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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저항의 대학로… 치열했던 ‘청춘들의 행진’

    자유·저항의 대학로… 치열했던 ‘청춘들의 행진’

    문화재라 하면 으레 건축물이나 도자기 같은 것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서울미래유산은 그 폭이 좀더 넓다.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가운데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한다. 영화도 한 카테고리다. 대표적인 것으로 1975년 개봉한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 있다. 소설가 최인호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비판적 사고를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불안과 좌절, 비애, 상실감 등 우울한 자화상을 묘사한 영화다. 1970년대 서울 대학가와 그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영화로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이 됐다.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20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1회 ‘서울의 영화-바보들의 행진’을 준비하면서 이 영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떠올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했다. 젊음과 낭만의 거리라 불리는 대학로가 좋은 사례 중 하나일 듯싶었다. 혜화동로터리에서 이화사거리까지 1㎞ 남짓한 도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대학로는 연극이나 뮤지컬과 같은 공연을 볼 때면 누구나 한 번쯤 들러봤음 직한 젊은이들의 공간이다. 한복판에 있는 마로니에공원을 거닐다 보면 여유롭게 거리공연을 펼치는 악사에서부터 비보잉을 하는 댄서들까지, 자유로운 분위기에 누구나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물론 원래부터 이곳이 대학로라 불린 것은 아니고 공원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이 지역의 근대는 식민지와 함께 왔다. 애초 이곳의 터줏대감은 일제강점기였던 1924년 들어선 경성제국대학이었다. 의학부와 법문학부, 대학본부가 마로니에공원 일대에 있었고 거기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학교 격인 예과가 청량리에 있었다. 이후 서울대가 이곳에 들어선 것은 광복 뒤인 1946년이었다. 법대와 문리대, 의대 등이 마로니에공원과 주변 서울사대부속 초·중교 자리에 자리잡았다.당시 풍경은 어땠을까.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어렴풋하게나마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과 ‘왜 불러’ 등이 영화 전편에 흐르면서 무기한 휴강과 입대, 장발 단속 등 10월 유신의 풍속도가 리얼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차가웠다. ‘왜 불러’뿐만 아니라 극 중 영철의 테마곡인 ‘고래사냥’이 대학가 시위 현장에서 곧잘 불리면서, 두 노래는 결국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감독 자신은 현실과 타협한 영화라고 자조했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렇기에 더 역설적으로 당시를 이해하는 텍스트가 돼 주기도 한다. 실제로 개봉 당시 서울 관객 15만명을 동원하는 등 흥행에도 성공했던 영화에 삽입된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한 박정희 정권은 서울대를 아예 관악산으로 이전해 버린다. 대학로 시절 서울대 주변이 유신체제 반대 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등 학생운동의 중심이 되다 보니 동숭동, 용두동, 종암동, 공릉동 등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단과대들을 당시만 해도 변두리이자 정문과 후문만 봉쇄하면 시위대의 시내 진출을 막을 수 있던 관악산 골프장 터로 몰아넣듯 옮겨버린 것이다. 영화 개봉연도와 같은 1975년의 일이었다.대학로의 변화는 1980년대 들어 더욱 극적으로 펼쳐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신군부는 각종 공안사건을 조작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반대 움직임을 억제하려 했다. 대표적인 게 1982년 벌어진 ‘학림사건’이었다. 학생운동가들이 학생단체를 조직해 사회주의 폭력혁명으로 정권을 붕괴시키려 했다는 사건이었다. 마로니에공원 맞은편에 있는 학림다방에서 첫 모임을 열었다 해서, 또 ‘숲’(林)처럼 무성한 ‘학’(學)생운동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해서 학림사건이라 불렸다. 1985년부터는 이곳의 분위기가 질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의 현장이란 인식이 강했던 이 일대에 정부가 ‘문화예술의 거리’를 조성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서울 곳곳에 있던 문화예술단체와 공연장, 소극장 등을 유치함으로써 자유와 저항의 공간에 낭만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 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의 청년들이 그리고 시민사회가 영화의 분위기처럼 순응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칠 줄 모르는 민주화운동은 끝내 독재를 종식시키고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냈다. 당시 피해자들도 2010년 열린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두환 정권에 의한 조작 사건이라는 결론과 함께. 학림다방은 그런 한국 현대 정치사의 현장이었기에, 나아가 훗날 문학으로 명성을 얻은 이청준이나 김승옥, 황지우, 김지하 등의 단골집이었다. 김민기 등 음악인들의 주요 거처이기도 했다. 학림다방도 2013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됐다. ‘서울대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고도 불렸던 학림다방 입구에 걸려 있는 서울미래유산 동판이 흘러간 옛이야기를 담담하게 증언해 주는 듯싶다. 대학로는 내막을 모르면 그저 로맨틱해 보이기만 하는 문화 예술의 공간이자 맛집들이 즐비한 소비공간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눈앞에 보이는 모습만을 보고는 그 안의 내력이나 사건들 사이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서 있는 아르코미술관과 아르코예술극장, 그리고 옛 샘터 사옥이자 현 공공그라운드 빌딩 또한 생각할 지점을 던져 준다. 적벽돌 외장이 인상적인 이 건물들은 모두 ‘한국 건축의 풍운아’라 불렸던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들이다. 서울대 건축과를 다니다가 6·25전쟁 때 일본 도쿄예대 건축과에 유학해 막 대학원을 수료한 김수근은 이승만 정권 말기인 1959년 29세의 나이로 새 국회의사당 건축설계안 현상공모에서 1등을 차지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작품 가운데 한국인에게 익숙한 게 한둘이 아니다. 잠실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을 비롯해 남산 타워호텔과 자유센터, 세운상가, 워커힐호텔, 옛 국립부여박물관과 청주 및 진주박물관 등이 있다. 단순히 건축 설계만 한 게 아니라 국내 잡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월간 ‘SPACE(공간)’를 창간하고 다양한 예술인들을 후원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197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르네상스의 예술 후원가라 평가받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에 빗대 ‘서울의 로렌초 메디치’라 평하기도 했다. 그에게도 밝은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 역시 그의 작품이었다. 나선형 계단을 설치해 방향 감각을 상실케 하고 피조사자가 투신할 수 없게끔 창문 폭을 15㎝ 정도로 좁게 하는 등 전적으로 고문에 적합하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그 건물 말이다.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극장, 그리고 옛 샘터 사옥은 겉으로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모던함을 유지해 오는 훌륭한 건축물이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인간 내면의 복잡다단한 면에 대해 성찰하게끔 유도하는 경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이번 그랜드 투어의 마지막 방문지는 서울대병원이었다. 1907년에 건립된 옛 대한의원은 광복 뒤 경성의전과 통폐합돼 현재 서울대 의대로 바뀌어 있고 그 병원은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1922년 의학 실험에 희생된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겠다며 설치한 ‘실험동물공양탑’은 이번 투어의 압권 중 하나였다. 말 못하는 짐승을 위해서도 공양탑을 세웠던 이들의 마음을 자비롭다고 해야 할까. 서울 대학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적이 있다. 2008년 말 한국방송통신대학 맞은편에 위치한 한 건물을 철거하면서 14구의 유골이 발견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석 달에 걸쳐 정밀분석한 결과 유골의 주인공이 14명이 아니라 28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젖먹이의 유골도 3구나 됐다. 과연 그 뼈들의 주인공은 누구이며 왜 그곳에 집단으로 묻힌 걸까. 해답은 ‘그 땅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의전 해부학교실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더더욱 실험동물공양탑은 의외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실험동물의 목숨도 함부로 하지 않던 이들이 정작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인종적이며 체질적인 차이를 조사하는 등 몰인권적인 우생학과 인종론의 기초를 다지기 위한 연구도 진행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보여 주는 이미지가 묘사 대상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우리가 맞닥뜨리는 여러 사안들도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다가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 또 반대로 호기심과 지속적인 문제의식을 견지한다면 묘사된 풍경 너머의 맥락을 이해하는 길에 가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바보들의 행진’은 언뜻 보면 명랑한 청춘극 같지만 자세히 보면 비극보다 더 진한 슬픔을 자아내는 영화이고 일견 로맨틱해 보이는 대학로이지만 그 속엔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던 이들의 정열이 녹아 있다. 글 권기봉 ‘다시, 서울을 걷다’ 저자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12회 돈의문 주변 ●출발일시 : 8월 15일 오전 10시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부산행 출연’ 이상옥, 췌장암 투병 중 28일 별세...향년 46세

