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호송차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특별전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병역의무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가격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 손진호
    2026-01-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5
  • 노씨 내일 2차공판 법정 사진촬영 금지/법원·법무부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는 오는 15일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 2차공판에서는 첫 공판 때와는 달리 피고인들에 대한 법정촬영을 일체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13일 밝혔다. 법무부도 이날 노씨를 비롯,이현우전청와대경호실장 등 구속 피고인들이 호송차에서 내려 법원내 구치감으로 들어가는 모습 등 구치감에서의 촬영을 불허키로 최종 결정했다. 지난달 18일 열린 첫 공판 때는 피고인들의 뒷모습에 대한 법정촬영이 40여초동안 허용됐으며 노씨가 호송차에서 내려 구치감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촬영도 허용됐다.
  • “세기의 재판” 내외신 취재경쟁 불꽃

    ◎노씨 전직예우… 호송차에 다른 미결수 안태워 ▷구치감 표정◁ ○…이날 교도소 출발전 포승과 수갑이 채워졌던 노씨는 선도차를 앞세운 경기5더1062호 호송버스를 타고 상오9시22분쯤 서울지법 구치감에 도착. 노씨의 수갑과 포승은 노씨가 호송차량에서 내리기 직전 교도관에 의해 풀렸다. 호송차량이 구치감에 도착하자 서울구치소 출정교도관 3명은 호송차 운전석뒤 차단칸막이를 열고 들어가 노씨를 데리고 나왔다. 노씨는 침통하고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으나 건강에는 별 이상이 없는듯 단정한 모습이었다. 포승과 수갑을 차지 않은 노씨는 양손을 소매안에 넣고 팔장을 끼고 있었다.노씨의 왼쪽가슴에는 「1432」가 새겨진 수인번호가 달려있었다. 노씨는 『기분을 말해달라』『법정에서 무슨 말을 할 것인가』등 보도진의 질문이 나오자 약간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다문 채 구치감으로 향했다. 노씨는 서울구치소 출정과장의 지휘아래 5명의 호송원들에 양 옆과 뒤를 에워싸여 2분여만에 지하 구치감으로 사라졌다. ○…이에앞서 이현우 전경호실장은상오 9시쯤 경기6도 1005호 호송버스로 서울지법 구치감입구에 도착했다. 이 호송차량에는 30여명의 교도관들이 탑승하고 있었으며 이씨는 교도관들 사이에서 포승줄과 수갑을 찬 상태로 내렸다. 침통한 표정의 이씨는 흐트러진 머리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었으나 건강상태는 괜찮아 보였다. 이씨는 아무 말없이 40여명의 호송원들에 둘러싸여 지하구치감으로 들어갔다. 구치감은 20여평으로 칸막이가 5개가량이 있어 노씨와 이씨는 마주치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출발◁ ○…이날 상오 8시57분쯤 노씨를 태운 호송버스는 앞뒤로 경찰차량과 계호차량 및 취재차량에 둘러싸인채 의왕시의 서울구치소를 출발해 25분만인 상오 9시22분 서초동 법원 청사에 도착. 「긴급호송」이라는 표지를 앞유리창에 붙인 호송버스는 시속 80∼90㎞의 속도로 노씨가 서울구치소로 수감될 당시 이용한 코스의 반대인 인덕원사거리∼서울대공원∼고속도로∼예술의 전당의 길을 이용. 이날 언론사 차량 30여대가 호송버스를 뒤따르며 근접취재를 벌였으나 촘촘한 철망과커튼으로 가려져 버스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으며 그림자만 이따금 철망틈으로 비쳤다. 서울 구치소측은 노씨가 전직대통령의 신분임을 감안,다른 미결수들을 함께 태우지 않은채 10여명의 교도관만 태운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이날 재판이 끝난뒤 하오 6시35분쯤 서울구치소로 다시 향했고 구치소측은 취재차량의 접근에 따른 호송버스의 내부 공개를 막기위해 호송차량의 불을 모두 껐다. ▷연희동 표정◁ ○…노 전대통령이 첫 재판을 받은 이날 상오 서울 연희1동 노씨 집은 침통한 분위기. 부인 김옥숙여사와 아들 재헌씨 부부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등 노씨의 구속수감 당시 못지않게 침울함을 보였다고 한 관계자가 귀띔. 한동안 방문이 뜸했던 측근과 친인척들은 재판이 임박하면서 2∼3일전부터 간간이 이곳으로 모여 향후 재판준비 등 대책을 숙의했다고 설명. 또 방송 카메라맨 등 보도진들 역시 아침 일찍부터 몰려들어 집 앞 골목을 가득메우며 열띤 취재에 나서는 등 이곳에 쏠린 여론의 관심을 반영. 이에 앞서 주말인 16일과 17일 김유후 전청와대사정수석과 동생 재우씨의 부인이 찾아 위로와 함께 재판에 대비한 조언을 하고 돌아가는 등 그동안 끊겼던 측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연희동측은 『김 여사는 집에서 TV를 통해 재판과정을 지켜볼 것』이라고 부연. ○…전두환 전대통령의 서울 연희2동집에는 아들 재용씨 부부와 재만씨만이 집을 지키고 있으나 노씨의 재판에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표정이 역력. 한 측근은 『노씨의 재판은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으나 『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지 않겠느냐』고 지적.
  • 1월8일이나 15일/노씨 2차공판 열어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담당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오는 18일 이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을 연 뒤 내년 1월8일이나 15일 2차공판을 열 것이라고 16일 밝혔다. 또 그 다음에는 2주일에 한번씩 공판을 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첫 공판일의 법정촬영과 관련,노씨와 재벌총수 등 관련피고인 15명이 모두 입정한 뒤부터 40∼50초만 허용되며 피고인의 서있는 뒷모습과 재판부,검사,변호인단의 모습에 대한 촬영만 허가했다. 또 서울구치소에서 출발한 노씨 호송차량이 법원내로 들어와 지하1층 구치감에 도착하는 모습과 호송차에서 내린 노씨가 구치감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공개된다.
  • 노씨 첫 공판 어떻게 진행되나/법원구내 들어오면 지하 구치감에

    ◎포승에 묶이거나 수갑 찰진 미지수/개정은 10시… 판사가 호명하면 입정 국가 최고의 통치권자였다가 「파렴치범」으로 전락,오는 18일 법대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될 노태우 전대통령의 첫공판은 어떻게 진행될까. 첫 공판 개정 시간은 상오10시.따라서 노씨는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늦어도 8시에는 출발할 것으로 보인다.함께 구속된 심복 이현우 전청와대경호실장도 같은 시간대에 출발한다. 노씨는 일반 피고인들과 마찬가지로 대형버스나 승합차에 태워져 법원까지 호송된다.포승에 묶이거나 수갑을 차게 될 지는 미지수.원칙대로라면 일반 피고인처럼 포승과 수갑을 차야 하나 법무부측은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있다. 노씨는 지난 달 16일 구속직후 가족들이 구치소 매점에서 구입해 건네준 흰색상의에 짙은 회색 하의를 입고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신발은 일반 피고인처럼 흰색 고무신 차림이다. 호송차가 법원 정문을 지나 법원구내로 들어오면 노씨는 호송차에서 내려 법원청사 뒤편 지하1층 구치감으로 들어선다.구치감까지가는 길은 폭 2m,거리 20m 정도.노씨는 이때 방송카메라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와 취재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게 된다. 노씨는 구치감에서 대기하다 개정시간이 임박하면 법원 청사내 피고인용 승강기를 타고 4층의 417호 대법정 피고인 대기실로 올라간다. 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 김영일 부장판사가 「95고합 1228 피고인 노태우」를 호명하면 노씨는 법정에 들어서게 된다.노씨가 앉을 피고인석은 방청석에서 볼 때 맨앞줄 왼쪽 자리로 정해졌다.이현우 피고인은 노씨의 바로 옆자리.법정촬영이 일부 허용돼 노씨의 뒷모습만 일반 국민들에게 공개된다. 이어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 등 불구속 기소된 피고인들이 모두 입정하면 재판장은 노씨의 이름·나이·본적·주소·직업 등을 묻는 인정신문을 한다.노씨에게는 검찰신문에 들어가기 전 「모두진술」이 허락된다.이 때 가슴에 묻어두었던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김종휘씨 진술 기대 못미쳐 실망/율곡비리­12·12수사 이모저모

    ◎구속 김씨,재벌총수와 병합심리 전망/소영씨 미 수사기록 구체정보 없는 듯 ○…검찰은 김종휘 전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검찰에 출두한 지 48시간만인 13일 하오6시쯤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 장시간 조사를 받은 탓인지 피곤한 모습으로 검찰수사관들에 이끌려 대검 11층 조사실에서 나온 김씨는 『리베이트를 받았느냐』 『억울하지 않느냐』는 등 기자들의 질문공세에도 아무런 대답없이 매우 침통한 표정으로 검은색 르망 검찰호송차에 탑승. ○…검찰은 김종휘씨로부터 차세대전투기사업 리베이트와 관련, 별다른 진술을 받아내지 못하자 크게 실망하는 모습. 검찰은 노태우 전대통령이 이미 구속됐고 김씨의 귀국이 상당부분 자의로 이루어졌다는 점 등을 들어 내심 속시원한 진술을 기대했으나 막상 김씨가 노씨의 지시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 대부분 혐의사실을 부인하자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표정이 역력. ○…검찰은 이날 구속한 김종휘씨를 법원이 노씨 비자금사건으로 일괄사법처리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등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병합심리할 것으로 전망. 안강민 대검 중수부장은 이날 『대우 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부분과 맞물려있기 때문에 김씨도 함께 심리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 ○…검찰은 당초 15일쯤 검찰에 넘어올 노소영씨의 20만달러 밀반입사건의 미국측 수사기록에 스위스 UBS은행의 계좌번호 등이 명시되는 등 매우 상세한 자료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당초 기대에는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 안중수부장은 『계좌번호 같은 상세한 정보는 없는 것 같고 당시 소영씨의 남편 최태원씨의 차에서 발견된 돈묶음띠 정도는 들어있는 것 같다』고 설명. ○…하루에 4∼5명씩 이어지던 12·12 및 5·18사건 관련자들의 소환조사가 이날 갑자기 중단되자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 이종찬 특별수사본부장은 이날 『소환대상자는 수사팀 검사들이 밤 12시쯤 회의를 열어 연락상황 등을 검토한 뒤 정하고 있다』면서 『오늘은 소환자를 정하지 못해 그동안의 수사상황에 대한 점검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설명. 검찰 주변에서는 출국금지 조치된 최세창씨가 잠적한데다박희도·장기오씨 등이 해외에 머무는 등 「소환 차례가 돌아온」 핵심인물들과의 연락이 여의치 않아 검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
  • 김종휘씨 「김천」 가명으로 입국/검찰 수사·안양교도소 이모저모

