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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역흑자 400억弗 꿈만은 아니다/11월 수출 증가 배경

    우리 수출에 햇살이 들기 시작했다.6개월간의 마이너스 성장을 끝내고 11월 들어 증가세로 돌아섰다.11월 수출증가율 1.5%는 최근의 국내외 시장동향을 감안할 때 단순히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수출전선에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한때 불가능해 보이던 올해 무역흑자 목표 400억달러 달성도 가시권에 들어서 내년도 경기전망을 한층 밝게 하고 있다. ●수출입 동향 11월 수출입동향은 이전과 비교해 몇가지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우선 월별 수출액이 지난 8월 97억달러로 바닥을 친 뒤 꾸진히 증가,4월 이후 처음 120억달러 고지를 돌파했다.특히 하루평균 수출액이 5억400만달러로 올해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수출에 뒷심이 붙었다는 얘기다. 수입 감소세가 크게 둔화된 점도 고무적이다.올들어 수입은 -30%대의 행진을 계속해 왔으나 11월 들어 -20%대로 올라섰다.특히 지난 2∼3분기 40%대를 달리던 자본재 수입 감소세가 -23%로 줄어들면서 국내 수출기반이 회복되고 있음을 반증했다. ●수출증가 요인 수출액 1,2위를 달리는 반도체와 자동차의 수출이 각각 6.2%,10% 늘었다.반도체는 D램의 세계시장 가격이 회복된 점이,자동차는 엔화 강세로 대일(對日)경쟁력이 강화된 점이 수출증대 요인이다. 지역별 품목별로 수출목표를 설정하고 각종 수출입금융을 확대해 온 정부의 지원정책과 내년도에 본격화될 신3저 효과를 겨냥,주요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각 수출업체들의 공격적 마케팅도 수출증대에 기여했다. ●향후 전망 이제 초미의 관심은 과연 400억달러의 올 무역흑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느냐에 쏠린다.산업자원부는 지난달 중순만 해도 최대 390억달러를 예상했다.그러나 11월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흑자목표에 41억달러로 근접하자 자신있다는 분위기다.해마다 12월 수출액이 가장 많은데다 국내외 여건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 5대 재벌 개혁 채찍질­3개업종 빅딜안 평가

    ◎손실분담 외면 ‘빚털기’ 속셈/채권단 “사업·시장성 과대포장”/자구책 없이 금융지원만 요구 ‘5대 그룹은 장밋빛 전망,채권단은 잿빛 평가’ 5대 그룹이 철도차량·항공기·석유화학 등 3개 빅딜 업종에 대해 주먹구구식 전망을 내놓은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진지한 자세는 보이지 않고 시간끌기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사업성 검토 매출액 규모 등 시장성을 턱없이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철도차량(현대정공·대우중공업·한진중공업)의 경우 향후 시장확대로 99년 7,647억원,2000년 9,712억원,2001년 1조3,998억원의 매출액을 올릴 수 있다는 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채권단의 평가는 정반대다. 서울지하철 3기 공사 등 각종 공사가 연기·취소되고 있어 수요감소 요인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술력이 떨어져 신규시장 개척도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과대포장’이라고 지적했다. 항공기(삼성항공·대우중공업·현대우주항공) 업종도 통합으로 수요창출이 가능하다는 재계 전망과는 달리 기술수준이 떨어지고,방위산업에만 매달린 전망이라 사업성이 희박하다고 판정했다. 석유화학은 향후 누적적자 규모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채 2002년부터 수출이 호조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 것은 너무 낙관적인 것이다. ●손실분담 등 자구 노력 미흡 5대 그룹은 그러면서도 손실분담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빅딜을 핑계로 부채를 털어버리는 등 잇속을 챙기려는 의도가 더 짙었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철도차량(5,000억원),항공기(2,049억원)등 업종에서 기존손실액을 3사가 분담한다는 것만으로 그쳤다. 그러나 앞으로 생길 손실도 떠안아야 하고 “경영실패에 따른 책임을 져야한다”는게 채권단 입장이다. ●금융 지원에만 의존 손실분담에 비해 출자전환 요청 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도 지적됐다. 재계는 석유화학 업종의 경우 금융지원이 이뤄지면 15억달러의 외자유치가 성사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채권단은 ‘논리의 본말이 뒤바뀐 것’이라고 일축했다. 금융지원보다 몸집을 줄이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는 것이다. 15억달러가 유치되더라도 일부만 자본으로 유입될 뿐 나머지는 모두 부채이므로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작다고 평가했다.
  • 장쩌민,日皇에 과거 사죄 재촉구/訪日 마치고 귀국

    【도쿄 黃性淇 특파원】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한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30일 오전 5박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방일기간중 과거사 문제로 일본측과 신경전을 벌인 장주석은 이날 귀국하면서 다시 아키히토(明仁) 천황에게 전문을 보내 또 한번 일본에 과거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을 촉구했다. 장 주석은 전문에서 과거사 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중국과 일본은 “평화와 21세기를 위한 동반자관계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것은 물론 부정적인 경험에 대해서도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공동 인식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장 주석은 지난 25일 일본에 도착한 이후 가는 곳마다 과거사 문제의 중요성을 역설해 일본의 미온적인 사죄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향후 양국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양국은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맞아 이뤄진 정상 회담에서 ‘중일 공동선언’을 발표,72년 국교정상화의 공동성명과 78년 평화우호조약에 이은 ‘제3의 문서’를 남기는 결실을 얻어냈다.특히 양국은 대외적으로도 양국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에서 핵무기 비확산과 유엔안보리 개혁 등에도 공동 대응키로 약속했다.
  • 서명 없는 ‘中·日 공동선언’ 파문/‘과거사’ 갈등의 불씨 내연

