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호적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철거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제철소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실적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 아기
    2026-01-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683
  •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범(殺人犯) 박원식(朴元植)은 한방에서 두 여자(女子)와…

    살인강도범 박원식(朴元植·38)이 거쳐간 6인의 여자. 포악하고 비정한 박(朴)이지만 여자다루기에는 명수. 천성이 방랑아였던 그의 발자취가 닿는 곳마다 연인이 생겼고, 그는 또 연인의 돈으로 방랑을 계속, 새 여자를 만들곤 했다. 그의 엽색 행각을 더듬어 보면-. 애인의 돈우려 새 애인 만드는 자금 삼아 박은 1933년3월29일 경남 김해(金海)군 이북(二北)면 병(屛)리 법동곡(法洞谷)부락 695 박모(75·사망)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호적에 의하면 박의 형은 1930년에 태어났다가 3살때 죽었으며, 박의 아래로는 3남(34), 누이 둘(29·21)과 4남(24)이 입적돼있다. 이중 4남은 47년에 출생, 53년에 죽은것으로 돼있으나 3남은 주민등록 신고도 없이 행방불명으로 돼 있는데, 부산 영도구 신선동에 살고있는 박의 어머니 김(金)노파(68)에 의하면 3남은 오래전에 죽었다고 한다. 박은 70년 8월 10일자로 김모 여인(30)과 혼인신고가 돼있으며, 70년 3월30일 출생한 딸이 같은 날짜로 입적돼있다. 박이 주민등록증을 발부받은 곳은 시내 서구 남부민동 220번지 4통2반으로 돼있는데 이곳은 박의 시집간 큰누이가 사는곳으로 박이 누이 집에 더부살이 하면서 주민등록을 한것으로 보인다. 박은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못했고 고향인 김해에서 국민학교 3년을 중퇴, 집에서 놀고있다가 14살때 김해를 떠나 부산(釜山) 대구(大邱)등지로 떠돌아 다니다 6·25가 나던 해인 18살때 군에 입대, 20살때 제대한것으로 알려졌다. 군에서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박은 남의집 품팔이등으로 가난한 생활을 하다 집안은 부유하나 천성의 벙어리로 시집을 못가고있던 동네 처녀에게 데릴사위 형식으로 장가를 들었다. 장가를 든 박은 처가집에서 놀고먹으면서 벙어리부인을 툭하면 때리는 등 행패를 부리다 1년만에 아무말없이 사라져 버렸다는게 고향사람들이 박을 기억하고 있는 전부다. 이후의 박의 행적중 뚜렷한 것은 22살때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절도죄로 징역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2년뒤 다시 절도죄로 김천(金泉)지원에서 징역2년, 교도소내에서도 담배를 피우고 소란을 떠는등 문제수(囚)로 지목받았었다. 59년 9월 부산지법에서 모종사건으로 징역7년형을 받고 복역중 64년도 9월 1차감형때 풀려나와 오늘까지 별로 하는일없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베일」에 가린 생활을 해왔다. 성격이 난폭하고 여자낚기와 사격의 명수인 박은 이름도 김창식(金昌植), 박태동등 나오는대로 주워 섬기면서 때와 장소에 따라 「카메레온」처럼 변신해왔다. 박으로부터 제일 처음 피해를 입은 한독약국 김근상씨(34)에 의하면 김씨가 박을 본 것은 7년전이었는데 이때 박은 자기가 모처에서 일을 한다면서 거드름을 떨며 알수없는 몇마디 말을 하고 헤어진후 강도를 당한 지난 6월29일밤 처음 봤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의 행적은 뚜렷하지않은데, 호적에 입적돼 있는 본처와 어머니가 70년2월이후 살고있는 영도구 신선동 본집에도 한달에 한두번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생활비조로 1,2만원을 던져주고 휙 나가버려 처와 어머니도 박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있다. 박이 현재 본처로 돼있는 김모여인을 만나기는 68년도에 박이 탕아로 부산의 사창가인 완월동 등지를 드나들면서 만나 서로 정이 들자 동거생활로 들어갔다한다. 이때(68년12월) 박은 웬일인지 대구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지난 11일 제2의 범행을 저지른 대구시 비산(飛山)동 296의30 진(陳)기춘씨집 근처에 집을 얻어 생활을 하면서 사형인 진씨에게 『생활이 곤란하면 함께 일본으로 뛰자. 준비는 다 돼있다』는 등의 말로 자주 접근해 왔다. 이를 수상히 여긴 진씨가 모기관에 박을 고발했는데, 고발당한지 5일만에 다시 박이 나타나 『재미없다, 죽을줄 알아라』는 등의 협박을 하고는 부산으로 간다면서 대구에서 바람같이 사라져 버렸다. 여자다루는 마력(魔力) 지녔나? 질투없이 몸대고, 돈대고 70년 3월 부산에 나타난 박은 친척들이나 자기를 오래알고 있던 곳에는 전연 얼굴을 내밀지 않고 남부민동 220 자기 누이집으로 『자신이 다른지방으로 전근간다』면서 가족을 보내고는 행방을 감추었다. 이리저리 혼자 떠돌던 박은 이해 6월 송도 모주점에서 두번째 내연의 처인 문(文)모여인(28)을 만났다. 해녀생활을 하다 주점에 나온지 얼마 안된 문여인은 박의 능수능란한 여자다루는 솜씨에 그만 녹아떨어져 자기집에서 박과 함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문여인은 이때 얼마나 박을 좋아했는지 박없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없다는 식으로 제나름의 시를 지어「노트」에 적어놓는등 박을 붙잡기에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박은 두달후에 온다간다 말한마디없이 문여인의 곁에서 증발했는데, 이때 박은 문여인덕으로 먹고살면서 부산의 번화가를 드나들다가 중앙동 K다방의 고용「마담」으로 있던 김모여인(28·동래구 부곡동)을 구슬러 김여인의 언니가 살고있는 부곡동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가 버렸다. 박은 새로 사귄 김여인과 어울려 김해를 비롯, 경남(慶南)의 명소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연인과의 정을 두텁게 했다. 하는일없이 놀고먹는 박은 무슨 해상장사를 하겠다는등 알쏭달쏭한 소리를 해가며 김여인과 김여인의 언니돈 89만여원을 갖다 흥청대면서 지난 5월 박이 김여인과 함께 일본으로 밀항하기위해 함남동 문여인집으로 올때까지 죽 이곳에 눌러있었다. 5월말 문여인집으로 김여인과 함께 옮겨온 박은 한집에서 한달가까이 김여인을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여인들을 잘돌봤는지 이들은 한번도 싸우거나 불평을 늘어놓은적이 없다고한다. 타고난 「플레이·보이」인 박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김·문등 여인말고도 서울 모다방에 있다는 손(孫)모, 대구에 있다는 김(金)모등 이루 헤아릴수없을 정도로 많은 여인들을 주변에 두었는데 이들에게서 들은 박의 여인낚기의 특징은 뛰어난 화술에 있다는 것이다. 중졸정도의 교육을 받은 여인들은 박과 앉아 5분정도만 이야기해도 금방 좋아질 정도로 그는 이 방면에 비상한 재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釜山)=김홍석(金弘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25일호 제4권 29호 통권 제 146호]
  • 美 상무장관 새달 방한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칼로스 구티에레즈 미국 상무장관이 다음달 중순쯤 한국을 방문한다.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구매사절단을 이끌고 14일(현지시간) 워싱턴을 방문중인 김완희 한국수입업협회(KOIMA) 회장은 이같이 전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방한으로 보인다.”고 밝혔다.kmkim@seoul.co.kr
  • 李회장 재산 고의 은닉 정황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는 조준웅 특별검사팀은 14일 포탈세액을 산정하기 위해 막바지 수치 계산작업을 벌이고 있다. 특검팀은 이건희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와 관련, 최근 전용배 전략기획실 상무를 수차례 소환해 포탈액을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다. 특검팀 관계자는 “자금 흐름과 관련된 계산 문제 등으로 내용을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전 상무를 조사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이 산정한 이 회장의 차명주식 거래 차익에 따른 양도소득세 포탈액 규모는 1000억원대로 벌금과 가산세 등까지 합치면 이 회장이 물어야 할 세금은 1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 쪽은 이에 대해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이 회장의 개인 재산을 차명으로 분산관리한 것일 뿐 조세 포탈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특검팀은 최근 삼성 전·현직 임원뿐 아니라 이들의 가족과 친척 명의로 개설된 차명계좌도 상당수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쪽은 그동안 구청, 동사무소, 면사무소 등의 협조를 받아 주요 계열사 임원들의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등본) 등을 확보한 뒤 이들 명의로 이 회장 일가의 재산을 은닉해 왔는지 추적해 왔다. 그 결과 임원들 본인뿐 아니라 형제, 자매, 배우자 등 가족 및 친지 명의로까지 차명계좌를 개설해 차명주식과 재산을 관리해 온 정황을 파악했다. 이는 이 회장의 재산 은닉이 매우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이뤄졌다는 뜻으로 의도적 세금 포탈 혐의로 이 회장을 기소하는 데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또 사법처리 대상자인 삼성 임직원 일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특검팀 관계자는 “수사결과 발표 이전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회장을 비롯, 전략기획실 핵심 관계자들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유지혜 장형우기자 wisepen@seoul.co.kr
  • 타이완 親中정권 중국엔 천군만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59년 만의 최고위급 회담이 양안(타이완-중국) 정상회담의 길을 닦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샤오완창(蕭萬長) 타이완 부총통 당선인이 지난 12일 중국 하이난(海南)성 보아오(博鰲)포럼에서 회동을 갖고 경제협력과 관계 개선에 합의했다. 샤오 당선인은 후 주석에게 ▲직항의 신속한 실시 ▲중국인의 타이완 관광허용 ▲경제무역의 정상화 ▲양안 협상 틀의 복원 등을 제안했다고 타이완 중앙통신이 타이완 대표단 왕위치(王郁琦) 대변인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번 회동은 1949년 국공(國共)내전이 종결되고 국민당 정권이 타이완으로 쫓겨난 이후 최고위급 지도자 간의 만남이다. 정부 당국자 간 접촉도 99년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와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를 통한 공식 대화가 중단된 이래 9년 만에 처음이다. 거름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마잉주(馬英九) 타이완 총통 당선인은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참석 의사를 밝혔고, 중국을 방문해 ‘평화협정 체결’ 등을 논의할 수 있음을 시사해 왔다. 그는 “이번 회동은 양안의 미래 대화를 위한 좋은 준비작업이 될 것”이라며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총통 취임 전에, 그것도 대선이 끝난 지 불과 20여일 만에 양안 지도자 간 회담이 이뤄진 ‘속도’에 주목했다. 또 정기 직항노선 개통 방안 등이 처음으로 중국 최고지도자에게 공식 제안됐다는 점에서 각종 협력방안이 조기에 물꼬를 틀 것으로 보고 있다. 샤오 당선인은 회동 뒤 “솔직하고 진지했으며 우호적이었고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마 총통 당선인의 친서나 메시지를 후 주석에게 전달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샤오 당선인은 보아오 포럼에 ‘양안공동시장 재단 이사장’이라는 민간인 자격으로 참석했지만 중국측은 외국 수뇌급에 준한 ‘의전’을 베풀었다. 개막식에서 샤오 당선인은 외국정부 수뇌들과 함께 가장 앞자리에 앉았다. 하이난성 정부가 주최한 만찬에서도 샤오 당선인을 각국 정상 및 정부 수뇌들과 나란히 주빈석 식탁에 앉혔다. 만찬이 끝난 뒤 후 주석은 문 밖으로 먼저 나가 샤오 당선인을 배웅했다. 그러나 후 주석은 샤오 당선인을 ‘양안 경제전문가 샤오완창 선생’으로 불렀다. 민간인임을 강조한 것은 타이완의 외교·정치적 존재를 부각시키지 않기 위한 의도다. 후 주석은 샤오 당선인으로부터 타이완 대표단을 소개받고 일일이 악수한 뒤 20분간 면담했다. 후 주석은 “양안 경제협력은 역사적인 계기를 맞고 있으며 양측이 공동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샤오 당선인도 “양안의 경제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라면서 “경제협력을 강화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세계 2000여명의 정·관·재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7차 보아오포럼 총회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13일 폐막했다. 그러나 중국은 이 자리를 빌려 티베트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후 주석은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 만나 “티베트 사태는 민족 문제도, 종교 문제도 아니며 인권 문제는 더더욱 아니며, 전적으로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해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항의시위와 올림픽 불참 움직임에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내비쳤다. jj@seoul.co.kr
  • [4·9 총선 이후] 희비 갈린 경제 관련 상임위 의원