    ◎“검찰서 밝히겠다” 조사실 직행­김 전수석/“설마 강제 급식까지 하겠느냐”­전씨 아들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 소강상태에 빠진 듯했던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에 대한 수사는 11일 하오 「율곡비리」에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종휘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미국 도피 2년8개월여만에 급거 귀국,검찰에서 철야조사를 받음에 따라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12·12 및 5·18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을 캐기 위해 재벌총수 등을 상대로 「보안수사」를 계속했다. ▷김종휘씨 수사◁ ○…김 전청와대외교안보수석은 이날 하오 4시50분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직후 곧바로 검찰수사관들에 의해 대검청사로 연행.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대한항공 017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김 전수석은 「김천」이라는 가명을 썼으며 김씨의 부인(59)과 아들(28)도 「박영」「김승」이라는 가명으로 함께 입국. 검찰은 입국장에서 김씨를 연행,공항 대합실에 대기하고있던 보도진을 따돌렸다. ○…하오 5시59분쯤 검찰 호송차를 타고 대검청사에 모습을 나타낸 김전수석은 『전투기 기종변경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인가』,『F­16기를 선정한 대가로 얼마의 리베이트를 받았는가』 등 쏟아지는 질문에 입을 열지 않다가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짤막하게 답변. 지난 93년 4월 미국도피 이후 2년8개월여만에 귀국한 김 전수석은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고 귀국했느냐고 묻자 『자진해서 왔다』고 말한 뒤 굳은 표정으로 조사실로 직행. 김씨는 검찰청사 현관으로 들어서다 사진기자들의 「요구」에 몇걸음을 물러서 포즈를 취하기도. ▷12·12 및 5·18 수사◁ ○…12·12 당시 최규하 전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정동호씨는 이날 상오 9시45분쯤 검은색 바바리 코트속에 목도리를 두른 모습으로 출두하면서 『그저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만 대답한 뒤 조사실로 직행. 10여분 뒤 도착한 주영복 전국방부장관도 질문공세에 침묵으로 일관. 반면 상오 10시에 도착한 이학봉씨는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인터뷰를 자청,청사 계단 앞에서 정승화 전육참총장 연행의 정당성을 주장,허화평씨의 선례를 답습. 그는 『10·26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살해되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정전총장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정전총장이 박전대통령 시해사건과 관련,김씨와 상당한 공모가 있었다고 주장. 또 『정총장이 의심을 받을 만한 행동이 아주 많았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 뒤 『모든 진실은 검찰 조사에서 다 밝혀질 것』이라고 강변. 이씨는 특히 『최전대통령으로부터 연행재가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쿠데타를 하면서 대통령의 재가를 받고 하느냐』고 반문,기자들이 『그렇다면 강압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사실을 인정한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얼굴을 붉힌 채 조사실로 황급한 발걸음. ▷안양교도소◁ ○…전씨 수감 9일째를 맞은 이날 둘째 아들 재용씨가 하오 1시50분쯤 안양교도소를 방문,전씨를 면회한 뒤 하오 3시15분쯤 돌아갔다. 재용씨는 『아버지가 얼굴 살이 많이 빠지는등 부쩍 수척해지셨다』면서 『그러나병보석은 생각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재용씨는 『검찰이 비자금을 수사하고 있는 것을 아버지가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미 구내방송을 통해 알고 계시며 나도 사실을 알려드렸다』면서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비자금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재용씨는 또 전씨의 단식이 길어지면서 교도소측이 강제급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설마 강제급식까지 하겠느냐』며 몹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전날 하오 2시부터 7시간에 걸쳐 검찰의 조사를 받은 전씨는 이날 상오 6시30분 초췌한 모습으로 기상한 뒤 역시 보리차만 마시며 단식을 계속하고 있다. 전씨는 단식이 길어지면서 피곤한 듯 자주 침상에 눕고 있으며 독거실 안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운동을 반복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교도소측은 전했다. ○…이에 앞서 상오 9시15분쯤 면회를 한 이양우 변호사도 『어른이 계속 식사를 안하고 계신다』고 소개. 이변호사는 『재수사를 예상치 못하고 지난 93년 12·12와 5·18에 대한 검찰수사 때 준비했던 변호자료를 대부분 폐기처분했다』면서 『이제 다시 처음부터 자료정리를 해야할 판』이라고 토로. 이변호사는 『단식 9일째를 맞은 어른의 몸무게가 64㎏으로 10㎏이 줄었지만 아직 정통성 수호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다』고 전언.
  • 전씨,노씨등과 작당해 군사반란/전씨 구속­주요 혐의 내용

    ◎수차례 회합… 군권 장악계획 음모­반란 모의/총장공관 무력 점거… 정 총장 연행­반란 실행 3일 구속수감된 전두환 전대통령에 대해 검찰이 적용하고 있는 범죄 내용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만큼이나 「화려」하다.영장요지를 분석한 전씨의 주요 범죄혐의 내용을 정리한다. ○거사일정 등 논의 ▷반란모의◁ 10·26사건 합수본부장인 전씨는 군장성 진급심사에서 하나회소속 군인들의 진급이 여의치 않게 되고 권한 남용 문제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과 잦은 갈등을 빚어 인사조치당할 우려가 있자 정총장을 김재규 내란사건 관련 혐의로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불법 연행해 제거함으로써 군의 실권을 장악할 계획을 세웠다. 79년 11월 중순부터 노태우 9사단장·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박준병 20사단장 등과 수차례 회합,논의한 끝에 12월12일을 정총장 연행 거사일로 정했다.정총장 연행에 반발,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을 거사 당일 하오 6시30분 만찬초청 명목으로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에 차단하는 한편 전씨 등은 같은 시각에 보안사와 인근 수경사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정총장 추종세력이 무력으로 대응할 경우 병력을 동원해 제압하기로 모의했다. ○초병 현장서 살해 ▷반란실행◁ 12일 하오 7시경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최석립 수경사 33헌병대장 등은 보안사 수사관과 헌병을 동원,총장공관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 소령과 경호장교 김인선 대위 등에게 권총을 난사,제압한 뒤 하오 7시30분경 정총장을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했다.하오 9시30분쯤 정동호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리·고명승 대통령경호실 작전담당관 등이 경호실 병력을 동원하여 대통령 관저인 총리공관을 장악한 상태에서 전씨 등은 최규하대통령에게 정총장 연행·조사를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병력을 동원하여 육군 정식 지휘계통을 제압하기로 결의했다. 하오 11시30분경 최세창 3공수여단장·박종규 3공수여단 15대대장은 특전사령관실에 3공수여단 병력을 투입,총격을 가해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낭 소령을 현장에서 사망하게 하고 정 특전사령관에게 부상을 가한 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박희도 1공수여단장·서수렬 1공수여단 2대대장 등은 13일 0시30분경 1공수여단 병력을 동원하여 육본과 국방부를 점거하고 노재현 국방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하는 과정에서 국방부 근무초병인 정선엽 병장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사망케 했다. 조홍 수경사 헌병단장·신윤희 헌병부단장 등은 김진선 수경사 상황실장의 지원을 받아 수경사사령관실에 진입,하소곤 육본 작전참모부장에게 총격을 가해 부상을 입히고 육본수뇌부의 무장을 해제한 후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장태완 수경사령관,문홍구 합참 대간첩본부장 등을 서빙고 분실로 연행했다. ○전씨 수괴역 담당 ▷혐의내용◁ 전씨는 수괴로서 노태우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탈취,반란을 일으키고 계엄지역에서 지휘관의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동원해 중요 지점을 점거하는 등 부대를 진퇴함과 아울러 수소를 이탈했다.또 김오낭을 살해하고 정병주와 하소곤·이재천·김인선 등을 살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특별법제정 발표에서 전씨 구속수감까지 ▲11월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연내제정 발표 ▲29일=정동년 등 5·18 고소인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소취하 ▲30일=헌재,「5·18선고」 연기 공식발표 ▲12월1일 하오 6시10분=검찰,전두환씨 2일 하오 3시까지 출두통보 ▲2일 상오 9시=전씨 대국민성명발표후 고향인 합천으로 출발 ▲하오 6시10분=검찰,반란수괴등 6개죄를 적용,사전구속영장 청구 ▲하오 11시23분=법원,구속영장발부 ▲밤 12시=서울지검 수사1과장 등 수사관 9명,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합천 전규명씨 집으로 급파 ▲3일 상오 5시57분=수사관 9명,합천 도착 ▲6시9분=전씨에게 영장제시 ▲6시 34분=전씨,영장집행 완료 ▲6시 37분=전씨 호송차량 합천 출발 ▲10시 37분=안양교도소 도착,수감
  • 연희동서 솜한복 교도소에 미리 전달/전씨 영장집행서 수감까지

