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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 어제 「전승기념일」 행사/김정일·강성산 불참

    북한은 휴전 41돌을 맞아 27일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2·8문화회관에서 「조국해방전쟁승리경축 중앙보고대회」를 갖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 김정일은 참석하지 않았으며 그에 대한 호칭도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으로 종전과 변함이 없었다. 통일원과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날 행사엔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부주석인 이종옥,박성철,김영주등이 참석했으나 권력서열 3위이자 사위가 귀순한 강성산정무원총리와 최광 군총참모장이 참석하지 않아 주목을 끌었다.이와관련,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행사규모 축소로 강성산등이 불참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관측하고 권력서열에 이렇다할 변화도 감지되지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지난해와 달리 이날 행사를 소규모 실내행사로 치른 것은 김일성장례식과 추도대회등으로 이미 많은 군중들이 동원된 바 있어 주민들을 또 다시 동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은 이날 행사를 하오 5시부터 녹음실황으로 보도했다.
  • 「김정일승계」 발표 왜 늦어지나/북 「전승기념일」 행사와 권력향배

    ◎“권력서열 조정작업 진행” 추측/화려한 「대관식」 앞둔 준비설도 27일 열린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 행사에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 발표가 나오지 않아 김일성 사후 북한권력의 향배에 대한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다. 북한이 해마다 휴전협정 체결일을 맞아 치르는 연례행사이긴 하나 이번에는 김정일체제 출범을 알리는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일부 관측이 빗나간 것이다. 물론 이번 행사가 조용히 끝난 게 반드시 김정일 후계체제의 이상기류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해석이다.김일성부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요란하게 치렀던 지난해와 달리 소규모 실내행사로 진행되었지만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당정치국위원이자 공안담당비서인 계응태가 보고를 통해 『전체인민과 인민군 장병들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우리 혁명의 수호자로 높이 모시고 당의 사상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하자』고 충성을 유도한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서 김정일체제의 조기구축 가능성에 의문점을 던지는 몇가지 특이사항이 노정됐다는 분석도 있다.그가 참석하지 않는 가운데 그에 대한 호칭도 여전히 국방위원장과 최고사령관에 그친 것이 그 하나이다.또 군의 최고실력자중 한사람인 최광 인민군총참모장이 군행사에 참석지 않은 사실도 퍽 이례적인 대목이다.더욱이 지난 대회에서 보고서를 낭독했던 권력서열 3위 강성산 총리가 그의 사위의 한국 귀순사실이 밝혀진 이날 불참한 것도 묘한 여운을 자아낸다. 이같은 특이점들은 이날 행사에서 오진우·이종옥·박성철·김영주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참석자들이 한명씩 호명되지 않고 「정치국 후보위원들」이라는 식으로 일괄소개한 것과 함께 권력핵심부간 내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라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즉 김정일의 권력승계 그 자체에 결정적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권력서열 재조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미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사회저변의 충성서약을 좀더 이끌어낸뒤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즉 핵문제 등을 일괄타결한 뒤 이같은 업적을 이용해 오는 10월 전당대회에서 축제분위기 속에 추대식을 치르려는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 김정일에 주석 호칭/김일성 사망후 처음

    【내외】 북한이 처음으로 김정일에 대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호칭을 사용해 주목되고 있다. 북한 해주방송은 26일 황해남도 도당위원회,행정경제위원회,해주공산대학 교직원들을 비롯한 도민들이 지난 22일 김일성동상을 집단참배하는 가운데 김정일을 『노동당중앙위원회 총비서와 국가주석으로 높이 받들것』을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이처럼 방송매체를 통해 김정일이 승계하게 될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거명한 것은 김일성 사망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한편 북한 중앙방송은 26일 김정일을 남북통일시대의 「통일대통령」으로 추대할 것을 강조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 김일성위상 가늠할 첫무대/오늘 북 「전승기념일」 행사

    ◎군주요간부 서열­충성강도 윤곽/「총비서 대관식」 군중집회 가능성 김정일의 권력승계의 공식화 시점이 지연됨으로써 27일 열리는 북한의 이른바 「전승기념일」행사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휴전협정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해 대대적인 행사를 치르고 있는데,이날 행사를 통해 군부 주요인사들의 서열변동 여부와 충성서약의 강도를 통해 김정일의 권력장악 정도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번 행사는 또 그동안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 절차가 늦어짐으로써 제기됐던 ▲김정일의 건강악화설 ▲권력핵심부의 암투설 등 갖가지 의문들의 진위를 파악해볼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물론 이날 행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김정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격으로 참석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온갖 수사를 동원해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그를 「위대한 수령」,「인민의 영도자」,「절세의 위인」,「동방에 솟아오른 창공의 태양」 따위의 호칭으로 찬양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 뒤엔 권력승계 절차의 완결을 뜻하는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등의 직책이 따라붙지 않고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행사를 김정일 추대를 위한 분위기 조성용 군중집회로 치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북한매체들이 김일성 사망 이후 각계각층의 김정일에 대한 충성다짐 사실을 선전해온 연장선상에서 정권장악의 최대 관건인 군부의 충성서약을 북한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각본을 연출할 것이라는 얘기다.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짐한 군고위인사는 의외로 손꼽을 정도로 적다.14명의 당중앙군사위원 중에서 김광진인민무력부 부부장과 김일철해군사령관 둘 뿐이다. 때문에 이번 행사에 도열할 주요 군간부들의 서열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발언의 강도 등으로 김의 군장악력과 1인자 공식화 시점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이번에 그의 당총비서 선출사실을 공표함으로써 행사 자체를 김정일의 「대관식」 성격으로 치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북한은 김일성의 장례기간인 지난11일 당중앙위원 전원을 평양으로 소집해 놓은 바 있어 20일 추도대회 이후 어느 시점에 비밀전원회의를 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북한은 지금까지 요직인선을 위한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의 대부분 비밀리에 개최했고 그 결과도 일정한 시점이 지난 뒤에 발표하는 게 상례였다.
  • “보안법 잠입·이적 동조죄에 해당”/검찰의 박보희씨 사법처리 전망

