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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前대통령들도 찾던 피맛골… 미래유산의 보고 인사동까지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前대통령들도 찾던 피맛골… 미래유산의 보고 인사동까지

    서울신문이 서울시·문화지평과 함께 진행하는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문화자산을 찾아 나선 여정이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 시민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과 감성으로 미래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의미한다. 미래유산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시민제안이 언제나 가능하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를 통해 시민단체나 전문가들도 제안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한 커뮤니티 차원의 미래유산 발굴도 이뤄지고 있다. 미래유산 발굴과 신청은 시민 주도의 상향식 방식이 원칙이다. 제안된 예비후보들은 사실 검증, 자료수집을 위한 기초 현황조사를 한 후 소유주 동의에 따라 최종적으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사거리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본점 자리는 조선시대 의금부가 있던 터다. 의금부는 관원·양반의 범죄, 대역죄, 강상죄 등을 처벌하던 특별사법기관이다. 요즈음으로 치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아 처리하는 특검과 같은 기관이었던 셈이다. 의금부가 있던 지역명은 공평동으로 ‘공정하게 재판을 처리한다’는 의지를 담았다. 의금부 앞에는 백성의 억울한 사연을 신고받기 위한 신문고가 있었다. 길 건너 영풍문고 본점 자리는 전옥서가 있던 자리다. 전옥서는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미결수를 수감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관원·양반 출신 범죄자는 의금부에서 담당했고 전옥서는 주로 상민 출신 범죄자를 수감했다. 최근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옥중화’를 통해 전옥서가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의금부 터에서 18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이 지난달 19일 오전 10시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박 해설사는 “‘종로 뒤안길 답사’ 등 그동안 종로를 횡축으로 누볐는데 이번 코스는 우정국로와 감고당길, 인사동길, 삼청로 등 남북으로 형성된 도로를 따라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종축 탐방으로 준비했다”며 “이 지역은 서울미래유산의 보물창고”라고 운을 뗐다. 이어 서울미래유산이란 무엇이고, 답사를 왜 진행하는지 그리고 답사 진행에 따른 안전수칙을 설명한 뒤 이동을 시작했다. 의금부 터에서 우정국로를 따라 북쪽으로 70여m쯤 가다가 처음 만나는 골목을 들여다보니 열차집이 자리잡고 있다. 청진옥·미진·열차집·청일옥…3대 가업 잇는 노포식당 즐비 열차집은 3대째 이어오는 빈대떡 전문점이다. 1954년 지금의 교보빌딩 인근 세종로 뒷길 한옥가 골목길에서 창업주 안덕인씨가 문을 열었다. 박 해설사는 “당시 추녀 밑에 기차간처럼 길게 놓인 의자를 보고 사람들이 ‘기차집’이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됐다”며 “1960년 피맛골로 이전해 ‘열차집’이라는 간판을 단 게 상호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현 운영주인 우제인씨 부부는 1976년 열차집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다 안씨로부터 장사 노하우를 전수받아 가게를 인수했다. 2009년 도심 재개발사업으로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비서관을 시켜 이 집 빈대떡을 가끔 사갔다고 한다. 이번 답사코스에는 열차집을 비롯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식당이 꽤 많다. 1937년 개업한 해장국 전문점 청진옥(대표 최준용), 1954년 문을 연 메밀전문식당 미진(대표 이수련), 1945년 개업한 녹두빈대떡 전문점 청일집(대표 이승진) 등 노포가 즐비하다. 이들 노포는 모두 3대째 대물림해서 운영되고 있다. 청진옥은 백범 김구 선생과 윤보선 전 대통령의 단골집이었다. 박 해설사는 “과거 해장국집에서는 밥을 팔지 않고 손님이 찬밥을 가져와 토렴해 먹었다”며 “이유는 밥이 식으면 밥알이 갈라지는데 그 사이로 국물이 스미면서 풍미가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뜻한 밥을 국에 넣으면 국물을 빨아들여 불어버리기 때문에 맛이 제대로 안 나 일부러 찬밥을 쓴다는 것이다. 박 해설사가 전문요리사처럼 설명하자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열차집 대각선 방향에는 동헌필방과 NH농협은행 종로지점이 이웃해 있는데 서울미래유산에도 나란히 선정됐다. 동헌필방은 1934년 창업한 남계양행의 사옥으로 사용됐던 건물로 초기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남계양행 창업주 윤치창은 개화파 무신 윤웅렬의 서자이자 구한말 개화파 윤치호의 이복동생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는 등 개화기 신문물을 일찍 수용한 인물이다. 이 건물 출입구의 상부 박공은 색다른 조적조 쌓기 기법을 보여 주고 있다. NH농협은행 종로지점 건물은 1926년 지어진 서울시 근대건축물이다. 1926년 창간한 중외일보 판권과 신문 호수를 이어받아 1931년 창간한 중앙일보(조선중앙일보 전신)가 1933년 똬리를 튼 곳이다. 당시 몽양 여운형(1886∼1947)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제호를 조선중앙일보로 바꾸고 사옥도 옮겼다. 1936년 8월 10일 독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유니폼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인해 1937년 폐간당했다. 손기정 일장기 말소로 폐간된 신문사갑신정변 실패 지켜본 회화나무도 미래유산 조계사 정문 우측에는 우정총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고종 21년인 1884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행정관서로서 조선시대 통신수단인 역참제의 대체수단이었다. 병조참판 홍영식이 초대 총판을 지냈다. 우정총국은 낙성식을 틈타 개화당의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실패하자 개국 17일 만에 문을 닫았다. 초대 총판 홍영식은 김옥균과 달리 일본으로 망명하지 않고 29세에 대역죄로 처형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이런 역사를 우정총국 앞마당 회화나무가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박 해설사는 “갑신정변의 현장이었던 우정총국 일대를 지켜온 나무로서 보전 가치가 높아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답사팀은 안국동 사거리를 통해 인사동길로 접어들었다. 100여m를 들어서니 한자로 ‘通文館’(통문관)이라고 돌에 각자 간판을 단 서점이 있다. 글씨는 서예가인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이 썼다. 1934년 문을 연 통문관은 고서 매매와 출판업을 겸했던 서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서적 매매서점이다. 80년 넘게 같은 지역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면서 관훈동 일대의 시대상을 보여 준다는 의미에서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된 곳이다. 통문관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카페 귀천이 나온다. 귀천은 천상병(1930~1993) 시인의 부인 목순옥(1935~2010)씨가 운영하던 찻집이다. 인사동 큰길 가에 1985년 개업했던 원래 찻집은 목씨가 사망한 뒤 폐업하고, 지금은 남도 제철음식점 ‘여자만’ 앞에 목씨 조카가 2호점을 열어 명맥을 잇고 있다. 귀천과 이곳에 인접한 인사동 14길 24-1 일대 한옥밀집지역 모두가 서울미래유산이다. 한옥 골목을 빠져나와 서울미래유산인 서울시노인복지센터(구 통계청)를 지나 풍문여고 옆 길인 감고당길(율곡로3길)로 들어섰다. 이 지역은 매주 토요일에 계속되고 있는 민중총궐기 때면 통행이 통제되는 곳이다. 덕성여고 자리에 있던 숙종 계비 인현왕후의 친정 감고당(感古堂)에서 길 이름이 유래했다. 감고당은 현재는 경기 여주시로 옮겨졌다. 직장이 광화문인 안진남(42)씨는 “오늘 답사하는 지역의 과거 지명과 역사를 두루 알고 싶어 답사를 신청했고, 앞으로 도움이 많이 될 듯하다”며 “프로그램을 너무 늦게 알게 돼 후회스럽고 내년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인들 아지트·귀천·고서점 통문관인사동길은 미래유산 밀집지역 김봉완 공인중개사가 1968년 개업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미래유산 신영부동산과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장남 김선재(1990년 사망)씨를 기리고자 만든 아트선재센터를 지나 정독도서관에 다다랐다. 1900년부터 1976년까지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정독도서관은 등록문화재 제2호다. 본관 앞 정원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겸재가 인왕제색도를 그리기 위해 인왕산을 바라봤던 자리는 종친부(조선 왕가의 종친관계 일을 맡았던 관청)에 있다. 종로구 화동 종친부 앞 소격동 국군기무사령부(구 국군보안사령부)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탈바꿈했다. 기무사령부 이전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이 자리했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왕실 가족들의 봉작(봉토와 작위 하사), 관혼상제를 관리하던 관청이다. 박 해설사는 “흥선대원군이 고종을 옹립하고 외척으로부터 왕권을 보호하던 정책이 종친부에서 나왔다는 일설도 있다”며 “군인들이 테니스를 치기 위해 종친부를 통째로 옮길 만큼 만만하게 볼 사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무사가 힘을 쓰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1년 테니스장을 짓도록 종친부 건물을 뜯어서 정독도서관 구내로 옮겨버린 사건을 지적한 것이다. 감고당길에 서린 인현왕후의 추억흥선대원군 권력의 핵심 종친부의 설움 이 근처에는 금호미술관, 갤러리 현대 등 갤러리가 많은데 두가헌도 그중 한 곳이다. 1950년대에 지어져 1965년 사용승인이 났다. 두가헌은 갤러리 현대 소유의 4개 갤러리 중 하나로, 한옥 레스토랑과 러시아식 양식 건축물이 짝을 이룬다. 한옥은 고종의 후궁이었던 귀빈 엄씨가 살았던 곳이다. 마당 한가운데 수령이 제법 됨 직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씩씩하게 서 있다. 박 해설사는 “한옥과 서양식 건물의 조화로 장소가 예뻐서 웨딩 촬영하러 많이 오는 장소”라고 설명했다. 옛 수송초등학교에 자리잡은 종로구청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77년 수송초교가 폐교된 뒤 종로구청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1930년대 준공 당시 외관을 비교적 양호하게 간직하는 건축물이다. 일제강점기 학교건축 양식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번 답사는 피맛골에 세워진 르메이에르 빌딩에서 마쳤다. 이 빌딩에만 서울미래유산 음식점이 세 곳 있다. 부모님과 함께 나온 서울교대 초등교육과 3학년 권상리(21·여)씨는 “아버지의 권유로 나왔는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유적을 많이 봤다”며 “다음번에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과 꼭 다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이상과 욕망 사이… 3040이 그린 이상향

