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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빛 발견] 언론의 지칭어/이경우 어문부장

    호칭어는 상대를 직접 부르는 말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에서 ‘선생님’은 호칭어가 된다. 지칭어는 상대에게 제삼자를 가리키는 말을 뜻한다. “길동아, 선생님 만났어?”에서 ‘선생님’은 지칭어다. 언론에서는 상대를 부르는 일보다 다른 대상을 가리키는 일이 많다. 호칭어보다 지칭어를 더 많이 쓰게 된다. 가장 흔한 형태는 성명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부분 성명을 그대로 쓰지는 않고 뒤에 ‘씨’ 같은 존칭이나 국회의원·장관·회장 같은 직함을 붙인다. 운동선수나 연예인에게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씨’를 붙이지 않는다. 성명으로만 가리켜 전달한다. 이런 ‘원칙’은 외국인에게도 적용돼 그가 어떤 일을 하든 ‘씨’를 붙이지 않는다. ‘제임스씨’가 아니라 ‘제임스’라고 알린다. 국회의원이나 기업의 회장에 대한 지칭어는 또 다르다. 이들에게는 성명 뒤에 오직 직함만 붙인다. 이들에게 붙이는 ‘씨’는 낮춤말처럼 여겨진다. 이들의 직함은 ‘씨’보다 높은 말이 돼 버렸다. 언론이 소식을 전하는 대상은 독자와 시청자, 곧 국민이다. 이상적인 방향은 ‘국회의원 홍길동’이다. 아니면 ‘국회의원 홍길동씨’이거나. 그래야 객관적이고 공정해진다. wlee@seoul.co.kr
  • 정성장 “北 상임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 국무위원장에 이양됐다고?”

    정성장 “北 상임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 국무위원장에 이양됐다고?”

    지난 11일 개최된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도중 최룡해 신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이며 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할 것을 제안”한 것이 국내 전문가들끼리 해석의 차이를 낳고 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최룡해가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란 호칭을 사용한 것을 근거로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해 국무위원장에게 국가의 대표 자격, 즉 대외적 ‘국가 수반’ 지위를 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17일 ‘세종논평’을 통해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먼저 “이 표현은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의 여느 대의원들처럼 특정 선거구의 주민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북한 인민을 대표하는 직책이라는 의미이지 국가를 대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만약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 대표’의 권한을 부여하고자 했다면 최룡해가 추대사에다 “공화국의 최고영도자이자 최고대표자이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라고 적시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두 번째로 ‘국가 대표’ 권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최룡해를 이 자리에 선출하면서 동시에 그 권한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이양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정 본부장은 지적했다. 헌법 개정을 했다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직책을 폐지하고 최룡해를 국가 대표 권한이 없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직에 선출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북한 헌법 제117조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금까지 해온 ‘국가 대표’ 역할이라는 것은 대체로 외국 대사의 신임장과 소환장을 접수하고, 외국 정부, 정당, 민간 대표단들을 면담하며, 외국에 축전과 조전을 보내는 것이었다. 정 본부장은 경제를 살려야 하고 미국과의 협상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국가 대표’ 권한까지 떠맡아 외국 대사의 신임장과 소환장을 접수하고 외국 정당 및 민간 대표단까지 만날 여유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또 북한 헌법 100조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공화국의 최고영도자’로 규정하고 있는 데다 김 위원장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전혀 없다. 굳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가지고 있는 ‘국가 대표’ 권한을 넘겨받아야 그의 권력이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에 최룡해가 김 위원장 아래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직에도 선출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대외적 국가수반 지위가 국무위원장에게 넘어갔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며 정 본부장은 “이전에도 북한의 국가기구 서열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국무위원회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최룡해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직에도 선출됐다고 해서 국무위원장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상하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발생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역시 최룡해가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인 박봉주 전 내각 총리와 국무위원회 위원들인 김재룡 새 내각 총리, 리용호 외무상까지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커졌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이런 분석은 일부 국내 전문가들이 최룡해가 허울 뿐인 자리로 물러나 앉게 됐다고 보는 견해와도 상반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 김정은… 당·국가·군대 장악 김일성 반열에

    ‘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 김정은… 당·국가·군대 장악 김일성 반열에

    국무위원장의 대내외 위상 변화 반영북한이 지난 11~12일 최고인민회의 등을 계기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전체 조선 인민의 최고대표자’에 이어 ‘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하며 김 위원장의 대내외 위상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노동신문 등은 16일 김 위원장이 전날 김일성 국가주석의 생일을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소식을 보도하며 “조선노동당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력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 군대의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라고 했다. 앞서 북한 매체들은 11~12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 이전만 하더라도 김 위원장의 군 직책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인 2016년 개정 헌법 102조에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으로 되며 국가의 일체 무력을 지휘 통솔한다”고 규정돼 있다. 북한이 헌법에 규정된 김 위원장의 군 직책과 실제 호칭을 일치시켜 김 위원장이 정규군인 인민군뿐만 아니라 노농적위군 등 준군사조직, 인민보안성 등 유사 군사조직을 포괄하는 명실상부 최고사령관이자 국가원수임을 대내외적으로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앞서 최룡해 신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을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하며 김 위원장에 대해 “전체 조선 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북한 헌법도 개정됐기에 개정 전 헌법에서 규정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상징적 국가수반 지위를 국무위원장으로 이관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헌법 개정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개정 전 헌법에도 ‘공화국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이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당시 상징적 국가수반은 아니었기에 이 표현을 그대로 실제 사용하기엔 부담이 있었을 것”이라며 “헌법 개정으로 김 위원장이 당과 국가, 군대를 실질적이자 상징적으로 장악했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반열로 올라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다소 생소한 호칭을 새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전 직책과 호칭을 피하면서도 명실상부 국가원수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은 2011년 집권 이후 헌법 개정으로 국방위 제1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정일의 생전 직책인 국방위원장직을 대체했다. 이후 2016년 다시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꾼 바 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케이시 “‘그때가 좋았어’ 발매 후 前남친들 다 연락 와”

    케이시 “‘그때가 좋았어’ 발매 후 前남친들 다 연락 와”