    ‘부산행 출연’ 이상옥, 췌장암 투병 중 28일 별세...향년 46세

    영화 ‘부산행’에 출연한 배우 이상옥이 췌장암 투병 중 지난 28일 별세했다. 향년 46세. 29일 연예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췌장암 말기로 투병 생활을 하던 배우 이상옥은 최근 상태가 악화돼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생전 영화 ‘소원’, ‘맨홀’, ‘손님’, ‘순정’, ‘부산행’ ,‘가려진 시간’, ‘판도라’, ‘여고생’, ‘장산범’ 등 다수 영화와 무대에 오고가며 꾸준한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빈소는 서울 혜화동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0일 정오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100주년 혜화동본당 앞마당 ‘성 베네딕도 광장’으로 재탄생

    오는 2027년 설립 100주년을 맞는 서울 혜화동본당 앞마당이 ‘성 베네딕도 광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100여년 전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터를 닦아 ‘분도터’로 불리다가 제 이름을 찾은 셈이다. 혜화동본당(주임 홍기범 신부)은 최근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의 주례로 성 베네딕도 광장 축복식을 거행했다. 한국천주교회 본당 중 ‘광장’ 개념을 도입하기는 처음이다. 본당은 광장 공사를 하면서 아스팔트 경사로였던 앞마당을 화강석으로 포장해 평탄하게 만들었다. 성당 옆 주차장에 있던 루르드 성모상도 광장으로 옮겨 성모동굴로 조성했다. 성모동굴 오른쪽엔 새로 단장한 담벼락을 따라 십자가의 길이 펼쳐지도록 꾸몄다. 축복식에 앞서 열린 미사에서 손희송 주교는 “광장은 차이를 극복하고 화합을 이루는 곳”이라며 “성 베네딕도 광장에서 신자와 시민들이 생각과 이념이 다르더라도 모두 하느님 자녀라는 믿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1927년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터에 설립된 혜화동 본당은 서울대교구에서 중림동 약현본당, 명동본당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된 본당으로 2006년 서울시에서 첫 번째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등록됐다. 설립 90주년을 맞은 2017년부터 환경 개선을 시작해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 성체조배실 등을 리모델링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고 박원순 떠난 가회동 시장 공관, 내년 4월까지 빈채로

    고 박원순 떠난 가회동 시장 공관, 내년 4월까지 빈채로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유족들이 서울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떠날 예정으로 서울시장 공관은 내년 4월 다음 시장 선출 전까지 비어있게 된다. 서울시 및 장례위원회 측은 19일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 여사와 유가족들은 이사를 위해 다른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규정에는 시장 궐위 후 공관을 비워야 하는 기간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유가족들은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도록 빠르게 이사를 한다는 계획이다. 공관은 시정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유가족도 공관에 더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다만 박 전 시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유가족들은 이사를 준비하지 못해 아직 어디로 이사할지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박 전 시장은 2015년 2월에 은평구 공관을 떠나 종로구 가회동 소재 단독주택으로 공관을 이전했다. 가회동 공관은 대지 660㎡ 규모로 방 5개, 회의실 1개, 거실 1개, 마당을 갖췄다.처음에 박 전 시장은 혜화동 공관을 사용했으나 서울성곽 보존을 위해 비운 뒤 은평뉴타운에 임시로 거주하다 가회동 공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33년간 서울시장 공관으로 사용됐던 혜화동 주택은 현재 전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박 시장은 시장 임기 초에 혜화동 공관에서 자택 개방과 같은 공개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는 지난 9일 오전 10시44분 검은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멘 채 가희동 공관을 나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권한대행으로 시장의 업무를 대신하지만 규정에 따라 시장의 인적·물적 자원은 활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서 부시장은 공관도, 6층 시장 집무실도 사용하지 못한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정진석 추기경 이름 딴 특별서가 모교에 조성