    ◎안양교도소앞 시민들 과자 던지며 시위/고향 친인척,영장집행 수사관 한때 저지 전두환 전대통령은 3일 상오 묵고 있던 경남 합천군 내천면 율곡리 생가마을에서 검찰 수사관 9명에 의해 압송돼 안양교도소에 전격 수감됐다.영장 집행과정에서 친인척과 주민들이 수사관에 항의하는 가벼운 승강이가 있기는 했으나 전씨측이 순순이 협조해 우려했던 불상사는 없었다. ▷수감◁ 전씨를 태운 서울2버 4442호 검정색프린스승용차는 경남 합천을 떠난지 4시간10여분만인 3일 상오 10시37분쯤 안양교도소에 도착. 승용차 뒷자리 검찰 수사관 2명 사이에 푹 눌러앉은 전씨는 입을 굳게 다문채 잠을 설친 탓인지 초췌하고 침통한 모습. 전씨를 호송한 승용차는 경수산업도로 신군포 사거리 앞에서 우회전,교도소 입구에 도착,외정문 초소,외정문,정문까지 2백50여m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취재진들이 포토라인을 제대로 지켜 노태우 전대통령 수감 때와는 달리 혼잡은 거의 없었다. ○…전씨가 탄 승용차가 교도소 진입로에 들어설때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안양지부」 소속 회원 15명이 「5·18 학살자를 처벌하라」 「전두환을 사형시켜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채 같은 내용의 구호를 외치고 뻥튀기 과자를 던지며 시위. 전씨는 처음 이들이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들로 착각,손을 들어 응답하려다 당황해 손을 내리기도. ○…전씨가 구속 수감된지 1시간여 만인 3일 상오 11시35분쯤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김상희 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이 전씨를 조사하기 위해 안양교도소를 방문. 서울 3포 5321호 캐피탈 등 승용차 2대에 나눠 타고 교도소에 도착한 김부장검사 일행은 『무슨 조사를 할 것인가』는 등의 기자들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는 대답으로 일관. ▷압송◁ 전씨 압송팀들은 합천을 출발,고령에서 88고속도로로 들어서 남대구 IC를 거쳐 경부고속도로 진입,안산­동수원 톨게이트∼북수원IC∼안양 코스로 이동. 전씨의 호송차량 행렬에 대해서는 시·도 경계가 바뀔때 마다 교통 안내 경찰이 임무를 교대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가 없었으며,대전 부근 지점에서 잠시 정차했으나 보도진이 몰려들자 곧 바로 다시 출발해 안양교도소까지 직행. 전씨는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그동안 잠을 잘 이루지 못한듯 간혹 꾸벅뿌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시종일관 입을 꼭다문채 굳은 표정. ○…전씨가 수감되기 전인 상오 10시쯤 연희동에서 2개의 분홍색 보따리에 전씨의 내의 3∼4벌과 솜을 넣은 한복 1벌을 미리 안양교도소측에 전달해 눈길. 서울 4초4133 검은색 프린스 승용차에서 내린 2명은 보도진이 진을 치고 있는 사이를 지나 교도관에게 접근,『연희동에서 왔다』며 슬그머니 입소. ▷영장집행◁ 이수만 서울지검 수사1과장을 팀장으로 한 수사관 9명은 합천경찰서 경찰관 1천여명의 지원을 받아 2일 상오 5시59분쯤 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장조카 전규명(62)씨 집에 도착한 뒤 10분만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검찰수사관들이 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동네 청년 10여명이 대문을 가로막고 진입을 막았으나 경찰은 『정당한 법집행을 방해해서는 안된다.여러분들의 행위는 불법행위다』라고 3차례 경고한 뒤 대문을 밀치고 수사관들을 들여보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청년과 경찰간에 승강이가 벌어지자 전씨의 측근 한 사람이 나와 『영장집행에 최대한 협조할테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어른(전두환씨를 지칭)이 가족과 잠시 이야기 중이다』라고 사정. 이과장 등은 이어 상오 6시9분쯤 전씨가 있던 안방으로 들어가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은 사전구속영장을 제시한뒤 26분만인 상오 6시30분쯤 전씨와 함께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던 서울 2버 4442호 프린스승용차에 타고 안양으로 출발. 상오 6시35분쯤 초췌한 모습으로 검은색 양복과 검정코트에 흰 목도리를 걸치고 수사관들과 함께 방을 나온 전씨는 집앞에서 차량에 탑승하기까지 50여m를 뒤따르며 『한마디 해 달라』는 취재진의 끈질긴 요구에 묵묵부답하며 전날 합천으로 내려 올 때에 비해 한결 비통한 표정.
  • “노씨 대선자금 안밝혀 수사난항”­검찰/노씨 비리­검찰수사 안팎

    ◎이현우씨 구속영장 2시간여만에 발부/안 중수부장 브리핑 취소해 궁금증 증폭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이라는 「큰 일」을 일단 마무리지었다는 홀가분함속에서도 대선자금 등 비자금 사용처와 그 조성경위 등에 대한 수사를 위한 「정중동」의 숨가쁜 움직임이 이어졌다. 특히 검찰이 이날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도 전격구속하자 법조주변에서는 노씨의 친인척·측근은 물론 기업인들에 대한 대규모 사법처리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지난 15일 상오10시 검찰에 5번째로 소환됐던 이전경호실장이 출두 53시간여만에 서울 구치소에 구속수감. 서울지검 특수3부장으로 이번 수사팀에 보강됐던 김성호 부장검사가 상오 9시쯤 청구한 구속영장은 영장당직 판사인 서울지법 항소6부 이흥구 판사에 의해 2시간20분만에 발부. 10층 조사실에 머물다 영장발부 3시간40여분만인 하오 3시3분쯤 일반용 엘리베이터를 이용,대검청사 로비에 나타난 이전실장은 느린 걸음으로 현관 회전문을 나서 대기중인 서울3푸3476호 캐피탈 호송차에 탑승. 그는 시종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며 『사법처리될 줄 예상했느냐』『처음 자진출두했던 동기는 뭔가』『소감을 말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뭔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이다 끝내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승차. ○…노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지법 형사항소6부 김정호 판사가 이원조·김종인씨의 비자금조성 개입부분등 검찰수사기록에 있던 내용을 기자들에게 공개한 것과 관련,한 검찰인사는 『검찰과 법원의 「사인」이 맞지 않은 것 같다』고 서운한 표정. 이씨의 비자금조성 관련여부등은 그동안 검찰이 『수사기밀이라서 말할 수 없다』고 일관하던 부분인데다 한창 수사중인 내용을 검사도 아닌 판사가 공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 특히 그동안 각종 예금계좌와 동호빌딩·미락냉장 등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의 소관이므로 보여줄 수 없다』고 쉽게 공개하지 않는등 뻣뻣하게 나왔던 법원이 이번에 「친절히」 기자들에게 알려준데는 무슨 사연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문도 제기. ○…안강민대검 중수부장은 그동안 빠짐없이 해오던 정례 기자브리핑을 돌연 취소,그 배경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 검찰은 이에 대해 『노씨와 이전경호실장의 구속수감으로 「큰 일」이 일단 마무리된데다 더 이상의 수사진척사항이 없어 브리핑이 불필요하다』고 설명했으나 검찰주변에서는 이원조씨의 비자금 개입등 미묘한 문제가 법원을 통해 공개된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 게 아니냐는 분석. 이와 함께 노씨의 친인척 및 기업인 재소환등 앞으로 있게 될 대규모 사법처리를 앞두고 시기와 대상등에 대한 내부의견을 정리하는등 호흡조절을 위해 한 템포 쉬어가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 ○…이날 이씨에 대해 발부된 영장에는 뇌물을 준 기업인의 이름과 액수,시기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어 30개 기업체로부터 모두 2천3백58억9천6백만원을 받았다고 포괄적으로 기재된 노씨의 구속영장과 크게 대조. 특히 이씨의 구속영장에는 국방부등 정부기관이 발주한 공사는 물론 그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골프장 건설과정에서의 뇌물수수 사실,대전 영진건설대표 이종완씨 등도 새롭게 등장해 노씨가 구속된 이후에도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각종 특혜사업 관련 비리로 확대될 것임을 반영. 한편 동아 최원석회장이 노씨에게 뇌물을 전달했다는 혐의에 이어 이씨에게도 뇌물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 주변에서는 최회장이 대우 김우중 회장과 함께 기업인 사법처리 1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 ○…검찰은 노씨 구속 이틀전 대선자금 등 비자금 사용처도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으나 노씨가 검찰조사에서 비자금의 주요 사용처로 보이는 ▲88년과 92년의 13·14대 총선지원금 ▲14대 대선자금 ▲민자당 조직관리비 ▲3당 합당및 중간평가 유보등과 관련한 정치자금 부분 등에 대해 답변을 회피한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 수사에 난항을 예고. 한 수사관계자는 『대선자금 등 비자금의 사용처를 밝히는 것은 노씨 자신의 입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노씨가 수감직전 「지금의 갈등과 불신을 혼자 안고 가겠다」며 입을 열지않을 뜻을 비쳐 이래저래 수사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숨. ◎노씨 구속후 연희동 표정/“1심 결과 본뒤 항소여부 결정”­측근/김옥숙씨 충격으로 신경쇠약증세 연희동 노태우 전대통령의 자택은 구속 이틀째인 17일 외부인의 발길이 끊긴 채 부인 김옥숙씨,아들 재헌씨 부부 등 가족들만이 집을 지켰다.연일 수십명씩 장사진을 이루던 보도진의 발길도 거의 끊겨 을씨년스런 분위기였다. ○…16일 저녁 구속영장발부 소식을 듣고 거의 실신상태에 빠졌던 부인 김옥숙씨는 이날도 아침과 점심식사를 제대로 못한채 신경쇠약증세를 보이며 몸져 누워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상오 7시55분쯤 출근한 박영훈 비서관은 김씨의 상태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아비를 감옥에 보낸 지어미의 심정이야 말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며 착잡한 표정. 또 박비서관은 『오늘 태국에서 귀국한 정해창 전대통령비서실장 등과 상의해 변호사 선임문제등 향후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소개. ○…김씨등 가족들은 검찰 수사의 칼날이 노전대통령에 그치지 않고 친인척 구속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싸여있는 것으로 측근들이 전언. 이날 상오 11시30분쯤 딸 소영씨는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해 시장에서 사온 것으로 보이는 음식이 든 비닐 봉투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2시간여만에 나왔으며 아들 재헌씨도 상오 10시50분쯤 집을 나와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노씨의 법률자문역을 맡고 있는 김유후 전사정수석은 노씨가 변호인선임이나 항소를 아예 포기할 것이라는 일부 소문과 관련,『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 김전수석은 『아직 재판부 지정이나 첫 재판기일도 확정되지 않은 데다 무기징역이나 사형선고 대상은 법적으로 무조건 항소하게 돼 있다』고 부연. 그는 다만 『그렇다고 꼭 항소를 하겠다는 뜻도 아니다』면서 『1심 결정이 나면 그에 따라 결정할 문제』라고 설명. 노씨의 한 측근은 『김 전수석·한영석 전법제처장·정해창 전대통령비서실장·서동권 전안기부장 등 여러 명의 율사들이 연명으로 이미 변호인선임계를 작성해 놓은 상태』라면서 『김전수석이 주로 변호업무를 전담하고한전법제처장이 이를 도울 것』이라고 설명. 그는 『다만 변호인 선임절차 전이라도 변호사가 되려는 자는 피의자접견 등을 할 수 있으므로 기소 뒤에 선임계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 김 전수석은 이날 상오 10시30분 서울구치소 변호인접견실에서 노씨를 면회한 것으로 확인됐다.김전수석측은 『구치소측이 소장 허가아래 특별면회를 허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김전수석은 오늘 변호인이면 누구나 시간제한 없이 피의자를 만날 수 있는 변호인접견실 접견형태로 노전대통령을 만난 것』이라고 설명. ○…한편 태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범죄방지재단」 회의에 참석중 노씨의 구속소식을 듣고 귀국일정을 하루 앞당겨 돌아온 정해창 전비서실장은 공항에서 『노씨 구속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향후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냐』는 등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노코멘트』로 일관. 정전실장과 같은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 한 전법제처장은 이 재단의 내년 서울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예정된 일정을 채우고 18일 귀국할 예정.
  • 4평 독방서 수의의 첫밤/노씨 구속­수감 이모저모

