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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너지는 주체사상/창시자 황의 망명으로 이데올로기 종언

    ◎김정일 백두산출생설·지도자 호칭 만들어 북한을 집으로 비유한다면 「주체사상」은 이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이다.주체사상은 정치적으로는 김일성·김정일의 후계체제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배경이고,사회적으로는 외래사조를 차단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따라서 주체사상은 오늘날 북한에서 하나의 통치이념 차원을 넘어서 종교의 교리에 가까울 만큼 신성화되어 있다. 북한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이 주체사상을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황장엽이다.황이 주체사상을 체계화한데는 2가지가 큰 힘이 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나는 먼저 체계적으로 철학을 연구했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황의 김일성·김정일과의 특수관계이다.황의 철학연구는 52년 모스크바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뒤 김일성대학총장을 지낼때까지도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그는 70년대 10년간 최고인민회의 의장직을 맡아 비동맹외교에서 주체사상을 전파하는데 공헌했다.황은 이 주체사상으로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구축하는데 누구보다도 큰 몫을 했다.김정일의 출생지를 시베리아가 아닌 백두산 밀영으로 조작하고 김정일에게 「영명한 지도자」「당 중앙」「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등의 호칭을 붙이게 한 장본인이다.또 김정일의 생일 2월16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3대혁명소조의 운동을 발기한 것도 그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따라서 황장엽은 주체사상으로 떠받쳐지고 있는 북한체제의 「사상의 대부」라는 막강한 위치에 있고,지금까지 김정일의 공식권력승계가 이루어진다면 그의 영향력도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예상됐던 인물이다.따라서 그의 망명은 북한 주체사상의 자기부인이며 주체사상의 몰락·종언을 의미하는,북한으로서 볼때는 가장 큰 국가이념의 혼돈이 시작됐다고 보여진다.
  • 즐거운 설 연휴 PC통신 서비스/귀성길 카풀정보서 전통풍습까지

    ◎하이텔­제수용품 구입·차례절차 알려줘/나우누리­친척호칭·촌수 계산법 등 자세히/유니텔­신년운세 알아보는 만세력 제공/천리안­온라인 민속경기·노래실력 겨뤄 민족의 명절 설날을 맞아 PC통신회사들이 제공하는 각종 정보와 가상공간의 놀이들은 안락하고 의미있는 새해 출발을 위해 한번쯤 이용해 볼 만하다. 국내 4대 PC통신이 설에 즈음해 만든 특집 코너들은 귀성길 카풀 정보나 차례절차 및 상차리기,제수용품 쇼핑 등 명절 치르기의 편의를 돕는 것과 새해 운수,게임,노래방 등 「재미있는 설」을 겨냥한 것들이 있다.또 설의 유래나 족보알기 등은 「뿌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하는 이들의 「진지한 설」에 유익할 것이다. PC통신별로 제공되는 설관련 서비스를 알아본다. ◇나우누리=▲즐거운 요리 ▲제사절차/족보알기 ▲토정비결/별점 등 다채로운 메뉴들이 준비돼 있다.「즐거운 요리」(직접 명령어 go dish)는 차례음식의 조리법을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안내한다.옛 음식만들기보다 PC통신이 더 익숙한 젊은 주부들에겐 안성맞춤의 정보다.「뿌리를 찾아서」(go droot)코너는 제사 상식과 촌수계산법,친척호칭 등을 소개한다. 새해 첫날 올해의 운수를 컴퓨터로 알아보는 것도 설날다운 재미찾기의 한 방법이다.토정비결·궁합·택일 등을 사주팔자를 기초로 풀어주는 「운세정보」(go luck)와 「사주박사」(go saju),별점·혈액형점·꿈풀이 등을 봐주는 「판도라의 상자」(go pandora)가 있다. ◇하이텔=「홈쇼핑」(go shopping)에 들어가면 전국 70여개의 백화점과 대형유통점 등에서 내놓은 설용품 및 선물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싸고 질좋은 제수용품 구입을 노리는 알뜰주부들을 위해 전국 농축산물 가격을 비롯,설 기획상품전,농·수·축산물 직매장 소식 등이 실린 「소비자 정보」(go sobi)코너도 마련돼 있다. 성균관에서 제공하는 「가정의례」(go hrule)에서는 설의 의미와 유래,성묘절차,제수놓는 법 등을 그림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자동차 함께 타기」(go carpool)게시판에선 목적지 방향이 같은 사람끼리 통신대화를 통해 카풀을 유도,귀성 동행을 돕고 있다. ◇천리안=설날 특집 「까치야 까치야」(go CCACHI)서비스가 제공된다.이 코너에선 이용자들끼리 고향 가는 지름길 정보를 교환하는 「고향길 빠른 길」과 한해를 시작하며 이용자들이 자기의 새 결심을 공개하는 「작심! 365일」이 눈에 띈다.또 바둑,장기 등의 온라인 민속경기와 온가족이 함께 하는 노래방서비스도 제공된다. ◇유니텔=신년운세 특집코너가 돋보인다.「97 신년운세백과」(go 97UNSE)에서는 1년운세 뿐만 아니라 월별운세와 일별 운기리듬,매일의 일진·음력·별자리 등을 담은 만세력을 제공한다.
  • “화려한 외출 준비중”/「신세대 철학자」 수원대 이주향 교수

    ◎폭발적 인기 저서 「나는 길들여…」 후속타 구상 「신세대 철학자」로 불리는 이주향 교수(34·여·수원대)가 두문불출이다. 얼마 전까지 각종 라디오매체와 잡지 등에서 「고전의 소개자」로,「철학을 이야기하는 말꾼」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그였다. 또 지난 9월에는 에세이집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로 대학생 등 젊은 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기에 그의 팬은 이교수의 칩거가 몹시 궁금하다. 이교수는 지금 「외출준비중」이다.『「나는 길들여…」책으로 90년대의 문화현상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다면 이번에는 그 가운데 한 장르를 택해 철학과 접목시켜 인간의 심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들여다보려고 해요』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1호로 받았다.현재 수원대 인문대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그러나 스스로 신세대와는 거리가 있다고 말한다. 신세대의 특징인 「톡톡 튀는 성격」도 아닐 뿐더러 「소비사회의 전사」라 할 만큼 소비를 통해 개성을 확인하려는 신세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아마도 90년대 들어 새롭게 드러나는 우리의 문화적 현상을 새로운 방법을 통해 철학적 접근을 해나가려는 시도 때문에 그런 호칭이 붙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이교수는 신세대에 애정이 많다. 「나는 남과 다르다」며 갖가지 개성으로 튀고 싶어하는 젊은 20대.그들이 그토록 애써 좇고자 한 개성이 유행 앞에 함몰되고 「어쨌든 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 유행에 길들여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그였다. 그래서 혼란한 문화의 급류를 타고 있는 젊은이는 하늘의 소식을 땅에 전한 그리스 신화속의 헤르메스를 좋아하고 『우리의 삶을 반성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매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소망』이라는 이교수의 글을 더욱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하얼빈의 한국기업들(송화강 5천리:14)

