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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전시회]

    [국악] ●그림2007 콘서트 21일까지 토 오후 7시30분·일 오후 3시 대학로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 극장. 창작 국악그룹 ‘그림(The 林)’이 새롭게 편곡한 민요 몽금포타령, 군밤타령 및 베트남 연주자와의 협연을 선보인다.2만원.(02)762-9190. ●리얼 코리안 웨이브, 영혼의 춤, 태고의 소리-舞打 27일 오후 6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 오은희 서울예대 교수 등이 새로운 한류를 일구고자 살풀이춤, 승무, 퓨전삼고무, 풍물판굿 등을 공연한다.11월5일에는 오사카에서도 같은 공연이 펼쳐진다.3만원.(02)742-3797. [음악] ●생 마르크 합창단 내한공연 27일 오후 5시 고양 어울림누리, 11월2∼4일 평일 오후 8시, 주말 5시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영화 ‘코러스’의 주역으로 프랑스의 10∼15살 청소년으로 구성됐다. 지난해 첫 내한공연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3만∼7만원.(02)1544-5955.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의 희망콘서트 28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B형 간염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한 콘서트로 올해로 8회를 맞았다. 각각 서거 100주년과 50주년을 맞은 북유럽의 그리그와 시벨리우스의 서정적 음악을 선보인다.2만∼7만원.(02)720-3933. [뮤지컬] ●미스터 마우스 20일∼12월31일 사다리아트센터 네모극장. 이현규 연출. 천재가 될 기회를 얻게 된 IQ 68의 중국집 아르바이트생 서인후. 서른 둘에 얻은 지능이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줄까.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7시, 일·공휴일 오후 3·6시.3만 5000원.(02)747-2070. ●빙고 19일∼12월 31일 코엑스 아트홀. 이종오 연출. 악천후에도 야간 빙고 게임을 즐기는 유쾌한 3인방, 그녀들에게 낯선 여자가 찾아온다.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7시, 일·공휴일 오후 3·6시.5만원.(02)512- 7929. [연극] ●몽연 26일∼12월30일까지. 소극장 모시는 사람들. 권호성 연출. 김지영 출연. 매일 밤 꿈속에서 죽은 남편을 찾아 헤매는 아내 유인우,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화∼목 오후 8시, 금 오후 4·8시, 토·일·공휴일 오후 3·6시.2만 5000원.(02)741-3581∼3. ●닥터 이라부 2008년 1월13일까지 대학로 상상화이트 소극장. 김동연 작·연출.‘비호감’의사 이라부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오는 각인각색의 환자들이 배꼽을 노린다.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30분·7시 30분, 일·공휴일 오후 3시30분·6시30분.2만∼2만 5000원.(02)744-7304. [무용] ●제57회 ‘한국의 명인명무전’25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예악당. 성경숙 태평무, 오철주 승무, 정주미 진쇠춤 등 원로·중진 한국무용가의 전통춤.(02)2278-5452. ●안애순 무용단 ‘3 Tenses’ 30·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세 명의 무용수가 과거·현재·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들을 각각 춤으로 풀어낸 신작. 안애순 안무.(02)522-5476. ●현대무용단 탐 ‘비밀의 변주’ 30·31일 오후 7시30분 서강대 메리홀. 제27회 정기공연 겸 가을신작 무대. 예술감독 조은미 안무.(02)3277-2584. ●재불무용가 김희진 ‘동반’ 11월4일 오후 6시,5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 중년 남자의 고독을 통해 현실감 부재를 드러내는 ‘로항의 집’등 3부작.(02)2263-4680. ●이경옥 무용단 ‘눈물’ 11월4일 오후 4시·7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연산군과 장녹수, 광대 공길의 이야기.(02)2263-4680.
  • 女心 흔드는 그의 멜로디

    女心 흔드는 그의 멜로디

    매력적인 외모와 빼어난 연주실력으로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 피아니스트들의 공연이 줄을 잇고 있다. 뉴욕에 거주하는 임동민(27)은 동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슬로박 필하모닉과 협연무대를 갖는다.11월1일 오후 8시,3일 오후 2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005년 동생 임동혁(23)과 함께 쇼팽 콩쿠르에서 2위 없는 공동 3위를 차지한 임동민은 올 3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인기를 과시했다. 동생에 비해 ‘투명하고 선명한 사운드’‘학구적인 스타일의 피아니스트’란 평가를 받는 임동민과 협연하는 슬로박 필하모닉은 이번이 첫 내한 공연이다. 슬로박 필하모닉의 지휘는 레오스 스바로프스키가 맡고 있다.3만∼12만원.(02)599-5743.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강한 인상을 심어준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전국 12개 도시 순회공연에 나선다.28일 오후 5시 충무아트홀 공연을 시작으로 광주, 대전, 수원, 창원, 대구, 울산, 전주, 성남, 고양, 부산을 차례대로 돌 예정이다. 장장 2개월 동안 1만 6000여명의 관객에게 서정적인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러시아 음악 특유의 열정을 자랑하는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을 선사한다. 지난 5월 일본 도쿄에서 독집 발매 기념 연주회를 연 김정원은 일본의 인기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주인공과 견줄 만하다는 현지 언론의 평을 받았다. 그가 영화에서 연주한 곡과 ‘노다메’의 남자 주인공이 연주한 곡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같았던 것.3만 3000∼7만 7000원.(02)2658-3546. 클래식과 대중을 잇는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강충모의 ‘인투 더 클래식’ 시리즈는 올해로 네 번째를 맞았다.29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에서 공연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강충모는 이번 공연에서 하이든, 스크리아빈, 바인, 쇼팽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공연에 앞서 19일 오후 7시30분 모차르트홀에서 강 교수가 직접 음악에 대해 설명하는 강연도 마련된다.2만∼4만원.(02)3436-5222. 폴란드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표트르 안데르셰프스키는 30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에서 바흐의 영국모음곡과 슈만의 유모레스크, 시마노프스키의 마스크를 연주한다.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유명한 안데르셰프스키는 1990년 리즈 콩쿠르에서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연주 도중 퇴장해버려 화제를 모으기도 한 인물이다.3만∼5만원.(02)751-9607.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난타 10년 ‘신나는 성적표’

    총매출 700억원, 공연 횟수 9957회, 관객 346만 2735명.10일 열번째 생일을 맞은 논버벌(non-verbal) 퍼포먼스 ‘난타’의 빛나는 성적표다. ‘난타’는 사물놀이 가락에 주방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코미디로 풀어낸 비(非)언어극.1997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첫선을 보인 뒤 1999년 한국 공연물로는 처음으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다.2003년에는 아시아 공연물 최초로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공연을 본 해외관객만 114만명.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과 홍콩 배우 장궈룽(張國榮)도 ‘난타’의 관객이었다. 제작사인 PMC프로덕션 송승환 대표는 이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10주년 기념행사에서 “ ‘난타’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면서 “지난 10년 동안 ‘난타’ 덕분에 큰 희열을 맛봤다.”고 감회에 젖었다. ‘난타’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기획단계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한 점을 들 수 있다. 비언어극이라 외국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우리 고유의 리듬으로 신명과 한국적 색채를 더한 것 또한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이제 ‘난타’는 대표적인 한류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여세를 몰아 7일(현지시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린 코믹 무술극 ‘점프’도 한국 문화상품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송 대표는 비보이 공연 등 최근 양산되고 있는 논버벌 퍼포먼스와 관련,“한국적인 소재를 보다 고급화할 수 있는 기획력과 세계시장에 통하는 보편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난타’의 해외시장 진출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내년 3월 이스라엘 공연을 비롯, 중국 20개 도시 순회공연과 미국 공연도 예정돼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광화문 복원 진두지휘 신응수 대목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광화문 복원 진두지휘 신응수 대목장

