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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민주 합당론’ 재부상

    여당 내에서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민주당 등 군소정당과의 합당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도부는 일단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공감을 표시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염동연·김한길 “중부신당도 대상”합당론의 물꼬는 ‘친노 직계’인 염동연 의원이 텄다. 염 의원은 지난 2일 “민주당과의 통합뿐만 아니라 중부권 신당과도 결합해 ‘통합신당’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통합신당추진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김한길 의원은 신당과의 접촉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김 의원은 “신당쪽에서 여당과 대화를 원하고 있는데 누구와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이미 끝난 얘기” “근거없는 소리”물론 민주당과 중부권 신당도 고개를 저었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이미 끝난 이야기”라면서 “자기네 당의 위기에 왜 남의 당을 끌어들이는지 알 수가 없다.”고 비난했다. 신당측도 근거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창당준비위 공동위원장인 신국환 의원은 “예정대로 내년 초 창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내 호남과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통합 요구가 거세질 경우 당으로서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여기에다 최근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중도실용주의 세력 결집을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다.”고 말한 점을 들어 합당 불씨가 살아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88고속도로는 ‘죽음의 도로’

    영호남을 연결하는 88고속도로가 교통사고 발생시 사망률이 가장 높은 ‘죽음의 도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3일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에 따르면 지난 1990∼2004년까지 15년간 전국 23개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88고속도로의 사고 100건당 사망자수가 32명에 달했다. 이같은 사망자수는 지난 1일 터널화재가 발생한 구마고속도로 18.9명, 중앙고속도로 17.2명, 호남고속도로 15명, 남해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각 12.2명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88고속도로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1997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무려 640명이 숨지고 4768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해의 경우 89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32명이 사망, 사망률 36%로 전국 평균 10.2%를 3배 이상 웃돌았다. 88고속도로 사망사고가 많은 것은 적은 예산으로 급하게 건설하느라 터널을 뚫지 않아 커브구간 비율이 38.2%로 고속도로 전체 평균 7.5%의 5배에 달하는 등 급커브와 오르막내리막이 많기 때문이다. 중앙분리대가 없는 것도 사고다발의 주 요인이다.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의 59.6% 53건이 중앙선침범사고였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戀街] (6)박물관주변 ‘국보급’ 먹을거리

    [서울戀街] (6)박물관주변 ‘국보급’ 먹을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박물관을 다 둘러봤다면 다리가 꽤 아플 것이다. 이쯤되면 맛집을 찾아가는 것보다 ‘우리집 방바닥’이 더 그립겠지만 내친 김에 근처 맛집에 들러 한끼를 해결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박물관 근처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전철역을 지나 이촌동으로 가거나 택시 등을 타고 지하철 4·6호선 삼각지역으로 가야 한다.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 이촌동은 이국적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삼각지역 근처 음식점들은 겉보기엔 낡아보이지만 그만큼 사연도 많고, 맛의 전통도 깊다. “박물관 관람도 식후경?” 박물관에서도 음식·차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카페테리아·찻집 등이 9군데 있다.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며 주변 공원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식당 인력이 부족한 편이어서 안되는 메뉴도 있고, 일부 카페테리아는 이용객들이 너무 많아 입장할 수 없을 때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곳으로 거울못 앞에 있는 거울못 레스토랑인 아리수(별관)는 서양요리를 내놓는다. 창가에 앉아 널찍한 연못을 통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파스타와 볶음밥류가 1만원 이내다. 저녁에는 단체 손님을 대상으로 별실 예약을 받기도 한다. 스테이크 위주의 코스 메뉴가 3만∼10만원이다. 보물 2호인 보신각종이 보이는 카페테리아인 미르뫼(동관 1층)도 전망이 좋은 손꼽히는 명소다. 박물관 정원과 조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샌드위치·김밥·우동·머핀·커피 등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음식을 내놓는다. 사유(동관 3층)에서는 전통 녹차인 세작·우전과 퓨전 음료인 인삼셰이크를 맛볼 수 있다. 전통찻집이기는 하지만 커피를 비롯해 얼 그레이·장미차·다즐링·키페라떼 등도 내놓는다. 음료를 시키면 모둠떡을 서비스로 준다. 한식당 한차림(서관 3층·동관 1층에 해당)은 산채비빔밥·육개장을 각각 6500원에, 버섯비빔밥 정식은 1만 8000원에 내놓는다. 원목 인테리어와 나뭇살로 만들어진 둥근 전등이 깔끔하기는 하지만, 음식은 손맛이 제대로 배어나오지 않는 게 아쉽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만남(별관)에서는 에스프레소·카푸치노 등의 음료를 판다.푸드코트(서관 3층·동관 1층에 해당)에서는 덮밥류·비빔밥·돈가스·우동·찌개류 등의 메뉴를 4000∼7000원에 판다.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밖에 극장 ‘용’의 로비에 있는 델리숍 모란(서관 5층·동관 2층에 해당)에서는 공연 도중 휴식시간에 간단히 때울 수 있는 샌드위치나 각종 꽃잎차·허브차를 맛볼 수 있다.1544-5955.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삼각지역 주변 맛집 국립중앙박물관을 다 둘러본 뒤 동부 이촌동까지 걸어갈 힘이 없다면 지하철 2·6호선 삼각지역 부근을 찾는 것도 맛집을 찾아나서는 방법 중 하나다. 박물관 앞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정도면 되고 4호선 지하철을 타도 괜찮다. 걸어서는 20∼30분 이상 걸려 박물관을 둘러본 뒤라면 조금 힘에 부칠 수 있다. 삼각지역 부근은 미군 부대와 국방부가 있어 그동안 개발되지 못했다. 부근 맛집은 여전히 낡은 2∼3층 높이의 건물에 있어 선뜻 들어서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빠져들면 그 맛에 취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렵다. 원대구탕 평양집 건물 바로 옆은 대구탕 골목으로 불린다. 원대구탕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원조. 국방부에 근무하던 군인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진 곳이다. 대구탕·대구지리·내장탕이 6000원으로 저렴한 편. 대구탕과 지리는 다 먹은 후 공기밥을 넣어 볶아먹을 수 있다. 개운한 국물 맛이 끝내준다.717-8222. 옛집 우리은행 쪽으로 가다 신아트와 원마트 사이 골목으로 가면 국수와 김밥 등을 파는 옛집이 있다. 국수가 부족하면 선뜻 사리를 더 얹어주는 주인 할머니의 인심이 넉넉한 곳이다. 주메뉴인 온국수는 2000원이고, 비빔국수 2500원, 칼국수·수제비 3000원, 김밥은 1500원에 불과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찮은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794-8364. 평양집 양곱창, 차돌박이, 아롱사태 등 쇠고기와 소 부산물을 주 메뉴로 하는 가게. 골목 초입에 있어 찾기 쉽다. 드럼통으로 만든 식탁에서 양념에 절인 아롱사태와 곱이 풍부한 양곱창을 먹는 맛이 일품이다. 새콤한 양념장이 별미. 곱창 1만 5000원, 차돌박이 1만 7000원.793-6866. 진설렁탕 식당 입구에 걸린 큰 가마솥이 절로 발길을 끄는 집. 건물 외벽이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이 마치 스파게티 가게와 비슷한 인상을 준다. 설렁탕(5000원), 도가니탕(9000원), 머리고기수육(크기에 따라 1만∼2만원)이 주메뉴. 집에서 곤 것처럼 맛이 깨끗하고 구수하다. 토요일에는 가게 문을 열지 않는다.793-6965. 명화원 삼각지역 11번 출구에서 30여m에 위치한 중화요리 전문점. 테이블이 7∼8개 정도밖에 없을 정도로 작지만 식사 시간에는 줄을 서서 음식을 먹을 정도로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탕수육과 짬뽕, 만두가 일품이다. 중국음식 특유의 기름기가 느끼함이 없어 식도락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음식점이다. 일요일에는 문을 닫는다.792-2969. 아이파크 몰 호남선 종점인 용산민자역사에 들어선 종합 쇼핑몰. 박물관에서 0211번을 타면 갈 수 있다. 지하철을 이용하면 1호선 용산역이나 4호선 신용산역에서 내리면 된다.11개 스크린이 운영되는 복합영화상영관 용산 CGV11이 함께 들어서 있다. 관람료가 조금 비싸지만 기념하고 싶은 날 이용하면 좋은 ‘퍼스트 클래스 시네마 골드클래스’도 운영된다. 전자제품·의류 전문상가와 이마트, 전문 식당가가 함께 있어 쇼핑과 식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용산역 앞 홍등가를 지나거나 바라볼 때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라면 다소 민망할 수 있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박물관 옆 이촌동 먹을거리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건너편에 동부이촌동이 있다.1970년대 한강외인아파트가 세워진 이후 일본인이 모여 일식집, 우동집, 로바다야키(일본식주점)가 유독 많다. 대부분 아파트 상가에 딸린 아담한 가게들이다. 동네 식당인 만큼 오랫동안 손맛을 인정받은 곳만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국철 1호선 밑의 지하 보도로 건너가거나 선로 건널목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걸어서 10분 정도다. 동네 자체가 폐쇄적이라 주말에 외부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으로 조금씩 붐비고 있다. 이촌동 떡볶이 1000원짜리 떡볶이에 잘게 썬 당면이 들어간 못난이만두, 김말이만두, 야키만두(모두 300원씩)를 버무려 먹는 맛은 쉽게 잊지 못한다.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시내에서의 밥 한끼 값도 안나온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곱씹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특히 떡볶이 양념은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해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여기에 서비스로 주는 어묵국물맛도 추워지는 날씨와 잘 어울린다. 김밥류는 2000∼2500원, 순대는 2000원.749-5507. 금홍(金洪) 가게 바깥의 녹색 칠판에 분필로 적힌 메뉴는 마치 유럽식 카페를 연상시킨다. 고급스러운 검은색 톤의 내부 인테리어로 기존의 중국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려 하는 것 같다. 그렇다. 동네 중국집이라기보다는 퓨전 차이니스 레스토랑이라고 불리는 게 더 어울리는 곳이다. 칸쇼새우와 사천탕면이 인기메뉴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맛이 나는 닭고기 요리인 유린기(2만 8000원)와 아주 뜨겁게 그릇을 덥혀 나오는 누룽지탕(3만 5000원)이 잘 나간다. 충신교회 맞은편에도 2호점을 낼 정도로 손님이 많이 몰려온다.1호점 796-0995.2호점 794-7378. 보천(寶泉) 진한 국물에 굵은 면발을 넣어주는 일본식 수타우동이 유명하다. 가쓰오부시 국물 맛이 일품으로,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은 조금 진하다. 즉석에서 말아주는 김밥은 상쾌한 김 향내가 살아있다. 우동 5000원 안팎, 김밥 3000원.795-8730. 아지겐(味源) 일본인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답게 오니기리(주먹밥), 오차즈케(녹차를 부은밥), 돈부리(덮밥), 야키도리(닭꼬치구이) 등 서민적인 일본식 메뉴가 90여가지에 이른다.‘안주는 한 사람당 한 가지 이상 주문 바랍니다.’라는 문구는 낯설다. 일본 음식이라 양이 적어서이기도 하지만 음식에 자신이 있다는 주인의 자부심이 읽히는 대목이기도 하다.790-8177. 와세다야(早稻田屋) 소의 부위 20여가지를 맛볼 수 있는 일식집이다. 우설(소의 혀)에 다진파, 참기름, 소금을 얹은 구이는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처녑(소의 위)을 살짝 데쳐 역시 파·참기름·소금으로만 무친 처녑 사시미는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한국의 불고기를 변형시킨 달콤한 야키니쿠도 인기메뉴다.1인분 2만원 안팎이다.796-0608. 스틱(Stick) ‘젓가락’이라는 이름대로 동남아시아의 음식들을 집합시킨 레스토랑이다. 개업한 지 반년도 안됐지만 어느새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꽤 있다. 돼지고기를 넣어 새콤한 소스에 버무린 얌운센, 깊고 담백한 맛을 내는 베트남 쇠고기 쌀국수인 퍼보, 태국식 볶음 쌀국수 팟 타이 등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식사류는 1만원이 넘지 않지만 요리는 3만원선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노천카페 분위기가 나는 베란다의 원목테이블 자리도 인기를 끌 것 같다.798-0355. 이밖에 강촌아파트 맞은편에 단(795-4700),변경(794-8482),국화(797-5251) 등 로바다야키 전문점이 몰려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조용섭의 산으路] 충남 홍성군 용봉산