    ◎21세기 동반자관계 ‘삐끗’ 【도쿄 黃性淇 특파원】 도쿄(東京)에서 26일 있은 중국과 일본의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중일 공동선언’에 양국 정상의 서명이 빠져있어 파문을 낳고 있다. 일본측은 “당초부터 서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본측의 미흡한 과거사 사죄에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불만을 느꼈기 때문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중국측은 지난 10월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정상이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일본측이 ‘통절(痛切)한 반성과 사죄’를 명기한 점을 들어 중·일 공동선언도 같은 수준이 돼야 한다는 점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일본측은 그러나 72년 중·일 공동성명과 78년 우호조약 등 공식문서에 침략의 과거사를 사과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사죄 명기는 곤란하다고 거부했다. 타이완(臺灣) 문제나 경제협력 등 대부분의 외교현안에 합의해 놓았던 두나라는 장주석의 방일 하루 전인 24일에서야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구두로 사죄를 표명하되 선언에는 ‘중국침략’과 ‘반성’만을 명기키로 가까스로 절충했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이처럼 소극적인 것은 자민당 내 보수세력의 반발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한 외교소식통은 “자유당과 연립정권을 수립키로 한 이후 자민당의 보수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언제까지 사죄를 해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러나 중·일 공동선언에 두 나라 정상의 서명이 없다고 이 선언의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언에서 합의한 일본의 3,900억엔 엔차관 공여나 중국 내륙개발에 대한 일본정부와 민간기업의 지원 등은 선언발표와 함께 효력이 발생한다.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장쩌민(江澤民) 주석을 불러들여 급격히 가까워지는 미국과 중국관계에 제동을 걸려고 했던 일본으로선 과거사 문제로 용을 그려놓고 마지막으로 눈알을 그려넣는 화룡점정(畵龍點睛)에는 실패한 셈이다. ◎중·일 관계 일지 ▲72년 9월=중·일 공동성명 조인 ▲78년 8월=중·일 평화우호조약 조인 ▲88년 5월=오쿠노(奧野) 국토청장관 “중국에 대한 침략의 의도는 없었다”고 망언. 오쿠노 장관 사임 ▲89년 6월=톈안먼(天安門)사건으로 일본 제3차 엔차관 및 각료급 접촉 동결 ▲91년 8월=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총리 방중 ▲92년 4월=장쩌민(江澤民) 총서기 방일 ▲95년 8월=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전후 50년 담화발표,중국 핵실험 ▲97년 9월=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일본총리 방중 ▲97년 11월=리펑(李鵬) 중국총리 방일 ▲98년 4월=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부주석 방일
  • 江澤民 주석 中 국가원수론 첫 訪日/日 “침략 구두로 사죄”

    【도쿄 黃性淇 특파원】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25일 오후 일본에 도착,5박6일간의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중·일 평화우호조약 체결 20주년을 기념해 이뤄진 장주석의 이번 국빈방문은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이다. 장수적은 이날 전용기편으로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성명을 통해 “중·일 관계의 역사적 경험을 진지하게 총괄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두 나라의 우호협력 발전에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지적,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있는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장주석은 이날 저녁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베푼 비공식 만찬에 참석한 뒤 26일 오후에는 정상회담을 갖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양국관계의 청사진을 담은 공동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대 쟁점이었던 과거사 사죄문제에 대해 오부치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구두로 사죄의 뜻을 표명하고,공동선언에는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負市) 총리가 담화문에서 표명한 ‘반성’이라는 표현을 포함시키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 수출업체 ‘웃고’ 내수업체‘울고’/재경부 전국 23개 업체 조사

    ◎제조업 실물경기 양극화 현상 심화 수출업체는 원­달러 환율 상승에 힘입어 호조를 보이고 있는 반면 내수업체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경기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수도권 등 전국 4개 권역 23개 제조업체를 방문해 실물 경기동향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5일 발표했다. 조사결과 대부분 업체들은 내수침체를 수출 증대로 해소하려고 노력중이며 자금사정도 수출업체는 별 어려움이 없으나 내수위주 기업은 은행측의 대출금 상환 요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도 경기에 대해서는 상반기까지는 올해와 비슷하게 어둡게 내다보고 있으나 하반기부터는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조선과 신발 등 일부 수출호조업체들은 지난 3·4분기(7∼9월)부터 이미 경기회복세를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인력상황은 실업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지난해보다 대체로 나아졌다는 평가이지만 이른바 3D 업종은 취업기피로 여전히 인력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자구노력의하나로 명예퇴직과 정년단축 등을 통해 인력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임금은 총액 기준으로 10∼15% 가량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 미분양주택 3개월째 감소

    ◎10만6,612가구로 전월보다 3.1% 줄어 미분양주택이 최근 신규분양주택의 청약호조 등으로 3개월째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건설교통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월말 현재 미분양 주택은 9월보다 3.1% 줄어든 10만6,612가구로 지난 7월 11만6,000가구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3개월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소형주택에 대한 세제지원 등 주택경기활성화 시책의 효과와 신규 공급된 주택물량이 축소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준공후 미분양 주택은 주택경기의 장기 침체현상으로 전달보다 1,115가구 증가한 1만2,681가구를 기록하고 있다. 미분양주택은 특히 수도권에서 큰폭으로 줄어들었는데(전달보다 8.2%인 2,651가구 감소) 이는 주택가격이 바닥에 이르렀고 중도금 대출 등으로 지금이 주택구입의 적기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건교부는 분석했다.
  • 중국이 러 대신 美 견제역 할까/江澤民 22일부터 러·日 순방

    ◎다원적 국제질서 필요성 강조… 러시아와 공감대 강화/첫 訪日 서먹한 과거 청산… ‘중국붐’으로 우정 다지기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이웃 나들이가 이어진다. 22일 러시아로 떠났다가 25일부터는 6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을 찾는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돌아온 직후에 이어지는 해외 순방이다. 덕담이나 주고 받기 십상인 정상회담. 내막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장쩌민 외교’의 핵심이 감지된다. 차제에 이웃들과 유대를 다져 세계 맹주자리를 굳히려는 미국을 나름대로 견제하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옛 소련이 무너지면서 미국을 견제하던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소련붕괴 이후 6번째 회담을 갖는 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이번에 ‘정치 공동선언’을 발표한다. 다원적 국제질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예전보다 더욱 미국 견제의 공감대를 두텁게 하고 군사기술 등 각종협력 강화의 다짐이 발표될 전망이다. 두나라는 코소보 사태나 이라크 사태와 관련,미국의 정책을 함께 견제해 왔다. 일본 방문에선 미국에 밀착,중국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의심많은 이웃’의 경계늦추기에 촛점이 맞춰져 있다. 일본이 96년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겨냥 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마련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벌어져 왔다. 장쩌민의 방문은 국가주석으로서는 첫번째고 올해는 중·일 평화우호조약체결 20주년까지 겹쳐 우호분위기를 확산시키는데는 적기. 장 주석은 6일이나 머물며 일본에서 ‘중국붐’을 일으켜 보겠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비위만 맞추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와세다(早稻田)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준다고 했지만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했다. 1차대전때 중국에 굴욕적인 외교를 강요했던 오쿠마 시게노부 당시 총리가 세운 대학이기 때문이었다. 타이완 문제,역사 인식문제 등 껄끄러운 현안은 제기하되 쟁점화는 시키지 않겠다는 게 중국의 계산이다. 중화(中華)의 자부심을 애써 감춘채 떠나는 장쩌민 국가주석의 외교 행로가 얼마나 빛을 발할 수 있을 지는 좀더 지켜 볼 일이다.
  • 성공적 구조조정 삼성 ‘표정관리’

