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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노래…」 무대에

    미국에서 활동중인 연극인 장두이씨가 3년만에 자신이 이끄는 극단 「코러스 플레이어」와 함께 내한,오는 15일 서울 호암아트홀(722­5970)에서 연극 「삶의 노래:일명 모세의 가면」을 공연한다.「삶의 노래」는 걸프전에 참전한 미국인 병사의 정신적 파탄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장씨가 직접 각본을 쓰고 출연·연출까지 맡아 1인3역을 한다.
  •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씨(이세기의 인물탐구:24)

    ◎타고난 미성·미모 겸비 “한국의 뮤즈”/독특한 음색·풍부한 성량 조화로 “청중매료”/완벽주의 추구… 온몸으로 최상의 무대 연출/서울대 시절 “음악계 샛별” 찬사 받아… 쪽진머리·한복 즐기고 눈부신 조명을 받고 무대에 선 백남옥의 모습을 보고 음악평론가 김원구씨는 「한국의 뮤즈 탄생」이라고 찬사를 보낸적이 있다. 한상우씨는 「진한 색감,표현의 다양함은 듣는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야만다」고 했고 한때 유한철씨는 백남옥의 메조소프라노에 현혹되어 「수십년만에 만나볼수 있는 목소리」로 요란하게 신문의 음악평을 장식하기도 했다. 넓은 음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거침없는 목소리는 과연 청중을 사로잡는데 추호의 빈틈도 없어보인다.더구나 목소리에 버금가는 출중한 미모는 어떤 무대에 세워도 결코 손색이 없는 조건을 이미 갖춘 예술가다. 그러나 성악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외모를 지녔다해도 그 소리가 미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이겠는가.그래서 타고난 미성과 미모를 겸비했기 때문에 백남옥은 그때마다 화제의 초점이 되는지도 모른다.아름다운 용모에 아름다운 목소리,그렇다면 백남옥은 어떤 사람인가. ○별난 성격의 소유자 그는 마음씨가 곱고 착하고 여리고 겸손하며 자신을 죽일줄 아는 전형적 동양여성의 특징은 지니고 있지 않는것 같다.그렇다고해서 거세고 드세게 만사에 나서기를 즐기는 적극적 성격이라고도 할수 없다.또는 이 모든것이 해당될수 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다시 말하면 일반의 상식선에선 쉽게 설명되어 지지않는 별나고도 별난축에 속한다. 우선 싫은것도 많고 꺼리는 것도 많다.이른바 원만하고 부드럽고 무난하다고 여겨지는 구석은 찾아볼수 없다.따라서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감싸주는 편은 못된다.오히려 좀더 가까워지지 않는 묘한 긴장과 거리감을 준다.물론 그 자신도 자신의 그런 면을 십분 알고 있다.다만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상대방의 자유다.그로서는 남을 불편하게 한적도 심적 폐를 끼치려는 의도도 없다.자신은 짐짓 자연스럽게 행동한다고 믿는다.남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라곤 없다.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심 한복판을 갑자기 가로지르는 상쾌한 바람처럼 정신이 번쩍드는 기분이다. 또 꼼꼼하고 완벽하다.종이한장도 똑바로 놓여야만 안심하는 주의다.그래서 쉴새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정돈하고 챙긴다. 그의 집에 가보면 알수 있다.커튼에서 카펫,식탁보 하나에 이르기까지 봄이면 봄답게 엷은 핑크에 화사한 꽃문양,커튼이 꽃문양이면 바닥은 단색,식탁위에 놓이는 찻잔과 스푼하나에도 섬세하게 배려하는 취미다. 무대의상도 마찬가지다. 오페라나 교향악단 협연에서는 역할에 맞는 의상을 골라 입지만 그는 대부분 한복차림으로 무대에 오른다.똑바로 가르마 탄 쪽진 머리에 비녀를 지르고 손가락엔 칠보쌍가락지,자신의 음반이 국제 레코드시장에 진열됐을때 자켓의 한복차림은 「한국의 백남옥」을 한눈에 알수있게 하리라고 말한다. 곧 지루해하고 곧 새로운 것을 원해서 아침에 입었던 옷을 하오 외출에선 반드시 바꿔 입는다.하나의 물건에 오래 집착하지 못한다.다만 한번 사귄 사람과는 평생을 간다. 연주를 앞둔 연습때도 소위 끈질긴 인내심을 읽을 수 있다.테이프에 녹음해서 조목조목 결점을 찾아 그 대목을 보충하고 스스로 완벽하다고 인정되지않으면 며칠 밤이고 파고든다.바로 이 완벽주의가 일상생활에서도 그를 지배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노래의 가사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시속에 담긴 시심을 꿰뚫어 시가 지닌 정감에 감동하고 도취돼야만 비로소 멜로디에 실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시가 말하려는 테마는 물론 한구절 한구절에 녹아들 만큼 집착하여 쓴사람의 심중을 깊이 헤아려야만 직성이 풀린다.77년 KBS에서 「노산 이은상 가곡의 밤」때 이은상작시 홍난파 작곡의 「사랑」에서 그때까지 막연히 이해했던 단어들을 노산에게 또박또박 점검한 적이 있다. ○성용도아 휘호받아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 마소」의 「부대마소」나 「애제 타지 말으시오」 「생□으로 있으시오」등 방언이나 고어를 사용했을 때의 효과는 어떤가고. 하도 정교하게 물으니 노산이 기특히 여겨 이 미인에게 「성용도아(모든것이 우아하고 단정하다)」라는 휘호를 남긴 에피소드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백남옥은 까다롭고 별날거라고 오해할지 모르지만 그는 청중들에게 한아름의 꽃다발을 정성스럽게 안겨주는 자세로 노래부른다.황폐하고 무미건조한 현대의 메커니즘 속에서 첨예해진 사람들의 감정을 맑고 청량하게 다스리는듯 폭풍우 후의 찬란한 햇살같은 감동을 누구에게나 고루 베풀고 싶어 한다. 그리고 한사람의 예술가로서 좀더 진수의 경지를 지향하기 위해선 그가 걷고있는 모든 과정을 몇번이고 찬찬히 헤아리기를 잊지않는다.『결과는 두고 볼뿐』진정한 예술정신의 도정은 그 과정에 담긴 성실함의 무게일거라고 말하면서. 백남옥은 부친 백인엽장군과 정숙일여사의 2남2녀중 장녀.서울사대부국과 이화여중 3학년이 될때까지는 세단을 타고 경무대에 세배가고 무비카메라로 일상생활을 찍히는 소공녀로 성장했다.그러나 5·16이후 무슨 이유에선지 부모가 헤어지자 어머니와 살게 되면서 난생처음 가난과 비극적 환경을 체험했다. 대학4학년 때인 68년 어머니의 헌신적 뒷받침으로 학생신분으로선 감히 생각지도 못할 본격적독창회를 개최,명동 시공관무대에 데뷔했을때 맑고 따뜻한 그의 메조소프라노는 오페라와 예술가곡을 부를수 있는 재능이 두드러져 음악계는 이 신성에게 대대적인 환호를 보냈었다.그때 취재하러왔던 당시 대한일보기자 정준극씨가 그의 부군이다. ○독일 국립음대 유학 단돈 6만원으로 시작한 신혼생활,사글세방으로 10여차례나 전전하는 어려운 중에도 부군은 독일유학을 서둘러 주었다.여전히 각박한 유학생활이었으나 베를린 국립음대에서의 지도교수인 바리톤 H·브라우어 박사는 고음위주의 레퍼토리로 그의 음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다른 동양권 학생들은 테크닉이 앞선다.당신은 테크닉도 뛰어나지만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다음해 베를린국립음대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며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리히트 오디션에 참가,「리케르트 시에 의한 말러의 마지막 7개 가곡을 불러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되는 영광을 안았다.그의 앞길에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고 그도 왠지 세계무대 장악이라는 별빛같은 희망에 부풀었다. 그때 어머니 타계소식이날아들었다.그에겐 청천벽력과도같은 충격이었다.가장 섬세한 사춘기에 어머니의 슬픔과 아픔을 함께했던 그로선 눈앞에 둔 성공이 허망하기만 했다.그때 귀국후 더이상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싶지않아 베를린 국립음대 오페라단 입단을 포기해버렸다. 오페라 출연등 연주제의를 받을때마다 그는 나에게 꼭맞는 무대인가를 여러모로 고려해본다.예를 들어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좋아하는 오페라이긴 하지만 기모노를 입을때 마다 강한 거부감이 생겨 서서히 그 역할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또 83년 한 방송국이 주관한 8·15경축 음악회에서 「민족의 해방을 경축하는 자리」에 가슴이 파진 드레스를 입는 것이 송구스럽게 느껴져 그때부터 한복을 고집하게 되었다. 80년초 큰 병을 앓고난후 그는 예술과 인생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다.어떤 부분에서도 별로 후회되는 일은 없었다.그가 한 일은 늘 옳았고 「나는 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를 수 밖에 없음」을 확인했다. 그는 사랑하는 남편과 다 자란 딸(은진 서울대미대),하루종일 화초를 가꾸고 여전히 집안의 구석구석을 깔끔하고 예쁘게 꾸미면서 그런 생활이 음악 못지않게 소중한 것임을 알고있다.그의 생활은 결국 그의 예술을 지켜주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를 필요로하고 그를 보고자하는 사람들에겐 그가 지닌것만큼 주저없이 나누고 싶어한다.군민을 위로하는 군민음악회나 구민음악회,장애자를 위한 예술학교 기금모금 자선음악회등 크고 작은 음악회에 기꺼이 참여한다.다만 왼손이 한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여 화려한 그의 이면에 이런 면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아무리 작은 음악회라도 「이무대는 나의 첫무대」 「언제나 새로운 최상의 무대」여야 한다는 각오로 혼신을 다한다.풍부한 성량과 날이 갈수록 윤기를 더하는 투명한 목소리,온몸이 악기가 되어 자유자재로운 기교로 노래부르지만 그에게서의 예술은 단순한 재능과시나 화려한 영광을 위한 기교는 더이상 아니다. 「예술은 인간 가슴의 심연에 빛을 보내는 일」,누가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완벽추구와 긴장을 잃지않는 백남옥의 노래는 바로 그 청중의 가슴에 던지는 한줄기 빛처럼 따사롭게 흘러들고 있다. □연보 ▲서울 출생 ▲1965년 서울예고 졸업 ▲1969년 서울대 음대 졸업 ▲1973∼76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가곡과 오페라 전공) ▲1976∼78년 중앙대·서울예고 출강 ▲1979∼현재 경희대 음대 교수(이화녀중때 김학근,예고때 오현명,서울대 음대때 이정희,베를린국립음대 때 브라우어 교수 사사) ▲1964년 서울대 음대 주최 제15회 전국남녀학생음악경연대회 특상 입상 ▲1966년 제16회 동아음악콩쿠르 성악부 1위 입상 ▲1968년 제1회 독창회(명동 시공관) ▲1969년 오페라 「순교자」(국립오페라단) ▲70,71,72년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국립오페라단 김자경오페라단)〃 모차르트 오페라 「마적」(국립오페라단),비제 오페라 「카르멘」(김자경오페라) ▲1974년 베를린 국립오페라단 오디션1차합격,베를린 국립오페라단 퐁키엘리 4막오페라 「라조콘다」 ▲1975년 독일유학시 베를린 국립음대 오케스트라 말러가곡 솔리스트(리케르트시에 의한 말러 마지막 7개의 가곡으로 프랑스의 파리 툴르즈 바이안느 지방 순회연주) ▲1976년 동아일보·동아방송주최 귀국독창회(류관순기념관),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국립오페라단) ▲1977년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김자경오페라단) ▲1985년 음악의 소극장 운동을 위한 제1회음악회(현대극장 소극장) ▲1986년 독창회(호암아트홀) ▲1986년 생상스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호암아트홀) ▲1987년 오펜바흐 가곡 「호프만의 이야기」(김자경오페라단) ▲1989년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투테(여자는 다 그런것)」(김자경오페라단) ▲1990년 캐나다 토론토,미 워싱턴등지 독창회 ▲1991년 8·15경축음악회 미애틀랜타 휴스턴 시애틀 워싱턴등지 순회독창회 KBS교향악단,시향10여회협연,지방연주 20여회,KBS·MBC­TV 「봄맞이 가곡의 밤」「8·15경축음악축전」독일문화원 주최 「독일가곡의 밤」해마다 참가. 「백남옥 우리가곡 모음」(78년)「애창곡집」(79년)「우리가곡집」(86년)「매혹의 목소리 백남옥 우리가곡」CD출반(92년)이상 성음,「백남옥 우리가곡」LD출반(93년 삼성)외.
  • 미 현대미술 거장진품 국내화단 장식/스텔라·포스트모던 대표 4인전

