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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촌은 정말 폐암환자인가/검찰 허위진단 여부 수사 배경

    ◎「시한부인생」 판정 불구 “왕성한 활동”/룸살롱 잦은 출입… 주치의와도 마셔/의사는 “잘라낸 폐ㆍ치료기록 모두 보관” 반박 21일 구속수감된 「서방파」 두목 김태촌씨(42)는 지난 15년 동안 국내주먹세계의 최강자로 군림해 왔다. 김씨는 지난해 1월 폐암으로 진단받아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청송교도소에서 출감한뒤에도 신앙생활과 각종 사회활동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며 범죄행각을 일삼아 오다 그동안의 행적을 추적해온 검찰에 마침내 꼬리를 붙잡혔다. 김씨는 86년7월 인천 뉴송도호텔 황익수사장을 습격했다가 징역5년에 보호감호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폐암증세를 보여 지난해 1월 형집행정지처분으로 2년3개월만에 출감했으나 출감한뒤 1년4개월만에 다시 쇠고랑을 찼다. 검찰은 김씨가 석방된지 두달뒤인 지난해 3월 폭력조직 「번개파」두목 박종석씨등 20여명와 함께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단체를 가장한 「신우회」라는 조직을 만들고 6월에는 경기도 파주군 오산리 기도원에서 금식기도와 간증활동을 하는것처럼 행동하며 폭력배 5백여명을 모아 기도회를 여는 등 세력을 넓혀왔다고 밝혔다. 검찰은 김씨가 폐암 수술을 받고 시한부 생명을 살고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수사를 펴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지난해 교도소에서 출감하지 직전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절제 수술을 받기는 했으나 건강한 사람과 같이 룸살롱을 자주 드나들며 술을 즐겨 마셔왔고 병원관계자들을 제주도로 초청,술자리를 마련하는등 향응을 베푼 점 등으로 미루어 허위진단이었을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대해 김씨의 수술을 담당했던 세브란스병원 부설 연세암센터 김병수원장은 『김씨는 지난해 1월 수술당시 암세포가 폐정맥과 심낭까지 침투돼 극히 악화된 상태였으며 현재는 치료를 잘받아 30%의 완치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절제한 김씨의 폐와 치료기록들을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폭력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74년으로 「번개파」두목 박종석씨의 소개에 따라 광주변두리 지역을 근거지로 하고 있던 「서방파」에 들어가면서 였다. 그는 다음해 광주의 「OB파」와 「번개파」등을 동원해 서울로 원정,「신상사파」를 꺽어면서 일약 주먹계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그 이듬해인 76년 3월에는 광주시내 중심가에서 「OB파」두목 오종철씨를 불구로 만드는 편싸움 끝에 광주의 폭력계를 완전 장악하게 됐다. 김씨는 정치폭력에도 가담,같은해 신민당 전당대회장에서 조직원 1백50여명과 함께 각목등을 휘두르고 수배됐다가 자수,징역6월을 복역했다. 김씨는 또 77년 4월에는 조양은씨가 두목인 「양은파」와 대결 조씨의 부하들을 폭행,난자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2년 형을 받고 복역했으며 80년에는 사회악일제소탕에 걸려 보통군법회의 검찰부에 의해 5년6개월을 복역하는등 지금까지 모두 14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 민원처리 만족도 갈수록 떨어져/총무처,「연도별 국민평가」 발표

    ◎민원실 호감도 3년사이 33% 하락/친절ㆍ신속성에서도 매년 내리막길 정부의 각종 민원처리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무처의 정부합동민원실이 19일 밝힌 「민원처리에 대한 연도별 국민평가에 따르면 친절도는 86년 64%,87년 56%,89년 54%로 해마다 떨어졌고 처리의 신속성에 있어서도 86년 66%,87년 61%,89년 56%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 또 합동민원실의 민원환경에 대한 국민의 호감도도 86년 86%,87년 81%에서 89년에는 53%로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총무처는 이같은 현상이 ▲민원창구 공무원의 전문능력 부족 ▲고질민원ㆍ집단민원의 증가 ▲민원처리의 기동성 부족 ▲정부합동민원실의 출입불편 등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하고 민원처리 업무를 적극 쇄신키로 했다. 총무처는 우선적으로 정부합동민원실의 이미지 제고와 민원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정부종합청사 1층 합동민원실을 오는 7월까지 구 경기도청자리로 이전하기로 했다.
