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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리가 부러워”/공직자 골프해금론 고개

    “박세리가 잘 할 수록 속탄다” 요즘 고위 공무원들은 골프선수 박세리의 잇따른 우승 소식에 기쁘면서도 답답하다. 골프를 좋아하는 공무원들이 사정상 필드에는 나가지 못하지만 TV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골프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회식자리에서도 눈치보지 않고 박세리를 화두로 골프이야기의 꽃을 피운다. 더욱이 박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을 장식하고 金大中 대통령도 ‘영웅’이라고 호칭,골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 같아 ‘공직자 골프 해금령’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부풀기도 한다.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속앓이가 심하다. 공직자 골프자유화의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7월초부터 8월말까지 두달간 ‘공직자 기강확립’기간인 점을 들어 각 부처에서는 감사관실을 중심으로 골프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따라 몇주전 골프 약속을 해놓았던 공직자들도 부랴부랴 약속을 취소하고 있다. 다만 TV를 보며 골프 시늉만 내고 있는 형편이다. 관가에서는 새정부 출범 초기 金鍾泌 총리서리가 근무시간외 자기 돈으로 골프치는 것은 무방하다고 밝혀 골프얘기가 고개를 들었다가 경제난때문에 ‘자제’분위기로 돌아섰었다. 그러나 요즘 또다시 박세리열풍을 계기로 골프해금론이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고 한 공직자는 전했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2(정직한 역사 되찾기)

    ◎잘못된 법 적용/간첩누명 복역수 가족 비탄의 나날/새법 재정 재구금… 가정 풍비박산/정권안보차원 범죄 날조 처형/김 대통령 한때 사형선고 받아/고문조작으로 10여년째 구금도/심장병·신경질환 등 후유증 심각 비가 오는 가운데 초췌한 모습의 한 남자가 푸른 수의를 입고 탑골공원 정문 앞에 앉아 있다.그는 옆에 서 있는 건장한 사내에게 연신 무죄를 호소한다.그러나 전기스위치가 올려지고,그의 코에 물주전자의 물이 거듭 부어진다.그는 눈동자가 풀어진 채 옆의 사내가 불러주는 대로 횡설수설 따라 읊는다. “북한의 우순학이 제 처입니다”“저는 30년간 북한의 공작원이었습니다”. 탑골공원을 무대로 지난 9일(목요일) 상연된 연극의 한 장면이다.건장한 사내는 고문기술자 李根安이고 초췌한 남자는 16년째 간첩죄로 복역중인 咸珠明씨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는 매주 목요일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갖는다.이날 집회의 주제는 ‘고문조작 간첩사건 피해자의 석방’.이 자리에는 군사정권 아래서 고문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돼 복역하고있는 14명의 가족들과 민가협 회원 등 50여명이 참가해 새정부의 조속한 석방조치와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법과 동일시되는 것이 정의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악법 논란’은 지난 50년간 끊일 날이 없었다.대부분이 아는 것과 틀리게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을 한 적이 없다.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전하고자 한 것은 ‘법에 대한 사전 합의와 동의의 중요성’이었다. 지난 61년의 국가재건최고회의나 유신시절의 비상국무회의,80년의 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은 국회가 아닌 비정통적인 대의기구들이다.비상사태가 선포된 상태에서 이런 기구가 쏟아낸 법률들이 사전동의나 합의의 절차를 충실히 거쳤다고 하기는 어렵다.또한 본인의 자백 외에는 증거가 없는,고문에 의한 조작 논란이 많았던 사건들도 정당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71년 통일사회당 위원장 金哲씨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과 ‘북괴를 북한으로 불러야한다’는 발언을 해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됐다.당시 혐의는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인데 이조항은 국가보안법 7조에 그대로 편입됐다.그러나 남북한 동시가입은 수년후에 이뤄졌고,지금 북한을 공식적으로 북괴라고 호칭하는 사람이나 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돼왔다는 논란 속에 숱한 인권침해와 위헌시비를 일으켰다. 이종·최남규·김중종씨 등은 50∼60년대 남파돼 체포된 뒤 10여년간 복역을 마쳤으나,75년 사회안전법 제정으로 재구금됐다가 89년 이 법의 폐지로 다시 석방된 이들이다.출소후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다가 새 법이 제정돼 느닷없이 다시 갇히는 사람들의 황당함은 어떤 것일까. 정권안보차원에서의 범죄의 날조·조작은 법 자체 문제보다 더 심각했다. 李承晩 정권은 야당당수였던 曺奉岩 진보당위원장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고,金大中 대통령도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가지 받았었다. 고문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으로 수십년째 갇혀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함주명·이장형씨 처럼 고문기술자 李根安으로부터 취조를 받은 사람들도 있다.함씨는 남파된 뒤 즉시 자수했으나 30년후 재구금되어 20년형을 선고받고 16년째 복역중이다. 이씨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14년째 구금돼 있는 상태다. 함씨의 누나 함주옥씨(73)는 “너무 억울하다.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하루빨리 재심절차가 있기를 바란다”며 눈물을 떨구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74년 일본 유학때 조총련계 인사를 접촉한 것이 빌미가 돼 23년간 복역하다가 올 3월 특사때 나온 유정식씨. 南奎先 민가협 총무는 “현재 유씨는 심장병과 신경질환 등 극심한 고문후유증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또 “함께 나온 재일동포 손유형씨도 후두암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다가 현재 일본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고 전했다. ◎張俊河·白基玩씨 악법철폐 앞장/학생들 민주화투쟁 전위대 역할… 3·4·9차개헌 견인/80년대 후반 민가협 등 수백개 민주단체서 주도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1974년 1월에 발표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는 이렇게 시작된다.朴正熙 대통령은 당시 유신헌법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자 긴급조치를 발동했다.정권유지를 위한 강경책이었다.과거 군사정권은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헌법과 법을 고치고 그를 정권유지에 이용했다.그러나 온갖 탄압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법과 헌법에 대한 저항과 투쟁도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긴급조치가 발표되자 張俊河·白基玩씨 등은 ‘반유신 백만인서명운동’을 벌였다.그러나 서명운동은 심한 탄압을 받았다.두 사람은 구속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긴급조치의 첫 희생자가 된 것이다.당시 판결은 구형과 판결이 일치하는 이른바 ‘정찰제 판결’로,이후 많은 공안사건의 판결 기준이 됐다. 그러나 정의를 위한 투쟁은 계속됐다.그들은 민주화운동과 악법철폐운동에 앞장섰다. 일부 판·검사들의 ‘정의 투쟁’도 있었다.지난 64년 1차 인민혁명당사건에서 이용춘·장원찬·김병리검사는 중앙정보부에서 넘어온 공안사건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소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지난 96년 유원석 판사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박충렬·허인회씨에게 잇따라 무죄판결을 내려 공안사건에서도 ‘증거재판주의’원칙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그는 지난해 2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법복을 벗어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을 샀다. 그러나 누구보다 앞장서서 법의 타락에 맞서 싸운 주체는 학생들이었다.그들은 왜곡된 헌법과 법을 바로 잡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지난 60년 이루어진 3·4차 개헌과 87년 민주항쟁에 의해 얻어진 9차개헌도 사실 학생들이 이룬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들은 법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제도권에 몸담은 기성세대들이 하기 어려웠던 민주주의 투쟁을 위한 ‘전위대’ 역할도 담당했다. 8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역할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 수백여개에 달하는 민주시민단체와 비영리전문단체들이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인권운동사랑방 등이 대표적 단체. 민가협은 양심수 석방운동과 악법철폐운동을 꾸준히 펼치고 있으며,매주 목요일 주제를 정해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민변 또한 지난10여년 동안 文益煥 목사 방북사건,姜基勳씨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시국사건의 진상조사 및 변론을 맡았고,국가보안법 개정·폐지운동에도 앞장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하루소식’지를 통해 법 집행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례를 찾아내 공론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간첩 불고지혐의 무죄판결 받은 咸雲炅씨/“명예실추·정신적 피해 상상 초월 보안법 자의적 적용 빨리 고쳐야” “무죄판결은 받았지만 실추된 명예와 정신적·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보상받습니까.” 간첩을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咸雲炅씨(34).“재판중에는 모든 피고인이 무죄로 추정돼야 하나 이것이 지켜지지 않아 당하는 피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咸씨는 지난 95년 ‘남파간첩 김동식 사건’과 관련해 불고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지난 12일 열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그러나 무죄판결을 받을 때까지 겪은 정신적 고통과 이미지 실추로 인한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남북분단 상황에서 일단 간첩사건에 관련돼 체포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회생활에는 족쇄가 채워집니다.그 점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지요.” 지난 96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咸씨는 “선거를 불과 몇개월 앞두고 이 간첩사건에 관련돼 조사를 받았다.그리고 그것은 선거에 치명타를 가했다.”고 말했다. 咸씨는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나면 일부 언론사와 국방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고 피해보상도 요구할 방침이다.언론사에는 재판중인 사건임에도 자신을 완전히 범죄자로 기정사실화해 보도한 책임을,국방부에는 자신의 이름과 사진 등을 사병들의 정신교육 자료에 사용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수년전보다는 많이 완화돼 과거의 ‘막걸리 보안법’수준은 벗어났다는 점은 인정했다.그러나 여전히 독소조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친척까지도 신고해야하는 불고지죄는 반인륜적이라고 비판했다.유교적 윤리가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친척과 친구를 신고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이적단체 찬양고무죄나 이적표현물 제작 및 소지죄 등도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문제의 조항이라고 했다.그는 “새정부 들어서도 여전히 자의적 해석에 의해 보안법이 적용되고 있다”면서 수사기관에 시정을 촉구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첫 여성 법정경위 韓修永씨/“딱딱한 법정 부드럽게”