    ‘어라, 광화문이 사라졌네!’‘그럼, 언제 다시 나타나지?’ 서울 도심의 한복판, 세종로에 왔다가 광화문이 없어진 것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지날 때면 저절로 고개를 돌려 깜쪽같이 사라진 광화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한번쯤 해봤을 터이다. 지난 9월28일자 서울신문에는 훈훈한 기사가 단독보도돼 눈길을 끌었다. 광화문 복원을 총지휘할 도편수 자리를 놓고 벌이던 전통 건축분야의 양대 산맥의 한판 승부에 대한 내용이다. 형님뻘인 전흥수(70) 대목장이 신응수(66) 대목장에게 도편수 자리를 아름답게 양보했다는 것이다. 전 대목장은 추석 연휴 직전에 신 대목장과 만나 “우리끼리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냐.”면서 물러서겠다는 뜻을 알렸다. 신 대목장은 전 대목장의 어려운 결정에 고마움을 표시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전 대목장은 “그 사람(신 대목장)이라면 광화문 복원을 제대로 해낼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로써 광화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목수 우두머리) 자리는 신 대목장이 맡게 됐다. ●18년간 경복궁 복원사업 이끌어 신 대목장은 199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지금까지 18년동안 경복궁 복원사업을 대부분 진두지휘해 왔다. 또한 앞으로 2년동안 광화문 복원까지 맡게 됐으니 천년궁궐 재현의 대역사는 사실상 그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 경복궁 함화당 복원공사 현장에서 신 대목장을 만났다. 명함을 내밀었더니 돌아온 명함이 특이하다. 근정전 사진 위에 ‘성재(誠齋) 申鷹秀’라고 적혀 있었다. 하늘을 나는 매응(鷹)? 의아해 하자 “향나무 숲에서 매가 날아오르는 어머님 태몽 때문에 매응자로 했고 성재는 경복궁 복원사업 초창기때 한 서예가 선생이 집을 정성스레 잘 지으라며 지어준 호”라고 설명했다. 먼저 전 대목장과 만남에 대한 얘기를 슬쩍 꺼냈더니 “그 분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다.(전 대목장은)기능인들이 화합이 잘 안되는데 그러면 되겠느냐고 하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광화문 복원공사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산림청과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국유림과 사유림 등에서 적합한 목재를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마 동해안쪽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적송)가 선택될 것 같으며 천년궁궐을 짓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가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대들보인 경우 소나무 수령이 300∼400년정도 돼야 한다는 그는 “일제때 좋은 나무들이 마구 남벌돼 나무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높이 18m, 직경 70㎝이상의 적송을 찾기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올 겨울부터 목수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나무를 구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궁궐 복원 공사에는 뭐니뭐니해도 철저한 고증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광화문 복원공사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수 30여명이 투입된다고 밝혔다. 현재 경복궁 복원공사 사업은 모두 5단계 중 4단계를 마친 상태. 이 가운데 광화문 복원사업이 최종단계로 경복궁 재현의 화룡점정인 셈이다. 그가 맡은 경복궁 복원사업으로는 현재 진행 중인 함화당을 비롯해 ‘침전지역’‘동궁지역’‘태원전 권역’‘건청궁’‘근정전’ 등이다. 광화문의 경우 본문 외에 군사방, 수문장청, 영군직소 등이 포함된다.2009년까지 목재만 450만재, 기와 150만장, 비용 1789억원이 투입되며 전각 등 총 93동이 복원되는 대단위 공사다. 신 대목장 개인적으로는 꼬박 20년을 경복궁에서 출퇴근하게 되는데 그 대미를 광화문으로 장식하게 된다. 그는 “문무백관의 조회와 국가의식을 거행했던 근정전은 우리 고건축의 백미”라고 극찬하면서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140년전의 건축기법을 완전히 이해하게 됐고 또한 광화문도 이와 비슷한 건축기법이라고 귀띔했다. 근정전 복원은 2000년부터 3년 10개월 걸렸다. “광화문 복원공사는 예정된 2009년 말 이전에 끝낼 수 있습니다. 목조는 잘 관리만 하면 천년수명이기 때문에 광화문 또한 이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지요.” 그는 중졸학력으로 당대 최고의 목수자리까지 올랐다. 올해로 꼭 50년째 목수인생을 맞고 있는 그는 1942년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9남매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병천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와 신강수 한테 망치질을 배우며 일찍 밥벌이 전선에 뛰어들었다. 말 그대로 먹고 살 수 있는 기술 한가지만 배우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그러다보니 목수들의 양말 세탁 등 온갖 심부름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들보용은 소나무 수령 300~400년 돼야 그러던 1960년 명인 이광규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이때 봉원사 요사 및 종각 공사에 참여했다. 이듬해에는 스승의 스승 조원재를 만나 남대문 중수 공사에 동참했다. 1965년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오대산 월정사 대웅전, 진주성 촉성문, 서울 숭인동 청룡사 대웅전, 용인 호암장 신축 공사 등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대목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1975년 수원성 장안문 복원공사 때에는 도편수로 독립하면서 1983년까지 밀양군 무안면 홍제사 법당, 서울 삼청동 총리공간, 서울 필동 한국의 집, 경주 안압지 1∼3건물, 단양 구인사 사천왕문, 부여 삼충사 영당 및 내외삼문, 울산 동축사 대웅전 및 산신각, 유성 현충원 현충문, 부여 무량사 극락전 보수 공사 등을 맡으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중졸 학력으로 50년째 목수… 당대 최고 도편수 자리에 1982년 청와대 영빈관인 상춘재를 신축할 때 도편수를 맡았다. 한겨울에 30여명의 목수들과 함께 새벽 여섯시에 청와대로 출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상춘재는 4개월 만에 완공됐다. 이와 관련 “아마 가장 빨리 지은 한옥이 아니겠느냐.”고 술회했다. 이 같은 인연이 있어서인지 1989년 청와대 대통령관저의 신축공사까지 맡게 된다. 그는 평소 “좋은 적송을 구하는 사람이 좋은 건축을 하는 것”이라고 늘 주장해왔다.1980년대 초반 강원도의 적송 많은 산 50만 평이 매물로 나오자 주저 없이 사들여 좋은 재료를 현장에 공급하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바탕이 된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인 경복궁 보수공사의 도편수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경복궁 복원공사가 다 마무리되면 평소의 꿈인 우리나라 전통건축 박물관을 지을 예정이다. 슬하에 2남3녀를 두었으며 큰아들이 목재소를 운영하면서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신 대목장은 우리나라 고건축의 대가인 조원재, 이광규로 이어지는 대목장 계보를 잇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충북 청원 출생 ▲58년 충남 병천중학교 졸업 ▲58∼60년 신강수, 박광석 문하에서 한옥 주택 신축 공사 ▲75∼78년 수원성곽 장안물, 창용문 복원 공사(도편수 신응수) ▲79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 신축 공사 ▲82∼83년 청와대 상춘재 신축 공사 ▲88년 경복궁 만춘전 복원 공사 ▲89∼90년 청와대 대통령관저 신축 공사 ▲91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 74호 대목장 보유자 ▲91∼95년 경복궁 침전지역 복원 공사(강녕전, 교태전, 경성전, 연생전, 웅지당, 연길당, 함원전, 흠경각, 동서행각, 건순각, 양의문, 함흥각 등) ▲96∼98년 경복궁 동궁지역 자선당, 비현각, 회랑 복원 공사 ▲97∼99년 경복궁 자경전, 창덕궁 돈화문 보수 공사, 경복궁 경회루 보수 공사 ▲97∼2001년 경복궁 흥례문 권역 복원 공사(흥례문, 유화문 및 화랑) ▲2000∼04년 창덕궁 규장각 옥당, 약방, 영의사, 검서청, 양지당, 봉모당 복원 공사, 경복궁 근정전 보수공사 ▲04∼현재 경복궁 건청궁(장안당, 곤녕합, 복수당 外 13동) 복원공사 # 수상 만해예술상 수상(99년), 옥관문화훈장(2002년) 등 # 주요 저서 ‘천년 궁궐을 짓는다’‘목수’‘경복궁 근정전’ 등
  • [무용]

