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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세계서 가장 영어를 적게 쓰는 나라”

    ◎소 바자노프 박사(외교아카데미 부원장) 본지에 체한기 기고/적극적 경쟁이 가능한 민주주의에 깊은 인상/한국노동자들은 동구보다 더 나은 생활 즐겨 지난 8월7일 방한,열흘동안 한국에 머물며 국내 산업시설을 둘러보고 돌아간 소련 외무부산하 외교아카데미부원장 페트로비치 유진 바자노프박사(47·국제정치학)가 최근 서울신문사에 방한기를 보내왔다.바자노프박사는 이 글에서 한국의 놀라운 경제·사회발전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앞으로 한국이 동북아에서 주요국가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러시아 속담에도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나는 이말을 얼마전 내생애 첫 한국여행을 통해 몸소 실감했다.꽤 오랫동안 한국을 연구해온 나로서는 이번 한국체류를 통해 책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수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금부터 기술하는 나의 방한기는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과 느낌을 모두 피력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몇가지 사항을 중심으로 소감을 밝히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하기 하루전 나는 모스크바에서 소콜로프 주한대사와 만나 한국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소콜로프대사는 그당시 한국인들의 친절에 대해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우호적이며 친절한 국민』이라고 극찬했다.한국체류기간 9일동안 나는 이말이 절대적 사실임을 체험했다.내 친구 김영만씨(서울신문기자)는 방한기간중 매일 상오9시면 나를 찾아와 그날의 일정을 차질없이 준비해 주며 한국체류에 불편이 없도록 섬세하게 배려해줬다.서울신문사 초청으로 이루어진 방한이었기에 서울신문의 각별한 배려가 있었다는 점을 십분 감안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단한 친절이었다.때문에 이 자리를 빌려 무엇보다도 먼저 서울신문사측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얼마전 나는 구한말 소련인이 쓴 19세기 조선사를 읽은적이 있다.그 책에서 저자는 『조선인들은 그 어떤 물건도 만들지 못하며 또한 만들 능력도 없다』고 규정했으며 『때문에 그들은 필연적으로 보다 산업화된 나라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고 기술했다. 또 2차대전 직후 미국학자들은 한국의 즉각적인 독립에 대해 『한국인들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회의론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위에서 언급한 소련인 저자나 미국학자가 오늘의 한국을 보게된다면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국내에서 디자인되고 조립된 물건이 홍수를 이루고,세계시장에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상품들이 한국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자체가 믿기지 않을 것이다. 뉴욕에서 근무하는 한 소련인외교관은 최근 한국의 이같은 경제성장과 관련,『미국에서 사용되는 소비품 가운데 약80%정도가 한국산』이라고 말한바 있다.소련의 기업들은 요즘 경쟁적으로 한국상품과 기술을 얻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며 한국이 세계최고의 건설·조선·섬유기술을 보유한 나라라고 믿는다.모스크바에서 큰 플랜트사업을 벌이고 있는 나의 한 지우는 방한전 나에게 『서울에 가면 꼭 한국인 기업가를 알아보라』고 부탁하면서 『한국이야말로 가장 최선의 파트너』라고 극찬했다. 나는 한국사회 내부에 소득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문제와 관련해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불균형문제는 세계 그 어느곳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며,심지어 공동분배를 강조하는 공산사회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소련·동독·북한등 사회주의국가는 불균형문제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어 자본주의의 중요요소와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동유럽의 노동자들보다 더 나은 생활을 즐기고 있다.나는 광양제철소를 둘러보면서 소련의 여느 제철소와 비교하지 않을수 없었다.광양제철소에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의 봉급은 소련의 철강노동자들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그들이 향유하는 교육,의료시설등은 부끄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또 공해방지시설 때문인지 주변의 대기오염도 소련에 비해 10배정도는 적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역사는 일천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비해 많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한국의 정치는 매우 적극적인 경쟁이 가능하다.이러한 정치적 조건은 사회의 기본적 틀이 위협받지 않는한 건강하고 생산적인 요소가 된다.한국의 정치형태를 동유럽및 소련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한국은 장기간의 정치적 혼란이나 큰 유혈참극등을 경험하지 않고 비교적 순탄하게 현체제를 구축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독재로 회귀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한국인들은 민주주의의 활성화를 기회가 있을 때면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의 정치적 안정­물론 학생들의 데모는 존재하지만­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을 다녀가기전 나는 한국은 과거에는 중국문화의 영향권 아래에,현재는 미국문화의 영향권 아래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같은 내판단이 전적으로 잘못이었음을 이번 방한을 통해 깨달았다. 한국은 과거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액면 그대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으로」변형시켜 소화했다. 한국의 건축·문화·예술등에서는 중국의 그것과는 다른 한국적 취향을 그대로 드러냈다.그리고 음식은 전적으로 한국의 독창성을 반영했다. 한국은 아마도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도 영어를 적게 사용하는 나라중의 하나일 것이며 국내상품을외제보다 선호하는 국민들일 것이다.
  • 수도권 땅 3백60억대 사취/한패 5명 구속

    ◎등기서류 위조,12만9천평 가로채 서울지검 조사부(박주환부장검사·황희철검사)는 28일 윤병을씨(62·전과2범·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244의 89)와 이만귀씨(55·광산업·전주시 덕진구 팔복동1가 197의 15)등 5명을 공문서위조및 사기등 혐의로 구속하고 박수은씨(42·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527의 28)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은 또 김재일씨(30)등 3명을 입건하는 한편 이들로부터 공문서위조에 쓴 호적등본용지·직인·위조서류·스탬프등 84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윤씨등은 지난 5월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60에 있는 한모씨(46·강남구 신사동)의 임야 4천7백여평을 등기서류를 위조해 한씨가 김씨에게 상속시킨 것처럼 꾸며 금융기관에 담보로 맡기고 8천만원을 대출받으려 하는등 지난해 3월부터 서울·경기 일대의 땅 12만9천여평 3백60억원어치를 사취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로 피해자 한씨의 경우 살아있는 남자임에도 서류에는 입건된 김재일씨의 사망한 어머니로 둔갑시켜 상속받은 것처럼 꾸며놓은 것이 드러났다. 구속된 사람은. ▲윤병을 ▲이만귀 ▲이정수(43·목수·인천시 북구 갈산동 234의 47) ▲강문구(55·상업·성북구 정릉1동 113의 45) ▲이연일
  • 고르비 한국등의 차관 유용설/“유럽 친공산계 회사에 거액 지원”

    ◎러시아공 관리 주장 【모스크바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몇몇 유럽국가의 공산당을 지원해온 「우호적인」유럽의 회사들을 파산에서 구출하기 위해 국고의 경화를 이들 회사에 양도하도록 최근 까지 승인했다고 러시아공화국 관리들이 22일 주장했다. 니콜라이 표도로프 러시아공화국 법무장관은 공화국 최고회의(의회)에서 고르바초프가 전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자격으로 최근까지 이들 회사에 『아주 많은 금액』을 양도하도록 승인했다면서 프랑스,키프로스,오스트리아,포르투갈,우루과이의 친공산계 회사들을 예로 들었다. 표도로프는 소련이 외국,특히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얻은 차관으로 그같은 돈을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표도로프 법무장관은 러시아공 최고회의가 실패로 끝난 지난 8월의 크렘린 쿠데타때 소련공산당이 수행한 역할에 관한 토의를 시작하는 자리에서 그같이 주장하고 『이같은 처사에는 중대한 범죄의 징조가 있기때문에 조사를 시작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대변인 안드레이 그라체프는 『정당들,특히 공산당들과의 긴밀한 협력하에 활동하는 유럽의 회사들을 지원해온 것은 이미 알려진 관행이며 비밀에 붙여진 일이 결코 없다』고 말한후 소련기업체들은 외국 수출입회사들과 『상호 유익한』관계를 오랫동안 맺어왔다고 덧붙였다.
  • 대만독립 국민투표 요구 확산/국민당 일부 의원 야당에 동조