    자신의 경험을 담아 직접 가사를 쓰고, 몇 번째 무대건 마치 첫 무대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노래하는 케이시. ‘그때가 좋았어’와 ‘진심이 담긴 노래’로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케이시와 bnt가 만났다. 비앤티 꼴레지오네(bnt collezione), 프론트(Front), 스텔라 마리나, 위드란(WITHLAN) 등으로 구성된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이번 화보에서 그녀는 플라워 패턴 셔츠에 화이트 오버롤로 생기발랄 한 모습을 보여주는가 하면 도로 한복판에서 촬영한 민트색 원피스와 블랙 원피스의 믹스매치 룩으로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어 갈대밭에서 오리엔탈 패턴의 레드 팬츠로 어쿠스틱 무드를 발산하며 각기 다른 매력을 뽐냈다. 촬영 후 마주 앉은 그녀에게 먼저 최근에 연달아 두 곡을 히트시키며 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높은 음원 순위가 여전히 얼떨떨하다는 그녀는 동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작가 비법으로는 “경험 20%에 상상을 80% 더해서 가사를 쓴다. 사소한 일에 살을 많이 붙이는 편”이라며 실감 나는 가사의 작사 노하우를 들려줬다. 히트곡 ‘그때가 좋았어’ 역시 경험담이냐고 묻자 “맞다. 실제 이별 후 쓴 곡이다. 나이가 어려 많은 사랑을 해 본 건 아니지만 처음으로 사랑 같은 사랑을 하고, 이별한 기억을 토대로 썼다”며 “재미있게도 ‘그때가 좋았어’가 과거를 추억하는 내용이라 그런지 발매 후 옛날 남자친구들에게 모두 연락이 오더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전했다. 최근 롤모델 윤미래와 함께 작업해 화제가 되기도 한 그녀는 “내 노래 ‘잊어가지마’를 윤미래 선배님이 리메이크하셔서 인연이 닿았다. 그 후 듀엣 작업을 제안했는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고 말하며 “워낙 윤미래 선배님의 팬이고 윤미래 선배님의 곡을 가이드했던 적이 많아서 그런 에피소드를 말씀드렸더니 안 그래도 내가 녹음한 가이드 곡을 듣고 너무 열심히, 잘 불러서 부담됐다고 하시더라. 날 알고 있으셨단 말에 감동했다”며 성공한 팬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친한 동료로 ‘언프리티 랩스타3’ 출연으로 인연을 맺은 하주연과 자이언트 핑크를 꼽은 그는 의외의 친분으로 윤도현을 꼽기도 했다. “과거 윤도현 선배님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이를 찾는 이벤트를 통해 연이 닿았고 그 후로 나를 좋게 봐 주셔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나에게 칭찬도, 조언도 많이 해 주셔서 감사하게 따르고 있다”며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도. 처음 대중들에게 얼굴을 비춘 무대가 랩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그녀에 대한 오해도, 편견도 많은 것이 사실. 케이시는 랩을 못 해 노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평에 “그럴 수도 있다”고 의연하게 답하며 “처음부터 랩과 노래를 같이 하는 사람이었지만 첫 시작이 래퍼였으니 한쪽으로 이미지가 치우친 것도 이해가 간다. 앞으로도 랩으로 내 생각을 표현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랩을 할 것”이라는 소신을 전했다. 음색 여신이라는 호칭으로 사랑받는 그녀는 의외로 자신의 낮은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단 말을 해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는, 낮은 목소리가 콤플렉스였지만 여러 노래를 통해 내 음색을 좋다고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할 뿐”이라며 뿌듯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어 솔로 여가수 중 자신만의 강점으로 감정 표현력을 꼽으며 누구보다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출연하고 싶은 예능을 묻자 여전히 MBC ‘복면가왕’을 꼽은 그녀는 “가면을 벗었을 때 ‘우와!’ 같은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내 인지도가 부족해 망설여진다”며 겸손한 답을 전한 그녀는 “꼭 한 번은 출연하고 싶었던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무대에 오르는 꿈은 이뤘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청심환을 다 먹었다”는 일화로 귀여운 한 면모를 보여줬다. 소속된 회사가 작곡가 회사인 탓에 가이드 곡을 녹음할 기회가 많다는 케이시는 “100곡이 넘게 가이드 곡을 녹음한 것 같다. 보통 가이드 곡을 녹음할 때는 가수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내가 여기서 최선을 다하면 혹시나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겠냐는 1%의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 그녀만의 진심 어린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자랑하는 그녀는 의외의 다이어트 전문가였다.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스타일이고 키가 커서 조금만 살이 붙어도 덩치가 커 보인다. 그래서 안 해 본 다이어트가 없다. 최근에는 킥복싱에 빠져 있는데 땀도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이어트 효과도 좋다”며 킥복싱 삼매경을 늘어놓기도 했다. 25살, 한창 사랑할 예쁜 나이인 케이시는 “이상형은 말을 예쁘게 하는 남자다. 회사에서는 연애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시는데 집-작업실을 오가는 스케줄이라 연애할 기회가 없다. 1년 6개월 넘게 솔로다”라며 연애를 하고 싶은 청춘의 한 면을 보여주기도. 케이시의 얼굴, 이름은 몰라도 노래만은 대중 곁에서 항상 머물며 노래가 익숙한 가수가 되고 싶다는 소소하면서도 원대한 포부를 밝힌 그녀. 10년 후 목표를 묻자 “어렵겠지만 ‘지금’ 같은 가수가 되고 싶다.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여전히 순수하고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가수”라고 답한 그녀를 보니 10년, 20년 후에도 우리 곁에서 순수하게 노래할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남북한과 일본, ‘동해’ 표기문제 협의...일본 입장 바뀔까

    남북한과 일본, ‘동해’ 표기문제 협의...일본 입장 바뀔까

    남북한과 일본이 영국 런던에서 ‘동해’(East Sea)·‘일본해’(Japan Sea) 표기 문제를 놓고 협의를 했다고 11일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산케이신문 등은 자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과 북한, 일본의 담당자들이 동해·일본해 표기 문제와 관련해 지난 9일 런던에서 비공식 협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남북한 및 일본 외교 당국자들 외에 미국과 영국에서도 참석했다.이번 협의는 국제수로기구(IHO)가 ‘일본해’로 단독으로 표기하고 있는 지도 제작지침의 개정 여부를 놓고 관련국과 논의할 것을 일본에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은 자칫 한국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싫은데도 마지못해 협의에 응했다. IHO는 전 세계 안전한 수로 이용을 위해 1921년 설립된 국제기구로, 각국 지도 제작 지침이 되는 표준해도집 ‘해양과 바다의 경계’를 발간하고 있다. 이 간행물은 1929년 초판부터 현재 사용되고 있는 1953년 3판까지 ‘동해’가 아닌 ‘일본해’로 일관되게 표기해왔다. 앞서 2017년 IHO는 모나코 총회에서 “2020년 총회에서 해양 명칭 개정 문제 등에 대한 논의 결과를 보고한다”고 결정했다. 한국은 1992년 유엔에서 처음으로 동해 호칭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해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 결과로 퍼진 호칭”이라며 ‘동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일본과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동해·일본해’로 병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일본 측은 “일본해’가 유일한 호칭”이라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민주주의 훼손 호칭 ‘대통령’·성차별 언어 ‘미망인’… 바꿔야죠