    [조용섭의 산으路] 충남 홍성군 용봉산

    충남 홍성의 용봉산은 해발 고도가 381m밖에 되지 않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산이지만, 시인이 노래하는 ‘영혼들이나 드나들 듯한 허공의 길’(임명수 ‘절벽’)이 산자락 곳곳에 흰 빛 암릉으로 드리워져 있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내게 되는 곳이다. 산길은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 용봉초등학교에서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뒤, 능선산행으로 북쪽으로 진행하여 이웃 예산군의 수암산을 거쳐 덕산온천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잡았다. 용봉초등학교 왼쪽으로 나있는 길을 10여분 걸어가면 포장도로가 끝나고 미륵불과 절집이 나온다. 식수를 준비하지 않았으면 여기서 채우도록 한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오름길을 쉬엄쉬엄 올라 능선과 가까워지면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과 만나게 된다. 전방 오른쪽 지능선으로 올라오는 길, 주능선에서 왼쪽으로 흘러내리며 희게 빛나는 암릉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능선의 봉우리들도 한결같이 잘 생긴 바위들을 업고 있다. 들머리에서 용봉산 정상까지는 50분 소요된다. 정상에서 잠시 내려서면 최영장군 활터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난다. 활터까지는 불과 200m, 주능선 쪽의 풍경을 잘 감상할 수 있으니 다녀올 만하다. 아이를 동반하여 가족산행을 나온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갈림길로 되돌아 와 내려서면 노적봉이 지척이다. 용봉산휴양림은 별도의 산막이 없이 산 곳곳에 정자나 벤치를 설치해 휴양림 쉼터로 관리하고 있다. 역시 바위 봉우리인 노적봉에 올라서면 길이 좌우로 나있다. 오른쪽 길은 험로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내려설 수 있는 짧은 암릉길이다. 다시 만나게 되는 바위지대는 악귀봉, 봉우리 오르기 전에 서쪽(왼쪽)으로 잠시 내려서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바위들이 도열하듯 서서 암릉을 이루는 절경지대를 만날 수 있으니 놓치지 말 것. 장군바위 혹은 기차바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서쪽 맞은편에 우뚝 서있는 산은 가야산이다. 악귀봉을 내려서면 오솔길 같은 편한 길이 이어지고 벤치와 평상이 있는 용봉사 삼거리(절고개)를 지나면 이내 용바위에 닿는다. 다듬어 놓은 듯 뾰족 돋아 있는 바위 끝부분의 모습이 신기하다. 오른쪽 아래로 병풍바위의 모습도 잘 보인다. 팔각정을 지나며 산길은 평평하고 마른 땅으로 한동안 이어진다. 이제 수암산으로 접어들었다. 산길 보수를 위해 침목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다. 가끔식 전망좋은 곳에서 바라보는 예산의 들녘이 무척 풍요로워 보인다. 용봉사 갈림길에서 수암산까지는 약 1시간 소요되며, 수암산에서 덕산온천 앞 도로까지는 1시간10분 걸리는데, 능선 끝 돌탑 지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면 된다. 도로 아래로 난 굴다리를 지나 냇가를 따라 난 길을 잠시 나아가면 개울을 건너 덕산온천지구로 들어서게 된다. 이로써 산행은 끝난다. ●교통 자가용:서해안고속도 홍천IC에서 빠져 나와 29번국도∼홍성읍∼덕산방면 609번 지방도∼상하리(용봉초교). 경부고속도는 천안 혹은 대전IC, 호남고속도는 논산 혹은 유성IC에서 빠져나와 홍성으로 접근. 대중교통:각 지역에서(서울:강남, 남부, 동서울터미널) 홍성으로 이동한 뒤, 동막·수덕사 행 군내버스(홍주여객)로 상하리 용봉초교 하차(하루 13회 운행). 덕산에서 차량회수는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1만원) ●숙박 용봉사 입구 용봉산 찜질방(041-633-6337)을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홍성온천지구에 숙박업소가 많다 ●문의 용봉산휴양림(041-530-1784), 홍성군 문화공보실(041-630-1362)
  • [이현세 만화경] 자유로운 의지라면…