    18대 총선이 ‘여대야소’로 개편됨에 따라 각 상임위원회의 대정부 질의를 주도하는 ‘공격수’의 면모도 바뀔 전망이다. 특히 경제부처 관련 상임위 가운데 정부 정책을 통렬히 비판했던 의원들의 희비가 엇갈려 관심이다. 17대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경우 대표적인 공격수로는 ‘여성 3인방’이 꼽힌다. 통합민주당 박영선·한나라당 이혜훈·진보신당 심상정 의원 등이다. 옛 재정경제부는 국정감사 때마다 이들의 질의에 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심 의원이 18대에선 고배를 마셨다. 재정부는 “심 의원의 질의는 논리적이고 날카로웠다.”고 평가했다. 회의 때마다 엄청난 자료를 요구해 담당 공무원들을 난처하게 했던 엄호성 전 한나라당 의원은 금배지를 잃었다.17대에서 여당 의원임에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유명했던 박영선 의원이 야당 의원으로 변신한 것에는 해당 부처 공무원들이 벌써부터 부담을 느끼고 있다. 농림해양수산위원회에서는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다. 강 의원은 한·미 FTA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 등에 강력히 반대하는 ‘우리 농축산물 지킴이’의 대표적 주자이다. 때문에 관계 부처는 그의 재선 여부를 예의주시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공무원들은 불편하겠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강 의원 같은 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위원회 소속인 이방호 한나라당 의원을 물리친 것도 눈길을 끈다.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관할하는 정무위원회는 대격변을 예고한다. 여야가 뒤바뀐 것은 물론 소속 의원 24명 중 9명만 살아남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17대에선 여당인 통합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 위원들도 공정위에 우호적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바뀔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박병석·원혜영 등 공정위의 역할에 우호적이었던 의원들이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각당의 중진 의원들이 즐비한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임종석 통합민주당 의원이 낙선했다.386세대의 대표주자였으나 김동성 한나라당 후보에 패배했다. 이에 따라 진보정당의 맏형격인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산업자원위원회의 경우 22명 의원 가운데 11명이 교체됐다. 무소속 의원과 친박연대 의원들이 모두 낙선했다. 야당이 된 통합민주당 소속은 이광재·최철국 의원 등 4명만 남아 새로운 공격수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백문일 이두걸기자 mip@seoul.co.kr
  • [4·9 총선 이후] 주식·환율시장 영향은