    민주주의 훼손 호칭 ‘대통령’·성차별 언어 ‘미망인’… 바꿔야죠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으로 사회적 약속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생각이 커져서 그릇에 담을 수 없다면 그릇을 바꾸면 됩니다.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지영(52)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지난해 11월 출간한 ‘언어의 줄다리기’에서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과 호칭의 변화를 화두로 던졌다. 언어 표현 뒤에 숨은 의미를 연구해 온 국어·언어학자는 “무조건 바꾸자는 게 아니라 고민해 보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논의의 과정을 가져 보자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바꾸는 데 거부감을 갖는다. 습관화되면 질문조차 하지 않게 된다. 더욱이 가족관계 호칭은 ‘전통’과 연계돼 있어 논란이 커질 수도 있다. 신 교수는 “전통에 대한 반발이라는 접근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문제 제기이며 언어는 맞다, 틀리다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누구나 쓰는 언어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고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적절한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언어의 줄다리기’라는 말이 신선하고 생소한데. “우리는 말을 할 때 어떤 말을, 어떻게 할 것인지 마음속으로 계속 고민한다. 타인과의 대화는 끌려가고 때로는 끌어당기는 과정의 연속이다. 마치 줄다리기 경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줄다리기는 사회 차원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익숙하게 쓰여 온 표현들이 지금 우리의 생각을 적절히, 잘 표현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는 모습은 마치 새로운 표현이 기존의 표현에 줄다리기 시합을 거는 것과 같다. 언어는 적절성을 따지는 대상이다. 어제의 생각과 오늘의 생각이 충돌하는 순간 줄다리기는 시작된다. 언어의 줄다리는 더욱 많아져야 한다.” -줄다리기의 결과는. “언어는 학습에 의해 습득되는데, 그 과정은 전적으로 ‘따라하기’다. 언어 표현이 숨기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생각과 관점을 지배한다. 언어 표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동의하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언어를 둘러싼 줄다리기를 관전하다 보면 사회를 읽을 수 있다. 사회가 고민하는 문제, 알지 못했던 함정 등을 생각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언어 감수성이 높아진다. 언어 감수성은 사상과 생각을 담고 있어 민감하다. 이전까지 관심이 없었던 표현들이 자꾸 거슬리게 되는데, 마음에 걸리는 표현이 많아지면 말을 조심하고 점검하려는 태도가 생겨난다.” -민주주의 훼손 단어로 ‘대통령’을 꼽았다. “미국의 ‘프레지던트’(President)는 봉건주의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제도로 뽑은 국가의 대표자에 대한 호칭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봉건주의적인 세계관을 담아 대통령을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으로 번역했다. 대통령은 봉건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담긴 표현이다. 왕은 통치자고 백성은 통치의 대상인 것이다. 일본은 왕이 존재하는 나라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대표자를 대통령으로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정면 배치된다. 더욱이 대통령은 일제 잔재로 순화 대상이다. ‘대체 호칭’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미망인’은 성차별 언어이자 사라져야 할 언어라고 지적했다. “미망인(未亡人)은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아내를 지칭한다. 그런데 뜻이 고약하다.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다. ‘과부’나 ‘홀어미’보다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것이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데,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었던 중국의 순장제도에서 나왔다. 당연히 죽었어야 했는데, 살아남은 죄인으로 자신을 낮춰 표현한 것이다. 현재는 타칭으로까지 확대됐다. 미망인이나 과부라는 말은 사라져야 할 언어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몰카’(몰래카메라)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범죄행위인 ‘불법 카메라’가 정확한 말이다. 몰카는 예전 예능 프로그램도 있어 죄가 안 되는 놀이처럼 잘못 인식하고 있다. 세상은 결혼한 사람(기혼)과 아직 안 한 사람(미혼)만 존재할까. 이 표현 뒤에는 결혼에 대한 관습적인 세계관과 결혼에 대한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강조되고 있다. 결혼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지 반문하고 싶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인데 바꾸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사회적 약속은 고정불변의 진리나 금과옥조가 아니며 불가침의 성역도 아니다. 언어는 사회 구성원 간 합의하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반면 합의 없이는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언어 변화의 방향과 속도는 전적으로 언어 사용자들의 의식 수준에 달려 있다.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1996년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뜻을 가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이 변경됐다. 반대와 논란이 있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언어가 지닌 문제는 언어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들의 의식 수준이라는 아픈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호칭, 특히 가족관계 호칭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조차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면 ‘몇 살’인지를 묻는다. 명함을 건넨 후 나이 등 신상 정보 파악은 의례적인 절차다. 한국 사람은 어떤 호칭을 쓸 것인지에 대한 판단에 민감하다. 세계 207개 언어 중 ‘공손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2인칭 대명사(YOU)로 타인을 지칭하지 못하는 언어가 7개가 있는데 한국어가 포함된다. ‘너’, ‘당신’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시대의 변화에 따르지 못하는 대표적인 언어는 가족관계 호칭이다. 가족관계는 축소되는데, 호칭은 많고 여전히 복잡하다. 여성은 ‘출가외인’이라는 세계관과 남성 중심의 성차별적 요소가 더해져 피로감을 더한다. 남편의 남동생과 여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로 존칭하는데, 아내의 형제는 ‘처남’, ‘처형(제)’으로 호칭한다. 관계는 언어로 시작하는데, 불편한 호칭은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라도 바꿔야 한다. 공론화되면 합리적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시작이다.” -성문화된 어문 규정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2011년 8월 31일 ‘짜장면’이 해금됐다. 표준어로 인정되는 데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자장면’이라고 쓰고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돈가스와 버스도 같은 범주다. 어문 규정 때문이다. 짜장면은 규정에 없지만 오랜 투쟁을 통해 복수 표준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글맞춤법, 표준어규정, 외래어표기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등 규정을 갖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남한과 북한뿐이다. 사전(표준국어대사전)이 만들어지면 사라졌어야 했다. 영어를 배울 때 사전으로 찾지, 철자법이나 발음법 원칙을 확인하지 않는다. 규정은 한국어 사용을 억압하는 수단이다. 폐지해 실제 사용되는 언어를 만날 수 있는 사전 중심 규범을 현실화해야 한다.”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신지영 교수는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어 탐험가’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국어학자가 되겠다며 고려대 국문과에 진학, 박사 과정 수료 후 런던대에서 말소리의 방법을 공부했다. 귀국 후 음성공학과 언어병리학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2003년 모교 국문과 첫 여성 교수로 임용됐다. 신 교수는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인문학자다. ‘쉬운 것은 재미가 없다’며 후배들에게 도전하고 멈추지 말며 고이지 말 것을 설파한다. ‘열자’에 나오는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 주는 친구, ‘지음’(知音)이라는 말을 좋아하고 아낀다. ‘한국어의 말소리’, ‘쉽게 읽는 한국어학의 이해’, ‘한국어 문법 여행’, ‘말소리 장애’ 등 저술을 통해 더 넓은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동숭학술논문상과 고려대 명강의상 등을 받았다.
  • 의경, 후임이 나이 더 많으면 서로 존댓말…휴대전화 사용 확대

    의경, 후임이 나이 더 많으면 서로 존댓말…휴대전화 사용 확대

    내부문서 촬영 불허 등 윤리교육경찰청은 의무경찰에게 일과·취침시간 외에는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등 의경 생활문화를 개선한다고 29일 밝혔다. 앞서 경찰은 의경이 휴게시간에 하루 2시간 휴대전화를 쓰도록 허용하는 제도를 지난해 4월 시행했다. 이를 확대해 앞으로는 평일 아침점호 후∼일과 시작 전, 일과 후∼저녁점호 전 사용을 허용하고,휴일에는 아침점호 후부터 저녁점호 전까지 휴대전화를 쓰도록 했다. 다만 내부 문서 촬영, 음란물 시청, 도박사이트 접속 등 부적절한 휴대전화 사용 우려가 있어 관련 윤리교육을 철저히 한다는 방침이다. 두발 길이도 기존 앞머리 5㎝·윗머리 3㎝·옆머리와 뒷머리 1㎝ 이내에서 속칭 ‘상고머리’형까지 기르도록 허용한다. 완화된 기준은 앞머리 7∼8㎝, 윗머리 5∼6㎝,옆머리와 뒷머리 1㎝ 이내다. 아울러 군대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다’,‘∼까’ 표현을 ‘∼해요’ 등 일상 용어로 순화하고,후임이 선임보다 나이가 많으면 서로 존댓말을 쓰도록 문화를 개선할 방침이다. 호칭은 선·후임 구분 없이 ‘○○○의경(님)’ 또는 ‘○○○님’으로 부르도록 하고,의경 간 상호 거수경례는 금지하며 대신 목례로 대신하도록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의경을 ‘제복 입은 시민’이자 함께 가야 할 동료로 인식하고,건강한 복무환경을 조성하고자 생활문화를 혁신적으로 개선하려는 뜻”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독립운동” 포고문… 친일 부호들 암살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독립운동” 포고문… 친일 부호들 암살