    ◎이등휘총통/“「하나의 중국」 정책 고수” 【대북 로이터 연합】 대만 집권 국민당내 자유주의 성향의 의원들은 정부노선을 이탈해 대만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16일 요구했다. 입법원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정파인 신국민동맹의 이같은 요구로 독립문제를 둘러싸고 증폭되고 있는 정치적 위기가 가열되었으며 이로 인해 증권시장은 팔자는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 이같은 위기는 지난 13일 제1야당인 민주진보당이 대만과 중국 정부의 제재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주장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이날 집권 국민당은 민주진보당의 독립 요구를 『무책임하며 국가와 국민을 재난으로 몰고가는 짓』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대북 AP 연합】 대만의 이등휘총통은 15일 대만의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최대 야당인 민진당(DPP)을 비난하고 이 당을 불법화시킬 수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총통은 이날밤 발표된 성명에서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며 우리는 이를 쟁취하기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집중시켜 왔다』고 밝히면서 이같이 말했다. 주로 대만인들을 당원으로 5년전에 창당된 민진당은 지난 13일 중국으로부터 대만의 독립과 대만 공화국 창설 여부를 심판받기 위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당강령을 통과시켰었다. 대만 관리들은 민진당이 대만의 반독립법을 위반했는지,그리고 민진당을 해체하거나 기소해야 할지를 결정하기 위한 사법 당국의 조사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총통은 또 대만을 고립화시키고 대만의 무력합병포기를 거부하는 중국정부의 태도가 대만 국민들의 반중국 감정을 불러 일으켜왔다고 주장하고 중국정부에 대만의 국민당 정부를 멀리하거나 대만의 국제단체 가입을 봉쇄하는 행위를 중단해 줄 것을 촉구했다. 그는 대만과 중국은 국민들의 의지를 존중하는 평화적인 태도로 평등의 원칙하에 우호적이며 진솔한 교류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커스 매질훈련」 또 적발/결손가정 어린이 5명 감금

    ◎출연료 억대 챙겨/곡예사부부 영장 서울경찰청특수대는 16일 최중구씨(50·서울 구로구 개봉동328의 19)와 한영순씨(48)부부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및 아동복지법위반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곡예사부부인 이들은 지난 84년 경남 진주에서 부모가 이혼해 돌봐줄 사람이 없던 박광환군(15)을 「최진형」이란 이름으로 입적시켜 외발자전거타기·불방망이돌리기·공던지기등의 곡예를 가르친뒤 지난88년부터 서울 강남구 D성인디스코클럽,P클럽등 밤무대유흥업소 6곳에 「왕찡고부자묘기쇼」란 이름으로 출연시켜 한달에 3백만원씩 모두 1억여원의 출연료를 받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지난 87년부터 89년까지 고향인 강원도일대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부모들에게 『서울로 데려가 공부와 기술을 가르쳐주겠다』고 속여 정원배(14)·성진군(7)형제,최혜정양(12),고아인 최은숙양(8)등 4명을 서울로 데려와 호적에 입적시킨뒤 링돌리기등 곡예를 가르치며 잘못할때에는 몽둥이와 주먹등으로 마구 때려왔다는 것이다.
  • 일­소 「평화협정」 본격 추진/양국 외무

    ◎영토조약 실무반 가동 합의/안보협력기구도 신설키로 【도쿄 연합】 소련을 방문중인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낭) 일본 외상은 14일 소 외무부에서 보리스 판킨 외무장관과 두 차례에 걸쳐 회담을 갖고 일·소평화조약 체결을 촉진시키기 위해 외무차관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평화조약작업반을 설치하기로 합의했다. 두 외무장관은 또 이 작업반 밑에 평화조약상의 영토조항을 의제로 하는 제1위원회와 여타 조항을 다루는 제2위원회를 두기로 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특히 제1위원회의 소련측 대표는 쿠나제 러시아공화국 외무차관이 맡게 돼 일본의 북방 4개섬 반환 교섭은 앞으로 러시아의 주도에 의해 전개될 전망이다. 이날 회담에서 양측은 냉전구조가 붕괴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적으로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전보장문제와 관련,▲양국 외무부는 물론 일방위청과 소 국방부간에 필요한 의제에 대해 협의의 장을 만들고 ▲일 해상자위대와 소 태평양함대간에 해상사고방지협정 체결을 위해 교섭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다. ◎소,북방4섬 병력감축 안팎/일­소 「영토분쟁」 해결 실마리/일의 25억불 경원 발표에 “즉각 화답” 일본과 소련간에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북방4개섬의 「반환」을 위한 양국간의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일소외무장관들은 14일 모스크바회담에서 북방영토문제를 협의할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한데 이어 판킨 소련외무장관이 일소공동으로 북방영토 획정자료를 작성하자고 제의하는등 북방4개섬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양국 외무장관들은 또 비자없이 일본인들이 북방4개섬을 방문할수 있도록하는 협정에 서명했다.이협정은 영토문제해결을 위한 전향적 조치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일본은 이협정에 따라 다음달 제1진을 북방4개섬에 보낼 예정이며 내년부터 규모를 확대,매년 10여차례의 방문단을 파견할 방침이다.일본은 활발한 교류를 통해 「반환」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은 영토반환을 위해 소련에 대해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나카야마(중산)외상의 소련방문에 앞서 25억달러라는대규모 대소지원책을 발표했다.이는 지난 4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때 보여준 냉담한 반응과는 큰 대조를 이루는 조치로 일본이 대소지원을 적극화하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이에대해 소련도 북방섬 주둔군의 30%감축을 밝히는등 유연한 자세로 응답했다. 일본은 특히 일소영토문제를 협의할 소위원회 소련측 대표로 구나제 러시아공화국 외무차관이 임명된 것은 소련이 이 문제해결에 적극성을 띠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구나제차관은 북방섬 「반환론자」로 알려져 있다.그는 최근 러시아공화국 현지조사단장으로 에토로후,구나시리,시코탄,하보마이등 4개섬을 방문했을때 시코탄과 하보마이등 2개섬을 일본에 반환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바 있다. 구나제차관의 소련측대표 임명은 또 북방영토반환문제가 연방정부에서 러시아공화국 정부로 이관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러시아공화국 정부는 그러나 4개섬중 2개섬의 반환가능성만을 시사하고 있다.지난 45년 얄타협정에 따라 소련영토로 편입된 4개섬중 전략적 가치가 높은에토로후와 구나시리등 2개섬의 반환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소련의 이같은 태도는 북방영토문제의 완전해결이 매우 어려운 과제임을 시사하고 있다.에토로후와 구나시리섬 뿐만 아니라 하보마이,시코탄섬의 반환에도 적지않은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우선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주민들에 대한 설득작업이 큰 문제라는 것은 소련측도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소련은 일본의 경제지원을 얻기위해서는 북방영토의 해결이 필요한 것이다.소련은 2개섬의 반환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이들은 소련과 일본이 영토문제협의를 구체화하는 것은 하보마이,시코탄등 2개섬의 반환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4세 여아 호적입적후 구타,곡예훈련/유명 연예인 형 영장