  • “폭력조직 대부”김태촌검거/서울서

    ◎형집행정지후 “참회”위장,범죄행각 계속/세 호텔 빠찡꼬경영권 탈취/수감조직원 풀려나게 재판서 위증도/“재산 20억”호화생활… 잡힐때도 2억소지 서울지검 강력부는 19일 국내최대의 폭력조직인 「서방파」두목 김태촌씨(42ㆍ전과12범)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갈ㆍ협박)위증 범인은닉등 혐의로 붙잡아 철야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김씨의 혐의를 밝혀내는 대로 21일중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하는 한편 김씨의 범죄행위에 관련된 「서방파」조직원 전원에 대해 일제검거에 나섰다. 김씨는 이날 상오10시50분쯤 은신처인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미주아파트 이웃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나오려다 권총으로 무장한 담당검사의 진두지휘 아래 출동한 수사관 2명및 경찰관 4명 등에게 붙잡혔다. 김씨는 지난 86년말 인천뉴송도호텔 사장피습사건의 주동자로 구속돼 징역 5년 보호감호10년을 선고받고 청송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지난해 1월 폐암증세를 보여 형집행정지처분을 받아 석방됐었다. 검찰은 그러나 김씨가 석방된 뒤에도 폭력조직을관장하며 다른 조직원을 끌어들여 세력을 확장,비밀리에 범죄행각을 계속하고 있다는 혐의를 잡고 지난해 말부터 김씨를 추적해 왔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제주도 서귀포KAL호텔과 제주KAL호텔 빠찡꼬 경영주 변모씨등을 협박,경영권지분의 60%(3억원상당)를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또 지난해 2월 광주 신양파크호텔 빠찡꼬 경영주를 협박,시가 8억여원에 이르는 경영권을 3억원에 인수하기도 했다. 검찰은 김씨가 전국을 활동무대로 하고 있는 최대폭력조직인 「서방파」의 두목으로 20억원 정도의 재산과 전국각지역 오락실의 주식 10%를 가지고 있어 한달수입만해도 1억2천만∼1억3천여만원에 이르며 고급승용차 4대를 가지고 있는등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검거될때 현금 40여만원과 1억원짜리 당좌수표 2장,1백만원짜리 자기앞수표 18장등 모두 2억2천여만원을 지니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 3월부터 50평짜리 아파트에 보증금 9천만원을 주고 세들어 부하 10여명, 운전사 등과 함께 생활해오다 최근 들어 출퇴근하는 파출부를 제외하고는 운전사와 단둘이만 살아 온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10차례 복역 ▷김태촌은◁ 김씨는 지난 75년 호남파의 행동대원 1백50명을 이끌고 서울 명동에 등장, 당시 주먹계를 지배하던 신상사파를 꺾으면서 주먹계의 명성을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씨는 다음해인 76년 3월 광주를 주름잡던 「OB파」를 상대로 번화가인 충장로에서 편싸움을 벌이면서 주먹계에서 처음으로 흉기를 휘둘러 「OB파」두목 오모씨를 불구로 만들기도 했었다. 그뒤 청부폭력ㆍ그림강매등을 일삼다 86년 7월 인천송도호텔 황익수사장에게 칼질을 한 혐의로 같은해 9월 검거돼 복역하는등 그동안 모두 10차례에 걸쳐 14년동안 수감됐었다.
  • 「민자호」는 어디로 가야하나/한승조 고려대교수ㆍ정치학(세평)

    지난 4월3일,두 지역의 보선에서 거대여당인 민자당이 1승1패를 거두었지만 여론은 여권의 참패라고 평가하였다. 사람들은 이 보선이 최근 3당 통합으로 출범한 민자당에 대한 국민의 신임투표로 보았다. 그런데 현정권의 최고 지지기반인 대구에서 여당 후보가 크게 고전하였고 여권의 전력투구에도 불구하고 50%를 밑도는 득표율로써 신승한 것은 사실상의 패배라는 것이다. 또 진천ㆍ음성에서는 도지사까지 지낸 민자당후보가 약체인 민주당의 무명 후보에게 큰 표차로 졌다. 이것도 민의가 민자당으로부터 떠났다는 증거가 아니냐는 것이다. ○양대보선서 거여 참패 설상가상으로 민자당 내부에서는 그 책임을 둘러싸고 분규가 일어났다. 김영삼 최고위원은 기자들에게 행정부의 독주,당의 비민주적 운영,이에 따른 보선 참패에 대한 후속 조치의 미흡 등을 들어 청와대 대책회의에 불참을 선언하고 실천했다. 그리고 『우리 당 일각에서는 몸집이 커졌다고 아무것이나 다하려고 드는 수구적이고 교만한 자들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이 작은 글에서 필자는 첫째 4ㆍ3보선의 참패요인,둘째 민자당 내분이 왜 생겼으며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나,셋째 정치발전과 안정을 위한 여야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소견을 피력하겠다. 이번 보선의 주요 쟁점은 3당 통합에 대한 여야간의 공방이었다. 문제는 3당 통합에 대한 반대 논거가 찬성 논거를 제압하였고 다수 선거민에게 상당한 영향을 행사했음이 드러났다. 3당 통합과 개각후의 정부ㆍ여당의 정책 변화도 행정부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는 요인이었다. 또 그동안 진행되어온 인플레,경제침체,민생치안의 부재 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실망이 야당 지지표로 나타난 것이다. 그외에도 정호용후보에 대한 무리한 사퇴압력이나 야당의원 폭행 등이 거대여당의 힘으로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견제심리를 부추겼던 것 같다. 이러한 이유가 보선 참패의 원인이된 것이나 가장 큰 요인은 정부ㆍ여당의 대국민대화와 설득 부족에 기인했다고 본다. 정부ㆍ여당의 문제점은 3당 통합 때도 찬성론의 논리가 반대 주장보다도 훨씬 강할 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리가 야권의 비판에 억눌려서 무색해져 버렸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또 정부ㆍ여당의 경제정책 변화에도 충분한 현실적인 근거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개혁의지 후퇴라는 달갑지 않은 인상만 확신시켰다. 국민의 대부분은 왜 실명제가 보류되어야 하는지,또 왜 충분한 토론도 거치지 않고 경제가 분배로부터 다시 성장위주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3당의 보수야합이 민중의 희생위에 재벌 이익만 두둔한다는 야권의 악선전만이 국민의 귓전을 때릴 뿐이었다. ○대국민 대화ㆍ설득 부족 정호용씨의 후보사퇴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평소 정의원에게 개인적인 호감을 갖지 않은 사람들도 왜 정의원이 개인적 의사에 반하여 사퇴를 강요당했는지 알지 못한다. 오로지 정의원의 부인이 사퇴압력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다는 것과 그 후에도 압력받은 정의원이 끝내 굴복하며 사퇴하고 외국으로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이와같이 정부ㆍ여당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해왔다면 정부의 정책결정과 홍보 방법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보지 않을 수 없다. 민자당 내부의 파벌 싸움은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여당체질과 야당체질이 맞을리 없고 특히 당권 경쟁과 결부될 때 심각해진다는 것도 명백했다. 