    ◎200개 사업 分社 등 성과 점차 가시화/수출 늘고 외화유치로 자금 여유 생겨 삼성이 신났다. 연초부터 추진해 온 구조조정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는데다 거액의 외자유치와 수출 호조가 맞물려 연일 휘파람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표정 관리’에 신경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에는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는 정부로부터 잘하고 있다는 ‘칭찬’도 들었다. 구조조정 사령탑격인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13일 “삼성이 200여 사업부문을 분사화하고 있고,부실계열사 정리와 외자유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19일에는 삼성자동차가 사원 강제판매에 대해 공정위로부터 2억4,000여만원의 과징금밖에 부과받지 않는 ‘횡재’를 했다. 1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대우자동차와 대조적이다. 삼성은 올들어 27억8,600만달러의 외자를 유치,이 부문에서 단연 선두다. 5억달러 규모의 부천 반도체공장도 해외매각을 앞두고 있어 올해안에 35억달러 이상의 외자도입이 예상된다. 또 1만명 이상을 정리했고 5대 그룹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대산 석유화학단지와 항공기,선박용 엔진부문을 털어냈다. 부담스러운 것이라면 삼성자동차 정도다. 인원정리와 경비절감을 통해서도 올해 15억달러 이상을 절약했다. 주식시장에서도 14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이 14조5,000억여원으로 전체 상장사의 15.5%. 2위를 3배 가량 앞서는 부동의 1위다. 이때문에 업계에서는 삼성이 머지않아 대대적인 사업확장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외자유치와 구조조정으로 자금에 여유가 생겼고 특히 기아자동차 인수를 위해 준비했던 자금이 인수포기로 ‘남아돌게’ 됐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통신사업에 눈독들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 산자부 내년 실물경제 전망/중반께 생산·수출·내수 동반 회복세

    ◎밖으론… 新3低·대외신인도 회복 맞물려/안으론… 구조조정 마무리·외환시장 안정 정부가 내년도 실물경제에 파란불이 켜질 것으로 전망하고 나섰다. 산업자원부는 17일 업종별 실물경제동향 분석을 통해 주요 업종 대부분의 경기가 내년 들어 회복될 것으로 점쳤다. 이같은 전망은 각 업종별 단체와 기업들의 전망을 종합 분석한 것으로,일부 국내외 연구기관들의 비관론과 배치돼 주목된다. ◆경기저점은 언제인가=산업자원부는 빠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에 우리 실물경제가 바닥을 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중반부터는 대부분의 업종에 걸쳐 생산·내수·수출 등 실물경제의 3대 축이 모두 회복세를 보이리라는 분석이다. 산자부는 우선 대외적으로 저(低)달러,저금리,저유가의 신(新)3저의 도래와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 회복을 그 요인으로 꼽았다. 대내적으로는 기업의 구조조정 작업이 연내에 매듭돼 경영안정을 꾀할 수 있는데다 외환·금리시장이 안정세에 접어든 점을 지목했다. ◆업종별 전망=우리 수출의 핵심업종인 자동차와 반도체의 회복세가주목된다. 자동차는 신3저 효과와 내수 회복에 힘입어 생산과 수출 모두 큰폭의 신장세를 보일 것으로 분석됐다. 생산은 올해보다 16.7%가 증가한 245만대,수출은 11.1%가 증가한 150만대에 이르리라는 전망이다. 반도체도 세계시장의 공급물량이 줄어들고 가격도 지난 6월부터 회복세를 보임에 따라 10%정도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일반기계류와 철강 조선 등의 산업기상도도 ‘맑음’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다. 기계류는 자동차와 반도체등 전방(前方)산업의 수출 호조로 내수가 5.5% 증가하고,수출 역시 아시아시장의 점진적 회복으로 1.8%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올해 극심한 내수침체로 사상 처음 생산감소를 기록한 철강 역시 내년에는 경기부양책의 효과로 생산과 내수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점쳐졌다. 다만 수출은 주요 수입국과의 통상마찰,주요 경쟁국의 저가수출공세 등에 부닥쳐 4.8% 감소하리라는 분석이다.
  • 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14일

    의 원 명 질 의 요 지 柳在乾(국) ­대통령의 대북 특사파견도 검토할 단계가 됐다고 본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본회의를 정례화하도록 건의할 의향은. 鄭在文(한) ­지난 9월 가서명된 한·일어업협정문을 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있는가.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대응전략은 무엇인가. 金顯煜(자) ­한·러관계 복원을 위한 대책과 북·러 신우호조약 체결에 대한 대비책 및 동북아 평화정착을 위해 중국을 끌어낼 전략은 있는가. 朴成範(한) ­영변 인근 지하의 핵시설 의혹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가까운 시일내에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고 보는가. 林福鎭(국) ­연간 30만명에 달하는 잉여병력을 환경보호에 투입하는 녹색군을 창설하고 5년간 10만의 정보 인력을 군에서 양성할 것을 제안한다. 鄭亨根(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崔章集 위원장의6·25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변해 달라. 李東馥(자) ­정부는 현대의 상업주의에 편승해 ‘햇볕정책’에 불을 붙여 보겠다는 위험한 발상을 버려야 한다. 실정법 저축여부도 따져야 한다. 全錫洪(한) ­금강산관광이 새로운 간첩활동의 연계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데 정부의 예방대책은 무엇인가. 입북료의 사용처도 주시해야 한다. 金星坤(국)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그 효과를 어떻게 기대하는가.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와 평통자문회의 역할 분담은. 朴世煥(한) ­합참의장이 이번 대통령의 중국방문에 수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뜻이 있는 것이 아닌가.
  • 美 추가 금리인하 늦출듯/10월 소비동향 예상밖 호조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하를 재고할 것으로 보인다고 경제전문가들이 14일 전망했다. 이들은 당초 FRB가 17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미국 경제의 침체를 방지하기 위해 또다시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상무부가 발표한 10월중 소비동향이 예상 외의 호조로 나타남에 따라 인하시기를 늦출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상무부가 이날 발표한 10월 중 소매판매증가율은 1%로 지난 5월의 1.2% 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당초 경제전문가들이 예측한 것보다 2배에 이른다. 미국 보스턴은행의 웨인 아이어스 수석자문위원은 이와 관련,“10월 중 미국 내 소비동향이 뜻밖에 높은 수준을 나타낸 것은 FRB로 하여금 추가 금리인하 단행시기를 미루도록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 대한매일의 성과와 과제 좌담회

