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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야 원내대표 직격 인터뷰

    여야 원내대표 직격 인터뷰

    ■ 원유철 새누리 원내대표 “新朴이라 하는데 총선 생각뿐… 비례대표 줄여 농어촌 지킬 것”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균형 잡힌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지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원내대표는 “국회는 어떤 사안이 생기면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역량을 보여 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야당과 끊임없이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또 선거구 획정안에 대해서는 비례대표를 줄여 농어촌 지역구를 사수하는 방안을 가지고 야당을 설득할 뜻을 밝혔다. 노동 개혁 5대 입법과 공공·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을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문에 다른 현안들이 다 묻히고 있는데. -국회가 언제부터인가 모든 현안을 묶어서 끼워팔기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편향된 역사 교과서를 좀 더 균형적·객관적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정말 우리 아이를 어떻게 가르칠까, 올바른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까 토론하고 논의해야 한다. 제1야당 대표가 피켓 들고 시위할 게 아니라 오히려 국회 당면 현안인 경제 살리기 법안 처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어떻게 할 것인지, 내년 총선 선거구와 관련해 논의해야 할 때다. →야당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연말 내년도 예산 처리와 연계할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은 법정 시한 내 통과될 것이다. 그리고 과거처럼 구시대 유물정치라고 할 수 있는 구태정치인 예산안 연계 투쟁 같은 것을 허용하기에는 국민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민생 현장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 연계는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야당은 그걸 이야기하면 되고 국회 교문위나 정부를 상대로 의견을 내면 된다. 다른 사안을 연계하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구 획정안 논의는 평행선만 달리고 있는데. -의원 정수를 현재 300명에서 더 늘리는 것은 반대한다. 국민 정서에도 안 맞고, 도리가 아니다. 의원 정수는 양이 아니라 질의 문제이다. 현재 의원 정수 300명 토대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선거구별 최대 최소 지역편차를 2대1로 줄이라는 뜻을 존중하며 농어촌 지역을 최대한으로 지켜줬으면 좋겠다. 새누리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지역구 260석, 비례대표 40석이 되면 큰 혼란을 방지하고 20대 총선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 개혁 5대 입법과 4대 개혁 추진을 위해 야당과의 협상을 어떻게 풀어나갈 계획인가. -정기국회 현안 처리를 위해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에게 자주 만나자고 했다. 이 원내대표도 좋다고 했다. 공식, 비공식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자고 했다. →최근 원 원내대표가 친박(친박근혜) 쪽 입장을 많이 지지해 신박(新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나는 (신박이 아니라) 원유철이라고 말씀드린다. 내 머릿속에는 친박과 비박의 개념이 없다. 오로지 새누리당의 내년 20대 총선 승리에 대한 생각밖에 없다. 그것을 신박이라고 부른다면 기꺼이 신박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이겠다. →국민공천제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현행 당헌·당규로만 해도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 15곳 중 11곳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했다. 나는 새누리당 당헌·당규 틀 속에서 새누리당만의 상향식 공천, 즉 국민의 뜻을 최대한 반영하는 공천 룰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내년 총선의 목표는. -180석을 꼭 확보해야 한다. 20대 총선은 수도권 대첩이 될 것 같은데 수도권 출신 원내대표로서 그 역할을 다하겠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이종걸 새정치연 원내대표 “국정화, 우당처럼 비타협 투쟁… 권역별 비례제 받으면 수 논의”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에 대한 타협과 절충의 여지는 없다”면서 “교과서 집필진을 저쪽은 몇 명, 우리 쪽은 몇 명 나누어 구성하는 식으로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할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을 언급하며 “우당의 정신으로 비타협적인 투쟁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인해 국회가 공회전하거나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뜻도 밝혔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헌법소원이나 행정소송 가능성에는 선을 긋기도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국’이다. 원내 차원의 전략을 말해 달라. -국회에 계류 중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법률안’을 핵심적인 원내 추진 법안으로 해서 꼭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 그 외에 역사·교육 관련 단체 연석회의 구성, 교육부의 국감 제출 자료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 등도 추진한다. 하지만 이 문제가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과거 교학사 교과서 문제로 국론이 나뉘고 소모적인 논쟁을 했다. 그래서 이런 논쟁을 국정조사를 통해 마무리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교과서 집필에서 채택까지 이른바 ‘좌파 카르텔’이 작동한다는 논리를 보수 쪽에서 펴는데, 그 과정에 참여한 분들을 다 불러보면 되지 않나. 또 문재인 대표가 여야 당 대표·원내대표 간 ‘2+2 공개토론’을 제안했는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받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여야 원내대표·정책위의장 간 ‘2+2 공개토론’을 하자고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제안한다. 밤새워 토론해서 교과서 논쟁을 끝내 보자. →여당은 야당이 정기국회 예산안 처리와 교과서 문제를 연계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우리가 예산안 심의를 보이콧하겠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국정교과서 관련 예산의 증액 요청이 들어올 텐데 이를 꼼꼼히 보겠다는 것이지 예산안 전체를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번 정기국회가 원내대표로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포스트 국감’이 이제 시작됐다. 19대 국회는 ‘경제민주화’라는 역사적 소명을 갖고 탄생한 국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남은 정기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 과제들을 우선 처리할 계획이다. 무쟁점 법안 등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각 상임위의 법안심사소위를 1, 2소위로 나눠 심사, 처리하자고 여당에 제안한다. 법안소위를 둘로 나누어 가동하는 상임위는 국토교통위가 대표적인데, 다른 상임위도 법안소위를 분리해 운영하자는 것이다. 여당이 법안소위 분리에 반대한다면 이는 정략적인 반응일 뿐이다. →선거구 획정이 공회전하고 있는데 야당의 입장은. -새누리당이 정당명부식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으면 비례대표 수에 대한 문제를 열어 놓을 수 있다. 권역별 비례제 도입이 전면적으로 어렵다면 일부 도입할 수도 있다. 정밀하게 기술적으로 할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앞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 간 회동에서 얘기했다. 이 자리에서 현재 정수 300명을 건드리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기도 했다. 스스로 사표를 양산하는 체제에 편승하는 과두정당 체제를 우리 스스로 내려놔야 한다. →문 대표 재신임 정국 이후 당 상황을 어떻게 보나. 중앙위에서 대통합기구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서로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정리해서 이를 평화롭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당원이 결정할 수 있는 ‘대통합의 용광로’를 만들어야 한다. 연석회의 등의 얘기가 나오는데 당이 어려울 때 위기를 극복했던 대표적인 방법이 전당대회였다. 전당대회를 꼭 고집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많이 해봤고, 식견도 있다. 전당대회나 유사한 방식으로 대통합을 위한 적절한 방법이 나올 시기가 올 것이다. 늦어도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9일쯤에는 방법이 결정돼 실행돼야 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유명 개그우먼 남편, 30대女 성추행 혐의… 평소 ‘제수씨’라고 불렀다? “술 취해 기억 없어”

    유명 개그우먼 남편, 30대女 성추행 혐의… 평소 ‘제수씨’라고 불렀다? “술 취해 기억 없어”

    유명 개그우먼 남편, 30대女 성추행 혐의… 평소 ‘제수씨’라고 불렀다? “술 취해 기억 없어”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이 30대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6일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지난 8월 30대 여성 A 씨를 자신의 차에 태운 뒤 성추행한 혐의로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 B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는 지난 8월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30대 여성 A씨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태운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B씨는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가 10여년 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아내로, 평소 제수씨라고 호칭하며 지내온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는 검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TV조선 방송캡처(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명 개그우먼 남편, 30대女 성추행 혐의.. 대체 누구?

    유명 개그우먼 남편, 30대女 성추행 혐의.. 대체 누구?

