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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죄하는 마음으로 장기기증 합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장기기증 합니다”

    “생전에 지은 죄를 장기기증으로 대신 갚고 싶습니다.” 청송보호감호소 감호자 160여명이 단체로 장기기증 서약에 동참했다.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는 6일 “청송보호감호소 감호자 160여명이 우편을 통해 장기기증 신청을 해왔다.”고 밝혔다. 감호자들은 지난달 운동본부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사회에 속죄하는 마음에서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 장기기증에 동참하는 감호자가 전체인원의 60%선인 150명에 이른다.”라고 밝혔다. 이후 운동본부는 감호소를 직접 방문해 희망자에 한해 서약서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감호소 측이 “감호자 전체 의견이 아니다.”라며 난색을 표해 직접 서명은 무산됐다. 대신 감호자들은 우편을 통해 장기기증 서약을 했다. 감호자 강모(41)씨는 “사회에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자는 뜻에 많은 감호자들이 공감했다.”면서 “비록 범죄자의 몸이지만 사후 장기기증을 통해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160명의 신청서에 모두 지장이 찍혀있었다.”면서 “이들이 사회에 돌아가서도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살겠다는 의지로 보였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숨어도 튀는 ‘해신’ 채정안·김아중

    숨어도 튀는 ‘해신’ 채정안·김아중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안방극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한 KBS 2TV ‘해신’의 인기 비결은 주·조연을 막론한 출연 배우들의 고른 호연이다. 최수종, 채시라, 송일국 등 주인공들의 카리스마 연기를 중심으로 수애·김흥수 등 배우들의 열연이 한데 어우러져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 가운데 ‘숨은 1인치’처럼, 비중은 크지 않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는 두 여자 배우가 있다. 채정안(28)과 김아중(23)이다. 각각 장보고와 김흥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리는 정열과 의리의 여인을 연기하는 두 배우는 개성있고 참신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모짱·연기짱, 채정안 지난 24일 전남 완도 ‘해신’ 촬영장에서 만난 채정안(28)은 한결 진지해져 있었다. 한때 댄스 가수로 브라운관을 누비며 보여줬던 섹시함과 발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드러워진 외모에 참한 말투가 더해져 극중 역할인 채령만큼이나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지난 2003년말 드라마 ‘나는 달린다’ 이후 1년여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한 그녀에게는 요즘 “예쁘다.”는 시청자들의 찬사가 쏟아진다.“사극에 첫 출연하면서 예전 도회적인 이미지에서 탈피, 차분한 이미지로 색다른 느낌을 전해드려서 그런 것 같아요. 제 스스로도 많이 여성스러워진 느낌이랍니다.” 그녀는 ‘해신’이 자신의 연기인생에 있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드라마라고 말한다.“한 여성으로서 바라보기에 착하고, 여성스럽고, 진중한 면도 있고…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예요. 극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인데도 출연을 결심한 것도 그 때문이지요.”그녀는 주위에서 사극에 잘 어울린다는 말과 함께 연기력도 많이 늘었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쑥쑥 솟아난다며 미소 짓는다. 그녀는 이번달 개봉되는 영화 ‘엄마’에서 고두심의 막내딸로 나와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미련이 많이 남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보여줄 능력을 갖출 때가 올 때까지는 가수가 아닌 연기자의 길에만 전념하려고요. 영화는 무척 하고 싶은데, 심리 스릴러에 다중인격자 같은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연기 맛 들인 당찬 신인, 김아중 손에 쥔 긴 칼로 허공을 가르는 그녀의 눈빛에서 신인답지 않은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촬영장에서 만난 김아중(23)은 통일신라시대의 호위무사 백하진역을 멋드러지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지난 98년 잡지 모델로 시작해 지난해 말 MBC 오락프로그램 ‘심심풀이-러브 서바이벌 두근두근’을 통해 연예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그녀는 요즘 SK텔레콤 등 주요 CF에 잇따라 출연하며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수백대1의 경쟁을 뚫고 ‘백하진’역 오디션을 당당히 통과한 그녀의 매력은 귀여운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중성미. 그녀는 “마냥 예쁘게 나오는 역할은 아니지만, 강한 눈빛 등 호감가는 면이 많다.”며 활짝 웃는다. “사극은 물론 드라마에 첫 도전하는 거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담도 크지만, 연기의 맛을 하나둘씩 느껴가는 것에 힘든 줄 모르고 촬영에 임하고 있답니다.” 특히 최수종, 채시라 등 실전 연기를 배울 수 있는 엄청난 내공의 ‘연기 선생님’을 통해 연기력을 늘릴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며 웃는다. 나중에 꼭 자미부인(채시라)역 같은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다는 그녀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먼 훗날에는 제가 신인들로부터 본보기 삼고 싶고, 닮고 싶은 연기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거예요.” 완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해신’ 완도촬영장도 인기 드라마 ‘해신’의 치솟는 인기만큼이나 완도 주민들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해신’ 촬영지인 완도에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 최근 드라마 인기를 타고 하루 평균 1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때문에 완도 주민들은 음식업과 숙박업 등으로 짭짤한 부가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섬 전체가 외지인들로 북적대면서 완도가 삶의 활력이 넘치는 곳으로 변모했다는 데에 주민들은 큰 보람을 느낀다. 완도 서쪽 소세포에 1만 5000평 규모로 만든 세트장에는 현재 40채의 가옥과 촬영용 목선 6척이 마련돼 있다. 특히 언덕 위에서 세트장과 함께 바다를 굽어보는 풍경이 일품이어서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근 숙승봉 아래에 자리잡은 중국 거리 세트장도 볼거리. 당나라 때 신라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신라방’을 재현한 이곳 세트장에는 수상 도시를 상징하는 운하와 중국 전통 건물, 저잣거리 등이 세워져 관광객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원래 해신의 촬영지로 예정돼 있었던 곳은 완도가 아닌 인천·부안·태안 등 서울과 가까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완도 주민들은 KBS를 방문해 “헬기를 띄워서라도 배우들의 촬영 편의를 돕겠다.”고 나서며 유치노력을 기울였다. 전라남도와 완도군청 등도 50억원을 출연해 드라마 촬영에 지원하고 목선을 공짜로 빌려주는 등 각별한 노력으로 촬영장을 유치하게 됐다. 완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이진의 섹스&시티]非非고 非非고