    ◎「교류협력법」 배제… 선처여지 없게 당국에 신고없이 11일동안 북한을 방문한 세계일보 박보희사장의 사법처리절차및 적용법규,그리고 처벌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사장이 조문파동에 불을 붙인 원인제공자란 점에서 처벌이 불가피하지만 그가 미국 영주권을 가진 재외국민신분이라는 점과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정상회담의 정치적 메신저역할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법처리절차만 해도 그를 연행할 것인지 또는 당초 방침대로 소환조사할 것인지 아직 확실치 않은 상태다.「한국에 돌아오면 소환조사한뒤 사법처리하겠다」는 당국의 당초 방침이 「연행 사법처리」등으로 바뀌는등 박홍서강대총장의 주사파북한배후폭로이후 여론의 흐름을 타고 강경쪽으로 선회하는 듯한 움직임이다. 검찰은 방북당시 사법처리를 망설였으나 현재 재외국민신분이라 하더라도 김일성의 조문을 위해 방북한 것은 국가보안법의 잠입·탈출및 이적동조죄로 처벌가능하다는 입장표명과 함께 선처의 여지를 남겨 왔던 남북교류협력법상의 「상호교류와 협력」부분의 적용도 불가하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특히 조문단파견을 주장하며 판문점으로 향하던 재야인사 5명을 조문미수혐의로 구속한만큼 형평성차원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검찰은 현재 드러난 박씨의 문제행적으로 입북전 김일성찬양내용의 조전발송,김일성장례식과 추도식참석,화환증정,깊은 조의표의,김정일면담,「김정일각하」라는 극존칭사용,한국을 남한으로 북한을 DPRK로 호칭하는 등을 꼽고 있다. 박씨가 방북목적을 취재로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은 김일성사후 금강산개발사업등 통일교의 사업추진계획에 차질이 빚어질것을 우려한 포석이라는 분석마저 나와 면죄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법조계주변의 공통된 분석이다.
  • 박보희씨의 이상한 언동(사설)

    시절이 수상해서인가 별일도 많다.박보희 통일교실력자의 언동은 참 맹랑하다.조문객중 「제일 큰 꽃다발」을 들고 대한민국 국법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듯 허겁지겁 김일성을 조문하러 달려가는 것부터 이해하기가 어렵더니 다녀나와서 하는 언동은 더욱 해괴하다.자신의 위법적인 행각을 생각해서도 그가 북한을 벗어나 맨먼저 했어야 할 일은 국가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소명하는 노력이었어야 한다.그러나 그가 처음 한 일은 북경에서의 내외신기자회견이었다. 김정일을 깍듯이 「비서각하」로,북한을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표현하는 기자회견이었다.그리고 한국을 의도적으로 「남한」으로 부르는 기자회견이었다.「남한」이란 호칭은 국호가 아니다.이 호칭은 그것이 부득이한 경우라도 한국인을 불쾌하게 만든다.그는 대한민국 국적이 이제 필요치 않아진 것일까.「개인적으로」 「각하」로 섬기는 맹세를 한 셈인 김정일의 「DPRK」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그는 굳힌 것일까. 문선명교주와 김일성이 맺은 형제지의를 존중하는 일이 국법보다 우위에 있는 것같은 논지를 펴는 그를 보면 대한민국은 그에게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지구상에 마지막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을 조국보다 더 소중히 섬기기로 다짐한 그가 「승공론」을 펴는 것 또한 이해가 안된다. 그의 「언론인자격」론도 어불성설이다.국법에 저촉되는 언동까지 정당화되는 것이 언론인의 「특권」은 아니다.그는 또 김정일의 「방미 클린턴회담」이니 「남북정상회담」 「구두메시지」를 운위했다.누가 그런 자격을 부여했는가.만약에 그런 사실이 있다면 북경기자회견 같은 것은 더구나 이상하다. 의도적인 북경기자회견을 끝내고 그는 사법처리를 「피해」 미국으로 가버렸다.우리국민은 이런 그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해 대단히 불쾌한 느낌을 맛보고 있다.「영주권」이라는 편리한 도피카드를 들고 훌쩍 날아가버리면 고만이라고 처음부터 계산했을 그의 교지에 배신감이 드는 것이다. 세련된 국제감각으로 통일교가 당면한 위기들을 처리해온 그의 고수를 아는 우리로서는 그의 북행이 개인 내지는 그가 속한 단체의 어떤이권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는 분석도 한다.북녘땅에 남 먼저 이로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자신의 대한민국과 국민을 무참히 깔아뭉개는 일을 서슴지 않는 그의 행적을 사람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그가 훌쩍 떠난 것으로 끝난 일은 아니다.그가 속한 단체나 기관은 그런 오산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당국은 당국대로 단호한 사법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고 그가 속한 집단에서는 그나름의 소명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 “김정일과 50분간 미­북문제 논의”/박보희씨 북경회견 일문일답

