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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로씨 ‘특급경호령’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31년 만에 풀려나 국내에 정착하게 된 재일교포 김희로(金嬉老·71)씨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부산지방경찰청과 국가정보원,법무부 출입국사무소 등 국내 관련기관들이 고심하고 있다. 김씨에 의해 두목이 살해됐던 일본 야쿠자 조직이 교도소에 엽서를 보내 보복살해하겠다고 위협한데다 일본의 일부 우익단체까지 테러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27일 관련기관에 따르면 직접 경호를 맡아야 할 경찰은 법무부와 일본 경찰당국의 도움을 받아 일본 야쿠자들의 움직임과 국내 입국자 명단을 파악,요주의 인물이 국내에 들어올 경우 밀착감시하고 김씨의 국내 도착 순간부터경호인력을 배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와 법무부 출입국사무소도 야쿠자 조직의 동향과 입국여부를 면밀히 챙기고 있다. 한편 부산 영도구청이 보관중인 김씨의 호적에는 본적이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5가 66번지인 것으로 되어 있었다.성은 김씨가 아닌 권씨였고 이름 가운데 희자도 지금까지 알려졌던 ‘嬉’가 아니라 ‘禧’였다.성이 달라진 것은 생부인 권명술(權命述)씨가 사고로 일찍 작고하면서 어머니 박득숙(朴得淑)씨가 김종석(金鍾錫)씨와 재혼해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랐기 때문이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32회)-’미친 새’(상)

    ◆ 박양호의 우화소설 '미친 새'(상) 유신통치 시기의 민주화운동은 편의상 긴급조치 1호(1974년 1월8일 선포.헌법에 대한 일체의 논의 비판 금지 및 유언비어 금지),4호(4월3일 선포.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관련 활동 금지) 시대를 그 전반기로 구분할 수 있다.1·4호에 의한 구속자들이 대폭 석방된 1975년 2월15일 직후인 5월13일 박정희 전대통령은 긴급조치 9호(유신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개정 및폐기를 주장하거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 일체 금지)를 선포하여 독재권력의 마지막 유지에 매달리고 있었는데,이후를 긴급조치 9호 시기,즉 유신통치 후반기로 볼 수 있다. 이미 독재의 고삐가 풀어져 가던 1976년 3월1일,윤보선·김대중·함석헌·함세웅 등 20명이 명동성당에서 ‘민주구국 선언문’을 전격 발표하여 구속된 것은 그로부터 열흘 뒤인 3월10일이었다.이후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세계적 지평으로 떠올라 고조되고 있었다.그러나 국내에서는 오히려 지식인·언론에 의한 박대통령과 유신통치의 찬양 논조가 늘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명동성당의 3·1구국사건을 “시대착오적인 반국가적 파괴음모”라고 맹비난을퍼부었던 당시의 주요 신문 사설이나, 유신통치를 “민족주체 사상”이라고추켜 세웠던 모모한 어용교수들의 글은 역사의 영원한 반사교훈으로 남을 것이다(자세한 사항은 김삼웅 ‘곡필로 본 해방 50년’ 참고). 바로 이 어수선한 시절에 작가 박양호는 중앙대 예술대학 강사로 나가는 한편 열심히 창작에 전념하며 지냈다.그는 인간이 생존 조건의 변화에 대하여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심있게 추구하던 중 ‘생각하는 개’란 우화소설을발표한 바 있다.항상 묶여있는 개와 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개의 우화는 인간의 자유 문제로 비약한다. 1977년 여름 밀양 표충사에 한 달 가량 머물면서 박양호는 다른 중편과 함께,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가진 모든 존재는 자유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소품 ‘미친 새’란 우화소설을 썼다.상경 즉시 그 원고는 ‘현대문학’에넘겨졌고,10월호(통상 9월 하순이면 발매)에 게재되어 독자들의 시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작가는 주변에서 뭔가 이상하게 조여오는 느낌이었다.호적상 본적지로 되어있는 동빙고동에서 약국을 하던 누님의 집 주변부터 형제들,그리고작가가 살고있던 남가좌동 주변과 강의를 나가는 대학에 이르기까지 철저한배후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경찰관을 지냈던 아버지여서 집안의 신원조회는그럭저럭 넘어간 듯 했으나 교우관계부터 여성문제, 돈 등 온갖 사항을 두루파고드는 낌새 속에서 작가는 일말의 불안에 싸였다. 마침 조치원의 한 친구에게 문상 갈 일이 생겨 옷과 돈을 여유있게 챙겨 나간 10월15일 그는 전격경찰에 연행당해 피신을 준비했다고 뜻밖의 추궁을 견뎌야만 했다. 어떤 필화사건도 그 첫 심문은 반국가적인 조직과의 연관 여부에 대한 추궁이다.박양호에게 집요하게 추궁한 것도 ‘미친 새’가 “너의 머리 속에서나온 것이냐” 아니면 “다른 인물과 접촉하여 이런 이야기를 쓰라고 해서쓴 것이냐”는 질문이었다.작가 나름대로의 진지한 문학론과 상관없이 수사기관에서는 이미 소설보다 더 긴 소설을 써두고 거기에 맞춰 나가는 것이 필화의 상례인데,박양호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절차와 수순에 따라 박양호는 적당히 얻어맞으며 인격적인 모독을 열흘 동안이나 견뎌야 했는데,경찰 유치장 기록에서는 그를 ‘특수절도’죄로 분류하고 있었다.취재진이나 외부인에게 긴급조치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조처였다.10월25일 구속영장이 떨어져 서대문 구치소로 옮겨진 박양호는 그 당시로서는 실로 운좋게 한 달만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배우자도 맏상주 될수있다/가정의례준칙 제정

