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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왈종 화백 4년만의 매화 주제 개인전

    이왈종 화백 4년만의 매화 주제 개인전

     제주 서귀포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왈종(71) 화백이 4년 만에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매화가 흐드러진 제주의 자연과 안빈낙도의 삶을 담은 밝고 화사한 근작들을 선보인다.  “제주에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 매화입니다. 엄동설한에 망울을 터뜨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그래서 사군자 중에 매화가 으뜸인가 봅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난 그는 추계예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1990년 홀연히 서귀포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딱 5년만 작품 활동에 몰두하고 싶다는 마음에 섬으로 향했지만 어느덧 제주에서 생활한 기간이 26년이나 됐다. 2013년에는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 자신의 이름을 딴 왈종미술관을 열기도 했다. 제주에 정착한 이후 줄곧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라는 주제로 일관되게 작업해 온 그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자연과 하나가 되어 집착을 버리고 무심의 경지에 이른 상태를 화폭에 담았다. 두꺼운 장지를 여러 겹 붙이고 동양화 물감으로 큰 나무 아래의 작은 오두막에서 부부가 정답게 마주 앉은 장면이나 한가롭게 골프를 치는 장면들을 그렸다. 새들이 지저귀고 꽃은 아름다우니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이다.  이 화백은 “내 그림은 추상이 아닌 구상이어서 누구나 보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며 “좋은 작품은 평상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12일까지. (02)2287-3591.  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사기냐 관행이냐 ‘조영남 代作 스캔들’

    사기냐 관행이냐 ‘조영남 代作 스캔들’

    대중적 인기를 누리며 화가로도 활동해 온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71)씨의 대작(代作) 스캔들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조씨는 화투장을 소재로 한 독특한 그림을 발표해 화가로 활동하면서 수차례 개인전도 열었다. ●무명화가 “8년간 300점 그려줬다” 무명화가 A(61)씨가 폭로한 조씨의 대작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17일 “실제로 그림을 그린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본다면 조씨는 다른 사람이 그린 작품을 자신의 것처럼 판매한 것이기 때문에 사기죄 혐의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속초에 거주하는 A씨가 1점당 10만원 안팎의 대가를 받고 그림을 그려 주면 조씨가 조금 손을 봐 서명을 한 뒤 수백~수천만원에 판매했다며 수사 의뢰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전날 조씨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A씨는 2009년부터 8년간 조씨의 주문을 받아 300여점을 대신 그려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조씨는 “논란이 인 데 대해 도의적으로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8년간 300점을 그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비슷한 패턴의 작품을 여러 개 작업하는 경향이 있다. 주로 혼자 작업하는데 바쁠 때는 조수를 기용했고 함께 하는 사람이 3~4명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작가들 기획만 하기도 그는 조수가 대신 작업하는 것이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주장했다. 조씨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유명 원로 화가들이나 몇몇 인기 작가들은 작업실에 여러 명의 조수를 두고 작품 제작에 도움을 받고 있다. 조각이나 대형 벽화 작업처럼 혼자 하기 힘든 작업을 할 때에 조수를 쓰는 것은 일반화돼 있다. 작품의 수요가 많은 대가들이나 극사실 작업을 하는 극소수의 화가들도 조수를 두고 작업한다. 최근에는 작가들이 기획자이자 디자이너, 프로듀서로 머물고 제작은 다른 참여자들이 하는 경우가 더 늘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에서 영상과 설치 등 장르융합적이고 개념적인 작품이 많아지면서 직접 작품을 제작하지 않는 작가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이 경우 아이디어의 독창성은 아티스트에게 있다고 본다. 수십 년에 걸친 훈련과 작업의 결과로 구축한 예술세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미술계 “유명세 이용해 화단 농단” 하지만 조영남의 회화가 그런 수준인지에 대해서 미술계는 고개를 내젓는다. 한 중진 작가는 “아마추어 화가가 아무런 검증 과정도 거치지 않고 유명세를 이용해 슬그머니 화단에 진입하고 평생을 바쳐 일궈야 할 예술을 마치 아무나 하는 가벼운 장난처럼 농단했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화가 안창홍은 “요즘 점점 젊은 화가들이 기획자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미술은 정신의 산물이고 육체의 노고를 통해서 생산되는 작품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조씨의 그림을 취급해 온 인사동의 리서울갤러리 관계자에 따르면 화투장을 소재로 그린 조씨의 그림은 아트페어에서 호당 30만~50만원에 거래된다. 1호는 엽서 한 장 크기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르네상스 회화 걸작,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을 만나다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르네상스 회화 걸작,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을 만나다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 르네상스 회화, 아니 서양 회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그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 1452~1519)의 ‘최후의 만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외에도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들은 많지만 이 작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과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은 500년 전 탄생 순간부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수많은 모사의 대상이 됐다. 20세기 들어서도 앤디워홀을 비롯해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이미지를 차용해 패러디해 쓰기도 했다.  책이나 프린트물 등을 통해 숱하게 보아 와서 마치 실제를 본 듯 착각할 정도로 낯익은 이미지이지만 실상 이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보기가 간단치 않다. 수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만약에 운이 좋아서 당일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더라도 작품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을 감내하고 찾을만한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500년 전 천재 거장이 심혈을 기울여 남긴 걸작이 주는 감동은 평생을 두고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만하면 충분한 보상이 아니겠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대성당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의 부속 건물 벽에 그려져 있다. 도미니코회 수도회에 속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 옆으로 ‘체나콜로(Cenacolo)’라고 쓰여진 곳이 입구다. 체나콜로는 수도원의 식당,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한 식당을 가리킨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수도원 식당에 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은 식사를 묵상의 연장으로 만든다는 기대에서 벽에 실물크기로 거대하게 그리곤 했다.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밀라노 공국의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요청으로 1494년부터 1498년까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지금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친 복원 작업을 거쳐 원래의 색을 되찾아 전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을 맞이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0년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이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곳을 찾았던 날은 운이 무척 좋아던지 당일 입장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성당을 찬찬히 둘러본 뒤 티켓에 적힌 시간에 맞춰 전시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의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높이 벽 위에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앉은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왔다. 걸작의 아우라에 심장이 쿵 멎는 것 같았다.  작은 프린트 물에 익숙해서인지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로 그린 작품(세로 460cm, 가로 910㎝)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큰 것이 인상적이었다.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 면밀하게 연구된 원근법의 표현, 해부학과 골상학에 입각한 인물의 묘사, 색조의 조화, 풍부한 상징성과 생생한 서사, 우아한 선과 동작의 표현 등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복원 작업 이전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지만 고미술품 복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최고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는 대단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쭈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태복음 26장 21~23절)  다 빈치는 바로 이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1419~1457)는 다빈치보다 50년 전에 피렌체의 산타 아폴로니아 수도원 식당에 프레스코화 ‘최후의 만찬’을 남겼다. 원근법 효과나 인물들의 극적인 표적이 인상적인 이 그림은 많은 프레스코화들이 그랬듯이 회벽으로 덮였다가 1860년 수도회가 해산된 뒤 흰색 도료를 제거하면서 재발견됐다. 카스타뇨의 그림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식탁 한편에 일렬로 앉아있고 유다 한 사람만이 건너편에 앉았다. 이는 예수가 말한 배신자가 유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당시 화가들이 채택하던 전형적인 구도였다. 피렌체에서 화가활동을 시작한 다빈치도 분명 이 프레스코화를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스타뇨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했다.  다 빈치는 과감하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나란히 앉혔다. 그가 표현하고 했던 것은 제자들이 일으킨 마음의 동요였고 전체 화면의 조형성이었다. 다 빈치는 열두제자 무리에 유다를 포함시켜 3명씩 4개의 무리로 인물을 배치시킨 뒤 제자들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분노로 표현했다.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른 손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돈주머니를 쥔채 오른 손으로 빵을 집으려 하고 있다. 곧 배신할 유다를 비롯해 의심이 많은 베드로가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은 예수가 체포될 때 로마 병사의 귀를 자를 것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테이블 위의 물건들도 많은 일들을 상징한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 복음서, 예루살렘의 12문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전의 최후의 만찬은 평면성이 강조되지만 다빈치는 수도원 식당이 확장되게 보이도록 중앙 투시도법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 화면 안쪽으로 후퇴하는 천장과 측벽의 선들이 모두 중앙에 앉아있는 그리스도의 머리로 집중하면서 강조했다. 천장의 바둑판 무늬는 관람자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축소되어 화면의 공간감과 입체감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총 4년의 세월을 꼬박 바쳤다. 밀라노의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았고 그림 속 인물의 동작과 손의 표현을 연구했다. 그는 작품의 수정이 가능하고 색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템페라와 기름을 섞어 쓰는 실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그림은 생동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표현이 가능해 졌지만 식당의 습기 때문에 안료가 쉽게 벗져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낳았다. 완성된 당시부터 이 주제에서는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은 세월과 숱한 전쟁을 견디면서 심하게 손상됐다. 마지막 복원은 1978년부터 1999년까지 21년간 이뤄졌다. 워낙 손상이 심해서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던 것을 화가가 완성 직후에 베껴 그린 그림이 온전히 남아있어 이를 기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복원화가들이 80%,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0%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근처 빈치에서 테어나 피렌체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왜 그는 밀라노에 이 걸작을 남기게 됐을까? 밀라노는 14세기 말 비스콘티 공작 하에서 막대한 번영을 누려 15세기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가 됐다. 비스콘티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였던 필리포 마리아의 후계권을 둘러싼 전투에서 용병 대장 프란체스코 스포르차(1401~1466)가 승리해 권좌에 올랐다. 그의 대를 이은 로도비코 스포르차(1451~1508)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실력 있는 장인과 예술가들을 고용해 도시를 건설하고 궁정을 장식하도록 했다. 인체의 구성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적 구조와 근육조직을 분석하고 인체 기관의 이상적인 비례에 관해 연구했으며 천체와 우주를 연구하고, 건축을 설계하고, 악기를 연주하는데도 뛰어났던 만능 천재 다빈치는 1492년 스포르차에게 편지를 보냈다.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이주해 스포르차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바치고 싶다며 건물을 설계할 수 있으며 조각가이자 화가로 훈련받았고 공병학에도 재능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를 밀라노로 불러 아버지인 프란체스코의 청동 기마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기마상을 위해 주문했던 청동이 대포 만드는 데 쓰이게 되는 바람에 레오나르도는 결국 청동 주물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궁정 미술가로 궁정에서 열리는 가면극의 의상과 무대 장치를 설계하고 조신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로도비코의 신임을 얻었다.  로도비코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을 확장해 스포르차 가문의 영묘를 만들면서 레오나르도에게 수도원 식당에 전통적으로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주제였던 ‘최후의 만찬’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로도비코의 통치는 ‘최후의 만찬’이 완성된 이듬 해(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침공으로 막을 내리고 궁정은 해산됐다. 화려한 삶을 살았고 너무나 많은 호기심과 재능을 지녔던 레오나르도의 말년은 어땠을까. 피렌체로 돌아가 있던 그에게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중부 프랑스의 루아르지역에 아름다운 성과 많은 연금을 제공했다. 그는 프랑스로 가 3년간 클로뤼세 성에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1519년 생을 마감했다. 왕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항상 지니고 다니던 그림 ‘모나리자’를 왕에게 기증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벽에 그려져 있는 곳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벽에 그려져 있는 곳

