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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이정수, 개콘 무대 돌아온다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이정수, 개콘 무대 돌아온다

    개그맨 이정수가 10년 만에 ‘개그콘서트’ 무대로 돌아온다. 이정수 소속사 태풍코리아 관계자는 3일 “개그맨 이정수가 10년 만에 KBS2 ‘개그콘서트’ 700회 특집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5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되는 ‘개그콘서트’ 녹화에 참여하며 과거 인기를 끌었던 코너인 ‘우격다짐’ 무대를 꾸밀 예정이다. 이정수는 지난 2002년 ‘우격다짐’ 코너로 ‘미남 개그맨’이라는 호칭과 함께 인기를 누렸고 그 해 KBS 연예대상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이정수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다시 개콘 무대에 설 수 있어 대단히 감사드린다”면서 “팬들과 개콘 식구들을 오랜만에 만나 설레이며 가출했다 집에 돌아온 느낌”이라는 복귀 소감을 전했다. ‘개그콘서트’ 700회 특집은 오는 9일 오후 9시 15분에 방송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근혜 정부 외교라인 핵심 2인의 튀는 발언] 권영세 “한·중, 동맹관계로”

    [박근혜 정부 외교라인 핵심 2인의 튀는 발언] 권영세 “한·중, 동맹관계로”

    다음 달 초 부임하는 권영세 주중대사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향후 전략적으로 내실화하는 ‘동맹관계’로 표현해 주목된다. 또 탈북자를 ‘탈북 동포’라고 호칭하며, 주중대사로서 탈북자 문제에 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권 대사는 29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과 중국의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새로운 양국 관계의 톤이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다음 달 하순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의 경제·문화뿐 아니라 한반도 등 외교·안보 관계가 한 차원 격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 대사는 “1992년 한·중 수교 후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 세 차례의 관계 격상이 있었지만 아직 양국 관계가 정치 부문은 냉랭하고, 경제 관계는 뜨거운 ‘정냉경열’(政冷經熱)인 면이 있다”며 “양국의 동맹관계를 심화하려면 전략적 소통이 중요하고, 동맹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맹’ 표현에 대한 확인 질문이 제기되자 나중에 “단순 말실수”라고 해명했지만 권 대사는 회견 내내 “한·중관계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그가 주중대사로서 한·중관계를 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역할을 맡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권 대사는 라오스가 중국으로 추방한 탈북자들의 북송과 관련해 “탈북자 이슈는 중국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안”이라면서 “앞으로 중국 측에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강력히 요청해서 양국 간 원만히 처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의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우리 측 국회의원 방중단에 북·중관계를 ‘일반적인 국가관계’라고 설명한 것과 관련, “매우 의미 있는 발언”이라면서 “북한에 대해 우리의 입장과 궤를 같이하는 정책 노선이 되도록 중국을 더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北, 朴대통령 실명 언급 비난 ‘이중행보’

    北, 朴대통령 실명 언급 비난 ‘이중행보’

    북한이 중국에 파견한 특사를 통해 국제사회와 대화하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남한에 대해선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며 거칠게 비난하는 등 이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과거 미국 등과는 대화하면서도 남한은 철저히 배제해 온 행태를 재현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지난 25일 발표한 담화에서 박 대통령을 ‘괴뢰 대통령’ 또는 ‘박근혜’라고만 호칭하고 ‘악랄한 흉심’ ‘요사스러운 언행’ ‘아양을 떨어댔다’는 등의 원색적 표현을 동원했다. 심지어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4일 대변인 문답에서 박 대통령을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23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 일행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경제·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은 성공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박 대통령을 비난할 때 청와대 안주인, 남조선 집권자 또는 당국자라는 간접 호칭을 사용해 왔다.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3~4월에도 지켜 온 ‘마지노선’을 하필 대화 기류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 시점에 넘어버린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2008년 4월 노동신문이 이 전 대통령을 실명 비난한 이후 남북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26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흐름이 6자회담 재개 쪽으로 간다면 남북 관계도 개선되겠지만 당장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북한이 미·중·일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좀 더 적극적 태도를 유도하기 위해 거꾸로 대남 압박 강도를 높일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 담화는 “대결 광기를 부려댈수록, 우리를 자극하는 악담을 늘어놓을수록 차려질 것은 오직 하나, 수치와 파멸뿐”이라며 남북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5일 중국에 특사로 파견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 활동을 전하며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형식의 대화를 원한다”는 최 총정치국장의 발언을 일절 꺼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와 북한의 비핵화 대화 즉각 재개 여부도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일단 대화의 물꼬는 텄다”며 “과거 중국이 남북 대화를 중재한 사례가 있고 미국이 선(先) 남북 대화 후(後) 북미 대화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 회담 등 남북 대화, 북미 대화, 6자회담 순으로 진행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김문이 만난 사람] 파독근로자기념관장 권이종