또 3당 통합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유익하고 야당계는 우스운 꼴이 될 것으로 관측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민자당 내부에서 민주계 공화계가 즉시 무력화되고 거세된다는 것은 민정계 의원들에게도 유익한 일이 되지 못한다. 3당의 합당이 신사고에 의한 것이건 또는 당권 장악을 위한 것이건 각 파벌은 3분의1에 가까운 지분과 권력분할을 차지하기를 바랐을는 지 모른다. 그렇지 않고 의석비율만 따진다면 민주ㆍ공화의원들은 합당을 후회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당내분규가 수습되려면 적어도 초기에는 가진 자,힘센측에서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수의 전야당계 의원들이 민자당에 등을 돌리고 당을 깨어버리는 것까지도 불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3당이 통합하여 거대 여당이 되었으면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자리싸움,당권싸움만 계속한다면 국민들의 조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는 3분의2 그 다수로 부터 2분의1 정도로 축소되는 수모를 겪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 국민이 본래 거대 여당을 경계하고 약소 야당에게 매우 동정적인 성향을 가짐은 과거의 선거사례에서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덩치가 커진 여당은 야당들보다도 훨씬 더 어른스럽고 고상하며 또 유능함을 보여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때 거대 여당은 다시 왜소 여당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 조짐은 이미 지난 보선에서 나타났다. 3당 통합이 현정부의 업무수행능력,문제해결능력을 증진시키고 나라의 정치안정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 사람들은 결코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이러한 희망이 근거희박함을 보여준 셈이다. 4ㆍ3보선의 패배와 당내 분규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노대통령과 김영삼ㆍ김종필 최고위원의 청와대 회동에 기대를 걸어 본다. ○더 품격 높은 태도 필요 또 말하고 싶은 것은 민주화시대에 있어서 정치의 핵심은 홍보와 설득이라는 사실이다. 크고 막강한 여당일수록 대국민설득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반대로 힘이 있으니까 설득ㆍ홍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내 생각과 행동에 잘못이 없으면 그만이다,비판ㆍ비난에 대꾸조차 할 필요가 없다,이렇게 생각하는 정부ㆍ여당은 필히 망할 것이라고 예견할 수가 있다. 여당에 비하면 야당과 재야는 대국민홍보ㆍ선전에 매우 능란하다. 그러나 비판ㆍ비난의 능력만 가지고 집권능력을 증명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가안보ㆍ평화통일ㆍ경제성장ㆍ국위선양에도 유의하면서 책임있는 반대와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정부ㆍ여당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에 대처하는 데 앞장 설 수 있어야만 밝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본사 논평위원〉
  • 북한,원전 국제사찰 수용검토/올 상반기중 조사단 입국전망/일지보도

    【도쿄연합】 북한은 평북 영변에 건설중인 원자력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일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이 1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럽각국의 관계 소식통 말을 인용,북한은 금년중 조사단을 입국시켜 필요한 검사를 받은후 국제 상호감시체제속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는 북한이 금년들어 IAEA관계자등과 비공식 접촉,사찰자체나 사찰과 관련된 사전조사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사찰시기는 빠르면 금년 상반기,늦어도 올가을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목적의식이 앞선 도식적 드라마/“첫공개”북한영화「참된심정」을 보고

    북한의 극영화가 분단45년만에 처음으로 일반 공개되었다. 고조되는 통일에의 염원과 함께 북한의 실정을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알고싶어하는 우리의 목마름을 축여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의미에서 자못 기대가 컸었다. 말할것도없이 영화는 시대와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시각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영화는 그동안 폐쇄적 장막에 가려있던 북한의 모습을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수준낮아 그러나 첫번째로 공개된 작품 「참된심정」은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기에는 훨씬 미진했다는 느낌이다. 우선 작품으로서의 수준이 예상한 것보다 낮다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목적의식이 선행한 도식적 드라마투르기에서 우리가 진정 알고싶어했던 북한의 꾸밈없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북한의 「왕재산 창작단」에서 제작했다는 「참된 심정」은 남한의 50년대 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몽영화이다. ○계몽영화틀 못벗어 한 시골의 협동조합농장의 처녀 분조장 순심이 냉습지 농토개량운동에 과감히 뛰어들면서 제방을 쌓기위한 암석을 이웃채석장 마을에서 얻어오기까지의 고난극복의 과정이 중점적으로 묘사되고있다. 자막에 보면 「임당」이라는 단편소설의 영화화라는 전제가 있는데 가냘픈 처녀 순심의 투철한 정신무장과 일신을 돌보지않는 헌신을 거쳐 영예로운 노동당의 당원증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곁들여놓았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에는 두가지의 뚜렷한 목적의식이 설정되어있다. 그 하나는 노동당의 당원증을 획득하기위해서는 얼마만큼 피나는 노력을 쏟아야하느냐며 또 하나는 주민들을 기꺼이 노동현장에 몰아넣는 교조주의가 이야기의 저변에 깔려있다. 순심의 헌신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인 인물로 트랙터의 운전사 철수의 다소 이기적행동을 병행묘사하고는 있으나 이 두사람의 대비가 드라마의 갈등을 낳지않는것도 이야기가 따분해진 이유의 하나이다. 