    ◎유흥업소 출연시켜 거액 갈취/“살찐다” 잠 안재우고 하루 두끼만 먹여 서울남대문경찰서는 13일 인기코미디언 심모씨의 친형인 심동선씨(58·성동구 송정동 66의18)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및 아동복지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심씨의 부인 김향라씨(53)를 같은 혐의로 입건하는 한편 박의열씨(45)를 수배했다. 심씨는 지난 80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뉴서울 서커스단」을 운영해 오면서 지난84년 서커스단원의 소개로 알게된 4살짜리 어린이를 「심민희」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입적시킨뒤 그네뛰기 링올려받기등의 곡예훈련을 시켜 서커스공연을 하게하고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금,폭행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심씨는 또 서커스공연이 수지가 맞지않자 서커스단을 다른사람에게 넘긴 뒤 지난해 11월부터 용산 Y카바레등 시내 9군데 유명 유흥업소에 심양을 출연시키고 공연료로 매달 7백여만원씩 모두 8천여만원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조사결과 심씨는 심양이 공연을 마치면 달아나지 못하게 박씨등을 보내 집으로 끌고 오게한뒤 1평크기의 방에 감금,『살이 찌면 안된다』며 하루 두끼만을 먹게하며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학대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조사결과 심양말고도 어린이 2명이 심씨 호적에 손자 또는 손녀로 입적돼 있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이들의 소재를 찾는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일 새 총리 미야자와 확실/다케시타파,“곧 공식지지” 시사

    ◎간사장·장관등 주요포스트 요구할듯 일본의 새 총리에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부총리가 확실시되고 있다.차기 총리선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집권 자민당의 최대파벌 다케시타(죽하)파가 미야자와 지지를 사실상 결정한 것이다. 다케시타파는 10일 긴급총회를 열어 지지후보를 공식결정할 예정이다.그러나 대세는 이미 미야자와 지지로 굳어지고 있다.실질적인 파벌총수인 가네마루(김환)도 오자와(소택)를 자파 독립후보로 옹립하려는 시도가 오자와의 반대로 무산되자 미야자와 지지를 시사했다.가이후(해부)총리가 속해있는 고모토(하본)파와 미쓰즈카(삼총)파의 일부도 다케시타파가 지지하는 후보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정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가네마루는 사실 미야자와와는 관계가 좋지 않다.그러면서도 미야자와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여론과 자파내의 미야자와 지지가 높다는 면도 있지만 자파실리의 극대화를 위해 우세한 후보를 지지하는 가네마루 특유의 정치스타일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일본 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한다.미야자와는 이달말로 임기가 끝나는 가이후총리가 재출마포기를 선언한후 차기총리로 유력시돼왔었다.그는 부총리,대장상,외상,자민당 총무회장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뿐만아니라 학식도 풍부하고 외국지도자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갖고 있으며 재계와 관계에서도 여론이 좋은 편이다. 미야자와가 새총리가 된다해도 일본정치의 생리상 기본적인 정책방향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것이다.다케시타파에 의해 배후 조정되었던 가이후총리와는 물론 차원이 다르겠지만 미야자와도 다케시타파의 지원으로 총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케시타파와의 정책협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평화유지활동(PKO)법안에 대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다케시타파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야자와는 최근 가네마루를 방문,당과 내각 인사에서 다케시타파의 의사를 전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이는 미야자와가 총리가 되어도 당과 내각에서는 여전히 다케시타파가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가장 중요한 자리인 자민당간사장과 주요 장관직에 다케시타파가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 그러나 일부분석가들은 미야자와가 자민당내 양대세력중의 하나인 미야자와파의 지도자인데다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갈 것이라고 예상한다.때문에 다케시타파와의 미묘한 갈등이 노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미야자와는 친아시아적 성향을 가진 일본의 많은 정치지도자들과는 달리 서구지향적이다.미야자와는 특히 친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미야자와는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다케시타와 같이 친한적인 정치지도자도 아니다.그러나 미야자와의 등장으로 우호적인 한일관계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한 일본주재 아시아외교관이 말했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 고영환은 말한다:5