    ◎구국언론의 혼 이어 국난극복 선도 기대/을사조약 고종 거부 보도·국채보상 주도/‘삼국공영’ 부당 지적… 자주적 사관 펼쳐/순한글판 발행… 국문학·여성계몽 큰 기여/관제 구각 깨고 민족지 위상 되찾아야/권력·자본에 예속된 언론 병폐 개혁주도를/‘벌떼 언론’ 악습벗고 냉철한 시각 가져야 □토론자 金泰昊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과정 高濟奎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金旻貞 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대한매일신보사는 11일 재창간을 맞아 참신한 시각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언론사적 의의와 현대 한국언론의 문제점 등을 진단하고 새롭게 태어난 ‘대한매일’의 바람직한 언론상을 제시해보기 위해 한국정치와 언론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3명을 초청,좌담회를 가졌다. ‘대한매일신보의 역사적 의의와 한국 언론비판’을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는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金泰昊씨(28)와 고려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高濟奎씨(26),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金旻貞씨(24)가 참석했다. ▲金旻貞=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배설(裵說)을 발행인으로 내세워 梁起鐸 등 우국지사들에 의해 1905년 창간된 뒤 1910년 폐간될 때까지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발행인이 영국인이어서 통감부의 탄압이나 검열 없이 자유로운 논조를 펼칠 수 있었다. 대한매일신보의 주요 활동을 보면 일본대사가 요청한 을사보호조약에 대한 고종의 조약거부 기사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철폐요구 기사 등을 실었으며 국채보상운동 당시 의연금 모집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高濟奎=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최고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는 등 민의(民意)를 가장 폭넓게 반영했던 신문이었다. 가장 독자가 많았던 것은 대한매일신보가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에 비해 세계사의 흐름을 자주적인 시각에서 정확하게 파악해 전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시 독립신문 등은 ‘동양 삼국 공영론’과 ‘중립 외교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매일신보는 ‘동양 삼국 공영론’은 일본의 동양 침탈을 합리화하기 위한 구실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간파해 알렸다. 또 ‘중립외교론’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힘을 키워야 한다는 ‘무비강병’(武備强兵) 등 자주적인 민족사관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일제가 통감부를 통해 대한매일신보를 몰래 사들인 뒤 ‘매일신보’로 제호를 바꿔 친일 기관지로 만든 것은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신문에 대한 직접적이며 가장 강력한 탄압 조치였다. 이를 통해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쉽게 집작해볼 수 있다. ▲金泰昊=독립신문에 비해 연구 사료가 거의 없어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매일신보는 항일투쟁과 반제국주의 입장에서 자유언론을 펼친 민족 정론지였다. 朴殷植 申采浩 張道斌 등 애국지사 논객들이 총결집해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관료의 무능 등에 맞선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 특히 다양한 독차층의 요구를 수용해 영문판,한글판,국한문 혼용판 등 다양한 형태의 신문을 펴냈다. 순한글판을 발행하며 국문학 발전과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도 부응한 신문이었다. ▲高濟奎=신문의 제호를 바꾼 것은 상징적인 의미 이상이어야 한다. 서울신문이 본래의 뿌리를 찾아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꾼 것은 해방후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관제 언론으로 왜곡된 서울신문의 폐단을 극복하고 대한매일신보가 보여줬던 민족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金泰昊=오늘의 한국언론은 대부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 신문마다 특징이 없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거의 같다. 비판의 논조와 대상도 비슷하다. 대한매일이 재창간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또 특징있는 신문이 돼야 한다. 독자들에게 대한매일의 강직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너나없이 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특색없는 비판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독특한 색채를 지녀야 한다. ▲金旻貞=한마디로 한국 언론은 ‘벌떼’근성을 지녔다. 모든 신문들은 자기만의 사고나 판단없이 사회적으로 부각된 이슈에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리고 다른 언론의 비판 수위와 강도 등을 살피며 자기의 시각이나 기사의 밸류 등을 판단한다. 거듭나는 대한매일은 이같은 기존 언론의 행태를 떨쳐버려야 한다. 아울러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토대로 기존의 틀을 깨치고 대한매일만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판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과거 정권에 예속돼 언론으로서의 제 구실을 못했던 구태를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 ▲高濟奎=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해도 개선이 되지 안는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의 문제를 다시 한번 지적하면 권력과 언론의 유착 문제다. 당근과 채찍 논리로 볼때 정권이 건네는 ‘당근’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또 재벌과의 문제로 기업이 언론을 소유하고 언론은 기업을 보호하는 유착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대한매일신보는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국권수호에 나섰던 신문인 만큼 시대의 중심이 돼야 한다.IMF 사태라는 시대적인 어려움,지역감정,통일 등 여러 문제를 푸는데 선봉이 돼야 한다. ▲金泰昊=언론에 대한 시민의 감시가 언론을 건강하게 만든다. 잘못된 정치의 문제는 곧 언론의 문제이며 잘못된 언론의문제는 곧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다. 신문이 건강해지려면 시민운동이 더욱 건강해지고 질적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일제 치하 대한매일신보가 독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당시 시대에 부응하는 항일운동과 교육계몽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새롭게 창간되는 대한매일은 이처럼 목표를 확실히 표방해야 한다. 또 과거의 전통을 이어 현재의 국난극복을 사시로 정해 놓고 이를 실현하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金旻貞=한국언론은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 보다는 지배계층의 목소리 만을 대변해왔다. 이로 인해 기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은 크게 결여됐다.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87년 6.10 민주화운동 당시 모든 신문이 그러했듯 거의 모든 기사가 강자의 편에서 작성됐다. 또 언론의 상업성은 위험수위를 넘어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일부 신문들은 광고가 지면의 50%를 넘어 광고지인지 신문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신문별 발행 부수도 공개되어야 한다. ▲高濟奎=사실 보도와 의견은 구분되어야 한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의견을펴는 신문이 많다. 모 신문의 이승복 사건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고려대교수(정치학과)에 대한 음해 보도 등 사회여론을 무시하고 자사의 이익에 따라 보도하는 행태을 많이 보았다. ▲金旻貞=10개의 중앙 일간지는 모두가 ‘우리는 국민의 여론을 반영한다’는 애매한 사시를 가지고 있는데 사시를 구체적화할 필요가 있다. 특정 정당이나 단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당파성을 가져도 무방하다고 본다. ▲高濟奎=신문사간 비판도 허용되어야 한다. 최근 신문사간 서로 공방이 오가는 것도 오히려 언론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金泰昊=신문사 마다 뚜렷한 개성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어 서로 비판을 못하는 것 같다. 한 사건에 대해 각 신문이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갖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高濟奎=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후 서울신문은 ‘민주 열사에 대한 재조명’ 등 신선한 내용을 게재하는 등 많은 변화를 보였다. 변화를 위해 여기저기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제 대한매일로 새롭게 뿌리를 찾은 만큼 흔들림 없는 굳건한 위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 ▲金旻貞=과거에서 배우라는 말을 하고 싶다. 대한매일이 과거의 대한매일신보에서 배울 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과거의 대한매일신보가 반제국주의와 항일 등 뚜렷한 역사의식을 지녔던 것처럼 과거의 전통을 계승해 새로운 역사 의식을 가져야 한다.
  • 대한매일 재탄생 金 대통령 축사 전문