    여대야소로 ‘MB노믹스’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섣불리 정부 말만 믿고 달려들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10일 중국 위안화의 강세로 아시아권 통화가 강세를 나타냈지만 원·달러환율은 보합이었다. 기업은행 김성순 차장은 “여대야소로 기획재정부의 환율정책(원화약세)이 힘을 받아 원·달러 환율이 크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달러 수급상황이나 대외여건을 볼 때 상승 여력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수출 상승세는 환율보다는 수출 대상국의 경기에 따라 움직였다는 점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율부양이 주요한 정책수단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ABN암로 김인근 이사는 “ 환율이 정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에는 외환시장이 너무 커졌다.”고 말했다. 증시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우호적으로 작용하겠지만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는 지적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투자분석부서장은 “정말 중요한 것은 기업의 실적이나 글로벌 요인”이라면서 “정책 변화에 따른 환경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반영되는 법인데, 이벤트 위주로, 냄비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현대증권 김영각 연구위원은 “한·미FTA 타결이나 금산분리 완화, 부동산 경기 활성화, 규제 완화 등이 적극 시행된다면 당연히 증시에도 우호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렵고 장기적으로 서서히 증시에 반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도 이날 보고서를 통해 총선 결과가 국내 증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높아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압력과 무역수지 악화로 유연한 통화정책도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소영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4·9 총선-희비 갈린 野거물들]한나라 2인자 꺾은 문국현

    [4·9 총선-희비 갈린 野거물들]한나라 2인자 꺾은 문국현

    서울 은평을의 선택은 창조한국당 문국현(얼굴) 후보였다.4선에 도전했던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는 끝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문 후보는 선거초반부터 지켜온 리드를 지켜 과반수의 득표를 얻었다. 문 후보는 여권 실세인 이재오 후보의 막판 총력전도 따돌렸다. 당초 은평을은 이 후보의 ‘아성’으로 여겨졌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 여론이 이 의원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선뜻 공략에 나서기가 힘들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만큼 한나라당 ‘실세’ 이 후보의 무게감은 대단했다. 그러나 ‘한반도 대운하 저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문 후보의 상승세가 무서웠다.‘사느냐 죽느냐’의 승부수를 던졌던 문 후보는 5년 후를 도모할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도박은 성공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소위 야권의 잠재적 대권후보들이 대부분 낙마한 상황이라 문 후보의 승리가 더욱 의미있다.”고 평가했다. 향후 야권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립변수’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해체 위기에 빠졌던 창조한국당의 회생은 ‘보너스’다. 반면 이 후보는 ‘사면초가’상황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원내진입에 실패한 터라 당권도전도 힘들어졌다. 정치생명의 최대 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친이계 좌장으로서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문 후보는 출마 선언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이 후보를 앞서 왔다. 그러나 이 후보의 맹추격으로 마지막까지 접전이 계속됐다. 방송사의 출구조사는 서로 엇갈렸고 문-이 후보 캠프의 표정도 시시각각 변화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Seoul In]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 접수

    강서구(구청장 김재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접수를 6월30일까지 받는다. 신고대상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군인, 노무자, 위안부 등이다. 피해자 본인, 피해자의 친족(배우자·8촌 이내 혈족·4촌이내 인척)이면 신청이 가능하다. 구비서류는 신고인 신분증, 피해자 재적·호적 등본, 기타 증빙자료(징집통지서, 명부, 사진 등)이다. 후유장애가 있을 경우 진료기록, 장애판정 기록을 첨부해야 한다. 자치행정과 2600-6043.
  • [열린세상]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과제/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열린세상]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과제/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그동안 남북관계는 ‘특수관계’로 정의되었고,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특수성’을 기초로 결정되어 왔다. 특수성에 기초한 대북정책은 북한의 기존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완화 또는 변화를 유도하기보다 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북한의 권위주의 체제 강화를 위한 통치자금 확대, 비대칭 군사력 강화(핵 및 미사일 개발),‘연공연북’ 연대 구축 등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united front)에 대한 우호적 환경이 조성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북한의 정치적 입장이 강화된 남북관계의 비대칭성을 야기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따라 일차적으로 특수성보다 보통국가 관계의 보편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선의(善意)의 친선·교류·협력 외교원칙에 의거하여 ▲남북한 교류·협력의 상호주의 원칙 이행 정신을 견지하며 ▲남북한 상호 군사적 위협 억제 노력(핵 및 미사일, 생화학 무기개발, 재래식 무력 및 공격태세 억제)을 강화하고 ▲북한의 내정 간섭을 최소화해 나가는 보다 건강한 남북관계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남북통일을 대북정책의 궁극적 목표로 상정하되 외교적 상식이 통하는 보통국가 관계 구축을 남북통일 과정의 우선적 목표로 추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교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태의 남북관계 하에서는 실질적인 통일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고려해서다. 현재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본방향은 ‘비핵·개방·3000’ 구상에 집약적으로 제시돼 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대전제 아래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에 나설 경우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 안에 3000달러가 되도록 적극 협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개방·3000 구상은 비핵과 개방이 전제될 때 획기적이고 실질적인 대북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것으로서 대북관련 국정과제들을 포괄하는 대북정책의 총칭이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이것은 ‘핵문제 해결이 없다면 모든 남북관계를 완전 동결하자는 것인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다. 따라서 정부는 북핵문제와 연계해서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사안과 북핵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안을 구분하여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의 새 평화구조 창출을 위하여 남북한 관계에서 ▲비핵·개방·3000 구상 추진 ▲남북 인도적 문제 해결 ▲나들섬 구상 추진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 ▲ 남북협력기금의 투명성 강화 등의 다양한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총칭하여 ‘새 평화구조 창출’ 정책으로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 평화구조 창출을 위하여 비핵·개방·3000 구상을,6자회담에서의 다자간 합의에 따른 핵합의 이행과정과 우리의 대북경제 협력 및 지원을 연계해 추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따른 대북 경제적 보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뿐만 아니라 남북간의 실질적 경제 교류협력과 지원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 차원의 경제 교류협력과 지원이 배타적으로 추진되어 북핵 관련,6자회담에서의 다자간 합의 이행을 어렵게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남북 인도적 문제 해결을 비롯한 여타 대북문제는 북핵문제와는 별도로 선택적으로 추진하고 이산가족 문제 해결은 실용적 차원에서 일정한 보상수단을 활용하여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도 국제적 기준과 원칙에서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과감한 해결책 제시가 필요하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모님 내쫓고 내가 이모될테야

