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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배설(裵說·1872∼1909)

    ‘항일언론의 선봉’ 대한매일신보가 고고(呱呱)의 성(聲)을 울린 지 100년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법통(法統)을 이은 서울신문은 배설 초대 사장,양기탁 초대 총무,박은식 초대 주필,신채호 주필,장도빈 주필 등 5명의 초창기 주역들이 활동한 영국과 일본,중국,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족적을 추적하는 특집을 마련했다.특별취재팀은 영국의 런던·브리스틀,일본 고베,중국의 상하이·다롄·뤼순·리양과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등 주역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유적지를 탐사했다.특히 중국·러시아 지역 취재에는 양기탁 선생의 외증손이자 박은식 선생의 증손자인 본사 경제부 박지윤 기자가 합류해 의미를 더했다.신문 운영과 논조를 좌지우지한 양 거두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이 100년 뒤 서울신문 기자의 신분으로 선대의 족적을 찾아간 역사추적이었다. |런던·브리스틀 함혜리특파원|인구 80만에 이르는 영국 남서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틀.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40분 거리에 있는 브리스틀에서는 일찍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해 노예시장과 설탕 수입항으로 번성했다.지금은 대학도시로 유명하며 항공·건축·IT 등 영국의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도시로 꼽힌다.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한국명 배설)은 브리스틀에서 1872년 11월3일 태어나 일본 고베로 떠나기 전(1887년)까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이곳에서 보냈다.그러나 15세에 가족과 함께 고베로 떠난 그가 37세에 서울에서 숨을 거두었기에 브리스틀에는 그에 관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브리스틀 중앙도서관의 지역·가족사 자료실에서 그의 아버지(토머스 핸콕 베델)가 1872∼1888년 거주한 곳을 더듬어 보는 방법으로 배설이 산 집들을 찾아보았지만 주소가 불명확한 탓에 생가인 ‘어거튼 빌라’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출생신고서에는 배설이 어커튼 로드의 어거튼 빌라에서 태어났다고만 적혀있을 뿐 주소는 나와 있지 않다.브리스톨시 거주자 기록부에도 어거튼 빌라로만 적혀 있다. 어거튼 로드에 있는 124채의 집을 일일이 확인하고 오래 된 집 앞에서는 혹시나 하면서 문을 두드려 주인에게 물어보았지만 “어거튼 빌라는 알지 못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5∼10세때 거주지인 ‘브롬프턴 빌라’의 위치도 버컬리 로드라고만 적혀 있어 역시 찾지 못했다.다행스럽게도 도일 직전까지 살던 타인 로드 20번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배설이 살던 세 곳의 거주지는 모두 브리스틀 시내 북서부의 호필트 지역에 있는데 이 일대는 오래 전부터 중산층의 주택가로 정평이 난 곳이다.배설은 10세부터 15세까지 타인 로드 20번지에 살았고 집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시청 옆의 머천트 벤처러스 스쿨 고등부 과학 과정에서 수학했다. 1595년 브리스틀 머천트벤처러스협회가 설립한 이 학교는 영국 최초의 상업·기술 교육기관으로 웨스트잉글랜드대학(UWE)의 모체가 됐다.배설이 다니던 당시의 학교 건물은 4층 높이의 빨간 벽돌 건물로 종합기술대학·상과대학이 차례차례 캠퍼스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고 방치돼 있다. 배설의 손녀인 수잔(49)과 손자 토머스(46)를 만난 곳은 런던 북부의 에지웨어 지역에 있는 하트랜드 클로즈 3번지.이 집은 수잔이 어머니(배설의 며느리 도로시·2002년 작고)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영국 중산층 주택답게 아담하고 깔끔하다.현관 오른쪽에 활짝 핀 보랏빛 무궁화가 눈길을 끈다.수잔은 할머니 마리 게일(1873∼1965)을 “무척 강인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경보시스템 전문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는 토머스는 “할아버지는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끝까지 투쟁한 용감한 영국인이었다.”면서 “언론의 정도를 걷다 젊은 목숨을 바친 할아버지의 뜻이 살아 남아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감격스러워했다. lotus@seoul.co.kr |고베 이춘규특파원|도쿄에서 신칸센 고속열차를 타고 고베로 향했다.배설 선생의 16년간 일본생활의 발자취를 단 하나라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사전 취재를 통해 그가 고베시의 사단법인 고베스포츠·사교클럽,약칭 KRAC의 사무국장을 역임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게 유일한 단서였다.KRAC는 1870년 국제교류 확대를 위해 40여명의 외국인 회원으로 출범한 국제사교모임이었다. 