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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 전국 첫 노인전문병원 건립

    서울에 200병상 규모의 노인전문병원이 건립돼 2002년 문을 연다. 지금까지 소규모 치매요양원이나 노인을 위한 요양소 등은 있었으나 요양을겸한 전문병원이 세워지기는 전국에서 처음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산업화에 밀려 소외돼온 노인들,특히 상대적으로 소득이낮은 계층도 큰 경제적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는 노인전문병원을 짓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중랑구 망우동 235의 1외 5필지 1만1,713㎡의 부지에 들어설 노인전문병원은 234억원이 투입돼 연면적 8,413㎡,지하1층,지상4층 규모로 200병상을 갖추게 된다. 시는 최근 설계안을 현상공모,당선작을 확정해 실시설계를 진행중이며 내년 상반기부터 착공할 계획이다. 이 병원은 외래 진료기능과 함께 노인성 질환자의 심리·신체적 특성을 감안한 호스피스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족들이 별도의 방에서 입원 노인들을 관찰하며 간병활동을 할 수 있는 데이케어센터도 갖추게 된다. 서울시는 수익성을 기대할 수 없는 병원 특성을 감안,추후 운영주체를 선정한 뒤 병원 운영비의 70% 가량을시가 부담하고 나머지는 진료 수익금으로충당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인성질환의 특수성을 고려해 수림대 산책로와 자연 채광이 가능한 중정(中庭)을 마련하는 등 전문병원과 호텔,실버타운의 기능을함께 갖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인터뷰-조정근 원불교 교정원장

    “원불교는 1999년 한햇동안 정신개벽 운동과 은혜심기 운동에 힘써 우리사회를 맑고 밝고 훈훈하게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할 것입니다” 원불교의 행정 총책임자인 조정근(65) 교정원장은 올해 활동방침을 ‘정신개벽’과 ‘은혜심기’운동 등 두가지라고 말했다.이중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전북 전주에 치매요양병원을 건립하는 것.이미 대지를 구입,설계에 들어가 90병상 규모로 내년에 개원할 예정이다. “치매에 걸리면 효자 효부가 없습니다.치매노인문제는 집안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가 됐습니다”.따라서 종교단체가 나서는 건 당연하다는 게 조원장의 생각이다.이와함께 해외 원불교 교육기관의 효시가 될 선학(禪學)대학원을 미국 필라델피아 교당에 설립,내년 9월에 원불교학과와 침구과를 개설할 예정이다.이미 교사(校舍)와 교수진은 확보해 놓았으며,앞으로 불교학과와 동양학과도 설치하기로 했다. 이와함께 교역자들의 일체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남자 교무복장을 빠른 시일내에 확정,오는 4월 28일 대각개교절부터 착용할 계획이며 교서 번역사업과청소년을 위한 인성교육 등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세기말을 앞두고 일부 종교단체에서 부는 종말론에 대해 조원장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연기론적(緣起論的) 세계관으로 보자면 새 천년을 앞두고 일부에서 일고 있는 종말론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장애자재활원과 호스피스병원 개원,원음방송 개국 등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올해는 북한돕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라고.朴燦
  • 말기癌환자 돌보는 인천간호사회 호스피스팀

    5일 인천시 남구 주안6동 세명한방병원 5층 입원실.각종 노년 질환으로 임 종을 앞둔 金모할머니(84)의 표정은 편안하기 그지없다. 인천간호사회(회장 洪昌子) 소속 호스피스 崔榮順씨(46)가 곁에서 수발을 하며 할머니를 보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金할머니는 “崔씨가 대소변을 받아주는 등 자식들도 꺼리는 일을 해줘 너 무나 고맙다”고 말했다. 인천간호사회는 지난 94년 11월 회원 11명으로 호스피스팀을 구성,지금까지 120여명의 환자들을 무료로 돌봐왔다. 호스피스란 말기 암환자 등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을 간호하는 의료시설이나 사람을 뜻한다. 간호사회는 환자나 가족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1주일에 2차례씩 호스피스를 병원이나 집으로 보내 환자를 돌보게 하고 있다.충실을 기하기 위해 대개 간호사 1인당 환자 1∼2명만 담당하게 한다. 이들은 환자의 육체적 고통을 줄이는 의학적 처방과 함께 평온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일을 한다.성경이나 불경 을 읽어주고 환자와 많은 대화를 나눠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어준다. 약사·영양사·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보조팀과 자원봉사자 50여명도 호 스피스 활동을 거든다.자원봉사자들은 주 5일씩 환자의 집을 찾아가 식사를 제공하고 목욕·청소 등을 해준다. 간호사회는 이밖에 지난해 10월 고아원인 명화원과 향진원을 방문,김장 등 월동준비를 해줬고 11월에는 월미노인정 등 5개 노인단체를 찾아가 유류를 전달하고 건강진단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펴고 있다. 인천l金學準 hjkim@ [인천l金學準 hjkim@]