    지난 6일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지난 8월 30대 여성 A 씨를 자신의 차에 태운 뒤 성추행한 혐의로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 B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는 지난 8월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30대 여성 A씨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태운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B씨는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가 10여년 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아내로, 평소 제수씨라고 호칭하며 지내온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평소 ‘제수씨’라고 부르던 사이 ‘누구길래?’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평소 ‘제수씨’라고 부르던 사이 ‘누구길래?’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평소 ‘제수씨’라고 부르던 사이 ‘누구길래?’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이 30대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형사3부(부장 이기선)는 9월 25일 사업가 A씨(58)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월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30대 여성 B씨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태운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B여성은 A씨가 10여년 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아내로, 평소 제수씨라고 호칭하며 지내온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사진 = TV조선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누구?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누구?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이 30대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형사3부(부장 이기선)는 9월 25일 사업가 A씨(58)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월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30대 여성 B씨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태운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B여성은 A씨가 10여년 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아내로, 평소 제수씨라고 호칭하며 지내온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대체 누구?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대체 누구?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이 30대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형사3부(부장 이기선)는 9월 25일 사업가 A씨(58)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월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30대 여성 B씨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태운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B여성은 A씨가 10여년 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아내로, 평소 제수씨라고 호칭하며 지내온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10년간 알고 지낸던 사이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 10년간 알고 지낸던 사이

    지난 6일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지난 8월 30대 여성 A 씨를 자신의 차에 태운 뒤 성추행한 혐의로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 B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는 지난 8월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30대 여성 A씨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태운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B씨는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인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가 10여년 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아내로, 평소 제수씨라고 호칭하며 지내온 사이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명 개그우먼 남편 B씨는 검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개똥쑥 신약은 中의약이 세계에 준 선물”

    “개똥쑥 신약은 中의약이 세계에 준 선물”

    “중국 학자 모두에게 돌아가는 영예다. ‘칭하오쑤’(靑蒿素·아르테미시닌)는 중의약이 세계 인민에게 준 선물이다.” 중국에 처음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긴 85세 ‘현역 약학자’ 투유유(屠??) 교수는 6일 수상의 영광을 중국 학자와 전통 중의약에 돌렸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다. 그의 노벨상 수상 이면에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48년간 하나의 프로젝트에 매달린 학자들의 집요함과 중의약을 의료체계의 중심에 놓고 서양 의학을 받아들이려는 국가적 자존심이 있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투 교수에게 보낸 축전에서 “중국 과학기술의 진보를 구현했다. 중의약이 인류건강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고 밝혔다. 개똥쑥(칭하오)이란 식물에서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하는 연구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이 직접 말라리아 신약 개발을 지시한 1969년부터 계속됐다. 투 교수는 39세 때 ‘5·23 프로젝트’로 명명된 연구 작업에 참여해 지금까지 아르테미시닌 연구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투 교수 연구팀이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100%의 ‘칭하오 추출물’을 191번의 실험 끝에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지만, 다른 연구팀들도 이에 필적하는 연구물을 쏟아냈다. 지난 10년간 환자 10억명이 중국 과학자들이 추출한 아르테미시닌을 투약받았다. 박사 학위와 해외 유학 경험도 없는 투 교수의 수상은 중국의 학계 관료주의에도 혁신을 몰고 올 전망이다. 인민일보는 투 교수가 수차례 원사(院士·이공계 최고 권위자에게 주는 명예호칭) 선정에서 낙선했음을 지적하며 “연구조작과 이권에 개입된 학자들이 나눠 먹는 원사 제도를 혁파하라”고 요구했다. 중의약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중국이 중의약을 발전시킨 것처럼 우리 정부가 한의학을 밀어줬다면 중국 이상의 성과를 냈을 것”이라면서 “중국은 중의약으로 연간 4조원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한국 한의사들은 엑스레이조차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노벨 생리의학상] 박사학위도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 中 투유유 “개똥쑥 신약은 中의약이 세계에 준 선물”

    [노벨 생리의학상] 박사학위도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 中 투유유 “개똥쑥 신약은 中의약이 세계에 준 선물”

    “중국 학자 모두에게 돌아가는 영예다. ‘칭하오쑤’(靑蒿素·아르테미시닌)는 중의약이 세계 인민에게 준 선물이다.” 중국에 처음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긴 85세 ‘현역 약학자’ 투유유(屠??) 교수는 6일 수상의 영광을 중국 학자와 전통 중의약에 돌렸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다. 그의 노벨상 수상 이면에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48년간 하나의 프로젝트에 매달린 학자들의 집요함과 중의약을 의료체계의 중심에 놓고 서양 의학을 받아들이려는 국가적 자존심이 있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투 교수에게 보낸 축전에서 “중국 과학기술의 진보를 구현했다. 중의약이 인류건강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했다”고 밝혔다. 개똥쑥(칭하오)이란 식물에서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하는 연구는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마오쩌둥(毛澤東) 국가주석이 직접 말라리아 신약 개발을 지시한 1969년부터 계속됐다. 투 교수는 39세 때 ‘5·23 프로젝트’로 명명된 연구 작업에 참여해 지금까지 아르테미시닌 연구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투 교수 연구팀이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100%의 ‘칭하오 추출물’을 191번의 실험 끝에 발견한 것이 가장 큰 성과이지만, 다른 연구팀들도 이에 필적하는 연구물을 쏟아냈다. 박사 학위와 해외 유학 경험도 없는 투 교수의 수상은 중국의 학계 관료주의에도 혁신을 몰고 올 전망이다. 인민일보는 투 교수가 수차례 원사(院士·이공계 최고 권위자에게 주는 명예호칭) 선정에서 낙선했음을 지적하며 “연구조작과 이권에 개입된 학자들이 나눠 먹는 원사 제도를 혁파하라”고 요구했다. 중의약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지호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중국이 중의약을 발전시킨 것처럼 우리 정부가 한의학을 밀어줬다면 중국 이상의 성과를 냈을 것”이라면서 “중국은 중의약으로 연간 4조원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한국 한의사들은 엑스레이조차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세종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누구길래?

    유명 개그우먼 남편, 성추행 혐의로 재판..누구길래?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이 30대 여성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 서부지방검찰청 형사3부(부장 이기선)는 9월 25일 사업가 A씨(58)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8월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30대 여성 B씨를 집에 데려다주겠다며 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 뒷자석에 태운 후 치마 속으로 손을 넣는 등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A씨는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B여성은 A씨가 10여년 간 알고 지낸 지인의 아내로, 평소 제수씨라고 호칭하며 지내온 사이인 것으로 전해진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독박(讀博) 육아일기](27) 1년에 단 며칠인데 뭐가 그리 힘드냐고요?