    [이현세 만화경] 자유로운 의지라면…

    오늘 아침 출근길에 갑자기 길거리가 노랗게 물들었다. 지난주까지 푸른빛을 더 보이던 은행잎이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오늘은 노랗게 물들어 있다. 바람에 은행잎이 나비처럼 날리니 계절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고 있다. 곧 겨울이 오면 은행처럼 바싹 마른 내 피부에도 훈장처럼 또 하나의 나이테가 늘어날 테다. 흰 눈에 덮여 있던 마른 은행은 그래도 내년에는 저 자리에 서서 잎을 피울 테고, 계절은 또 달려와 내게도 나이만큼 어울리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줄 것이다. 중력을 벗어나지 못한 피부들은 아래로 향하고 귀밑에 내렸던 서리는 턱을 지나 온 머리를 뒤덮었다. 느닷없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 온 것인지 휘날리는 은행잎에 물어 보았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달려가서 차를 탄 적이 없다. 달려가느니 다음 차가 내 앞에 설 때를 기다려온 게으름과 자존심이었다.20년 이상을 작가로서 생활해 오지만 이사를 가기 전에는 작업하는 자리를 옮겨 본 적이 없다. 책상도 언제나 있는 곳에 그대로 두는 것이 편하고 책장이나 소파들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독서대는 항상 내 상체를 적당히 앞에서 막고 있어야 하고, 펜과 연필도 있던 자리에 항상 그대로 있어야 찾아 헤매지 않아서 좋다. 가끔 지우개가 제풀에 굴러 떨어지면 그 지우개를 찾아 사방을 헤매다가 제 성질에 못 이겨 그 날일을 망칠 때도 많다. 이런 일이 많다 보니 한때는 지우개를 고무줄에 묶어 스탠드에 걸어 뒀었는데 스탠드에 매달려 달랑대는 꼴이 영 눈에 거슬려서 떼어버리고 다시 찾아 헤매는 짓을 되풀이한다. 청소하기 싫어서 가능하면 어지르지 않는 나를 보면 마치 나무늘보와 같다. 이런 나를 내 속의 어떤 괴물이 평생을 미친듯이 쓰고 그리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여러분은? 생각해보면 중학교 때부터 시작이었다. 나는 사실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관심은 언제나 소설과 영화 그리고 만화였다. 학교 도서관의 소설은 일찍 내 손에서 끝이 났고 영화관은 들어갈 수 없는 금역이었으며 라디오도 귀한 시절이라서 만화는 정보와 호기심의 보고였고 미술시간은 시시했다. 모두가 만화를 악마의 책처럼 취급했을 때 어린놈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신통하게도 책상 머리에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라고 붙여 두고는 틈만 나면 이불속에 촛불을 켜두고 간첩처럼 만화를 가족 몰래 보았다. 그리고 만화가의 길을 걸을 때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의지대로 결정을 했으며 영호남의 낯선 갈등으로 주위에서 결혼을 반대했을 때도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라는 내 속의 괴물이 지금의 아내가 있게 했다. 98년인지….‘천국의 신화’라는 괴상한 이야기로 음란 폭력작가의 시비에 휘말렸을 때도 상황은 험악했다. 작가 이현세는 외국으로 미리 알고 도망을 갔다고 TV뉴스에서 떠들어대고 검찰은 구속 수사가 기본이라고 엄포를 쏴댔다. 죄인도 그런 죄인이 없었고 포르노 작가를 아버지와 남편으로 둬야 할 가족은 난리가 나고, 만화계는 불난 호떡집 꼴이 됐다.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변호사 선배님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전화로 물었더니 바로 질문이 되돌아왔다.“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자신의 의지대로 떳떳하게 살아 왔느냐?” 라는 선배님의 말씀에 내 가슴은 흥분했다. 나는 그러노라고 얘기했고 선배님은 그렇다면 내가 변호를 맡겠으니 당당하게 조용히 들어오라는 말씀을 했다. 출판사는 금방 자유로운 의지대로 재판을 포기하고 벌금을 냈으며, 나는 또다시 내 자유로운 의지대로 그 선배님과 재판을 진행했다. 형사로 진행된 재판은 6년을 가고 어느 해인가 다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나는 다시 네 군데의 출판사를 거쳐 ‘천국의 신화’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올겨울이 되면 내 의지대로 연재를 마칠 생각이다. 게으르고 미련한 나무늘보를 오늘 이 자리에 머물게 한 이유는 물론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나는 자유로운 의지이다!’라고 외친 내 속의 괴물이 최고의 몫을 한 것은 틀림이 없다. 아 참! 가능하면 재판은 하지 말라고 내 괴물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지만 그래도 그때 재판은 잘한 것이라고 웃음 짓는다.
  • 혁신도시 ‘투기와 전쟁’

    호남 지역 혁신도시 및 후보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는 등 대대적인 투기단속이 펼쳐진다. 1일 광주시와 전남·전북도에 따르면 전주시와 완주군은 지난달 28일 혁신도시로 지정된 전주·완주지역 488만평은 물론 주변 지역 일대를 모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혁신도시 지정 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전주시 만성동, 장동, 여의동, 원동 일대 638만평과 완주군 이서면 일원 1277만평 외에 500여만평이 이번에 추가됐다. 특히 혁신도시는 편입토지를 일괄매수해 일괄보상하는 택지개발방식을 도입, 투기목적으로 사들인 투기꾼세력의 부당이득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방침이다. 택지개발방식으로 토지를 매입할 경우 감정가로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투기붐으로 가격이 오른 땅에 투기를 하면 보상가가 낮아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게 전북도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보상을 많이 받기 위해 유실수를 심거나 건축행위를 하는 행위, 불법형질변경도 집중 단속키로 했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후보지 3곳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다. 전남도는 1일 이를 위해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안을 심의·의결한데 이어 이를 관보에 싣기로 했다. 나주시 남평·금천·산포·봉황·왕곡면과 장성군 장성읍·황룡·동화면, 담양군 담양읍·대전·수북면 일대 등이 대상지이다. 이개호 전남도 기획관리실장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이들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키로 했다.”며 “최종 입지로 선정되지 않은 2곳에 대해서는 혁신도시 예정지 확정과 함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을 해제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한편 광주시와 전남도는 이번주 중 이전기관협의회 의견수렴과 현장실사, 정부협의 등을 거쳐 오는 15일쯤 최종입지를 확정, 공표한다.전주 임송학 광주 최치봉기자shlim@seoul.co.kr
  • 이달 아파트 분양시장 서울 ‘위축’-경기·지방 ‘봇물’

    이달 아파트 분양시장 서울 ‘위축’-경기·지방 ‘봇물’