    ◎“북 세체제 생각보다 확고/남­북·미­북 관계 좋아질것” ­김정일과는 어디서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가. ▲지난 20일 김일성광장에서 김일성추도식이 끝난 직후 이 광장 두석단에 있는 주석실에서 약 50분가량 만났다.이때 남북문제와 미국­북한문제 등 많은 얘기를 했다. ­김정일의 건강은 어느 정도인가. ▲그는 겉으로는 창백하고 수척해보였으나 악수할때 느끼는 힘이나 가까이선 본 모습은 건강에 이상이 없어보였다.장례식 때문에 최근 피로가 겹친 정도이지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그의 측근들로부터도 들었다. ­북한의 매스컴보도에 따르면 박사장이 평양에서 김정일을 「각하」라고 호칭하고 또 그가 조국통일의 운명을 지고 태어나셨다고 했다는데….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고 나는 항상 「김정일 비서님」으로 호칭한다.(그러나 박사장은 내외신회견에서 영어로 얘기할때는 「His Excellency Kim JongIl」(김정일 각하)또는 「Marshall Kim JongIl」(김정일 원수)라는 표현을 썼다) ­방금 영어로 「각하」라고 부르면서도왜 안썼다하는지…. ▲영어로는 일국의 대사에게도 「His Excellency」라는 표현을 쓰는데 북한에 가서는 영어를 안쓰고 한국말을 쓰지 않은가.한국말로는 「김일성 주석님」「김정일 비서님」이라고 쓴다. ­북한에 가게된 경위는. ▲문선명총재와 김일성주석과의 인연을 고려해 문총재와 본인의 이름으로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조화나 보내려고 북경에 왔었는데,13일 상오에 교포들은 평양에 들어와도 좋다며 구두초청이 있었고 기회는 그날 하오 뿐이어서 들어갔다. ­김정일은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는가. ▲전혀 얘기한게 없다. ­김정일에 대한 평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위치에 있었다.김정일체제는 완벽하고 일사불란해서 혁명1세대에 대해서도 그대로 잘 대접하고 김용순 같은 젊은 엘리트들이 앞으로 대단히 잘해갈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용순등은 『남쪽에서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체제가 3일천하니 길어야 3년밖에 못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설명했다. ­김일성의 사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는데. ▲내가 보기로는 자연사가 틀림없다.6월에 카터를 만날때만해도 겉으론 건강해 보였으나 너무 과로했었다.한국에서도 보도됐었지만 김일성은 6월에 18번이나 외국인을 접견했는데 당시 외국인을 만나고 나면 곧바로 자리에 눕고 그러다가 다른 사람을 만날땐 건강한듯 나타났었다.이같이 비상한 최후 노력을 하다가 사망 며칠전에는 자기와 같이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절친한 전우들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어서 충격이 더 컸던 것으로 들었다. ­김정일이 미국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는가. ▲클린턴대통령이 김의 사망에 조의를 표한데 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그는 특히 김일성이 미국에 가볼 생각이 있었는데 실현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그분의 의지를 받들어 미국에 가서 클린턴대통령과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남북한관계나 북한·미국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김정일은 대단히 배포가 크고 일을 대담하게 처리한다.개방정책도 시험적으로 실시하려다가 압력을 받아 그만 두기도 했었다.
  • “추모열기 식을때 기다려” 해석 유력/김정일 권력승계 왜 늦어지나

    ◎“건강·리더십 문제로 난기류” 관측도 북한 김정일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등 권력승계 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과연 언제쯤일까.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의 지속적 김정일 미화작업으로 따놓은 당상처럼 비쳤던 그의 공식 1인자 등극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 22일 상오까지 북한방송들에 나타난 김의 호칭은 여전히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이를테면 북한중앙방송은 21일 저녁 김정일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찬양했으나 그에 대한 호칭은 「장군」에 그쳤다. 20일 김일성 추도대회에서 사실상 김이 후계자로 추대됐음에도 불구하고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 각계 인사의 충성다짐만 계속 선전할 뿐 그의 당총비서 및 주석 승계발표를 서두를 낌새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다된 밥」처럼 여겨졌던 김의 1인자 공식화에 뜸을 들이고 있는 까닭에 대해 현재로선 누구도 자신있게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불리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북한체제의 속성상 몇가지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우선 2년 동안의 후계체제 구축작업으로 그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굳이 절차적 문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북한권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수령의 유일지도체제인 데다 김일성 생전에 이미 김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에게 세뇌시켜온 만큼 당총비서 등 구체적 직책의 승계는 부차적 문제라는 얘기다. 요컨대 다른 「대안」이 없도록 상황조성을 해놓은 마당에 현재 「상주」의 지위에 있는 김이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훼손해가면서까지 승계절차를 앞당겨 강행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거에 따르면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당총비서·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에 대한 승계절차를 밟을 시점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김일성에 대한 「추모열기」가 가라앉기만 기다려온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김정일의 건강이나 지도력에 문제가 생겨 완전한 1인 지배체제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이는 미­북 3단계회담 등 북한정권이 운명을 걸고 대비해야할 대내외적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국가주석 등 요직의 장기공백을 방치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즉 김이 명목상 1인자 자리에 오르는 데는 합의가 이뤄졌으나 실질적인 권력장악에는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정부내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을 외형상의 대표로 내세우되 실제 정책결정과 집행은 당정치국을 핵심으로한 당중앙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북한체제가 변모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불리는 유사 집단지도체제가 그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김에 대한 공식 후계선언이 늦춰지고 있는 것도 단순히 선출절차나 시기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당적 지배체제」에 참여할 핵심인사들간의 「파워게임」이 끝나지 않은 탓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 누가 옳고 그른지 국민은 안다(사설)