    정진석 추기경 이름 딴 특별서가 모교에 조성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의 이름이 들어간 특별 서가가 모교인 서울 중앙고에 조성됐다. 14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중앙고는 최근 도서관에 정진석 추기경 특별 서가를 마련, 정 추기경의 역서와 저서 58권을 포함해 교회 관련 서적 등 총 99권을 전시했다. 서가 조성은 김종필 중앙고 교장과 중앙교우회 전 사무총장인 이정면 사람·터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가 맨 위엔 빨간 수단 차림의 정 추기경 사진이 걸렸고 그 아래에 정 추기경의 표어와 문장, 약력이 소개돼 있다. 도서관 입구에는 ‘나를 키운 건 중앙고등학교 도서관이었다’라는 정 추기경의 말을 새겼다. 김 교장은 “정 추기경이 2008년 중앙고 설립 100주년 때 미사를 봉헌하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후배들을 위해 일정 금액을 기탁했다”며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정 추기경은 최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집무실에서 열린 저서 기증식에서 “학창 시절 중앙고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한 권씩 읽었다”며 “학교에 서가가 조성돼 영광”이라고 했다. 정 추기경은 1944년 중앙학교에 입학해 1950년 41회로 졸업했다. 신학교 문예부 시절 동료 사제와 매년 책을 한 권씩 내기로 약속한 정 추기경은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며 매년 저작을 이어 오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인사] 산림청, 중앙일보, 우리은행, 부산도시공사

    ■ 산림청 ◇ 과장·팀장급 전보 △ 산림환경보호과장 조준규 △ 법무감사담당관 권장현 △ 정보통계담당관 강대익 △ 국유림경영과장 박현재 △ 산림일자리창업팀장 김진아 △ 백두대간보전팀장 김성만 △ 산림교육원 재해방지교육과장 이종근 △ 춘천국유림관리소장 김주미 ■ 중앙일보 ◇ 보임 △ 뉴스룸 및 편집국 정책디렉터 겸 복지행정팀장 겸 복지전문기자 신성식 △ 〃 국제외교안보디렉터 차세현 △ 〃 사회디렉터 겸 시민사회환경연구소장 김원배 △ 〃 사회 부디렉터 겸 EYE1팀장 염태정 △ 〃 EYE2팀장 홍주희 △ 〃 경제EYE팀장 문병주 △ 〃 사회2팀장 장정훈 △ 〃 내셔널팀장 김형구 △ 〃 내셔널 부팀장 최경호 △ 〃 산업2팀장 겸 과학전문기자 최준호 △ 〃 경제정책팀 부동산선임기자 안장원 △ 〃 문화팀장 이지영 △ 〃 문화팀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 〃 콘텐트제작에디터 서승욱 △ 뉴스제작국 ECHO팀장 강정진 ■ 우리은행 ◇ 임원(상무) △개인그룹 겸 디지털금융그룹 박완식 △DT추진단 황원철 △투자상품전략단 심상형 ◇ 본부장 △자산관리그룹 신균배 ◇ 소속장급 승진 <금융센터 기업지점장> △가락중앙 구옥분 △가산IT 이종찬 △도산대로 이승민 △무역센터 채수길 △문정중앙 허진 △법조타운 구은아 △서여의도 노검래 △서초 서병운 △선릉 김상필 △송파 김종학 △신사동 이중엽 △양재남 조일형 △테헤란로 진용두 △남동공단 신상원 △부평 장승욱 △분당중앙 김태섭 △오창 양희성 △부전동 황상수 △울산중앙 신환철 △창원공단 권아섬 △성서 정승윤 △광주 한정수 <지점장> △구로구청 김동현 △글로벌투자지원센터 김건우 △길동 명신욱 △까치산역 이희정 △목동중앙 김정훈 △은평뉴타운 엄창용 △혜화동 최영선 △덕소 정재륜 △수지동천 이상성 △화성정남 이준석 △대전무역회관 박은서 △논산 김태영 △대천 김종섭 △강릉 채수명 △부암동 배한철 <기업영업본부 기업지점장> △본점2 한백수 △중앙 정규석 △종로 권오희 △남대문 임소연 △미래 김효순 <중견기업전략영업본부 기업지점장> △함지석 △김태진 <본부부서 부장> △개인고객부 김광연 △고객센터 김기환 △디지털사업부 이창재 △투자금융부 김홍익 △자금부 예희승 △직원만족센터 정장훈 △여신정책부 공종남 △대기업심사부 이상헌 △여신관리부 정영호 △리스크총괄부 박연호 △비서실 홍성훈 △준법감시실 이동민 <지점장 대우> △두바이 조병조 <해외파견> △베트남우리은행 박종희 <연수> △기상일 △지여옥 △김정심 △백수아 △최윤정 △김희준 △손주현 △도미경 △이연아 △오은주 △임향순 △이소연 △차은영 △오윤경 △임선주 △박은영 △이순선 ◇ 소속장급 이동 <금융센터장> △가든파이브 양진모 △강남대로 변의갑 △문정중앙 정승수 △수서역 이원재 △동백 조주현 △롯데월드타워 허기철 <금융센터 기업지점장> △남역삼동 이영민 <기업영업본부 기업지점장> △강남 전준성 <지점장> △가산디지털중앙 이무진 △노량진 김성훈 △서초역 박광욱 △홍제동 김용정 △TC프리미엄강남센터 박승안 △권선 전수일 △김포구래 박창욱 △매탄동 반석용 △수지 최호열 △천안청수 조선주 △시드니 홍의석 △다카 김동헌 △두바이 황규호 <영업본부 지점장> △대구경북서부 이상석 <지점장 대우> △TC프리미엄강남센터 박일건 <본부부서장> △개인고객부 박봉순 △영업추진센터 김동성 △빅데이터사업부 이송희 △AI사업부 