    정부는 2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장례 때 장자(長者) 뿐만 아니라 배우자도 맏상주를 맡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건전가정 의례준칙’제정안을 의결했다. 이 준칙은 가정의례와 관련된 규제완화에 따라 기존 가정의례준칙을 폐지하는 대신 민간의 자율준수 규범으로 혼례나 장례 등에 대한 절차와 기준을 규정한 것이다. 준칙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장례를 사망한 날로부터 3일째 되는 날 치르는 3일장을 제시하고 제사를 올리는 대상은 제주(祭主)로부터 2대조까지로 하며 성년식은 만 19세가 될 때 치르도록 했다. 약혼은 번잡하게 식을 올리지 않되 당사자와 부모 등 직계가족만 참석하고양가가 상견례를 하면서 혼인에 관한 사항을 협의한 뒤 호적등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한 약혼서의 교환을 권고했다. 결혼식 혼수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하고 예물을 증여할 경우에는 당사자의 부모로 한정토록 했다.종교의식에 따라 가정의례를 할 경우에는 준칙의 범위 안에서 해당 종교의 고유의식 절차를 따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날 의결된 안 가운데 배우자도 맏상주가 될 수 있도록 한 내용 등은 여성계 주장을 적극 반영했지만 현실과 다소 유리된 측면도 있어 유림(儒林)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오일만기자 oilman@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朴智元 문화관광부장관