    ■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2007) 10월4∼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호암아트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02)3216-1185.■ 캐나다 몬트리올 재즈발레단 내한공연 10월6일 오후7시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인간 신체를 주제로 한 컨템포러리 무용.1577-7766.■ KNUA무용단 ‘삼연삼색’ 30일∼10월1일 예술의전당,10월3일 부산시민회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들의 정기공연. 쇼팽 바이올린연주곡 배경의 발레 ‘사랑의 환상’, 김현자 안무 한국무용 ‘불의 샘’등. 홈페이지 www.knua.ac.kr.■ 정재만전통춤보존회 ‘고금상사(古今想思)’ 30일 오후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제1회 정기공연. 한성준·한영숙 맥을 잇는 정재만과 보존회회원 40여명의 살풀이와 승무·학무·한량무·태평무.(02)516-1540.
  • 조선시대 서화 글로 음미하기

    조선시대 서화 글로 음미하기

    그림과 글이 작품에 같이 나타나는 것은 동양회화의 오랜 전통이다. 학식이나 사상을 그림에 투영하는 문인화가 중국 송대에 나타났고, 이후 시서화에 모두 뛰어난 삼절(三絶)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화가를 뜻하게 되었다. 제발(題跋)이란 바로 그림 속에 씌어진 글을 뜻한다. 작품 앞에 쓰는 것을 제사(題辭), 뒤에 쓰는 것을 발문(跋文)이라고 구분하기도 하지만 흔히 제발이라고 통칭한다. 옛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발을 먼저 해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문을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고, 웬만큼 한문에 조예가 있다고해도 휘갈겨 쓴 초서체라면 해석은 고사하고 읽기도 어렵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지난 18일 막을 연 ‘그림 속의 글’전은 옛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고자 기획한 것이다. 내년 3월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삼성미술관 리움의 소장품 가운데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와 작자미상의 ‘정사신 참여 6종 계회도 팔곡병(鄭士信 參與 六種 契會圖 八曲屛) 등 보물 2점을 포함한 서화 42점이 출품됐다. 호암미술관은 특히 전시회 도록을 겸하여 출품작의 사진과 제발의 원문과 해석문을 함께 실어 이해를 돕도록 한 ‘고서화 제발 해설집’도 함께 펴내어 눈길을 끈다.(031)320-1801∼2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피아노의 시인 쇼팽에 젖어보세요”

    “피아노의 시인 쇼팽에 젖어보세요”

    “쇼팽은 같이 술 마시고 싶은 사람은 절대 아니죠.” 요즘 한국 클래식계를 이끄는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멋있는 남성 피아니스트들이다. 수천명의 팬들을 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 가운데 박종훈(38)씨가 있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역시 피아니스트인 아내, 갓 돌이 지난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박씨는 9월1일 오후 7시30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쇼팽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독주회를 연다. 지난해 베토벤의 곡만으로 독주회를 가진 데 이어 이번에는 쇼팽이다. “베토벤이 재료를 모아서 완벽한 곡을 만들어내는 스타일이라면, 쇼팽은 주도면밀하지도 즉흥적이지도 않아요. 성격적으로는 여성적이고 감성적이긴 하지만, 베토벤처럼 마음이 닫혀 있지는 않았죠.” 독학으로 익혀 작곡도 하는 그는 드라마 ‘봄의 왈츠’의 주제가도 만든 바 있다. 스스로는 영감이 떠오르면 모차르트처럼 곡을 쭉 써내려가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오는 12월에는 아내 치하루 아이자와와 바이올리니스트인 동생 부부와 함께 호암아트홀에서 라벨의 실내악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는 국제 콩쿠르를 통해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스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에 대해 “콩쿠르가 정치적 색채가 짙어지면서 원래 의미가 퇴색됐다.”며 “어린 스타가 가치있는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연간 20회 정도 연주회를 갖는데, 빠르고 신나는 곡이 연주되면 모두 일어날 정도로 한국 클래식 팬보다는 자유롭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클래식, 뉴에이지, 재즈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가 새롭게 해석해낼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기대를 모은다.2만∼5만원.(02)2230-6624.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4) 직업적 화가이기를 거부한 화가 조희룡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34) 직업적 화가이기를 거부한 화가 조희룡