    연예인들이 인기를 위해서 ‘섹시 컨셉트’를 내세우는 것처럼 일반인도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섹시함’을 이용하죠. 그리고 섹시함을 온몸에 담기 위해서는 춤을 잘 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요즘에 클럽가에서 인기가 많은 춤은 단연 ‘부비부비’ 혹은 ‘매미’라는 춤입니다. 케이블 티비의 한 힙합 파티 프로그램에서 소개가 된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죠. 이 이름도 요상한 ‘부비부비’라는 춤은 힙합 클럽에서 남녀가 같이 추는 춤인데, 여자의 등 뒤로 남자가 붙어서 몸을 비빈다고 해서 ‘부비부비’, 남자가 여자 뒤에서 꼭 붙어 춤을 추는 모습이 꼭 ‘매미’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매미춤’입니다. ‘부비부비’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음악을 즐기면서 춤을 춘다기보다 서로의 몸을 느끼기 위해서 춤을 추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클럽에 가는 이유가 오직 ‘부비부비’를 추기 위해서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참 재미있는 것은 ‘부비부비’가 꼭 아는 사람과 추는 춤이 아니라 맘에 드는 이성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호감을 온몸으로 표현하기 위한 춤이라는 것이죠. 작업을 걸기 위해서 모르는 사람의 뒤로 접근해 일방적으로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는 겁니다. 작업남에게 호감이 생기면 춤을 계속 추고 아니면 살짝 자리를 비키는 거죠. 흑인들이 이성과 같이 추던 이 ‘부비부비’ 춤이 마구 클럽가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춤을 즐기는 반면에 이 춤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껌껌한 장소에서 남녀의 몸이 밀착되는 모습이 ‘선정적이다’‘ 성행위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요. 힙합클럽에 놀러간 한 여자분의 경험담을 빌리자면 “단순히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 클럽을 찾았는데 모르는 남자가 호전적으로 다가와 내 엉덩이에 몸을 밀착시켜서 결국 밀쳐내 버린 경험이 있다.”는 겁니다. 예고 없이 모르는 남자가 자신의 몸에 스킨십을 시도했을 때는 불쾌감이 먼저 앞선다는 것이죠. 아무리 유행하는 춤이지만 나만의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 여자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스페이스를 침범 당한 느낌이었다고 말하면서 힙합클럽이 더 이상 힙합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거대한 작업의 장으로 변질된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했습니다. 케이블 티비에서는 이 ‘부비부비춤’을 추는 것을 하나의 코너로 지정해서 사회자가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늘씬한 여자들에게 접근합니다. 대개 쑥스러워하는 것보다 사회자와 엉덩이를 밀착해서 최대한 섹시하게 춤을 추는 경우가 많죠. 그것을 보면 ‘언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과의 스킨십에 대해서도 관대해 졌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결국 부비부비춤도 외국에서 들여온 힙합문화가 성적코드로 왜곡되고 변질되어 나온 하나의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합니다.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한솔그룹은 삼성가(家)의 맏딸인 이인희(76) 고문이 일궈낸 기업이다. 아울러 ‘큰 소나무’란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진 국내 최초의 대기업이기도 하다. 1991년 삼성가로부터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받아 ‘홀로서기’에 나선지 15년. 이 ‘큰 소나무’는 한때 1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서열 11위(자산규모 9조 3970억원)까지 올라 ‘리틀 삼성’으로 불렸다. 계열분리 당시 매출액은 3400억원에 불과했지만 금융과 정보통신, 제지의 3개 부문을 축으로 삼아 급성장하며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한솔도 생채기는 있었다.1998년 외환위기 파고에 휩싸이며 ‘곁가지’를 잘라내는 아픔을 겪은 것. 매출액은 1999년 4조 5000억원을 정점으로 2003년 2조 5000억원으로 떨어지며 한동안 자존심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2002년 이후 3년 연속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온갖 풍상을 이겨낸 소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한솔은 올해 불혹(창사 40돌)을 맞아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다지고 있다. 구조조정에 나설 당시에 ‘어디까지나 내일의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뿐’이라는 이 고문의 약속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 “쟤가 아들이라면…” “이리 오세요.” 어두운 극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인희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80) 전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 이사장이 회고록에서 밝힌 아내와의 첫 상견례 대목이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이 고문과 첫 만남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통 큰 여장부’와 ‘숫기 없는 남자’로 살아갈 운명을 예감했다고 한다. 조 전 이사장은 회고록에서 아내인 이 고문에 대해 “수완이 탁월할 뿐아니라 사업가적 재질이 뛰어난 전형적인 삼성가 출신”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꼬장꼬장한 자신과 달리 아내는 남자처럼 걸걸한 편이어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뒤바뀐 부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고문의 경영자적 자질을 가장 아꼈던 사람은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이 회장은 이 고문에 대해 “쟤가 아들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근심 걱정이겠노.”라고 수시로 말했다고 한다. 당시 고 이 회장은 삼성의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썩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고 이 회장은 골프 라운딩을 할 때마다 맏딸인 이 고문을 데리고 다녔다. 이 고문에게 인사 교류의 폭을 넓혀주고, 경영에 관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고문도 부친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남모르게 골프 연습을 많이 했다. 그는 골프도 연구하는 자세로 임했다. 골프에 관한 노트가 수십권이나 된다. 고 이 회장의 메모하는 습관을 그대로 닮았다. 이 고문은 “라운딩할 때마다 아버지한테서 회사를 경영하는 기법이나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 고문의 골프 스타일은 경영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주도면밀하게 연구한 뒤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어붙인다. 이런 경영 스타일은 정보를 중요하게 여겼던 고 이 회장의 경영관과 다르지 않다. 이 고문은 “골프는 연습한 만큼, 그리고 노력한 만큼 거두는 운동이며 기업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고문은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된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대표이사를 할 때도 그의 직함은 ‘고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와 결단력은 고 이 회장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자식들의 무리한 공격 경영으로 한솔이 휘청거린 1998년, 그는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사를 정상으로 회복시켜 놓았다. 그리고 나서 3남인 조동길(50)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고 이 회장이 경영능력이 뛰어난 3남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의 대권을 물려준 것과 같은 대목이다. 이 고문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낸 일화가 있다. 한솔은 1996년 종합레저산업에 진출하면서 오크밸리 건설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됐다. 이 고문이 참석한 가운데 콘도 분양을 위한 모델하우스 신축 문제를 놓고 임원회의가 열렸다. 한 임원이 모델하우스의 시공은 실제 콘도의 객실보다 조금 크게 시공해서 고객의 호감을 얻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는 모든 건설사가 그런 관행을 따르고 있던 때였다. 이 고문은 “정직하지 못하면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제와 하나도 다름없이 시공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 고문은 벽지부터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2년 후에 개관될 콘도 자재를 긴급 구입해 실제 콘도 객실과 똑같은 모델하우스를 만들었다. 이 고문은 부친인 고 이 회장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하다. 삼성가의 장녀로서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다.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될 무렵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우리가 삼성에 들어왔지 전주제지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라는 직원들의 인식이었다. 이 고문은 이를 받아들여 직원들에게 국내 최고 수준의 복리후생을 제공했다. 특히 삼성가로부터 받은 삼성중공업의 일부 지분을 임직원에게 그냥 나눠준 것은 ‘한솔은 사람이다.’라는 경영 이념과 ‘통 큰 여장부’로서 기질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이 고문은 또 직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을 쏟았다. 공장을 방문하면 식당에 어떤 꽃을 갖다 놓으라든지, 직원 유니폼 선정 등을 일일이 챙길 정도다. 한번은 한 사원이 사옥 로비에서 인사를 드리자 이 고문은 사원 이름을 불러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경북의 명문가 조씨 가문 조운해 전 이사장은 경상도 명문가인 한양조씨 일문인 조범석가(家)의 3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인 조범석씨는 일찍이 금융계에 투신, 대구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조씨 가문은 경북 영양에서 의사와 학자, 판·검사를 두루 배출한 경북 일대의 명문 집안으로 유명했다. 해방 이후 박사만 14명이나 배출했다.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도 이 집안 인물이다. 조 전 이사장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집 전 체육부 장관은 어린 시절 조 전 이사장의 집안에 대해 부러움을 많이 느꼈다고 술회하곤 했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11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중매로 이 고문을 아내로 맞았다. 박 전 의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다. 박 여사는 맏딸인 이 고문의 배필을 박 전 의장에게 부탁했고, 박 전 의장은 경북중학교 1년 후배인 조 전 이사장을 추천한 것이다. 조 전 이사장은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영과 거리가 먼 서울대학교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고문은 이화여대 3학년 때 양가 집안의 합의로 결혼함으로써 이대 학칙상 학업을 끝내지 못했다. 그 후 이 고문은 이화여대를 위해 많은 공헌과 후원을 해왔으며, 특히 전문 여성 양성을 위한 두을장학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우리나라 여성인력 육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정략 결혼은 ‘NO’ 한솔가의 2세(3남2녀)들은 정략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재벌가의 결혼이 ‘끼리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3남인 조동길 한솔 회장 아내인 안영주(48)씨의 집안이 그나마 좀 알려진 편이다. 안씨의 부친은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이다. 장남인 조동혁(55) 한솔 명예 회장은 이정남(54)씨와 신혼 살림을 차렸다. 조 명예 회장의 장녀인 연주(27)씨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차녀인 희주(25)씨와 아들 현준(16)군은 학생이다. 차남인 조동만(52)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은 대학시절 친구 소개로 부인 이미성(49)씨를 만났다. 장녀인 은정(25)씨와 차녀인 성진(19)양, 아들인 현승(15)군은 모두 학생이다. 3남인 조 회장은 부인 안씨를 만나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인 나영(23)씨는 현재 삼성전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들 성민(18)군은 학생이다. 며느리 세 명이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솔가의 막내딸인 조자형(33)씨는 타이완계 미국인 빈센트 추(36)와 국제결혼했다. 이 고문은 당시 “너희 둘이 좋다는데 국제결혼이면 어떠냐.”면서 결혼을 승낙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타이완에서 열려 가족들만 조용히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센트 추는 현재 중국에서 정보기술(IT)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양(6)과 경(3) 등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장녀인 조옥형(44)씨는 권대규(46) 한솔창업투자 부사장과 연애결혼했다. 권애영(17)양과 권이주(10)양 두 딸은 학생이다 ●‘3각 분권형’에서 조동길 회장 ‘단독 체제’ 한솔은 장남 조동혁 명예회장과 차남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3남 조동길 한솔 회장이 1997년부터 모두 부회장을 맡아 공동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장남은 금융을, 차남은 정보통신을,3남은 제지 부문을 맡았다.3형제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그룹 사업부문을 자연스럽게 떠안은 셈이었다. 이 고문은 경영 조언자로서 2선에서 자식들을 지원했다. 3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차남 조동만 회장이었다. 발이 넓은 조 회장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며 물오른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룹이 PCS사업을 KT에 매각한 뒤 통신사업에서 손을 떼고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1994년 부친의 뒤를 이어 강북삼성병원을 경영하다가 1995년 한솔에 합류했다. 그는 한솔종금(당시 대아금고)과 한솔창투(동서창투) 등을 인수하며 한솔의 금융업 확대를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한솔의 주력사업이 제지로 재편된 뒤인 2002년 그룹 명예회장으로 선임돼 경영 일선에서 한발 비껴섰다. 그는 선이 굵고,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명예회장은 매년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며 세계적인 재계 인사들과 교류를 넓히고 있다. 3남인 조 회장에게는 ‘실무를 아는 최고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한솔에 합류해 ‘제지통’으로 성장했다. 삼성물산의 자금업무와 JP모건을 거친 만큼 재무 감각도 남다르다. 형들이 신규 사업 확장에 나설 때 그는 조용히 한솔제지의 내실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합작법인을 주도해 모친인 이 고문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 NHK방송은 한국기업의 모범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한솔을 소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솔은 금융·정보통신 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주력사업을 제지로 전환함으로써 조 회장은 2002년 자연스럽게 한솔의 ‘대권’을 물려받게 됐다. ●한솔의 전문 경영인 선우영석(61) 한솔제지 부회장은 삼성출신 한솔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회장과는 동서지간이다. 그의 아내 안인숙씨는 조 회장의 부인인 안영주씨의 언니다. 선우 부회장은 1998년 합작사(한솔·캐나다 아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노르웨이 노르스케 스코그)인 팬아시아페이퍼 대표이사를 맡아 매년 매출액을 10%씩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입장과 문화가 다른 세 회사를 조율하고 설득시키며 우량 회사로 발돋움시켰다. 이에 앞서 그는 한솔 상하이공장을 건립한 뒤, 공장을 가동하던 첫 해부터 흑자를 내는 사업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선우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국제적인 경영감각, 추진력 등 최고경영자(CEO)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1993년 한솔로 옮기기 전까지 삼성의 해외 부문과 기획업무를 맡았다. 신현정(56) 경영기획실장은 한솔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살림꾼이다. 신 실장은 삼성물산 총괄경영지원본부장과 제일모직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문주호(58) 한솔제지 영업·생산 부문 대표이사는 타고난 영업맨으로 매년 영업 사원들에게 직접 새 신발을 신겨주는 행사인 ‘착화식’을 갖고 ‘발로 뛰는 영업’을 강조한다. 유명근(58) 한솔홈데코 대표는 영업·생산·기획 등을 두루 거치면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최근 기후변화협약이 시행됨에 따라 탄소배출권 확보가 한층 중요해진 가운데 그는 90년대 초 이미 해외조림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인 식견있는 CEO다. 서울대 임학과를 나왔다. 지난해 취임한 권교택(57) 한솔케미칼 대표는 적자에 시달렸던 한솔케미칼을 단숨에 흑자로 전환시킨 능력있는 CEO다. 침착한 성격에 세심한 경영 스타일이다. 김근무(60) 한솔개발 대표는 고객서비스를 최고의 경쟁력으로 강조한다. 오크밸리는 4년 연속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한 서비스품질 최고기업으로 평가받았다. 유재철(54) 한솔건설 대표는 삼성건설 총괄팀장과 공사지원팀장을 거친 정통 건설맨이다. 업계에서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서강호(56) 한솔CSN 대표의 경영철학은 ‘선택과 집중’. 그는 인천화물터미널과 한솔CS클럽을 매각하며 물류사업에 집중, 한솔CSN의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40분에 주파하는 마라톤 마니아다. 한솔LCD를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키운 김치우(56) 대표는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CEO다. 정형근(55) 한솔EME 대표는 엔지니어링 전문가로 꼽힌다. 한솔텔레컴 유화석(53) 대표이사는 온라인게임과 인터넷 포털 등 적자사업을 정리해 경영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조동길회장 ‘테니스 경영’ 조동길 한솔 회장은 대단한 테니스 예찬론자다. 마니아 수준을 넘어 테니스를 경영에 접목시킬 정도다. 현재 한국테니스협회 회장이다. 그는 테니스와 경영의 공통점으로 ▲강인한 기초 체력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 실력주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을 꼽는다. 조 회장의 남다른 점은 ‘테니스 경영이론’을 실제 비즈니스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다.9년째를 맞는 한솔-미국 앨라배마 펄프사간 친선 교류행사가 그 예이다. 이 행사는 테니스와 골프 두 종목으로 친선 경기가 이뤄지는데, 조 회장은 직접 테니스 선수로 뛴다. 또 매년 사내 테니스 대회를 열어 선수로 뛸 뿐 아니라 경기가 끝난 후에도 출전 선수와 격의없이 어울리곤 한다. 러시아의 ‘테니스 요정’인 마리아 샤라포바 초청 이벤트는 조 회장의 ‘테니스 경영’을 가장 잘 드러낸 대목이다. 한솔은 지난해 9월 개최한 제1회 ‘한솔 코리아오픈 테니스 대회’에 세계적인 스타 샤라포바를 초청, 이른바 ‘샤라포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100억원이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을 뿐 아니라 적자가 당연시되던 테니스 대회도 흑자가 가능하다는 값진 수확을 올렸다. 당시 조 회장의 ‘레이더’에 포착된 선수가 바로 샤라포바. 샤라포바는 그 때까지만 해도 기량보다 외모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조 회장측의 적극적인 설득에 어렵지 않게 구두 승낙을 얻어냈다. 특히 샤라포바가 세계 최고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우승하면서 조 회장이 빼든 ‘샤라포바 카드’는 그야말로 대박이 예견됐다. 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된’ 샤라포바는 ‘작은 대회’에는 출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종 스케줄이 밀려 있어 방한할 수 없다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한 것. 이 때부터 기업인 최초로 한국협상협회에서 협상 대상을 받은 조 회장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조 회장은 “비즈니스는 신의가 최우선이다. 구두 약속도 계약서에 서명만 안했을 뿐이지 사실상 약속이다. 스타가 약속을 저버리기 시작하면 팬들은 당연히 돌아설 수밖에 없다. 약속을 지켜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샤라포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유리 샤라포바를 집중 공략했다. 양측은 윔블던 우승 ‘프리미엄’을 약간 얹어주는 수준에서 최종 합의에 성공했다. ■ 이인희고문의 자식교육 이인희 한솔 고문도 자식 교육 만큼은 한국의 ‘보통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여성 CEO(최고경영자)로서 한솔을 키우느라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자식을 잘되게 하기 위해 때로는 어머니로서의 냉정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고문은 한솔이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동혁, 동만, 동길 3형제와 한지붕 아래 같이 살면서 엄격하게 경영 수업을 시켰다. 3형제는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어머니 대신 고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정도이다. 그만큼 어머니를 ‘경영 스승’으로서 깍듯하게 대한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며느리들도 한때 어머님 대신 고문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고문도 호칭에 대해 굳이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식들 앞에서 경영자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한솔의 공동 경영자로서 강한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자는 깊은 뜻에서다. 그러나 마냥 엄한 어머니만은 아니었다. 장남인 조동혁 명예 회장이 미국 유학시절 크게 다치자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수주일 동안 직접 병수발을 들며 가슴 아파했을 만큼 자식 사랑이 끔찍했다. 다만 약한 어머니를 내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감췄을 뿐이었다. 이 고문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해외에 보내 외국어와 국제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3형제 모두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왔으며,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대학까지 미국에서 졸업했다. 또 이 고문 가족이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한 덕분에 3형제 모두 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이 고문은 자식들의 영어 테스트를 위해 수시로 영어 대화 시간을 갖곤 했다.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경제와 정치, 사회문제 등을 주로 다뤄 자식들이 고급 영어를 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고문도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고문은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에 머물고 있다. 매년 겨울이면 그곳에서 건강을 돌보다가 3월쯤 한국에 돌아온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결혼이야기]김민석(29)·휘닉스 커뮤니케이션즈 송서윤(27)·푸르덴셜 생명보험