    이상과 욕망 사이… 3040이 그린 이상향

    복사꽃이 만발하고 수려한 자연이 펼쳐진 무릉도원은 동아시아의 옛 그림에서 자주 다뤄진 주제였다. 자연 속에 은거하며 이상적 사회를 꿈꾼 우리의 옛 화가들이 그렸던 이상향을,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지금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한국화가들은 어떻게 표현할까. ●동시대 맥락서 재해석된 90여점 서울 삼청로 금호미술관의 한국화 기획전 ‘무진기행’에서는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30~40대 한국화가들이 이상향이라는 주제를 놓고 저마다의 해석을 작품으로 펼쳐 보인다. 강성은, 권순영, 기민정, 김민주, 김정욱, 김정향, 서민정, 신하순, 양유연, 이은실, 이진주, 임태규, 조송, 최은혜 등 14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출품한 90여점의 작품을 중심으로 동시대의 맥락 안에서 재해석된 ‘이상향’의 개념을 살펴보는 전시는 표현 방식이나 주제에서 더욱 확장된 한국화의 세계를 가감 없이 보여 준다. ●불통·두려움 등의 이면 세계 암시 작가들은 현실 속 개인의 결핍이나 두려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시선에 상상력을 더함으로써 부정적인 갈등의 현실을 비추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상적 세계를 암시한다. 권순영 작가는 두려움의 기억을 그로테스크한 형상들과 성탄절의 환상적 이미지가 교차하는 풍경 속에 담는다. 이은실 작가는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규제, 이중적 잣대에 대한 이야기를 화면 위에 끄집어낸다. 조송 작가는 어두운 먹과 채색, 냉소적인 언어로 죽음과 삶에 대한 집착을 이야기하고, 이진주 작가는 사물들 간의 병치를 통해 기억의 모습을 전한다. 먹과 주묵을 사용하는 서민정 작가는 불통의 세태 속에 앞으로 가능할지 모를 소통에 대한 염원을 개의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시공간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상향으로 제시된다. 김민주 작가는 복잡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정을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자연 공간으로 표현하고, 신하순 작가는 여행에서 얻은 소소한 기쁨을 우화적으로 풀어낸다. 강성은 작가는 겹겹이 쌓은 연필선으로 개인적 여정에서 느낀 주변 환경의 온도와 질감을 표현하고, 최은혜 작가는 우거진 열대식물 이미지를 통해 닿을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교차점을 그린다. ●현실 너머 세계 직접 제시하기도 현실 너머의 이상 세계를 직접적인 화법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양유연 작가는 어린 시절 본 달의 환상적 이미지와 도시의 오래된 건물을 조합해 비현실적인 풍경을 만들어 냈다. 기민정 작가는 통속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인간의 욕망인 사랑에 충만한 세상을 이야기한다. 김정욱 작가는 과거-현재-미래, 성과 속이 혼재하는 이미지의 인물과 풍경들을 통해 이상향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임태규 작가는 일상의 흔한 사물과 사람들의 이미지가 혼재된 장면으로 상상 속 유토피아 ‘에레혼’을 시각화한다. 전시 제목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에서 따왔다. 안개 자욱한 탈일상의 공간이자 시간이 중첩된 공간인 무진에 투영된 소설 속 주인공의 욕망처럼 개별화된 이상과 욕망을 공유해 보자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다고 미술관 측은 설명했다. 내년 2월 12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자연 속에 ‘심플’하게 자리잡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자연 속에 ‘심플’하게 자리잡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자그마한 화면 속에 아름다운 색채와 아기자기한 이미지들이 어우러진 장욱진(1917~1990)의 작품을 보고 가장 먼저 떠 오르는 단어는 단순함이다. 산, 집, 아이, 호랑이, 산, 까치, 나무 등 평면적이고 단순한 도상들은 어린 아이의 그림처럼 순수해서 들여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저 맹숭맹숭하게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인생을 달관한 선승의 그림처럼 작은 화면 속에는 깊은 내면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드넓은 이상의 세계가 공존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계명산 자락에 자리잡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http://changucchin.yangju.go.kr/)은 박수근,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이 손을 잡고 설립한 미술관이다. 서울시내 중심에서 북쪽으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미술관은 온전히 자연 속에 자리잡고 있어 찾아가는 것 만으로도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매표소 건물을 나오면 야외 조각공원을 지나고 구름다리를 건너야 미술관이다. 미술관 개관(2014년 4월) 당시에는 개천 건너편 미술관 오른쪽이 주 출입구였는데 지난 해부터 조각공원이 통합운영되면서 조각공원의 매표소를 이용하고 있다. 봄 여름에 나무가 우거졌을 때엔 잘 보이지 않을 테지만 나뭇잎이 다 지고 난 늦가을인지라 언덕 위의 흰색 건물이 파란 하늘 아래서 비현실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외관은 현대와 전통이 적당히 버무려진 모습으로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고 심플하다. 알싸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미술관으로 들어서니 벽면에 커다란 장욱진의 흑백사진이 반겨준다. 평생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원없이 그림만 그리더니 죽어서도 이렇게 훌륭한 자연 속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단 미술관을 가졌으니 참 복이 많은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장욱진은 시·서·화에 안목을 지닌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가까이 했다. 가족과 함께 상경한 뒤 공부보다 그림에 열중했던 그는 1926년의 보통학교 3학년 시절에 전일본소학생미전에 까치그림을 출품해 1등상을 받았다. 이 때 상품으로 유화물감을 받아 유화를 처음 시작했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복 중·고교)에선 미술반 활동을 하며 동경미술학교 출신 미술교사인 사토 구니오의 수업을 통해 입체파와 피카소의 미술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일본인 역사교사에게 대들었다가 3학년에 중퇴한 그는 수덕사에서 3년간 수양의 시간을 보내고 양정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학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가족은 미술을 본업으로 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지만 제 2회 전국학생미전에서 특선을 하면서 집안의 반대도 수그러들었다.이듬해인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제국미술학교(지금의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화과에서 공부했다.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얼마 안되어 해방을 맞은 그는 1945년 가을 국립박물관 진열과에 취직했다가 1947년 사직하고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중섭 등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해 미술운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나이 34세에 6·25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그의 작품에 이상세계에 대한 염원을 촉발시킨 계기가 된다. 전쟁과 함께 닥쳐온 불안과 공포, 육체적 고달픔 속에서의 그는 오히려 자신의 꿈꾸는 삶을 그렸다. 유학시절을 포함한 그의 초기 그림 색상, 형태 면에서 토속적인 특성이 강했지만 1·4후퇴 때 고향인 충남 연기에서 작업하는 동안 색감이 선명해지고 형태가 더욱 간결하게 정돈된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누런 황금들판 사이를 연미복 차림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담을 ‘자화상’이다.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장욱진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하지만 재직 6년만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1963년 덕소에 화실을 마련하고 장장 12년동안 혼자 자취생활을 하며 중년의 시대를 보냈다. 자연 속에서 밤 산책과 새벽의 신선미를 즐기며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는 그림과 씨름하다 건강을 해쳐 사경을 넘나들기도 했다. 덕소시절의 마지막 3년간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한결 절제된 작품을 많이 그렸다. 1975년 봄 그는 덕소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명륜동으로 작업실을 옮겨 79년까지 머물렀다. 명륜동 시절 그의 작품에는 시골남자와 여자, 가족, 정자와 원두막, 산과 동산 등이 화면에 등장하고 색채는 동양화의 담채풍으로 묽어지고 단순해진다. 그는 서울의 번잡함을 벗어나 수안보로 다시 작업실을 옮겼다가 1986년 봄부터 마지막 5년을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마북리의 고택에서 보냈다. 자연과 더불어 창작에만 몰두하는 심플한 삶을 원했던 장욱진은 따뜻하고 정감어린 작품들을 남기고 1990년 12월 27일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80년대와 90년에 유난히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용인에서 지낸 마지막 5년간은 평생에 걸쳐 그린 720점의 작품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20여점을 그렸다. 마지막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화가로서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장욱진은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천생의 화가임을 글과 말을 통해 자주 고백하곤 했다. “나의 지나간 40년은 오직 그림과 술 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그 휴식이었던 것이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 뿐이다.”(샘터 1974년 9월호)  장욱진의 작품들은 대부분 작다. 그가 끝까지 30호미만의 그림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욱진 자신은 ‘세대’ 1974년 6월호에 이렇게 쓰고 있다. “회화에 있어서의 회화성은 30호 이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냐하면 규모가 커지면 그림이 싱거워지고 화면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한면을 지배하지 못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는 작은 화면에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들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해 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의 작품처럼 작고 심플하지만 깊이가 있다. 장욱진의 그림 ‘호작도’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최-페레이라 건축에서 설계한 건물은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다. 대지면적 6204㎡에 연면적 1852㎡에 이르는 미술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각층에 위치한 두개의 전시실 외에 영상실, 강의실, 아카이브 라운지를 갖추고 있다. 매끈한 흰색 외관부터 내부의 마무리까지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적인 디테일이 조화롭게 설계돼 있는 건물은 미술관이 개관한 2014년에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했고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베스트7, 영국 BBC의 2014년 8대 신설 미술관에 선정되기도 했다.  외양은 단순한데 호랑이를 평면으로 그린 듯한 구조인지라 내부 공간은 단조롭지 않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공간이 이어져 나타나는 1층 전시실을 지나 가파른 각도로 꺾어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영상실이 있다. 그 입구에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소 돼지 개 닭 등 동물을 그린 ‘동물가족’이란 제목의 벽화는 덕소화실에 그려졌던 것을 그대로 옮겨와 미술관에 영구기증한 작품이다. 장욱진은 덕소시설 우시장 구경가기를 즐겼는데 소 그림에는 실물 쇠 코뚜레와 워낭을 걸어놓아 웃음을 자아낸다. 1층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층계참의 벽면에는 덕소 작업실의 부엌 벽에 그려져 있던 ‘식탁’이 설치돼 있다.  미술관은 벽화, 유화, 판화, 먹그림 등 장욱진의 다양한 작품 23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2014년 봄 개관 이후 소장작품을 중심으로 국내외 근·현대 미술에 대한 다양한 주제기획 전시를 열었다. 지난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행복’이라는 주제로 장욱진과 민화를 보여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변종필 관장은 “개관이후 지금까지 장욱진 예술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를 다양하게 진행해 왔다”면서 “2017년 장욱진 탄생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아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상설관을 개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 북부의 유일한 공공미술관인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2년 6개월밖에 안된 신생 미술관이지만 탄탄한 기획전시 외에도 시민들을 위한 교육, 공공프로젝트, 미술창작스튜디오(777레지던스), 전국 대학생 대상 드로잉 공모전 등의 운영을 통해 지역 문화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수요 에세이] 홍보가 기가 막혀/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신문방송학 박사