    신분에 대해 개방적이었던 추사 김정희의 제자는 여러 갈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사대부들도 많았지만 중인 쪽에 특별히 많았다. 이상적 같은 역관 제자는 중국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새로운 문물을 전해 주었으며, 조희룡 같은 화가는 그의 글씨를 그대로 배워 웬만한 호사가들도 구분치 못할 정도로 글씨를 잘 썼다. 조희룡은 중인 시인들의 모임인 직하시사(稷下詩社)와 벽오사(碧梧社)의 동인이었으며, 중인 42명의 전기를 지어 중인문화를 정리 평가하였다. 조선후기의 중인문화는 그에게 와서 중간 결산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매화를 그린 덕분에 병골이 장수하다 조희룡(趙熙龍·1789∼1866)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지만, 정작 자신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둥근 머리와 모난 얼굴, 가로 찢어진 눈에 성긴 수염을 한 6척 장신이었다고 한다.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에서 마치 학이 가을 구름을 타고 훨훨 날아가듯이 길을 걸어다녔다고 묘사했는데, 신선이 아니라 병자였다. 조희룡은 수많은 호를 사용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수도인(壽道人)이다. 그는 ‘수도인’이라는 호를 짓게 된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키만 훌쩍 크고 야위어, 옷을 걸치기에도 힘겨울 만큼 약했다. 그래서 내 스스로 수상(壽相)이 아닌 줄 알았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14세 때에 어떤 집안과 혼담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는 내가 반드시 일찍 죽을 것이라고 하여 퇴짜를 놓고 다른 집안과 혼인하였다. 그런 지 몇 년이 안 되어 그 여인은 과부가 되었다. 내가 이제 70여세가 된 데다 아들 딸에 손자 증손자까지 많이 있으니, 지금부터는 노인이라고 큰소리를 칠 만하다. 그래서 스스로 수도인(壽道人)이라고 호를 지었다.> 일찍 죽을 것이라 여겨 혼담까지 깨졌지만, 칠십을 넘겨 장수했기에,“장수할 상이 아닌데 늙은 나이 되었고, 매화를 사랑하여 백발 되었다.”고 그림에 썼다. 매화의 맑은 향과 기운을 그리다 보니 몸까지 깨끗해져 장수했다는 뜻이다. ●문자기(文字氣)가 없다고 비판받았던 난(蘭) 그림 중인 조희룡은 사대부 학자 김정희에게서 글씨뿐만 아니라 문인적인 삶의 자세를 배웠다. 스승인 추사는 난을 좋아했는데 조희룡은 매화를 좋아해서 “좋은 종이와 먹이 있으면 가장 먼저 매화가 생각났다.”고 할 만큼 매화를 많이 그렸다.8폭 병풍 가운데 1폭인 ‘홍매도(紅梅圖)’에 “종 모양의 옛벼루에 시험하다(試古鐘硏)”라고 썼는데, 좋은 종이나 먹뿐만 아니라 기이한 벼루만 보여도 그 벼루에 시험삼아 매화를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뒤틀린 가지가 비스듬하게 뻗어내리며 붉은 꽃이 만발한 고매(古梅)를 그렸다. 가지는 수묵 농담(濃淡)으로 처리하고 담홍색 꽃송이를 넉넉하게 그려,8폭을 다 펼치면 부귀익수(富貴益壽)라는 제화 그대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는 중국을 드나들며 옹방강 등 당대 최고 서화가들과 교류했던 추사를 통해 서화 문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석우망년록(石友忘年錄)’이란 책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많이 기록했다. 직업적인 화가들은 그림 그리는 솜씨만 익혔는데, 조희룡이 박학다식한 서화관으로 체계를 이룬 것은 추사 같은 학자를 스승으로 모신 덕분이다. 그러나 추사는 그의 난 치는 법에 대해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아들 상우(商佑)에게 편지를 보내 난 치는 법을 가르치면서, 조희룡같이 하지 말라고 했다. <난을 치는 법은 예서(隸書)쓰는 법과 가까우니, 반드시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있은 다음에야 난 치는 법을 얻을 수 있다. 또 난 치는 법은 화법(畵法)대로 하는 것을 가장 꺼리니, 만약 화법대로 하려면 일필(一筆)도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조희룡은 내가 난 치는 솜씨를 그대로 배워 화법 한 가지만 쓰는 폐단을 면치 못했으니, 이는 그의 가슴 속에 문자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추사 수준에서 볼 때에 문자향(文字香)과 서권기(書卷氣)가 그림 솜씨에 비해 떨어진다는 뜻이지, 그림 자체가 못하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산수나 매화는 조희룡의 그림이 추사보다 더 낫다. 이는 자기의 글씨를 너무 똑같이 배운 조희룡에게 대한 경고인 동시에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중인 화단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추사의 글씨 제자 8명과 그림 제자 8명이 1839년 6월과 7월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추사에게 품평을 받았다. 추사의 품평은 글씨를 제출했던 전기(田琦)가 기록해 두었다가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이라는 책으로 만들었다. 화루(畵壘)에 출전했던 화가 8명의 작품이 호암미술관에 병풍으로 소장되었는데, 그 화제를 모두 조희룡이 썼으니 추사 제자들 사이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조희룡의 글씨는 추사 글씨를 빼박은 듯해 구별하기 힘든데, 추사 글씨보다 부드러워 금석기가 덜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 추사가 북청으로 유배갈 때에 연루되어 임자도에서 3년간 유배생활을 했으니, 추사를 가장 가까이서 모셨던 그림 제자라고 할 수 있다. ●사대부의 문인 취향 몸에 익혀 그는 중국 서화에 조예가 깊었다. 중국을 직접 가보지 못했던 그가 이 정도의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혼자서 끊임없이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문형산(文衡山)과 진백양(陳伯陽)은 난초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나하고 천년이나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같았다. 나는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난 30폭을 쳤다. 기울어지거나 바른 모습 하나하나에 저마다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두 선생에게 그 풍격을 묻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조희룡 ‘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18> 그는 송나라 시대의 서화가 문천상과 진백양을 사숙한 셈인데, 그가 먼저 배운 것은 충신으로 이름났던 그들의 마음이다. 그런 뒤에 하루 종일 30폭이나 난을 칠 정도로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 난초를 잘 그린다고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문인들은 간략하면서도 정돈된 구도로 묵매화를 그렸는데, 조희룡의 매화는 복잡하면서 웅장하다. 소박하던 꽃잎이 활달하고도 화려해졌다. 난초를 치면서 문천상과 진백양을 본받았는데, 매화를 그릴 때에는 그러한 경지를 넘어섰다.“나의 매화는 동이수와 나양봉의 사이에 있는데, 결국 그것은 나의 법이다.”라고 제화에 썼으니, 사람들이 그가 그린 매화를 보면 “이건 조희룡의 매화이다.”라고 말하게까지 되었다. 그는 그림공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사대부 문인들의 문화적 취향과 이념을 공유하기 위해서도 많은 골동 서화들을 수집하고 감상했다.“나는 약간의 책을 소장했고, 골동과 서화를 모으는 버릇도 있었다. 평상시에 늘 좌우에 벌여놓고, 잠시도 떨어져 있지를 않았다.”고 했다. 홍선표 교수는 위항시인들에게 가장 많이 그림 청탁을 받은 화가가 바로 조희룡이라고 했다. 중인들이 사대부 화가에게 그림을 부탁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겠지만, 같은 중인 화가들 사이에서도 그의 그림은 남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직업적인 화가와 구별하였다. 사대부들이 수양의 여기(餘技)로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그도 문인화가로 자처했던 것이다. 그가 ‘해외난묵’이란 글에서 “(직업적인) 화가의 사생법(寫生法)은 우리 (위항시인) 무리들이 할 바가 아니다. 매·란·석·죽과 같은 그림은 오로지 그 뜻을 옮기는 데 있고, 유희로 이루어진다.”고 말한 것도 자기의 그림은 있는 그대로 베껴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한 포기 난을 치는 것은 단순해서 그림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대부도 칠 수 있지만,8폭 병풍의 ‘홍매도’에 이르면 문인화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여기(餘技)가 아니라, 일삼아 그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희룡은 전문적인 화가이다. 그는 직업적인 화가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중인들은 그에게 많은 그림을 부탁했다. 중인이면서도 사대부의 문인 취향을 즐겼던 위항시인들이 직업적인 화원보다 사대부의 문인 취향을 몸에 익힌 조희룡에게 그림을 많이 부탁한 것이다.(다음 회에는 조희룡이 기록한 중인 전기에 관해 소개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민선4기 취임1년 뭘 하셨습니까] 한인수 금천구청장-區心개발 사업 착착

