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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 봉사 ‘섬김이’를 아십니까?

    ‘참 봉사 섬김이를 아십니까’ 대구 수성구는 올해부터 매월 봉사활동이 가장 뛰어난 직원을 선정해 인사상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참봉사 공무원 제도’를 실시한다. 구는 이를 위해 참봉사 공무원을 상징하는 ‘섬김이’캐릭터를 개발하고 민원인들의 직접투표 방식으로 매월 참봉사 공무원을 선정하기로 했다.참봉사공무원으로 선정되면 1개월동안 ‘섬김이’캐릭터가 새겨진 블루자켓을 착용하고 근무하게 된다.‘섬김이’캐릭터는 녹색 도포와 검정색 각대를 착용한조선시대 종9품 이하 하급관리를 본딴 것으로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봉사형 공무원을 상징한다. 구는 호적·교통·지적 등 민원실내 15개 창구에서 우선 이 제도를 실시한뒤 성과가 좋을 경우 17개 실과 전체로 확대할 방침이다. 金圭澤구청장은 “직원이면 누구나 한번쯤 섬김이로 선정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확실히 적용하겠다”며 “2회 연속 선정되면 근무평정 등급과 점수를 상향 조정하고 3회 연속 선정되면 근무평정에 ‘수’를 주겠다”고 말했다.대구l黃暻根 kkhwang@
  • ‘99분야별 서울 시정(6회)-행정관리

    행정관리국은 시의 안살림을 챙기는 곳으로 시장을 집안 가장에 비유한다면 며느리같은 부서다.인력과 재원을 적재적소에 분배하고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올해는 구조조정에 따른 후속인사,담배소비세와 종합토지세의 맞교환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신규 공채 및 대기자 임용 우수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미취업자에게 취업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올해 500여명 정도를 공채한다.97년 공채한 미임용 대기자 745명을 일부는 3월 2단계 구조조정이 끝나는대로 우선 임용하고 결원발생때마다 계속 보충,올해중 모두 임용한다.●구조조정 사업소는 2월 초에 개정조례안을 시의회에 제출,3월초에 조직축소 및 기능조정을 단행한다.민간위탁의 경우는 인력 및 장비를 수탁기관이모두 승계함을 원칙으로 한다.1차때와 같이 인력풀로 관리하며 2000년 12월31일 현재의 인력풀 인원은 자동으로 직권면직한다.●시금고 공개입찰 그동안 수의계약으로 해온 시금고 선정에 공개경쟁원리를 도입한다.2월에 공식 공고를 낸뒤 일정 절차에 따라 시금고를 공개입찰로선정,10월에결과를 발표한다.●호적 전산화 및 새주소 부여 2000년 3월까지 호적을 모두 전산화한다.지난해말 현재 15.9%가 진행됐다.2000년 말까지 새주소 부여사업을 완료할 계획으로 현재 70여만 동의 전체 건물에 대한주출입구 조사를 마쳤다.올해는 건물번호를 부여하고 도로명판과 건물번호판을 제작,설치한다.●종합토지세와 담배소비세 세목교환 자치구간 재정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추진중인 시세인 담배소비세와 구세인 종합토지세의 맞교환은 일부 자치구가 반대하지만 계속 추진한다.이에따라 재정이 줄어드는 자치구에는 첫해 감소분의 80%를 지원하고 이어 3∼4년간 연차지원을 통해 충격을 줄인다.●세수확보 강화 올해를 ‘체납시세 총력징수의 해’로 정해 체납액을 줄여나간다.고액 및 상습체납자 등에 대해 재산·주소지·소득조회를 해 압류 등 강력한 과징권을 행사한다.또 3회이상 체납자는 사법기관에 고발하고 금융거래 제한,관허사업 제한 등 강력제재를 가한다.자치구에서 체납시세를 징수하면 징수액의 일정액을 보상하는 ‘인센티브제’도 시행한다.曺德鉉 hyoun@
  • “호적을 찾아드립니다”

    행정자치부는 5일부터 오는 6월 말까지를 ‘무호적자 일제조사 및 취적 지 원기간’으로 설정,전국 시·구·읍·면·동에서 무호적자를 직접 조사해 법 원에 호적취득 허가신청을 대행해주기로 했다. 그동안 정부에서 재외동포나 북한 이탈주민 등 특별한 경우의 무호적자 취 적을 지원한 적은 있으나 전국 일선 행정기관에서 직접 조사를 하고 취적을 대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호적이 없는 사람은 이 기간 동안 읍·면·동에 취적지원 신청에 필요한 취적 허가신청서,취적신고서,사진 등을 제출하면 그 다음은 시·구 ·동·읍·면에서 취적 절차를 대행해 준다. 취적대행으로 종전에 6개월 정도 걸리던 취적처리기간도 1개월 정도로 대폭 단축된다. 또 1만2,000-1만3,000원정도의 비용도 예산이 허용하는 한 지자체가 부담한 다. 무호적자는 대부분은 기아(棄兒)나 고아처럼 어릴 때 부모와 헤어지거나 버 림받은 사람들로 당초부터 부모의 호적에 편입되지 않았거나 부모를 몰라 호 적을 찾지 못한 사람이다. 이때문에 무적자는 주민등록증,의료보험증 등 생활에 꼭 필요한 여러 증명 서가 발급되지 않아 학교교육,의료보험,생활보호 등 각종 수혜대상에서 제외 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7년 보건복지부 조사결과,전국 791개 사회복지시설 수용자 7만5,691 명 가운데 19%인 1만5,000명이 호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행자부는 실 제 무호적자가 3만명선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행자부는 범법자나 외국적 해외동포들이 이중으로 호적을 취득해 신분 을 숨기는 데 이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경찰청 등과 협조해 신원 조회 등 취적 절차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朴賢甲 eagleduo@ [朴賢甲 eagleduo@]
  • 성동구, 증명서류 전화신청땐 가정 배달

    성동구(구청장 高在得)는 장애인이 전화로 각종 증명서류 발급을 신청하면 직원이 직접 배달해주는 ‘장애인 민원 심부름센터’를 6일부터 운영한다. 발급대상은 주민등록 등·초본,세목별 과세증명,건축물관리대장,토지대장, 도시계획확인원,호적등·초본,임야도 지적도 등 11개다. 서류발급을 원하는 장애인이 각 동사무소 사회담당 직원에게 전화신청을 하 면 공공근로자와 사환들이 가정까지 배달해준다. 구는 이와함께 지난해말부터 ‘장애보장구 대여서비스’를 시작해 장애인이 나 갑작스런 장애로 훨체어 목발 등 보장구가 필요한 이들에게 무료대여해 호응을 얻고 있다. 현재 동사무소별로 훨체어 1대와 다수의 목발을 확보하고 있으며,구민들을 대상으로 장애보장구 기부를 받고 있다.문의는 각 동사무소에 하면 된다. 鄭基洪 hong@deahanmaeil.com
  • 소월 본명 한자 ‘珽湜’

    시인 김소월(金素月)의 본명 ‘정식’의 한자표기는 흔히 ‘廷湜’으로 알 려져 왔으나 사실은 ‘珽湜’인 것으로 밝혀졌다.이같은 사실은 1929년에 간 행된 ‘공주김씨족보(公州金氏族譜)’에서 확인됐다. 재야 서지학자 金鍾旭 (60)씨가 최근 중국에서 입수한 이‘족보’에 따르면 소월은 부친 性燾씨 밑 에 ‘子 珽湜’으로 나와있다.족보에 나와있는 소월의 출생일자는 ‘임인(壬 寅,1902년) 8월 30일생’. 소월의 본명 한자이름은 사촌 형제들 역시 ‘廷’자가 아닌 ‘珽’자를 쓰 고 있는 것으로 봐 ‘珽’자는 이 집안의 항렬(行列)인 것으로 보인다.소월 의 숙부 應悅씨의 장남과 차남 모두 ‘珽郁’과 ‘珽七’로 호적에 나와있다. 현재 본명으로 사용되고 있는‘廷湜’은 소월 본인이 사용한 것은 분명하 나 그 경위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서울에 살고있는 소월의 3남 正 鎬(66)씨는 “집안의 항렬로는 ‘珽’자가 맞다”고 밝히고는 “부친이 오산 학교 재학시절 필명을 사용하면서부터 ‘珽’자로 고쳐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鄭雲鉉 jwh59@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潘炳律 외국어대 교수 ‘誠齋일대기’ 펴내