  • 조리·피부미용·번역·보육·논술지도…/140개대,실직자 직업훈련

    ◎1,293개 과정 새달 개강… 7만여명 수용/자격증 취득 305종목 포함 최고 2년 교육 IMF 한파 속에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 및 구직자들을 위한 취직 교육훈련에 대학과 전문대 등이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오는 3월1일 개강하기 위해 취직 교육과정을 준비 중인 대학과 전문대는 모두 140개교이다. 정부는 고용보험기금 및 일반회계에서 모든 비용을 지원한다.이를 위해 고용보험기금에서 1천3백50억원,일반회계에서 65억원을 책정해 놓은 상태이다.따라서 수강료는 무료이다. 69개 대학이 723개 교육과정,71개 전문대가 570개 교육과정을 개설한다.수용인원은 7만2천678명이다. 교육기간은 짧게는 2개월,길게는 2년이다.교육과정 가운데는 자격증을 딸수 있는 것만도 305종류에 이른다. 강좌는 조리사,피아노조율기능사,피부미용사,포장디자인,번역사,컴퓨터속기사,카지노딜러,칵테일기능사,증권투자분석,세무사,제과제빵사,주택관리사,소자본창업,보육교사,논술지도자,호스피스전문교육 등으로 다양하다. 각 대학은 수강자들의 취업을 위해서도적극 나설 계획이다. 교육 대상은 지방노동사무소 등에 구직 등록을 했거나 실업자로 재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이다. 고용보험에 든 1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실직한 사람이면 모두 대상이다.또 고교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한 신규 미취업자도 포함된다.고용보험에 가입한 교육 희망자가 몰리면 30세 미만의 실직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이유 없이 중간에 그만둔 뒤 1년이 지나지 않았거나,동일 직종 동일 수준의 훈련을 새로 받으려 하거나,지방노동관서의 장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한 실직자는 교육대상에서 제외된다. 훈련기관으로 참여하려는 대학이나 전문대는 훈련시작 1개월 전까지 관할 지방 노동사무소에 훈련계획서를 제출,승인을 받아야 한다. 개설학과 등에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허용한다는 것이 노동부의 방침이다. 성균관대 사회교육훈련원 최태성 팀장(55)은 “국가의 위기극복을 위해 대학들이 적극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대학들은 실직자들을 위해 질 좋은 취직 교육은 물론 취업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불치병 저소득층 환자 고통덜기/강북구,호스피스간호 나섰다

    ◎자치단체 최초로 암환자 27명 돕기/주2∼3회 가정방… 소득·청소까지 불치병으로 죽음이 임박한 저소득 환자들을 돕기 위해 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선다.이른바 호스피스(Hospice) 간호로 암 등 불치병 말기 환자를 찾아가 고통을 덜어주며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보살피는 프로그램이다.선진국에서는 종교기관을 중심으로 일반화돼 있다. 선두 주자는 서울 강북구(구청장 장정식).조만간 서울시내 모든 자치단체로 확산될 전망이다. 강북구의 호스피스 간호 대상 암환자는 모두 27명.60대 이상 노인이 대부분이다.가족없이 단칸 셋방에 사는 등 입원 치료는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생활이 어렵다.거동마저 불편해 욕창에 걸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강동구 보건소 간호사들은 2∼3명씩 짝을 이뤄 이들의 가정을 방문,돌보고 있다.물수건으로 세수도 시켜주고 용변도 도와준다.소독이나 집안 청소도 해준다. 특히 통증이 심한 환자는 관내 호스피스 전문기관인 「모현 호스피스」 소속 수녀들이 직접 나와 돌본다. 아직은 간호사가 부족해 환자 한사람을 1주일에 2∼3차례밖에 방문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백영주 강북구 지역보건과장은 『우리구에만 고혈압·당뇨·뇌졸중·반신불수 등 당장 간호가 필요한 사람이 현재 돌보고 있는 암환자를 포함해 700여명에 이르지만 간호사는 10명에 불과하다』면서 『복지예산이 많이 책정돼 더 많은 사람들을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북보건소 간호사 박경옥씨(35·여)도 『60대 노인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모자가정의 한 학생은 2년전 백혈병에 걸렸으나 수술비가 없어 수술을 못하고 있다』면서 도움의 손길을 호소했다.