    8·31대책의 여파로 주택시장이 위축되자 지난 10월 분양 예정이었던 단지들이 대거 11월로 분양을 연기하면서 이달 중 분양 물량들이 홍수를 이룰 전망이다. 그러나 서울 지역은 아직도 분양 일정을 늦추는 업체가 많아 이달 중 분양 계획을 확정한 단지는 5곳에 머물렀다. 대신 경기도에서는 택지지구내 원가연동제가 적용되는 단지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지방에는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 분양도 많다. ●서울 불광2구역 244가구 일반분양 1일 내집마련정보사에 따르면 이달 서울에서 분양 예정인 사업장은 총 5개 단지 895가구뿐이다. 이 중 조합원분을 제외한 일반분양 물량은 339가구다. 당분간 분양 위축 추세는 지속될 것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가장 큰 단지는 현대건설이 은평구 불광동 572의2 일대 불광2구역을 재개발하는 단지. 총 603가구 중 244가구를 일반 분양한다. 지하철 3·6호선 환승역인 불광역이 도보로 10분거리. 단지 인근에 불광 3·4·5·6 구역이 재개발 진행 중이어서 주위환경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동시분양제는 오는 7일 10차 동시분양을 끝으로 폐지된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시로 진행되는 분양단지에 모두 청약할 수 있다. 단 여러 단지에 모두 당첨되더라도 가장 먼저 당첨된 것만 유효하다. ●화성 동탄 등 택지개발지구 눈길 경기지역에서는 동탄·풍산 등 택지지구 분양 물량이 눈길을 끈다. 화성시 태안읍 동탄면 일원 총 273만평에 조성되는 동탄택지개발지구는 신도시 중 가장 낮은 인구밀도와 가장 높은 공원·녹지율(24.3%)을 자랑한다. 화성 동탄지구에서는 시범단지 마지막 분양물량인 2-15블록 풍성주택을 시작으로 6개 블록에서 분양 물량이 나온다. 풍성주택이 동탄지구 2-15블록 시범단지에서 공급하는 풍성신미주 아파트의 32·33평형 438가구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는다. 평당 분양가가 700만원대 초반으로 지난 9월 근처에서 분양된 P건설보다 평당 60만∼80만원 정도 저렴하다. 이밖에 우미건설, 대우건설 등이 짓는 전용면적 25.7평 미만 아파트도 원가연동제가 적용된다.2-3블록,2-5블록에 경기지방공사가 짓는 단지는 5년 뒤 분양 전환되는 공공임대다. 하남시 풍산지구는 임대물량 비중이 50%에 달한다. 건설업체 중 대형업체는 없지만 강남과의 접근성, 풍부한 녹지와 저밀도 개발로 인한 쾌적성이 경쟁력이다. 개발이 확정된 송파신도시와 가깝다. 동원ENC와 삼부토건이 이달 먼저 공급에 나선다. 삼부토건은 38평형 489세대로, 상업용지와 가깝고 미사리조정경기장을 조망할 수 있다. 신도시 후광효과가 기대되는 단지들도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358만평 규모로 확대된 김포신도시 고촌동에 49개동 2605가구 대단지를 짓는다. 임광토건도 1만 5000가구가 들어서는 화성시 봉담읍에 1036가구를 짓는다. ●광주 운암동·달성군 대단지 분양 이달 지방에서는 1000가구를 웃도는 대단지들이 많이 나온다. 벽산건설은 광주 북구 운암동 67-1일대 운암 주공2단지를 재건축해 총 2753가구를 공급한다. 조합원분은 확정되지 않았다. 인접한 주공1단지도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주공3단지도 머잖아 재건축에 나설 예정이어서 향후 대규모 신규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호남고속도로 서광주 인터체인지가 차로 5분 거리며, 북문로를 통해 광주 중심부와 바로 연결된다. 대구도시개발공사는 대구 달성군 죽곡지구에 2000여가구를 분양한다.1단지는 24평형 임대 아파트 511가구와 33평형 일반 분양분 258가구로 구성돼 있다.2단지는 모두 일반 분양으로 24평형 486가구,33평형 642가구,41평형 188가구다. 현관 입구에 천연 대리석과 비데 설치, 거실 우물 천장을 비롯해 온돌마루판 등 내부 마감재를 친환경 소재로 사용할 예정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김재철(70)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 김 회장이 서울 농대를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한 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아니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칠고 험한 바다를 꿈의 대상으로, 기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드물다.”소설가 최인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주름잡던 마도로스 출신의 김 회장에 대해 건전하고 꿈이 있는 몽상가라고 평했다.2000년 당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를 이끌던 김 회장은 최인호씨에게 장보고를 소설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최인호씨는 장보고가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권력을 꿈꾸다 암살(삼국사기)당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장보고에 깊이 빠져 소설 ‘해신(海神)’을 쓰게 됐다. ●바다와의 인연…장보고를 꿈꾸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벤처 비즈니스맨의 전형이다. 서울대 입학을 마다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좇아 바다 인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실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개척자 정신으로 바다와 싸워 성공을 거뒀고 식품가공업과 금융부문 등으로 그룹을 키워내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김 회장의 삶은 이처럼 바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1935년 전남 강진 농촌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동생들 대신 학교를 다닌 셈이다. 어린 동생들은 후에 김 회장이 학비를 대주었지만 기대와 책임감을 한몸에 안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어서 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진농고를 결석 없이 다니면서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시절.“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망망대해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계기로 그는 수산대에 진학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큰 경사인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뱃사람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 졸업하고 나서 배를 탈 때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정식 학부 졸업생이 배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수산대 졸업생들은 수산청이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관계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교사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여수수산고 교장으로 계시는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교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백면서생의 객기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결국 항해중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겨우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참치 잘 잡는 마도로스’ 1958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한 뜻깊은 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승선자이기도 하다. 기업가로 변신하기 전 김 회장은 8년간 실제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항해사로 시작한 뱃사람 생활에서 곧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파격적인 승진이다. 다른 배보다 빨리 만선을 기록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때부터 국내외 원양어선 업계에서 그는 ‘참치 잘 잡는 선장’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고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출어에 나섰다.”면서 “고기떼를 찾아 바다를 헤맬 때나 조업을 앞둔 새벽이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일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조로 삼았던 마음 가짐 때문인지 승승장구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괜찮아’다. 1964년 고려원양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돼 물품판매, 차관업무, 선박도입 등 수산업 관련 업무를 익혔다. 당시 원양어선이 잡은 참치는 대부분 현지에서 수출됐는데 그때 외국상선들과 거래하며 쌓은 신용은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 1969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업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동원 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사업 밑천은 1000만원. 배는 일본 기업에서 공짜로 빌렸다. 일본에서 어선 구입비로 37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담보나 정부·은행의 지불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빌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신용의 결과였다. 사장이 된 뒤에도 그는 직접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섰다.‘참치 잘 잡는 선장’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동원산업의 원양어선은 월등한 어획고를 기록했다. 창업 2년만인 1970년 외화 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수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70년대 초 몰아닥친 1차 석유파동은 동원산업을 비롯해 모든 원양어선 업계에 타격을 주었다. 불황으로 도산하는 기업체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원·감량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동원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4500t급 초대형 트롤어선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지만 그는 바다생활을 통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기상정보가 정확지 않아 예보없이 폭풍우를 만나는 일도 많았지만 바람이 온다고 일일이 피해 다니다보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났을 때처럼 감격스럽고 벅찬 희열도 없다. 폭풍우와 맞서 싸운 경험들이 인생을 성장시켰고 여물게 해준 것 같다.” 그는 해양에 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85∼91년 한국수산업 회장,90∼92년 원양어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식품과 금융업으로의 확장 다른 원양회사들이 낡은 배를 가지고 ‘본전뽑기’식 조업을 하는 동안 동원은 조업을 끝낸 선박은 현지에서 매각하고 최신형 장비를 갖춘 선박을 구입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30여척의 원양어선과 함께 연간 10만t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산업체로 키운 것이다. 동원산업에서 참치캔을 내놓으며 식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다랑어란 본명을 가진 참치는 참치의 일본명인 ‘마권(眞黑)’에서 ‘참(眞)’을 따고 우리나라 생선 대부분의 이름처럼 끝에 ‘치’를 넣어 참치로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참치잡이는 그가 배를 타던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됐지만 참치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에게 낯선 고기여서 전량 수출됐다. 그는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코스에서 몇달 공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통조림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참치통조림을 먹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획고 전량을 일본·태국 등 외국에 전량 수출하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소비가 된다면 동원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참치통조림을 만들어 팔다 실패한 뒤의 도전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참치가 원래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 고기라 낯설기 때문에 통조림에 참치 모양을 그려 넣고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참치통조림 시식회를 하는 등 참치를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출시 이후 4∼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8올림픽과 함께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동원은 명실공히 식품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동원 참치캔은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식품업을 시작한 1982년. 김 회장은 증권업에도 뛰어들었다.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며 들었던 얘기가 동기가 됐다. 하버드대학 MBA출신들이 어떤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가를 조사해 봤더니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그는 어선을 더 사려고 준비했던 돈으로 증권회사를 샀다. 당시 국내 증권회사의 인식이 좋지 않아 원양어선 한 척 값(80억원대)으로 중견 증권회사인 한신증권을 살 수 있었다. 한신증권을 낙찰받으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신증권은 1996년 동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아예 동원그룹에서 분리되어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재탄생했다. 99년 무역협회 2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일들은 주요 사항만 보고받고 있다. 무협 직원 절반가량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한편 전자무역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전시 컨벤션 육성, 수출입물류비개선 , 국제물류센터 추진 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아들들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김 회장은 부인 조덕희(67) 여사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선장시절인 1962년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던 조 여사의 오빠 조영채(70)씨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조 여사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졸업한 군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분으로 김 회장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김 회장은 2004년 12월 그룹을 각각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큰아들에게는 금융을, 작은아들에게는 식품을 맡도록 했다. 장남인 김남구(42)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듬해인 지난 6월 자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기존 동원금융지주보다 시가총액이 두배나 많은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한 후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지주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다. 동원F&B 등 식품 계열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32) 경영지원실장(직급 차장)이 물려받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92학번인 김 실장은 회사 지분 44.98%를 갖고 있다.97년 동원산업에 입사,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 등을 거쳤다. 아버지가 만든 참치캔 이후 업계를 선도할 새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표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장남 김 사장은 입사하기 앞서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참치배를 타며 동원을 이해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는 한편 참치를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갑판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남 김 실장 역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 동원산업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등 밑바닥부터 배웠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좋고 남들이 보면 구두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이다. ●정·관계로 이어지는 화려한 혼맥 건설교통부 장관부터 국정원장까지 동원가의 혼맥은 화려하다. 큰 아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고병우(72) 28대 건교부 장관의 딸인 고소희(37·이대 전산학과 86학번)씨와 1992년 4월 공항터미널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려대 김동기 교수가 주례를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동윤(12)과 지윤(7) 1남1녀가 있다. 고 전 장관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다 현재 한국경영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 쌍용증권 회장 재직시절부터 김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김남구 커플은 ‘괜찮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라.’는 양가 어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개월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대 서양학과 84학번인 첫째 딸 김은자(40)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44·고대 법대 79학번) 검사와 중매로 결혼했다. 김은자씨는 내성적이고 일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을 겨냥한 사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대구 고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열두살된 외동아들 연욱이 있다. 둘째 딸 김은지(37·이대 정외과 87학번)씨는 고 김택수 전 의원의 4남인 서울 법대(81학번) 출신의 김중성(43)씨와 지난 1992년 10월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식을 올렸다. 성격이 명랑하고 친정과 시댁의 집안 대소사를 두루 잘 챙겨 어머니 조덕희씨의 자랑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이 1988년 여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CISV)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김씨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선(12)과 현선(6) 두 딸이 있다. 막내 김남정(32) 실장의 아내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64)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셋째 딸 신수아(33·이대 장식미술학과 91학번)씨.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선배의 소개를 통해 누나-동생 사이로 만난 뒤 6개월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3년 열애끝에 결혼했다. 김상하 삼양사 회장 주례로 지난 1998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찬(5)과 서연(2) 남매를 두고 있다. 사돈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재국(63) 전 동해하이테크 사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뛰어난 문장가’ 김재철 회장 “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소개된 김재철 회장의 ‘남태평양에서’의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지만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이밖에 ‘바다의 보고’,“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 그의 글은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씨는 ‘사상계(思想界)’에 발표한 김 회장의 글을 보고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기업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가 있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시절 선용품을 사기 위해 시모노세키 등의 항구에 기항하면 책방에 가서 헌책들을 무게로 달아 구입해 배 안에서 끊임없이 읽었다. 덕분에 김 회장은 문학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 지난 2004년 일본 미쓰비시 그룹 회장·사장단으로 구성된 모임인 ‘금요회’에서 ‘나의 인생과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일본어 특강을 했다. 요즘도 월 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경제·경영·역사·심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회계학도 독학으로 배워 재무제표도 꼼꼼히 본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동원산업 사내 게시판에는 책 요약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처남인 박인구 동원F&B 사장도 국내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KTX를 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강조했다.1주일에 적어도 한 권씩은 읽도록 했다. 정독이 안되면 통독을 하라고 가르쳤다. 책을 주고 A4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도 받았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느낀 점이 부족하면 느껴야 될 점과 핵심 등을 설명해 주었다.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오래전에 독후감 제출을 졸업했지만 김 사장보다 열살 어린 동생 김남정 실장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독후감 제출 대상이었다. 김 실장은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얼마나 고생해 지도자 자리에 올랐는지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최근에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추천받았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처남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처남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與지도부 총사퇴 당·청 갈등