    ◎독립운동사의 거인 李東輝 ‘제모습 찾기’/신민회 활동·상해臨政 초대총리 활약/사회주의 접목 독립운동 새바람 꾀해/이념의 족쇄벗고 균형잡힌 재평가 시도 한 시대나 인물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제때,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시대가 바뀌면서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영웅이 쿠데타의 주역으로,또 반대로 반역자가 시대의 선각자로 등등.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그런 예는 허다하다. 최근 한국외국어대 潘炳律 교수(한국사)가 출간한 ‘성재 이동휘 일대기’(범우사)는 이같은 ‘역사의 평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반 교수는 한·일·중·러·미 등에 산재한 관련자료를 수집,이동휘 선생의 ‘제모습찾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성재(誠齋) 李東輝(1873∼1935)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결코 홀대할 수 없는 큰 별이다. 더러 백범 金九,우남 李承晩,도산 安昌浩 반열에 놓기도 한다. 구한국 정부에서 강화도 진위대장(鎭衛隊長)을 지낸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을사오적 처단후 자결할 것을 결심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신민회 핵심멤버로 활동하다가 나라가 망하자 1913년 만주로 망명,북간도와 러시아령(領)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 3·1만세의거 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한편 이 무렵 선생은 당시 풍미하던 사회·공산주의 사상을 한국독립운동 선상에 접목시키는 한편,선생 자신이 ‘고려공산당’을 창당하여 독립운동 진영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선생의 이같은 사회주의 혁명노선은 선생을 해방후 반세기 동안이나 ‘이념의 창고’에 가둬두는 족쇄로 작용하였다. 한동안 학계에서조차 선생의 이름을 거명하는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역대 남한정권은 선생의 사상성향을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마저 덮어버렸다. 극도의 왜곡과 폄하 그 자체였다. 정부는 1962년부터 독립운동가에 대해 포상을 실시해왔는데 ‘광복50주년’인 95년에야 겨우 선생에게 훈장을 추서하였다. 친일경력자·가짜독립운동가 목에도 훈장을 걸어준 우리 정부가 진짜 독립운동가인 선생 앞에서는 ‘이념타령’만한 셈이다. 반 교수는 선생을 두고 “독립운동 공적은 물론,조국광복을 향한 사심없는 열정·희생정신·혁명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라며 ‘이동휘 예찬론’을 편다. 전기출판과 때맞춰 지난 21일 학계·종교계 인사 500여명을 주축으로 ‘이동휘기념사업회’가 조직됐다. 뒤늦었지만 선생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기념사업이 본격 시작될 모양이다. 선생의 자료집 ‘성재 이동휘 전서’(전2권·독립기념관 간행)을 곧 출간예정인 인하대 尹炳奭 명예교수(한국사)는 “민족운동사의 거인 이동휘를 균형잡힌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이해해야한다”고 밝혔다. 만주·연해주 일대를 제집 앞마당처럼 내달리며 항일운동을 하던 선생.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후 레닌정부가 약소민족 독립운동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자 멀리 인도양·지중해·알프스산맥을 넘어 모스크바로 레닌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던 선생. 저자의 서문 가운데한 귀절이 가슴을 친다. “‘2∼3년 내로 광복군을 이끌고 되돌아오겠다’며 압록강을 건넌 후 한시도 쉬지않고 뜨겁고 진실하게 살다간 선생의 삶과 꿈에 조금의 티라도 남기지 않았는지 죄책감마저 든다”. 어디 저자만의 ‘죄책감’일까. 선생 가신 후 60년이 지나도록 아직 유해조차 찾지 못한 우리 후손들인 것을. 범우사 20,000원.
  • 행자부,퇴직자 포상제도 개선싸고 고심

    ◎훈·포상자 99%가 장기근속자 행정자치부가 퇴직공무원에게 훈·포장을 주는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金正吉 행자부장관으로부터 퇴직공무원 등 4,863명에 대한 포상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공무원 훈·포장제도를 개선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4,863명 가운데 장기근속을 이유로 훈·포장 등을 받은 퇴직공무원은 4,807명.전체의 98.8%다. 정년단축과 정년 연장폐지로 퇴직자가 급증한 올해에는 훈장 수혜자만 하더라도 지난해의 2,298명보다 1,827명이 증가한 4,215명이었다.게다가 훈·포장과 포창비율을 2:8로 한다는 정부 포상업무지침과 달리 올해 퇴직한 1만8,103명의 경우,58%인 1만400명이 훈·포장을,나머지 42%가 포창을 받는 문제점도 나왔다.특히 내년에는 교원정년 단축에 따라 훈장수여 등 퇴직자 포상이 더 늘 것으로 보인다. 행자부측은 이에 따라 퇴직자 포상제도 개선문제를 검토하기로 했으나 공무원 사회에서는 정년퇴직 기준이 1년 단축된 만큼 훈장 수여기준도 1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반발이 일고 있어 개선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가/영예·권위 지키려 심사 엄격/최소 20년 이상 근무자 대상/품행·명망 갖춰야 수훈 가능 프랑스와 일본 등 선진국들은 훈장의 영예와 권위를 유지하기위해 매우 엄격하게 심사 수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국가훈장 레종 도뇌르는 훈장 수여가 개인 뿐아니라 가문의 영예로 여겨질 정도로 명예의 대명사이다. 훈장은 최소한 20년 이상 공직에 근무한 사람 가운데 수여되며 품행과 명망은 또 다른 필수조건이다. 훈장을 받은 사람이 한단계 높은 훈장을 받으려면 5년 이상 지나야 한다.적어도 자동적으로 훈장을 받는 사람은 없다. 훈장 수여사실이 호적에 실리고 사교클럽이나 국가적인 행사에 훈장을 달고 나가면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도 이런 엄격함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1년에 봄 가을로 두번만 수여되며 생존자는 70세가 넘어야 받을 수 있다.수여식은 최고의 의전을 거쳐 장중하게 치러진다.비정기적으로 퇴직 관료들에게 수여하는 일은 없다.오직사건이 잇달아 터진 후생성은 97년 서훈을 추천하지 않고 자숙,훈장의 영예를 더럽히지 않기도 했다. 한편 한국의 경우 국내 서훈도 헤플 뿐 아니라 재외동포들에게도 너무 자주,너무 상급의 훈장을 수여해 훈장의 값어치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 휴대전화업계 ‘퇴출’ 긴장/南宮 장관 빅딜 발언에 무게

    ◎가입자수·부채가 기준될듯/데이콤 지분소유 LG 초조 ●南宮晳 신임 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하자 마자 휴대전화 빅딜 (대규모 사업교환)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서 통신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5개 사업자 중 4,5위 업체의 퇴출시사 발언에 무게가 실리면서 상대적으로 가입자 수가 적고,부채 규모가 큰 업체들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南宮장관의 진위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입자수와 부채규모가 퇴출 여부를 가름짓는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1월 말 현재 가입자수는 SK텔레콤이 580만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한통프리텔(224만명),신세기통신(206만명),LG텔레콤(202만명),한솔PCS(131만명)순이다. 정통부에 따르면 부채비율은 9월 현재 신세기통신이 4,238%로 가장 높고 한통프리텔이 753%,한솔PCS 334%,LG텔레콤이 215%,SK텔레콤 182.5%이다. ●정보통신 업계의 사정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南宮장관의 취임을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것과 달리 LG그룹은 아연 긴장하고 있다. 南宮장관은 96년 3월 삼성과 현대그룹의 PCS(개인휴대통신)컨소시엄인 ‘에버넷’의 총책임자로 일해 PCS사업자 선정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당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LG가 제2 시외전화 및 국제전화 사업자인 데이콤 지분을 법적 한도인 10% 이상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통신사업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LG와 경쟁을 벌였다. 그러자 LG는 데이콤 지분을 5%이상 소유하지 않는다는 각서까지 李錫采 정통부장관에게 제출한 뒤 결국 PCS사업권을 따냈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계사의 위장지분과 우호적 지분까지 포함하면 LG는 데이콤 지분을 최소한 30% 이상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의 불씨로 남아 있다.
  • 친일의 군상:18/명성왕후 시해 가담 禹範善(정직한 역사되찾기)