고베에 도착해 배설이 살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외국인 집단거주지인,고베항이 눈아래 보이는 언덕 위의 이인관(異人館·외국인집)지역을 찾았다.그러나 선생의 자취는 찾지 못했다.만나는 시민·당국자 누구도 배설을 몰랐다.결혼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사진관도 지금은 없었다. 오후에 KRAC를 찾아갔을 때도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설상가상 취재에 응하기로 사전 약속한 직원도 급한 일로 자리를 비웠다.대신 히라다 아키토시 사무국장이 따뜻하게 맞아주었다.어쩌면 전화위복이었다.히라다 국장은 배설을 모르며,클럽에서도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기록은 전쟁때 모두 소실됐다고 되풀이했다.대표들의 이름 정도만 남아있다는 것이었다.낙담이 컸다.하지만 히라다 국장이 안내한 2층 ‘바’ 벽면에 색바랜,100년 넘은 사진 몇장을 보고 “이 사진들의 원본은 있을 것 아닌가.”라고 물은 게 시작이었다.잠시 후 히라다 국장은 “너무 낡아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누더기가 된 사진첩 3권을 가져왔다.사진 제목과 깨알만한 주인공 이름을 일일이 대조해 나갔다.그런데 수백장의 사진 중에 하나에서 ‘E.T.Bethell’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사진 속 얼굴은 배설과 일치했다.1897년에 선생이 속한 고베선발 축구팀이 요코하마선발과의 연례 ‘항구도시간 친선축구’에서 4대0으로 이겼다는 내용도 있었다. taein@seoul.co.kr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틀)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상하이·다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 이언탁 박지윤 특파원˝
  • 유대인 오인 주부폭행은 자작극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사회를 한때 발칵 뒤집어 놓았던 유대인 오인 주부 폭행사건은 모두 꾸며낸 이야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파리 북부의 퐁투아즈 주(州)검찰은 13일 성명을 통해 전철 안에서 북아프리카인으로 보이는 6명의 청년들에게 전철안에서 유대인으로 오인받아 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던 23세의 여인은 이번 허위 자백으로 수감됐다고 밝혔다. 허위범죄 신고 혐의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최고 6개월의 징역과 7500유로(11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을 수 있다. 검찰은 “피해신고를 한 이 여인은 13일 오후 조사 도중 자신이 신고한 내용은 모두 거짓말이며 머리카락을 자른 것도,복부에 독일 나치 상징인 철십자가(하켄크로츠·불교의 卍자와 모양이 비슷해 보이지만 다름)를 그린 것도 자신이 저지른 것이었다고 털어놨다.”고 밝혔다. 문제의 이 여성은 지난 9일 오전 파리 교외의 도시고속전철(RER)D선 열차 안에서 가혹행위를 당했으며,그동안 동행하던 승객 20여명이 범인들을 제지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주장했었다. lotus@seoul.co.kr˝
  • 英 ‘작은정부’ 시동

    |파리 함혜리특파원| 영국 정부는 14일 교육,의료,국방 등 공공서비스 개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앞으로 3년 내에 공무원 10만 4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향후 3년간의 정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잉글랜드지방에서만 8만 4150명의 공무원을 해고할 계획이며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북아일랜드에서도 정부 행정기능의 민간 이양을 통해 2만여명의 공무원을 감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분야별 감원 예정자는 노동·연금 4만명을 비롯해 국방 1만 5000명,재무 1만 6850명,가정복지 2700명,교육 1960명 등이다. 브라운 장관은 또 2만 30명이 근무 중인 런던지역의 행정기관을 물가가 싼 외곽 지역으로 재배치하고,30조파운드 규모의 정부 부동산을 민간에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lotus@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6)항일 논객 장도빈 주필