    “소송 관계인들을 친절히 안내해 편안한 법정 분위기를 유지하고 원활한 재판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법정내 질서 유지 업무를 담당하는 법정경위직에 사법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진출했다. 올해 24살인 韓修永씨. 법정경위는 때로 방청인들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법정내 소란을 제압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간주돼왔다. 실제 전국 법원의 법정경위 344명 가운데 여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韓씨는 그러나 지난 3월 9명을 뽑는 서울고등법원 경위서기보(9급)채용시험에서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했다. 95년 고려대 병설 보건전문대를 졸업한 韓씨는 한 때 일반 기업에 다녔으나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꾸준히 공부를 계속해왔다고. 과거 정리(廷吏)로 불렸던 법정경위직은 94년 7월 법원조직법의 개정으로 호칭이 바뀌었으며 법원 일반직 공무원으로 6급(경위 주사)까지 승진할 수 있다. 정년은 57세. 3일부터 행정사건 담당재판부(특별14부)에 배속돼 413호 법정에서 일하게 된 韓씨는 “재판보조라는 특수한 업무를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도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친절함으로 원활한 재판진행을 돕겠다는 다부진 포부를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韓씨의 근무로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법정의 분위기가 한결 온화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반응이 좋을 경우 여성 법정경위를 계속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대학의 軍紀/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미국에서는 어느 군대에서나 장교와 사병이 가까이 지내지 않는것을 불문율로 삼고있다. ‘친분이 지나치면 경멸’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른바 장교는 사병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병사들은 한결같이 상사를 따르고 존경한다. 또한 장교는 잡사역(雜使役)을 하지 않고 사병보다 좋은 숙소나 휴계실등을 사용할 수도 있다. 호칭도 상급자의 성이나 계급에다 반드시 ‘sir(님)’를 붙이고 파티나 모임에서는 상급자가 자리를 떠야만 하급자도 이석한다.상급자 자신도 계급을 과시하지 않고 계급에 상응하는 의무를 명심한다. ‘군기(軍紀)’란 이처럼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질서의 원칙을 지킨다. 다른 조직과는 달리 ‘전우애’로 뭉쳐졌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항이나 도전 대신 복종과 약속을 지킬 뿐이다. 인간사회에서도 상하간의 위계질서가 지켜졌을때 한 조직의 내부는 탄탄해지기 마련이다. 이른바 사회에서의 선후배관계는 바로 질서의 기본인 예의에서 비롯된다고 할수 있다. 최근 초등학생의 몸에다 문신을 새기고 담뱃불로 지지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생매장 처벌을 가한것은 선배로서 후배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지난봄 뉴질랜드에서 그곳에 유학중인 여학생들이 한국인 후배들을 학교인근의 공원으로 끌고가서 3시간동안 폭행협박한 사건 역시 선배로서 ‘군기’를 잡겠다는 것이었다. 이번엔 대학생들이 친목 축구대회 후 뒤풀이행사끝에 선후배간 시비가 붙자 ‘군기를 잡겠다’면서 후배들을 ‘줄빠따’로 때리고 여학생들도 바닥에다 머리를 박는 ‘원산폭격’ 기합을 가했다는 것이다. 만약 ‘친밀할수록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까이해서도 멀리해서도 안되는(不可近不可遠)’ 사무적인 관계에 불과할 것이다. 평생을 함께할 학교 선후배가 지극히 사무적인 사이가 된다면 인간관계는 삭막해질 것이다. 그러나 몽둥이로 다스린 우정은 강요일 뿐이다. 더구나 상대방의 자존심과 인격을 다치는 모멸의 군기는 이미 질서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캠퍼스가 야만의 집단으로 추락하는 것이나 아닐지 심히 우려를 금할수없다.
  • 인문학자의 외로운 몽상/최혜실 KAIST 교수·국문학(굄돌)

    연구실 밖으로 5월의 햇살과 신록이 눈부시다.쾌적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공간.이제는 친숙해진 이 공간이 7년전의 나에게는 무척 낯설었다.플래카드와 대자보가 나붙고 오가는 학생들로 붐비며 풍물소리,구호,노래소리로 활기찬 대학만을 경험한 나는 일년내내 조용하고 밤이 되면 건물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이 연구 중심 대학에 몹시 당황했었다. 내가 낯설어 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먼저 ‘박사님’이라는 호칭.‘선생님’이라며 스승과 제자의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는 인문학의 기풍 속에서 자란 나는 어떤 분야에 전문가라는 의미가 강한 이 호칭에도 당황했다.그리고 모든 것을 구체화하고 계량화하여 설명하는 방식,일년에 논문이 몇편이고 어떤 학술지에 게재된 사실이 점수로 구체화하여 그 사람을 평가한다.어느분야에 명성이 있고 평소 대인관계가 무난하여 제자들에게 존경받는다는 식의 평가가 점잖은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이 또한 새로운 것이었다.그리고 훨씬 투명한 언어습관.일종의 도제제도의 학문전수 방식에 익숙한 문과에비해 계약을 존중하는 때문인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훨씬 공개적이고 적극적이다. 처음에 나는 이 경향을 대상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거나 그것과 의사소통하려는 노력이전에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로서 사용하려는 ‘이성의 도구화’경향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이 방식은 적어도 지금 현재로는 산업과 기술 발달을 위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이라는 이해가 요즈음은 들게 되었다.왜냐하면 전문성,기술,정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자연과학과 응용과학의 이런 방식은 비단 전공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현 사회의 한 특징으로 일반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 현상을 보고 놀라고 그것을 이해하며 해석하려고 애쓰는 것이 한 인문학자의 외로운 몽상만은 아니지 않을까?
  • 발레리나 金純晶(이세기의 인물탐구:170)