    이모님 내쫓고 내가 이모될테야

    한참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는 예비군앞에 공비아닌「시미즈」바람의 여인이 나타나 어리둥절. 그 여인은 어느 사나이와 활극을 벌이더니 끝내는「누드」가 되어 용감한 예비군 아저씨들에게 겁을 주었는데-. 한집서 살다보니 눈맞아 6년전부터 못끊을 사이 곳=전남(全南) 순천(順天)시 비행장부근 때=6월 27일 하오 사람=김화순(金花順)(가명·25·미혼녀·순천시 매곡(梅谷)동), 정영택(鄭永澤)의 처조카 정영택(가명·34·기혼남·순천시 매곡동)김화순의 이모부 이선녀(李仙女)(가명·31·기혼녀)정의 처, 김화순의 친이모 6월 27일 하오 2시. 뙤약볕 밑에서 순천시 행금(幸金)동 예비군중대원 1백50명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포복훈련을 받고 있었다. 장소는 시내 매곡동 A지구 비행장 활주로. 『저거…저거…』 누군가 엎드렸던 땅위에서 벌떡 일어서며 비행장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 소리에 동료 예비군들도『뭐야?』하며 일어났다. 약 2백m쯤 될까? 사내 한사람이 앞서고 뒤에는「시미즈」바람의 여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남녀는 예비군들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 서로 삿대질하며 비행장쪽으로 접근했다. 여자의 검정「브래저」와「핑크」색「팬티」의 윤곽이 보일만한 거리에 이르자 갑자기 남자가 뒤돌아 여자를 후려갈겼다. 휘청하며 쓰러질 듯 하던 여자가 이 순간 갑자기 발악하며 남자에게 달려 들었다. 남녀는 서로 껴안고 풀밭에서 뒹굴었다. 이 광경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던 예비군들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예비군들이 달려갔을 때 싸움의 제1「라운드」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곳곳에 할퀸 상처가 났고 여자는「시미즈」가 완전히 찢겨졌음은 물론「브래저」도 팽개쳐진 채였다. 팽팽한 고무줄로 된「팬티」도 거의 벗겨져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뭐여? 싸우려면 산으로 올라가서 하든지…』 누군가 호통을 치자 비로소 여자는 정신이 난듯 두팔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고 허리를 굽혔다. 그 틈을 이용한 남자가 창피했던지 비행장 뒷산쪽으로 달렸다. 『저 놈 좀 보게, 같이 죽자 같이 죽어』 여자가 벌떡 일어서며 알몸으로 사내의 뒤를 쫓아달렸다. 예비군 훈련은 다시 시작됐고「누드·쇼」는 일단 여기서 1막을 내렸다. 이날의 주인공 여자는 김화순(가명). 호적상으론 처녀로 되어있다. 남자는 승주(昇州)군의 모관청에 임시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었던 정영택(가명). 두사람은 이모부와 처조카 사이. 그러니까 정의 아내와 김여인의 어머니가 친형제간이다. 이종 동생까지 몰아내고 “결혼 안하려면 같이죽자” 이모를 몰아내고, 3명의 이종동생까지 추방한 다음, 이모부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아우성친끝에 벌어진 것이 바로 이날 김의「누드·쇼」. 김의 어머니 이모여인에 의하면 이 사건의 시작은 이미 6년이 됐고, 자기가 알게 된 것은 두달 전이라는 것. 6년전 이여인은 살림이 구차하여 동생 이여인집에 얹혀 살게 됐다. 이당시 김의 나이는 19살. 『어떻게 둘이 눈이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한 집안에서 살다보니 실수를 한 모양인데….』 그 실수가 실수로 끝나지 않고 6년동안 줄곧 계속되어 왔던 것. 정은 애처가로 소문이 날 정도. 처조카와 불륜의 사랑을 나누면서도 아직까지 한번도 아내를 구박하거나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는 이여인의 말이다. 두달전, 결국 소문이 퍼진데다가 김이 정에게『이모와 이혼하고 나와 살자』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면서 속옷차림으로 정의 방을 드나들게 돼 정의 처 이씨와 김의 어머니도 알게 됐다는 것. 어머니와 이모가 알게되자 김은 공공연하게 나왔다. 정은『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김의 요구를 거절했고, 그럴수록 김은 당장 이모와 자식들을 쫓아내고 결혼식을 올리자고 대들었다. 김의 성화에 견디다 못한 정은 6월 25일 아내를 승주군 서(西)면의 친정으로 보냈다. 이여인은 다만『남편의 철석같은 애정』만을 믿고 해결의 실마리를 주기위해 고분고분 친정으로 갔다. 이여인은 3일만인 27일 자식들을 거느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으로 들어서니「시미즈」바람의 조카 김이 남편과 대판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모와 이혼하든지, 나와 함께 죽든지 어느쪽이든 선택하라』는 강요였던 것. 잠자리 뺏는 차마 못볼 패륜도 서슴없이 정은 절대로 이혼을 못하겠다고 버텼다. 이말에 울화통이 터진 김은 정을 끌고 비행장쪽으로 가면서 당장함께 죽자고 대들었다. 행금동 예비군들이 목격했던 장면이 바로 여기서부터. 이날 산으로 올라갔던 남녀의 행방에 대해선 현재 아무도 모르고 있다. 김의 어머니가 딸이 알몸으로 뒹군다는 얘기를 듣고 옷가지를 가지고 가 입도록 해준 것이 이 사건의「피날레」. 정과 김은 현재까지 행방을 감추고 있고 정의처 이여인은 다시 아들과 함께 친정으로 가버렸다. 다만 김의 어머니만이 빈집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같은 동네사람들에 의하면 최근 두달동안은 김이 정의 집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일쑤였고, 함께 잠자는 이모를 쫓아내고 그 잠자리에 자신이 들어가 밤을 새우는 예가 빈번했다는 것. 정의 성격이 지나치게 우유부단한 반면 김은 악착같이 이모부를 차지하려는 표독한 성미였다는 게 이웃집 사람들의 얘기다. 그들이 정말 지금 자살이라도 했는지 아니면 멀리 달아나 이모부, 처조카라는 인륜을 무시하고 살림을 차렸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순천=김상현(金相賢)·오형묵(吳亨默)기자> [선데이서울 71년 7월 18일호 제4권 28호 통권 제 145호]
  • 직장 초년생이 경계해야 할 것

    3월의 마음·치우침 없는 인간관계 사회에 갓 발을 내디딘 직장 초년생들은 냉랭한 분위기와 익숙하지 않은 업무로 인해 ‘도마 위에 올라간 생선’과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사람은 확실히 자신에게 우호적임을 눈치 채게 된다. 호감을 보이는 친구들과 어울리던 당신은 어느 날 홀연 자신이 ‘그 파벌’의 일원으로 취급당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그 파벌’이 많은 사람들 눈에 미운털이 박힌 존재라면 잘 모르는 동료들도 당신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이다. 당신은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그룹’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사무실에서 공개적으로 혹은 암암리에 의견이 충돌할 때 당신은 ‘그들’이 지지해달라고 보내는 은근한 눈빛에 흔들려 마음에도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얼마 후 당신은 주체적인 판단력을 잃은 사실에 씁쓸해질 것이다. 직장에서 우의를 쌓겠다는 조바심 탓에 인간관계의 함정인 ‘끼리끼리’에 말렸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다면 함정과 올가미는 항상 원의 형태라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서클’도 마찬가지이다. ‘서클’은 어떤 조직이나 집단의 이익이 외부와 갈등을 빚을 때 만들어진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당신과 친구들은 ‘떼거리’로 비쳐진다. 이해관계가 얽힐 때 당신들은 한 참호에 모여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룹’성원들끼리 나누는 정을 남들이 우의라고 믿어주길 기대해선 안 된다. 우의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감정이지만, 그룹의 구성원들은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로 인해 가까워진 사이가 아니라 해도, 일단 이해가 엇갈리면 그룹 내의 사람들끼리도 시험을 당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군자의 관계는 물처럼 담담하다는 말 앞에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 일상생활이나 직장에서 함정에 빠지지 않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관건은 좋고 싫음을 따지지 않고, 친소의 차이 없이 동료들과 한결같은 사이를 유지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업무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동료들을 자세히 관찰하되 질문은 삼가고, 업무 이외의 다양한 역학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조직에는 생리적으로 이해를 달리하는 파벌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의 합종연횡을 이해해야 하지만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되도록이면 전체 모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소규모의 모임(을 빙자한 파벌 미팅은 특히 조심해야 한다)은 피해서 친화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동료에 대한 험담이나 스캔들에 대해 듣는다면 경계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당신을 자기편이라 여긴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들은 이야기를 다른 동료에게 전한다면 80% 정도는 어느 ‘계파’에 속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파벌’은 사회 초년생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사회적 사춘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파벌이라는 함정에 걸려들면 복잡한 인간관계로 인해 많은 지장을 받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사회에서 사귄 사람들과 의기투합하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편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신분이 바뀐 뒤에는 그에 맞는 마음 자세를 갖춰야 한다. 익숙하지 않은 동료들 간의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행동은 사회생활의 에티켓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하다.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는 다층적이고, 때로는 서로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화제는 삼간다. 그는 문제를 왜 그렇게 해결하려 하지? 그 사람들은 같이 무엇을 하는 겁니까? 모 부장은 모 씨를 편애하는 것 같아요. 나랑 친구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이렇게 처리하는데…. 너랑 그 사람들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모 씨와 일할 때가 훨씬 편해. 이 일은 나랑 그에게 맡기면 잘할 수 있는데. 여기는 인간관계가 왜 이렇게 복잡하죠? 이 글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삶의 주인이 되는 실천’을 권하는 책 <나를 이기는 힘, 평상심>(장쓰안 지음, 황보경 옮김)에서 뽑아 정리한 것입니다. 무자년 한 해, ‘평상심’에 관한 유익한 내용을 모아 매달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 [어린이책꽂이]