    장도빈 선생은 망명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천년 가까이 잠자고 있던 발해(699∼926)를 처음으로 찾아낸 역사학자이다. 보성전문 법과에 진학한 1908년 약관의 나이에 박은식 선생의 소개로 대한매일신보 논설기자로 발탁됐고 와병중이던 신채호 주필을 대신해 논설을 집필했다.1909년에는 단재와 일주일씩 교대로 논설을 쓸 정도였다.그의 글로 알려진 ‘금일 대한민국의 목적지’‘일인하지(日人何知)’ 등은 매서운 항일 필봉의 본보기를 보여준다. 이후 신보가 일제에 의해 문을 닫기 전까지 3년 동안 단재와 ‘친동기 이상’의 친분을 쌓았고 그의 영향으로 역사에 눈을 떴다.양기탁 선생으로부터도 두터운 신임을 받아 비밀리에 신민회에 가입했고 국채보상운동에도 동참했다. ●신한촌 여관방에서 단재와 동고동락 데라우치 총독 암살모의사건인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검거열풍이 일자 1912년 국외 망명길에 올라 일단 북간도로 피신했다가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로 스며들었다.회고록에서 “신한촌에서 단재 선생을 만나 같은 여관에서 동고동락했다.”고 적고 있다.단재 선생이 주필로 있던 권업신문에 논설을 기고했다. 물 설고 낯선 땅이었지만 1910년대 연해주 신한촌에는 선생을 비롯, 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주역 5명중 배설(1909년 서거) 선생을 제외한 전원이 엇비슷한 시기에 드나들며 몸을 의탁했었다.마치 대한매일신보사를 연해주로 옮긴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천년 동안 잠자던 발해를 깨우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내륙 쪽으로 100여km 떨어진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양대 성지로 꼽힌다. 선생은 이곳의 옛 지명이 쌍성자(雙城子)였던 사실에 주목,틈 날 때마다 답사했다.당시 한인들은 해삼위(海蔘威·블라디보스토크),쌍성자(우수리스크),수청(水淸·빨치산스크),추풍(秋風·수이푼),연추(延秋·크라스키노),동개터(나홋카),지신허(地新墟·치진헤)처럼 러시아 지명을 쓰지 않고 고구려,발해 때부터 전해내려 오던 한국지명을 썼다. 선생이 성벽,해자,절터 등 유적을 찾아내 발해의 동경성터로 추정했던 곳은 현재의 크라스노야르 성이다.성안에는 넓은 공터가 자리잡고 있어 크기와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었고 성밖에는 토성이 남아 있었다.성을 감싸고 흐르는 수이푼강은 적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해자였다.성은 지명 그대로 남성(南城)과 서성(西城) 등 2개의 성(雙城)으로 이뤄져 있었다. 서쪽 성은 시가지에 편입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하지만 남쪽 성의 절터에 방치돼 있는 4개의 현무암 주춧돌과 발해식 축성법을 보여주는 토성 일부는 아직 남아 발해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지난 1995년 우수리스크 일대를 발굴한 러시아 극동고고학연구소는 성내부의 경사면에 위치한 집터에서 온돌구조를 찾아냈다.9세기 당백자(唐白磁) 도편도 출토돼 발해시대 문화층 존재가능성이 확인됐다. ●극동대학엔 장도빈기념관이 우뚝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아데우스카야 56번지에 위치한 극동대학 동양학부는 1899년에 세워진 동양학의 산실이다.무려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대학 건물 옆에 한국학대학이 서있다.건물 이름은 ‘장도빈 기념관’이다.선생의 아들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이 사재를 들여 지었다. 선생의 ‘고토(古土)’ 발해에 대한 집착이 연해주를 대표하는 극동대학의 건물 이름으로 현재화한 것이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틀)=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이춘규 특파원 ●중국 및 러시아(상하이,다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노주석 이언탁 박지윤 특파원˝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5) 대문장가 신채호 주필

    ‘붓을 들어 사물을 논하면 신(神)이 동(動)한다.’고 했던 대문장가 신채호 선생이 주필로 재직한 1907년 10월부터 1910년 4월까지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은 천지를 뒤흔드는 ‘구국의 필봉’앞에 몸을 떨었다.선생이 집필한 ‘일본의 3대 충노’‘한일합병론자에게 고함’같은 논설은 기백이 넘치는 가운데 논리 전개가 정연하고 다분히 선동적이었다. ●망명후 연해주 개척리에 기거 1910년 망명길에 오른 선생은 중국 칭타오를 거쳐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카레이스카야 슬라보드카(한인거주지)에 숨어들었다.지금의 포그라니치나야 거리는 당시 한국인들이 개척리(開拓里)라고 부르던 곳이다. 이곳에는 선생을 비롯,장지연·이강·홍범도·유인석 선생 등 쟁쟁한 독립지사들이 운집해 있었다.선생은 개척리 344호와 600호에 머물면서 해조신문과 대동공보의 발간에 관여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지나가는 철둑길부터 항구까지 길이 1㎞에 불과한 이 거리는 지금은 한국총영사관과 한국음식점,서태지 공연이 열린 경기장 등이 늘어선 시내 중심가로 변모했다. ●‘서울거리’문패가 유일한 흔적 1911년 봄 러시아 당국의 개척리 강제철거 계획에 따라 한인들은 지금의 신한촌(新韓村)으로 집단이주했다.선생은 연해주 한인들의 자치 및 독립운동조직인 권업회의 기관지 ‘권업신문’의 주필로 항일언론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신한촌은 1만여 한인들이 거주하는 러시아 한인사회의 구심점이자 해외독립운동의 메카였다. 1920년 춘원 이광수가 ‘바윗 등에 굴 붙듯이 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은 집’,‘동서로 6정(町,1정은 약109m),남북으로 7정의 면적’,‘겨울이면 결빙된 얼음 위를 걸어서 훈춘·왕청·화룡 등 북간도를 오가던 곳’‘집집마다 놓인 온돌방’등으로 표현한 신한촌은 지금은 고급 아파트촌이다. 