    ◎참여민주주의·지식사회 앞장/일류 경제국가 건설 횃불되길 우리는 오늘 뜻깊은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기독교에 부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대한매일이 93년 만에 부활한 것입니다.을사보호조약이 있었던 1905년 8월11일 대한매일은 일제 강점에 항거해 국권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습니다.朴殷植 申采浩 梁起鐸 선생 등 선각자들과 영국인 裵說을 사장으로 해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일제 손아귀로 들어간 이 나라 국권을 지키는 것이 이 신문의 유일한 최고 목표였습니다.1907년 임금께 드린다는 글을 써서 을사보호조약이 일제 강권에 의해 이뤄진 만큼 무효이니 세계여론에 호소해 국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글을 썼다가 裵說 사장은 잡혀가고 여러가지 곤욕을 치렀습니다.또한 일제에 대한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켜 우리 경제가 일제 지배에 들어가는 것을 막자는 글을 썼다가 역시 裵說 사장이 잡혀가고 모진 탄압을 받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통감부의 농간에 의해 일제 손아귀에 떨어져 36년 치욕의 세월을 보내게 됐던 것입니다.우리는 오늘 대한매일 부활의 날에 그 정신을 살펴볼때 첫째로는 이미 말한 대로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나라의 운명이 경각에 있는 그때에 국권을 지키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굳은 결의와 열망을 담아 대한매일이 이를 대변하고 일어섰던 것입니다. 둘째는 나라를 지키는 것은 말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경제를 지키는 것입니다.우리가 일본 경제에 매달려 있는 한 국가 독립은 없으므로 국채를 사서 이를 보상하자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였던 것입니다.또 그 당시 단순히 대한매일만 창간한 것이 아니라 코리아데일리뉴스를 같이 창간,영자신문까지 만들어 우리 주장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지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로서는 놀라운 일을 선각자들은 했던 것입니다.그 때는 일본이 영국과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영국을 가장 어렵게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영국사람을 데려다 사장을 시켜 우리 국권을 지키는 데 활용했던 것입니다.또한 대한매일은 혼자서 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힘을 합쳐서 국채보상운동을 이룩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대한매일의 정신은 첫째는 국권을 지킨 것이고,둘째는 경제적 자립을 지킨 것이고,셋째는 세계와 더불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세계주의 생각을 가졌던 것이고,넷째는 국민의 참여속에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이러한 대한매일의 정신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것으로서 오늘 서울신문이 대한매일 이름을 다시 들고 나온 것은 결코 복고주의가 아니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고,과거의 탁월한 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 속에서 이 나라 국운을 개척하는 길로 나가기 위해서 서울신문이 대한매일의 정신을 다시 계승하는 일을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그러지 않고 만일 복고주 의로 간다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신문은 이제 대한매일로서 완전히 새로 태어나 21세기에는 산업사회에서 정보지식산업사회·문화관광사회로 나가는 선두에 서야할 것이고 민족주의 시대에서 열린 세계주의 시대로 나가는,그런 정신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민주주의,그것도 국민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 경제를 어려운 여건속에서 국민과 더불어 반드시 되살려 멀지않아 세계의 일류국가 대열에 설수 있는 경제국가를 세우는 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2건국,참여민주주의,시장경제,지식기반사회,건전한 정의사회,남북간 안보·화해·협력 추진,그리고 열린 세계주의로 가는 방향에 서울신문이 아닌 대한매일이 적극적으로 선두에 서 횃불이 되고 선구자가 될 것을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그것만이 지금부터 93년전 이 신문을 일으켜 민족 운명을 살리고자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한 우리 선열들,외국인이면서 이 땅을 사랑하고 이 국민에게 한없는 동정심과 친밀감을 갖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이 땅에 생명을 바친 裵說 사장 등의 뜻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서울신문이 이름을 대한매일로 바꾸는 것으로 끝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21세기 내일을 위해 과거정신을 훌륭히 살려나가는 일이 꼭 이뤄져야 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 金 대통령,대한매일 재탄생 축하의 밤 축사

    ◎민족수난기 국혼지킨 횃불/공익정론지 역할 다하라 金大中 대통령은 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매일 재탄생 축하의 밤 행사에 참석,서울신문이 53년 영욕의 역사를 마감하고 대한매일로 재탄생한 것을 축하하면서 공익정론지로서 역할을 다해주기를 기원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대한매일은 일제 강점기에 처해 국혼을 지키기 위해 일어섰으며,일제 수난기에 나라의 국혼을 지키는 게 최고 사명이었다”면서 “특히 1907년 임금께 드리는 글을 써서 을사보호조약이 일제의 강권에 의해 체결된 만큼 무효라고 세계 여론에 호소,국혼을 되찾아야 한다고 썼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회고했다.또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다가 裵說 사장이 잡혀가는 등 오랜 탄압을 받다가 통감부의 농간에 일제하 치욕의 세월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김 대통령은 “앞으로 대한매일이 제2건국 정신을 적극 선도하는 햇볕이 되고 선각자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에 앞서 金대통령은 대한매일 사옥1층에서 조형물 제막식 행사에 참석했으며 20층에서 열린 축하의 밤 행사에서 재탄생 축하 케이크를 자르며 축하했다. 대한매일신보사 車一錫 사장은 인사말에서 “구한말 순수 민족정론지로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 정신과 민족혼을 다시 이어받아 제2건국에 앞장서면서 21세기 선진국으로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韓­러시아 함께 가는 21세기/세르게이 페도로프(해외기고)