    [결혼이야기]김민석(29)·휘닉스 커뮤니케이션즈 송서윤(27)·푸르덴셜 생명보험

    ‘첫 인상의 법칙’을 깨뜨려라. 흔히 사람들은 첫 인상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의 인상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데 반을 차지한다고 하죠. 하지만 그 법칙은 제가 그녀를 만날 때만은 예외인 것 같았습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군대를 제대할 무렵이었습니다. 같은 부대 동료가 시켜주는 소개팅 자리에 나가 그녀를 만났습니다. 대부분 소개팅을 할 때는 옷차림도 신경 쓰고, 시간도 맞춰서 가지만, 그 날 저는 별로 기대나 관심이 없어 옷도 대충 걸쳐 입고 일부러 30분이나 늦게 약속장소로 나갔습니다. 같이 간 신참이 “늦었는데 빨리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다그쳤지만 “기다리기 싫으면 가겠지.”라고 배짱까지 부리며 더욱 느긋하게 걸어갔습니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나간 저는 너무나 순진한 모습으로 약간은 추위에 떨어 상기된 얼굴로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에 소위 말하는 ‘필(삘)’을 받았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히 행동했습니다. 후일에 들은 얘기지만 그녀는 기분이 많이 상해서 오기로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늦게 온 주제에 껌까지 질겅질겅 씹으면서, 늦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먼저 성큼성큼 앞서가는 제 모습을 보고 정이 뚝 떨어졌는데, 한참을 얘기 해보니 첫 인상과는 좀 다른 사람이란 걸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두 번째 만남을 허락했다는군요. 이번에는 첫 만남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서서히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적당히 망가진 첫 인상이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이 된 셈이었습니다. 첫 인상을 만회하기 위해 연애 기간 내내 말 없이 행동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를 5년 동안 지켜주었고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확신이 들었습니다. 서로에게 “언제 프러포즈할 거야.”라는 식으로 농담을 주고 받다가 별다른 프러포즈 없이 양가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곧 결혼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부모님께 프러포즈를 받은 격이랄까요? 너무 잔잔한 결혼 과정에 아내가 섭섭해하는 눈치더군요. 추억의 프러포즈 없는 결혼 생활은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선배들의 충고도 보태졌습니다. 결혼 날짜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지만 깜짝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었죠. 결국 감동을 주는 이벤트보다 더한 프러포즈는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2004년 마지막 날 밤, 풍선을 가득 채운 스카이 라운지에서 5년간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담은 5통의 편지와 ‘오감’을 자극하는 선물로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했고, 감동 받은 그녀는 저를 안아주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 [옴부즈맨칼럼] ‘올 여름 폭염’ 추적보도 돋보여/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한 일간신문의 편집국 부국장 겸 종합편집부장을 지내다가 지금은 편집·제작 등을 담당하는 그 신문사의 자회사 대표로 있는 후배와 얼마 전에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신문편집이 화제가 되었다. 신문사마다 편집에 대한 색깔이 다르고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서울신문의 편집이 전통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자신이 편집데스크로 있으면서 외부에서 편집기자 스카우트를 할 때, 서울신문 출신이라면 보지도 않고 뽑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 후배의 후임 종합편집부장은 서울신문 출신이다. 또 필자가 재직했던 문화일보 창간 때의 종합편집부장도 서울신문출신이었다. 평소 서울신문의 짜임새 있고 시원한 지면구성에 호감을 갖는 때가 많다. 제목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경우를 많이 본다. 휴대전화 안 쓰는 ‘별종’젊은이들을 다룬 기사(2월16일 25면)는 ‘버리세요…자유가 찾아옵니다’라는 제목과 가위 그림을 곁들인 그래픽이 잘 어울렸다. 또 2월17일자 1면 ‘퇴짜맞는 士’도 한눈에 들어오는 간결한 제목이다. 이러한 서울신문이 지난주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지면 편집을 보여주었다.2월15일,16일,18일자 1면 모양이 똑같았다. 기획기사를 왼쪽 위에서 맨 아래까지 박스로 처리하고 오른쪽에 톱기사를 4단제목으로, 중간에 사진을 넣고 그 아래 3단제목기사를 넣은 것이다.2월17일,19일자 신문 역시 박스의 위치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을 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지면구성에 변화를 주기 위한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북한이 핵보유를 공식선언한 이후 이와 관련된 기사를 지난주에도 신문마다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신문은 2월15일자에 매우 주목되는 기사를 실었다. 미국 몬테레이국제연구소의 핵비확산연구센터가 발표한 ‘북한 핵보유성명특별보고서’가 그것이다. 이도운 워싱턴 특파원이 단독입수하여 보내온 이 보고서는 (1)북한의 핵개발수준 (2)미국의 군사대응 어렵다 (3)핵수출 사실 아니다 (4)중국 침묵하는 이유 (5)6자회담 계속된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관련국 정부당국의 발표가 아닌, 권위 있는 연구소의 분석보고서라 그만큼 신뢰성이 있어 보인다. 또 보고서 내용도 비교적 수긍이 가는 점이 적지 않아 독자들의 ‘북핵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2월15일) 1면에 게재된 ‘올여름 가장 덥나’라는 박스기사도 눈을 끌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르 우주연구소(GISS)의 제임스 한센박사가 지난 10일 발표한 ‘올여름 사상최고의 폭염’전망에 대한 논쟁을 실은 것이다. 이 전망기사는 2월12일자의 모든 신문이 대서특필했다. 다른 신문들이 이를 비중 있게 보도한 것으로 그쳤으나 서울신문은 2월15일자에 이에 대한 국내학자의 반론과 한센박사의 재반론을 상세히 보도했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NASA의 고다르우주항공센터(GIFC)에서 연구활동을 했던 기상청 기후예측과장 박정규 박사는 “7월 이후의 엘리뇨를 예측하는 자체가 어렵고, 태양복사에너지가 거의 일정하거나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므로 올여름 폭염이 올 것이라는 주장의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반박문을 지난 11일 한센박사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이에 대해 한센박사는 자신의 주장을 재강조하는 답신 메일을 보내왔다.1면과 6면에 걸쳐 게재된 이 기사는 ‘올여름 최고로 덥다’는 일방적인 보도를 접했던 독자들에게 폭넓은 기상지식을 주었다. 박정규 박사의 재회신으로 이어질 후속기사가 궁금하다. 홍의 언론지키기 천주교모임 고문
  • 여성5명과 겹치기 엽색행각 카사노바의 최후

    유명대학 출신이고,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속여 여성들을 농락한 ‘카사노바’가 ‘교도소의 꿈’을 이뤘다. 1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사기혐의로 구속된 김모(28)씨. 지난 3년 동안 5명의 여성과 겹치기 엽색행각을 벌여온 김씨는 지난해 1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김씨는 그러나 4월부터는 병원비도 없어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교도소에 가면 국가에서 치료를 해주지 않겠느냐.’며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오히려 판사에게 적극적으로 구속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꽃미남’인 김씨의 엽색행각은 2002년 3월 시작됐다. 김씨는 채팅으로 A(25)씨를 알게 됐다. 김씨는 “결혼하자.”고 적극 유혹했고,A씨도 김씨의 외모에 호감을 느껴 만난 지 한달 만에 성관계를 맺었다. 고교를 중퇴한 김씨는 한술 더떠 S대 출신으로 방송국에서 드라마 세트를 디자인한다고 자신을 부풀렸다. 김씨는 같은 해 4월에는 B(25)씨와도 깊은 관계를 맺으며 ‘양다리’를 걸쳤다. 김씨는 주말에는 A씨, 평일에는 B씨를 만났다. 김씨는 A씨의 신용카드로 B씨에게 선물을 사주고,B씨의 신용카드로는 A씨에게 선물을 주며 환심을 샀다. 그러나 2002년 9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두 여인은 자신이 ‘약혼녀’라며 김씨에게 “상대 여성을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김씨는 방값과 정리비용을 핑계로 A씨에게 6000여만원,B씨에게 1200여만원을 뜯어냈다. 그러고도 A씨와 지난해 1월까지 혼인을 전제로 교제했고,B씨와는 2003년 11월까지 만났다. 그러나 지난해 1월 김씨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드러난 진실은 더욱 황당했다. 김씨가 입원한 병실에 A씨와 B씨를 포함, 김씨가 사귄 5명의 여성이 한꺼번에 병문안을 온 것이다. 결국 카사노바에게는 사기꾼이라는 오명과 오른쪽이 마비되고 언어장애에 시달리는 후유증만 남게 됐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청송감호소 없어진다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16일 당정 협의를 갖고 보호감호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대신 보호감호 대상범죄자에 대해 집행유예 상태에서 선고 형기의 3분의1 범위 내에서 최고 3∼5년 동안 보호관찰하는 ‘필요적 보호관찰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보호감호제가 폐지되면 청송보호감호소도 없어지게 된다. 보호감호제는 상습적인 강력범의 재범 예방을 위해 복역을 마친 뒤에도 사회로부터 격리수용해 직업훈련 등을 통해 적응을 돕는 제도로서 이중처벌과 인권침해 논란을 빚어왔다. 당정은 이날 보호감호제가 포함된 사회보호법 폐지에 따른 대체입법 도입방안을 논의한 후 ‘필요적 보호관찰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최용규 제1정조위원장이 전했다. 최 위원장은 “형의 일부를 집행유예기간으로 둬 보호관찰을 받도록 함으로써 이중 처벌의 논란을 없애고 중형 선고에 따른 법관의 부담감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당정은 또 보호감호제의 대상이 되는 범죄 중 강간죄 등을 특정강력범죄에 포함하고 상습 절도죄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개정해 형량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佛 ‘미테랑 향수’ 솔솔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인들은 1996년 작고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에 대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미테랑 전 대통령 개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다채로운 과거 행적만큼이나 호감과 비판이 엇갈렸다. 일간 르피가로는 14일 여론조사기관 BVA과 함께 최근 18세 이상 953명에게 물은 결과, 고인에 대한 전체적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다.’가 60%,‘비교적 부정적이다.’가 36%로 종합적으로는 호감을 느끼는 여론이 강했다고 보도했다. 고인이 사회당 정권을 이끌었던 만큼 긍정적 평가는 좌파 성향 응답자에서 훨씬 높았다. 응답자들은 또 고인의 가장 큰 업적으로 사형제 폐지를 꼽았다. 한편 그를 ‘교양인’,‘정치인다운 인물로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93%,91%가 각각 ‘그렇다.’고 답했다.‘의지가 강했나.’‘용기가 있었나.’란 질문에는 각각 86%,73%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그를 기회주의자로 기억하느냐.’는 질문에 68%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정직했느냐.’는 질문에는 41%가 ‘그렇다’,55%는 ‘아니다.’로 대답하는 등 인간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전 대통령의 말년을 그린 영화 ‘샹 드 마르스의 산책인’의 16일 개봉을 앞두고 그에 관한 공과 논쟁이 뜨겁다. lotus@seoul.co.kr
  • 한화갑 “연정하려면 대통령 탈당해야”