    ◎국제적 흐름 접할 절호의 기회/스텔라/신표현주의 몰고 온 추상미술 대가/4인전/시각적 어휘강조… 80년대 가장 주목 미국현대미술의 정상급 작가들의 진품이 4월 국내화단을 화려하게 장식하고있다.추상미술의 거장 프랭크 스텔라의 전시(4월3일∼5월1일,국제화랑)와 미국 포스트모던의 대표작가 4인전(4월10일∼6월10일,호암갤러리)이 그것. 이들의 한국전은 세계화단을 주름잡고있는 작가들의 예술성을 보다 근접한 자리에서 접해 국제적인 흐름의 중요한 일면을 피부로 느낄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학도와 팬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더욱 관심을 끄는 대목은 지난 수년간 국내 젊은 작가들에게 강렬한 영향력을 끼쳐온 이들의 미의식과 작품세계를 직접 확인해 볼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전을 계기로 직접 내한하기도한 프랭크 스텔라는 세계1백대 작가중 예술성과 상품성이 2위에 올라있는 가장 영향력있는 현존작가이다.57세의 스텔라는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지난83년 학자와 예술인에게 최고의 영예라 할수있는 하버드대학의 「찰스 엘리어트 노턴 프로페서십」을 받아 작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그의 작업개념은 정통추상의 벽을 깬 파격적인 입체추상을 기조로 한다.회화 조각 판화 입체등 전 장르에 걸쳐 발군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그는 지난50년대말 뉴욕에 진출한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실험정신을 발휘해왔다.특히 역동적이고 표현성이 강한 현란하고 다양한 색채의 입체회화는 서구화단에 신표현주의 열풍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번 국제화랑 전시에는 요즘 대표적 작업경향인 금속부조회화 3점을 비롯,금속조각 4점과 색채판화 5점등 신작12점을 출품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부터 외국현대미술의 국내소개에 남다른 열의를 보이고 있는 호암갤러리가 「4인전」에 초대한 작가들은 국제화단에서 「뉴페인팅의 기수」 「신표현주의의 선두주자」로 꼽히는 인물들이다.줄리앙 슈나벨,데이비드 살르,에릭 피슬,로버트 롱고등.80년대이후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들은 최근 거세게 일고있는 포스트모던 논의와 함께 세계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작가들이다.이들은 특히 70년대까지 지속돼온 미니멀아트와 개념미술등 지나치게 지적이며 관념적인 경향에 반발하여 미술의 시각적 어휘와 본질적인 기능을 강화시켜 국제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국현지에서도 이들 4명의 작품이 동시에 전시된 예가 거의 없을 정도로 각자의 개성이 너무 강한것이 특징.슈나벨과 살르는 더욱이 인기면에서도 특출하며 포스트모던 작가중에도 논의의 여지가 많은 중요 작가들이다.이번 서울전에는 작가별로 대표작 10∼15점이 나와있다.
  • 과기부문 호암상 탄 과기원교수 김충기씨(인터뷰)

    ◎캠토더 핵심소자 개발… 세계가 인정/“현장응용·미래예측 기술 함께 연구 바람직” 삼성복지재단(이사장 이건희)이 제정한 제3회 호암상(상금 1억원) 시상식이 지난25일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렸다. 이날 과학기술부문을 수상한 한국과학기술원 김충기교수(50)는 20여년동안 반도체 소자,집적회로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로 국내외적으로 반도체 관련분야의 기술향상에 많이 이바지해 온 중견과학인. 김교수는 지난70년부터 5년동안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를 생산하는 미국의 페어차일드회사에서 최근 캠코더의 핵심기술로 사용되는 전하결합 선형영상감지소자를 개발,세계적인 평가를 받았다. 즉 비디오카메라인 캠코더뒤에 필름 대신에 쓰이는 이 소자는 영상을 기억해 전기신호로 바꾸는 반도체로 기존에 필름을 사용해야만 했던 인공위성이나 정찰기등의 지상촬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밖에 최근 고속열처리공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16M DRAM이상의 고집적기억소자에 사용할수 있는 접합형성기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연구자의 길은미지의 세계를 처음개척,길을 가는 탐험가처럼 스스로 선택,결정해야하는 일이 많으므로 이를 회피하거나 꺼리지 말고 순간 순간 판단을 내려가며 도전해야한다』는 말로 연구에 임해온 태도를 들려주었다.최근 어려움을 겪는 반도체 업체들에 대해 『국내의 반도체업체들도 이제 소프트웨어의 개발과 더불어 컴퓨터의 주변기기나 생산기계등에도 눈을 돌려 힘을 써야 할때』라며 그렇게 할때 치열한 세계의 반도체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강조되는 산학연협동은 장기적인 계획아래 추진되어야한다』고 지적하는 그는 산업 현장에서 실제응용되는 연구와 함께 미래를 내다보는 연구가 알맞게 조정 시행되어야 하며 특히 G7기술등 미래 예측을 위한 기술도 등한히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 무용가 이매방씨(이세기의 인물탐구:22)