  • 원불교 오늘 제81회 대각개교절/전국12개 교구 다양한 경축행사

    오늘은 원불교 최대 경축일인 제 81회 대각개교절. 대각개교절이란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1891∼1943)가 1916년 큰 깨달음을 얻고 원불교를 창교한 날로 1백20만 원불교도들에게는 가장 큰 명절이다. 원불교는 올해 기념 행사를 ▲법잔치와 ▲은혜잔치 ▲놀이잔치로 분류,전국 12개교구를 중심으로 경축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법잔치는 기념식과 법회 등을 통해 깨달음의 기쁨을 나누고 은혜잔치는 보은과 봉공활동을 통해 사회와 더불어 은혜를 나누는 행사이며 놀이잔치는 문화활동과 놀이행사를 통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경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북 익산시 중앙총부를 비롯,전국 각 교당은 「깨달음의 빛,온 누리에」를 주제로하는 올해 본 행사로 28일 상오 10시 법잔치 경축 기념식을 개최한다.이에 앞서 중앙총부에서는 22일부터 28일까지 법잔치 특별기도식을 갖고 대각의 의미를 되새기며 평화와 남북 통일을 기원한다.지난 27일에는 원광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원불교의 심장병 어린이 돕기 10주년과 원광대학교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는 KBS 「열린 음악회」가 열렸다.또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수술,무료개안수술,불우환경 청소년돕기,호스피스 활동홍보 및 회원모집 배가운동,남북한 삶운동 (지난 15일∼5월 31일) 등과 함께 환경보호대회(지난 20일),전국어린이 민속큰잔치(5월 5일),원불교 성가합창제(5월 19일)등이 개최되며,전국 12개 각 교구도 지역 특성에 맞춰 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좌산종법사는 경축사를 통해 『대각의 교법을 통해 천지를 개벽시켜이 땅에 낙원을 이룩할 것이니,올해 개교절이 이러한 서원을 법계에 충만시켜 개벽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날이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김원홍 기자〉
  • “신앙의 힘으로 고통 극복”/교황 「세계 병자의 날」 맞아 강론

    ◎의료인·자원봉사에 “지속적 지원” 당부 11일은 로마교황청이 제정한 제4차 세계 병자의 날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병자의 날을 맞아 담화를 통해 『우리는 고통받고 있는 여러분이 결코 절망하거나 굴복하지 말고 신앙의 힘으로 모든 형태의 악에 대항하기 바란다』며 『여러분의 고통은 구원의 도구가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이익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통을 신비롭게 완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미를 방문중인 요한 바오로2세는 11일 멕시코의 과달루페에서 거행될 세계 병자의 날 행사에서 강론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의료인과 자원봉사자의 많은 공헌도 어려움을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므로 육체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지원도 늘어나기 바란다』고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한편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는 10일 하오 가톨릭대학교 교정에서 가톨릭중앙의료원,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가톨릭간호사회 후원으로 환자와 의료인·자원봉사자가 참가한 가운데 병자의 날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 성악가 김자경(인물탐구:86)

    ◎오페라와 결혼한 “영원한 프리마 돈나”/“독특한 릴릭 소프라노” 50년 미 카네기홀 진출/68년 자비로 「오페라단」 창단… 정기공연 49차례/지난 10월 국내 첫 야외오페라 무대… 최근 국악에 입문 「앵두나무 가지에 앉아 재잘거리던 파랑새가 방안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김자경을 낳았다」는 그 어머니는 「새소리가 어찌나 맑고 투명하던지 나의 딸 자경은 노래하는 사람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그리고 그 딸은 지금도 독창회 무대에 서서 「불굴의 오뚝이」「작은 거인」 「분투의 또순」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의지의 원로다.