    김효석 의원의 입각 제의설로 촉발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론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26일에는 민주당의 ‘최대 주주’인 한화갑 전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한나라당도 청와대측이 전날 ‘연정(聯政)론’을 거론한 것을 집중 성토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측근인 열린우리당 염동연 의원은 ‘연말 합당설’을 제기, 오히려 불씨를 더 키우는 모양새가 됐다. 이날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한 전 대표는 노 대통령을 향해 “속임수”“철면피” 등의 격한 용어를 써가며 비난했다. 한 전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남의 당 사람을 입각시키려면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연정을 구성해야 떳떳하지 않느냐. 연정을 하려면 먼저 국민에게 계획을 발표하고 탈당한 뒤 각당 대표들과 만나 협의해야지, 자신은 당적을 유지하면서 다른 당 사람들을 열린우리당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속임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한 전 대표는 이어 “정략적 합당은 반대한다. 민주당에서 한화갑만 빼면 언제든 합당할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데, 가고 싶은 사람 다 가라고 했다. 나는 남아서 당을 지킬 것이다.”고 말했다. 또 “열린우리당은 도덕적으로 민주당에 대해 그런(합당) 요구를 할 자격이 없다. 민주당을 부패세력, 지역세력으로 매도해 놓고 이제 손을 벌리는 것은 철면피도 보통 철면피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진화에 나섰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어제 ‘청와대 브리핑’의 취지를 확대해석해선 안 된다.”면서 “연정 의사가 있거나, 앞으로 하겠다는 게 아니다.”고 해명했다. 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도 “민주당과의 합당 얘기가 자꾸 나와 곤혹스럽다.”면서 “당내에서 그런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는데 너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형제당으로서 서로 돕고 지냈으면 좋겠다.”며 호감을 붙였다. 그러나 염동연 의원은 이날 YTN과의 전화통화에서 “올 4월과 10월, 두 차례 재·보궐 선거를 치르면 양당이 모두 굉장한 위기감을 느끼게 될 것”이라며 “결국 연말쯤 민주 정통 세력을 지지했던 국민들 사이에 합당의 목소리가 거세질 것이고, 그 때부터는 본격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연말 합당론’을 제기했다. 김상연 김준석기자 carlos@seoul.co.kr
  • OK! 그녀! 영화 ‘무영검’의 이기용

    OK! 그녀! 영화 ‘무영검’의 이기용

    ‘빨간모자 아가씨’로 잘 알려진 특급 모델 이기용(22)은 ‘모델’의 틀을 벗어날 때 더 매력적이다. 그녀와 마주 앉고 나면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서구적인 마스크, 건강미 물씬 풍기는 까무잡잡한 피부 등 CF 속 ‘모델 이기용’보다는, 말하고 웃고 떠드는 일상 속 ‘사람 이기용’이 더 호감으로 다가온다. 그런 그녀가 곧 자신의 감춰진 매력을 팬들 앞에 공개한다. 그녀는 다음달 크랭크인하는 무협영화 ‘무영검’을 통해 ‘배우 이기용’으로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비천무’의 김영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총 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될 이 영화에서 그녀는 신현준·이서진·윤소이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발해시대 척살단 검객 ‘매영옥’역으로 두목(신현준)을 사랑하며 끝까지 옆을 떠나지 않는 ‘의리의 여인’을 연기한다. “원래 연기할 생각은 없었어요. 지난 여름 우연히 알게 된 연극영화과 교수님을 통해 연기 연습을 한 것이 계기가 됐죠. 모델로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매력을 느꼈어요.” 2002년 슈퍼모델 1위 출신인 그녀에겐 각종 뮤직비디오와 CF 출연을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르기 이전부터 연기자로서의 러브콜이 쇄도했다. 하지만 당시엔 선뜻 뛰어들지는 못했다. 이제서야 ‘답답한’ 모델의 틀을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연기란 극중 배역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매력이 있더라고요. 특히 ‘무영검’은 ‘매영옥’역의 캐릭터에 빠져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밤새워 두번씩이나 읽었을 정도였어요.” 겉으로는 강해보이는 ‘철혈여인’이지만, 속으로는 섬세하고 의협심이 강한 모습이 자신의 실제 모습과 너무도 닮았단다. 그녀는 아목구비만큼이나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본인 스스로 말하듯이 ‘쿨(Cool)함’과 ‘의리’를 빼 놓으면 시체며,‘밋밋함’은 절대 참을 수 없다.“여자친구는 거의 없는데, 남자친구만 득실대죠. 모두들 ‘형’ ‘동생’하는 사이예요. 한번 마음이 통하면 간도 쓸개도 다 빼놓을 정도의 영원한 친구가 되거든요.(웃음)” 기자에게도 “일단 친해지면 골치 아플테니 조심하라.”며 미소짓는다. 하지만 그녀의 취미는 의외로 여성적인 것이 대부분. 장래 희망도 현모양처란다. 인터뷰를 한 이날도 손수 토스트를 만들어 와 매니저 등 기획사 식구들에게 대접을 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집안의 이불·옷 등 빨래와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10년후 어떤 위치에 올라 있을까?”라고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온다.“전 일보다 가족이 더 좋거든요.3∼4년 후 결혼할 계획(?)이니까 주부가 돼 있을테고… 아마 그때는 개인 사업을 하고 있겠죠? 패션? 아니, 엄마랑 평소 즐겨 먹는 닭발 장사하고 있을것 같은데요.(웃음)”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조금 민감한 소문에 대해서도 물어봤다.“저는 숨기는 것 딱 질색이에요. 허리의 용문신은 했으니까 했다고 말했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화교 맞아요. 그런데 전 한국에서 태어나 국적이 대한민국인 엄연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그리고 휘어진 ‘코’ 교정 수술 한 것 빼고는 얼굴에 칼 한번 안 댔거든요. 전신성형 의혹이라니요.(웃음)” 그녀에겐 올 한해 여느 때보다 분주한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다.CF스타에서 연기자로의 변신 이외에, 대중들을 위한 ‘도우미’ 역할도 충실히 할 계획이다.“그동안 보여진 차갑고, 중성적이고, 신비주의에 싸인 이미지에서 탈피해 보다 따뜻하고 밝은 이미지로 다가갈 거예요. 아직 밝힐 수 없지만, 국민운동차원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광고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어요. 참 연기자로서도 꼭 인정받을 거랍니다.”올 연말엔 ‘빨간 모자’가 아닌 ‘황금빛 왕관’을 쓴 그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그녀가 궁금하다 몇가지 소소한 질문을 통해 이기용의 또 다른 매력을 알아봤다. 모델 꿈은 언제부터. -고등학교 때. 키 큰 것 하나만 믿고 한국슈퍼모델선발대회 광고보고 ‘재미삼아’ 원서 넣었다가 덜컥 대상 먹었죠. 평소 좋아하는 말. -“언니 이뻐요.”보다 “언니 멋있어요.”라는 칭찬. 어릴적 이기용은. -동네(서울 연남동) 남자 친구들을 죄다 끌고 다니는 골목대장이었다. 인형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며, 삽 들고 노는 것을 좋아했고, 고무줄 놀이보다는 형사놀이를 즐겼다.(웃음) 가장 아끼는 것. -‘사람들’과 ‘정’이다. 물건은 다시 살 수 있지만 이것들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이상형. -가볍지 않은 사람. 뭐니뭐니해도 ‘의리’로 똘똘 뭉쳐야 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결혼이야기]김인회(33·다음커뮤니케이션)·정지운(32·한국프뢰벨)

    [결혼이야기]김인회(33·다음커뮤니케이션)·정지운(32·한국프뢰벨)

    흔히 인연은 따로 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의도치 않은 작은 행동이 상대에게 큰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노력을 해도 노력 하나하나가 오히려 상대에게 짐을 지우는 관계도 있다. 나랑 지운이는 전자의 경우다. 우린 친구의 소개로 만났다. 원래는 내가 아닌 다른 친구가 소개를 받을 뻔한 아가씨였다. 인연이 되려다 보니 내가 소개를 받게 된 것 같다. 어떻게 내가 가자고 하는 곳, 내가 하자고 하는 것, 먹자고 하는 것 모두 지운이가 좋아하는 것이고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한다. 지운이는 첫 만남에서부터 10년지기 같은 편한 느낌을 주는 친구였다. 어색하기 쉬운 연애 초기를 이런 인연으로 빠르게 넘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하는 감정으로 전이가 되었다. 평생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이상할 게 없었던 것이다. 만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 다가왔다. 둘이 커플링도 맞추고,100일엔 뭐 할까도 얘기하면서 그날을 기다렸는데, 이 때 지운이에게 얘기하지 않은 이벤트를 준비했다.100일이 되는 날 꼭 프로포즈를 해서 나와 결혼하겠다는 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준비한 전체 이벤트 코스는 두시간여 걸리는 것이었다. 밖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미용실에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고 지하 주차장에서 전 날 몰래 산 양초 100개를 나올 시간에 맞춰 내 차에서 밝혔다. 지운이가 나왔다. 난 음악을 틀었고, 미리 준비한 카드를 꺼냈다. “내가 느끼는 이 행복을 평생 너의 옆에서 너도 같이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어. 나랑 결혼해 줄래?” 나는 둘이서 맞춘 커플링을 손가락에 끼워주었고 지운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안아주는 것으로 결혼 승낙을 대신했다. 그리고 여섯달 후인 지난해 9월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여느 부부처럼 한 두번 토닥거리며 싸운 적도 있다. 그러나 프로포즈할 때의 그 맘은 변함이 없다. 나의 이 행복을 평생 너와 함께 하겠다는 그 다짐 말이다.
  • [스포츠 라운지] 혼합복식 韓中커플 김승환·궈팡팡