    ◎‘동양적 발레’ 자신만의 이미지/타고난 연습벌레… 고난도 테크닉 모두 소화/안무하고 춤춘 ‘신화의 끝’ 발레팬 사로잡아 지난 해는 발레리나 金純晶에게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해였다. 87년 국립발레단 창단 25주년 기념으로 무대에 올렸던 ‘노틀담의 꼽추’를 10년만에 다시 춤춘 것과 그가 몸담고 있는 동덕여대에 무용과가 정식 출범한 것.거기다 제자들과 ‘공기의 정(精)’을 공연했고 그가 안무하고 춤춘 창작발레 ‘머물며’가 민속춤제전에서 안무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노틀담의 꼽추’는 표현영역의 확장과 무용수로서의 도약(跳躍)을 보여준 결정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이 무대에서 그는 에스메랄다의 야성과 순결한 여심을 생기발랄과 스며드는 슬픔으로 표현하여 관객을 감동시켰다. 그의 요염함은 이미 86년 ‘튜닉 팬터지’에서 발휘되기 시작하여 그가 춤추었던 우아한 ‘백조의 호수’와는 달리 클래식의 베일을 활짝 벗고 ‘깨끗하고 담백한 느낌과 탄탄한 춤집’을 각인시켰다. ○‘머물며’로 안무상 수상 또한 쌍꺼풀이없는 고전적인 눈매와 긴 팔다리는 ‘동양적 발레’라는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무리가 없었다.이후 ‘돈키호테’를 마지막으로 프리마의 지위와 호칭,주어진 공간에서는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철학과 사색을 쏟아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87년 발레단을 떠나 그는 자신만의 창작발레에 몰두하게 되었다.만약 그가 지금까지 대극장무대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의 변화된 김순정의 창작발레는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스타를 만들지 않는 국립발레단에서 명실공히 5년간의 프리마시대를 마감하고 이번엔 부군인 朴丙煥씨(외교통상부 근무)를 따라 발레의 본고장인 영국에 유학,런던 라반센터와 로열발레 아카데미에서 마치 춤추지못해 한이라도 된 듯이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렸고 몸을 회전시키는 필루에트와 푸에테,아티튀드와 바느질 스텝인 부레에 이르기까지 난이도가 높은 갖가지 테크닉들을 몸의 일부처럼 익혀나갔다. ○발레 본고장 런던 유학 그리고 2년만에 영국에서 돌아와서 선보인첫작품 ‘빛깔’은 ‘그의 모든 것이 그속에 다 들어있다’는평을 받을 수있었다.그때도 여전히 무용수로서 특출했던 프리마의 매력을 상실하지 않았고 격조와 힘과 꿈틀대는 생의 갈망이 춤속에 건재하고 있었다.백색 의상에 꽃을 들고 유년기의 환상을 다스리는 그의 빛깔은 거의 발레작품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으며 국립발레단의 클래식발레를 사랑하던 팬들은 더이상 김순정만의 순백의 감수성과 정결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안무하고 춤춘 작품중에서 ‘신화(神話)의 끝’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이다.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간주곡과 비제의 ‘카르멘’ 전주곡에 의존한 이 작품은 ‘강렬한 음악으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한 드라마틱한 분위기’로 젊은 발레팬들의 눈길을 일시에 사로잡았다. 맨발과 토슈의 대비,발끝에서 튕기는 힘의 배분은 ‘감정처리의 성숙함’과 ‘신성(神性)에서 벗어나려는 인간다운 갈망’을 보여주었고 결국은 신과의 대결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으로 겸허하게 마무리짓는 것이 특징이다.평론가 김경애는 ‘몸선의 지시언어(指示言語)’는 시종 아름다움을 동반하면서도 필요이상으로 덧칠하지 않고 사유와 성찰,자신의 기질탐구를 세세히 제시하기를 잊지않았다’고 평한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 창출 과연 정열적이고도 순발력있는 싱그러움으로 그는 젊은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끊기듯 이어지는 감정의 전이는 불협화음적인 파괴미(破壞美)마저 창조하는 가하면 억압속에서 자유롭고 싶은 의지를 스타의 카리스마로 온몸에 담아낸다.이 역시 뛰어난 기교없이는 불가능한 표현이며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의 일상적인 모습은 어느때보다 신선한 현대적 무대를 창출해낸다.이른바 성격을 연출하는 춤에서 고난도의 기교를 무기로 하는 고전발레에 이르기까지 전천후로 춤추는 김순정의 기량은 나이에 비해 이미 모든 것을 절차탁마(切磋琢磨)한 차원이라고 할수 있다. 그가 무용을 하게된 것은 어머니 김남숙씨가 딸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여 10살되던 해 남산어린이회관에 있던 부설 무용반에 데려가면서 부터다. 그곳에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를 배울수 있었고 고3때 이화여대가 주최하는 전국무용콩쿠르에서 최우수상,서울대 사대 체육과에 진학하면서 이대와 경희대로 이어지는 무용계의 인맥에서 다소 소외되는 감이었으나 피나는 연습으로 외로움을 달래면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것을 굳게 다짐했다’고 말한다.대학 3학년때 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신인무용콩쿠르에서 글라즈노프 작곡의 ‘사계’로 문공부장관상,다음해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하면서 교사자격증을 반납한채 지체하지않고 그는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별로 커보이지 않는 체구에 작고 야무진 얼굴,억척스럽다고나 할만큼 노력에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그는 화려한 세트나 기괴한 몇개의 동작만으로 창작성을 부르짖는 주변을 비웃기라도 하듯 ‘전신에서 땀이 배어나는 춤’으로 삶의 절규를 간절하게 춤추어 낸다.‘일상의 지루함으로부터,정의가 죽어버린 부당함으로부터,위선과 가증스러움이 포장된 이중인격이 판을 치는 속에서’ 오로지 탈출하기 위해 그의 온몸은 솟구쳐 오르는 열기로 무대에서 언제나 활활 타오르고 있다. ○자신의 단점 보완 극복 그런 중에도 끊임없이 자기를 지키고 남의 장점을 존중하며 자신의 단점을 보완,극복하기를 잊지 않는다.가족은 그의 예술을 이해하여 역사와 철학 등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부군과의 사이에 아들(재영·10) 하나.부친은 서울대 경영대 김원수 교수다. 긴 명상속에서 작품을 분석하고 기획하는 그는 디베르시티망과 트릭까지도 철저히 연구하는 학구파로서 내면에 깔린 심성을 건드려 김순정의 춤을 이룩하려는 야심에 차있다.그의 꿈은 러시아의 마야 풀리체스카야나 스승이던 이시다 다네오,불멸의 폰테인 마곳처럼 70세가 넘어서도,아니면 그 이상 무대에서 춤추는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은 것이다. □연보 ▲1960년 서울출생 ▲1978년 이대주최 전국학생무용콩쿠르 최우수특기상 ▲1979년 서울예고졸업 ▲1982년 신인무용콩쿠르 발레부문 특상 및 문공부장관상 ▲1983년 서울대사대 체육과졸업(임성남 박혜련 진수인 사사),동아무용콩쿠르 대상,국립발레단초청 ‘백조의 호수’및 ‘세헤라자데’출연 ▲1983­87년 국립발레단에서 ‘처용’‘배비장’‘춘향의사랑’‘고려 애가’외 ‘호두까기인형’‘카르멘 조곡’‘노틀담의 꼽추’등 주역 ▲1985­92년 충남대 한성대 숭의여전등 출강 ▲1987년 이대 교육대학원졸업 ▲1987­89년 영국 라반센터 및 R·A·D(로열 무용아카데미)연수 ▲1990­91년 국립발레단 주역 ▲1991­95년 청주대 동덕여대강사 1993­현재 한국발레연구회이사, 바탕 춤전 ‘빛깔’안무 출연 ▲1994년 개인발표회, 한일댄스 페스티벌 ‘일상의 꿈’안무·출연 ▲1995­현재 동덕여대무용과 교수 ▲1997년 국립발레단 ‘노틀담의 꼽추’,민족춤제전 ‘머물며’안무출연 올해의 안무가상(97년) ‘몽유(夢遊)’‘공주무덤’‘길위에서’‘풀피리의 춤’외 다수
  • 日皇서 天皇으로/朴 외교통상 “天皇” 호칭/전향적 對日정책 분석

    일황(日皇)에서 천황(天皇)으로? 朴定洙 외교통상부장관이 13일 외신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천황 방한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이에 일본 기자의 “천황을 공식호칭으로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고 “천황은 일본의 고유명사이므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정부가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일황’이라고 지칭했던 것과 달라 새정부의 전향적 대일(對日)정책의 일환인 것으로 보인다. 朴장관은 이후 이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자 “미국 원수를 프레지던트,독일 수상을 챈슬러,영국 여왕을 퀸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온 말”이라고 李浩鎭 대변인을 통해 해명했다.이에앞서 金大中 대통령도 일본신문과의 인터뷰 등에서 “천황을 초청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89년 일본이 재일한국인 지문날인작업을 벌이자 국내에서 반일감정이 거세짐에 따라 한국언론들은 ‘일왕(日王)’이라고 썼으며,정부는 ‘일황’을,사용해왔다.
  • 아호 부르기/이계황 전통문화연구회장(굄돌)

    몇년전 모처럼의 기차여행중 고향동창인 듯한 30대 중반의 10여명이 승차하자마자 준비하여온 맥주와 안주를 나누면서 “너도 먹어라”“이 자식 옛날엔 술깨나 처먹더니…”등 스스럼없이 튀어나오는 상스러운 말투를 해 객차내가 어수선하였었다.이는 우리 사회의 언어습관이나 예의범절의 한 면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할 때 갑자기 나라의 장래가 걱정되었다. 어느날 한 친구가 號(호)를 지어달라고 하면서 로터리클럽에서는 회원의 호칭을 아호로 부르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호의 연유는 이름이 내포한 뜻으로 몸을 닦고 귀중히 여겨,인격을 상징하는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호를 대신 사용한 것이다. 오늘날 대중들이 아호를 사용하는 것은 복고적이라거나 호를 폄하한다고 하는 이도 있으나,불교도의 법명이나 천주교의 영세명도 호와 그 의미가 유사하고,호를 사용하면 각자의 자존과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풍토가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된다.또한 현대사회는 대중사회이므로 아호는 일부 지식층이나 지도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삭막한 오늘날 동창생간이나 직장과 친교모임 등에서 아호를 서로 불러준다면 언어생활의 순화를 통한 격조높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고,예절바르고 품위있는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고려의 대문장가 李奎報(이규보)의 白雲居士 自號說(백운거사 자호설)은 아호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어 그 일부를 소개한다. 백운은 내가 사모하는 것일세.…한가이 떠서 산에도 머물지 않고 하늘에도 매이지 않으며 그 형적이 구애받은 바 없네.뭉게뭉게 퍼지는 것은 군자가 세상에 나가는 기상이요,유유히 걷히는 것은 高人(고인)이 세상을 은둔하는 기상이며,비를 만들어 가뭄을 구제하는 仁이요,오면 한군데 집착하지 않고 가면 미련을 남기지 않는 道이네…”
  • JP·TJ ‘의도된 만남’/자민련 의총 참석 애써 상호 예우