    [독박(讀博) 육아일기](27) 1년에 단 며칠인데 뭐가 그리 힘드냐고요?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가 다가온다. 며느리들의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육아 커뮤니티에는 명절 앞뒤로 게시글이 폭주한다. 평소에도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만 놓고도 한참 동안 수다를 나눌 수 있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전은 안 부치는 복 받은 며느리이지만 친정이 해외에 있다 보니 ‘없는 셈’ 쳐지는 듯 해서 더욱 서러웠던 명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며느리들의 ‘명절 증후군’은 때 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뉴스다. 소재도 너무 식상하다. 이번 명절에는 남녀 함께, 평등하게 보내자는 취지로 여성가족부가 남성들의 육아 및 가사나눔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벌인다지만 현실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 매년 생각해 본다. 도대체 왜 여전히, 며느리들은 명절이 고달플까. 평소에도 애 키우느라 집안일 하느라, 또 돈 버느라 가뜩이나 힘든데 명절, 이 짧은 며칠 동안 왜 최소 6개월치 스트레스를 얹게 되는 건가 생각해 봤다. 전을 많이 부쳐서? 설거지를 많이 해서? 단순히 이런 이유가 아니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순전히 가사노동의 강도가 늘어나서라면 이토록 오랜시간 고질병으로 자리잡진 않았을 것이다. 육아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사연들과 나와 지인들의 경험, 또 다른 수많은 며느리들의 하소연을 더해본 결과 근본적인 문제는 단지 전 몇 장 더 부치는 데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 며칠에 최소 6개월치 스트레스…며느리의 명절은 왜 고달픈가 육아 커뮤니티에서 명절을 앞두고 가장 많이 토로하는 문제는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다. 추석 당일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힘들다는 호소가 아니다. 바로 친정에 가는 문제다. 내 부모, 내 집에 과연 갈 수는 있는 건지, 간다면 언제 가야하는지 자체로 속앓이를 해야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전혀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아기가 생기면 신경전은 더 치열해진다. 특히 시집과 친정이 모두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연휴 일정을 잡는 것부터 기차표를 끊는 문제까지, 사소한 모든 것에 남편과 기싸움을 벌인다. 5년 단위로 실시하는 ‘가족실태조사’에서 2010년 조사 결과 ‘명절을 지내는 방식’으로 남편 쪽에서 보내는 경우가 62%로 가장 많았고 남편 쪽과 보낸 뒤 부인쪽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34.6%로 뒤를 이었다. 어쨌든 명절날 가장 먼저 시댁을 가고 시댁에서 당일을 보내는 것이 굳어진 것이다. 부인 쪽에서 보내는 경우는 2.1%, 부인 쪽과 보낸 뒤 남편 쪽으로 이동하는 가족은 0.6%에 불과했다. 5년 전 조사결과이니 올해의 조사 결과는 단 몇 퍼센트라도 달라져 있을까, 별로 기대는 안 된다. 명절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여러 엄마들에게 물었다. 다들 한숨부터 내쉬었고, 비슷한 말들을 쏟아냈다. 한 엄마는 결혼 전 남편에게 “우리 집도 조상이 있는데 차례를 시집에서만 지내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며 명절이 두 번이니 각각 시집과 친정을 번갈아가자고 제안했단다. 남편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고 “장모님이 그러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자”고 했다. 얼른 친정엄마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결과는 등짝을 맞는 것이었다. 행여나 딸이 시댁에서 책이라도 잡힐까봐 미리 혼쭐을 내준 것이리라. 이번 추석이 결혼한 뒤 첫 명절인 한 예비 엄마는 남편에게 “시집에서는 추석 전날 하루만 잠을 자고 다음날 친정에 가자”고 말했다. 남편이 서운하다고 했단다. 연휴가 4박 5일이라면 시집에서 3~4일을 보내고 나머지 시간에 친정에 ‘들렀다’ 오는 것이 당연해져 있다. 그나마 연휴가 길어야 친정에 잠깐이라도 들를 수 있다. 이런 전통은 시어머니로부터 며느리에게로 그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요즘 시대를 살고 있는 며느리들은 그 시간에 쓸쓸히 계실 친정 부모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며느리이기 전에 30년 가까이 딸로 살았고, 그냥 나로 살았다. 남편이 그렇듯 나도 내 가족들과 오랜만에 모여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물론이다. 남편들이 “명절을 시집에서 보내는 게 왜 그렇게 불만이냐”고 따진다면 “명절에 시집에 있다가 친정에 가는 게 왜 그렇게 서운한 일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엄마들의 사연으로 재구성해본 명절 풍경은 이랬다 엄마들의 사연을 종합해서 명절 연휴를 보내는 ‘보통’ 며느리들의 모습을 ‘재구성’해서 그려봤다. 연휴 이틀 전쯤부터 시집에 가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당일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어른들이 다 하고 난 뒤 대충 걸터앉아 후루룩 음식을 집어먹는다. 아직도 남녀가 겸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추석 당일 점심까지 다 차려낸 뒤 뒷정리와 설거지까지 한다. 곧 친정에 갈 것이라는 생각에 버틴다. 슬슬 나설 채비를 하는데 시어머니가 “곧 시누이가 올 것이니 보고 가라”고 하신다. 시누이는 친정에 오는데 정작 나는 친정에 못 간다. 시누이가 오면 그 식구들의 밥상을 또 차린다. 결국 저녁까지 함께하고 나면 친정 방문은 다음날로 미뤄진다. 북적북적 정신없던 명절 당일, 내 부모님은 두 분이서 쓸쓸한 하루를 보내셨다. 1년에 겨우 며칠인데 음식 준비나 설거지는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아무리 많은 그릇을 닦더라도 어느 누구 하나 고맙다거나 수고한다는 말이 없다. 그저 안 하면 큰일나는 일이 됐다. 시집에는 도착하자마자 잔소리가 쏟아진다. 아기가 없으면 “왜 아직 소식이 없느냐”고 채근하고 임신을 했으면 “딸이냐, 아들이냐”부터 시작해 몸이 어떻다, 꿈이 뭐였다…. 아기가 있으면 “우리 아들 닮아 이렇게 예쁘다”고 하다가 울기라도 하면 “쟤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우냐. 우리 아들은 순했는데”는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이런 소리를 내내 들어가며 기름 냄새에 절어간다. 아기가 방긋방긋 웃을 때는 온 친척들이 너도 나도 한 번 안아보겠다고 아기를 빼앗아가듯이 하다가도 아기가 “앵~”하고 우는 순간 잽싸게 엄마한테 넘겨준다. 아기를 등에 업고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그럴 때 TV보며 과일을 집어먹고 있는 남편을 보고 화가 안나는 것이 더 이상하다. 조선시대의 며느리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착한 며느리 노릇을 한다 해도 명절에 내 가족을 만나고 싶은 게 당연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남편 조상님들의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몇 날 며칠, 온 몸을 바쳐 음식을 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그럴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온갖 잔소리와 핀잔이다. 이런 일을 매년 두 차례씩 해야하니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조차 식상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옛날에나 그랬지, 요즘에 누가 그러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가족실태조사에선 여전히 명절에 주로 일하는 사람은 여자들(어머니·딸·며느리 포함·62.3%)과 며느리(32.7%)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남녀가 모두 같이 한다는 비율은 겨우 4.9%였다. 명절과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방식은 여전히 “모든 음식을 가정에서 직접 함께 만든다”는 것이 63.3%였고 “일부는 직접 만들고 만들기 어려운 것은 산다”는 응답이 31%였다. 나도 몰랐다. 30년 가까이 차례 한 번 안 지내보고 자랐다. 오히려 어렸을 땐 명절 연휴가 긴 것이 달갑지도 않았다. 명절 당일 오전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성묘를 다녀온 뒤 서울에 있는 외가에서 저녁을 먹는 게 명절 일정의 다였다. 나머지 시간은 명절 특선 영화를 보며 빈둥거렸다. 한껏 늘어지다 보면 자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나도 귀성길 행렬에 동참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멀리 여행을 떠나 진짜 명절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는 연휴를 즐겼다. 친한 친구와 여행을 다녀왔고 설에는 스키장에서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나를 가리키는 호칭 가운데 ‘며느리’라는 말이 더해지면서, 한가위 보름달이 더 이상 반갑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리 ‘남녀 평등’을 외치며 살았어도 나는 며느리였다. 명절 증후군을 피해갈 수 없었다. ●“남녀 평등” 외치던 며느리도 별 수 없었다 다른 집 며느리들의 이야기를 꺼냈으니 우리 집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사실 대부분 엄마들의 사연에 비하면 나는 매우 복 받은 며느리다. 시집은 서울이고, 근교에 있는 큰집에서 차례를 지내서 음식을 내가 하는 일은 없었다. 큰집 형님들께 매우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는다. 설날에는 당일 아침 일찍 큰집에 가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차리는 것을 거들면 되었고, 추석에는 충북 지역에 있는 산소에 가 성묘를 하고 거기서 음식을 나눠먹고 왔다. 가까이 있다 보니 시집에서 며칠씩 잠을 잘 일도 없고, 10시간 넘는 교통체증을 겪을 일도 없다. 그런데, 그런데도 나는 거의 명절마다 눈물을 쏟았다. 친정 식구들이 해외에 있다 보니 명절에는 마치 고아라도 된 느낌이었다. 친정에 언제 갈 것인지 남편과 신경전을 벌일 일은 없었지만, 아예 없는 셈 치니 더욱 서운했다. 첫 설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큰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동서의 친정이 지방에 있다 보니 차례를 마치고 서방님 내외는 급히 기차를 타러 떠났다. 나는 그날 오후 시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차를 타고 4~5군데 친척들의 집을 방문했다. 남편과 몇 촌 관계인지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처음이니까” 인사를 다녔다. 오후 4시쯤 넘어 친지 순회가 끝이 났고, 나의 외가에 가기로 했다. 시어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보내주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의 친정까지 가지 않은 며느리는 죄송함을 느껴야했다. 지난해 설에는 아기가 태어난지 20일도 안 돼 집에서 보냈고, 이번 설에는 “아기가 있으니 친척집을 다 다니는 것은 무리 아니냐”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물었지만, 아기를 보여드리고 싶은 눈치였다. 그나마 이번에는 두 곳만 다녀왔다. 눈물나는 배려였다. 그러고보니 첫 설을 앞두고 시부모님 두 분이 심심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어 큰집에 가기 전 날 자진해서 시집에 갔다. 집에서는 일절 명절 음식을 안 하셨다는 시어머니는 갑자기 며느리가 왔으니 명절 기분이라도 내자며 사각 전기 프라이팬을 창고에서 꺼내셨다.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 각종 재료로 전을 부치고 잡채를 볶았다. 그 뒤로는 적적한 시부모님 걱정을 마음으로만 하게 됐다. ●임신한 몸으로 벌초 따라다니니 뿌듯해 하는 남편 차마 서러웠던 모든 기억을 끄집어낼 수는 없고, 가장 난감했던 건 임신했을 때였다. 6개월 후반이라 비교적 안정적인 시기로 여겨졌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추석 전 주에 경북 지역으로 벌초를 따라다녔다. 마침 비가 내려 여자들은 산 밑에서 기다렸던 것이 다행이었지만, 이미 4시간 넘게 차에 앉아 이동했던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남편은 아버지의 고향이자 조상들의 흔적이 담긴 곳에 내가 함께 가길 원했다. 이 집안의 며느리가 된 나에게 O씨 집안의 뿌리를 심어주려던 취지였을 거다. 처음으로 그 집안의 집성촌과 같은 곳에 방문했으니 어른들도 매우 반가워하셨고, 지역 곳곳에 있는 집안 관련 유적지를 구경시켜 주셨다. 돌고 돌아 어떤 고택에 다다랐다. 할아버지나 증조 할아버지가 사신 곳이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아주 먼, 우리 집안으로 치면 ‘동의보감’을 쓴 허준 선생의 생가를 방문한 것 같았다. 고택 구석구석 쫓아 다니며 설명을 듣다보니 점점 다리가 후들거렸고 배가 땡겼다. 남편의 손을 붙잡고 모기 만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나 좀 그만 걷게 해달라”고. 남편은 부모님과 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다음주, 추석에는 충북 지역의 산소에서 성묘를 지냈다. 가파른 산 중턱에 걸쳐있는 산소를 낑낑대며 올라갔다. 시어머니께서는 “임신한 티도 안 내고 저렇게 씩씩하게 잘 다닌다”고 말씀하셨다. 칭찬이 그렇게 불편하고 서운한 적도 별로 없었다. 나는 정말 현기증이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식구들과 어울려 하하호호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듯한 남편이 너무 야속했다. 성묘를 마친 뒤 3시간쯤 걸려 다시 서울로 돌아와 시부모님과 다시 모였다. 부대낀 속에 다시 밥과 전을 집어넣은 뒤 한 뒤 얼마 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외가에 가기 위해서였다. 어머님은 남편 손을 잡고 벌써 가냐며 아쉬워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시집과 우리 집은 차로 겨우 15분 거리다. 며느리들이 명절이 고달픈 이유,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와 내 부모의 존재 자체가 깡그리 무시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다. 나는 이 남자가 좋아서 결혼을 했고 가정을 꾸렸지만 그 순간 어느 집안의 며느리라는 점이 더 크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명절은 그게 집중된다. 남편이 거들어주겠다고 호들갑을 떨수록 시어머니의 눈초리가 매섭다. 그 불똥이 더 튀느니 차라리 TV를 보는 남편이 편할 때도 있다. 몇 달 내내 아무 도움도 못 받고 혼자 아기를 키우며 눈물을 삼켰는데, 명절에 모든 식구들이 아기가 남편을 닮아 이렇게 이쁘다고, 남편 닮아 이렇게 똑똑하다는 말을 듣는 것도 괜히 짜증이 난다. 명절은 바로, 나라는 존재는 물론 내 부모까지 뒤로해야 하는 딸과 엄마로서의 시간들이다. 마음이 편해지고, 명절 증후군을 극복하는 건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당장 어른들의 생각을 뜯어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며느리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모두가 그 풍습이란 걸 따르게 되지만, 이럴 때일수록 ‘남의 편’이 아닌 ‘내 편’이 간절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명절 만큼은 남편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부모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어버리니, 며느리들의 이 고질병을 내 딸 만은 겪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이 기사의 관련기사 (21)아줌마가 되게 해줘서 고마워(22)외식에 집착하는 외로운 아기엄마의 항변 (23)엄마의 책임감도 아이와 함께 자란다 (24)깜깜한 초보엄마를 깨워줄 길잡이가 필요하다 (25)아들 딸 구별 말자던 세상, 정말 달라졌을까 (26)가끔은 그냥 ‘나’이고 싶다 ▶1회부터 20회까지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허백윤 기자의 독박 육아일기 / ☞블로그
  • ‘검은사제들’ 강동원, “꽃미남 외모 라이벌? 조인성, 현빈” 이기적인 비주얼