    [수요 에세이] 홍보가 기가 막혀/유재웅 을지대 홍보디자인학과 교수·신문방송학 박사

    가수 육각수의 노래 ‘흥보가 기가 막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해지는 겨울 들녘 스며드는 바람에 초라한 내 몸 하나 둘 곳 어데요~ 아~~ 이젠 난 어디로 가나”…(중략)…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이제 나는 어디로 가나. 갈 곳 없는 나를 떠밀면 이제 난 어디로 가나.” 최순실 게이트로 사면초가에 빠진 박근혜 대통령의 처지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온 국민을 참담하고 허탈하게 만든 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리에 연루된 자는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엄정하게 사법처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만신창이가 된 이 나라를 반듯하게 다시 세우고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적 응징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분야별로 문제점을 철저히 파헤치고 교훈을 얻어 국정을 일신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순실 게이트는 정부가 누누이 강조해 온 홍보와 소통이라는 차원에서도 큰 아쉬움과 개선해야 할 점을 보여 주었다. 국가 홍보는 정책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국가 홍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이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과 정부는 존재 의의가 없다.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작금의 국민적 요구가 이를 잘 보여 준다. 국가 위기 관리 측면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가장 큰 문제는 사전 대처 미흡을 가장 먼저 꼽지 않을 수 없다. 2014년 소위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문고리 3인방 논란 등 사전에 위기 징후가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고 있다. 더더욱 기가 찬 일은 사태 발생 후 대통령과 청와대의 조치가 분노하고 있는 민심을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증폭시키는 악수를 두어 왔다는 점이다. 위기 관리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조직이 반드시 지켜야 할 대표적인 원칙으로 꼽는 것들이 하나같이 지켜지지 않았다. 첫째, 신속(Quick)하지 못했다. 둘째, 일관성(Consistent)이 없었다. 셋째, 개방적(Open)이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시종 타이밍이 맞지 않는 늑장 대처를 했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 SNS 시대에는 위기 발생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 대처를 해야 한다. 청와대 측은 사태 발생 초기에 부인만 하고 적절한 대응 메시지를 내보내지 못했다. 언론의 계속되는 고발 보도와 각종 루머가 난무하자 뒤따라 해명하기 급급했다. 위기 관리 국면을 전혀 리드해 나가지 못했다. 위기 시 일관성이 강조되는 것은 ‘한목소리’를 내야 그나마 수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한목소리를 내는 데도 실패했다. 비서실장과 수석, 관계 비서관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다. 콩가루 집안처럼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악화일로를 걷는 동안 청와대의 신뢰할 만한 ‘입’이 누구인지 찾아볼 수 없었다. 청와대 측은 위기 앞에서 개방적이지 않았다. 개방적이라는 것은 솔직해야 함을 말한다. 모든 정보를 100% 공개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미디어와 국민이 궁금해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사실을 공개했어야 했다. 청와대가 입장 표명을 하면 언론이 바로 반박하고 부인하는 상황은 국민 불신을 가중시켰다. 대통령의 두 차례 사과 역시 국민적 감동을 주지 못했다. 이와 더불어 많은 위기 전문가들이 효과적인 위기 대처를 위한 시스템과 매뉴얼을 강조하지만, 조직 최고 책임자가 여론을 읽고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과 안목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최순실 사태는 생생히 보여 준다. 결국 위기 관리의 성패는 리더가 좌우한다.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전시] ●이은호 개인전 동양화의 근간인 채묵기법을 기본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한국화가 이은호의 근작전 ‘시간과 기억의 재조합’.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접한 다양한 사건과 기억에 저장된 이미지를 하나씩 꺼내어 이어 붙이는 전개방식으로 생로병사의 순환을 담담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12월 11일까지, 경기도 남양주 서호미술관 1층 전시실. (031)592-1865. ●김혜련 개인전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통독 직후의 베를린에서 유학한 뒤 독일과 파주를 오가며 작업하는 김혜련 작가가 통일문화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갖는 개인전. ‘슬픔의 벽’이라는 제목으로 독일과 한국의 분단을 주제로 통일에 대한 소망을 일깨우는 오브제 설치와 먹 드로잉 작품을 선보인다. 12월 2일까지, 서울 용산구 소월로 주한독일문화원. (02)2021-2800. [대중음악] ●나윤권 단독 콘서트 “그대 좋아하는 계절이 와요” 감성적인 중음의 목소리로 팬층이 두터운 보컬리스트 나윤권이 계절을 주제로 펼치는 콘서트다. 최근 배우 한예리와 함께 부른 신곡 ‘러브 테라피’와 ‘그래요’를 담은 싱글을 발표한 그는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쓸쓸하면서도 서정적인 레퍼토리를 준비했다. 12일 오후 6시·13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삼성홀. 8만 8000원. 1544-1555. ●2016 김필 콘서트 2014년 슈퍼스타K6에서 곽진언과 함께 인기몰이를 했던 싱어송라이터 김필의 세 번째 단독 콘서트다. 올봄 ‘서른한 번째 봄’ 공연 당시 미처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싶어 마련한 이번 공연에는 미공개 신곡을 처음 소개하는 시간도 갖는다. 12일 오후 6시·13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 9만 9000~11만원. (02)6092-3711. [연극·뮤지컬] ●뮤지컬 ‘파이브코스러브’ 미국 텍사스 바비큐 식당, 이탈리안 레스토랑, 독일 펍, 멕시칸식당, 미국 다이닝 식당 등 어느 하룻밤에 다섯 곳의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다섯 가지 연애담을 그린 옴니버스 뮤지컬. 5개의 상황에서 보여지는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찾아본다. 11일~내년 2월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KT&G 상상아트홀. 전석 5만원. (02)6332-6630. ●연극 ‘데미안’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뒷골목 세계의 보헤미안 알퐁스 백과 싱클레어의 일화,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무대소극장. 전석 3만원. (02)6032-1116. [클래식·국악]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 영민한 마에스트로 데이비드 진먼이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 공연을 펼친다. 1991년 진먼의 지휘, 런던 신포니에타 연주로 발매돼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서 38주간 연속 1위 행진을 한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를 직접 감상할 기회다. 13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4만~28만원. (02)6303-1977. ●트로이의 여인들 국립창극단이 그리스신화의 ‘트로이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 왕가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트로이의 여인들’을 창극으로 옮긴다. 국립극장이 창극의 세계화를 목표로 싱가포르예술축제와 공동으로 제작하는 작품으로 싱가포르 연출가 옹켕센이 연출을 맡았다. 11∼20일 월~금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2만∼5만원. (02)2280-4114.
  • [新전원일기] 꽃농부… 흙사랑… 新청춘

