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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자지구 차량 폭탄테러/이 軍 등 9명 死傷

    【가자시티 AFP AP 연합】 가자지구 이스라엘 정착촌 부근의 한 교차로에서 28일 오전(현지시간) 차량 폭탄 공격이 발생,이스라엘 병사 1명이 숨지고 어린이 3명이 다쳤다고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과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폭탄을 실은 차량이 교차로 부근에 있던 이스라엘 통학버스 옆에서 터졌다고 전하고 폭탄 폭발로 버스에 타고 있던 학생들과 정착민들을 호송하던 이스라엘병사가 변을 당했다고 말했다.
  • 日 경제구조 대개혁 첫 발/‘거품’ 규명 착수 배경

    ◎80년대 호황때 과잉투자·정책실패 해부/금융부실 과정 파헤쳐 국제적 교훈 제공 【도쿄=黃性淇 특파원】 일본이 지금의 경제위기와 관련,‘거품경제’의 전개 상황을 심층 비판,분석하기로 한 것은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사전 준비작업으로 분석된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자칫 세계 제2의 일본 경제가 함몰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카이야 다이치(堺屋太一) 경제기획청장관은 이른바 ‘거품경제’의 전개와 몰락을 철저히 연구해 다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금의 심각한 경제위기가 일단은 80년대 후반 호황 때 정부와 민간기업 모두가 경제를 추스르지 않았고 잘못된 정책과 과도한 투자 등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는 것 같다. 특히 90년 5월 땅값과 주가 폭락을 신호로 거품경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산업이나 금융계의 구조조정에 일찍 손을 대지 않은 점 등이 이번 연구에서 밀도 있게 지적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의 경우도 경쟁력 여부를 떠나 모두 금융기관을 함께 끌어 안고 가는 ‘호송선단식’ 보호정책을 고수함으로써 현재의 금융불안을 야기했다는 대목에서도 통렬한 비판이 가해질 전망이다. 사카이야 장관이 밝혔듯 일본의 ‘거품경제’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도 귀중한 교훈이 될 것 같다.
  • 안중근 이토 총살(秘錄 南柯夢:27)

    ◎탕! 하얼빈 1번플랫폼 충성… 일제원흉 즉사/이토 러시아 가던길서 사망/명치천황으로선 두손 잃은셈/“삼천리강토 원수 갚았을뿐” 安의사 죽음앞서도 당당/여순감옥서 순국땐 구슬비마저 기차 30분 넘도록 안화 낙심하며 돌아서는데 그때 도착하는 모습이 그래서 막 뛰어가…(安의사 회고中) 1909년 10월26일 오전 10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이 나라의 외교권과 내정권을 강탈한 이토는 특별열차로 중국 만주의 하얼빈역에 도착하였다. 그때 원수 이토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안중근의사는 뒷날 회고하기를 “이토 그놈을 가딱하면 놓칠뻔 했네. 그놈의 기차가 아침 9시 도착인데 9시30분이 되어도 오지 않아서 그만 걸어서 돌아서는데 다리있는데 오니까 아! 그때 기차가 오는 것 아닌가. 그래서 막 뛰어가 그놈을 쏘아 죽였네 그려”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해서 일제침략의 거물 이토를 하얼빈역 1번 플랫홈에서 쏘아 죽였다. 이것을 우리는 안의사의 이토 총살이라 부르고 있다. 전 통감 이토(伊藤)는 저희 나라의 일로 러시아에 가게 되었다. 하얼빈역에 잠시 내렸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리더니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아! 동양의 패권을 쥐었다는 자가 끝난 것이라. 이토가 끝났다.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끝났다는 이야기이다. 이토는 한국민에 대해 원수일뿐 아니라 일본인에 대해서도 원수인 것이다. 금년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 79주년이 되는 해인데 안의사가 외쳤던 ‘동양평화’는 과연 이루어졌는지 의심스럽다.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뒤 조용히 잡혀가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으니 충의는 당당하고 의리는 빛났으며 위엄있는 풍도는 늠늠하니 뉘 감히 그를 꺾을 사람이 있겠는가. 안중군 의사는 당년 32세의 젊고 젊은 나이에 의거를 결심했는데 그의 참뜻은 아직도 후손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지은 ‘장부처세가(丈夫處世歌)’는 이렇게 외친다. 동포여 동포여 속히 대업을 이룰지어다/만세 만세 대한독립이로다. 안중근,그는 누구인가. 아무도 그 당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하얼빈에서 총을 쏜 소년은 뉘 집의 아들이었던가. 칼을 집고 바다를 건너갔다고 하는데 그의 선대는 알지못하겠으나 성은 안씨요 이름은 중근(重根)이라 하였다. 아이시절부터 칼 쓰기와 공차기를 좋아 했고 장성해서는 비분강개하고 활협(闊狹)의 의지가 강하여 남을 잘 도왔다. 또 나라일을 걱정하고 그 지략이 커서 사소한 일은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 이토가 러시아땅에 들어가는 기회가 있음을 미리 알고 그 길목에 숨어 있다가 이토의 얼굴이며 신장의 처수까지 알아두기 위해 이토의 사진 한장을 얻어 오래 익힌 뒤 즉시 단총(육혈포)으로 방포(放砲)해 그자의 가슴을 바로 맞추어 즉사케 하였으니 아! 위대하고 장하도다 안중근 의사의 공판투쟁은 참으로 용감하고 씩씩하고 눈물겨운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법률에 따라 조선사령부에 호송되어 며칠동안 심문을 받았다. 안중근은 청천백일과 같아서 한결같이 정정당당했고 끝내 굴하지 않고 말하기를 “대장부 사내가 되어 한번 죽음은 당연한 것이거늘 어찌 이처럼 고달프게 문초하는가. 원래 조선에서는 사람을 죽인 자에 대해서는 죽음으로 갚게 되어있다. 어찌 한치라도 사심이 있겠는가” 하였다.심문관이 또 묻기를 “너와 같이 공모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하였다. 안중근이 대답하기를 “조선의 이천만 동포가 모두 같이 공모자다”고 했다. 또 묻기를 “누가 너에게 이런 불법적인 일을 가르쳤는가” 하자 “하늘이 가르쳤다. 누가 가르쳤겠는가.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법대로 하라. 이토로 말하면 우리 삼천리 강토를 늑탈하고 오백년 종사(宗社)를 멸망케 하였으니 내가 그 원수를 갚은 것이다. 나는 귀국의 원로를 죽여 조선의 수치를 씻었다. 그러나 귀국은 나를 살인죄로 죽이려 들 것이니 구차스럽게 문답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조용히 죽음에 임했다. 이토는 일본 근대사에 있어서 제일가는 위인으로 추앙되고 있다. 그래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만엔짜리 일본 지폐에 그 얼굴이 찍혀 나왔다. 이토의 이력에 대해선 벌써 온 세계 역사책에 기록이 돼있으니 더 논하지 않는다. 그러나 열방(列邦)과 교섭하는데 있어 이토같은 거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같은 인물이 죽었으니 명치천황으로서는 두 손을 모두 잃은 것 같았다. 이토의 지략은 독일의 비스마르크나 미국의 워싱톤 보다 못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명치 천황의 혁명이 아니었다면 어찌 동서양 패권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옛날 제나라때 관중(管仲)과 안자(晏子)는 제후에게 패도(覇道)를 써 임금에게 신임을 받았으나 이토의 경우는 달랐다. 예로부터 영웅은 시대를 잘만나 공을 이루는 법인데 이토는 명치천황의 악정(惡政)을 혼자 자기 사업으로 전용(專用)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공로가 많다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역사에 안의사와 같은 이가 또 있으니 바로 창해역사(滄海力士)다. 그는 조선인이었는데 박랑사중(博郞沙中)에서 철퇴를 던져 진시황을 저격했으나 다음 수레를 잘못 맞춰 온누리의 영웅으로 불려왔으며 진(秦)나라가 마침내 망하고 말았다. 지금 안중근도 한번 단총을 쏘아 패권을 쥐고 있던 주인공을 꺼꾸러져 죽게 했다.그러나 일본은 점점 강해지고 조선은 반대로 멸망하니 이것이야 말로 일은 사람이 꾸미고 성패는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안의사는 죽음에 임하여 태연히 웃으면서 말하기를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려면 먼저 일본이 정략을 고쳐야 한다. 시간이 지나서 기회를 잃으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 追悔何及)”고 했으니 이 얼마나 앞 날을 꿰뚫어본 탁견인가. 안중근의사는 마침내 1910년 3월26일 10시 구슬비가 나리는 가운데 만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이날 푸른 하늘은 답답한 듯 하고 백일(白日)이 침침하며 숙숙(肅肅)한 기운이 육대주에 충만하였으니 두공부(杜工部 즉,杜甫)가 지은 시에 “영웅의 가슴에 눈물이 가득하다”고 한 것은 안중근이 나오는 것을 미리 알고 지은 시가 아니었던가. 그 친척들이 시체를 거두어 고향산천에 반장하였으나 그 뒤에는 적적하여 아무 소식을 듣지 못하였다 이토는 안의사를 만나 잘 죽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명성 또한 빛을 잃었을 것이다. 이토의 만장(挽章) 영웅을 쏘아 죽이자 만국이 놀랐다/하늘이 그로 하여금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함일세/이로써 열강의 교섭은 끝나고/명치는 울어서 눈물이 쏟아지겠지 그러나 안의사의 죽음만큼귀중한 일은 없었다. 안중근의 만장 하얼빈의 총소리가 오대주를 진동하였으니/안중근의 기개가 천추에 관통하였네/지난해에 충의를 다한 자 누가 있었던가/자기 한몸 죽여가며 나라근심 보답했네.
  • 日 금융위기 타개 정치권 앞장을(해외사설)