    【朴大出 기자】 15일 ‘자민련뱃지’들이 모였다.의원총회 형식을 빌었다.金鍾泌 총리서리도 참석했다.당소속 장관 6명도 함께 했다.具天書 총무가 신임인사를 겸해 자리를 만들었다.여의도 한 중국음식점에서 열렸다. 이날 주역은 명예총재인 金총리서리와 朴泰俊 총재였다.두 사람간에는 섭섭함과 불만이 교차하고 있다.이번 수도권 광역단체장 연합공천이 원인을 제공했다.이날 오찬은 이런 감정들을 털어버리려고 의도된 자리로 받아들여졌다. 두 사람도 이를 의식한 듯했다.서로를 예우하느라 애를 썼다.하지만 ‘가시’있는 말도 주저하지 않았다.묘한 신경전은 앙금을 완전히 씻어내지 못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金총리서리는 朴총재에게 힘을 실어주는 언급을 잊지 않았다.‘총재님’이란 호칭으로 예를 갖췄다.金총리서리는 “총재님을 중심으로 여러분이 잘 이겨내줘 마음으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나 중간중간 ‘속내’를 보였다.金총리서리는 “수도권 후보선정에 잡음이 있어 안타까웠다”고 지적했다.朴총재 자극을 피하려는 듯 “안타까운것만은 아닌 상황”이라는 토를 달기는 했다.그런 가운데서도 “힘을 보탤수 있는 위치에서 벗어나 안타깝다”고 소외감을 숨기지 않았다. 朴총재는 “이번에 이 사람이 포볼을 많이 내줬다”고 金총리서리의 반발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의견을 내야 할 때는 내지 않고 결정한 뒤에 이런 저런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직격탄을 쏘았다.金총리서리가 막바지 단계에서 제동을 건 데 대한 불만으로 해석됐다.
  • 朱鎔基 총리의 2인자 철학/베이징=鄭鍾錫(특파원 수첩)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7박8일 동안의 유럽방문을 마치고 7일 귀국했다.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하고 영국·프랑스를 공식방문한 주총리는 취임뒤 처음인 이번 해외나들이에서 그만의 독특한 개혁이미지 덕분에 서방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마치 이번 ASEM이 낳은 스타가 주총리인 것 같았다는 현지보도도 뒤따랐다. 하지만 주총리의 유럽행로를 돌이켜 보면 그는 중국을 대표한 주연배우이면서도 철저하게 인기를 외면하는 연기를 해왔다는 인상이다.서방세계는 흔히 동양적 신비주의의 모델을 중국에서 찾기를 좋아한다.이런 중국에 서방식 개혁프로그램을 도입,일대 국가개조를 꾀하는 주총리에게 그들이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평소 넘치는 자신감과 위트 넘치는 언변이 장기인 그는 유럽방문 중에도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답변,놀라운 친화력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인민복을 입은 딱딱한 중국지도자들의 이미지를 머리에 넣고 있는 서방인들로서는 주총리가 국제감각이 탁월하고,정치적 색채가 덜한 실용주의자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주총리도 이를 십분 활용,세일즈외교에 나섰다.가는 곳마다 “중국에 투자해 달라“며 정력적인 외자유치 활동을 벌였다. 주총리 자신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상당히 중압감을 느낀 것 같다.지난 달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의 취임 기자회견에서 진솔한 답변과 유머감각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던 것과는 달리,유럽에서는 예정됐던 기자회견 계획을 취소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일정을 줄이는 등 애써 언론을 기피하는 눈치였다.평소 ‘경제황제(Tzar)’나 ‘중국의 고르바초프’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보이는 그는 실패한 외국지도자와 비교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총리’나 ‘중국의 주룽지’로 불리기를 희망하는 것 같다. 그러나 주총리가 내심으로 깊이 생각하는 관점은 동양적인 ‘2인자 철학’인지도 모른다.장쩌민(江澤民) 주석 다음의 중국의 2인자로서 너무 튀거나 앞서나가는 것을 고려했다는 시각이다.주총리가 존경하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절대권력자 마오쩌뚱(毛澤東) 앞에서 평생 자신을 굽히며 살았던 역사를반추하는 것이다. 각본대로 주연연기는 하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조용히 국제무대에 데뷔하고 돌아온 셈이다.
  • 새 청와대 한달… 비서실 긴장감 팽팽

    ◎직원들 7시 출근 자정 퇴근… 격무의 연속/업무·처우에 대체로 만족… 정치안정 주문/취재 관행도 대변인 정례 브리핑 체제로 변화 김대중 대통령의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달.청와대 직원들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한다. ○언론보도·여론에 신경 50년만의 정권교체는 권력의 중심인 청와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수석비서관이 11명에서 6명으로,비서관이 50명에서 35명으로 줄어드는 등 비서실의 축소개편으로 아직 사무실과 인원 배치가 완전히 마무리 되지 않은 상황이다.그러나 김대통령이 업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챙기기 때문에 7시에 출근하는 청와대 직원들은 대부분 밤 12시가 넘어서야 퇴근이 가능하다.김대통령은 특히 언론보도와 여론을 중시하기 때문에 비서관들은 신문과 방송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보고를 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보좌하는 청와대 변신 471명에서 380명으로 줄어든 청와대 직원 가운데 새 정부 출범이후 새로 들어온 직원은 모두 139명.이 가운데 43명만이 경찰과 안기부의 신원조회를 통과해 정식 임명됐다.이 때문에 나머지 85명은 3월10일 월급날을 그냥 넘겨야 했다.청와대 총무비서관실은 다음달 10일 이전에는 신원조회를 모두 마쳐 이들에게도 첫 월급을 준다는 방침이지만,최근 안기부측의 업무처리가 늦어져 고민이라고 한다.‘북풍’의 여파가 행정적으로 청와대에까지 미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 직원들은 업무부담이나 처우에 불만을 갖지는 않는다.행정부에서 파견된 한 비서관은 “정치권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김종필 국무총리서리 인준이나 북풍 파문을 둘러싼 정치권의 혼란은 경제난을 극복하고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국민회의 출신의 비서관은 “정치권을 떼어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불만을 여과없이 토로했다. ○대통령 메시지 직접 전달 청와대가 ‘군림하는 청와대에서 보좌하는 청와대로’라는 명제를 내걸고 권위의식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지만,변화가 쉽지만은 않다.각하나 영부인 같은 존칭을 쓰지 말라고 당부했지만,정작 김대통령과 비서관들의 첫 간담회에서 당 출신 비서관이 “대통령께서…”라고 호칭한 것이 얘깃거리가 되기도 했다. 청와대는 언론관계와 관련,하나의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지금까지 출입기자가 비서실을 돌며 취재하던 관행을 바꿔 대변인이 매일 두차례 정례발표를 하고,각 수석들이 정기 브리핑하는 체제로 전환하려는 것이다.청와대측은 대통령의 메시지가 비공식 채널을 통해 간접 전달되던 관행을 깨고 가감없이 공개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김정일 장군’ 최고 호징(북한 이모저모)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을 ‘장군’으로 호칭하고 있는 것은 여러 호칭중 김정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호칭이기 때문이라고 조총련기관지 조선신보가 최근 보도.조선신보는 김정일 장군 호칭에 대해 “여러가지 관칭들을 초월하여 전인민적 사랑의 분출로 터져 나오는 언어 표현”이라면서 “이 세상에 장군처럼 감동깊은 호칭은 없다”고 강조. ◎협동농장에 예술선동대 ○…북한은 영농기를 앞두고 농업근로자들의 사기앙양책으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각지 협동농장에 기동예술선동대를 파견하고 있다.노동신문 최근호에 따르면 10명 내외로 구성된 기동예술선동대는 작업반을 찾아다니며 예술소품공연과 함께 농장원들과 같이 질통을 지고 흙을 져 나르고 있으며 휴식시간엔 예술선동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는 것.
  • 미 대통령 전용기 35년만에 퇴역

    【워싱턴 DPA 연합】 63년 존 F.케네디 대통령을 태우고 냉전의 전시장 베를린으로 갔던 최초의 에어 포스 원(미 대통령전용기) ‘SAM 26000’이 취역 35년만에 이달말 퇴역한다. 특수 항공 임무의 머리글자와 꼬리 고유번호를 따 ‘SAM 26000’으로 불린 보잉707 제트여객기는 곧 대통령이 탑승중일 때 사용되는 호출부호인 ‘에어 포스 원’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케네디와 함께 자유를 염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싣고 갔던 에어 포스 원 1세는 그러나 그해가 가기전 댈러스에서 암살된 케네디의 유해를 워싱턴으로 싣고 와야 하는 비애를 겪었다. 미국 역대 대통령 8명을 섬기는 동안 성공과 실패,기쁨과 절망을 목격했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비행기는 3월말 최후의 공식 임무를 마친후 오는 5월부터 오하이오주의 한 비행장에 영구전시될 예정이다.
  • 판사라고 밝히기 부끄러워…/의정부 지원 비리로 주위 시선 따가워

    ◎단골식당에 호칭붙이지 말도록 당부도 서울고등법원 K모 판사는 요즘 사람이 많은 곳에만 가면 주위를 의식하는 버릇이 생겼다.의정부 지원 판사들의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게 된 때문이다. 예전에는 지하철에서 먼저 내리는 동료들에게 “어이 김판사 잘 가”“이판사 내일 보세”라며 승객들에게 은근히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지만,요즘에는 ‘판사’라는 말이 쑥 들어가 버렸다.주위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볼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단골 식당이나 술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다.주인이 말끝마다 “판사님” 소리를 붙여주는 맛에 일부러 단골 집을 찾았지만,요즘은 행여 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끌까봐 호칭을 붙이지 말도록 당부했다. 가끔 택시로 출퇴근 하는 서울지방법원의 L모 판사도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전에는 법원으로 가자는 말에 택시 기사가 “혹시 판사님이세요”라고 물으면 저절로 어깨가 으쓱했었다.그러나 요즘은 존경스런 눈빛은 커녕 괜한 시비가 생길까봐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지법 K모 판사는 동창회나 친구 모임 등에 참석하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짖궂은 친구들이 “오늘 계산은 돈 많이 버는 자네가 하지”라며 놀리는게 농담같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전에는 겸손하려고 신분 노출을 삼갔지만 요즘에는 정말 판사라는 말을 꺼내기가 두려울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 호칭·높임말·낮춤말의 혼란 크다(박갑천 칼럼)