    서강대 경영대 교수들의 박홍총장지지성명을 보며 우리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을 비로소 음미하게 된다.외견상으로는 총장의 발언을 소속대학교수들이 편든 것같이 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박총장의 발언에 대해,운동권의 폭력방식의 비판 및 비난 공세만 극성스럽고,공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해 『박총장의 발언진의가 흑백논리에 의해 왜곡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는 교수들의 성명에서 역연히 그것은 드러난다. 침묵만을 만능의 알리바이(불재증명)로 활용해온 많은 지식인 특히 대학인들이 우리에게는 있다.그들에게는 서강대교수들의 용기가 아직도 냉소의 대상이 될수도 있으므로 지지성명 교수들에게는 그나름의 용기가 필요했고 앞으로도 부담이 따를지도 모른다.그러나 단언하건대 그들이 보인 용기가 저버려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그런 작은 빌미는 서울대에 나붙었다는 「백지대자보」로도 읽어진다.여기서는 이른바 운동권론리의 핵심인 『6·25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이론보다는 「김일성」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전범 김일성론」「독재자 김일성론」「김일성의 부당한 호칭」「부자 세습의 웃음거리」「조문 논쟁」등에 냉철하고 균형감각을 가진 논평을 하고 있다.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이란 이런 것이다.차가운 머리로 현실을 분석하고 논평하고 고발하는 것으로 사회참여를 하여,일상의 타성에 파묻혔거나 때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다중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것이다.그 본연의 역할을 일탈하여 대세 추종적이거나 침묵으로 유탄의 횡액이라도 피하려하는 지식인도 얼마든지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해왔다.그런 지식인이 더는 숨기 어려울만큼 시대가 이제는 밝아졌다. 이런 때이므로 소위 「정의구현사제단」을 중심으로 한 재야세력의 반응은 우리를 비애스럽게 한다.지난날 이들 세력이 보여온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기능을 우리는 안다.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맹목적인 운동권 비호의 논리를 벗어나 여전히 이성을 잃고 「주사파」같은 잘못된 길로 접어드는 젊은이들을 바로잡아주기를 기대했다.그러나 그들은 우리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그들은 언필칭 증거를 대라지만 검찰이 밝힌 그 많은 대북 「교신」과 「팩시」와 「전화」들이 있는데 박총장의 발언을 놓고 증거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스스로 알수 있을 것이다.그들이 정말로 「정의」로우려면 북의 인권과,부자세습과 인민을 얽어맨 부당한 굴레에 대해서만이라도 개선을 촉구해야 한다.그렇게는 못할망정 수렁으로 들어가고 있는 어린 학생들을 부추기기나 하는 일을 이제는 그만두라.종교의 겉옷을 두르고 「정의구현」이라는 오만한 명칭을 전횡하는 일이라도 멈추라.
  • 김정일 주석 호칭 안해/북 언론

    【북경 AFP 연합】 북한관영 언론은 21일 김정일당비서가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에 올랐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북한에 주재하는 한 외교관이 밝혔다. 북경에서 전화로 접촉된 이 외교관은 『라디오방송과 노동당기관지 「로동신문」은 김정일비서를 군최고지도자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만 불렀다』면서 『이는 김정일이 공식적으로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에 오르지 않았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평양의 외교소식통들은 당과 최고인민회의가 고 김일성주석 장례후 새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을 지명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 서울대 백지대자보/김일성 비판 많았다