    “피고인 박상진, 김한종은 광복회 명의의 ‘포고문’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천년 종사는 허사가 되고 우리 이천만 민족은 노예로 되어 섬나라 오랑캐의 악정 폭행은 날로 더하고 달로 늘어 이를 돌이켜보면 피눈물이 샘솟아…(중략) 그리하여 각 자산가는 미리 저축하였다가 본회의 요구에 응하여 출금하고, 만약 우리 광복회의 기밀을 누설하거나 그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본회 스스로 정률이 존재함을 알게 하겠다’는 정치상 불온한 문구를 기재했다.”(1920년 9월 11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1부 재판장 마에자와 나루미의 판결문 일부)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1884~1921)의 포고문은 단지 선언에 그치지 않았다. 상당한 재력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국내에서 처음 실시된 판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경술국치를 지켜보다 스스로 법복을 내던지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공주지법 예심, 대구복심법원 확정 판결문에는 박상진을 주축으로 광복회가 친일파 부호들의 집을 습격해 독립자금을 모으고, 요구에 응하지 않는 부호들에 대해선 암살 활동을 벌인 행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1915년 7월 15일 결성된 광복회는 대구를 거점으로 상업조직을 활용해 영주, 삼척, 광주, 예산, 연기, 인천으로 세력을 펼쳐 나갔고, 만주 안둥·창춘 등 해외에도 거점을 뒀다. 훗날 청산리 전투를 이끄는 김좌진은 2대 부사령으로서 독립군 양성을 위해 만주에 파견되기도 했다. 일제의 시선에서 바라본 광복회의 탄생과 목적은 일제 판결문에도 남아 있다. ‘피고인 박상진과 김한종은 일한 병합에 불평을 가지고 구(舊) 한국의 국권 회복을 호칭하고 여기저기 배회하다 채기중 및 우이견이라는 자들과 함께 광복회라는 것을 조직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자금 조달이라는 명분하에 광복회 이름으로 조선 각도의 조선인 자산가에게 공갈로 금원을 받아내기로 했다.’(대구복심법원 판결문)박상진은 일제의 무단통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선 무력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믿었고,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군자금 모금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광복회는 비밀사수·폭동·암살·명령엄수 등 4대 투쟁강령과 함께 7가지 실천사항을 정했다. 첫 번째가 ‘무력 준비’로, 일반 부호로부터 기부를 받는 한편 일본인이 불법으로 징수한 세금을 압수해 무장을 준비한다는 내용이다. 이어 무관 양성·군인 양성·무기 구입·기관 설치·행형부(형 집행 기관) 조직·무력전 등을 규정했다. 광복회는 특히 첫 번째 실천사항에 따라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부호들에게 군자금 협조 공문을 보낸 광복회는 예상보다 실적이 더디자 ‘친일 부호 처단’을 통해 경각심을 내비치기로 했다. 첫 번째 목표는 경상도에서 제일가는 부자 경북 칠곡의 장승원이었다. 장승원은 해방 직후 미군정기 수도경찰청장을 지내고, 정부 수립 이후엔 3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장택상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당초 그는 독립자금으로 20만원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으나, 막상 광복회의 요청이 들어오자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박상진은 1917년 채기중, 유창순, 강순필 등에게 장승원 암살을 지시했다. ‘채기중은 강순필과 유창순과 함께 김한종으로부터 받은 권총을 가지고 장승원 집 부근에 가서 우선 손님인 듯 꾸미어 숙박을 구하며 정황을 정찰했다. 다음날 해진 후 이들은 집에 침입하여 유창순은 망을 보고 채기중과 강순필은 각각 소지한 권총으로 장승원을 향해 발사한 뒤 광복회원 소행임을 표시하고 도주했다.’(대구복심법원 판결문) 장승원은 머리와 왼쪽 무릎에 총을 맞고 이틀 뒤 사망했다. 이후 충남 아산의 도고 면장 박용하에 대한 암살까지 이루어지자 일제는 박상진과 광복회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고, 결국 1918년 2월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가하던 박상진은 일제에 체포됐다. 박상진은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법 예심에 이어 이듬해 9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도 사형을 선고받았다. 상고는 기각됐다. 결국 박상진은 1921년 8월 11일 오후 1시, 대구 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했다. 38살이라는 젊은 나이였다. 함께 뜻을 도모한 채기중, 김한종도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인 것은 광복회뿐만이 아니었다. 국가기록원에 ‘독립 군자금’을 검색해 보면 400여건의 판결문이 나온다.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자인 박상진과 같이 대중에게 인지도가 있는 독립운동가들도 있지만, 사람들에게 잊힌 활동가들이 대부분이다. 1922년 김명수, 김백순 등은 김좌진을 돕기 위해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다. 1924년에는 김기룡 역시 김좌진에게 받은 독립공채권 55매를 휴대해 조선 내 각지에서 독립자금을 모집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살았다. 같은 해 정기환은 독립 단체인 의창단에 가입해 차용금 명의로 돈을 빌려 군자금으로 제공하려 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조선 무장독립투쟁은 수많은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의 피와 땀이 녹아들어 가며 서서히 이루어졌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여기는 중국] 차 바퀴에 깔린 아동…11명 시민이 맨손으로 구조

    달려오던 중형차 바퀴에 깔린 8세 아동을 맨손으로 구한 11명의 평범한 시민 영웅이 화제다. 최근 중국 저장성(浙江) 원저우시(温州) 핑양현(平阳县)에 거주하는 우 씨는 올해 8세 아들 샤오치 군과 함께 귀가하던 중 달려오는 차량에 샤오치 군이 충돌,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당시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던 우 씨와 함께 자전거에 탑승했던 샤오치 군은 이들 모자의 뒤에서 달려오던 자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시 피해자 우 씨는 달려오는 자동차로부터 급하게 대피했으나, 자전거 뒷좌석에 탑승해 있었던 샤오치 군은 뒷 쪽에서 달려오던 자동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바퀴 밑에 상반신이 깔리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고 직후에도 자동차는 급정거하지 않았고, 수 미터를 더 이동하는 동안 샤오치 군은 뒷바퀴 밑으로 깔려 들어가는 심각한 사고를 입은 상태였다. 우 씨는 추돌 사고가 발생한 직후 직접 자동차를 들어올리려고 시도, 힘에 부치자 인근에 있던 시민들을 향해 “아이가 바퀴 밑에 있어요. 살려주세요”라며 도움을 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설치됐던 CCTV에 촬영된 사고 당시 영상 속에는 추돌 사고 직후 현장에 있던 약 11명의 시민이 동시에 달려와 샤오치 군을 구조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11명의 시민들은 인근 도로를 걷던 행인과 사고 현장 부근의 밭에서 채소를 심던 농부, 쌀집을 운영하던 상점 주인,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 중이던 주민까지 한 걸음에 피해 아동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들은 자동차 바퀴 밑에 깔린 샤오치 군을 구조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 우 씨와 함께 맨손으로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샤오치 군의 구조를 시작한 지 불과 30초 만에 11명의 평범한 의인들이 한 생명을 살린 셈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 언론은 피해 아동의 생명을 구한 ‘평범한 의민 11명’으로 호칭, 이목이 집중된 분위기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 구조된 샤오치 군은 곧장 인근 종합 병원으로 이송,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을 뿐 특별한 피해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샤오치 군의 보호자 우 씨는 이 같은 시민들의 도움에 대해 “유치원이 끝나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면서 “사고 당시 달려오는 자동차와 충돌이 있었지만, 아프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 밑에 어린 아이가 있다고 울부짖었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아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됐다”면서 “당시에는 감사의 인사도 할 정신이 없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고 당시 우 씨 모자와 충돌한 차량은 인근에 거주하는 민 씨의 차량으로 확인됐다. 사고 차량에는 민 씨의 두 자녀가 뒷 자석에 탑승, 소란을 피우는 두 자녀를 달래기 위해 운전석에 있던 민 씨가 운전 중 뒷 좌석을 향해 몸을 돌리는 도중에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 출동한 지역 담당 공안국 관계자는 “사고가 났던 구간을 지날 때 사고 차량 운전자 민 씨는 뒤를 돌아본 상태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면서 “때문에 정면에 걸어가고 있던 피해자 우 씨 모자를 제 때 발견하지 못했고, 경적을 울리거나 방향을 바꾸는 등의 재빠른 조치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의 구체적인 원인과 책임 여부는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이낙연 총리, 몽골서 칭기즈칸 말 선물 받아…‘친형’ 호칭도