    김대중 대통령은 97년 대선때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경제대통령’,우리나라가 지리적으로 작지만 지정학적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이끄는‘외교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또한 21세기는 지식·정보·문화관광의 세기가 될 것이므로 ‘문화대통령’이 되어서 무한경쟁시대를 헤쳐갈 문화강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정부’1년반,김 대통령 취임 당시 39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가 649억달러를 넘어섬으로써 외환위기가 극복되었고 경제가 되살아났다. 아울러 활발하고 왕성한 정상외교를 통해 전 정권때 서로 불편한 관계였던미·일·러 등 전세계 각국과 우리 외교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호적 외교관계를 확립했다. 그렇다면 이제 21세기를 바로 눈 앞에 둔 시점에서 문화에 보다 많은 관점을 기울여야 할 순서가 되었다.물론 대통령께서는 취임 후 IMF사태로 모든예산을 축소시키면서도 작년에 유독 문화 예산과 실업대책 예산만은 증액하여 문화계에서 큰 박수를 받은 바 있다.사상 처음으로 전업작가에 대한 창작지원금을지급한 것 또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업적이라 하겠다. 우리 문화예술계도 그동안 자구노력을 통해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다가오는 21세기에 범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될 국제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려면 문화를 앞세워 국가이미지를 개선하고 문화산업을 일으켜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대통령께서 평소 말씀하신 대로 문화예술에 대해 아낌없이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충실하고자 한다.그래야만 비로소 창의적 문화국가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이같은 문화예술 분야 지원을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전체 예산 대비 1% 확보가 시급하다. 사실 수십조의 예산을 집행하는 타 부처의 국가기능상 중요성을 부인하는것은 아니지만 문화예술을 강조하면서도 현재 7,000억원도 안되는 예산으로는 ‘말만 앞세운다’는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정부 예산 중 1%가 되려면 금년 예산보다 2,500억원 증액이 필요하다.증가율로 따지면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절대 금액으로는 그리 많은 액수가 아니다.500만원의 월급을 10% 올린다면 550만원이 되지만,50만원을 50%를 올린다고 해도 75만원밖에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연간 예산의 1%를 문화 예산으로! 이제 우리 문화계는 물론 국민 모두가 김대중 문화대통령과 함께 21세기를대한민국의 세기로 만들어나갈 것을 제안한다.
  • [해양한국 장보고에서 21세기까지](14)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 고·수(高隋)전쟁에서 승리한 고구려는 입지가 강화되었으며,통일중국의 패자는 당나라로 교체되었다.그러나 동아시아의 주도권과 교역권을 확보하기위해 당 역시 고구려와 운명을 건 대결을 할 수 밖에 없었다.두나라는 초기에는 탐색전을 겸하면서 소강상태를 유지했다.당은 산업을 발전시키고,대운하와 수도망 등을 활용,남북경제권을 통합하였고,남방무역을 활성화하여 경제력을 강화시켰다.그리고 통일중국을 패배시킨 고구려를 붕괴시켜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고자 하였다. 당나라는 수나라가 패한 원인을 분석한 후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우선 고구려를 고립시키기 위해 외곽 포위전선을 구축하였다.동돌궐과 힘겨운 싸움(630년)을 벌여 지배권을 확실히 하였다.토번(吐蕃:티베트)을 정벌(638년)하였고,서역 상도(商道:실크로드)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창국(高昌國)을 멸망시켰다(640년).뿐 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로 하여금 고구려를 배후에서 압박하게하는 외교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당에 우호적이던 백제는 고구려에 기울어졌다.신라는 당을 향해 출발하는 당항성(黨項城)이 고구려와 백제에 의해 공격을 받는 등 한반도 내에서 고립이 심해지자 친당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심지어는 사신을 보내 고구려와 백제를 쳐줄 것을 부탁하였다.양국간에 이루어진 비밀 해양외교는 고구려가 황해중부 해상권을 잃어버린 후에 허용한 결과이다. 두 나라는 전쟁준비를 하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한 유화정책을 구사하였다. 당은 고구려에게 수나라의 포로들을 소환시키고,전승기념물인 경관(京觀)을해체할 것을 요구했다.이에 고구려는 당 사신의 방문을 허용하고,포로 1만명을 귀환시키는 등 요구를 들어주는 한편 전력을 강화하고 천리장성을 쌓으면서 전쟁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642년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정권을 잡으면서 양국 간에는 일촉즉발의 긴장상태가 되었다.마침내 645년 4월,당군은 요하를 건넜고,당태종이이끄는 친정군과 고구려간에 대전쟁이 일어났다.개모성(蓋牟城:현재 요동성심양 근처)이 점령당하고,수나라와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요동성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화공을 이용한 당의 공격에 함락당한채 1만명이 전사하고,4만명이 포로가 되었다.이어 백암성이 항복하고 안시성마저 포위되어 외롭게 당군을 맞아 분투했다.연개소문은 15만의 구원군을 보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두 나라의 대결은 3개월동안 치열했다. 이 전쟁은 해양질서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기본적으로 동아지중해의 패권과 교역권을 둘러싼 국제대전이란 점이다.고구려와 백제,왜 사이의 외교교섭은 물론이고 당과 신라,백제,왜 간의 교섭 또한 모두 해양을 매개로 이루어졌다.특히 당과 신라가 적극적 교섭을 한 것은 신라가 경기만을 장악했고,고구려의 수군이 황해 중부 해상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실제 전투에서도 해양전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당태종은 처음부터 해양전의 유효성을 인식하고 있었다.신라사신이 고구려와 백제를 쳐줄 것을 요구하자 당 태종은 수백척의 군선으로 바다를 건너 백제를 기습할수 있다고 대답하였다.고구려와 전쟁을 준비하면서 400여척의 전선을 건조해 곡식을 해로로 운반하도록 하였다.또 수군을 전투에 동원,수륙양면작전을 실시했다. 평양성으로 직공할 목적으로 장량(張亮)은 500여척의 군함과 수군 4만명을거느리고 3월중순 동래항을 떠났다.점점히 이어진 묘도군도를 따라 항해하다가 4월말 요동반도 남단의 비사성에 닿았다.비사성은 요동반도 남단에서 금주만과 대련만을 관리하는 해양방어체제이며 산동반도와 한반도의 서해안을연결하던 연근해 항로의 해상관문이자 요동반도의 내륙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다. 그러나 사방이 절벽인 난공불락의 비사성도 5월초 함락당했다.이어 구효충(丘孝忠)의 수군함대는 요동반도의 해안을 따라 오고성 석성 등 고구려 해양방어군과 공방전을 벌이며 압록강 하구로 항진했다.본격적인 수군작전이 전개되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평양성이 배후를 기습당할 위험성이 커졌다. 그러나 안시성 공방전에서는 개전초와는 달리 당이 패배,9월18일 당태종이위급한 상황을 벗어나 본국으로 도주하면서 첫번째 고·당 전쟁은 고구려의승리로 막을 내렸다.645년의 국제대전은 또 한번 고구려의 승리로 끝이 난것이다.그후 당태종은 다시 군대를 파견하였는데,본격적인 수륙양면작전을계획했고,이를 위해 수많은 전선을 건조했다.647년 우진달(牛進達)이 이끄는 수군(水軍)이 요동반도 남부 해안에서 100여차례 전투를 벌였으며,해안방어의 중심 성이던 석성 등을 공격하였다.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개수영이 지휘했다는 아름답고 견고한 석성은 7월에 함락당하고 말았다.648년 설만철(薛萬徹)이 3만명의 병력과 누선 전함 등의 함대를 거느리고 출발해 박작성(泊灼城)을 공격하였다.압록강 하구에 있는 박작성은 주변에는 구련성 대행성 서안평성이 있으며,부수도인 오골성(烏骨城)과 국내성으로 접근하는 입구였다.이해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고신감(古神感)이 이끄는 당군 전함을 공격했다.당의 선박은 길이가 100척(약 30m),넓이가 반 정도 되는 큰배도 다수 있었다. 고구려의 선박은 규모를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에는 656년 고구려가 왜에 81명의 외교사절을 파견했다고 하였다.그렇다면 배 1척에 40∼50명이 탔음을알 수 있다.이 후에도 당은 대규모 해양전을 염두에 둔듯 대규모의 선박 건조사업을 추진했다.당고종은 고구려를 간헐적으로 공격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660년에 이르러 백제를 공격,동아지중해 3차전쟁인 삼국통일전쟁이 발발했다. 고·당(高唐)전쟁은 정치외교에서 해양이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군수물자의 운반은 물론 함선을 이용한 원거리이동과 후방 상륙작전을 실시하여 전선의 범위를 확대하였다.바야흐로 동아지중해의 역사발전은 본격적 해양전의단계로 돌입한 것이었다. *고분서 나온 원통형 토기 학계의 새로운 '흥미거리’ 최근 전남 나주의 신촌리 9호분에서 원통(圓筒)형 토기가 다량 발굴되었다. 지난 5월부터 이 9호분을 발굴조사해 오던 문화재청의 국립문화재연구소는18일 무덤 꼭대기 가장자리와 무덤 옆비탈 성토층에서 32개체의 원통형 토기를 수습했다고 밝혔다.흔한 항아리 형이 아닌 난초분같은 원통형 토기는 이번 발굴이 처음은 아니다.나아가 이 9호분에서도 이미 원통형 토기가 수습된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신촌리 9호분의 원통형 토기 발굴을 많은 학자들은 아주 의미있게 여긴다.토기가 무덤에 ‘묻혀 있는’형식이 매우 유다르기 때문이다. 신촌리 9호분은 나주 반남(潘南)고분군에 속해 있는 옹관(甕棺·독)고분이다.반남고분군에는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옹관고분 30여기가 속해 있으며 9호분은 여기에서 두번째로 큰 무덤이다.네모반듯한 밑자락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방대형(方臺型)인 9호분(사적77호)은 일제시대인 1917∼1918년 일본인에 의해 첫 발굴되었는데 이때 금동관,금동신발,환두대도 등이 출토되었다.파편 상태로나마 원통형을 짐작할 수 있는 토기 7개체도 발굴됐다. 이같은 원통형 토기는 독에 시신을 넣는 옹관 형식을 버리고 석실을 도입한 광주,함평 등 이 지역의 새 묘제에서 보다 세련된 형태로 꾸준히 나타난다. 따라서 이번에 9호분에서 원통형 토기가 원형 그대로 발견된 것은 이곳의 토기가 마한,백제 지역인 영산강 유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입증해 준다. 하지만 이번 발굴에서 새롭게 확인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토기가 한국묘제 최초로 ‘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이제까지 우리 고대 묘에서 발굴되는 토기는 제사용으로 쓰여졌다가 그냥 방치된 것으로 무덤 주위 이곳저곳에 ‘무질서하게’흩어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그러나 이번 재발굴 조사에서 32개체의 원통형 토기들은 무덤의 북,동쪽 옆비탈 가운데를 빙 둘러가며 일렬로 묻혀 있는 형식이었다.이는 대형 무덤을 장식하기 위한 매장자들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 보이는 배열이다. 9호분의 토기를 포함한 영산강 유역의 원통형 토기는 기본 형태 측면에서일본 고분시대의 원통 하니와(埴輪) 토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하니와는 일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묘제에서장식용으로 사용돼 왔다.따라서 이번 신촌리 9호분 발굴은 형태와 기능 측면에서 두 토기의 유사성을 더욱 강력히 제시함으로써 이같은 주장에 무게를더해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직 신중한 자세다.좀 더 자세히 살피면 서로 다른 점이 더 많이 눈에 띤다고 강조한다.현재는 신촌리 9호분의 원통형 토기가 최초로 묘 장식용으로 쓰였다는 절대적 사실 하나만이 확실하고 그것만으로도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그 이상의 섣부른 유추는 금물이라고 입을 모으고있다. 김재영기자 kjykjy@
  • 언론개혁 공허한 말잔치로 끝나나