    ◎평양추파의 겉과 속/형식적 대미 접근… 「한·미 유대 끊기」 치중/“미국은 악”… 체제지탱 위한 세뇌교육 여전/핵사찰 압력도 “대일 수교 훼방놓기” 간주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미·일·중·소 등 주변 4대 강국의 남북한교차승인문제가 최근 한반도의 평화보장장치의 하나로서 활발히 검토되고 있는 듯하나 그 실현가능성은 북측의 소극적인 자세로 매우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요즘 대미접촉 움직임을 부쩍 강화하고 있긴 하지만 북한외교가에서 추구하는 중단기적 전략목표는 북한과 미국간 대사급외교관계의 수립이라는 질적인 관계변화가 아니다. 북한은 다만 일정한 수준의 대미 관계개선을 통해 남한에 대한 미국측의 일방적인 지지를 흐트러뜨리는 한편 미국의 방해로 늦춰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일·북한 수교교섭을 조기에 매듭짓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남한과 미국의 긴밀도가 마치 「태아와 산모」의 관계와 같으며 서로가 「짝짜꿍」이돼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또 일·북한 수교교섭시 핵사찰문제를 제기,일본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사에 「코코히」 맞서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싫든 좋든 미국을 「얼르지」(달래지) 않고서는 북한주도의 통일은 물론 일·북한 수교든 뭐든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인식을 하게됐다. 이 결과 북한의 대미접근은 그 자체가 목표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주체사상과 반미주의는 정권수립후 지금까지 북한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두가지 사상적 버팀목이다. 북한의 통치자들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미군은 6.25때 1백만명이상의 인민을 학살한 원수이며 주한미군은 또 분단전 조국의 통일을 가로막는 방해세력이자 남조선에는 에이즈(AIDS)등을 유포시키는 등 모든 화의 근원이라고 선전해왔다. 주한미군만 나가면 통일에 유리한,결정적인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같은 세뇌교육으로 북한주민은 미국과 악을 하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7∼8세의 어린이들도 소꿉놀이장난을 하면서 「강도」나 「나쁜놈」을 말할때 「저놈은 미국놈과 같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쓰고 있다. 이처럼 북한주민의 반미주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정권 창립일인 9·9절과 같은날 김일성광장에 모인 1백만명이상의 주민들이 절규하듯 외치는 반미구호를 생각해 보라. 머리칼이 곤두서는 듯한 그 전율은 마치 1933년 독일의 뮌헨 라이프치히에서 갈색제복을 입고 횃불행진을 벌였던 나치병정들의 광기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외교부에서조차 나치의 파시즘이 세웠던 독일 제3제국이 오늘에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말이 나돌 정도이다. 따라서 반미주의가 무너지면 북한정권의 절반이 허물어지는 것과 같다. 같은 적대국가로 상정해온 일본과 미국이 북한주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강도는 전혀 다르다. 때문에 북한은 미·북한간 북경접촉이 이뤄지는 요즈음도 대내적으로는 반미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미국과의 접촉은 오직 종교·외교 등 특정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그 접촉내용도 일반 주민이 들을 수 없는 대남전용방송인 평양방송에만 보도된다. 종종 일본언론이 인용보도하는 북한방송은 평양방송의 내용을 청취한 것이다. 북한은 「일본이 무릎을 꿇고 들어왔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대일수교 교섭과정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있으나 미국과의 접촉사실은 외교관 및 당중앙위 해당일꾼 등 극히 소수에게만 설명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내에도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노력을 지지하고 우리의 자주적 입장을 이해하는 세력이 있어 이들의 요청으로 한시해 외교부 부부장 등이 서너차례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는 식이다. 북한은 외교관들에게 서로 상반된 두개의 제스처를 미국측에 취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우리는 절대 호전적이 아니며 당신네(미국)를 칠 힘도 없다. 우리를 의심하지 마라. 세상에 영원한 벗도,영원한 적도 없지 않느냐』며 미국의 호감을 사도록 노력,『북조선도 이제 참해졌구나. 관계개선을 해야지 않겠느냐』는 식의 여론을 미국내에서 불러일으키도록 하라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핵사찰문제 등에 관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단호히 비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가령 북한외교부가 지난해초 해외의 각 공관에 내려보낸 핵사찰관련 활동지침에 따르면 『핵은 어느 한 열강의 독점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이는 자주권을 짓밟는 행위다. 어느 한 나라가 받아들이면 모두가 받아들여야 되고 결국 온천지는 모두 미국놈의 세상이 된다』는 논리를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인도 등 핵무기를 개발했거나 개발중인 제3세계국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득하라는 것. 이렇듯 북한 외교의 현 당면과제는 대미 관계개선을 통해 핵사찰압력등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해오는 직접적인 압력을 떨쳐 내는 한편 앞길을 곳곳에서 막아서는 미국의 방해를 제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간에 앞으로 5년이내에 대사급외교관계의 수립이라는 질적인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북한과 미국의 접촉은 이미 80년대초부터 뉴욕 모스크바 북경등지에서 여러차례 비밀리에 있어 왔다. 그러나 이는 대미 수교가 목적이 아니라 지난 80년 6차 노동당대회때 이미 세워진 『조선문제의 책임당사자인 미국과 직접협상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유엔사령부를 해체하는 방안을 논의,통일문제를 푼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측의 이러한 직접 협상요구에 대해 『당신들이 남한을 괴뢰라 하는데 남한도 하나의 정치적 실체가 아니냐. 거기에도 대통령과 헌법,군대가 있는데 남한을 제외하고서는 회담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해 왔다. 이에 따라 북측이 미국측의 요구를 수용해 나온 것이 3자회담(남·북한과 미국) 개최 주장이다. 이후 이 문제는 4자회담(남·북한·미국·중국) 6자회담(남·북한·미·중·일·소)등으로 발전돼 왔다.
  • 한국의 수입정책/미인 69%가 만족/무공 조사

    한미 통상관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이 전보다 훨씬 개선됐으나 아직도 우호적이라는 사람보다 유동적이라는 시각이 많아 예기치 못한 악재가 생길 경우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지난 7월 미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실업계·언론계·학계·법조계 인사 1천명을 대상으로 「대한통상 인식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63.1%는 한미통상관계가 개선되고 있다고 대답했고 27.7%는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응답했다.악화되고 있다는 대답은 9.2%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의 한미통상관계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라는 응답이 44.7%인데 비해 유동적이라는 대답은 55.3%로 나타났고 적대적이라는 대답도 2%였다. 한국의 수입자유화 정책에 대해서는 69.5%가 만족하고 있으며 불만인 사람은 26.9%에 그쳤다.
  • 중동평화회담 난항/미·「이」,이견 못좁혀

    【예루살렘 AP AFP 연합】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총리는 17일 미국의 대이스라엘 차관 공여와 중동평화회의 개최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한채 이틀간의 회담을 마쳤다. 이들은 이틀간에 걸친 약 다섯시간의 회담을 마친후 이번 회담이 『매우 우호적이고 협조적인 분위기에서』이루어졌다고 강조했으나 해결해야 할 일부 문제들이 남았으며 수일내에 추가회담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베이커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아랍 점령지내의 유태인 정착촌 건설 증가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반대 입장이 논의되었다고 말했다.
  • 일본인 초청장등 서류 위조/접대부 179명 불법 송출

    ◎3명 영장·3명 수배 【부산=장일찬기자】 부산지방경찰청은 6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109 SEA여행사 이사 신영대씨(43)와 최병언씨(54·무직·부산시 남구 용호4동84 도시타워아파트 605호)등 3명에 대해 공문서 위조및 동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김종철씨(56·인쇄업·서울 서초구 잠원동18 신반포아파트 337동 911호)와 최석규씨(36·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970의21)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금까지 김모양(18·서울 마포구 대흥동)등 일본 취업 희망부녀자 1백79명으로부터 1인당 80만∼1백20만원씩 모두 2억여원을 받고 부산영사관 관할인 부산·경남지역에 거주하는 것처럼 주민등록·호적등본을 위조한 것은 물론 일본인 초청장까지 위조해 부산시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에서 체류기간 3개월의 방문·상용비자를 발급받아 불법으로 출국시켜 왔다는 것이다.
  • 외언내언

    환경오염기사는 이제 매일 지면을 메우고 있다.보편적 관심사가 된 것이다.그러나 아직은 매우 단편적이라는 맹점을 갖고 있다.예컨대 대기·수질오염은 말하지만 토양오염을 거론하는 경우란 드물다.산성비만 해도 오늘 내가 맞은 비에는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미 땅도 산성화돼서 내가 먹은 식물이 문제를 갖고 있다는 감각은 거의 없다.◆88년과 89년에 우리의 토양오염이 어느 정도인가를 환경처가 점검한 일이 있다.단적으로 병충해의 천적인 지렁이와 거미가 사라졌다.지렁이와 거미가 병충해를 잡아주지 못하므로 농사는 더욱 화학비료를 쓰게되고 비료사용이 는 만큼 토양은 더욱 오염돼가는 악순환 구조에 들어서 있다.뿐만이 아니다.고체폐기물의 증대는 땅의 숨쉬기 조차 막고 있다.◆역시 환경처가 89년에 생활쓰레기 매립지의 입지조건을 조사한 것도 있다.99.2%가 잘못된 입지로 나타났다.이는 토양만이 아니라 지하수오염까지 만들고 있다.서류상으로는 물론 사용정지명령이나 개선 명령을 내린게 있다.그러나 누구도 대단한 명령으로 본 일은 없다.그래서 때로 우리의 환경오염인식은 마치 유행적·구호적행사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이 며칠새 뉴스만 보아도 그렇다.국토청결운동이 시작되었다.전국 5천3백여곳에서 3백60만명이나 참여한 행사이다.행락지 오물수거 경진대회라는 것도 이루어졌다.서울 관악산에서 쓰레기 모으기에 시민들은 의무감을 가지고 참가했다.그런가 하면 법으로 9월에 실시하기로 명문화했던 폐기물처리비 예치제는 관련부처와 업계의 반발로 실시 그 자체가 막연해지고 있다.폐기물처리 비용을 내게 되면 제품가가 오른다는게 이유이다.◆그러나 국토전체의 입장에서는 결국 모든 비용을 국민전부가 부담하는 것이다.업계가 내는게 아닌 것이다.그리고 폐기물처리기능을 만들지 않는한 쓰레기 주워모으는 일도 실은 쓸데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어디다 갖다 그대로 쌓아 두자는 것인가.
  • 「소 사태의 사후비판」 유감/이경형 정치부 부장급(오늘의 눈)