    러시아는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상호간의 부정적 이미지 타파와 전분야에 걸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동북아문제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세르게이 페도로프씨는 최근 러시아 2대 일간지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에 기고한 ‘한·러관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지금이 모든 분야에서 진일보한 협력관계를 맺어야 할 시기라는 게 러시아정부의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특히 한국은 냉전사고의 잔재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는 러시아의 변화를 인정하고 생각을 바꿀 때”라고 강조했다. 금융 위기가 몰아닥친 러시아는 경제 회복,국제 기구와의 관계유지 등 국내 문제에 매달려야 할 상황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동반자,특히 건국 50주년을 맞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결코 소홀할 수 없다. 한국과 러시아가 유대관계를 맺은 지는 매우 짧다. 국교수립 8년째에 불과하다. 올해는 지난 9월30일 국교수립 기념일을 앞두고 외교관 맞추방 사건이 터져 양국관계가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지만 러시아 대사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의 노력으로 잘 수습됐다. 양국의 축적된 외교역량을 입증한 계기가 됐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서명한 한·러 우호조약으로 양국이 외교관계를 맺은 이래 러시아는 양국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그간 양국간에는 숱한 최고위급,고위급 쌍무협정이 맺어졌다. 이러한 관계는 우선 한반도 문제 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한국은 남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 6개국이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남북한,미·중만의 4자회담 구도에서 탈피,일본과 러시아의 역할을 인정한 것이다. 한·러간의 교류는 경제 및 문화 유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양국간 연간 교역량이 30억달러를 넘어섰고 한국과 러시아는 100여건의 합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러시아 모두 심각한 금융위기에 처해 양국간 경제협력계획은 조정이 불가피하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다. 러시아는 신뢰구축을 위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8억달러에 달하는 대한(對韓) 부채상환을 거듭 확약해 왔다. 지급계획이 확정된 부채의 일부는 최신 군장비 제공으로대체할 계획이다. 이는 한국정부에도 득이 된다. 한국정부는 군장비 공급선 다변화가 자주외교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러시아는 한국에 대한 군장비 공급이 한반도 세력균형의 와해를 야기시키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북한에도 이를 항상 강조했다. 러시아가 북한을 내치고 한국과 수교를 맺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한반도정책은 남북을 똑같이 대하는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해두고 싶다. 한국과 러시아간의 투자협력은 경제유대의 핵심임에도 아직 미미하다. 한국은 러시아 자유경제지역 ‘나홋카’에의 산업복합단지 건설,이르쿠츠크 가스프로젝트 등 2∼3개 굵직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투자협력을 한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조인트펀드 형태가 좋을 것 같다. 한국은 또 러시아의 몇몇 선진기술에 관심이 많다. 한국기업들은 러시아내의 한·러 합작 과학연구센터에서 러시아 혁신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즉흥적이어서는 안되며 지적재산권 보호 등 강력한 제도적 장치가 수반되어야한다고 본다. 경제·과학의 기반이 잘 닦인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협력 증진의 여지도 아직 크다. 장기적으로는 각자 국내에서 상대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관계를 한때 소원하게 만들었던 심리적 유산을 청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은 냉전사고의 잔재로 아직 호전적이고 팽창주의적 이미지로 과장돼 있는 러시아의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양국은 이러한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러시아는 한국과 더욱 깊이있는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 한·러 교류확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한국정부의 언급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정부가 말 따로,행동 따로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절정의 韓日 최고수/盤上대전

    ◎이창호­조치훈 새달 2일 삼성배 4강 격돌/李 6승1패 우위… 제2 전성기 趙 설욕 다짐 이창호 9단과 조치훈 9단이 격돌한다.다음달 2일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열리는 제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대회 4강전에서다. 역대 전적은 6승1패로 이 9단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이 9단은 92∼93년 한일TV정상속기전에서 한차례 승패를 나눠 가졌지만 93년 4기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3­0으로,96년 7기 동양증권배 준결승에서 2­0으로 조 9단을 일축했다.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때다.96년만 해도 이 9단은 주도권은 쥐고 있었지만 조훈현 9단,유창혁 9단과 타이틀을 나눠가지고 있었다.조치훈 9단도 일본 3 대기전 가운데 본인방,기성전 등 2개를 차지,제2의 전성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2년 10개월이 지난뒤 두사람은 이무기에서 용으로 승천했다.이 9단은 현재 5개의 국제기전 가운데 삼성화재배,동양증권배,후지쓰배 등 3개의 타이틀을 쥐고 있는데다 9단이 출전할수 있는 국내 12개 기전 가운데 10개를 차지하고 있다.조 9단도 일본 3대기전인 기성,명인,본인방을 2연패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다.특히 올해는 본인방 10연패의 신기록을 세운데다 통산 999승을 거둬 1,000승을 눈앞에 두고 있을 정도로 호조다.
  • 경기지표 일제히 ‘청신호’/제조업 가동률·생산·수출 증가세 반전