    ‘검은사제들’ 강동원, “꽃미남 외모 라이벌? 조인성, 현빈” 이기적인 비주얼

    검은사제들 강동원 ’검은사제들’ 예고편이 공개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강동원의 외모 라이벌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강동원은 지난 2009년 ‘전우치’ 제작보고회에서 ‘꽃미남’이라는 호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당시 “꽃미남이라는 호칭이 부담되지 않냐”는 질문에 강동원은 “기분 좋다. 부담스럽지 않다”며 답했다. 이어 강동원은 “’외모 때문에 연기에 지장이 있겠다’는 시선을 깨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나는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굳이 외모 라이벌을 꼽자면 현빈과 조인성이다”라고 답했다. 한편 강동원이 출연한 ‘검은사제들’은 위험에 직면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미스터리한 사건에 뛰어든 두 사제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오는 11월 5일 개봉 예정이다. 검은사제들 강동원, 검은사제들 강동원, 검은사제들 강동원, 검은사제들 강동원, 검은사제들 강동원 사진 = 서울신문DB (검은사제들 강동원)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월드 리베로’ 여오현 “뛸 수 있을 때까지는 선수로, 이후에는 지도자로”

    ‘월드 리베로’ 여오현 “뛸 수 있을 때까지는 선수로, 이후에는 지도자로”

    ‘월드 리베로’ 여오현(37)은 몸이 버텨주는 한 선수로 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은퇴 후에는 지도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일본에서 전지훈련 중인 프로배구 V리그 현대캐피탈의 여오현을 10일 아이치 나고야의 고세이 체육관에서 만났다. 여오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플레잉코치로 임명됐다. 선수로서 경기에 출전하면서, 코치의 역할까지 소화하는 이를 플레잉코치라 한다. 여전히 국내에서 손꼽히는 리베로이지만, 이제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됐다. 여오현은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선수로 뛸 것이다. 그 이후에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또 “나이도 들고 코치도 됐으니 너무 장난스러운 모습은 자제하려 한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형은 엄격한 코치가 됐다. “선수 시절과는 좀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변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코트 안에서, 그는 여전히 정열적이었다. 누구보다 크게 기합을 넣었고, 누구보다 말을 많이 했다. 여오현은 “나부터 흥이 나야 된다. 그렇게 안 하면 힘이 안 난다”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언제나 파이팅이 좋다. -나부터 흥이 나야 된다. 그렇게 안 하면 힘이 안 난다. 늘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 이제 습관이 된 것 같다. 경기 하면서 말을 많이 하고 기합도 넣는다. →팬들이 그런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다. - 늘 감사하다. ●”플레잉 코치되고 달라졌다. 장난스런 모습 자제 한다” →37세의 여오현은 어떻게 달라졌나. -이제 나이가 들었다. 너무 장난스러운 모습은 자제하려 한다. 특히 올해는 플레잉코치를 맡게 됐다. 무게감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조심하고 있다. 예전에는 후배들과 장난도 많이 치곤 했다. 이제는 그런 게 없어졌다. 너무 후배들과 말을 적게 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고 있다. →’코치’라는 호칭에는 좀 적응이 됐나. - 적응해가고 있다. →선수만 할 때와는 많이 다른가. - 선수 때는 훈련에만 전념하면 됐는데, 이제 선수들을 관리하는 역할까지 맡았다. 어깨가 무겁다. 이제 그냥 형은 아니니까, 선수들도 예전보다는 더 어렵게 대하는 것 같다. →의외로 코트 밖에서 후배들에게 엄격하던데. -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코치를 하면서 변했다. 선수 시절과는 좀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배구공을 만졌다. 이제 막 프로에 입문한 후배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 부럽다. 얼마나 두근거리고 설렐까. 그 친구들은 그게 좋은 건지도 모를 거다. 예전에는 후배들이 선배 눈치를 보면서 생활했다. 요즘 어린 선수들은 당돌하다는 느낌이 든다.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자기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면서도 할 것을 하는 건 좋은 거다. →후배들에게 아쉬운 점은 없나. - 쉽게 포기하는 게 눈에 보인다. 전체적으로 의지가 좀 약해졌달까. 많이 아쉽다. →수비 노하우도 전수 해준다고. - 이것저것, 내가 아는 걸 얘기해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이 얼마나 받아들이냐는 거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잘 받아주길 바랄 뿐이다. ●”감독도 아직은 코치보다 선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태웅 감독이 여오현 선수를 코치로 임명하면서 무엇을 바랐다고 생각하나. - 그래도 코치보다는 선수에 무게를 두고 있으신 게 아닐까 싶다. 코트 안에서 선수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이끌어가길 기대하신 것 같다. →코치가 되고 일이 많아졌나. -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졌다. 내 몸만 생각하면 됐는데, 이제 아니다.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 아픈 데는 없는지 살펴야 하고, 다른 업무도 많다. →이제 선수 이후의 삶도 고민할 시기인 것 같다. -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선수로 뛸 것이다. 그 이후에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플레잉코치를 경험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현대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새로운 배구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는 힘들 것이다. 시행착오도 겪을 것이다. 팬 여러분이 느긋하게 지켜봐 주시면 좋겠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줄여가겠다. 완벽한 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경기장에 많이 찾아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면, 현대는 즐겁고 재미있는 배구로 보답하겠다. 나고야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국내여행 | 숱한 시간의 흔적 교동도