    ◎명성왕후 시해·시신 소각 등 지휘/‘씨없는 수박’ 만든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부친/무관 출신… 친일 개화세력과 돈독한 관계 유지/일 공사 미우라에 포섭돼 을미사변때 병력 동원/사건후 일 망명… 1903년 일 지방도시서 피살 일본인 여류저술가 쓰노다 후사코(角田房子·84)씨는 지난 90년 ‘나의 조국(わが祖國)’이라는 책을 출간했다.얼핏 책 제목만 보면 본인의 자서전 같다.그러나 부제를 보면 남의 이야기를 쓴 책임을 알 수 있다.부제는 ‘우박사(禹博士)의 운명의 씨앗(種)’.부제에 나오는 한국인 성(姓)을 가진 ‘禹박사’는 과연 누구인가?흔히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주인공으로 유명한 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1898∼1959) 박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쓰노다 여사가 우 박사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 데는 남다른 인연이 있다. 1914년 도쿄에서 태어난 쓰노다 여사는 1960년대부터 집필활동을 시작한 이후 한동안 일본 군인들의 전기(傳記)를 주로 집필하였다.그러다가 80년대 들어서부터 한일관계사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첫 작품이 87년에 출간된 ‘민비암살(閔妃暗殺)’이다.쓰노다 여사는 자료수집차 85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한국인 학생으로부터 민비(명성황후) 암살에 가담한 조선군 대대장 우범선(禹範善)이 우장춘 박사의 부친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쓰노다 여사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우 박사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육종학자였던 데다 그동안 그런 얘기를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쓰노다 여사는 이후 3년간 한일 양국을 오가면서 우 박사의 흔적을 뒤지고 우 박사 유족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나의 조국’은 이런 인연에서 탄생한 우 박사 집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1895년(을미년) 10월8일 새벽 5시30분경.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미명에 정체불명의 한 무리가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앞에 들이닥쳤다.일본군과 일본인 복장을 한 이 괴한들은 궁궐을 수비하고 있던 훈련대 연대장 洪啓薰 일행을 살해하고는 곧바로 근정전을 지나 건청궁(乾淸宮)으로 쳐들어갔다.이들은 국왕(고종)의 침전인 곤령전에 난입,난폭한 행동을 자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국왕은 옷이 찢겨지는 등 수모를 당하였다.또 왕세자는 일본군 장교복장을 한 폭도에게 상투를 잡힌 채 그가 휘두른 칼에 목을 맞고 쓰러졌으나 다행히 칼등을 맞아 목숨을 건졌다. ○시해후 시신능욕 만행도 이들중 한 무리는 인근 왕비의 침전인 옥호루(玉壺樓)로 내달렸다.궁내부 대신 李景稙이 길을 막고 나서자 폭도들은 이경직을 총으로 사살하고는 고종이 보는 앞에서 다시 칼로 무참히 베었다.이어 왕비 침전에서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려퍼졌다.궁녀 3명과 왕비(민비,1897년 명성황후로 추존됨)의 비명소리였다.폭도들은 궁녀와 왕세자 李拓(순종의 본명)을 통해 피살된 자 중의 한 사람이 민비임을 확인하고는 민비의 시신를 홑이불에 싸서 인근 녹원(鹿園) 솔밭에서 석유불에 태워버렸다. 여기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않은 비화 한토막을 소개하면,폭도들은 민비를 시해한 후 민비의 시신을 능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다.일본인 사학자 야마베 겐타로(山邊健太郞·77년 작고)는 당시 구한국 정부의 고문으로 있던이시즈카(石塚英藏)가 사건 직후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 내용(‘…왕비를 끌어내 2∼3 군데 도상(刀傷)을 입히고 또한 발가벗겨 국부검사(局部檢査)를 했다…’)을 인용,“폭도들이 사체(死體)를 능욕했다”(‘日本の韓國倂合’·1966년 출간)고 폭로한 바 있다.이에 대해 崔文衡(한양대·사학과) 교수는 “시체에 대한 국부검사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능욕’이란 표현도 적당치 않다”며 “왕궁침입에 앞서 이미 술에 만취한 자들이 시간(屍姦,시체를 강간함)도 서슴치 않았다고 봐야한다”고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다.일국의 왕비가 괴한 무리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시신이 능욕을 당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乙未事變)’의 진상이다.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을미사변’은 비참하고 치욕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 치욕스런 사건의 음모 단계에서부터 가담한 조선인이 한 명 있었다.바로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부친 우범선(禹範善·1857∼1903)이었다.당시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있던 우범선은 주한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에게 포섭돼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이 사건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훈련대 병력동원.상황이 전개되자 당초 임무대로 훈련대 제2대대 병력을 차질없이 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민비의 시신 ‘처리’도 맡았다.폭도들에 의해 시해된 후 불태워진 민비 시신의 타고 남은 재는 궁궐내 우물에 버려졌고 유해 일부는 우범선의 지시로 휘하의 尹錫禹가 땅에 묻어버렸다.증거인멸을 위해서였다. ○20세 되던 해 무과 급제 민비 시해에 적극 가담한 우범선은 어떤 인물인가.대한제국 시절에 군인으로 활동한 것은 분명하나 ‘대한제국관원이력서’나 ‘구한국 관보(官報)’ 등 공식자료에는 그의 출신·경력사항이 나와있지 않다.야사(野史) 몇 군데서 일부 확인될 뿐이다.‘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라는 책에 따르면 우범선이 (별기군의) 참령관(參領官)으로 근무할 당시 생도들이 그를 ‘자네’라고 불러 그가 반발했던 사실로 봐 출신성분은 그리 대단치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송촌 池錫永이 尹雄烈에게 그를 추천하면서 ‘무위영(武衛營) 집사(執事) 우범선은 구세군교가(九世軍校家)에 병학(兵學)이 한숙(숙달됨)한 인물’이라고 평한 걸로 봐 무술에 능했음은 분명하다. 실지로 우범선은 무인(武人)집안 출신으로 20세가 되던 해(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황해도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별기군(別技軍)이 창설되자 여기에 참여했다.별기군은 일본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의 건의로 1881년 한국군의 군제(軍制)개혁의 일환으로 창설되었는데 그가 친일로 나선 첫 실마리는 이로부터 시작된다.여기서 그는 친일 개화세력들과 교류하면서 개화정책에 눈을 떠 개화파에 가담하였다.1894년 6월 일본군이 무력으로 경복궁을 침입,민씨 정권을 몰아내자 그는 개화파들의 천거로 군국기무처 의원이 돼 갑오(甲午)개혁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4월 친일정권에 의해 훈련대가 창설되자 그는 제2대대장에 보임됐다. 훈련대는 나중에 일제의 친일세력 확장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이무렵 민비는 러시아와 손잡고 친일세력 축출을 기도하고 있어 친일세력으로선 궁지에 몰린 입장이었다.일본은 국면전환을 위해 공사를 이노우에(井上馨)에서 육군중장 출신의 미우라로 교체하였다.미우라는 부임직후 ‘여우사냥’ 운운하면서 민비시해계획을 세우고는 당시 한국에서 암약하던 일본인 낭인(浪人)패거리들을 끌어 모았다.낭인 가운데는 친일신문 ‘한성신보(漢城新報)’ 사장 아다치 겐조(安達謙藏)와 시바 시로우(柴四郞)등 일본의 대표적 명문대 출신의 지성인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이들 중 더러는 나중에 각료·중의원 의원 등을 지냈다). 미우라는 이들 외에 조선인 협력자를 물색하던중 평소 친일성향을 가진데다 당시 민씨정권의 훈련대 해산계획에 불만을 품고있던 우범선을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우범선은 미우라에게 “조선의 정치개선은 당우(黨羽)를 일소하지 않으면 어렵다”며 민비시해를 통한 친일정권 수립을 역설하였다.이어 훈련대 제1대대장 李斗璜(중추원 부찬의·전북 도장관 역임),제3대대장 李軫鎬(총독부 학무국장·중추원고문 역임) 등이 속속 포섭되자 미우라는 당초 계획날짜를 이틀 앞당겨 거사(?)를 결행하였다.결국 ‘을미사변’은 일본 공사관의 주도 아래 일본인 낭인무리와 조선인 친일군인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인 셈이다. ○일 여인과 결혼뒤 거처 옮겨 사건 후 우범선은 이두황 등과 함께 부산을 거쳐 일본으로 망명하였다.도쿄에서 망명생활 도중 사카이(酒井ナカ)라는 일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 그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1903년 구레시(吳市)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 해말 자객 高永根에게 암살당하였다.그의 비명횡사는 일본으로 도망갈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현재 그의 묘는 살해된 구레시와 도쿄 두 군데 있다.도쿄 청산(靑山)묘지에 있는 묘는 일본인 후원자가 유골을 분골(分骨)하여 그의 사후 1년 뒤인 1904년에 만든 것이다. 우범선에게는 우장춘 이외에 유복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차남은 명문 제1고등학교·동경(東京)제국대학 법과를 졸업,일본 유수의 회사에서 중역으로 근무하다가 지금은 은퇴하였다.그는 모계(母系) 집안에 입적돼 호적상으로는 완전한 일본인이 되었다.반면 우 박사는 6·25 와중에 귀국,일생을 조국의 농업발달을 위해 연구에 전념했다.우 박사로서는 그 길이 아버지의 과오를속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 친일의 군상:17/선우순­선우갑 형제(정직한 역사 되찾기)