    ●아이세움 논술명작-안네의 일기(안네 프랑크 원작, 정유리 엮음, 아이세움 펴냄) 명작 ‘안네의 일기’를 입체적으로 읽고 분석해 글을 정리하는 방법을 귀띔. 책 뒤편의 논술 워크북 분량이 많아서 논술 연습에 실질적 도움이 될 듯. 초등 고학년 대상 논술명작 시리즈.7500원.●로스트(Lost!)-콧구멍으로 사라지다(주디스 그린버그 글, 이혜선 옮김, 봄나무 펴냄) 생물학 정보와 기발한 상상이 어우러진 과학 판타지 동화 시리즈 1권. 뭐든 줄일 수 있는 ‘원자빨대’를 발명한 주인공의 좌충우돌 과학 여행기. 각권 8000원. 초등생.●한국사를 뒤흔든 열 명의 장군(김정경 글, 이장미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을지문덕, 김유신, 고선지, 강감찬, 최영, 이순신 등 우리 역사를 빛낸 장군 10명의 이야기. 인물 해설을 통해 역사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초등 고학년.1만 2800원.●가족 나무와 유전자 이야기(로랑스 아방쉬르 아잔 글, 김미겸 옮김, 상수리 펴냄) 친척관계에 관심없는 핵가족 시대의 아이들에게 권해 볼 만하다. 촌수와 족보의 개념, 호적 등 ‘뿌리’에 대해 관심갖게 하는 내용들이 실렸다. 초등 3년 이상.8500원.●딸기(신구 스스무 글·그림, 김루희 옮김, 한솔수북 펴냄) 초록색 잎줄기와 빨간 열매 등 딸기가 자라는 과정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며 식물의 특징, 강렬한 색감 등을 파악하는 그림책. 딸기를 세계 각국에서 어떻게 부르는지도 알아본다. 초등 저학년까지.9500원.●나뭇잎이 달아나요(올레 쾨네케 글·그림, 임정은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바람에 살랑살랑 날아가는 나뭇잎을 꼬마가 뒤쫓는, 간결하고 앙증맞은 그림책. 단순한 선과 색으로 바람의 특성, 천진한 아이의 감정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했다.4∼7세.8000원.
  • [유권자가 권력이다](하)MB의 대운하 공약 민심 르포

    [유권자가 권력이다](하)MB의 대운하 공약 민심 르포

    17대 대선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이번 4·9총선에서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4·9 총선 공약에서 대운하 공약을 아예 제외했다. 야권은 ‘대운하 반대’ 전선을 형성하며 대운하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운하에 대한 민심은 지역별로 편차가 있다. 대구 경북 등 내륙지역과 수도권 주민들의 상수원 보호를 위해 개발을 제한받는 경기권의 경우, 대체로 대운하 건설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반면 환경보호론자들과 수몰지역 주민들의 경우,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운하? 땅 파헤치면 피해보는 건 국민밖에 없어요.” 대운하에 대한 부산시민의 눈길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찬성 목소리도 있었으나 부정적 반응들이 많았다. 특히 공약의 모태(母胎)인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공천 파행을 지켜보며 심정적인 지지를 거둬야 하는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부산은 대운하가 건설되면 서울에서 시작된 뱃길의 종착지가 될 곳이다. ●‘대운하 반대’가 우세 23일 오후 3시 을숙도.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에 토사가 퇴적돼 생긴 하중도(河中島)로, 한때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대운하가 건설되면 을숙도 주변에 터미널을 만드는 안이 검토되고 있다. 을숙도 공원을 가족과 거닐던 김민곤(34·자영업)씨는 “철새와 물고기떼를 떠나보낼 수는 없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부산에서 태어나 5살 때부터 을숙도 근처에 살았다는 그는 “어렸을 때 철새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주변에 공장들이 들어서며 새들도 사라지고 공기도 나빠졌다.”고 아쉬워했다. 부산 시민이 식수의 94%를 낙동강에서 얻다 보니 수질 오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이성근 사무처장은 “얼마 전 낙동강 상류의 페놀 오염 사태 등 식수 문제가 지역민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대운하가 건설되면 부영양화로 인한 수질 오염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구포시장에서 20년 이상 생선가게를 운영 중이라는 홍자득(45)씨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부산발전에 대한 기대가 있어 대운하 건설도 찬성”이라면서 수질오염 우려에 대해서는 취수장 보완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대운하와 정당지지는 별개” 이 지역 사람들의 대운하 건설 반대입장이 4·9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지지 철회는 아니었다. 부산진구에 있는 서면시장에서 쌀집을 운영하는 최모(53)씨는 “(대운하가)준비도 부실하고, 환경단체에서도 반대하니 안 좋은 것 같다.”면서도 “(한나라당)텃밭이 될 거다.10명 중 9명은 될 것 같다.”고 한나라당 압승을 예상했다. 대운하 논란이 한나라당 지지표를 잠식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24일 한나라당 총선 출마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이춘우(63)씨는 “대운하는 대통령 공약일 뿐”이라면서도 “한나라당 표를 까먹는다고 봐야 한다.”고 걱정했다. 서면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가을(24·경성대 공예디자인 4)씨도 “대운하 계획이 잘 세워지면 좋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한나라당 표를 깎아먹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권자들의 반응은 총선후보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북·강서을에 출마한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는 출마의 변을 통해서는 대운하 추진 의사를 밝혔으나 기자와의 통화에서는 “‘국민적 합의 하에’라는 전제 아래 대운하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북구 구포시장에서 지역 상인들에게 명함을 돌리던 한 통합민주당 전재수 후보의 부인은 “예전엔 명함을 주면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불만도 많아지고 한나라당에 대한 견제론도 살아나는 분위기”라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부산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檢 “총선 3M사범 끝까지 추적”

    檢 “총선 3M사범 끝까지 추적”