    [민선4기 취임1년 뭘 하셨습니까] 한인수 금천구청장-區心개발 사업 착착

    한인수 금천구청장의 ‘뚝심’이 힘을 발한 1년이었다. 한 구청장은 국방부와 지역 부대 관계자와의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독산동 441일대 육군 공병대 도하단의 연내 이전 약속을 받아냈다. 금천구 노른자위 땅에 버티고 있는 이 부대 탓에 구심(區心)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랜 숙원이던 군부대 이전이 가시화됨에 따라 본격적인 구심개발 사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미 시흥역 앞에는 구 종합청사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1월이면 구 청사를 빌려 쓰는 10여 년간의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넓고 쾌적한 새 청사에서 민원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환경도시의 이미지도 굳혔다. 안양천에 주민휴식공간을 만들고 호암산과 안양천을 연결하는 녹지축 조성 등을 통해 전국 최초로 3년 연속 친환경경영대상 수상이라는 영예도 안았다. 특히 야심찬 환경 프로젝트인 금천폭포근린공원의 조성공사가 시작됐다. 경기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인 시흥3동 시흥대로변에 4835㎡ 규모의 폭포공원이 내년 4월이면 선을 보인다. 고품질 행정서비스 제공도 지난 1년간 일군 성과다. 지식관리시스템을 도입해 각종 혁신아이디어와 제안, 업무 노하우, 성공과 실패사례 등의 노하우를 전 직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5월에는 금천경찰서와 공동협력사업 협약식을 체결하는 등 유관기관과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기초질서 및 교통문화, 봉사활동 등 주민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공동협력도 진행중이다. 문화, 복지, 교육분야에서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상대적으로 재정여건이 열악하다는 점이 아쉽다. 특히 구 전체면적의 30% 이상이나 되는 준공업지역 내 공장이적지의 공동주택 건립이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한 구청장은 “개발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만큼 구심 개발을 축으로 구 전체가 균형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이건희회장 “샌드위치 더 심해져 획일적 교육이 문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한국경제의 ‘샌드위치’ 상황 원인으로 ‘교육문제’를 지목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회장은 1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기자들로부터 “샌드위치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교육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의)교육제도가 너무 획일적”이라면서 “21세기에 맞게 전체적으로 다 고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재를 키워서 천재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며 “선진국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그러면 기업들은 인재 육성을 잘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기업들이야 항상 하고 있다.”고 말해 교육환경 및 교육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이 회장은 또 “2014년 평창올림픽 유치가 성공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잘 해야죠.”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서남표 KAIST 총장

    [신연숙 대기자의 금요 초대석] 서남표 KAIST 총장

    국과학기술원(KAIST)발 대학입시 개혁안이 우리나라 교육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세계 10위권 이공계 대학 도약을 목표로 개혁 기치를 높이 든 서남표(71) KAIST 총장의 새로운 입시안 발표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고의 수월성(秀越性)을 추구하는 대학임에도 인성평가를 중요한 선발 요소로 삼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신입생 학력저하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서 총장은 “어느 제도도 완벽한 제도는 없었다.”고 반박하면서 “인성평가는 절대로 평균치를 갖고 줄 세우지 않겠다.”는 구체안도 내놓았다. 또한 내년부터는 처음으로 학생당 연간 최고 1500만원의 등록금을 받겠다는 계획도 밝혔다.23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서 총장을 만났다. ▶감사의 외유성 해외출장 문제로 어제 하루종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했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미국 정부에서 일할 때도 의회 출석을 많이 해봤어요. 분위기는 좀 다르더군요. 출장 문제는 안 갔으면 좋을 일이지요. 대의명분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정부가 이번 일로 쓸데없는 규정을 만들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발 방지는 좋지만, 자꾸 규제를 만들다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못하게 되거든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결실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서 총장이 보기에 한국은 해외에 나가는 것을 낭비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제화가 시급하다고 외치면서 해외여행을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더구나 한국은 작은 나라라 1시간만 나가도 외국이 아니냐는 것이다. 낭비 사례는 윤리 도덕 면에서 해결해야지, 법으로만 하자면 사회개혁은 어렵지 않겠냐고 했다. ▶총장에 취임한 지 10개월쯤 됐는데 KAIST 발전구상안은 계획대로 실현되고 있는지요. “큰 틀에서 내부 개혁은 어느정도 마쳤고, 이제는 아래 단계에서 학과별로 어떻게 하면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토론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일을 타성적으로 계속할 것이 아니라, 버릴 건 버리고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여 새 분야를 찾는 작업입니다.” 그동안 시행한 개혁은 파격적이다. 교육 면에서 1학년부터 전과목 영어수업 등을 도입했고, 성적별로 받기로 한 등록금 액수를 연간 1500만원으로 책정했다. 몇몇 연구분야에서 세계적 수월성을 확보하기 위해 융합연구소(KI) 7개를 세웠다. 학과장에게 인사권을 모두 넘기고 교수가 부임 7년 안에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떠나도록 하는 인사개혁도 단행했다. ▶전임 로플린 총장은 거센 내부 저항에 부딪혔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그런 얘기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어요? 토론을 통해 교수협의회까지 지지해 주고 있는걸요. 로플린 총장은 의사소통이 잘 안 됐던 거지요. 문화가 달랐으니까요. 다만 현재 안 풀리는 것은 ‘발전5개년계획’인데, 정부 지원을 현재 연간 1100억원에서 두 배로 늘리는 게 핵심이라 정부를 설득 중입니다.” 서 총장은 교수 대 대학원생 비율이 5대1, 학부생 숫자가 학년당 1000명은 돼야 세계적 대학과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려면 교수 300명, 학부생 정원 300명씩을 늘려야 한다. 연간 1100억원은 결코 많은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는 국내 연구개발투자비의 1% 규모. 한국 유학생이 해외에 쏟아붓는 돈을 생각하면 이만큼 효율성이 높은 투자는 없을 거란 얘기다. ▶인성평가를 강화한 입시개혁안에 기대와 우려가 많은 것 같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학생선발 기준은 졸업생이 20년 후 사회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입니다. 사회공헌에 성공적인 사람들을 보면 여러가지 다양한 면이 있어요. 우리는 쿠키 커터식(붕어빵식) 교육에다 좁은 문을 만들어놓고 그 문을 통과한 사람만 합격시키는데, 현재 사회공헌자들이 다 그 문을 통과했느냐 하면 아니란 말이죠. 더구나 KAIST에 지원할 수준의 학생들에게 세세한 성적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미스테이크는 어느 제도나 있어요. ▶당장 10월부터 적용할텐데 인성평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겁니까. 새 제도를 도입한다니까 학부모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고 물어요. 이건 준비 못하는 겁니다. 우선 학생을 학교가 잘 알아야 하겠고, 똑똑한가·창의력·적극성·긍정성·독립성 등을 가졌나를 볼 겁니다. 절대로 항목별 점수를 합쳐 평균치가 높은 순서로 뽑지는 않을 거예요. 다른 항목에서 점수가 낮더라도 한 항목에서 100점을 받았다면, 그 학생의 가능성을 보는 거죠.” 아인슈타인이 아닌 바에야 러프 다이아몬드(Rough Diamond)를 찾겠다는 거다. 면접은 교수 3명이 하루종일 학생 15명을 하게 된다. 교수 100명이 1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본다. ▶이런 방식을 택한 건 그동안 KAIST제도에 미스테이크가 많았다고 본 겁니까. “꼭 그렇진 않지만, 산업계에서 KAIST 출신들이 똑똑하긴 한데 리더십 자질이 부족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국내 모든 과학고와 영재고를 다 가봤는데, 학교가 구속이 너무 많아요. 새벽 5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공부만 시키거나, 심지어 내 강연 때 학생들이 졸까봐 교사가 학생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감독하는 학교도 있었어요. 이렇게 학생들을 묶어놔서야 자유로운 사고력, 대학가서 공부할 여력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고교 책임이라기보다는 그런 입시제도를 운영하는 대학에도 책임이 있단 말이죠. 우리의 개혁이 다른 대학에도 파급돼 고교 교육을 혁신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고교 교육뿐만 아니라 국내 일류 대학이 국제비교에서는 전혀 경쟁력이 없어 걱정이 많은데요. “이것도 남 탓만 할 게 아니라 대학 내부를 봐야 돼요.MIT와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교수간 경쟁이 심하다는 거예요.MIT는 대학원의 경우 교수가 스스로 연구비를 조달하여 학생 돈을 줘가며 공부시킵니다. 연구비가 없으면 학생이 없죠. 학생은 또 그만큼 공부에 의무감도 가집니다. 또 대학 간에도 우수한 교수는 서로 빼가려 합니다. 일 잘하는 교수는 보수도 달라요. 똑같이 월급 받고, 학생 받는 제도로는 열심히 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연구개발 체제에 대한 혁신 의견을 묻자, 생각은 많지만 답변 않겠다고 했다.KAIST 개혁이 우선 과제라는 것이다. 그밖의 질문에선 거침없는 답변으로 최고 석학의 권위를 느끼게 했다. ■ 그가 걸어온 길 193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서울사대부고 재학 중, 서울대 교수 출신으로 미국 유학 중이던 부친의 초청을 받아 가족이민을 갔다.MIT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론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1964). 1970년 MIT 기계공학과 부교수로 부임해 대학 생산기술연구소장, 기계공학과 학과장, 석좌교수를 거치며 학자로서는 물론,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1984∼88년에는 대통령 추천·상원 인준직인 미국과학재단(NSF)의 공학담당 부총재를 역임, 미국 공학연구개발을 이끌었다.MIT 기계공학과장 때는 교수의 40%를 물갈이하고 이중 절반을 타 과 전공 교수로 채우는 개혁을 단행했다. 차세대 유통혁명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는 RFID(전자태그)는 이때 그가 정보통신·기계공학·로봇공학 전공교수에게 연구비를 주어 시작한 융합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그 자신 ‘공리적 설계이론’의 창시자로 마찰공학, 제조과학기술, 설계과학 분야에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다.NSF 올해의 국가공학자상(1987), 호암상 공학상(1997),CIRP최고영예상(2006) 등 수상. yshin@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tpgod@seoul.co.kr
  • 서울대 ‘윤리세우기’