    이낙연 총리, 몽골서 칭기즈칸 말 선물 받아…‘친형’ 호칭도

    몽골을 공식방문 중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총리로부터 칭기즈칸의 고향에서 공수한 말을 선물 받았다. 이날 후렐수흐 총리는 만찬 전 영빈관 옆 잔디에서 이 총리에게 직접 말을 건넸다. 이 총리는 몽골에서 우리나라를 가리켜 ‘솔롱고스’(무지개의 나라)라고 하는 것에서 착안해 무지개라는 뜻의 ‘솔롱고’라는 이름을 붙였다. 솔롱고는 몽골 전통 종자로 6살 수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의 상징적인 소유권은 이 총리에게 있지만 한국에 들여오지 않고 몽골 국경수비대에서 관리하게 된다. 후렐수흐 총리는 “이 총리의 말이 몽골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라. 칭기즈칸이 이 말을 타고 세계를 점령했다. 다음번에 오실 때 타시라. 이 총리만 타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아이구, 잘 생겼다”라고 감탄하며 후렐수흐 총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후렐수흐 총리는 만찬 자리에서 ‘영광 막걸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전남 영광 출신인 이 총리가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몽골 측이 직접 한국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후렐수흐 총리는 “친형을 만나는 느낌이다. 친형이 약속을 지켜 방문해주셨다”며 돈독한 관계를 표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안녕하세요’ 이영자 분노, 방송 도중 눈물 펑펑 ‘어떤 고민 사연?’

    ‘안녕하세요’ 이영자 분노, 방송 도중 눈물 펑펑 ‘어떤 고민 사연?’

    ‘안녕하세요’ 이영자가 눈물을 쏟았다. 25일 방송되는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는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을 지나치게 차별 대우하는 남편 때문에 고민인 아내의 ‘남편의 두 얼굴’ 사연이 소개된다. 고민 주인공에 따르면 남편은 11살 첫째 아들과 6살 둘째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다르다면서 첫째 아들에게는 막말 작렬에 모든 화살이 첫째에게만 향하고 대놓고 상처를 주는 통에 아이가 주눅 들어있어 나중에는 부자지간의 대화까지 단절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 이렇게 엄하고 무서운 남편은 둘째 아들에게는 유독 애정을 쏟으며 어떤 잘못을 해도 항상 쓰다듬어주면서 예뻐한다고 해 이토록 티나게 편애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일지 사연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남편의 두 아들에 대한 편애뿐만이 아니었다. 고민 주인공은 철없는 연하 남편 때문에 속상한 적이 많았다고 하소연했고, 남편 역시도 잔소리가 많은 연상 아내에게 그동안 쌓인 일이 많아 서로 간에 부부싸움도 잦았다고 한다. 이런 부모의 잦은 다툼에 첫째는 “저 때문에 싸우는 것 같다”며 그것조차 자기 탓으로 돌릴 정도로 위축된 모습을 엿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사연이 계속 진행되던 중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첫째의 답변에 고민주인공의 남편은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고 이영자도 함께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모습이 포착됐다. 연신 눈물을 훔쳐내며 울먹이는 와중에 이영자는 “끝까지 나쁘게 가든지…”라고 밉지 않은 듯한 타박을 해 도대체 어떤 반전이 일어난 것인지 오늘 밤 방송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편 이날 이영자는 평소 첫째를 “야, 이 XX야”라고 부른다는 고민 주인공 남편의 소개를 앞두고 “우리도 똑같이 불러드려야한다”면서 분노했다. 하지만 방송에서 부르기에는 부적절한 호칭인 만큼 이영자는 “나도 살아남아야지”라면서 어려운 역할을 신동엽에게 떠넘겼다고 해 과연 ‘애드립 장인’인 그가 방송불가의 위기상황을 어떻게 재치있게 넘겼을지도 호기심을 부르고 있다. 고민주인공 남편과 이영자를 함께 울린 첫째의 대답이 무엇이었을지 25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되는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여기는 중국] 입학시험 최고 점수 받고도 명문대 포기한 여성의 사연

    대학원 입학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고도 명문대학교 입학을 포기한 여학생의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중국 장쑤성(江苏)에 거주하는 예비 대학원생 탕웨이 양은 최근 이 일대에서 치뤄진 대학원 입학 시험 ‘까오옌'(考研,석사 연구생 입학고시) 시험에서 431점을 득점, 이 지역 최고 점수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점수는 장쑤성 소재의 명문 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의 최고 득점 소식은 현지 지역 언론에 소개되는 등 큰 화제를 얻었던 바 있다. 특히 탕 양은 정치, 외국어, 전공 2개 과목 등으로 구성된 대학원 입학 시험에서 각각 73점, 82점, 135점, 141점 등을 기록, 올해 치룬 이 일대 대학원 입학 시험 지원자 중 최고 성적자로 기록된 바 있다. 하지만 탕 양은 명문대학원 진학 대신 그의 고향 난퉁에 소재한 무명 대학원에 진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탕 양은 장쑤이공대학교(江苏理工学院) 수리학과 재학 시절 과수석을 네 차례 기록하는 등 이 분야 ‘인재’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 때문에 탕 양의 대학원 진학과 선택 등의 여부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있게 지켜봤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보도다. 특히 시험 고득점을 기록하고도 그가 명문대 진학을 포기한 선택이 모친 순허 씨의 백혈병 확진으로 인한 병간호를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는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 2017년 11월 탕웨이 양의 모친 순허 씨는 급성 백혈병이라는 확진을 받은 이후 줄곧 병세가 악화, 빠른 시일 내에 골수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병원 측은 순허 씨와 일치하는 골수 이식자를 찾지 못했고, 검사 끝에 탕 양의 골수를 이식 받는 것만이 모친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같은 사실을 병원 측으로부터 통보받은 탕 양은 곧장 자신의 골수를 어머니에게 기증하기로 결정, 약 6개월 간의 준비 끝에 지난해 7월 골수 이식 수술을 진행했다. 당시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녀는 서로의 손을 잡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탕 양은 수술 후 건강이 회복된 이후 줄곧 매일 아침 6시 30분까지 학교 도서관에 도착, 밤 11시가 넘어서야 도서관 문을 나서는 수험생 생활을 지속해왔다. 그는 당시 자신의 수험 생활에 대해 “적어도 하루 평균 11시간에서 12시간 정도 수업 내용을 복습했었다”면서 “골수 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는 기간 동안 공부하지 못했던 많은 양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더욱 채찍질 할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존재로 인해 엄마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면서 “수험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매일 정오가 되면 아직도 건강 회복을 위해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힘을 내곤 했다”고 덧붙였다. 탕 양의 이 같은 노력 끝이 최근 치러진 대학원 입학 시험에서 최고 득점을 기록, 국가 장학금과 국가장려장학금 등 다수의 장학 재단으로부터 장학금 지급을 약속 받은 바 있다. 그는 당시 자신에게 쏟아진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대해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면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는 환희보다 지난날 수험 생활을 지탱해준 스스로에 대한 대견한 마음이 들어서 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탕 양은 명문대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라는 지인들의 예상과 달리, 현재 병세가 호전되지 않은 모친 순 씨의 병간호를 위해 난퉁에 소재한 작은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상태다. 올 9월 입학을 앞두고 귀향한 탕 양은 “명문대 진학을 바라는 많은 주위 분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대학원 입학 시험에서의 고득점은 단순히 명문대 진학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엄마를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이재명 ‘친형입원’ 공판에 형수·조카 출석…법정대면은 불발