전유승 △디지털사업부 한재철 △스마트고객부 윤희준 △자산관리사업부 김영봉 △연금사업부 강용재 △투자상품전략부 최영민 △주택기금부 최종현 △기업고객부 송윤홍 △중소기업지원부 정창화 △외환사업부 차재헌 △증권운용부 최준연 △글로벌IB심사부 이태훈 △준법감시실 한창식 △법무실 장환 <본부부서 부장> △DT추진단 고원명 △디지털사업부 김종우 △신용리스크관리부 김성준 △검사실 김동완 △검사실 심근섭 <해외파견> △우리파이낸스미얀마 김진회 △홍콩우리투자은행 이수진 <지주사파견> △정찬호 <연수> △전필식 △배연수 △곽훈석 △박성봉 △성병규 △김인철 △김학빈 △김호상 ■ 부산도시공사 ◇ 2급 승진 △ 기획관리실장 정재현 △ 토목안전처장 이남기 △ 주택사업처장 이상재 ◇ 3급 승진 △ 혁신기획부장 김대견 △ 분양2부장 손연철 △ 단지기획부장 권현욱 △ 조경사업부장 김장부 △ 주택사업1부장 이상훈 ◇ 부장 전보 △ 안전기술부장 송원섭 △ 시설관리1부장 형남진 △ 개발사업부장 박현수
  • [리뷰] 자갈밭으로 그어놓은 무대, 경계의 삶을 말하다…연극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리뷰] 자갈밭으로 그어놓은 무대, 경계의 삶을 말하다…연극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아주 작은 무대를 둥그렇게 둘러싼 조그만 자갈들이 방석이 놓인 객석 바닥에서도 밟힌다. 같은 높이의 바닥을 쓰는 한 공간에 놓여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래도 자그마한 돌멩이들이 잔뜩 모여 무대와 관객들과의 분명한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서울 대학로의 소극장 ‘혜화동 1번지’에서 막을 올린 연극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 무대의 모습이다. ‘서씨’의 삶도 자갈로 둘러싸인, 경계에 놓인 길과 같았다. 공부가 좋고 하고 싶었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중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안일에 소모된다. 열 아홉에 동네 대학생 오빠에게 풋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가족들을 위해 보리 두 섬을 받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하도 배를 곯아 동네 무당 ‘만신’ 집에서 일을 해주고 먹을 거리를 받아와 입에 풀칠을 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남편의 구박과 폭력이다. 무대를 감싸고 있는 자갈밭을 밟고 또 밟는다. 언제부턴가는 온 몸이 베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린다. 서씨를 괴롭히는 까끌거리는 자갈들을 떨쳐내기 위해선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고, 만신을 말한다. 그런데 서씨에겐 금쪽같은 아들이 있다. 무당집 아들이란 멍에를 씌울 순 없어 자양강장제와 약을 입에 털어놓으며 버티고 버텼다. ‘서울대는 따 놓은 당상’으로 수재인 아들의 대입 시험날 마지막 안간힘을 내고 일어서 밥을 해먹이려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서씨를 짓누르던 온갖 돌덩이들이 한꺼번에 아들에게로 옮겨진다. 결국 서씨는 쓰러져버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내림굿을 받기로 한다. “아이야, 아이야, 걱정 말어라. 내 가거등 너는 살어 근심 말어라”라는 처연한 서씨의 목소리와 힘 없는 몸짓이 돌멩이들로 그려놓은 무대 안을 뱅글뱅글 돈다.소극장에서 한 시간 남짓 이어지는 사실상 1인극에 가까운 배우 김현정의 연기는 이 작품의 무대 만큼이나 가끔 현실과 극의 경계를 오간다. “지금부터 배우 김현정이 아니다”라며 서씨를 연기하기 시작했다가 극이 끝난 것이 맞는지 두리번거리게 되도록 막이 내린다. 서씨의 전라도 사투리와 김현정의 서울말이 뒤섞이기도 하고 극 속 연출(김진곤 분)과 극단 막내(황인덕 분)가 그리는 역할도 신선하다. 배우 김진곤은 기타를 쥐고 극의 배경음악을 채우기도 하고 기타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며 서씨와 대화하기도 한다. 때때로 모호하고 경계가 불분명한 인생의 흐름을 무대와 배우들의 역할로 강조한 것으로도 읽힌다. 지금 이 장면은 현실일까 연기일까, 돌멩이 몇 알이 밟히는 작은 객석이지만 무대를 바라보는 동안 곱씹게 되는 것도 생각하게 되는 것도 은근히 많다. 극단 프로젝트 해의 창단 작품인 ‘열 두 대신에 불리러 갈 제’는 주정훈의 2009년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수수하지만 깊이있는 배우의 연기를 눈맞춤하며 집중해 보게 되고, 거문고로 시작돼 기타의 음율로 채워지는 배경이 차곡차곡 마음을 채운다. 5일까지 혜화동 1번지에서 막을 연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코로나로 지친 종로 구민들, 반려식물 키우며 달래 봐요

