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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배제조 합작 합의/한­베트남

    베트남을 방문중인 홍두표 한국담배인삼공사사장은 호치민시 호아쿡담배공사의 옌사장과 담배제조기술 제휴 및 합작생산에 관한 합의각서를 교환했다. 26일 담배인삼공사에 따르면 이 각서의 내용은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베트남에 중고담배 제조기계를 수출하고 한국산 잎담배와 기타 재료를 원가로 공급하는 한편 기술진을 파견,기계가동 및 제조기술을 전수해주는 것으로 돼 있다. 또 호아쿡공사가 88담배 5만갑을 수입,베트남 애연가들의 반응을 검토한 뒤 「아리랑」이나 「태권도」등의 이름으로 현지에서 합작생산 한다는 원칙에도 합의했다. 베트남은 현재 7천만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나 제조담배 수요량의 85% 가량이 밀수입되는 외국담배로 충당되고 있다.
  • 베트남에 「따이한 혼혈아」5천∼1만명

    ◎취학ㆍ취업등서 차별… 신원 속이며 생활/그리운 아버지나라 한국행 가장 원해 한국의 베트남 참전으로 혼혈아라는 부담을 안고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살고 있는 한국계 2세들이 줄잡아도 5천명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 주월한국군 총사령관 채명신씨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국제사회복지협의회(회장 정주태)와 관련을 맺고 있는 국제사회복지개발주식회사의 베트남 지사장으로 파견돼 있는 김병하씨(61)는 베트남이나 한국정부가 베트남의 한국계 2세들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 분명한 숫자는 헤아릴 수 없으나 대략 5천∼1만여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64년 9월 비둘기부대를 효시로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전인 73년 3월까지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은 약 32만명이었고 여기에 민간기술자ㆍ기능공ㆍ개인사업가 등까지 합치면 베트남 전쟁기간 중 베트남을 다녀온 사람은 약 40만명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베트남사회에서 「라이따이한」(한국계 혼혈아)이라는 약간 경멸조로 불려지고 있는 한국계 2세들은 대부분 취학이나 취업을 위해 신원을 속이면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신원이 노출된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은 과거 한국군이나 민간기술자들이 근무했던 지역에서는 거의 어디서나 발견되며 나이는 대략 15세∼20대초반을 이루고 있다. 호치민시의 경우 과거 한국인 기술자들이 집단으로 일하고 있었던 쭈민가장에는 아직도 많은 「라이따이한」들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돼지고기와 닭고기,생선 등을 반찬으로 구워 초라한 밥집을 경영하고 있는 구엔 티 안여인(53)은 라이 따이한들이 베트남 사회에서 크게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지는 않으나 취학과 취업에는 다소 제한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안 여인은 라이 따이한들은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의무교육기간인 9년밖에 학교를 다닐 수 없으며 정부기관이나 정부운영회사에서는 신원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취업을 거부하는 사례가 더러 있다면서,대부분의 한국인 현지처나 라이 따이한들은 신원노출을 꺼리고 있으며 날품팔이나 재봉일ㆍ자전거 수리ㆍ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길거리에서 음식이나 복권등을 팔아 그날 그날을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7년 H사의 전기수리공으로 베트남에 와 75년까지 있었던 한국인 오모씨(64)의 베트남 현지처가 된 안 여인은 월맹군과 베트콩 게릴라들이 사이공을 함락시킨 75년4월30일 이후 두달간은 보복같은 것이 두려워 벌벌떨며 문밖에도 잘 나가지 못했다고 당시를 회고하고 비록 오씨와의 사이에 「구엔」이란 이름대신 김치양(20),도선군(18ㆍ직업고2),동진군(16ㆍ직업고1) 등 한국이름으로 남매를 두고 있으나 오씨를 이해하기 때문에 재결합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러나 오씨가 자주 베트남을 방문,어려운 생계를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를 도와 부엌일을 하고 있는 김치양은 다섯살때 떠난 아버지가 그동안 아프리카국가들을 전전하면서 편지를 보내왔고 지난해 10월에는 호치민시를 직접 찾아 돈까지 주고 갔다면서 언젠가는 그리운 아버지의 나라인 조국 따이한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라이 따이한들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무학이거나 국교와중학교 중퇴생들이다. 대학에 다니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의 일부는 또 대도시를 떠나 시골로 생계지를 옮기고 말았다. 이들의 최대희망은 베트남인의 최대희망이 「해외탈출」이듯이 「한국행」이다. 현지처들이나 라이 따이한들은 그러나 너무나 흘러버린 긴 세월의 간격탓인지 남편ㆍ아버지와의 재결합은 거의 포기하고 있다.
  • 베트남 정치개방거부 경제개혁 모색/공산화 15년… 오늘의 실상점검