    與지도부 총사퇴 당·청 갈등

    10·26 재선거 참패로 여당 지도부가 일괄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을 비롯한 상임중앙위원단은 28일 재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연말 연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비상대책위 체제로 움직이게 됐다. 지도부의 총사퇴 결정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선거 참패를 국정운영 평가로 규정하고, 여당이 동요하지 말 것을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당·청간 갈등 심화가 조기 레임덕 현상의 가시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당 쇄신책을 둘러싸고 계파간 알력과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정동영 통일·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차기주자군의 조기 복귀론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도부의 총사퇴는 연말 개각과 비대위 구성, 전당대회 개최, 내년 지방선거 일정과 맞물려 여권내 힘의 역학관계에 가파른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문 의장과 장영달·유시민·한명숙·이미경·김혁규 상임중앙위원 등은 이날 긴급 상임중앙위 회의에서 일괄 사퇴하기로 의견을 모은 뒤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에서 추인받았다. 이로써 지난 4월2일 전당대회에서 출범한 문 의장 체제는 7개월 만에 도중 하차하게 됐다. 문 의장은 연석회의에서 “재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질책을 받들어 지도부가 모두 사퇴키로 결정했다.”면서 “개혁을 추진하고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열린우리당은 당분간 비상대책위 체제로 당을 운영키로 하고, 정세균 원내대표를 비대위 인선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인선위는 정 대표와 16개 시·도당 위원장으로 구성돼 이날 첫 회의를 열었다. 빠르면 내주초 비대위 구성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관심을 모으는 비대위원장에는 정세균 원내대표가 겸임하는 방안과 유인태 의원이 맡는 안으로 압축된 것으로 전해졌다. 인선위는 비대위 구성에 지역안배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서울, 경기, 충청, 영·호남 등 지역별로 1∼2명씩 선정하고 여성 2명을 추가해 모두 7∼9명선에서 비대위 위원을 구성키로 의견을 모았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고법 부장판사이상 44명 인사

    TEXT 대법원은 대법관 3명을 제청한 뒤 사퇴한 고위법관 자리를 충원하기 위해 다음달 4일자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44명에 대한 전보인사를 28일 단행했다. 대법원은 사법연수원장에 손기식(사진 왼쪽·사시 14회) 청주지법원장, 서울고법원장에 정호영(오른쪽·〃 12회) 대전고법원장, 대전고법원장에 이흥복(〃 13회) 부산고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에 김진기(〃 14회) 대구지법원장, 부산고법원장에 권남혁(〃 13회) 서울남부지법원장을 전보 발령했다. 또 서울중앙지방법원장에 이홍훈(〃 14회) 수원지법원장, 서울가정법원장에 양동관(〃 14회) 의정부지법원장, 서울행정법원장에 이우근(〃 14회) 인천지법원장을 발령하는 등 법원장 19명의 자리를 옮겼다. 특히 대구고법원장에 대구 지역법관인 김진기 대구지법원장을, 창원지법원장에 김종대(〃 17회) 부산고법 수석부장을 발령하는 등 영·호남의 지방법원 6곳 가운데 5곳의 지법원장을 지역법관으로 채웠다. 김연태 사법연수원장 등 9명의 사표는 수리키로 했다. 대법원은 지법 부장을 고법 부장으로 전보시키는 소폭 인사를 조만간 실시하기로 했다.?나머지 인사 명단은 19면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이런 전공] 애완동물

    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크게 늘면서 애완동물 가게와 미용, 병원 등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애완동물 전공은 이러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한 전문 직업인을 키운다. 전문 애완동물 사육사로서 갖춰야할 지식과 애완동물들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사육·관리하는 데 필요한 자격과 면허 취득 관련 기술을 중점적으로 배울 수 있다. 주요 교과목으로는 애완동물학 입문과 애완동물 위생학, 동물생리 및 행동학 등 기초 과목에서부터 애완견의 건강 유지를 위해 털과 피부의 청결을 유지하는 글루밍 이론·실습, 털 손질 기술인 트리밍 이론과 실습, 기초 및 응용훈련 실습, 애완동물 미용실기, 애완동물 액세서리 디자인 등 실습 및 응용과목까지 다양하게 개설돼 있다. 졸업 후에는 애완동물과 관련된 다양한 직종으로 진출할 수 있다. 애견 전신미용관리사인 글루머(gloomer)로서 애견미용센터나 미용학원을 운영하거나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애견카페를 경영할 수 있다. 동물관리사로서 애견훈련학교나 동물원에 취업하기도 한다. 실험동물관리사나 전문 번식자인 브리더(breeder)로서 연구소에 취업하거나 애완동물 관련 유통·무역회사로 진출할 수도 있다. 애완동물 전공이 개설된 곳은 영동대(충북)의 애완동물과와 호남대(광주)의 애완산업학부 등이다. 중부대(충남)와 우석대(전북)의 애완동물자원 전공과 원광대(전북)의 애완동식물 전공, 공주대(충남)의 특수동물 전공도 비슷한 전공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FA컵, 미포조선 돌풍

    프로축구 K-2리그 울산 미포조선이 형님뻘인 디펜딩 챔피언이자 K-리그 전기 우승팀 부산을 잡는 파란을 일으키며 올해 FA컵 돌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미포조선은 26일 김해운동장에서 펼쳐진 FA컵 전국축구선수권대회 32강전에서 루시아노와 다실바, 포포 등 주전급 전력을 모두 투입한 부산을 2-1로 제압하고 16강에 올랐다.미포조선은 전반 18분 전상대가 벌칙지역 오른쪽에서 선제골을 뽑아내며 이변을 예고했다. 전반전 부산의 슈팅을 4개로 막아내면서 효과적인 수비를 펼친 미포조선은 후반 23분 부산 고창현에 동점골을 허용, 위기를 맞았지만 후반 29분 박희완이 벌칙지역 중앙에서 질풍처럼 달려들며 날린 오른발슛이 부산의 골망을 흔들어 승리를 챙겼다. 파주트레이닝센터(NFC) 화랑구장 경기에서는 5골이 터지는 난타전 끝에 인천이 아주대에 3-2 진땀승을 거두고 16강에 합류했다. 라돈치치와 아기치 등 용병 공격수를 모두 뺀 인천은 전반 12분 아크 중앙에서 아주대 조용기에게 프리킥 선제골을 내주면서 허를 찔렸지만 전반 22분 이준영의 동점골로 균형을 맞춘 뒤 6분 뒤 김치우의 추가골로 경기를 뒤집었다. 후반 21분 방심 끝에 동점골을 허용, 수세에 몰린 인천은 35분 교체 투입된 라돈치치가 페널티킥 결승골을 성공시켜 가까스로 승리를 지켰다. K-리그 후기리그 선두를 달리는 성남도 중앙대에 3-2 역전승을 거두고 힘겹게 16강에 올랐다. 울산은 한남대를 3-1로, 포항은 호남대를 2-1로 제쳤고, 대구와 전북은 홍익대와 고려대를 각각 1-0,2-0으로 물리치고 16강에 진출했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한국 여성에 질렸다” 전문직도 국제 결혼

    “한국 여성에 질렸다” 전문직도 국제 결혼

    #사례1 경기도 일산에 있는 모 종합병원 전문의 A(38)씨. 연봉 1억원이 넘는 그는 키 185㎝, 몸무게 87㎏의 호남형으로 TV에도 종종 출연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1등 신랑감 A씨는 지난달에 카자흐스탄에서 20대 여성과 결혼을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는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성들이 내 조건만 보고 달려들어 이젠 한국 여성이라면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사례2 아프리카 근처 홍해에 인접한 한 나라에서 한국 건설회사 지점장으로 일하는 L(34)씨. 그는 지난달 우즈베키스탄 20대 중반 여성과 결혼했다. 우리나라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맞선 자리에서 고백하면 국내 여성들은 여지없이 퇴짜를 놓았다. 그는“결혼 후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가서 살아야 했다면 한국 여성들에게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례3 국세청 7급 공무원 C(35)씨. 지방대 법대 출신으로 100대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실력파다. 그가 지난해 중국 여성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C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무엇이 부족해 외국 여성과 결혼해야 하느냐며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C씨에게도 이유가 있다. 탄탄한 직업을 가진 그이지만 지방대 출신이라는 점과 1500만원짜리 전세가 전재산이라고 고백하면 한국 여성들은 미련없이 떠났다. 국제결혼 시장이 변하고 있다.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농촌 총각이나 40대 이후 재혼 남성들이 국제 결혼을 택했다면 요즘은 남부러울 것 없는 ‘1등 신랑감’들이 국제결혼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국제결혼 전문업체 인터웨딩의 지난달 인터넷 회원 가입자 570명 중 35세 이하 남성은 77%인 439명이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인터넷 회원 가입자가 모두 국제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20대 후반 30대 초반 남성들의 국제결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국제결혼 업체 주피터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업체에서 올 상반기 국제 결혼을 한 남성 170명 중 68명이 35세 미만이었다.39세 미만 남성을 포함하면 80%가량의 남성들이 제3세계 여인들과 결혼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고학력 전문직 남성들이 국제결혼에 몰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인터웨딩 이은태 대표는 고학력 전문직의 결혼 적령기 남성들이 국제결혼을 택하는 이유를 ▲결혼에 관한 한국 여성들의 인식이 빠르게 변하면서 결혼 조건을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아내의 나라인 제3세계로 이민을 가 사업하기가 쉬우며 ▲2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글로벌한 2세를 얻을 수 있고 ▲결혼 비용이 한국의 5분의1로 저렴하다는 장점 등을 꼽고 있다. 여자 인구 100명당 남자 인구 성비가 112.4로 남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11∼20세 남성들의 결혼 적령기가 오면 국제결혼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과거 국제결혼의 대표 주자들이었던 농촌 총각과 재혼 남성의 결혼 시장은 또다시 위축되고 있다. 국제결혼 업체 아리랑월드 관계자는 “일부 국제결혼 업체에서는 아예 농촌 총각이나 장애인들은 회원으로 받지 않고 있어 이들의 결혼 문제가 또다시 사회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안전벨트 역시 ‘생명벨트’