    [新전원일기] 꽃농부… 흙사랑… 新청춘

    “여자의 몸으로 농사일을 하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이나 언니들이 반대를 많이 했죠. 제가 열심히 논밭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시면서 농사일을 하도록 허락했던 겁니다.” 송주희(28) 너래안농장 대표의 얘기다. 그는 서울에서 경찰관이 되기 위해 해 오던 공부를 접고 강원 화천군 오음리로 귀농했다. 조금은 도시 분위기가 감돌지만 환갑을 넘긴 사람들 사이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 꼭지를 따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농부였다. 방앗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동네분들과 수다를 떨며 고추 꼭지를 따는 그녀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채영신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인 일제강점기와는 달리 지금의 농촌이 그 시절처럼 계몽이 필요한 시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농촌에 젊고 새로운 바람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리고 젊은 남자들은 물론 송 대표처럼 젊은 미혼의 여성들도 농촌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남자들이 귀농하는 건 어렵지 않게 듣는 이야기였지만 미혼 여성들의 귀농은 신선했다. 농협의 도움으로 여성청년협의회가 조직됐고 전국적인 규모이지만 본격적으로 농부의 삶을 살고 있는 처녀 농부의 수가 4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우리 농촌의 현실이 머잖아 우리 청춘들에 의해 새로운 일터로 거듭날 것만 같다. 지난해에만 20~30대 청춘 귀농인이 1168명이라는 통계를 보았다. 이쯤이면 우리의 농업은 미래가 밝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돼 가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다. 또한 앞으로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이 힘이다(?) 청춘들이 고향으로, 시골로 돌아오고 있다지만 각각의 마을만 놓고 보자면 아직까지는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송 대표가 돌아간 화천의 오음리에도 170여 가구에 젊은 사람이라고는 고작해야 대여섯 명이 전부라고 한다. “일을 하는데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가 없어 좀 외로워요.” 송 대표는 그래서 더욱 열심히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농사를 짓겠다고 각오했던 건 아니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기자가 되는 꿈을 좇아 들어갔던 대학도 그만두고, 매번 수능도 새로 보고 편입 준비 등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경찰관이 되고자 공부를 하던 때였다. 젊은 시절에 자신이 평생 할 일을 단숨에 깨닫는다는 건 큰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춘은 여러 실패를 통해 자신이 평생 할 일을 찾고는 한다. 적지 않게 혼란했던 그에게 분명했던 건 경찰관이 돼 젊은이가 사라진 시골 마을로 내려가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그러던 2014년 12월이었다. 무농약 농사를 짓는 어머니가 집에서 기른 콩을 이용해 두부를 만들다가 분쇄기에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네 자매 중 막내였던 그는 이미 시집간 언니들을 대신해 어머니 병간호를 하려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됐다. “반 년 동안은 언젠가 올라가야지 생각했어요. 집에 있으면서도 수능 공부를 계속했거든요. 그런데 손가락 하나 잃은 엄마가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시는 거예요. 논으로 밭으로. 메주도 만들어야 하고 겨울 채비로 하러 다니시니 딸인 내가 같이 안 나갈 수 없었죠.” 송 대표도 고향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까진 부모님을 돕기도 했다. 물론 본격적으로 농부의 일을 해 냈던 건 아니었다. 그의 부모 또한 시골의 여느 부모들처럼 자식들이 도시에 나가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라셨다. 젊은이들에게 농촌은 희망이 없는 땅이라 여기셨던 것이다. 고된 노동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수입, 그리고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 자신들의 자식이 자라길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서울에서 살 땐 허리는 물론이고 속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어요.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는데 고향에 내려와 지내면서 신기하게도 그런 통증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고소한 ‘기름의 길’ 송 대표의 아버지 송임수(71)씨는 마을 친환경 잡곡 작목 반장 일을 했다. 작목반을 운영하는 송씨의 주요 작업은 들깨의 유통이었다. 송 대표가 귀농을 한 뒤부터 기름 가공을 시작했다고 한다. 오음리는 들깨 특화 지역이었다. 일손도 모자랐고 많은 일이 아버지에게 집중돼 힘들어했다. 보다 못한 송 대표가 친환경 잡곡 작목반의 임시 직원으로 취업 아닌 취업을 했다. “농촌으로 내려오는 순간 취업이 되는 거예요.” 마을에서 생산하는 주요 상품은 친환경 들기름과 참기름이다. 깨농사를 지어 수확한 후 며칠 건조한 다음 물에 씻고 볶아서 다시 기름을 짜야 하는 작업이었다. “이제는 깨를 어느 정도로 볶아야 맛있는 기름이 나오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겠더라고요.” 그는 아버지보다 기름을 더 잘 짠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 농부의 길을 다지기 시작했다. #너래안그의 집이 있는 곳에서 약간 언덕진 길을 올라가면 ‘너래안’이라는 약간 비탈진 평야가 나온다. 그곳에 선조가 정착한 게 400여년 가까이 됐다. 정착한 뒤 대대로 오음리를 떠나지 않고 살아온 집안이었다. “너래안이라는 말을 브랜드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들었고 인터넷에서는 이미 ‘너래안’이라는 이름으로 상품을 팔고 있죠.” ‘너래안’은 송 대표와 디자인을 공부하던 그의 후배가 만든 그들만의 고유명사였다. ‘너와 내가 안심하는 농산물’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의 하루는 바쁘다. 아침에 집을 나와 참기름과 들기름을 생산하는 가공 공장으로 나온다. 전날 주문 물량을 확인하고 택배 보낼 물량을 포장한다. 그런 후 시간이 허락하면 밭에 나가 호미로 직접 김매기를 한다. 너래안에서 생산하는 식용 기름이 친환경인 이유는 그렇게 약을 쓰지 않고 손으로 직접 잡초를 뽑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식용 기름과의 차별점이기도 했다. 깨를 털고 볶고 기름을 짜는 등 짬짬이 남는 시간에도 쉴 새 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게 농촌의 삶이다. 현재는 다른 농작물도 생산하고 있는데 판매하는 것까지 모두 송 대표가 직접 담당하고 있다. 마을분들의 농작물까지 취급한다. 그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만 상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페이스북 친구가 5000명을 넘어서면서 더이상 친구 신청이 되지 않는 유저다. 그렇다고 페이스북을 이용해 물건을 팔거나 하지는 않는다. ‘청춘 송 농부의 전원일기’를 올리는 창으로만 쓰고 있다고 한다. 페이스북으로 판 유일한 농산물이 있다면 바로 옥수수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수확한 옥수수를 모두 팔았다. “주문이 쏟아졌어요. 3시간 만에 4000개가 완판됐죠.” SNS에 익숙한 젊은 농부들이 농촌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처럼 소통의 창구 중 하나인 SNS가 우리 농촌에 새로운 길을 열어 줄지도 모르겠다. “대신 저에 대해 악플 좀 안 달았으면 좋겠어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데 그런 글 읽을 때마다 힘이 빠져요. 그렇다고 SNS를 포기할 수도 없어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카페 등을 통해 부모님과 이웃 어르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재미 삼아 알렸더니 어렵지 않게 판매로 이어지니까요. 이런 게 바로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깨달았어요.” #농부가 되기 위해“농사일이 재미있어요. 씨앗을 뿌리고 싹이 나고, 쑥쑥 커 가는 걸 보니 신기하더라고요. 내가 먹는 음식처럼 소비자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뿌듯함도 갖게 됐고요.” 고향으로 내려온 지 햇수로 3년이 됐지만 벌써 실패도 맛봤다고 한다. 방앗간 역할을 하는 가공실 건너에 밭 700평가량을 구했는데 그 밭에 송 대표 본인만의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 밭엔 20가지를 심었어요. 수확해서 팔 때 한 상자에 꾸러미로 담아 팔아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죠.” 결과는 실패였다. 20가지의 밭작물 특성이 다 달랐던 것이다. 옥수수, 수수, 조, 백태, 약콩, 토마토, 상추, 양배추, 당근…. 씨로 심어야 하는 채소, 모종으로 심어야 하는 채소, 마른 땅을 좋아하는 식물, 진 땅을 좋아하는 야채 등을 구분하고 특성에 맞게 심고 가꾸어야 하는데 땅에 심어 놓으면 저절로 훌륭하게 자란다고 믿었을 만큼 순진했던 것이다. “당근씨를 뿌렸는데 수확할 때가 돼서 보니까 뿌리가 여러 갈래로 뻗는 바람에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거죠. 처음부터 아빠는 알고 있었으면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물었죠. 왜 안 가르쳐 줬냐고요.” “스스로 터득하기를 바랐던 거야. 그리고 워낙 열심히 하니까 금방 깨달을 거라 믿었고.” 그리고 그만의 농사를 실패한 이유가 ‘할 것 없으면 농사나 하지’라는 안일한 마음 때문이었다는 점도 깨달았다. 그래서 화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강소농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부모님으로부터 영농에 대한 지혜도 물려받기 시작했다. 마을 일도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렇게 뼛속까지 농부가 돼야만 위기의 우리 농업을 살릴 방안을 터득해 내지 않을까. 그는 올해 5000만원의 소득을 얻는 게 목표라고 했다. “농업이 살려면 1차 생산물을 생산하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농부다. “후에 결혼해서 아이들 생겨도 저는 아이들을 이곳에서 키울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점점 많이 농촌으로 들어오면 학교가 폐교되는 일도 없을 거라 믿어요.” 그의 바람대로 이제 농촌을 청춘들이 삶의 터전으로 인식해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기를 바란다. 상록수의 주인공들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시대의 청춘들은 농촌 부흥에 충분히 성공할 자질이 준비돼 있다고 믿는다. 너래안에서 돌아오기 위해 차에 오르는데 가까운 곳에서 군인들이 사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삼 화천에 군인들이 많다는 걸 실감했다. 수시로 군인들이 사격하는 소리가 들리는 이곳에 젊은 여성이 ‘농부의 성’을 쌓고 있었다. 부디 그 성이 튼튼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골로 간 모든 청춘들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글쓴이 소설가 전민식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 주요 작품으로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 [길섶에서] 농구와 동무/강동형 논설위원