    ◎100여개사 진출… 중국 산업화에 큰몫/89년 삼익악기 첫발… 6년 고전끝 「달러박스」로/쌍태전자 설립 3년만에 신기술기업 16강 진입 하얼빈에 자리잡은 외자기업은 1천940여개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그중에 한국기업은 100여개에 이르지만 첫 투자자는 한국인으로 되어있다.한국 삼익악기의 고 이효익 회장이 바로 그다.그에게 하얼빈은 제2의 고향이었다.만주국시절 이팔청춘이었던 그는 하얼빈에 와서 상점 점원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86년 공장설립 첫 구상 그의 두번째 하얼빈과의 인연은 지난 1984년 한국을 방문한 박두성씨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그래서 1986년 개인자격으로 하얼빈에 온 그는 하얼빈에 피아노공장을 세워보겠다는 실로 엄청난 사업계획을 혼자 구상하고 마음속으로 결정해 버렸다.당시로서는 엉뚱한 꿈이었는지 모른다.왜냐하면 중국이 정책적으로 한국과 이스라엘을 무역대상국에서도 제외시킨 시절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감히 공장을 세우겠다는 구상은 그야말로 꿈이었다. 그런데 꿈이 현실로 다가왔다.박두성씨 소개로 하얼빈시무역촉진회 문도홍 회장(조선족)이 이효익회장을 도와 뛰었다.그래서 1989년 한국의 삼익,미국의 삼익,중국 흑룡강성 야부리임업국이 합작으로 공장을 세운다는데 합의했다.외자투자 1천만달러 이상은 중앙의 승인을 받아야하는 까다로운 절차가 뒤따라 출자액을 끌어내렸다.투자비율은 삼익 55%,야부리임업국 45%로 결정하고 흑룡강성 호란현 이민진의 옥수수밭을 공장부지로 사들였다. 중국에서는 기업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을 동사라고 한다.동업자를 이르는 말인데 이사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전 흑룡강조선문보사 부사장이었던 박손수선생은 중국 현지법인 삼익악기 동사로 참여했던 분이다.그분 말을 들어보면 삼익은 중국 사정에 어두워 한때는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다. 『중국에서 하는 일은 입에 오르면 쉽고,손에 잡으면 어렵다고 하디요.삼익 초기에 동사회가 나오고 물론 부총경리 등 중요 요직도 인선되었습네다.중요요직은 야부리임업국에서 맡았댔디요.그런데 일을 해야디요.토요일 오후만 되면 회사차를 타고 나갔다가 월요일 오후에야 출근을 하디 뭡네까.그것도 술이 덜 깬 상태로 나오니 일이 될 턱이 없디요』 ○고가불구 내수도 호조 중국에 와서 일을 하다보면 애를 태우는 때가 많다.외국 기업들이 가장 눈꼴 사납게 여기는 일은 식사다.주인은 간단한 식사를 생각하고 식당을 찾지만 막상 앉고보면 사정이 달라진다.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음식이 올라올 뿐 아니라 어중이떠중이가 다 달라붙었다.점심식사는 보통 하오4시가 되어야 끝나고 저녁은 밤중까지 계속되는 마라톤 식사 습관에 젖어있다.그래서 언론들은 「그 많은 시간을 식탁에서 보내고 어느 천년에 일을 하겠는가」라는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삼익도 초창기에 돈을 물퍼붓듯이 썼다.그러다 보니 결국 관리가 엉망이 되어 벼랑으로 몰렸다.흑룡강성 정부와 하얼빈시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첫 외국합자기업인 삼익의 성패는 외국인투자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수 있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성과 시의 간부들이 부랴부랴 수습에 나섰다.이에 따라 긴급소집된 동사회의는 야부리임업을 물러나게 하고 대신 호란개발구를 합작에 참여시켰다.투자비율은 삼익이 90%,호란개발이 10%로 하고 회사경영은 한국측이 전적으로 맡는다는 조건이 수락되었다. 하얼빈 삼익악기유한회사가 중국 삼익의 공식이름이다.하얼빈시 인민경제개발구에 10만㎡나 되는 부지를 차지하고 들어앉은 하얼빈 삼익악기를 찾았을때 노동복차림의 장영기 부총경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부산 태생이라는 그는 1990년 삼익악기에 들어와 1993년 인도네시아 근무를 마치고 이듬해 중국에 왔다는 것이다.합작 초기 중국에서 건물을 지었던 탓에 사무실은 허술하기 이를데 없었다.허세가 보이지 않는 사무실 분위기가 오히려 차분했다. ○60% 출자… 전자제품 생산 그는 삼익이 이제 궤도에 진입했다는 말로 회사경영상태를 털어놓았다.합작을 시도한지 6년만인 1993년 10월부터 가동되어 지난 1995년에는 3백만달러의 수출실적을 올렸다는 것이다.모기업인 한국 삼익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는 수출목표 5백60만달러를 달성했다.중국의 국내 내수도 호조를 보여 피아노 1대가 중국돈으로 3만원을 호가하지만 워낙 유명해서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다.현재 한국직원 12명을 포함,모두 300명 종업원을 두었다. 하얼빈시 태평구역 선봉거리 469번지 하얼빈 쌍태전자유한회사는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계 기업으로 널리 알려졌다.자그마치 12만㎡나 되는 드넓은 부지에 연건축면적 24만3천평의 현대식 건물이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았다.중국 사람들이 지어 허름하기 짝이 없는 삼익악기와 대조를 이룬 쌍태전자건물은 외모도 아름답거니와 내부시설 모두가 윤기가 날 정도로 깨끗했다.공장건물은 물론 기숙사와 아파트,사무청사,발전소 등 모든 시설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중국내 고신기술기업 16강이 거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쌍태전자 전강환이사장이 하얼빈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1년이다.2년여동안 사업성을 검토하고 나서 1993년 5월 중국의 하얼빈 단결실업본공사와 대경 남원다각경리공사,이스라엘의 UDI와 합작으로 손을 잡았다.총투자액은 4억4천698달러였는데 전강환이사장의 한국기업인 태일정밀이 60%,단결실업본공사가 18%,UDI가 12%,남원다각실업공사가 10%를 출자했다. 쌍태전자는 「뉴 맥스」(NEW MAX)라는 상표로 386피트에서 586피트에 이르는 컴퓨터를 비롯한 여러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비디오와 오디오계열의 전자제품은 물론 자동식전화기 등 중국시장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쌍태전자는 중국정부가 주목하는 기업이다.그래서 지난해에는 국무원 부총리 이람청 동지도 일부러 쌍태전자를 찾았다.하얼빈시는 쌍태전자를 「쌍태전자성」으로 호칭하면서 하얼빈시를 국가공업기지로 만든 기업이 바로 쌍태전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외국우수기업상 수상 흑룡강성 대경시,산동성 노성시와 청도시에 분회사를 차렸다.지난해 전국 중점항목기업소로 선정된데 이어 전국 고기술기업 16강기업상을 받았다.흑룡강성에서도 쌍태전자를 최대 중외합작항목기업소로 뽑았다.전강환 이사장에게 영예시민 칭호를 준 하얼빈시는 쌍태전자에 외국우수기업상을 주기도 했다.지금까지 쌍태전자에 투자된 외화는 2억5천만달러.올해에는 1억5천만달러를 더 투자할 계획이다.지금의 4천명 종업원을 올해까지 9천명으로 끌어올린다는 쌍태전자의 포부는 그야말로 원대했다. 하얼빈은 외국기업 유치지역도 아니고,한국기업이 밀집한 지역도 아니다.교통이나 통신여건 역시 열악한 편인 하얼빈을 기업 본거지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쌍태전자 문용태 부총경리의 말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전강환 이사장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한국인으로 볼때 하얼빈은 결코 생소한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피를 흘린 하얼빈은 이미 오래전에 한국과 연고를 맺었다는 인식에서 쌍태전자가 하얼빈에 자리잡았다고 보면 됩니다』
  • 해외유출 문화재 6만4천782점/문화유산 지정·관리 실태

    ◎국가지정 2,661건·50년동안 1,500여건 발굴/문화재 보호법 등 관련 법령·제도 보완 시급 우리는 민족문화 역사를 흔히 5천년으로 잡는다.대륙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중국과는 크게 구별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그리고 이웃 섬나라 일본과 비교해서는 다분히 선진적이다.동양문화권에 속하면서도 독창적 경지를 개척한 것이 우리 문화이다.그 문화의 우수성은 「한국미술오천년전」과 같은 문화재 해외전시 등을 통해 입증했다.또 지난 95년 우리 문화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으로 전통문화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정부가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데는 이같은 맥락의 배경이 깔렸다.우리나라의 민족문화유산 보존과 보호에 따른 제도적 근거는 1962년 제정 이후 8차례 개정을 거친 문화재보호법에 두고 있다.이 법에 따라 국가가 지정한 각종 문화재는 2천661건에 이른다.국가지정 문화재 가운데는 국보 288,보물 1천244,사적 393,사적 및 명승 6,명승 7,천연기념물 384,무형문화재 107,민속자료 232건이 각각 포함되었다. 이들 국가지정 문화재는 민족이 오랜 세월을 두고 남긴 귀중한 문화유산이다.그러나 수많은 외침에서 잃어버린 문화유산 또한 만만치 않다.중세 몽골의 침입이나 근세 임진왜란·병자호란은 덮어 두더라도 근대 열강의 침략기에 잃어버린 문화유산만도 엄청나다.최근 통계에 따르면 해외유출문화재는 일본 등 17개국에서 자그마치 6만4천782점이 조사되었다.이 가운데 약탈 흔적이 뚜렷한 것만도 1천507점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까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기 이전까지 문화재보호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던 것이다.더구나 정부수립 이후 곧바로 일어난 한국전쟁은 문화재 망실을 더욱 부추겼다.그래서 광복이후 한국전쟁에 이르는 혼란기를 통해 미국과 유럽으로 상당량의 문화재가 빠져나갔다.이 무렵 구미쪽에는 새로운 한국문화재 컬렉터들이 생겨났다.일제 침략기 일본인 컬렉터들과 성격이 다른 컬렉터들의 수집품이었지만 돌아올 길은 없다. 우리 문화유산은 지상 건조물과 이른바 동산문화재로 호칭하는 유물말고 매장문화재가 따로 있다.땅속에 묻힌 문화유산을 일컫는 매장문화재는 발굴에 의해 빛을 보는 속성을 지녔다.문화재보호법에는 매장문화재 발굴에 대한 규정이 들어 있다.그러나 첫 발굴은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기 이전 1946년 우리나라 학자들 손에 이루어졌다.국립중앙박물관의 경주 신라고분 호우총 발굴이 그 효시다.그로부터 50년동안 약 900여건의 유적이 우리 손으로 발굴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발논리에 밀려 문화재가 늘 훼손된다는데 있다.문화재보호법과 그 시행령,환경영향평가제와 같은 문화재관련 법령과 제도가 보강돼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짚고 넘어갈 문제다.개발에 따른 공사시행 이전에 문화재 매장여부를 가리는 사전조사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또 전국적인 지표조사를 통해 매장문화재 부존을 미리 진단,문화재지도를 제작·활용하는 문제도 검토돼야 한다. 어떻든 「문화유산의 해」는 문화재보호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원년이 돼야 할 것이다.그래서 문화재를 보존·보호할 수 있는 내실적 사업을 차근차근 추진하길 기대해본다.
  • 서양화가 권옥연(이세기의 인물탐구:116)