    국내여행 | 숱한 시간의 흔적 교동도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걸까?소곤소곤 들려오는 교동도의 옛 향기에 차분히 집중했다.디디는 발걸음마다 애틋해진다.비로소, 한 발 더 가까이 멀게만 느껴졌던 교동도가 가까워진 지 벌써 1년이다. 섬에 들어가기 위해 강화도에서 배를 타야만 했던 불편이 지난해 7월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해소되는 듯했다. 하지만 교동도는 연백평야까지 불과 3.2km인 민통선(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속한다. 자국민일지라도 신분증을 검사받는 등 군부대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외부인은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후 30분까지만 교동대교를 통행할 수 있었다. 반가운 소식은 지난 6월부터 방문객에게 교동대교를 자정까지 연장해 개방한다는 것. 비로소 교동도에 한 발 더 가까워진 셈이다. 주민들에게 24시간 통행이 허용된 것도 지난 6월 초부터였으니 교동대교의 의미를 되새겨 볼 만하다.교동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이다. ‘구름에 뜬 섬’이라는 뜻의 대운도戴雲島가 원래 이름이었다. ‘하늘에 닿을 새’라는 의미로 달을신達乙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고구려 때 처음으로 현縣을 두어 고목근현高木根縣이라 했고 신라 경덕왕 때 교동현이라 한 것이 오늘에 이른다. 강화 나들길의 교동코스 중 하나인 ‘다을새길’은 옛 지명 달을신의 소리음인 다을새의 이름을 따서 탄생했다. ‘나들길’이란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이라는 뜻으로 1906년, 화남 고재형 선생이 강화도의 유구한 역사와 수려한 자연을 노래하며 걸었던 강화의 끊어진 길을 연결했다. 총 19개의 코스, 20개 구간으로 310.5km에 이른다. 이 중 교동도에는 2개의 코스, ‘다을새길’과 ‘머르메 가는 길’이 있다. 월선포를 출발하여 교동향교, 화개사, 화개산 정상, 석천당, 대룡시장, 남산포, 교동읍성, 동진포를 둘러보는 9코스(교동 1코스)는 약 16km. 장장 6시간이 걸리는 걸음이었지만 애틋하기만 했던 교동도 이야기.화개산 아래로 보이는 시간의 흔적 비가 제법 잦아들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해발 259.6m로 비교적 낮지만, 교동도에서는 가장 높은 화개산을 오르기에 선선한 날씨다. 오르는 내내 눈에 들어오는 푸름과 중턱에서 보이는 교동도의 모습이 정상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다소 가파르지만 속도가 더디어도 곳곳에서 소곤소곤 들리는 옛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화개산 약수터, 화개산성의 외성과 내성의 북벽이 교차하는 지점인 북벽망루北壁望樓, 자연숭배 신앙의 흔적으로 보이는 성혈바위 등 볼거리가 쏠쏠하기 때문.정상에 다다르자 한 장의 정지된 사진을 보는 듯 모든 것이 멈춰 있는 풍경과 마주한다. 드넓은 교동평야 뒤로 섬들과 산이 교차하여 내다보인다. 교동도에는 논이 약 2,640만 평방미터, 밭이 660만 평방미터로 모두 3,300만여 평방미터의 농경지가 자리한다. 간척사업을 통해서 농경지가 마련된 것으로 강화도에서 경작지 면적이 가장 넓고, 호당 경지면적도 가장 넓다. 동쪽 교동대교를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조금씩 눈을 돌리면 석모도, 상주산, 남산포, 기장섬, 주문도, 미법도, 서경도를 차례대로 음미할 수 있다. 흐린 날씨 탓인지 지도상의 ‘말도’는 눈으로 짚어지지 않았다. 반대쪽으로 발길을 돌리다 보면 서북쪽 휴전선 너머로 너무 가까워 믿기 힘들 정도의 거리에 황해도 연백평야가 뿌옇게 펼쳐져 있다.교동도는 연산군 유배지로 유명한 섬이기도 하다. 고려 희종, 안평대군, 임해군, 능창대군, 폐비 류씨, 익평군, 영선군, 은언군 등 이곳으로 많은 왕과 왕족, 귀족이 유배됐다고 한다. 교동도는 ‘돌아오지 않는 섬’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는데, 유배당한 이들 대부분이 이곳을 빠져나오지 못해 얻은 호칭이다. 하지만 옛날 사적은 물론 유배지도 분명한 자료가 남아 있지는 않아 전설과 추정으로만 전해지고 있다.조선시대 선조들도 찜질방을 즐겼던 걸까. 연산군 유배지로 추정되는 화개산 서쪽 자락에는 돌무덤으로 보이는 한증막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화해설사의 말에 의하면 조선 후기에 만들어져 1960년대까지도 간간이 사용했을 거라 추정된다고 한다. 화개산은 이 모든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야외 박물관인 셈이다.그 많던 제비는 대룡시장에 있었다 옛것이 그대로 보존된 곳이 있다고 소문나면 너도나도 그 모습을 담아 오려고 애쓴다. 교동대교가 들어서기 전 대룡시장은 그런 이들에게 호기심과 정복의 대상이었다. 1960~70년대의 영화세트장을 옮겨 놓은 것 같은 골목은 옛것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물들지 않은 역사 그대로의 모습이다. 연백군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고향에 있는 연백장을 본떠 만든 골목시장으로 활기도 잃고 촌스럽지만 정겹고 순박하다. 기나긴 시간이 흘렀지만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실향민들 때문인지 아련한 공기가 감돈다. 그나마 몇 개 남지 않은 점포들이 있는 시장을 둘러보려면 10분도 넉넉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을 느리게 또 느리게 둘러본다. 2명이 오갈 수 있을 법한 좁은 골목도 한산하다. 관광객보다 주민을 마주치는 일이 더 어려울 정도로 적막하다. TV를 통해 그나마 낯익은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거북당이 외지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할 뿐.고요함을 뚫고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제비다. 애잔한 실향민들의 보살핌으로 매해 둥지를 틀었나 보다. 처마 밑 곳곳에 제비집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운 좋게 새끼 제비들이 있는 둥지를 찾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자니 미안한 마음이다. 새끼 제비가 불안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해 주어야 할 것 같다.최신식으로 보태어 꾸미지 않아 더욱 소중했고 어디를 둘러봐도 옛것 그대로의 교동도다운 모습을 담아 올 수 있어서 뜻깊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옛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교동도에서는 따스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학문적인 지식은 조금 흘려 지나도 괜찮다. 멈춰 있는 시간에 다가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결고리가 있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주는 자연이 기다리고 있으니.▶travel info 교동도인천유형문화재 28호 교동향교 가장 오래된 향교 중 하나인 교동향교喬桐鄕校는 고려 인종5년(1127년)에 화개산 북쪽에 지었으나 조선 영조17년(1741년)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 고려 충렬왕12년(1286년) 당시, 안유선생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와 십철十哲의 초상을 모셔 왔다고 전해진다. 제사와 교육의 공간이 결합해 있는 향교에서는 매년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위시한 성현들을 추모하고 덕을 기리기 위한 ‘석전제釋奠祭’ 행사가 펼쳐진다. 8월 말까지 교동향교 내 전통건축물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인천기념물 23호 교동읍성화개산 남쪽의 읍내리에 있는 교동읍성은 조선조 인조7년(1629년) 수영이 설치되었을 때 축조된 것으로 도읍 전체를 둘러싸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아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했다. 성의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로 동, 남, 북에 3개 성문이 있었다. 현재는 반원 형태의 남문인 홍예문만 남아있다.교동 정미소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삼선리 교동 정미소는 부부가 20년 넘게 운영하는 교동도에서 가장 오래 된 방앗간이다. 대룡시장의 모습처럼 옛 자취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루 평균 350가마를 찧는데, 쌀이 되는 과정을 여과 없이 모두 지켜볼 수 있다. 전기 대신 아직도 기름으로 모터를 돌려 쌀을 찧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교동도는 섬임에도 불구하고 논과 밭이 많고 벼농사가 발달했다. 축산농가가 없어 맑고 깨끗한 농업용수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교동북로 183 삼선리정미소 032 932 1887강화 교동 나들길 여행상품DMZ와 접경지역 10개 시·군을 대상으로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DMZ관광주식회사(대표 장승재)에서 교동대교 1주년 기념으로 출시한 교동도 당일여행 관광상품. 나들길 화개산과 연계한 교동문화 중심의 A코스와 역사 문화 농촌 관광자원 중심의 B코스로 운영될 예정이다. 7월부터 매주 주말 출발하며 단체의 경우 주중 출발도 가능하다.02 706 4851 www.dmztourkorea.com 3만3,000원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유리취재협조 DMZ관광주식회사 www.dmztourkorea.com☞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언론인 김호준이 본 유라시아의 들꽃, 고려인의 파노라마] (상) 대륙 개척의 전위