이야기 진행과정에서 순심이 철수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끼는듯한 분위기를 가볍게 심어놓았으나 드라마 발전에는 끝내 애정따위에는 관심이없어 김이빠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갈등ㆍ반전 등 드라마의 필수적요소들이 배제된채 안일한 예정조화적 도식으로 일관하여 작품으로서 ○기법도 초기단계에 의 생명을 불어 넣지 못했다. 기법면에서도 영화의 초보적단계에서 머물고있는듯이 보인다. 거의 카메라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대상을 시간서열적으로 포착하는 평면적이며 설명적인 작극술은 영상적 표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군데군데 주제가인듯한 감상적 노래를 평면적으로 삽입하고있는데 영상표현과 맞물리지 않은채 노래만으로 겉돌고 있을뿐이다. 이런종류의 영화가 북한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상거리로 영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감상의 안목이 아주 저수준에 머물고있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은근히 기대했던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경향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현실을 변형하고 인간을 작위적인 틀에 가두는 반리얼리즘이 눈에 거슬리게 부각되고 있었다. 다만 이 영화가 형성하는 유일한 공감대는 남이나 북이나 막론하고 우리농촌에서 점철되는 소박하고 따사로운 인정풍경이었다. 순심은 우리농촌에서 흔히 보는 평범하고 순박한 쳐녀의 모습그대로이다. 그녀는 그 순진함,순박함으로 말미암아 체제에 순종하고 주어진 환경을 열심히 살고있을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넘은 민족의 동질성을 보는듯싶었다. 그러나 이영화 한편으로 북한영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는것은 말할나위없다. 현재 북한에서는 꽤 수준높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들린다. 이번을 시작으로 매달 한번씩 북한의 극영화가 일반공개된다고한다. ○소박한 농촌엔 공감 이를 계기로 남북의 영화가 공식적으로 활발히 교류되기를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작품의 우열을 떠나,체제의 벽을 넘어 같은 민족이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영화를 통해 민족이 동질성을 회복함으로써 통일의 염원을 더욱 앞당길 수 있기때문이다.
  • “민주체제 승리로 한반도 통일된다”/동북아문제 한ㆍ미 의원 간담회

    ◎“김정일 권력 승계해도 대북한정책 불변 남북한 군축문제 미측과 사전협의 긴요” 공산권 문제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박사는 『유럽문제가 해결되면 한반도통일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한반도의 분단은 공산체제에 대한 민주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카터 미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 박사는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센터에서 열린 동북아문제협의회 한미의원 간담회(한국측 대표 이종찬 의원)에 초청 연사로 참석,이같은 견해를 밝혔다고 한국측 대표단의 일원인 이동복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전했다. 이날 한국의원단의 예방을 받은 브랜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은 『북한의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하더라도 평양의 정책에 변화가 예상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김정일은 김일성 만큼 성공적인 통치를 할 수 없을 것이며 북한사회에도 조만간 유럽정세에 영향을 받은 변화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솔로몬 국무부 동아태 담당차관보는 『미국은 한반도문제에 관한 다자회담에 관심이 없다』며 남북대화를 통한 당사자간 직접해결방식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최근 북한측이 제의한 뉴욕에서의 미ㆍ북한간 접촉을 미국은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선전목적으로라도 남북한 병력 상호감축문제를 제의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감축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은 남북한 감군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미국과 사전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다음은 전ㆍ현직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밝힌 세계문제 및 한반도문제에 관한 견해의 요약이다. ◇브랜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세계가 전환 국면에 있다. 2차대전 후 45년간 서방측이 주도했던 공산권 봉쇄정책의 성공 결과로 오늘날의 동구변화가 생긴 것이다. 유럽의 변화는 아직도 아시아에 전파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선 등소평이 중국판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나 정치적 문제를 성공적으로 다루지 못해 심각한 내부 진통을 겪고 있다. 북한에는 유럽변화의 파장이 아직 전달되지 않고 있으나 결국은 영향을 받게될 것이다. 다만 그 시기와 양상이 명확히 전망되지 않아 답답하다. 지난번에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결정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잘못이었다. 북한의 김일성이 오는 4월15일 생일을 기해 권력을 김정일에 이양하더라도 미국의 대북정책엔 변화가 없을 것이다.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예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한정책은 북한의 내부변화에 대응해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미국이 갖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김정일이 권력을 이양받더라도 김일성 만큼 성공적인 통치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북한은 유럽 정세에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곳에도 조만간 변화가 올 것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지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본질적인 변화가 이행되고 있는 과도기다. 파리 코뮌이 형성되고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썼던 1848년 보다도 국가와 개인간의 상호관계가 새롭게 정의됐던 1790년대 프랑스 혁명에 견주고 싶은시기이다. 