌를 실시한다. 5일 도2청에 따르면 도2청은 미2사단 장병 60명을 대상으로 이날 오전부터 오는 5월 26일까지 매주 2회에 걸쳐 한국 생활에 필요한 한글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난 2006년부터 한·미 우호 협력과 미군의 한국 적응을 돕기 위해 매년 실시되고 있으며 미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은 호칭 배우기부터 발음 연습, 전통 예절 등의 한국어 수업이다. 특히 전통 한국 영화 교육으로 미군 장병들이 한국 문화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교육할 계획이며, 많이 하는 몸짓 언어와 생활에 꼭 필요한 분리수거 등에 대한 교육도 이뤄진다. 박인복 군관협력담당관은 “한국어 강좌를 통해 경기북부의 미군들이 한국인들과 좀 더 친숙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장자연 편지 조작” 경찰 발표 의혹

    ‘장자연 편지’가 조작됐다는 경찰 발표와 배치되는 자료가 나타나 편지의 진위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11일 장씨의 지인이라고 주장한 전모(31·왕첸첸·수감 중)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 ‘편지봉투 기재사항’에 따르면 전씨가 편지의 발신지 표시를 지운 배경이 담겨 있다. 전씨는 이 자료에서 “보내는 사람과 관련된 내용을 생략하거나 가린 것은 자연이가 (친한) 동생이 거주하는 오피스텔 명의로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씨가 편지봉투 가운데 ‘생략 및 가림 부위’라고 정리한 항목은 이밖에도 ‘호(유장호)가 (장자연씨의) 과거 관련 서류를 갖고 가서 돌려주지 않고 있다는 내용’과 ‘관할지역명’ 등이다. 이는 ‘전씨가 발신지를 숨기려고 편지를 조작했다.’는 경찰 발표에 의문이 뒤따르는 대목이다. 장씨가 친한 동생(연예인 지망생)의 오피스텔 주소로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발신지를 지우거나 오렸을 가능성도 있다. ‘장자연 편지’에는 여러 통에 걸쳐 전씨와 맺은 인연과 호칭(자연·설화)도 자세히 적혀 있다. ‘오빠랑 처음 인연됐던 1995년 겨울 기억나? 광주 조선대병원’, ‘울엄마랑 찍은 사진이랑 내 중학교 때 사진두 잘 간직하고 있지?’, ‘2003년 초에 오빠가 (감옥에서) 나와서 나랑 갔던 청담동 가라오케, ○○타워, ○○○고깃집 등등 모두 다 기억나지?’ 등이다. 편지 마지막에는 대부분 ‘설화 자연이가 쭌탱(전씨 별명)에게’로 표현했다. 경찰은 전씨와 장씨가 일면식도 없고 전씨의 우편물 2439건에서 장자연씨 이름이나 장설화란 가명으로 주고받은 내역은 없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전씨 외에 제3자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전씨가 신문 스크랩에 적어 놓은 글 중에 ‘형님이 편지들을 접수했을 것’이라는 표현이 그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가 썼다며 공개된 230여장의 편지들이 복사용지에 썼는데, 20대 여성이 일반 편지지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납득 가지 않는다.”고 조작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女談餘談] 형님과 여기자/백민경 사회부 기자