    ◎날듯한 보법·절묘한 선… “타고난 춤꾼”/안으론 한·밖으론 허공 다스려 관객심혼 울려/「살풀이 춤」은 “미학의 극치·최고무작” 평가받아/옳지않은 일 못참고 욕설잘하는 자유분방한 성품 천명이고 만명이고 관중들의 오장을 속속들이 뒤흔들어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매방,타고난 춤꾼 신들린 춤꾼인 그의 괴팍한 성격은 무용계에서는 알아주는 막무가나다.비위가 틀리면 어른이고 제자고 눈에 보이는것이 없다.주춤거리거나 남의 눈치를 본적도 없다.한번 입을 떼기 시작하면 몇시간이건 쉬지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세상의 욕이란 욕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것이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제멋대로 살아온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가 춤추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삼라만상을 보여주고 산천초목을 움직인다.미끌어질듯 날듯말듯 비스듬히 포개고 떼는 보법이며 무겁게 들어올렸다가 날카롭게 뿌리치는 광대한 능선,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에는 냉혹한 귀기마저 감돌아 관객은 어느순간 전률에 몸을 떤다.아름답고 눈부신 보석같은 춤만으로도 그래서 그의 허물들은 눈녹듯이 용서된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않으면 신병에 걸리듯 천수북을 앞에놓고 변죽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몸을 젖혀 엎어치고 휘돌아야만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그중에서도 그의 보념승무는 염불장단과 굿거리 사이사이에 현란하게 두들겨대는 북춤이 일품이다.인간의 고통스러운 열정과 비애를 북가락에 실어 남도특유의 흥과 멋을 종횡무진으로 엇가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는 아현동에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한쪽 귀퉁이에 휘장을 치고 연탄불에다 냄비밥을 끓여먹었다. 결백증이 심해 돈이 오가는 풍조를 체질적으로 경멸하는데다가 재능이 없어보이면 처음부터 제자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이곳저곳 떠도는 방랑벽,훌쩍 떠나고 소리없이 머물면서 긴 정착을 꺼리는 성격탓에 마뜩한 거처하나 마련하지 못했었다.그의 부대끼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누이가 2년전 타계하면서 유산으로 남겨준 연구소옆 허름한 아파트가 60평생에 처음가져보는 제집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마루한가운데 왜정시대때나 볼수있었던 낡은 싱거미싱한대가 놓여있다. ○무용복 손수지어 입어 그는 옛날부터 꼼꼼한 바느질솜씨로도 유명하다.무용발표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춤이 훼손될것을 걱정하여 복색일체를 손수 지어입는다.화장과 도련 소매부리를 재단하고 재봉틀에 누비는 귀신같은 솜씨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룰 정도다. 정종 3병의 술실력,4,5년전까지 만해도 주정·주사가 극심하여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욕설을 퍼붇거나 남의 멱살을 잡기가 일쑤였다. 60년대중반 발레하는 이인범씨와 국도극장 악극단 쇼에 나간것이 말썽이 되어 무용협회가 이들을 제명처분하려던 사건은 무용계의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징계사실을 사전에 안 그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으로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는 등 광란의 주란을 부린 적이 있다. 「먹고 살자는 일인데 너희들이 내게 돈을 줬느냐 쌀을 줬느냐」 게다가 누군가가 그의 춤을 ‘기방춤’으로 격하시키려하자 「궁중무를 빼고 기방춤이 아닌것이 뭐가 있느냐? 너희춤은 양춤이냐발레춤이냐? 뿌리도없는 형식춤을 어디다대고 비교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막상 그의 신랄한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한말이래 변질되지않고 원형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그의 춤』을 정명호씨(중대교수)등 여러사람이 감싸주었다. 77년 서울 YMCA강당에서 열린 그의 춤을 보고 원로언론인인 홍종인씨는 이례적으로 「속절없는 슬픔과 기쁨을 아로새겨 나가는가 하면 기쁨도 슬픔도 초월한 파탈의 경지로 솟구쳐오른 황홀」이라는 찬양의 글을 써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또 여성적 미학의 극치로 칭해지는 그의 「살풀이춤」은 극도의 긴장과 절제,어둠과 밝음,괴로움과 갈등을 교차하면서 정속에 폭발을 감춘 최고의 무작으로 평가되었다. 안으로는 한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하공을 다스리는 춤.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어 슬피 끝난 일들을 차곡차곡 망각하려는 애절함을 눈물의 춤으로 승화시키자 객석에서는 조용한 흐느낌마저 파동쳤다. 「덩닥궁 덩다꿍,어깨들고 착착쿵…」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때 보면 숨쉴틈도두지 않는다.지시하고 지적한대로 선을 만들지 못하면 냅다 달려나가 욕설을 퍼붓고 북가락을 내던진다. 변덕스럽고 삐치기도 잘해서 사근사근 사람을 홀딱 반하게 하다가도 못마땅한 구석을 발견하면 살차게 뿌리치고 미련없이 돌아 앉는다.끝없는 줄담배,쪽쪽 뻗은 검지와 장지에 꼬나문 담배하며 낮으막하나 재빠른 말씨,아래로 착 내려깐 날카로운 눈매와 여성적인 걸음걸이 등등 그의 이야기는 글로 써서는 충분치 못하다.진한 사투리의 육두문자와 구성진 입타령 일본춤 스페인춤 흉내,바느질과 다림질 솜씨,무엇보다 사람의 애간장을 뒤흔들어 놓는 살풀이춤을 보고나서야만 그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된다. 지난해 어느 사석에선가 명창 김소희씨가 매방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자기예술에 혼신바쳐 『이매방동생은 남못하는 예술을 가진 사람으로써 젊어서는 정말 「개판」이었지요.누구라도 한번 걸렸다하면 밤샘 술을 마셔야하고 휘젓고 돌아다니고 욕설 잘하고,그러나 그 춤만은 현재로선 제가 아는한 전무후무한 명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그 춤만은 가히 당대의 명인이지요』 이른바 재주가 승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선 한자리에서도 몇십번씩 무태를 보이는 성의를 잊지 않는다. 한때는 그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그의 춤을 저승으로 가져가려나 보다」고 무용계가 빈정거린 적도 있으나 그는 몇몇제자를 모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엄하게 그의 춤을 보존하고 전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매방은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이경율씨는 목포 양동에서 싸전과 장작장사를 하는 집안으로 그는 3남2녀중 막내,부모와 형제들의 귀여움을 두루 받았으면서 어릴 때부터 여성취향이 짙어 경대앞에 앉아 춤을 추거나 화장하는 흉내를 즐겼다.『나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세살때나 또는 일곱살때,어쨌든 그 이전에 운명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집에 세들어 있던 목포 권번 기생에게 춤을 배우고 권번에서 춤을 가르치던 집안의 할아버지벌인 이대조선생,화순의 박영구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승무검무 법고를 배웠다. ○매란방처럼 살고자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4년간은 큰형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 만주 대연과 북경에서 살면서 중국 경극의 대가인 매란방을 만났고 평생 매란방처럼 살고 싶어 본명인 「규태」를 버리고 그때부터 매방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가졌다. 군산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간간히 서울에 올라와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역마살이 뻗친듯 광주 대구 강릉 속초 부산 동래를 전전,형제들의 간곡한 권유로 69년,42세때 부산에서 무용활동을 하는 김명자씨와 뒤늦게 결혼하여 딸(현주·20)하나를 두고 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있다. 부산에 머물고 있을때 그의 춤을 귀히 여기던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와 거문고 인간문화재 한갑득씨의 권유로 77년부터 서울정착을 결심하게 되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들끓는 듯한 지난날,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천 관중을 사로잡는 그의 춤에 매료되어 54년,서울 첫 정착때는 신익희선생의 따님인 정균씨가 동대문밖 창신동에 무용연구소를 차려준 적이 있었고 삼성의 이병철회장은 특히 그의 「살풀이춤」을 사랑하여 자주 별장에 불러 춤을 추게 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매일 하오4시부터 4시간씩 연습,이렇게 연습을 해두기 때문에 공연을 앞둔 총 리허설은 해본적이 없다. 해마다 명무전 명인전 전통무용의 밤과 수많은 해외고연에 참가하고 프랑스 렌느 페스티벌에 다녀와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럽공연은 「질색」이라고 거절한다.평생을 통해 그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체면상 해본 일은 없을 것이다.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던,욕쟁이로 소문이 나고 성질이 괴팍하던 말던,방약무인하고 오만불손하다 하더라도 김소희씨의 말대로 「당대의 전무후무한 명인」,절묘한 선으로 이어지는 천의무봉한 춤솜씨 하나만으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매방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연보 ▲1927년 5월5일 전남 목포출생(본명(이규태) ▲1935∼39년 만주 대연에 거주.전남 무안출신 이대조선생 「승무」「북춤」사사,전남 화순출신 박영구선생 「승무」「법고」사사,전남 목포출신 이창조선생 「검무」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87년 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예능보유자(90년 지정) ▲1948년 명창 임방울선생 명인명창대회 「승무」(3고)첫 출연 ▲1953년 전북 군산 국악원주최 명인명창대회 「승무」(9고) ▲1953년 이매방 개인무용발표회(광주) ▲1954년 삼성여성국극단 창극출연 「승무」(7고) ▲1955년 개인무용발표회(문하생 발표 포함·광주) ▲1956년 개인무용발표회(부산) ▲1957년 개인무용발표회 「살풀이춤」(부산) ▲1959년 서울 을지로 원각사에서 개인무용발표회 ▲1962년 광복절 경축예술제 「살풀이춤」(국립극장)(도쿄∼오사카) ▲1968년 일본 대민단본부주최 광복절기념공연 ▲1970년 부산·시모노세키 자매결연기념공연(시모노세키·부산) ▲1975년 부산예총주최 「무용합동공연」(부산) ▲1977년 이매방 「보념승무」발표회(서울YWCA강당) ▲1979년 대한항공 민항 10주년기념공연(미 6개도시 교포위문) ▲1981년부터 제1회 대한민국 전통무용예술제참가(해마다) ▲1982년부터 국악대제전 한국 명무전 출연 ▲1984년 무용인생 50년 특별기념공연 「북소리Ⅰ」(세종문화회관) ▲1986년 미 한미문화센터주최 워싱턴 공연 「살풀이춤」 ▲1986년 아시안게임 축전공연 출연 ▲1987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Ⅱ」(문예극장 대극장) ▲1987년부터 해마다 중요무형문화재공연 출연 ▲1990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Ⅲ」(호암아트홀) ▲1988년 88서울올림픽문화예술축전 참가 ▲1989년 조선일보주최 국악대공연 출연 ▲1990년 중국·북경·연변 교민 순회공연 ▲1991년 한국·일본 무형문화재 합동공연(도쿄) ▲1992년 국악대제전 명무전 출연 예술문화대상·눌원 향토예술대상·목관문화훈장서훈 (승무) 송수남·김진홍·임이조·채향순·국수호·채상묵 (살풀이) 정명숙·유숙희·김정녀·이진주
  • 주옥같은 아리아… 청중 매료/본사초청 이 노바 서울공연 성황

    이탈리아의 바리톤 에토레 노바와 메조소프라노 베스파시아니 초청 공연이 8일 저녁 호암아트홀에서 1천여명의 청중이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열렸다.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내한한 이들은 찬조 출연한 소프라노 김금희와 함께 스테파노 지아니니의 피아노 반주로 한곡 한곡을 열창해 객석으로 부터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노바는 이날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과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가운데 「프로벤자 네 고향으로」 등 잘 알려진 가곡과 아리아를 중후한 무대 매너로 시원스레 불러 탄성을 자아냈다.베스파시아니도 비제의 「카르멘」가운데 「하바네라」,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운데 「어머님도 아시다시피」 등을 열정적으로 불러 열띤 박수갈채를 받았다.(사진) 또 김금희는 「동심초」 등 우리가곡과 푸치니의 「자니 스키키」가운데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불러 두 나라 음악인들의 우의를 다지는 따뜻한 박수갈채를 이끌어 냈다.
  • 매혹적 목소리… 청중 매료/본사주최 에토레노바 전주공연 성황

    【전주=조승용기자】 서울신문사가 주최한 이탈리아의 유명성악가 에토레노바 초청음악회가 5일 하오 7시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전북학생회관에서 1천5백여명의 청중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지난4일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 4개도시 순회에 나선 가운데 이날 전주에서 열린 공연에는 바리톤 에토레노바외에도 메조 소프라노 베스파시아니(이탈리아),국내 유명 소프라노 김금희씨등이 함께 출연해 매혹적인 목소리로 학생회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매료시켰다. 특히 에토레노바가 공연중간에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오 솔레미오(오 나의 태양)를 부르자 청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보내는등 시종 열띤 분위기였다. 에토레노바 공연은 8일 하오 7시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마지막 공연을 갖는다.
  • 「소설 장보고」(화제의 책)

    ◎해상왕 장보고 행적 사실토대 재구성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고송지영선생의 신문연재소설을 저자가 생전에 다듬고 정리한대로 3권의 책으로 재구성해 펴냈다. 『소설은 내용이 안고 있는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우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평소 지론대로 독자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게 하는 재미를 추구한 소설이다.그러면서도 장보고의 행적을 기록한 「삼국사기」「신당서」「입당구법순례행기」등 사서를 통해 역사적 사실에도 충실하도록 꾸몄다. 소설은 1천년전 절대왕조시대에 황해를 무대로 동아시아의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왕권을 넘보던 사나이의 어린시절과 야망,권력쟁탈전,시기와 모함,영웅의 사랑등이 전편에 넘친다. 송지영지음 호암출판사 4천5백원.
  • 에토레 노바/베스파시아니/이 정상아리아 국내 첫 선