    서랍을 뒤적이다 빛바랜 공책 한 권을 발견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장이었다. 고향에 있어야 할 물건을 아내가 몰래 가져다 놓은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신혼 초에 맞춤법이 다 틀린 일기장을 보고서 약점을 잡았다며 통쾌해했기 때문이다. 일기장에 ‘농구’라는 익숙하지만 낯선 단어가 있었다. 농구 하면 당연히 농구 게임을 했다는 얘기일 텐데 내용이 좀 엉뚱했다. ‘오늘은 학교에 농구를 가지고 가는 날이다. 그런데 나는 안 가지고 가 벌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문맥의 앞뒤를 이리저리 맞춰 보고서야 ‘농구’가 뭘 의미하는지 겨우 알 수 있었다. 농구는 다름 아닌 농기구의 준말이었다. 그 시절 시골 학교에서는 고학년을 중심으로 가끔 호미나 삽, 괭이 등 농기구를 들고 가 풀을 뽑고 운동장을 고르곤 했다. 농구를 가져오지 못한 친구들은 벌을 받은 뒤 맨손으로 풀을 뜯었던 기억이 새롭다. 농구와 함께 ‘낯선 단어’ 하나는 지금은 까마득하게 잃어 버린 ‘동무’라는 단어였다. ‘오늘은 동무들과 놀았다.’ 동무는 일기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였다. 같이 놀던 동무들이 유난히 그리운 것은 가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돌멩이 깬 돌도끼 원숭이도 만든다

    돌멩이 깬 돌도끼 원숭이도 만든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도구를 사용했던 최초의 인간을 ‘호모하빌리스’(도구를 만드는 사람)라고 부르기도 한다. 침팬지나 고릴라 등은 단단한 견과류나 조개 등을 깰 때 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석기’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카푸친원숭이, 석기 제작 확인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20일자에는 브라질 세라다카피바라 국립공원에 사는 카푸친원숭이(꼬리감는원숭이)가 돌로 도구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논문이 실렸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브라질 상파울루대 공동연구진은 카푸친원숭이가 자연 상태에서 석기를 만드는 장면을 처음 포착했다. 연구진은 카푸친원숭이들이 단단한 돌을 골라 다른 돌을 내리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한쪽에만 날카로운 면이 있는 도구를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했던 외날찍개와 비슷한 형태의 도구다. 실제로 원숭이들이 만든 석기는 1930년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협곡에서 처음 발견한 ‘올도완 석기’와 유사한 형태로 보인다. 올도완 석기는 170만~25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앞으로 모서리 한쪽이 날카로운 찍개처럼 오래된 석기가 발견됐을 경우 무조건 인류의 친척인 호미닌이 만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면서 “원숭이가 무심코 만들었거나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란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석기 인류 도구 ‘외날찍개’와 비슷 이와 함께 연구진은 원숭이들이 돌끼리 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돌가루나 먼지를 핥는 습성도 발견했다. 돌을 깨는 과정에서 나오는 석영을 핥아먹음으로써 광물질을 섭취하는 것이거나 혓바닥에 느껴지는 감촉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마이클 하슬람 옥스퍼드대 고고학부 교수는 “카푸친원숭이들이 아무런 의도 없이 석기라고 불러야 마땅할 도구를 만들어 쓰는 것을 발견했다는 면에서 기념비적 연구”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원숭이도 석기를 만들어 쓴다고?

    원숭이도 석기를 만들어 쓴다고?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지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도구를 사용했던 최초의 인간을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만드는 사람)라고 부르기도 한다. 침팬지나 고릴라 등은 단단한 견과류나 조개 등을 깰 때 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석기’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인 ‘네이처’ 20일자에는 브라질 세라다카피바라 국립공원에 사는 카푸친원숭이(꼬리감는 원숭이)가 돌로 도구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논문이 실렸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브라질 상파울로대 공동연구진은 카푸친원숭이가 자연상태에서 석기를 만드는 장면을 처음 포착했다. 연구진은 카푸친원숭이들이 단단한 돌을 골라 다른 돌을 내리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한쪽에만 날카로운 면이 있는도구를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했던 외날찍개와 비슷한 형태의 도구다. 실제로 원숭이들이 만든 석기는 1930년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조지 계곡에서 처음 발견한 ‘올도완 석기’와 유사한 형태로 보인다. 올도완 석기는 170만~25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앞으로 모서리 한쪽이 날카로운 찍개처럼 오래된 석기가 발견됐을 경우 무조건 인류의 친척인 호미닌이 만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면서 “원숭이가 무심코 만들었거나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란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원숭이들이 돌끼리 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돌가루나 먼지를 핥는 습성도발견했다. 돌을 깨는 과정에서 나오는 석영을 핥아먹음으로써 광물질을 섭취하는 것이거나 혓바닥에 느끼는 감촉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마이클 하슬람 옥스퍼드대 고고학부 교수는 “카푸친원숭이들이 아무런 의도없이 석기라고 불러야 마땅할 도구를 만들어 쓰는 것을 발견했다는 면에서 기념비적 연구”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원숭이도 타제석기 만들어 쓴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지만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도구를 사용했던 최초의 인간을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만드는 사람)라고 부르기도 한다. 침팬지나 고릴라 등은 단단한 견과류나 조개 등을 깰 때 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석기’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세계적인 과학 저널인 ‘네이처’ 20일자에는 브라질 세라다카피바라 국립공원에 사는 카푸친원숭이(꼬리감는 원숭이)가 돌로 도구를 만드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논문이 실렸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브라질 상파울로대 공동연구진은 카푸친원숭이가 자연상태에서 석기를 만드는 장면을 처음 포착했다. 연구진은 카푸친원숭이들이 단단한 돌을 골라 다른 돌을 내리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 한쪽에만 날카로운 면이 있는도구를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했던 외날찍개와 비슷한 형태의 도구다. 실제로 원숭이들이 만든 석기는 1930년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조지 계곡에서 처음 발견한 ‘올도완 석기’와 유사한 형태로 보인다. 올도완 석기는 170만~25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구진은 “앞으로 모서리 한쪽이 날카로운 찍개처럼 오래된 석기가 발견됐을 경우 무조건 인류의 친척인 호미닌이 만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된다”면서 “원숭이가 무심코 만들었거나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란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원숭이들이 돌끼리 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돌가루나 먼지를 핥는 습성도 발견했다. 돌을 깨는 과정에서 나오는 석영을 핥아먹음으로써 광물질을 섭취하는 것이거나 혓바닥에 느끼는 감촉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마이클 하슬람 옥스퍼드대 고고학부 교수는 “카푸친원숭이들이 아무런 의도없이 석기라고 불러야 마땅할 도구를 만들어 쓰는 것을 발견했다는 면에서 기념비적 연구”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포토 다큐] “대학 갈끼다” 둥실 떠오른 만학도의 꿈

    [포토 다큐] “대학 갈끼다” 둥실 떠오른 만학도의 꿈

    반짝반짝 보석처럼 빛나는 남해 바다를 앞마당으로 둔 경남 창원시 수정마을 구산초등학교에는 만학도 황분이(81), 이명개(76) 할머니가 1학년에 재학 중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초등학교 1학년이던 이 할머니는 아버지를 간병하기 위해 학교를 포기했지만 공부에 대한 열망은 항상 마음속 깊이 남아 있었다. ●밭일하다 학교 입학 소식 듣고 펑펑 울었지 그는 독학으로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마침 학교에서 일하는 동생에게 교과서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김옥자 교장으로부터 “차라리 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입학 권유를 받고 조금 늦은 올해 3월 14일 황 할머니와 함께 구산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입학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밭일하다 호미를 내려놓고 펑펑 울었어요. 드디어 공부에 대한 한을 풀 수 있다는 기쁨과 진작 학교 문을 두드렸으면 지금쯤 중학교에 다녔을 거란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지요.” 이 할머니는 비록 1학년이지만 손자뻘 학생들에겐 할머니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등교하면서 만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꼭 안아 준다. 같은 반 어린이 세수도 시켜 주고 점심시간에는 어린이들이 옷에 흘린 반찬도 닦아 준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힘이 되는 건 따뜻한 인생 선배로서의 도움이다. 하루는 한 다문화가정 학생이 우두커니 교실 문 앞에 서 있는 있는 모습을 보고 “네가 태어난 곳은 한국이다. 한글을 열심히 배워 어머니 나라에 가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라”고 희망을 심어 줬다. 지금 그 학생은 꿈을 이루기 위해 아주 활기차게 학교생활을 한다. ●학교선 친구·인생 선배… 방과 후엔 살림꾼 이 할머니는 하교 후에도 할 일이 많다. 밭에 심어 놓은 채소도 가꿔야 하고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면사무소에서 10년 넘게 청소 일도 하고 있다. 가끔은 홍합을 까는 부업도 한다. 하지만 마음엔 항상 여유가 넘쳐난다.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은 늘 공부에 있어 대학교까지 다닐 예정이라 이미 서울에 사는 아들에게 대학 등록금 지원을 요청해 뒀다. 황 할머니는 어느 날 버스를 잘못 탔는데 버스기사에게 한글을 모르면 버스도 타지 말라는 핀잔을 듣고 나서 한글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아직 1학년이지만 이미 버스를 타고 꽤 먼 곳까지 다닌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87세 남편의 수발을 다 들면서도 밝은 모습으로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한다. 치매 예방 및 건강을 위한 운동도 꾸준히 한다. 1학년이 3명뿐인 구산초등학교에서 두 할머니는 짝꿍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등·하교도 같이하고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만들어 주는 커피도 함께 마신다. ●진짜 공부란 세상을 이해하는 ‘그릇’ 키우는 것 문득 ‘공부는 왜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중고생도 적지 않다. 공부가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학벌 위주의 현실에서 대학교만 졸업하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사람도 많다. 또한 100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부는 머리로 하는 공부가 다가 아닌 듯하다. “내 인생이 얼마 안 남았기에 어려운 사람들에게 농사지은 채소를 모두 나눠 주면서 살고 있어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서로 이해하면서 양심적으로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 할머니의 말처럼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세상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의 의미가 아닐까. 우리나라의 교육이 하루빨리 입시 위주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1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창원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 본색/황수정 논설위원