    ◎통계청·韓銀 “반짝경기 반영… 본격회복 속단 일러” 국제통화기금(IMF)체제 돌입 후 처음으로 9월중 주요 경기지표에 일제히 청신호가 켜졌다. 올들어 처음으로 지난달 제조업 가동률이 70%대로 올라섰다. 생산이 0.3% 증가하는 등 출하 소비 등 건설부문을 제외한 주요 경기기표들이 올들어 일제히 가장 호전세로 돌아섰다. 수출도 6개월만에 처음으로 전월대비 증가세로 돌아섰다. 급락하던 설비투자와 도소매 판매도 낙폭이 줄었다. 그러나 건설 시공실적은 9월중 50.3%가 줄어 감소폭이 더 커지는 등 아직 경기회복을 점치기에는 이른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과 한은이 30일 발표한 9월중 산업동향과 국제수지동향(잠정)에 따르면 수출(통관기준)은 노사분규가 타결되고 미국,유럽연합 등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회복돼 8월보다 11.5%가 늘어난 109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3월 이후 6개월만에 처음 증가한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폭도 8월보다 14억6,000만달러 늘어난 36억8,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올들어 지난달까지의 경상수지흑자 규모는 314억6,000만달러로 늘어났다. 산업생산은 작년 동월대비 0.3% 증가,올들어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9월중 제조업 평균가동률도 70.0%로 전월의 62.9%보다 늘면서 올들어 처음으로 70%대를 기록했다. 출하는 반도체와 운송장비 등의 수출호조로 올들어 가장 작은 폭인 2.9% 감소에 그쳤다. 소비는 도소매 판매가 작년동월 대비 11.9% 감소해 상반기 평균 감소폭(13.2%)이나 지난 8월(16.7%)보다 작았다. 설비투자 역시 지난 3월 이후 40%대씩 감소했으나 9월에는 마이너스 37.1%로 감소폭이 다소 둔화됐다. 그러나 국내 건설수주는 작년 동월 대비 50.3%의 감소세를 보여 상반기 평균 감소율 45.0%나 지난 8월 마이너스 41.9%에 비해 감소폭이 오히려 확대됐다. 앞으로 6∼7개월 후의 경기를 예고해주는 경기선행지수는 작년 동월 대비 0.8%로 전월(-2.9%)보다 개선됐다. 통계청과 한은측은 “생산과 수출지표가 호전된 것은 조업일수 증가,파업 및 장마 등의 요인에 의한 반짝경기가 주로 반영된 것으로,본격적인 경기회복으로 속단하기는아직 이르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 주요 경제지표 분석/9월말 기준

    ◎늘어나는 외국인 투자/1,016건에 46억3,500만弗 유입 국내 공장이나 기업을 사러오는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삼성동 무역협회 빌딩 내에 개설된 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산하 외국인 투자지원센터에는 요즘 하루 평균 40건,많을 때는 100건에 달하는 외국인이 직접 방문하거나 전화로 상담하고 있다. 지원센터에 파견 근무하는 산업자원부의 申昌東 서기관은 “문의건수가 여름철보다는 2배 가까이 는 데다 요즘은 부동산 구입,공장건설과 기업인수합병 절차 등 실질적인 투자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미국의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의 제프 바이블 회장이 담배인삼공사의 지분을 사겠다고 밝힌 것을 비롯,국제 생활용품회사인 프록터 앤드 갬블사의 덕 야거 회장,세계 최대 전기업체인 잭 웰치 회장 등이 투자를 위해 방한했다. 여의도에 있는 30대 재벌의 빌딩이 외국에 매각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외국인투자는 지난 1∼9월간 1016건,46억3,500만달러로 지난해 동기대비 건수로는 32.1%가 증가했으나 액수로는 15.4%가 줄었다. 재정경제부 文在于 투자진흥과장은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이 확정된 9월 초 이후 외국인의 문의가 크게 늘고 있어 조만간 실제 투자액 급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등 하향세/워크아웃 확정단계 부도율 더 내릴듯 지난 9월 전국 어음부도율이 0.31%로 외환위기 이전인 지난해 9월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30일 “7∼8월 어음부도율이 높았던 것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 선정 여파가 주 원인이었다”며 “그러나 9월부터는 워크아웃 방안이 확정되는 단계로 접어들면서 어음부도율도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즉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면 융통어음을 결제하지 못해도 부도유예처리되지만 결제하지 못한 금액은 부도액으로 잡히기 때문에 어음부도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크아웃 대상 기업 대부분이 회생하는 등 신규 부도발생 업체가 줄고 있으며,새로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는 업체도 거의 없어 향후 어음부도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은은 “10월 어음부도율도 9월보다 낮아질 것”이라며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적 분위기가 약화되면서 창업법인 수도 급증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재 7% 초반대인 콜이나 9%대인 회사채 등의 시중금리도 하향 안정세를 보일 전망이다. 한은은 외환시장 안정세가 유지되면 콜금리를 추가 인하할 여지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11월에는 콜금리의 추가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여겨진다. IMF(국제통화기금)와의 합의에 의해 내년부터 본원통화(RB) 한도가 없어지기 때문에 금리인하 전망은 밝다. ◎‘파란불’ 경상수지/흑자 누계 311억弗… 올 목표달성 무난 경상수지는 연말까지 매달 20억∼30억달러씩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9월까지 경상수지 흑자 누계액은 311억달러를 넘어섰다. 이 때문에 최대치로 잡을 경우 당초 전망치 370억달러를 넘어 올해 400억달러의 흑자 달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무엇보다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자동차,철강 등수출이 최근 들어 약진,이같은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9월 중 자동차 수출액은 전달보다 4억6,000만달러 는 10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동기에 비해서도 28.9%의 신장세를 보였다. 철강제품은 8월보다 6,000만달러 늘었다. 鄭실장은 “자동차의 경우 노사분규가 해결된 데다 최근 각사의 신모델 수출이 호조를 보여 당분간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나머지 품목의 수출도 연말에 다가갈수록 활기를 띨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엔고의 효과는 실물 부문에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3개월여 시차를 두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도 전망은 이에 훨씬 못미친다. 지난 29일 IMF는 9월에 낸 전망치(267억달러)보다 훨씬 준 200억달러로 축소했다. 다만 우리의 주력시장인 미국 경제가 침체의 골로 빠져들지 않고,일본 경제가 경기부양책의 ‘약발’을 받아 장기 불황에서 헤어난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 高宗 밀서사건(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0)