얼핏듣기엔 드세고 거센 여장부의 이미지지만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해맑은 미소와 화사한 「이팔청춘」의 마음씨에서 우리의 「영원한 프리마 돈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지난해만해도 희수기념 독창회를 비롯,올해도 불우이웃들을 돕는 호스피스 건립기금을 위한 독창회를 열었고 연말에도 자선음악회 스케줄이 잡혀있다.벌써 19번째다.지난 75년당시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손수운전을 하고 돋보기 없이 글씨를 읽고 쓸수 있는 눈과 귀를 주신 신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그는 맹인들의 개안수술을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안수술 사람은 50여명이 넘는다.「두손을 모으고 마치 기도하듯,신을 찬미하듯 혼신을 다하는 그의 노래는 진심으로 그들이 눈뜨게 되기를 비는 순수함과 열정이 담겨있다」는 게 작곡가 김동진씨의 말이다. ○맹인 50명에 개안수술 만년의 그의 독창회중 가장 감명깊은 것은 4년전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결혼 50주년 기념」독창회라고 할 수 있다.수많은 자선음악회중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노래한 이 무대는 그의 부군이자 서양화 일세대였던 심형구화백을 추모하는 자리로 「그리움」「못잊어」「그대있음에」「청산에 살리라」등 「부군에 대한 사모」의 정이 절절히 넘쳐 청중에게 찡한 감동을 안겨주었다.「나의 일생을 맡긴지 21년,2남1녀와 함께 나의 수많은 연주를 자상하게 보살펴주시더니 청천벽력과도 같이 그는 예고도 없이 떠나가버렸고 29년이란세월을 혼자서 살면서 그 파란만장한 사연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그날 음악회 팸플릿에 쓴 글이다.그러나 『68년 성은 「오」씨이고 이름은 「페라」인 오페라와 결혼했고 이제는 김자경이가 오페라인지 오페라가 김자경인지 분별할 수 없이 일체가 되었다』고 일가를 이룬 예술가다운 의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김자경은 경기도 개성에서 약방을 경영하던 김영환씨와 백열소여사의 외동딸로 태어났다.3살되던해 서울에서 감리교 신학교에 다니게 된 부친을 따라 이사,이화유치원과 이화보통학교에 다니다가 다시 원산에서 루씨여학교를 나왔다.그는 노래 뿐만 아니라 운동에서 미술 수학 물리 화학등 못하는게 없었고 언제나 전교수석,어릴 때부터 오페라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아들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도쿄여의전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그러나 도쿄로 떠나기 전날밤 그는 어머니를 붙들고 「어머니가 동생하나만 더 낳았어도 나는 성악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한탄한 것이 부모의 마음을 움직여 부친은 당장 「성악을할것」을 권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성악공부는 이화여전을 졸업하던해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신인음악회를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고 도미유학길에 오르기전까지 이화여고에 임시음악교사로 취직한 것이 심형구씨를 만난 계기가 된다.도쿄미술학교출신의 「멋쟁이화가」 심형구와 「만인의 애인」이자 「한국 최고의 소프라노」 김자경의 러브로맨스는 숱한 화제를 장안에 뿌리면서 41년 12월 드디어 결혼,「가정과 예술을 병행시키는 멋진 가정을 이루자」는 다짐과 함께 부군의 주선으로 김자경은 31세 되던해 오랜 숙원이던 줄리어드음악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그러나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무대에서 세기적인 소프라노 릴리폰즈의 노래를 듣고는 자신의 음악적 자질과 소양에 회의를 느낀 나머지 그는 한동안 심한 좌절감에 빠지고 말았다.단한번도 의심해 본적 없던 자신의 기량이 거대한 오페라가수 앞에서 무색해진 순간이었다.「메트로폴리탄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를 자책하며 밤새도록 흐느끼고 있을 때 어디선가 비몽사몽간에 「너는 왜 세계적인 성악가만을 고집하는가.열심히 노력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그들을 세계무대에 세우라」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때마침 미국에 다니러 왔던 김활란박사도 「나는 릴리폰즈보다 네 목소리가 백배 더좋다」고 격려해주었다. ○31세때 줄리어드 입학 『그래,나두 해내고야 말겠다』 그는 굳게 결심하고 그 길로 지도교수를 찾아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무대에 서겠으며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열겠다’고 선언했다.교수는 놀라서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하려면 먼저 학교측이 주최하는 오디션에서 통과해야 한다고 상기시켰다.