    이번 총선에서는 인터뷰나 여론조사를 빙자해 특정 후보를 이롭게 하거나 금품을 요구하는 등 미디어를 활용한 부정선거 사례가 집중 단속된다. 대검찰청은 24일 전국 공안부장검사 회의를 열고 이번 총선을 돈안드는 깨끗한 선거(money-free),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공정한 선거(matador-free), 군소 미디어의 부정선거행태가 사라지는 선거(media abuse-free) 등 이른바 ‘3M 선거’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금품선거·거짓말선거·군소미디어 부정선거 사범은 선거 이후에도 배후조종자를 추적해 끝까지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이 지목한 군소 미디어 부정선거 유형은 ▲인터뷰 또는 우호적 기사 게재를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선거에 편승해 정기간행물을 등록하는 언론 브로커 행태▲여론조사를 빙자한 정치컨설턴트의 사전선거운동 등이다. 검찰은 또 이번 총선에서 근거없는 네거티브나 익명성을 악용한 흑색선전, 무책임한 폭로와 허위사실 확대 등 거짓말 선거사범은 피해자의 고소 취소 여부와 상관없이 철저하게 수사키로 했다. 특정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선거사범에게는 원칙적으로 징역형을 구형할 방침이다. 검찰은 특히 선거사범의 고무줄 구형 시비와 이에 따른 선거 중립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확정한 ‘선거사범 구형 기준’을 본격 적용할 예정이다. 선거범죄를 금품, 불법·흑색선전, 폭력, 비용 등 4가지 유형별로 1∼30등급으로 구형 기준을 나누고 범행횟수와 범행내용, 동기, 가담정도, 범죄경력 등 다양한 양형인자를 적용해 등급을 가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짓말사범은 기본등급이 ‘벌금 100만∼150만원 구형’의 7등급이다. 총선 후보 A씨가 상대 후보를 낙선시킬 목적(가중 6)으로 상대 후보가 전과가 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회견(가중 1)을 열었다면 A씨는 7개 등급의 가중치가 붙어 14등급(벌금 500만원 또는 징역형)에 해당된다. 벌금형은 1등급부터 20등급까지, 징역형은 12등급부터 30등급까지 적용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원·달러 환율 급락… 900원대 복귀

    원·달러 환율이 2거래일 연속 급락하면서 900원대로 복귀했다. 일각에서 제기됐던 ‘달러 기근 현상’이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 주말보다 5.90원 급락한 997.2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2거래일간 12.80원 급락하면서 지난 14일 이후 6거래일 만에 900원대로 밀려났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환율이 주가 강세의 영향으로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순매수하며 주가와 원화 강세에 일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성장·일자리 창출보다 물가 안정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점도 환율 하락에 우호적인 여건을 조성했다. 반면 지표물인 5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주말보다 0.11%포인트 뛰어 오른 연 5.32%로 마감했다.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허위입양으로 특별분양 5억 챙겨

    세 자녀 특별분양 제도를 악용해 아이를 허위 입양하는 수법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은 뒤 되팔아 차익을 챙겨온 일당이 처음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23일 장기 무주택 세대주에게 아이를 가짜로 입양시켜 아파트를 특별분양받게 한 뒤 이를 되팔아 거액의 부당이익을 챙긴 한모(45)씨 등 부동산 브로커 15명을 주택법 위반 등 혐의로 붙잡아 한씨를 구속하고 1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남의 자녀를 허위 입양받아 ‘무주택 다자녀 세대주’ 자격으로 아파트를 특별 분양받은 뒤 브로커에게 넘긴 김모(44)씨 등 19명과 자신의 자녀를 허위 입양시키고 그 대가로 돈을 받은 홍모(41)씨 등 부모 20명을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입건했다. 한씨 등 브로커들은 “아이를 허위 입양하도록 도와주면 수고비를 주겠다.”며 일용직 노동자나 노점상 등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 접근해 한 명에 200만∼1000만원씩 주고 이들의 자녀를 다른 사람에게 입양하는 서류를 작성했다. 또 무주택 세대주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자녀를 허위 입양받아 아파트 특별분양을 받도록 도와주면 수고비를 주겠다.”며 역시 한 사람에 100만∼2000만원씩 주고 다른 사람의 자녀를 가짜로 입양하도록 했다. 브로커들은 이같은 입양으로 3명 이상의 자녀를 갖게 된 ‘무주택 다자녀 세대주’를 통해 경기도 동탄과 인천 송도, 서울 은평뉴타운 등 신도시의 아파트 10채를 특별분양받은 뒤 이를 실수요자에게 팔아넘겨 4억 8000여만원의 차익을 챙겼다. 이들은 2006년 8월부터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신규 분양주택의 3%를 미성년 자녀를 3명 이상 둔 장기무주택 세대주에게 특별분양하도록 한 규정을 악용했다. 브로커들은 “아이를 실제로 입양하는 건 아니다.”라고 속여 입양 서류를 꾸몄지만 해당 어린이의 호적에는 입양 기록이 남게 돼 초등학교 입학 등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수출주도 6%대 성장 한계에

    수출주도 6%대 성장 한계에

    경제성장률 5%,1인당 국민소득 사상 처음으로 2만 달러 돌파. 한국은행이 21일 내놓은 지난해 우리 경제 성적표다.2006년 5.1% 성장률을 감안하면 연속 2년 5%대 성장을 이뤘다.‘4%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말을 하기는 어렵게 됐다. 올해 6% 경제성장을 하겠다는 새 정부는 그래서 고민이다. 지난해 경제 성적표가 좋았기 때문에 올해 6%까지 끌어 올리는 것은 훨씬 어렵다. 게다가 고물가, 고유가, 세계경제 불안 등 경제환경도 어렵다. 따라서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지난해보다 개선하는 것도 쉽지 않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는 1년으로 끝나고 다시 1만 달러 시대로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1000원대의 원·달러 환율의 상승은 수출을 활성화하지만 역으로 달러화로 표시되는 1인당 국민소득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로 복귀 가능성 지난해 성장은 역시 수출이 주도했다. 재화수출 성장률은 원화 강세의 악조건을 뚫고 전년동기 대비 12.0% 증가했다. 한은은 “수출 호조는 또한 제조업이 6.5%의 높은 성장을 하도록 이끌고, 이에 따라 설비투자도 7.6%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해 1분기에도 수출 증가율이 20%에 이른다.”면서 “올해도 수출 증가가 제조업의 설비투자로 이어지면서 경제성장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수출환경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세계 경제성장률 둔화, 미국경기 침체, 원자재 가격 최고가 경신 등의 악재가 도사리고 있어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다. ●내수활성화로 실질 GNI 높여야 여전히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실질 GNI성장률은 고민거리다.2006년 2.6% 증가율에 비해 3.9%는 개선된 상태지만, 서민들 살림살이가 팍팍하게 느껴진다. 수출 증가에 따른 이익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 만큼, 내수 활성화를 통해 실질GNI 성장률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소비가 지난해 2006년에 이어 4.5% 성장했다. 국민총생산(GDP)에서 내수의 성장기여율이 73.1%로 전년도 79.4%에서 6.3%포인트 줄었다. 여기에 올해 물가불안 등으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춘신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그러나 “지난해 국민총소득이 늘어나 앞으로 민간이 지출할 수 있는 소득수준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올해는 민간소비가 많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사설] 재혼·입양 가정 울리는 가족관계 등록부