    여고생 30여명이 탄 수학여행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논으로 추락했으나 모든 탑승자가 안전벨트를 착용, 대형 참사를 면했다. 24일 오전 8시30분쯤 전북 김제시 금구면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161㎞(순천기점)에서 충남 D여고 수학여행 버스(운전사 오모씨·48)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도로옆 3m 아래 논으로 추락했다. 사고는 반대편 상행선을 달리던 트라제 승합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 가로·세로 1m 크기의 중앙분리대용 콘크리트가 하행선 1차선으로 튀면서 버스가 이를 피하려다 일어났다. 사고로 버스는 논으로 굴러떨어지면서 유리창이 대부분 깨지고 내부도 심하게 부서졌다. 하지만 버스에 타고 있던 신모(16·고교 1년)양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는 등 32명이 다쳤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이들은 현재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경찰은 탑승자 전원이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서 대형 참사를 모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반대편 차선의 트라제 승합차와 버스 운전사를 상대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전북 혁신도시 후보지 6곳 압축

    토지공사 등 13개 수도권 공공기관이 이전할 전북지역 혁신도시 후보지로 완주 용진 등 6곳이 제시됐다. 전북발전연구원은 최근 전북도청에서 ‘공공기관 이전 추진협의회’위원들에게 혁신도시 후보지로 익산 삼기와 완주 용진, 김제 용지, 완주 이서, 남원 덕과, 정읍 신정 등 6개 지역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익산 삼기는 450만평 규모로 호남고속철도 익산역과 7㎞ 떨어진 곳. 완주 용진(475만평)은 호남고속도로 익산 IC와의 거리가 6㎞로 접근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김제 용지(460만평)와 완주 이서(470만평)는 호남고속도로와 가까운 데다 만경강과 황방산·모악산 등 주변 경관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도와 추진협의회는 20여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입지선정위를 가동, 오는 28일 최종 입지를 선정할 방침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두 小野의 엇갈린 행보

    ■ ‘동지’모으는 민주당 민주당이 제3당으로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몸집 부풀리기’에 나섰다. 한화갑 대표는 2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민주당과 뜻을 같이하는 모든 정치세력과 연대해 정치틀을 다시 짜는 결단을 내릴 때”라고 밝혔다. 이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창당을 본격화한 ‘국민중심당’을 비롯해 차기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 가능성을 높이면서 민주당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향후 고 전 총리나 신당측 심대평 충남지사와 연대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할 뜻도 함께 밝혔다. 한 대표의 이같은 언급은 민주당이 호남, 특히 전남과 광주지역에서의 지지만을 갖고는 ‘옛 영광’을 되찾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기 위해선 민주당이 재집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당 일각에서는 한화갑 대표, 심대평 지사, 고건 전 총리가 경선을 통해 차기대선 주자를 뽑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둥지’못찾는 자민련‘국민중심당’이 창당을 선언하자 자민련은 ‘금강 오리알’신세가 될지도 모를 처지가 됐다. 신당측이 통합논의 중 ‘홀로 고(go)’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규양 대변인은 20일 “통합 이후에도 김학원 대표가 대표직을 고수하려는 생각은 없다.”면서 김 대표의 ‘백의종군’ 의사도 거듭 밝혔다. 사실상 ‘백기투항’ 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양당 내부에서는 ‘김학원 충남지사 후보설’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김 대표가 의원직을 비우는 충남 부여에는 김종필(JP) 전 총재의 ‘10선(選) 도전설’이 나온다. 물론 올 초까지만 해도 소문으로 떠돌다가 자취를 감춘 얘기다. 하지만 양당 통합이 성사되면 거취가 애매하게 된 김 대표로서도 ‘윈-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들어 다시 그럴 듯하게 나돌고 있다. 자민련측은 “지난달 JP가 김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과 만찬을 하려고 했다가 정치 재개 소문이 나돌아 취소했다.”고 말해 아직 ‘유효한 카드’임을 시사했다. 박준석기자 pjs@seoul.co.kr
  • [金총장 사표 수리] 외부인사 발탁 가능성…사시17회도 유력

    [金총장 사표 수리] 외부인사 발탁 가능성…사시17회도 유력

    16일 김종빈 검찰총장의 사표가 수리돼 금명간 후임자가 선임되고 검찰 고위직의 인사이동도 뒤따르게 된다. 이날 청와대측이 “총장의 사표제출은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밝힌 대목이 눈길을 끈다. 당초 후임자 인선은 검찰 조직의 동요를 추스르면서도 검찰의 산적한 현안을 풀어나갈 적임자를 찾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청와대측의 태도를 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평이한 인사보다는 대대적인 쇄신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래서 제기되는 하나의 가능성은 후임 검찰총장이 외부인사중에서 발탁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홍원(61·사시 14회)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이정수(55·사시 15회) 변호사, 김성호(55·사시 16회) 국가청렴위 사무처장 등이 후보군이다. 정 위원은 김 전 총장의 선배이고, 이 변호사는 동기생이다. 김 처장은 국가청렴위(옛 부패방지위)라는 외부조직에서 검찰을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이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호남 일색인 사정기관 수장들 사이에서 PK(부산 경남) 출신이라는 점도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는 무관한 진짜 외부인사 중에서 깜짝 발탁될 가능성도 있다. 현직 중에서는 서영제(사시 16회) 대구고검장 등이 1순위이다. 사시 기수를 뛰어 넘어 노무현 대통령 동기인 사시 17회가 총장에 오르는 것도 점쳐볼 수 있다. 정상명 대검차장, 안대희 서울고검장, 이종백 서울중앙지검장 등이다. 정 차장과 이 지검장이 노 대통령과 이른바 ‘8인회’로 묶인 사이여서 반발이 우려될 경우, 대선자금 수사로 신뢰를 얻은 안 고검장 ‘카드’를 빼들 수도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부영 대표이사에 정훈씨

    ㈜부영은 16일 정훈(65) 호남본부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계열사인 남양개발 정동진(65) 사장을 남광건설산업 사장으로 선임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1)-창업주 김연수家