    ◎동구민주화 외면… 중국모델 사회주의고집/신외국인투자법 제정,합작투자 유치총력/고립탈피위해 아태국과 관계개선 시도… 미에도 유화 제스처 사이공 주재 미대사관 옥상으로부터 마지막 미군헬리콥터의 이륙과 함께 월남이 공산화된지 4월30일로 15년을 맞는다. 공산독재체제의 베트남은 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남북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종전 15년이 지난 오늘까지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작전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의 국민소득은 75년 당시 월남보다도 훨씬 낮은 2백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고 6천5백만 전체인구의 80%에 달하는 농민의 생활 수준은 아직도 열악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이공함락과 함께 시작된 베트남인들의 대탈출은 정치적 동기가 아닌 경제적 이유에 의한 「빈곤의 엑서더스」로 바뀌고 「보트피플」의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남북간 경제력의 차이는 국민화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공산당독재체제에서 비롯된 당원의 부패 만연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 역시 점점 엷어지고 있다. 올해는 베트남 공산당 창립 60주년이자 통일을 이룩한 호치민(호지명)탄생 1백주년이 되는 「축제의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호치민이 남긴 공산독재체제의 유산은 국민들의 개혁ㆍ개방요구와 동구의 개혁 외풍 등 국내외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베트남은 그러나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과 동유럽의 대변혁에서 나타난 공산독재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흐름을 외면한 채 「베트남식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있다. 구엔 반 린 베트남 공산당서기장은 최근 『베트남은 결코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베트남이 소련이나 동구식의 정치개혁을 수용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달 27일 폐막된 베트남공산당 중앙위도 「사회주의 고수」와 「당의 지도적 역할」을 확인한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베트남이 정치적 개혁을 거부하고 있음은 지난번 중앙위전체회의에서 개혁파 정치국원 트란 수안바크(65)가 축출된데서도 분명히드러나고 있다. 바크는 다당제도입 등 과감한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현베트남 공산당지도부를 비난해오다 축출됐는데 그는 정치국원 자리외에 서기국원ㆍ중앙위원 등 모든 당직으로부터도 제명됐다. 바크의 축출로 13명의 정치국원 중 개혁파는 구엔 코타크(70)외무장관만이 유일하게 남게됐다. 베트남은 이같이 정치개혁은 완강히 거부하면서도 경제면에서는 일련의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구엔 반 린 서기장도 기회가 있을때마다 경제개혁을 통한 점진적 민주화 추진을 천명하고 있다. 베트남은 지난 86년12월 제6차 당대회에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를 모방한 「도이 모이」(개혁)를 국민들에게 선보여 75년 베트남 통일이후 지금까지 팽배해온 국민들의 불만을 다소의 기대감으로 바꾸어 놓았다. 「도이 모이」정책은 시장경제도입,농토의 개인경작 및 자영기업의 허용,부가가치세의 도입 등 자본주의 요소를 과감히 수용한 경제개혁 조치이다. 지난 88년 1월에는 또 신외국투자법을 제정,외국인들의 1백% 단독 투자를 허용했는가 하면 조세감면과 과실송금을 보장하고 있다. 베트남의 이같은 시장경제 개혁은 경제외교적 고립과 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의 부분적인 경제봉쇄 정책으로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베트남 경제가 호전되고 있음은 여러가지 경제지표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88년만 해도 7백%에 달하던 인플레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조를 받아 실시한 긴축정책으로 지금은 50% 수준으로 낮아졌다. 더욱이 올 연말에는 인플레가 12∼15%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 화폐인 「동」의 가치도 점차적으로 안정되어 가고 있다. 베트남은 농토의 개인 경작과 농산물의 판매허용등의 농업개혁으로 쌀의 생산량이 급증,태국ㆍ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제정된 신외국투자법에 따라 외국과의 합작사업도 활기를 띠어 지금까지 1백건이 넘는 계약실적을 올렸고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베트남은 또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아시아ㆍ태평양 국가들과의 협력과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한편 미국에는 캄란만과 다낭 등 미국이 전에 사용하던 군사기지의 재사용을 제의하는 등 유화 제스처를 쓰고 있다. 베트남의 이같은 제의는 물론 소련군이 오는 92년 캄란만에서 철수하고 소련의 대베트남 원조삭감에 대비한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련은 최근 비료ㆍ건축자재와 원유공급을 대폭 감축할 것이라고 이미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개혁 이후 나타난 호치민(구사이공)시의 활기찬 모습은 베트남 장래에 밝은 전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발전은 또다른 한편으로는 커다란 갈등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천안문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개방은 필연적으로 정치민주화의 요구로 발전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트남에는 아직까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최근에는 지식인과 노조ㆍ언론인 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화 논의가 가열되고 있다고 한다. 정치민주화 요구가 점차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공산당 지도자들은 그러나정치개혁은 거부하고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유지를 천명하고 있다. 중국에서 실패한 「개혁실험」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민주화」라는 국제적 조류는 그들의 실험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 체코등 4곳 무역관설치/무공,올 업무보고/구상무역등 교역확대 중점

    무역진흥공사는 올해 수출촉진사업을 대폭확대하는 한편 공산권 및 미수교국과의 통상기반을 다져나가기로 했다. 이선기무공사장은 22일 한승수상공부장관에게 보고한 90년도 업무계획을 통해 공산권국가에 외화가 부족한 현실을 감안,구상무역이 가능한 품목을 개발하고 삼각무역을 활용하며 리스(시설대여)방식에 의한 수출이나 새로운 방식의 결제방식을 개발하는등 실질적으로 이들과 교역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국 베트남 동구권등 3개지역에 통상사절단을 파견하고 체코 동독 중국 베트남등 4개국과 서로 무역사무소를 개설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극동시베리아와 중국에는 각각 2차례씩 정부와 민간연구소등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투자환경 조사단을 파견하고 4월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산업주간행사를 개최하고 같은달 서울에서 열리는 소연방상의 주최의 소련주간 행사도 적극지원할 방침이다. 또 한중심포지엄도 서울과 북경에서 교환개최하는등 시장진출 기반을 꾸준히 다져나갈 계획이다. 체코무역관은 1ㆍ4분기중 프라하에,동독무역관은 2ㆍ4분기중 동베를린에,중국의 경우 3ㆍ4분기중 북경에,베트남무역관은 3ㆍ4분기중 호치민시에 개설한다는 계획으로 당사국과 협의 중이다. 공산권등 미수교국에 대한 수출유망품목으로는 신발 의류등 생필품과 가전제품 스포츠용품 석유화학제품등으로 보고 국내 생산품의 수출강화노력은 물론 현지생산을 위한 투자도 함께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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