    ◎직업밀정­고등계 형사/상해 臨政의 ‘처단대상 1호’/‘인텔리밀정’의 전형/구한말 한때 민족진영서 활동/日 유학후 日帝침략 선전 앞장/附日 대가로 중추원참의 지내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한다고 할 정도로 일본에는 한국 관련 자료가 도처에 산재해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외무성사료관 등 공공기관을 비롯해 학습원대학의 동양문화센터와 도쿄(東京)·와세다대학의 도서관과 기타 역사적 인물들의 개인기념관에 산재한 자료 등. 여기에는 공문서를 비롯해 일제 당시 실력자들간에 주고받은 문건,편지 등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한국에서는 전혀 구경할 수 없는 자료들도 상당수 있다. 친일파에 관한 자료 역시 상당수 포함돼 있다. 수 년전 기자는 자료수집차 일본 와세다대학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기자는 ‘사이토(齋藤實)문서’(제2·5대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가 재임시절에 수집한 문서)를 검색하다가 3·1만세의거 직후 조선인 밀정이 작성한 정세보고서 하나를 발견했다. 제목은 ‘朝鮮ノ最近ト對應策(조선의 최근과 대응책)’. 작성자는 ‘조선평양(朝鮮平壤)’출신의 ‘선우순(鮮于순)’이었다. 총 40쪽 규모의 이 정세보고서는 3·1의거 직후 조선내 각 지역·종교세력간의 움직임과 이에 대한 총독부 당국의 임시·영구대책을 상세히 언급한 것으로 전적으로 총독부 당국을 위해 작성한 것이었다. 밀정 중에서도 ‘먹물’을 먹은 고급밀정의 ‘작품’인 셈이다. 선우순(鮮于순,1891∼1933). 그리 낯익은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일제하 몇 안되는 대표적인 ‘직업적 친일분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시말해 그는 직업이 ‘친일’이고 그걸로 일생을 먹고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동생도 그와 마찬가지로 친일 밀정노릇을 했다. 당시로선 드물게 두 형제가 일제의 주구노릇을 했으니 ‘형제는 용감했다’고나 할까. 선우순은 평양 태생이다. 1930년 당시 그가 중추원참의 시절에는 경성(京城,현 서울)에 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해당주소의 호적을 확인한 결과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조선독립불능론 강연 그의 인생의 말로는 친일파로 막을 내렸지만 초창기에는 그도 한 때 민족진영에 섰던 인물로 보인다. ‘서북학회월보’에 그가 쓴 글이 실려있기도 하고 1931년에 출간된 ‘조선신사록(朝鮮紳士錄)’에는 그가 1907년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기자로 입사해 1910년 3월에 퇴사한 것으로 나와있다. 물론 다른 자료들에서 크로스체크 된 바는 없지만 크게 의심할만한 내용도 아니다. 그러면 그는 어떤 계기로 친일파가 되었을까? 그가 친일대열로 전향한 것은 ‘대한매일신보’를 퇴사한 직후 일본인이 평양에서 발행하던 ‘평양신문(平壤新聞)’에 입사한 것이 한 계기가 된 듯하다. 1910년 11월 보성전문학교 법률과를 졸업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1914년 12월 교토(京都)의 도지샤(同志社)대학 기독교신학과를 졸업하였다. 이 대학은 일본조합기독교회의 전신인 일본기독전도회사의 의장인 니지마죠(新島襄)가 설립한 학교로 일본조합기독교회는 조선에 진출하여 종교침략에 앞장섰다. 이 단체는 일본당국과 재벌들로부터 거액의 기부금을 얻어 조선에서 대대적인 전도사업을 전개하였는데 1911년 7월 평양에 평양기성(箕城)교회를 세웠다. 선우순은 바로 이 교회를 다니면서 일본인들과 교류하였고 그들을 통해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것이다. 한편 1915년 도지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평양기성교회의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던 그는 1919년 3·1만세의거가 터지자 일본인들과 함께 ‘배역유세단(排逆遊說團)’을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을 돌면서 조선인들에게 만세를 부르지 말도록 종용하였다. 그는 이 단체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이 해 9월 19일 중추원 회의장에서 개최된 지방유력자 모임에 참석해서는 ‘조선독립 불능론’을 강연하기도 했다. 이같은 일을 주도적으로 수행한 그는 평안남도 지사 시노다(條田治策)의 사주·후원으로 1920년 10월 친일단체인 대동동지회(大東同志會)를 창설,초대회장에 취임하였다. 이 단체는 평안도 일대의 독립사상을 파괴하려는 단체로써 평양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기관지로 ‘대동신보(대동신보)’를 창간,사장에 취임하였으며 평양에서는 월간지 ‘공영(共榮)’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이 매체들은 일선융화(日鮮融和)·공존공영(共存共榮)을 내걸고 선전하였는데 이는 일제가 마음속에 품고있던 식민정책을 그가 나서서 대신 나팔을 불어준 셈이다. ○日帝의 대변자 자임 ‘내선일체(內鮮一體)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그는 “…이들(조선과 일본)은 이해관계가 공통(共通)하고 순치보거(脣齒輔車)의 관계이므로 내선인(內鮮人,일본인과 한국인)이 마치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혹은 웨일즈와 같이 서로 한 덩어리가 되어 대륙방면으로 발전하고 웅비하는 방법…”(‘조선및 조선민족’)이라며 일제의 충실한 대변자역을 자임하였다. 이같은 공로로 그는 1920년 11월 평양부 협의회원(현 시의원)에 선출되었다. 이듬해에는 다시 중추원 참의(주임관대우)에 임명되었는데 1933년까지 13년간 5회 연속 중임하였다. 일개 전도사로 출발해 이 정도 대열에 오른 경우로는 그가 유일하다. 당시 그의 친일활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그가 조선총독을 면담한 횟수를 보면 짐작이 간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1919년 8월부터 1926년 사이에 그가 사이토 총독을 면담한 횟수는 무려 119회나 된다(姜東鎭,‘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 평균해서 22일마다 1회꼴인데 이 수치는 같은 기간에 매국노 宋秉畯이 사이토를 면담한 횟수(58회)의 두 배를 웃도는 수치다. 당시 그는 고급관료나 친일귀족도 아니었을 뿐더러 중추원 참의 70명 가운데서도 66번째 차순이었지만 밤낮을 가리지않고 총독의 집무실과 관저를 수시로 들락거릴 수 있는 입장에 있었다. 그의 친일의 정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의 명성(?)은 상해 임시정부에 까지 알려져 있었다. 당시 임정에서는 일본인 고위관료·매국적(賊)·고등밀정·친일부호·총독부관리·독립군 사칭 불량배·모반자 등을 ‘칠가살’(七可殺,처단해야할 일곱 부류의 집단)로 규정,처단대상자로 지목하고 있었는데 ‘매국적’의 첫머리에 그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그와 함께 대표적인 직업적 친일분자였던 閔元植이 일본 도쿄에서 민족청년 梁槿煥에게 처단된 것은 임정의 이같은 계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동생도 악질형사의 표본 선우순의 동생은 선우갑(鮮于甲,생몰미상) 역시 그 형에 못지않은 악질적인 친일분자였다. 그는 일본 경시청 고등계 형사로 일본에 파견되어 유학생 감시역을 하였는데 2·8독립선언 당시 현장에서 일본 경찰들에게 중심인물들을 하나하나 지적하여 체포하게 한 자로 알려져 있다. 3·1운동 직후에는 기자직함을 가지고 미국에 파견돼 일본을 선전하였으며 재미독립운동가들을 감시하기도 했다. 형제가 나란히 일제의 충견(忠犬)으로 활동한 셈이다. 같은 선우(鮮于) 성(姓)을 가진 사람중에는 이들과는 정반대로 형제가 나란히 독립운동을 한 사례도 있다. 선우혁(鮮于赫)­선우훈(鮮于燻) 형제가 그들로 모두 임정에 관여하였다. 이들 두 형제는 모두 평안도 출신으로 동시대를 살다가 갔다. 민족의 수난기에 어느 형제가 올바른 삶을 살았는지는 역사가 기록할 것이다. 천년이 가도 퇴색되지 않을 민족사의 한 페이지에 흑(黑)과 백(白)으로. ◎사이토 조선총독 누가 몇번 만났나/밀정­왕족­친일관료順 면담 많아/선우순 7년간 119회로 최다/정보제공 대가로 거액 받아 일제시대에 조선인 중에서 총독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총독부의 고위관료나 군 수뇌부 정도가 고작이었으며 더러 위무(慰撫)나 회유 차원에서 총독이 조선인 유지들을 만나기도 했다. 역대 조선총독 중에서 조선인과 자주 면회를 가진 사람은 해군대장 출신으로 제2·5대 조선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였다. 사이토는 3·1만세 의거후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총독에 부임한 이래 1919년 8월부터 1926년말까지 총 839명의 조선인을 만난 것으로 나와있다.(姜東鎭,‘일제의 한국 침략정책사’) 이들 가운데 사이토를 가장 많이 면회한 인사 10명을 꼽아보면, 鮮于순(119회),李軫鎬(86회),李堈公(85회),李王(순종,75회),韓相龍(73회),閔興植(59회),宋秉畯(58회),申錫麟(53회),方台榮(51회),朴泳孝(47회) 등이다. 왕족인 이강공이나 이왕(순종)의 경우 총독의 문안인사나 공식행사장에서의 접견 등이 감안된 것이다. 그외 나머지 인사들들은 모두 친일관료(이진호,총독부 학무국장)나 조선귀족(송병준·박영효)·친일자본가(한상룡)등이었다. 이들 중에서 선우순·민흥식·방태영은 ‘직업적 친일분자’에 속한다. 이들은 사회적 직위에 관계없이 총독을 수시로 만나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댓가로 기밀비조로 금전을 받곤 했다.
  • 전주권(그린벨트 조정 권역별 점검:13)

    ◎전면해제 가닥… 주민·지자체 “환영”/3개 시군 225㎢… 도시계획면적 70%나 차지/자연공원 많아 전명해제 따른 역기능 없을듯/환경단체들 공청회 불참 반발거세 진통 예상 정부의 그린 벨트 재조정 방침에 대해 전주권 주민들과 자치단체들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부분 해제의 대도시와는 달리 정부 방침이 전면 해제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주민들의 분위기는 우호적이다.오히려 환경단체들이 반발,정부의 공청회를 보이콧하는 등 대도시와는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정부가 그린벨트를 풀면서도 또 다른 형태의 규제를 동원해 결국 과거와 마찬가지가 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를 나타내며 향후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73년 지정된 전주권 그린벨트는 전주를 중심으로 3개 시·군에 걸쳐 총 225.4㎢에 이른다.지역별로는 전주시가 14개 동에 103.4㎢,완주군이 7개 읍·면에 111.56㎢,김제시 2개 면 10.8㎢가 포함돼 있다.이는 전체 도시계획 면적의 70%에 달한다.이들 지역에는 모두 3만2,6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전주권 그린벨트는 전주시의 인구가 29만명에 불과하던 시절에 지정돼 인구가 2배로 불어난 지금에 와서는 녹지 보존과 무질서한 도시 확산 방지라는 당초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이 그린벨트는 지형적으로 절반 이상이 임야로 돼 있는데다 동쪽과 남쪽의 경우 모악산과 만덕산,남고산성 등 100∼790m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야부인 서쪽과 남쪽은 대부분 국토이용관리법상 농지의 전용이 불가능한 농업진흥지역으로 지정돼 있다.또 다른지역보다 자연공원이 비교적 많아 녹지 확충이라는 그린벨트의 기능이 반감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시안대로 그린벨트의 전면 해제가 이뤄져도 개발에 따른 황폐화 등 환경론자들이 우려하는 수준의 역기능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북대 건축공학과 金賢淑 교수는 “전주지역의 경우 도시의 성장 잠재력이 그다지 크지 않은데다 지형 여건상 분지(盆地)인 시의 외곽에 원형으로 그린 벨트를 설정,당초의 기대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주민들의 재산권만 제약한 측면이 강하다”면서 “전면 해제한뒤 도시 기본계획이나 도시계획 재정비를 통해 새롭게 녹지를 보존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발표 이후에도 토지 거래는 거의 없다.부동산 중개소에는 가격을 묻는 전화가 간혹 있긴 하지만 거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정부가 그린벨트 해제 이후 우려하는 투기 붐이 장기적인 부동산 경기 침체 등에 오히려 밀리는 분위기다. 다만 환경 단체의 반발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계속되고 있다.지난 5일 건교부 주관으로 전주에서 열린 ‘전주권 그린벨트 제도 개선 공청회’에는 지역의 환경단체가 “자신들을 공청회의 들러리로 세웠다”며 불참하는 바람에 ‘반쪽 행사’로 치러지고 말았다. 전주시 李桓朱 도시개발국장은 “현재 전주시는 인근의 시·군과 연계한 광역권 발전을 꾀해야 하나 중간지대에 그린벨트가 끼어있어 합리적인 도시 발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은 전주권 그린벨트는 당연히 전면 해제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 재계 빅딜 수정안 ‘수위 조절’ 부심