    ◎총학생회서 일반학생토론장 마련/거의 전범애도 불만·권력세습 혹평 서울대총학생회가 21일 김일성사망과 관련,운동권이 아닌 일반학생들의 자유토론을 이끌고자 내붙인 백지 대자보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견해를 개진,눈길을 끌었다. 김일성사망에 대한 평가,김일성의 호칭문제등에 대해 모두 익명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힌 대자보에서 한 학생은 『김일성이 6·25전쟁을 일으킨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 남한사회가 민족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거세된채 지주와 친일세력에 의해 지배됐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며 일부 운동권에서 주장하는 「6·25=민족해방전쟁」에 동조했지만 『전범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비판론」이 주류를 이루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군부정권이 물러난뒤 청문회를 열어 죄를 논한 것처럼 왜 김일성에 대한 청문회를 열지않는지 모르겠다』,『김일성이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처럼 인민들에 의해 처단되지 않아 아쉽다』는등 김일성의 죽음을 환영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일성장례식과 관련,한 학생은 『과거 박정희대통령이 사망했을 당시 국민학교 2학년때라 철모르고 울었지만 북한에서는 서너살짜리 아이들이 울어대는 것을 보고 끔찍했다』고 토로했고 김일성의 호칭문제에 대해 『왜 학생들이 김영삼대통령은 「김영삼」으로 부르면서 김일성은 깍듯이 「김일성주석」이라고 호칭하는지 모르겠다』며 『용어선택에서부터 균형감각을 갖는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일부 운동권학생들의 비틀린 시각을 비판했다. 김정일의 세습문제에 대해서는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은 조선시대에나 있을수 있는일』이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비판하기도 했다. 한 학생은 『김일성사망후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조문논쟁등 이념논쟁에 깊은 비애를 느낀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이 아니라 냉철하고 날카로운 지성의 눈으로 남북정세를 분석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달성하는 일』이라고 신중한 결론을 내렸다.
  • 북,김정일 「후계자」 추대/김일성 추도대회

    ◎당·정·군의 수령… 충성 다짐 북한은 20일 상오10시 평양시내 김일성광장에서 가진 김일성 추도대회에서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사실상 추대했다. 이날 추도대회에서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및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차수)과 노동자 농민 해외동포등 각계 대표들은 차례로 나서 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하고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김정일의 「위임」에 의해 먼저 등단한 김영남은 추도사에서 『김일성동지는 수령의 후계자,혁명의 영도자를 잘 모실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고 말하고 『오늘의 비통한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꿔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전당·전군·전민이 일심단결해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빛내어 나가자』면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추대하고 나섰다. 김영남은 대외문제와 관련,기존의 자주·평화·친선의 외교정책 노선을 일관되게 고수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3대원칙」과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에 입각해 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해 김일성노선을 답습할 것임을 밝혔다. 김영남에 이어 나온 화력발전소의 한 노동자는 김정일에 대해 『친애하는 김정일지도자는 곧 수령이며 지도자동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호소하고 김정일을 「수령」으로 호칭했다. 북한군 차수인 김광진도 추도사에서 『김정일을 당정군의 최고수위로 받들고 김정일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충성으로 받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에따라 김정일은 곧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소집등 요식 절차를 거쳐 총비서와 국가주석직에 취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21,22일쯤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해 김일성사망으로 공석인 국가주석에 김정일을 선출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이 당국자는 또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소집을 전후해 김정일이 당총비서에 취임하는 요식절차를 거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 북,김일성장례식 거행/사망 11일만에

    ◎주석궁 다시 안치… 오늘 추도대회/김정일체제 출범 선언 예상 북한은 19일 김일성이 사망한지 11일만에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을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 다시 안치했다고 북한방송들이 이날 보도했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 방송들은 장례식엔 아들 김정일을 비롯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정무원 총리 강성산,부주석인 이종옥 박성철 김영주 김병식,부총리겸 외교부장 김영남 등 장의위원들이 전원 참석했으며 운구행렬이 지나는 평양시가지에는 2백만명의 주민들이 운집했다고 전했다. 북한방송들은 이날 김일성 영구가 지나가는 평양시내 연도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김일성 영구는 금수산의사당을 출발해 금성거리∼영흥네거리∼비파거리∼영웅거리∼천리마거리∼통일거리∼김일성광장 등 약 40㎞에 이르는 코스를 거쳐 금수산의사당으로 되돌아가 안치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북한방송들은 후계체제를 구축한 김정일을 『국방위원장이며 군최고사령관인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로 호칭했고 연도의 주민들의 표정을녹음실황으로 중계했다. 북한은 장레식에 이어 20일 낮 12시 평양에서 대규모 군중을 동원한 가운데 김일성추도대회를 갖는다. 이 추도대회는 김정일을 최고지도자로 추대하는 정치적 성격의 모임으로 변질돼 김정일체제 출범을 선언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김정일지도력 새로운 시험대에/장례식에 나타난 김정일의 위상