    금융회생 관련 법안을 둘러싼 여야 합의가 간신히 이뤄졌다.이번이야말로 정치권이 금융위기 타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일본의 금융위기는 대형 은행의 경영난,해외에서의 자금 조달난 등으로 심각해지고 있다.지금 위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경제회생은 어렵다. 아시아지역은 물론 러시아,중남미,유럽,미국에까지 파장을 미치게 된다.일본의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의 위기인 것이다.금융위기는 그동안 여야의 의견 차이로 심화되어 왔다. 정부와 자민당은 금융안정화에 책임이 있는 데도 일본장기신용은행 문제를 수수방관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는 생각이다.문제를 오래 끌다보니 위기가 깊어졌고 해결은 어렵게 됐다. 특히 경제회생 내각을 이끄는 오부치 총리가 영수회담 외에는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도력 부재를 증명한다.야당 책임도 역시 크다.과거 연립 여당에 참여했던 야당으로서 불량채권 처리를 미루어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번 여야 합의는 야당안을 함께 수정한 이례적인 것이다.야당이 주장한 대장성의 재정과 금융 분리 문제는 내년 정기국회에서 마무리된다.새로운 시대에 맞는 행정 시스템에 따른 것으로 대장성 관료에 의한 호송 선단식 금융행정에 종지부를 찍게 된 셈이다. 금융기관에 자본을 투입하는 금융기능 안정화 긴급조치법도 폐지돼 경영이 악화된 금융기관은 일시 국유화하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돼야 한다. 금융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특히 파탄 직전의 위기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경제 전체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할 때는 정보 공개 및 경영 책임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의 극복에는 금융기관 스스로의 자기 개혁도 중요하다.국제 관례로도 통용될 수 있는 투명한 경영을 하지 않으면 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위기를 추스려야 할 정치의 지도력이다.세계 경제위기에 책임을 진다는 자세와 비판에 몸을 사리지 않고 결단하는 실행력이 요구된다.정치 혼미로 금융위기를 더 이상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 “집안일인데 우리가 어떻게…”