    소련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3일 천하」로 막을 내린 뒤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정부의 「눈치외교」를 호되게 비판했다. 지난 23일 열린 국회외무위에서 한 야당의원은 『탱크를 앞세우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정부가 생각한 것은 아니냐』고 까지 몰아부쳤다.정부의 신중론의 배경에는 『군부쿠데타는 항상 성공한다』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야당총재도 소련사태에 왜 신속히 대처하지 않고 우유부단했느냐고 정부당국을 비난했다. 일부 언론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소련보수파에 대해 왜 정면비판을 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등 원칙없는 외교를 하느냐고 나무랐다. 이들 비판은 설득력에 있어 한가지 공통적인 맹점을 갖고 있다. 그것은 모두가 쿠데타가 명백하게 실패로 끝난 뒤의 사후결과론적 비판이라는 것이다.물론 사후결과를 분석,앞으로 우리 외교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 하나의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비판의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정치적인 신념과 상황전개에 따른 나름대로의 판단에바탕을 두고 비판을 하는 것이라면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도 비판을 했어야 했다. 일이 모두 끝난 뒤 군중들 틈에 끼여 「옳소」를 외치는 식의 자세는 보기좋은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과연 정부가 기회주의적인 눈치외교로 일관했느냐는 점이다. 쿠데타가 발생한 19일 정부는 대외적이 언급없이 미국등 우방국과의 협력속에서 사태를 예의주시했다.20일 하오엔 노태우대통령주재의 관계장관대책회의를 열어 『소련이 앞으로도 개방과 개혁의 길로 나가게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3일째인 21일 상오9시 노대통령은 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에게 한소어업협정체결을 위해 소련으로 떠나려던 수산청장의 소련행을 중지시켰다. 노대통령은 그 이유로 『조속한 어업협정체결이 국익에 도움은 되겠지만 이 시점에서 협정체결은 소련정변 획책세력의 지지로 오해를 받을 수 있고 쿠데타등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표시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쿠데타 실패가 알려지기 5시간전인 하오4시 정부관계부처는 삼청동 안가에서 회의를 갖고 소련사태에 대한 정부대변인 성명발표를 결정,노대통령에게 보고한뒤 하오6시 발표했다. 최창윤공보처장관의 정부대변인 성명은 「깊은 우려」「개혁정책 계속 희망」「경협집행은 추이 보아 결정」이 골자였다. 표현의 강도는 해석 나름이겠으나 민감한 사안의 외교적 사령인 점을 감안할 때 이는 쿠데타세력에 대한 분명한 비우호적 태도표명이었다. 도덕적 당위성보다 국익이 우선되는 외교는 남북분단 상황에서부터 우리의 경제력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위상진단을 바탕으로 신중히 수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
  • 충북 보건연구원 석사과장 곽한용씨(이런 공무원)

    ◎“알아야 국민건강 도움”… 「주복야독」 8년/잡급직서 출발… 대학원까지 야간만 다녀 “올빼미” 별명/식품공해 막게 「젓갈류의 중금속」연구/약·화장품 분석,유해성분 가리기 “심혈” 공부하는 공무원은 많다.그러나 혼자의 힘으로 중학과정에서 대학원에 이르기 까지 주경야독해온 공무원은 그리 흔치 않다.충청북도 보건환경연구원 약품분석과장 곽한용씨(43).지난 72년 5월 이 연구원의 일용잡급직으로 들어오면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제 어엿한 일반행정직 간부급 공무원이 됐다.오로지 공복으로서 부족한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에 열중해왔다는 그는 오늘이 있기까지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왔기에 더욱 값진 것인지도 모른다. 『일용잡급직에서 6개월만에 상용잡급직이 됐고 3년6개월 뒤에는 고용원이 됐습니다.다시 1년뒤 정식직원인 지방보건연구원보가 됐고 지난 78년에 연구원이 되었죠.그러나 승진이 될 때마다 저의 가슴 한구석엔 늘 전문지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가득 했습니다』 가정형편 때문에 야간 중·고교를 다녀야 했던 곽씨는 32살때인 지난80년 서울복원전문대 위생학과 야간부에 입학했다.또 다시 주경야독이 시작된 것이다.연구원에서 퇴근하자마자 고속버스편으로 상경해 강의를 듣고는 서울에 마련한 자취방에서 잠을 잔뒤 다시 아침 일찍 청주로 내려가야하는 생활을 2년간 계속했다. 지난 75년에 결혼해 남매를 둔 가장이었기에 만학도인 그에겐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어느새 「올빼미」라는 별명도 붙어다녔다.그는 전문대를 나오자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 강남사회복지학교(현 강남대학)경영학과 야간부 2학년에 편입했다. ○자료수집위해 전국 누벼 『청주엔 당시 보건·환경 전공과가 설치된 대학이 없었고 상고 출신이란 점 때문에 경영학과를 택했습니다.그러나 대학을 졸업하자 아무래도 직장에 맞는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그래서 지난 85년 다시 청주대 산업대학원 산업공해과에 입학했습니다』 87년 곽씨가 대학원을 졸업할 때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은 「젓갈류및 그 재료 생물중의 중금속 함량에 관한 연구」였다. 이 논문은 새우·멸치·황석어·꼴뚜기 등 젓갈류가 생물상태에서 보다 염분이 가미된 젓갈이 되었을 때 염분의 삼투압현상으로 중금속을 훨씬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곽씨는 이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자료수집 때문에 거의 6개월동안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군산·여수·부산 등지를 다녀와야 하는 고행을 계속해야 했다. 곽씨가 8년 세월을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책과 씨름하는 사이 그의 직급도 지방보건연구사보를 거쳐 지방보건연구사가 됐다. 『주위분들이 저를 보고 고생끝에 즐거움을 얻었다고 합니다.제 스스로 보아도 공무원으로서 승진이 계속된데다 석사학위까지 받았다는 성취감을 못느끼는 바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공복으로서 전문지식도 없이 국민보건을 책임지고 있다는 지난날의 부끄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생각됩니다』 곽씨는 88년 8월 「못오를 나무」로만 쳐다보던 「과장」자리에 마침내 앉게 됐다. ○외국 보건관계 서적 섭렵 현재 그가 책임지고 있는 충북도 보건환경연구원 보건연구부 약품분석과에는 곽과장과 약사1명 대졸출신 보건연구사 2명이 근무하면서 국내외 시판 의약품이나 화장품·위생용품 등의 성분과 함량,유해성분 등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곽씨의 향학열은 식지 않는다.그는 지금도 국내서적은 물론 미국·일본 등 선진외국의 보건관계서적을 쌓아놓고 직장이 원하는 전문지식을 하나라도 더 보충하기 위해 밤잠을 설치곤 한다고 했다. 곽씨의 고향은 청주시 명암동. 4살때인 1950년 청주시청 호적계에 근무하던 부친을 잃은뒤 동생과 함께 숙부의 도움을 받으며 어렵고 외로운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그였지만 오히려 늘 국가와 사회에 빚을 지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처음 일용잡급직이었지만 연구원에 취직하게된 것은 물론 그뒤로 직장일에 쫓기면서도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모두 공무원의 면학을 권장하고 있는 국가제도와 직장상사나 동료들의 말 없는 도움과 격려가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 했을 겁니다. 그는 또 자신의 말단공무원에서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고 떳떳하게 일하고 공부할 수 있게 뒷바라지를 해준 아내 김련순씨(35)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함께 고생한 부인에 감사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용사 자격증을 딴 김씨는 곽씨와 결혼한이후 줄곧 종업원도 없이 혼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공부하는 남편을 위해 묵묵히 내조해 왔던 것이다. 곽씨의 현재 한달봉급은 세금등을 제하고 74만여원.곽씨는 이 돈을 모두 부인에게 건네주고 5만원을 한달 용돈으로 쓴다. 곽씨는 청주시 수동에서 미용실에 방한칸이 딸린 12평짜리 셋집에서 보증금 5백만원에 월세 8만원을 주고 4식구가 살고 있다. 『지난해 청주시 율량동 택지개발지구내에 50평의 택지를 분양받았으나 건축비가 없어 아직 집을 못짓고 있습니다.가장으로서의 꿈은 이곳에 미용실이 딸린 내집을 짓는 것입니다』이같은 소박한 꿈을 털어 놓는 그는 요즘 젊은 공무원들의 근무자세에 대해서도 한마디 짚고 넘어간다.『공무원은 글자 그대로 공복입니다.매사에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일은 찾아서 하고 부단한 자기계발로창의적인 공무원이 되어야 하겠죠』
  • 한­소 우호·경협 더욱 다져질듯/소 쿠데타 실패이후의 양국관계