    [스포츠 라운지] 혼합복식 韓中커플 김승환·궈팡팡

    한국 첫 탁구 혼합복식 커플 김승환(26·포스데이타)-궈팡팡(25·KRA)은 4월에 있을 ‘릴레이 결혼식’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괜히 얼굴까지 붉어진다. 한국에서 먼저 혼례를 치른 뒤 바로 중국으로 날아가 궈팡팡의 고향인 쉬저우에서 한번 더 올리는 것. 지난 2003년 혼인신고를 마쳤지만, 궈팡팡이 국내 무대에서 자리잡을 때까지 결혼식을 미뤄 왔다. 주중엔 소속 팀에서 숙소생활을 하다가 주말에만 양평 부모 집에서 합치는 ‘주말부부’답게 요즘도 눈빛만 마주치면 깨가 쏟아진다. 양평에 머물 땐 한 주 사이 못 다한 얘기를 나누느라 방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김승환은 “연애 시절에는 이메일과 전화로만 사랑을 확인했는데 주말이라도 함께 지낼 수 있어 행복하다.”고 쑥쓰러운 듯 털어놨다. ●김승환 첫눈에 ‘뿅’… 중국어 배워 프러포즈 김승환과 궈팡팡이 처음 눈이 맞은 것은 지난 2000년. 상무 소속으로 베트남오픈에 참가한 김승환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장 슈에링(싱가포르) 곁에 있던 자그마한 여인이 눈에 쏙 들어왔다. 빼어난 미인은 아니지만 상큼한 미소와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차분함이 왠지 좋았다. 궈팡팡도 김승환의 선한 얼굴과 성실함에 호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국경과 언어의 장벽으로 급진전되지 못했지만, 흑심(?)을 품은 김승환은 중국어를 파고들었고,2001년 코리아오픈에서 사랑을 고백했다. 프러포즈를 은근히 기다렸던지 궈팡팡도 단박에 “하오(중국어로 좋다는 의미).”라면서 수줍게 응락해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한국 남자들은 부인을 때린다더라.’라면서 반대했던 궈팡팡의 어머니는 막상 김승환을 만나고 나서는 친자식처럼 좋아했다.‘소황제 세대’로 곱게 자라 버릇없는 또래 중국 남자들과 달리 어른들을 깍듯이 대하는 모습에 반했던 것. 무뚝뚝한 사내만 셋을 키운 김승환의 부모도 “빠바(아빠)!빠바!”라며 애교를 부리는 궈팡팡을 늦둥이 딸을 본 듯 귀여워했다. ●사흘 손발 맞추고 혼복우승 ‘역시 찰떡궁합’ 김-궈 커플은 처음으로 동반출전한 지난달 종합선수권 혼복에서 딱 3일동안 손발을 맞추고도 ‘찰떡궁합’으로 우승을 일궈 탁구계를 놀라게 했다. 안재형(40·한국체대 감독)-자오즈민(41)에 이은 ‘제2의 한·중 커플’로 주목을 받다가 실력으로 얻어낸 스포트라이트였기에 더욱 뿌듯했다. 궈팡팡을 1년 넘게 지도해 온 현정화 KRA 코치는 “둘의 실력만 놓고 보면 우승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서로의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부부였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귀화한 선수는 3년간 다른 국가를 대표할 수 없다.’는 국제탁구연맹(ITTF) 규정에 따라 2003년까지 홍콩대표였던 궈팡팡은 아직 선발전에 나설 수 없다. 궈팡팡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2006년부터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운동하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비록 종합선수권 우승을 했지만 올림픽 동반출전을 하려면 갈 길이 멀다. 혼복 선수를 따로 뽑지 않기 때문에 각각 대표팀에 합류하는 게 급선무. 세계랭킹 67위 궈팡팡(국내 8위)은 가능성이 높지만, 고질적인 척추측만증으로 슬럼프를 겪은 김승환(세계 165위·국내 23위)이 대표선발전을 뚫기엔 아직 부족한 게 사실이다. ●2세 계획 은퇴뒤로… 2008년 올림픽 ‘올인’ 궈팡팡이 “승환은 재능이 충분한데 파워가 부족해요.”라면서 은근히 다그치자 승환은 “팡팡이 먼저 대표팀에 들어가면 좋겠고 저도 따라가야죠.”라며 웃음으로 받아넘긴다. ‘2세 계획’도 은퇴 뒤로 미룰 만큼 베이징올림픽에 인생의 승부수를 던진 ‘핑퐁 커플’의 해맑은 눈빛에서 3년 뒤 금빛 호흡을 기대해 본다. 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궈팡팡은… ▲1980년 2월6일 쉬저우 출생 ▲펜홀더 전형 전진속공 ▲세계 랭킹 67위 ▲궈지룽(51) 장민즈(49)씨의 무남독녀 ●김승환은… ▲1979년 1월1일 출생 ▲부산 영선초-대광중-시온고, 실업팀 동아증권-상무-포스데이타 ▲펜홀더 전형 이면타법 ▲세계 랭킹 165위 ▲김동수(56) 박형순(54)씨의 3남 중 막내
  • 反기업정서 완화 추세

    반(反)기업정서가 점차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20세 이상 남녀 10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0일 발표한 ‘기업호감도’에 따르면 ‘기업호감지수’(CFI)는 100점 만점에 44.4점으로 집계됐다. 2003년 12월 38.2점, 지난해 6월 39.1점보다 소폭 개선됐다. 또 기업활동의 우선 순위가 ‘이윤창출’이라는 의견도 56.8%(지난해 6월 조사)에서 58.4%로 높아졌다. 반면 ‘사회환원’이라는 의견은 43.2%에서 41.6%로 낮아져 자본주의 원리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富)에 대한 인식도 ‘부자들이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답변은 보합세(70.8%→70.1%)를 유지한 반면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해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응답은 25.2%에서 29.9%로 높아졌다. 대한상의측은 윤리 경영과 사회공헌 활동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데다 지난해 하반기 분식회계나 정경유착과 같은 ‘악재’가 없었던 점이 기업에 대한 호감도를 개선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기업에 호감이 가는 이유로는 ▲국가경제 기여(45.2%)▲일자리 제공(23.8%)▲국위 선양(17.3%)▲좋은 제품 제공(6.0%)▲사회 공익활동(5.4%) 등의 순으로 꼽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카지노 사기 한국판 ‘스팅’

    카지노 사기 한국판 ‘스팅’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빌려 공범인 딜러와 가짜 손님, 가짜 종업원을 동원해 사기도박을 벌인 일당이 검찰에 적발됐다. 조직폭력사범전담 서울지역 검·경 합동수사부는 10일 폭력조직 서방파 행동대장 출신 정모(54)씨 등 3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이모(39)씨 등 2명을 불구속기소하는 한편 달아난 공범들을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해 8∼9월 강원랜드에서 경기도 중소도시의 재력가로 알려진 안모(48)씨를 만났다. 과거를 숨기고 안씨에게 접근, 호감을 산 정씨는 어느 날 안씨와 제주도로 골프여행을 갔다. 그것은 안씨의 주머니를 노린 사기 도박극의 서막이었다. 종일 제주도에서 골프를 친 안씨 일행은 정씨의 안내로 A호텔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향했다. 그곳에서 정씨 등과 일명 ‘바카라’도박을 한 안씨는 단 3시간 만에 1억 1000만원을 잃었다. 도박이 끝나자 정씨는 ‘사업가’에서 ‘행동대장’으로 돌변했고 협박에 못이긴 안씨는 다음날 1억원을 건넸다. 안씨가 돈을 건네던 날 미술관을 운영하던 김모(49)씨가 당한 피해는 훨씬 더 컸다. 김씨가 정씨 일당의 덫에 걸려 불과 5시간 만에 빼앗긴 돈은 9억원. 현금으로 1억원을 뜯긴 김씨는 남은 도박빚 8억원을 갚으라는 독촉에 시달렸다. 정씨는 단시간에 거액을 빼앗으려고 딜러뿐 아니라 다른 손님들까지 모두 한패로 가담시키는 기발한 사기극을 꾸몄다. 카지노 게임 테이블 한대를 통째로 빌렸고 공범들에게 정식 종업원 복장을 빌려 입혔다. 도박판에서 분위기를 잡던 다른 손님들도 정씨에게 고용된 ‘바지’들이었다. 게다가 딜러 역을 한 이씨는 이른바 ‘탄’(순서가 사전 조작된 카드)을 사용해 피해자가 거는 쪽이 지도록 조작했다. 합수부는 6000만원을 받고 내국인 출입이 금지된 카지노의 시설을 이들에게 이틀간 불법임대한 A호텔 카지노 대표 김모(41)씨 등을 관광진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하고 문화관광부에 위법 사실을 통보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10일 TV 하이라이트]

    ●그대는 별(KBS1 오전 8시5분) 정우에게 돌아와 달라는 해인에게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인경. 해인은 사랑하고 사랑받는데 무슨 자격이 필요하냐며, 힘들게 지켜온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며 정우의 자취방 주소를 내민다.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SBS 오후 11시5분) 2002년 6월9일 이후 2년 8개월 만에 하나로 뭉친 핑클의 이효리, 옥주현, 성유리, 이진이 등장한다. 핑클이 말하는 ‘여자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남자 스타일’을 들어본다. 이밖에 ‘나 스스로 정말 독한 사람이다 생각들 때는?’에 대한 의견을 모아본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샌프란시스코 과학놀이 체험전’은 세계 최고의 과학박물관인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움의 700여 가지 전시물들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과학놀이터이다. 아이들에게는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장으로, 청소년들과 교사들에게는 과학의 원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실험실이 될 것이다. ●미래의 조건(EBS 오후 11시) 우리나라에서 지진해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는 동해의 일본 쪽에서 발생하는 대지진에 의한 해일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졌다. 과연, 현재 우리나라의 지진해일, 지진에 대한 대비체계는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보고, 효과적인 대비책은 무엇인지 모색해 본다. ●영웅시대(MBC 오후 9시55분) 태국 현장을 살펴본 천태산은 기후에 맞는 장비를 구입하지 못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을 알고 고국에 돌아가 수습을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공기를 당기라고 독려한다. 대한그룹의 밀수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한때 공화당 당직을 지냈다는 사내는 정치자금을 요구한다. ●쾌걸 춘향(KBS2 오후 9시55분) 한지붕 아래에 살게 된 몽룡과 춘향. 우등생 춘향 때문에 구박받는 것을 참다못한 몽룡은 비밀스러운 내기를 건다. 한편 춘향에게 호감을 갖게 된 학도는 교내 연극제 준비를 도와주며 접근을 시도한다. 몽룡은 연극 도중 춘향의 키스신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진다.
  • [결혼이야기] 오동준(32·하나로텔레콤 PR팀)·김도희(25·LG상사 E&C사업지원팀)

    [결혼이야기] 오동준(32·하나로텔레콤 PR팀)·김도희(25·LG상사 E&C사업지원팀)

    (그 남자 이야기)이제 입사한 지 3년차. 사내에서 가끔 보는 그 여자가 요즘 들어 자꾸 눈에 밟힌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 내 인연이 같은 회사 안에 있을 가능성은 확률적으로도 너무 적다. (그 여자 이야기)회사에서 가끔 마주친 적이 있는 그 남자. 요즘 들어 마주칠 때마다 나를 뚫어져라 본다. 이상한 사람이다. (그 남자 이야기)얼마 전부터 그 여자와 ‘아는 사이’가 되었다.‘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연애 제1의 법칙 그녀의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야 한다. 내 노력의 결과로 그 여자는 DJ DOC 콘서트를 같이 보러 가자는 내 제안을 몇번 거절하다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회사에서 우연히 마주치던 그 여자랑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공연을 보는 게 생각보다 어색했다. 콘서트장에서 노래도 크게 따라 부르고 혼자 춤도 추고 자연스러워 보이려 노력했다. (그 여자 이야기)그 공연이 너무 보고 싶었던지라 그 남자의 제안에 승낙은 했다. 그러나 그 남자가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노력하는 점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같은 회사 사람만 아니라면 한번 사귀어 봤을 텐데…. 아쉽다. (그 남자 이야기)지난 공연 이후로 그 여자에게서 별다른 반응이 안 온다. 노련한 나는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을 안다. (그 여자 이야기)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부터 회사에서 그 남자를 보면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까지 빨개져서 창피하다.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그 남자 이야기)‘기회는 이 때다.’는 판단이 들어 강하게 밀어붙였다. 나의 판단은 적중했다. 얼마전부터 매일 그 여자를 만나고 있다. 동료가 아니라 여자 친구로서. 그 여자가 내 인생에 유일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만난 지 한달 만에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고, 결혼하겠다고 통보(?)도 올렸다. (그 여자 이야기)이제 결혼한 지 50일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남자와 나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마법에 빠진 것처럼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 힘으로 결혼까지 했다. 그 남자는 이렇다할 프러포즈를 한 적도 없고 화려한 고백으로 감동을 준 적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 보여준 사랑과 신뢰는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서로에게 씌운 콩깍지가 벗겨지는 그 날이 와도 내게만 보여주는 내 남자의 애교와 정성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빛이 스며든 자리/우승미