    ◎김 이어 오진우 강성산 등 서열 그대로/순탄한 대권장악 암시… 절차만 남은듯 19일 평양에서 치러진 김일성의 장례식은 북한에서 49년동안 이어진 「김일성 유일체제」를 마감하는 행사이다.김정일체제의 개막을 알리는 의식이기도 하다. 김정일은 이제 김일성의 「후원」 없이 북한을 통치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시험대에 들어섰다.김일성 없는 김정일이 한 집단을 이끌 능력이 없다고 판단된다면 북한의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갈 것이다. 이날의 장례식은 김정일의 권력장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방송은 이날 장례식 참석자들을 언급하면서 김정일을 앞세우고 오진우 강성산 이종옥 박성철 김영주 김병식 김영남등을 차례로 열거했다.북한이 김일성 사망직후 발표했던 장의위원 서열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는 김일성 장례가 한차례 연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북한의 새권력서열이 큰 무리없이 정착되고 있다는 시사로 받아들여진다. 북한방송은 또 장례식에 앞서 김정일이 당·정간부들을 대동하고 김일성 영구에 마지막으로 조문했다고 보도했다.김일성의 시신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일이 당·정의 중심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 보도기관들은 김정일을 이날 「어버이수령」「국방위원장이며 군최고사령관인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라고 호칭했다.생전의 김일성에게 하던 경칭을 김정일에게 그대로 옮겨쓰고 있어 그가 김일성의 지위를 이어받았음을 안팎에 천명하고 있다.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북한 언론의 보도나 장례식 진행절차를 미루어 볼때 이제 남은 문제는 김정일이 어떤 공식절차를 거쳐 북한의 최고 권좌를 차지하느냐 일 것이다.일부 외신은 김정일이 지난주 비밀회의를 열어 이미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에 선출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이들 직책에 오르기 위해서는 공식행사가 필요하다는게 다수 전문가의 풀이이다. 정부관계자나 북한전문가는 장례식에 이어 20일 열리기로 되어 있는김일성추도대회를 주목하고 있다.당초 장례식과 추도대회를 한꺼번에 하려다 따로 날을 잡은 것은 추도대회를 「김정일 즉위식」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일성 보다 카리스마나 지도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광을 업고 전 인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과시용으로 추도대회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측이 맞는다면 김정일은 20일의 추도대회를 통해 인민의 지지를 과시한 뒤 곧이어 당중앙위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에 오르리라 예상된다. 북한에서 일단 김정일체제가 순조롭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한 가운데도 몇가지 의문은 남는다.이날 장례식을 외부로 생중계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김정일체제가 확고하지 못해 혹시 사고가 날 염려를 한 탓이라는 풀이도 하고 있다.김정일이 추도대회를 따로 가져 인민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권력 내부의 지지도가 약하다는 해석도 나온다.여하튼 이제 김일성은 갔고 김정일의 지도력은 시험받기 시작했으며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게 정확한 얘기일 것이다.
  • 김정일,첫 공식활동/당·정·군간부 배석 해외동포 접견

    【도쿄 연합】 평양방송은 15일 김정일인민군최고사령관이 14일 김일성주석을 추도하기 위해 평양에 온 해외동포조문단을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도쿄에서 수신된 평양방송에 따르면 조문단은 한덕수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총련대표단과 재미한국인 등이며 이날 만남에는 이종옥부주석과 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최광군총참모장,양형섭최고인민회의의장등이 배석했다. 이와 관련,교도통신은 김일성이 죽은 뒤 김정일이 외부인사를 만나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평양방송은 이날 김정일을 인민군최고사령관으로 호칭함으로써 비공식회견임을 비췄으나 주요군간부가 배석한 것으로 보도함으로써 이미 권력승계가 사실상 완료됐음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 「선 3단계회담·후 정상회담」 유력/북의 권력승계·대외접촉 일정

    ◎총비서·주석직 장례식뒤 공식 승계/10월께 당대회… 체제안정 과시할듯 북한의 김정일체제가 공식화되는 시점은 언제 쯤일까. 김일성 사망 이후 권력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된 상태여서 김정일의 공식 「수령」등극 시점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현재 김정일체제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일 뿐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의 실제 승계여부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북한지도부는 지난 10일 당중앙위원 1백45명 전원과 후보위원(1백3명)및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6백87명을 평양에 집결시켜 놓고 있다.김일성 참배가 표면적인 이유이나 하시라도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당총비서와 주석직에 대한 승계절차를 밟을 수 있게 돼있다. 하지만 정부당국에선 일부 추측보도처럼 비밀 당전원회의를 통해 김정일을 당총비서에 선출하는 절차를 마친 것으로는 보고 있지는 않다.11일 하오 인민문화궁전 앞에 이들 당중앙위원들의 차량이 대거 목격됐다는 첩보만으로는 반드시 승계절차를 마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2일 북한방송에 나온 당중앙위위원 여연구가 김정일을 계속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군사령관』이라고 호칭한 데서도 당중앙위 등을 통한 추대행사는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다만 김일성이 사망한 시점부터 북한이 이를 공식발표한 34시간 동안 정치국위원과 후보위원 등 핵심간부들의 비밀 구수회의가 열렸을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이들 핵심인사들이 김정일 옹립을 결의했다면 김정일체제 구축은 시간문제일 뿐이다.철저한 상의하달식 체제인 노동당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의 선출절차는 어차피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같은 분석이 사실이라면 김정일의 1인자 등극을 공식화하기 위한 당중앙위 소집은 김일성의 장례식 이후가 될 소지가 크다. 최고인민회의 소집을 통한 주석선출 절차는 장례식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더욱 크다.북한은 그동안 당전원회의의 경우 흔히 비밀리에 소집하기도 했으나 최고인민회의는 소집공고를 거친 후에 개최한 것이 거의 관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90년 이후 소집된 7차례 제9기 최고인민회의 중 제1차를 제외하곤 모두 소집공고를 한 바 있다. 이같은 정황을 염두에 둔다면 북한은 일단 김일성 장례식을 치른 뒤에 축제분위기로 전환하면서 김정일의 공식1인자 선출절차를 밟을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물론 김정일·오진우·강성산·이종옥·박성철 등 핵심간부들이 일단 한배를 탔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김의 권력승계에 잠정적 합의를 했다는 전제하에서다. 이같은 시나리오가 차질없이 정착될 경우 북한은 오는 10월쯤 14년만에 노동당 전당대회를 열어 김정일을 위한 보다 화려한 「대관식」을 치러 김정일체제의 출범을 과시할 것으로 관계당국은 관측하고 있다. 북한은 이에 앞서 미국과의 3단계회담 등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이미 북한은 장례식이 끝난후 3단계회담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북한은 남북회담에 대해 지난 11일 회담을 연기한다고 통보해온 이후 아직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않고있는데 먼저 미국과 회담을 가진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우리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그러나 김정일체제가 이처럼 낙관적 시나리오로만 굴러갈 것인지,아니면 예상밖의 상황이 벌어질 지 아직은 더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 “김정일 최고수위에”/당·정·군 완전장악 시사/평양방송