    외6촌(국민일보)·6촌동생(중앙일보·경향신문)·외5촌조카 (서울신문·조선일보·한국일보·한겨레신문)·5촌외조카(문화일보)·5촌조카(세계일보).좀 지났지만 성남시 서장열씨 일가족 피살사건 범인과 서씨와의 관계를 말하는 1월26일자 신문들 표현이다. 어떤게 옳은 관계인지 알수없다.그러나 그것보다도 그촌수의 호칭을 쓰지않은데 대해 맞갖잖게 보는 눈길도 있다.위보도에서 가장 많은 ‘외5촌조카’라면 외종질(혹은 외당질)인데 어째서 그걸 쓰지않느냐는 뜻.삼촌이네 외삼촌이네 하며 촌수로 부르는건 서삼촌 등 빛접지못한 축을 업신여기면서 쓴 표현이라는 생각도 있는 터여서 더욱 그렇다. 아주머니뻘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백모·재종숙모에서 고모·이모·외숙모…에 처숙모·처고모등 등.한데 북녘 일부지방에서는 그를 통틀어‘아주머니’로 불러버린다고 한다.일본에서도‘오바상’은 그모든 아주머니뻘을 포괄하는데 그같은 함실코 닮자는 거냐면서 삐죽거리는 사람도 있다.보도내용이 보여준 각종‘조카’도 마찬가지.조카(질)·종질·생질·이질·처질…등등으로 갈려있는 것인데 하나같이 조카라하면 되느냐는거다. 그뿐아니라 호칭의 차이도 문제다.가령 손위누이의 남편을 보자.매형·자형·자부·매부등이 있다.자가 언니고 매는 아우쪽이니까 자형·자부가 옳아보이지만 ‘매형’이라 부르는 곳도 적지않다.글자뜻으로만 보자면 매형은 이상하고 ‘매부’면 손아래누이의 남편같다.옛날에도 이런 혼선은 있었던지 정차산은 그의[아언각비]에서 이렇게 말한다.“아래누이(매)란 여동생이다.한데 우리풍속에서 윗누이남편 자부를 매부라함은 잘못이다” 앞으로 좀더 세월이 흐르노라면 이런대화도 듣게 될것인지 모른다.“얘,네가 방금 인사한 그노인이 누구냐?””응,우리엄마 친오빠야”“응,우리아빠친누님이야”.‘외종질’을 잃은것과 같이 ‘외숙’도‘고모’도 잃어갈것 같다는 생각이다.이 ‘고모’에 대해서는 앞서의 [아언각비]가 잘못된말 이라고 지적한다.‘모’는 숙모·이모 등 성이 다른 여자에게만 붙일수 있는 것이라면서.이쯤되면 정말로 알쏭달쏭해진다. 호칭뿐아니라 높임말 낮춤말혼란도 크다.집안에 따라 지역에 따라 관행이 다르기때문인데 자존심문제로 갈등요인이 되고있기도.그통일작업은 국가적차원에서 이뤄져야 할듯 싶다.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미국의 대통령문화:10)

    ◎한국전 휴전 등 성사… ‘국제평화의 전도사’/후르시초프 방미 실현… 냉전해소 노력/동남아조약기구·IAEA창설 결정적 역할 【애빌린(미캔자스주)=나윤도 특파원】 “I like Ike”(나는 아이크를 좋아한다.)1952년 34대 미 대통령선거전에 나선 공화당 후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장군의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오직 이 한마디 였다. 2차대전의 영웅으로 이미 탁월한 지도력이 입증된 아이젠하워 후보를 온국민들은 풀 네임보다도 애칭으로 부르기를 좋아했다.그리고 그들은 빨강·하양·파랑 바탕에 이 글귀가 쓰인 캠페인 뱃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다. 이같은 아이젠하워의 치솟는 국민적 인기는 일리노이 주지사 출신인 민주당 아들라이 스티븐슨 후보의 풍부한 행정력과 지식,재치,세련된 언변,화려한 공약 등을 두차례나 무용지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당선자 신분 한국전선 시찰 선거결과는 선거인단수 442대 89라는 아이젠하워의 압도적인 승리로 나타났다.더우기 공화당에 상하양원의 압승까지 안겨주어 루즈벨트­트루만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집권20년의 종지부와 함께 새로운 공화당 시대의 개막을 가져왔다. 20세기 들어 대공황­2차대전­냉전­한국전쟁의 사슬에 얽매여 한시도 긴장을 풀수 없던 미국민들은 하루빨리 정상상태로의 복귀를 열망했고 아이젠하워는 이같은 기대를 충족시켜줄 최적의 인물로 추대됐던 것이다.아이젠하워는 또 39세의 젊은 캘리포니아 출신 상원의원 리처드 닉슨을 런닝메이트로택함으로써 62세로 상대적으로 고령이던 자신의 나이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당시 선거에서 최대의 이슈는 수많은 미군 사상자를 낸채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한국전쟁의 종식과 관련된 것이었다.아이젠하워는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선거가 끝난후 당선자 신분으로 아직 포화가 멎지 않고 있던 한국전선을 방문,국민과의 약속을 실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였다. 취임연설에서는 “국제평화 유지를 위해 모든 국가와 협력하겠다”고 강조,평화를 갈망하던 국민들의 염원에 답했다.실제로 그는 한국전쟁의 휴전을 성사시켰으며 미군의 베트남전 참전을 반대했다.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역설,국제원자력위원회(IAEA)의 결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소련과의 대화도 시도했으며 장차 군산복합체 대두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방만한 정부 예산의 감축을 위해 국방비의 절감,감세,정부사업의 축소,각종 규제의 완화 등 연방정부의 활동을 대폭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갔다.그리고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대통령보좌관을 선임,그에게 상당부분의 권한을 위임하고 자신은 세세한 문제에는 관여치 않는 당파를 초월한 정치를 추구했다. 미시시피강 서부 대평원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인구3천명의 캔자스주 애빌린은 아이젠하워의 도시로 유명하다.도시 중앙에 위치한 아이젠하워센터에는 중앙에 그의 동상을 중심으로 성장기의 집과 묘소,박물관,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어 커다란 역사공원을 이루고 있다.1898년부터 46년까지 아이젠하워 패밀리가 살았던 사저는 캔자스의 평범한 시골집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센터 입구에 ‘명산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교회형태로 생긴 그의 묘소는 경건의 장소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으며 박물관은 2차대전및 냉전시대의 전쟁박물관으로,도서관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8년간은 물론 그가 군사령관으로 남긴 것까지 모든 자료의 집대성을 이루고 있다.특히 아이젠하워와 맥아더가 주고받은 편지들도 보관돼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편지에서 아이젠하워는 맥아더를 항상 ‘장군님’이라고 존경의 호칭을 사용했고 맥아더는 ‘사랑하는 아이크’라고 적고 있는등 두사람의 인간적인 관계는 계속됐던 것으로 보인다. 대륙횡단 철도가 지나기 때문에 텍사스등지에서 동부로 수송을 위해 수백만마리의 젖소들만 몰려들던 황량한 시골마을인 이 도시는 오늘날 인구 3천명의 소도읍으로 성장했으며 아이젠하워를 키워낸 자부심에 가득차 있다. 19세기에 출생한 마지막 미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1890년 텍사스 데니슨에서 출생했으나 어려서 부친이 애빌린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초,중·고등학교를 이곳에서 다니는 등 애빌린을 실질적인 고향으로 간주해왔다.낙농업에 종사하던 부친의 사업부진으로 대학진학은 엄두에 두지도 못하던 아이젠하워는 21세때 뒤늦게 웨스트포인트에 진학,군생활을 출발하게 됐다. ○흑백차별엔 단호한 입장 1차대전때 군훈련교관을 역임하고 파나마운하 주둔군으로 활약하던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1930년초 필리핀 주둔군사령관 이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부터 였다.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 이후에는 조지 마샬 참모총장에 의해 전쟁성의 태평양전략 담당관에 임명돼 탁월한 기획능력을 발휘했다.마침내 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히틀러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줌으로써 연합군측의 승리를 이끌어낸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게 됐다. 전쟁이 끝난후 군을 떠나 콜럼비아대학 총장으로 잠시 외도한 그는 트루만 대통령에 의해 5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령관으로 다시 군에 복귀했다.52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을때 트루만 대통령의 불출마 선언에 따라 공화,민주 양당에서 그에게 대통령 후보를 타진해 왔으나 그는 공화당을 택했고 압승을 거두게된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재임중 사회복지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이를 담당할 보건부,교육부,복지부 등의 부서를 창설했다.특히 흑백차별 문제에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57년 아칸사스주 리틀록의 백인 고등학교에서 흑인들의 입학을 거부하고 주지사가 민병대까지 동원,이를 옹호했다.이에 대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천명의 낙하산부대를 투입,흑인학생들을 호위 등교케하고 한학기 동안 학교를 순시케 하는 등 단호히 맞서 마침내 차별론자들을 굴복시켰다. 대외정책은 존 덜레스 국무장관에게 위임시켜 행하게 했으며 동남아조약기구(SEATO),를 창설하는 등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데 크게 기여했다.또 후르시초프의 방미를 실현시키고 소련에 영공 공개와 공중 군사설비 조사에 관한협정 제안등 냉전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아이젠하워는 남북전쟁의 격전지 였던 펜실바니아주 게티즈버그에 농장을 짓고 퇴임후 그림을 그리며 말년을 보냈다.오늘날 애빌린 못지 않게 게티즈버그의 아이젠하워 하우스에도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으며 이곳에는 링컨 워싱턴 등 인물화와 각종 풍경화 등 그가 남긴 수십점의 작품들이 진열돼 예술가대통령으로서의 푸근함 또한 느끼게 하고 있다. ◎다니엘 홀트 아이젠하워 도서관장/“정치인·군인 모두 성공적 삶”/“62년 도서관 개관… 220만점 소장 한국전쟁 관련 자료도 상당수 보관” 【애빌린(미캔자스주)=나윤도 특파원】 아이젠하워 도서관의 마틴 티즐리 관장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정치인으로서 군인으로서 두가지 생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친 훌륭한 대통령으로 국민적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대통령의 하나로 소개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센터 중앙에 있는 그의 동상에는 ‘평화의 챔피온’이라는 글귀가 써있다. 그는 전쟁에 피곤해있던 미국민들에게 평화를 심어주려 노력했다. ­도서관의 연혁및 활동은. ▲대통령 도서관으로는 네번째로 1962년 개관됐으며 초기 120점 이던 소장 자료가 이제 220만점으로 증가됐다.주로 2차대전과 관련된 것들이 많으며 400여명의 등록 학자들을 비롯 수많은 연구자들이 찾고 있다.특히 NATO 콜렉션은 미국내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한국전쟁 관련 자료도 상당수 보관돼 있다. ­지역에의 기여는 어떤 것이 있는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탄생일과 2차대전* 각종 기념일 등에 다양한 추모행사를 갖고 있으며 애빌린 주민들의 참여도는 매우 높다.특히 묘소가 있는명상의 집은 주민들의 경건의 장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국립문서보관소에서 모든 운영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민들의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로서의 참여가 없다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국민들과의 관계는. ▲TV시대가 개막될 무렵이어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들과 접촉이 많았던 대통령으로 볼수 있다.특히 그는 골프와 낚시 등 스포츠를 좋아했으며 대통령과 아놀드 파머와의 골프경기는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였다.
  • 김 당선자 국민과의 TV대화/일문일답