    [김문이 만난 사람] 파독근로자기념관장 권이종

    인간의 삶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태어난 그 자체도 경이롭고, 소리 내어 울고 웃는 것도 그렇다. 때로는 슬프고, 처절하게 고생하고, 행복하고, 보람을 느끼는 희로애락이 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온몸으로 역경을 이기며 살아 왔다. 이 강산에서 태어나 저 강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이제 와서 인생의 숙제를 비로소 풀어 내며 살아간다. 막장 광부에서 교수가 되기까지 참으로 굴곡진 삶이다. 눈을 감으면 그 시절이 절로 떠올라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롤프 마파엘 주한 독일대사, 권광수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연합회장 등 30여명이 참석해 기념관 개관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방 장관은 “(파독 근로자의) 피와 땀과 외화가 우리나라 산업·경제 발전에 씨앗이 돼 이렇게 잘살고 행복한 오늘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파독 근로자 기념관 건립은 파독 근로자들의 눈물겨운 역사와 의미를 다음 세대에까지 생생히 전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가 광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이 독일에 파견된 지 꼭 50년이 돼 이래저래 의미가 깊은 자리였다. 1층 전시실에 들어서자 맨 처음 눈길을 끄는 글귀가 보인다. ‘당시 파독 광부의 선발 조건은 20~35세 남성이며 1년 이상 탄광 경력이 있는 자였으나 실제 경력은 거의 없다. 대학 재학생, 국회의원 비서관 등 고학력자와 그 외 여러 분야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꿈을 이루기 위해 독일행을 지원했다.’ 파독근로자기념관 권이종(73) 관장도 그런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막장 광부로 독일에 갔다가 현지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고 귀국 후 한국교원대 교수와 한국청소년개발원장 등을 지낸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막장 광부에서 교수가 돼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기념관 개관식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오전 권 관장과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 만났다. 전시실에 진열된 자료들을 설명해 주면서 당시를 회상하는 눈빛이 자못 진지하다. 아울러 기념관 개관이 얼마나 뜻깊은지를 여러 번 강조했다. 그는 사단법인 한국파독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연합회 상근 부회장을 맡아 2008년 연합회 창립 당시부터 준비했던 숙원 사업 중 가장 큰 일인 기념관을 이번에야 건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여 기념관 개관까지의 과정부터 먼저 물었다. “따지고 보면 독일 광부 시절 때부터 숙제였습니다.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면 꼭 기념관을 만들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후배들에게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독일 정부에서 사진을 찍지 못하독록 규정했으나 몰래 사진을 찍고 고생했던 하루하루를 깨알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모았고, 또 유물을 가진 많은 분들의 협조로 이번에 개관을 하게 됐지요. 특히 주한 독일대사관의 적극적인 도움도 있었습니다. 독일 정부에서 관련 자료를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파독 50주년, 한·독 수교 130년에 맞춰 기념관이 들어서게 된 셈이지요.” 전시실에는 20대 초반의 권 관장이 50년 전 독일에서 남긴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막장에서 써 내려간 일기, 가족이 보낸 편지, 동료와 찍은 사진과 함께 향수에 젖을 때면 반복해서 들었다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음반도 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이러한 자료들을 훑어보며 회상에 잠긴다. 특히 얼마 전 세상을 뜬 김태우 전 연합회장의 사진과 이야기는 살뜰히 더 챙긴다. 파독 광부는 모두 2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약 2000명, 독일에 거주하는 사람이 4000여명, 나머지는 한국에 살고 있다고 권 관장은 설명한다. 앞으로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파독 광부 출신이거나 2세, 그리고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기념관을 찾아 우의를 다지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치원 아이들이나 초·중등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 활용하고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나아가 이들을 위한 숙소와 쉼터까지 만들 계획이다. 권 관장과 연합회에서는 기념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600페이지가 넘는 파독 광부 45년사를 만들어 기증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파독 광부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났던 일을 떠올렸다. “1964년 12월이었습니다.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저희 광부들을 초청했지요.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독일 정부 관계자에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을 외교관 신분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고 육 여사는 이역만리에서 고생한다며 한없이 울었습니다. 광부들도 애국가를 부르며 모두 울었지요. 저는 그날 이후 애국가 대신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부르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권 관장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민간인 대표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이때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떠올라 감개무량해져 역시 애국가를 부르지 못했다. 광부에서 교수가 된 자신의 인생역정도 그 순간 봇물처럼 한꺼번에 머릿속에 밀어닥쳤다. 파독 광부의 역사를 잠시 되짚어 보면 이렇다. 한국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1960년대 초. 마땅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인력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정부는 독일 측과 광부 파견을 타진한 결과 1963년 첫 파독을 성사시켰다. 제1차 광부협정으로 1963년 12월 21일부터 1966년 7월 30일까지 2419명이 건너갔고 1967년부터 1969년 사이에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제2차 협정으로 1970년 2월부터 재개됐다. 이들이 흘린 땀은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초석이 됐다. 권 관장은 1940년 전라북도 장수 오지인 초장 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 마을 입구에는 ‘권이종 박사가 태어난 곳’이라는 기념석이 세워져 있다. 어릴 적 꿈은 학교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장작을 만들어 파는 일, 그리고 신문 배달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때로는 닭 서리, 수박 서리, 버스 무임승차 등도 하며 가난을 이겨 내려 발버둥을 쳤다. 196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 군에 입대했다. 3년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기다리는 것은 가난한 농사일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척의 권유로 서울로 와 을지로 입구 건축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던 한양대 공대생이 “권형, 나하고 독일에 갈 생각 없소”라면서 당시 5급 공무원 월급(3600원)의 10배나 되는 고액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이렇게 해서 1964년 10월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에 도착한 권 관장 일행은 4주간의 독일어 교육과 3개월간의 현장 실습을 받은 뒤 메르크슈타인 지역 아돌프 탄광에 배속받았다. 이때부터 ‘파독 광부’라는 낯선 호칭으로 지하 1000여m까지 파고들어가 석탄을 캐는 막장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이곳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고 또한 자신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일단 갱도에 한 번 들어가면 작업이 끝날 때까지 나올 수 없었고 식사는 과일 한두 개와 딱딱한 독일 빵이 전부였지요. 이런 곳에서 ‘코드넘버 1622’의 이름으로 석탄 가루 묻은 빵을 씹으며 3년을 지냈어요. 지하 갱도에서 일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맑은 공기와 밝은 햇빛의 진정한 고마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독일의 아침 인사는 ‘구텐 모르겐’(Guten Morgen)이다. 하지만 광산촌 지하 갱도에서의 아침 인사는 따로 있다. 각종 사고로 언제 어떻게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할지 모르기 때문에 행운을 가지고 올라오라는 뜻으로 낮이건 밤이건 항상 ‘글뤼크 아우프’(Gluck Auf)라는 인사를 한다고 권 관장은 말했다. 그만큼 하루하루가 불안한 날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권 관장은 파독 한국 광부들은 ‘동백 아가씨’, ‘비 내리는 고모령’, ‘꿈에 본 내 고향’ 등을 부르며 시름을 달래다가 스스로 ‘광부의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고 회상했다. ‘이역 땅 머나먼 길 떠나오던 그날에, 희망도 부풀었고 눈물짓던 그날에, 지친 몸 부여안고 베갯머리 적시며, 눈물도 말랐더냐 한숨 서러워~.’ 그렇게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귀국을 며칠 앞두고 양어머니나 다름없이 친하게 지내던 로즈 마리 부인의 적극적인 권유로 독일에 남아 공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헨공대 교원대학에 진학한 그가 어릴 적 꿈인 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도 이때였다. 이 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6년 만에 귀국길에 올라 오늘에 이르렀다. 유학 시절 만난 한국인 여학생과 결혼해 슬하에 4명의 자녀를 두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광부에서 교수까지 됐으니 내가 가장 출세한 놈이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권이종 관장은 1940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전주 신흥고를 졸업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1964년 독일로 건너가 메르크슈타인 아돌프 광산에서 3년간 일했다. 그 후 독일 아헨공대 교원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최초로 한국 학교를 설립하는 등 청소년 운동에 힘을 쏟기도 했다. 독일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후에도 청소년 운동과 교육 발전에 많은 활동을 했다. 문화관광부 청소년정책자문위원, 한국청소년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간행물윤리위원, 대통령자문기구 청소년보호위원, 서울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소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교원대 명예교수와 한국파독근로자기념관 관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국가발전과 사회교육’, ‘청소년지도의 실제’, ‘유럽 주요국 교육제도’, ‘맴도는 아이, 방황하는 부모’, ‘청소년의 두 얼굴’, ‘청소년학개론’, ‘파독광부 백서’, ‘독일에서 흘린 눈물’, ‘막장 광부 교수가 되다’ 등이 있다.
  • [윤창중 파문] 책임회피 일관… 후안무치 尹

    성추행 파문과 관련해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변명과 책임 회피에 대해 질책과 분노가 쏟아지고 있다. 고위 공직자로서 국격을 떨어뜨린 장본인이 ‘문화적 차이’라는 변명으로 성추행 파문을 빠져나가려는 모습은 후안무치한 행태라는 것이다. 또 기자회견 내내 여성 인턴을 ‘가이드’라고 호칭한 것은 윤 전 대변인이 신체 접촉을 합리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이남기 홍보수석으로부터 귀국 종용을 받았다며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운 것은 자신의 성추행 파문을 진실 공방으로 몰아가며 시간을 끌겠다는 ‘얕은 꾀’라는 해석이다. 특히 윤 전 대변인은 지난 7일 밤(현지시간) 성추행 이후 다음 날 오전 4~5시까지 만취된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을 일부 기자들이 목격했을 정도로 기강이 풀린 모습을 보였다. 그랬던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여성 인턴의 업무 미숙을 지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고, 여성 인턴과 술자리를 갖게 된 배경을 변명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윤 전 대변인은 성추행 사건과 관련, “(자리를) 나오면서 (인턴의) 허리를 한 차례 손으로 쳤을 뿐 성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또 “제가 미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성추행 사건에 대해 문화적 차이에 따른 해석상의 문제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문화적 차이라니, 여대생 엉덩이를 두들기는 건 한국 문화란 말인가”라고 비꼬았다. 전광삼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윤 전 대변인의 책임 회피에 대해 “그리 당당하고 자신이 있으면 지금 다시 미국에 가서 조사받으면 된다. 본인이 결백을 주장했으니 나가서 조사받으면 조기 귀국 종용 논란을 일시에 잠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참모로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후안무치하고 책임감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차라리 이번 기회에 청와대 참모나 고위 공직자 가운데 수준 이하의 인사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을 처음 알린 미주 한인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 USA’의 반응도 싸늘했다. 윤 전 대변인의 기자 회견 이후 “피해 여성을 인턴이라고 호칭하지 않고 가이드라고 부름으로써 현지 고용원임을 강조하고 있다”며 “가이드에겐 신체 접촉을 해도 되는 것이냐”고 분노했다.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윤창중 피해여성 ‘가이드’ 호칭에 미시USA 분노