    ◎시베리아개발등 투자사업 박차/대북·유엔정책 수행에 자신감/북한,혼란 가중… 폐쇄노선 설땅 잃어 소련 보수강경파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끝남으로써 한소우호협력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것같다. 노태우대통령도 22일 언론발표를 통해 이 점을 강조했 듯이 이번 사태는 한소관계가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서 지니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정부로서는 30억달러의 대소경협과 관련,미국 등 일부 서방국가들로부터 성급하다는 눈총을 받아왔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소련과의 경제협력관계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소경제원조에 난색을 표시했던 서방국가들도 세계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소련의 지속적인 개혁정책을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다고 볼때 오히려 한국의 선도적인 대소협력자세는 새삼 평가될 만한 것이다. 정부는 대소경협을 예정대로 집행하는 것은 물론 한소어업협정 등 각종 협정체결과 시베리아개발 등 투자사업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쿠데타실패가 남북한관계,특히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소련에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례적으로 신속 보도하고 쿠데타세력을 고무·찬양하는 태도로 나왔다가 「실패」이후에는 사실보도도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는 북한이 지금 노선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음을 뜻한다.이번 사태는 또 폐쇄정책을 고수하며 부자세습체제로 권력이양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이제 소련이 군부등 보수강경파를 배제하고 서방국들의 지원하에 개혁·개방정책을 가속화시켜나갈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거대한 개방압력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주화와 개방이라는 대세의 흐름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며 앞으로의 남북한 관계에서도 그같은 징후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들은 소련에 쿠데타가 나자 돌연 오는 27일의 제4차평양남북고위급회담을 남쪽의 콜레라발생을 이유로 판문점에서 회담을 열자는등 대화거부자세를 취했으나 조만간 태도변화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오는 9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고 유엔총회에서 한반도문제가 다뤄질 경우 소련은 종전보다 더 전향적인 자세로 우리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반적으로 보아 이번 소련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며 우리의 대유엔외교,대북정책은 확실한 자신감 속에 강도 높게 추진될 것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 소 사태 언론발표 전문 나는 소련이 불행한 사태를 큰 유혈없이 단기간에 극복하고 헌정질서를 회복한 것을 환영합니다.고르바초프대통령이 모스크바에 귀환하여 합헌적인 통치권을 회복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소련의 갑작스런 사태에 우리는 충격과 우려를 금할수 없었습니다.세계에 냉전질서를 종식시키고 한소관계를 정상화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안위에 대해서도 큰 걱정을 했습니다. 세번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세계의 평화에 관해 깊은 마음을 주고 받은 나로서 지난3일간은 인간적으로도 매우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소련의 사태가 비단 소련 국내문제일 뿐 아니라 세계의 장래는 물론 우리와도 직결된 문제임을 실감했습니다. 오늘의 사태진전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소련국민의 결의와 용기의 위대한 승리입니다.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을 비롯한 소련지도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지도력이 그것을 이끌어냈습니다.나는 이에 대해 소련국민과 지도자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소련사태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단합되고 효율적인 행동은 소련사태의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되었습니다.세계는 이 조류를 더욱 진전시켜 평화롭고 화해로운 하나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협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세계 각국이 소련이 현재 맞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을 진전시키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소련사태의 정상화를 전기로 한소우호협력관계가 더욱 강화되고 지속적으로 발전될 것으로 믿습니다.
  • 소 정변이후,한소관계의 전개(사설)

    이제 소련을 똑바로 지켜봐야할 때이다. 국제적으로 탈냉전·화해의 한쪽 주역이었고 개혁과 개방의 기수였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실각한 소련의 대외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는 아직 이르다.그러나 소련의 국내 권력상황의 변화는 곧바로 세계정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고 소련은 여전히 군사적 초강국이라는 점에서 「고르비이후」의 사태전개는 세계적인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수 없다. 고르비 없는 소련은 어디로 갈것인가.그들 개혁과 개방은 어떻게되고 탈냉전의 세계질서는 반전될 것인가.그 보다 우리의 북방외교와 남북한관계,통일에 미칠 영향은 어떨 것인가.이제 그것이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고르비의 실각은 그의 개혁노선에 힘입어 급속도로 발전된 한소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것은 분명하다.대통령직을 인수한 야나예프의 보수적성향과 일견 강경파 일색인 비상사태위의 인적구성으로 보아 외교·안보·경제 정책면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쉽게 예측할수 있다.우선 한소관계와 관련하여 우리 외교에서 볼때 6공화국은 북방외교를 큰 축으로 삼아왔고 그 주된 바탕이 고르비의 개혁·개방정책이었다고 할수 있다.물론 지난해 한 소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6월) 정식수교(9월) 노대통령 방소및 2차정상회담(12월)과 올 4월의 제주 정상회담등 지난 1년여에 걸친 한소관계 발전은 우리 북방정책의 결실이었다.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냉전의 종식과 함께 소련 내부의 정치·경제 사정 때문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고르비의 탁월한 국제감각과 우호적인 대한인식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북방정책의 최종 목표는 물론 남북문제의 해결에 있다.노대통령은 한소정상 회담 때마다 『내가 모스크바에 온 것은 평양에 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었다.그리고 동서화해와 동북아질서 재편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면서 남북문제 해결에 주도적으로 임해온 우리의 북방정책 또한 기본적으로는 고르비가 이끄는 소련 정부의 직접 간접적인 지원이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볼때 보수회귀의 색채를 강하게 띤 이번 소련 정변은 동북아질서 특히 한반도문제와 관련해서 보다 경직된 북한의 태도변화를 수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우리로서는 특히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실현을 눈앞에 두고 소련의 권력구조가 변화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만일 북한과 소련의 관계가 고르비개혁 이전의 양상으로 복귀하는 사태가 온다면 우리 북방정책은 차질을 빚는 셈이 된다. 한소 경제협력문제도 그러하다.정변이후의 소련 정권이 경제정책의 방향을 과거로 되돌리거나 부분적인 정책선회를 할 경우 앞으로 한소 경협관계의 확대에도 당분간 차질이 오게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수파들이 고르비 없는 소련으로서도 개혁의 계속 없이는 국가적 생존이 어렵게 되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개혁노선의 굴절은 있을 수 있으나 철회될 수는 없다는 것이 또한 세계와 우리의 인식이기도 하다.이러한 냉철한 사태분석과 현실인식 위에서 기존의 한소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리라고 본다.
  • “우리의 통일 노력에 악영향 없기를”/크렘린정변 각계 반응