지금의 변화와 관련하여 유럽에선 다음 3가지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첫째,공산주의 붕괴 이후 유럽에선 새로운 유럽체제 뿐만 아니라 독일통일 이후도 수용해야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공산사회가 과연 다원화를 성공적으로 수용할 수 있느냐다. 이런 문제는 현재 폴란드에서 실험되고 있고 그 성패는 금년말쯤 드러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성공할 것으로 본다. 서방측에서 실패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소련의 장래는 정말 미지수다. 지금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과도기적 현상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축적된 위기가 종장을 향해 가고있는 것이다. 소련의 상황은 앞으로 점점 더 나빠지고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하다. 소련의 개혁은 아래로 부터의 개혁이 아니라 위로 부터의 관치개혁이기 때문에 인민의 지지가 없을뿐 아니라 인종분규에 속수무책이다. 아시아문제는 그들이 유럽과 비슷하다. 2차대전 후 인위적으로 분단된 한ㆍ월ㆍ독 3국 가운데 월남과독일의 경우 어느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이겨서 분단문제를 해결했다. 공산주의는 반드시 망하게 돼있다. 한반도도 이런 방식으로 분단상황을 극복해 통일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본다. 김일성 사후에 통일문제를 다른체제의 승리 방식으로 수렴하느냐,아니면 타협형으로 수렴하느냐,또는 제3형태가 될 것이냐는 아직 모르겠지만 북한의 체제는 생존능력이 없어 결과는 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문제가 해결되면 한반도에 국제적 시선이 쏠리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이 가속화 될 것으로 본다. 중국의 천안문사태는 개혁주도세력이 성숙되지 않았고 기층인민의 지지가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일찍 일어나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지식인이 변화를 선도해 결국 중국에 변화가 올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지지할 수 없었다. 한소관계는 긍정적으로 본다. 소련은 극동의 현실을 인정하는 쪽으로 정책변화를 시작했다. 소련은 한일양국과의 관계를 개선,이 두나라로부터 경제협력을 받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두 지주(중소) 가운데 하나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일성이 사망하면 그것은 북한의 변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 “소,한반도에 정경분리정책 적용”/평통자문회의 통일정책 토론 내용

    ◎「경제­남ㆍ정치­북」 통일때까지 고수 예상/북한 의식,수교 주저… 대북군원 계속할 듯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통일전망」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소간의 수교 움직임과 통독의 기운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사안들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을 진단하기 위해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양호민씨(정치평론가)ㆍ이태영교수(전 호남대학장)ㆍ최문현통일원통일정책실장 등이 각각 주제발표를 했다. 특히 양씨는 『소련은 현재 한국의 존재를 인정해 접근하고 있지만 동맹국인 북한의 「두개의 조선 반대정책」에 부딪쳐 한국과의 수교를 계속 주저하고 있다』면서 『소련은 동구 동맹국들이 대한수교를 끝낸 뒤 한국과의 수교가 세계정치에서 당연한 현실이 된 뒤에야 대한수교를 실현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혀 「연내 한소수교」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양씨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소련의 한반도 정책과 통일문제=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은 전반적인대외정책,특히 대미관계 개선의 맥락에서 수립되고 있다. 그리고 그 동기는 소련의 대내정책,즉 경제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고르바초프는 과거와는 달리 소련의 외교정책문제를 신설된 연방인민대의원 대회와 언론매체의 토의에 부치고 있다. 이른바 「외교정책에서의 글라스노스트(공개)」가 그것이다. 그는 외교정책에서 「신사고」를 내세우면서 스탈린이래의 대외정책을 비판하고 종래의 원칙에서 탈피하려 하고 있다. 그의 신사고 기본개념은 ▲자본주의 국가의 안보도 인정돼야 하며 따라서 안보는 상호주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 ▲세계를 사회주의 진영과 제국주의 진영이란 식의 계급적으로 갈라서는 안된다 ▲인류 공통의 가치가 계급투쟁의 원리에 우선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제도간의 투쟁은 이제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모순이 아니다 ▲현재의 국제관계를 이끌고 나갈 보편적 원칙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평화공존의 원칙」이다 ▲모든 국민은 자유롭게 사회제도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등 대략 6가지 내용으로 설명된다. 즉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는 서구적 민주주의 사상과의 화해를 의식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그는 미국 또는 서구와의 이데올로기적 대결이 아니라 탈 이데올로기적이요 냉철한 현실주의 관점에서 소련의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내정에서는 언론의 자유,1당독재 포기,복수정당 허용 등 광범위한 민주화를 추진해 왔고 최근 생산수단의 사유제까지 도입하여 서방측의 신뢰를 획득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정책도 한반도에는 두개의 국가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현실을 토대로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소련은 한국의 존재를 인정,접근하고 있지만 동맹국인 북한의 두개 조선 반대정책에 부딪쳐 대한수교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바르샤바조약기구 국가들,즉 헝가리 폴란드 등이 대한수교를 맺고 체코 불가리아 등이 수교 준비를 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일체 반대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그는 동구 동맹국들이 한국과의 수교를 끝내고 나서 대한수교가 세계정치에서 당연한 현실이 된 후에 한국과의 국교를 