    르네상스 회화, 아니 서양 회화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그림이 아닐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 1452~1519)의 ‘최후의 만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외에도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들은 많지만 이 작품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못한다.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이 작품과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작품은 500년 전 탄생 순간부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수많은 모사의 대상이 됐다. 20세기 들어서도 앤디워홀을 비롯해 많은 팝아티스트들이 이미지를 차용해 패러디해 쓰기도 했다.  책이나 프린트물 등을 통해 숱하게 보아 와서 마치 실제를 본 듯 착각할 정도로 낯익은 이미지이지만 실상 이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한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을 보기가 간단치 않다. 수개월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 하고, 만약에 운이 좋아서 당일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하더라도 작품 앞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15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도 이런 어려움을 감내하고 찾을만한 가치는 차고도 넘친다. 500년 전 천재 거장이 심혈을 기울여 남긴 걸작이 주는 감동은 평생을 두고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니 이만하면 충분한 보상이 아니겠나.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대성당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Chiesa di Santa Maria delle Grazie)의 부속 건물 벽에 그려져 있다. 도미니코회 수도회에 속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 옆으로 ‘체나콜로(Cenacolo)’라고 쓰여진 곳이 입구다. 체나콜로는 수도원의 식당, 최후의 만찬을 그린 그림,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을 한 식당을 가리킨다.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주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수도원 식당에 걸린 ‘최후의 만찬’ 그림은 식사를 묵상의 연장으로 만든다는 기대에서 벽에 실물크기로 거대하게 그리곤 했다.  다빈치가 그의 후원자였던 밀라노 공국의 로도비코 스포르차의 요청으로 1494년부터 1498년까지 그린 최후의 만찬은 지금까지 총 일곱 차례에 걸친 복원 작업을 거쳐 원래의 색을 되찾아 전 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을 맞이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0년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과 함께 이 작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이곳을 찾았던 날은 운이 무척 좋아던지 당일 입장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성당을 찬찬히 둘러본 뒤 티켓에 적힌 시간에 맞춰 전시실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에 따라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뒤의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드디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높이 벽 위에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예수님과 열두 제자가 앉은 프레스코화가 눈에 들어왔다. 걸작의 아우라에 심장이 쿵 멎는 것 같았다.  작은 프린트 물에 익숙해서인지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로 그린 작품(세로 460cm, 가로 910㎝)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큰 것이 인상적이었다. 숭고한 주제를 다루는 방식, 면밀하게 연구된 원근법의 표현, 해부학과 골상학에 입각한 인물의 묘사, 색조의 조화, 풍부한 상징성과 생생한 서사, 우아한 선과 동작의 표현 등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다. 복원 작업 이전의 상태를 가늠할 수 없지만 고미술품 복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최고의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는 대단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쭈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태복음 26장 21~23절) 다 빈치는 바로 이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1419~1457)는 다빈치보다 50년 전에 피렌체의 산타 아폴로니아 수도원 식당에 프레스코화 ‘최후의 만찬’을 남겼다. 원근법 효과나 인물들의 극적인 표적이 인상적인 이 그림은 많은 프레스코화들이 그랬듯이 회벽으로 덮였다가 1860년 수도회가 해산된 뒤 흰색 도료를 제거하면서 재발견됐다. 카스타뇨의 그림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식탁 한편에 일렬로 앉아있고 유다 한 사람만이 건너편에 앉았다. 이는 예수가 말한 배신자가 유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로 당시 화가들이 채택하던 전형적인 구도였다. 피렌체에서 화가활동을 시작한 다빈치도 분명 이 프레스코화를 보고 많은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스타뇨와는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표현했다.    다 빈치는 과감하게 유다를 다른 제자들과 나란히 앉혔다. 그가 표현하고 했던 것은 제자들이 일으킨 마음의 동요였고 전체 화면의 조형성이었다. 다 빈치는 열두제자 무리에 유다를 포함시켜 3명씩 4개의 무리로 인물을 배치시킨 뒤 제자들의 동요를 놀라움, 두려움, 사랑, 고뇌, 분노로 표현했다. 유다는 멈칫하며 겁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오른 손은 예수를 팔아넘기고 받은 돈주머니를 쥔채 오른 손으로 빵을 집으려 하고 있다. 곧 배신할 유다를 비롯해 의심이 많은 베드로가 손에 칼을 쥐고 있는 것은 예수가 체포될 때 로마 병사의 귀를 자를 것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테이블 위의 물건들도 많은 일들을 상징한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 복음서, 예루살렘의 12문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있다.  이전의 최후의 만찬은 평면성이 강조되지만 다빈치는 수도원 식당이 확장되게 보이도록 중앙 투시도법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다. 화면 안쪽으로 후퇴하는 천장과 측벽의 선들이 모두 중앙에 앉아있는 그리스도의 머리로 집중하면서 강조했다. 천장의 바둑판 무늬는 관람자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축소되어 화면의 공간감과 입체감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그리는데 총 4년의 세월을 꼬박 바쳤다. 밀라노의 거리와 시장을 돌아다니며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았고 그림 속 인물의 동작과 손의 표현을 연구했다. 그는 작품의 수정이 가능하고 색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템페라와 기름을 섞어 쓰는 실험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그림은 생동감이 넘치고 인간적인 표현이 가능해 졌지만 식당의 습기 때문에 안료가 쉽게 벗져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낳았다. 완성된 당시부터 이 주제에서는 단연 최고의 걸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작품은 세월과 숱한 전쟁을 견디면서 심하게 손상됐다. 마지막 복원은 1978년부터 1999년까지 21년간 이뤄졌다. 워낙 손상이 심해서 원래 색깔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던 것을 화가가 완성 직후에 베껴 그린 그림이 온전히 남아있어 이를 기준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 이런 연유로 일부 학자들은 복원화가들이 80%,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20%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근처 빈치에서 테어나 피렌체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왜 그는 밀라노에 이 걸작을 남기게 됐을까? 밀라노는 14세기 말 비스콘티 공작 하에서 막대한 번영을 누려 15세기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도시가 됐다. 비스콘티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였던 필리포 마리아의 후계권을 둘러싼 전투에서 용병 대장 프란체스코 스포르차(1401~1466)가 승리해 권좌에 올랐다. 그의 대를 이은 로도비코 스포르차(1451~1508)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실력 있는 장인과 예술가들을 고용해 도시를 건설하고 궁정을 장식하도록 했다. 인체의 구성과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적 구조와 근육조직을 분석하고 인체 기관의 이상적인 비례에 관해 연구했으며 천체와 우주를 연구하고, 건축을 설계하고, 악기를 연주하는데도 뛰어났던 만능 천재 다빈치는 1492년 스포르차에게 편지를 보냈다.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이주해 스포르차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바치고 싶다며 건물을 설계할 수 있으며 조각가이자 화가로 훈련받았고 공병학에도 재능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로도비코는 레오나르도를 밀라노로 불러 아버지인 프란체스코의 청동 기마상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기마상을 위해 주문했던 청동이 대포 만드는 데 쓰이게 되는 바람에 레오나르도는 결국 청동 주물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궁정 미술가로 궁정에서 열리는 가면극의 의상과 무대 장치를 설계하고 조신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로도비코의 신임을 얻었다.  로도비코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을 확장해 스포르차 가문의 영묘를 만들면서 레오나르도에게 수도원 식당에 전통적으로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는 단골 주제였던 ‘최후의 만찬’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로도비코의 통치는 ‘최후의 만찬’이 완성된 이듬 해(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침공으로 막을 내리고 궁정은 해산됐다. 화려한 삶을 살았고 너무나 많은 호기심과 재능을 지녔던 레오나르도의 말년은 어땠을까. 피렌체로 돌아가 있던 그에게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중부 프랑스의 루아르지역에 아름다운 성과 많은 연금을 제공했다. 그는 프랑스로 가 3년간 클로뤼세 성에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고 1519년 생을 마감했다. 왕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항상 지니고 다니던 그림 ‘모나리자’를 왕에게 기증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빚 인생’ 현실 고발… “대안경제 실험에 관심을”