    ◎“경악”속 사태추이에 관심/한·소경협 진전에 장애우려/“대외정책 불변”… 낙관하기도 「개혁」과 「개방」정책을 내세워 동구권에 자유의 바람을 일으켰던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갑자기 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9일하오 국민들은 너나 없이 충격을 감추지 못하며 사태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국민들은 특히 군사쿠데타에 의해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온건세력이 밀려나고 보수강경파들이 정권을 장악한 것같다는 소식에 『모처럼 동서화해무드로 익어가던 국제사회가 다시 새로운 냉전시대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면서 소련의 정세변화가 한반도의 통일기운에 저해요소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국민들은 우리의 북방정책과 소련의 개방정책이 맞물려 갈수록 진전되고 있는 한소관계가 이번 일로 어떤 변화를 맞을지에 대해 일부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번 사태가 소련내부문제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분석하면서 대외정책의 급격한 변화까지를 점치는 것은 성급한 일이라는데 뜻을 같이했다. ▲안동일씨(변호사)=국제정치전문가들이 염려해온대로 고르바초프의 실각이 현실로 나타나 매우 걱정스럽다.그러나 소련정부가 개혁의 물결을 거스를 수는 없는만큼 보수파와 개혁파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간에 우리로서는 먼 장래를 내다보며 우리나름의 잣대대로 꾸준하게 실리외교와 북방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이무경씨(리틀엔젤스단장)=지난 1월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리틀엔젤스공연을 성공리에 가진바 있는데 고르비의 갑작스런 실각소식은 너무도 뜻밖이다. 정치·경제·문화등 각 방면에서 개방정책을 추진하던 소련이 고르비실각으로 예전처럼 다시 폐쇄적으로 될까봐 가장 걱정된다. ▲나종일교수(경희대·정치외교학)=고르바초프의 개혁노선은 장기적으로 옳았다고 생각되나 단기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 이번 사태가 빚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재임중 국가적인 위신을 내세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경제·국제영향력도 크게 증진시키지 못했다. ▲권철근교수(서울대·노어노문과)=흐루시초프도 고르바초프와 같이 휴가중에 실각한 것으로 알고 있다.소련의 경우 공산당의 군에 대한 통제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만일 군부의 쿠데타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 하더라도 군부가 정치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재국군(25·인천대 법학과3)=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우선 매우 충격적이다.또 소련의 민주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쉬운 감이 앞선다. ▲유철희씨(52·93대전무역박람회조직위 지역본부장)=한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오던 인물이 실각되어 놀라움을 금할길 없다.EXPO는 개인적관계가 아닌 국가대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계획이다.소련의 참여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임헌영씨(문학평론가)=세계정세의 흐름이나 소련의 국가적 규모로 볼때 지도자가 바뀌었다고 해서 대세에 큰 변화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따라서 한소관계에도 크게 우려할 바는 없을 것 같다. ▲강대찬씨(50·부산상공회의소 조사부장)=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추진중인 나홋카∼부산 직항로개설,시베리아가스배관 건설사업참여등이 불투명해졌다.
  • “7순 등단” 시심 활짝(이사람)

    ◎“황혼에 반추하는 인생·문학” 구창본할머니/“나 알지못한 어느 길… 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6·25상처” 3남매 홀로 키운 역정/한의 삶 진솔한 시구로 엮어 승화 칠순의 할머니가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고 시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월간 「문학공간」 7월호에 추천신인상을 받고 뒤늦게 시심을 불태우고 있는 구창본할머니(70·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405의 11). 『늘그막에 큰 기쁨입니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건 아니었어요. 그저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이지요』 지난 4월 문학공간사에 시 10편을 투고했던 것이 이같은 행운을 불러올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는 구씨는 아직도 문단등단 사실에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다. 몇십년 전부터 대학노트 가득 시작메모를 써온 그가 본격적인 시 창작에 뜻을 두기는 올해초부터. 실제 나이보다 호적 나이가 적은 탓에 지난해 8월 37년간의 국민학교 교사직을 정년퇴임하고 올해 1월 동아문화센터 「시 창작교실」에 수강생으로 등록하면서였다. 그러나 구씨를 정작 시인이 되게 만든것은 알량한 시 창작기법의 교습보단 어렵고 힘들었던 그의 삶 자체였다. 6·25때 남편을 잃은 그는 홀로 3남매를 키우며 한 많은 한국 여인의 삶을 살아왔다. 국민학교 교사의 박봉으로 간신히 삶을 꾸려왔던 그는 정말 삶이 어려울땐 시를 외웠다고 회고한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말라/서러운 날을 참고 견디면/멀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모든것은 삽시간에 지나간다/그리고 지나간것은 모두 그리워진다』 그는 실제로 푸슈킨의 시 「삶」을 기도문처럼 막힘없이 암송해 보였다. 구씨의 삶은 푸슈킨의 시를 외우며 스스로 달래야 할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스물두살때 농사를 짓는 건실한 부여 청년과 결혼,아들 딸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그는 셋째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가 있던 사이 6·25를 맞았다. 처가에 머물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떠났다는 남편을 전쟁의 아비규환속에서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하면서부터 그의 어려운 삶은 시작됐다. 가난속에서도두 아들은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지만 6·25때 영양실조에 걸린 이후 정신분열증을 앓아 25차례의 정신병원 입원 경력을 갖게 된 딸은 그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그의 맺힌 한은 어느해 음력 섣달 그믐에 썼다는 「설눈­당신에게」란 제목의 시에 남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나타나 있다. 『나 알지 못한 어느 길/말 한마디 없이 떠나고/돌아온다 기약없는/당신 미워 미워 미워』 구씨가 지난해 정년퇴직한 곳은 서울 강서구 양화국민학교이지만 40년 가까운 국민학교 교사생활중 서울학교에 있었던 기간은 불과 2년 뿐이었다. 『교장이나 교감선생님이 되면 일찍 그만 둘 수도 있기 때문에』 평교사를 고집하며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의 학교들을 전전했으며 때론 출퇴근 시간이 7시간씩 되는 학교에 부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사직이 단순한 생계수단만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교실문을 들어서면/마음 누르는/근심 걱정 사라지고//초롱한 눈망울/나를 지켜 보고/어찌하다가 눈과 눈이/마주치지 못하면 아뿔싸/섭섭함 금치 못해/금방 시무룩한꼬마천사//…』(「교사의 노래­교실은 나의 천국」에서) 「문학공간」의 신인상 심사를 맡았던 김규동·신동집시인은 그의 시가 기교보다는 삶의 진실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했다. 그 자신은 『내 생활,나의 역사를 담아 본것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자신의 경험을 거짓없이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되고 타인의 공감을 얻을수 있다는 점은 하나의 경이다. 그것은 고통스런 삶을 자살로 끝내고 싶었던 유혹을 물리치고 오늘에 이른 그 정신의 치열함과 진솔함에서 우러 나오는듯 싶다. 철도공무원인 큰 아들 김대경씨(45),개인사업을 하는 둘째 아들 의경씨(41)와 3명의 손자들,그리고 정신이 맑을때는 레이스를 뜨는 딸 효경씨(43)와 함께 이제는 단란한 가정의 할머니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수도 있지만 구씨의 삶은 여전히 치열하다. 『윤동주의 「서시」나 푸슈킨의 「삶」처럼 영원토록 남을 시를 쓰고 싶다』는 구할머니는 최근 「화염병」「마약」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쓰고 있다.
  • 남북한 유엔가입 이후/소 바자노프박사 특별기고