    ◎교도대원 방호속 서울구치소 입소/체념한듯 “처벌 달게 받겠다”/한통 노조원 50명 빵던지며 기습시위 노태우 전 대통령은 16일 서울구치소 4평짜리 싸늘한 독방에서 미결수 신분으로 첫날밤을 보냈다. 노씨는 검찰에 재소환된 지 28시간40여분만인 이날 하오 7시28분쯤 검찰청사를 나서 보도진들을 상대로 1분 남짓 구속에 따른 소회를 피력한 뒤 검찰 승용차를 타고 구치소로 향했다. 마음의 정리가 끝난 듯 노씨의 표정과 목소리는 담담했다. ○…노씨는 대검청사 현관을 나서자 발걸음을 멈춘 뒤 작심한 듯 『국민 여러분,정말 송구합니다.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습니다.어떠한 처벌도 달게 감수하겠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노씨는 『특히 가슴아픈 것은 나로 인해 많은 기업인들이 곤욕을 치른 것』이라면서 『우리 기업인들이 국제경쟁력에 뒤지지 않게끔 밀어주시고 보살펴주시고 용기를 주십시오』라고 당부. 이어 『정치인들에게 한말씀 드리겠다』면서 『여러분들 가슴에 안고 있는 불신,그리고 갈등,이 모든 것을 내가 안고 가겠으며 어떤 처벌도 받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뒤 『제발 이를 계기로 불신과 갈등을 다 씻어 버리고 화해와 이해와 협력으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길 바랍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노씨는 이어 미리 대기중이던 서울 2버4442호 로열프린스 승용차 뒷자리에 올랐다.노씨의 좌우에는 관례대로 검찰수사관 2명이 동승. 이날 검찰청사 앞에는 내외신기자 3백여명이 몰려 노씨가 구속집행되는 모습을 취재했으며 4개 TV방송사는 이 장면을 전국에 생중계. ○…노씨가 탄 차량은 사임당길∼예술의 전당∼양재동 만남의 광장∼과천을 거쳐 28분만인 하오 7시58분쯤 경기도 의왕시 포의동 서울구치소에 도착했다. 노씨 차량은 줄곧 시속 1백㎞이상으로 질주,50여대의 취재차량들이 숨막히는 추격전을 벌이기도. 노씨는 호송도중 시종 담담한 모습으로 수사관들과 얘기를 나누는가 하면 취재차량들을 향해 가끔 미소를 지어보이는 등 애써 평온을 찾으려는 모습. 호송차량이 구치소 바깥정문 1㎞앞에 이르자 이 모습을 보려고 미리 나와있던 주민 1천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법석. 검찰은 호소도중의 사고에 대비,경찰차량 1대가 선도하고 검찰차량 1대가 뒤따르도록 조치했고 호송 차량행렬에는 노씨의 경호차량도 가담. ○…노씨가 탄 차량은 구치소 바깥 정문을 거쳐 2백m쯤 떨어진 정문앞에 도착,가로 3m 세로 4m 크기의 철제출입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3분 남짓 대기. 이동안 30여명의 교도대원들이 노씨차량을 에워싸고 보도진들의 접근을 막았고 이 때문에 포토라인 밖에 서있던 취재진들은 『비켜서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노씨 차량은 이어 철문을 지나 30m 안쪽에 있는 3층 보안과 청사에 도착. 노씨는 수사관과 함께 차에서 내려 1층 보안과 사무실로 직행,당직계장의 안내를 받고 신원확인,건강진단에 이어 푸른색 수의로 갈아입는 등 입소절차를 마쳤다.이어 구치소 본관과 떨어져 있는 별관 4평짜리 독방으로 가 수형생활을 시작. 한편 서울구치소 관계자는 『노씨가 비록 전직 대통령이긴 하지만 계호문제를 제외한 다른부분에서는 일반 재소자와 다를 바 없는 처우를 받을 것』이라며 특별대우를하지 않을 방침임을 강조. 구치소측은 교도관 6명으로 계호조를 편성,2인1조로 나눠 하루 8시간씩 24시간 노씨를 밀착경호토록 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곳에 수감중이던 김명기 한국통신 전 복지국장(33)의 출소를 환영하기 위해 정문에 모여있던 한국통신 노조원 50여명은 이날 하오 7시 55분쯤 노씨를 태운 차량 행렬이 구치소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차량을 향해 먹다 남은 빵을 던지며 기습시위.
  • 밀실덮치자 체념…“내발로 나가겠다”/아사하라교주 체포작전 이모저모