    재채기와 웃음만 속일 수 없는 게 아니다. 계절이 곰삭는 냄새도 숨길 재간이 없다. 연두에서 진초록까지 잎사귀 색의 변화에 시력을 맞추다 보면 봄여름은 가고 없다. 그 자리에 문득 단단한 열매로 남는 것이 가을 냄새다. 시력도 미각도 맹추인 내게 용한 재주는 하나 있다. 이맘때 저녁 공기의 정체는 눈을 감고도 귀신처럼 알아챌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아파트 화단 언저리에만 서 있어도 코끝에서 시월은 속속들이 낚인다. 어느 집에서 내다 널었는지 근 보름 돗자리에서 바짝 약 올랐던 홍고추는 어느새 가랑잎 소리를 낸다. 가을볕이 어떻게 구슬렸으면 짚불 타는 냄새로 순해졌는지. 콩 비린내에 벼 이삭 패는 냄새 비슷한 것은 해바라기. 밤 공기에 들기름 냄새를 설핏 뿌리는 것은 네댓 포기 심겨진 들깨. 누군가는 재미로 심었겠지만 재미 삼아 자란 게 아니었다고, 누우런 꼬투리로 항변하는 중이다. 가을은 오색단풍으로 먼저 온 적이 없다. 생명 있는 것들 죄다 발 동동 구르며 속살을 마저 태우는 냄새로 온다. 너는 지금 안간힘으로 무얼 태우고 있느냐고 묻는 것도 같은, 호미로 가래로 댐으로도 못 막을 가을 본색.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사설] 갤럭시노트7 생산 중단, 전화위복 계기 되길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의 생산을 ‘일시 중단’했다고 한다. 어제 삼성전자 협력사 관계자는 “글로벌 소비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취해진 조치”라며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지난달 초 자발적 리콜 사태를 부른 배터리 결함을 시정한 새 제품에서도 발화 사고가 잇따른 데 따른 리스크 관리 전략으로 풀이된다. 미국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PSC)의 모종의 단호한 조치가 나오기 전에 선제 대응에 나선 셈이다. 우리는 삼성전자가 눈앞의 판매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결단을 내린 사실 자체는 긍정 평가한다. 다만 글로벌 기업으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품질 관리와 마케팅 등 경영 전 과정을 치밀하게 되짚어 봐야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250만대나 팔려 나간 갤럭시노트7의 리콜을 결정할 때만 해도 국제 여론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홍채인식 센서, 방수·방진 등 탁월한 기능으로 인기를 끌던 제품을 자발적으로 회수하면서 브랜드 신뢰성은 외려 높아진 측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진정한 위기 관리의 시험대에 올랐다. 새 제품에서 생긴 해외 발화 사례가 7건이나 보고되면서다. 결과를 놓고 보면 전면 리콜 후 충분한 품질 검수 없이 성급하게 새 갤럭시노트7을 출시한 형국이다. 삼성전자 측이 글로벌 고객을 만족하게 하려면 부품 조달이나 조립 공정에서 티끌만 한 불량도 용인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이유다. 이번 사태는 수출과 내수에서 이중고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도 악재다. 통신사인 AT&T와 T모바일이 갤럭시노트7 미국 판매와 교환을 전면 중단했다는 소식과 함께 국내 증시도 출렁거렸지 않나. 그럼에도 신속한 일시 판매 중지라는 정공법을 택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과거 ‘도요타 급발진 리콜’이나 ‘소니 배터리 리콜’처럼 미국 정부의 ‘외국 기업 때리기’라는 시각에 머무르다 더 큰 손실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삼성전자는 이번 불상사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저력을 발휘해 주기를 당부한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을 피하려면 글로벌 시장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제품 결함이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신속히 찾아내 고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비 온 뒤의 땅이 그냥 굳어지겠나. 차제에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답게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술 혁신의 토양을 기초부터 다지고 또 다지기 바란다.
  • [와우! 과학] 난쟁이 ‘호빗’은 누가 죽였나?…용의자는 현 인류

    [와우! 과학] 난쟁이 ‘호빗’은 누가 죽였나?…용의자는 현 인류

    '난쟁이' 호빗을 죽인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의 증거가 발견됐다. 최근 호주 울런공 대학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호빗을 멸종시킨 용의자가 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그간 학계의 논쟁을 가져온 호빗의 멸종 이유에 대해 한 발짝 더 나아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호빗은 지난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의 리앙 부아 동굴에서 호미닌(Homonin·초기인류) 화석으로 발견돼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키가 106cm, 몸무게 25kg, 뇌 용량은 현생인류의 3분의 1만한 이 화석은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로 명명됐지만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은 호빗(hobbit)이다. 우리에게는 영화로 더 익숙한 호빗은 1937년 발표된 J R R 톨킨의 소설에 등장하며 ‘반지의 제왕’에서는 난쟁이족으로 묘사됐다. 약 10만 년 전 지상에 나타난 호빗은 그간 고고학계에 큰 논란을 안겼다. 이중 하나는 과연 호빗이 왜소증이나 장애를 가진 현생인류인지 아니면 멸종한 별개의 종인지 여부였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들이 몸집과 두뇌가 쪼그라드는 유전질환인 소두병을 앓은 호모 사피엔스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호빗의 육체적 특징을 들어 현생인류와 다른 새로운 종이라는 이론이 지금은 가장 큰 힘을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논점은 호빗의 멸종 시기와 그 이유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호빗의 멸종 시기를 대략 1만 2000년 전으로 분석했으나 지난 3월 울런공 대학 연구팀은 동굴에서 발견된 호빗 화석과 도구등을 재측한 결과 그 시기가 5만년 전이라는 논문을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바 있다.   또한 호빗의 멸종이유 역시 논쟁의 대상이 됐는데 오랜시간 고립된 섬에 살면서 퇴화했다는 주장과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다양한 이론들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연구팀이 호모 사피엔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본 것은 리앙 부아 동굴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것으로 보이는 2개의 이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10년과 2011년 발굴된 이빨을 분석해 이루어졌으며 그 시기는 4만 6000년 전 것으로 측정됐다. 연구를 이끈 리처드 로버츠 박사는 "이 이빨은 크기로 보아 분명 호빗의 것은 아니며 호모 사피엔스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상당기간 호빗과 호모 사피엔스가 공존했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호빗의 멸종시기를 5만 년 전으로 계산되면 결과적으로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후 얼마 안 가 호빗은 멸종했다"면서 "호빗이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밀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新국토기행] 영월 강물에 단종의 애환도 김삿갓의 풍류도 흘러흘러 갔구나