    ◎“새지도자” 첫 호칭/중국 【내외】 북한은 12일 김정일이 당정군 최고수위에 올랐다고 밝힘으로써 내부적으로 김정일 권력승계가 완결되었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이날 하오 평양방송을 통해 『수령의 유일한 후계자인 지도자동지를 당과 국가, 혁명무력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시게 됐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이어 『김정일의 영도를 높이 받들어 주체혁명 위업의 완성과 조국통일을 위하여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이며 혁명의 한길을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방송의 이같은 보도는 김정일이 김일성이 갖고있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당군사위원장 등 3개 요직을 승계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북한방송이 이렇게 시사한 보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장례식후 발표 할듯 【모스크바 연합】 북한의 김정일은 김일성주석 장례식 이전까지는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로 선포되지 못할 것이라고 이타르­타스통신이 13일 평양발로 보도했다.이 통신은 평양의 외국 관측통들의 말을 인용해서 장례가 끝나는 17일 이전까지는 김정일을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를 선출하기위한 회의가 소집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북경 AFP 연합】 이붕 중국총리는 13일 김정일을 북한의 「새지도자」로 호칭함으로써 중국정부가 그를 김일성주석의 후계자로 보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총리는 이날 하오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지 몇시간이 안돼 김주석의 빈소가 마련돼 있는 북경주재 북한대사관을 방문,조의를 표하면서 주창준북한대사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지도자 김정일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신화통신은 이총리가 김주석의 영정앞에서 세번 절했으며 방명록에 「위대한 김일성주석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썼다고 보도했다. 주북한대사는 이에 대해 『김정일의 영도하에 북조선인민은 슬픔을 용기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 김정일에 「민족의 태양」 호칭/북방송

    【내외】 북한이 김일성사망이후 김정일에 대한 호칭으로 「수령」에 이어 「민족의 태양」이라는 표현을 사용,눈길을 모았다. 북한의 개성방송은 11일 김일성사망에 대한 개성시민들의 애도소식을 전하는 가운데 『개성의 아들 딸들은 수령이 생전에 그처럼 간곡하게 교시한 위대한 뜻을 가슴깊이 새기고 김정일장군을 민족의 태양으로,위대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이 세상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보도했다.
  • 당총비서·국가주석 독점여부 관심/빠른행보 보이는 김정일의 권력승계

    ◎1인자지위는 사실상 「국내외 공인」/원로에 「주석」 양보땐 기반취약 반증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구축되고 있다. 후계체제의 조기 정착으로 김일성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공백이 일단 별다른 혼란없이 메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발빠른 행보는 이미 김정일이 장의위원 구성시 서열 1위가 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긴 하다.과거 구소련이나 중국 등 공산국가의 관례상 장례위원회 위원장이 일단 후계자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김정일시대의 조기 개막을 보다 확실히 알리는 징후는 북한노동당이 중앙위원 및 후보위원,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전원을 11일까지 평양에 집결토록 긴급지시한 데서 포착된다.이는 정부당국이 해외정보망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따른 것이다. 정부당국은 일단 이번 지시가 김주석 사망에 대한 집단조문을 하기 위한 조치이긴 하나 김정일의 1인자 등극을 전격적으로 공식화하기 수순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즉 장례식에 앞서 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전격 소집해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를 선출하는 절차를 밟을 공산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특히 당총비서직은 당·정·군이라는 북한의 3대 권력중 당권을 장악하는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아버지가 갖고 있던 이들 두 핵심요직중 최소한 당총비서직만 이양받아도 곧 북한의 공식 1인자임을 대내적으로 공인받는 것과 마찬가지다.북한은 당이 정치·경제·사회등 모든 분야에 걸쳐 지휘 감독권을 갖고 있는 당우위의 권력체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주석직까지 차지하게 되면 지난해 국방위원장직 취임으로 군통수권을 장악한 김정일로선 그야말로 1인천하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의 노동당규약에 따르면 당총비서는 당중앙위에서 선출되도록 되어 있고 장례기간 중이나 장례직후 바로 소집하는 데 아무런 절차상의 문제가 없다.또 주석은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토록 되어 있는 데 주석 유고시 잔여임기중 권한대행에 관한 조항이 없어 그 선출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체제가 기정사실화 됐다는 또 다른 근거는 북한의 공식 선전매체들에서 김일성 사망 이틀만인 10일 「위대한 수령」이라는 호칭이 등장한 사실이다.김정일에 대해 김일성과 동급의 수령이란 호칭을 사용한 전례는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의 경우처럼 「미래의 수령」이나 「두분의 수령」이 아니라 「현재의 수령」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김정일시대의 개막을 북한주민들에게 공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전격적인 권력승계 절차를 밟는 것이 곧 김정일체제의 확고한 안전판 구축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북한은 기본적으로 법치국가라기 보다는 인치국가의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김일성과 같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나 장악력이 없는 김정일로선 어차피 혼자서 북한체제를 끌고 가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그가 차제에 당총비서직만 갖고 국가주석직은 오진우나 박성철 등 다른 「혁명1세대」나 삼촌인 김영주에게 넘기는 사실상의 집단지도체제의 출현을 점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같은 추론의 적중 여부는 김일성 장례식을 전후해 입증될 것이다.다만 이 경우 김정일체제의 불확실성은 보다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 김정일 「호칭」/「당중앙」→지도자동지→위대한 수령 격상