    ◎철문 굳게 잠겨 쇠톱으로 자르고 진입/“제자들도 내손 못만져”진맥받기 거부 아사하라 교주는 야마나시(산이)현 가미쿠이시키(상구일색)촌 교단건물 제6동(사티안)의 2층과 3층 사이에 교묘히 은폐된 밀실에서 혼자 명상을 하다가 16일 새벽 5시30분부터 체포작전을 벌인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수사관계자들에 따르면 그가 있던 은신처는 천장 높이가 불과 1m로 손잡이도 없는 두꺼운 판자문으로 차단돼 있었으며 그동안의 경찰 수색과정에서 파악되지 않았던 밀실.아사하라는 경찰이 해머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체포한다』고 하자 『내가 나가겠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는 것. ○…건물내에 독가스가 뿌려졌을 경우에 대비,경찰은 독가스에 민감한 카나리아 새와 방독면을 휴대하고 아사하라 교주가 잠복해 있던 제6동 건물 철제 출입구를 둥근 전기 쇠톱으로 자르고 들어가 체포작전을 시작.그러나 이 건물은 비밀복도등 내부구조가 복잡하고 미로인 데다 방이 많아 아사하라를 붙잡는데까지는 무려 4시간이 넘게 소요. ○…일본경찰이 가미쿠이시키내 가장 큰 건물인 제6사티안에 아사하라교주가 잠복해 있는 것으로 확신한 이유는 지하철 사린살포 사건으로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직후 행방을 감춘 아사하라 교주의 가족들이 제6사티안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부터.이때부터 경찰은 드러나지 않게 제6사티안 주변을 에워싸 아사하라교주등의 도주를 방지해 왔다.한편 이날 경찰의 일제 수색에는 신자들의 저항등이 우려됐으나 수색은 예상외로 순조롭게 진행. ○…가미쿠이시키촌의 옴교 교단시설 주변에는 수일전부터 일본 보도진들이 아사하라 체포를 기다리며 철야를 거듭.아사하라가 체포된 이날의 경우 내외신기자 2백여명이 대기했으며,NHK등 TV방송들은 경찰의 수색이 시작되기 전부터 현장상황을 계속 생중계. ○…아사하라 교주를 태운 경찰 호송차는 상오 10시36분쯤 가미쿠이시키현장을 출발,두시간만인 낮 12시35분쯤 관청가가 몰려있는 도쿄 가스미가세키 경시청에 도착.호송차가 경시청 앞에 도착하는 순간,현관에 몰려있던 사진기자들은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으며 차안 커튼 틈으로 장발에 수염을 기른,눈에 익은 아사하라 교주의 모습이 비쳤다.앞서 아사하라는 체포될 당시 맥을 짚어 건강을 점검하려는 의사에게 『나는 건강합니다.손을 만지지 마십시오.제자에게도 손을 만지도록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그는 또 『믿어주시지 않겠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내가 그런 일(살인)이 가능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고 경찰 관계자가 귀띔. ○…경찰은 이날 아사하라 교주를 무사히 검거해 한숨을 돌리면서도 만에 하나라도 옴교 신도들이 보복범행을 위해 무차별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전국 경찰에 경계경비를 강화하도록 지시. 경찰청은 통상병력 외에 새로 78만명을 더 투입해 인파가 많이 붐비는 지하철역과 백화점 등에 대한 순찰을 철저히 하고 요인 경호에도 만전을 기하라고 강조. ◎수사 초점 「옴교의 3대 의혹」/교단이탈 피납자들의 묘연한 행방/사린가스 완제품 어디에 은닉했나/경찰장관 피습·청산가스 사건 배후 일본 도쿄지하철 사린살포 사건 발생 58일째만인 16일 옴진리교의 아사하라 쇼코교주가 검거됨으로써 일본 경찰의 수사는 중대한 전기를 맞았다. 그러나 경찰은 옴진리교가 저지른 범행의 전말을 밝혀내고 유사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옴진리교는 핵무기,세균무기도 손에 넣으려 해 세계를 경악케 한 만큼 전모를 상세하게 밝히는가 여부는 일본 경찰의 명예가 걸린 문제.수사는 오히려 이제부터라고 할만큼 옴진리교를 둘러싼 의혹들은 풀리지 않은 채다. 가장 궁금한 점은 사린가스가 언제부터 얼마만큼 제조됐으며 사린 완제품이 남아 있는지 여부.도쿄 경시청의 이노우에 유키히코 경시총감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사린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 일단 안도감을 주고 있다.그러나 진리교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고도 사린이 발견되지 않자 깊은 산속에 숨겨놓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 피납자들을 찾는 것도 이제부터의 숙제.89년 교단에 대한 소송을 준비하다 피랍된 사카모토 변호사 가족,지난 2월 누이동생을 탈회시켰다가 피랍된 가리야씨(68)등의 행방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옴진리교 수사개시 9일 뒤인 3월30일 발생한 구니마쓰 경찰청장관 피격사건,어린이 날인 지난 5일 도쿄 신주쿠역의 청산가스사건 등도 옴진리교 소행으로 의심되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인 내용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사하라가 기소되면 옴진리교의 종교법인은 취소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아사하라의 허황된 말에 일본 사회의 엘리트들이 줄줄이 몸을 기탁한 병든 심리의 배경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안전신화가 깨어진데 대한 사회불안의 문제가 남는다.◎맹아학교 졸업뒤 요가 심취… 84년 옴교 설립/정치가 선망… 90년엔 중의원 출마해 낙선 세계를 놀라게 한 독가스 테러사건과 관련,16일 체포된 옴 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마원창황)는 본명이 마쓰모토 치즈오(송본지진부)로 지난 55년 규슈(구주)의 구마모토(웅본)현에서 7남매중 4남으로 태어났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구마모토 현립 맹아학교를 졸업했으나 타고난 열성적인 노력가로 어린시절부터 수학에 재질을 보였으며 정치가를 선망했다고한다. 22세때부터 요가에 심취한 그는 84년 신흥 종교단체 「옴 신선회」를 설립.이름을 아사하라로 바꾼 그는 86년 히말라야 산중에서 「최종해탈」을 선언하고 87년에는 「옴 신선회」를 「옴 진리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난 90년 교단간부들을 이끌고 도쿄에서 중의원선거에 출마했으나 전원 낙선하기도.최근에는 당뇨병과 간질환이 겹쳐 건강이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 희대의 살인마들 공판 표정/방청객 몰려 사회적 파장 실감

    ◎“왜 유죄냐” 욕설·독기 그대로/지존파/“나같은 흉악범은 사형 마땅”/온보현 희대의 두 살인마에 대한 공판이 31일 상오와 하오 두차례에 걸쳐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열렸다. ○…「지존파」일당의 선고공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에는 이른 아침부터 2백여명의 방청객들이 들어차 이 사건에 쏠린 사회적 관심을 반영. 김기환은 첫공판과 지난 19일 결심공판때와 마찬가지로 느린 걸음으로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입정,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선고공판인 때문에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방청객들을 한차례 훑어본뒤 착석. 이어 고개를 숙인채 강동은·김현양·강문섭·문상록·백병옥·이경숙이 차례로 입정했으며 김현양은 팔꿈치까지 올라온 가죽수갑에 묶인 두손을 쉬지않고 부비며 들어와 초조한 심정을 표출. ○…각자의 생년월일만을 확인,간단하게 인정신문을 마친 재판부는 곧이어 『피고인들의 자백과 관련증거들로 볼때 피고인들에 대한 범죄사실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며 범행동기·살해방법·사회적 파장등으로 나누어 차분히 선고문을 낭독. 재판부는 「한탕주의」에 사로잡혀 저지른 이들의 범행이 「가진자」에 대한 맹목적인 질시에서 비롯되었으며 범행의 동기를 사회의 부조리 탓으로 돌리는 이들의 책임전가를 엄중히 질타. 재판부는 또 『모두 결손가정에서 자라 사회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점이 인정되나 이들과 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다수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에 엄존하고 있다』고 밝히며 이들의 범행동기가 설득력이 없음을 강조. ○…김기환은 선고공판이 끝난뒤 호송차에 타기전 『전두환·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만 왜 유죄냐』며 마구 욕설을 퍼부은뒤 『세상은 ×같은 것이여』라고 해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전혀 참회하지 않는 모습. 징역 5년의 구형을 받고 이날 징역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이경숙은 선고를 받은뒤에도 집행유예의 의미를 모르는듯 잠시 멍한 표정. 곧이어 옆자리에 앉은 여교도관에게 몇마디를 묻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며 만감이 교차하는듯 감격의 눈물. ○…지존파에 이어 이날 사형이 구형된 온보현피고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빈다』며 『사형만은 피해달라는 변호인의 말은 지금 이자리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도 나같은 흉악범들에게는 전혀 쓸모없다』는 의외의 최후진술을 했다. 온은 『희생된 사람들과 유족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신다면,또 다시는 나같은 흉악범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부디 법정최고형인 사형에 처해 달라』고 재판부에 마지막 심경을 전한뒤 『형의 집행도 하루속히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주문.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현상수배되지 않았더라면 자수하지 않고 범행을 계속 저질렀겠느냐』는 질문에 온이 또렷한 목소리로 『네.아마 그랬을 겁니다』라고 응답하자 방청석에서는 일순 술렁거리며 『저런…』이라는 한숨과 함께 꾸짖는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온은 또 2차범행이 실패로 돌아간뒤 인근 경찰서에 자수할 생각으로 『내가 목격자다』라며 전화를 걸었으나 『네가 범인인 것을 알고있다.자수하지 않아도 목소리가 녹음돼 현상수배를 하면 잡을수 있다』라는 경찰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반감이 생겨 범행을 계속하기로 작정했다고 진술. ○…온은 지난13일 구속기소된 이래 15년전 헤어진 「첫사랑」을 나눈 여자와의 면회는 허용했으나 가족들을 포함,담당 국선변호인의 면회조차 거부하고 이날 법정에 선 것으로 확인.
  • 살인실습에 「화장터」까지 차려/「지존파」 일당 행각 이모저모