    ◎외국자본 끌어들여 공장 세워야 실업 해결/경제파탄 근원은 민주주의 제대로 안한탓/음식쓰레기 20%만 줄여도 1조6천억 절약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18일저녁 KBS홀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줍시다’라는 주제로 당선후 첫 국민과의 TV대화를 가졌다. TV대화에서 김당선자는 △경제위기의 실상 및 책임 △정리해고 및 실업대책 △대기업 구조조정 △물가대책 △민생현안 △인사탕평책 및 조각 기본방향 등에대해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밝혔다.다음은 김당선자와 가진 일문일답 요지이다. ­우리 경제위기의 실상은 어떠하며 국가부도 직전 사태로 갈 때까지 정부의 정책당국자들은 무엇을 했는지 소상히 말해달라. ○우리 현실 상당히 심각 ▲그렇게 악화돼 있는지 몰랐다.당선후 실상을 보고받고 보니,금고 열쇠받고 열어보니 그 속에 빚문서만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것과 흡사했다.현 정부출범시 외채 4백억달러에서 지금 1천5백30억달러가 됐다.그동안 정부는 국민을 속여 왔고 세계 11번째 경제대국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국민소득 1만달러의 나라라고 말해왔다.그러나 이제 채권자들이 빚을 갚으라고해서 파산지경에 이른 게 현실이다.이번 3월말로 돌아올 단기외채가 2백51억달러에 이른다.오늘 현재 보고받은 바로는 1백20억달러다.이를 해결하는길은 단기부채를 장기로 바꾸고,외국투자가 빨리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또 하나는 수출을 증대시키는 것이다.한마디로 우리 현실은 상당히 심각하다.신용도 좋아졌고 여러 상황이 금모으기 등 국민협력을 통해 위기가 조금 넘어가고 있다.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현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위기해결 3가지 방법 ▲3가지가 있다.하나는 수출을 늘려 흑자를 내서 부채를 갚는 것이다.작년에는 적자였는데 금년은 89억달러 흑자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원화 환율이 떨어져 수출이 급격히 잘되고 있다.둘째는 불필요한 수입을 억제하는 것이다.제일 중요한 것은 외국투자가 들어오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단기외채도 1년,3년,10년짜리 등 중장기 외채로 바꾸고,이렇게 갚아나가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갑작스레 경제위기가 닥쳐온 이유는.경제청문회를 할 것인가. ○관치금융이 난국 불러 ▲청문회는 한다.새 정부가 들어서면 그렇게 멀지않은 시기에 할 것이다.나라를 빚더미에 올려놓은 이런 일을 만든 책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이것은 결코 정치보복이 아니다.선진국은 이런 문제가 있으면 의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진실을 알고 대책을 세운다.청문회는 반드시 한다.경제파탄 원인은 민주주주의를 안한 게 원인이다.은행장을 정부가 마음대로 임명하고 정부가 은행에 돈을 빌려주라고 지시하고,돈을 빌려주고 떼이고,외채를 함부로 받아들였는데 자금회수가 안되고,이런 데 원인이 있다.5년사이에 외채가 4백억달러가 1천억달러를 넘었는데,나는 의심가는 데가 있다.국민이 감시자가 되고 국민의 나라의 주인으로서 앞으로 책임을 규명하는데 협조해 달라. ­3월,6월 금융위기설 등이 있고,이를 소홀히 할 경우 1년 이내에 국가부도 사태가 난다는데 사실인가. ○국가부도는 꼭 막아야 ▲1년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외채상환을연장 안해준다면 모라토리움 상태가 된다.지불불능 사태에서는 달러를 안주면 물건을 살 수 없다.어떤 일이 있어도 모라토리움을 피해야 한다.현금이 아니면 원유 식량 등 아무 것도 살 수 없다.그렇게 되면 국민생활이 일거에 달라진다.자동차와 버스는 움직이지도 못하고,발전도 될 수 없다.엘리베이터가 서 10층,20층을 걸어다녀야 한다.더 심각한 것은 식량문제이다.멕시코가 82년에 모라토리움 상태로 들어가 7년동안 죽을 고생을 했다.우리는 이것을 막기위해 단기외채를 3월까지는 일단 연장했지만,중·장기 외채로 연장시켜야 한다. ­외국에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나.내조해준 이희호 여사에게 고마움과 사랑의 표현을 부탁한다. ○외국친구들 도움 받아 ▲집사람이 이것을 보면 좋아하겠다.요새 친구들도 찾아오지만 실제로는 외국 정부·국회·경제계분들을 많이 초청한다.그것은 IMF관계,우리 채무관계 문제에 대해 그분들을 설득,도움을 받기 위해서이다.외국사람들은 가정에 초청하는 것을 좋은 대접으로 생각한다.집사람에게 미안하지만 가정으로 초청할 수 있도록 하는데 감사한다. ­외국자본을 유치하면 경제식민지로 될 우려가 있지않나. ○미도 17%가 외국자본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여러분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WTO체제는 산업혁명이래 계속돼온 민족국가,민족경제시대에서 세계국가,세계경제 시대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모든 나라들이 자기나라 이익뿐 아니라 남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하는 쌍방통행의 시대이다.이런 시대에는 국제협력을 많이 얻어야한다.지금은 각국이 서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우리가 영국에 공장을 세우면 여왕과 총리도 나온다.이제 세계화시대이다.영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5%,미국은 17%정도가 외국자본이지만 우리나라는 불과 2%밖에 안된다.이러니까 뒤떨어지는 것이다. ­선거기간중 자주 웃었는데 요즘 웃음이 없다.요즘 심경은. ○열심히 뛰어 같이 웃자 ▲선거때 자주 웃었지만 요즘 웃음이 적어진 게 사실이다.웃고 싶어도 국민이 고통당하고 있는데 한심한 사람이란 소리를 들을까봐 못 웃는다.금년 1년 열심히 뛰어야 하는데 4천5백만이 한번 같이웃자. ­밀가루,우유값 등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데 대책은. ○매점매석 용납안할것 ▲환율이 배로 오르니 외국에서 사오는 기름과 식량도 오를 수 밖에 없다.금년도 물가는 약 9%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물가대책은 공산품의 경우 수입원료값 인상범위내에서 더이상 못오르게 하고 기업도 합리화해서 그 이상 못오르게 관리를 철저하게 해나가도록 정부에 요청했다.공공요금과 협정요금은 수입원자재값 인상범위내에서 용인하되 경영합리화로 최대한 억제할 것이다.매점매석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철저하게 단속할 것이다.금년에 노·사·정이 협력체제를 만들어 IMF한파를 넘기면 물가도 다시 5∼5.5% 정도로 하향될 것이다. ­국회에서 고용조정법이 통과되면 1백만명 실업자가 예상되는데. ○고용 조정 길 열어야 ▲물가 못지않게 심각한게 실업문제로 올해 1백만명의 실업자가 예상된다.멕시코는 인구가 우리보다 배가 많지만 6백만 정도의 실업자가 있었다.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산상태의 기업이 가동돼야 하는데 이는 국내자본으로는 안되고 외국자본이 들어와야 하는데 이들은 정리해고를 요구하고 있다.따라서 정리해고는 불가피한 상황이다.미국은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는데 실업율은 2.5∼4.3% 이지만 정리해고를 제대로 못하는 유럽은 실업율이 12% 안팎이다.우리는 정리해고를 2년동안 잠정적으로 연기하고 있었지만 이제 1년2개월 남았다.정리해고의 길을 열어 외국자본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정리해고 됐을 경우 앞으로 자기가 직장근무시 받은 봉급의 50∼70% 정도를 실업수당으로 길게 6개월정도 준다.현재 2조1천억원 정도 마련했고 연말까지는 3조원 넘게 마련될 것이다.이는 6백50만 고용자를 대상으로 실업수당을 줄 수 있는 것이다.금년은 실업율이 높아 1백만명 정도의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다. ­여성들이 해고의 1차대상이 되고 있는데 대책은. ○여성 우선해고 막을것 ▲여성들이 해고의 우선순위로 되고 있는 것을 알고 노동장관에게 각 기업체를 상대로 단속을 벌일 것을 부탁했다.여성의 권익향상을 위해 채용과 승진에 있어서 일정비율을 할당하도록 할 것이다.대통령 직속으로 여성특위를 설치해 상당한 권한을 부여하고 각 부처에 여성문제를 전담하는 담당관을 두고 대통령 지시에 따라 권익을 향상시켜 나갈 것이다.저는 여성문제에 있어서 강하게 견제하는 사람이 한명 있는데 아내다.조각하면 알겠지만 여성들이 각료로 상당수 등용될 것이다. ­IMF긴축으로 중소기업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중소기업 지원대책은. ○중기지원 최선다하것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 차기정부는 굉장히 역점을 두고 있다.지난번 38개 은행장과 만나 수출금융과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적극 요구했다.정부재정에서 7천억원을 지원하고 아시아개발은행(ADB)차관 10억달러를 모두 중소기업을 위해 쓰도록 했다.이에따라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 여력이 33조원가량 되었으며,앞으로는 50조원까지 늘릴 것이다. ­건강에 이상이 없나. ○건강은 원래 좋은편 ▲건강까지 걱정을 해주어 대단히 감사하다.작년에 반년,그리고 당선된뒤 1개월 등 7개월 동안 뛰어다닌 것만 봐도 국민들이 ‘건강은 괜찮구나’하고 인정할 것이다.원래 건강은 좋은편이었는데 지난 선거때 모략을 많이 당했다.심지어는 동숭동 한 유세에서 앞에 있던 중년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치매가 걸렸다고 하더니 괜찮네요’라고 말한 일도 있다. ­1백만명 내지는 1백50만명의 실업자가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데. ○달러 버는 기업인 존경 ▲정리해고 등 여러가지 문제가 나오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정경유착의 시대는 갔다.새정부는 과거에 권력을 갖지 못했고 경제인과도 유착관계가 없다.기업인들이 김영삼 정권에게는 1천4백억원의 기탁금을 주면서 우리에게는 단돈 1천4백원도 주지 않았다.우리는 어느 경제인에게도 빚이 없으며 어느 경제인도 미워하지 않는다.국제시장에 나가 달러를 많이 벌어오는 기업인을 존경하게 될 것이다.노동자측에서도 할만큼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할 것이다.정리해고제는 길어야 1년2개월이면 도입되도록 돼있다.노동의 투명성없이는 외국기업이 들어오지 않는다.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공장을 일으켜 세워야만 일자리가 생긴다.외국기업이 들어와야 막대한 외채에 대한 이자도 물지 않는다.찬밥더운밥 가릴때가 아니다.경제를 살리기 위해 고통을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주길 바란다. ­고통분담의 선순위가 재벌총수들에게 먼저 가야 한다.기업을 엉망으로 경영한 재벌총수들은 경영일선에 물러나게 하고 소유·경영의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노동자 억압시대 지나 ▲이의없다.재벌총수들을 불러 고통분담에 대해 엄중한 내용을 요구했고 합의해서 실천중이다.재벌들이 건국이래 어느 때도 없었던 자기개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기업은 주주들이 바꾸는 것이다.앞으로 소액주주가 집단적으로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할 권리가 보장되도록 입법할 것이며,사외 이사가 경영감독을 하고 관여하도록 할 것이다.앞으로 기업총수들은 기업경영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도록 하고 퇴진하도록 할 것이다.오너들이 기업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 불투명한 회계처리로 빼돌리는 일은 전혀 불가능하도록 하겠다.세계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경영하느냐는 둘째이다.정부가 과거처럼 기업 편을 들고 노동자를 억압하는 시대는 지났다.앞으로정부는 노동자 정치활동의 자유도 주고,정당을 만들 자유도 주고,민주적 노동운동을 할 자유도 주겠다. ­기업의 구조조정 일정을 밝혀달라.또 현재같은 초고금리에서 기업은 견딜수 없는데 금리대책에 대한 구상은. ○기업 살리는 구조조정 ▲구조조정 일자에 대해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구조조정도 기업을 살려가며 하는 것이므로 기업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서는 안된다.그러나 지금은 비상사태이고 외국에서 인정하는 개혁을 해서 돈을 들여오게 해야 한다.정부와 IMF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IMF체제를 언제 졸업할 수 있느냐는 금년에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내년 중반,하반기에는 IMF체제를 졸업할 수 있을 것이다.멕시코도 1년반만에 졸업했다. ­대통령도 월급을 반납하고 삭감할 의향은 없는가. ○월급 얼마인지 몰라 ▲그럴 용의가 있다.청와대에 가면 밥 먹여주고 잠 재워주지 않는가.그런데 현재 대통령 월급이 얼마인지 잘 모른다.앞으로 월급을 받으면 어떻게 뜻있게 쓸지 발표하겠다.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해국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 모두가 절약해야 ▲금 모으기 행렬로 모은 돈만 1천억원이나 됐다.이렇게 착하고 자랑스러운 국민을 고생시켜 분하기도 하고 정치인으로 이를 막지 못한데 대해 자책의 심정도 크다.국민 여러분이 할일 많다.무엇보다 절약을 해야 한다.집에서 전기 하나만 꺼도 1년에 2천8백억원이 절약된다.자동차 10부제를 하면 1년에 1억4천만달러가 절약되고,5백만 가구마다 난방온도 1도를 낮추면 2천3백만달러가 절약된다.식량자급도 25%정도가 되는데 먹거리 수입이 연간 1백억달러 가량이나 된다.음식찌꺼기도 연간 8조원이다.이중 2할만 절약해도 1조6천억원이다.국민들이 할일은 결코 큰 데 있는 것이 아니다.많은 국민의 참여가 중요하다.사치 낭비는 절대 용납해서는 안된다. ­친인척 관리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친인척 3금법안 마련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굉장히 경계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지금까지 대통령주변이 그랬기에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본다.이 문제를 막기위해 ‘3금법안’을 만들어 친인척의부당행위 금지법을 내놓았다.제 친인척들은 과거 수십년동안 박해받고 감시받았다.지금은 그것만 풀려도 살것 같고 더 이상 욕심이 없다.나도 잘하겠지만 그분들도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 ­농가부채,축산사료 등 농촌대책을 말해달라. ○농민과 약속 꼭 지킬것 ▲IMF사태 때문에 시기적으로 미루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원칙의 포기는 없을 것이다.약속대로 집행해 나가겠다.사료수입 문제는 수입신용장을 적극 개설하고 환차손 보전방안 등을 생각하고 있다.많은 문제가 있지만 농민들과 약속은 꼭 지킬 것이다.농가부채도 상환유예 등 여러가지를 적극 검토해 나가겠다. ­봄이 되면 청와대에 가보고 싶은데 초청할 계획은. ▲청와대 주인은 국민이다.오고 싶은 분은 가능한 많이 올 수 있도록 초청하는 방안을 추진토록 하겠다. ­관공서에 대통령사진을 걸지말고 각하라는 호칭도 쓰지 말라고 했는데. ○호칭은 대통령님으로 ▲대통령에 대해 각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우리가 권위주의를 탈피해야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다.대통령을 대통령이라고 하는것이 맞지만 마주보고 대통령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통령님’이라고 하면 된다.꼭 각하라고 할 필요없다.미국은 대통령에게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하는데 여기서 ‘미스터’는 ‘님’이다.해외공관에는 사진을 걸어야겠지만 국내에 내얼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왜 거는가.과거에 대통령은 재임중에는 권위가 있었지만 그만두고 나오면 감옥에 가고 아무 것도 아니었다.재임중 칭찬이나 찬양을 받기보다 그만두고 나왔을때 사랑받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이 세상을 떴을 때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
  • 민원 폭주… 인수위는 권부?