    ‘언론개혁,말잔치로 끝날 것인가’. 방송개혁의 최우선 과제인 ‘통합방송법’의 국회통과가 무산된 이후 언론개혁 자체가 휘청거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특히 ‘통합방송법’이 진통을 겪는 동안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일었던 신문개혁의 움직임마저 수그러들게 됐다는 게 언론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 94년 ‘바른언론시민연합’이 처음 언론 감시활동에 들어간 뒤 다양한 단체들이 견제기능을 해왔지만 언론사의 구조적 모순과 고질적인 관행들은여전히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특히 최근 불거진 뇌물수수·주가조작·부동산투기 등 일부 언론인들의 비리행각은 언론윤리가 심각한 수준으로떨어졌음을 보여준다.이같은 실정인데도 언론사 내에선 뚜렷한 조치없이 흐지부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노조들의 개혁지향성이 약해진 것도 비판을 받는 부분.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 김주언 사무총장은 “언론노조들이 최근 자사이기주의에 빠져 개혁을 주도해 나갈 역량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바른언론을 위한 시민연합(언시연) 강기태 사무국장도 “언론개혁의 기초단위인 노조에서 사주의비리문제나 경영권문제 등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하고 문제제기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언론관련 단체들의 활동은 어떤가.지난해 8월 40여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결성한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정기간행물법 개정·신문개혁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는 등 제법 구체적인 언론개혁 사업을 펼쳐왔다.그러나 방송파업 등 현안에 대해 이견이 속출하는 등 유대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언시연 강기태 사무국장은 “자기비판에 인색한 언론사들의 뒷받침없이 전문적이고 특화된 운동으로 전락해 활동의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경실련 방송모니터회 한상희 간사는 “언론인들의 권위적이고 자기보호적태도가 끊임없이 비리를 양산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견제책 없이 넘어가는 게언론개혁의 최대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신문 부고에 공공기관명 금지