    ◎야쿠자세계 다룬 소설 「야니」 교과서로/“최후엔 자폭” 다이너마이트도 구해둬/지리산서 지옥훈련… 공기총 항상 휴대 희대의 연쇄납치살인사건을 벌인 「지존파」일당은 「살인실습」을 위해 길가던 20대 처녀를 집단 성폭행한 뒤 살해·암매장했는가 하면 범행 아지트에는 시체소각장까지 설치하는 등 잔혹하기 짝이 없는 범죄행각을 벌였다. 이들의 범죄조직운영및 범행수법의 대담함과 잔인함·치밀함에는 강력사건에 익숙한 베테랑 수사관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강간치상 혐의로 이미 구속된 김기환씨(26)를 중심으로 지난해 7월 「지존파」를 결성한 일당 6명은 조직의 결속을 위해 지난 7월 지리산에서 합숙하면서 1주일간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지옥훈련」을 하는등 마피아조직을 방불케 했다. 이들은 일본 야쿠자 폭력배들의 세계와 깡패들의 교도소생활을 다룬 「야인」「뼁끼통」 등 소설들을 「교과서」로 삼아 엽기적 살인수법및 책속의 주인공들이 펼치는 대담한 행동을 배웠다고 경찰에서 진술. 또 납치했던 이모씨(27·여)가지난 15일 탈출한 뒤 경찰의 추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면서도 범인들이 계속 아지트에 남았던 이유는 동료들과 함께 「최후」를 맞기 위한 것이었다는 후문.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아지트에서 압수된 공기총·도끼·다이너마이트·무전기등 각종 살인장비 가운데 특히 다이너마이트는 범인들이 강원도 삼척의 광산에서 입수,만일의 경우 자폭하기 위해 지니고 있었다는 것. 이들은 소사장을 살해할때에 사용한 사냥용 공기총으로 수시로 사격연습을 했고 항상 실탄을 장전한 상태로 지니고 다녔다고. ○…검거 당시 범인들이 갖고 있던 서울 모백화점의 우수고객명단에는 3백여명의 이름과 주소가 들어있었으며 몇몇 사람의 이름앞에는 범행대상으로 지목한듯한 특정표시까지 돼있는 상태.범인 가운데 한명은 경찰에서 『백화점에서만 한달에 7백만원 이상 쓰는 사람이 많은데에 배가 아팠다』고 진술. 경찰은 이들이 검거되지 않았을 경우 명단에 나와있던 부유층들을 상대로 또다른 범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 ○…경찰은 21일 상오 김현양씨등 범인 4명을 전남 영광군등 3곳으로 데리고 가 현장검증및 사체발굴작업을 실시. 호송차량 뒤에는 이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서울지검 형사3부 김홍일검사와 서초경찰서 형사계장등을 태운 승용차 3대및 취재차량 20여대가 뒤따라 이번 사건에 쏠린 높은 관심을 반영. ○…전남 장수경찰서가 3번째 희생자인 이종원씨 피살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의 2차례에 걸친 재수사지휘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의 위장수법에 넘어가 단순 교통사고로 간주,수사를 제대로 하지않아 소윤오씨부부등 피해자가 늘어났다는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 경찰은 지난 12일 하오6시쯤 제초작업을 하던 장수군청 인부들에 의해 발견된 이씨의 사체주변에 소지품이 그대로 있고 사고지점이 S자 굴곡 형태라는 점만을 들어 단순 교통사고로 단정,수사를 종결하겠다며 전주지검 남원지청 문무일검사에게 품신했다가 재수사 지휘를 받았다는 것. 그래도 경찰은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문검사가 사건발생 8일만인 지난 16일 ▲사고당시 이씨가 맨발이었고 ▲머리부분이 검게 타일반적인 교통사고 사망자와 다르며 ▲차량 손상이 거의 없었다는 점등을 지적하며 재차 재수사 지휘를 내리고 남원의료원에서 사체를 부검하고 국과수에 사인규명을 의뢰했다고. ○…이번 연쇄납치 살인사건 해결에 결정적 계기가 된 세번째 피해자 이종원씨의 가족들은 교통사고사로 장례까지 치른 이씨가 살해됐다는 비보에 넋을 잃은채 비통해 하고 있다. 부인 김모씨(35)와 딸 등 가족들은 기자들은 물론 이웃과의 접촉도 일절 회피하고 있으나 전화통화로 『사지가 벌벌 떨린다.가족들이 모두 충격으로 정신이 없으니 더이상 묻지 말아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부인 김모씨는 지난 7일 하오 7시30분쯤 남편 이씨가 출근한다며 나간뒤 소식이 없자 4일뒤인 11일 하오 2시쯤 관할 공단파출소에 가출인신고를 했다. 이후 부인 김씨는 지난 12일 공단파출소로부터 『전북 장수경찰서에서 이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숨졌다고 통보해 왔다』고 연락받은뒤 지난 16일 장례까지 치른 상태. ◎죽음의 집 「영광아지트」/지하소각로엔 타다남은 뼈마디…/평범한 시골농가… 감금실엔 쇠창살/방·지하실간 인터폰 달아 보안유지 「지존파」일당이 은신처로 삼은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 81 불갑산자락의 단층가옥은 바로 「죽음의 집」이었다. 슬라브형으로 지은 「ㄴ」자형의 이 집은 회산마을에서 2백m쯤 떨어져 기와집 두채와 나란히 서있어 겉보기엔 한가한 시골 농가와 다름이 없다.그러나 지하실에는 쇠창살로 만든 사제감옥과 시신소각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지존파를 결성한 두목 김기환(26·구속중)이 지난해 3월 홀어머니를 이웃마을로 옮기도록 한뒤 지난 7월 「특수목적」에 맞게 개축을 마쳤다.이를 위해 일당은 대지80평에 건평 27평의 건축허가를 받아 실제는 1백17평에 본채 30평,지하실 차고용 부속건물들을 지었다.외부인에게 집의 내부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 미장공이나 벽돌공으로 일한 경험을 살려 범인들이 손수 지었다. 1층은 범인들이 숙식에 사용한 방3개와 주방,보일러실이 전부이나 감금실과 시신소각로가 설치된 지하실은 멋대로 지은 창고겸 주차장안으로 통로를 내 은폐를 노렸다.나무사다리로 8계단을 내려가면 15평 가량의 지하실이 나오고 오른쪽에 감금실,맞은편엔 시체소각로가 치밀하게 설치돼 있다. 통로 오른쪽으로 1m쯤 떨어진 곳의 육중한 철문을 열면 경찰서 유치장을 연상케하는 쇠창살로 막은 것이 이중잠금장치를 한 납치자감금실이다.쇠창살안쪽 콘크리트바닥과 벽엔 선명한 핏자국이 남아있고 뽑힌 모발이 흩어져 있어 소윤오씨의 살해수법이 참혹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두개골 2개와 타다남은 등뼈등이 발견된 소각로는 가로 1.8m 세로 2m 높이 1.05m의 철판상자안에 직경 3㎝의 철봉 13개를 50㎝높이로 끼워넣어 시체를 태우기 쉽도록 해놓았다.소각장에는 지름 20㎝의 쇠파이프굴뚝을 세워 1층 뒤뜰로 치솟게하고 대형환풍기까지 갖춘뒤 판자를 덮어 위장했다.한적한 시골임에도 본채와 20여m 떨어진 대문에 전력검침기를 설치하고 조직원들간의 수신호용 초인종과 일반가정에서 사용하는 초인종은 물론 방과 지하실간에도 인터폰을 달아 보안에도 철저히 주의를 기울였다. ◎범인일당 일문일답/“돈 많은 사람·야타족 다 죽이려 했다” 범인들과의 일문일답. ­왜 범행을 저질렀나. ▲(강동은)세상이 싫다.빈부차이가 너무 크게 나 있고 돈없는 사람은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다.세상은 돈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있다. ­피해자들을 누가 살해했나. ▲(김현양)모두 내가 주동해 살해했다.소윤오씨와 이종원씨를 살해할때는 탈출한 이영순(가명)이를 시켜서 살해했다. ­몸값을 받아내고도 소씨부부를 살해한 이유는. ▲(〃)우리들의 얼굴을 알고 있어 범행이 탄로나지 않도록 완전범죄를 노리고 살해했다. ­완전범죄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나. ▲(〃)언젠가는 잡힐줄 알고 있었다.이영순이가 도망간 것을 알고도 나흘동안 도망가지 않고 현장에서 기다렸다.차라리 잡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백화점 고액거래자 명단을 어떻게 입수했나. ▲(강동은)가스총 등 장비를 구입하면서 부탁했다.출처는 밝힐 수 없다. ­아지트를 지을때 사용한 돈은 어디서 조달했나. ▲(〃)각자 막노동을 해서 번돈 4천만원을 저금했는데 이중2천여만원을 찾아 비용으로 썼다. ­현재의 심정은. ▲(김현양)살해할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동료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한 생각이다.장기기증을 해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다.압구정동 야타족 등 돈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지 못한게 억울하고 한이 된다.다시는 우리같은 사람들을 만들지 말아달라.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달라.
  • 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1