    ◎허무·고독을 즐기는 화단의 신사/세련된 멋·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레 공존/구상·추상 오가며 미지의 세계 정신적 탐구 권옥연은 슬픔과 허무가 엇갈리는 낭만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다.화려하고 사치한 사교적인 면을 지니면서 「군중속에 둘러싸인 고독」 같은 이미지가 전신에 배여 있다.스스로를 옷 한벌도 없는 「무의자」로 불리기를 원하거나 그림 곳곳에 잔잔한 슬픔의 무늬가 운문율처럼 번지고 문학적 향수와 비감을 감추지 않는 것도 그만의 예술가적 기질일 것이다. 그의 작품도 일본과 프랑스유학에서 연유한 세련된 멋과 우리만의 꾸미지 않은 투박한 정서가 자연스럽게 공존된다.이른바 지난 역사속에 숨겨진 한국인 특유의 비애와 한을 떨쳐버리지 않고 이를 안으로 익삭여서 그림의 특징으로 삼은 것이 특별히 남다르다.그의 화면의 배경은 금방 눈이라도 쏟아질 듯 무겁게 내려앉은 청람의 하늘과 차갑게 빛나는 납빛의 달,상서로운 길조 한마리가 피안을 향한 아득한 미래를 응시하면서 미묘한 조율과 변주로 탐미적 향기를 풍겨낸다. 그의초기작품은 자연주의적 공간의 원근법을 무시하고 수평으로 전개되는 선상에서 간결하고 절제된 대상이 평탄한 색조로 수직구도를 이루고 있었다.이는 한때 고갱의 예술세계에 경도된 흔적이기도 하지만 평론가 유준상에 따르면 「사상을 색채가 아닌 형체에 의해서 파악」하고 「인간을 비극적인 고뇌의 생명」으로 보기 때문에 그의 추상화는 「해학성과 불가사의한 세계를 동경하는 정신적 탐구를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그림곳곳 잔잔한 슬픔… 화면구성의 배치와 균형뿐만 아니라 색채의 의장을 무시한 자기억제적인 색조는 「관념적인 영원성마저 표출시킨다」고 했다.또 내적 경험을 암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상형기호는 보석타래처럼 허공을 부유하면서 「비현실세계에서의 신비적 허무」로 반짝이는 것도 그만이 보여주는 화경의 특징이다. 그는 유치한 것을 싫어하고 쓸데없는 치장을 역겨워한다.예를 들어 당장에 눈에 띄는 그림보다는 어둠이 눈에 익어 천천히 나타나는 그림이야말로 「벨벳속에 싸인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다」고 주장한다.그래서 낯설고 새로운 수많은 미학적 체험과 깊은 모색의 시기를 거쳐 그의 화면은 「바닷속같이 괴괴한,정일과 정미의 경지」를 끌어낸다.구상에서 추상,다시 최근에는 「구상적이면서도 구성적」인 그림으로 그는 남보다 앞장선 그림을 그리는 대가로 국내외에 알려져 있다. 그의 일상적인 매너는 누구를 만나든 포용력 있게 반기는 제스처에 능하다.한때는 주한프랑스대사로 10여년이상 한국에 머물었던 로제 상바르대사와 절친하여 그가 주관하는 파티의 주역이었고 다른 자리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는등 사교적인 폭이 두껍고 넓은 편이었지만 실제로는 의외로 비사교적이고 사회성이나 경영에 어둡다. 정이 많고 정의감이 투철하여 같은 예술원회원인 천경자씨가 가짜 미인도사건에 휘말렸을 때는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여 철저히 감싸주었고 그와는 성격이 정반대인 원로화가 김흥수씨가 「외국작가초대에 대한 이의제기」나 「국전의 의미」를 묻는 시비를 만들 때도 옳은 것의 편에 서서 이들을 두둔해왔다. ○17세에 선전 입선 같은 함흥 출신에다일본과 프랑스유학을 비슷한 시기에 보낸 김흥수씨는 『그는 함흥의 명문가의 자손으로 남보다 풍족한 성장기를 보냈고 올바르게 처신하여 화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어왔으면서도 언제나 겸허하여 오만이 없다』고 말한다.이른바 예술가로서 신사의 도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보기드문 순수파라고 할 수 있다. 화가로서의 그의 위치나 면모를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그의 긴 화력과 그가 성취한 새롭고 혁신적인 화풍만으로도 그의 위상을 논하는 것 자체가 이미 무의미하다. 그는 함남 함흥읍에서 대지주의 5대독자로 태어나 조부모와 부모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듬뿍 받은 천진무구성을 지금도 지니고 있다.어릴 때는 음악과 문학에 심취하여 『지휘자나 작곡가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 음악에 관한 한 앉은 자리에서 100여곡 이상의 노래가 그의 몸에서 물처럼 흘러나온다.오죽하면 작곡가 김성태씨는 『그의 머리를 한번 해부해보고 싶다』고 했고,김순애씨는 『그가 허밍으로 부르는 즉흥곡을 악보로 써둔다면 틀림없이 주옥 같은 명편』이 됐을 거라고 감탄할 정도다. 함흥에서 서울 제2고보(경복고)로 유학한 후 3학년되던 해 선만 학생전람회에서 준특선,다음해 특선했고 졸업반인 5학년때 선전에서 입선하면서 17세에 벌써 화가로 호칭되었다.그러나 『50년동안 그림을 그려왔지만 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화가」라는 타이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그리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었다』고 자신을 돌아본다. 부족할 것 없는 환경에서 화가이면 누구나 동경해 마지않는 도쿄와 파리유학,수많은 국제전에 선정,초대되었고 세종문화회관 개관때도 가로 40m,세로 20m의 초대형 「십장생도」커튼을 제작하여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일본·덴마크·파리국립·현대·근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에 그의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그는 개인적으로 금곡에는 개인박물관을 가지고 있고,무대의상을 미술의 차원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듣는 부인 이병복씨는 국제무대에서 공연하는 극단 자유극장의 대표이며 한때 서울대에 출강하긴 했지만 한평생 그림만을 그려온 전업작가다. ○40m 「십장생도」 제작화제 이처럼 행복만이 점철된 그에게 뼈저린 아픔이 있었다면 두고 온 산하에 대한 그리움과 지난 봄 긴 투병끝에 있던 장남을 잃은 일이다.지상의 모든 슬픔을 온몸으로 얼싸안은 채 『나는 평생 철들지 못한 철부지였으나 아들을 잃자 갑자기 철드는 자신을 느꼈다』고 소년처럼 절규한다. 자녀는 파리화단에서 활동하는 딸(이나씨)과 첼리스트인 차남(유진)이 있다.지난해 도시계획에 밀려 고풍스럽고 오래된 광희동집을 떠나 성북동의 빌라로 이사하게 되자 현대적인 낯선 분위기가 싫어서 집에선 잠만 자고 장충동 화실에서 거의 하루를 보낸다.술을 마다하지 않으며 줄담배를 피운다. 그의 신작분위기는 빈 바위 같은 회색산정과 앙상한 나목에 앉은 흰새 한마리.새는 머언 공간을 향한 긴 응시를 끝내고 지금 마악 비상직전,아니면 탐색직전의 긴장과 정적을 품고 있다.그의 득의의 화면은 보는 이의 마음에 철학의 심연을 만들어주고 있으나 이제 허무주의와 문학주의를 딛고 그는 화가의 가장 찬란한 광채인 청람의 보석 같은 구두점을 그의 화면속에 감추고 싶어하는 시기다. □연보 ▲1923년 함남 함흥 출생 ▲39년 선만학생전람회 특선 ▲40·42년 선전입선,제2고보(경복) 졸업 ▲44년 도쿄제국미술학교 졸업 ▲48년 첫개인전(동화백화점 화랑) ▲49년 국전입선 54·56·60년 국전특선 ▲56∼60년 체불,파리살롱도톤,파리 레알리테누벨전선정초대출품 ▲60년 프랑스 파리아카데미 드페수학,도쿄 일본교갤러리 개인전 ▲61∼72년 국전초대작가 및 국전심사위원 역임 ▲65년 도쿄개인전,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 출품 ▲68년 서울개인전(신세계미술관)「한국현대회화전」(도쿄국립근대미술관) ▲70년 엑스포70 세계100인선 작가로 선정,현대화랑개관 기념전 ▲73∼74년 한국미술대상 심사위원,미 국무성 초청 미국문화계 시찰 ▲75년 「한국현대미술가 100인선집」 출간(금성출판사) ▲78∼현재 금곡박물관장 ▲79년 개인전(갤러리 현대),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및 소강당 커튼(막)제작(가로 40m,세로 18m) ▲83∼현재 예술원회원 ▲86년 한불수교 100주년 기념 「서울·파리전」(서울갤러리) ▲95년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전 ▲96년 이목화랑 개관 20주년기념전 출품(권옥연·천경자·윤중식·임직순) 〈작품소장〉 미국 체이스맨해턴은행·도쿄국립근대미술관·일본겸창근대미술관·덴마크코펜하겐국립근대미술관·파리국립현대미술관외 〈수상〉 예술원상·보관문화훈장·3·1문화상
  • 「문화유산의 해」와 사회교육/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서울논단)