    혼수예물은 당사자의 부모로 한정하고 신문 부고(訃告)는 행정기관,공공기관·단체의 이름을 싣지 않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건전가정의례준칙’이조건부로 의결됐다. 정부는 12일 차관회의를 열고 보건복지부가 상정한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심의,성년의 나이를 규정한 성년례는 법무부,청소년보호위원회가 이견을 보임에 따라 관계 부처 협의를 거치기로 의결했다. 그러나 약혼과 혼수,장례 등을 규정한 가정의례준칙은 수정없이 통과됐다. 이 준칙에 따르면 약혼은 당사자와 부모 등 직계가족이 참석,상견례를 하면서 혼인의 제반사항을 협의하고 약혼식은 따로 올리지 않으며 호적등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한 약혼서를 교환한다.혼수는 검소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하되,예물을 증여할 경우에는 당사자의 부모로 한정한다. 임태순기자 stslim@
  • 막판 진통 거듭 大宇 구조조정

    대우가 대우증권 매각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매각시한을 연내로 못박지말자는 새 카드를 들고 나왔다. 벼랑에 몰린 대우가 마지막 버티기를 하는 양상이다.그러나 정부의 조기매각방침이 워낙 완강해 대우의 새 카드가 실효를 거두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우는 또 ㈜대우 건설부문을 경남기업과 합병해 계열분리후 3자 매각하려는 정부측 방안에 대해선 계열분리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 독립기업으로 남기겠다고 맞서고 있다. ■벼랑끝에 몰린 대우의 버티기 이번 구조조정방안의 가장 큰 쟁점이었던 대우증권 처리문제는 일단 정부의 요구대로 매각으로 가닥이 잡혔다.그러나 대우는 매각시한을 연내로 잡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대우는 ㈜대우 건설부문에 대해서도 독립법인 형태를 원하고 있다.그룹의지급보증이 많아 원매자가 쉽게 나타날 가능성도 별로 없는 데다 벌여놓은해외건설사업이 많고 사업성도 좋다는 점에서 정부의 매각요구는 당치 않다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투신운용의 경우엔 그룹계열사가 아니어서 정부가 보유지분(24. 5%) 매각을 원한다면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대우그룹 어떻게 될까 현재 분위기로는 대우증권의 조기 매각 가능성이 커보인다. 이럴 경우 대우는 자동차·무역을 중심으로 8개 계열사를 유지하겠다던 당초 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특히 대우증권이 계열사들의 돈줄이었다는 점에서 그룹의 구심력이 흔들리게돼 그룹 해체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여기에 대우자동차의 경영권마저 GM에 넘어갈 경우 대우자동차는 물론 관련사인 대우캐피탈,대우자동차판매,대우통신 차부품 분야 등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대우는 대우중공업,㈜대우 등 2∼3개 계열사만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환용기자 dragonk@
  • “이제야 정상생활”6천명 호적취득

    호적(戶籍)이 없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던 6,000여명의 국민이 호적을갖게 됐다. 행정자치부는 10일 지난 1월부터 6개월간 ‘무호적자 일제조사 및 취적(就籍) 지원사업’을 벌여 버려진 아이 2,880명을 포함,모두 6,357명에게 호적을 취득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97년 498명,98년 237명에 비해 대폭 늘어난 것이다.지역별로는서울 1,439명,경기 787명,부산 720명,충북 504명,전북 465명 등이다.여성(3,198명)이 남성(3,159명)보다 약간 많다. 특히 이들 가운데 20세 이상인 2,987명은 그동안 취학도 안될 뿐 아니라 주민등록증이나 의료보험증,신용카드 등을 전혀 발급받을 수 없는 형편이어서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한편 이번 사업으로 경기 여주에서 태어나 부모의 무관심과 학대로 출생신고도 하지 못한 채 가출,충남 서산에서 살아온 백모씨(70·여)는 호적을 갖게 된 것은 물론 60년만에 언니(72),남동생(54)과 재회하는 기쁨까지 누렸다. 또 김모씨(75.여)는 정신이상 증세로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다지문 조회로 경기 수원에 살고 있는 아들과 23년만에 상봉했으며,아주 어려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을 전전하다 결혼,전남 장흥에 터를 잡은 신모씨(60·여)는 이순의 나이에 비로소 호적을 취득,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행자부 관계자는 “그동안 기아(棄兒)를 제외한 무호적자는 1만여명으로 추정됐으나 이번 사업으로 대부분 호적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현갑기자
  • 경북도·시군 性차별 법규 개선

    경북도와 일선 시군의 자치법규와 행정규칙중 성차별을 초래하는 내용이 모두 정비된다. 10일 경북도에 따르면 도는 현행 법령을 비롯,자치법규와 행정규칙 가운데 남녀 불평등 또는 여성차별을 조장하는 법규와 규칙 26건을 개선하기로 했다. 내용별로는 기혼여성에 국한되는 의미가 있는데다 여성을 비하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부녀’라는 단어를 ‘여성’으로 바꾸는 등 용어 변경이 8건,민법과 호적법의 재혼 금지기간 등 가족관계를 내용으로 하는 것이 6건,공무원시험·인사 관련 사항 12건 등이다. 법규별로는 민법을 비롯한 법령이 12건,도 의용소방대 설치 조례 등 도 자치법규 7건,기타 중앙 및 도의 행정규칙 7건 등이다. 도는 이중 조례,규칙 등 자체 처리가 가능한 10건은 가까운 시일내에 바로잡고 법령 등 자체 처리가 불가능한 16건은 중앙부처에 건의하거나 유관기관·단체간 협의를 통해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
  • [침수 제품·농작물 관리요령] 인명·재산피해 보험보상