    ◎서울신문사 초청,새달 4∼8일 대구·전주 등서 순회공연/“중후·매력적인 음성에 뛰어난 연기력”/「춘희」·「카르멘」 등 본고장음악 만끽 기회/소프라노 김금희씨 출연… 한­이 우정의 무대 기대 리아의 바리톤 에토레 노바와 메조소프라노 암브라 베스파시아니가 8일 하오 7시 호암아트홀에서 국내 오페라 팬들에게 노래를 통해 첫 선을 보인다. 서울신문사 초청으로 내한하는 노바와 베스파시아니는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의 오페라 무대에서도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들이다.이들은 이번 내한 공연에서 장기로 하는 토스티,쿠르티스 등의 이탈리아 가곡과 베르디,마스카니 등의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른다.피아노 반주는 스테파노 지아니니.이들과 함께 국내 소프라노 김금희가 출연할 예정이어서 양국 성악가들이 우의를 다지는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들은 서울에서 공연을 각기에 앞서 4일에는 대구 문화회관,5일은 전주 학생회관,6일은 마산 올림픽생활관에서 각각 연주회를 펼친다.특히 전주와 마산지역은 지금도 들을만한 연주회 자체가 적은 것이 현실.이런 상황에서 이번 공연은 이들 지역의 팬들이 본고장의 음악을 즐길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에토레 노바는 청중을 압도하는 중후하면서도 매력적인 음성과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로 알려져있다.그는 1946년 로마에서 태어나 베르디음악원을 졸업한뒤 밀라노음악원에서 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이다.1974년 플로렌스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1천회 이상의 오페라에 출연해왔다.또 베르디국제콩쿠르와 밀라노국제콩쿠르 등 권위있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콩쿠르를 석권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셜리 베레트 등 수많은 세계 정상급 가수들과 주역으로 함께 무대에 서왔다. 암브라 베스파시아니는 보기 드물게 강렬한 음성을 지닌 메조소프라노이다.로시니음악원과 산타체칠리아음악원을 졸업하고 마리아 칼라스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을 지녔다.현재는 로마의 베로나야외극장과 플로렌스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금희는 22살때 대학원생 신분으로 김자경오페라단의 「마농」공연 오디션에 뽑혀 화려하게 데뷔했다.이어 이탈리아 칼라리 국제성악콩쿠르와 팔마 국제콩쿠르 입상을 통해 국제적으로 재능을 인정 받았다.현재 추계예대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는 리트와 오라토리오,오페라,그리고 한국가곡을 포괄하는 폭 넓은 레퍼터리의 소유자로 작곡가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음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에토레 노바는 이번 공연에서 카르딜로의 「무정한 마음」과 베르디의 「춘희」가운데 「프로벤자 네 고향으로」,「너는 왜 울지않고」,카푸아의 「오 나의 태양」 등을 부른다.베스파시아니는 토스티의 「작은 입술」,비제의 「카르멘」가운데 「하바네라」,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운데 「어머님도 아시다시피」,칠레아의 「아드리아나 레코브레」가운데 「떠돌이 별」 등을 선보인다.또 김금희는 「동심초」「꽃 구름 속에」 등 우리 가곡과 함께 푸치니의 「자니 스키키」가운데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를 부르게 된다. 공연문의는 739­6534.
  • 조각가 최종태씨(이세기의 인물탐구:15)

    ◎영혼 깃들인 조형세계 표출에 온힘/내면적 깊이서 「참예술」 찾는 미의 탐구자/「착한 사람」 형상화 일념… 순수 소녀상 집착/중3때 충남학생 미전서 수상계기로 예술의 길 걸어 오늘은 뭔가 될듯하다.뭔가 할 수 있을것 같다고 느낀다.그래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되는듯 싶다고 생각될 때 되지않으면 왠지 「암담」해진다.되고있는 「하루」를 얻기위해 그는 오늘도 지하실 작업장으로 내려간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집요하게 소녀상에 집착하고 있는 조각가 최종태씨.슬픔이나 미움이 묻어있지않은 얼굴속에서 그는 「좋은 사람」「착한 사람」을 끌어내고 싶다.그리고 그가 성취하고자하는 얼굴을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끝없이 그리고자 한다.그는 실재하는 얼굴을 그리려할뿐 실재하는 얼굴의 외형을 원치는 않는다.이에 충실하면 할수록 그가 접근하려는 얼굴로부터 점점더 멀어지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부피가 느껴지지않는 식물성의 체구에 때묻지않은 시선,때묻지않은 표정,그러나 날카로운 예술가의 초상에는 고고함과 고통이 동시에 담겨져있다.만일 시인이 조각가보다 한수 위라면 그는 단순한 조각가아닌,「미의 탐구자같은 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그는 만사에 꾸밈도 변명도 없다.술수도 책략도 타협도 없다.오로지 「순수무결한 소녀」에 집착하는 해맑은 심성은 우리가 살고있는 오염된 현실에서 한줄기 다이아몬드 빛처럼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려는 정령과도 같다. 프랑스의 파트리스 브로크 로랑 프상티는 그의 작품은 「극동의 지혜와 준엄함이 깃든 예술」,정병관은 「세계미술사적인 수준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인물조각가로 불려 마땅하다」고 평한다. 아마도 동시대를 사는 생존작가중에서 최종태만큼이나 평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도 드물거라는 생각이다. 가장 높이 나르는 새가 가장 먼데를 보듯 그의 내면에 무한한 공간을 구성해놓고 작가의 마음속 먼데까지 높이 올라 늘 전체를 관망하려는 자세때문인지도 모른다.예술이 예술을 넘어선 경지,그는 조형의 단계를 지나 이미 초월을 꿈꾸는 위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하마터면 소설가가 될뻔도 했다.서예가 또는 작곡가가됐을지도 모른다.그만큼 그는 다양한 재능을 타고났다.그러나 중학교 3학년때 야외사생이 충남학생미전에서 2등상을 탄 것이 계기가 되어 선택의 여지없이 화가의 길을 정했던것 같다. ○보수적 집안서 자라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보수적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법대에 가기만을 완강히 우겼다.별로 좌절이라든가 타격을 받는 타입이 아니지만 이때만은 「큰 충격」이었음을 그는 여러 글에서 밝히고 있다. 대전사범 졸업후 미대에 진학,그는 『내가 왜 서도의 길을 내던지고 그림의 길을 갔는가,그림의 길을 내던지고 조각의 길을 갔는가 하는것 등은 내가 선택했다기 보다 수동적으로 그때마다 그렇게 조건이 지어졌다는 편이 옳다』고 말한다. 중학교때는 화가 이동훈씨가,대학교 1학년때는 장욱진씨,조각으로 돈것은 김종엽씨의 영향때문이다. 그는 스승인 김종엽씨를 부모처럼 따르고 존경해왔다.그러나 졸업할무렵 스승이 추상형태를 추구하자 스승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음에도 형태에 관한한은 자신의 길을 곧게 지켰다. 당시 서구 현대미술사의 한편에는 모딜리아니가 있고 루오와 자코메티,자드킨이 있고 또 현실을 살아가는 아픔과 거기 실존주의 철학과 동양철학이 있었다. 60년대초반의 그는 아르프와같은 유동하는 추상포름을 딱 한번 만들었고 후반에는 미니멀쪽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는 『「예속이나 편승」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판단,「예술가의 삶은 참삶을 찾는것이며 따라서 형태의 선택은 자신의 진실이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외진 길이라도 그의 길을 고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단 한번도 모델을 쓰지않은 작가로도 유명하다.조각은 물론 그림에서도 「모델」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그저 본대로 느낀대로 형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최근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들었다.손을 귀에다 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득한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다.이는 70년대이후 두번째 시도다. ○모델 쓰지않는 작가 그무렵 사는것이 너무 힘든 절화의 상황에서 형태를 어떻게 다룰지몰라 고심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끊임없이 그를 감전시키는 어떤 힘,바로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어머니의 소리를,어떤 천상의 소리를,들릴듯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면에서 확인키위해 그는 이와 비슷한 작품을 만든적이 있다. 『재산이라곤 쌀밖에 없었던 우리집,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쌀을 팔아서 물감·종이를 사주었다』아끼고 아껴도 1주일에 한곽씩 물감을 써야하는 그였기에 지금도 눈물없이는 「어머니」를 말할 수가 없다고 돌아본다.「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은 어머니가 그에게 준 또하나의 구원의 선물이 된 셈이다. 그는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잊지못한다. 「인생의 문제는 무엇인가/싸우는 것이다.다음의 문제는 누엇인가/이기는 것이다.그 다음의 문제는 무엇인가/죽는 것이다」이 짤막한 서시는 「바로 레미제라블을 그대로 요약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인생과 예술의 전쟁에서 싸워 이긴 자코메티를 부러워하고 있다.특히 싸르트르가 자코메티에게 한말,「그는 매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늘 승리하고 있다」는 예술가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아니겠느냐고. 이제 나이 60이 넘어 「죽음」을 한번쯤 떠올려볼 시점에 서서 그는 「무궁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유한한 인간존재와도 같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문득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가 사는 하루 하루가 매일같이 새로운 날이기를 기원하기도 한다.그리고 세상에서 처음보는 풀,처음보는 나무,아침에 눈을 뜨고 바라보는 신천지의 경이로운 광휘를 최초로 그리고 싶은 것이다. 「삶과 죽음사이에 그 이름할 수 없는 빈공간에서 파르르 떨고있는 풀잎처럼 나의 그림은 그렇게 존재한다」는 그는 이제 관조의 강가에 서서 그가 건너온 피안의 언덕을 중용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것이 서있는 인물이건 얼굴상이건 한결같이 거룩하게 우뚝 솟아 정면을 향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늘 똑바로 서서 무엇인가를 계시하는 얼굴은 범속을 떠났으나 대지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어느때는 절망과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도끼같은 얼굴을 내밀고 자유의 저편을 내다본다. 물론 최소한의 필요만 남기고 곁가지는 가차없이 생략되어 어느경우든 입체감의 거부를 강렬하게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직선의 작가이면서 자칫 단조로움에 빠질 위험에서 벗어나 얼굴상 조각은 매끄러운 곡면이 연출되고 측면의 선도 보일듯말듯한 곡선의 변화를 부여하고 있다. ○부인 헌신에 늘 감사 그는 대전에서의 교사시절 같은 학교 영어교사이던 부인 김절자씨와의 사이에 지영(이대대학원) 범락(서울대4)남매. 그는 조각일을 할뿐.부인은 예술가 남편에게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다.작품을 파는 일도 싫어하고 작품흥정을 소름끼치게 거부하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온 부인에게 그는 어느 글에선가 「아내여 미안하다」고 쓰고있다. 술은 주사가 있을만큼 폭음.특히 시인 박용래를 좋아한다.그러나 이젠 나이먹고 실수할 것이 두려워 시인 소월처럼 「마누라를 건너편에 앉혀놓고」집에서 술마신다.끝없는 줄담배.대신 어디서든지 「글써달라」는 부탁만은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대뒤 노고산동 하꼬방,신촌역 전세집에 살다가 80년에 연남동에 정착하여 지난해 처음 작업실이 있는 집을 지었다.뭔지 부자가 된듯하지만 마당에다 천막을 치고 흙을 바르고돌을 쪼던 때가 진짜 작품을 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그러나 이런 일에는 이미 초연하여 여전히 「착한 사람」「훌륭한 사람」만드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착한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그의 작품들은 어딘가 그의 모습을 비슷비슷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웅변보다는 침묵,발언보다는 경청하는,행동보다는 사변하는 모습등이 그렇다. 그리고 정연하게 늘어선 수많은 그의 소녀들을 바라보는 순간,그들이 하나같이 살아움직이는듯한,루크 브젱이 그에게 했던대로 「청동·목재·화강암으로 된 모습들에서 문득 심장뛰는 소리가 들림」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결국 그가 집요하게 추구한대로 어쩌면 정신세계를 가진 인체를 지금 이시간에 성취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연보 ▲1932연12월 충남 대덕군 회덕면 출생 최명교씨와 임용자씨의 4남1여중 장남 ▲1952연 대전사범졸업(화가 이동훈씨에게 그림지도) ▲58연 서울대 미대 졸업(공주고­천안여고­숙명여중­천안고­대전 대성고에서 교사)▲59연 국전 입선 ▲60연 조각 「서있는 여인」으로 문교부 장관상에 이어 「어머니와 아들」「앉아있는 여인」으로 연3회 특선,국전 추천작가 ▲64연 대전 문화원서 제1회 조각 개인전 ▲65연 시인 임강빈 시화전 ▲66연 공주사대 교수 ▲67연 이대 미대 교수,서울대 미대 동문 이남규·이민회·이지휘·조영동과 5인작가전(서울신문회관) ▲68연 현대 공간회 창립(이후 15년간 해마다 클럽전) ▲70연∼현재 서울대 미대교수 ▲71연 유럽지역여행(이탈리아 조각가 파치니와 교류) ▲75연 조각개인전(미국 문화원) ▲76연 파스텔화·소묘·조각·목판·릴리프전시회(문헌화랑) ▲77연 조각과 목판화전(신세계 화랑) ▲81연 조각개인전(신세계 미술관)구미지역여행 ▲84연 파스텔 그림전(가람화랑) ▲85연 FIAC(국제견본시 현대 미술)85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조각개인전(가나화랑),FIAC86에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 ▲87연 가나화랑주관 파리 샹프륄리 아틀리에서 오리지널 판화제작 서울대 연구교수 ▲88연 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법륭사 백제관음상 감상 조각개인전(호암갤러리) ▲90연 조각·파스텔화 개인전(가나화랑) ▲91연 FIAC91 출품(부부가 유럽여행) ▲92연 파스텔화·테라코타·조각·연필화·먹그림 개인전(가나화랑),그외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서울양화진성당)「김대건신부상」(한강성당)「성모상」「콜롬바와 아그네스 자매상」「예수성심상」「십자가의길」(명동성당)장욱진 탑비(충남 연기)제작 충남문화상·국전추천작가상,서울시문화상 수필집 「예술가와 역사의식」「현장을 찾아서」「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열화당간 「최종태 화집」,가남아트간 「최종태」
  • 한국무용가 최현씨(이세기의 인물탐구:14)