    ◎64년이래 총30여개… 「화려한 수사」 일색 「우리 당과 인민의 영명한 수령이시며 우리 모두의 운명이시고 자애로운 스승이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자주시대의 위대한 태양」「인류가 낳은 걸출한 영웅」…. 자신의 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북한 정권 두번째 수장이 될 것으로 보이는 김정일.그에게 그동안 주어진 숨가쁠 정도의 길고 화려한 수사로 다듬어진 숭배의 호칭들이다. 세습후계자 김정일을 떠받쳐온 호칭은 30여개.김일성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에게 붙인 그것을 시차를 두고 물려받거나 재가공해 덧입힌 호칭의 변화과정은 64년 김정일이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된 후계작업 30년 역사 그자체로,권력이양의 독도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2∼3년간 등장하기 시작한 「아버지」「수령」등의 호칭은 김정일에 대한 권력승계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고 특히 김일성 사망 이틀째인 10일 북한 중앙방송에서 나온 「위대한 수령」이란 칭호는 현재까지 「별 무리없이」 북한 정권의 정점에 김정일이안착하고 있음을 내외에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김일성대 졸업후 비공식적으로 후계자수업을 받은 김의 첫 직책은 당 조직사업부 지도원.이후 과장 부부장 부장을 거쳐 당 비서직을 맡게되며 이 직책에 맞게 73년까지 불리게 된다.별다른 수식어가 붙었다는 보고는 없다.62년 김일성이 어느덧 남한에서도 익숙한 「경애하는 수령」이라는 개인 우상화차원의 호칭을 처음 붙인 것에 비추어 볼때 당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권력정지 작업이 한창이었던 70년대의 대표적 호칭은 「당중앙」.김정일이 노동당의 양대 기둥인 조직및 선전선동 비서국을 장악한 73년 9월 당중앙위 제5기 전원회의 직후 처음 사용됐고 이후 80년대까지 가장 흔히 쓰인 호칭이다.그의 생일 2월16일을 공휴일로 지정한 75년에는 「유일한 지도자」가,77년에는 「당중앙」이 우세한 속에 「영명하신 지도자」「경애하는 지도자」등이 등장했다. 김정일에 대한 호칭이 질적으로 변화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80년의 10월 제6차 당대회서 당정치국 상무위원과 당군사위 위원에 오른 3년뒤인 83년 2월 41회 생일을 계기로 「당중앙」대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가 자리잡았다.현재까지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 호칭은 북한 주민들사이에 「친지동」이란 비꼬는 말로 쓰인다. 실제 김정일은 91년 12월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했음에도 8년전인 83년 5월 「최고사령관」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군의 영향력 강화를 의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칭을 통한 미화는 「언어창작」을 넘어서 항일빨치산이 백두산의 나무에 새겨놓았다는 「구호나무」의 역사날조에 까지 이어진다.북한은 87년 「백두산에 광명성이 떴다.광명성(김정일 지칭)미래로 민족 존엄 떨치자」라고 새겨져 있다며 「위대한 영도자」라는 호칭을 썼다. 90년대에는 김일성에 버금가는 호칭이 등장한다.90년 12월 「인민의 운명을 책임진 혁명의 지도자」(노동신문)에 이어 91년 김일성과 동격임을 드러내는 「수령」호칭이 등장하나 미래의 수령이란 의미로 사용됐다.93년조선기자동맹 제7차 대회서 현재를 나타내는 「영명한 수령」으로 표현됐고 올해 3월에는 조선대남방송에서 「주석」으로,5월에는 평양방송에서 「두분의 수령」「탁월한 수령」으로 나와 곧 명실상부한 권력이양이 이루어지리라는 추측을 불러일으켰었다. 「수령」과 같은 카리스마조작 비중을 갖는 「어버이」도 최근 2∼3년전부터 두드러진 호칭. 「오늘은 오실까 우리어버이/내일은 오실까 김정일 동지/우리를 키워준 어버이모습/한해가 다르게 그립습니다」 92년 북한이 보급한 「기다렸습니다」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이다.그토록 기다려 왔다는 올해 52세 「어버이」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북한 인민에게 다가갈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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