하바로프스크 거리 율리차 10호에서 창간됐고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동휘 선생의 집(21호) 바로 옆집이던 권업회와 권업신문사의 옛터는 물론 대한국민의회같은 수많은 독립운동단체와 한인학교,‘3·1독립문’등이 서 있던 거리엔 아파트와 차고가 촘촘히 들어서 당시의 흔적을 찾기 위해 마을 구석구석을 뒤지던 취재팀을 허탈하게 했다. 단지 바다쪽 철길에 면한 아무르스카야 언덕배기에 ‘서울스카야 2A’ 즉 ‘서울거리 2번지’라고 적힌 문패가 붙은 러시아식 주택 1채가 이곳이 신한촌이었음을 알리는 유일한 증좌로 남아 있을 뿐이다.한국총영사관 박상태 부영사는 “이곳을 박물관으로 꾸미려 했지만 계획을 눈치챈 소유주가 15만 루블에 불과한 집값을 200만 루불이나 요구하는 바람에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당시 신한촌 거주 한인들에 관한 기록을 찾고자 취재팀이 방문한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문서보관소에는 한국관련 자료가 20여권 남아 있었다.문서보관소측이 공개한 ‘1913년 신한촌거주자 명단’에 따르면 204개 동에 712가구가 사는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알렉산드 토르포프 소장은 “거주자의 이름,이주연도,종교,직업,생년월일,동거자와의 관계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면서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대부분의 독립지사들이 이곳에 불법체류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상하이·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국제플러스] 佛, 인종차별 범죄자 사면 제외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혁명기념일(7월14일) 대사면 대상에서 인종주의 범죄자와 성폭력 범죄자를 제외키로 했다.12일 프랑스 언론에 따르면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최근 프랑스에서 두 종류의 범죄가 급증함에 따라 올해 혁명기념일 사면 대상에서 인종주의적 범죄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기결수들을 제외토록 했다.최근 프랑스에서는 주로 유대인들에게 행해지는 인종차별적 범죄가 올 상반기 6개월동안 230여건이 발생,벌써 지난해 전체 발생 건수(179건)를 넘어섰다.특히 지난 9일 파리 교외 고속전철 안에서 어린 아이를 동반한 젊은 여성이 청년 6명에게 유대인으로 간주돼 심한 폭행을 당한 사건이 발생해 큰 충격을 안겼다.이로써 혁명기념일 사면에 포함되지 않는 범죄는 기존의 테러,반인도주의적 범죄,미성년 대상 범죄 등에 인종주의 범죄와 성폭력 범죄가 추가됐다. /***/ 프랑스는 지난 2002년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수감자가 급증한 바람에 현재 정원이 4만 9500여명인 전체 교도소에 6만 3500여명이 수감돼 있다.프랑스 정부는 사면제도를 활용해 교도소의 인구과잉을 일부 해소해 왔다.lotus@seoul.co.kr˝
  • [세계 일류에서 배운다-佛 아코르그룹] 미소로 일궈낸 ‘호텔제국의 신화’

    ‘우리는 미소를 만들어 갑니다.’프랑스의 호텔전문경영그룹 아코르(www.Accor.com)가 추구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한 문장이다.아코르 그룹은 최고급 호텔부터 편익 위주의 저가 모텔까지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서비스 분야까지 합쳐 전세계 140여개국에 진출해있다.아코르 그룹의 종사자는 15만 8000여명.호텔 및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다. |파리 함혜리특파원|세계적인 경기침체와 9·11테러,이라크전쟁 등 악재가 속출하면서 관광·호텔 산업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아코르 그룹은 호텔 분야에서 유럽의 선두,세계 4위의 자리를 고수하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지난 해에만 아코르 그룹은 한국(이비스 앰배서더)을 포함,전세계에 170개의 호텔을 새로 열었다.6월11일에는 클럽 메드의 지분 28.9%를 2억 5200만유로에 인수,최대주주가 됐다. 1967년 호텔 단 하나로 출발해 37년 뒤인 2004년 현재 전세계 85개국에 3894개(객실수 45만 3403개)의 호텔을 거느린 거대 왕국으로 성장한 아코르 그룹의 성공은 세계 호텔업계에서 살아있는 신화로 받아들여진다. ●호텔체인 건설의 꿈이 현실로 성공신화의 시작은 4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63년 가을 파리의 포르트 드 클리시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두 청년은 처음 인사를 나눴다.한 사람은 미국의 MIT대에서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재정학을 공부한 뒤 IBM 유럽 파리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던 31세의 제라르 펠리송.