    황우석 논문조작 파문과 이병천 논문 오류 파문을 잇따라 겪은 서울대가 내년 1학기 개설되는 ‘학문과 과학연구 윤리’ 교양과목에 ‘내부 고발 의무와 내부고발자 보호’에 관한 강좌를 포함시키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과학 논문 등 각종 학술 논문의 경우 내부 고발이 없으면 쉽사리 문제점을 밝혀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내부 고발’ 강의는 이 과목의 핵심 강좌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대는 2008학년도 1학기 개설을 목표로 준비해온 ‘학문과 과학윤리’ 교양과목의 강의 내용과 담당 교수 등 구체적인 뼈대를 마련했다고 18일 밝혔다. 서울대는 19일 회의를 통해 강의 계획을 확정하고, 오는 7월1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담당 교수들의 원고 발표를 거쳐 강의 교재를 생산할 예정이다. ‘학문과 과학윤리’는 황우석 사태를 겪은 서울대가 올 2월 이현숙 생명과학부 교수에게 의뢰해 강좌 개발을 추진했으며, 이 교수와 조국 법대 교수, 한정숙 인문대 교수 등 10여명이 강좌 공동개발팀을 꾸려 강의 골격을 마련했다. 이번 강의의 핵심인 내부 고발 강의는 이 교수가 맡아 ▲한국사회에서 내부 고발이 어려운 이유 ▲연구부정 행위 내용 및 판단기준 ▲교수와 학생간의 모범적인 관계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인 보완점 등을 강의한다. 이 교수는 “내부 고발 강의는 이번 강좌의 핵심으로 많은 교수들이 반드시 포함시키기를 주문했다.”면서 “황우석 사태는 황 박사 본인뿐 아니라 연구실 내 학생들의 적극적인 침묵과 동의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 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연구 책임’을 주제로 강의하게 될 최영찬 농생명과학대 교수는 “황우석 사태 때 연구 부정 행위에 분노한 젊은 교수들이 논문 검증을 요구하며 솜방망이 징계조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네트워크가 이번 작업의 인적 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고 전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의 제도적인 보완점을 주제로 한 강의도 준비되고 있다.이병천 수의대 교수의 늑대논문 조작 의혹이 불거졌을 때 실명제보 원칙을 고수한 위원회의 부적절한 대응도 강의실에서 공개 토론될 전망이다. 이 밖에 ‘과학자 집단과 사회와의 관계’(우희종 수의대 교수),‘과학 사기는 들통 나고 만다’(이성중 치과대 교수),‘인문학에서의 지적 사기 날조 사례’(한정숙 인문대 교수),‘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홍성욱 자연대 교수),‘표절’(김명환 인문대 교수) 등 다양한 문제 의식이 녹아든 강의들이 마련된다. 이준호 생명과학부 교수는 “과학논문 검증 절차의 문제점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실제 연구실 생활에서 갖추어야 할 소양이 무엇인지 강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3학점 3개 강의로 기획된 ‘학문과 과학윤리’ 강좌는 각 강의당 3∼4명의 교수가 주제를 바꿔가며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한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타버린 혼불