    [언론인 김호준이 본 유라시아의 들꽃, 고려인의 파노라마] (상) 대륙 개척의 전위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유라시아 친선특급열차’가 아시아·유럽 두 대륙을 달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2년 전 발표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따라 미리 가 보는 길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 철도를 거쳐 베를린까지 이어지는 장장 1만 4400㎞의 대장정이었다. 150년 전부터 우리 동포들은 그 길을 따라 디아스포라의 수난을 겪으면서도 근면과 교육열로 다시 일어섰다. 대륙 곳곳에 똬리를 튼 우리 동포들의 어제와 오늘을 ‘유라시아고려인 150년’의 저자이자 이 특급열차에 동승했던 언론인인 김호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의 집필로 3회에 걸쳐 조명해 본다. 고려인은 구소련 지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를 가리키는 말이다. 고려인이란 호칭은 한민족의장혈통을 지니고 있지만 남한의 한국인도, 북한의 조선인도 아니라는 함의가 크다. 과거엔 주로 ‘조선인’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냉전 종식 후 자신들의 호칭을 ‘고려인’으로 통일시켰다. 양분된 조국과 관련해 그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호칭이다. 고려인은 우리 민족사에서 ‘북상(北上)개척’을 선도한, 대륙 진출의 선구자다. 고구려·발해 멸망 이후 비좁은 한반도에 갇혀 살던 한민족의 지평을 저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으로 넓힌 주역이 바로 고려인이다. 고려인의 러시아 이주는 제국주의 시대인 1863년에 시작되었다. 그때 기근과 봉건적 탐학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의 콜럼버스’ 최운보 양응범이 이끈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두만강 너머 연해주로 이주해 정착했다. 1902년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태평양을 건넌 하와이 이민보다 39년이나 앞선, 우리 근현대사 최초의 국외 진출이다. 구한말 연해주고려인 사회는 만주, 용정과 함께 항일 구국투쟁을 선도한 해외기지였다. 조선 강점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한 곳이, 1919년 3·1운동 후 최초로 임시정부를 세운 곳이 연해주다. 고려인들은 연해주에서 70여년간 민족공동체를 운영하며 블라디보스토크를 주도(州都)로 하는 고려공화국 건립 운동을 벌였다. 비록 소련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이 운동 역시 역외 건국운동의 효시다. 1937년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는 해외 한인이 겪은 시련 가운데 가장 큰 아픔이다. 강제 이주에 앞서 스탈린은 고려인의 저항을 막기 위해 지도층 2500명을 무더기로 체포, 일본 간첩이란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적성(敵性)민족으로 몰린 고려인 18만명은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허허벌판에 내던져졌다. 그때 처형, 기아, 질병 등으로 희생된 고려인은 총 1만 6500여명에 달했고 그들이 원동에서 살던 606개 촌락은 지도에서 사라졌다. 이런 참담한 역경 속에서도 중앙아시아고려벌들은 근면을 바탕으로 농업의 성공 신화를 쓰며 소련 제1의 소수민족으로 우뚝 섰다. 당시 소련이 세계에 자랑한 모범농장 폴리트오트젤과 김병화 농장 등은 모두 고려인이 운영한 집단농장이었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탄생한 15개 민족공화국의 소수민족 차별은 고려인의 이동을 촉발했다. 이슬람 문화권인 중앙아시아에 살던 고려인 10만 명이 슬라브 문화권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이주했다. 그 결과 최대 20여만명을 헤아리던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수는 13만명 수준으로 격감했다. 내전이 터진 타지키스탄에선 고려인 사회가 무너져, 한때 1만 3000명에 달했던 인구가 이젠 600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현재 고려인 최다 거주국인 러시아의 고려인 인구는 공식통계상 15만명이다. 무국적자와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 카자흐스탄에 10만 3000명, 키르기스스탄에 1만 7000명, 우크라이나에 1만 2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총 48만명에 달하는 고려인은 유라시아 대륙의 대표적인 분산민족이다. 고려인은 대륙의 어디든 없는 곳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민족자치를 거론할 만큼 다수파로 밀집해 사는 곳도 없다. 광활한 대륙에 마치 하늘의 별처럼 점점이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 고려인이다. 고려인들은 19세기 말 이래 시베리아철도를 따라 서진(西進)을 계속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꾸준히 넓혀 왔다. 최근에는 러시아 남부와 볼가 강 유역으로 뻗어나가 그곳에 새로운 고려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모스크바 등 대도시 지역의 고려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사안이다. 이렇게 우리 동포의 생활 영역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려인들은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국 해방을 위해, 또 탄압과 차별 때문에 유랑을 계속했지만 그것만이 동인(動因)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려인에겐 일찍부터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진취성, 모험성, 개방성 등이 있었다. 그것이 고려인들로 하여금 광활한 유라시아를 떠돌며 한민족의 영역을 넓혀 나간 저력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 [나우! 지구촌] “늘 너만을...” 지폐 편지로 재회한 연인