    ◎5대그룹 본부장소집 업종별 구조조정 실적 점검/청와대 간담회 앞서 금융권과 물밑대화도 모색 ‘대(對)정부 우호분위기를 조성하라’ 재계가 바빠졌다.구조조정을 둘러싸고 격앙된 정부와 금융당국의 강경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랴,항공기 등 3대 업종 수정빅딜안의 ‘수위’를 조절하랴 정신이 없다.한편으론 金大中대통령 주재의 정·재계정책간담회를 앞두고 금융당국과의 물밑 대화도 활발히 모색하고 있다. 전경련은 金대통령이 주재하는 이번 간담회가 ‘구조조정계획의 마무리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정부와 협력,구조조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마무리한다는 구상이다.이를 위해 뇌혈종 수술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金宇中 회장이 직접 나서 정부·금융권과의 구체적인 협의에 착수,정·재계간담회 이전에 구조조정을 둘러싼 의견조율을 끝낼 계획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와 재계 수뇌부간에는 지금까지 5차례 정책간담회를 통해 구조조정 원칙과 방향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으며 남은 과제는 금융권의 협조를 얻어내는 일”이라고 말했다.재계는 5대 그룹 차원에서 ‘양보안’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7개 구조조정업종별로 윈 윈(Win Win)전략에 기초해 모기업과 퇴출사업 부문,금융기관 등 3자가 합리적으로 손실분담을 해야한다는 점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절실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우선 이번주 중으로 5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 회의를 소집,그룹별 분사와 사업매각.외자유치 실적을 점검하는 한편 5대 그룹 총수가 대통령과 합의했던 5대 사항의 추진실적 및 구조조정 업종별 추진현황,‘빅딜 수정안’ 작성작업을 마무리,청와대에 제출키로 했다.아울러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일기업경영간담회의를 통한 외자유치 계획도 적극 알리기로 했다. 이밖에 정·재계간담회 이전까지 재벌에 대한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해 그룹별로 대규모 인턴사원 채용을 비롯,연말정기 인사의 조기단행,계열사 축소계획 등 다양한 조치를 내놓을 계획이다. 삼성이 1,000명의 인턴사원을 채용키로 한 데 이어 LG가 정사원 1,000명을 공채키로 했으며,대우(1,000∼2,000명) 현대(1,000명)도 인턴사원 채용을검토하고 있다. 또 오는 4일 SK를 시작으로 잇따라 연말정기 사장단 인사도 단행될 전망이다.LG가 오는 8일 사장단회의에서 사장단 인사를 확정할 예정이며 삼성 대우 현대도 이달 중순께 사장단 인사를 마무리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 주재 정·재계간담회 전에 정부·금융권이 5대 그룹에 대해 최대한의 양보안을 끌어낸다는 입장이어서 재계와 정부·금융권간에 팽팽한 막바지 줄다리기도 예상된다.
  • 美 정계서 立身한 자랑스런 코리안/孫薰(해외기고)

    ◎성실·정직·실력으로 무장/미 정치문화 원리 철저 체득/한인들 권익신장 토대 마련/양국 유대관계 증진 큰 기대 지난 11월3일 미 중간선거에서 60대 한국계 노신사 신호범(미국명 폴 신) 박사가 워싱턴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미국내에서도 백인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인 시애틀에서 인종의 벽을 뛰어넘어 당선됐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신박사는 6개월간 2만7,000가구의 지역구내 모든 가정을 방문하고 선거구민과 악수하는 등 풀뿌리 정치에 심혈을 기울였다.자신이 한국전쟁의 고아였다고 말문을 연 그는 어린 나이인 50년대 미국에 입양돼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피부색깔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대를 기초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었다. 현재 워싱턴,오리건,아이다호,몬태나주 등 서북미 4개주에는 재미동포 1.5세,2세 정치인이 다수 활동하고 있다.2선 의원이자 20억달러에 달하는 시예산을 다루는 예산위원장인 마사 최 시애틀 시의원,보잉사 엔지니어면서 75%의 압도적 득표로 재선에 성공한 이승영 쇼라인 시의원 등 한인출신 정치인들이 미국 본류사회에 파고들어 재선을 거듭하면서 내일의 유망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또 미 본류사회에서의 한인 권익신장을 위해 정치적으로 참여할 2,3세 예비 정치후보자군이 성장하고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미국사회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이곳 정치문화에 순응해야 한다.정직과 공정을 생명으로 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이 그대로 적용되는 미국선거와 정치에서 정치인으로 입신하기 위해선 이러한 원리를 철저하게 체득하는 게 선결과제다. 신의원의 승리는 이러한 명제에 충실한 정공법을 선택한 결과다.성실과 정직,겸손과 실력,그리고 전문성과 용기에 더해 유창한 영어로 무장하고 선거자금과 관련한 선거법의 철저한 준수가 승리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 신의원의 당선은 그가 최근 몇년간 연방하원,주·부지사 선거에서 연속 패배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피를 이어받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신의원의 탄생으로 서북미 한인동포들은 크게 고무돼 있고 어려운 이민생활과 자녀교육에 자신감을 얻고 있다.본류사회에의 정치적 참여를 기초로 한 동포사회의 발전은 우리 정부의 주요한 동포사회정책 목표의 하나기도 하다.동포의 권익보호 및 증진 등 동포사회 발전을 위해선 한국계 정치인의 활발한 미 의회 진출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신의원이 혈맹으로서 한국과 미국간 우호관계 증진에 기여해 줄 것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서북미지역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특히 워싱턴주는 미국내 한국전 참전용사가 가장 많은 주 가운데 하나로 우리에게 매우 우호적이다.워싱턴주에게 있어 한국은 제4의 교역대상국으로 상호 통상규모가 연 70억달러에 달하고 있고 한국의 대미 총수출의 약 10%가 이 지역으로 수출되고 있다. 이와같은 워싱턴주와 한국의 관계를 고려할 때 앞으로 제반분야에서의 한국과 워싱턴주의 유대관계 증진을 위한 신의원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게리 락 워싱턴주지사는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전북 柳鍾根 지사의 초청으로 내년중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며 신의원은이 방문에 동행,한국과 워싱턴주간의 통상교류 증진에 기여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 국가유공자 의무고용 비율 낮춰

    ◎보훈처,법정 고용인원 3만여명으로 줄여 내년부터 건설업체의 국가유공자 의무 채용비율이 정원의 8%에서 5%,사무기계기기제조업은 7%에서 3%로 낮아진다. 국가보훈처는 30일 경영난을 겪고 있는 영세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현행 정원의 3∼8%인 국가유공자 의무고용 비율을 업종에 따라 1∼4%포인트 낮춰주는 등 57건의 규제업무를 연말까지 폐지하거나 대폭 개선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산업구조 변동에 맞춰 현행 23개로 나뉜 업종구분이 61개 업종으로 세분화되며 이 중 음식료품·섬유제품·조립금속제품 제조업 등 37개 업종의 의무고용 비율이 1∼4%포인트씩 낮아진다. 이에 따라 기업체에서 국가유공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는 법정인원은 현재의 18만5,067명에서 14만6,024명으로 3만9,043명으로 준다. 보훈처는 이와 함께 국가유공자 국립묘지 안장 신청,취업 희망신청서 제출 등의 구비서류를 폐지하는 등 44건의 규제를 폐지하고 13건을 개선했다. 구비서류 제출 의무가 폐지되는 민원신청의 경우 보훈처가 직접 구비서류를 챙겨업무를 처리하게 된다. 국가유공자 자녀의 중·고교 학년별 우선 취학 범위도 종전의 정원 내 8%에서 6%로 완화되며 국가유공자 및 유가족의 등록신청시 호적등본과 소득신고서 제출 조항 등 5건은 행정종합전산망이 구축되는 오는 2002년까지 연차적으로 폐지된다.
  • 친일의 군상:15/조선인 첫 神職 李山衍(정직한 역사 되찾기)