    올해를 「문화유산의 해」로 정한 정부는 그 조직위원회 주관으로 오는 21일 선포식을 갖는다.지난해 출범한 조직위원회는 이미 사업계획까지 마련해 놓았다.그러고 보면 선포식과 더불어 이 해의 여러가지 활동이 곧 가동할 전망이다.이처럼 올해를 주제가 있는 해로 지정한데는 각별한 사연이 배경에 깔렸다.지난 1995년 우리 문화재 세점의 국제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세계문화유산 등록이 그것이다. 이 해의 무게는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민족 자긍심을 높인다는 쪽에 실었다.그래서 조직위원회는 「민족의 얼 문화유산 알고 찾고 가꾸자」는 표어를 정했다.그 표어가 제시한 내용을 실천하자면 정부가 챙겨야할 일과 국민이 할 일을 따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또 민족문화유산과 깊은 관련을 가진 종교도 함께 나서야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유산의 해」를 맞아 현실적으로 짊어져야할 부하는 정부에 더 많이 걸려있다.국민들에게 문화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책무 같은 것도 아직은 정부의 몫이다.무지는 때로 인류문화유산 망실을 재촉했다.중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갑골도 그런 위기를 겪었다.1889년 갑골에서 기록성을 발견하기 이전까지는 말라리아 민약재로 거래된 짐승뼈에 지나지 않았다.뒷날 갑골은 신화속의 은을 역사의 실체로 끌어올린 결정적 자료가 되었다. ○한민족의 자긍심 높여야 우리도 그만은 못하더라도 역시 잘못을 저질렀다.신안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린 청자가 섬사람들 집 강아지 밥그릇으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얼마되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대대로 내려온 전세품따위의 가보를 엿 바꾸어 먹지 않았던가.그렇듯 헐값에 팔려나간 우리 문화유산들은 약삭빠른 외국인 수장고를 가득 채워주었다. 1906년 초대 통감으로 이 땅에 온 일제침략자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와 고종사이에 얽힌 청자이야기는 사뭇 충격적이다.임금은 일인 침략자가 보여준 청자가 어느시기에 어느나라가 만든 물건인지를 몰랐다고 한다.참으로 서글픈 대목이다.그럴진대 민중의 인식은 어떠했겠는가.오늘날 세계 미술품경매시장에서 우리의유출문화재(유출문화재)한 점에 수십만달러라는 초고가에 팔리는 현실을 본다.민족문화를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한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민족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기능이 요구되고 있다.이른바 박물관대학으로 흔히 호칭하는 문화재교양강좌의 확충과 활성화를 먼저 떠올려보았다.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강좌를 개설한 대학기관이나 박물관을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지원책을 마련하자는 것이다.그런 정책이 뒷받침 한다면 현재 극소수로 운영되는 강좌가 얼마든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사회교육 측면에서 반드시 고려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는 민족문화유산 이해계층을 두텁게 키우는 일이기도 하다.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기위해 필요한 인적자원 육성인 것이다.우리나라에도 영국 고고학협의체와 같은 민간단체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순수 아마추어 고고학연구자 모임인 이 협의체는 회원활동을 통해 문화유산 파괴위험을 세상에 알리고 구제하는 일을 해내고 있다.국민 모두가 문화재를 향유하는 권리자로서의 자각을 의미하는 활동인 것이다. ○문화재 강좌 활성화 필요 우리가 정부를 세우고 홀로서기를 시도한지도 어언 반세기에 이른다.민족유산에 대한 관심은 좀 뒤늦게 돌려 문화재보호법과 그 시행령은 1962년에 제정되었다.그런 법령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문화재는 그동안 개발논리에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관계제도 및 법령정비와 이에따른 운용의 묘를 모색하는 정부의 노력도 이 해에 기대하고 싶은 일이다.
  • 해외 성공사례/이 넥타이기업 「마리넬라」(G7으로 가는길:51)

    ◎최고품·최고가 소량생산으로 “승부”/“똑같은 제품 4개이상 안만든다” 원칙 고수/3대 82년째 가업… G7 정상들도 단골고객 서울신문이 사회발전 캠페인으로 연재중인 「G7으로 가는길」 제 2부 경쟁력을 키우자는 지난해 국내의 초일류 경쟁력의 현장을 소개한데 이어 새해부터는 해외편을 소개합니다.이번회부터는 해외의 현장체험을 통해 무한경쟁의 환경에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자리잡기 위한 방안을 알아봅니다.〈편집자주〉 『할아버지때부터 전수돼온 넥타이가 내 손을 떠나 만들어지고 팔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회사를 키우기 보다는 지금처럼 일하면서 고객을 만족시킬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세계 각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찾는 초미니 넥타이 기업 「마리넬라」의 마우리치오 사장(41)의 얘기다.그는 전세계에 단 한곳의 지점도 내지 않았다.마리넬라 브랜드의 세계적인 명성에 눈독을 들이는 대기업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는 브랜드를 목숨처럼 지켜왔다. 마리넬라의 매장은 나폴리 리비에라 해안가에 있다.크기는 겨우5평 남짓.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마우리치오 사장과 점원2명,회계원 1명등 4명이 전부다.세계 최고급·초고가 브랜드의 넥타이를 만들어 파는 곳이란 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내부를 살펴봐도 넥타이 진열장은 한평이 될까말까하고 대부분의 진열장은 향수·스카프·가죽제품·스웨터 등 다른 제품들로 채워져 있다.그러나 넥타이를 제외한 다른 제품들은 팔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장식용에 가깝다. ○클린턴·힐러리도 고객 그러나 허름한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세계 주요국의 정상급 인사들이 이 집을 찾는다.지난 94년 G­7 정상들은 회담을 마치고 이곳을 단체로 방문했다.두말할 필요없이 마리넬라 넥타이를 둘러보고 사기 위해서였다.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이때 이후 마리넬라의 단골이 됐다.그는 마리넬라 사장에게 좋은 넥타이를 공급해준데 대해 세차례에 걸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도 95년 유럽방문중 이 곳을 방문,남편의 넥타이를 직접 고르기도 했다.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독일의 콜 총리,프로디이탈리아 총리,스칼파로 대통령,베를루스코니 전총리,러시아의 옐친대통령,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캐나다의 크레티앙 총리,일본의 무라야마 전 총리 등도 이곳의 손님들이다.『단골손님이 5천명 정도 되는데 이중 외국의 지도급인사가 400∼500명이고 나머지는 이탈리아 사람들』이라고 한 점원이 귀띔해준다. 세계 각국,그것도 내로라 하는 나라들의 정상들이 이 집을 찾는 이유는 두가지다.「세계최고의 제품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장인정신과,「똑같은 제품을 4개 이상 만들지 않는다」는 희소성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마리넬라는 하루 120개 이상을 만들지 않는다.이 원칙은 마리넬라 현사장(41)의 할아버지인 에우제니오 마리넬라가 지난 1914년 개업한 이래 3대째 80년이 넘도록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이 회사는 주문에 의한 소량생산방식을 택하고 있다.같은 디자인의 원단 한장으로 넥타이를 단 한개만 만든다.그러나 동일한 디자인에 대해 추가 주문이 있으면 최대 3개를 더 만들 수있다.주문받지 않은 일반제품의 경우 원단 한장으로 4개의 넥타이를 만들고 있다.가격은 주문제품은 13만리라(한화 7만2천원),일반제품은 11만리라(6만1천여원).지난해 넥타이만으로 48억리라(한화 27억원)의 매상을 올렸다. 마리넬라 사장이 넥타이를 봉제하는 기술자들을 전문가로서 극진히 대우하는 것도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는데 일조한다.그는 매장에서 100m쯤 떨어진 6평 정도의 좁고 허름한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에 대해 깍듯이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그들이 가진 전문기술을 존중한다는 냄새가 짙게 배어나온다.공장에서 50년간 일하다 이제는 은퇴한 루시아 지라나노 할머니(70)는 『사장님은 우리를 스승으로 모신다』고 말했다.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는 모두 7명으로 취재진이 찾았을때 손으로 일일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기술자를 “선생님” 호칭 마리넬라가 세계정상급 인사들이 찾는 넥타이가 되자 주변에서는 지점개설 등 사업확장을 권고하기도 했다.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자국에 가게를 한 개만이라도 열어달라고 요청했지만 마리넬라 사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또 약삭빠른 일부 해외기업들은 마리넬라의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브랜드만이라도 팔 것을 제안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마리넬라 사장은 『지난해 멕시코의 한 석유회사가 1천5백억리라(한화 8백40억원)에 상표를 사겠다고 제안했으나 정중히 거절했다』면서 『이같은 제의가 수도 없이 들어와 거절하느라고 애를 먹는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제품을 광고한 적이 없다.손님들이 넥타이를 매보고 제품의 우수성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 명성이 알려졌다.G7 정상들이 이곳을 집단으로 방문한 것도 회담기간중 마리넬라가 화제에 올라 자연스레 찾은 것이었다고 한다. 82년째 넥타이만을 만들어온 마리넬라가의 사람들.그들의 억척스런 고집과 열정은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이란 물음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마리넬라」 마우리치오 사장 인터뷰/“세계 어느곳서 주문해도 1주일이내 배달합니다”/고객에 최대봉사는 최고품질이죠/2개이상 주문땐 배달료 안받아요 『세계 어느 곳이라도 주문하면 1주일내에 배달합니다』마우리치오 마리넬라 사장은 이같이 말하면서 손님에게 최대한 봉사하는 것이 바로 고객관리라고 말했다. ­겉보기에 큰 힘들이지 않고 돈버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손님에게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매장은 하루 8시간 밖에 열지 않지만 나에게는 자유시간이 없다.아침 9시에 개장하고 있지만 나는 그날 팔 물건들의 정리등을 위해 종업원들 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한다.또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다 보면 언제나 밤늦게 퇴근한다.근무중이라도 틈틈이 단골고객들에게 전화해 그들을 관리한다. ­넥타이 사업은 언제부터 했나.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8세 때부터 이곳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와 얘기도하고 놀기도 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다.그 때부터 시작했다고 보면 벌써 30년이 넘은 셈이다(웃음). ­매장안에는 항상 손님들이 많은가.지금도 찾아온 손님이 넘쳐 인터뷰에 지장을 받을 정도인데. ▲매장이 작다보니 늘 손님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띠고 있다.나는 이런 분위기가 좋다.그러나 평소에는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는 아니다.­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할 때도 있는가. ▲그렇다.특히 크리스마스를 20일 정도 남겨놓고 성탄절까지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매장 밖으로 늘어선 줄이 500m나 된다.선물을 넥타이로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1년에 20일 안팎인 이 기간중에는 넥타이 생산량을 늘려 하루최대 300개까지 생산한다.물론 이 기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120개만을 생산한다. ­넥타이를 주문,배달받는데까지 걸리는 기간은. ▲세계 어떤 지역이라도 1주일 안에 전달해준다.2개 이상 주문하면 배달료를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 음반 유통업체 차려 수백억 착취/아가동산 수사 이모저모