    일반인들에게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으로 익숙한 삼양사는 한국 근대경제사를 주도한 명문 기업이다. 호남 거부의 후예인 김연수(金秊洙) 창업주는 일제하인 1924년 순수 민족자본으로 기업을 설립, 한국기업의 명맥을 이었다. 김 창업주는 형인 인촌(仁村) 김성수씨가 동아일보를 설립하고 꾸려가도록 뒷받침했고, 여러 차례 재산을 털어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러나 김 창업주는 일제하에 기업을 경영함으로써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사인명사전을 편찬하면서 친일인사로 선정하는 등 사후에 ‘친일’ 시비에 휘말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근대 한국경제의 산증인인 김 창업주의 삶은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김 창업주는 1896년 10월1일 전라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부친 김경중씨와 모친 장흥 고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났다. 형의 호인 인촌은 바로 두 형제가 태어난 동네 이름을 따온 것이다. 김 창업주의 부친은 1만 5000석 지기의 호남 최대 거부였고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부친은 일제하에서 나라가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당시 저명한 사학자들을 몰래 불러 ‘조선사’를 17권이나 엮을 정도로 민족애가 투철했다는 게 삼양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창업주는 어린 시절 외롭게 지냈다. 김 창업주의 부모는 그가 태어나기 전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일찍 잃었다. 여기에다 한 명뿐인 형인 인촌이 큰아버지인 김기중씨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자 양자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김 창업주는 몸이 허약했다. 폐가 약했으며 위도 튼튼하지 못해 일찍이 폐와 소화기 계통의 질병으로 자식을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의 애를 끓게 했다. 이런 이유로 개구쟁이처럼 장난이 심하고 활발했던 인촌과는 달리 김 창업주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고, 과묵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27세에 경영인으로 출발 김 창업주는 15세 되던 1910년 12월8일 자신보다 두 살 위인 박하진씨와 혼인을 맺었다. 결혼 이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인 최초로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922년 형의 권유로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전무와 상무에 취임, 경영인의 삶을 시작했다. 김 창업주는 고무신과 ‘태극성표’ 광목을 대히트시킴으로써 일본자본과 맞서는 최대의 민족회사를 일궜다. 집안 내력을 잘 아는 김재억 삼양사 상임감사는 “30년대 경성방직은 우리나라 금융거래 절반을 담당할 정도의 민족 최대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김 창업주는 또한 농촌재건을 위해 소작농을 협동농업 형태로 결합한 근대영농을 시작했다. 이를 발판으로 1924년 삼수사(三水社)를 설립해 호남 일대의 소유농토에 대한 근대화 작업에 나섰다. 장성, 줄포, 고창, 명고, 신태인, 법성, 영광농장을 차례로 개설해 기업형 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간척사업에도 눈을 돌려 손불농장과 해리농장의 2개 지역에 1070정보의 농토를 만들었다. 이 시기에 상호가 삼양사(三養社)로 바뀌었다. 어느 날 한 작명가가 찾아와 ‘물 수’(水)를 ‘만인의 양식’이라는 뜻인 ‘기를 양’(養)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고 한다. 김 창업주는 만주벌 개척에도 나섰다.5개 협동농장을 개설한 데 이어 봉천에 남만방적을 설립했다. 남만방적은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생산법인이다. 그러나 1945년 해방으로 만주의 사업장들을 고스란히 놓고 철수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제당업으로 재기에 나서 해방공간을 겪으면서 반민특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 창업주는 한국 전쟁 이후 해체상태에 놓였던 삼양사 재건에 나섰다. 그는 재기의 발판으로 제당업과 한천제조업을 선택했다. 당시 설탕은 수입에 의존해온 대표적인 외화소비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울산 바닷가를 메워 그곳에 제당공장과 한천공장을 건설했다. 그는 1956년 삼양을 제당으로 키우면서 주식회사 삼양사를 출범시켰다. 자신이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고, 사장에 3남인 상홍(83), 상무에 5남 상하(80)를 앉혔다.3남과 5남이 삼양사를 맡는 전통은 3세에도 그대로 이어져 삼양그룹은 현재 상홍씨의 장남 윤(53)씨와 상하씨의 장남 원(48)씨가 삼양사 회장과 사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들인 량(51)씨와 정(46)씨도 각각 삼양제넥스 사장과 삼남석유화학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당시 삼양사보다 수익률이 높았던 해리염전을 삼양염업사라는 별개의 회사로 독립시키고 맏아들 상준(작고)을 사장에 임명해 경영을 맡겼다.3공화국때 문교부장관과 5공화국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차남 상협(작고)에게도 삼양염전의 지분 25%를 떼어주어 형제간 경영권을 일찌감치 교통정리했다. ●재계의 거목으로 김 창업주는 1962년 설립한 삼양수산을 통해 다양한 어종을 가공, 수출하는 등 한때 냉동선만 21척을 보유할 정도로 수산업에도 주력했다. 이처럼 제당과 수산업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한국경제협의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취임, 한국 재계의 얼굴이 되었다. 경영이 본 궤도에 오르자 김 창업주는 전주방직을 인수, 삼양모방(주)을 설립했다. 이어 1969년 전주에 대단위 폴리에스테르 공장을 건설했다. 이로써 70년대 들어 삼양은 국내 초창기 산업의 중심이었던 제당으로 확고한 제조업체로의 변신을 이룩했다. 이 당시 삼양은 매출액에서나 기업선호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국내 정상급 기업으로 우뚝 섰다. 김 창업주는 사업에 투신한 지 만 53년이 되던 1975년 회장을 상홍에게, 사장에 상하를 임명하는 등 ‘2세경영’을 출범시키고 은퇴했다. 그의 나이 80세일 때였다. 그는 은퇴 후 농촌으로 돌아가 마지막 열정을 쏟다가 1979년 84세의 일기로 생애를 마감했다. ●교육사업도 아낌없는 지원 그는 기업경영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고려대와 고려중앙학원의 운영기금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양영회와 수당장학회를 설립, 교육사업에도 힘썼다. 문성환 삼양사 부사장은 “창업주는 두 재단을 통해 대학생 2만여명에게 대학등록금을 비롯해 하숙비, 책값, 소정의 용돈까지 장학금으로 대줬다.”고 회고했다. 이런 김 창업주의 혜택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덕수 경제부총리, 오세철 연세대 교수 등이 꼽힌다. 경성방직의 회계를 맡아 김 창업주를 도왔던 국어학자 이희승 박사는 “수당(秀堂·김 창업주의 호)은 돈 쓰는 데도 일가견을 가진 사람으로 만금을 쓰면서도 기업경영에는 한 푼을 아꼈다.”고 그의 용전(用錢)철학을 전했다. 김 창업주는 경쟁회사에도 관대했던 묵묵한 성격의 경영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1966년 삼양의 경쟁회사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운영하던 한국비료가 이른바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곤혹을 치렀다. 임원들이 ‘사카린 없는 삼양설탕’이라는 문구로 대대적인 광고전을 벌이자고 수차례 건의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은 사례는 그의 성품을 읽는 일화로 경영인들에게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방대한 혼맥…사회 각 분야와 사통팔달 김 창업주는 부인 박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들을 두었다. 아들로는 장남 상준(작고), 차남 상협(작고),3남 상홍(83),4남 상돈(81),5남 상하(80),6남 상철(70),7남 상응(작고) 등 7남과 장녀 상경(79), 차녀 상민(78),3녀 정애(75),4녀 정유(73),5녀 영숙(72), 막내 희경(66) 등 6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 가문의 혼맥은 정계·관계·학계·언론계·재계·교육계 등과 거미줄처럼 얽힌 방대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김 창업주의 성격이 소탈해 자식들에게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평범하고 무난한 결혼을 시켰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김재억 감사는 “창업주의 생활철학이 권세를 배격하는 것이어서 자식들이나 3세들의 결혼에도 사돈 될 집안의 내력과 상대방의 성실성을 먼저 봤다.”고 회고했다. 김 창업주는 특히 자녀들의 대부분은 중매결혼으로 짝지웠지만 사위와 며느리를 맞는 데서는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사위를 고를 때는 가문을 따지지 않고 사람됨됨이와 능력을 위주로 보았고, 며느리는 후덕한 집안 출신으로 신식교육을 받은 신여성이기를 원했다. 특히 사돈가의 위치를 보고 정혼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해 그의 직접 사돈 가운데는 정관재계의 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김 창업주의 며느리들 가운데 위로 세 명은 이화여전 출신 등으로 당시의 김 창업주가 원했던 신여성들의 표본이 많았다. 반면 창업주의 형인 인촌 성수씨도 9남4녀를 두어 대가를 이뤘는데 장남인 상만(작고)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직계 자손들은 화려한 혼맥을 자랑하고 있다. 고려대 이사장이자 동아일보 전 회장인 장손 병관씨는 장남 재호(41·동아일보 대표이사 전무)씨를 이한동 전 총리의 차녀인 정원(38)씨와 결혼시켰고,2남 재열(37·제일모직 상무)씨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녀인 서현(32·제일모직 상무보)씨와 결혼했다. 김연수 창업주 자녀들의 혼맥을 살펴보면 장남 상준씨는 당시 집안과 각별하게 지내던 이화여대 총장 김활란 박사의 소개로 이뤄져 1943년 구영숙씨의 맏딸 연성(85)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상준씨는 보성전문 상과를 나와 조흥은행에 근무할 때였고 연성씨는 이화여전 음대를 졸업한 직후였다. 상준씨는 3명의 딸을 출가시켜 정·관·재계 인맥을 형성했다. 장녀 정원(62)씨의 부군은 고려대와 국가대표팀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김선휘(68·삼양염업사부회장)씨다. 축구를 좋아하던 상준씨는 모교인 고려대 축구팀을 지원했는데, 이 일로 선휘씨가 상준씨 집에 드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혼사가 맺어졌다. 차녀 정희(58)씨는 5공시절 당시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진만씨의 맏며느리로 보내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64)씨를 사위로 맞았다.3녀 정림(57)씨는 전 문교장관 윤천주씨의 장남 대근(59)씨와 결혼했다. 대근씨는 현재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과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상준씨의 장남 병휘(60)씨는 한양대 자연과학대 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차남 범(52)씨는 독신으로 지내며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차남 상협씨는 해방 직후 고려대 부교수 시절, 의사 김준형씨의 2남3녀 가운데 맏딸 인숙(82)씨와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인숙씨도 니혼조시 대학을 나온 당시 보기 드문 일본 유학 신여성이었는데 상협씨의 도쿄제대 동창 부인의 소개로 만나 연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녀 명신(58)씨를 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65) 서울대 법대교수와 혼인시켰다.2녀 영신(56)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 성진(58)씨와 결혼했다. 