    윤창중 피해여성 ‘가이드’ 호칭에 미시USA 분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피해여성을 ‘인턴’이 아닌 ‘가이드’라고 호칭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가이드와 함께 한 배경에 대해 말하겠다”고 말하는 등 지속적으로 ‘가이드’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여성을 ‘인턴’이라고 칭해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무보수이긴 하지만 대통령 방문과 관련해 주미 한국문화원이 정식으로 뽑은 인턴 직원이라는 의미다. 윤 전 대변인은 이 여성이 단순히 안내만 담당하는 인력이라는 뉘앙스를 보여줌으로서 공식적인 업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행정기관에서 정식으로 고용한 인턴 직원과 술을 마시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이지만 가이드와 술을 마시는 것은 우리 정서 상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다는 점을 파악해 이런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설명도 나오고 있다. 처음 이 사건을 폭로한 미주 한인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USA’에는 “윤 전 대변인이 공식 업무를 맡지 않은 현지 고용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등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또 “가이드에겐 신체접촉을 해도 되는 것이냐”는 격앙된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뉴스팀 iseoul@seoul.co.kr
  • 北 “남조선 당국자 방미는 전쟁전주곡”

    북한이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역겨운 입맞춤’, ‘전쟁 전주곡’ 등의 표현을 써가며 거칠게 비난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박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라고 호칭하며 “이번 미국 행각 결과는 조선반도와 지역정세를 긴장시키고 전쟁위험을 증대시키는 위험천만한 전쟁전주곡”이라고 주장했다. 또 “비극적 말로를 당한 선친의 교훈을 잊지 말고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위협적 언사를 쏟아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간접 비난도 ‘치맛바람’, ‘꼬락서니’, ‘냉혹한 무쇠여인’, ‘독재자의 딸’ 등으로 이전보다 격해졌다.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려 대남 비난의 외적인 수위만 낮췄을 뿐, 원색적 표현을 적잖게 사용해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라고 호칭한 것 자체가 한국의 최고지도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비하성 발언으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남측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고 언급, 남북관계 개선의 마지막 여지는 남겨 두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상반기까지 경색국면이 이어지고,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할 수도 있지만 경제적 고립이 계속되면 이런 상태를 오래 끌 수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 문답에서 미국을 겨냥해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를 그만두지 않는 한 긴장의 근원은 없어질 수 없으며 정세악화와 충돌의 위험은 반드시 재발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미국 대통령’이라고 호칭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어차피 징계 안돼… 정치적 쇼야” 국회 윤리특위 사실상 무용지물

    “어차피 징계 안돼… 정치적 쇼야” 국회 윤리특위 사실상 무용지물

    국회의원의 ‘권위와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사실상 무용지물인 채로 방치되고 있다. 의원들의 도에 어긋나는 행위를 징계하는 기능이 수십 년째 작동하지 않아 정쟁의 도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 3일 민주당 심재권 의원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달 2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 의원이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장관에게 김정은에 대한 예를 갖춰 호칭하라고 질책한 민주당 의원이 있다. 종북 세력과 결별하라”고 말한 것을 문제 삼았다. 앞서 유승희 의원 등 민주당 의원 20명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여성의 누드사진을 보다가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된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발의했다. 국회법상 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배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런 징계안에 대해 의원들은 일제히 “어차피 징계 안 돼”라고 입을 모은다. 3선의 한 의원은 “그냥 창피 한번 주려는 거지. 정치적인 쇼”라고 말했다. 정치적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의원 징계안은 어김없이 제출되지만 정치 공세일 뿐 징계 의지는 사실상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1981년 제11대 국회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의원 징계안 176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징계안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임기만료로 인한 폐기가 98건(55.7%), 철회 32건(18.2%), 사임 등으로 인한 폐기 29건(16.5%), 계류 16건(9.1%), 윤리특위 가결 1건(0.5%) 등이었다. 가결된 1건은 18대 국회 때 남녀 대학생과의 식사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강용석 전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었으며, 본회의에서 찬성 111표, 반대 134표, 기권 6표, 무효 8표로 부결돼 제명안은 무산됐다. 의원 징계안 발의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것은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 윤리특위 내에서 위원들이 자신과 같은 당 소속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윤리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태흠 의원은 “윤리특위가 일정대로, 규정대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민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논문 표절과 성추행 논란 등으로 당에서 제명되면서도 국회에서는 제명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국회의원 신분이 ‘방탄’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적잖이 제기된다. 국회는 여야가 꾸린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 윤리특위 개선안을 상정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씨줄날줄] 제5 호칭 ‘Mx’/육철수 논설위원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의미 있는 일을 해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연인·연애·애인·애정 등 다섯 가지 단어의 뜻을 동성애자 등 성적소수자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바꿨다. 예를 들어 ‘연인’이란 말은 개정 전에는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 또는 이성으로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개정 후에는 ‘남녀’가 ‘두 사람’으로 바뀌고 ‘이성’(異性)이란 말은 아예 빠졌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뻔했는데 예리한 눈을 가진 대학생들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안했고, 국어원이 이를 받아들여 사전을 바꾼 것이다. 국어원은 ‘결혼’의 정의(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도 개정을 검토 중이란다. 이미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게이(남성 동성애자)·양성애자·트랜스젠더(성 전환자) 등 성적소수자끼리의 결혼을 법으로 허용하는 나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나라에서는 실생활에서 성적소수자를 배려하는 공공시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의 어느 고등학교는 최근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트랜스젠더 학생의 고충을 덜어주려고 유니섹스(남녀공용) 화장실을 마련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특별 화장실엔 한 번에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학교엔 남자와 여자 화장실만 있어 이 학생은 등교 후에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하루종일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스웨덴의 한 고교에서도 ‘제3의 성’을 위한 탈의실을 만들었다는 소식이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공간적 배려 못지않게 호칭도 신경써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17~18세기부터 써 오던 미스터(Mr.), 미시즈(Mrs.), 미스(Miss) 등 남녀에 대한 전통적인 호칭과 40년 전부터 혼인에 상관없이 여성을 통칭해 온 미즈(Ms.)로는 ‘제3의 성’을 표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마침 영국 남부의 브라이튼-호브시(1997년 통합) 의회가 이달 초 이 도시의 공식문서에 제3의 성을 위한 호칭으로 ‘믹스터’(Mx, mix+Mister)를 쓰기로 결의했다고 한다. ‘섞다’는 뜻의 ‘mix’와 남성에 대한 존칭인 ‘미스터’를 합친 신조어다. 이 도시의 ‘성평등 검증 자문단’의 아이디어라는데, 정말 그럴듯하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좋겠는데 성적 분화가 계속되는 게 문제다. 세상에는 제3의 성에도 속하지 않는 ‘제4의 성’도 있단다. 이른바 무성애(無性愛, Asexuality)다. 그런 사람들의 호칭도 일찌감치 생각해둬야 할 것 같다. 영어 호칭은 그럭저럭 해결되겠지만 우리 호칭이 고민이다. 제3, 제4의 성에 군·양·씨(君·孃·氏) 말고 뭘 갖다 붙여야 어울릴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네덜란드 123년만에 ‘퀸’아닌 ‘킹’ 탄생