    집중호우에 따른 인명과 재산피해에 대한 보상을 문답으로 알아본다. ■사상자나 가옥피해를 보았을 경우 어떤 보험으로 보상받을 수 있나. 사상자의 경우 손해보험 중 상해보험,개인연금보험,운전자보험,암보험,여행보험 등에 가입한 고객은 보험가입 한도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재산피해는주택과 공장 등이 화재보험이나 동산종합보험의 풍수재보험 특약에 가입돼있어야만 보상받을 수 있다. ■집중호우때 자동차를 운전하다 차가 물에 잠긴 경우 보험보상을 받을 수 있나. 지난 5월 이후 자동차종합보험의 자기차량손해에 가입했다면 운행 중 침수는 물론이고 주차 중 침수(아파트·강변·피서지역 주차장)나 둑이 터져 차량이 떠내려간 경우에도 보상이 가능하다. ■보상을 받으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되나. 먼저 보험에 가입한 회사에 신고부터 해야 한다.보험회사는 현장조사를 통해 홍수로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입증되면 피해정도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다. ■사상자들은 어떤 절차를 거쳐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나.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나 부상자들은 가입한 보험상품의 보상내용에 따라 사망보험금 및 치료비와 상해보상금,후유장해 보상금 등을 받을 수 있다.실종자는 시·군·구청 등 행정관서에서 발급하는 실종·사망확인서를 제출하면보험사의 자체조사를 거쳐 보험금을 지급받는다.실종자의 경우 국가에서 사망으로 인정한 경우,사망보험금을 즉시 받을 수 있다. ■어떤 보험에 가입했는지 유족들이 모르면 어떻게 하나. 최근에는 휴대폰에 가입해도 교통상해보험에 들어주고 주유소에서도 무료로보험에 가입시켜주는 경우가 많다. 손보협회에서는 불의의 사고를 당한 유족들을 위해 서울·부산·대전·대구·광주·원주·인천 등 7개 상담소에서 보험가입조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 정보사항이기 때문에 전화신청은 안되고 직접 사망자와의 유족관계를확인할 수 있는 서류(주민등록등본과 호적등본)를 준비해 신청하면 손해보험은 물론 생명보험 가입여부까지 알려준다. 조회센터연락처는 서울 (02)3702-8629∼30,인천 (032)761-4066∼7,원주 (0371)746-2414 748-2414,대전 (042)526-6924∼5김균미기자 kmkim@
  • 대리인 통한 은행계좌 개설 인감증명 제출해야

    다음달 1일부터 개인 또는 법인이 대리인을 시켜 은행 등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하려면 위임장과 함께 본인 또는 해당 법인의 인감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재정경제부는 30일 이같은 내용으로 실명제 관련 기준을 변경,8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대리인을 통해 계좌를 틀 때 본인과 대리인의 주민등록증 등 실명확인 서류와 본인의 위임장을 내도록 하고 있으나 위임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어려워 남의 이름을 훔치는 등의 사고위험이 있어왔다. 그러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이 대리인일 경우에는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 의료보험증 등 가족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상일기자
  • [사설] 北 미사일발사 강행한다면

    국제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한국과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는 북한이 또다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모든 대북지원의 중단을 비롯한 외교·경제적 제재를 이미 여러차례 경고하고 있다.한·미 양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징후가 확실해지면 한반도에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과 전투비행단 등을 신속히 배치하는 군사적 대응을논의했다.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려면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의가중은 물론 최악의 경우 군사적 보복까지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94년 핵위기 때나 지난번 서해교전사태 때와 같은 긴장상황이나전쟁위기는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만에 하나 군사적 대응이 불가피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남북한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을 강요하는 비극일 것이다.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며 모든 노력을 다해 막아야만 할 사태다.정부가 북한의 미사일발사를 막기 위해 미·일은 물론 중국·러시아와도긴밀히 공조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로서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할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전적으로 북한 지도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미사일 발사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며하나라도 더 얻어내기 위해 발사 움직임을 계속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로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많다는계산은 북한도 충분히 알고있을 것으로 믿는다.미사일 발사를 강행할 경우당장 식량 등 경제지원이 중단되고 경제제재와 외교적 압력이 강화될 것이다.일본은 대북 송금중단 등 강력한 제제조치와 함께 한반도 에너지개발기구(KEDO)분담금도 낼 수 없다는 방침이라 제네바 핵합의마저 깨어질 가능성이 크다.더구나 일본이 북한 미사일을 빌미로 군사대국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점도 우려된다. 북한은 미사일 개발이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라며 미사일발사 강행의 뜻을굽히지 않고 있다.그러나 미사일발사 강행으로 얻을 것은 국제적인 따돌림과 감당하기 어려운 보복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한·미·일의 거듭된 경고와 강력대응 의지가 단순한 위협이 아님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동북아의 안정과 세계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를 국제사회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것이다.상대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인 러시아와 중국까지도 우려하는 일이다. 어떤 선택이 북한에 이로울 것인지는 전적으로 북한이 판단할 문제다.미사일이나 핵개발로 일을 저지르고 대가를 얻어내려는 ‘벼랑끝 외교’는 이제끝내야 한다.미사일발사를 중단하는 북한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 金대통령, 코언 면담…휴가지서 이례적 접견