    이재명 ‘친형입원’ 공판에 형수·조카 출석…법정대면은 불발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의 ‘친형 강제입원’ 사건 공판에 이 지사의 친형인 고 이재선씨의 부인 박인복씨와 딸 이모씨가 11일 증인으로 출석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최창훈) 심리로 이날 오전 10시35분부터 열린 제9차 공판에선 이 지사의 친형 재선(2017년 작고)씨의 아내 박인복씨와 딸을 포함해 검찰측 신청 증인 4명에 대한 심문이 진행됐다. 그동안 장외 진실공방을 벌여 온 박씨 모녀와 이 지사의 법정 대면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 지사와 대면 없이 증인심문을 할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고 이 지사는 “나가 있겠다”며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법정을 떠났다. 재판부는 당초 “피고인의 공판 제외는 허용되지 않을 것 같다”며 방어권 보장을 위해 이 지사에게 자리를 지킬 것을 권유했으나 이 지사가 직접 수용 의사를 밝히자 증인심문 이후 요지를 법정 밖의 이 지사에게 알리면 이 지사가 변호인을 통해 질문하는 식으로 심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박씨 모녀는 장장 6시간에 걸친 증인심문에서 강제입원 시도 사건이 발생한 2012년까지 이재선씨가 정신질환 진단이나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이재선씨는 2년 뒤인 2014년 10월 터키 가족여행부터 이상 증세를 보였으며,같은 해 11월 자신들이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씨는 남편이 2002년 조증약을 처방받은 사실이 있다는 이 지사 측의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박씨는 “1999년으로 기억하는데 남편의 지인인 의사 부부와 식사를 했고 이 의사가 ‘잠자는 약’이라며 하얀 봉지를 남편에게 건넸는데 남편이 집에 와 하나 먹은 뒤 ‘효과 없네’라며 쓰레기통에 버린 기억이 있다”며 “의사가 조증약이라고 하지 않았다. 잠 오는 약 이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2012년 6월 5일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이 만나자고 해 남편과 만났는데 3시간 동안 잘 얘기했는데 남편이 마지막에 혼잣말한 것을 김혜경이 녹음을 했고 이후 정신병자로 몰았다”고 진술했다. 녹음된 부분은 이재선씨가 자신의 어머니와 관련해 심한 말을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지사의 변호인은 혼잣말이 아닌 3명의 대화 내용이었다며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박씨는 또 “2012년 7월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에 대한 남편의 폭행 사건도 사실과 다르다.그해 4월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이 남편의 조울증 진단에 대한 진정을 낸 것을 나중에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며 “이재명이 4월부터 일을 꾸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증인으로 나온 딸 이씨는 김혜경씨가 2012년 5월 말 자신에게 전화를 건 데 대해 “김씨가 처음으로 전화했고 당시에는 전화한 이유를 몰랐는데 아버지의 행동 이상과 관련한 내 말실수를 유발하고 뭔가 캐내려고 유도신문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같은 해 6월 6일 김씨와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했는데 녹취록에 따르면 김씨는 “내가 그동안 너희 아빠를 강제입원 시키려는 걸 말렸는데 너희 작은 아빠(이재명 지사)가 하는 거 너 때문인 줄 알아라”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재판부는 박씨와 이씨의 증인심문 요지를 프린트해 변호인을 통해 이 지사에게 전달했지만 이 지사는 “특별히 물어볼 것이 없다”고 답했다. 앞서 이 지사의 변호인은 지난 7일 제8차 공판에서 “박씨 모녀의 경우 심문에서 일반인 방청이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 현출될 것”이라고 비공개를 요청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씨는 이날 증언에 앞서 “이 자리가 굉장히 귀한 자리이기 때문에 아기아빠의 명예를 위해 증언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심문 과정에서 이 지사와 부인 김혜경씨에 대해 ‘시장’ ‘시동생’ ‘동서’ 등의 호칭을 쓰지 않고 ‘이재명’ ‘피고인’ ‘김혜경’ 등으로 부르며 증언을 했다. 이날 박씨 모녀에 이어 증인심문에 나선 용인정신병원 이사장 이모씨는 “당시 이사장이던 아버지로부터 이 시장이 형님 강제입원을 요청했으나 거부했고 이 때문에 12년 동안 위탁운영한 성남시 정신건강센터 계약에서 탈락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다음 10차 공판은 오는 14일 오후 2시에 열린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한국당 제외한 여야 4당 “전두환 단죄해야”…한국당만 다른 논평

    한국당 제외한 여야 4당 “전두환 단죄해야”…한국당만 다른 논평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 4당이 일제히 11일 23년 만에 재판에 출석한 전두환씨에 대해 법원이 엄격히 단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만 자유한국당은 다른 당들과 달리 ‘전두환씨’ 대신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호칭하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고는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역사 앞에 겸손한 당’이 되겠다는 논평을 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전두환씨는 1980년 5월의 반인권적 범죄 행위에 대해 이제라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며 “법원은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응분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홍 수석대변인은 “어떤 진정성도 찾아볼 수 없는 전두환씨이기에 더욱 추상 같은 단죄가 필요하다”며 “이제는 자신의 말과 글에 책임을 져야 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논평에서 “전두환씨가 자신의 피로 물들인 광주 앞에 서게 됐다”며 “전두환씨는 일말의 양심도 없는가. 전두환씨가 광주의 수많은 시민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치매라 했던가. 모든 기억이 지워져도 당신이 저지른 만행 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길 바란다”며 “전두환씨!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광주 영령과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대한민국 역사를 더럽히고도 털끝만큼의 반성도 하지 않는 전두환의 반인륜 범죄에 대해 낱낱이 진상을 밝히고 철저히 죄를 물어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당 문정선 대변인은 별도 논평에서 전두환씨를 ‘살인마’라 지칭하며 “이종명, 김순례, 김진태와 같은 전두환 좀비들에 대한 단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전두환씨는 권력을 찬탈하고 군인을 앞세워 자신이 반대하는 시민을 학살한 반란수괴”라며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최종 책임자로서 5·18 진실을 밝히는 데 겸허한 자세로 협조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격한 어조로 비판을 쏟아낸 여야 4당과 달리 한국당은 원론적인 내용의 간단한 논평만 냈다. 전두환씨에 대한 호칭도 다른 당과 달리 ‘전두환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 한국당 민경욱 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오늘 시작된 전 전 대통령의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세간의 미진한 의혹들이 역사와 국민 앞에 말끔히 해소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당은 이번 재판이 가진 국민적 관심과 역사적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재판 결과를 차분히 지켜보면서 지난 역사 앞에 겸손한 당, 후대에 당당한 당이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한다”고 강조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집사부일체’ 박진영 “나의 정체성은 영원한 딴따라”

    ‘집사부일체’ 박진영 “나의 정체성은 영원한 딴따라”

    ‘집사부일체’ 박진영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영원한 딴따라”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는 JYP엔터테인먼트 회장 박진영이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박진영은 “정확하게 말하면 (호칭이) ‘회장님’이어야 한다. 1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저에게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순간 다시는 곡을 못 쓸 것 같다”고 말해 궁금증을 더했다. 박진영은 “회장님인데 어떻게 이별곡을 쓰고, 어떻게 ‘어머님이 누구니’ 같은 곡을 쓰냐”며 “제 정체성은 항상 딴따라”라고 말했다. 박진영은 이어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편하게 막대할지 늘 고민한다. 꼰대로 보일까봐 걱정이다. 어디를 가서도 얘기할 수 있고 술 한 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도 신입사원은 제가 불편하다. 그런데 커다란 방에 회장 명패가 있다면 우리의 소통은 끝난 것”이라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사진=SBS ‘집사부일체’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끼·열정 가진 임직원들의 ‘착한 아이디어’ 키운다