    ◎가정폭력특례법 경찰의 미지근한 적용에 불만/신고해도 “그런거 잘 몰라요”/적극적 개입의사 전혀 없어/정부차원 대대적 홍보 절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된지 한달이 다 돼 가지만 경찰의 미온적 대응,‘가정문제는 각 집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는 봉건적 관념때문에 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가정폭력특례법 시행과 함께 개설된 한국여성의전화 연합 가정폭력사건처리 불만신고센터에 따르면 지금까지 접수된 수십여건의 사례가 거의 경찰이 사건을 형식적으로 다루고 적극적 개입의지가 없다는 점에 불만을 터뜨렸다. 대구 한 상담자는 남편이 구타하며 폭언을 퍼부었는데도 경찰이 가정문제로 시끄럽게 하느냐며 남편을 그냥 돌려보냈다고 신고해왔다. 신고센터 측이 파출소에 따지자 파출소 담당자는 “우리가 어떻게 남편을 격리하고 보호하느냐”며 오히려 항의했다. 서울 상담자의 경우 남편이 술먹고 칼을 들이댔고 자녀들도 망치로 폭행했는데도 경찰이 “한번만 더 그러면 정신병원에 넣는다”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고 호소했다. 사람을 무시한다고 깡패 출신 형을 동원해 폭행한 남편을 신고한 상담자는 “집안일이니 상관말라”는 형의 말에 돌아서 가버린 경찰을 신고해왔다. “가정폭력법이 뭐냐,잘 모른다. 상담자 없다. 다음에 전화하라”며 끊어버린 경찰도 있었다. 가정폭력특례법에 따르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폭력행위를 즉각 저지하고 수사에 나서며 피해자는 보호시설 또는 의료기관에 호송하도록 돼 있다. 가정폭력 현행범은 현장에서 연행할 수 있고 보호처분과 형사처벌까지 가능하다. 그런데도 경찰이 미적거리는 것은 법조항을 꼼꼼하게 알고 있지 못한 ‘무지’거나 엄연한 ‘직무유기’라는 주장. 여성의 전화 관계자는 “도를 넘는 가정폭력 희생자,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살해한 경우 등 피해사례가 속출하는데도 가정폭력특례법이 여성만을 위한 법이라거나 피해자의 본심은 신고를 원치 않는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편견”이라고 못박았다. 지난 7일 신고센터가 명동에서 가정폭력특례법 홍보캠페인을 펼치며 행인 3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반드시 필요했던 법이 이제야 나왔다’ 75.8%,‘가정이나 이웃에 가정 폭력이 있을때 신고하겠다’ 95.5%,‘가정폭력 현행범 현장서 연행 찬성’ 72.3% 등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여성의전화 인권사회위원회 조유경 부장은 “전국민의 인식변화,경찰·검찰 등 법집행 공무원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등이 이뤄져야 하며 무엇보다 정부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 역사기록도 ‘한밭’ 대이동/정부기록보존소 28일 大田청사로 이전

    ◎국보 조선왕조실록 등 호송 군작전 방불 대한민국 역사(歷史)기록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각종 정부기록과 행정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정부기록보존소가 오는 28∼30일 대전 제3정부청사로 이전함에 따라 창고 안에 보관돼 있던 ‘역사’들도 함께 대전으로 옮겨간다. 조선왕조실록과 일제 총독부 자료에서 최근의 행정문서·판결문에 이르기까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것들이어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송이 전개된다.정부 행정문서,고(古)문서,해외문서,행정박물(博物) 등 물량만도 231t.광(光)파일 등 전산자료가 수록돼 있는 주전산기는 파손에 대비해 1억원짜리 보험에도 가입돼 있다. 이전되는 기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산지소로부터 옮겨지는 조선왕조실록 태백산(太白山)본 848책.국보 151­2호인 실록은 방충,방습을 위해 290개 오동나무 상자에 나뉘어 담긴 뒤 다시 두께 1㎝ 짜리 특수 종이상자에 넣어진다.삼엄한 경찰 경비 아래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가 된 특수 차량에 실린다.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다시 제작,전국 5개 사고(史庫)에 분산보관했던 것 가운데 하나다.남한에는 서울대 규장각의 강화도 정족산사고본과 함께 두질만 남아있다. 일제 조선총독부 문서도 귀중한 자료.모두 2만6,000권으로 식민통치 실상을 알려주는 자료로는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다.柳寬順 등 3.1운동 관련자 재판 판결문,산미증식계획 관련 서류,토지조사 사업 지적원도 등은 모두 근·현대사를 되짚는데 필수적인 사료(史料)들.동학의병장 全琫準의 처형 기록,갑오개혁과 대한제국 때의 관청 문서도 빼놓을 수 없다. 사진·문서가 각각 2,000장씩 담긴 해외문서 마이크로필름도 2,000롤이나 된다. 행정기관이 쓰던 각종 도구들도 모두 옮겨진다.정부수립 이후 계속 쓰이다 지난해 7월 낡아서 퇴역한 국새(國璽)보관함,88올림픽 성화봉,경제기획원·재무부·국토통일원·전매청·공업진흥청 등 없어진 부처의 관인,각종 메달,기념품 등 350점이다. 광복 이후 최근까지의 법원 판결문도 이전한다. 金才淳 학예연구관(37)은 “한번 훼손되거나 잃어버리면 영원히 되살릴 수 없는 살아 있는 역사자료들이어서 전 직원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 법조 브로커 실태

    ◎형사­경찰 출신 사무장 경찰서 상주 영업.피의자 가족에 접근 변호사 알선/민사­손해사정인·병원­보험직원과 결탁.고액 배상 유혹… 합의금 착복도 일명 ‘사건 브로커’라고 불리는 법조 비리사범과 이들을 고용한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단속 결과,갖가지 브로커 유형들이 나타났다. 형사사건의 경우 대부분 경찰 출신인 외근 사무장들이 경찰관의 비호 아래 경찰서에 상주하면서 피의자 또는 그 가족에게 접근해 변호사 선임을 유도하고 수임료의 20∼30%를 변호사로부터 알선료(일명 복비)로 받는 것이 대표적이다. 사건조사 경찰관이 피의자나 가족에게 특정변호사의 사무장을 소개해주면 사무장이 수임료의 30%를 알선료로 받고 이 돈의 20∼25%는 소개한 경찰관의 몫이 된다. 영장실질심사제 도입 후 피의자를 법원으로 호송하는 경찰관이 변호사 선임을 유도하기도 했다. 민사사건의 경우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사건이 브로커들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알선료가 형사사건보다 높아 수임료의 30∼40%에 달하기 때문이다. 외근 사무장들은 손해사정인,병원 사무장,보험회사 직원 등을 통해 사건을 유치하거나 직접 교통사고 전문병원을 돌면서 환자나 가족들에게 “손해배상금을 많이 받아주겠다”고 꾀어 사건을 수임했다. 서울지역의 연수원 출신 金모 변호사는 사건브로커 20명을 고용,전남 순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사건을 수임해 피해자를 서울의 병원으로 후송하는 등 전국적으로 교통사고 손배사건만을 전문적으로 수임해오다 적발됐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상대로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주겠다”며 접근해 보험회사와 합의를 유도한 뒤 합의금의 10∼30%를 착복하는 손해사정인이나 병원 사무장 등 화해알선 브로커들도 교통사고 손배사건에 기생했다. 공인중개사나 부동산 컨설팅회사들이 경매 정보지에 광고를 게재,의뢰인을 유인한 후 브로커끼리 담합으로 유찰시켜 싼 가격으로 낙찰받아 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경매대리 브로커와 법무법인과 비슷한 이름의 사무실을 개설하고 회원을 모집한 뒤 법률상담을 해주고 회원으로부터 공탁금을 가로채는 신종 브로커도 등장했다.
  • 난수표 그대로… 간첩임무 아닌듯/北 잠수정 조사결과