    ◎본지서 최초로 발굴·소개/神社 근무하며 민족혼 말살 선봉에/22세때 청주신사 祭官으로 취직/“신사갹출비 내라” 체납자 닥달/가족에게도 일본식 생활양식 강권 흔히 대표적‘친일파’라고 하면 한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나 일제강점기에 고관대작을 지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보통이다.그들 외에 일제의 침략정책에 협조한 관료·지식인이나 민족진영에서 변절한 인사들도 빼놓을 수 없는 친일파들이다.그러나 그들만이 친일파는 아니다.35년간에 걸친 일제 통치기간 동안에는 실로 다양한 형태의 친일파들이 준동했었다.배운 자는 지식을 팔아 출세길에 나섰고 부자는 돈을 바쳐 재산을 보전하였다.그도 저도 없는 자들은 매신(賣身)을 통해 일제의 식민정책에 부화뇌동했었다.그런 자 중에서 더러는 일본인으로 행세하면서 조상까지도 아예 일본인 조상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했다.이번에 본지가 발굴,최초로 소개하는 친일파 李山衍 이 바로 그런 부류중의 한 사람이다. 李山衍(1917∼?).친일파로선 생소한 이름이다.해방후 반민특위 시절 잠시 그의이름이 거론된 이후로는 단한번도 친일파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린 적이 없다.이유는 그가 특수한 분야에서 활동한 ‘숨은’ 친일파이기 때문이다.그는 일제하에서 한국인으로서 최초로 신직(神職)을 지낸 사람이다.신직이란 일본인들의 조상을 모신 신사(神社)에 근무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사찰로 치면 스님에 해당하는,일종의 종교인인 셈이다. 반민특위가 한창 활동을 벌이고 있던 1949년 5월22일 오전 10시 40분.반민특위 충청북도 조사부 소속 金相喆 조사관은 청주부(현 청주시) 석교동 50번지 자택에서 이산연을 체포,당일로 청주형무소에 수감했다.죄명은 반민법 제4조 11항 위반(종교·사회·문화·경제 부문의 친일행위자).6월1일 반민특위 충북 조사부에서 첫 신문이 시작된 후 그는 두 차례 구속기간 연장 끝에 7월8일 불기소로 풀려났다.죄상은 인정되나 ‘악질성’은 없다는 것이 특별검찰부의 석방이유였다.이로써 그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은 끝났는지 모른다.그러나 ‘역사의 법정’은 아직 그에 대한 심판을 내린 적이 없다.반민특위와 특별검찰부가 피의자 신문과정에서 밝혀낸 사실을 토대로 그의 죄상을 살펴보자. 이산연은 1917년 서울 사간동에서 태어났다.그의 부친 李洹雨(70년 사망)는 법전(法專) 졸업후 경부(警部)로 특채돼 충북 경찰부를 비롯해 청주·충주 등지의 경찰서에서 20여 년간 사법주임 등을 역임한 친일경찰 출신이었다.그가 신직이 된 배경에는 이같은 집안의 친일적 분위기가 작용했다고 주위 사람들이 증언한 바 있다. ○신사참배 대열에 동포 내몰아 1937년 청주고보를 졸업한 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몇 군데 시험을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였다.집에서 놀고있던 중 신문에서 조선황전강습소(朝鮮皇典講習所,신직 양성기관)에서 강습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서울로 올라가 조선신궁(朝鮮神宮)부설,조선황전강습소에 지원하였다.당시 조선황전강습소는 관할 도지사의 추천이 있어야 입소할 수 있는 곳이었다.그는 부친을 통해 당시 충북 도지사 金東勳의 소개장을 가지고 이듬해 5월 입소하였다.입소생은 그를 포함해 조선인이 3명,일본인 4명 등 총7명이었다.입소해서는 일본역사를 비롯해 제관(祭官)으로서의 기본교육에 해당하는 축문(祝文),제차(祭次,제사 관련 절차) 등을 교육받고 그 이듬해(1939년) 3월 졸업하였다.당장 자리가 나지않아 잠시 청주군 사회계 고원(雇員)으로 있다가 2개월 후 청주신사(淸州神社) 출사(出仕)로 첫 발령을 받았다.한국인인 그가 일본인들의 조상을 모신 신사의 제관(祭官)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가 신직을 자원한 동기중의 하나는 당시 일제가 신직에 한해 ●봉급외 6할 가봉(加俸)지급 ●일본인과의 동등한 대우 보장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조건 때문이었다.당시 일제는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꺼리는 신직에 조선인을 채용하기 위해 이같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것으로 보인다.이무렵 일제는 중일전쟁(1937년 7월7일) 발발을 계기로 대륙침략을 본격 추진하면서 조선 전역에서 황민화 정책을 전개하고 있었다.일제는 황민화 정책의 슬로건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동조동근(同祖同根) 등을 내걸고 조선인과 일본인은 같은 뿌리라고 선전하며 조선인의 일본인화(化)를 강요했다.창씨개명,일본어사용,내선통혼(內鮮通婚),신사참배 등이 이 때 추진된 황민화 정책의 구체적인 사례들이다.이 가운데 신사참배는 창씨개명과 함께 조선인의 혼을 빼려는 조선민족 말살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그는 바로 이 대열의 선봉에서 활동한 친일파였다. ○조선인의 일본인화 강요 청주신사 출사로 근무한지 2년만에 조선인 최초로 정식 신직으로 승진한 그는 해방때까지 5년간 일본신(神)을 모시는 일에 종사했었다.매일 평균 1∼2회씩 신사내의 대소 제사를 집행하였으며 틈틈이 일본가정을 순회하며 집안의 제사를 지내주었다. 또 전쟁기간 중에는 황군(皇軍,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를 주관하였으며 충북지역내 각 군(郡)의 신사 낙성식 때마다 진좌제(鎭座祭)를 주관하기도 했다.그는 신사거출비를 징수하면서 “신사거출비는 다른 세금과 달라서 제일 먼저 내지않으면 비(非)국민이 될 것”이라며 체납자들을 혹독하게 다뤄 조선인들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했다. 1943년 겨울 그는 조선총독부 주최 소위 ‘미소기연성(鍊成)대회’에 신직의 대표로 참가했다.‘미소기’란 겨울에 얼음을 깨고 찬물에 들어가 축문(祝文)을 외면 신(神)과 통할 수 있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신도식(神道式) 수양법이다.이같은 행사는 종교차원을 넘어 일반인들의 생활속으로까지 파고들어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촉진시켰다.친일파 가운데 더러는 ‘미소기’를 생활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일본인화를 공공연히 과시하기도 했다. 이무렵 그는 주위의 조선인들과는 교류를 끊은 채 언어·의복은 물론 모든 생활양식을 일본식화하고는 가족들에게도 이를 강요했었다.주위에서는 그를 두고 ‘일본인 이상의 조선인’이라는 말이 자자할 정도로 완전한 ‘황국신민’으로 지내고 있었다.일제 당국은 황민화 정책의 최일선에서 혼신을 다한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통해 보상해 주었다.그는 일제말기 일본인과 동등한 ‘앵급(櫻級)’의 배급을 받으며 조선인이라는 호칭을 면하게 되었다.당시 일제는 물자배급의 등급을 앵(櫻)­송(松)­죽(竹)­매(梅)의 4단계로 나눠놓고 이중 일본인에게는 앵급을,조선인은 사회적 지위와 생활정도에 따라 송­죽­매 3단계로 차등 지급했다.조선인으로서 앵급 배급을 받은 자는 도지사급에 드는 수 명에 불과했다.당시 그가 일제로부터 받은 대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간다. 그는 일제의 협박이나 고문에 못이겨 친일로 전향한 인사들과는 분명히 구분된다.친일가문에서 태어나 일제통치의 특혜를 온몸으로 누린 사람이 바로 그다.특별검찰부는 그가 악질적인 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키 어렵다며 ‘면죄부’를 주었지만 ‘역사의 법정’은 그의 죄상을 기억하고 있다. 일제하 조선인으로 태어나 항일운동은 커녕 일본조상을 제 조상인양 떠받들면서 일신의 안위를 누린 그는 해방후 청주에서 조그마한 가게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다가 1950년대 중반에 행방불명된 것으로 호적에 나와 있다.그는 3남을 두었는데 막내아들도 그와 같은날 행방불명된 것으로 호적에 나와 있다.청주지법은 1968년 그에 대해 최종 실종선고를 내렸다.비참한 말로는 ‘역사의 업보’인가? ◎‘神職’이란 무엇인가/神社에서 제사·기도 집행/日帝땐 정식관리로 대우 ‘신직(神職)’이란 글자그대로 ‘신성스런 직업’또는 ‘신을 모시는 직업’이란 뜻이다.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신사(神社)에 근무하면서 제사와 기도 등 신사(神事)를 집행하는 사람을 통칭한 용어다.다른 용어로는 신주(神主),신관(神官),사사(社司),궁사(宮司) 등으로도 불렸다. 일제당시 각 지역의 신사는 도(道) 지방과에서 관리하였는데 출사(出仕)는 고원(雇員)에 해당하는 낮은 직급이었으나 신직부터는 정식 관리로 임명돼 판임관 대우를 받았다.신직은 신사에서 행하는 각종 제사(祭祀)를 주관하는 자로 일제당국으로부터 물자배급과 신분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신직 가운데 궁사(宮司)는 메이지신궁(明治神宮)이나 남산중턱에 있었던 조선신궁(朝鮮神宮)과 같은 대형 신사에 근무한 신직의 장(長)으로 일황이 직접 임명하는 친임관급이었다.
  • ‘지역 최고 어른’ 군수:4(공직 탐험)