    [女談餘談] 형님과 여기자/백민경 사회부 기자

    마지막이란다. 서울신문 여기자들이 일상에서 겪고 느낀 점을 ‘말랑말랑하게’ 풀어내던 이 ‘여담여담’ 칼럼이. 부담 백배다. 어쩐지 거창하게, 무언가 특별하게 마무리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 고민 끝에 그냥 자연스레 하고 싶은 말을 적기로 했다. 경찰팀에 몸담은 지 꼬박 10개월. 일선 경찰서부터 경찰청까지 수많은 경찰들을 만나고, 현장을 누볐다. 그 일상 속 내가 가장 많이 일용하는 말이 바로 ‘형님’이다. “형님, 어디세요?”, “형님, 식사는 하셨어요?”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터라 처음에는 이 ‘형’이라는 말이 퍽이나 낯설었다. 친한 경찰들도 형님, 사건팀 기자들을 실어나르는 회사 운전기사도 형님, 가까운 취재원들도 형님이다. 직책을 부르는 것 이상으로 친밀해졌을 때, 호칭이 애매할 때 제격이다. 아, 물론 불편해하는 분들도 있다. 잘 알고 지내는 조폭(자신은 한사코 건달이라지만) 머리급인 진짜 ‘형님’ 한 분은 “니가 조폭이냐? 그냥 삼촌이라고 불러.”라고 항의하기는 했다. 그런데 문제는 ‘말따라 간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통화한 선배 A. “넌 갈수록 목소리가 굵어지냐.” 몇년 만에 본 친구 B. “너 중성화돼 가는 것 같다.” 칭찬은 아닌데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만큼 취재원들에게 동화돼 간다는 말로 들려서. 예전에 조은희 서울시 부시장이 사석에서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남자 취재원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그들처럼 술 마시고, 같이 사우나하며 친해질 수 없다면, 여기자만의 취재법을 개발해야 한다.”고. 그 말을 듣고 한참 고민했다. 방청객 같은 열렬한 호응? 장화 신은 고양이(슈렉1편에 등장하는)의 표정? 남다른 포스의 까칠녀? 여기자로서의 길과 취재법을 한동안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찾은 캐릭터가 ‘막내 남동생’이다. 툴툴대고, 조르고, 삐친다. 그냥 정말 편한 형님으로 대하고 묻는다. 그러다 보면, 마음이 통한다. 많이는 못 마셔도 소주 한잔 기울이고, 가족들을 만나고, 아이들 이야기에 특히 관심을 보인다. 오늘이 마지막인 이 칼럼의 지면을 빌려 그동안 좋은 아이템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형님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형님들, 고맙습니다.” white@seoul.co.kr
  • “방치된 한국르포 제 역할 찾기를…”

    “방치된 한국르포 제 역할 찾기를…”

    “한국 문단에서 사실상 방치되다시피한 장르인 르포가 다시 제 역할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설가 김곰치(41)가 자신의 두 번째 르포·산문집 ‘지하철을 탄 개미’(산지니 펴냄)를 내놓았다. 물론 본업은 소설가 맞다. 하지만 199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서의 가시적 성과물은 장편소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1999), ‘빛’(2008) 두 권이 전부다. 최근에는 본업보다 르포 글쓰기에 심취해있다. 2005년 첫 번째 르포·산문집 ‘발바닥, 내 발바닥’에서 새만금, 천성산 등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중심에 놓은 르포를 썼다. 두 번째 르포·산문집인 ‘지하철’에는 녹색평론과 국가인권위 기관지 ‘인권’ 등에 주로 썼던 르포 12편과 산문 13편을 담았다. 2005년 숨진 원폭 2세 환우 김형율씨 이야기 등을 담은 르포는 새롭게 읽힌다. 반핵 평화운동가였지만 일본과 한국 정부의 냉대는 물론, 원폭 1세, 2세로부터도 돈키호테 취급 받은 그의 불우한 삶과 고민 등을 폭넓은 취재에 바탕해 담담한 필치로 풀어냈다. 이 밖에 뉴타운 지구 내 단독주택 마을인 한양주택 르포는 주거 형태와 개인의 행복의 관계를 잔잔히 살피게 한다. 또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를 겪은 태안 르포 등 약자와 생명에 대한 사랑과 옹호의 시선으로 쓴 글들도 담겼다. 그는 “취재과정부터 글을 쓰기까지 보람과 사회적인 효용가치도 크다.”며 “단편소설보다 르포를 훨씬 더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세월이 지나도 가치 있는 문학성을 담은 르포를 쓰기 위한 고민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곰치의 르포 예찬은 이어졌다. “겸손하지 않으면 르포 글쓰기는 불가능합니다. 무지랭이 노인들의 얘기도 정중히 듣고 글쓰기에 고스란히 반영해야하는 것이 르포죠. 소설가의 삶에 익숙한 이들은 쓰고 싶어도 못 쓸 거예요.”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여전히 소설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꿈틀댄다. 그는 “사실 나도 르포 작가라는 호칭보다 여전히 소설가라는 호칭이 더욱 듣기 좋다.”면서도 “과거 사실주의 문학 등에서 담았던 사회정치 영역의 소재와 주제는 르포문학에 넘겨주는 것이 더욱 커다란 울림을 가질 수 있으며, 기존의 문학 장르는 인간 내면의 탐구를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빛’ 이후 3부작으로서 ‘말’, ‘소리’를 완성시키는 것이 그의 평생의 과업이다. “인간을 마지막으로 설득하는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내년초쯤 800장 짜리 경장편 소설을 내놓을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골목 대장형’ 가장 꼴불견 ‘지혜로운 선장형’ 좋아요