    네덜란드 123년만에 ‘퀸’아닌 ‘킹’ 탄생

    빌럼 알렉산더르(46) 네덜란드 국왕이 30일(현지시간) 즉위했다. ‘여왕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남자 국왕이 탄생한 것은 빌럼 3세 국왕이 서거한 1890년 이후 123년 만이다. BBC 등에 따르면 새 국왕 즉위식은 베아트릭스 여왕이 즉위한 날인 4월 30일을 기념하는 ‘여왕의 날’에 맞춰 거행됐다. 베아트릭스 여왕은 이날 오전 암스테르담의 담 광장에 있는 왕궁에서 양위 문서에 서명하고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양위한 여왕들은 ‘전 여왕’으로 불리지 않고 ‘공주’로 호칭되는 전통에 따라 베아트릭스 여왕은 앞으로 베아트릭스 공주로 불릴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가장 젊은 왕인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은 암스테르담 신교회에서 진행된 즉위식에서 “나는 전력을 다해 독립과 영토를 수호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맹세했다. 국왕은 즉위 전 한 인터뷰에서 “‘폐하’라는 호칭은 사양하겠다. 나는 ‘의전 숭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부르기 편한 호칭으로 불러 달라”면서 왕실에 새로운 기풍을 불어넣을 것임을 시사했다. 빌럼 알렉산더르 국왕은 항공기 조종사 출신으로 스포츠 외교에 관심이 많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02년 아르헨티나 투자 은행가 출신의 막시마 소레기에타(41)와 결혼했으나 막시마 왕비의 아버지가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절 농업장관으로 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덜란드에서 논쟁이 촉발되기도 했다. 국왕 즉위식에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 부부, 스페인의 펠리페 왕세자 부부, 덴마크 프레데리크 왕세자 부부를 비롯해 18개국의 로열 패밀리들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우울증의 일종인 적응장애로 장기 요양 중이던 일본의 마사코 왕세자빈이 남편인 나루히토 왕세자와 함께 11년 만에 외출에 나서 관심을 모았다. 정부는 테러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왕궁 주변에 1만여명의 경찰을 배치하고 암스테르담 상공을 지나는 항공기 운항을 일시 중단하는 등 이 일대의 경비와 보안을 강화했다. 유럽에서 왕실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군주제 반대 운동이 확산되면서 새 국왕의 앞날이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네덜란드의 공화주의 운동단체인 ‘신공화협회’는 네덜란드 국왕의 봉급이 네덜란드 총리의 5배, 미국 대통령의 2배나 된다고 주장하면서 새 국왕의 봉급을 삭감하는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脫격식’ 전화외교