    ◎서울신문 왕상관·이도운특파원 그 현장에 가다/“나는 이렇게 탈출했다” 김호씨 증언/도주­피체반복 6년만에 러거주증 획득/현장 운전수 3년만에 불순자로 낙인/몽고­중아 유랑… 두번 잡혔다 다시 도피/한국망명 신청했으나 “부답”… “서울거리 걸어 봤으면” 러시아 극동지역의 북한벌목장을 탈출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서울로 가는 꿈을 안고 러시아 전역을 떠돌고 있다. 북한당국의 추적과 지역주민들의 밀고에 쫓기는 불안과 긴장,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돌봐주기는 커녕 무슨 흉물보듯 대하는 이민족들의 멸시,그리고 망명에 대한 한국정부의 어정쩡한 방침 때문에 이들 가운데 일부는 아예 서울행을 포기하고 러시아에 망명을 신청하기도 한다. 이들의 삶은 그야말로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하기만 하다.특히 최근에는 이들의 입을 통해 벌목장의 인권유린등 온갖 비행이 폭로되는 것을 꺼리는 북한당국이 탈출자를 붙잡기 위해 특무대원을 러시아 각지에 파견하고 있어 거의 절망적인 불안속에서 고달픈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숨어다니며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주민) 행세를 하기 때문에 만나보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4명에만 망명 허가 기자는 지난 13일부터 러시아에서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와의 접촉을 시도한 끝에 1주일이 지나서야,그것도 다섯 단계를 거쳐서야 블라디보스토크 근처 아르좀의 한 주택가에서 김호라는 탈출노동자를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김씨는 지금까지 러시아정부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오직 4명뿐인 북한노동자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김씨는 망명허가를 받고도 여전히 계속되는 북한측의 테러위협 때문에 지금도 은신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는 북한에서의 성장과 파란만장한 도피과정,러시아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법적 위상등 북한벌목장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한 몸에 안고 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이었다. 김씨는 59년7월20일 평안남도 혜산에서 태어났다.3남2녀 가운데 둘째아들이었다.아버지는 혜산일대에서 유명한 교육자였고 누나가 의사,형은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다녔으며,여동생도러시아어 교사를 하는 성분좋은 집안이었다.고등중학교를 마친 뒤 군에 입대,휴전선근처 공군부대에서 복무하다 평안북도 정주의 군관학교를 거쳐 82년 소위로 임관했다.몇년동안 장교생활을 하다 「10만군 축소계획」에 따라 제대를 하게 된다. ○현장 당비서차 운전 사회에 나와 운전을 하던 김씨는 러시아 벌목장으로 돈을 벌러가려고 마음을 먹었다.88년 5월16일 러시아행 열차를 타고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의 북한벌목장 가운데 하나인 튀르마에 도착했다. 러시아에 와보니 세상이 달랐다.튀르마는 지방의 소도시였지만 주민들의 삶은 자유로웠고 상점에는 물건이 가득한,일종의 「천국」이었다.김씨는 벌목장에서 공산당책임비서의 운전사로 근무했다.책임비서는 벌목장에서도 위치가 확고했기 때문에 김씨도 열악한 생활환경이었지만 그런대로 적응해 지낼 수 있었다. 김씨의 운명이 바뀐 날은 벌목장에 온지 3년이 조금 넘은 91년8월24일이었다.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우리도 러시아처럼 민주주의를 해야한다』고 「불순한」 말을 내뱉은 것이 화근이었다.바로 다음날 김씨는 당위원회의 호출을 받았다.안전부에서도 김씨를 찾았다.그는 본능적으로 사태가 심각함을 깨달았다.『산에 좀 갔다오겠다』며 숙소를 나와 그길로 열차를 잡아탔다. 김씨는 러시아에 와서 북한에서의 삶이 허구였다는 것을 어느정도 깨닫기 시작했다.그렇다고 탈출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그러나 당위원회와 안전부에서 자기를 부른 것은 전날밤의 일만을 갖고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이미 그동안의 여러가지 발언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올가미를 씌우는 것이 분명했다.이제 북한으로 돌아간다해도 정치범수용소 신세를 모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결국 서울로 달아나는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하바로프스크로 갔다.시장에서 윤씨라는 고려인 할머니를 만나 그 집에서 며칠동안 숨어살았다.갖고 있던 총재산 1백달러를 주고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 고려인의 신분증을 빌렸다.그리고 9월7일 모스크바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고려인 아내도 맞아 김씨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한국대사관을찾아가 망명을 요청했다.그러나 한국대사관에서는 김씨에게 이렇다,저렇다 하는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낙담천만이었다.게다가 북한당국의 추적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꼈다. 모스크바에 더 머무르기가 어려웠다.9월 중순 고려인들이 많아 러시아보다는 신변이 안전한 중앙아시아 카자흐공화국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거기서도 결국 정착지를 찾지 못하고 고민끝에 북한 안전요원의 발길이 미치지 않을 것같은 몽골로 건너갔다.몽골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고려인 청년 한명을 만났다.그 만남이 김씨의 운명을 또한번 바꿔놓았다.카자흐공화국의 타슈켄트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청년은 김씨에게 함께 일하자고 했다. 그는 마침내 청년의 동생인 마야(5월이라는 뜻)라는 아가씨를 아내로 맞게 됐다.곧바로 두사람은 부부가 되고 마야의 친척들이 김씨의 신분증을 만들어주기 위해 관리를 매수할 돈을 모았다.그러나 관리들의 실수로 여권이 2중으로 발급됐고 행정처리 과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 김씨는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경찰은 김씨를 수도인 타슈켄트로 이송해 신분확인 작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경찰에 수감된 김씨는 우연히 목공일을 돕다가 만일에 대비해 칼 하나를 훔쳐뒀다. 김씨의 신분확인은 한달만에 끝났다.벌목장을 탈출한 사실이 드러났고 경찰은 신병을 북한측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그러나 그는 죽으면 죽었지 북한에 다시 잡혀갈 수는 없었다.경찰이 호송차에 태우기 직전 품속에 숨겨둔 칼을 꺼내 자기배를 찔렀다.그리고 경찰호송차 대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다.그는 다음날 밤 의사와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탈출했다. 한 고려인 집에 숨어 치료를 받은 김씨는 마야와 함께 이번에는 우즈베크공화국으로 넘어갔다.우즈베크는 바다가 육지로 변한 척박한 땅이다.탈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같이 끓는 모래밭 2정보를 일궈 해바라기를 심고 지게로 물을 지어 날랐다.해바라기가 자랄 때까지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처형이 사는 블라디보스토크 이웃으로 가 중국과의 국경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 때가 92년 여름.국경에서 떠돌이 북한인을 사귀게 됐다.며칠뒤 그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보니 러시아 경찰 두명이 다가와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도망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결국 다음날 북한 안전요원들에게 넘겨지고 말았다.안전요원들은 김씨를 차에 태운뒤 팔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우고 받줄로 묶었다.다리에는 마치 부러진 다리를 기브스하듯 철제 족쇄를 두른뒤 40㎏짜리 여행용 가방에 묶었다.하바로프스크의 북한임업대표부를 거쳐 기차로 3시간 떨어진 비르비잔 벌목장의 감방으로 끌려갔다. 부인 마야는 김씨가 잡혀가자 혼자서 하바로프스크의 북한임업대표부로 찾아갔다.몇날며칠을 임업대표부 앞에 앉아 김씨를 풀어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하바로프스크주정부등 관계당국을 찾아 남편의 구명운동을 벌였다.러시아 국적을 가진 마야가 독하게 달려들자 북한측으로서는 골치아픈 일이었다.문제가 커지기 전에 김씨를 북한으로 빼돌리기로 했다. 지난해 4월3일 김씨는 북한으로 가는 열차에 태워졌다.그러나 기차를 타고 가는 이틀동안 감방에서 주은 핀침으로 수갑을 풀었다.일행은우스리스크역에서 기차를 바꿔타려고 역사로 나왔다.4명의 안전요원 가운데 2명이 표를 사러가고 2명이 남았다.김씨는 그틈에 2명의 안전요원 가우데 한명은 면상을 들이받고 다른 한명은 수갑을 찬 손으로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리고 도망쳤다. 김씨는 북한 안전요원을 피해다니고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 다니는 편법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고 결론을 냈다.마야의 친척집으로 숨어들어가 모스크바의 법률가협회에 망명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곧이어 모스크바로 날아가 인권위원회와 유엔,외교성등에도 도움을 청했다.모스크바당국은 김씨의 망명신청을 일단 접수했다.러시아의 법적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2년 지나면 시민권 북한은 김씨의 망명을 허가해주지 말도록 각종 채널을 통해 러시아정부에 강력히 요청했다.그러나 지난해 10월4일 러시아공민권위원회는 김씨의 망명을 허가했다.그리고 지난 1월26일 모스크바에서 김씨에게 편지가 날아왔다.그 안에는 특정지역(김씨의 경우 블라디보스토크)의 거주를 인정하는 「비트 나 지제스트로」가 들어있었다.이 거주증은 2년만 지나 본인이 원하면 러시아시민권인 파스포트로 교환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씨의 꿈은 여전히 남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벌목장을 탈출한 순간부터 닥쳤던 가시밭길은 모두가 서울로 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목숨을 걸면서까지 탈출한 것은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었다.러시아에서는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김씨는 그러나 막상 한국측에서 『넘어오는 북한사람을 모두 받아주기만 하는게 능사가 아니다』라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몹시 씁쓸해하고 있다.『떼를 쓴다고 될일도 아니갔디요』라고 계면쩍게 웃는 그의 표정이 꽤나 측은해 보였다.그는 『서울에 대해서는 잘 모르갔디만 아마 가보면 내눈이 뒤집힐 것』이라고 말했다.『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그저 서울거리를 걸어보고 싶다』고 했다. 지금 러시아에는 김씨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탈출노동자들이 수백명에 이른다.이들이 벌목장을 탈출했다는 사실은 결코 영예로운일이 아니다.행여 그들이 지나간 삶을 서울에서 보상받으려 해서도 안될 것이다.그러나 결국 누군가는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러시아와 북한,그리고 한국 이 세나라가 이들의 관련당사국이다.러시아는 이미 이들을 받아들일 몸짓을 보이고 있다.북한도 이들을 모두 붙잡아가는데 혈안이 돼있다.물론 그 이유는 서로 다르다.그러나 정작 이들이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자유조국」은 아직 문을 열지 않고 있다.
  • 유엔호송차 피습/애군 등 2명 사상/소말리아

    【모가디슈 로이터 DPA 연합】 소말리아주둔 미군을 비롯한 서방국 군대가 철수함에 따라 파벌간의 전투가 재연되고 무법사태가 빈발하는 가운데 13일 수도 모가디슈에서 유엔의 한 호송차량대가 무장한 부족들의 습격을 받아 유엔평화유지군소속 이집트군인 1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했으며 중부지방에서도 구호활동에 종사하는 이탈리아인 2명이 다른 부족에게 납치됐다. 유엔군대변인은 두 이집트군인이 파키스탄군대가 경비하던 도로상에서 소말리아부족들의 습격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으나 그밖의 구체적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 “로비대상 의원 2명 돈 안받아”/검찰 「돈봉투」 수사 주변

    ◎서류압수땐 자신감… 하룻만에 “소득 없다”/“물증확보 계속” 발표는 구색갖추기 인상 국회노동위 돈봉투사건 수사는 「속전속결」의 결의를 다졌던 검찰의 수사초기의 자신감과는 달리 뇌물거래의 규모나 정치권인사들의 관련전모등에 대한 속시원한 결론을 끌어내지 못한채 사실상 종결돼 아쉬움만 남겼다는게 법조계주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번 사건 관련인사들의 사법처리범위를 놓고 6일부터 여러차례 수사지휘간부와 실무검사들간에 상당한 의견을 교환한 서울지검은 7일 상오 대검등 수뇌부에 자문을 구하는등 고심끝에 한국자보 김택기사장만 구속키로 결론을 내려 관련자들을 무더기로 소환하면서 「한건」할 것같은 분위가와는 대조적인 모습. 검찰은 또 이날 중간수사발표에서도 그동안 소환됐던 인사들에 의해 거명됐던 의원들의 명단확인조차 거부하는 신중한 태도를 고수. 검찰은 이날 자보측이 민주당 김말용의원외에 야당의원 2명에게 로비를 하려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기는 했으나 『이들 의원들의 이름을 밝힐 경우 명예훼손 등의우려가 있다』며 구체적인 거명을 삼간채 『한 의원에게는 자보측이 접촉을 시도했으나 만나주지 않아 실패했으며 다른 한명은 아예 접촉시도를 하지 않았다』고만 설명. ○…이 사건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분위기가 심한 굴곡을 보여 수사가 예측불가능할만큼 어려웠음을 반증. 검찰은 지난 5일 전날밤 자보측이 빼돌렸다 압수당한 서류상자에 상당한 기대를 거는듯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다 6일 상오에는 『자보임원들에 대한 밤샘조사결과 아무것도 얻은게 없다』며 위축된 모습. 그러나 이날 하오의 브리핑에서는 다시 8백만원을 로비자금으로 썼다는 진술을 받아냈다며 돌연 활기를 띠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7일 상오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는 특별히 더이상 밝혀낸게 없다며 맥빠진 모습. 검찰은 앞으로의 수사방향과 관련,김사장 등 자보간부들의 집과 사무실에서 압수한 예금계좌를 계속 추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으나 이는 예금계좌추적 등 물증확보 노력을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면해보려는 구색갖추기가 아니냐는 지적. 검찰은 특히 서울 송파구 방이동이창식전무의 집에서 확보한 예금통장가운데 이번 수사에 단서가 될만한 예금계좌 하나를 찾아내 조사중이라고 밝히면서도 『언제쯤 결과가 나오겠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조속한 시일내에 결과를 찾아내도록 노력하겠다』며 원칙론만 고수. ○…검찰은 자보측의 비자금조성과 관련,직원들의 사회보장비등 명목으로 2백27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기로 한 계획서를 추가로 확보했다고 밝혔으나 『이번 수사는 노동위의 돈봉투사건을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라며 『비자금 등 부수적인 문제에 매달리지는 않겠다』고 말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문제삼을 의사가 없음을 시사. ○…이날 하오1시40분쯤 구속집행된 김택기자보사장은 굳은 표정으로 침묵을 지키다 『어쨌든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께 죄송하다』고만 밝힌뒤 호송차에 실려 구치소로 출발. 김사장의 구속과 관련,검찰주변에서는 재벌인사등이 「뇌물공여의사표시죄」로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같다고 한마디씩. 그동안 이 규정은 교통경찰에게 무마비조로 돈을 건네주려는 교통법규위반사범에 주로 적용돼왔을 뿐이며 더욱이 이번처럼 세인의 주목을 끄는 사건에서는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었다고 설명. 따라서 검찰주변에서는 검찰이 더이상의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궁여지책 끝에 이를 적용한 고육지책의 측면도 있지만 앞으로 뇌물사건을 더욱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의 반영인 것으로 분석.
  • 김회장,“회사 부탁”… 끝내 눈물/김승연한화회장 구속집행 이모저모