그는 7명의 심사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벨리니의 「노르마」중 「카스타티바」를 열정적으로 불렀고 「독특한 음질의 아름다운 릴릭 소프라노」로 인정되어 1950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카네기홀 무대에 서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메트로폴리탄 가수들과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카르멘」에 출연,남부 60개 도시에서 80회연주를 비롯,한번 투어에 나서면 3개월이상 걸리는 전미순회공연에도 빠지지 않게되었다.그러나 좋은 일에는 흔히 마장이 생긴다고 한 것처럼 그가 「종달새처럼 푸른 창공을 마음껏 비상하며 노래부르고 있을 때」 그해 62년 여름,방학을 맞아 속초로 스케치여행을 떠났던 부군의 익사소식이 날아들었다. 이때의 충격으로 전신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등 긴 슬픔에서 헤어나기까지 실로 오랜시간이 걸렸다.그러다가 65년 봄,호화여객선 빅토리아호를 타고 세계일주 여행길에 오르면서 48세의 나이로 「퀸 오브 빅토리아」에 선발되자 당선 사례로 아르디티의 「일바치오」와 「오솔레미오」를 부르는 동안 그의 내부 깊숙이 움츠려있던 프리마 돈나의 기백과 보석 같은 기량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불굴의 투지” 여장부 유럽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는 계획했던 대로 김자경 오페라단을 창단했다.그리고 그해 5월 창단기념공연으로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를 준비하면서 티켓을 들고 각기업체와 동창 후배들을 찾아다녔다.그러나 그들의 호의와 적극적인 협조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제작비 때문에 더이상 버틸 수 없이 창단 3년만에 문을 닫는 위기를 맞는다. 그는 자살을 생각했으나 「죽을 결심으로 뛰어들면 안될 일이없다」고 다시한번 자신을 일깨웠다.그때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진 고초와 수난과 시련」을 거치면서 후원회와 고정관객 확보로 그의 오페단은 서서히 기반을 잡아나갔다.오페라단창단 만27년에 정기공연 49회,4년전부터 이사장직에 머물면서 지난 10월에는 1만2천명을 수용하는 잠실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레하르의 3막 오페라 「메리 위도우(즐거운 과부)」로 국내 처음 야외오페라를 해냈고 내년도 제50회 「카르멘」 캐스팅을 위해 최근에는 뉴욕에 다녀왔다. 호는 심설,「정신을 집중하여 노력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이루어진다(정신일도 김석가투)」는 그의 신조는 여전히 손수 차를 몰고 지난봄에는 한양대대학원 국악과에 입학,새로 우리「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페라의 줄기찬 한 흐름속에서 그는 불굴의 의지로 우뚝선채 음악성취 뿐 아니라 그늘지고 병든 이들에게 「이세상의 빛」을 실천하는 「천사」이며 그들을 위한 그의 목소리는 시들줄 모르는 「영원한프리마 돈나」로서 우리시대에 찬연한 빛을 발한다. ◇연보 ▲1917년 경기도 개성 출생 ▲40년 이화여전 졸업 ▲41년 제1회 독창회 ▲48∼50년 미 줄리어드음악학교 성악전공,「라 트라비아타」주역,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51∼58년 미남부 60개 도시순회공연,귀국독창회 ▲58∼83년 이대성악과 교수 ▲60년 오페라 「오델로」주역 ▲62년 국립오페라단 부단장 ▲65년 유럽지역 성악교육시찰 ▲68년 김자경오페라단창단,단장.베르디 「춘희」이후 49회 공연 ▲75년 제1회 「김자경 가곡의 밤」,국제음악인대회(IMC) 참가 ▲79년 김자경 오페라 관현악단창단 ▲81년 대한민국 예술원 정회원 ▲82년 한·미수교1백주년 기념독창회(워싱턴 케네디센터) ▲86년 김자경 오페라단 소극장 청소년부 창설기념 「노처녀와 도둑」 공연 ▲87년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88년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 ▲91년 결혼 50주년기념 독창회 ▲93년 홍난파선생 추모독창회 ▲94년 희수 독창회 ▲95년 호스피스 건립기금마련 독창회(19회),한양대대학원 재학중,김자경 오페라단 이사장 대한민국 예술원상·대한민국 문화훈장은관(74년)·중앙일보문화대상(76년)·국민훈장 석류장(83년)·세종문상(87년)·프랑스 문화예술훈장(92년)·문화공로패(93년)
  • 「X세대」 시어머니(송정숙칼럼)