    ‘빚 인생’ 현실 고발… “대안경제 실험에 관심을”

    크레디토크라시/앤드루 로스 지음/김의연 등 옮김/갈무리/348쪽/2만원 빚으로 더 급한 빚을 막는 ‘돌려막기’의 폐해는 우리 사회를 고도화된 채권자 지배 구조로 몰아가고 있다. 주택 소유자부터 학생, 의료보험 없이 병을 앓는 사람, 신용카드 소지자 모두가 부채 상환에 허덕이며 빚구덩이에 빠져 있는 듯하다. 가계부채의 굴레는 상위층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와중에도 대출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몸집을 키우거나 유례없는 고수익을 올린다. 사회운동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앤드루 로스 뉴욕대 사회문화연구대학 교수는 우리가 끔찍한 ‘크레디토크라시’의 손아귀에 붙들려 있다고 주장한다. ‘크레디토크라시’란 채권자 계급의 이익에 부합하는 권력유지 양식이자,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재원이 부채로 조달되는 사회를 가리킨다. 로스는 위기를 불러오는 갖가지 대부 행태를 꼼꼼하게 실제 사례 위주로 검토한 후 우리에게 지워진 부당한 부채의 짐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부채의 지배하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그들에게 지워진 빚을 청산하리라는 기대도, 청산하라는 권고도 받지 않는다. 빚을 갚는 순간 채권자들에게서 더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몸집을 불린 금융산업은 선출된 정부를 탈취하고, 시민들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빚을 얻어 쓰도록 내몰린다. 부채 경제의 심화는 개인의 주체성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라는 불변의 교리에 따라 공적자금을 쏟아부어 위기의 주범을 구제하는 수법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는 게 지구촌 현실이다. 저자는 결국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하고 부채의 사슬에 저항하는 세계 곳곳의 저항운동과 대안경제의 실험들에 주목할 것을 요청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혜자·혜리·백종원… 오늘 점심 누구랑 먹을까