    호주제 폐지에 따라 올해부터 호적 등·초본 대신 사용되고 있는 가족관계 등록부가 재혼·입양 가정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변화하는 사회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데다 과도하게 개인신상 정보를 노출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새 가족관계 등록부 제도는 개인 중심으로 등록부를 기재하고, 목적별 발급으로 개인정보 보호의 수위를 한층 높였으며, 원하는 경우 성과 본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등 긍정적 변화에 대한 기대를 안고 시행됐다. 그러나 실제 시행 결과 재혼 가정의 경우 가족관계 증명서에 새 남편의 아이들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배제되는가 하면 친권이나 양육권이 없는 자녀들은 기재되는 모순을 낳고 있다. 가족관계를 친부모의 혈통 위주로 작성한 결과다. 입양 아동의 개인증명서에는 ‘버려진 아이’임을 입증하는 기아발견 상세기록이 여과없이 기재된다. 혼인관계 증명서에는 과거의 이혼 경력이 고스란히 누적되어 발급된다. 입양이나 과거의 출산경력, 재혼, 이혼 등 과거가 알려지면 어떠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타인이 알 필요가 없는 정보들이 공개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부당하게 노출되는 것을 시정하기 위해 마련된 가족관계 등록부 제도가 오히려 가정 파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분명 시정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새 제도를 다양한 가족의 존중과 포용이라는 당초의 취지를 살리고,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보완할 것을 당부한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3) 엎친 데 덮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63) 엎친 데 덮치다

    공유덕과 경중명 일당의 후금 귀순은 조선에 치명적이었다. 조선은 명의 강요 때문에 ‘공경 사건’을 놓고 벌어진 명과 후금의 싸움에 말려들었다. 하지만 공경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고, 결국 후금으로부터 원망만 사고 말았다. 후금은, 공경의 귀순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조선이 보인 적대적인 태도를 통해 조선의 ‘본심’을 확인했다. 조선이 결코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상, 후금의 조선에 대한 공격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다만 ‘조선 정벌’은 우선순위에서 잠시 비껴나 있었을 뿐이었다. ●‘공경 사건’의 파장 ‘공경 사건’ 때문에 조선은 여러 가지로 피해를 보았다. 당장 명의 추격군에게 군량과 군수 물자를 제공하고 조선군을 압록강 부근으로 파견하는 과정에서 사회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특히 공경 일당과 그를 저지하려는 조·명연합군, 그리고 후금군이 맞닥뜨렸던 지역에서 가까운 의주, 용천(龍川), 철산 등지의 피해는 극심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전란의 와중에 농작을 전폐하다시피 했고,‘상황’이 종료된 뒤에는 굶어죽기 직전까지 몰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는 더 심각했다.‘공경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선은 후금과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명의 강요에 떠밀려 병력을 보내 공경을 저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였다.‘공경 일당에게 식량을 공급해달라.’는 후금의 요구도 거부했다. 그것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국 명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조선의 ‘본심’을 노출시킨 사건이었다. 후금 내부에서는 당연히 ‘조선을 손봐주어야 한다.’는 논의가 대두되었다. 그러나 1634년 무렵까지 홍타이지를 비롯한 후금 지휘부는 ‘조선 정벌’을 우선적인 과제로 꼽지 않았다. 명과 차하르(察哈爾) 몽골을 정벌하는 것이 먼저였다. 조선으로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공경 사건’을 계기로 후금의 조선 침략은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후금은 ‘공경 사건’ 이후 조선과 가도( 島)를 ‘손 안의 물건(掌中之物)’으로 여겼다. 이미 수군을 확보한 상황인데다, 공유덕 등이 가도의 배후 기지 격인 여러 섬의 주민들을 대거 데리고 온 터라 가도의 역량이 거의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홍타이지는 이제 조선과 가도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여겼고, 우선적인 정벌 대상에서 잠시 뺐던 것이다. 그렇다고 홍타이지가, 공경의 귀순을 저지하려 했던 조선에 대한 ‘원한’을 결코 접은 것은 아니었다. 홍타이지는 1636년 12월,‘공경의 귀순을 저지하려고 후금과 적대했던 것’을 병자호란을 도발하는 주요한 명분의 하나로 분명히 제시했다. ●‘호랑이’가 나타나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조선은 ‘공경 사건’의 의미와 그 파장의 끝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읽어냈어야 했다. 조선은,1619년 명을 도와 후금을 공격했던 것(심하전역·深河戰役 참전) 때문에 후금에 정묘호란을 일으키는 명분을 제공했던 점을 교훈으로 삼았어야 했다. 하지만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조선은, 후금이 ‘공경 사건’에 조선이 개입한 것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조선은 후금의 ‘수군 보유’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후금은 이미 1631년(인조 9) 5월, 조선에 보낸 국서에서 ‘조선은 우리가 쳐들어가면 보나마나 섬으로 도망칠 것’이라는 내용으로 조롱한 바 있었다. 사실 조선은 후금의 침략이 있을 경우, 강화도로 들어가는 것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후금이 수군을 보유함으로써 강화도로 들어가는 것의 의미가 없어질 판이었다. 당연히 대책이 필요했다. 병력과 무기를 확보하고, 청북 일대의 성지(城池)를 정비하고, 강화도의 해방(海防)을 확고히 하는 것이 시급했다. 재정이 문제였다. 하지만 ‘늑대를 피하고 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했던가. 방어 대책 마련을 위해 몰두했어야 할 1634년(인조 12) 3월, 명으로부터 ‘호랑이’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숭정제가 환관 노유녕(盧維寧)을 조선에 보낸 것이다. 그가 서울로 오는 명목은 ‘왕세자 책봉례(冊封禮)’를 주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조선행을 자원한 인물이었다. 책봉 조사(詔使)로 낙점되기 위해 이곳저곳에 뇌물을 썼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인조와 조정 신료들은 바짝 긴장했다. 왕세자 책봉은 인조의 왕통(王統)을 확고히 하기 위해 더없이 절실했지만 시기가 문제였다. 더욱이 인조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노유녕이 청렴하지 않다.’는 소문이었다. 인조는 비변사 신료들을 불러모았다. 노골적으로 ‘한 밑천 잡겠다.’고 조선까지 오는 그를 어떻게 대접할지 방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인조와 비변사 신료들의 우려와 푸념은 한결같았다.‘왜 하필 국고가 바닥난 지금 오느냐?’는 것이었다. 인조는 신료들에게 과거에 왔던 조사들을 접대하는 데 들어갔던 비용을 물었다. 노유녕은 보나마나 과거 조사들이 받았던 액수보다 더 많은 은화를 요구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1610년(광해군 2), 왕세자 책봉을 위해 왔던 염등(登)은 4만 냥을,1625년(인조 3), 인조 책봉을 주관하러 왔던 왕민정(王敏政)과 호양보(胡良輔)는 물경 13만 냥을 뜯어갔다. 전례를 보면 노유녕도 최소한 10만 냥 이상의 액수를 요구할 것이 명확했다. 비변사는 백성들에게 토지 3결마다 포(布) 1필씩을 거두고, 왕실에 바치는 방물(方物) 값을 모두 쓰자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은화 5만 냥도 마련할 수 없었다. 조사가 달라고 할 것이 뻔한 인삼과 잡물(雜物)까지 마련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비변사는 지방의 관원들에게 은과 포를 할당하고, 호남의 수군들에게 군역을 면제해주고 그 대가로 포를 받아들여 비용을 대자고 했다.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후금 사신도 인삼값 받아내려 서울로 노유녕은 예상했던 대로 만만치 않은 행보를 보였다.‘그의 목표는 왕민정과 호양보가 받은 액수를 채우는 것’이라는 보고가 날아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벽제(碧蹄)까지 이르렀지만 은과 인삼이 적다는 이유로 이틀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경기감사 이성구(李聖求)가, 책봉례를 행할 때 은 2000냥을 더 주겠다고 하자 비로소 서울로 들어왔다.1634년 6월20일의 일이었다. 노유녕은 결국 왕세자 책봉례를 마칠 때까지 10만 냥 이상의 은을 뜯어냈다. 노유녕이 서울에 머물며 은 징색에 광분하고 있던 6월26일, 평안병사의 장계가 날아들었다.‘후금 사신(胡差) 마부대(馬夫臺) 일행이 인삼 값을 받아가기 위해 서울로 오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유녕과의 조우를 우려한 조정은 그들을 만류하라고 지시했지만 마부대 일행은 안주까지 남하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마부대 일행이 안주로 오자 이번에는 가도의 총병 심지상(沈志祥)이란 자가 조선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심지상은 노유녕에게 무공(武功)을 과시할 목적으로 마부대 일행을 공격하려 했던 것이다. 마부대 일행 역시 심지상과 일전을 벌일 태세였다. 심지상을 만류하자니 ‘오랑캐를 편들어 중국을 배신하려 한다.’는 힐책이, 마부대 일행을 설득하자니 ‘한인들을 끌어들여 후금 사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비난이 따를 판이었다. 조정은 서둘러 마부대 일행이 요구한 인삼 값을 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을 빨리 귀환시켜 심지상과의 충돌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조선은 겨우 또 한 고비를 넘겼지만 악순환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후금의 침략을 피하려면 조선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노유녕에게 끌려다니는 것에서 보이듯이 명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병자호란을 코앞에 둔 1634년, 조선은 느긋한 후금과 초조한 명 사이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최지희 “외로와 못살아”