    타버린 혼불

    15일 새벽 1시12분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삭령(朔寧) 최씨 종가(宗家)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12대 종부(宗婦) 박증순(93)씨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졌다. 이날 화재로 본채, 사랑채, 행랑채, 중문, 삼문 등 목조 기와건물 5채 가운데 본채 84㎡가 전소돼 29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30분만에 진화됐다. 목격자 박모(80·여)씨는 “갑자기 불꽃이 튀는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는데 부엌과 다른 방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보고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이 집에는 숨진 박씨 등 2명만 살고 있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박씨의 방에 설치돼 있던 변압기가 합선돼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불이 난 삭령 최씨 종가는 조선시대 남원지역 양반가의 몰락 과정과 3대째 종가를 지켜온 며느리의 애환을 그린 작가 고(故)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곳이다.1905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전통가옥으로 마을과 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노봉마을 맨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 숨진 종부 박씨는 18세에 전남 보성에서 시집와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고 슬하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둘째 딸은 국회의원을 지낸 최영희(68)씨이며 아들 강원(63)씨는 서울대병원 내과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큰딸 강희(70)씨는 교직을 정년퇴직했다. 남원의료원에서 빈소를 지키던 강희씨는 “보통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분”이라면서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편을 잃고 자식들을 키우며 종가를 지켰다.”고 말했다. 이 집안은 문과 12명과 무과 14명의 급제자를 배출해 남원의 명문가로 알려졌다. 박씨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효원아씨, 박씨의 시어머니는 율촌댁, 시할머니는 청암부인의 모델이 됐다. 혼불문학관 문화해설사 황영순(54·여)씨는 “박씨는 기억력이 좋고 학식이 높아 말씀도 조리있게 잘하고 건강했다.”면서 “자녀들이 조석으로 문안전화를 하고 한 달에 두번 정도 방문하는 효자들”이라고 말했다. 박씨의 빈소는 서울대병원과 남원 의료원 2곳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서울대 병원에서 열리며, 장지는 종가 옆 선산이다. 한편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전북애향대상, 단재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고 1998년 지병인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사경(寫經)을 아시나요? 시계바늘을 잠시 고려시대로 돌려본다. 왕족과 귀족들은 하루 일과 중 사경원(寫經院)에서 불경을 베껴쓰는 일(寫經)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먹물이 아닌, 금·은가루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공덕과 불심의 깊이를 스스로 가늠했음은 물론이다. 충렬왕 이후가 절정기였다. 원나라측은 고려의 사경기술을 거듭 요청했고 고려는 1회 100여명씩 수차례에 걸쳐 파견, 그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사경 기술이 역수출된 셈. 아마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유일하게 큰소리 뻥뻥 치며, 콧대를 꺾은 대목이 아닐까. 전생이 있다면 아마 고려시대의 사경승(寫經僧)이었을 것이다. 꿈 속에서 고려 사경원의 각 처소를 돌면서 관리·감독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경호(46)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조선시대 이후 쇠퇴한 고려사경 재현의 길을 30년째 고독하게 걷고 있다. 마치 서산대사가 눈 내린 들판을 밟고 걸어갈 때(踏雪野中去)처럼 사경 발걸음에 잠시라도 어지러이 하지 않았다(不須胡亂行). 또 지금 걷는 발자국(今日我行蹟)이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듯(遂作後人程)이 말이다. ●새달 28일 중국서 사경전시회 그 결과, 이제는 사경이 하나의 어엿한 예술장르로 꽃을 피우고 있다. 다음달 28일부터 31일까지 중국 산둥(山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한국사경연구회 회원 20명과 함께 사경전시회를 갖는다. 이는 중국땅에서 원-고려 이후 700년만에 고려사경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사뭇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중국의 4대 명찰 중 하나인 영암사에서 최초의 사경법회까지 연다. 특히 오는 7월24일부터 9월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중·일 사경 특별전이 처음 개최되는데 여기에서 김씨의 수준높은 사경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선보인다. 아울러 9월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 서예비엔날레에 특별초청을 받아놓은 상태. 지난 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이제야 사경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것 같다.”며 탄식이 섞인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개인전만 11차례나 열면서 사경의 가치를 알려온 외로운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경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역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을 탄생시킨 연원입니다. 사경이 지닌 전법, 그 기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품이 개발된 것이지요.” 또한 “(사경이)고려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승화됐다.”고 전제한 뒤,“고려 왕조 500년 동안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그리고 목판대장경을 포함해 무려 열번의 대장경을 사성했을 정도로 고려왕조는 가히 사경왕조였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청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고려시대의 미술을 깊이 있게 연구한 미술사학자들도 사경과 청자를 고려의 대표적 예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빛을 잃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예술성이 사실상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다는 것. 김씨는 이같은 고려사경을 재현하기 위해 두팔을 걷어붙였다. 언론매체와 방송 등을 통해 사경의 중요성을 수없이 역설했다.‘사경의 기법’ ‘사경서체’ ‘또다른 수행-사경’ 등을 주제로 책을 펴내는 한편, 문화센터와 대학사회교육원 등에서 십수년간 강의도 했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1999년 사경 지도자 과정을 신설했을 때 김씨가 최초의 지도교수가 됐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교육원·포교원 등에서 사경수행법 연구 및 조사집필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개인전과 단체전 등 모두 4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고려사경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꾸준히 알렸다. “사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지금은 사경인구가 많이 늘어 1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충식 교수님의 역할이 정말 컸습니다. 제가 은사로 모셨는데, 그분의 격려가 없었다면 도중하차했을 겁니다.2005년 은사님이 돌아가실 때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심정으로 사경을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불교미술사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고 장충식 교수는 생전에 김씨의 사경작품을 보고 “고려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한글 궁서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꽃뜰 이미경 선생은 “한글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으며, 문화재위원과 여러 미술사학자들로부터 “인간문화재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수만권 문헌 뒤지며 고려사경 직접 조사 그의 사경기법에는 몇가지 독창적인데가 있다.▲최대한 권위있는 원전을 5종 이상 대조하고 자구에 맞게 한글번역을 하며 ▲가급적 녹교를 끓여 사흘 이상 쓰지 않으며, 사경지를 포수처리하고 ▲금니와 은니를 3회 이상 정제하는 등 100%의 순도를 유지한다. 특히 모든 과정을 문헌에 근거, 제작하기 위해 슬라이드만 수만장에 이를 만큼 고려사경을 직접 조사하고 연구해왔다. 이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묘를 구사(1㎜ 공간에 5개 이상의 금선을 그음)할 만큼 사경의 정교함을 한 차원 높였다. 아울러 2005년 ‘사경수행법’을 집필할 때까지 종단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았던 사경수행의 방법을 체계화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가 사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네살때. 붓을 잡고 부친에게서 획과 결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 진학도 미룬 채 홀로 서예공부에 빠졌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한 그는 이후 각종 전국 학생서예대회에 출전, 최우수·우수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고교시절에는 사경에 빠져 세번이나 부모 몰래 출가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에게 붙잡혀왔고, 두륜산에서는 토굴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경은 서예의 영역을 뛰어넘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의 경우 사경인구가 600만명에 이르고 전승도 잘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 사경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그는 또 “사경은 서예와 회화, 공예적인 요소를 함께 지닌 종합예술”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동·서양의 사경 만남전’을 추진 중이다. 이때 우리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명실공히 인정받겠다며 매일 12시간씩 사경에 몰두한다.“아들과 딸도 애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전국 서예대회에서 1,2위를 다툰다.”고 귀띔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2년 김제 출생 ▲76년 중학때 묵서로 사경 독학 ▲82년 남성고 졸업 ▲86년 전북대 국문과 졸업 ▲97년 제1회 불경사경대회 대상수상(조계종 총무원 주최) ▲99∼2006년 연세대 사회교육원 서예·사경 지도자과정 지도교수 ▲04년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석사) ▲현재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전시 금산사 창건 1400주년 기념초대전(98년) 등 40여회. #주요 저서 학의 울음(96년), 외길 김경호 사경집(02년), 신라백지 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연구(04년), 수행법연구(사경 책임집필·05년), 한국의 사경(06년). ■ 사경(寫經)이란? 사경의 사(寫)는 베끼다, 옮겨놓다 등이며, 경(經)은 ‘법, 이치, 성인이 지은 책’이라는 뜻을 지녔다. 본래 ‘경’은 ‘수트라’로 ‘실(線)’이라는 뜻으로 꽃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하고 짤막한 금언(金言)이나 격언을 모은 것에서 기원한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사경이 병과 고뇌와 악업을 씻어주고 큰 죄도 용서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불가에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고귀한 말씀을 사경을 통해 접하고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함께 건너온 사경은 원래 불교 경전만 옮겨 쓰는 행위였으나 최근에는 성경, 꾸란 등 타 종교의 경전으로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경주 나원리 5층석탑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편(8세기초)으로 전해졌으나 사성기(寫成記)가 없어 사성연대가 명확한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96호 ‘신라백진묵서 화엄경 제2축’이 현존 최고(最古)의 사경으로 알려져 있다.
  • ‘의사’ 가운 벗고 새달 단독공연 가수 김창완