    ◎절제된 몸짓… “여백의 미” 표현 일품/고고한 기품 넘치는 타고난 재능의 예인/김해랑문하서 승무·태평무 등 두루 이수/완벽주의적 성격… 대선배와의 불화 “천추의 한”으로 갓쓰고 도포입고 부채들고 최현이 무대에 나타나면 이도령이 광한루에 나선듯 화사하고 눈부시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헌칠하고 단정한 매무새,운신의 폭이 조용하면서도 민첩하다.삭풍이 이는 한겨울에도 그의 분위기에는 오월 단오같은 싱그러운 신록이 묻어있다. 부채끝으로 오작교(오작교)를 가리키고 부채를 펴서 얼굴을 가리면 그때마다 한양의 풍류와 선비의 기품이 동시에 엇갈린다. 무용계에서 「푸르름을 몰고다니는 예인」으로 불리는 것처럼 그는 20대 미장부의 멋과 미를 변치않는다.나이와는 상관없이 언제나 젊고 기개에 넘쳐있다.언제 어디서나 누구앞에서나 당당하다. 우선 그의 춤솜씨부터가 그렇다.타고난 재능과 기량으로 그는 빠르고 느린 어떤 곡조에도 절묘한 춤의 경지를 보여준다. 정중동이 절제된 그의 「승무」나 「살풀이」등 그의 춤의 매력은 그 움직임마다에 여백의 미를 살리는데 있다.뿌리치고 내뻗는 손짓하나에도 선과 배경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는듯 하다.힘이 들어가지 않은,몸속으로부터의 흥취가 절로 살아나 어느땐 멈추고 어느땐 다시 흐른다.그리고 조각처럼 푸르고 흰 얼굴에는 한과 슬픔을 자제한 인고가 담겨있다. 그는 춤뿐아니라 춤과 관련된 영화와 연극,창극과 뮤지컬을 두루 섭력한 예술가다. ○춤관련 영화·연극 출연 완벽주의자인만큼 한가지를 알아도 끝까지 파고들어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쌓고있다.대강대강 그럭저럭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사람을 사귀어도 한번 사귄 사람은 절대로 놓지않는다. 이렇게 흑백이 분명하기때문에 무용계에서의 그의 위치는 자칫 외롭기 십상일수가 있다.그러나 서로서로 인맥·학맥,제자 스승으로 얽히고 설킨 속에서 그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타고난 재능,탁월한 춤솜씨 하나뿐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춤추는 사람이 춤잘추는데야 누가 뭐라하겠는가.위로는 막강한 선배들이 기라성처럼 좌정하고 이리저리 끈이 닿는 무용풍토에서 최현자신은 그런 자부심과 오기 하나만으로 고고하게 버티어왔다 할수 있다. 그가 춤으로 무용계에 어필하기 시작한 것은 65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초라니」에서다.조택원이후 송범 김진걸 이매방으로 이어지는 남자무용수중 수려한 춤과 미모마저 갖춘 그의 출현은 무대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51년이후 한때 영화에 심취하여 조미령 김승호 허장강 등 당대 스타들과 영화 「춘향전」「시집가는날」등에서 주연,이후 그가 안무·출연한 무용극 「춘향전」「마의태자」「황진이」등은 노련미 넘치는 춤기교와 함께 영화에서 닦은 연기솜씨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비상」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추어왔고 지금도 무용인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의 하나다. 소매가 긴 백삼에 상투관 차림,부채 하나만으로 무대를 누비는 이 「비상」은 희로애락의 일상사를 살고있으나 저 하늘을 향한 끝없는 의지,꿈을 잃지않으려는 인간의 끈질긴 열망이 춤속에 담겨져 「마음을 비운 춤」「생의 환희와 승리를 득도의 경지로 이끈 춤」「아무도 비상을 최현만큼 출수 없다는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을수 있다」고 시인이며 무용평론가인 김영태가 쓴적이 있다. 영화·연극 못지않게 그의 음악취미또한 광적이다. 76년 호암 이병철회장의 도움으로 독립문쪽에 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최현무용단을 창단했을때 그의 연구소는 무용연구소라기보다는 마치 음악연구소처럼 사방벽이 온통 오리지널 디스크로 둘러싸여 있었다.그의 오디오 취미는 「마니아」급으로 오디오전문지들은 걸핏하면 드보르자크에서 수재천에 이르는 그의 음악취미·오디오기기들을 탐방취재하고 있다.이 방면에서는 특히 김영태와 의기투합하여 두사람은 충무로에서 용산전자상가를 곧잘 기웃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취미도 “광적” 최현은 마산에서 성장했지만 본래 부산사람이다.본명은 최윤찬,후에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최현이란 예명을 가졌다. 16세때 전국가요경연대회에서 특상한 것을 계기로 「천재소년가수」가 되어 지평선 가극단을 쫓아 마산에 정착,마산의부호이자 한량으로 소문난 김해낭문하에 입문하여 그곳에서 궁중무에서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를 고루 이수했다. 그러나 스승이 초기엔 장작이나 패게하고 집안청소를 하게 할뿐 도무지 춤을 가르쳐주지 않아 그때도 당돌했던 그는 『왜 춤을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스승에게 항의하곤 했다. 『예술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네가 보고 느끼고 깨달아라』그는 머리속에 꽉 찼던 안개가 걷힌 듯 스승의 이 말을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그때부터 춤이 몸속에서 피돌기처럼 돌고 흥이 기운처럼 솟구치기를 기다렸다.스승은 그제서야 그에게 춤 한자락씩을 지도해나갔다. 예술의 겸손을 엄숙하게 익히고도 인격수양이 덜 됐거나 춤을 잘 춘다는 주변의 칭찬에 우쭐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 잊히지 않을 큰 「잘못」을 하나 저지른 적이 있다. 58년 서울 명동 시공관에서 스승 김해랑 안무로 「독무」를 출때였다. 당시 명고수인 지영희씨가 장단,그의 부인인 성금련씨가 가야금을 연주,진양조에서 중머리 중중머리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영희씨가 그만 잦은몰이 장단을 잘못친 것이다. 박자와 호흡,시간조절에 의해 손의 움직임을 감을 수도 펼수도 있는 그로서는 리듬이 맞지않아 크게 당황했고 무대는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물불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지영희씨에게 덤벼들었다. 『무대는 생명입니다.단 한번의 실수도 있어선 안돼요.관객에게 손가락질 받으면 나는 이것으로 끝납니다』 지영희씨는 『최선생 내가 정말 잘못했네.큰 실수였다』고 백배사죄했으나 그로서는 이를 용납할 수 없었다.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망발.당대의 명인이자 대선배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신의 방만함을 후회했다고 탄식한다. 이제 그는 참다운 예술가가 되고 싶다.밖에서 안을 들여다 보고 진지하게 나를 점검하여 「몸짓」하나 「소리」하나에도 자연의 질서가 깃든 지혜와 노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그리고 내 춤속에 관객을 끌어들여 나의 한과 정취와 풍류의 빛,내가 살아온 춤의 굽이굽이를 함께 향유하고 싶다고 말한다. 최현의 많은 이야기중에서 그가 54세때 27세 연하의 신부를 맞아들인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화제중 하나다. ○54세때 27세 신부 맞아 84년 12월,일밖에 모르던 까다로운 성품의 최현이 갑자기 결혼을 발표,더구나 신부는 서울예고를 졸업,그가 지도위원으로 있던 국립무용단 단원이라고 해서 주변의 놀라움은 한층 컸다. 신부인 원필녀씨는 나이보다 깊고 의젓한 성품으로 춤추는 스승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혼자서 그를 사모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두사람의 결혼은 올해로 만 9년.제자로서 스승으로서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결혼초기때의 사랑과 정성과 존경을 변함없이 나누고 있다. 최현씨는 그동안 부인을 한성대와 이대대학원에 다니게 했고 지금은 한성대에 출강.『내가 아프면 밤새 내 머리맡에 앉아 나를 지켜준다』고 자랑한다. 지난해 6월엔 제1회 원필녀개인무용발표회를 주선해 주었다.그리고 그가 사랑해마지않던 그의 춤 「비상」을 부인에게 추게 했다. 그는 88올림픽 폐막식때는 10만군중과 수천명의 출연자들에게 청사초롱 「안녕!」을 추게 하여 방대한 스케일로 각계의 시선을 모았었다.지난해엔 청소년예술제에 「파란풍선」에 이은 「비단안개」를 안무,서울예고 무용단을 이끌고 일본 도쿄 무장야시민문화회관에서 「시집가는날」을 공연,올해는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기금을 받아 그의 개인발표회를 준비중이다.작품은 정철의 「사미인곡」. 차범석극본·최종원음악의 이 작품은 그의 춤 60평생을 정리한 집대성의 일환으로 그의 특기인 「춤에서의 여백의 미」를 유장하게 전승시킨다는 집념을 담고 있다. 그는 아무리 춤을 잘추어도 훈련된 춤,숙련된 춤은 단호하게 부정한다.긴 세월 스스로 깨달아 마음속에서 몸속에서 자연스러운 율동으로 우러나오는 극미(극미)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기를 축적시키면서 이를 어느 한순간 우주의 무한한 공간속에 힘차게 내뿜는다.장삼자락을 낙화로 흩날리며 탄식의 숨결을 하공에 흩뜨려놓듯,그래서 그의 춤의 한끝은 결국 끝없는 비상임을 그는 알고 있다. □연보 ▲1929년12월 부산 영도 출생.최재용씨와 이말념씨의 2남5녀중 장남 ▲1946년 마산으로 이사 ▲1953년 마산상고졸업 ▲1959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 졸업 ▲1988∼1990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예술학과 수학 ▲1946∼1953년 마산 김해랑 무용연구소 입문 전통무용 유형과 기법사사 ▲1953년∼ 오광대일인자 장재봉,민속춤의 김숙자씨등에게 승무·살풀이·태평무·탈춤·기방무 등 이수 ▲1955년 최윤찬무용연구소 개설 ▲1961∼1962년 서울대 음대 무용강사 ▲1965∼1985년 서울예고 강사 ▲1967∼1974년 서울대 사대 체육과강사 ▲1976년 최현 무용단 창단 ▲1980∼1981년 중앙대 예대 무용과 강사 ▲1981∼1985년 서울예전 무용과 주임교수 ▲1982년 최현 무용연구실 개설,한국무용협회이사,한국문화예술단체 총연합회(예총)이사,문공부 문화재 전문위원,국립무용단지도위원,한국무용협 부이사장,대한민국 무용제 심사위원 문예진흥원 지원기금 심사위원역임 (영화)「삼천리의 꽃다발」 「시집가는날」 「춘향전」 「불멸의 성좌」 (무용·안무출연)무용극 「초라니」 「춘향전」 「시집가는날」 「마의태자」 「황진이」국립창극 「심청가」 「강릉매화전」 「광대가」 「변강쇠타령」 「시집가는날」 「대춘향전」 「허생전」 「심청」 「서동가」 「이춘풍전」 「놀부전」 「소태산」 「아리랑」 ▲1970년 일본 EXPO70 한국의날 안무·출연 ▲1971년 국립무용단 유럽지역 10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5년 국립무용단 일본 10개도시 순회공연 안무·출연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예술제 「녹」 「비상」안무·출연 ▲1980년 국립무용단 동남아 9개국 순회공연 안무·출연 ▲1982년 시립무용단 「한국 명무전」에 「비상」출연 ▲1985년 호암아트홀 개관 초청공연 「헌화가」안무·출연 ▲1987년 88서울예술단 창단공연 「새불」구성·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안무총괄 「안녕」 ▲1990년 국제문화협 주최 일본 지역 공연 창극 「심청전」안무 ▲〃 동아일보창간70주년기념 모스크바지역등 5개국 순회공연 창극 「아리랑」안무·출연 ▲1991년 국립극장주최 청소년예술제 「파란풍선」안무 ▲1992년 국립극장주최 「비단 안개」안무 ▲〃 서울시립무용단 무용극 「춘향전」객원안무 ▲현재 문화부 문화재 보호협회 「한국의집」예술총감독,서울예고 무용과장 서울올림픽 안무총괄 공로 대통령 표창
  • 한국 도자기사 흐름 한눈에