    ◎침투 인원­9명 적힌 명단 나와 시신수와 일치/자살 시점­22일 하오 4시 귀환불가 판단 결행/국산 페트병­상표색 바래 상당기간 지난것 분석/귀환 지연­22일 상오 3시10분부터 기관 고장 중앙합동신문조는 29일 북한 잠수정 침투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동안 제기된 의문점들에 대한 분석 결과를 설명했다. ▲공작원 침투 임무=강원도 양양군 수산리 일대에 새로운 무인함(장비·난수표 등의 은닉처)을 설치하기 위해 침투한 것으로 분석된다.노획품 가운데 사용한 흔적이 있는 삽을 배낭 속에서 발견했다.북한 당국에 보고하는 문건은 발견되지 않아 기존 무인함을 발굴했을 가능성은 없다. 국내에서 활동했던 물품도 발견되지 않아 남파간첩을 데리고 복귀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작전일지에 공작원 3명이 이탈해 복귀한 기록이 있고 난수표도 개봉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남파간첩 호송 임무도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노획물 가운데 카메라 야시경 쌍안경 등 정찰 장비도 없다.침투로 개척이나 정찰 등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찰 장비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침투 인원=수거된 전투원 명단에서 확인된 9명(승조원 6명,공작원 3명)의 이름과 시신의 수가 일치한다.수거한 노획품 가운데 식기와 잠수복도 9개 뿐이다.추가 인원이 없다는 뜻이다.9명 중 공작원(저격수) 3명이 1개조를 이뤄 하나의 산소통에 연결된 3개의 호흡기를 사용해 해안으로 상륙했다가 전원 복귀한 것으로 판단된다. ▲집단자살 시점=우리 해군 함정에 포위된 22일 하오 4시32분∼하오 5시15분 사이에 도피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저격수 및 조장 등 4명이 수류탄과 AK소총 등으로 승조원 5명을 살해한 뒤 체코제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작전일지에 22일 하오 4시 이후 기록이 없다. ▲롯데 사각사각 페트병=상표의 색상이 퇴색돼 있고 생산일자도 지워져 있다.병에 북숭아 쥬스가 아닌 물이 조금 들어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22일 침투 당시 획득한 것이 아니라 상당기간 지난 것으로 보인다. ▲잠수정이 조기 귀환하지 못한 이유=임무를 마친 뒤 복귀 중이던 잠수정은 22일 상오 3시10분부터 하오 2시까지 기관고장 등으로 우리 영해에서 장시간 대기했던 것으로 분석된다.22일자 작전일지에는 ‘상오 3시10분 이후 승무원들의 호흡이 곤란하고 형광등이 노랗게 보인다’ ‘탄산가스 누출,기기 교체’ ‘하오 2시 더 이상 잠복하지 못하고 복귀하겠다’는 등의 기록이 있다.이후 무리하게 최단 시간내에 공해상으로 탈출하려다 꽁치잡이 어망에 걸린 것으로 분석된다.
  • 정책판단 오류가 日 경제위기 초래/각종 지표 적신호…원인과 현황

    ◎하시모토내각 작년 ‘경기회복’ 오판/소비세율 인상·재정지출 삭감 강행/경기 즉각 하강… 부실채권 올 76조엔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경제가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일본 정부의 정책판단 오류와 금융시스템의 구조·경영 개선이 지연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된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정권은 97년 4월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판단,예정돼 있던 대로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했다.재정 지출을 12조엔 삭감했다.의료보험제도를 개정,국민에게 2조엔 규모의 추가부담을 지웠다.공공사업비는 전년대비 4조엔 삭감했다.이같은 조치로 즉각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경제위기에 박차를 가한 것은 부실채권 등 금융 문제. 일본 금융기관은 거품경제 붕괴 후 담보물 가치 하락으로 대규모 부실채권을 안게 됐다.구미(歐美) 금융기관도 80년대 중반 부실채권 문제를 안게 됐지만 신속하게 대처,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았다.일본은 구미와 달리 부실채권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해 발목이 잡히게 됐다.은행 경영의 불투명성,이른바 ‘호송선단식’ 금융행정에 따른 안이한 경영자세 등이 신속한 부실채권 처리를 가로막았다. 일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액은 지난해 9월 21조7천3백억엔이었지만 올해 초 대장성이 집계한 결과 76조7천80억엔으로 나타났다.일본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숨겨왔기 때문에 액수가 갑자기 3.5배로 늘어난 것이다.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금융기관들은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기피하고 있다.이로 인한 신용 위축이 생산활동 위축,주가 하락(보유자산 가치 하락),금융기관 재무구조 개선 압박,금융기관 보유주식 매각,주가 추가하락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시아 지역 대출이 많은 일본 은행들로서는 아시아 경제위기도 적지 않은 타격이 되고 있다.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해 시중은행들은 올해 3월 결산시 10조3천억엔의 부실채권을 회계처리했으며 정부는 30조엔의 공공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 처리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하지만 금융전문가들은 신용 위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투명한 경영,구조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 금융시스템의 미래/호리우치 아키요시(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부실채권 해결해야 日 경제 회생/은행파탄→대출기피→경제타격 악순환/대장성 근시안적 대응이 사태 악화/제도개혁·금융기관 철저감독 역설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 금융시스템은 80년대까지는 관료 체제와 함께 전후 고도성장을 이끌어 온 배경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거품경제가 꺼지고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관료체제는 물론 금융시스템도 장애 내지는 불안 요인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관료체제와 금융체제는 모두 개혁의 대상으로 떠 올랐다. 관청 중의 관청이라는 대장성을 둘러싼 부패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금융 시스템으로부터도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다.지난해에는 산요(三洋)증권의 회사갱생법 적용신청,야마이치(山一)증권의 자발적인 폐업,홋카이도타쿠쇼쿠(北海道拓殖)은행의 사실상 도산,도쿠요(德陽)시티은행의 파산 등이 줄을 이었다. 일본의 주요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대출을 꺼리고 있다.실물 경제쪽은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지난 3월에는 1953년 이후 최악의 실업율을 기록했다. 일본금융체제가 불안에 휩싸여 있는 것과 때를 같이 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경제도 외환·금융 위기에 봉착해 상호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한때 아시아지역은 다음 세기의 주역이 될 것으로 평가됐으며 그 기관차 역할을 일본이 맡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데 도대체 일본의 금융시스템이 왜 이렇게 되고 말았는가. 일본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안이 전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이 책은 문제의 본질을 파고 들어가 어떻게 하면 금융체제를 늪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를 보여 주려 하고 있다. 도쿄대 교수인 저자 호리우치 아키요시(堀內昭義)는 ‘금융 시스템의 미래­부실채권 문제와 빅뱅’이란 저서에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금융시스템과 금융빅뱅에 관한 원인과 영향을 설득력있게 전개해 간다.왜 일본의 금융은 이렇게 됐는가란 질문에 저자는 원인이 부실채권에 있다고 지적한다.왜 부실채권 문제가 발생했는가.80년대 후반 거시경제정책의 실패,은행제도의 결함과 비효율적인 은행경영에 있다고 그는 분석한다.그는 부실채권 증가,은행의자기자본의 감소,은행 파탄,대출 기피,실물경제 타격,주식 및 부동산시장 침체,은행 자산 규모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과정을 해명해 간다. 여러 곳에서 보이는 제안도 날카롭다.모럴 해저드(윤리의 결여)를 막기 위해 세이프티 네트(안전망)의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점,그리고 예금보험제도가 보장해주는 한도(1천만엔)의 한계를 낮추어야 한다는 제안은 주목거리다.정부가 금융기관의 도산을 막아준다는 이른바 호송선단식 운영,은행이 도산해도 예금이 보호된다는 ‘안전감’이 은행의 무책임한 경영을 불러 일으키고 예금자들에게는 은행의 경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도록 만든다. 그에 따르면 부실채권 문제는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사회주의 경제의 붕괴와 선진제국들이 일제히 금융자유화에 들어감에 따라 금융기관이 리스크에 쉽게 노출된 때문이다.일본은 전체 대출 규모에서 차지하는 부실채권의 비율은 오히려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이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처리하지 않고 미뤄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여기에는 금융과 재정의 권한을 모두 쥔 대장성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처리보다는 재정 수입을 앞세운데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문제를 뒤로 미룸으로써 처리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는 금융시스템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서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대장성으로부터 금융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금융감독 기능만이 아니라 금융 정책 권한도 대장성에서 분리해야 한다.또 대장성 관리들이 금융기관에 낙하산 인사로 내려가는 것도 금지 요구 사항의 하나다. 결국 호리우치 교수는 일본 금융 시스템이 안고 있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시장기능을 회복시키는 제도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정부는 예금자 등을 대신해 금융기관의 경영내용을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해 최대한 시장에 공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또 당장 부실채권을 상각(償却)시키기 위해 행정당국이 적극적으로 긴급대책 즉 단기 대책을 실시해야 한다.이 점에서 그는 매우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 준다. 그는 행정당국이 부실채권 문제를 다루는 데는 ‘앞으로 미루기’부터 ‘파산처리 체제 구축’ ‘조기 시정조치 실시 압력’ ‘공공자금을 투입한 파산처리 은행 설립’ ‘개별은행에 대한 공공자금(국민의 세금) 투입’에 이르는 다섯 단계의 조치가 있다면서 4번째 조치와 5번째 조치는 금융위기가매우 심각할 때 동원하는 조치라고 소개한다. 다만 이 책에서 저자는 최대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공공자금 투입 필요성 여부에 대해 판단을 피하고 있다.그는 은행 경영 상태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공공자금 투입 필요성에 대해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미흡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다. 저자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가져 오기 위한 제도개혁과 긴급대책 사이에는 모순이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은행 파산처리의 재정 기반 확충 ▲파산은행의 양질의 대출업무가 다른 은행에 계승되도록 적극 중재 ▲긴급대책은 긴급피난적 조치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제도개혁 조치 내용을 확실하게 제시 ▲특히 부실채권 문제를 해소 한 뒤 시장 매커니즘에 따른 금융시스템 운용 등 정부의 확실한 실천을 제언한다. 이 책은 일본 금융시스템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부실채권의 심각성,해결방안,바람직한 금융시스템의 미래상등이 전문가의 치밀한 분석과 알기 쉬운 표현으로 잘 정리돼 있어 출판되자마자 화제를 모으고 있다. 원제:金融システムの未來. 이와나미 쇼텡(岩波書店)출판,640엔(세금미포함),214쪽.
  • 日 금융행정 강력 비판/美 재무부 부장관