또 한 사람은 뉴욕 맨해튼에서 실물 경제학을 공부하고 방금 귀국한 29세의 폴 뒤브릴. 폴은 제라르에게 “유럽은 관광자원이 무한대인 반면 호텔은 전근대적인 수준”이라며 “미국의 홀리데이인 같은 체인식 호텔 개념을 유럽에 도입하면 미래의 관광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도전적인 사업가 기질을 지닌 폴에 비해 계산이 빠르고 신중한 제라르는 “좋은 아이디어”라며 맞장구쳤다.한발 더 나아가 “다른 호텔의 프랜차이즈로 있느니 아예 독자적인 호텔 체인을 설립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로부터 4년 뒤.투자자를 찾지 못해 폴의 아버지가 사재를 털어 폴의 고향인 릴 교외에 62개의 객실을 가진 첫 호텔이 문을 열었다.‘노보텔(Novotel)’1호다. 별 3개에 해당하는 고급호텔인 노보텔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호텔과는 전혀 다른 현대적 컨셉트로 주목을 끌었다.우선 시내 중심가가 아닌 도시 외곽에 위치해 자동차 운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방 크기도 크려니와 객실마다 욕실을 갖추고,비즈니스맨들의 취향에 맞게 실내도 현대적으로 깔끔하게 디자인했다.대성공이었다. 노보텔-SIEH 그룹 공동대표가 된 두 사람은 다른 호텔이 겨우 하나 들어설 때 10곳의 노보텔을 세우는 등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1973년 고속도로와 인접한 파리 동부에 프랑스 최대규모의 객실 600개짜리 노보텔 바뇰레를 세웠다.6년만에 문을 연 35번째 노보텔이었다. ●끝없는 도전 노보텔이 별 3개짜리 고급호텔 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위치에 오르자 폴과 제라르는 별 2개짜리 등급의 중저가 호텔시장으로 눈을 돌렸다.규격화된 실내 디자인으로 노보텔에 비해 건설비용을 30% 절감하고,객실가격도 30% 정도 내린 이코노미 클래스의 호텔 이비스(Ibis)가 1974년 보르도에 문을 열었다. 1980년에는 최고 등급의 별 4개짜리 호텔인 소피텔(Sofitel) 체인을 인수,최고급부터 중저가 호텔까지를 갖춘 호텔그룹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노보텔-SIEH는 1982년 단체급식,간이식당체인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자크보렐 인터내셔널의 경영권을 인수했으며 이듬해에는 기업 규모의 확장에 맞춰 조직을 재정비,아코르 그룹으로 재탄생했다. 프랑스 호텔산업을 부흥시킨 폴 뒤브릴과 제라르 펠리송은 1997년 1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아직도 ‘아코르 친선대사’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아코르 그룹의 최고경영자가 된 장마르크 에스팔리우(51)사장은 “아코르 그룹은 장기적인 경영비전과 주도면밀한 시장분석으로 호텔사업을 확장해왔다.”며 “서비스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하는 철저한 품질관리와 안정적인 경영을 통한 기업이윤 창출,기업가치 확립이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에스팔리우 사장은 “지역적 안배와 등급의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고객들의 수요에 부응하는 동시에 각종 외부요인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경제적으로 악재가 돌출하는 시기일수록 최고급보다는 고급 및 중저가 상품의 수요가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아코르 그룹의 지난 해 총 매출은 68억 2800만유로(약 9조 7149억원),세전이익은 5억 2300만유로(약 7441억원)에 이른다. lotus@seoul.co.kr˝
  • [함혜리특파원 유럽은 지금] 佛 인종·종교갈등 사회문제로

    서유럽국가에서 인종·종교 갈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프랑스에서 아기와 함께 파리근교의 도시고속전철을 타고 가던 젊은 주부가 백주 대낮에 10대들로부터 끔찍한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9일 오전 북부 외곽을 오가는 도시고속철도(RER) D선 객차안에서 13개월된 아기를 동반한 여성(23세)을 6명의 청년들이 칼로 옷을 찢고 복부에 나치독일의 상징인 만(卍)자형 십자상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행패를 부렸다.이런 가혹행위를 하는 동안 같은 열차에 탑승했던 승객들 중 누구도 나서서 만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톨레랑스(관용)’가 미덕인 프랑스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경찰에 따르면 15∼20세 가량의 흉기를 든 범인들 6명은 애초에는 강도짓이 목적인 듯 열차에 탑승했던 이 여성에게 다가가 시비를 걸며 가방에서 돈과 신용카드 등을 빼앗았다.이 여성이 파리 16구(區)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분증을 발견한 범인들은 “16구에는 유대인만 살고 있다.”고 외친 뒤 갑자기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이용해 “기념품으로 삼겠다.”면서 이 여성의 머리카락을 6조각 냈고,셔츠를 절단한 뒤 복부에 펜으로 ‘만(卍)’자를 2개 새겼다고 전했다.