    ◎한반도통일/“북의 체제변화 와야된다”/남북 관계개선 낙관… 중국도 권고할것 ○소 외교아카데미부원장 본사초청 내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이후 전개될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와 북한의 대남 정책이 우리 통일정책의 주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소련 외무부산하 외교아카데미 부원장 페트로비치 유진 바자노프박사(47·국제정치학)는 이와관련,『현 국제환경은 냉전종식을 이룩했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대치구조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바자노프박사의 한국통일에 대한 전망과 견해는 그 자신이 소련의 아시아정책 수립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지난 7일 방한,열흘동안 머물며 포항제철등 산업시설을 돌아보고 각계 인사들과 접촉한다. 얼마전 미소정상들은 모스크바에서 만나 냉전이 완전종식됐음을 다시한번 확인했다.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미소양국의 냉전종식선언에 「표면적 가치」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선 곤란하다.전략무기감축협정이 타결됐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환상에 사로잡힐수 있다.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전쟁준비를 상호 제한한 두국가가 여전히 적대관계의 대치상태를 유지했던 숱한 예를 찾아볼수 있다. 부시미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소련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확고히 공약했다.그러나 미국은 결코 소련을 동정하지 않으며 소련의 약점이 보완되는 것을 도우려 하지도 않는다.따라서 우리는 냉전종식의 의미를 「냉전」이라는 과거의 유산이 단지 표면상 사라진 것으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국제관계에 있어 현재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것은 소련내부사정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또한 소련의 정치는 앞으로 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기존의 체제는 이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모두 붕괴되고 새로운 세계질서에 부응하는 새 체제가 창출될 것이다.사실이 그러하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즉 앞으로의 국제관계 상황은 필연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겪게된다는 것이다.냉전의 유산들은 조만간 모두 사라지며 한반도의 대치상황도 그 막을 내릴수 밖에 없다. 한반도에서 남과 북이 어떻게 분단됐으며 왜 대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주지의 사실이다.사회주의혁명을 수출하고자 했던 이념적 열망,강대국이 되고자 했던 야망,미제국주의에 대한 증오와 안보관심등은 스탈린으로 하여금 한반도 북쪽에 「형제정권」의 출현을 유발시켰으며 무력통일을 추구하도록 만들었다.그후 스탈린이후의 소련지도자들은 다소 평양과 마찰이 있었지만 북한을 전략적 동맹국으로 인식,꾸준한 관계를 맺어왔다.한편 미국은 이에대한 대상으로 남한에서 공산이념을 몰아내고 서울을 친구로 맞이했다.결국 모스크바와 워싱턴의 이같은 상이한 태도가 한반도에서 호전적 대치상황이라는 토양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이 심각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데탕트 분위기 서울∼평양에도 확산/미도 북한과 대화유지 필요성 있어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한국에 대한 소련의 정책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우선 소련은 더이상 미국과 세계 어느곳에서도 대치할 생각이 없으며 분란을 일으키려 하지도 않는다.소련의 이같은 태도는 한반도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돼 북한은 더이상 소련을 전략적 동맹국으로 볼수 없다. 둘째는 소련이 그간 추진해왔던 「사회주의이념 강화정책」을 포기한 사실이다.지금 소련에선 내부에서 조차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따라서 모스크바정부는 현재 북한에 대해 특정이념을 주지시키려 하지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소련과 북한의 이념체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소련은 이와함께 한국에 대해선 기존의 입장에서 탈피,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시각으로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합리적인 외교정책,국내 민주화조치,괄목할만한 경제성장,대소경제지원등 한국의 일련의 조치는 소련의 호감을 얻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호감은 소련으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새로운 역할을 시도하게 만들었다. 그 누구도 예전엔 사회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한국을 승인하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리라고 생각지 않았다.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한국인들이 소련의 호전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 대한 새로운 소련정책의 근간은 한소 양국이 좋은 「이웃관계」로 발전하는 것이다.또한 미국·중국·일본등과의 관계개선 및 상호협조를 통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환경을 새로이 조성하는 것이다.따라서 장기적으로 볼때 소련은 일본의 정치적 야망을 어느정도 견제할수 있도록 통일된 한국이 한반도에서 출현하기를 바란다. 중국은 아직까지는 북한을 지지하며 북한과 상호협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멀지않아 서울과 평양이 친선을 맺도록 강력히 권고할 것이다.미국의 정책은 한반도 상황과 관련,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워싱턴 당국이 북한에 매료된 것은 아니지만 더이상 북한을 코너로 몰아가려 하지 않는다.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대화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와함께 한국이 미처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을 맞이할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한반도를둘러싼 외부환경은 지금 남과 북의 화해를 촉진시키고 있으며 강대국간의 데탕트 분위기는 서울과 평양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세계는 현재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국가가 보다 밀접하고 우호적으로 접근하길 바라고 있다.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민족 감정이나 경제적 필요성도 서울과 평양의 상호접근을 가속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향후 남북관계의 전망은 매우 낙관적이라고 생각하나 조기통일문제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본다.남한과 북한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이념적·정치적·경제적 체제를 40여년 이상 각기 유지해 왔기 때문에 합일점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통일을 위해서 북한은 내부변화가 선행돼야 하며 개인의 자유신장을 포함,경제체제의 변화,이념체제의 탈바꿈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또 남한도 보다 자유가 신장되고 민주주의가 공고히 확립돼야 하며 특히 경제에 있어 사회주의적 요소인 배분정의가 실현돼야 한다. 이같은 통일을 위한 준비가 착착 진행될때 통일은 부드럽게 그리고 덜 충격적으로 한국인들에게다가갈 것이다.그러나 만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체제가 붕괴되길 바란다면 그것은 결코 소망스런 통일이 될수 없다.시간을 갖고 인내하며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모스크바국제관계대 졸업 □정치학 박사 □주미·주중대사관 근무 □당 국제부 동아시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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