    ◎하루 30여건… 비리 투서에 인사청탁까지/“대통령 국산차 타고 어른으로 호칭” 제안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각종 건의와 민원가 쏟아지고 있다.전화와 팩스와 서신을 통해 인수위 행정실에 접수된 민원·건의는 16일까지 모두 250여건.출범 초기 하루평균 10여건이던 것이 이제는 30여건씩이나 폭주한다. 내용은 가짓수 만큼이나 다양하다.김대중 당선자가 ‘각하라는 호칭을 쓰지 말라’는 당부를 내놓았을 때는 ‘대통령 어른이라고 부르면 어떻냐’는 건의가 들어왔다.‘관공서가 너무 크고 화려하다’는 지적과 ‘대통령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는 꼭 방탄시설이 필요하다면 특별주문을 해서라도 국산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앞의 것이 ‘정부의 솔선수범’을 충고한 것이라면 나중 것은 대통령의 솔선수범을 요구한 셈이다. ‘내부비리를 고발하겠다’는 공직사회와 일반기업체의 투서성 민원도 있다.여기에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주택관리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조항을 완화해 달라’는 한 아파트단지 입주자대표회의의 요구처럼 ‘집단성’도 적지 않다.심지어는 자신의 이력서를 동봉해 ‘새정부의 적당한 자리에 써달라’는 인사청탁까지 눈에 띤다. 전체적으로 김당선자에 대한 건의나 당부가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대통령선거 이전이라면 정부종합민원실이나 청와대 등으로 갔을 내용이라는 것이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이다.국민들이 인수위를 그만큼 ‘힘있는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인수위 행정실은 일단 내용별로 해당 분과별에 넘겨 내부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처리하여 회신하고,처리할 수 없는 것은 정부의 공식 민원창구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한국 대선 독일 언론의 반응/“DJ는 한국의 빌리 브란트”