    【도쿄 연합】 로런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은 5일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 금융시스템의 안정화를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금융행정에 대해 “은행의 호송선단 행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강력히 시정을 촉구했다고 일본의 교도(共同)통신이 6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 日 금융권 무한경쟁시대 돌입/내일 금융개혁법안 시행

    ◎은행·증권·보험 경계 철폐… 수수료 자유화/엔화 해외계좌 개설·외화예금 허용/증권·신탁자회사 업무범위 완전 해금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판 금융빅뱅이 4월1일 시작된다. 오는 2000년대 초반까지 순차적으로 실시될 금융빅뱅의 첫 조치로 4월1일부터 실시되는 것은 개정 외환관리법과 개정 일본은행법이다. 이번 일본판 금융빅뱅은 ‘평성(平成)시대의 금융개국’이라고 불리운다.일본이 메이지시대 미국의 흑선에 의해 근대화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금융개국으로 일본은 이제 금융근대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목적◁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을 구축하고 한때 세계 10대 은행 가운데 8∼9개의 자리를 차지하던 일본 금융시스템이 왜 근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대장성의 인솔 아래 호송선단식으로 운영되던 일본 금융시스템은 이제 벗어던져야 할 허물이다.현재의 시스템은 자금 흐름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자산운용의 기회를 틀어 막음으로써 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80년대 중반 금융빅뱅을 실시한 영국과 미국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고 일본의 자본시장을 공략해 들어오고 있는 실정에서 시간을 끌면 끌 수록 ‘골병’이 들고말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점도 금융개국을 서두르는 이유가 되고 있다.은행,증권,보험 등의 벽을 허물고 수수료의 자유화와 새로운 금융상품을 인가해 자산운용의 기회를 넓히는 것도 주요 목적이다. ▷개정 외환관리법의 주요 내용◁ 최근 외국자본계 은행에는 개정 외환관리법의 실시를 앞두고 외환구좌를 개설하려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개정 외환관리법이 외환구좌의 개설과 외국에서의 인출을 사실상 전면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연리 2∼3%의 낮은 금리 밖에 주지 않는 일본 은행들을 떠나 외국자본계 은행에 외환예금을 개설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고 해외에서 자유롭게 결제할 수 있게 된다.외환 거래가 자유롭게 되기 때문에 외화 매매시 드는 비용도 싸게 된다.내외의 자금이동의 장벽이 현저히 낮아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자금시장의 흐름은 상당한 변화를 겪지 않을까예의주시되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개인금융자산 규모를 자랑한다.일본의 개인금융자산 규모는 96년말 현재 1천2백9조엔 규모.그러나 이 자산들은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금리가 낮은 예·저금 등에 집중돼 있다. 또 은행들은 이들 자산을 적절히 운용하지 못하고 있어 시중에는 대출 기피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이제 장벽이 낮아지기 때문에 개인금융자산이 해외로 빠져 나가거나 운용 형태면에서는 미국형으로 이동해가지 않을까 예상되고 있는 것이다. ▷개정 일본은행법의 주요 내용◁ 개정된 일본은행법은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정책결정 기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개정으로 대장상의 업무명령권이 폐지되고 내각의 총재 해임 권한이 크게 제한된다.또 정책위의 기능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대장성 관리의 정책위 출석은 꼭 필요한 때에만 출석하도록 제한되며 정책위 의사록은 일정기간 뒤 공개되도록 규정됐다. ◎금융빅뱅 일정 ▲98년 3월 금융지주회사 해금▲98년 12월 은행의 자회사 해금▲99년 후반 증권·신탁 자회사 업무범위의 완전 자유화▲99년 후반 보통은행에 의한 사채 발행의 해금▲2000년 3월 보험회사의 은행 자회사를 해금▲2001년 은행의 보험 자회사 해금▲은행에 의한 보험상품 판매의 일부 해금 등이다.
  • 일 경기부양 싸고 미­일 알력