    ◎금고서 현금 7억여원·미화 2만달러 나와/교주 김씨 침실 초호화 장식… “아방궁 방불” ○…속칭 「아가교」의 본거지인 이천시 대월면 대대2리 신나라 아가동산은 10만여평이 넘는 부지에 첨단 전자동 유리온실 11개 동과 숙소 2개 동,음반 피켓공장·죽염공장·축사를 비롯,잔디운동장과 자연석 등으로 꾸며져 있다. 토마토와 포도 등 채소·과일류를 키우는 첨단전자동 유리온실은 35억3천여만원을 들여 94년말 완공. ○…과수일을 한다는 이모씨(63·여)는 『이곳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공동생산과 구입·소비를 원칙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일부 이탈자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헛소문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 이씨는 『공동생산으로 얻어지는 이익은 수배된 교주 김기순씨가 관리했다』며 『통장이 있지만 이를 확인할 생각도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고 주장. 「아가교」라는 이름은 아이들같이 천진난만하게 살자는 취지에서 지어졌으며 교주 김씨도 신도들이 자기를 「아가야」라고 호칭해 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신관 숙소 오른쪽에자리잡은 교주 김씨의 방은 방송실을 겸한 10여평짜리 침실과 목욕탕,옷방 등 3개 방으로 꾸며져 있으며 침실에는 18자짜리 초대형 자개장과 문갑·화장대를 비롯,원목식탁이 방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또 침실에는 일제 45인치 TV와 외제 오디오시스템를 비롯,원목과 진흙 등으로 만든 2개의 침대와 옥으로 보이는 자연석 수십개가 쌓여있기도. 또 목욕탕은 대형 욕조와 적외선사우나로 돼있고 옷방에는 야외복 20여벌이 들어 있었으며,대형 냉장고에는 건강식품이 가득.진열장에는 김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왕관이 들어있어 눈길. ○…이날 검찰의 현장조사에는 지난 87년 살해 암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최모군(당시 7세)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출연. 지난 94년 아가동산을 탈출했다는 유모씨(20·회사원)는 『최군이 용변을 가리지 못하자 여자 5∼6명이 최군을 축사로 끌고가 몽둥이로 집단 구타했으며 며칠뒤 온몸이 피멍투성이인 최군을 또다시 때린뒤 최군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죽염공장에서 대나무에 소금을넣는 일을 했고,고교진학도 책임자들이 지정해주는 실업계고교로 무조건 진학해야 했다』고 주장.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255의49 레코드유통업체 (주)신나라유통 직원들은 이날 낮12시쯤 기자들이 들이닥치자 당황하는 표정으로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른다』며 취재진과의 접촉을 회피. ○…채정석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은 『동기변호사가 찾아와 아가동산 피해자들의 실상을 말해 내사를 하던중 살인 및 사체매장에 대한 확인한 증인을 확보함에 따라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게 됐다』고 소개.
  • 재향군인회 세미나/이춘근·최창규 박사 주제발표

    ◎“6·25는 자유수호전쟁”/헌법전문에 명문화해야 대한민국재향군인회(회장 장태완)는 3일 하오 서울 잠실 향군회관에서 「범국민 호국정신선양 세미나」를 갖고 6·25전쟁의 호칭통일과 6·25 자유수호의 호국정신을 헌법전문에 반영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춘근 박사(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는 「한국 국방사에 나타난 호국정신의 발전적 재조명」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6·25전쟁은 북한 및 국제공산주의라는 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에 「6·25자유수호전쟁」으로 지칭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어 최창규 박사(국가상징자문위원장)도 자유수호와 호국정신의 민족사적 정통성」이라는 주제발표에서 『3·1정신과 4·19정신이 헌법전문에 명시되었듯이 6·25자유수호 전쟁의 호국정신도 헌법전문에 마땅히 명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주제발표 내용을 간추려본다. ◇이춘근 박사=한국전쟁의 의미는 우선 호국전쟁이었으며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정통성을 보유한 국가를 수호하는 전쟁이었다.과거의전쟁이 외적의 침입에 대항,국가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한국전쟁은 외적(소련·중공)의 지원을 받은 내부 반란자(북한정권)에 의한 대한민국 절멸의도에 대항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두번째로 한국전쟁은 민족사에 나타난 전쟁들처럼 역사가 아니라 현실이다.이 전쟁을 체험한 세대들이 아직 이 나라 사회의 원로로 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셋째로 한국전쟁은 인구의 10%가량 사상자를 냈을 만큼 근대 이후의 세계 7대 전쟁이었으며 민족간 싸움을 일으켰던 집단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엄중한 것인가를 일깨우는 경험을 남겼다. 이같은 한국전쟁의 교훈을 되살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6·25사변 또는 동란,외국인의 시각에서 가치중립적인 한국전쟁에 대한 호칭통일이 필요하다.한국적인 관점에서 보아 한국전쟁은 「자유수호전쟁」이 된다.공산독재 세력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전쟁이었기 때문이다.사멸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이 호국되었고 민족사의 정통성이 수호된 전쟁이기 때문이다.6·25자유수호전쟁은 북한이 말하는 민족해방전쟁에 대비하여 한국전쟁을 지칭하기기에 적합한 이름이다. ◇최창규 박사=4강이라는 오늘의 이중 양극의 세계사 속에서 그 세계성을 안고 한국사 안에서 치른 의전이 곧 6·25전쟁이었다.분단이라는 932번째 국난 속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사적 핵으로 볼 수 있다.세계성으로는 국난이었고 대내적으로는 국란이었다.따라서 그 의미와 좌표가 민족사적으로 정립될 때 민족사의 정통성과 법통성은 새로운 기반을 얻게 된다.그것이 바로 자유수호전쟁으로서 6·25의 호국정신이 갖는 민족사적 정통성의 기반이다. 6·25전쟁같은 동족상잔 앞에 자유수호가 승리해야만 이 민족사 위에는 의병도 살아나고 정통성도 함께 살아난다.그 민족사적 실질의 현장이 바로 대한민국의 법통성을 국시로 밝히고 있는 헌법전문의 명문화이다.우리의 헌법전문 속에 당당히 6·25 자유수호전쟁의 호국정신이 3·1운동이나 4·19정신 처럼 국시의 내용으로 명시되어야만 한다.
  • 하얼빈과 안중근(송화강 5천리:10)