    ◎억지민원·청탁 거절하느라 진땀/청탁 피하려 심한 마음고생/중앙부처 상대 로비도 고역/항상 주민입장 우선 생각 민선군수의 최대 적은 억지민원과 청탁이다. 金善興 강화군수(62·재선)는 얼마 전 노인부부의 방문을 받았다. 자식이 없어 생활이 안되니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해달라는 것이었다. 金군수가 노인들을 위로해 보내고 호적을 떼어보니 자식들이 있어 법적으로는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버려서 무자식이나 같다”는 노인들의 하소연에 눈 딱감고 담당직원에게 생활보호대상자 지정을 지시했다. 반대로 金군수는 법적으로 가능한 여관건립 허가를 취임 이후 단 한건도 주지 않았다. 러브호텔이 많아지면 문화재 고장인 강화군의 이미지를 흐린다는 이유에서였다. 金군수는 여관업 희망자들의 ‘공적 1호’로 낙인찍히고,7건이나 행정소송에 계류돼 있다. 그는 “소송에서 100% 지겠지만 관내에 피해를 주는 일을 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 이처럼 민선 군수는 주민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실정법을 넘나드는 경우가 많다. 鄭九鎔 경남 하동군수(56·재선)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관내 7개 읍·면 주민들의 주요소득원인 섬진강 재첩 채취를 위해 새마을양식계를 만들어냈다. 중앙부처로부터 내수면어업면허를 받아야 하는 원칙을 융통성을 발휘,재첩을 채취토록 열어준 것이다. 군의 피해가 예상되면 군수들이 도나 중앙부처의 지시시항을 따르지 않아 ‘민선 단체장은 인기만을 의식하는 골칫덩어리’라는 원망도 듣는다. 인사와 예산운용 권한이 강화되면서 로비가 많이 들어오는 것도 큰 골치다. 대개 인사와 인허가,관급공사 수주와 관련된 민원이나 청탁이다. 전북지역 金모군수는 취임하자마자 막무가내로 ‘돈가방’을 들고오는 이들이 있어 이를 물리치느라 적잖은 고생을 했다. 어떤 이는 이름도 없이 돈가방만 두고가 군 고문변호사와 상의,관내 사회복지시설에 기탁했다. 또 전북의 모군수는 민원인들이 매일같이 비서실에서 장사진을 이루자 아예 군수실 뒤편으로 비밀문을 만들어 드나들고 있다. 행사참석차 나가다 민원인들에게 붙들려 차질을 빚은 끝에내놓은 고육책이다. 朴鍾振 경기도 광주군수(64·재선)는 청탁 방지를 위해 직원·민원인을 군수실 외에서는 만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기도 하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군들이 중앙부처에 해야하는 로비는 군수들의 고역이다. 이들 대부분이 지방토박이로 중앙부처에 인맥마저 없어 영업직사원이 된 기분으로 서울을 드나든다. 재정자립도가 6.2%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경북 영양군의 李麗炯 군수(63·초선)는 올들어 기획예산위·행정자치부·농림부 등을 5차례나 드나들며 지원을 요청했다. 그가 자식뻘인 실무진들에게 허리를 굽혀 사정을 설명하고 예산지원을 요청하는데서 영업직 사원에 가까운 민선군수의 단면이 드러난다.
  • 연말정산 요령 알아보면/보육료도 소득공제 받는다

    ◎올부터 영·유아 1인단 연간 70만원까지/증권사 주식저축 공제 100만원으로 늘어 올해부터 어린이집,놀이방 등 보육시설에 내는 보육료도 연말정산때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증권회사를 통해 주식저축에 가입하면 받을 수 있는 세액공제 한도가 현재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어나고 투신사에서 취급하는 주식형증권투자신탁도 세액공제대상에 새로 추가됐다. 국세청이 26일 발표한 ‘98년도 근로소득 연말정산 요령’에 따르면 내년 1월 실시되는 올해 근로소득에 대한 연말정산부터 어린이집,놀이방 등의 보육비가 새로 소득공제대상에 추가돼 영·유아 1인당 연간 70만원까지 공제를 받게 된다. 증권회사의 주식저축에 든 사람은 연간 불입액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에서 깎아준다. 이 경우 세액 공제액은 100만원(불입액 기준 2,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투신사에서 취급하는 주식형 증권투자신탁(신탁재산의 80%이상을 주식에 편입)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돼 저축불입액의 5%를 100만원 범위에서 세액공제 받을 수 있다. 이들 저축의 세액공제혜택은 올해말 불입분까지다. 근로자는 99년 1월분 급여를 받기 전까지 소속 회사에 해당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문답풀이/18세·5세 자녀둔 맞벌이부부 600만원 공제/차남도 실제로 노부모 부양하면 공제 적용/연도중 만20세된 자녀도 기본공제 대상 달라진 내용을 중심으로 연말정산 요령을 문답풀이로 알아본다. ●연말정산 시기는 지난해부터 연말정산 시기가 다음년도 1월분 급여지급시로 변경됐다. 즉 99년 1월분 급여를 지급하는 때에 98년 연간급여에 대해 연말정산을 한다. 중도퇴직한 경우에는 퇴직한 달의 급여 지급시기가 연말정산시기가 된다. ●중도에 입사한 근로자의 연말정산은 98년중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새로 입사한 근로자의 경우 전(前)근무지의 ‘소득자별 근로소득원천징수부’사본과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을 발급받아 전 근무지의 급여및 공제·감면세액을 현(現)근무지분과 합산해 연간 공제한도액 범위내에서 계산해야 한다. ●연말정산 대상 사업소득의 범위는 지난해 보험모집인의 보험모집수당에 이어 올해부터는 방문판매원의 방문판매수당 및 다단계판매원의 후원수당도 직전년도 수입금액이 7,500만원 미만인 자에 한해 연말정산대상에 포함된다. ●가족이 배우자,20세 미만인 자녀 2명,98년도중 만 20세에 달한 자녀가 1명인 경우 기본공제액은 부양가족의 공제대상에 인원수 제한은 없으며 자녀 또는 형제자매가 당해 연도중에 만 20세에 도달하더라도 공제대상이 되므로 기본공제액은 본인을 포함,5명에 대해 1인당 100만원씩 500만원이다. ●차남이 60세 이상인 부모를 부양하고 있으나 주민등록이 별도로 돼있다. 부양가족공제를 받을 수 있나 차남이 실제로 부모를 부양하고 있는 경우에는 공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 이 경우 장남이 공제를 받지 않아야 하고 호적등본을 제출해야 한다. ●18세와 5세인 자녀가 있는 맞벌이부부인 경우 각자의 공제액은 5세 자녀의 기본공제를 남편이 받는 경우 남편은 기본공제 200만원에 소수공제자 추가공제 50만원을 더해 250만원의 공제가 가능하다. 배우자는 기본공제 200만원에 소수공제자 추가공제 50만원,부녀자공제50만원,자녀양육비공제 50만원 등 350만원의 공제를 받을 수 있어 부부가 모두 600만원의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교육비 공제대상 유치원은 교육비공제대상 유치원은 ‘교육법상의 학교’인 유치원 즉 교육청으로부터 유치원인가를 받은 국·공·사립유치원(관인유치원)을 말한다. 관인유치원이 아닌 피아노학원,미술학원,속셈학원 등은 대상이 아니다. ●국외유학을 위한 어학연수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경우도 해당되나 국외교육비를 소득공제받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교육법에 의한 학교와 유사한 국외교육기관에 지출한 교육비에 한한다. 어학연수비는 공제대상이 아니다. ●97년 11월에 1년만기 근로자주식저축에 가입한 근로자가 만기해지후 98년 12월에 다시 같은 저축에 가입한 경우 98년에도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나 97년에 가입한 저축을 만기 또는 중도해지한후 새로 가입해 1인 1통장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98년 불입금액에 대해 세액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근로자주식저축 세액공제는 어떻게 되나 증권사의 주식저축과 투신사의 주식형증권투자신탁의 경우 저축불입액의 5%를 세액공제 받는다. 불입한도액이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확대돼 세액공제금액도 종전 최고 5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늘었다. 세액공제가 가능한 저축상품 가입시한은 근로소득자들에게 재산증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당초 지난해말에서 올해말까지로 연장했다. ◎세금 이렇게 줄여라/공제 영수증 모두 챙기도록/65세이상 병원비 모두 혜택/형제자매 교육비 공제 받아 샐러리맨의 유일한 절세찬스인 연말정산철이 돌아왔다. 연말정산이란 세무당국이 근로자를 대상으로 많이 낸 세금은 돌려주고 덜 낸 세금은 더 징수하는 절차이다. 법에서 보장된 각종 공제혜택에 따라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챙겨 놓으면 많이 낸 세금에 대해서는 돌려받을 수 있다. 연말정산시한이 내년 1월까지(1월분 봉급지급일 전까지)로 1개월 늦춰졌지만 영수증 등 증빙서류를 미리 챙겨두었다가 회사에 제출하는 것이 좋다. 연말정산을 통한 절세(節稅) 테크닉 5가지를 짚어본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면 일단 공제대상이다 배우자,형제 자매, 미혼자녀,입양아,부모,조부모,장인,장모 등 부양가족은 모두 1인당 100만원씩 기본 공제를 받을 수 있다. 빠진 사람이 있다면 주민등록등본을 첨부,바로 잡아야 한다. 올해 사망한 가족도 공제혜택이 있다. ●영수증을 모아라 자동차보험 등 각종 보험영수증과 공제조합의 공제영수증을 꼼꼼하게 챙겨야 한다. 의료보험료 및 고용보험료는 전액,보장성보험료는 50만원까지 공제된다. 종교단체 헌금,수재의연금,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기부금은 전액 공제대상이다.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연간소득의 5%까지 과세대상 소득금액에서 빼준다. ●의료비 영수증을 확인하라 연간 소득의 3%를 넘는 의료비는 100만원까지 공제된다. 65세이상 노인이나 장애자의 재활에 들어간 병원비는 100만원을 넘겨도 공제대상이다. 병원은 물론 한의원,조산소,약국영수증도 해당된다. 다만 약국에서 발행한 간이세금계산서는 영수증비고란에 환자성명과 질병,발행자의 서명날인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학자금공제를 최대한 활용하라 배우자의 학비는 물론 형제 자매 교육비의인원수 제한이 없어졌다. 관인 유치원 및 보육시설의 경우 1인당 70만원까지 공제된다. 단 법정 보육료불입통지서를 학원에서 받아 은행에 납입한 뒤 제출해야 한다. 국내대학은 1인당 230만원까지,해외교육기관에 유학중일 경우 150만원까지 공제된다. ●저축상품의 공제대상이 넓어졌다 증권회사의 주식저축이외에 증권투자신탁회사에서 취급하는 주식형 증권투자신탁으로 세액 공제대상이 확대됐다. 주식저축의 불입시한도 97년말에서 올해 말까지로 연장됐으며 불입한도액도 2,000만원까지 늘어난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 상원 법사위 피노체트 면책특권 불인정 판결