    ◎을사조약 강제성 낱낱이 들춰/영지게재 6개 조항 1면 논설통해 소개/일제 정정요구 거부/밀서 사진으로 전재 “고종 진의 확인” 공개 1905년 을사조약 체결 뒤 발생한 ‘고종 밀서사건’은 언론을 통해 을사조약의 강제성과 대한제국의 주권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것이다.한국침탈을 강행한 일제는 이 사건으로 이미지를 크게 손상받았고 한반도 정책에서 더욱 강경책을 시도하게 된다. 특히 이 사건은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국내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면서 반일감정을 급속히 확산시켰고 결국 일제가 대한매일 등 민족지를 탄압하고 노골적인 침략정책을 진전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이다. 고종 밀서사건은 대한제국 황실과 영국의 런던트리뷴 특파원인 더글러스 스토리 간에 극비리에 진행된 일종의 작전이었다.스토리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주한 미국공사 모건을 만나 을사조약 체결전말을 들은 뒤 고베에서 통감부 총무장관으로 새로 임명된 스루하라 일행과 함께 한국에 온 것은 1906년 초. 서울의 지인들과 두루 접촉한 끝에 고종을 만난 스토리는1906년 1월29일 고종의 밀서를 전달받는다.밀서는 모두 6개 조항으로 고종이 ▲조약에 조인·동의하지 않았고 ▲조약을 일본이 반포하는 데 반대했고 ▲독립권을 한치도 타국에 양여할 수 없고 ▲이 조약의 외교권도 근거가 없으므로 내치상 한건도 인준할 수 없고 ▲통감의 주둔을 허락하지 않는 동시에 황실권도 외국인에 허가하지 않고 ▲세계열강이 한국을 집단보호통치하되 그 기한은 5년이 넘지 않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고종의 붉은 옥쇄가 찍힌 이 밀서는 고종의 측근들이 일본측 정탐꾼들 눈을 피해 바짓가랑이 속에 감추고 나온 것이다. 스토리는 이 밀서를 대한매일 사주 裵說에게 보여준 뒤 일본군의 경계망을 뚫고 제물포에서 노르웨이 배에 올라 2월7일 중국 지부에 도착한다.영국영사 오브라이언 버틀러를 찾아가 고종의 밀서사실을 알리고 밀서내용 기사를 런던트리뷴 본사로 송고했다. 다음날 트리뷴 3면 머리에 이 기사가 실렸다.“을사조약은 고종의 재가를 받지 않았고 고종은 실질적으로 포로의 신세”라는 내용이었다.을사조약 체결 경위와밀서 6개항이 영문으로 함께 번역 게재됐다. 일본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주영 일본대사관은 트리뷴의 보도가 전혀 사실무근임을 주장하고 나섰다.또 고종이 보호조약에 날인하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오히려 고종이 이 조약에 동의했다고 억지를 부렸다.그러자 스토리는 2월10일자 또 다른 기사로 일본의 주장을 반박했다.일본이 한국 황제와 대신들을 협박해 보호조약을 체결하게 된 상세한 전말을 고종 측근의 말을 인용해 썼다. 이 기사는 트리뷴에 실린 뒤 로이터 통신을 타고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다.대한매일은 2월28일자 1면 논설 ‘保護’에 트리뷴의 기사를 소개했고 코리아 리뷰도 일본에서 발행된 신문을 인용,한국황제가 을사조약의 신빙성을 공개적으로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고종 밀서사건은 영국·일본·중국·한국 신문에 계속 보도됐고 1907년 1월부터 한국의 분위기를 확 바꿔놓는다.스토리는 1906년 10월부터 트리뷴에 ‘동양의 장래’란 시리즈를 연재했는데 다섯번째로 12월1일자에 문제의 밀서를 크게 실었고 대한매일은 이 밀서 사진을 1907년 1월16일자에 그대로 올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통감부가 적극 나서기 시작한다.밀서가 근거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무색해졌고 고종의 진의를 한국민들이 확실하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통감부는 “고종이 밀서를 준 일이 없다”고 강력 부인한 뒤 대한매일에 제동을 걸었다.裵說 추방책을 영국정부와 타진하기 시작했다.먼저 “밀서는 불순한 자들이 한일 양국의 친의(親誼)를 해치려고 날조한 것”이라는 내용을 1월21일자 관보에 실었다.또 한국정부 외사국장 李建春을 시켜 “대한매일에 실린 밀서기사는 사실무근이니 이를 정정하라”는 공문을 裵說에게 보냈다. 몇몇 친일계열 신문이 관보에 실린 내용을 게재했지만 대한매일은 오히려 밀서가 진짜라는 주장으로 맞섰다.1907년 1월23일자에 “이 밀서가 거짓이 아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까지 갖고 있으나 그 증거를 제시하면 관련 한국인들에게 보복이 떨어질 것이므로 이를 내놓을 수 없다”는 기사를 싣고 기사정정 요구를 무시했다. ◎고종 밀서 전말/한국의 중립화 목표/미·러 협조 실현안돼/외지에 일 음모 고발 고종의 밀서사건은 국내 반일감정 악화에 따른 통감부의 여론통제 방침을 더욱 강경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다.통감부는 밀서사건 뒤 곧바로 대한매일 등 항일 민족지의 논조를 희석시키고 통감부의 정책을 그대로 대변할 수 있는 친일지들을 만들어 갔다. 그러면 이처럼 일제를 자극한 고종의 친서는 어떻게 해서 나온 것일까.외세 강점기 이 밀서가 나오기까지 고종의 생각은 한국이 시종일관 중립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종은 일제 강점을 막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방향으로 열강의 협조를 구했고 을사조약이 체결되면서 세계 각국에 이를 알리기 위한 비밀문서까지 만들어주게 된 것이다. 밀서사건 때까지 고종의 이같은 노력은 수차례에 걸쳐 추진됐었다.1900년 주일 한국공사 李夏榮이 처음 제기한 ‘한국의 중립화’안은 러일간에 고조된 긴장상태로 실효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 사실.그리고 4년 뒤인 1904년 1월21일 고종의 명을 받은 외부대신 李址鎔이 한국의 엄정중립을 명기한 성명을 냈다.각국 주재대표 11명이 각국 정부에 이 선언서를 알렸지만 결국 2월23일 한일의정서가 체결됐고 이같은 중립화 정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말았다. 여기서부터 고종은 열강의 힘을 본격적으로 빌리기 시작한다.1905년 2월 고종은 러시아 육군소장 데시노를 통해 러시아 황제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밀서를 보냈다.이 밀서는 주한 러시아 공사였던 파블로프를 통해 러시아로 전달됐다.또 을사조약 직전인 그해 10월에는 헐버트를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냈다. 프랑스 주재 한국공사 閔泳瓚을 미국에 보내 미국의 개입을 요청한 것도 유명한 사건이다.민영찬은 12월초 현지에 도착해 미 국무장관 루트에게 을사조약의 무효를 주장했으나 미국은 무심한 입장표명을 했다. 결국 고종은 이같은 노력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국내에 와있던 외국기자를 통해 만국에 알리는 방안으로 밀서를 쓰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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