    ◎「그날의 총성」 기념사업 활발/“만세의 의인” 추모공연·장학재단 등 설립/「연구회」 주축 의거현장 성역화·기념관 “시동”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시는 인구 3백91만1천명을 포용한 중국 8대 도시의 하나다.100년전만 해도 송화강가의 작은 어촌에 불과했다.그러다 1896년 러시아가 동북철도 부설권을 얻어 동청철도 중심지로 만들면서 도시화가 이루어졌다.하얼빈이라는 도시 이름은 1898년에 가서 얻었는데,하얼빈 지명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하나가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발음과 비슷하게 달아 하얼빈이 되었다는 것이다.그러나 하얼빈시 정치협상회의가 여러 해를 두고 조사한 바를 따르면 여진족때의 어촌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되어있다.여진족 어촌 시절에 호칭되었던 이름 아라진(아늑금)이 하라빈이라는 변음으로 번역되었다가 하얼빈으로 다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하얼빈은 1899년에 발행한 「흑룡강여지도」에 처음 올랐다. 여진어의 아라진은 명예,영예,영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그토록 좋은 뜻을 가졌음에도 불구,하얼빈은 반세기동안이나 외세의 말발굽에 짓밟혔다.1840년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의 청나라는 열강의 핍박을 받았다.그래서 러시아는 동청철도 부설권을 얻었다.그러나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가 차지한 철도부설권을 빼앗아 손아귀에 넣었다.동북아시아 침략의 신호이기도 했다. ○어촌마을이 철도 중심지로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09년 10월26일 상오9시 일본 추밀원의장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가 하얼빈 기차 정거장에 내렸다.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던 안중근의 브로닝 권총이 불을 뿜어냈다.쌀쌀한 대륙의 아침 공기를 뒤흔드는 총소리와 함께 이토는 쓰러지고 말았다.자신의 운명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하얼빈 역두에 내린 이토를 쓰러뜨리고 만 안중근.그는 민족이 추앙하는 의인이 되었다. 하얼빈을 찾을 때마다 그랬듯이 길림을 떠나 열차가 홈에 닿고나서 흐르는 여객인파를 부러 피했다.이토가 총에 맞고 쓰러진 자리에 서보기 위함이었는데,만감이 교차했다.87년전 그날도 지나가 버리고 이제 겨울이 찾아들었따.의사가 외쳐댔던 『대한독립만세!』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우리 민족은 물론 타민족들까지도 추앙해 마지않았던 안중근이야말로 절세의 의인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는 항일운동의 서막을 열어놓았다.당시 천진 남개중학에서 공부를 했던 등영초는 안의사의 스토리를 무대에 올렸다.그녀는 주은래의 부인이 되었다.등영초 이후 꼭 85년이 되던 1995년에는 가극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그 가극 공연은 하얼빈시 문화국장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문화국장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는 길에 만난 조선동포들이 안중근 의사를 너무 흠모하는 것을 보고 감동한 나머지 공연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얼빈공업대학에서는 안중근장학금을 설립했다.흑룡강성 과학기술자문센터 주임을 맡은 김성배 교수(62)는 필생의 사업으로 안중근연구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조선족기술개발센터와 국외사업까지 담당해온 그는 강원도 양양 태생으로,독립운동 가문에서 자랐다.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란 탓도 있겠지만,그가 안중근연구회를설립한데는 다른 사연이 내포되었다.그는 연구회 설립동기를 이렇게 털어놓았다. 『1980년 교환교수로 일본에 가서 2년을 머물다 돌아와서 나름대로 여러가지 일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성에서 과학기술위원회 정보처장 자리를 맡겨 와서 조선족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댔습니다.그래서 조선족 교수 20명을 모아 흑룡강성 조선족경제기술연합회를 만들었습니다.성 정부에서도 20만원의 자금을 대주고 문화궁 청사의 일부를 사무실로 내주었지요.그런데 돈이 좀 들어오자 내분이 생겼습니다.이래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듭디다.그 무렵 안중근 의사를 다시 생각하고 안중근 의사의 희생정신으로 민족사회를 재건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반세기 외세침략에 시달려 그렇다고 곧바로 안중근연구회가 생겨난 것은 아니다.중국의 정치적 현실 때문에 오랫동안 먼 길을 우회하여 1992년 3월9일에 가서 설립되었다. 중국 정책을 무시한 해외의 거동으로 시간을 허비했지만,의사의 거사날과 순국날만큼은 잊지 않고 기념사업을 펴왔다.학술회의와 연구도서출판을 해온 안중근연구회는 본격적인 기념사업 발판을 이제야 만들었다.웨이맥스전자회사는 하얼빈시에 가지고 있는 땅 5만㎡를 기념관 건립부지로 내놓았다.하얼빈시정부는 5층으로 설계된 기념관건립을 비준했다. 건물이 완공되면 1층은 안중근의사기념관,2층은 연구회사무실 및 세미나장으로 사용하고 3층은 조선족기업연합회 등 14개 단체가 입주하기로 되어 있다. 안중근연구회는 유명한 복건성 옥돌을 들여와 「안중근의사 의거현장」이라는 글씨를 새겨두었다.1.3m나 되는 이 기념비를 의거현장 플랫폼에 묻고,땅과 수평이 되게 두꺼운 판유리를 올릴 계획이다.그리고 의거 전날밤을 보낸 김성백의 집자리와 이토가 도착하기를 일각여삼추로 기다렸던 역구내 카페 자리에 표지판을 세우기로 했다.카페 자리는 지금 1등 대합실로 되어 있다.
  • 김정일/9월이후 발걸음 빨라졌다

    ◎군부대·발전소 건설현장 등 잇따라 방문/내년 권력승계 앞두고 「민심 달래기」 목적 북한 최고실권자인 김정일의 나들이가 요즈음 부쩍 많아졌다.잠수함 무장공비침투가 발각된 지난 9월중순이후 최근까지 무려 10차례에 이른다.참석하는 행사도 발전소건설현장 시찰,군부대 방문,예술단공연관람 등 다양하다. 최근들어 많아진 김정일의 공식활동을 분류해보면 군부대 방문 및 발전소건설현장시찰에 역점이 두어지고 있다.김정일은 올들어 26차례나 군관련행사에 참석했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3차례는 군부대를 방문했다.최근에 있었던 10차례의 나들이에서도 3차에 걸쳐 군부대를 찾았다.이와같은 군부대의 잦은 방문은 권력기반을 다지지 위한 이른바 군심달래기에 1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최근 김정일의 군부대방문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군하부조직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장병들과 마주앉아 사업과 군생활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야전식사」도 같이함으로써 사병들의 사기진작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이를 두고 북한 언론매체들은 『최고사령관의 전사들인 인민군장병들의 전투적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높다』고 선전하고 있다.김이 이처럼 군의 하부조직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식량과 보급품 부족,호된 군사훈련 등으로 빚어지고 있는 하층부의 동요와 일탈을 막고 자신에 대한 절대충성심을 심기 위한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발전소건설현장을 찾는 발걸음도 많아지고 있다.지난 6월10일 금강산발전소,6월24일 영원발전소건설현장을 방문한 이래 9월15일엔 두번째로 금강산발전소건설현장을 찾았다.지난달 28일엔 월비산발전소건설현장을 방문,건설공사를 독려했다.그런가 하면 발전소건설에 참여한 군인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등 건설공사에 투입되고 있는 군인들의 사기진작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김정일은 또 자기가 먼저 발전소건설현장을 시찰한 뒤 당정 고위간부들을 집단으로 참관시키고 있다.김이 이처럼 발전소건설의 독려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북한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는 에너지난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일의 최근 나들이에서 주목을 끄는 것은 매제인 장성택이 김정일을 수행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김정일의 동생이자 당 정책검열부장인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김정일의 핵심실세로 알려지고 있다.장이 김정일을 공식수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최근 잦아진 김정일의 군부대·발전소건설현장 시찰과 장성택의 김정일 수행을 내년 7월전후로 예상되고 있는 권력의 공식승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것으로 보고있다.이는 또 최근의 김정일에 대한 호칭변화와도 무관치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최근 북한매체들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현지지도를 계승했다고 강조하면서 김정일을 「두분의 수령」,「수령 그대로인 김정일」,「현시대의 위대한 수령」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 5·18 항소심 이모저모