수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도 북한을 희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과는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과는 국교없이 경제교류를 확대하고 있으며 한국측이 국교수립을 원하는 데 대해서는 김일성정권의 체면을 봐서 좀처럼 응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소련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국을 시베리아 개발동반자로 끌어들이고 물자교역을 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광대한 시베리아의 개발은 소련경제발전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을 경제기지로 하여 상호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그 기술과 자본을 유인하려고 시도한 일이 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소련은 사실상 한국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한국으로서는 미국ㆍ서구 등의 보호무역주의,최근 노사분규ㆍ공해소동ㆍ임금인상 등으로 말미암아 국제경쟁력을 잃고 있는데 산업계는 이같은 위기감에서의 탈출구를 시베리아쪽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다만 국교의 부재,과실송금 방법,외화청산 등으로 인해 대담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있다. 소련의 당면한 대한반도정책은 주한미군을 고려,북한측에 군사원조를 계속하되 남북간의 무력충돌은 결코 바라지 않고 있으며 한국과는 경제협력을 적극화하는 동시에 문화교류를 통해 친소무드를 높이는 데 있다. 그러나 정치문제는 최후단계로 미루려 하고 있다. 그런데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의 국제적 성원을 북한보다는 오히려 한국에서 얻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반 페레스트로이카,반 글라스노스트,반 민주화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김일성정권에 호감을 가질 수는 없다. 최근 소련의 출판물등에서 김일성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타나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고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에 기울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해방이후 북한ㆍ소련의 원천적 관계나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련이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정치에서는 북한쪽에다 비중을 두고 경제에서는 한국쪽에다 압도적 비중을 두면서 남북통일이 되는 날까지 두개의 한국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통일에 관해서는 남북한간의 대화에 맡기고 있는형편이며 어떠한 이니셔티브도 취하지 않고 있고 취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한종태기자〉
  • 외언내언

    서방지도자 가운데 제일 먼저 고르바초프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한 것은 영국의 대처수상이었다. 소 공산당서기장에 취임하기전 영국을 방문한 그를 보고 대처는 『함께 일을 해나갈 만한 인물로 보인다』고 평가했었다. 공산당지도자 같지 않은 세련된 옷매무새와 언행에 웃는 얼굴의 미남형인 그에게서 느낀 여성다운 호감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보다도 반공투사답게 그때 벌써 그에게서 탈공산주의의 냄새를 맡았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1일로 그 고르바초프가 소 공산당서기장에 취임한지 꼭 5년이다. 그리고 대처가 예감했던 대로 그는 그동안 세계가 아는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엄청난 개혁사업을 벌여 왔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노보에미슐레니(신사고),데모크라티자티아(민주화) 등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그의 사업은 레닌이후 70년의 공산주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가고 있다. ◆공산당권력독점 포기가 이루어지고 대통령중심제 개혁으로 빠르면 12일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탄생할 모양이다. 경제면에서도 자본주의 방식이 도입됐으며 동유럽은 해방되고 미소협력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 벌이는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수습하고 정착시키는데는 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경제는 악화하고 소연방은 붕괴되려 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르바초프 소련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안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지난 5년동안 우리를 위기와 무정부상태,그리고 경제적 파탄으로 몰아 넣었을 뿐』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그나마 안정은 있었던 옛날에의 향수마저 일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보도하고 있다. ◆『그는 청사진 없는 즉흥건축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비판도 있다. 그가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일을 너무 엄청나게 벌여놔 누구도 그를 대신해 사태를 수습할 자신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평도 있다. 『잘못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나 그게 두려워 아무 일도 않는것은 최대의 과오』라고 그는 반박하고 있다. 그가 진정 새로운 「소련혁명의 아버지」로 성공할지 세계의 염려스런 시선이 쏠리고 있다.
  • 감호자 1백여명 무더기 재심 신청

    【청송=김동진기자】 경북 청송교도소와 청송1ㆍ2호소에 감호중인 1백명의 감호자가 2일 무더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청송교도소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가 「필요적 보호감호」(구사회보호법5조1항) 처분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같은 결정이 있은뒤 청송교도소와 청송1ㆍ2감호소에 감호중인 3천8백명 가운데 1백명이 『이 법에 따라 자신들이 감호처분을 받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날 재심청구를 법원에 냈다는 것이다.