    ‘의사’ 가운 벗고 새달 단독공연 가수 김창완

    “변신은 깨어있는 삶의 모습입니다. 가수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엔터테이너들에게 필수적인 덕목이죠.” 드라마 ‘하얀 거탑´ 에서 우용길 부원장 역을 맡아 권력지향형 인간의 전형을 소름이 끼칠 만큼 연기한 ‘가수’ 김창완(53). 각종 언론매체에서 ‘김창완의 재발견’이니 ‘김창완 어록을 만든다.’며 호들갑이지만, 정작 본인은 담담하다. “팬들이 우용길로의 ‘변신’이라 느꼈던 것은 그동안 (내가)맡았던 나이브한 역할들이 밑그림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변신 자체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팬들이 꾸준히 변모해 가는 나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는 항상성이 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팬들에겐 반란처럼 느껴졌던 우용길 캐릭터도 벌써 시들해 졌나 보다.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공연을 연다. 오는 5월3∼4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나는 김창완이다’라는 이름의 단독공연을 한다. 지난해 산울림 결성 30주년 콘서트 이후 1년, 단독공연으로는 2001년 이래 6년 만이다. ‘하얀 거탑’ 이후 드라마와 영화 등 출연 제의가 쇄도했지만, 음악무대에 먼저 서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산울림보다는 인간 김창완의 음악을 선보이고 싶어요. 기존에 발표된 음악을 무대에서 재현한다기보다 가수로서의 삶, 음악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팬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거죠. 마치 내 방에서 함께 음악을 듣는 듯한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할 생각이에요.” 디지털로 쉽게 만들어지고, 또 어느새 쉽게 버려지는 요즘 음악들이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일까. 관객들에게 가공되지 않고 따뜻하게 증폭되는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이번 공연에서는 ‘빈티지(진공관 앰프를 통해 울려퍼지는 아날로그 느낌의 소리)’시스템을 이용하기로 했다. 넓은 공간에서의 음향전달은 ‘PA(Public Adress) 스피커’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깬 것이다. 섬세한 음을 재현하기 위해 공연에 투입되는 악기에도 적잖은 변화를 줬다. 전자악기는 최대한 자제하고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등을 주로 사용할 예정이다. 클래식 악기들이 가진 인간적인 ‘소리’를 활용해 자신의 곡들을 재해석하겠다는 뜻이다. “산울림 음악보다는 자전적 요소가 강하고, 형식면에서도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공연이 될 겁니다. 혼자 작업했던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 ‘추신’ 등과 산울림 6,10,11,12집에 수록된 곡들을 주로 선보일 계획입니다.” 흔히 김창완의 캐릭터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라 표현한다. 절반은 맞다. 분명 친근하면서도 소탈하니까. 하지만 이웃집 아저씨에서 우용길로, 우용길에서 다시 천연덕스럽게 ‘어머니와 고등어’를 노래하는 김창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인터뷰 말미에 가수와 연기자 중 택일을 하라는 다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어느 길로 가든, 다른 한길은 가지 않은 길로 남을 겁니다. 다만 선택은 대중들의 몫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IT플러스] 삼성전자 대리점주에 경영교육

    삼성전자는 3일 자사 전자제품 소매 유통점인 디지털프라자를 한국식 ‘노포(老鋪·역사가 오래된 점포)로 양성하기 위해 대리점주 2세 등 40명에게 경영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주로 20∼30대인 이들은 이날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경영대학에 입과(入課)한다. 이들은 8월 말까지 인사·재무·회계 등 경영이론과 함께 현장실무능력을 기른다. 또 7월에는 일본의 사례 공부를 위해 1주일간 현지 교육도 실시한다. 일본말로 ‘시니세’로 불리는 노포는 일본에서 보통 3∼4대로 이어져 전통과 신용이 있는 오래된 가계를 일컫는다. 길게는 10대 이상 명맥을 이어 수백년간 장수한다. 일본에는 100년이 넘는 노포가 1만 50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올 호암상에 정상욱·이청준씨등 5명

    호암재단은 3일 2007년도 호암상 수상자를 확정, 발표했다. 부문별 수상자는 ▲과학상 정상욱(50) 미국 럿거스대 석좌교수 겸 포항공대 석학교수 ▲공학상 엄창범(49) 미국 위스콘신대 교수 ▲의학상 서동철(46)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교수 ▲예술상 이청준(68·소설가) ▲사회봉사상 엠마 프라이싱거(75·여) 릴리회 회장 등이다. 시상식은 6월1일 열린다. 수상자들에게는 2억원씩의 상금과 순금메달이 수여된다. 정 교수는 자기장을 이용해 전기편극 현상을 제어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입증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엄 교수는 메모리 소자, 차세대 전자·통신분야, 의료·광학용 센서 등 신소재를 이용해 산업 발전을 선도해 온 업적을 평가받았다. 서 교수는 면역질환 치료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한 공로가 인정됐다. 예술상 수상자인 이씨는 1965년 소설 ‘퇴원’으로 등단한 이래 40여년간 한국 문학의 깊이와 수준을 높이는데 공헌한 점을 인정받았다.사회봉사상의 엠마 프리이싱거씨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1961년 29세의 나이로 한국에 온 이후 46년간 국내 한센병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북돋우는 일에 헌신했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전 회장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이건희 삼성회장이 호암상을 제정했다. 그동안 백남준(1995년), 박경리(1996년), 백건우(2000년), 강수진(2002년), 임권택(2003년), 마리아수녀회(2004년), 박완서(2006년) 등 85명의 수상자가 나왔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장애인 가족 ‘행복한 시간’

    장애 아동을 돌보는 도우미를 교육하거나, 장애 아동의 육아 방법을 부모들에게 전수하는 봉사 기관인 제나가족지원센터가 2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정신지체 아동과 발달장애 아동들의 부모를 위한 ‘따로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행사를 가졌다. 이윤수 제나가족지원센터 이사장은 “여건상 하루 24시간을 아이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부모들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기 위해 이번 행사를 열게 됐다.”면서 “이를 계기로 가정 분위기가 다소나마 활기를 찾는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과 ‘웃음이 가득한 풍경’ 사진전이 마련됐다. 사진전은 3∼20일 서울역 KTX 대합실에서도 개최된다. 부모들이 잠깐 문화적 여유를 갖는 동안 장애 아동들은 서울시청 별관에서 전문가, 자원봉사자 140명과 함께 레크리에이션 한마당을 가졌다. 장애아동들은 또 마술공연을 보며 즐거운 기간을 보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실내악의 맛 흠뻑 느껴보세요”

    “대중적이고 가족적인 음악축제로 만들고 싶습니다. 주제를 ‘민속음악 하모니’로 정한 것도 청중들이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52) 씨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음악감독 자격으로 23일 기자들과 만났다. 지난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중국국립교향악단과 협연한 강씨는 피로를 풀 사이도 없이 간담회 자리에 나왔다.강씨는 “시민들에게 실내악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그렇게해서 한국에서 실내악 붐이 일어난다면 더 큰 보람이 없겠다.”고 말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하는 ‘2007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는 세계적 연주자와 연주단체가 대거 참여하는 가운데 5월2일부터 13일까지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 호암아트홀, 덕수궁 등에서 나뉘어 열린다. 강씨는 “사실 이런 규모의 페스티벌이라면 음악감독은 일년내내 매달려야 하는 ‘풀타입 잡’이 되어야 한다.”면서 “힘들지만 지난해 첫번째 축제에서처럼 너무나 반응이 좋다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털어놓았다. 간담회에는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와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조직위원회 공동대표인 김형국 서울대 교수와 신동엽 연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상위11개大 진학률 소득따라 5배 차이

    자녀들의 상위 11개 대학 진학률이 소득 계층간 최대 5배가량 차이가 난다는 주장이 나왔다. 또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60%가 중학교 2학년 이후 3년 이상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형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1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2000∼2005년 한국노동패널 조사결과를 분석한 결과, 최상위 소득계층(상위 25%) 자녀들의 11개 상위권 대학 진학률은 14.1%로, 최하위 소득계층(하위 25%) 2.7%에 비해 5.2배가량으로 높았다고 주장했다. 어머니의 교육수준이 자녀의 명문대 진학에 큰 변수로 작용했는데 어머니가 대졸 이상인 경우 11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14.9%였지만 고졸 미만일 때는 3.1%에 불과했다. 최 연구위원은 “연구결과는 소득이나 학력이 자녀에게 이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는 이날 학술대회에서 2000∼2006년까지 사교육이 대학진학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중학교 2학년 이후 4년제 대학에 진학한 학생의 61%가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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