    ‘脫격식’ 전화외교

    지난 12일 저녁 한·미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청사 17층 대접견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싱긋 웃으며 윤병세 외교장관을 향해 “하이(Hi) 병”이라고 인사했다. 순간 윤 장관은 1초 정도 망설이다 “하이 존”이라고 말하며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1943년생인 케리 장관과 10년 연하인 윤 장관이 서로의 ‘퍼스트 네임’을 부르며 말을 놓은 셈이다. 장관끼리의 공식 호칭은 ‘미스터, 미니스터(Minister)’다. 격식과 의전을 중시하는 국제 외교가에서 상대의 퍼스트 네임을 부르는 건 이례적이지만 친근감과 신뢰의 표시로 여겨진다. 윤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케리 장관이 퍼스트 네임을 부를 줄 예상하지 못했다”며 “통화도 하고 두번이나 만나다 보니 친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격식 파괴의 ‘전화외교’가 윤 장관의 ‘트레이드 마크’로 뜨고 있다. 그가 지난 3월 11일 취임 후 각국 외교장관과 통화한 건 총 11차례로 사나흘에 한번꼴이다. 과거 외교장관의 전화통화는 돌발 현안이 발생할 경우 이뤄지는 게 통례였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업무 스타일로 ‘올빼미’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윤 장관은 전화외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윤 장관 측은 전화외교의 효과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장관도 사람인데 자꾸 통화하고 얼굴을 봐야 신뢰가 쌓이지 않겠느냐”며 “공식 회담 전이라도 상대국 장관과의 통화 속에서 어떤 의제에 관심을 보이는지, 현안에 대한 반응을 보면 직감적으로 상대가 원하는 걸 알수 있어 협상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화외교의 관례도 변화하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개 장관 간 전화통화는 사전에 현안 점검을 거쳐 관련국 배석자를 배치하고, 의전에 따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집무실)에서 다소 딱딱하게 이뤄진다”며 “윤 장관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통화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지난 3일 첫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출장갔을 때 독일 외교장관과 통화했다. 독일 측의 통화 요청이 오자 윤 장관이 수락해 호텔방에서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켠 채 즉석 통화가 이뤄졌다. 독일 장관은 윤 장관의 성의 표시에 흡족해했다고 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40분간 이뤄진 통화도 일종의 격식 파괴였다. 당초 양국이 합의했던 통화시간은 20분. 양국 장관의 발언이 물 흐르듯 계속되면서 약속된 시간을 넘겼다. 사전에 준비된 발언만 하는 중국 외교관들과 다르게 왕이 부장은 농담을 하면서도 거리낌없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는 전언이다. 왕이 부장은 마지막에 “우리는 통화를 한 게 아니라 회담을 했다. 중국에서 얼굴보고 하는 회담을 두번째로 기록하자”고 껄껄 웃었다고 한다. 전화외교에는 ‘윤의 공식’이 있다. 한반도 주요 관련국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P5)+1(유럽연합)이 먼저다. 이후 아세안 등 각 지역 기구 의장국과 거점별 주요국 장관이 통화 대상이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던 4월의 통화 의제는 북한이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단 하루, 부산 상륙작전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다. 무작정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동백섬이 선연하게 보이는 해운대는 싫었다. 대신 자갈치 아지매가 손짓하는 ‘남포동’과 부산 속 작은 섬인 ‘영도’를 단 하루 만에 돌았다. 화통한 남포동 꼬불꼬불 미로엔 ‘없는 게 없다’ 부산에 몇 년을 살았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도 ‘부산 가이드북’ 정도는 쓸 수 있다”고 종종 허풍을 떤다. 그건 부산을 아끼고 좋아하는 내 마음의 표현법이었다. 누군가 부산 여행을 도와 달라 손을 내밀기라도 하면, 나는 넓은 오지랖을 쫙 펴곤 여행 멘토를 자처했다. 부산 초보자의 단골 질문 중 하나는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멀어?”다. 멀다. 부산역에서 해운대까지 지하철을 타면 최소 45분이 걸린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해운대에선 맨얼굴의 부산을 느낄 수 없다. ‘짠’하고 ‘찐’한 부산을 만나고 싶다면, 부산역에서 신평행 1호선 지하철을 타면 된다. 부산역에서 지하철로 5분이면 남포역과 자갈치역에 도착한다. 큰 도로를 중앙에 끼고 왼쪽이 자갈치시장, 오른쪽이 남포동이니 두 역 중 어디에 내려도 무관하다. 그곳엔 “어서 오이소” 하고 두 팔을 내젓는 부산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정신없이 돌아가는 남포동엔 없는 게 없다. 먹을 것도 ‘천지 삐까리매우 많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입을 것도 ‘천지 삐까리’, 볼 것도 ‘천지 삐까리’. 남포동의 초입은 대영시네마와 메가박스 부산극장이 마주 보고 서 있는 ‘BIFF부산국제영화제’ 광장. 광장에는 현재 영화인 48명의 손이 박제돼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베니스영화제 황금 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프랑스의 뤽 베송 감독과 배우 이자벨 위페르, 홍콩의 욘판 감독도 핸드 프린팅 대열에 합류했다. 남포동 인근의 낡은 극장에서 시작된 ‘작은 영화제’ 앞에는 이제 ‘국제’라는 호칭이 붙는다. 보물찾기 게임을 하는 심정으로 좋아하는 영화인의 손도장을 찾다 정신을 차리니 구불구불한 골목 안이었다. 얼키설키 뒤엉킨 골목은 거대한 미로 같았다. 지하철역을 등지고 남포동 BIFF광장에 서면, 앞으로 창선동 먹자골목이 펼쳐지고 왼쪽으로 부평동 족발골목, 오른쪽으로 광복동 패션거리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노릇노릇한 씨앗호떡과 굵직한 부산 떡볶이가 차려진 노점상을 비집고 쭉 직진하면 ‘아리랑거리’다. 목욕탕에서나 볼 수 있는 자그마한 의자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분주하게 비빔당면, 국수 등을 흡입하고 있다. ‘도떼기시장, 깡통시장’ 등 다양한 별명을 자랑하는 국제시장도 아리랑거리와 멀지 않다. 1945년 해방 이후 각종 군수 물자가 시장을 통해 풀렸는데, 지금도 국제시장에선 일제, 미제 등 각종 수입품이 팔리고 있다. 왁자지껄 수다스러운 남포동을 떠나 자갈치 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니, 찾아가기 참 쉽다. 오랜만에 찾은 자갈치 시장엔 여전히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했다. 얼마 전 고인이 된 최민식 사진작가가 그리워졌다. ‘날 것의 사진’을 고집한 그가 왜 그토록 자갈치 시장을 사랑했는지, 시장 주변을 한 바퀴만 돌면 알 수 있다. 자갈치 시장은 펄떡이는 물고기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언제나 역동적이다. “회 한 접시 먹으소.” 권하는 호객행위도 여기선 거추장스럽지 않고 정겹다. 자갈치 시장 뒤편에선 영도다리가 훤히 보였다. 1 자갈치시장에선 영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장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길이 분주하다 2 신신한 해산물이 가득한 시장 남포동 길거리 음식 트로이카 씨앗호떡 BIFF광장엔 긴 줄이 여기저기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는 단 하나. 씨앗호떡을 먹기 위해서다. 기름이 흥건하게 둘린 판 위에 찹쌀 반죽을 떨어뜨리면 금세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른다. 호떡의 가운데를 가위로 쭉! 그 속으로 땅콩, 해바라기 씨 등의 견과류가 두둑하게 들어간다. 뜨끈뜨끈한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면, 쫀득한 찹쌀이 입 안에 엉겨 붙고 견과류가 오도독 씹힌다. 위치 부산시 중구 남포동 5가 BIFF광장 일대 가격 900~1,000원 비빔당면 국수만 비벼 먹는 건 아니다. 새하얀 당면도 부산에서는 새빨간 양념 옷을 입는다. 들어가는 내용물은 거창하지 않다. 면과 양념장을 분주하게 섞은 뒤 토핑으로 올라온 김치, 시금치를 곁들여 젓가락질 하면 된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2,000원 충무김밥 속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김밥’과 함께 부추 김치, 무 김치, 오징어 무침이 반찬으로 나란히 따라 나온다. 하얀 종이가 깔린 쟁반 위로 검정, 빨강의 조화는 참 곱다. 정신없이 김밥 하나, 반찬 하나를 떠 먹는 동안, 할머니의 칼칼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징어는 남기지 말고 다 챙겨 무래이, 안 그럼 혼낸다.” 위치 부산시 중구 창선동 2가 아리랑거리 일대 가격 3,000원 영도등대는 태종대 여행의 메인요리다 ©나명선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수줍은 영도 한 맺힌 다리 너머, 외로운 섬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화자는 영도다리를 서성이는 어느 사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흥남부두에서 누이 금순이의 손을 놓친 오라비는 영도다리 난간 위에 걸린 외로운 초승달을 보며 흐느꼈을 것이다. 어디 금순이와 금순이의 오라비만 헤어졌을까.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피란민들은 하나같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간절한 주문을 외웠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잔인한 약속은 마음의 덫이었다. 희망고문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영도다리를 서성거렸다. 오늘은 오려나, 내일은 오려나…. 자갈치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피란민의 애끓는 애환이 덕지덕지 붙은 영도다리를 건넜다. 그림자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절영도·絶影島이 살았다는 섬이 바로 영도다. 실제 신라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선 말이 자랐다고 한다. 신석기 사람들에게도 영도는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신석기 유적인 ‘동삼동 패총’은 영도의 역사를 말해 준다. 국립 해양대학교 입구에 들어선 동삼동 패총 박물관에 바로 그 ‘패총’이 잠들어 있다. 먼 길을 온 여행자가 영도까지 찾아드는 이유는 뻔하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활을 쏘곤 했다는 ‘태종대’가 영도에 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던 버스가 태종대에서 멈췄다. 나는 태종대와 무려 세 번이나 만났다. 자갈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직접 싼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 태종대 축제에서 반딧불이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太宗臺태종대’라 쓰여 있는 묵직한 대형 돌덩이도 그대로였고, ‘다누비’ 열차도 여전히 손님을 태우고 씽씽 달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경사를 따라 쭉쭉 뻗은 나무가 조성돼 있고 그 사이사이로 살짝살짝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여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던 바다는 남항 조망지에서 인심을 썼다. 부산의 대표 항구인 남항이 한눈에 들어오는 ‘남항 조망지’는 야경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다. 그러나 남항 조망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쓸 필요는 없다. 조금만 발길을 옮기면, 태종대 최고의 명당인 전망대와 영도등대가 나오니까. 전망대엔 두 아이를 끌어안은 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전망대로 나가면 모자상의 비밀이 풀린다. 고개를 빼꼼 내밀자 신선이 노닌다는 신선바위와 자살바위가 양쪽으로 보였다. 모자상을 세운 건 다 자살바위 때문이다. 한때 한 해 평균 30명이 자살바위 인근에서 목숨을 끊었는데, 신기하게도 모자상을 세운 뒤로는 자살 횟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전자를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주전자섬’은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내 눈을 따라다녔다. 어느 지점에서 보든 바다 위에는 주전자섬이 떠 있었다. 전망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다의 정중앙엔 주전자섬, 그 뒤로 대마도, 거제도가 나란히 서 있다. 물론 대마도와 거제도는 날씨가 쾌청한 날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손님이다. 당일치기 여행이라 마음이 급하겠지만 영도등대는 놓쳐선 안 된다. 영도등대를 봐야 태종대를 다녀갔다고 ‘인증’할 수 있다. 1906년 설립된 영도등대는 벌써 100살이 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했다. 태종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육지와 바다의 경계가 불투명해졌다. 어느덧 기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도등대 위에 자리한 태종사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 다시 뭍으로 나가는 버스에 올라야 했다. 버스를 타고 영도다리를 지나던 순간, 신기하게도 배 멀미를 느꼈다. 1 영도등대 일대는 예술이 꽃피는 문화공간이다 2 바다가 펼쳐지는 태종대 산책로에선 봄을 만끽할 수 있다 3 여행객을 태우고 씽씽 달리는 다누비 열차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한국관광협회중앙회 www.koreatravel.or.kr 태종대 짬뽕 태종대에 도착하면 범상치 않은 중화 요릿집이 하나 버티고 있다. 이름부터 정직한 ‘태종대 짬뽕’. 문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손님이 많은 걸 보니, ‘맛집’이 분명하다. 짬뽕을 주문하면 종업원의 질문이 되돌아온다. “태종대 짬뽕 맞지예?” ‘태종대’ 세 글자에 유독 힘을 싣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살이 오른 꽃게, 입을 살짝 벌린 홍합, 도톰한 오징어 등…. 국물을 한 입 떠 먹으면 “살아있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주말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3시에도 손님이 줄어들지 않는다. 빨리 후루룩 먹고 일어나는 건 암묵적인 예의다. 찾기도 쉽다. 버스 정류장에서 태종대 입구 쪽으로 걸어가면 왼편으로 식당이 보인다. 주소 부산시 영도구 동삼 2동 986-9 문의 051-405-2992 대표메뉴 일반 짬뽕 4,500원, 태종대 짬뽕 6,000원, 태종대 짜장 5,500원, 하얀 짬뽕 6,000원 ▶travie info 추천 여행사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면 약 3시간. 비싼 기차 비용을 들여서 내려갔건만, 초행길이라 헤매면 곤란하다. 더구나 주말이면 부산행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도권 거주자라면 열차 티켓부터 현지 이동까지 도와주는 여행사의 힘을 빌려도 좋다. 기차 상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홍익여행사는 다양한 부산 여행 상품을 갖추고 있다. 상품가격도 KTX 왕복 비용과 크게 차이나지 않아 저렴한 편이다. 문의 홍익여행사 www.ktxtour.co.kr 02-717-1002 태종대 탐방 코스 태종대를 돌아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걷기, 다누비 탑승, 유람선 탑승. 이중에서 4.3km의 순환도로를 운행하는 열차 ‘다누비’를 타면 태종대 관광은 훨씬 편하다. 단, 주말이면 탑승객이 워낙 많아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다. 주요 코스 광장 승차장→태원자갈마당→구명사→전망대→영도등대→태종사→정문 입구 하차장 탑승료 1,500원 부산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9번 출구, 시내버스 88번, 101번 남포역에서 태종대 가기┃1호선 6번 출구, 시내버스 8번, 30번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타지역 과학관 이름, 당선작으로 뽑은 오산시