    ◎“부덕의 소치” 대국민사과문/검찰,구속여부 싸고 한때 격론 30일 밤 김승연 한화그룹회장의 전격 구속은 검찰 주요 간부들은 물론 경제계인사들도 상상조차 못한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날 김회장의 구속을 지켜본 재계인사들은 「성역없는」사정의 단면을 확인하면서도 앞으로 경제계에 미칠 파장등을 우려하는 표정이 역력했으나 많은 사람들은 이번 수사를 통해 축재과정에서 비난을 받아온 일부 재벌그룹들도 도덕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김회장의 구속은 그가 소환된 이날 하오부터 김태정 대검중앙수사부장등 수사관계자들이 사법처리방향에 대한 보도진의 질문에 『현재로서는 말할 것이 없다』고 답변을 회피하면서도 『하지만 퇴근무렵 발표할 것이 있을 것』이라고 신병에 관한 암시를 던져주면서 「감」이 잡히기 시작. 이 사건 수사를 맡은 대검중수부 관계자들은 김회장을 1차 소환했을때 부터 시종일관 김회장의 사회·경제적 지위등을 환기시키며 「불구속기소 방침」을 흘려 김회장의 불구속은 기정사실화됐던 것. ○…그러나 별장구입에 명의만 빌려줬을 뿐이라는 김회장의 주장을 반박할 증거가 미국 국세청자료등을 통해 확보되자 검찰은 사법처리방침을 굳힌뒤 그 수위를 놓고 고심했고 이에따라 이날 구속결정을 앞두고 소집된 대검 간부회의에서도 김회장의 구속에 관한 격론이 벌어졌다는 후문. 그러나 검찰은 이미 지난 주말 여론수집등을 통해 김회장에대한 구속방침을 결정하고 김도언 검찰총장이 지난 29일 국회 예결위에 참석중인 김두희법무부장관을 찾아가 최종 재가를 받았다는 전문. ○…이날 하오 11시5분쯤 검찰 수사관들에 의해 구속이 집행된 김회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담담한 표정으로 『신한국 건설에 앞장서야 하는데도 걸림돌이 돼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짤막하게 답변. 김회장은 그러나 검찰호송차에 탑승하기 직전 검찰청에 나와있던 한화그룹 임원들과 악수를 나눈뒤 『한화그룹이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당부하면서 눈시울 붉히기도. ○…수사팀들은 김회장이 재벌의 총수인점 말고도 신문사의 사주라는 사실때문에 예우에 무척 신경쓰는 눈치. 장·차관과 국회의원들도 최근 몇년동안 수십명을 구속했던 중수부는 다른 때와는 달리 「피의사실공표」와 신문사 사주의 예우를 내세우며 간단한 혐의사실만을 발표한채 브리핑을 종결. ○…이번 사건수사는 지난 4월 김회장이 미국 LA의 4백70만달러짜리 초호화별장을 유명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으로부터 구입한 사실이 폭로돼 경실련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시작됐으나 실제로는 김회장의 동생인 호연씨의 불화가 도화선이 됐다는 게 재계주변의 정설. ○…김회장은 이날 구속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하오 4시쯤 오재덕 부회장을 통해 『국가가 개혁이라는 큰 과제아래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덕함과 수양부족으로 국민들에게 누를 끼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요지의 사과문을 내 구속사실을 미리 통보받았지 않느냐는 추측을 낳기도. □검찰수사일지 ▲93년 4월21일=경실련이 한화그룹 김승연회장의 외화 밀반출및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시가 38억원 상당 호화별장 구입사실 폭로,조사의뢰. ▲10월13일=김회장 1차 소환,외화밀반출혐의 조사. ▲10월18일=김회장등 외화유출 혐의자 8명 출국금지조치. ▲11월3일=김회장 2차 소환. ▲11월12일=한화그룹의 83억여원 상당의 가명계좌 불법실명전환 혐의잡고 경영기획실 관련자 8명 소환·조사. ▲11월25일=GUSA(한화그룹 계열 미국 현지법인) 전뉴욕지사장 민용식씨(47)소환·조사.
  • 히로뽕 피의자 호송중 탈출/도심서 인질극 소동/2시간만에 붙잡혀

    【대구=이동구기자】 경찰 호송차에 실려가던 20대 히로뽕 중독 피의자가 호송차에서 탈출,행인을 볼모로 인질극을 벌이다 2시간여만에 붙잡혔다. 27일 하오3시30분쯤 대구시 중구 하서동 곽병원앞에서 대구경찰청소속 호송차에 실려가던 조현태씨(28·대구시 달서구 본리동)가 이승곤경위(42)등 경관 2명과 격투끝에 탈출했다. 차에서 뛰어내린 조씨는 길가던 손모양(23·여)을 흉기로 위협,인근 신정약국으로 끌고가 40분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손양을 풀어준 뒤 약국 뒷담을 넘어 곽병원 5층 옥상으로 올라가 1시간40분동안 경찰과 대치하다 하오5시50분쯤 자수했다.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기소중지된 조씨는 지난 26일 대구경찰청 폭력계에 자수,조사를 받은 뒤 이날 대구 중부경찰서 형사피의자보호실에 수감되기 위해 호송되던 길이었다.
  • 너무 뻔뻔스런 살인미병/박성원 사회1부기자(현장)

    ◎마클이병 범행 부인에 방청객 “울분” 17일 하오 서울형사지법 417호 대법정에서는 동두천시 미군클럽 여종업원 윤금이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미제2사단 소속 케네스 마클이병(21)에 대한 첫공판이 열리고 있었다. 2백여명의 전경들의 삼엄한 경비망을 통과해 법정에 들어선 3백여명의 방청객들은 마클이병이 입정하는 순간 재판장의 자제요청도 잊은듯 욕설을 토해냈다. 『윤금이가 술에 취해 도와주려 했으나 돈을 요구하며 콜라병을 휘둘러 방어차원에서 빼앗아 두어차례 내리쳤을 뿐이다』 미8군 법무감실 관계자의 통역을 통해 마클이병이 검찰신문에 대한 진술을 해나가자 법정은 다시 술렁였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내리친뒤 피가 방바닥을 넘어 밖으로까지 흐르자 세제를 뿌리고 우산과 깨진 콜라병을 몸에 찔러 넣었다는데』 『피는 피해자의 몸에 약간 묻었을뿐이며 나는 그뒤 곧바로 빠져나와 피해자가 숨진 사실도 알수 없었다』 쑥색정복차림의 마클이병이 살해뒤 난행등 대부분의 범행사실을 부인해나가는 동안 법정 방청석 한가운데 자리잡고 앉은 윤씨의 어머니 강공례씨(53)는 줄곧 한숨만 내쉴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한채 검사석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클이병의 부인이 계속되자 재판장은 윤씨의 살해소식을 알게된 시점과 난행부분에 대한 마클이병의 생각을 직접 묻고 나섰다. 그러나 마클이병은 『변호인과 상의해 나중에 답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할뿐이었다. 40여분에 걸친 검찰측 직접신문과 재판부의 보충신문끝에 재판장이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요청하자 변호인인 김종표변호사는 『준비가 덜됐다』며 공판연기를 요청,재판은 1시간도 채못돼 맥없이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군범죄수사대 요원들에게 이끌려 법정을 나서는 마클이병을 향해 일어선 방청객들의 욕설과 함께 법정주변을 에워싸고 호송차량 진입로를 가로막은 여성단체회원들이 플래카드와 구호·노래를 펼치면서 미군당국자들의 발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살인미군 즉각 구속하라」 「윤금이를 살려내라」 구치감을 나서려던 마클이병의 호송차가 쫓겨 들어가는 숨바꼭질이 1시간 30분가량 계속되는 동안윤씨의 어머니 강씨는 『왜 저런 뻔뻔스런 살인자를 우리 검찰이 가두지 못하는 거냐』며 통곡하고 있었다.
  • 경찰,취재기자 폭행

    【대전=이천렬기자】 16일 하오1시40분쯤 대전시 중구 선화동 대전지법 1호법정 밖에서 한준수후원회 총무 박영기씨(38)등 4명이 기자회견을 갖고 한씨의 석방등을 요구하다 경찰에 연행됐다. 또 한겨레신문 유창하기자(32·사진부)가 연행장면을 찍다 경찰호송차로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었으며 안경과 카메라 2대가 부서졌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