    최지희 “외로와 못살아”

    가장 원만한 가정을 갖고 가장 의욕적인 배우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최지희(崔智姬)가 사실은 이혼한 독신녀임이 최근 드러났다. 그녀의 호적은 69년9월4일자로 남편 윤(尹)모씨한테서 떨어져나왔고 2년이나 독신생활을 해온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은 얼마전 그녀의 남편이었던 윤모씨가 모종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됨으로써 표면에 드러나게 되었다. “결혼 3일만에 파경각오” 이혼후도 한집서 살았고 최지희가 이혼했다는 소문은 그녀가「스타」재개업을 하던 70년 초에 몇사람의 입에서 새어나왔었다. 그러나 헛소문으로 귀결되었다. 그 이유는 이혼했다는 남편 윤씨가 버젓하게 최양집에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출입만이 아니고 두사람의 사이는 보통 부부와 다름없이 다정해보였다. 의혹을 품을 여지가 없었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동거한다는 예는 많아도 이혼한 남녀가 한집에 산다는것은 상상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 상상할수 없는 가정생활을 최지희는 2년 가까이 계속 해온것이다. 웃음을 잃지않는 밝은 표정 뒤에 이런 어두운 이면이 깔려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바로「스타」, 인기인이기 때문이라는 약점이 어처구니 없게도 작용한것 같다. 처음, 최양은 그녀의 이혼사실을 질문받았을때 완강히 부인했다. 이혼날짜를 들이댔을때는 시인도, 부인도 아닌 착잡한 얼굴이 되었다.「뉴스」의 출처를 내밀자 그녀의 표정은 갑자기 허물어졌고 그 커다란 눈동자에 이슬이 맺혔다. 그리고 조용히『운명인것같다』고 그 두꺼운 입술속으로 한숨을 깨물었다. 최양의 신상을 가장 잘 안다는 한 여배우는『최지희처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한 사람도 없다』고 최양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녀는 최지희가 결혼 3일만에 이미 파경을 각오했었다고 자기일처럼 소상히 말했다. 그녀가 윤씨와 결혼한것이 66년 5월23일. 5월14일 남산의 외교구락부에서 약혼식을 올리고 꼭 9일만이다. 남편 윤씨는 한동안 여배우 K모양과 염문을 날리던 사람이지만 어쨌든 유망하고 착실한 재일교포요, 청년실업가로 알려졌었다. 줄곧 남편사업 뒷바라지 5천만원 재산 모두 바쳐 누구나 부러워할만큼 화려한 결혼식이었다. 신부가 된 최양은 결혼과 함께 8년간의「스타」생활을 끝맺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었다. 결혼을 전부로 아는 여자 최지희와 결혼과 사업을 공존시키려는, 어쩌면 결혼보다 사업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남편과는 뜻이 맞지 않았던 것일까? 최양은 신혼초에『나와의 결혼은 애정에서가 아니고 사업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고 그 측근에게 호소한 사실이 있다한다. 그때 최지희는 9년 가까운「스타」생활에서 착실히 재산을 모았었고「톱·클래스」의「네임·밸류」를 갖고있었다. 18살때 경남 진주에서 무단가출하여 이강천(李康天)감독의『아름다운 악녀(惡女)』에 첫선을 보인 최양은「데뷔」작을 자신의 대명사로 할만큼 억척스럽게 살아나갔다. 작품을 해내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착실히 실력을 쌓아나갔다. 61년엔「아시아」재단 초청으로 미국 구경까지 하고 왔다. 미국에서 1년간 그녀는「조지타운」대학에서 어학 공부를 하는 한편「네이버훗·플레이·하우스」에서 연극공부를 했다. 이런 실력이 그녀의 독특한「마스크」와 어울려서 연기자로서의 기반을 한층 굳혔던건 물론이다. 이런 억척이 그의 가정에서 제외됐을리는 없다. 그녀는 남편의 사업에 물질적인 후원은 물론 가능한 수완을 다 폈다한다. 한 소식통은 최양이 남편에게 바친 자본이 4, 5천만원은 능히 될것이라고 관측했다. 결혼전 지니고 있던 몇개의 집, 몇 천평의 대지가 고스란히 남편의 사업자금에 바쳐졌다한다. “애정은 전혀 없지만 그 분 불행 볼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씨의 사업은 실패로 낙착됐다. 윤씨가 수사대상이 된 모종 사건이란 바로 이 투자과정에서 빚어진 채무관계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최양과 윤씨가 이혼한 결정적 이유도 따지고 보면 사업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을수 있다. 이혼하기로 합의한 69년 가을, 한남동에서 살고있던 그들에게는 살고있는 5백만원짜리 집한채가 전부였다. 집을 팔아 2백50만원씩 나누기로 했는데 빚을 갚고보니 최양 손에 들어온건 일금 1백만원 가량. 이 1백만원을 가지고 독신녀가 된 최양은 영화계「롤·백」과 아울러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가지 모두 성공했다. 1년10개월이 된 현재 그녀는『어머니, 동생과 함께 살아갈만한 기반은 잡았다』고 할수 있게됐다. 영화출연도 평균 10편 내외의 겹치기를 하고있다. 단 한가지, 그녀에게는 해결해야할 무거운 짐이 있다. 이혼한 남편은 얼마전까지 최양집을 드나들었다. 최양은 그에게 이혼후에도 상당한 경제적인 보조를 해준것으로 전해졌다. 그녀에게 차가운 마음을 갖지못하게 하는지 모른다. 이혼을 부인하던 최양도 끝내는 다음과같이 자기의 입장을 해명했다.『법률적으로는 이혼했다. 실질적으로도 이미 2년 가까이 부부관계가 없다. 애정따위는 전혀 없지만 그분의 불행을 그대로 볼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할지 정신을 차릴수 없다』 웃음을 잃지않는 최지희. 그 활달한 표정뒤에 이런 슬픔이 숨겨있는 것이다. <관(觀)> [선데이서울 71년 7월 4일호 제4권 26호 통권 제 143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