    끼·열정 가진 임직원들의 ‘착한 아이디어’ 키운다

    삼성전자는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12년 말 ‘C랩’(Creative Lab)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C랩은 창의적인 끼와 열정이 있는 임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볼 기회를 제공하는 사내 벤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신사업 영역을 발굴하고, 임직원들이 스타트업(Start-up) 스타일의 연구 문화를 경험해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현업에서도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과감히 도전하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1년간 독립 공간에서 근무… 실패 책임 묻지 않아 C랩 과제에 참여하는 임직원들은 1년간 현업에서 벗어나 독립된 근무공간에서 스타트업처럼 근무할 수 있다. 또한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돼 팀 구성, 예산 활용, 일정 관리 등 과제 운영에 대해 팀 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되며 직급이나 호칭, 근태 관리에 구애받지 않고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근무하게 된다. C랩은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므로 높은 목표에 대해 더욱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도전하는 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새로운 시도다. 분사 후엔 5년 내 희망 시 재입사가 가능해 임직원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업까지 도전할 수 있다. 임직원들은 C랩을 통해 인공지능, 자율주행, 사회공헌 등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매년 1000개 이상의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228개의 과제를 진행해 918명의 임직원이 참여했으며 현재 40개 과제를 수행 중이다. 그 결과 78개 과제가 사내에서 활용됐으며 36개 과제는 스타트업으로 분사해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 ●스타트업 독립 지원… 창업 도전 의식 자극 삼성전자는 사내 우수 아이디어가 사장되지 않고 스타트업 환경에서 혁신으로 커갈 수 있도록 2015년 8월부터 C랩의 스타트업 독립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 임직원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고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재들을 발굴해 삼성전자의 우수한 기술과 인적 자원을 외부로 이관하며 국내 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삼성전자는 ‘경제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방안’ 중 하나로 경쟁력 있는 예비 창업가와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외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C랩 아웃사이드’를 신설해 발표하기도 했다. 앞으로 5년간 200개의 사내 C랩 프로젝트(C랩 인사이드)와 300개의 외부 스타트업 등 총 500개의 프로젝트를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청년들이 과감히 창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청년 창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C랩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2016년 5월 초에 수원 ‘삼성 디지털 시티´ 내 중앙 공원인 센트럴파크 지하에 C랩 전용 공간을 추가로 조성했다. 2017년 11월에는 외부와의 혁신적 협업을 강화하기 위해 서울대학교 캠퍼스 내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도 입주했다.●주요 전시회 출품… ‘CES 혁신상’ 다수 받아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 성장 가능성이 있는 내부 과제와 C랩 출신 스핀오프(분사) 기업을 CES, MWC 등과 같은 주요 전시회에 출품해 C랩과 그 성과를 외부에 알리고 있다. CES의 경우 2016년부터 스타트업관인 ‘유레카파크’에 다양한 과제를 출품해 세계 유수 스타트업들 사이에서 C랩 과제의 창의성, 혁신성, 기술성을 선보임과 동시에 다양한 영역에서 비즈니스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최종 결과물이 아닌 중간 산출물을 공개해 시장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듣고 개발에 반영하는 ‘린앤애자일’(Lean & Agile) 방식으로 시장 상황에 맞게끔 융통성 있게 아이디어를 진화, 발전시킬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2016년 2개, 2017년 3개, 2018년 3개, 2019년 8개의 C랩 과제가 CES를 통해 소개됐으며 이들 중 다수가 CES 혁신상을 받으며 기술력과 창의성을 인정받았다. 주요 수상작들을 보면 2017년 망고슬래브(최고혁신상), 솔티드벤처(혁신상), 2018년 링크플로우(혁신상), 2019년 링크플로우, 룰루랩, 모픽(각각 혁신상) 등이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많은 기업과 기관으로부터 C랩에 대한 벤치마킹이 이어지고 있다”며 “지난 6년간 축적한 C랩의 운영 노하우를 계속해서 전파해 국내 벤처문화 확산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회식·야근 대신 매일 체육관…프로 격투기 링 오른 삼성맨

    회식·야근 대신 매일 체육관…프로 격투기 링 오른 삼성맨

    일에 적응하려면 야근은 물론 회식도 필수인 줄 알았다. 일주일 4~5번 회식에 종일 앉아서 업무를 하다보니 입사 3년 만에 체중이 20㎏ 불었다. 0.1t이 된 체중을 입사 뒤 회사일에 몰입한 증거로 내세우고 싶다는 ‘생각’과 회사에 매몰된 ‘몸’은 따로 움직였다. 비타민과 영양제를 챙겨 먹어도 체력은 점점 약해졌다.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10년 삼성SDI에 입사해 배터리 공정개발 업무를 담당한 이욱수(32)씨의 삶은 이렇게 많은 대기업 사원들의 초년병 시절과 닮아 있었다. 2016년 변화가 시작됐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누나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유언을 남긴 게 계기가 됐다. 즈음해 자율출퇴근제가 도입되면서 운동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됐다. 자율출퇴근제란 주당 40시간의 근무시간만 맞추면 하루 4시간만 일해도 되는 출퇴근제도다. 고교 3년 동안 프로 격투 선수 생활을 했던 이씨는 다시 글러브를 꼈다. 수평적 직급 체계를 추구하기 위해 삼성전자 관계사에선 대리, 과장, 부장과 같은 직급 대신 ‘프로’라는 호칭이 통용된다. 회사에서 ‘이 프로’로 불리는 이씨는 일과가 끝난 뒤 체육관으로 향했고, 그의 저녁은 ‘프로 입식격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채우는 시간이 됐다. 처음엔 하루 2~3시간의 연습 시간 동안 회사 업무에서 오롯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운동을 하면서 머리 속으로 안 풀리던 업무 문제를 관조하며 스트레스를 푼다든지, 조깅을 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가 많았다”고 이씨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설명했다. 저녁 운동으로 입사 전 체격을 복원시켰다. 체력이 좋아져 업무 집중력도 높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다시 프로 선수가 돼 ‘아크엔젤’이란 닉네임으로 오른 링에선 1승을 거두는 일도 마음만큼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전적이 3전 3패다. 그래도 계속 도전을 이어 가겠다는 이씨는 최근 삼성SDI가 진행 중인 ‘퇴근 후 뭐하세요’ 캠페인이 주목한 주인공이 됐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된 지난해 7월 시작된 이 캠페인에선 그동안 퇴근 후 주짓수, 여성 복서, 철인 3종 경기를 병행하는 직원들이 소개됐다. 겨우 찾기 시작한 ‘직장인의 저녁’을 굳이 업무보다 더 격한 활동에 소진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씨는 “실제 경기 중 다리에 금이 가기도 해 가족들이 부상을 걱정한다”면서도 “주어진 업무와 찾아서 하는 활동, 단조로운 일과 창의적인 활동을 오가는 과정에서 정신없이 즐거운 맛이 있다”고 단언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故이은주 오늘 22일 14주기, 25살 꽃다운 나이에 무슨 일이..

    故이은주 오늘 22일 14주기, 25살 꽃다운 나이에 무슨 일이..