    [新국토기행] 영월 강물에 단종의 애환도 김삿갓의 풍류도 흘러흘러 갔구나

    단종의 외로운 넋과 충신의 넋이 서린 ‘충절(忠節)의 고장’ 강원 영월군이 중부 내륙 관문의 중심도시로 자리잡고 있다. 겹겹이 산과 강이 있지만 정선·태백과 충북 단양, 경북 봉화를 잇는다.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깊은 역사와 유적지를 간직하고 동강, 서강, 천연동굴 등 자연자원이 풍부한 문화와 자연의 보고다. 해발 1000m 안팎의 고원지대로 사계절이 뚜렷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 속에 펼쳐진 볼거리, 먹거리, 체험거리가 사철 도시인들을 끌어들인다. 장릉, 청령포 등 단종의 애환이 깃든 유적지와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등 선조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역사여행도 좋다. 2008년 박물관 특구로 지정됐고 세계민속악기, 곤충, 민화, 동강사진 등을 테마로 한 다양한 박물관이 26개나 들어서 최근에는 박물관의 고장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각종 미술관, 문화촌 등이 있고 밤하늘 별자리를 만날 수 있는 별마로천문대까지 있어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가족여행지로도 제격이다. 토속적인 먹거리도 영월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바람·하늘·강·숲이 좋은 초가을, 아름다운 영월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보자. 영월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볼거리●단종이 머물고 잠든 곳 청령포·장릉 조선시대 6대 임금 단종이 묻힌 곳이 장릉이다. 사적 제196호로 지정됐다. 단종이 숙부인 세조에 의해 왕위를 빼앗기고 귀양지인 영월에서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하자 영월호장 엄흥도가 장사지냈다. 이후 220여년의 세월이 흘러 숙종 때 단종 왕으로 봉하고 묘를 장릉으로 정했다. 장릉은 간단한 석물이 주를 이룬다. 돌로 만든 사각옥형(四角屋形)의 장명등(長明燈)이 장릉에서 첫선을 보이는 게 독특하다.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됐던 곳이다. 홍수로 영월 객사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 달 동안 거처했다.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 바깥과 배로 연결되는 섬 같다. 명승 제50호로 지정됐다. 단종이 그곳에 살았음을 말해 주는 비석과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 외부인의 접근을 금하기 위해 영조가 세웠다는 금표비가 있고 관음송(천연기념물 349호)과 울창한 소나무숲 등이 있다. 단종은 관풍헌에서 17살의 어린 나이로 숨졌다.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뛰어나다.●서강에 자리한 대표 경관 한반도 지형 한반도 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 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로 서강변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5호로 지정됐다. 강을 끼고 동쪽은 높은 절벽에 나무가 울창한 반면 서쪽은 경사가 완만한 평지에 가깝다. 또한 북쪽으로 백두산, 남쪽으로 포항의 호미곶과 같은 산과 곶이 오묘하게 자리하고 있다. 지역의 행정구역 명칭도 ‘한반도면’으로 바꿨다. 한반도 지형은 서강 지역을 대표하는 경관 중 하나로, 평창강 끝머리에 있다. 하천의 침식과 퇴적 등에 의해 만들어진 지형이다. 한반도 지형 우측으로는 절벽이 형성돼 있는데 마치 한반도의 동해안 지형과 흡사하게 닮았다. 절벽을 따라 흘러내린 산줄기가 백두대간을 연상하게 한다. 좌측으로는 서해를 닮은 모래사장도 있으며 우측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닮은 것 같은 바위도 있다. 석회암으로 구성된 바위절벽에는 돌단풍이 군락을 이뤄 가을에는 화려한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강물 속에는 쉬리, 어름치, 민물조개 등이 서식하고 백로, 비오리, 원앙 등의 조류와 수달과 같은 희귀동물이 서식하기도 한다.●봉래산 정상에서 별 헤는 별마로 천문대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라는 뜻을 담은 별마로 천문대는 2001년 개관한 공립 천문대다. 해발 800m 봉래산 정상에 있다. 청정 자연환경과 많은 쾌청일 수는 밤하늘 별을 관측하기에 전국 최고의 조건을 갖춰 개관 이래 수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 영화 ‘라디오 스타’, ‘가문의 영광’,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에 소개되는 등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8m 원형 돔스크린에서 3500개의 가상별을 보면서 즐기는 계절별 별자리 찾기, 그리스·로마신화에 얽힌 별자리 이야기, 나의 별자리는 어디 있을까 등 전문 오퍼레이터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가는 천체투영실이 있고 800㎜ 주 망원경과 4개의 보조 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과 행성을 직접 관찰하며 즐기는 천체관측실이 있다. 천체관측실에서 하늘의 별을 만났다면 별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땅 위의 별 ‘영월 도심의 야경’은 또 다른 볼거리다.●방랑시인의 발자취 따라가볼까 김삿갓묘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삿갓(1807~1863)으로 잘 알려진 난고 김병연의 묘다. 김삿갓면 와석리 노루목마을에 있다. 태백산과 소백산이 이어지는 중간지점에 있는 김삿갓묘는 마대산 줄기가 버드나무 가지처럼 흘러내리는 명당에 자리잡았다. 작은 봉분을 갖춘 묘 앞으로는 자연석으로 만든 상석과 비석을 세웠는데 비석에는 ‘시선 난고 김병연지묘’라 새겨져 있다. 묘역 앞에는 시비가 서 있다. 김삿갓묘 아래쪽 평지에는 2003년 10월 개관한 ‘난고 김삿갓문학관’이 있으며 이곳에서 약 2㎞ 떨어진 곳에는 김병연의 생가터가 있다. ●사라지는 생활문화 보는 민화박물관 선조들이 물려준 문화유산인 민화를 보전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2000년에 설립됐다. 제1전시관에는 조선시대 민화, 제2전시관에는 전국민화공모전 수상작, 제3전시관에는 현대 민화 기증 작품과 춘화가 전시돼 있다. 조선민화박물관은 3850여점의 조선시대 민화, 200여점의 현대 민화, 250여점의 춘화, 550여점의 중국연화, 그 밖의 민속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또 전국 현대 민화 작가들을 대상으로 전국민화공모전을 해마다 연다. 민화는 조선시대 왕실에서부터 여염집 벽장문에까지 두루 걸리며 생활문화로 꽃을 피우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단절되다시피 했다. 이처럼 사라지는 민화를 체계적으로 수집, 보전, 전시, 연구하기 위해 해마다 전국 민화 작가들을 대상으로 전국민화공모전을 실시하며 민화 전통의 맥을 잇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민화 해설, 민화 체험, 민화 상품 개발, 민화 도서 출간, 순회전 개최 등을 통해 민화의 교육과 대중화에도 나서고 있다.●진솔한 삶의 기록, 동강사진박물관 군청 앞에 있는 동강사진박물관은 2005년 개관한 국내 첫 공립 사진전문박물관이다. 3개의 전시실과 야외전시장, 사진체험실 등을 갖췄다. 소장품으로는 1950~1990년대 우리 삶의 모습을 진솔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비롯해 2002년부터 해마다 개최하는 동강국제사진제에 참여한 작가 및 수상작가들로부터 기증받은 사진작품 등 1500여점의 사진과 130여점의 클래식 카메라가 있다. 해마다 3~4차례 특별기획전을 열고 7월부터 두 달 동안 개최하는 동강국제사진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문화행사로 자리잡았다. 올해 개최되는 제15회 동강국제사진제는 오는 25일까지 열린다. >>먹거리 ●으뜸 토속음식 올갱이 해장국·비빔밥 다슬기를 영월에서는 올갱이라 불린다. 칼슘과 단백질 함량이 높고 숙취 해소에 좋아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집에서 담근 토속 된장을 풀고 밭에서 직접 재배한 아욱과 부추 등을 넣어 끓인 올갱이해장국과 올갱이에 깻잎과 당근, 양배추 등 갖은 채소와 함께 고추장에 비벼내는 올갱이비빔밥은 영월 으뜸 토속음식이다. 독특한 향과 개운한 맛의 올갱이전골, 풋풋한 봄나물과 버무려 쌉쌀한 올갱이 향과 매콤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진 올갱이무침도 일품이다.●웰빙식품 된 구황식물 곤드레밥 곤드레는 잡냄새가 없고 많이 먹어도 탈이 없는 나물이다. 곤드레는 가난했던 시절 끼니를 잇기 위해 먹던 구황식물로 정식 이름은 고려엉겅퀴다. 곤드레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모습이 술 취한 사람과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영월지역 곤드레 나물은 염장하거나 삶아서 말리지 않아 맛이 부드럽다. 곤드레가마솥밥, 곤드레돌솥밥, 곤드레국밥이 제격이다. 나물 한 가지로만 지어낸 밥에 간장 양념만으로 비벼 먹는 간소한 상차림이지만 그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곤드레 나물에는 단백질, 칼슘, 비타민A 등 영양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곤드레를 쌀과 섞어서 밥을 지어 양념장과 곁들여 비벼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담백하고 고소한 영월의 맛 올챙이국수 옥수수를 갈아 만든 형태가 올챙이처럼 생겨 이름 붙여진 올챙이국수는 영월지역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다. 양념간장에 비벼 먹는 맛이 담백하고 고소하다. 여름철과 초가을에 주로 먹지만 국물과 고명을 달리해 겨울철에도 따끈하게 먹을 수 있다. 여름철에는 콩물을 사용해 시원하고 부족한 영양을 보충하는 건강식으로 손색이 없다. ●소화 잘돼 누구나 즐기는 약용식물 칡국수 칡은 약효 성분이 뛰어난 약용식물로 해독 작용과 위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크다. 칡국수는 칡 특유의 맛과 향이 입맛을 당기고 위장에 좋을 뿐만 아니라 소화도 잘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식이다. 계란, 김, 김치, 참깨소금, 오이, 감자, 부추 등의 다양한 재료와 녹말을 아낌없이 넣고 감자 삶은 물을 육수로 사용해 시원한 맛을 내는 게 맛의 비결이다. ●김치 양념소 속 채운 메밀전병 메밀전병은 영월지역 대표 향토식품으로 상품화돼 재래시장에서 판매되는 유명 음식이다. 예전에는 김치 양념소 대신 능쟁이(명아주)나물을 말렸다가 삶아서 볶은 소를 넣어 전병을 해 먹었다.
  • [길섶에서] 고구마 꽃/이경형 주필

    추석 연휴에 고구마를 캤다. 세 고랑에 심었으나 한 고랑만 캤다. 날씨가 덥기도 했지만 고구마가 너무 깊이 달려 있어 캐기가 힘들었다. 호미로 흙을 파헤쳤으나 땅이 돌덩이같이 굳어 있었다. 심한 가뭄으로 고구마가 수분을 찾아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삽으로 깊이 파 봤다. 뿌리 끝에 달린 고구마가 삽날에 토막이 나고 말았다. 옆 고랑엔 좀처럼 보기 힘든 고구마 꽃이 피어 있었다. 농부 신씨는 “30년간 농사를 지어 왔지만 고구마 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고구마 꽃을 자세히 보니 꽃잎은 분리되지 않은 통꽃이고 꽃자루 중앙엔 붉은 보라색이 5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가장자리는 흰색이었다. 나팔꽃이나 메꽃보다는 약간 작아 보이는데 함초롬한 자태가 수줍은 소녀 같았다. 고구마는 밤이 낮보다 길어야 꽃을 피우는 단일성(短日性) 작물인데, 추분(9월 22일) 전후에 수확하므로 꽃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셈이다. 유독 금년은 가물고 너무 더워 고구마도 힘들어 먼저 꽃을 피운 것이다. 아름다운 꽃은 흙속에 수분이 부족해 식물이 고통을 받을 때 피어나는 것인가.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모든 생물은 조상으로부터 왔다, 최초의 한 번만 빼고