    [나우! 지구촌] “늘 너만을...” 지폐 편지로 재회한 연인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여성 더니즈 오라일리는 어느 날 지갑 속에서 한 여성의 ‘편지’를 발견했다. 지갑에 들어 있던 20유로짜리 지폐에 “크리스티,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 와서 부디 나를 찾아줘 – 메건”(Christy, it’s always been you! Come and find me – Megan)라는 짤막한 메모가 적혀있던 것이다. 짧은 편지에 담긴 여성의 애타는 심정에 마음이 동한 오라일리는 결국 이 지폐를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오늘 지갑 속에서 이걸 찾았다. 크리스티,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어서 그녀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사진을 본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다. 6055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좋아요’를 눌렀고 곧 1만 6000여 사용자가 해당 포스트를 공유했다. 이들은 같은 이름을 지닌 지인들에게 사진에 대해 알리기도 하며 편지 속 두 사람의 재회를 기원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결국 해당 편지의 진짜 수신인이 온라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티 리치’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더니즈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건과 연락이 닿은 상황이고. 이야기도 잘 풀렸습니다. 이 사진을 업로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연은 아일랜드 지역에서 유명해졌고 크리스티는 결국 라디오 방송에까지 출연해 편지의 내막을 보다 상세히 밝혔다. 그는 “사실 메건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잘못 들어 일주일동안 ‘메건’인 줄 알고 지냈는데 그 호칭이 그대로 굳어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나는 음악가이고 그녀와 사귀던 당시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It’s always been you)라는 제목의 자작곡을 지어줬었다”며 편지 속 문구에 담긴 속사정을 설명했다. 메건은 6개월 전 크리스티의 공연에 말없이 찾아가 이 지폐를 입장료로 지불했다. 그녀는 메모가 크리스티에게 직접 전달될 줄로 알았지만 크리스티는 지폐를 건네받지 못한 것은 물론 메건이 공연장에 찾아온 것조차 몰라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메건은 크리스티의 침묵을 거절의 의사로 받아들이고 그와의 재결합을 포기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서야 놀랍게도 편지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왔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다시 연락하게 된 것.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영화 같은 결말이 되었겠지만,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은 모양이다. 크리스티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로 연락은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며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모호한 전망을 내비쳐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낸 것으로 전한다. 사진=ⓒ더니즈 오라일리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늘 너뿐이었어’…지폐 낙서로 영화처럼 재회한 옛 연인, 결말은?

    ‘늘 너뿐이었어’…지폐 낙서로 영화처럼 재회한 옛 연인, 결말은?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여성 더니즈 오라일리는 어느 날 지갑 속에서 한 여성의 ‘편지’를 발견했다. 지갑에 들어 있던 20유로짜리 지폐에 “크리스티,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 와서 부디 나를 찾아줘 – 메건”(Christy, it’s always been you! Come and find me – Megan)라는 짤막한 메모가 적혀있던 것이다. 짧은 편지에 담긴 여성의 애타는 심정에 마음이 동한 오라일리는 결국 이 지폐를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고 “오늘 지갑 속에서 이걸 찾았다. 크리스티,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어서 그녀를 찾아가길 바란다”고 적었다. 사진을 본 네티즌의 반응은 뜨거웠다. 6055명의 페이스북 사용자가 ‘좋아요’를 눌렀고 곧 1만 6000여 사용자가 해당 포스트를 공유했다. 이들은 같은 이름을 지닌 지인들에게 사진에 대해 알리기도 하며 편지 속 두 사람의 재회를 기원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노력을 통해 결국 해당 편지의 진짜 수신인이 온라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티 리치’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더니즈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메건과 연락이 닿은 상황이고. 이야기도 잘 풀렸습니다. 이 사진을 업로드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사연은 아일랜드 지역에서 유명해졌고 크리스티는 결국 라디오 방송에까지 출연해 편지의 내막을 보다 상세히 밝혔다. 그렇게 드러난 이야기는 더욱 로맨틱하면서도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그는 “사실 메건은 그녀의 본명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녀의 이름을 잘못 들어 일주일동안 ‘메건’인 줄 알고 지냈는데 그 호칭이 그대로 굳어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나는 음악가이고 그녀와 사귀던 당시 ‘내게는 항상 너뿐이었어’(It’s always been you)라는 제목의 자작곡을 지어줬었다”며 편지 속 문구에 담긴 속사정을 설명했다. 메건은 6개월 전 크리스티의 공연에 말없이 찾아가 이 지폐를 입장료로 지불했다. 그녀는 메모가 크리스티에게 직접 전달될 줄로 알았지만 크리스티는 지폐를 건네받지 못한 것은 물론 메건이 공연장에 찾아온 것조차 몰라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메건은 크리스티의 침묵을 거절의 의사로 받아들이고 그와의 재결합을 포기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서야 놀랍게도 편지 사진이 온라인에 올라왔고 두 사람은 극적으로 다시 연락하게 된 것. 그렇게 두 사람이 다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면 영화 같은 이야기의 영화 같은 결말이 되었겠지만, 현실은 역시 녹록치 않은 모양이다. 크리스티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서로 연락은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며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모호한 전망을 내비쳐 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낸 것으로 전한다. 사진=ⓒ더니즈 오라일리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배우 이상희 아들 사망 사건 국내 재조사

    검찰이 5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배우 이상희(55)씨의 아들 이모군 사망 사건 재수사에 착수해 폭력을 행사한 한국인 동급생을 뒤늦게 기소했다. 당시 미국 수사당국은 정당방위라며 이 사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청주지검은 이 사건과 관련해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A(22)씨를 폭행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일 밝혔다. 이 사건은 2010년 12월 14일 로스앤젤레스의 한 고등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발생했다. 당시 19살이던 이군은 동급생이던 A(당시 17세)씨와 ‘형, 동생’ 호칭 문제로 싸우다 복부 등을 맞고 쓰러진 뒤 뇌사 판정을 받고 이틀 후 숨졌다. 미 수사당국은 상대방이 먼저 때려 주먹을 휘둘렀다는 A씨 주장을 받아들여 정당방위라며 불기소 처분했다. A씨는 2011년 6월 한국에 들어와 청주에 거주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군 부모는 지난해 1월 검찰에 재수사를 요청했다. 검찰은 이군 시신을 부검하는 등 재수사를 벌여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군이 흉기를 갖고 있던 것도 아니고, 당시 주위에 학생과 교사들이 있어 굳이 함께 주먹을 휘두를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청주지검 관계자는 “국내법은 상대방이 주먹을 휘두른다고 맞받아치는 것을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군이 복부 충격으로 인해 심장마비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복부 폭행이 이군 사망과 관련 있는 것으로 판단해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했다”고 덧붙였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시민과 만나는 ‘덕혜옹주 유품’

    시민과 만나는 ‘덕혜옹주 유품’

    지난 6월 고국에 돌아온 덕혜옹주(德惠翁主·1912∼1989) 복식 7점이 25일 일반에 공개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의 ‘돌아온 덕혜옹주 유품’ 특별 공개를 통해서다. 특별 공개에선 덕혜옹주가 입었던 어린이용 당의(唐衣·조선 시대 여성들이 입었던 예복), 스란치마, 돌띠 저고리, 풍차바지, 속바지(단속곳), 어른용 반회장저고리(깃, 고름, 소매 끝에 다른 색 천을 대어 지은 저고리), 치마 등 7점이 전시됐다. 이들 복식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24일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으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박물관 측은 “당대 최고 수준의 왕실 복식 유물로 복식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 복식들은 소 다케유키가 1955년 덕혜옹주와 이혼하면서 영친왕 부부에게 돌려보낸 것으로, 이듬해 영친왕 부부가 문화학원 전신인 문화여자단기대학의 학장이었던 도쿠가와 요시치카에게 기증하면서 일본에 남았다. 덕혜옹주는 1962년 귀국했지만 복식은 1979년 개관한 일본 문화학원 복식박물관에서 소장해 왔다. 덕혜옹주는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이 환갑을 맞은 1912년 낳은 고명딸이다. 어머니는 궁녀 출신인 복녕당 양귀인이다. 어머니가 정실이 아닌 까닭에 공주 대신 옹주라는 호칭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강제로 일본 유학을 떠나 20세에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 했다. 특별 공개는 다음달 6일까지 박물관 1층 ‘대한제국과 황실’ 전시실에서 13일간만 진행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가정의 종착지, 힐링의 출발지 ‘가정법원’

    가정의 종착지, 힐링의 출발지 ‘가정법원’