    ◎호암미술관,20일부터 「분청사기 명품전」 마련/보물급포함 2백점 소개… 제작과정도 재현 호암미술관이 한국도자사의 흐름을 심층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전시의 하나로 「분청사기 명품전」을 마련한다.호암미술관 소장의 보물급등 2백여점을 엄선하여 소개하는 이 특별전은 오는 20일부터 3월30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펼쳐진다. 분청사기를 폭넓게 감상할 수 있는 이 전시는 국내에서 고미술품 소장에 첫 손꼽히는 호암미술관이 방대한 도자사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이루어졌다.특히 이번 전시회는 분청사기의 독특한 위치를 정립시킴과 동시에 분청사기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고조시킨다는 의미를 지닌다. 전시는 분청사기 실물에 작품해석과 시대적 배경을 밝히는 설명문이 제시되고 전시장 한켠에 20여평의 전통 분청사기 작업실을 재현,도공이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모습 전과정을 보이는 것으로 꾸며진다.출품되는 분청사기는 보물로 지정된 분청사기철서어문호(787호),분청사기조화수조문변병(1069호),분청사기조화박지목단문장군(1070호)를 비롯,15∼16세기의 명품이 대거 망라된다.이들 옆에서 실연되는 분청사기 제작모습은 백암도예의 마순관도공에 의해 물레질부터 문양그리는 작업까지 전과정을 실연하는 동시에 관람자들도 직접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첼리스트 전봉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1)