    경기 오산시가 도서관 명칭을 공모하면서 이미 다른 기관에서 사용 중인 이름을 당선작으로 선정해 부실 심의 논란이 일고 있다. 27일 오산시에 따르면 내년 3월 완공을 목표로 세교동에 건립 중인 금암도서관(가칭) 명칭을 공모를 통해 ‘꿈아띠’로 선정했다. 명칭 공모에는 모두 437건이 응모했으며 시는 지난 11일 황모(여·인천)씨가 제출한 꿈아띠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꿈아띠는 ‘꿈’과 ‘아띠’(친구) 합성어로 친구 같은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도서관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시는 밝혔다. 그러나 이 명칭은 지난해 12월부터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이 공모해 체험관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 측은 당시 타 기관이 동일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특허청에 상표 출현을 신청했다.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안 오산시가 경위를 파악한 결과 당선작을 제출한 황씨와 국립중앙과학관 명칭 공모 수상자가 부부관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편 당선작을 부인이 3개월 후 오산시 도서관 명칭 공모에 응모한 것이다. 그럼에도 오산시가 구성한 도서관 명칭 심사위원회에서 이를 걸러내지 못해 부실 심의란 지적을 받고 있다. 심사에는 시의원과 지역 문학계, 향토사학계, 교육계, 문화예술계 등 전문가 9명이 참여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표현의 독창성, 친밀감, 호칭의 편리성, 미래지향성, 도서관 이미지 표현성 등에 초점을 맞춰 심사했다고 시는 밝혔다. 오산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미 다른 기관에서 사용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이런 오류를 저질렀다는 게 납득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측이 “꿈아띠는 우리가 상표 출현한 이름인 만큼 타 기관에서 사용할 수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요정·여왕… 오글거려요 그냥 ‘연아 선수’가 좋아요”

    “요정·여왕… 오글거려요 그냥 ‘연아 선수’가 좋아요”

    “숙소에 들어가서 라면 끓여먹고 잤어요.” 4년 만에 세계선수권을 제패하고 돌아온 ‘피겨 여왕’ 김연아(23)가 온 국민에 큰 기쁨을 안긴 대회 직후 가장 먼저 뭘 했느냐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후원사 E1이 시즌을 마친 김연아와 팬들의 만남을 마련하기 위해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밀레니엄광장에서 주최한 팬 미팅 자리에서였다. 방송인 전현무씨의 사회로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김연아는 이번 대회에서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의 코피가 묘하게 자신의 좋은 성적으로 연결됐다는 풀이를 내놓았다. 그녀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미신에 의지하곤 하는 다른 선수와 달리 특별한 징크스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약간 의외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김연아는 “흔히 ‘피를 보면 운이 좋다’고들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는 “코스트너가 코피를 흘리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연기를 하려고 링크에 들어가 보니 얼음판에 피가 떨어져 있더라”고 전했다. 이어 “특별히 징크스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렇게 좋은 쪽으로는 가져다 붙이게 된다”며 웃었다. ‘강심장’으로 유명한 그녀지만 준비가 만족스럽게 되지 않으면 긴장하게 되고 곧바로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는 여느 선수와 다름 없는 면모도 비쳤다. 김연아는 “긴장할 때면 표정이 굳고 스케이트끈을 자주 고쳐 매는 등 여러 곳에 신경을 쓰곤 한다”며 “주변에서도 내가 스케이트끈을 만지는 걸 보면 긴장했다는 것을 눈치채더라”고 귀띔했다. 또 고려대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세계선수권을 준비했던 그녀는 “고연전이나 축제 등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한 뒤 연세대 출신인 전현무와 ‘고연전’인지 ‘연고전’인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김연아는 ‘피겨 요정’이나 ‘피겨 여왕’ 등의 별명에 대해 “오글거린다”는 표현을 쓰면서 “그냥 ‘김연아 선수’가 가장 나다운 호칭 같다”고 털어놓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펑리위안이 든 가방 ‘품절’

    펑리위안이 든 가방 ‘품절’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의 패션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러시아 순방에 동행한 부인 펑리위안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모스크바공항에 도착할 때 입고 있던 코트와 핸드백이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며 품절 현상을 빚고 있다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인터넷사이트 인민망이 24일 보도했다. 펑리위안의 핸드백은 광저우(廣州) 지역의 국산 패션 브랜드 리와이(例外)복식공사가 특별 제작한 것으로, 회사 측은 비슷한 디자인의 제품들이 모두 품절돼 추가 제작 중이라고 밝혔다. 펑리위안이 이날 입었던 짙은 남색 코트 역시 리와이 제품이다. 이 회사의 코트 가격은 보통 2000∼3000위안(약 36만∼54만원) 수준이다. 산둥(山東) 지역의 반도도시보(半島都市報)는 펑리위안이 23일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 강연 참석 때 들었던 클러치백을 두고 외제라는 말이 나돌지만 확인 결과 역시 리와이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중국 언론들이 펑리위안의 국산 브랜드 제품 사용 사실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은 국산 제품을 사랑하는 퍼스트레이디의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신경보는 펑리위안이 이번 순방 때 보여 준 패션이 우아하고 기품이 넘쳤으며, 현장에서는 그녀가 꼿꼿이 서 있는 자세를 두고도 감탄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중국 언론들은 이전 지도자의 부인들과 달리 펑리위안을 두고 처음으로 ‘퍼스트레이디’란 호칭을 사용하면서 ‘퍼스트레이디 외교’는 국가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는 소프트파워라고 평가하고 있다. 신화통신은 “미국에 미셸 오바마가 있다면 중국에는 펑리위안이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봉사·출산으로… 공백기간 불안 대신 넉넉함 채웠죠