    ◎英 블레어 ‘윤리외교’ 승리/아민 등 前 독재자 응징 움직임 활기띨듯/미국·칠레와 외교적 마찰 해결 과제로 토니 블레어 총리의 ‘윤리외교’가 마침내 승리했다. 영국 상원 법사위 5인 재판관은 25일 하오 2시(현지 시간) 칠레의 전 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상고심에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엎고 피노체트에게 혹독한 재판과 감옥이 기다리고 있는 ‘스페인행’을 명령한 것이다. 영국은 국익을 우선하는 기존의 국제외교 관례를 탈피,‘인권외교’를 실행함으로써 외교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이날 83번째 생일을 맞은 노회한 독재자 피노체트는 평소‘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추겨세운 영국으로부터 쓰디 쓴 배신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지난달 28일 고등법원의 면책특권 인정 판결에 이은 검찰의 항고로 최종심의를 맡은 상원 5인 재판부가 그에게 우호적인 보수당 소속의 종신 귀족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영국인들로서도 이례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영국 정부는 칠레와 미국의 외교적 마찰을 해결해야할 과제를 안게됐다. 국내 보수파의 비판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재임중 30만명을 학살한 우간다의 이디 아민을 비롯,아이티의 장 클로드 듀바리에와 라울 세드라스 등 현재 세계 도처에 은신해 있는 전 독재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응징 움직임이 한층 활기를 띨 전망이다. 영국 정부가 그를 체포한 것은 지난달 16일. 스페인 법원의 요청으로 잡아 들인뒤 지난 6주동안 국제사회는 전 독재자의 말로가 어떻게 전개될 지에 온 관심을 모았다. 최대의 관심사는 반 인류범죄가 국익 위주의 외교전통에서 과연 단죄될 수 있을 지 여부였다.
  • 변철환 변호사 ‘쉽고 간단하고 빨리 처리되는 소액재판’ 출간

    ◎2,000만원 이하 돈 빌려주고 받기 힘들때 소액재판 하세요/법원 비치된 양식따라 소정 작성/접수 즉시 재판일 지정/재판 1회로 종결… 대리소송도 가능 상대방 태도를 보니 선선히 돈을 돌려받기는 틀렸고 소송을 하자니 절차가 복잡할 것같아 제대로 해낼지 겁부터 난다. 이래저래 속이 타지만 그렇다고 돈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럴 때 소송가액이 2,000만원이하면 소액재판에 의지,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소액재판은 절차가 쉽고 간단해 법률지식이 없는 보통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쉽고 간단하고 빨리 처리되는 소액재판’(보고싶은 책)이란 책을 펴낸 변철환 변호사는 “소송절차만 제대로 이행하고 필요한 증거만 갖추었다면 법정출석 한번에 판결을 받는다”고 했다. 소송이 길어지는 까닭이 사실관계가 복잡한 데도 원인이 있지만 당사자들이 필요한 절차를 제때에 이행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변환철 변호사의 도움말로 소액재판의 특징과 주의할 점을 알아본다. ▷특징◁ 심리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하다. 소장을 접수하면 즉시 재판기일을 지정해준다. 대개 4주 뒤로 정해진다. 재판도 제1회 변론기일로 절차를 종결하고 판결까지 선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대로 된 증거가 없을 때를 대비하여 재판장은 언제든지 소송 당사자를 심문하여 증거로 삼을 수 있다. 대리소송도 가능해 배우자,직계혈족,형제자매,호주는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으로 당사자와의 관계를 증명하면 법원허가 없이도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 ▷소장쓰기◁ 법원에 비치된 소장양식의 빈칸을 채우기만 하면 된다. 이마저도 어려운 사람은 말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법원사무관 등 담당법원 직원에게 직접 소를 제기한다는 진술을 하고 그 내용을 설명하면 담당직원이 ‘제소조서’라는 것을 작성해주는데 이로써 소장을 대신한다. ▷주의할 점◁ 소액사건은 모두 일정액의 돈을 지급해줄 것을 청구하는 내용이다. 청구취지에는 금액과 그에 따른 이자나 지연손해금 등의 범위만 표시하면 된다. 금액은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하고 원고·피고사이에 이자약정이 있으면 청구금액에 부가하여 이를 표시한다. ▷접수는 어느 법원에◁ 원고와 피고의 주소가 다를 경우 피고 주소지를 기준으로 관할법원 민사과에 접수한다. 그러나 어음이나 수표금 소송은 채무자의 주소지 또는 그 어음·수표상의 지급지를 관할하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 피고에게 보낼 소장부본도 같이 접수한다. 이때 정해진 사건번호,재판부,재판기일 및 해당 법정을 잘 기억해야 한다. 예로 소장을 접수하면 사건번호가 ‘98가소 1234호’와 같이 붙는다. 98은 소가 제기된 해당년도를 가리키는 것이고 ‘가소’라는 말은 1심법원의 소액사건을 가리키는 부호. 1234호는 접수된 소액사건의 일련번호다. 이밖에도 피고의 소송준비,법정에서 주의할 점,항소를 원할 경우의 방법들을 상세하게 실었다.
  • 총무원장 선거싸고 조계종 분규 갈수록 혼미

    ◎종정도 없고 원로도 없고…/원로회의 의장 불신임… 정화개혁회의측 승려대회 추인/중앙종회 “원로회의 결의 무효”… 또 다른 승려대회 결정/교계 “사태수습 위해 분쟁 당사자 3후보 모두 사퇴를”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의 3선 출마강행으로 빚어진 조계종 사태가 현시점에서 누가 나서도 해결할 수 없는 난국에 빠져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선어록(禪語錄)에서나 볼수 있는 양상이 승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신자는 전체인구의 1/3 정도. 조계종은 그중 95%를 차지하는 명실공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그러나 현재 조계종단에는 종정도,원로도,어른도 없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만 얽매 어른들의 말씀이 한쪽에서는 받아들여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묵살되고 있다. 종단의 어른들 마저 양분된 형국이다. 지난 14일 구룡사에서 열린 원로회의(총원 21명중 7명 참석,8명 위임. 모두 15명 참석)는 그동안 원로회의 소집을 기피한 혜암 원로회의 의장(전 해인사 방장)을 불신임하고신임의장으로 벽암 부의장(신원사 조실)을 선출하는 한편 종회해산 제청과 함께 총무원 청사를 점거한 정화개혁회의측의 11일 승려대회 결의사항을 추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16일 봉은사에서 열린 중앙종회는 원로회의 결의사항을 무효로 결의하는 한편 중앙종회가 주축이 돼 또다른 승려대회를 열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구룡사 원로회의를 끝으로 사표를 제출한 원로회의 사무처장 효림스님(파주 보광사 주지)은 “14일 구룡사 원로회의는 적법 절차에 따라 열린 것”이라며 “그동안 원로회의 소집을 기피한 혜암스님이 오히려 직무유기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종회나,송원장캠프나,정화개혁회의나,지선캠프나 그 어느쪽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정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같은 상황에서 송원장이 16일 오전 측근을 통해 사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송원장의 사퇴결심에도 불구하고 정화개혁회의측은 총무원청사 점거상태를 풀 생각은 없는 것같다. 종정교시의 핵심사항이 해결됐다 해도 물리력 동원에 의한 청사점거에 대한 비난여론을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태를 몰고 온 것은 송월주 원장을 세운 94년 개혁회의의 개혁작업이 결과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으로 ‘정화개혁회의’를 통해 ‘새롭게’ 개혁을 해야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정화개혁회의는 월탄 상임위원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라기보다는 갖가지 이해관계를 지닌 세력의 집합체로 볼수 있다. 따라서 정화개혁회의가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종헌종법 개정을 통해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16일 지선후보쪽 인물을 포함한 개혁회의 간부명단을 발표한 정화개혁회의측은 교구본사 주지와 종회의원을 최대한 영입해 자신들의 구도로 새로운 선거법을 만든 뒤 종권을 창출한다는 기본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선후보측은 송원장이 후보사퇴를 언론을 통해 공식발표한다면 이로써 3선문제가 해결되는 만큼 정화개혁회의측은 총무원 점거를 풀고 종헌종법에 따라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교계여론은 세후보가 모두 분쟁 당사자인만큼 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송원장 뿐 아니라 월탄,지선스님도 함께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송원장측에선 중립적인 종회의원및 일부 교구본사주지를 아우르는 연대틀을 만들어 자신이 낙점하거나 자신에게 우호적인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전략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종회결의에 따라 송원장 임기만료일인 20일을 전후해 또 다른 승려대회를 열 계획으로 있어 조계종 분규사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혼미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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