    ‘골목 대장형’ 가장 꼴불견 ‘지혜로운 선장형’ 좋아요

    “본인이 써야 할 보고서를 맡겨 놓고 출장을 가는 과장은 싫어요.” “순전히 보고를 위한 정책기획 주문은 피해 주세요.” “업무에 지나치게 관여하거나 개인적 친소관계로 좋은 직원만 챙기고 싫은 부하는 왕따시키는 골목대장 스타일은 질색입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중공교)이 과장 승진대상 서기관들에게서 청취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명 ‘과장 매뉴얼’을 만들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제목은 ‘과장 Do and Don’t’(가칭). 지난해 과장후보 핵심역량교육을 받은 32개 부처 서기관 369명이 직접 겪었던 상사 유형 중 싫었던 사례와 본받고 싶은 사례들을 골라 추려낸 자료다. 일과 조직·성과관리, 의사소통, 동기부여 등 4가지 측면에서 각각 바람직한 과장상과 더불어 절대 따르면 안 될 모형도 제시했다. 일할 때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장은 ‘지혜로운 선장’형이었다. 부서 목표에 들어맞는 실용적인 기획을 세우고 정책과제에 대해 명확히 방향제시를 해 주는 타입을 원했다. 조사에 답한 한 직원은 “일일이 참견하기보다 방향설정만 하고 불필요한 보고는 최대한 줄여 주는 상사가 좋다.”면서 “대신 주기적으로 업무점검을 하고 성과·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상사 후보”라고 평했다. 직원들 사이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 주는 ‘눈치형’도 환영받았다. 다른 부서와 협력을 잘하는 과장, 중요한 일정을 미리 공지해 주는 과장, 색다른 회식 등 의사소통에 신경 쓰는 과장 등이 이런 유형이었다. 칭찬과 질책은 그 자리에서 바로 구체적으로 하고 올바른 호칭을 사용해 달라는 주문도 있었다. 반면 무조건적인 ‘나를 따르라’형 과장, 우유부단 스타일은 대표적인 기피대상으로 꼽혔다. 직원 업무에 지나치게 관여하거나 독단적인 의사결정, 내 부서만의 업무추진, 친소관계로 직원 평가하기 등은 과장 금기사항으로 제시됐다. 한편 신세대 직원들은 비교당하는 것에 반기를 들었다. “예전에는 더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일했다.”는 식으로 과거 잣대를 직원들에게 들이밀거나 일 잘하는 직원에게만 일을 몰아주는 과장은 싫다는 답이 많았다. 이 밖에 상부 지시내용을 확대해서 부하에게 지시하거나 공은 빼앗고 과오는 덮어씌우는 형도 ‘욕먹는 과장’ 유형이었다. 행정안전부 황모 서기관은 “대개 팀장급인 서기관이 과장 업무를 옆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보는데 늘어지는 회의, 우유부단한 의사결정를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꽤 많다.”고 말했다. 중공교 관계자는 “과장 매뉴얼을 3월 시작되는 과장후보자 핵심역량교육 때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한편 현직 과장들에게 참고자료로 전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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