    서울 종로구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위축된 저소득 주민의 정서적 안정과 건강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반려식물과 건강음료 등을 제공한다고 11일 밝혔다. 혜화동주민센터에서는 19일까지 기초수급자, 차상위계층, 한부모가정 등을 대상으로 ‘반려식물’을 전달한다. 식물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주민들이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실내 미세먼지 감소와 공기정화 효과로 건강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종로1·2·3·4가동주민센터는 코로나19로 끼니를 제때 챙기기 어려운 형편의 어르신을 위해 지난 1일부터 3일간 건강음료 두유를 전달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대학이 사라진 자리… 청춘의 고뇌가 추억 되어 켜켜이

    대학이 사라진 자리… 청춘의 고뇌가 추억 되어 켜켜이

    대학로에는 대학이 없다. 인근 성균관대생이나 방송통신대생이 들으면 크게 노할 주장이다. 그러나 대학로에는 대학로를 잉태하게 한 대학은 없다. 더 슬픈 것은 대학로에 대학이 있었다는 역사적 실체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로, 한때 이 땅의 최고 지성들이 똬리를 틀었던 곳, 그러나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대학로는 현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혜화동, 명륜동 일대, 옛 서울대 문리대 캠퍼스 주변을 말한다. 상대나 공대가 주목을 받기 전 이른바 낭만의 시대, 사람들은 문리대가 대학의 중심인 줄 알았다. 당연히 이 땅의 젊은 수재들은 문리대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울대 문리대가 있었다. ‘문리대’란 말은 이 땅의 지식인들에게 묘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몹시도 가난했던 1960, 70년대 그 시절을 주름잡았던 한국의 주역들은 대개 문리대 출신이었다. 정치인은 너무 많아 언급조차 어렵다. 문학과 지성(문지) 창간 4K로 불리던 김병익, 김현, 김치수, 김주현이 그렇고 미학과에 다녔던 김민기가 그렇다. 4·19세대의 좌절과 슬픔을 노래한 시인 김광규도 문리대 출신이다. 이처럼 당시 문리대는 곧 이 땅의 지성과 동일시되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학로를 곧 서울대 문리대의 고향 정도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앗아 간다. 하지만 문리대 옛터는 이제 서울미래유산만이 화려했던 과거를 증거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로에는 이 땅의 남녀노소 누구나 한 번쯤 가 봤을 명소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그 명소들은 이제 과거에서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누가 뭐래도 그 첫 번째는 일찌감치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학림다방이다. 별칭이 문리대 제3강의실이다. 서울대 문리대의 축제인 학림제가 이 다방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그럴듯한 설이 있을 만큼 상징성이 크다. 1956년 문을 연 다방은 6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보란 듯이 남아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다. 여러 사람을 거쳐 80년대 이후 이충렬씨가 경영하다가 지금은 아들인 영우(28)씨가 다방을 지키고 있다.학림에 관한 숱한 전설은 워낙 넘쳐 지면이 부족해 보인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1956년, 학림다방’이라는 간판의 아우라에 사로잡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쁘다. 영화 ‘강원도의 힘’, ‘번지점프를 하다’도 이곳에서 촬영됐다. 사람들은 이곳에 와 커피를 마신다기보다는 선배 세대들의 추억을 마시게 된다. 이십대 젊은 사장이 맡고 난 뒤부터 아버지 세대의 슬픔을 공감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그 시절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많았다. 학림에는 이 땅의 정치, 문학, 예술인들의 지도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방명록에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은 안 잊었노라’는 홍세화의 글과 ‘그 이름 오래 이어지소서’라는 고은의 글이 눈길을 끈다. 노무현의 친필도 남아 있다. ‘오늘 또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기쁩니다.’ 역시 노무현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가수 김민기씨와 함께 얘기하다 갔다”고 주인이 기억을 더듬었다. 속이 출출하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진아춘(進雅春). 그 시절 문리생들의 신입생 환영회, 종강 파티, 졸업 사은회가 단골로 열렸던 중국집,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25년 문을 연 진아춘은 학림과 함께 대학로를 대표하는 가게다. 100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을 대학로와 함께했다. 산둥성 출신 화상인 주인 형원호(65)씨가 30년 넘게 꾸려 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힘들다.” 주인장의 목소리에는 ‘우아한 봄을 선사한다’는 낭만적인 가게 이름과는 대조적으로 수심이 배어 있다. 대학로의 무게를 더하는 것은 또 있다. 바로 건축가 김수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건축가인 김수근은 유독 대학로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래서 건축계는 대학로를 ‘김수근밸리’라고 부른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부근에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대부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짧은 생을 살다 간 김수근은 평생 벽돌과 담쟁이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벽돌과 담쟁이를 오브제로 탄생됐다. 경동교회가 그렇고, 공간 사랑(현 아라리오뮤지엄)이 그렇고, 드물게 지어진 단독주택 세검정 세이장도 벽돌과 담쟁이로 처리돼 있다.그중 대학로의 랜드마크는 당연히 공공그라운드(구 샘터 사옥)이다. 1979년 완공된 샘터 사옥은 적벽돌과 담쟁이로 처리돼 따스함과 포근함을 주는 김수근의 걸작이다. 역시 김수근의 작품인 아르코미술관(구 문예회관)의 벽면에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벽돌은 보는 이에게 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이 자리한 대학로에는 60, 70년대 가난한 나라의 지성들의 슬픔이 진하게 숨겨져 있다.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며 샹송을 노래하고 민주주의를 외친 이 땅의 장년 세대들의 좌절과 슬픔, 고뇌가 녹아 있는 곳이다. “입학 당시 대학로 중간에는 개나리꽃이 무성하던 실개천이었습니다. 문리대 교정은 대학로 중간쯤에 있던 다리에서 시작됐고 당시 문리생들은 볼품없던 시멘트 다리를 미라보 다리로, 실개천을 센강이라고 부르며 파리를 동경했습니다. 아침부터 술에 취한 채 다리 밑에 떨어져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문리생들도 많았습니다. 마로니에가 무성하면 그 그늘 밑에서 헤리 벨라폰테와 손시향의 노래를 불렀죠.” 대학로를 배경으로 한 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로 널리 알려진 김광규 시인의 회고다. 시인은 “지금은 없어진 쌍과부집에 가서 막걸리를 퍼마시거나 아니면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 학림에 가서 죽치고 앉아 LP판을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며 “그때 들었던 베니아미노 질리의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생생하다”고 덧붙인다. 대학로 중심 마로니에 공원 일대는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연극촌으로 자리매김했다. 관악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 서울대의 모습을 축소시켜 재현해 놓은 청동모형만 그 옛날 마로니에가 무성하던 시절을 증언해 준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귓가에 속삭여 줄 사람은 가고 어디에도 없다. 정신의 리버럴리즘을 추구하던 고단한 몸짓은 이제 더이상 이곳에서 찾기 어렵다. 별을 보고 길을 찾았던 시대는 행복했다는 루카치의 한 구절이 남루하다. 짙푸른 플라타너스는 옛사랑이 피를 흘린 곳에서 제 무게에 겨워 넓은 잎을 늘어뜨리고 있고 마로니에의 풍성한 그늘에서는 버스킹을 하는 십대들의 노랫소리만 허공에 맴돈다. 학전소극장 부조에 새겨진 요절 가객 김광석의 노래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중략…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그렇다. 머물러 있는 청춘은 없다. 우리 모두 매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초여름 햇살이 마로니에 공원에 뭉텅뭉텅 쏟아지고 있다. 글 김동률 서강대 교수(매체경영)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노동자의 삶, 매일이 절벽 끝…내가 있는 곳이 高空이다