    눈을 떴다. 문밖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암실에 있으면 의식도 시간도 모두 멎었다. 이곳에 온 후 나는 주로 암실에서 지냈다. 둥글게 몸을 말고 바닥에 누워, 불필요한 감각이 퇴화된 심해의 생물처럼 눈과 귀를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촉각이었다. 밀폐된 공간의 공기는 아래로 가라앉았다. 공기는 욕조 속의 더운 물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리가 점점 선명하게 들렸다. 경쾌한 리듬의 허밍이었다. 멜로디가 귀에 익었다. 가게 안으로 누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힘겹게 팔을 들어 몸 마디마디를 주물렀다. 피가 돌면서 눌려있었던 몸 왼쪽이 저려왔다. 암실 문을 열자 빛이 쏟아졌다. 손그늘을 만들고 부신 눈을 떴다. 딱딱한 알루미늄 가방 위에 여자가 앉아 있었다. 햇빛 속에 앉아있는 여자는 스스로 빛나고 있는 빛 무더기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주변을 감싸고 있던 빛이 스러지면서 여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여자는 얼굴빛이 유달리 희었다. 여자가 내 쪽으로 팔을 뻗어 손을 내밀었다. 여자의 팔은 윤곽이 희미했다. 홀로그램의 영상처럼 반쯤은 투명해보였다. 악수를 청하는 것인지 자신을 일으켜 달라는 것인지 몰라 잠시 주춤거리다가 여자의 손을 맞잡았다. 여자는 손아귀 깊숙이 손을 넣고 힘차게 흔들었다. 자칫하면 못 찾고 그냥 돌아갈 뻔했어요. 초행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도시에서 상가가 가장 발달한 곳이었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버스터미널이 이전하면서 그쪽에 신시가지가 형성된 후로는 죽은 골목이 돼버렸다. 사진관은 옛 번화가의 뒷골목에 위치했다. 원래는 주택가였는데, 주택을 허물고 상업용 건물을 급조해 형성된 상가였다. 지금은 가게를 연 곳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이곳은 구식 양옥의 1층을 개조해 가게로 쓰던 것이어서 밖에서 보면 가정집처럼 보였다. 오기 전에 부동산에 들렀어요. 한 달 전에 이미 매매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저에게 세 놓을 생각 없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임대를 목적으로 산 집이 아니었다. 여자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중고로 구입한 17분 컬러 현상기가 한 구석에 놓여있을 뿐,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사진관을 하려고 산 건물이지만 한 달째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암실에서 보냈다. 배가 고프면 끼니를 때우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여자는 얼룩져 더러워진 벽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나뭇결을 들여다보았다. 곳곳의 정경들을 기억 속에 새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천천히 세밀하게 보았다. 여긴 제가 태어난 곳이에요. 오래전에 아버지가 여기서 사진관을 했어요. 위층에 살림을 차리고요. 여자의 나이를 가늠해봤다. 캐주얼한 옷차림 때문에 언뜻 보면 어려보였지만 눈가에 옅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나와 비슷하거나 한두 살 아래쯤일 것이다. 여기서 함께 지내게 해주세요. 처음엔 그냥 둘러보고만 가려고 했어요. 막상 와보니 여기 있고 싶어지는군요. 세를 놓는 건 싫다고 하셨죠? 대신 일을 하겠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가게를 열면 가게일도 도와드릴게요. 여자는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말끄러미 보았다. 여자의 눈빛 속에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과 거절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떤 말도 선뜻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중에 있을 때 집안일과 병간을 도맡았던 아주머니와 6개월여를 함께 지내본 적은 있지만, 나는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여자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점. 자신이 태어난 곳을 찾아와 그곳에 살고 싶어 한다면 무언가 절박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어딘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태어났다는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했다. 투병 중이었던 어머니와 묏자리를 보고 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자동차 안에서 손가락으로 도로의 모퉁이에 나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저기가 느이 아버지가 사진관을 하던 자리다. 나는 자동차 속도를 줄이며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저녁 어스름이 내린 골목은 동굴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가로수에 가려 골목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무성한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음산한 소리가 났다. ―예전에는 이 길이 번화가였지. 세가 워낙에 비싸서 느이 아버지가 저 골목 끝에 있는 집을 사서 아래층을 가게로 개조했다.2층에다 신접살림을 차렸고, 너도 거기서 낳았어.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저기서 오래 살았을 게야. 그때는 입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 어름을 언뜻 보고 지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사진관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두운 골목 안으로 성큼 들어서고 싶어졌다. 내가 태어난 곳에서 생전의 아버지처럼 사진관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두운 골목으로 가득 찼다.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월의 유순한 흐름을 따라 유유히 나의 생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49재를 치르고 어머니의 무덤에 왔다가 이곳에 들렀다. 이곳은 비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지 뽀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무성한 것은 지붕까지 뻗어있는 담쟁이덩굴뿐이었다. 근처의 부동산을 찾아가 가격을 흥정하지 않고 곧장 계약서를 썼다. 다니던 잡지사에 사직서를 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내 사진기자로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구 곳곳의 풍경을 주제로 하는, 사진 중심의 다큐멘터리 잡지였다. 사직서는 그날로 수리되었다. 잡지는 상업성이 강한 잡지들을 출간하는 모(母)기업의 품격을 위해 창간된 것이었다. 전문적인 사진이 실리는 잡지를 다수의 대중은 외면했다. 독자가 많지 않으니 당연 광고도 들어오지 않았다. 경기가 침체되자 모기업은 서서히 경영에 압력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내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권고사직을 당할 형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동료들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내가 사무실 문을 나서자 동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의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통장으로 입금된 퇴직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았지만 매매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보험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려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남긴 상자에는 어머니의 결혼 예물과 아버지의 사진 그리고 세 장의 보험증서가 있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나는 보험증서를 쥐고 오열했다. 오십 몇 년의 삶의 흔적이라기에는 세 장의 종이는 너무도 가볍고 쓸쓸한 것이었다. 2층의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 암실에서 지내면 되니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해선 안 됩니다. 어려운 조건은 아니로군요. 여자는 알루미늄 가방을 메고 2층으로 올라갔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자연스럽게 밟고 올라갔다.2층에는 방이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히는 휴대용 침대를 암실에 갖다놓고, 내 물건들은 거실에 놓았다. 여자가 식사준비를 했다. 여자는 냉장고 뒤쪽 구석에 쑤셔 넣어두었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여자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자기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것처럼 양념통이나 필요한 재료가 있는 곳을 단번에 찾아냈다. 무언가 도와야 할 것 같아서 주위를 서성대던 나는 머쓱해져서 1층으로 내려왔다. 여자가 차린 상은 정갈했다. 냉장고에는 맥주와 인스턴트식품만 가득했었는데, 여자가 차린 밥상에는 찌개에 윤기가 흐르는 밑반찬까지 고루 갖춰져 있었다. 여자의 음식은 어머니가 해주던 것과 맛이 흡사했다. 이 정도면 합격인가요? 여자는 소리를 내지 않고 싱긋 웃었다. 환한 빛이 얼굴 가득 퍼졌다. 이곳에 머무는 대가로는 좀 과분하군요. 시간은 고요하게 흘러갔다. 여자는 늘 조용히 움직였다. 내게 먼저 말을 걸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나를 의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암실에서 보냈다. 여자는 시간에 맞춰 요리를 했다. 거실로 내어 놓은 옷장 속에는 바싹 마른 옷가지들이 반듯하게 개어져 있었다. 여자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거칠게 그린 가게 구조도와 비용에 관한 세목이 적혀 있었다. 사진관을 열었으면 해요. 여자가 건넨 종이를 건성으로 훑어보았다. 종이 몇 장으로는 가게의 모습이 요연하게 잡히지 않았지만 내 생각보다는 훨씬 구체적이었다. 우선 가게에 있는 17분 현상기는 되팔았으면 좋겠어요. 오랫동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사진관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다. 증명사진이나 간단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를 갖추고, 현상·인화 서비스를 하면 되겠다 싶어 17분 컬러 현상기를 중고로 구입한 것이었다. 여자는 내 옆으로 바투 다가와 앉아 손끝으로 그림을 가리키며 계획을 설명했다. 암실은 공간이 꽤 넓으니까 두 개로 나누었으면 해요. 조명기기와 카메라 장비를 구입해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들고요. 표준화된 QSS방식으로는 사진을 기록물로만 여기는 사람들의 기대만 충족시킬 수 있죠.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서 현상만으로는 가게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암실을 개방해서 수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차나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지식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곳, 제가 꿈꾸고 있던 사진관이에요. 암실에서 나와 보니 벽에 호두나무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가게 구석에 있던 자동 현상기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무릎을 대고 엎드린 채 기름걸레로 바닥의 나무를 닦고 있었다. 여자의 손이 닿는 곳마다 켜켜이 나무의 결이 살아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암실 공사하러 인부들이 올 거예요. 가벽을 세우는 거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조금 시끄러울 거예요. 어디 잠깐 다녀오는 건 어때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에 내려온 후로는 첫 외출이었다. 나오기는 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에는 SLR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내내 들고 다녔던 것인데, 검은 몸체의 카메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던 것처럼 아니,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카메라가 이물스러워 보였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버스에서 내려 몇 컷의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이국의 풍경처럼 주위의 모든 것이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풀조차 자라지 않는 들판에 앉아 서서히 땅에 내리고 있는 어둠을 응시했다. 구릉처럼 낮은 산의 언저리에는 스러진 햇빛이 모여 검붉은 노을로 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차도 없었다. 희미하게 보이던 사물의 윤곽이 어둠에 검게 물들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피로하지 않았다. 끼니를 걸렀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몸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불현듯 여자가 몹시 보고 싶어졌다. 가게에 걸려 있는 간판에 불이 환했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로 ‘암실카페 - 빛이 스며든 자리’라고 씌어 있었다. 공사가 끝났는지 가게 안은 조용했다. 출입문을 열자 직사각의 탁자 세 개가 보였다. 한쪽 면을 벽에 붙인 탁자에는 어림잡아 20명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암실과 스튜디오 사이의 자투리 공간에는 주방이 들어섰다. 주방은 음료와 간단한 안주를 만들 수 있는 바bar 형태였다. 주방 옆에는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여닫이 유리문이 달린 업소용 냉장고 안에는 캔음료와 몇 종류의 맥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암실 옆의 공간에는 몇 개의 조명기구가 놓여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꾸며졌다. 스튜디오를 제외한 가게의 정경은 카페에 가까웠다. 늦은 시간에 맥주를 마시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겠군요. 사진관보다는 호프집에 더 어울리는 이름이죠. 하지만 저는 이 이름이 썩 마음에 들어요. 어두운 방에 스며든 빛의 흔적, 그게 바로 사진이니까요. 여자는 벽의 진열장을 닦고 있었다. 이곳에 카메라를 진열해 놓았으면 해요. 예전에는 사진관에 카메라 진열대가 있었지요. 집집이 가정용 카메라를 구비해놓기 이전에는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대여했으니까요. 가방 속에 묵혀두는 것보단 가게로 내오면 오래된 사진관 이미지도 풍기고, 손님들에게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도 보여주고 좋을 것 같은데요. 진열대는 애초부터 카메라를 놓으려고 만든 것 같았다. 천장에 진열대를 비추는 작은 조명이 있었다. 나무판으로 만든 선반 형식의 진열대에는 유리문이 달려 있었는데, 먼지가 새어들지 않도록 틈새에 실리콘으로 패킹 처리가 되어 있었다. 2층에서 카메라들을 가져왔다. 케이스에 넣어 상자에 보관해왔지만, 오랫동안 손을 타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클래식 카메라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오토포커스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부착해 사용했고, 얼마 전까지는 디지털 카메라를 썼다. 내게는 꽤 많은 카메라가 있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여러 대의 카메라를 보유하게 마련이었다. 클래식 카메라는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카메라는 내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내가 세 살 되던 해 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내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의 존재는 내게 그리움 따위의 정서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첩에 꽂혀있는 사진이나 카메라처럼 정물적인 것이었다. 어머니는 단 한 대의 카메라도 팔지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카메라를 꺼내 닦았다. 그 일은 어머니에게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첩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카메라를 닦으며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는 추억은, 흐려지지 않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그림자는, 사막에 묻힌 수천 년 전의 미라처럼 영원히 썩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좋은 남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바랐다. 어머, 이건 콘탁스II네요. 여자의 음성이 높아졌다. 사진 찍는 일을 업으로 삼기 전에는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어요. 처음 사진을 배울 때부터 이걸 썼어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 주로 갖고 있는 카메라는 니콘FM2였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은 제품이었다. 간혹 클래식 기종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라이카를 들고 다녔다. 콘탁스를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카메라는 아버지가 월남전에서 돌아올 때 구입한 것이라 들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이 카메라의 각별한 내력을 말했으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자가 2층으로 올라가 알루미늄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앉아있던 가방이었다.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거기에는 콘탁스와 똑같은 디자인의 카메라가 들어 있었다. 카메라 앞면에는 키릴문자로 киев라는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카메라는 1949년에 생산된 키예프 카메라예요. 생산지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지방이지만 부품은 독일의 드레스덴에서 왔지요.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자 소비에트는 전쟁배상금으로 콘탁스 카메라의 메이커인 자이스 이콘(Zeiss Ikon)을 요구했어요. 공장의 모든 부품과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우크라이나로 이송됐지요. 파견된 드레스덴의 노동자들이 자이스 이콘의 부품을 조립해서 만들었으니 이 카메라는 콘탁스II와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인 셈이지요. 여자는 수건으로 자신의 카메라를 닦았다. 카메라를 만지는 여자의 손놀림은 병든 육친의 몸을 닦아주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 애틋해 보였다. 이 카메라는 제게 존재증명과도 같은 거예요. 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거든요.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었지요. 월남에서 번 돈으로 이 카메라를 샀어요. 지금이야 회사원의 한 달 월급밖에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그 돈이면 읍내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었다고 해요. 어렵게 구입한 카메라지요. 아버지가 월남에서 부쳐온 돈을 큰아버지가 들고나갔었다니까요. 장사를 해보겠다고요. 그 사실을 안 어머니가 읍내의 모든 술집을 뒤졌대요. 동생이 목숨 걸고 번 돈인데 술맛이 나더냐고 꾸짖어 모셔왔대요. 정혼한 사이긴 했지만 결혼 전이고 손위 시숙인데, 어머니는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요. 큰아버지는 하는 일 없이 술과 여자로 평생을 보냈어요. 나쁜 분은 아니에요. 어느 집안에나 그런 무능하고 호방한 큰아들이 있는 법이잖아요. 그때 만약 어머니가 큰아버지를 말리지 못했더라면 제게 유품 같은 건 남지 않았겠지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돌아가시고 저 혼자니까요. 이 카메라 외에는 제 존재를 증명해줄 무엇도 남지 않았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일까. 나와 비슷한 삶의 내력을 갖고 있는 이 여자가 오래전에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혈육처럼 가깝고도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이 사진관으로 온 것도 여자가 카메라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그 막연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무엇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회귀성 어류처럼 내가 태어난 이 사진관으로 흘러들었던 것인지도. 사진관에는 손님이 없었다. 몇 차례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들어와 맥주를 찾았다. 여자는 암실을 이용할 수 있는 사진관이라고 가게에 대해 설명한 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첫 손님은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였다. 주민등록증에 쓸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로 즉석에서 사진을 올린다고 말했다. 여자애는 알고 있다며 한 음절씩 힘주어 말했다.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여자애는 탁자에 앉았다.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검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여자애에게 뜨거운 코코아를 주었다. 커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자애가 중얼거리며 코코아를 홀짝거렸다. 여자애는 기름종이로 이마와 콧등의 유분을 닦고, 콤팩트 퍼프로 꼭꼭 눌렀다. “왜 꼭 필름사진이어야 해요?” “이건 증명사진이니까요. 처음 발급받는 주민등록증이거든요. 원판이 있는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증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숫자와 지명과 이름과 125분의 1초 동안의 모습과 소속된 나라 외에 또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 증명이라는 말이 하나의 역설처럼 느껴졌다. 증명이 목적인 플라스틱 카드는 정작 중요한 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 “저는 디지털 사진을 좋아하지 않아요. 디지털 사진은 원판이 없잖아요. 디지털 사진은 곧바로 확인할 수 있고, 삭제하는 것도 복사도 고치는 것도 쉽지만, 어쩐지 그것들은 떠도는 이미지들처럼 느껴져요. 상이 음각으로 새겨진 필름의 원판은 이를테면 이미지가 깃드는 집 같은 거죠.” 여자애의 오른쪽 눈 아래에 점이 있었다. 작고 까맣고 윤기가 도는 점이었다. 나는 보정을 원한다면 점을 없애주겠다고 했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눈 아래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고 어른들이 빼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저는 이 점이 좋아요. 점도 제 몸의 일부니까요. 사람들은 이 점 때문에 저를 쉽게 기억해요. 아마 아저씨도 그럴걸요.” “사진은 내일 찾으러 와요. 여기서 직접 현상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요.” 사진을 담아두는 봉투를 내밀었다. 여자애는 볼펜을 꾹꾹 눌러가며 자신의 이름을 썼다.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씨였다. 여자애는 이현아라는 이름 옆에 한쪽이 지나치게 부푼 하트 문양을 그려 넣고, 내게 찡긋 윙크를 했다. 여자애가 지갑을 꺼냈다. 첫 손님이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기 암실도 이용할 수 있나요?” “암실에서 직접 현상할 수도 있고, 현상을 맡길 수도 있어요. 스튜디오도 사용할 수 있고요.” “좋은데요.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곧 손님이 늘어날 거예요.” 암실에 누워 있다가 몹시 갈증이 나 밖으로 나갔다. 진열대의 조명등만 켜져 있었다. 여자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들고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암실은 깊은 바다 속 같아요. 햇빛이 닿지 않아 어둡고 추운 곳. 암실에서는 눈을 감아도 떠도 온통 농밀한 어둠뿐이에요. 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이 무서워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요. 거기에 있으면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런데 당신은 왜 그곳에 있나요? 거기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두려움, 고독, 침묵, 약간의 위안, 그리고 나. 암실에 누워 있으면 또 다른 내가 보여요.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예요. 수면에 비친 모습처럼 좌우가 바뀐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해요. 암실에 누워있는 나와 나를 응시하는 나 중에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는 존재하는 걸까. 당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건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주변이죠. 당신이 존재할 수 있는 건 당신을 보고 있는 내가 있기 때문이에요. 불빛을 등지고 있어서 여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여자가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이 거울 속의 내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진 반물질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빅뱅 직후 물질과 반물질이 각각 우주와 반우주를 형성했으며, 이 둘은 서로 맹렬한 속도로 멀어져갔다고 추측했다. 반물질은 물질을 만나는 순간 백만 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로 상쇄되기 때문에 물질계에 있는 우리들은 반물질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맥주잔을 쥐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싶었다. 여자를 향해 뻗은 손을 거두었다. 내 손이 여자에게 닿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사진관에 온 두 번째 손님은 가게로 들어와서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잡은 손을 경쾌하게 흔들었다. 그는 이현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눈에 그가 이현아의 오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현아의 증명사진이 든 봉투를 건넸다. “현아 오빤 거 어떻게 아셨어요? 신기하네. 남매지만 닮은 데가 별로 없거든요.” 굳이 닮았다고 한다면 이미지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아가 다녀가고 난 후 그 다음 손님이 현재였기 때문이었다. 곧 손님이 늘어날 거라던 현아의 말이 불쑥 떠올랐다.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형.” 그는 가방에서 세 통의 필름을 꺼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아마추어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론으로만 접했던 현상·인화 작업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두 개의 필름을 그에게 다시 건넸다. 외형발색 필름이었다. 외형발색 필름은 유제층 안에 발색제가 없어서 필름제조회사에서만 현상할 수 있었다. 암실 수납장 안에는 약품부터 액정에 불이 들어오는 디지털시계, 라텍스 장갑까지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현재가 알고 있는 것은 암실작업의 일반적 과정뿐이었다. “암실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입니다.” “말 놔요, 형.” 현재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암실 작업도 사진 찍는 것과 같아.” 나는 사람들에게 쉽게 말을 놓는 편이 아니었다. 막상 말을 놓고 보니 현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서글서글한 눈매 때문인지, 웃음기 많은 얼굴 때문인지 현재에게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느껴지는 거리감이 없었다. 세이프라이트를 켜자 현재가 암실 문을 닫았다. 작업을 하며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했다. 현재는 손바닥만 한 수첩에 꼼꼼히 적었다. “열심히 이론공부를 해도 직접 찍어보기 전에는 실력이 늘지 않잖아. 암실작업도 그래. 온도와 시간을 지킨다고 발색현상이 잘 되는 건 아냐. 날씨나 환경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온과 습도가 다르니까. 적절한 온도와 시간은 암기가 아니라 감이야. 감을 잡으려면 결국 많이 해보는 수밖에 없어.” 현재는 인화된 사진을 보며 뿌듯해 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인물사진이었다. 수준급인 사진도 더러 있었지만 사진의 노출이 대부분 오버돼 있었다. 현재는 다음 동호회 모임은 이곳에서 갖기로 했다며, 이제부터는 손님이 꽤 늘어날 거라고 했다. 동호회 사람들은 현재와 비슷했다. 제일 먼저 현재가 현아와 함께 왔고,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암실에서 작업을 하거나 각자의 사진을 돌려보았고, 더러는 일찌감치 술판을 벌이는 치들도 있었다. 열 명 남짓 되는 인원이었다. 그들은 나이도 직업도 각색인 듯 보였다. 그들은 내 이름을 부르거나 현재처럼 나를 형이라고 부르며 격 없이 대했다. 그들은 원래는 풍경사진을 주로 찍는,‘미라지Mirage’라는 비교적 큰 규모의 동호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자연 속에 있다고 믿었던 그들은 시야를 좁혔다. 자연으로서의 인간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내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물었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봐달라고 부탁했다. 사람들은 밤늦도록 돌아가지 않았다. 끝까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한 잔 더 해야겠다며 여관방을 잡아 나갔다. 현재가 가게 정리하는 것을 돕겠다고 했지만, 돌려보냈다. 가게 문을 닫고 어질러진 탁자를 그대로 놓아둔 채 암실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신데다가 몸이 몹시 피곤했다. 구석에 접어놓은 침대를 펼치자마자 나는 혼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문소리에 잠이 깼다. 열린 문 사이로 새어든 달빛이 바닥을 은백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내 쪽으로 몸을 숙였다. 내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넣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여자는 내 뺨을 감싸 쥐고 내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사이로 여자의 혀가 들어왔다. 여자는 혀로 내 잇바디를 훑었다. 여자의 혀는 복족류의 속살처럼 차고 부드럽고 미끈거렸다. 가슴이 더워졌다. 나는 팔로 여자의 등허리를 감고 입을 열어 여자의 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잠이 든 체하며 눈을 감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뜨거워진 가슴을 달랬다. 여자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걸어 나가 문을 닫았다. 늦게야 일어나 암실에서 나왔다. 여자의 둥근 등이 보였다. 여자는 암실을 등지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가게 안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자는 내가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속의 색소가 다 바랜 것처럼 여자의 얼굴빛이 창백했다. 당신의 사진에는 색이 없군요. 하나같이 흑백사진뿐이에요. 게다가 당신의 사진은 너무 어두워요. 노출이 부족해요. 노출이 모두 -2스톱이군요. 글쎄요. 저는 적정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슬라이드 필름을 쓸 때에는 노출이 오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배웠거든요. 카메라는 어두운 방이죠. 무언가를 찍기 위해서는 빛이 들어와야 해요. 조리개를 조금만 더 열고 셔터 속도를 늦춰요. 햇빛 때문일까.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 사진을 스크랩하는 여자의 손끝이 투명하게 보였다. 물에 떠 있는 한천질의 자포생물처럼 손가락 아래로 사진이 흐릿하게 비쳤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것이 아니었다. 눈과 코와 입술의 윤곽이 희미해져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여자를 봤다.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을 감았다 뜬 사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다시 탁자를 보자 여자는 여전히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여자를 보자 여자는 싱긋 웃었다. 여자는 자주 사라졌다. 몇 시간 또는 며칠씩 사라지기도 했다. 돌아온 여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가게를 돌봤다. 손님이 점차 늘어서 가게일이 바빴다.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자가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가게 안에 있던 여자가 어느새 연기처럼 희미해져 실루엣으로만 넘늘거리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다. 여자가 완전히 사라지던 날, 현재가 현아와 함께 찾아와 라이트 페인팅 작업을 했다. 사진 관련 잡지에서 루미노그램(Luminogram,光跡사진)에 대한 글을 보고 실제로 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끝에 불이 들어오는 펜 모양의 라이트를 들고 온 현아는 이민 간 친구에게 라이트 페인팅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거라며 몹시 들떠 있었다. 라이트 페인팅은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비교적 단순한 작업이었다. 암실에서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시키고 릴리즈를 연결한 후 세이프라이트를 껐다. 셔터 속도를 Blub에 놓았다. 현아는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으며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셔터를 Blub에 맞추고 1 스톱 부족의 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조사하면 글씨를 쓰고 있는 연출자의 모습이 사진에 나온다. 현아의 작업이 끝난 후 여자가 펜라이트를 들었다. 여자는 허공에 대고 천천히 글씨를 썼다. 제2노출에서 스트로보를 켜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공에 떠있던 라이트펜이 따닥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님들은 여전히 가게로 찾아와 암실을 사용하고 차를 마시고 더러 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누구도 여자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여자가 사라진 후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암실로 들어갔다. 암실은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무기력하게 어둠 속에 누워있었다. 나는 스스로 어둠 속에 갇혔다. 시간은 여전히 흘렀고, 어두울수록 더욱 명징해지는 의식은 여자에 대한 기억을 쫓고 있었다. 문밖에서 경쾌한 멜로디의 허밍이 들려왔다. 처음 내게로 왔던 날처럼 빛에 둘러싸인 채 여자가 앉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며 문을 열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고 텅 비어 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외로움이 불러낸 환영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여자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우주의 반대편에서 달려온 또 다른 나는 아니었을까. 내가 마음을 열려는 순간 물질을 만난 반물질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까. 현상한 라이트 페인팅 사진을 꺼내보았다. 필름의 마지막 장에는 서정주의 시구가 씌어 있었다. 물 위에 뜬 유성물감처럼 글씨의 획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여자가 서 있었을 사진의 오른쪽 모서리 공간은 검은 어둠만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낮은 소리로 시의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바람처럼 사라진 여자는 이 사진 한 장으로 내게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여자가 택한 이별이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다. 언젠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입 맞춘다면, 거리낌 없이 이를 열어 여자가 내민 혀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자의 둥근 어깨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면, 그것은 꼭 지금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 몸이 완전히 스러지고 난 후 먼먼 내생의 어느 날이어도 좋았다. 진열대에는 여자가 남기고 간 키예프 카메라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옆의 콘탁스를 꺼냈다. 노출을 오버스톱으로 다시 맞추고 뷰파인더에 키예프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여자가 자신의 유일한 존재증명이라고 말했던 키예프 카메라는 내게는 여자에 대한 기억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진은 어두운 방에 잠시 스며들었던 빛, 그 빛의 흔적을 기록한 한 장의 루미노그램으로 남을 것이다.(끝) ■ 당선소감 제게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버지가 운영하셨다는 사진관을 스쳐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평범한 상가 2층 건물이었지요. 그 후부터였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아버지의 사진관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에서 예전에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관을 열고 싶었습니다. 유리로 된 진열장에 오래된 사진기가 들어있는 곳. 증명사진을 찍으러온 나이 지긋한 노신사가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웃으세요, 한 마디에 어색한 미소를 짓는 곳. 소읍의 탄생과 죽음과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는 곳. 돈을 벌어도 좋고 벌지 못해도 좋은, 그런 사진관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 사진관을 넣어두고 저는 수시로 꺼내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들도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언젠가부터 사진관 안에는 허약한 식물이 자랐습니다. 제 소설은 결여의 토양에서 결핍의 양분을 먹으며 자랐습니다. 지닌 게 없어도 너무 지독하게는 살지 말자고 제 마음을 다독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미약한 소설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구효서 선생님!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릴 수 있어 기뻐요. 한결같이 제게 여여한 미소를 보여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어요. 가족과 문우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응오씨, 당신은 제 삶에서 만난 가장 큰 행운입니다. 저를 존재하게 하는 건 당신이에요.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우승미 ●약력 1974년 강원도 양구 출생 2003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 심사평 예심을 통과한 9편의 작품은 각기 그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문학도들에게 패기와 정열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삶의 이름으로건 예술의 이름으로건 하나의 진실에 도달하겠다는 의지보다는 ‘소설 같은 소설’ 한 편을 적당히 꾸려내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 아닐까. 그러나 그 가운데 좋은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사위원들이 특별히 주목한 작품은 ‘소년’‘달을 보고 짖는 개’‘펑크로커 실종기’‘빛이 스며든 자리’ 등 4편이었다. ‘소년’은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난 한 소년의 미래없는 삶을 진지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호감을 샀지만, 구성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약점이 있다. 삶에 대한 진실을 움켜 쥘때 문학적 형상화도 함께 따라올 것이다.‘달을 보고 짖는 개’는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솜씨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주제와 구성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잘 만든 이야기, 그러나 너무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반복되는 낡은 이야기에 새로운 진실이 담기기는 어렵다. ‘펑크로커 실종기’는 누아르 서사의 형식 속에 펑크족들의 생활양태를 담은 소설로 문장이 경쾌하고 구성이 치밀했다. 훌륭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그만큼 많았다. 무엇보다도 한 세계의 겉과 속을 심도있게 성찰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려져 있는 문화적 코드들을 조합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펑크족은 펑크족이다.’라는 말 이상의 매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풍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시선에서 온다. ‘빛이 스며든 자리’는 구렁각시의 민담과 피그말리온의 전설을 현대의 사진예술론으로 재해석하는 가운데 현실과 환상을 정교하게 봉합해서 꾸며낸 예술가 소설이다. 새로운 창조의 자리가 아버지의 자리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었다는 주제의 설정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모든 응모자들의 정진을 빈다. 현길언 황현산
  • [열린세상] 남북한을 보는 日의 시각/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기초교육원장