    故이은주 오늘 22일 14주기 고(故) 이은주가 세상을 떠난 지 14년이 됐다. 고인은 2005년 2월 22일, 스물다섯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은주는 우울증으로 남몰래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은주가 삶을 마감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 1980년 군산에서 태어난 이은주는 1996년 학생복 모델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뒤 본격적으로 연예계로 뛰어들었고 1997년 KBS 드라마 ‘스타트’로 연기자 데뷔를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곧잘 등장하며 얼굴을 알리던 그가 존재감을 보인 건 1999년 SBS ‘카이스트’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카이스트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을 담은 드라마에서 이은주는 전산학과 구지은 역을 맡아 차갑고 도시적인 이미지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듬해 2000년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을 통해 ‘배우’의 호칭을 얻었다. 이후 ‘번지점프를 하다’ ‘연애소설’ ‘태극기 휘날리며’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한국 영화계를 이끌 재목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 5년 만에 복귀한 드라마 ‘불새’마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이은주는 톱 여배우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2005년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까지 이어졌다. 이은주는 어머니에게 “꼭 지켜줄게”라는 유서를 남긴 채 2005년 2월 22일 분당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단독] 하와이 한국전쟁 추모 공원에 ‘일본해’ 표기 지도 버젓이

    [단독] 하와이 한국전쟁 추모 공원에 ‘일본해’ 표기 지도 버젓이

    하와이 와이키키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자리한 국립태평양 기념묘지(National Memorial Cemetery of the pacific). 높이 150m의 원뿔 모양 화산 분화구에 조성된 국립묘지라는 점에서 펀치볼 국립 묘지공원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에는 5만 4000여 구의 전사한 미국 장병이 안치돼 있다. 한국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등에 참전, 희생당한 병사들이 안치된 국립 공원 내부에는 병사들을 추모하는 교회가 설치, 매년 수 만여명의 추모객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곳에서는 매년 6월 25일 한 차례씩 한국전쟁에 참전, 목숨을 잃은 미국 장병 8924명과 신원 파악이 불가한 무명 용사 495명의 영령에 대한 추모 행사가 진행된다. 이날 행사에는 하와이 거주 한인 교민들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여행사 인솔 하에 하와이를 찾은 단체 여행객들까지 참여하는 등 뜻 깊은 행사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바로 공원 중심의 ‘레이디 콜롬비아 여신상'(Lady Columbia) 뒤로 조성된 다수의 전쟁 발발 과정 및 전투 경과 과정, 전쟁 피해 상황 등에 대한 설명을 게재한 지도에 ‘일본해'(Sea of japan)라는 명칭이 게재돼 논란이다. 한국전쟁과 전쟁에 참여한 이들을 기리는 국립공원을 찾은 이들이 ‘동해'(the East Sea)라는 명칭 대신 ‘일본해’로 표기된 지도가 한국전쟁과 참전 용사에 대한 추모 장소에 버젓하게 게재돼 있는 셈이다 더욱이 지난 1949년 완공된 이래 매년 수만 명의 추모객들이 찾는 이 곳에서 약 2m 규모로 제작, 기념관 벽면에 부착된 ‘일본해’로 표기된 전쟁 추모 지도가 수 많은 추모객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이에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 2013년 2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림비를 제작, 헌사한 바 있다. 당시 한국전쟁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에서 제작, 헌사한 기림비에 새겨진 지도에는 ‘동해’라는 명칭으로 게재돼 있다. 우리 정부가 제작한 해당 기림비 외에 펀치볼 국립공원 내에 설치된 모든 십 수개의 지도에 ‘일본해’로 표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특히 이 곳을 찾는 추모객 중에는 국방대학교 교육생 70여명과 한국에서 찾아온 각종 단체, 협회 등 전쟁 시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사회 다방면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펀치볼 국립 묘지가 조성된 호놀룰루 시 일대에는 우리 교민 5~6만 명이 밀집, 거주해오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이 일대에는 와이키키 해변, ‘다이아몬드 헤드’와 ‘펀치볼 분화구’ 등 관광 명소가 자리해 있다는 점에서 펀치볼 국립 묘지를 경유해 여행하는 세계 각 국의 관광객들의 수가 상당하다. 실제로 호놀룰루 시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의 수는 연평균 22~25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전쟁에서 희생당한 참전 용사와 그 신원 조차 확인할 수 없는 탓에 전사 후에도 여전히 유족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기리는 장소에 ‘일본해’로 게재된 전쟁 추모 지도를 마주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우세하다.이와 관련, 최근 아베 일본 총리가 ‘일본해’ 표기에 대해 국제 사회의 유일한 호칭이라며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 ‘일본해’ 표기 논란은 쉽게 사그라 들지않을 전망이다. 지난 12일 국회 중의원 예산심의회에 참여한 아베 총리는 “일본해는 국제 사회에서 확립된 유일한 호칭으로, 이를 변경할 필요성이나 근거가 없다”면서 “이를 국제 기관과 국제 사회에 계속해서 단호하게 주장해 올바른 이해와 우리나라(일본)에 대한 지지를 요구할 것”이라고 ‘일본해’ 표기 논란에 불을 지핀 바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동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일본과의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는 동해-일본해 동시 표기를 주장해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일본해 표기 개정 문제를 담당해오고 있는 국제수로기구(IHO) 측은 세계 각국 지도 제작의 지침이 되는 ‘해양과 바다의 경계’ 개정 추진 시 한국 정부가 ‘일본해’ 표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에 대해 일본에 ‘관계국(한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하와이=임지연 통신원 cci2006@naver.com
  • ‘무심서가’ 춘강 첫 전시회…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

    ‘무심서가’ 춘강 첫 전시회…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인사동 한국미술관서

    “난 서가이지, 서예가 아니다…9살때 훈장 노릇도”한자성경 붓글씨 완서…5000여시간에 130만자 써한자 성경을 붓글씨로 완서한 서가(書家) 서정건(82)의 첫 작품 전시회가 새달 6일부터 일주일간 열린다. 특유의 글씨체와 함께 글에 담긴 그의 마음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석주미술관은 다음 달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국미술관(낙원상가 남쪽 대일빌딩) 2층에서 ‘무심서가 춘강 서정건 선생 초대전’을 연다고 밝혔다. 작가와의 만남은 3월 9일 오후 3시부터다. 석주미술관이 주최하고, 협찬은 ㈜인풍, 후원은 한국미술관과 월간 서예가 맡았다. 전시회에는 춘강이 1992년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간 후 27년간 공들여 쓴 작품 2000여점 가운데 300점을 추려 선보인다. 한국 대기업의 기술사 출신인 그가 붓글씨에 도전, 5000여 시간 4년여에 걸쳐 130만 자의 한자 성경을 모두 옮겨썼다. 이와 관련해 서예계 원로 김응현(1927~2007년) 선생은 “글씨를 100만 자쯤 쓰면 당신은 이제 명필이요. 글씨에 통달한 것이지.”라고 했다고 전한다.춘강은 작가의 말에서 “나는 스스로를 서가라고 지칭하지, 서법가(書法家)나 서예가(書藝家) 등의 호칭을 쓰지 않는다.”라며 “(작품을) 아무런 목적도,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의도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로 그는 ‘무심서가’라고 한다. 춘강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데는 그의 친구 류성우씨 덕분이다. 2014년 5월 밴쿠버에 왔던 류씨가 그의 작품을 보고 어쩔 것이냐고 묻기에 춘강은 “뒤뜰에 모아 놓고 모두 불태울 생각”이라고 답했다. 이에 깜짝 놀란 류씨는 이런 계획을 말리며 그의 작품 일부를 고국으로 가져왔고, 결국 전시에 이르게 되었다. 춘강이 한자성경을 쓰게 된 것은 그가 한문에 밝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네 살부터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을 배웠고, 7살에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을 완독했다.”며 “시경과 서경을 공부하다 9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아버지 뒤를 이어 훈장 노릇도 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자의 도덕경, 부모은중경, 퇴계선생 언행록, 중용, 율곡선생풍악기 등을 완서하기도 했다.그는 틈틈이 글을 써 책을 낸 것이 20여 권에 이른다. 수필집 ‘물이고 구름이어라’ ‘피리부는 목동’ ‘청강에 배 띄우고’ 등을 냈고, 한국과 중국 고전과 문집 수백편을 번역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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