    ◎미 세금 대폭 감면 촉구 등 노골적 훈수/일 “내정간섭” 발끈… 독자안 마련 고심 【도쿄=강석진 특파원】 미국의 충고를 따를 것인가 일본식을 고집할 것인가? 미일 양국이 일본의 내수진작책을 놓고 심각한 알력을 빚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부터 일본에 대해 내수진작,금융 안정화,규제완화 등을 실시하라고 공개적이고 노골적으로 촉구해 왔다.루빈 재무장관,바제프스키 통상대표부 대표,그린스펀 연방준비이사회 의장,서머스 재무부 부장관 등이 잇달아 나서서 ‘내수주도의 강력한 경기회복대책을 실시하라’,‘대폭적인 세금감면을 포함한 재정조치가 필요하다’고 일본측을 윽박질러왔다. 특히 미국은 ‘총액 10조엔 이상’,‘공공사업 전개가 아니라 세금감면을 통한 내수자극이 필요’ 등등 구체적 방법과 내용까지 지정하는 등 내정간섭적 발언을 직설적으로 내놓고 있다.최근 금융안정화를 위해 일본이 1조8천억엔의 공공자금을 은행에 지원키로 한데 대해서는 ‘과거 호송선단식 구제 방법’이라고 불쾌해 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측은 20일 마쓰나가 히카루 대장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독자의 판단으로 적확하게 대책을 세워나가겠다”면서 미국의 내정간섭적 발언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은 95년 자동차교섭 이후 일본의 혐미감정 자극을 피해 가급적 반발을 부를 발언은 피해 왔다.하지만 미국은 일본 관료는 물론 정치권도 위기 대처에 무능하거나 무성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일본이 머뭇거리면 중국이 런민삐(인민폐)의 상대적 고평가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중국이 무너지면 아시아는 ‘끝장’이라는 절박감도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 반면 가르침을 받는 일본 정치권은 발끈하고 있다.자민당의 가토 고이치(가등굉일) 간사장은 “다른 나라의 지시를 받아 경기대책을 세울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정권으로서는 급하게 경기대책을 세운다면 지금까지 잘 대처하지 못했다,미국 압력에 굴복했다는 야당의 공세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이같은 알력 속에 시간만 보내기에는 아시아의 위기가 촌각을 허용치 않는 형국이다.
  • “재소자 징벌 수갑·포승 사용은 위법”/대법,국가에 배상판결

    대법원 민사1부(주심 서성 대법관)는 22일 박모씨(경기 시흥시 신천동)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교도소가 재소자에게 징벌을 목적으로 수갑과 포승 등 계구를 사용했다면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시,“피고는 5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행형법상 교도소 안에서 수갑과 포승 등 계구를 사용하는 것은 재소자의 소요·폭행·도주·호송 등 국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허용되고 징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법”이라면서 “교도소측이 독방에 수감돼 더 이상 계구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원고를 9일동안 신체적으로 억압한 만큼 정신적 피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 관계요원 149명 투입·첨단 전산기등 가동/수능채점 어떻게 했나

    ◎CC­TV 설치·경찰관 배치 등 ‘자물쇠 보안’/자료 판독·통계처리에 수험생당 1달 걸려 지난 달 19일 수학능력시험 직후 시작된 채점은 철저한 보안속에 완벽한 전산 작업과 거듭된 확인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국립교육평가원 산하에 채점위원회(위원장 문용인 서울대 교수)를 구성하고 전산요원 55명,보조요원 94명 등 149명이 채점작업에 투입됐다. 프라임 5370형 등 주전산기 2대,SR 9900형 OMR 판독기 14대,고성능 레이저 프린터 3대 등의 장비도 가동됐다. 보안을 위해 폐쇄회로 TV 7대와 경찰관 12명 등 보안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돼 24시간 경비를 섰다. 전산실과 OMR 판독실로 통하는 철제문에는 이중 잠금장치가 설치됐다. 채점은 답안지 인수→개봉→판독→자료처리·확인→성적처리·확인→성적통지표 출력 순으로 팀별 작업을 통해 진행됐다. 무장호송 차량의 호위 속에 전국에서 도착한 3백54만1천280장의 답안지는 시험지구 순으로 개봉된 뒤 교시별 수험번호순으로 2천장씩 정리돼 판독기로 넘겨졌다. 판독은 OMR 판독기 1대가 시간당 평균 2천700장씩 하루에 31만∼32만장씩을 읽어 내려갔다. 판독기가 읽지 못하고 뱉어 낸 답안지는 원인파악과 함께 문제지와 대조해 별도로 채점했다. 판독기가 토해 낸 답안지는 ‘합격 엿’이 묻어 있는 것을 비롯,검정 수성펜 대신 다른 펜을 사용한 것,보일듯 말듯한 점만 찍어놓은 것,결시자 답안,백지답안,계열표시나 수험번호를 오기한 것 등이었다. 판독 및 자료 확인을 끝낸 답안지는 주전산기로 옮겨져 입력된 정답과 대조를 통해 모두 2억3백만개가 넘는 답안 하나하나에 대한 채점이 이뤄졌다. 이어 통계처리를 통해 점수대별 누가분포표,응시계열별 백분위 점수 등 각종 자료를 작성하고 전체 채점의 이상 여부 등을 점검한 뒤 수험생당 4장의 성적통지표를 인쇄하기까지 꼬박 한달이 걸렸다.
  • “처리절차 복잡” 수사관들 불만/개정 형소법 시행 첫날