    봉사·출산으로… 공백기간 불안 대신 넉넉함 채웠죠

    # 1 정갈한 말투와 빈틈없는 몸놀림. 어김없는 아나운서였다. 지난해 9월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작별 인사를 고한 지 6개월 만이다. 그는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12년 방송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2010년 2월 촬영차 찾은 아이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지진이 난 지 딱 한 달 만에 아이티에 갔어요. 처참함 속에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순수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그때부터 색다른 삶을 꿈꿨다. 봉사활동에 오롯이 매진하고 싶었다. 지난해 8월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남수단으로 훌쩍 떠났다. ‘9시 뉴스’를 비롯해 ‘스펀지’ ‘열린음악회’ ‘생생정보통’ 등을 진행했던 그는 회사의 간판이었다. 아나운서 김경란(왼쪽)의 이야기다. # 2 ‘개그우먼’이란 호칭이 무색하게 브라운관을 누볐다. 2009년 ‘5월의 신부’로 축복을 받았다. 지난해 9월 인기 절정의 예능 프로그램인 ‘강심장’에서 자진 하차하는 등 차근차근 엄마가 될 준비를 했다. 한 달 뒤 3.84㎏의 건강한 딸 ‘이엘’을 낳았다. 집에서 무려 28시간의 산통을 겪고 병원에 도착, 한 시간만에 딸을 자연분만했다. 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은 지금도 온통 딸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개그우먼 김효진(오른쪽)의 이야기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두 여자를 만났다. 한 케이블 방송의 뷰티·패션 트렌드 프로그램으로 각각 6개월, 3개월 만에 방송 복귀를 신고하는 자리였다. 김경란은 너무 이른 방송 복귀, 그것도 쇼핑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란 지적에 “KBS라는 든든한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내가 강하게 소망하는 그 무엇을 잡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도 있구나 생각했다. 안정된 삶도 중요하지만 아침마다 눈을 떴을 때 가슴 뛰는 삶을 꿈꿨다”고 말했다. 김경란은 남수단을 지난해 10월과 올 2월 두 차례 다녀왔다. 내전의 상처가 지워지지 않은 곳에서 각각 이레와 열흘 머물렀다. 동부 종글레이주 보르에선 지역 고아원뿐 아니라 학교와 한센병 마을을 방문했다. 아이들에게 축구공과 줄넘기를 선물하고 비눗방울 놀이를 하며 함께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곳이라 믿기 힘들 만큼 없을 ‘무’(無)자만 생각났다. 풀로 엮은 집과 흙먼지 나는 비포장 활주로만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선한 눈빛을 잃지 않은 아이들의 인사법은 악수다. 유난히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손을 내민다. 그곳 어른들은 팔다리가 엄청 길고 얼굴이 새까맣고 험악하다. 그런데 씩 한번 웃어주면 미소가 너무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에 뭐가 필요할까?’를 고민했다. ‘불쌍하다’며 돕기보다는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재미있게 가르쳐주자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고 했다. 그는 현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방송 녹화가 없는 날이면 어린이재단을 찾아 하루 5~10시간씩 동료들과 회의를 이어 간다. 다음 달에는 나눔조합 형식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긴다. 김효진은 날씬해 보였다. 지난해 출산 전 70㎏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현재 55㎏에도 못 미친다. ‘폭풍 감량’의 비결은 “하루에 세끼를 꼬박 먹되 튀긴 것, 구운 것 먹지 않고 숨 막힐 정도로 열심히 운동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본업이 희극 배우인 만큼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웃음을 드리겠다”면서도 “탁월한 끼가 있다면 모를까, 딸은 같은 길을 걷지 않길 원한다”며 미소지었다. 출산 이후의 공백 기간이 불안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예전 같으면 초조하고 불안했겠지만 임신 이후부터 마음이 넉넉해졌다. 새 생명을 맞은 기쁨이 상실감을 뛰어넘었다”고 말했다. 김경란은 김효진을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대했다. 2006년 KBS ‘스펀지’의 메인 MC와 패널로 처음 만났다. 김경란은 “언니는 의외로 낯도 가리고 수줍음이 많다”며 웃었다. 김효진은 “(경란이는) 너무 단정하고 지적이라 빈틈이 있을것 같은데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백치미가 숨어 있더라”고 말했다. 두 여자는 지난 14일부터 매주 목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의 ‘토크&시티’에서 다른 두 명의 MC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이제 순례자로서 마지막 인생 여정을 시작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태운 헬리콥터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상공을 지나가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85)가 8년간의 교황직을 마감하고 공식 퇴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재위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에서 추기경단을 만나 “후임 교황에게 무조건적인 존경과 순종을 약속한다”는 맹세를 남기고 시스티나 성당을 떠나는 것으로 교황으로서의 공식 일정을 마쳤다고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생존해 있는 교황의 자진 사임은 1415년 정치적인 이유로 교황 자리에서 물러난 그레고리 12세 이후 598년 만에 처음이다. 2005년 4월 제265대 교황에 오른 베네딕토 16세는 지난달 11일 건강상의 이유로 교황직을 사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바티칸을 떠나 로마 동남쪽으로 24㎞ 떨어진 카스텔 간돌포의 교황 하계 별장에 헬리콥터를 타고 도착한 교황은 마중 나온 신도들에게 “나는 이제 순례자로서 마지막 인생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는 짧은 인사말을 남기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의 공식 퇴임 시간인 오후 8시(한국시간 1일 오전 4시)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스위스 용병 2명이 나무로 된 별장 정문을 닫으면서 베네딕토 16세 시대가 막을 내렸다. 베네딕토 16세는 2개월간 별장에 머문 후 바티칸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낼 계획이다. 퇴임 전 희망한 대로 이름은 ‘명예 교황’으로 불리며, 성직자들이 입는 흰색 카속(성직자복)과 ‘성하’(聖下)라는 호칭도 유지된다. 로마 교황청은 오는 4일 후임 교황을 뽑기 위한 ‘콘클라베’(추기경단 비밀회의) 일정을 논의할 예정이다. 교황 선출 작업은 늦어도 종려 주일(부활절 직전 일요일) 미사가 열리는 이달 24일 이전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우린 ‘얼굴들’이었죠… 이제 정체성 찾아 떠나요

    ‘인간이 존재의 시작을 찾아나섰다. 자신의 시작이 된 어머니, 그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며 거슬러 가보니, 태초에 흑인 여성이 있더라. 같은 맥락으로, 음악을 실마리 삼아 시스터즈의 기원을 찾아보니, 숙자매와 펄시스터즈, 코리아키튼즈를 거쳐 김시스터즈에 다다르더라. 손녀뻘인 미미시스터즈가 시스터즈의 계보도를 그려 음악극으로 만들었으니, 이름하야 ‘시스터즈를 찾아서’라더라.’ 하늘거리는 빨간색 원피스에 빨간 빵모자와 검은 망사 장갑을 매치하고,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채 표정은 무덤덤하게.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미미시스터즈(이하 미미들)는 익숙한 그 모습으로, 자신들이 쓴 음악극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동경한 ‘시스터즈의 낭만과 유머’를 찾아가는 거죠.” 가슴 크기로 호칭을 정했다는 미미들 중 ‘작은’ 미미의 말이다. 미미들은 2008년 ‘장기하와 얼굴들’로 데뷔했다. 복고풍 의상과 덤덤한 표정, 요상한 춤으로 관심을 끈 ‘얼굴들’이었다. 잘 활동하는가 싶더니 2011년 초 별안간 독립하고 1집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거야’를 내놓았다. 그들은 이를 두고 ‘합의이혼’이라고 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그저 재미있게 놀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관심을 무척 많이 가지시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고민하게 됐죠.” 데뷔부터 1집까지 과정을 묻자 미미들은 한몸인 양 주거니 받거니 대답을 완성해 나갔다. “사람들이 미미들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선글라스에 가려진 채로 잊힐까 봐” 두렵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음악을 해보자”는 의지로 독립했다. 그런데 음반 반응이 엇갈렸다. 쟁쟁한 음악인들과 작업했더니, 미미들이 피처링해 준 느낌이라는 말도 들렸다. 덜 익은 채로 대중 앞에 나선 미미에게 필요한 것은 ‘존재의 이유’였다. 그즈음 만난 기획전에서 답을 찾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작곡가 김해송과 가수 이난영, 애자·숙자·민자로 구성된 김시스터즈를 조명한 ‘가문의 영광’전이다. “김시스터즈는 미국 슈프림스보다 먼저 데뷔한 걸그룹이에요. 부모에게 철저히 음악교육을 받아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세 분이 합쳐 스무 개가 넘는 재능 집합체죠. 시스터즈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 그런데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큰 미미) 선배 ‘시스터즈’를 연구하고, “뒷조사를 하듯”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다. 펄시스터즈의 배인순, 코리아키튼즈의 윤복희와 전화 연결이 됐다. 유명을 달리하거나 해외에 있어서 연락이 닿지 않는 때도 있었다. 큰 미미가 한 모임에서 만난 남인우 연출이 취지에 ‘대공감’하면서 의기투합했다. 미미들이 일기처럼 쓴 글들을 극으로 다듬고, 키보드 연주자 고경천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음악극 형식이 됐다. 우리나라 여가수들의 역사를 따라가는 시간여행으로 확장했다. 두산아트센터의 신진작가 지원 프로젝트 ‘두산아트랩’에 선정돼, 새달 1~2일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올리게 됐다. 1시간 남짓한 공연에서 미미들은 자작곡 3곡을 부르고, ‘커피 한 잔’, ‘거짓말이야’, ‘첫사랑’ 등을 노래한다. “관객에게는 시대를 풍미한 시스터즈를 돌아보는 계기를 주는 것, 우리에게는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것을 알게 된 것, 이게 공연의 의미죠.”(작은 미미) “공연을 준비하면서 진짜 미미들을 찾았으니, 자신있게 2집을 내려고요. 1집에서는 뭣 모르고 호기롭게 전설이라고 했는데, 이젠 달라졌다는 뜻에서 2집은 ‘정신차렸어, 본격 1집’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큰 미미) 이번 공연은 미미들이 목적지로 가는 과정의 하나다. 최종 종착점은 ‘시스터즈 다큐멘터리’ 제작이다. “시스터즈들은 굉장히 매력적인 역사를 만들어냈죠. 이시스터즈는 멤버들이 출산을 번갈아가며 10년 동안 활동했고요. 이쁜 게 잘못인가, 누가 뭐 사랑해 달랬나(펄시스터즈의 ‘아저씨가 좋아요’)라고 당당하게 노래하기도 하죠.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시스터즈 전설을 맛보게 될 겁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관료가 아니라 공무원인 이유/정윤기 행안부 정보기반정책관