    3쌍의 부부가 탄생할 때 다른 1쌍은 이혼하는 시대다. 함께 살던 남녀에게 “이제 당신들은 남남”이라고 법률적인 선언을 내리는 곳이 가정법원이다. 가장 최근인 2013년 통계를 기준으로 가정법원에서 ‘협의이혼’이나 ‘재판이혼’을 한 사람은 모두 11만 5725쌍, 23만여명이었다. 현재 가정법원은 서울,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5곳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법원은 이혼 판결만 하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가정법원의 역할은 매우 다양하다. 업무 영역은 최근 들어 더욱 확대되는 추세다. 이혼 가족의 심리상담과 면접교섭 지원 등에 더해 가정불화와 학교폭력 중재에도 나서고 있다. “엄마 왔어. 집에 가자.” 눈가가 빨개진 채 A(32)씨는 힘없는 목소리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의 놀이방 문을 열었다. 올해 네 살이 된 아들은 알록달록한 색깔 타일이 깔린 바닥에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 인형을 들고 외할머니에게 안겨 있었다. 올해로 결혼한 지 6년째. 연초부터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한 A씨는 요즘 따라 유독 칭얼대는 아이를 집에만 두고 올 수 없어 함께 법원으로 왔다. A씨는 “법원에 아이가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있어 그나마 걱정을 덜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A씨의 아들이 1시간가량 엄마를 기다린 곳은 서울가정법원 1층의 아동대기실. 법원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혼법정까지 부모를 따라 온 아이들이 대기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재판을 받으면서도 법원 복도를 혼자 서성거릴 아이들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부모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5월 각종 캐릭터 인형과 공룡 피겨세트에 미끄럼틀, 볼풀장 등을 구매해 아동대기실을 새로 단장했다. 아동대기실은 2층 협의이혼 신청실 입구 옆에도 있다. 협의 이혼 과정에서 상담과 자녀교육이 도입되면서 가족들의 대기 시간이 늘어난 데 따라 새로 만들었다. 부부가 원만하게 이혼 협의를 하지 못해 재판을 선택하면 아이들은 재판 과정의 ‘일부’가 된다. 판사와 조정관은 양육자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를 관찰한다. 삭막한 조정실이나 휴게실에서 면접 교섭이 진행되면 아이들이 긴장한 탓에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에 따라 2007년부터 면접교섭실은 놀이 시설과 더불어 바깥쪽에서만 아이를 관찰할 수 있는 매직미러로 꾸민 관찰실을 갖추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7층에 있는 2곳의 면접교섭실은 한 해 200여 가족이 이용한다. 가정의 탄생과 종결을 다루는 서울가정법원의 배려가 투영된 셈이다. ●부부 3쌍 탄생할 때마다 1쌍은 이혼하는 시대 가족 상담이 이뤄지는 아동 상담실 역시 서울가정법원의 ‘변신’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가족 상담은 이혼 과정에서 과열된 갈등을 풀고 이혼 이후의 생활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재판부가 재판 이혼을 진행 중인 가족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총 10회의 상담이 끝나면 두 달 반 정도 소요된다. 올해 서른인 여성 B씨는 얼마 전 딸아이와 마지막 돌잔치를 함께하고 결국 조정이혼을 했다. 극심한 고부 갈등을 못 이겨 출산 직후 곧장 집을 나온 B씨는 남편에게 이혼과 함께 딸의 양육권을 요구했다. 그러나 첫 가족 상담일에 딸은 4개월 만에 본 엄마를 무서워하며 울기만 했다. 결국 양육권은 남편에게 돌아갔고 B씨에겐 면접교섭권만 인정됐다. 대신 서울가정법원은 딸의 돌잔치에 B씨가 참석할 수 있도록 남편을 설득했다. 강은숙 서울가정법원 가사상담위원은 “돌잔치는 일종의 심리적 예방 접종인 데다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함께 있는 사진을 나중에라도 보여주는 게 좋다는 설득이 통했다”고 말했다. 다만 대부분의 당사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만날 정성이 있었다면 애초에 이혼할 생각도 안 했다”며 가족 상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정이 숙려기간 3개월을 보내야 하는 것처럼 재판 이혼에도 충분한 시간과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게 도입 취지였다. 올해는 아동 상담실에 미술치료 세트도 마련됐다. 강 위원은 “심리치료용 모래놀이 상자와 놀이기구로 꽉 찬 방에 들어오면 아이의 얼굴부터 밝아진다”고 귀띔했다. ●‘숨은 소송 당사자’ 아이, 아동대기실서 보호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서울가정법원으로 가는 길에는 낯선 출입구가 하나 있다. 이혼 소송 중이거나 이혼한 가정에서 양육권을 가지지 않은 부모가 아이를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로 통하는 문이다. 평소에는 잠겨 있다가 아이가 함께 살지 않는 엄마나 아빠를 만나러 올 때만 사용된다. 아이를 만나러 온 부모 중 한쪽은 법원 로비 쪽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이음누리로 들어간다. 이윽고 이들이 가져온 간식이나 선물 등을 전문위원이 확인한다. 아이와 양육자는 다른 출입구로 들어와 대기실에 머무른다. 전문위원의 안내로 아이가 헤어져 사는 부모가 기다리는 방으로 이동하면 최대 한 시간 동안 면접이 진행된다. 아이들 연령대에 맞춰 장남감과 놀이기구로 가득 찬 방이다. 모든 과정은 반투명 유리 뒤 관찰방에서 전문위원이 참관한다. 이혼 상대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는지, 학교나 집 주소 등 개인정보를 물어보지는 않는지 등을 주의 깊게 살핀다. 부적절한 언행이 나오면 전문위원이 곧바로 제지한다. 이음누리 관계자는 “비양육친의 다수는 아버지”라면서 “종종 전문위원이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면접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부모들은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랜만에 아이를 보기도 하지만 이혼이라는 갈등의 한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곳에서 아이를 만난 한 아버지는 한 시간가량의 면접 교섭이 끝나 아이를 내보낸 뒤 놀이방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고 20여분간 오열했다. 아이와 놀아주는 동안에 참았던 눈물을 쏟은 것이다. 또 다른 이음누리 관계자는 “이곳에서는 ‘비양육친’과 ‘양육친’이라는 법률 용어 대신에 그냥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호칭을 쓴다”면서 “비록 이혼했거나 이혼 절차를 밟고 있지만 아이의 부모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 폭력 화해권고 합의율 79% 달해 가정법원은 이혼 가정에 대한 배려 외에 청소년 보호 쪽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소년법상의 화해권고 제도가 하나의 예다. 판사와 갈등해결 전문가가 나서 가해 소년과 피해자가 화해하도록 한다. 재판에 넘겨진 학교 폭력 등 사건에서 가해 소년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로 해결된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최근 5년간 259건을 화해권고를 성사시켰다. 합의율이 79%에 달한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C(당시 13세)군 등 1학년 학생 6명은 같은 반 친구 D군을 집단 구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재판으로 넘겨지자 사건을 맡은 소년부 판사는 화해권고 회부를 제안했다. 가해 학생들과 부모들이 진심으로 사과했고 D군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도 치유됐다. 6개월간 아동보호 치료시설에 가도록 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퇴소하기 전 담당 판사를 만나는 제도도 있다. 편안한 대화가 가능한 음식점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범죄 전력이 있거나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청소년들을 발견했을 때 법원으로 직접 송치해 법원이 보호 조치를 하는 ‘촉법소년 및 우범소년 송치제도’의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지난 13일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100여명을 초청해 ‘촉법소년 및 우범소년 송치제도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이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해 경찰이 검찰 지휘 없이 법원에 직접 소년을 송치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가정법원이 단순히 이혼 판결만 내리는 게 아니라 ‘가정의 평화와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봉사한다’는 원래 취지에 충실하기 위해 앞으로도 다양한 시도들을 선뵐 것”이라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서울가정법원의 아동들을 위한 공간 ▶ 아동대기실(1층): 수유실과 놀이방 ▶ 협의이혼 자녀 양육안내 대기실(2층): 놀이방 ▶ 면접교섭실(7층): 이혼 재판 과정에서 아이와 부모의 면접 교섭 ▶ 면접교섭센터(1층): 양육자가 아닌 부모의 면접교섭권 보장 / 자녀관계 상담 및 교육 ※ 소송 중이거나 이혼한 가정이 신청을 통해 접수 ▶ 아동상담실(6층): 재판부의 상담조치 명령 받은 아동이 미술치료 도구 이용해 상담위원과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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