    ◎절교의 기량… 무대연륜 50년의 “악장”/「첼로의 선봉」답게 작품특성 능란하게 표현/음악에 대한 사명감으로 모든 활동 적극적/국내초연작품 즐겨 연주… 청중에 싱싱한 감동 전달 바다밑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깊고깊은 암청색 선율,원로연주가 전봉초씨의 첼로언어는 날이 갈수록 그 깊은 맛을 더해 그가 켜는 베토벤은 명철의 사색처럼 심오하고 그윽하다. 작품이 지닌 특성과 표정을 능란하게 구사하며 단순한 곡 해석만이 아닌 「낙장」의 대우로 존경받는 위치다. 무대에 선지 50년.일본 동경제국음악학교 시절 요미우리(독매신문)가 주최한 전일본 신인 선발연주회에 학교대표로 참가한 것을 첫무대로 그는 지금까지 독주회 20회,서울실내악회·실험악회·서울트리오와 그가 창단해서 이끌던 바크 합주단등 실내악연주 1백회이상,시향·KBS교향악단 협연 해외연주 등등 생생한 음악의 발자취가 산적해 있다. 돌아보면 스포트라이트에 점철된 세월,수천관중과 뜨거운 박수갈채와 꽃다발 속에서 슬픔이나 좌초없이 그는 순조로운 항로를 거쳤고 그래서 그의 인생과 예술은 탄탄한 금자탑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순조로운 예술항로 그는 음악의 연륜만큼이나 무대를 알고 청중을 안다. 악기를 얼싸안고 무대에 서는 순간 객석의 분위기로 심상을 꿰뚫어 청중의 정곡을 이미 움직인다. 그가 연주에 임하는 자세는 마치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문학청년과도 같은 미세한 열기가 느껴진다.그러나 그 정열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닌 안으로 감춘 진주빛 화염,진지하고 결곡하게 테마의 핵심에 파고든다. 얼핏 보기엔 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철학성을 내보인 듯 하지만 그의 언어는 얼마든지 풍성하여 불꽃같은 테크닉이 숨막히게 전개된다.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애틋한 애정이 전편에 넘쳐 그의 연주는 언제나 젊고 싱싱한 감동을 던져준다. 그는 또 첼로의 선봉답게 한국초연의 레퍼토리를 즐겨 선택한다. 61년 당시로선 획기적인 「현대음악의 밤」을 열어 힌데미트·드뷔시·베버 첼로소나타를 초연했고 65년엔 베토벤만을,그 다음엔 랄로와 생상스,10년전 독주회에서도 데르블로아「조곡2번」,바하 「아리오소」,포레 「비가」등 짧으나 까다로운 곡으로 「첼로만이 갖는 절교의 표현력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노래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바이올린 박민종,피아노 정진우,첼로 전봉초등 서울대교수들로 이루어진 서울트리오는 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초연곡을 정기연주하면서 한때는 하이페츠와 루빈스타인,피아티고르스키의 「백만불트리오」에 비유되는 황금기를 누렸고 조로가 심한 편인 음악계에 노익장 과시로 후배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는 어떤 시점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음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자신의 위치에 합당한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고 할 수 있다 . 87년 일본 교토회관 독주회이후 만5년만인 오는 4월29일(호암아트홀)음악생활 50주년을 기념하는 제21회 독주회를 앞둔 노대가의 심경은 요즘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43년 일본데뷔 이후 올해가 꼭 50년이 된다고 해서 후배·제자들이 마련해준 자리다. 그로서는 인생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어쩌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그래서는 아니지만 이번 연주는 여러가지 점에서 뜻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다.그는 연주때마다 앓던 심한 열병이 이번에는 전처럼 행복한 것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연주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갈고 닦은 음악인들의 종교의식」이며 그의 연주는 신에 대한 고백성사,청중은 그의 고백을 듣는 사제의 입장이고 그는 『솔직하고 진실하게 고통과 고뇌와 슬픔과 갈등을 샅샅이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이번 고백성사는 어느때보다 숙연하리라는 예감이다. ○중3때 첼로 첫 연주 전봉초씨는 평남 안주에서 커다란 잡화상을 하던 전리순씨와 이해원여사의 아들 4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집안은 풍족한 환경으로 그는 맹산 북창국민교시절 형(전화황씨)의 친구이던 김동진씨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숭실중 2학년때 평양방송국 개국기념 프로에나가 마스네의 「타이즈의 명상곡」을 연주했고 3학년되던해 첼리스트 김태연씨의 첼로연주회에 갔다가 「첼로의 남성적인 깊은 소리」와 「혼의 선을 켜는 듯한 음색」에 빠져 첼로로 바꿨다.그당시 상황에선 음악을 마음껏 공부하기란 쉽지않았으나 일본화단의 거봉인 큰형 전화황씨의 도움과 격려로 그는 일본에 유학할 수 있었다. 유학시절은 찬란하고 화려했다.같은 유학생인 박민종 정희석 윤기선씨등과 한국인만의 4중주단을 조직,영친왕 저택에 드나들며 연주를 한적도 있고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NHK교향악단 전신인 일본교향악단 도쿄송죽관현악단 수석주자로 활약,스승인 오무라(대촌묘칠)교수의 도움으로 강제 학병징집을 피해 만주 신경교향악단으로 건너갔다가 해방후 월남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음악과 관련되지 않는 생활은 찾아볼 수 없다.지금도 1년 3백65일중 그는 2백일쯤은 음악회에 들른다.크고작은 음악회 모두는 그의 동료·후배·제자들의 행사이기 때문에 그는 이를 빼놓지 않는다. 또 친구들을 좋아해서 여러모임을 가지고 있고 어떤자리에서나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예술원 회원중 술마시는 사람끼리의 수요회,또 첼리스트중 60세이상인 첼로동문회 OMC(Old Musician Club)등은 한달에 한번씩모이는 친목 모임들이다. 그는 검은 베레모에 벨트를 맨 더블보턴의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영국신사」지만 그래서 사교적이고 활동적이고 실천적이나 불의를 참지못하는 까다로운 성격탓에 「면도날」이란 별명을 듣고 있다. ○사교적·활동적 성품 79년 서울대음대학장시절 문교부가 예체능계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예능계 대학교수들이 개인레슨을 함으로써 부조리를 빚고 있는 점」을 지적,「개인레슨 엄단」을 발표하자 같은해 「음락세계」4월호에 「음악의 조기교육에는 실력있고 경험이 풍부한 대학교수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예능계 대입공동관리제 실시에 앞서 문교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는가」를 조목조목 물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연주가이자 대학교수·음협이사장·예총회장을 두루 거쳤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첼로로 활약하는 1백여명의 직계제자,훌륭하게 키운 그의 3남2녀중 장남(성일씨)콘트라베이스 차남(성환씨)바리톤·효성여대교수,장녀(미영씨)피아니스트·교원대교수 차녀(소영씨)첼리스트,그리고 3남(시문씨)만이 공대졸업후 금성연구소에 근무하는등 안팎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인생을 승리한 것도 성취한 것도 아니며 때로 심한 비바람에 시달렸어도 음악의 열정 때문에 그것이 비바람인줄 짐작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기전 82년 낙단4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적도 있다. 『나이를 먹으니까 공수래 공수거,세상사 여부운,이른바 「모든 고통을 낫게하는 감미로운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오로지 첼로에 전념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고싶다』고. 그리고 두주일전인 지난 12월,그는 사랑하는 장남을 그의 눈앞에서 여의었다.시카고에서 콘트라베이스로 활약하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한동안 망연자실,슬픔을 감추려할수록 그의 눈가에 통한이 서려 보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인생이란 왔다가 가는 것.그가 나보다 먼저 갔을 뿐」 담담히 체념하면서도 떨리는 가슴을 주체치 못하여 그의 억양에는 처연한 오열이 실려있다.한 아들의 아버지이기 전에 예술가의 의연함과 긍지로 이를 이겨내려 애쓰지만 그의 그런 허탈감은 부모로서의 아픔일수밖에 없다. 우리 음악사에서 첼로선봉으로 커다란 획을 긋는 노대가의 이번 연주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연주일수도 있다.이번 연주에서 그는 평생동안 사랑해마지 않던 베토벤의 다섯개의 첼로 소나타와 바흐 무반주의 첼로조곡,바르토크의 루마니아 포크댄스를 암보로 들려준다. 아들의 영혼을 가슴에 묻은 첼로의 선율은 좀더 짙은 암청색을 띤채 비감을 정제시킨 관조의 경지를 보일수도 있다.그리고 첼로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대화는 부자간의 사연인양 그날의 객석에 장탄식으로 여울질지도 모른다. □연보 ▲1919년3월18일 평남 안주에서 출생 ▲39년 평양 숭실중 졸업후 도일 ▲43년 일본 동경제국음락학교 졸업(Violin이인호,김동진,Cello김태연·대촌묘칠사사)재학중 일본교향락단 동경 송죽관현락단단원 ▲43∼45년 만주 신경교향락단단원(각부 수석진자로 구성된 현악4중주단 활동) ▲45년 지방순회연주중 북안에서 해방맞아 다음해 월남 ▲46년 고려교향락단 단원▲47년 서울교향락단 수석주자(서울실내악협회 창단 멤버) ▲48년 배재강단에서 제1회 첼로독주회이후 20회 ▲50∼53년 부산 피란지에서 실험락회 연주 20회 ▲52년 현제명씨 권유로 서울대 예술대 음락부 전임강사 ▲53년 서울트리오(첼로 전봉초 피아노 정진우 바이올린 박민종)창단 ▲54년 서울대 음대 학생담당 학장보 ▲58년 대한민국 문화사절단 일원으로 동남아 6개국 순회연주 ▲60년 제8차 IMC(국제음악회의)총회 한국대표로 파리UNESCO회의참석(동양에 있어서의 서양음악 주제발표) ▲65년 서울 바로크합주단창단(제21회정기연주후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에게 바통넘김) ▲67년 음악연주 25주년기념 KBS교향악단과 첼로협주곡 협연 ▲72년 서울대 4중주단 창단 ▲76∼79년 서울대 음대학장(재임시 동양음악연구소 창설) ▲79년 전봉초 교수 화갑기념 첼로오케스트라 연주회(국립극장대극장)지휘 ▲82년 낙단생활 40주년기념 전봉초첼로독주회 ▲84∼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 집행위원 ▲85∼88년 제13∼14대 한국음락협회 이사장 ▲85년 제21차IMC총회 한국대표(동독 드레스덴 기조연설) ▲87년 일본 교토 일한친선협회초청 첼로독주회(교토회관),제22차 IMC총회 한국대표(브라질) ▲88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회장 ▲91년 사단법인 아세아청소년 교향악단 한국지부장 ▲현재:사단법인 코리안심포니 이사장,사단법인 국제음락애호가협회 한국본부이사장,재단법인 안익태기념사업회 재단이사장,전쟁기념 사업회이사장,예술원 회원,이복련여사와 3남2녀. 5월 문예상 본상,대한민국예술원상,금관문화훈장,국민훈장동백장 음락의 주변,농현50년 낙수
  • 삼성/사내 TV방송 연내 전사업장 확대

    ◎기은,대리급이하직원 출근시차제 실시 ○56개 대형점포 대상 ▼중소기업은행이 본점과 전국 56개 대형점포의 대리급 이하 직원들을 대상으로 출퇴근 시각을 달리하는 출근시차제를 실시하고 있다.일률적으로 상오 9시30분인 출근시각을 점포장이 업무별로 상오 8시30분부터 11시30분 사이로 조정해서 운영한다.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고객의 불편을 덜 수 있고 직원들의 사기진작에도 큰 보탬이 된다는게 은행측의 설명이다. ○서광,심벌마크 바꿔 ▼의류 수출 및 내수패션 전문업체인 주식회사 서광(회장 장익룡)이 최근 새로운 로고와 심벌마크를 제정,자회사인 주식회사 주리아와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새 심벌마크는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을 형상화한 것이다.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두개의 동그라미는 자연과 인류와의 조화 및 미래를 지향하는 진취성을 상징한다. ▼두산그룹은 새해부터 그룹비전,경영이념,사원정신으로 구분한 새로운 내용의 경영지표를 설정하는 한편 창립 1백주년(96년)이 다가옴에 따라 「전통 1백년,도전 1백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의지를 다지기로 했다. 새로 마련한 그룹비전은 「21세기를 이끌어 가는 초일류 기업­첨단화·일류화·세계화」로,또 경영이념은 「고객은 우리의 스승이고,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며,혁신은 우리의 생활이고,인재는 우리의 보배이다」로 각각 정했다.사원정신은 「전문가적 자세(Professional),열정적인 자세(Passionate),긍정적인 자세(Positive),긍지(Pride)」로 정했다. ○시무식실황을 방영 ▼삼성그룹이 서울의 실황을 사내 방송망으로 서울과 수원 등 수도권 지역 사업장에 동시 방영하는 방식으로 3만여명의 임직원이 동참하는 시무식을 가졌다.지난 4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시무식에는 이건희회장을 비롯한 회장단·사장단과 서울지역 임원 및 간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는데,이 실황이 삼성본관과 삼성생명 빌딩에 입주한 10개 계열사,수원 등 경기지역 2개 사업장에 동시 방영됐다. 이번의 시무식 동시방영은 첨단경쟁을 실천한다는 취지로 시도된 것이다.삼성은 사내 유선TV방송 실시지역을 금년말까지전국 86개 사업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자송수신망 구축 ▼포항제철은 컴퓨터 통신에 의한 문서 송수신 체계를 운용,경비절감 및 사무생산성 향상을 꾀하고 있다.지난 90년 문서송수신용 소프트웨어를 자체개발해서 포항 본사와 광양제철소·서울사무소를 각각 연결한 포철은 지난해 상반기중 23개 자회사와 19개 협력회사에 전자메일 시스템을 연결함으로써 국내 문서 송수신 시스템을 구축한데 이어 최근 해외사무소와 자회사를 잇는 시스템을 개통함으로써 국내외의 정보 및 영업거점을 잇는 송수신망을 갖추게 됐다. ○「올해의 승용차」 뽑혀 ▼현대자동차의 엘란트라가 캐나다 TSN(The Sports Network)TV로부터 「올해의 자동차」로 뽑혔다.마지막 결선에서 일본 도요타의 코롤라와 독일 폴크스바겐의 골프승용차를 물리쳤다.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지난 TSN TV는 시판중인 승용차를 등급별로 나누어 가격과 성능,안정도,품질 등을 종합평가해 매년 「올해의 승용차」를 선정,소비자의 선택을 도와주고 있다.현대자동차측은 엘란트라가 호주에서도 중소형차 부문에서 최우수승용차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 요금 15% 싸고 다이얼링 간편/새 국제전화망 10일 개통