    ◎피의자 영장 실질심사 신청후 번복 잦아 곤혹/일선경관들 “시범 실시후 확대했어야” 지적도 피의자측이 신청할 때만 영장실질심사를 받도록 한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첫날인 13일 상당수 일선 수사관들은 처리절차가 너무 번잡스럽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피의자들은 새로운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모르는 등 혼란이 잇따랐다. 수사관들은 이날부터 구속 대상 피의자에 대한 영장실질심사 신청서를 별도로 작성,피의자의 확인을 받았다.피의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연락,실질심사를 원하는 지 여부를 확인하고 가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빙서류를 첨부했다. 피의자가 신청 여부를 번복하면 수사보고서를 다시 작성해야 했다. 절차가 이처럼 복잡하다보니 상당수 수사관들은 한두군데 경찰서에서 시범 실시한 뒤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순서를 밟았어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일선 경찰서 수사관들은 이날 구속 대상 피의자들에게 영장실질심사제도를 설명하고 신청서와 확인서를 받는 등 관련 절차를 대체로 지켰다. 하지만 한밤중에 들어온 일부 피의자들은 술에 취해 수사관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면 가족의 연락처도 제대로 진술하지 못했다.연락을 받고 나온 일부 가족은 주민등록등본 등 관련서류를 갖고 오지 않아 수사관이 직접 동사무소를 찾아가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의 한 직원은 “구속대상 피의자 5명 가운데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고 있는 2명만이 영장실질심사를 신청했다”면서 “대부분 피의자들이 진술을 자주 번복하게 마련인데 신청 여부를 번복하면 다시 수사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전과 12범의 누범자가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구속이 확실한데도 서류처리,호송,심리라는 절차를 일일이 밟아야 한다”면서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호가 강화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종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경찰의 부담만 커졌다”고 말했다. 경찰 인력의 낭비가 크다는 것이 일선 수사관들의 공통된 반응이었다.한편 대검찰청은 이번 주초에 새로운 제도의 시행에 따른 문제점을 점검,개선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 일,한국지원,글로벌 위기 대처 병행(해외사설)

    국제통화기금(IMF)의 5백50억달러를 넘는 대한 융자는 94년 멕시코통화위기의 5백억달러를 웃도는 사상최대의 지원규모다.일본도 2국간 지원으로 1백억달러의 지원 규모 설정을 발표했다. 전에 없는 지원 규모는 한국 위기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것이다.세계 제11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고 지난해에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이웃나라에 도대체 무엇이 일어났던 것인가. 한국에서는 올해초부터 중견·하위 재벌 기업의 도산이 잇따라 재벌부도의 신화가 무너지기 시작했다.차입의존 체질에 더해 무리한 확대화 노선의 결과 급속하게 재무내용이 악화됐다.이에 따라 대외신용이 일거에 저하됐으며 기아그룹의 경영파탄으로 국제적 신용도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기업이 숨이 막히게 되자 취약한 금융업 체제가 흔들렸다.고금리이지만 기업에게 편리한 존재인 종합금융사는 무담보 대출이 대부분으로 대기업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자금회수에 나섰고 금융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IMF는 융자조건으로 우선 종금사의 정리를 요구,한국정부도 단계적인 리스트럭처링(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당연한 조치다.한국의 금융위기의 배경에는 일본이상으로 ‘호송선단식’으로 은행을 보호해온 낡은 체질이 있다.은행은 정부 지도하에서 자유로운 금융활동이 불가능했으며 정치도 금융에 개입해 왔다.IMF와 한국정부가 최종 합의한 조건은 쉽게 말해 국내에 웅크리고 있던 금융기관과 금융시장을 글로벌한 시장으로 끌어낸다는 것이다.제한돼 있던 외국인의 주식투자한도를 현행의 2배이상으로 했으며 외국인에 의한 금융기관의 합병과 매수도 인정됐다.IMF와의 지원합의로 한국은 금융제도와 경제정책에 엄격한 틀이 채워지게 됐다.하지만 그 목표는 한국경제를 국제시장에 한층 더 커다란 모습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우리들은 이웃나라의 경제위기에 충분한 지원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동시에 시장의 글로벌화가 가져오는 ‘21세기형 금융위기’에의 대처를 잊어서는 안된다.
  • ‘IMF 쇼크’경제체질 개선 호기다/노조에 신이치(지구촌 칼럼)