    김혜자·혜리·백종원… 오늘 점심 누구랑 먹을까

    싸구려 공식 깨고 어엿한 한 끼 식사 혼밥족 늘면서 새로운 식문화 정착 “횐님(회원님)들 오늘 금성상회(GS25를 지칭하는 네티즌들만의 별칭)에 들러 신상(새로운) 도시락 좀 털어봤습니다.” 네티즌 용어로 가득하지만 최근 인터텟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글이다. 급식이 없던 학창시절, 집에서 싸온 코끼리 보온도시락에 따끈하게 담긴 음식 혹은 소풍날 특식 정도가 과거 도시락이었다면, 요즘 도시락은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식문화로 자리잡았다. 편의점은 현재 도시락의 부흥기를 일으킨 1등 공신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3일 편의점 CU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매출 순위에서 도시락이 처음으로 주류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2014년 CU 매출 1~3위는 카스 1.6ℓ 패트병, 참이슬 360㎖병, 바나나우유 순이었다. 지난해 매출 1~3위는 참이슬 360㎖병, 카스 1.6ℓ패트병, 바나나우유였다. 올해 1분기에는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올해 1분기 매출 1위는 백종원한판도시락, 2위는 참이슬 360㎖병, 3위는 백종원매콤불고기정식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편의점 매출 지도까지 바꾼 도시락의 힘은 생활습관 변화, 1인 가구의 증가 등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훈 BGF리테일 간편식품팀장은 “요즘 ‘혼술’(혼자 술 마시는 일)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혼자 빨리 도시락을 먹은 뒤 자기계발을 위한 강의를 듣거나 운동하는 일이 많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편의점 도시락이 입소문을 타면서 편의점 도시락이 주목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편의점 도시락이 인기를 얻게 된 데는 과거와 달리 고급화됐기 때문이다. 편의점에 도시락이 등장한 2009년 당시 2000원 초중반 가격대에 소불고기, 제육볶음, 한입돈가스 등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단품 메뉴 위주 상품들이 판매됐다. 인지도도 낮아 도시락은 간편식품 전체 매출에서 약 10% 비중을 차지할 뿐이었다. ‘편의점 도시락=싸구려’라는 공식이 깨지기 시작한 시점은 2012년 8월 CU에서 ‘더블빅(BIG)도시락’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가격인 3600원에 판매하면서부터다. 제육볶음, 소시지 등 7가지 반찬이 들어간 이 제품은 편의점 도시락이 3000원대를 넘을 수 없다는 상식을 깬 상품이다. 이를 기점으로 편의점 도시락의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부흥기를 이끈 건 연예인의 이름을 딴 도시락이다. GS25에서는 일찌감치 2010년 배우 김혜자의 이름을 딴 ‘김혜자 도시락’을 출시했지만 큰 재미를 보진 못했다. GS리테일은 2013년 1월 식품연구소 조직을 구성하고 먹거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김혜자 도시락이 업그레이드됐다. 또 네티즌들이 저렴한 가격에 양이 많다는 이유로 ‘마더 혜레사’라는 별명을 붙이면서 편의점 도시락이 유명세를 얻게 됐다. 이어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3월 아이돌그룹 걸스데이의 멤버 혜리를 모델로 한 ‘혜리 7찬 도시락’을 출시하며 편의점 도시락 경쟁에 가세했다. 혜리 도시락은 출시 후 1년간 1200만개나 팔렸다. CU에서는 지난해 12월 요리연구가 백종원과의 협업으로 ‘백종원도시락’을 출시했다. 현재 편의점 도시락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 상상하기 어려웠던 국물이 들어간 도시락이 요즘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지난 1월 세븐일레븐이 김치찌개 도시락을 첫 출시한 데 이어 GS25는 김혜자부대찌개정식도시락, CU는 순대국밥 정식을 각각 출시했다. 또 CU는 ‘건강도시락’과 함께 집에서 약간의 조리가 필요한 도시락도 준비 중이다. 예컨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닭가슴살이나 야채 샐러드 등으로 구성된 도시락이다. 김 팀장은 “연구 중이긴 한데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소비자의 몸 상태가 다양하다 보니 이런 요구 조건을 맞춘 도시락을 만들기가 까다로운 편”이라고 말했다. GS25에서는 지역 특산물을 활용할 수 있는 도시락 개발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양호승 GS리테일 편의점도시락 MD(상품기획자)는 “지난해 여름 인기를 끌었던 통장어 덮밥을 올여름에도 출시하고 프리미엄 도시락을 찾는 고객들을 위해 프리미엄 장어덮밥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편의점 도시락이 고급화되자 도시락과 거리가 멀었던 중장년층도 편의점 도시락을 찾고 있다. CU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락 연령별 구매 비중은 20대 31.1%, 30대 27.5%로 절반 이상을 20~30대가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50대 이상 비중도 12.5%로 늘어나는 등 중장년층의 구매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또 편의점 도시락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어엿한 한 끼 식사라는 인식도 자리잡았다. 지난해 CU 도시락 시간대별 구매 비중을 보면 점심시간대(오전 10시~오후 1시)의 비중이 24.1%로 가장 높다. 이어 야간시간대(오후 10시~오전 1시)와 저녁시간대(오후 6시~9시) 매출 비중이 각각 19.8%, 18.6%로 점심시간대 다음으로 높았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간편하게 저녁을 때우면서도 한 끼 식사로 영양이 충분한 편의점 도시락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편의점 도시락의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도 크다. 지난해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3000억원 정도로 올해는 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편의점과 도시락이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일본에서 편의점 전체 매출의 37%는 도시락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그 비중이 10%에 불과하다. 김 팀장은 “일본과 비교해볼 때 도시락 매출 비중이 20% 포인트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편의점 도시락의 인기는 기존 도시락업체에 자극을 주고 있다. 도시락 프랜차이즈업체 1위 한솥도시락은 식재료 강화에 나서고 있다. 대형마트의 원산지 실명제처럼 도시락에 들어간 재료가 어느 지역의 어느 생산자가 만든 것인지 표기하는 ‘식자재 실명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한솥도시락은 즉석에서 만드는 따끈한 도시락이라는 특징을 계속 유지해 현재 점포 수를 670여개에서 2020년 1000개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프리미엄급 도시락도 고가 도시락 영역에서 위치를 다져가고 있다. 2010년 6월 사업을 시작한 프리미엄 한식 도시락 브랜드인 본도시락은 2013년 매장 수 160개, 매출 215억원에서 지난해 194개, 247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고 향토 조리법을 도입해 고가의 집밥을 구현하는 게 강점이다. 본도시락의 대표 메뉴인 ‘명품 한정식 도시락’은 곤드레밥, 삼채샐러드, 갈비구이, 궁중잡채, 국, 한식 반찬, 아이스 홍시 등이 들어갔다. 가격은 1만 9900원으로 식당에서 사먹는 한 끼 식사보다도 비싸지만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는 게 본도시락 측의 설명이다. 대형 유통업체도 도시락 시장의 성장세에 주목하고 있다. 롯데슈퍼는 지난달 13일 제품 생산 후 최대 1년까지 유통 가능한 ‘냉동 도시락’을 새롭게 선보였다. 함박스테이크 야채볶음밥, 치킨가라아게 야채볶음밥, 새우튀김 소불고기볶음밥 3종으로 판매 가격은 각각 2990원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3월 8일 미아점에 반찬·도시락 카페 ‘마스터키친’을 개점했다. 마스터키친은 고객이 반찬을 구매한 뒤 도시락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가격은 6000원대다. 세계 도시락 시장의 중심인 일본의 최대 도시락 브랜드 호토모토 도시락은 최근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가맹점 사업을 시작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딴따라’ 강민혁-엘조-공명-이태선, 역경 뚫은 첫 데뷔무대 ‘뭉클’

    ‘딴따라’ 강민혁-엘조-공명-이태선, 역경 뚫은 첫 데뷔무대 ‘뭉클’

    딴따라 밴드가 성공적인 첫 데뷔무대를 가지며 ‘간절하면 하늘도 돕는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지난 11일 방송된 SBS 수목 드라마 스페셜 ‘딴따라’(극본 유영아/ 연출 홍성창, 이광영/ 제작 웰메이드 예당, 재미난 프로젝트) 7회는 딴따라밴드 조하늘(강민혁 분) 서재훈(엘조 분) 카일(공명 분) 나연수(이태선 분)의 감동적인 첫 데뷔무대가 그려졌다. 앞서 케이탑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준석(전노민 분)은 “방송국에 딴따라 밴드를 출연시킬 경우 케이탑 소속 가수를 출연시키지 않겠다”며 횡포를 부렸다. 이로 인해 신석호(지성 분)가 무릎까지 꿇어가며 얻어낸 딴따라 밴드의 오프닝 무대 출연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첫 데뷔 무대는 좌절되는 듯 했다. 그러나 예능국장(권해효 분)은 케이탑 대표 이준석을 방송국으로 불러내 “딴따라 밴드를 무대에 세우겠다. 앞으로 케이탑 소속 연예인 출연을 받지 않겠다“며 정면으로 맞섰다. 권력을 앞세워 갑질을 하려던 이준석이 예상치 못한 예능 국장의 등장으로 크게 한방 맞은 것. 갑의 횡포에 정정당당하게 맞서는 예능국장의 모습은 안방극장에 시원한 사이다와 함께 통쾌함을 선사했다. 예능국장의 깨어있는 행동으로 딴따라 밴드는 우여곡절 끝에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된다. 방송출연 소식에 딴따라 밴드는 다 함께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서로를 부등켜 안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이들이 얼마나 무대를 간절히 원했는지 고스란히 느끼게 해 뭉클하게 했다. 방송출연을 앞둔 딴따라 밴드는 턱시도에 엣지 있는 나비 넥타이로 한껏 멋을 낸 정장모습으로 단숨에 시선을 강탈했다. 이어 석호는 대기실에 모여 ”대기실이 우리집 안방이 되는 그 날까지 오늘 다 보여줘야 돼. 하나도 빠짐없이 딴따라 밴드의 매력과 실력을 다 쏟아낸다“라고 외치며 진심 어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하늘의 감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딴따라 밴드의 첫 데뷔곡 ‘I See you’가 무대 위에 울려 퍼졌다. 하늘은 좌절을 딛고 선 무대에서 감격에 겨운 듯 진정 어린 목소리로 무대를 장악했고, 곡의 클라이 막스 부분에서는 벚꽃 잎이 무대위로 흩날리며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아울러, 딴따라 밴드의 공연 모습은 속도감 있는 영상으로 담기며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갖은 역경을 뚫고 가까스로 첫 데뷔무대에 선 딴따라 밴드의 간절함은 아름다운 영상미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최고의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한편, 석호-그린(혜리 분)-민주(채정안 분)은 딴따라 밴드의 첫 데뷔 무대를 울컥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행방불명 됐던 석호부터 케이탑의 횡포까지 어려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시청자들에게 뭉클함을 선사했다. 딴따라 밴드는 간절히 바라던 꿈에 한 발짝 다가갔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환기시키며 시청자들의 심장도 뛰게 했다.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고난들과 이를 극복해 갈 이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며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한편 ‘딴따라’는 벼랑 끝에서 만난 안하무인 매니저 석호(지성 분)와 생초짜 밴드 딴따라의 꽃길 인생작 프로젝트를 그린다. 오늘(12일) 밤 10시 8회가 방송된다. 사진= SBS ‘딴따라’ 방송화면 캡처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2회 연장 ‘딴따라’ 혜리-강민혁, 어부바 이어 눈맞춤 ‘심쿵’

    2회 연장 ‘딴따라’ 혜리-강민혁, 어부바 이어 눈맞춤 ‘심쿵’