    일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잠시 도쿄에 머무르는 동안 느낀 점이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한·일 두나라 국민 사이의 교감이 이뤄지기까지에는 정부 차원의 문화개방이 주요 역할을 했다. 일본열도를 흔드는 한류가 좋은 보기다. 욘사마 열풍은 바로 그 정점에 있다. ‘겨울연가’를 무려 네 번째 방영하고 있는 NHK는 360억원을 벌었다고 한다. 욘사마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면, 탄산음료건 자동차건, 무엇이든지 엄청난 매출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욘사마 효과는 돈으로 살 수 없을 만치 크다. 일본에서 ‘사마’는 이름 뒤에 붙이는 극존칭이다. 영국의 유명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월드컵 당시 잠깐 존칭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 건 외국인으로 배용준이 유일하다. 조센징 배용준이 욘사마라는 사실은 지난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스미토모생명은 올해 일본의 세태를 반영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樣樣樣樣’-‘욘사마’를 10대 우수작중 하나로 뽑았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2004년 10대 뉴스로 겨울연가를 8번째로 선정했다. 일본인과의 대화에서 겨울연가는 뺄 수 없는 주제다. 욘사마를 얘기하다 보면 일본 여성의 동경심(?)과 남성의 질투심(?)이 교차한다. 남자로서 한국인은 부담을 갖는다. 가부장적 일본사회 못지않게 우리도 남성우위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도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 대국을 일궈냈지만 사회생활에서 선진국이라 하기에는 남성지배적이다. 가업승계와 장인정신이 일궈낸 성공의 이면에 남녀유별의 봉건적 잔재가 그늘로 작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황혼이혼도 남성중심으로 생활이 이뤄지는 가정과 사회 탓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최고에 도달해 있다. 친밀감을 느끼는 비중이 56.7%에 이른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한·일 양국의 관계개선이 앞으로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는 일본이 보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 남한과 북한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TV를 켜면 한국의 모습은 남북 사이에 크게 차이가 난다. 남한보다 북한 소식이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 문제는 북한이 ‘불량국’으로 낙인찍혀 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탈북자나 기아 문제가 자주 다뤄지고 있다. 최근 가짜(?) 유골 송환 사건으로 인해 일본인은 분기탱천해 있다. 일본 정부가 의회를 통해 인권법을 제정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하려는 맥락이다. 과거 식민지 배상으로 일본에 대해 100억달러를 요구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난감해 보인다. 북핵관련 6자회담의 정체로 인해, 현재 북한은 국제사회를 포함하여 한국이나 그 어디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과 원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개방과 개혁 지체가 내부적으로 강온파 사이의 노선갈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의 외부 원조와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체제전환을 위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북한에 대한 인식은 불신 그 자체다. 남한에 대한 호감과는 정반대다. 이렇듯 일본의 남북한에 대한 판이한 시각은 한·일관계의 획기적 개선이 쉽지 않듯 북·일관계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배후에는 일본 지도층의 극우적 민족주의 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문화개방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남북한과 일본 사이의 서로 다른 역사관을 열린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일이다. 서로의 오해를 풀고 이해를 높이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기초교육원장
  • 본사 방문 후쿠무라 日 기쿠치 시장