    ◎시장원리 정착 과도기… 국민예지로 극복가능 한국 정부는 지난 11월21일 원화 환율 상승에 견디지 못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지원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또 일본에서도 17일에는 시중은행 상위 20위 내에 랭크되고 있던 홋카이도다쿠쇼쿠(북해도탁식)은행의 경영이 파탄을 맞이했으며 22일에는 4대 증권의 하나인 야마이치(산일)증권이 재건을 단념하고 자주폐업 방침을 결정했다.거의 같은 시기에 양국은 드물게 보는 커다란 경제적 쇼크를 당한 것이다. ○한·일 위기의 공통점 한국의 경우도 일본의 경우도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된 점이 있다.이는 사태에의 대응이 늦었을때 시장은 우격다짐으로 사태의 해결을 강요한다는 것이다.어느 쪽이든 시장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일본에 있어서 이번 두 도산은 ‘은행은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오랜 신화가 붕괴됐다는 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명문 기업이라고 하여도 과감한 개혁을 스스로 단행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하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또 두 도산은 일본의 대장성이 종래채용해 왔던 ‘호송선단 방식’으로 불리우는 금융행정 방식이 유지될 수 없게 된 것을 보여준다.이는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해온 시스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번 IMF에의 자금요청은 한국 경제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여러 각도에서 논의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필자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해왔던 시스템의 종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95년 4/4분기부터 시작된 이번 불황은 종래보다 한층 더 심각한 영향을 한국 경제에 미치고 있다.그 원인에 대해서는 경기순환적 요인,‘사고일다’(고임금,고금리,고지가,고물류비,다규제)로 상징되는 구조적 요인 등 여러 요인이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필자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제도적 요인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싶다.제도적 요인이란 정부주도형 경제 운영방식의 폐해다. 한국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척박한 개발 여건 속에서 60년대 초 경제건설을 시작했다.정부는 5개년계획을 기획·추진함으로써 경제건설의 전면에 나섰으며 빈약한 개발자금을 쓸 때는 특정 사업에 집중시킬수 밖에 없었다.이같은 정부주도의 개발 방식과 그 수단인 정책금융은 대단히 커다란 효과를 발휘했다.중화학 공업화는 성공했으며 세계적인 대기업이 배출됐다.한편 이 개발방식은 ‘관치금융’에서 보이듯 커다란 폐해를 한국 경제에 가져왔다. ○정부주도형 한계 노출 93년에 출범한 김영삼 정권은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거기에는 앞서 말한 정부주도형 개발 방식의 한계가 정확하게 인식돼 있었다.그러나 실행은 따르지 않았던 듯하다.한보철강 부정융자 사건은 문민정권에 있어서조차 이전과 변함없이 정경유착이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줘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번 금융·외환위기는 올해 들어 발생한 많은 재벌기업의 도산과 경영위기가 원래 취약한 금융기관의 경영을 악화시키고,이것이 외환위기로 옮겨붙은 결과 발생한 것이다.재벌기업의 과잉 설비투자는 ‘대기업은 무너지지 않는다’라는 성공신화의 소산이라고 말해도 좋다.그리고 이를 체크했어야 할금융기관은 정부나 정치가의 압력에는 무력했다.이 때문에 사태를 필요 이상으로 악화시켰다.금융기관의 심사기능 결여는 관치금융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재벌기업의 도산 발생이라는 오늘의 사태는 한국에 있어서도 시장원리가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획기적인 일이기도 하다. ○대선이 처방작성 기회 어쨌든 한국도 일본도 경제운영에 있어서 보다 투명한 시장의 형성과 정책의 운영이 이제부터는 불가결하다.이를 실천해야만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활력있는 경제를 유지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외자에 매력을 주지 못하는 기업과 경제는 글로벌 경제 시대에는 패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이 의미에서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가 여부는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서도 반드시 풀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이자 도전인 것이다. 앞으로 20년,30년이 지나 오늘날을 되돌아 볼 때 한국 경제도 일본 경제도 제도 피로가 극한까지 가 역사적 전환점에 섰었다라는 판단이 내려질 것으로 생각된다.그래서 그 뒤의 대응의 차이로 양국의 경제발전에 커다란 차이가 발생하고 말았다라는 판단도내려질지 모른다.미래의 한국인은 “한국에 있어 97년 IMF에의 자금요청은 커다란 수치였지만 모두 분발해 관치금융을 타파하는 등 체질 개선을 진척시켰기 때문에 정치에 있어서도 경제에 있어서도 보다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수 있었단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수 있을지도 모른다.장래에 이같은 이야기가 가능할지 여부는 한국인 자신의 대응에 달려 있다.한국의 새 대통령 선출은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을 철저히 구명하고 이를 치유하는 처방전 작성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새 정권은 국민의 예지를 결집해 21세기에의 비약을 위한 비전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IMF 아래서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많은 마찰을 가져오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질개선의 계기가 돼 한국 경제에 플러스가 클 것이라고 확신한다.
  • 운동권과 교감 가능한 새세대공작원 육성/대남공작 실상

    ◎침투용 잠수정 50척·기지 17곳… 해상침투 역량 강화 ‘남한 혁명’이라는 북한 대남공작의 최고 목표는 변하지 않았지만 수단은 많이 달라졌다.80년대 초반까지는 남한에 연고가 있는 월북자들을 공작원으로 양성,파견해 일가·친척을 포섭하는 이른바 ‘연고선 공작’ 위주였다. 그러나 이들이 나이를 먹어 공작이 어려워지자 최근 들어서는 남한 운동권출신들과의 교감이 가능한 이른바 ‘새세대 지도핵심 공작원’을 활용하고 있다.임무도 과거와 달리 남한에서 활동 중인 고정간첩을 지도하고 사회지도층 인사 등을 포섭,지하 지도부를 구축하는데 있다. 안기부는 북한공작원들이 사회적응 교육이라는 이른바 ‘이남화 교육’과 해외파견 현지인화 교육 등 7~12년 이상 간첩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과거공작원들과는 달리 북한에서만 자랐기 때문이다.이번에 침투한 부부간첩도 중국에서 7개월동안 현지인화 교육을 받은데 이어 5개월동안은 평양 학산초대소 등지에서 남파교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북한은 해상침투 역량을 높이기 위해침투기지를 늘리고 침투장비도 최첨단으로 바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안기부는 북한이 최근 동해안지역에 해상 침투기지 4곳을 증설하는 등 동·서해안에 모두 17개의 침투기지를 운영 중이며 공작원들의 침투와 호송을 목적으로 근거리 침투용 소형 잠수정 50여척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반잠수정과 메모리식 고속송신기 등 핵심 공작장비를 자체 개발,실전에 활용하는 한편 제3국 무역상사를 통해 잠수보트,수중 통신장비 등 첨단장비도 대량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대남공작을 위해 노동당 산하에 사회문화부,통일전선부,대외정보조사부,작전부 등의 전문부서를 두고 있다.특히 이번에 부부간첩을 내려보낸 사회문화부는 대남공작원을 선발,밀봉교육을 시켜 남파하고 대남공작 전술을 연구개발하는 대남공작의 사령탑 역할을 담당한다.
  • 7월30일­어선 위장한 공작선 남포항 출발/부부간첩 침투경로

    ◎8월2일­반잠수함 타고 거제도 연해 잠입/2일 자정­수중침투장비 착용 갈곶리 상륙 간첩 최정남(35) 부부는 공해를 통해 남해안에 접근했으며 우리 영해로 들어올 때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반잠수정을 이용했다. 이들은 지난 7월30일 평남 남포항에서 호송 안내원 3명,무장안내원 20명과 함께 어선으로 위장한 공작모선을 타고 서해안의 공해를 통해 남하한 뒤 제주도 남쪽을 거쳐 8월2일 하오 9시쯤 우리 해군의 작전지역에서 19마일 떨어진 거제도 남방 공해(대마도 서쪽)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이들은 호송안내조 3명과 함께 모선에 싣고온 5t 크기의 반잠수정으로 갈아탔다. 반잠수정은 20∼30 노트의 속도로 수면위로 70㎝ 가량 선체를 노출한 채 해군작전지역 안으로 들어왔다.반잠수정의 외부는 레이더파를 흡수하는 2㎜ 두께의 특수페인트로 처리돼 우리측 레이더망에 감지되지 않았다. 하오 10시쯤부터는 12∼15노트로 속도를 줄이고 선체도 20㎝ 가량으로 낮춰 운항을 계속했다. 상륙지점에 접근한 하오 11시부터는 완전잠수에 들어갔다. 거제도해안 5백여m 지점까지 접근한 이들은 고무방수복 물안경 빨대 오리발 등 수중침투장비를 착용하고 물속에서 헤엄쳐 2일 하오 11시30분쯤 거제도 해금강 갈곶리 해안에 상륙했다. 이들이 상륙한 거제도에는 육군 1개 대대병력이 상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레이더 기지 요원을 제외하고 50여명이 선박확인 및 기동임무를 맡고 있다. 그러나 당시 해금강 일대에는 피서객들이 몰려 있어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오는 적을 발견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군 관계자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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