    황금띠에 KBS­TV가 내 보내는 드라마 『당신이 그리워질 때』에 나오는 중년의 시어머니가 요즘 화제인 것 같다.이른바 X세대인 며느리는 직장을 가지고 자기일을 하면서 생활비도 안들이고 아이는 시어머니가 길러주는 편한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그래선 시어머니는 『내가 즈네들 애나 길러주는 사람이냐』고 심술이 나서 남편과 늙은 자기시어머니의 뜻에 맹렬히 반기를 들고 젊은 것들을 내쫓으려 한다.이를테면 「X세대 시어머니」다. 이 시어머니가 비슷한 또래인 초로의 주부들에게는 대상만족이 되는 모양이다.이제는 대가족을 거부하고 핵가족으로 살려고 하는 젊은 세대는 고전이 되었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안맡으려 하고 며느리는 오히려 시부모에게 얹혀서 개개려고 하는 타산적인 「신세대」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최근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그자리에 있던 중년의 한 여성이 자기는 시자가 붙은 식구는 다 싫다고 말했다.얼마나 싫은가 하면『만약에 시어머니가 금덩어리를 이고 대문앞에 와서 「아나 여기 금덩어리 가지고 왔다」한다면 「그것만 내려놓고 가세요」할지언정 가지고 들어오시라고 할 생각은 없을 만큼 싫다』는 것이었다.그렇게 말한 여성이 보통주부도 아니고 여류작가여서 듣는 동안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그런데 그말을 듣고 있던 좌중의 젊은 주부 하나가 냉큼 이렇게 받는 것이었다.『선생님,그거 모르세요? 옛날에는 맛있는 걸 갖다가 며느리네 냉장고에 넣어놓기만 하고 가 주는 시어머니가 제일좋은 시어머니였는데요,요새는 그걸 가지고 와서 아파트경비실에 맡겨놓고만 가는 시어머니가 최고래요』 이렇게 발칙하고 가당찮은 며느리들이 그득한 세상이므로 아직 젊은 시어머니가 아들내외와 어린 손녀를 한사코 내쫓으려 하는 드라마를 보며 시어머니들이 박수를 칠만도 하겠다.죽어라고 공부 잘하게 만들어서 명문대학 출신으로 키워놓았더니 제아내밖에 모르는 아들도 이 드라마에는 나온다.제아이를 키워주는 어머니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타박만 한다.요즈음 우리가 기르고 있는 대개의 아들들이 그 비슷하다.이런 아들 며느리에게 노후를 맡길 생각은 처음부터 안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게 난감한 세상이 되어가므로 싱가포르에선가 「효도법」이 만들어졌다는 뉴스가 들어오자 귀가 번쩍 띄어 사방에서 관심을 보이며 우리도 따라 해보자는 여론이 일어났다.특히 70노인이 아흔넘은 노모의 목을 조른 사건이 일어나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법으로 강요된 「효도」,그것이 지금처럼 자란 젊은이들을 바꿔놓을 수 있겠는가.법 때문에 마지못해 모시는 봉양이 그나마의 부모 자식관계를 또 얼마나 황량하게 만들겠는가.무엇보다도 그토록 이를 갈며 시부모를 싫어하는 며느리와 그 남편인 아들의 봉양을 받는다는 것에 이제 많은 시부모들이 미련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그렇다고 딸은 어떤가.외국생활을 하는 젊은 부부들은 시어머니보다 장모를 선호해서 비행기태워 모셔간다.그러나 그것은 장모가 딸을 위해 산후구완도 잘하고 헌신적으로 살림도 해주기 때문일 뿐이다.장모의 영향력이 큰 미국사회에서는 「장모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받아본 사위」가 압도적 다수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장모죽이기」가 유머의 소재로 제일 자주 동원도 된다. 그러니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너무 오래 살게 되어 이런 자손들에 의해 길에 버릴 수 밖에 없는 딱한 대상이 되거나 차라리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인생의 끝을 맞는 일이 모든 부모들은 공포스럽다.더욱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부모를 목누르는 패륜의 죄를 멍에로 씌우는 운명 같은 것을 부모는 상상도 하기 싫다. 이미 어차피 혼자살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그들은 어느날 혼자맞게 될 죽음과 부패되도록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자신의 주검에 대한 악몽속에 시달리며 살기도 한다. 그런 노년들이 바라는 것이 그다지 과한 것은 아니다.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비참한 「양로원」은 아닌 그런대로 지낼만한 노인시설에서 늙음을 보내다가 호스피스 봉사의 도움을 받으며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인생을 마감하고 싶을 뿐이다. 식민지세상과 분단과 전쟁과 그 질기던 가난한 시대의 터널을 뚫고 오늘을 이룩해온 오늘의 노인들은 적어도 그런 정도의 소망쯤은 충족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연금이나 보험 같은 재산으로 그런 것을보장 받을 능력이 있는 노령도 늘어가고 있고 자식들도 「흉악한 불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의무를 수행할만한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아직은 부모를 양로원에 보냈다는 「누명」이 부담스러워 모시는 시늉을 하고 있는 자식들의 위선적인 「모시기」에서 서로가 벗어나기 위해서도 이제는 그 해법이 시급해졌다.