    ‘딴따라’ 2회 연장 확정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혜리 강민혁의 어부바 밤산책 데이트가 공개돼 기대를 모은다. SBS 수목 드라마스페셜 ‘딴따라’(극본 유영아/ 연출 홍성창, 이광영/ 제작 웰메이드 예당, 재미난 프로젝트) 측은 8회 방송을 앞두고 썸 타는 남매 혜리(정그린 역)와 강민혁(조하늘 역)의 어부바 스틸을 공개해 설렘을 자극하고 있다. 우월한 비주얼과 풋풋한 연인같은 케미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은 혜리와 강민혁. 이들이 친남매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시청자들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만들었고, 혜리를 향한 강민혁의 애틋한 마음이 그려져 엄마미소를 짓게 했다. 그런 가운데, 공개된 스틸에는 혜리와 강민혁의 어부바 밤산책 데이트 모습이 담겨 설렘을 자아낸다. 훈훈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강민혁은 혜리를 업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혜리를 향한 숨길 수 없는 마음을 드러내는가 하면, 듬직하고 든든한 상남자 매력을 뿜어냈다. 이와는 반대로 혜리는 ‘그린무룩’을 보여줘 무슨 사연인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혜리는 강민혁의 목을 끌어안고 등에 폭 기댄 채 근심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다. 특히 붉어진 눈시울이 포착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어 혜리와 강민혁의 귀여운 눈싸움이 공개됐는데, 두 사람의 키차이가 설렘을 유발한다. 강민혁을 올라다 보는 혜리의 시선과 이런 혜리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는 강민혁의 모습이 가슴 설레는 비주얼을 만드는 것. 이에 앞으로 혜리와 강민혁이 그려낼 ‘딴따라’ 속 로맨스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된다. ‘딴따라’ 제작진은 “하늘이 석호와 그린 사이를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로맨스에 불이 붙을 예정이다. 그린을 향한 숨길 수 없는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는 하늘의 모습을 귀엽게 지켜봐 달라”고 전했다. 한편 ‘딴따라’ 측은 12일 ‘딴따라’ 연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끝에 2회 연장 방송을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기존 16부작이었던 ‘딴따라’가 2회 연장이 확정되면서 시청자들은 한 주 더 ‘딴따라’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사진=웰메이드 예당, 재미난 프로젝트 제공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딴따라 2회 연장 확정, 16→18부 “딴따라 밴드 성장스토리 연장 요청 많아”

    딴따라 2회 연장 확정, 16→18부 “딴따라 밴드 성장스토리 연장 요청 많아”

    SBS 드라마 ‘딴따라’가 2회 연장을 확정했다. SBS ‘딴따라’ 측은 12일 수목드라마 ‘딴따라’ 연장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끝에 2회 연장 방송을 확정지었다고 밝혔다. 기존 16부작이었던 ‘딴따라’가 2회 연장되면서 시청자들은 한 주 더 ‘딴따라’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한 관계자는 “최근 완전체를 이룬 ‘딴따라 밴드’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이들의 밝고 희망적인 성장스토리를 원하는 시청자분들의 요청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격적으로 2회 연장을 확정했고 앞으로도 더욱 탄탄하고 공감가는 스토리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딴따라’는 지난 11일까지 7회가 방송된 상태. 엄청나게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진 않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동시간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7회 방송분은 7.8%(닐슨코리아, 전국)을 기록했다. ‘딴따라’는 벼랑 끝에서 만난 안하무인 매니저 신석호(지성 분)와 생초짜 밴드 딴따라(강민혁, 공명, 이태선, 엘조)의 꽃길 인생작 프로젝트를 그린다. 혜리는 강민혁의 누나이자 딴따라의 매니저로 출연한다.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딴따라 밴드, 음악방송 오프닝 성사 “모두 다 쏟아내자” 지성-혜리 ‘뿌듯’

    딴따라 밴드, 음악방송 오프닝 성사 “모두 다 쏟아내자” 지성-혜리 ‘뿌듯’

    강민혁, 공명, 이태선, 엘조로 이루어진 딴따라 밴드가 드디어 첫 데뷔무대를 가졌다. 11일 방송된 SBS ‘딴따라‘(극본 유영아 연출 홍성창, 이광영)에서는 가요 프로그램 오프닝 무대에 서게 된 딴따라 밴드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국에 첫 출근한 딴따라 밴드 멤버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신석호(지성)은 “실수, 아쉬움 이런거 절대 안돼”라며 “실력과 매력 모두 다 쏟아내자”라고 말하며 멤버들을 격려했다. 이어 본 무대에 오른 딴따라 밴드는 멋진 모습으로 노래를 열창하며 성공적인 데뷔 신고식을 치렀다. 신석호와 그린(혜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봤다. 사진=SBS ’딴따라'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모더니즘 가구, 인도를 만나다

    모더니즘 가구, 인도를 만나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와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피에르 잔느레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서 열리고 있다. 르코르뷔지에(1887~1965·본명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와 피에르 잔느레(1896~1967)는 사촌 간으로 50여년간 협업하며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르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인도 찬디가르 1951-66’전은 두 사람이 인도 펀자브주의 주도 찬디가르에서 진행한 공동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찬디가르 프로젝트는 인도 고유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진보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20세기형 신도시를 세우는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찬디가르를 행정도시로 기획하고자 한 인도 정부의 의뢰를 받아 1951년부터 국회의사당, 고등법원, 간디도서관 등 주요 행정 건물의 건축 디자인과 실내건축, 가구 디자인을 총괄했다. 특히 잔느레는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역량을 통해 미약한 산업여건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현지의 문화적 특성과 기후에 맞게 집무실 책상, 응접용 테이블, 도서관 책상과 의자를 디자인해 통일성을 추구했다. 가구들은 인도 현지의 토속적인 재료와 장인의 전통적인 공예기술을 접목해 만들었다. ‘X’ ‘U’ ‘V’ 형상의 단순한 디자인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디자인한 가구는 견고하며 정교하게 가공한 것이 특징이다.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티크, 장미나무와 대나무 줄기를 활용한 가구들이 이번 전시에서 중점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실제 사람들이 관공서나 도서관에서 사용한 가구들이다. 잔느레는 찬디가르 건축사무소의 책임자로서 15년간 인도에 머무르며 프로젝트의 실행과 관리감독을 총괄했다. 이후 찬디가르 건축학교 교장을 지내고 현지인들에게 모더니즘적 건축 양식을 전파하는 등 인도 건축사에 크게 이바지했다. 전시는 29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의 인도 찬디가르 프로젝트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와 피에르 잔느레의 인도 찬디가르 프로젝트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와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피에르 잔느레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서 열리고 있다. 르코르뷔지에(1887~1965·본명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와 피에르 잔느레(1896~1967)는 사촌 간으로 50여년간 협업하며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인도 찬디가르 1951-66’전은 두 사람이 인도 펀자브주의 주도 찬디가르에서 진행한 공동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찬디가르 프로젝트는 인도 고유의 문화와 삶의 방식을 존중하면서 진보적인 도시를 건설하는 20세기형 신도시를 세우는 프로젝트였다. 이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찬디가르를 행정도시로 기획하고자 한 인도 정부의 의뢰를 받아 1951년부터 국회의사당, 고등법원, 간디도서관 등 주요 행정 건물의 건축 디자인과 실내건축, 가구 디자인을 총괄했다.  특히 잔느레는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역량을 통해 미약한 산업여건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현지의 문화적 특성과 기후에 맞게 집무실 책상, 응접용 테이블, 도서관 책상과 의자를 디자인해 통일성을 추구했다. 가구들은 인도 현지의 토속적인 재료와 장인의 전통적인 공예기술을 접목해 만들었다. ‘X’ ‘U’ ‘V’ 형상의 단순한 디자인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디자인한 가구는 견고하며 정교하게 가공한 것이 특징이다.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티크, 장미나무와 대나무 줄기를 활용한 가구들이 이번 전시에서 중점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실제 사람들이 관공서나 도서관에서 사용한 가구들이다. 잔느레는 찬디가르 건축사무소의 책임자로서 15년간 인도에 머무르며 프로젝트의 실행과 관리감독을 총괄했다. 이후 찬디가르 건축학교 교장을 지내고 현지인들에게 모더니즘적 건축 양식을 전파하는 등 인도 건축사에 크게 이바지했다. 전시는 29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급성백혈병 최성원, 과거 초콜릿 복근 눈길 “어쩌다가...”

    급성백혈병 최성원, 과거 초콜릿 복근 눈길 “어쩌다가...”