    ◎변호인 “최 전 대통령 꼭 구인할 필요없다”/이 변호사 “권정달이가…” 수차례 사용 제지 28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7차 공판에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에 대한 구인장 발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으나 재판부는 재소환장을 발부,다시 한번 최 전 대통령의 자진 출두를 종용했다. ○…재판장인 권성 부장판사는 이날 『최 전 대통령이 법정에 나오지 않겠다는 사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말로 재소환장 발부의 이유를 강조. 하지만 최 전 대통령이 「증언 불가」의 자세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따라서 다음달 4일 9차공판에서 재판부가 최전대통령의 강제소환을 명령하는 구인장을 발부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최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출석시키는데 적극적이었던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날 약속이라도 한 듯 『최 전 대통령을 꼭 구인할 필요성은 없다』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해 눈길. 전상석 변호사가 『전직 대통령 3명을 동시에 법정에 세우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시하자 김상희부장검사도 『소환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황영시 피고인의 정영일 변호사는 『강제구인까지는 바라지 않으나 가장 중요한 증인인 만큼 한번 더 소환장을 발부해 달라』고 요청. ○…검찰과 변호인측은 최 전 대통령의 증언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손해볼 것이 없다」며 서로 엇갈린 주장을 펴는 등 신경전. 변호인측이 『지금까지의 공판과정을 통해 최 전 대통령이 법률의 범위 안에서 정당하게 국정을 수행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한 데 대해 검찰은 『변호인의 논리와 같은 맥락에서 공소사실 유지에 최전대통령의 증언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대응. ○…재판부는 전두환 피고인의 변호인인 이양우 변호사가 정도영 당시 보안사 보안처장에 대한 신문에서 『권정달이가…』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하자 『제3자를 비하하는 듯한 호칭을 피해달라』고 제지한 뒤 속기사에게 용어를 고쳐 쓰라고 지시. 김상희 부장검사도 지난 1월 서울시내 모호텔로 권씨를 불러 조사한데 대해 변호인이 『검찰이 한가롭게…』라는 표현을 쓰며 비난하자 『의도적인 표현이니 정정해 달라』고 이의를 제기. ○…정도영씨는 검찰이 유력한 증거로 삼았던 「5공전사」를 『미완성 책자』라고 지적하고 사료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주장.5공전사의 총편찬 책임자였던 정씨는 『신군부측 인사들이 각자 수집한 정보를 취합한 것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료』라고 평가절하.〈박은호 기자〉 ◎법정소란 첫즉심 회부 ○…이날 하오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되는 도중 방청객 이익형씨(38)가 『변호인은 도도히 흐르는 역사에 반하는 변호를 하고 있다』고 법정 소란을 펴12·12 사건 재판 이후 처음으로 재판부에 의해 즉결심판에 회부.
  • 「12·12 5·18 항소심」 이모저모

    ◎증인들 검진술 상당부분 번복/방청객 격렬 항의… 공판 중단소동 14일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두번째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5·18사건과 관련한 증인들을 상대로 피고인들의 무죄를 주장하며 일제히 파상공세를 편 반면,검찰은 증인들이 검찰에서의 진술내용을 상당부분 번복하자 다소 곤혹스러워했다. 변호인단이 「발포명령은 없었고 시위대가 먼저 발포했다」는 기조 아래 신문을 계속하자 일부 방청객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첫 공판 때와 마찬가지로 전두환 피고인은 비교적 밝은 표정으로 법정에 들어선 반면,신장병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태우피고인은 수척한 모습으로 입정.그러나 변호인단과 검찰측은 첫 공판 때의 다소 여유 있던 모습과는 달리 결전을 목전에 의식한 탓인지 긴장된 표정이 역력. 검찰과 변호인단은 증인 신문이 시작되면서부터 첨예한 신경전. 증인으로 나온 양대인씨(당시 11공수 여단참모장)를 신문하던 이양우 변호사가 정호용 피고인을 『당시 정호용 의원이…』라고 호칭하자 김상희부장검사가 이의를 제기,『앞으로는 피고인으로 불러달라』고 주문.이에 이변호사도 『실수로 나온 말이었다』고 반박했으나 김부장검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인 것 같다』고 응수해 한 차례 폭소. 또 검찰조사당시의 신문내용을 부인하는 양씨와 안부웅씨(당시 11공수여단 61대대장) 등에 대해 검찰이 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하자 석진강 변호사 등은 『진술조서를 량씨가 찬찬히 읽어볼 시간을 줘야 한다』고 요구하는 등 대립이 격화. 권성 재판장은 이에 『재판부가 모든 상황을 고려하겠다』며 진화에 나서기도.한편 권 재판장은 이례적으로 광주시내지도를 세워놓고 증인에게 구체적으로 세세히 질문을 던져 눈길. ○…이날 공판은 지금까지의 재판 가운데 방청객의 소란이 가장 심한 날로 꼽힐 듯. 장시간에 걸친 변호인들의 신문과정에서 증인들이 『시위현장에서의 과격진압이 불가피했다』『시위대가 먼저 발포한 것 같다』라고 답변하자 방청석 곳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오기 시작. 급기야는 이양우 변호사의 반대신문 도중 광주시민으로 보이는 40대남자가 갑자기 일어나 『최규하 전대통령을 강제구인하라』고 외쳐 공판이 잠시 중단. 결국 상오 공판 말미에 『모두가 거짓말이다』『이런 재판 해서 뭐 하나』라는 고함과 함께 일부 방청객이 격렬히 항의하는 등 10여분간 소란.〈김상연 기자〉
  • 기업별 교육 프로그램(T자형 인재를 찾아라:6)

    ◎“변화에 탄력 대처” 카멜레온형 강조/현대­7가지 인재 모습/대우­가상기업 대응력/선경­자기 장단점 토론/쌍용­다문화 경영능력 『누워있는 돼지씨 그건 그렇지 않습니까』『기대 앉은 송아지씨의 말씀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어슬렁거리고 있는 호수씨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기로 할까요』 지난 6월 중앙개발은 2급이상 간부사원 246명을 대상으로 아주 독특한 형태의 세미나를 가졌다.누워있는 이도 있고,비스듬히 기대 앉기도 하고,서로 왔다갔다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호칭도 특별하다.직책이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돼지」 「송아지」 「호수」 「깡통」 등 상대의 별명을 부른다. 획일성에서 벗어난 형태의 중앙개발 세미나는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깊은 의미가 있다.모두가 부장급 이상 간부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폭넓고 깊이 있는 사고와 행동배양 차원에서 이루어진 세미나였다.변화에 대한 탄력성을 높이는 이른바 T자형 인재인 팔방미인 경영자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다.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실수는 있어도 변화를 즐기는」 사람을 키운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대그룹이 추구하는 「21세기에 요구되는 7가지 인재상」이란 게 있다.현대는 자율인 창조인 학습인 현장인 세계인 혁신인 인격인 등을 제시하고 있다.물론 학습인 현장인 세계인의 자질완성을 통해 자율인 창조인 혁신인 등의 성품을 완성한다는 게 주목적이다.변화에 대한 탄력성을 강조한 것이다. 대우그룹 인재양성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대우미시간 임원과정 정규과목에 컴퓨터,시뮬레이션교육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가상기업을 설정해 상상이 가능한 경영여건의 여러가지 변수를 다양한 형태로 대입한 뒤 이에 대처하는 프로그램이다. 선경그룹이 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임원육성제도인 EMD프로그램에 존경받는 퇴임 임원 및 저명학자 등을 카운셀러로 위촉하여 본인의 강·약점을 의논할 수 있는 모니터링 제도를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쌍용그룹이 차세대 경영인 육성프로그램을 다문화 경영에 대응하는 능력배양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도 변화에 대한 탄력성을 차세대경영의 요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기업인 GE의 사내 인재교육원인 GE유니버시티는 차세대지도자 양성과정에 아예 변화가속화과정을 두고 있다.스티븐 커 학장은 『앞으로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탄력성이 높은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중국인구는 세계인구의 25%지만 지구촌에 영향을 미치는 세계지도자는 0.01%도 배출하지 못한 반면 유태인은 지구촌인구의 0.5%도 안되지만 세계 지도자중에 20%가 넘는다는 유엔보고서는 인재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있다.〈김병헌 기자〉
  • 행정위/김덕룡 장관·의원 두 역할(국감현장)