이 과정에서 유모차에 타고 있던 13개월 된 어린 아이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하지만 피해자는 실제 유대인도 아니고,더 이상 16구에 살지도 않았다. 다행히 이 여성과 아이 모두 심각한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이번 사건은 프랑스내 유대인과 이슬람인 등 소수민족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격 증가에 따른 공포심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시민의식 부재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이번 사건에 대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까지 나서 “부끄러운 사건”이라고 강한 유감을 표시하면서 범인들을 색출해 엄벌하라고 지시했다.그는 또 “자녀들에게 광신주의,배타주의,극단주의 맹종에 대한 치명성을 자녀들에게 상기시켜야 한다.”고 프랑스인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프랑스 경찰은 교외선 열차역 내 목격자 탐문과 폐쇄회로 TV 화면 탐색 등을 통해 범인들을 추적 중에 있으며,시민단체들은 목격자들에게 즉각 범인색출 작업의 협조를 촉구하고 나섰다. lotus@seoul.co.kr˝
  • [세계 일류에서 배운다-佛 아코르그룹] 아코르 호텔아카데미

    |파리 함혜리특파원|파리 남부에 있는 위성도시 에브리는 아코르 그룹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그 옆에 자리한 아코르 아카데미에서 아코르 그룹의 직원 재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서비스업에서 가장 중요한 인적 자원의 지속적인 개발을 위해 그룹 초창기인 1985년 세워진 이곳에서 리셉셔니스트부터 지배인,조리사까지 각 분야의 종사자들은 창업 이래 이어져 온 ‘아코르 정신’(신뢰,책임감,전문가 정신,투명성,혁신)을 몸으로 터득해 나간다. 세미나실에서는 10여명이 지도 교수와 함께 역할 연기 수업을 하고 있었다.조리실에서는 조리복을 입은 사람들이 연회에 필요한 요리와 상차림을 배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강의실과 세미나실,언어교육실,식당 등 일반적인 교육기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설들 외에 아카데미는 소피텔,노보텔,이비스 등 아코르 그룹의 호텔별 객실을 갖추고 있다.식당 벽 한면에 설치된 후각 테스트 장치도 눈길을 끈다. 아코르 아카데미의 에르베 베르트랑 원장은 “호텔업은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 등을 만족시켜야 하는 다감각적인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면서 “호텔 종사자들에게 현장감 있는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직접적인 교육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이곳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치는 코스는 잠수함 시뮬레이션.잠수함 모양으로 된 시설물 내부에 들어간 사람들은 해저 6000m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들은 중앙 통제실에 있는 사람들과 원격으로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베르트랑 원장은 “언제,어디서,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 호텔서비스이며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평소보다 과장되게 감정을 표현한다.”며 “잠수함 시뮬레이션은 극도의 긴장된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책임감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스스로 터득,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인 훈련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프랑스 전역에서 아코르의 직원 1만 5000명이 아카데미를 다녀갔으며 이곳에서 개발한 특수교재를 통한 원격 교육 수강생도 5000명에 이른다.아코르 아카데미는 프랑스 외에도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브라질 등 10곳에 있으며 지난해 11만명이 최소 한 차례 이상 교육을 받았다. lotus@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4) 초대주필 박은식

    대한매일신보의 초대 주필 박은식 선생은 언론인이자 교육자,역사학자였다.무엇보다 임시정부 국무총리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항일 독립운동가의 사표(師表)였다. 중키에 턱뼈가 좀 튀어나왔지만 항상 미소짓는 강직·온화한 인상의 소유자였으며 성격은 관후·소탈했다.양기탁 선생의 소개로 배설 선생을 만나 1905년 8월 초대 주필로 인연을 맺었으며 1907년 10월 신채호 선생을 후임으로 앉혔다. ●고구려 옛터에서 교육·저술 활동 나라를 빼앗기자 1911년 4월 랴오닝(遼寧)성 환런현(桓仁縣)으로 망명,대종교의 3대 교주 윤세복이 설립한 동창학교에서 신채호 선생과 함께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고구려의 환도성 옛터에 자리잡은 동창학교는 도시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위치는 현재 환런현 정양가도 서궐가 민족백화점 근처로 추정된다. 