    배우 최성원의 급성백혈병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안긴 가운데 과거 건강했던 모습이 재조명되며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9일 JTBC ‘마녀보감’측은 최성원이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아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드라마에서 하차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에 과거 최성원이 건강미를 자랑했던 과거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해당 화보에서 최성원은 탄탄한 복근과 근육질 몸매를 공개해 여심을 저격했다. 특히 최성원은 화보 촬영 인터뷰에서 “변하지 않는 롤모델은 지치지 않는 열정과 완벽한 자기관리를 보여주시는 이순재 선생님”이라며 앞으로의 활발한 활동에 대한 의지를 다졌던 것으로 알려져 팬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한편 지난 1월 종영한 tvN ‘응답하라 1988’에서 보라(류혜영 분)와 덕선(혜리 분)의 남동생 ‘노을’로 출연해 큰 사랑을 받은 최성원은 최근 JTBC 새 금토드라마 ‘마녀보감’ 촬영 중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하차했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구멍 뚫린 필름… 검은 동그라미 사진… 감춰진 진실은

    구멍 뚫린 필름… 검은 동그라미 사진… 감춰진 진실은

    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은 검은 동그라미로 한쪽 눈이 가려져 있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검은 동그라미의 정체가 궁금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저항주의 예술가 벤 샨이 1936년 아칸소의 재정착민 가정에서 촬영한 이 사진의 필름은 펀치로 구멍을 뚫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왜, 누가 이런 행위를 가했을까? ‘검은 목요일’인 1929년 10월 24일 이후 미국은 대공황의 시대를 맞았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시작했고, 신설된 농업안정국(FSA)은 농촌 지원사업에 나선다. FSA에서 정보수집을 담당하는 부서 책임자로 임명된 경제학자 로이 스트라이커는 두 가지 임무를 맡았다. 대공황 여파로 미국 농촌에 불어닥친 빈곤의 실상을 기록해 정부관계자와 국민들에게 알리고, 뉴딜의 일환인 FSA 정책 실시로 농촌의 빈곤이 어떻게 개선돼 가는지를 기록하고 홍보하는 것이었다. 스트라이커는 숫자나 자료보다는 이미지를 선호했다. 워커 에번스, 도로시어 랭, 아서 로드스타인, 벤 샨, 칼 마이던스, 러셀 리, 티어도어 정 등 당대 유명 사진 작가들을 고용해 농촌 마을의 모습을 찍도록 주문했다. 사진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붙었다. 마을 중심가에 대한 전체 장면을 담고 주요 건물을 담을 것, 거리의 사람들을 담되 전형적인 인물을 담아야 하며 얼굴, 옷, 활동이 드러나야 할 것 등이다. 사진가들이 농촌 현지에서 보내온 사진 중에서 스트라이커는 FSA의 이념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진 원본(필름)에 펀치로 구멍을 뚫어 배제했다. 여러 번 반복된 컷이나 기술적으로 실패한 컷, 너무 예술적인 사진도 배제됐다. 흑인과 멕시코인이 들어간 사진도 가차 없이 잘렸다. 전체 17만 네거티브 사진 중에서 펀치된 컷은 10만여개에 이른다. 펀치된 사진은 FSA의 공식 사진 아카이브와는 다른 ‘죽은’(killed)파일로 분류돼 미 의회도서관 홈페이지(www.loc.gov/pictures/collection/fsa)에 남았다. 아카이브는 2011년부터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 갤러리 룩스에서 열리고 있는 ‘폐기된 사진의 귀환: FSA 펀치 사진전’은 거대한 사진 아카이브 중에서 펀치로 구멍이 뚫린 250여장의 사진으로 구성된다. 상업 갤러리에서 하기 어려운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전시다. 이 전시를 기획한 사진이론가 박상우 중부대 교수는 “펀치된 사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담론을 통째로 흔들 수 있는 요소를 지녔다”면서 “다큐멘터리 사진도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배제라는 행위를 통해 구축된 역사일 수 있으며 사진 자체에 따라붙는 객관성, 사실성, 진실성이 얼마나 신화적이고 허구적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라이커는 사진의 취사선택뿐 아니라 미디어를 통한 배포에도 개입했다. 그는 정부가 발간하는 다양한 보고서를 꼼꼼히 읽고 미디어 관계자들을 지속적으로 접촉하며 정부와 미디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파악한 뒤 고용된 사진가들에게 주문했다. 도로시어 랭의 유명한 사진 ‘이주 어머니’(1936년)는 스트라이커가 선택해 미디어에 실리고 수많은 대중에 노출된 케이스다. 박 교수는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서 찍는 자, 찍히는 자, 보는 자에 주목했지만 펀치 사진은 또 다른 주체, 즉 선택하는 자의 존재와 선택의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갤러리 룩스는 전시와 연계해 오는 13일 오후 2시부터 갤러리 지하에서 ‘이미지 파괴와 새로운 사진이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박상우, 이영준, 박평종이 발제자로 나선다. 전시는 6월 4일까지. (02)720-848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실천적 지식인의 곧은 삶, 고전이 그 뿌리

    실천적 지식인의 곧은 삶, 고전이 그 뿌리

    인간의 길을 가다/장 지글러 지음/모명숙 옮김/갈라파고스/384쪽/1만 8000원 학력 인플레는 점점 심해지는데 진정한 지식인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래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통찰과 혜안을 지닌 실천적 지식인들이 있었던 덕분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불평등으로 인한 기아문제에 경종을 울린 장 지글러가 그중 한 명이다. ‘인간의 길을 가다’는 평생을 불의에 맞서 살아온 지글러의 지적 원동력이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이 그를 팔십 평생 동안 지치지 않고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가게 했는지를 보여주는 인문학적 자서전이다. 지글러는 지식인의 역할을 묻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지글러는 기존의 사회제도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을 지식인의 중요한 역할로 규정하고 지적 거인들의 시대정신을 추적해 감으로써 지식인의 책무를 이야기한다. “지적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토로하는 그는 볼테르, 루소, 마르크스, 막스 베버, 루카치, 조르주 뒤비, 그람시, 호르크하이머, 피에르 부르디외 등 자신의 지적 토양을 이루게 해 준 사상가들의 시대정신을 더듬어 간다. 여기에 더해 지적 거장들의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끌어와 현재 세계의 현안을 재해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의 논의를 통해 불평등의 문제를 고찰한 뒤 논의를 현재의 세계 질서로 이어가는 식이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인간들 간의 불평등을 현재의 경제 질서에서 찾은 지글러는 “오늘날에는 식량 생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살 돈이 없어 식량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며 “현재의 농업생산력 수준은 120억명을 부양할 수 있음에도 영양실조와 만성적인 굶주림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는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등의 논의를 끌어와 현대 상품사회의 심각한 모순인 의식의 소외문제를 다룬다. 그는 위대한 사상의 재해석을 통해 이론과 실천의 통합을 이끌어 내고 세상을 어떻게 바꿔 나가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말처럼 그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현재의 구조를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가 글로벌 금융자본의 세계질서 속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구조와 빈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집스럽게 붙들고 평생 씨름하는 이유다. 지글러의 지적 연대기는 지금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며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함혜리기자의 미술관 기행]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Pinacoteca di Brera)