  • 헌법재판소/「기본권의 보루」로 거듭났다

    ◎본격가동 1년… 그 위상과 결실/소송촉진특례법등 7건에 “위헌” 결정/행정부 견제 역할… 국회 입법에도 영향력 제6공화국들어 새로 출범한 헌법재판소(소장 조규광)가 당초 기대이상으로 제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헌법의 수호와 국민기본권의 보장을 사명으로 88년9월18일 문을 연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월 첫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 1년동안 모두 7건의 위헌결정을 내리고 6건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였다. 48년 정부수립 이후 위헌결정이 단 3건뿐이었고 그나마 제4공화국 이후에는 단 1건도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라 할수 있다. 새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월25일 소송촉진등에 관한 특례법 제6조1항 단서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림으로써 국가에 대해서도 재산권의 가집행을 요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위헌 결정은 지난 71년 6월 국가배상심의위원회 사건에 대한 위헌판결 이후 19년만의 일이었으며 최고헌법 수호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드높인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어 ▲사회보호법 제5조의 필요적 보호감호에 관한 2건 ▲금융기관의 연체대출금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5조2항등 2건 ▲국회의원 선거법 제33조와 34조의 국회의원 후보의 기탁금 국고귀속 규정 ▲변호사법 제10조2항의 변호사의 개업장소 제한규정등을 위헌이라고 재판했다. 헌법재판소가 이처럼 문제가 제기된 법률에 대해 잇따라 위헌결정을 내리자 재야법조계를 중심으로 이해당사자들은 두손을 들어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관계법률에 따라 행정집행에 편의를 제공받았던 정부로서는 그때마다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급기야는 관계부처 장ㆍ차관들이 재판에 직접 나가 변론을 돕는등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헌법재판소가 제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입법부나 사법부에 못지 않게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강화하게 된 것이다. 현행법률에 대한 잇따른 위헌 결정은 행정부 뿐만 아니라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도 영향을 미쳐 법안심의 과정을 보다 신중히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의 헌정사상 헌법재판제도는 제1공화국 때인 48년7월 헌법위원회로 출발,제2공화국 때인 60년6월에는 헌법재판소,제3공화국 때인 62년12월에는 대법원사법심사제도,제4공화국 때인 72년12월과 제5공화국이 들어선 80년10월에는 헌법위원회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이 기간동안 위헌결정이 겨우 3건뿐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활동이 미미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제6공화국에 접어들면서 사회 각 분야가 민주화의 물결에 따라 크게 혁신되면서 헌법재판의 비중과 역할 또한 엄청나게 신장됐다. 새 헌법재판소가 활동을 벌인 이후 모두 1백55건의 위헌법률 심판이 청구됐고 3백93건의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1백55건의 위헌심판 청구사건은 그 특성상 대부분 기각된 것은 사실이나 위헌결정이 내려진 7건 말고도 아직 47건에 대해서는 심리가 계속되고 있다.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스스로 헌법의 이념과 규정에 따라 구제를 신청하는 제도인 헌법소원 또한 상당수가 기각됐으나 받아들여진 6건 말고도 1백건은 아직 심리중이다.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헌법소원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기소편의주의에 따른 검찰의 공소권 행사에관한 것으로 모두 1백37건이나 돼 검찰의 피의자에 대한 무혐의 처분이나 기소유예ㆍ불기소 처분에 대한 피해자측의 불만도를 알게 해주고 있다. 헌법소원은 이밖에도 사형제도ㆍ사회보호법ㆍ도시계획법등 법령에 관한 것(64건)과 공권력에 의한 재산권 침해에 관한것(34건)등이 있었다. 이들 헌법소원의 각하 이유는 소원청구 대리인을 선임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재판소법 규정을 무시하거나 소원청구 기간이 이미 지난 뒤에 청구하는 등 소원청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어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현재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위헌법률심판 사건 가운데 중요한 것은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개정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노동쟁의조정법 등으로 꼽히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헌법재판소는 구랍 29일 일종의 「공청회」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서 제7조(찬양ㆍ고무ㆍ동조)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위헌론쪽 주장과 『자유권 행사가 국가안보를 침해하는 경우에 한해 제한되는 것일뿐 자유권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합헌론쪽 주장이 팽팽히 맞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앞으로 국가보안법ㆍ사립학교법ㆍ노동쟁의 조정법등 시국과 관련된 법률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시국의 흐름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국가기관으로서의 헌법재판소의 위치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수사재개 명령을 내린데 대해 검찰이 또다시 「무혐의」 처분결정을 내려 헌법재판소와 검찰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 이들 주장의 논거가 되고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조규광 헌법재판소장이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헌법재판소장 회의에 참석한데 이어 오는 5월 터키에서 열리는 유럽지역 헌재소장 회의에도 옵서버로 참석하게 되는 등 그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곧 종로구 재동에 새청사를 기공하는 일등은 헌법재판소의 밝은 내일을 기약하는 일이어서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
  • “북한체제 「변화의 움직임」태동”/카네기재단,「북한과의 대화」분석