    북한이 미사일 재발사 기미를 보이면서 ‘미사일 공조’문제가 한·미간 초미의 과제가 되고 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9일 하계휴가중임에도 코언미 국방장관을 접견한 데서 분위기가 읽혀진다.면담은 이날 오전 이례적으로대통령 휴가지인 청남대에서 우호적 분위기 속에 1시간40여분간 진행됐다. 김대통령과 코언장관은 두가지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북한 미사일재발사 억지와,한국산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문제가 그것이다.북한 미사일문제가 주된 토픽이었다.북측이 일을 저지르기 전에 억지하는 방안은 물론 사후문제도 거론됐다. 배석한 박준영(朴晙瑩)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이 한·미·일 3국의 긴밀한공조를 역설했다고 전했다.즉,“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발사전은 물론 발사 후에도 3국이 철저히 공조하는 것”이라는 취지였다. 물론 강조점은 발사를 사전에 막는데 있었다.김대통령은 이를 위한 당근과채찍을 제시했다.“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북한에도 이익이 되지 않을것이며, 발사를 하지 않을 때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것이다.코언장관도 이에 동의했다. 박대변인은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을 쐈을 경우 한·미의 구체적 제재방안에대해선 절제된 자세였다. 다만 그는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는물론 미국의 확고한 ‘대한 안보협력’을 확인한다”는 코언장관의 발언을소개했다.대북 제재국면으로 갔을 때 한·미 공조 ‘방향’의 일단을 내비친것이다. 한·미간 미묘한 현안인 한국산 미사일 사거리 연장문제에 대해서도 박대변인은 언급을 자제했다.다만 사거리 500km 연구개발문제는 양국의 실무전문가들이 가급적 빨리 협의해 나가기로 하는 선에서 조율이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다.김대통령의 최근 방미시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논의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접견에는 한국측에서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과 황원탁(黃源卓)외교안보수석이,미국측에서 보스워스 주한 미대사,존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배석했다. 구본영기자
  • 미-러 ‘안보 신밀월시대’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과 러시아는 27일 양국의 장거리 핵무기를 감축하기 위한 협상을 다음달 모스크바에서 재개키로 합의했다. 세르게이 스테파신 러시아 총리와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제3차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Ⅲ)및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개정 협상을 시작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러는 지난 93년 양국의 장거리 핵탄두를 3,000∼3,500기 이내로 줄이는 내용의 START Ⅱ에 합의했으나 러시아 의회가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이의비준을 마친 미국은 START Ⅲ에 관한 협의를 하기 전에 러시아의 START Ⅱ비준을 요구해왔다. 미국은 START Ⅲ를 통해 핵탄두를 2,000∼2,500기로 줄이려 하고 있으며 지난 72년 양국 간에 체결된 ABM 조약의 개정도 원하고 있다. 코소보 사태로 소원해진 양국관계 복원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중인 스테파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21세기를 우호적 동반자로서 진입하며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어 부통령은 “새로운 세기에 미-러관계 강화는 미국의 안보와 세계의 안정을 위해 필수 요소”라며 화답했다. 스테파신 총리는 이어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오늘 9월 뉴질랜드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양국관계 회복 노력을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hay@
  • KBS2TV 8·15특집‘도전 지구탐험대’

    KBS2TV ‘도전! 지구탐험대’는 8·15특집으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등이 남태평양 사이판 바다 속에 일제 징용 희생자의 위령비를 세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황영조와 함께 이 일을 한 사람들은 수중공사전문가 김지중,전문다이버 이정수,대학생 장언(서울예대 2년),강지원(한양대 2년)씨 등.여기에 수중촬영팀과 제작팀도 참가했다. 이들은 지난 8일 출국,무인도에서 수중작업 훈련을 받은 뒤 16일 사이판 앞 마나가하섬 부근의 12m깊이 해저에 길이 1.8m 무게 2.5t짜리 수중 위령비를 세웠다.이 곳에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격추된 B-29폭격기 잔해가남아 있다. 당초 작업은 7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예기치 못한 어려움에 부딪혀 9시간으로 늦어졌다.비석을 배에서 내리다 무게 때문에 크레인의 유압호스가 터지는가 하면 빠른 조류로 위치를 잡기 조차 어려웠다.황선수 등은끝내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태평양 전쟁시 희생되신 영혼이시여 고이 잠드소서’란 문덕수 시인의 시가 새겨진 비석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사이판은 요즘 신혼여행지로 유명하지만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한국인들이징용과 종군위안부라는 치욕적인 이름으로 끌려가서 희생됐던 한많은 땅이다.또 IMF 이전 만해도 한국인교민이 5,000명이나 살고 있었다.그러나 관광객의 감소 등으로 일이 없어지면서 교민의 생활도 힘들어졌다.8·15와 교민을동시에 생각하며 기획한 이 위령비 건립은 1년동안 준비기간을 가졌다.최종건PD는 스킨스쿠버 마스터 자격증을 가진 황영조선수에게 이 역할을 맡겼고,수중공사 건설업체인 김지중(37·인목엔지니어링)대표,사이판 앞바다를 잘아는 전문다이버인 교민 이정수씨 등의 도움을 얻었다.사이판관광청에선 북마리아제도의 대통령전용헬기와 배를 3번이나 빌려주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처음 느끼는 큰 감동”이라고 소감을 밝힌황영조선수는 정신대 동굴 등 사이판 곳곳의 역사현장을 탐방하고 징용1세대인 김학봉씨 일가를 만나 취재활동도 펼쳤다.이 결과 징용에서 살아남은 9명의 한인이 뭉쳐 ‘화목계’를 만들었고 그들이 호적등본과 행동강령을 항상품안에 지니고다녔다는 기록 등을 찾아냈다. 올림픽의 영웅을 감동시킨 이번 ‘도전’은 광복절인 8월15일 오전 9시40분방송된다. 허남주기자 yukyung@
  • 서울시, 지하철역 현장민원실 30곳 추가 설치