    독일 언론들은 20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한국의 빌리 브란트’로 호칭하면서 그가 불굴의 의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시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김당선자와 브란트 전총리는 개혁과 평화의 지도자로서 열광 속에 출발하게 됐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갖고 있다”면서 “브란트 전 총리가 동방정책을 통해 유럽에서 냉전 종결의 반석을 놓았듯이 많은 한국인들은 김당선자가 남북한 화해의 길을 발견, 동아시아의 냉전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김당선자가 “훌륭한 위기 관리자로서의 능력을 발휘,경제위기로 추락한 한국민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고 말하고 “사회정책적 개혁을 통한 민주화 의지 역시 두 사람이 매우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디 벨트는 “모든 박해와 고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와 민주주의 개혁을 위해 투신한 김당선자는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에 버금가는 위대한 경력의 소유자”라고 칭찬하고 “그의 당선으로 진정한 자유·개방·민주적 변화의 희망이 구체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한국민들은 처음으로 야당후보를 대통령에 선출,한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사실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부정적 과거와의 단절의지를 보였다”면서 “김후보의 당선이 이같은 구조개혁의 기회라는 점에서 이번 선거결과는 한국의 축복”이라고 밝혔다.
  • 흑하시민의 러시아 엿보기(흑룡강 7천리:14)

    ◎강건너 블라고베시첸스크 1일관광 활기/한해 100만명 다녀와… 호텔서도 비자 발급/관광은 허울일뿐 대부분 의류 등 봇짐장수 흑룡강성 흑하시와 강건너 러시아땅 블라고베시첸스크와는 일일관광이 시작된지 오래다.1988년 9월의 일이니까 곧 10년째를 맞게 되었다.주말을 빼고는 블라고베시첸스크로 가는 관광비자를 호텔에서도 받을수 있다.지난 해에이미 1백만명이 블라고베시첸스크를 다녀올 정도로 러시아 일일관광이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흑하시에 도착한 날이 금요일이라 러시아관광은 포기하고 대신 대흑하도로 건너갔다.흑하시에 속한 대흑하도는 러시아쪽 강안과 불과 750m밖에 떨어지지 않은 0.87㎢ 넓이의 섬이다.멀리서 보면 강심에 거대한 유람선 한 척이 정박한 것처럼 보인다.대흑하도 한가운데는 파리 에펠탑이 연상되는 망강루가 우뚝했다.수정구처럼 생긴 망강루 꼭대기 원형건축물에서 내려다 보면 흑하시와 블라고베시첸스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9년전부터 1일관광 시작 이 섬의 핵심건물은 국제무역청사다.둘레 1천880m,높이 13.5m의 청사는 마치 돌로 쌓은 성채와 흡사했다.송나라와 당나라때 성벽을 본떠서 지었다는 건물안에는 세상 물건을 다 진열한 만물시장이었다.중국말과 러시아말,조선말이 왁자지껄한 가운데 의성의태어까지 동원되었다.러시아말만 통하면 장사에서 이길수 있다는 것이 상인들의 말이고 보면,흑하시에 노어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까닭을 알만했다. 국제무역청사에서 만난 조선족 여인 이옥희씨(32)는 연변출신이었는데,3년전에 대흑하도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남들이 다 한국바람에 미쳐 날뛸때 5천원을 가지고 와서 좌대 하나를 빌려 옷장사를 시작했다.언니가 사는 흑하시에 들러 러시아 일일관광을 하고 나서다.러사아인 상대 장사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장사를 시작한 그녀는 강건너 러시아에도 옷가게 몇 개를 더 마련했다. 흑하시와 블라고베시첸스크와의 일일관광은 사실상 빛이 바랬는지도 모른다.관광은 허울일 뿐 실상은 장사행차다.중국쪽에서 건너간 관광객이 러시아쪽 강안에 내려 관광버스에 오르면 경찰차가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그리고자가용차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오다 첫 관광코스인 아무루주박물관에 내리면 자가용차에서 내린 러시아인들이 중국 관광객을 겹겹이 에워싼다고 했다.관광객들이 가져간 물건은 박물관 앞에서 곧 바로 거래되었다. 조선족 이옥희 그녀는 러시아 일일관광에서 돌아와 장삿길로 접어들었다.언니와 아즈바이라 부르는 형부,또 김동무로 호칭하는 자신의 남편이 함께장사꾼이 되었다.아즈바이와 김동무는 하얼빈과 심양에서 물건을 도매로 떼어오면 그녀와 언니는 파는 일을 맡는다.언니와 번갈아 국제무역청사 가게와 강건너 러시아에 마련해놓은 4개의 가게를 돌며 장사를 하고 있다. 흑룡강 건너 아무르시장에는 아예 중국인상업구가 형성되었다.그런데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라는 것이다.중국에서 러시아로 건너간 조선족 상인은 2만명을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블라고베시첸스크에 5천명,하바로프스크에 1만명,이르크추크시에 7천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러시아원동에는 도시마다 자그마한 조선족집거구도 생겨나고 있다. 이들 원동의 조선족들은 광복절인 8월15일과 연변 조선족자치주 성립일인 9월3일에는 운동대회를 연다.러시아 조선족,한국기업,연변,흑룡강,요령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벌이는 운동회 경비는 같은 업종의 상인들 모임과 한국기업에서 댔다.운동회는 보통 이틀간 계속되었는데,운동회때는 반드시 소를잡아 현장에서 구워먹는다고 했다. ○도착하자마자 물건 동나 흑하시에서 만난 김상회씨(46)는 한달에 한 차례씩은 러시아를 찾는 조선족이었다.보따리장수 일손을 놓은지 이미 오래인 그는 러시아여행은 좀 유별났다.여자를 보러 러시아에 간다고 했다.진담이지 농인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러시아에 쌔고 쌔버린 것이 여자들이라는 이야기다.그래서 중국에서 건너간 장사꾼중에는 러시아 여인들과 임시부부로 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장사위해 현지남편도 러시아에 간 조선족 상인들의 임시 부부생활에는 별별 유형이 다 있다.그 하나가 중국에 남편을 두고온 유부녀가 러시아에서 현지남편을 맞은 경우일 것이다.서른 둘 나이의 젊은 유부녀가 서른 여섯의 임시남편을 얻기 위해 본남편의 동의를 받아냈다는 내용인데,이는 신문에도 보도되었다.기사를 쓴 조선족 기자는 본남편이 동의한 편지까지 공개한 일이 있다. ‘사랑하는 당신.처음에 편지를 보고는 놀랍기도 하고 분통도 터졌다오.자칫하면 아내를 빼앗기겠다는 생각에 당장 돌아오라는 호통도 치고 싶었소.그러나 여러 날을 두고 고민하면서 편지내용을 곰곰 검토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소.임시적으로 부부를 맺어 장사만 잘 된다면 이성합작을 동의한다는 생각이오.……1996년9월25일 남편으로부터’ 그러나 중국에서 노무일꾼으로 러시아에 간 조선족들에게는 불륜현상은 거의 없다.이들은 남새(채소)재배를 목적으로 송출되었다.중국에서 1근에 1원하는 토마토가 러시아에서 7∼8원하는 것을 보고 중국 조선족들이 집단으로 건너갔다.이르크추크시 교외에는 반석시 안락향과 흥기령진에서 간 조선족 22명이 살고 있다.러시아인들 보다 몇 곱절 힘을 들여 농사를 짓는 이들은 늘 가족을 그리면서 산다는 것이다.조선족 원동수씨(39)가 가족에게 보내온 편지를 보면 그런 사연이구구절절 배어있다. ‘잡풀이 어찌도 많은지 호미날 절반이 다 닳도록 여름내 김을 매었소.러시아인들은 김을 매는 법이 없다오.그래서 러시아인들은 고추만한 오이 몇낱을 따지만 우리 밭에는 팔뚝같은 오이가 주렁주렁 달렸다오.농사일이 고달프기 보다는 집 생각이 더 간절하다오.아이들 편지는 서로 돌려보고 당신 편지는 베갯밑에 묻어두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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