    본사 방문 후쿠무라 日 기쿠치 시장

    “한국인 무비자 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한·일 민간 교류에 촉매제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20일 서울신문사를 방문한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菊池)시의 후쿠무라 미쓰오(64) 시장은 채수삼 사장과 만나 “일본 정부의 항구적 비자 면제를 위해 제2단계 노력을 펼칠 계획”이라며 그동안 서울신문의 보도 등으로 무비자 운동이 큰 진전을 본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 기쿠치시는 한국인 무비자 운동을 시작한 발상지라고 할 만큼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런 노력들이 쌓여 지난 7월 한·일 제주 정상회담에서 아이치 만국박람회 기간인 내년 3∼9월 한시적 무비자 실시에 합의한 데 이어, 지난 17∼18일 가고시마 정상회담에서도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그는 “2년 전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하루 600통의 항의 메일이 쏟아지고, 경찰이 신변보호를 해주겠다고 할 만큼 반대 여론이 거셌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러나 지난 3월 한국인 학생 무비자가 시행됐을 때는 전혀 항의가 없을 정도로 불과 1년 사이 양국간 교류가 이렇게 깊어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 정부가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올라 57%가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이는 정치가가 이룬 결실이 아니라, 양국 국민이 한류 붐 등 비슷한 정서를 나누고자 한 결과이기 때문에 더 의미가 깊다.”고 평가했다. 후쿠무라 시장은 “하나의 촛불 같은 우리들의 미약한 운동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서울신문을 비롯한 한국인들의 계속적인 도움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채 사장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언론사로서 한·일 국교정상화 40주년을 맞는 내년에 우리가 해야 할 역할에 사명감을 갖고 있다.”면서 “서울신문과 기쿠치시가 협력해 욘사마 이상의 민간 교류 효과를 거두도록 무비자 운동을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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