    장관과 국회의원.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신한국당 국회의원인 김덕룡 정무1장관처럼 이 두 직함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는 사람은 아마 드물 듯하다. 김장관은 8일 세종로 종합청사에서 있은 국회 행정위의 정무1장관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기관장으로 답변대에 섰다. 바로 전날밤까지 계룡대에서 열린 육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국방정책의 난맥상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국방위위원의 일원이던 그였다. 김장관과 김의원의 차이.그것은 「동료의원이…」에서 「의원님께서…」로 바뀐 호칭에서부터 분명했다. 김장관은 이날 여느 기관장처럼 인사말에서부터 줄곧 의원에 대한 극존칭어를 썼다. 반면 질문에 나선 의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김장관을 단순한 기관장이상으로 대우하는 흔적이 역력했다. 질의에 들어가자 유재건 의원(국민회의)은 김장관에게 『연일 국정감사에 고생이 많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감사준비만 하면되는데,장관은 상임위에 나가 질의도 하고 이처럼 답변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지 않으냐』고 김장관의 어려움을 위로했다. 감사의 「강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정무1장관실에 특별한 현안이 없는 탓도 있지만 의원의 질의시간도 어느 때보다 짧았다. 몇몇 의원은 그가 이른바 여권의 대권주자 가운데 한사람임을 의식한 듯 「질의」라기보다는 대권에 관한 의견피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장관의 답변이 끝나자 김인곤 위원장은 『보충질의가 없지요』라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산회를 선포했다.〈서동철 기자〉
  • 서울압송 이광수 신문 본격화

    ◎안기부·기무사 등 5개 기관 합동으로/침투공비 숫자·무장정도 파악에 초점 생포된 무장공비 이광수(31·인민무력부 정찰국 상위)의 신병이 22일 밤 서울로 압송됨에 따라 대북 정보 관계기관의 합동조사가 본격화됐다. 이광수 같은 무장공비나 간첩은 물론 북에서 귀순자가 오면 신문은 안기부와 국군기무사,국군정보사,국방부 정보본부,경찰 등 5개 관계기관이 합동으로 하게 된다. 이광수 같은 특수공작원의 경우 각 기관에서 5∼6명 이상이 신문에 참여,분야별로 진술의 내용을 수집하고 진위여부를 가리는 작업을 하게 된다.합동 신문의 경우 업무의 연속성이나 대공 업무의 전문성을 고려,대부분 동일인이 신문에 참가한다. 신문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보통 1∼2개월,진술이 오락가락 한다거나 수시로 번복하는 등 진술내용에 의심이 많이 가면 2∼3개월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광수에 대한 신문은 공비의 소탕작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전체 숫자와 침투경로,무장의 정도 등을 파악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집중 신문이 이루어지고 있다.이가처음 무장공비 숫자에 대해 첫날 20명이라고 했다가 다음날 25명으로 바꾼 것 등도 최초 진술의 중요성에 비춰 공비의 규모와 무장을 가장 먼저 파악,작전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그밖의 정확한 임무가 알려지지 않은 잠수함 부대의 편제나 인민무력부 해상처 등의 임무 등에 대해서는 이번 작전이 종료되는 대로 보다 정밀한 신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는 생포직후 수사관들이 「김일성」을 호칭없이 부르자 『김일성장군으로 부르라』고 하는 등 처음에는 조사관에 적대적이고 비협조적이었다가 광어회에 소주도 권하는 등 강온 양면작전으로 신문을 벌이자 점차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보이면서 잔당 투항방송에 쓰일 「육성녹음」에도 응하는 등 수사에 어느 정도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전 캄보디아 주재 대사 송호경(북의 사람)

    ◎현재 당중앙위부부장에 재직 지난 4월 다나카 요시미(전중의삼)의 위폐사건 책임을 물어 소환된 것으로 알려진 전 캄보디아주재 대사 송호경이 현재 당중앙위 부부장에 재직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중앙방송은 최근 이탈리아 국제관계연구소 장 카를로 엘리아 발로리 사무총장이 방북한 사실을 전하는 가운데 공항에서 영접한 송호경을 당중앙위 부부장으로 호칭,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송 호경은 김용순이 위원장으로,이종혁과 전금철이 부위원장으로 있는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부위원장 직책도 겸직하고 있는 것으로 중앙방송은 전했다. 송호경은 지난해 5월 주 캄보디아대사로 부임했으나 북한대사관 직원들이 일본 적군파 대원 출신 다나카 요시미의 미위조달러 유통사건에 관련된데 대한 문책으로 부임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지난 4월 경질됐다. 그러나 문책성 소환에도 불구하고 당부부장 직책을 비롯,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에까지 기용됨으로써 대미관계개선 문제를 주도해 왔던 송호경이 다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게 되는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송호경은 40년생으로 주유고슬라비아대사,당중앙위 국제부 부부장,외교부 부부장,군축 및 평화연구소소장등을 지냈으며 지난 94년 6월 카터 전 미국대통령 방북때는 의전을 도맡아 하는 등 미국인사들의 방북시에는 빠짐없이 참여했다.
  • 박길연 전 유엔주재대사 외교부 부부장으로 재직(북의 사람)

    85년부터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대사로 활동하다가 지난 5월 평양으로 소환돼 한동안 활동이 눈에 띄지 않던 박길연이 현재 외교부 부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북한 관영 중앙통신은 리비아 혁명 27주(9월1일)를 맞아 평양주재 리비아 임시대리대사 라마단 엘라우비가 지난 3일 저녁 연회를 마련한 소식을 보도하면서 연회에 참석한 박길연을 외교부 부부장으로 호칭,그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중앙통신은 이날 연회에 박길연 외에 최고인민회의의장 양형섭,정무원 보건부장 김수학,당중앙위 부부장 최진수,군 중장 박승원 등 간부들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박길연은 43년 자강도 출생으로 60∼70년대 버마·싱가포르 등지에서 외교관생활을 했으며 지난 83년11월 외교부 부부장을 거쳐 85년부터 한시해(현조평통서기국장)의 후임으로 유엔주재 대표를 맡았었다. 박길연은 앞으로 미국에 북한 외교대표부가 개설될 경우 초대대사로 유력시되고 있다.
  • 우리민족 신석기유적 단·묘·총으로 구성

    ◎서울대 한·중 학술교류팀 현지 확인/사람크기 여신상 얼굴·각종토기 등 출토 한민족의 뿌리를 밝힐 수 있는 중국의 신석기유적이 우리 학자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되었다.이 유적은 중국 요령성 능원현과 건평현에 걸쳐있는 우하량지역 여신묘와 돌무지무덤(적석총),제단. 한·중 학술교류계획에 따라 최근 중국을 방문한 서울대 고고학과 임효재교수와 최몽룡 교수,국사학과 최병헌 교수 일행에 공개한 이 유적은 우리 학계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유적은 우리 민족이 최초로 형성되면서 근거지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는 대릉하유역 동쪽에 자리잡았다.과학적 연대측정에 의해 지금으로부터 5천5백년전 유적으로 밝혀졌다.여신묘에서는 사람 실물크기의 여신상이 발굴되었다.길이 22.5㎝에 이르는 여신상의 얼굴은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했는데,눈망울은 옥을 박아 표현했다.오늘을 사는 사람들 모습과 다름이 없을 뿐아니라 현대조각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솜씨가 담겨있다. 여신상은 얼굴만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발굴되었다.이밖에 정교하게표현한 손과 젖가슴,엉덩이 등이 부분적으로 나왔다.그리고 여신상 말고도 사람 모양 테라코타 6개 몫에 해당하는 파편을 거두었다.출토유물가운데는 옥으로 만든 용을 비롯,토기,향로,채색토기 조각 따위가 들어있다.옥으로 만든 용머리는 돼지모양과 흡사한 유적 근처의 산세를 닮았다고 옥저용으로 호칭했다. 돌거무덤에서도 옥으로 만든 용이 여러 점 출토되었다.특히 옥저용이 길다란 형태로 변하여 용 모양을 제대로 갖춘 용형옥은 주목을 끌었다.그러니까 새끼용인 옥저용이 어미용인 용형옥으로 자라는 과정을 의도적으로 나타낸 옥제품인 것이다.또 다른 옥제품으로 쌍룡,물고기,새,거북모양의 노리개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돌무지무덤들은 어느 한쪽 마구리도 막힌 데가 없는 원통형의 채색토기를 주위에 빙 둘러박은 독특한 양식으로 축조되었다.제단은 동서 17.5m,남북 18.7m의 직사각형으로 쌓았다.신석기 유적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단,묘,총으로 이루어진 우하량지역 신석기유적은 문명의 빛이라는 것이 중국 고고학계의 견해다.특히 한반도와 가까운 발해만 연안인 요령성 영구현 금우산에서는 구석기유적도 발견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8만년전 사람의 머리뼈 등이 나온 금우산 구석기유적 발굴은 우하량신석기유적 발굴과 더불어 최근 중국 고고학의 2대 성과로 꼽히고 있다. 현지를 답사한 임교수는 『오늘날의 민족은 대개 신석기시대에 골격을 잡아나갔다』고 전제하면서 『우리 민족이 막연히 대릉하유역에 살았던 인류의 한 종족으로 추정해왔지만 중국 중원의 신석기 문화와 별개인 우하량신석기 유적을 통해 민족의 기원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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