    노동자의 삶, 매일이 절벽 끝…내가 있는 곳이 高空이다

    426일 최장 고공농성 ‘파인텍’ 배경 땅 복귀 뒤 더 처절한 가족의 삶 담아“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지하 소극장을 빠져나와 밤거리를 밝히는 빛이 보이는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100분 남짓 이어진 작품은 끔찍하게 현실적이었고, 간간이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는 대목은 너무 처절해서 더욱 슬펐다.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모든 일상이 벼랑 끝인 노동자들의 삶을 무대로 고스란히 옮겨 왔다. 이야기는 426일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 기록을 쓴 ‘파인텍 농성’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 섬유회사 스타플렉스의 자회사 파인텍 소속 노동자들은 2017년 11월 모회사의 공장 가동과 노동자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농성을 이어 왔다. 이 농성은 지난해 1월 11일 노사의 극적 교섭을 통해 일단락됐다. 작품은 고공 농성자가 땅으로 내려온 이후의 삶을 그렸다. 남편이 굴뚝 위에서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동안 아내 정화는 마트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두 아이를 키우며 또 다른 한국 노동 현실 속에 있었다. 무대의 배경은 ‘수입맥주 4캔 만원’ 광고 문구와 작동하지 않는 가짜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된 편의점뿐이다.배우들은 정화와 굴뚝에서 내려와 세상과 단절한 채 자신만의 독방 속에 갇혀 사는 남편과 어린 두 아이의 삶이 걸린 정화의 편의점 안과 밖을 오가며 극을 이끈다. 굴뚝이 있는 공장이나 극한 대치 상황을 벌이는 노사 분규의 현장은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다. 목숨을 건 투쟁을 펼친 남편은 정작 자신만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깊은 우울증에 시달린다. 낮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서, 밤에는 배달 일을 하는 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보람은 떼인 추가 임금을 받기 위해 정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정화는 보람이 준 체불임금 관련 서류를 점장에게 전하지 않고 망설인다. 이런 사정을 모두 다 아는 점장은 정화를 중간 관리직인 ‘매니저’로 높여 부르며 월급을 인상하고 편의를 봐줄 테니 보람의 일은 모른 척하라고 압박한다. 정화네의 어려운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방문 학습지 교사 선영은 지국장의 회비 수령 독촉에도 석 달치 회비가 밀린 정화에게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정화와 보람, 선영은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한국 노동계의 현실을 표출한다.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대사 “이게 마지막이야”는 지키지 않을 약속을 반복하는 자본가, 노동자를 지켜 주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그리고 늘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팍팍한 노동자의 삶을 의미한다. 이달 31일까지 편의점 불을 켜 둔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리뷰]모든 일상이 벼랑 끝인 노동자의 삶…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리뷰]모든 일상이 벼랑 끝인 노동자의 삶…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지하 소극장을 빠져나와 밤거리를 밝히는 빛이 보이는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희극인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 100분 남짓 이어진 작품은 끔찍하게 현실적이었고, 간간이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는 대목은 너무 처절해서 더욱 슬펐다. 서울 혜화동 연우소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모든 일상이 벼랑 끝인 노동자들의 삶을 무대로 고스란히 옮겨 왔다.이야기는 426일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 기록을 쓴 ‘파인텍 농성’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 섬유회사 스타플렉스의 자회사 파인텍 소속 노동자들은 2017년 11월 모회사의 공장 가동과 노동자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며 75m 높이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 올라 농성을 이어 왔다. 이 농성은 지난해 1월 11일 노사의 극적 교섭을 통해 일단락됐다. 작품은 고공 농성자가 땅으로 내려온 이후의 삶을 그렸다. 남편이 굴뚝 위에서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동안 아내 정화는 마트와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두 아이를 키우며 또 다른 한국 노동 현실 속에 있었다. 무대의 배경은 ‘수입맥주 4캔 만원’ 광고 문구와 작동하지 않는 가짜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설치된 편의점뿐이다. 배우들은 정화와 굴뚝에서 내려와 세상과 단절한 채 자신만의 독방 속에 갇혀 사는 남편과 어린 두 아이의 삶이 걸린 정화의 편의점 안과 밖을 오가며 극을 이끈다. 굴뚝이 있는 공장이나 극한 대치 상황을 벌이는 노사 분규의 현장은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는다.목숨을 건 투쟁을 펼친 남편은 정작 자신만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깊은 우울증에 시달린다. 낮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카페에서, 밤에는 배달 일을 하는 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보람은 떼인 추가 임금을 받기 위해 정화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정화는 보람이 준 체불임금 관련 서류를 점장에게 전하지 않고 망설인다. 이런 사정을 모두 다 아는 점장은 정화를 중간 관리직인 ‘매니저’로 높여 부르며 월급을 인상하고 편의를 봐줄 테니 보람의 일은 모른 척하라고 압박한다. 정화네의 어려운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방문 학습지 교사 선영은 지국장의 회비 수령 독촉에도 석 달치 회비가 밀린 정화에게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정화와 보람, 선영은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한국 노동계의 현실을 표출한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대사 “이게 마지막이야”는 지키지 않을 약속을 반복하는 자본가, 노동자를 지켜 주지 못하는 근로기준법, 그리고 늘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팍팍한 노동자의 삶을 의미한다. 다음 달 5일 열리는 백상예술대상에서 연극상 부문과 여자 최우수 연기상 부문 최종 후보(배우 이지현)에 이름을 올렸다. 이달 31일까지 편의점 불을 켜 둔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조계종, ‘PD수첩’ 나눔의 집 폭로 예고에 “일방적 발언 편집·왜곡”

    조계종, ‘PD수첩’ 나눔의 집 폭로 예고에 “일방적 발언 편집·왜곡”

    대한불교조계종은 1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시설인 경기 광주시 소재 나눔의 집으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MBC ‘PD수첩’은 지난 18일 ‘나눔의 집에 후원하셨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예고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서 나눔의 집 직원들은 “단 한 푼도 할머니에게 쓰이는 병원비나 간병비를 지출한 적 없다” “후원금 들어온 건 다 조계종 법인으로 들어간다” 등의 내부 고발을 했다. 이에 조계종 측은 19일 입장문을 내고 “‘PD수첩’은 자극적인 용어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인 발언을 교묘히 편집해 예고영상을 게시했다”며 “이런 주장들은 전혀 사실이 아닌 일방의 왜곡된 내용임을 밝힌다”고 주장했다. 이어 “PD수첩은 ‘조계종 법인’이란 어디를 칭하는 것인지 명백히 밝혀야 하고, 후원금이 ‘조계종 법인으로 들어간다는 주장’의 근거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무엇을 근거로 조계종의 큰 그림이란 용어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그 근거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나아가 방송에 출연한 제보자들 또한 후원금이 조계종 법인으로 들어간다는 주장에 대해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혀주시기 바란다”며 “만약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허위의 사실을 방송을 통해 공표한 행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법적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계종 측은 “금번 ‘PD수첩’의 나눔의 집과 관련한 왜곡 취재 및 방영은 오랜 시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활터전이자 안락한 노후를 지원하고자 했던 나눔의 집 전체의 노력들을 폄훼하는 행위와 다름 아니다”라며 “나눔의 집 운영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서는 광주시, 경기도 감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차분히 그 결과를 기다리며 향후,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면서도 투명한 방식으로 의혹을 해소해 나갈 것이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나눔의 집은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지원하고자 조계종 스님들의 지원을 통해 서울 마포구에 설립된 이후 명륜동, 혜화동을 거쳐 1995년 경기 광주시 퇴촌면에 자리를 잡았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나눔의 집 130억 현금·부동산…후원금 할머니들 위해 안 쓰여” 내부고발 논란