    ◎“남한서 공산혁명 불가능… 남북한 공존 추구”/북한학자 4명,통일방안에 유화적 제스처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정치적 격변을 겪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 변화의 움직임은 평양에서 태동하고 있다고 미국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8일 전망했다. 카네기 재단은 작년 5월말 워싱턴에서 북한학자 4명과 미국정부ㆍ학계 등의 한반도문제 관계자 20여명이 비공개로 진행했던 「한반도 긴장완화 심포지엄」의 토론내용을 「북한과의 대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발간,공개하면서 이같이 요약했다. 이 보고서는 동구와 중국의 최근 사태는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심포지엄에서 평양국제문제연구소의 김종수 부소장을 단장으로한 북한측 참가자들은 『이제 남한에서 공산혁명은 불가능하며 평양은 자본주의 남한과 공존할 준비가 돼있음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평양을 두차례 방문한 바 있는 카네기재단 수석연구원 샐랙 해리슨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북한의 공공연한 군축 양보태세,즉 주한미군철수를 조건으로한 국방비 삭감용의,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제관계를 맺기 위한 자유화 조건,남한의 정치ㆍ경제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연방제 통일방안 등에는 『워싱턴과 서울을 향한 놀랄만한 유화적 자세가 나타나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미ㆍ북한 전문가간의 이 토론이 군비제한 조치와 남북한 화해에 관한 가능한 타협의 윤곽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주한미군철수 조건의 타협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새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미측 참가자들은 1988년 북한이 제의한 3개년에 걸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이와 병행한 남북한 군사력의 동시 감축방안에 대해 『워싱턴과 서울이 보다 긍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은 또 북한제의에 대한 수정제의를 통해 미군철수와 남북한 상호감군이 진행될 경우 이의 개시와 더불어 38선으로부터 남북한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미측 주장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 이 문제는 앞으로 미ㆍ북한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토의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통일문제 토론에서 미측은 하나의 군대와 두개의 자치정부를 가진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타당성에 한결같이 의문을 나타냈으나 일부 인사는 주권을 가진 두개의 공화국이 초기엔 각기의 군대와 외교정책을 유지하다가 단계적으로 연방정부에 권한을 넘겨주는 김대중씨의 「공화국 연방제」에서 좋은 타협안이 찾아질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측은 「고려연방제」가 현실적이라고 강조하며 김대중씨의 방안은 연방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검토될 수 있다고 동의했다. 서울과 평양의 접촉방식에 대해 북한측은 남한 민중의 통일열망을 반영하기 위해 정부ㆍ비정부 차원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측은 모든 교류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고 전체주의 사회인 평양이 정부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하려는 남한 야당인사들을 초청함으로써 2중 기준을 적용하려 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틀간 계속됐던 이 토론에서 북한측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되풀이한 발언은 ▲군비제한 토의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태도가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의도를 의심케하고있다 ▲미국은 과연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인가 ▲펜터건은 소련의 극동전략에 대응하는데 주한미군을 필요한 요소로 보는가 ▲서울은 상호 감군에 응할 태세와 군사대결을 종식시킬 태세가 돼있는가,아니면 미국의 고무아래 군사적 우위를 계속 추구할 것인가 등이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 미 사회에 파고드는 일련정종

    ◎선교확대 겨냥,「미국식 불교」로 변신시도/호감 얻으려 「자유의 종」 타종행사등 개최 일본 불교의 한 종파인 일련정종이 미국에서 벌이고 있는 포교활동은 매우 특이하다. 왜색이 너무 짙어 한때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이 종교가 미국에서는 가장 미국적인 모습을 보이며 대중 속에 파고들고 있다. 창가학회(일련정종 신도단체)해외지부의 하나인 미국 일련정종(NSA)의 행사 가운데 일반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종치기」다. 미국 건국의 상징인 필라델피아 「자유의 종」 모조품을 가지고 전국을 돌며 울리는 것이다. 「새 자유의 종」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종은 주로 국민학교나 중학교를 돌아가며 울려지며 때로는 주의회 의사당 앞이나 미국 독립전쟁 사적지에서도 타종행사가 열린다. 행사장은 수많은 성조기의 깃발로 숲을 이룬다. 종은 미국 독립전쟁당시의 민병대 복장을 한 사람들의 호위 속에 행사장에 들어온다. 유명인사의 애국적인 연설이 있은 다음 수십명씩이 차례로 줄에 들러붙어 종을 울린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한껏 고양시키는 감격적인 행사다. 보스턴 지역에서는 지난 여름 엘리스 국민학교에서 이 종치기 행사가 있었다. 행사는 예정된 아침 9시 정각에 시작되었으며 준비와 진행이 완벽했다. 현지의 텔레비전과 신문들이 진을치고 이날 행사를 취재 보도했다. 미국 일련정종은 현재 미국내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는 종교단체로 알려져 있다. 자체 추산 신도수는 50만명이지만 실제로는 15만 정도가 될 것으로 미국의 불교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뉴욕ㆍ로스앤젤레스ㆍ보스턴 등 미국의 많은 도시들에 50여개의 지역센터를 두고 있으며 5개 문화센터,6개의 사찰,3개의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본부는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에 있으며 「월드 트리뷴」(발행부수 12만부)이라는 신문도 발행하고 있다. 교세는 역시 캘리포니아서 강세를 보인다. 창가학회의 해외지부는 현재 세계 10개 나라에 설치돼 있는데 미국 일련정종은 1960년 창가학회의 첫 해외지부로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일본 이주민들 사이에 전파되었으나 현재 신도들의 인종별 구성비율은 백인 45%,아시아계 25%,흑인 19%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일련정종은 다른 불교들과는 달리 매우 현세적이며 물질과 경제도 중시한다. 「나무묘호렌게교」(남무묘법연화경)라고 수없이 암송하면 돈도 잘 벌고 승진도 빨리 된다고 가르친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신도를 끌어모으는데 큰 강점이 되고 있으나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동부지역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가 일요판 부록에서 미국 일련정종을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미국식 불교」라는 타이틀의 이 기사는 미국 일련정종의 홍보전략과 포교전략이 얼마나 교묘하고 세련된 것인지를 밝히고 있다. 이 신문은 미국 일련정종이 막강한 자금력으로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으며 주요 인사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도쿄의 창가대학을 통해 미국의 학계에 연구비 지급과 학술여행 기회 제공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한때 입교했던 이들이나 종교학자들의 입을 통해 이 종교의 교리와 활동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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