외아들 한(52)씨는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있다. 3남 상홍(83)씨는 구 치안본부 재직시절 수원갑부 차준담씨의 2남2녀 가운데 맏딸 부영(7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부영씨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전을 나온 재원이었다. 상홍씨는 2남2녀 가운데 장남 윤씨를 전 서울신문사 김종규 사장의 딸 유희(46)씨와 혼인시켜 벽산그룹 김인득 회장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다. 또 차남 량씨는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막내딸 영은(46)씨와 백년 가약을 맺었다. 영은씨의 오빠 장대환씨는 매일경제 신문 창업주 정진기씨의 사위로, 현재 매일경제신문 대표이사회장 인쇄인 겸 발행인과 현 매일경제TV 대표이사 회장이다. 장녀인 유주(56)씨를 사업가 윤주탁씨의 2남 영섭(59·고려대 상대교수)씨에게 시집 보내 윤주탁씨와 직접 사돈간인 박태준 전 민자당 최고위원과 연결되고 있다. 영섭씨의 남동생인 영식씨가 박 전 위원의 장녀 진아(48)씨와 결혼했다. 4남 상돈씨는 6·25 직후 김유황 전 광장㈜ 부사장의 딸 용옥(73)씨와 결혼했다. 상돈씨는 맏형인 상준씨의 중매로 장남 병진(52)씨를 축구협회 부회장과 축구대표팀 감독을 지낸 한흥기씨의 딸인 혜승(45)씨와 맺어줬다. 차남 영로(50)씨는 사업을 하던 정형식씨의 딸 은미(46)씨와 혼인했다. 외동딸 희진(45)씨는 전 대한항공 이사 오명석씨의 외아들 광희(49)씨에게 시집갔다. 광희씨는 전 나이스정보통신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5남 상하씨는 삼양사 설탕공장 설립관계로 일본에서 일하고 있던 1953년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귀국, 바로 박상례(75)씨와 혼인을 맺었다. 상례씨는 공무원 출신인 박규원씨의 딸로 김 창업주의 친구가 중매를 섰다. 외동딸인 영난(44)씨를 송하철(45·주식회사 항소 사장)씨와 결혼시켜 송남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며느리로 보냈다. 장남 원씨를 배영화 경희어망 회장 딸인 주연(45)씨와 맺어 줬다. 차남 정씨는 안상영 전 부산시장의 딸인 혜원(39)씨와 결혼했다. 6남 상철(70)씨는 사업을 하던 우근호 씨의 딸 정명(63)씨를 부인으로 맞았다. 7남 상응(작고)씨는 공무원 생활을 했던 권오경씨의 5녀중 셋째딸 명자(53)씨와 결혼했다. 장녀 상경(79)씨는 아폴로박사 조경철씨와 결혼 후 이혼해 조서봉(필립), 조서만(조지) 등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차녀 상민(78)씨의 남편은 이두종(작고)씨로 활발하게 삼양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온양 지주의 아들로 자란 두종씨는 1956년 삼양사 과장으로 입사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까지 올랐다.1984년 회사를 떠난 뒤에도 삼양그룹이 운영하는 재단법인 양영회와 수당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3녀 정애(75)씨는 교육계에 몸담았던 조종립씨의 아들 석(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씨는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결혼 후인 57년 삼양사에 사원으로 입사, 총무부장·경리부장·이사·상무·대표이사 부사장을 거쳐 전 삼양제넥스 상임고문까지 역임했다. 4녀 정유(73)씨의 남편은 전 서울대 부총장인 김영국(작고)씨다. 그는 인천에서 사업을 하던 김덕창씨의 8남매 가운데 3남으로 인천이 낳은 천재로 불리었다. 이들은 김 창업주 친구의 소개로 결혼했다. 영국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총동창회장을 지낸 상하씨의 후배이자 매제인 셈이다. 5녀 영숙(72)씨는 미국인 스테푸친과 결혼, 딸 페기, 아들 프랭크를 두고 미국에서 살고 있다. 막내딸 희경(66)씨도 교육자였던 김종규씨의 아들 성완(68·삼양사 의약사업 고문)씨와 결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성완씨는 미국 유타대학 석좌교수로 인공심장 분야의 권위자다. jrlee@seoul.co.kr ■ 창업주의 친일논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8월29일 친일인사인명사전 편찬을 앞두고 수록예정자 명단 3090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삼양사의 창업주 김연수씨도 포함됐다. 김씨는 전쟁협력 분야에서 ▲1939년 만주국 명예 총영사 ▲1940년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1945년 중추원 참의(자문위원)를 지냈다는 이유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 삼양그룹측은 대응을 일절 자제한 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다만 그룹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제의 압제에 죽음으로 항거하는 등 깜짝 놀랄 만하게 대항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일제의 폭거에 맞서 민족자본을 형성했다.”며 “후세에 역사가들이 올바른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팽배했던 1949년 반민특위 재판에서도 창업주는 무죄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또 창업주는 창씨 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주의 일대기인 ‘한국 근대기업의 선구자’에는 일제시대 그의 행적이 상세히 수록돼 있다.6부로 구성된 전기에는 4부 ‘고난의 시절’ 편에 일제에 협조할 수도, 항거할 수도 없었던 고심의 일단들이 실려 있다. 김씨는 중추원 참의 임명과 관련해 1940년 5월 조간신문에 자신이 칙임참의에 임명됐다는 기사를 보고 내무국장 우에다키에게 항의하러 갔지만 결국 그의 완력에 굴복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설사 내가 지녔던 일제치하의 모든 공직이나 명예직이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고 위협과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일단 그런 직함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국과 민족앞에 송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통렬한 자기반성의 글을 실었다. 김 창업주는 반민특위에 검거돼 7개월간 수감됐지만 이런 반성의 자세가 참작됐는지 재판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경성방직을 경영함에 강력히 일본자본과 싸웠고, 항상 한민족을 위한 경제적 기반확립에 노력했고, 경성방직의 상표를 태극기에서 모방한 것으로 보아 피고의 행위는 많이 참작할 곳이 있으며, 그 외의 관직 및 명예직은 일제의 압력에 못이겨 피동적으로 맡은 것이라고 증명되며, 또 피고는 한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많은 학생에게 원조를 해 그의 혜택을 본 자의 수는 현재 수백명에 달하는 것이니 이 점으로 피고가 남긴 공적은 크다고 할 것이며, 기타 증인의 증언을 통해 볼 때 피고를 단순히 친일 및 반민족행위자라고 규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jrlee@seoul.co.kr ■ 형 김성수와 동생 김연수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인촌(仁村) 김성수와 수당(秀堂) 김연수를 아는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인촌과 수당은 호남갑부 김경중씨의 두 아들이었지만 성격은 딴판이었다. 수당은 어릴 때부터 말수가 적고 침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반면 형 인촌은 활달하고 외향적이었다. 여기에 형제는 다섯살이나 터울이 져 어린 시절엔 서로 어울리는 일이 적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평생을 친한 형제로 지냈다. 인촌은 수당이 근대적 교육을 받도록 인도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일본으로 가게 해 중·고등학교와 교토제대 경제학부를 졸업하도록 도왔다. 수당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찍이 ‘기업인’이 될 것을 결심했다. 오사카의 공장지대에서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결단의 계기였다. 이처럼 수당의 행적은 형 인촌의 행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수당이 기업가로서 길을 걷는 데는 인촌이 설립하고 인수한 기업의 경영을 맡음으로써 시작됐다. 수당이 경영인으로 첫 발을 내디딘 것도 1922년 형이 운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경영인을 맡고부터다. 이후 수당은 경영인으로서 성공하자 인촌을 적극 도왔다. 생전에 인촌은 수당이 없었으면 교육사업을 비롯한 자신의 활동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곧잘 술회했다. 수당은 언제나 인촌에게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마음껏 뜻을 펼치라고 말했다. 인촌이 설립한 고려중앙학원이나 고려대,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등 모두 동생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수당은 1940년대까지 고려중앙학원과 고려대에 기부한 재산이 연 평균 250만원에 이르렀는데, 이를 현 시가로 어림잡아 환산하면 1000억원(쌀값 기준)을 훨씬 넘는 액수다. 그러면서도 동생은 형이 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돕기만 했다. 그는 “모든 것을 형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나는 재정적인 지원만 하면 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형을 만날 때마다 “형님은 교육과 문화사업을 하세요. 저는 뒤에서 돈을 대리다.”라며 든든한 후원자를 자임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개발 허용’ 산 60% 붕괴위험

    ‘개발 허용’ 산 60% 붕괴위험

    개발이 허용된 전국 산지의 60%가 30도 이상으로 경사면이 급격히 깎여 산사태 등 붕괴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시민단체 조사결과 드러났다. 특히 합법적인 개발일지라도 산지전용에 따른 피해가 토양침식과 생태계 파괴에까지 미치고 있으며 복구사업이 의무화돼 있지만 22%는 개발을 마치고도 복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산림청은 이에 따라 산지의 불법전용 등을 신고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주는 이른바 ‘산(山)파라치’ 제도를 도입할 방침이지만 허가 및 관리감독을 책임진 일선 시·군·구는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사실상 산지훼손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직 공무원과 학계, 환경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한국산지보전협회가 최근 공개한 ‘산지훼손실태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산지전용이 허가된 전국 시·군·구 124곳의 598개 지역 산지 가운데 60%가 개발과정에서 산 경사면을 30도 이상으로 깎았다. 특히 강원과 경기는 전체 전용산지의 각각 90%와 80%가 집중호우때 산사태 등의 붕괴 위험이 예상되며 영남과 호남 지역의 전용산지는 경사면을 30도 이상으로 절단한 비중이 50%나 됐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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