    “나눔의 집 130억 현금·부동산…후원금 할머니들 위해 안 쓰여” 내부고발 논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시설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 직원들로부터 시설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김대월 학예실장 등 나눔의 집 직원 7명은 19일 보도자료를 내고 “나눔의 집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임을 내세우며 할머니들을 안전하고 전문적으로 돌보는 전문요양시설이라고 광고했지만, 실상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무료 양로시설일뿐 그 이상의 치료나 복지는 제공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인이 채용한 두 명의 운영진에 의해 20여년간 독점적으로 운영됐고 운영진은 할머니들의 병원 치료비, 물품 구입 등을 모두 할머니들 개인 비용으로 지출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법인이 막대한 후원금을 모집해 60억원이 넘는 부동산과 70억원이 넘는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 문제가 그대로 방치된다면 국민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한 돈은 대한불교조계종의 노인요양사업에 쓰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 학예실장 등은 지난 3월 10일 국민신문고에 ‘나눔의 집에서 후원금을 건물 증축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한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김 실장 등의 내부 고발에 대해 운영진의 한명으로 지목된 나눔의 집 시설장인 안신권 소장은 강력 반발했다. 안 소장은 “후원금은 모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복지사업과 기념사업, 추모사업에만 쓰였고 법인을 위한 별도 사업에 사용된 후원금은 전혀 없다”며 “역사관, 생활관 증축 등은 국도비로 모자라는 부분을 후원금에서 보탰으며 이 또한 할머니들을 위한 사업이라고 판단한다”고 반박했다. 나눔의집 측은 “현재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며 “차후 관련해 입장문을 낼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조계종으로 기부금이 간다는 직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1원도 흘러간 적이 없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조계종 측도 “현재 조계종 스님들이 이사진으로 있어서 오해가 있는 것 같다”라며 “(나눔의집은) 절대 조계종 쪽으로 후원금이 들어올 수 없는 독립법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앞서 나눔의집 직원들은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운영진 A씨를 고발했으며 이에 경기 광주경찰서가 A씨를 입건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어 경기도에서도 나눔의집 법인이 후원금을 유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 13일부터 3일간 특별지도점검을 하기도 했다. 불교계를 중심으로 한 건립 추진과정을 거쳐 1992년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나눔의집은 서울 명륜동, 혜화동을 거쳐 1995년 현재의 경기 광주시 퇴촌면에 자리를 잡았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110년 만에 공개된 獨수도사들의 ‘한국문화재 컬렉션’

    110년 만에 공개된 獨수도사들의 ‘한국문화재 컬렉션’

    1900년대 초반 혼례복·무성영화 확인 김대건 신부 성해 관련 문화재도 보관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초대 총 아파스(수도원 총장)는 1900년대 초반 한국을 방문하면서 무성 기록영화 ‘한국의 결혼식’을 찍었다.당시 신랑 신부의 혼례복 실물은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선교박물관에 남아 있다. 이곳에는 김대건 신부의 성해(聖骸)와 관련된 ‘유해증명서’와 ‘성해주머니’도 보관돼 있다. 이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뜻깊은 성과로 꼽힌다.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6년과 2017년 2년에 걸쳐 독일 현지에서 조사한 수도원 선교박물관의 한국문화재 연구 성과물을 담아 15번째 ‘국외한국문화재총서’를 발간했다고 18일 밝혔다. 상트 오틸리엔 선교베네딕도회 소속 선교사들은 1909년부터 성베네딕도수도원(현 혜화동 가톨릭대 자리)에 파견돼 활동했다. 수도권 선교박물관은 이때부터 수집한 한국문화재 1021건(1825점)을 소장하고 있다. 총서는 베버 총 아파스가 1911년과 1925년 방한 때 수집한 문화재를 중심으로, 수집품 373점과 더불어 소장품이 등장하는 도서 및 영상물 등 관련 자료를 충실히 정리했다. 총서에 담긴 혼례복은 베버 총 아파스가 1925년 함경남도 안변군 내평본당에서 촬영한 결혼식 장면에 등장한다. 당시 섭외한 신혼부부에게 입혔던 옷이 이번 실태조사에서 확인됐다. 베버 총 아파스의 금강산 유람기인 ‘한국의 금강산에서’(1927)에 게재된 일본인 화가의 그림 ‘금강산만물상도’도 공개됐다. 특히 수도원 대성당에 안치된 김대건 신부의 ‘유해증명서’(1920년 작성)와 ‘성해주머니’가 선교박물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점은 이번 실태조사의 큰 의미로 남는다. 1908년부터 1913년까지 존속했던 한성미술품제작소(이왕직미술품제작소 전신)에서 만든 은재떨이 등 공예품들도 눈길을 끈다. 보고서에는 재단이 지난 7년여간 선교박물관과 함께 한 보존 및 복원, 교육, 기증 등에 관한 내용도 실렸다. 선교박물관은 2018년에 조선시대 보군이 입었던 ‘면피갑’을, 올해 2월엔 ‘혼례용 단령’을 재단에 기증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부고] 문성묵씨 모친상, 김기현씨 부친상, 이은실씨 시부상, 송언종씨 별세

    ●엄복애씨 별세, 문성묵(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문성권(전 국방부 보안정책과장)·문성만(인천국제공항공사 차장)·문성진(서울경제신문 정치부 부국장)씨 모친상, 5일 오전 6시, 혜화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 발인 7일 오전 7시, 장지 분당메모리얼파크. 02-2072-2011 ●김병국 씨 별세, 김종성 씨 남편상, 김선영(Kiko Sori 대표)·기현(KBS 뉴스제작1부 팀장)·기수(우영파이낸셜 대표) 씨 부친상, 황보연(한겨레신문 사회정책부장) 씨 시부상, 5일 오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4호, 발인 7일 오전 6시 40분. 02-3010-2294 ●김영수 씨 별세, 충수(라온케이디 부장)·희수(SPC삼립 선임연구원) 씨 부친상, 김정숙(양우코퍼레이션 과장)·이은실(경향신문사 미디어제작팀 과장) 씨 시부상, 5일 오전, 동국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7일 오전 7시30분. 031-961-9400 ●송언종 씨 별세, 송상헌·상민·상희·상경·상호 씨 부친상, 5일,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장례식장, 발인 7일 오전 8시. 031-810-5444
  • 신임 靑 과기보좌관에 ‘첫 여성 카이스트 교수’ 박수경