    [옴부즈맨 칼럼] 관료가 아니라 공무원인 이유/정윤기 행안부 정보기반정책관

    정부의 고위공무원이 언론브리핑 도중에 국민이라는 용어 대신에 백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가정해 보자.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 왕조 시대에나 쓰던 용어를 사용했다고 국민의 질타를 받을 것 같다. 실제로 몇 년 전에 한 인기연예인이 방송에 출연해 실수로 평민이라는 용어를 언급했다가 시청자들의 빈축을 산 사례가 있다. 용어에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사용되는 용어도 바뀌는 경향이 짙다. 필자는 공무원이다 보니 ‘관료’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는데, 2013년 한 달 반 동안 서울신문 지면에 관료라는 단어가 나타난 횟수를 세어 보니 생각보다 많았다. 다른 언론매체도 비슷하겠지만, 행정뉴스의 권위지인 서울신문에 관료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소재 같다. 백성, 평민과 마찬가지로 구시대 유물의 냄새가 나는 관료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헌법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국민이 주권자인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면서 우리 헌법이 채택한 용어는 ‘공무원’이고, 하위 법률에서도 국가공무원, 경찰공무원 등 공무원이란 용어를 택했다. 또한, 헌법은 신분으로서의 관리제를 폐지하고 직업공무원제를 도입해 누구나 직장인으로서의 공무원이 될 수 있게 했으며, 관리와 백성 간의 관존민비 관계를 타파하면서 공무원은 국민 전체를 위해 봉사한다고 규정했다. 미국의 경우, 연방헌법에서는 공무원(official, officer)이라는 용어를 채택했지만, 공무원인사법 등 많은 하위 법률에서는 직업군인까지 포함해 ‘정부 직원’(government employee)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정부 직원이라고 부르니 권위적 색채는 덜하면서 여러 직업 중의 하나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이 용어는 미국 내에 널리 확산되어 이제는 민간 문헌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즉, 단순한 호칭 하나지만 공무원을 바라보는 미국 사회의 시각이 담겨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에선 관료라는 용어가 정부수립 이후 현재까지 존속하면서 공무원이라는 용어를 밀어내고 수시로 언론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관료라는 오래된 표현에 젖게 되면 정부와 공무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도 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관청과 관리라는 옛 틀 속에서 바라보게 되지는 않을지, 백성은 국민으로 바뀌었는데 관료는 여전히 관료로 남아 있는 이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공무원인 필자로서는 관심이 가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신임공무원 연수를 받던 시절, 목민심서를 가르치던 공무원교육원 교수가 말씀하시길, 목민심서가 훌륭한 책이지만 백성은 양이고 관리는 목민관이라는 관존민비 시각에서 쓴 책이므로 시대적 의미는 새겨 읽으라고 주문했다. 이처럼 정부 내에서는 공무원의 현대적 의미를 찾으려는 자발적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조용하고도 꾸준히 있었던 것 같다. 20여년 뒤 필자가 공무원교육원의 교수가 되어 보니, 요즘의 공무원 사이에선 공무원을 봉사하는 직업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젠 언론과 국민도 공무원을 관료라는 틀에서 꺼내어 헌법적 가치에 맞는 용어로 불러 줄 때다. 순사를 경찰로 바꾸는 등 시대적 가치를 위해서, 또는 직업적 자부심을 위해 사회적 호칭을 정책적으로 바꾼 사례도 많다. 행정뉴스의 선도자인 서울신문에 거는 기대가 특히 크다.
  • 전국서 조직원들 잇단 조문…경찰 150여명 경계 배치

    전국서 조직원들 잇단 조문…경찰 150여명 경계 배치

    “형님.” “어. 우리 식구 애들이 안 보이는구먼.” 6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층 20호. 1970~80년대 폭력조직 ‘범서방파’를 이끌며 국내 조직폭력계를 주름잡았던 김태촌(64)씨의 빈소에서 검은 정장 차림의 조직원 10여명이 일렬로 서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김씨는 지난 5일 0시 42분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갑상샘 치료를 위해 2011년 말 입원했다가 지난해 3월부터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아 왔다. 빈소에는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보낸 화환 200여개가 입구부터 엘리베이터까지 빼곡히 들어찼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 가수 설운도, 국악인 신영희 등 유명인들부터 건설회사, 각종 무술연맹까지 화환을 보낸 사람의 면면도 다양했다. 부산 영도파 두목 천달남, 칠성파 두목 이강환, 원로 조폭 이신영 등 왕년에 유명했던 폭력조직 거물들이 보낸 화환도 눈에 띄었다. ‘울산동생 ○○○’, ‘청주 ○○○’ 등 지역명과 보낸 사람 이름만 적힌 화환도 상당수였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와 연을 맺었던 지역 유지나 조직원들이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보다 선배격인 1970년대 폭력조직 ‘신상사파’ 두목 신상현(79)씨는 전날 빈소를 찾았다. 생전에 각별한 친분을 쌓았다는 하일성 야구해설가는 이틀 연속 조문했다. 빈소 주변에선 ‘형님’ ‘아우’란 호칭이 이어졌다. 한 조직원이 “지방에서 오기로 한 애들은 어떻게 됐냐. 버스를 알아봐라”고 말하자 부하로 보이는 이들이 서둘러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였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의경 1개 중대를 포함해 경찰관 150여명을 장례식장 주변에 배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난투극 등 험악한 상황이 벌어질 분위기는 아니다”면서도 “조폭계의 거물이었던 만큼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1975년 전남 광주의 폭력조직 ‘서방파’ 행동대장으로 조폭계에 몸담은 김씨는 1977년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김씨는 1986년 조직원들을 시켜 뉴송도호텔 나이트클럽 사장을 습격한 사건으로 징역 5년에 보호감호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89년 폐암 진단을 받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지만 1992년 ‘범서방파’ 결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계속했다. 김씨 유족은 김씨의 시신을 화장한 뒤 유해를 고향인 전남 담양 군립묘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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