  • “보람에 산다”자원봉사 참여 늘어/청소·세탁에서 호스피스까지 다양

    ◎주부·대학생중심… 전국서 3만명 활동/신분보장·교통비지원·보험혜택 절실 88서울올림픽이후 사회봉사에 대한 국민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람들이 적지않다.자원봉사는 남을 도움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을수 있을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보완,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는 조그만 디딤돌이 된다. 전문가들은 자원봉사가 이같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수 있기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자원봉사활동이 국민들 사이에 생활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최근들어 자원봉사인구가 크게 늘기는 했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곳을 충당하기에는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 실정이다.또 홍보부족 등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절차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자원봉사의 실태와 접근요령 등에 대해 소개한다. ▷현황◁ 현재 각종 사회복지시설이 자원봉사자의 수급을 맡아 활발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최근에는 대학생 주부 직장인 뿐만아니라 전문직종사자의 참여도 느는등 자원봉사의 저변이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시설봉사에서 가정방문봉사 위주로 경향이 바뀌었다. 자원봉사자의 전체숫자는 가장 최근 자료인 91년도 보사부 통계에 의하면 2만8천명이지만 지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자원봉사자의 70%이상은 여성이며 주부와 학생 종교인 직장인 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이들의 활동은 청소 세탁 취사 심부름 말벗 등 단순노력봉사에서 부터 상담 치료 간병 학습지도등 전문적 영역까지 매우 다양하다. 자원봉사자의 모집과 관리는 각 사회복지시설에서 개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주요시설의 활동상황은 다음과 같다. ◇여성자원활동센터=여성유휴인력 활용을 위해 정무제2장관실 산하에 설치된 여성자원봉사자 모집기관으로 전국 1백10개 시군구의 1백25곳에 설치되어 있다.여성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교육및 배치를 맡은 부녀복지관 여성회관같은 지역센터로 보내주는 역할을 맡고있다. 서울시의 경우 22개구청의 가정복지과 부설 등으로 26곳에 설치된 여성자원활동센터에서 자원봉사 신청자를 모아서 지역센터인 마포·구로·노원부녀복지관에서 이들을 교육시킨후 사회복지시설과 연결해준다.여성개발원의 인력은행을 이어받아 91년 7월에 시행된이래 1만여명이 거쳐갔다. ◇재가복지봉사센터=92년부터 보사부 시행에 의해 3백평이상의 종합사회복지관에 부설되어 현재 전국적으로 1백44군데에 이른다.파견된 2명의 사회복지사가 자원봉사신청자의 희망에 맞춰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 봉사할 곳을 정해주면 자원봉사자는 주1회 정도 무의탁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 등의 가정을 방문,각종 봉사활동을 벌인다. ◇지역복지봉사센터=사회복지시설의 협의체인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부설로 전국 15개 시도에 설치되어 있다.신청자에 대해 사회복지와 자원봉사 일반에 대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교육을 시킨후 원하는 봉사처와 연결해준다.91년이후 3백5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순수민간단체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를 중점적으로 모집·관리하고 있다.장애인·노인·아동청소년복지관련 자원봉사활동에 현재 1천5백여명,32개 단체를 연결해주고 있다. ▷개선점◁ 대부분의 모집기관들이 절대적인 홍보부족에다 분산되어 있어 많은 자원봉사자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게다가 자원봉사자에 대한 신분보장이 미흡,사기 저하로 중도에 그만두는 예도 적지않다.자원봉사에 대한 정책과 지원 없이 과도한 봉사정신만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나라 자원봉사의 실태.자원봉사자들에게 최소한 교통비와 중식비를 제공하고 봉사활동 중에 다치는 경우에는 전액 보험처리해주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참여방법◁ 자원봉사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갖는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자신의 형편과 능력에 닿는 조그만 봉사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봉사를 할 마음이 있더라도 선뜻 할 자신이 없으면 친구나 이웃과 함께 시도해 보는것도 좋다.1주나 2주에 한차례씩 봉사하다가 능력이 생기면 1주에 2회이상 봉사할수도 있으며 호스피스활동등 보다 전문적인 봉사활동으로 옮길수도 있다.아무리 쉬운 봉사활동이라도 꾸준한 인내와 정성을 요하므로 성급한 성취감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가까운 모집시설에 전화나 면담으로 보다 자세한사항을 안내받을수 있다.