    신임 靑 과기보좌관에 ‘첫 여성 카이스트 교수’ 박수경

    대통령비서실 신임 과학기술보좌관으로 박수경(47)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가 내정됐다. 전임 이공주 보좌관이 학교로 복귀를 원하며 사의를 표명한 지 2달 만에 후임자가 임명됐다. 청와대는 박 교수 내정 사실을 공개하며 “현장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 과학기술과 ICT 혁신을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신임 보좌관 내정자는 198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개교한 서울과학고 1기 입학생으로 2년 만에 졸업하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미시간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마치고 한국기계연구원을 거쳐 2004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설립 34년 만에 첫 여성 교수로 임용됐다. 박 내정자는 이번 정부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1기 위원으로 임명돼 정책 참여 경험을 쌓기도 했다. 박 내정자가 신임 과학기술보좌관에 임명되면 이번 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진 과학기술보좌관은 여성 과학인의 몫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첫 과기보좌관은 문미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다음은 이공주 이화여대 제약학과 교수가 임명됐었다. 박 과기보좌관 내정자는 청와대 수석 및 보좌관 중 최연소여서 비서실 조직을 전반적으로 젊은 분위기로 쇄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과학계에서는 이번 정부의 역대 과기보좌관들의 존재감이 없었고 중량감도 떨어졌던 점에 미루어 박 보좌관 내정자가 비서실이나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신임 청와대 과기보좌관에 박수경 카이스트 교수 내정

    신임 청와대 과기보좌관에 박수경 카이스트 교수 내정

    대통령비서실 신임 과학기술보좌관으로 박수경(47)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를 내정했다. 전임 이공주 보좌관이 학교로 복귀를 원하며 사의를 표명한지 2달 만에 후임자가 임명됐다. 청와대는 박 교수 내정 사실을 공개하며 “현장과 긴밀하게 호흡하면서 과학기술과 ICT 혁신을 가속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보좌관 내정자는 198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개교한 서울과학고 1기 입학생으로 2년 만에 졸업하고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미국 미시간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박사후 연구과정을 마치고 한국기계연구원을 거쳐 2004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설립 34년만에 첫 여성 교수로 임용됐다. 박 교수는 이번 정부에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1기 위원으로 임명돼 정책참여 경험을 쌓기도 했다. 박수경 교수가 신임 과학기술보좌관에 임명되면 이번 정부에서 처음 만들어진 과학기술보좌관은 여성 과학인의 자리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된다. 정부 첫 과기보좌관은 문미옥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 2기 과기보좌관으로 이공주 이화여대 제약학과 교수가 임명됐었다. 박 과기보좌관 내정자는 청와대 수석 및 보좌관 중 최연소여서 비서실 조직을 전반적으로 젊은 분위기로 쇄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과학계에서는 이번 정부의 역대 과기보좌관들의 존재감이 없었고 중량감도 떨어졌던 점에 미루어 박 보좌관 내정자가 비서실이나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황교안 항의한 기표소, 박근혜 정부 법무부 장관 재직 때 도입

    황교안 항의한 기표소, 박근혜 정부 법무부 장관 재직 때 도입

    서울 종로에 출마한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가 15일 투표를 하던 중 기표소에 가림막이 없다고 항의한 것과 관련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이 “2014년부터 도입한 시스템”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황교안 후보는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맡고 있었다. 황교안 후보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등학교에 마련된 제3투표소에서 부인 최지영씨와 함께 투표했다. 황교안 후보는 투표소를 나와 기자들에게 “제 기표가 공개될 수 있는 상황에서 투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투표가 거의 반공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상황이었다“며 ”위치에 따라서는 투표 관리하는 직원들이 (투표자가) 어디를 찍는지를 볼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부정선거의 의혹이 아닐까 생각한다. 돌아가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면서 ”좀 더 검토해 보겠지만 공개 투표가 이뤄졌다면 이것은 명백한 부정선거다. 고의에 의한 것인지, 실수에 의한 것인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표소 측은 황교안 후보의 이의제기 직후 가림막을 내리고 기표소를 비스듬히 돌려 기표소 안이 보이지 않도록 조치했다. 투표소 내 기표대에 가림막이 없고, 선관위 관계자가 기표대 안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황교안 후보의 주장이었다.신형 기표대는 뒷면 가림막이 없는 대신 비밀투표를 보장할 수 있도록 측면 방향으로 설치돼 있다. 가림막 없는 기표대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도입됐다. 황교안 후보는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중앙선관위는 신형 기표대 도입에 대해 “썬거인의 투표 비밀은 보장하되 투표소 분위기를 보다 쾌적하게 개선하고 선거인이 기표소를 이용할 때 가림막을 들어 올려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사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기표소 내에서 투표 인증사진을 찍는 행위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황교안 후보의 의혹 제기에 선관위 관계자는 ”2014년 6.4 지방선거부터 가림막이 없는 신형 기표대를 사용해 왔다“며 ”이는 당시 여야에게 동의를 받은 사항“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10시 15분 현재 개표가 65.7% 완료된 서울 종로에서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득표율 58.2%로 당선이 확실시됐다. 황교안 후보는 40.3%를 득표 중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포토] ‘기표소 가림막 없다’ 항의하는 황교안 후보

    [포토] ‘기표소 가림막 없다’ 항의하는 황교안 후보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서울 종로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가 15일 서울 종로구 동성고등학교에 설치된 혜화동 제3투표소에서 투표에 앞서 기표소 가림막이 없다며 투표관리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황교안 “文 정권 심판 엄중한 투표”…투표 공정성 문제제기도

    황교안 “文 정권 심판 엄중한 투표”…투표 공정성 문제제기도

    서울 종로구서 투표 “국민 믿는다”기표소 배치 관련해 문제 제기도“공개투표 이뤄졌다면 문제 심각”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총선일인 15일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심판하는 엄중한 투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는 이날 오전 8시 5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동성고등학교에 마련된 혜화동 제3투표소에서 부인 최지영씨와 함께 투표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께서 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의석을 저희에게 주시리라 생각한다. 국민을 믿는다”고 밝혔다. 투표 과정에서 황 대표는 투표소 내 기표소 배치와 관련해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선관위 관계자가 서 있는 곳이 기표소 안을 볼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다. 황 대표는 투표 후 “제 기표가 공개될 수 있는 상황에서 투표를 하라고 요구했다. 투표가 거의 반공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상황이었다”며 “위치에 따라서는 투표 관리하는 직원들이 (투표자가) 어디를 찍는지를 볼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어 “이것은 정말 심각한 부정선거의 의혹이 아닐까 생각한다. 돌아가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며 “좀 더 검토해보겠지만 공개 투표가 이뤄졌다면 이것은 명백한 부정선거다. 고의에 의한 것인지, 실수에 의한 것인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투표소 측은 황 대표의 이의제기 직후 가림막을 내리고 기표소를 비스듬히 돌려 기표소 안이 보이지 않도록 조치했다. 황 대표는 국회로 이동해 통합당·미래한국당 안보연석회의를 주재한 뒤 투표가 종료되는 오후 6시에는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통합당 개표상황실로 향할 예정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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