    이탈리아 밀라노를 찾는 여행자들은 밀라노 대성당과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갤러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 한다. 다시 밀라노를 찾게 되거나 처음 밀라노를 여행하게 된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이 있다. 밀라노 대성당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브레라 미술관이다. 로마의 바티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높이 평가받는 곳으로 특히 회화 컬렉션이 워낙 유명하기에 회화관이라는 뜻을 강조해 ‘피나코테카’로 불린다.  브레라 거리(Via Brera)에는 참신한 디자인의 액세서리 전문점과 가구, 갤러리, 인테리어 점, 주방용품점이 늘어서 있다. 옛 골목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브레라 거리 28번지에 미술아카데미와 미술관이 있다. 거리에서 보면 입구는 평범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을 둔 매우 아름다운 벽돌 건물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층에 브레라 미술아카데미가 있고 2층에 미술관이 있는 브레라 궁(Palazzo Brera) 건물은 처음 지어진 17세기 당시에는 예수회의 밀라노 본부였다. 14세기 부터 있던 수도원 자리에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리치니 부자의 설계로 1627년 완성된 건물의 외관은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고 기능에 충실하다. 하느님에 대한 절대 순종을 강조하며 높은 도덕심과 인내, 소명에 따르는 생활을 통해 각자의 인격을 완성하고 교육하고 봉사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예수회의 건물다운 엄격하지만 아름다운 외관이다.  이곳이 미술관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이다.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1773년 예수회 해체를 명하자 이곳은 원래의 목적을 잃게 된다. 계몽군주를 자처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이곳을 문화와 예술을 계몽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명했다. 그에 따라 미술 교육기관 브레라 아카데미가 들어섰고 학생들이 고상하고 세련된 감각을 키울 수 있도록 조각과 회화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천문대와 도서관이 들어섰다. 건물은 1776년 아카데미의 교수 주세페 피에르 마리니의 설계로 추가 증축을 거쳤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기증한 소규모 컬렉션은 요제프 2세(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아들)가 이탈리아 북부 지방을 통치할 때 종교기관을 환속시키면서 많이 늘어났다. 수도원들이 문을 닫고 몰수한 교회의 제단화들을 옮겨 왔고, 아카데미 교수들이 이탈리아 명작 회화 컬렉션을 확보하면서 미술관의 규모를 갖추자 1786년 작품들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미술품은 나폴레옹 통치 시대(1799~1815)에 크게 증가했다. 나폴레옹은 밀라노를 이탈리아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북이탈리아 전역의 궁전과 귀족들로부터 약탈한 미술품들을 브레라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나폴레옹 군대는 수천점에 달하는 회화 작품을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의 교회와 귀족들로부터 압수해 브레라로 보내왔다. 그동안 쌓인 방대한 작품들을 바탕으로 1809년 새로운 미술관을 개관했다.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프랑스 군대가 철수한 이후에도 몰수된 예술품은 그 자리에 남아 오늘날 브레라 미술관의 주요 컬렉션을 이루고 있다. 미술관은 개관 이후 브레라 아카데미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1882년 공식 분리돼 북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국립미술관으로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미대 학생들로 북적이는 브레라 미술아카데미를 지나서 오른 쪽 큰 계단을 올라가면 미술관이다. 왼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고 오른 쪽부터 전시실이 이어진다. 방을 따라서 관람하다보면 처음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 브레라 미술관의 컬렉션은 13세기에서 20세기까지를 아우른다. 특히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베네치아 화파와 롬바르디아 화파의 그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부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만테냐의 작품을 비롯한 북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컬렉션은 이 미술관의 백미로 꼽힌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북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의 ‘죽은 예수’(1475~1478년)다. 7번 방에 있는 이 그림은 엄격한 사실과 자유로운 상상력, 원근법의 대가로 이름을 날린 만테냐의 대표작으로 독특한 앵글로 잡은 구도와 사실적인 표현이 인상적이다. 만테냐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미화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만테냐는 관람자(혹은 화가 자신)의 시선을 대리석 침대에 누인 예수의 발 아래에서 시작해 화면 상단에 머리를 그리고, 왼쪽 구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며 슬퍼하는 마리아와 요한의 얼굴을 측면으로 그렸다. 2차원 화면이지만 정확한 원근법을 구사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다. 파도바 근처의 이초라 디 칼투로 출신인 만테냐는 스카르초네 밑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지만 파도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조각가 도나텔로의 영향을 받았다. 만테냐의 작품이 견고한 조각적 성격을 띠는 것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베네치아 화파의 시조인 야코포 벨리니의 사위가 되면서 자연스레 베네치아 화파의 영향을 받아 강한 조각적 성격은 조금 누그러뜨리고 엄격한 북방적 사실주의를 견지하며 북이탈리아 화파의 르네상스 양식을 수립했다. 이 작품에서도 못에 박혀 심하게 상한 발바닥이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하다. 죽은 예수의 얼굴도 초라하고 비극적이며 이를 보고 눈물 흘리는 마리아의 얼굴에도 주름이 가득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만테냐가 만토바의 산탄드레아 성당에 있는 자기 무덤을 장식하기 위해 그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미술관에는 만테냐가 1453년 완성한 성누가 제단화도 있다. 만테냐가 성 귀스티나 성당의 성누가 예배당을 장식하기 위해 22세에 완성한 초기의 작품으로 12개의 패널로 이뤄져 있다. 만테냐의 또 다른 작품 ‘아기 천사들과 성모자’(1485년)는 원래 베네치아의 성 마리아 마지오레 수도원에 있던 것이 나폴레옹 시대에 브레라로 옮겨졌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고 뒤로는 구름 사이로 수많은 아기 천사들이 있는 작품으로 아기 천사들의 다양한 표정이 사랑스럽다.  지오바니 벨리니(1430~1516)의 ‘피에타’(1460년)도 브레라 미술관에서 놓치면 안될 마스터피스로 꼽힌다. 조르조네와 티치아노의 스승인 조바니는 야코포 벨리니의 아들로 형 젠틸레와 함께 3부자가 베네치아 화파의 중심을 이뤘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에 붙여지는 이름이다. 벨리니의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와 그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제자 요한의 슬퍼하는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의 ‘성모의 결혼’(1504년)은 브레라 아카데미 초기에 유입된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이다. 중앙에 사제를 두고 요셉이 마리아에게 반지를 끼워주기 위해 나서는 장면을 그린 작품은 라파엘로 특유의 우아함과 섬세함과 고요함, 조화로운 채색과 구도, 각 인물과 사물의 정교하고 부드러운 묘사가 매우 아름답다. 이탈리아 전성기 르네상스의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명인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나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르비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라파엘로는 1500년경 페루자 부근에 있던 피에트로 페루지노의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으며 제단화와 프레스코화를 그렸다. ‘성모의 결혼’은 그가 수련기간 동안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원래 시타 디 카스텔로의 성 프란체스코 성당에 있는 산 주세페 예배당의 패널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전경에 인물들을 반원 형태로 배치하고 뒤로는 아치들이 반복되어 있는 웅장한 신전을 배치했다. 중심 인물들 뒤로 기하학적으로 연결된 길을 통해 시선을 자연스럽게 신전으로 이동시킨다. 전경의 인물과 공간, 건축물의 아치들을 조화롭게 연출하면서 화면에 통일감을 주고 있다. 스승인 페로지노가 페루지아의 두오모를 위해 그린 같은 제목의 제단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확실하지만 공간과 인물의 조화에서 이미 스승을 능가함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 스스로 매우 만족했던지 당시 갓 스물을 넘긴 라파엘로는 화면 속 신전의 중앙 아치에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완성한 날짜를 적어 넣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6~1492)의 ‘몬테펠트로 제단화’(1474년)도 놓치면 안될 작품. 그는 이론가로서 ‘투시화법에 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고 건축물이 조화롭게 배치된 패널화 ‘이상도시’(1470년)를 통해 원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엄밀한 원근법으로 재현된 건물의 내부에 성모가 아기예수를 무릎 위에 눕히고 있고 그 앞에 갑옷을 입은 우르비노 공작 몬테펠트로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 주위는 성녀와 성인들이 에워싸고 있다. 원근법에 따라 그려진 공간에 인물의 크기도 위치에 따라 비례를 정확하게 계산해 그려 착시를 일으킬 정도다. 맑은 색채와 위엄 있고 당당해 보이는 인물 표현이 당시로서는 매우 전위적이다.  벨리니 형제가 그린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마르코’(1506년)와 베네치아 화파의 또 다른 거장 틴토레토의 ‘성마르코 유해의 발견’(1566년), 카라바조의 ‘엠마우스에서의 저녁식사’(1605년) 등 마스터피스들을 감상하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다. 북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낭만주의 화가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달콤한 ‘입맞춤’(1859년) 앞에서 피곤을 달래보자. 아이에즈는 브레라 아카데미의 원장을 지냈고 30년간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화가로 부드럽고 세밀한 묘사, 인물의 정교한 감정표현에서 뛰어났다. 고성의 으슥한 계단 앞에서 두 남녀가 입을 맞추는 작품은 매우 낭만적이다. 남자는 아마도 떠돌이 음유시인이고, 여자는 양가집 규수일 수 있겠다. 달콤해 보이는 그림 뒤에는 정치적인 은유가 내포돼 있다고 한다. 남자의 옷 색깔이 붉은 색, 여자의 비단 드레스 색깔이 푸른색인데 이는 각각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상징한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두 남녀의 입맞춤을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불안한 동맹관계를 표현했다. 미술관이 있는 팔라초 브레라의 담을 끼고 오른편에 팔레트를 손에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프란체스코 아이예즈의 동상이 서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다음달 11일, 세계 최대규모 디너파티, 디네앙블랑 서울 개최