  • 호스피스 활동 김리호할머니(봉사하는 삶:6)

    ◎말기암 등 임종앞둔 환자들에 말 벗/아름답게 세상마감 하도록 위로/무의탁 환자 수발·끼니마련까지/“좌절·고통 극복하는 이들 모습서 성스러움 느껴” 『죽음을 목전에 둔 말기 암환자들이 형언 할수 없는 고통과 좌절을 극복해내는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올해 일흔셋의 김리호(호 소전)할머니.여교장1호로 지난 86년 40여년의 교직생활에서 은퇴한 그는 호스피스활동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있다.그 자신 기관지천식과 퇴행성백내장등으로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태지만 『늘그막에 이정도의 건강함을 주신것은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매주 한두번 각종 말기암과 노환등으로 임종을 맞이한 환자의 가정을 방문,이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곁에서 위로해준다. 갑작스런 죽음선고를 받고 극도의 분노와 불안,좌절상태에 빠진 환자들에게 그들이 가족에게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살아온 삶이 얼마나 긍지로운 삶인지를 알게하고,가족과 친구사이의 묵혔던 미운감정과 아쉬움을 풀도록 해 아름답게 세상을 마감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가족이 없는 환자들의 경우엔 간호봉사자와 함께 배변을 치우는등 그들의 수발노릇도 함께 하며 호주머니돈을 털어 끼니와 간식을 마련해준다. 환자들이 온몸에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해달라』며 울부짖을 때는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김할머니.몇년을 해왔어도 이들의 집을 방문하기 전에『성모님 나,울지 않도록 해주세요』하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처음엔 세상의 모든 것에 마음을 닫고선 제가 찾아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요.그러던 이들이 나중에는 몇시간전부터 방문을 열어놓고 저를 기다릴때는 보람을 느낍니다』 김할머니가 호스피스봉사를 하게 된것은 강원도 용평군 용원중학교의 교장직을 지난 86년 정년퇴직하고 3년뒤인 89년 「자원봉사자 능력개발원」에서 호스피스교육을 받고 부터. 그러나 사실 김할머니와 환자들과의 인연은 지난 19 3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경기여고와 경성여자사범대학에 다니던 시절,당시 카톨릭 대학의 이재현신부님을 따라 다니며 늙고 연고자 없는 불치환자를 돌봐주는 일을 했던것이 일생동안 떨칠수 없었던 환자에 대한 연민의 시작이었다. 김할머니의 호스피스봉사자세는 카톨릭 회관 사회복지관(명동성당옆)에서 함께 일하는 87명의 젊은 가정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게 항상 청량한 자극제가 된다. 『환자들에겐 제가 교장선생이었다거나 좀더 배웠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습니다.그냥 그들이 토해내는 괴로움을 들어줄 뿐이죠』 환자들에겐 그냥 「루시아 할머니」로 통하는 김할머니는 얼마전 장암을 앓다 세상을 떠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낸다.『제가 가면 배를 쓸어달라고 자신의 불룩한 배에다 내손을 올리곤 했죠.간호사 출신인 며느리가 자신의 이불을 자주 크레졸로 소독한다며 전염병도 아닌데 그런다고 그토록 섭섭해했습니다.임종시에는 며느리에게 고마웠고 사랑한다는 말을 남긴채 아름다운 죽음을 맞았죠』 좀더 밝고 손쉬운 봉사일을 찾아보라는 자식들의 권유에도 불구,김할머니는 자신이 아파 더이상 거동을 못할 때 까지 이일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다른 이들을 위한 거창한 봉사가 아닙니다.나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는 「나를 위한 봉사」일 뿐입니다』 여러차례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다 「가정호스피스일이 홍보가 돼 환자의 보호자들이 자원봉사자들을 찾는 기회가 될것같다」는 주위의 설득에 마지못해 인터뷰에 응해준 김할머니가 하는 겸손의 말이다.
  • 가톨릭 호스피스협 초대회장에 선출 이소우교수(인터뷰)

    ◎“죽음 편안하게 맞이하도록 돕죠”/교육받은 자원봉사자가 사경환자 돌봐 죽음을 경건하게 받아들이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 흐름을 주도할 순수 민간단체인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가 최근 창립됐다. 초대회장에 선출된 서울대 간호대 이소우교수(50). 이교수는 『죽음은 누구나 맞게 되는 하나의 통과의례입니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해 피하거나 금기시하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여 고통없이 살다가 영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최종목적』이라고 밝힌다. 이번에 창립된 한국가톨릭호스피스협회는 지난 90년부터 호스피스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다 우리 실정에 맞는 활동단체의 필요성이 제기돼 발족된 것.호스피스운동 봉사요원 교육,각 호스피스기관간의 정보교환및 친선 도모,호스피스사례 공동연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영국에서 처음 시작돼 지난 67년 호주의 메리트레시수녀에 의해 도입된 호스피스운동은 의학적 치료불가능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육체적 고통을 조절하거나 경감시켜주는 것은 물론 정신적 괴로움까지 포함해 환자들의 하루하루 삶을 더욱 가치있고 경건하게 수용할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 호스피스운동이 더욱 절실한 것은 죽음에 대한 접근방식과 현대사회의 핵가족화 현상이라고 진단한 그는『외국의 경우 불치병에 걸려 죽음에 가까워지면 마음의 정리를 하는데 익숙하지만 우리 사회는 너무「치료만이 능사」라는 사고가 팽배해 있는 점과 핵가족화 됨으로써 이런 환자를 돌볼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도 이유라고 지적한다. 호스피스운동은 의사·간호사·사회사업가·목회자·호스피스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 등이 한팀을 이뤄 활동한다는 이교수는 『호스피스운동이 외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므로 우리의 전통적 관념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만큼 한국인이 좋아하는 형태로 바꿔주는 문제와 특정 종교에 가깝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기독교와 불교등 다른 종교와도 유대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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