    [장수철의 생물학을 위하여] 모든 생물은 조상으로부터 왔다, 최초의 한 번만 빼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똥벌레가 영롱한 아침이슬에서 생겨났을 것이라 했고, 가톨릭의 한 추기경은 오리가 조개껍질에서 태어난다고도 했다. 심지어 데카르트도 생물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자연스레 생물이 형성된다고 생각했다. 뉴턴은 혜성 꼬리에서 식물이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무생물로부터 특정 생물이 생긴다는 주장을 ‘자연발생설’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들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안다. 그렇지만 오래된 고깃덩어리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창고 한 구석에 말아 둔 넝마에서 생쥐가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물은 자연발생을 할까? 그렇지 않다. 이 답을 얻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는데 프랑스의 과학자 파스퇴르가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그는 백조 목처럼 구부러진 긴 관이 연결된 플라스크를 만들었다. 이 플라스크와 관이 없는 플라스크에 각각 고기 국물을 넣고 팔팔 끓였다. 며칠 후 관이 없는 플라스크에서는 세균과 곰팡이가 자라 고기 국물이 썩었지만 관을 부착한 플라스크에서는 고기 국물이 처음 그대로였다. 고기 국물을 끓일 때 생긴 수증기가 관 아래쪽에 물로 응결돼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들이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생물들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더니 생물들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생물의 자연발생설이 틀렸음을 명확하게 보여 준 실험이었다. 던져 둔 고깃덩어리에서 구더기가 생기는 것 같은 현상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균, 포자, 씨, 알, 애벌레 등이 붙어서 성장해 눈으로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생물체가 된 것이다. 그럼 자연발생설은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지난주는 햇과일과 햇곡식으로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는 추석이었다. 우리는 부모에게서, 부모는 또 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이렇게 계속해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다 보면 약 20만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조상, 약 600만년 전의 다양한 호미닌 종들의 조상, 유인원의 조상, 영장류의 조상, 포유류의 조상, 양서류의 조상, 바다동물의 조상, 동물의 조상, 진핵생물의 조상, 결국 약 37억년 전의 세균 조상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 조상 세균들도 조상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하는데 과학자들은 이 조상을 원시세포라 명명했다. 그렇다면 이 원시세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46억년 전에 막 탄생한 지구는 수많은 운석이 떨어지고 지각활동이 활발한 ‘뜨겁고 격렬한’ 행성이었다. 그러다가 39억년 전 이후 운석의 충돌이 멈췄고 지구는 암모니아, 수소, 황화합물, 메탄, 이산화탄소와 질소 등 가스로 가득 차게 됐다. 이런 조건에서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을까? 1953년 밀러는 원시지구 성분을 사용한 실험에서 생물을 구성하는 많은 종류의 단순한 유기분자를 합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2008년에 더 발전된 분석기술에 의해 다시 확인됐고, 생물 합성이 심해 열수구에서 일어났을 가능성도 설득력 있게 제기됐다. 지구로 떨어진 탄산질 운석을 분석해 보면 단순한 유기분자들이 발견된다. 이는 생물을 구성하는 유기분자가 지구 내에서만 생기는 특별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작고 간단한 유기분자는 단백질, 핵산 등 크고 복잡한 거대 분자 합성에 쓰이고 이 거대 분자들은 인지질 막 속에 모여 원시세포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런 가상 시나리오는 많은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를 통해 증거로 축적되고 있다. 게다가 염색체를 이용해 세균을 합성하는 현대의 연구들은 물질의 합성에서 생명의 탄생이 연결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자연발생설’도 초기 지구에서 최대 수억년 동안 이루어진 화합물의 합성과 원시세포 탄생이라는 측면에서는 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지구에서 생물의 자연발생은 불가능하지만 원시의 지구에서는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물의 출현을 위해서는 적어도 한 번의 자연발생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 [오늘의 눈] 한진發 물류대란이 예상된 시나리오?/유영규 금융부 기자

    [오늘의 눈] 한진發 물류대란이 예상된 시나리오?/유영규 금융부 기자

    “큰 틀에선 계산된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5일째를 맞은 지난 5일 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의연함이 되레 안타까웠다. 다른 이의 눈엔 허둥대는 모습이 역력한데 그는 “다 예상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듯했다. 괴리감은 정부 보도자료에서도 드러난다. 모두가 ‘물류대란’이라 말하지만 정부만 ‘물류혼란’이라고 표기한다. 혼란하긴 해도 여파가 크지는 않다고 우기는 듯하다. 물류대란 속 정부가 여전히 희망을 거는 시나리오가 있다. 각국 법원에서 ‘스테이 오더’(Stay Order·압류금지명령)를 일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테이 오더란 법정관리 등 국내 법원이 결정한 사항을 외국 법원에서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법원이 받아들이면 채권자의 압류나 강제집행으로 배를 억류하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다. 실제 지난 5일 일본 법원이 스테이 오더를 받아들이면서 한진해운 배는 적어도 일본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됐다. 미국 법원도 이번 주중 결정을 내린다. 정부는 나머지 40여개 국가에도 조속히 스테이 오더 신청서를 낼 계획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현지 법원 결정이 떨어지려면 최소 2주에서 한 달 정도가 걸리는데 어렵고 힘들어도 좀 참는 게 이익”이라고 말했다. 맘만 급해 무조건 돈으로 해결하려 들면 다른 나라 빚쟁이들이 떼로 달려들 것이고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미와 가래의 비용 차이는 수천억원이니 국익 차원에서도 좋을 게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믿어 달라는 정부 시나리오엔 구멍이 많다. 우선 그렇게 중요한 일(스테이 오더)이면 왜 이제서야 준비했느냐는 점이다. 선박이 곳곳에서 압류되는 상황을 예상했다면 적어도 법정관리 신청 즉시 스테이 오더를 제출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한진해운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정부도 챙겼어야 할 일이다. 물류 예측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선 “공급 초과인 해운업계 업황만 생각해 정부가 혼란을 얕봤다”고 말한다. 실제 법정관리 직전까지 채권단은 “한진해운의 국내 물동량 비중이 2%밖에 안 된다”고 했다. 북미 수출업체엔 1년 중 가장 중요한 쇼핑 시즌(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 맞춰 법정관리가 발표됐다는 점도 ‘계산된 시나리오’라고 보기엔 어려운 대목이다. 한진그룹과 대주주에게 끝까지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은 박수쳐 주고 싶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의 계산된 시나리오 안에서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무역 의존도가 높아 바닷길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대한민국호를 위해서 말이다. whoami@seoul.co.kr
  • 친박계로 확산되는 ‘우병우 자진사퇴론’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 가운데서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퇴진론에 가세하는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 야당은 국회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우 수석을 출석시키겠다고 밝히는 등 공세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22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국정원, 법무부, 검찰을 관장하는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당연히 합당하지 않다”면서 “우 수석 본인이 스스로 거취 문제를 판단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면서 사실상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앞서 지난 19일엔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가 “현직 민정수석이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있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상당히 고민이 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대통령께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본인의 거취에 대해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엔 정갑윤 의원이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통령을 위해 있는 사람이니까 대통령이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게 그들의 근본”이라며 우 수석의 퇴진을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우 수석이 사퇴하지 않는다면 이번 주 중 국회운영위원회 소집을 요구하겠다”면서 “우병우·이석수 두 분 모두 출석시켜 현안을 점검해 보자”고 공세를 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우 수석은 민정수석 완장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검찰에 깔린 ‘우병우 사단’에 수사를 맡기지 말고 별도 수사팀을 구성해야 한다”면서 “청와대는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개인비리 의혹을 정권의 명운을 건 싸움으로 변질시켜 ‘게이트’로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영덕 앞바다 ‘조스 주의보’

    영덕 앞바다 ‘조스 주의보’

    경북 영덕 앞바다에서 상어 1마리가 발견돼 해수욕객의 각별한 주의가 요청된다. 포항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4일 오전 5시 30분쯤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마일 해상에서 조업 중인 어선 D호(24t급)가 쳐둔 그물에 상어 1마리가 걸렸다. 선원들이 길이 150㎝, 둘레 45㎝ 크기의 상어를 죽인 뒤 건져 올려 이날 오전 강구수협을 통해 위판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이날 포항해경으로부터 상어 종류 조사를 의뢰받아 1차 판독한 결과 동해상에 자주 출현하는 악상어로 밝혔다. 악상어는 성질이 난폭하지만 아직 사람을 공격했다는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동해안에서는 상어 출현이 잇따른다. 2014년 7월 포항 남구 호미곶면 앞바다에서 105㎝ 길이의 죽은 청상아리 상어가 잡혔다. 2012년과 2013년엔 영덕 앞바다에서 어선이 쳐둔 그물에서 청상아리 3마리가 잇달아 죽은 채 발견됐다. 청상아리는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잡식성에 성질이 난폭하고 사람이나 보트도 공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 해수욕장 순찰 때 수상 오토바이에 상어 퇴치기를 부착하는 등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포항해경 관계자는 “다행히 지금까지 상어 출현에 따른 피해는 없다”면서도 “어민이나 해수욕객이 상어를 발견하면 122로 즉시 신고하고 해수욕을 할 때도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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