    다음달 11일, 세계 최대규모 디너파티, 디네앙블랑 서울 개최

    세계최대 규모의 디너파티가 다음달 11일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4일 디네앙블랑 코리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디네앙블랑 서울은 고메(Gourmet)를 중심으로 패션, 엔터테인먼트를 한 자리에서 즐기는 세계 최대 규모의 디너파티다. 5일부터는 일반인 참가등록이 가능하다. 이 디너파피에 참가하려면 총 3단계를 거쳐야 한다. 1단계는 호스트의 초청을 받은 게스트, 2단계는 1단계 회원의 초청을 받은 게스트가 등록할 수 있다. 3단계는 일반 참가등록으로 디네앙블랑 서울 공식 웹사이트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 중 선착순으로 발행받은 초청코드를 등록하면 된다. 참가비는 45달러(USD, 한화 약 5만원 선)이며, 페이팔(Paypal) 계좌로 결제할 수 있다. 디네앙블랑 코리아에 따르면 등록 1단계가 완료된 현재, 셰프 홍석천,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 패션디자이너 이지선, 스타일리스트 신우식, 패션디자이너 유리나, 배우 이유리, 송종호, 박하나, 김혜리, 모델 이현이, 가수 바다 외에도 패션, 뷰티,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다양한 게스트들이 디네앙블랑의 초청을 받아 참가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순백의 만찬이라 불리며 전 세계에서 진행된 디네앙블랑은 현재 뉴욕, LA, 런던, 시드니, 홍콩 등 전 세계 25개국 60개 도시에서 약 10만 여 명 이상이 참여했다. 프랑스 궁정문화를 재현한다는 취지 아래 드레스코드 화이트를 지켜야 하고, 파티에 필요한 집기류 및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최 2시간 전까지 장소를 공개하지 않는 시크릿 파티로 알려져 개최 장소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감도 고조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현대미술, 단색조 회화 내세워 이란 노크

    한국현대미술, 단색조 회화 내세워 이란 노크

     세계적으로 조명받고 있는 단색화를 내세워 한국현대미술이 이란을 노크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한국과 이란 두 나라의 문화교류 활성화를 위해 이란 현지에서 진행하는 ‘코리아컬쳐위크’의 일환으로 ‘텅 빈 충만: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 전시를 테헤란 밀라드타워 아트갤러리에서 열고 있다.  ‘텅 빈 충만: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큰 축을 이루는 단색조 회화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충만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달 항아리의 예술적 특질을 조명하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정준모 감독은 “한국의 단색조 회화는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외형적 유사성은 있지만 비우면 채워지고 가벼워지면 충만해 진다는 동양적인 생각을 담아내고 있어 한국인의 정서적 감성을 시각적으로 확인시켜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작가가 그림을 그리거나 달 항아리를 빚을 때 어떤 목적이나 지향점 보다는 그 행위를 통해 자기 수양적 의미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이란 사람들의 생활신조인 ‘인샬라’(알라의 뜻대로 하옵소서)’와 일맥상통한다”면서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런 공통점에 주목해 단순한 문화행사를 넘어 상호이해와 동질성을 강조함으로써 정치, 경제 및 외교를 뒷받침하는 문화의 실질적인 효과까지 고려해 기획됐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단색화를 잇는 김춘수, 김택상, 문범, 민병헌, 박기원, 서승원, 고 이승조, 제여란, 천광엽, 최명영 등 작가 10명의 회화 작품과 권대섭, 김익영, 문평, 이강효, 이기조 등 작가 5명의 달 항아리 작품을 조망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우수프로그램 권역별 순회사업(트래블링 코리안 아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리는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열린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딴따라 지성, ‘인간 비타민’ 애교 발산 “여러분 즐거운 하루♥”

    딴따라 지성, ‘인간 비타민’ 애교 발산 “여러분 즐거운 하루♥”

    배우 지성이 사랑스러운 애교로 팬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3일 지성은 인스타그램에 “#딴따라 저의 스타일리스트가 이렇게 만들었어요. 절대 제가 그런거 아니예요~뭔지 모르고 찍힘~^^ 근데 기분 좋음. 여러분! 즐거운 하루되시라구..♥”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사진에서 지성은 토끼 그림이 그려진 회색 반팔티를 입고 다양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특히 휴대폰 어플을 사용해 ‘빨간 망토’와 ‘고양이’로 변신한 지성은 깜찍한 매력을 맘껏 발산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에 네티즌들은 “지성 오빠 너무 좋아요”, “넘나 사랑스러운 것”, “오빠의 스타일리스트가 부럽습니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지성, 혜리, 강민혁이 출연하는 SBS 드라마 ‘딴따라’는 매주 수, 목요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사진 같은 회화 & 회화 같은 사진…낯익은 도시 ‘낯선 재탄생’

    사진 같은 회화 & 회화 같은 사진…낯익은 도시 ‘낯선 재탄생’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지만 예술가에게는 또 다른 관찰의 대상이 된다. 도시에서 발견되는 선과 면, 색채를 예술적 감성으로 재해석한 두 작가의 전시가 눈길을 끈다. 때와 장소, 접근방식과 표현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들이 풀어낸 도시의 풍경은 신기하게 흡사하다. 한운성(왼쪽·70)은 매듭, 사과 시리즈로 잘 알려진 화가다. “소재는 바뀌지만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주제는 일관된다”고 말하는 그는 몇해 전부터 도시의 풍경에 꽂혔다. 여행 중 마주하게 되는 풍경들을 디지털카메라로 채집한 뒤 컴퓨터로 편집 재구성한다. 자신이 보았던 건물의 파사드, 즉 피부만 남긴 채 주변을 지워내 마치 영화 세트장의 가벽이나 길거리 광고판 같은 형태로 바꾸고 전통적인 페인트 작업으로 색깔과 무늬를 표현한다. 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만나서 만들어진 작품 20여점을 ‘디지로그 풍경’전이라는 제목으로 서울 삼청동 이화익갤러리에서 4일부터 선보인다. 디지로그 풍경 시리즈는 시각적 이미지의 재현을 넘어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유럽의 동화 같은 마을, 유명한 관광명소, 독특한 분위기의 골목처럼 보기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풍경도, 난삽하게 페인트칠해진 부산 감내동이나 간판으로 도배된 금릉할인마트, 콘크리트 광화문처럼 보기 흉한 풍경도 화가의 붓을 통해 아름다움을 얻는다. 그는 “몇해 전 영국 브라이튼에서 묵었던 오래되고 낡은 호텔이 실제로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고 의미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을 계기로 시각적 이미지의 껍데기 이면에 실존하는 본질을 탐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장의 이미지를 옮겨 놓은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작가에게는 그 자체가 최종적인 현실이며 보이는 이미지의 진실이라는 얘기다. 전시는 24일까지. (02) 730-7817. 사진작가 김우영(오른쪽·56)은 여행 중 마주한 도시의 풍경을 마치 색면 추상회화 같은 풍부한 색감과 세련된 감각으로 표현한다. 어떤 사람의 삶은 소설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것처럼 그의 사진은 추상화보다도 더 추상화 같다. 캘리포니아의 선셋불르바드, 휴스턴의 올드컬럼버스로드, 몬트리올의 프롬나드드뷰포르…. 건물보다는 거리의 이름을 딴 작품들은 미니멀리스트의 회화 작품처럼 쿨하고 매력적이다. 몬드리안과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믹스하면 아마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갤러리에서 28일부터 열리는 김우영의 개인전 제목은 그래서 ‘얼롱 더 불르바드’(Along the Boulebard)이다. 김우영은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하듯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한 도시의 풍경에서 색다른 풍경을 찾아낸다. 도시 공간과 건물 자체를 또 다른 회화적 공간으로 변화시켜 색감이 풍부하고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같은 공간이라도 시간에 따라, 그리고 그 안에 거주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꾸준히 카메라에 담았다”면서 “선과 면으로 보이는 풍경에 사람의 이야기와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우영은 홍익대에서 도시계획학을 전공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사진을 공부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으로 돌아와 잡지 사진과 광고사진 등에서 각광받는 상업사진 작가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2007년 순수 사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여행을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삼는다는 그는 “1년 중 3분의2는 비행기나 차 안, 혹은 여행지에서 보낸다”며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적막 속에서 작업으로 풀어내곤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0일까지. (02)549-7575.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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