그는 “비록 국체(國體)는 망했지만 국혼(國魂)이 소멸당하지 않아야 한다.”라면서 ‘동명성왕실기’‘발해태조건국지’같은 역사서를 쓰고 가르쳤다.서북 만주와 요동평야가 모두 고대 우리 민족의 활동지임을 증명하고 이곳에 독립운동의 새 기지를 세우려는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연해주서는 한족공보 주간으로 일제에 의해 동창학교가 폐교 압박을 받자 1918년 러시아 연해주로 건너가 전로한족대표자회의 기관지인 ‘청구신보’의 후신인 ‘한족공보’의 주간을 지냈다.블라디보스토크와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기지 구실을 한 우수리스크의 체체리나 거리 31번지에 있던 신문사 터는 폐허로 변했지만 러시아에 귀화한 고려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던 선생의 의지는 연해주에 사는 4만 5000여명 고려인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다. 박환(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러시아 동포들은 신문발간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라는 목표 아래 구한말부터 해조신문·대동공보·권업신문·청구신보·한족공보 등 숱한 신문과 잡지를 간행해 왔다.”면서 “조국의 국권회복과 독립은 물론 재러한인들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이 재정난으로 문 닫자 체체리나 거리 54번지에 위치한 고려사범전문대학(현재의 우수리스크사범대학 물리수학부) 등 지역의 한인학교를 순회하며 역사교육을 통해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신한촌 기념탑엔 잡초가 무성 선생은 1919년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당시 한인들이 ‘해삼위(海蔘威)’라고 부른 블라디보스토크시의 중심가 서북쪽 아무르만 연안 언덕배기 북쪽 하바로프스카야 거리 끝 아파트단지 옆에는 이 도시의 유일한 한인관련 역사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1999년 8월15일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건립한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그것이다. 1911년 건설된 신한촌(新韓村)은 한때 1만여명의 한인들이 거주하던 러시아 최대의 한인 집단거주 지역이었지만 지금은 고급 아파트단지로 변했다.신한촌의 의미를 기록한 기념비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했다.철제 출입문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더구나 3개의 기념탑신에는 낙서를 지운 자국이 얼룩져 있었고 비 앞에는 마른 꽃다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한국문화 전도 美교사 메리 코너

    |로스앤젤레스 연합|“20년 전 한 학생이 보여준 성실성과 겸손이 나를 한국 문화에 매료되게 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각급 학교 교사들의 한국문화·역사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회갑을 넘긴 벽안의 미국인 여교사 메리 코너(캘리포니아주 샌마리노)의 발걸음이 분주하다.12일부터 15일까지 LA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캘리포니아 남부 일원 25개 중·고교 교사들을 위한 세미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을 모으고 프로그램 기획,강사진 구성까지 혼자 힘으로 해낸 열성파 할머니로 교직 경력 33년의 그는 “20년전 그 한국 학생을 본 뒤 숱한 외침,식민통치,참혹했던 전쟁,경제난을 극복한 강인한 생명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라는 호기심 때문에 한국계 학생들로부터 어깨너머로 배워 시작한 공부가 평생의 업이 됐다.”고 말했다.“은퇴한 뒤에도 학생과 교사들에게 한국 문화를 계속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역사와 문학,음악 등 다양한 장르로 시야를 넓혔고 최근 5년간은 아예 교실에서 한국을 소재로 한 영문소설 강독이나 아쟁,대취타를 감상하며 심화학습까지 할 정도가 됐다. 최근에는 김은국의 ‘잃어버린 이름’,최숙렬의 ‘안녕할 수 없는 세월’,이혜리의 ‘할머니가 있는 풍경’ 등을 학생들에게 읽혔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전했다.패서디나 명문사립 웨스트리지고교의 비교적 개방적인 교과과정도 그가 한국문화 ‘전도사’가 되는데 힘이 됐다.코너 교사는 “이민 2세 등 뿌리 교육이 덜했던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정체성을 찾을 때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2002년 한국문화 소개서를 발간하기도 한 그는 7년 동안 미 전역 교사세미나에 참석,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렸고 지난 4월에는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기금 지원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3) 초대총무 양기탁