    ◎구내전화번호체계 기업서 설계 이용/국가번호 불필요… 호출접속시간 단축 기존의 국제전화요금에 비해 7∼15%정도 싼 요금할인혜택을 받을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자동통화(IDD)보다 다이얼링을 간단하게 해 구내전화처럼 편리하게 이용할수 있는 국제가상사설망(KT­IVPN)국제전화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실시된다. 5일 한국통신에 따르면 국제전화를 다량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독자적인 전용망구축이 어려운 기업이나 특정지점간 통화량이 국제전용망구성에는 무리가 따르는 기업에 대해 국제전화직접접속서비스(KT­익스프레스)및 일반 공중망(PSTN),국제관문교환기의 지능망등을 활용해 공중전화망을 사설전용망처럼 이용할수 있도록 한 국제가상사설망 구축을 완료함으로써 오는 10일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국제가상사설망서비스는 한국통신이 지난해 9월부터 제공하고 있는 KT­익스프레스서비스및 국제관문교환국의 지능망시설 등에 연결,특수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지능망서비스이다. 이 서비스는 ▲가입해 이용하면 국제전화요금을 7∼15%의할인혜택 ▲기업에서 사용하는 구내전화번호체계를 기업이 설계,이용할수 있어 호출접속시간 단축및 번호암기 편리 ▲지정시간·특정요일·통화중및 무응답시 예약된 전화로 접속가능 ▲이용자에게 개인식별(ID)번호를 부여하면 전국 어느 곳에서도 통화가능 ▲통화료내역및 통화량정보 등을 제공 ▲국제식별번호·국가번호·지역번호 등이 필요없이 가입신청때 요구해 부여받은 가입자번호만으로 국제전화를 할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용대상은 외국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는 제조업체및 외국의 여행사·항공사·호텔 등과 공동판촉을 실시하는 서비스업체,해외에 지점이나 지사를 두고 있는 은행및 대기업,외국의 수출입업체와 국제통화가 많은 무역업체,우리나라 주재 대형 외국계 기업 등이며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업은 국제전화안내서비스(0074),국제수동통화서비스·국제통화통역서비스·국제신용카드통화서비스(0077)·국제클로바서비스 등의 국제전화서비스도 함께 이용할수 있다. 이용요금은 계약금및 등록비용 1만원,기본요금 월5만원등이다.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기림사 삼존불 개금불사/설판·동참제자 모연,94년 거행

    경북 경주군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의 대한불교조계종 기림사(주지 법일) 대적광전에 모셔져 있는 보물9백58호 비로자나 삼존불의 개금불사가 거행된다. 기림사는 광유성인이 임정사를 창건,오백제자를 교화했다는 성지로 선덕여왕12년(644년)에 부처님의 시현으로 절을 확장하고 사명을 개칭,오늘에 이르고 있다.이 절의 대적광전에는 삼존불을 모셨으며 동쪽에는 약사여래를 모시어 일체중생을 병에서 구함은 물론 관음전과 삼천불을 봉안하고 있다.이 삼존불은 부처님 진용을 그대로 현신한 신묘한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법일스님은 『이같이 귀중한 불상이 좀이 슬어 도금이 벗겨진채로 있어 부처님 모시는 입장에서 송구스럽기가 그지없어 개금불사를 감행키로 했다』고 밝혔다.이 개금불사는 앞으로 2년간 설판및 동참제자를 모연하고 복장성물도 모집한뒤 94년 시작할 예정이다.(05 61)44­2269
  • 호암갤러리,내일부터 「1992 한국회화전」

    ◎한국미술의 현주소 재조명/평론가 오광수씨,정예작가 27명 선정/신진 원로,동·서양화 망라… 신선한 충격 한국회화의 현대성은 어떻게 규정지을수 있으며 국제적 보편성은 또 얼마만큼 획득하고 있는가.이 물음에 해답을 던져주는 호암갤러리 주최 「1992,현대한국회화전」이 「선묘와 표현」이란 주제로 15일부터 새해 1월7일까지 이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보다 냉정한 시각에서 객관적인 우리미술의 현위치를 점검해 본다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씨가 1인 커미셔너로 나서 동서양화단의 정예작가 27명을 선정한 작품을 전시한다. 80대초에서 20대후반까지 내려오는 대단한 진폭의 연령층으로 구성된 초대작가들은 1백호에서 1천호사이의 대작을 출품했다.작품선정 또한 오씨가 전국의 작가 작업실을 방문해 작가와의 협의아래 작품을 골라냈다는데서 더욱 뜻이 깊다. 작가면면을 보면 먼저 서체적 충동을 강하게 검증할 수 있는 작가로 김기창 석란희 이강소 윤명로 김호득 박승규 한명호 사석원 오수환 문봉선 김춘수 이철양 유휴렬 이지선 석철주등을 들수 있다.반면 선묘의 구성적 측면에서 검증의 대상이 되는 작가로 박서보 심현희 백순실 허진 이희중 송수남등이 꼽힌다.또한 구조적 측면에서 유재구 정탁영 박영하 이왈종 한영엽등의 작가를 검증대상으로 선택했다. 오광수씨는 『기성의 유명작가와 이제 막 등단한 신인이 한 자리에 초대된 이 자리는 우리 미술속에 도사리고 있는 권위주의적 관념을 불식한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 원전 위험도 확률 평가제/국내 도입 적용 활발

    ◎한·일 워크숍서 고리 3·4호기 작업 결과발표/정전 등 5가지가 노심손상 가능성/내년 2­3월 안전성 수치로 객관화/“현재 여광·울진·월성 등 7곳도 평가중” 원자력발전소는 얼마나 안전할까.사고발생의 위험이 있다면 어느 부분이 가장 취약할까. 이런 질문에 「정량적」인 대답을 주기위해 생겨난 것이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PSA)이다. 79년 미국 드리마일 아일랜드(TMI)원전사고후 필요성이 부쩍 제기되고 있는 이 평가기법이 국내에도 도입돼 원전안전성 제고에 일조를 할것으로 전망된다. 2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한일 PSA 워크숍에서는 고리 3,4호기에 대해 수행된 국내최초의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모았다. 이 발표는 한전기술연구원 원자력연구실 홍승렬박사팀이 지난 89년부터 3년동안 수행한 고리 3,4호기 PSA 작업의 예비결과로 사고확률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사고발생에 기여할수 있는 취약부분과 이에대한 대응책이 구체적으로 지적됐다. 이에 따르면 고리 3,4호기원전에서 노심의 손상빈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줄수있는 위험인자는 ▲발전소정전사고 ▲내부화재 ▲지진사고 ▲태풍 ▲1차 냉각수 상실사고(소형) ▲내부 홍수등인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고리 3·4호기의 안전성보강대책으로 ▲비상디젤발전기를 1개 더 추가할것 ▲화재발생시 소화대책으로 스타트업 펌프사용 절차를 수립할것 ▲태풍사고에 대비,송전탑보강을 완료할것 ▲내부 홍수에 대한 대책으로 펌프의 운전방법을 개선할 것등을 제안했다. 「확률론적 안전성 평가」의 결론은 객관적인 수치로 제시된다.TMI사고 다음해인 1980년부터 모든 원전에 대해 PSA결과를 요구하고 있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원전의 위험도는 화력등 다른 발전설비 위험도의 1천분의1 이하여야 한다고 안전목표를 못박고 있다. 고리 3·4호기에 대한 위험도 산출결과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감수등 최종집계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와관련,홍박사는 『현재까지 집계된 고리 3·4호기의 노심손상 빈도는 같은 웨스팅하우스사가 건설한 외국의 다른 발전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최종 작업이 완료되는 93년 2∼3월이면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MI사고의 발생경위를 사고발생 4년전에 정확히 예측,효용을 인정받은 PSA는 고리 3·4호기에 이어 영광 3·4호기,울진3·4호기,월성2·3·4호기에 대해서도 수행중이며 가장 오래된 발전소인 고리 1·2호기에 대해서도 한전의 자체수행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자로 안전평가실장 박창규박사는 『PSA는 일반인들에게 원전의 안전상태를 가장 객관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 될뿐 아니라 취약한 계통이 무엇인가를 찾아내 원전의 신뢰도를 더한층 높일수 있는 안전성 확보기술』이라며 향후 건설되는 모든 원전에 대한 PSA실시 의무화를 제안했다.
  • 연극이 좋아 만난 사람모임/아마극단들 연말무대꾸미기 한창

    ◎경기고출신 화동연우회·직장인 연합극단 등 이색 기획/화동연후회,연출·의상·음향 동문담당/침체 기성극단에 신선한 자극제 역할 한해를 마감하는 12월 연극계는 아마추어극단들의 땀이 밴 이색공연으로 훈기를 피운다.어려운 제작여건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뭉친 이들 단체의 공연은 프로다운 면모를 잃어가고 있는 기성 극단들에 좋은 자극이 될 전망.또 「연극의 대중화」에도 한몫 할 것으로 기대됐다. 경기고 연극반 출신들이 모여 만든 화동연우회(대표 이낙훈)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오는 11일부터 18일까지 강남의 계몽아트홀(559­5560)에서 두번째 공연을 갖는다.공연작품은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추리극 「열개의 인디안 인형」.실험극장 대표인 김동훈씨가 연출을 맡은 이번 작품공연에는 한진희 정한용 이근희 김승환등이 출연한다.번역에서부터 연출,조명,무대,의상,음향등 모두를 고교 동문들이 담당했다.내년에는 밴드반과 미술반이 가세,「경기예술제」도 마련할 계획이다.극중 여자배역에는 유혜리 성병숙씨등이 우정출연한다. 직장인 극단인 극단무리와 극단 연과 얼레도 연합공연형식을 빌려 조지 오웰 원작의 「동물농장」을 11일부터 20일까지 예술극장 한마당(743­12 66)무대에 올린다.철저한 아마추어리즘을 내세우며 그간 독자적인 공연을 해온 직장인 극단들은 이번 연합공연결과에 따라 내년부터는 더 많은 직장인 극단들이 참가하는 「직장인 극단 연합 가을연극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성우협회(회장 유강진)와 한국연극배우협회도 각각 새 작품을 무대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우리나라 방송과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는 한국성우협회는 방송뿐 아니라 영화·연극등 주변 공연장르에도 진출,확고한 위치를 개척한 단체.협회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공연은 오는 4일부터 9일까지 호암아트홀(751­5555)에서 갖는다.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 원작「레미제라블」을 올리는 이번 공연의 연출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연출가로도 활동중인 주호성씨가 맡았다.올바른 화술과 정통연극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는 대단한 열의로 막바지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홍계일 조명남 배한성 김성원 김성겸 이경자씨등이 출연하며 탤런트 이상아양이 코제트역으로 찬조출연한다. 올 상반기에 「신장한몽」을 공연했던 한국연극배우협회는 연극신문 창간기념공연을 오는 10일부터 15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765­6691)에서 갖는다.한국연극배우협회가 후원하는 형식으로 마련된 이번 무대는 스라워미르 므르체크원작의 부조리극 「탱고」.정현씨가 연출하고 이주실 최윤영 김옥만 김종칠 윤정원등이 출연한다. 이 작품은 자유라는 미명아래 방탕하고 무기력한 생활을 하는 가족들에 환멸을 느낀 아들이 권총의 위력으로 집안의 주도권을 쥐는 것으로 시작된다.외형상 집안 분위기가 쇄신되지만 결국 지식인 특유의 나약함과 약혼녀의 배신등으로 아들은 이성을 잃는다.아들은 집안의 주도권을 잡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정부가 쏜 권총에 맞아 뜻밖의 죽음을 당한다.아들의 죽음에 제대로 항변도 못하는 가족들은 정부의 위세에 굴복,예전의 무기력한 생활로 되돌아간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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