    출퇴근길에 각종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지하철역 ‘현장민원실’이대폭 늘어난다. 서울시는 25일 시민들이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방문하지 않고도 민원서류를발급받을 수 있도록 올해안에 지하철역 현장민원실을 30곳으로 확충하기로하고 10억5,000만원의 예산을 각 자치구에 지원했다.현장민원실은 각 자치구가 자체 개설한 9곳을 포함해 현재 종로3가·동대문·옥수 등 19개 역에 설치돼 가동중이며 이달중 은평구 연신내역과 서대문구 신촌역을 필두로 연말까지 11곳이 추가로 마련된다. 대략 오전 7시에 문을 열어 오후 9∼10시쯤 닫는 현장민원실에서는 주민등록 등·초본과 호적 등·초본,건축물관리대장,토지대장 등 235종의 민원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고 팩스민원도 가능하다. 조덕현기자 hyoun@
  • [대한매일을 읽고] ‘주민증 한자병기’ 한자SW 개발 촉진

    정부가 새 주민등록증에 한자이름을 같이 쓰기로 결정함에 따라 발급이 당초 예정보다 6개월 이상 늦춰질 전망이라고 한다(대한매일 15일자 27면). 이번 결정으로 우선 4만8,000여자에 달하는 한자가 필요하나 당장 개발된소프트웨어가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명을 한자로 병기할 때 그 효과는 당장 보일 정도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하루이틀 쓰고 말 신분증이 아니라면 다소간의 시간과 예산이 소요되더라도 제대로 발급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한자 소프트웨어 개발은 비단 주민등록증에만 국한되지 않고 호적 사무의 전산화와 우리 어휘의 한자 표현을 위해서도 필요한 분야다. 따라서 이번 새 주민등록증 발급이 한자 소프트웨어 개발측면에서도 도움이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경내[부산 동래구 낙민동]
  • 남다른 인연 李금감위원장과 대우 金회장

    이헌재(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과 김우중(金宇中) 대우 회장. 한 사람은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정부군 사령관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재계의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 회장.서로의 입장이 달라 지금은 ‘적’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한 때는 상대방의 어려움을 돌봐주는 우호적 ‘원군’의 관계였다. 두 사람은 경기고 동문이다.김 회장이 52회,이 위원장이 58회 졸업으로 김회장이 6년 선배다.김 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이 위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두 사람의 인연은 대우신화가 무르익는 70년대 중반에 맺어졌다.대우는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욱일승천할 때였고 이 위원장은 74년부터 재무부금융정책과장으로 한창 명성을 떨치던 시기였다.대우는 당시 외상으로 수출하고 은행에서 먼저 수출대금을 받는 연불수출 금융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곤 했다.그러나 수출입은행이 설립된 76년 이전에는 은행에서 수출대금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김 회장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금정과장이었던 이 위원장을 찾았으며 이 위원장은 가능한 범위에서 김 회장을 도와줬다. 김 회장은 이같은 신세를 잊지 않았다.이 위원장이 79년 재정금융심의관을끝으로 낭인생활에 들어가자 82년 (주)대우 상무로 영입해 84년 대우반도체전무까지 지내게 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금감위원장에 취임하면서부터 김 회장과의 사이는 멀어졌다.빅딜 문제로 여러차례 충돌했으며 조찬강연에서는 재벌총수의 구조조정 의지가 미흡하다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백문일기자
  • 金商勳금감원부원장 문답

    금융감독원 김상훈(金商勳)부원장은 19일 “대우는 자동차와 무역 등 2개부문의 전문화된 그룹으로 탈바꿈하며,김우중 회장은 자동차의 경영을 정상화해도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난다”고 밝혔다. ?구조조정계획을 제대로 이행해도 물러나나. 물러난다.김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며 대우는 전문경영인체제로 바뀌게 된다. ?대우그룹의 정상화 시기는. 자동차를 정상화하는 데 2년 정도 걸린다. ?대우증권도 매각되나. 모든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내놓기 때문에 자동차·무역 이외의 부문은 구조조정 대상이다.장기적으로는 증권과 건설도 매각 대상이다.증권은 자동차를 정상화한 뒤 매각할 것으로 본다. ?김회장의 ‘우호적 지분’은 그대로 남게 되나. 우호적 지분은 임직원 지분을 말하는데,이미 실소유주(김회장) 앞으로 명의가 바뀌었다. ?신규 자금지원은 다른 5대 그룹과의 형평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구조조정은 그룹이 책임지고 추진하게 돼 있다.구조조정을 가속화하기 위해유동성을 지원해 주는 것 뿐이다. ?이번 조치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봐도 되나. 좁은 의미로는 워크아웃이 아니다.워크아웃에는 채무상환유예와 빚 탕감 등의 채무조정이 들어가는데,대우는 채무조정이 없다. 오승호기자 o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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