    대한매일신보의 대들보인 우강 양기탁 선생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영어사전을 편찬하고 일본 나가사키상업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근무하는 등 33살 때까지의 삶은 평탄했다.능통한 영어·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정부관리(예식원 주사)와 한성전기회사 간부로 채용되는 등 출세길이 보장돼 있었다. ●배설과의 만남·20여년 망명생활 하지만 1904년 배설 선생과의 운명적 만남(34세) 이후 ‘혁명가의 길’이 주어졌다.이후 5년여 동안 대한매일신보를 통한 국채보상·신민회 운동 등을 펼쳤고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병합되자 1910년 만주로 탈출,1918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등지에서 활동했다.1922년(52세) 임시정부 주석 등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살아서 광복한 조국땅을 밟지 못했다. ●리양에서 맞은 쓸쓸한 임종 선생은 1938년 5월21일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든 중국 장쑤성 리양현 대부진 남문두 고당암에서 6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지금은 논으로 변해 버린 암자에서 중국인들에 둘러싸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20여년 동안 중국 관내와 만주,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떠돌며 독립운동에 몸바친 그의 유해는 사후 60년 만인 1998년에야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봉환됐다. ●우수리스크엔 담장만 남아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 거리인 우수리스크 자나드보롭스가야 15번지에서 그의 숨결을 만날 수 있었다.우수리스크는 러시아거주 9만여 고려인들의 절반가량이 모여사는 연해주의 여러 도시중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사료에 의하면 선생은 서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들어왔으며 고려인신문 ‘한인신보’의 편집인으로 청빙됐다.선생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자 이동휘 선생 등이 주도한 환영회가 대대적으로 열린 사실도 기록돼 있다. 1917년 5월 전 러시아 한인의 대표기구인 전로한족중앙총회가 개최된 자나드보롭스가야에서 선생은 박은식·이동휘·최재형 선생 등과 함께 사자후를 토하며 조국의 독립투쟁 방안을 논의했다.우수리스크와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한인들이 러시아혁명 이후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독립운동을 모색하려고 연 회의였다.그러나 우강은 최초의 한인 공산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창건에 반대하고 국제유대를 통한 조국독립운동을 주장,갈라서고 말았다. 1㎞ 남짓한 이 거리에는 ‘노령정부’로 알려진 대한국민의회와 그 기관지 청구신보의 사무실 등이 세들어 있었다.부자들이 모여 산 화려한 주택가로,시장의 주택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체체리나 22번지에 학교가 들어섰고 집이 있던 거리는 운동장에 편입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취재팀을 안내한 송지나(러시아 극동대) 교수는 “길 건너편에는 100년 전에 지은 오래된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서 “도시계획에 따라 학교쪽 집을 모두 허물고 길을 넓혔다.”고 말했다. 운동장 구석 잡초 더미에서 발견된 허물다 만 오래된 집 담장이 취재팀을 상념에 빠지게 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 (2) 초대사장 배설

    100년전 ‘제2의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의로운 항일 독립투쟁을 펼친 ‘대영남자(大英男子)’배설 선생의 족적은 영국·일본·중국 등 그가 머무른 곳곳에서 발견됐다.36살이라는,짧지만 맹렬한 삶을 산 그의 숨결이 남아 있는 영국 런던과 브리스톨,일본 고베,중국 상하이를 찾은 특별취재팀은 마치 그와 동시대를 사는 듯한 느낌속에 역사추적 여행을 시작했다. ●런던에서 만난 혈육 토머스 남매 취재팀은 선생이 나서 자란 영국 남서부의 항구도시 브리스톨에서 생가(生家)를 찾는 데 실패했지만 런던에서 후손들을 만나 100년 전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런던 북부의 에지웨어 하트랜드 클로즈 3번지에 사는 손자 토머스(46)와 손녀 수전(49) 남매를 만난 것이다.그들은 한국정부가 추서한 건국훈장과 추서장,그리고 낡은 사진첩과 서류 뭉치 등 선생의 유품을 거실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토머스는 사진을 통해 익숙해진 배설 선생의 모습을 빼닮았다. 두 사람은 베델가의 길지 않은 역사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깊이 우려했다.수전은 결혼 후 베델의 성 대신 블랙(Black)이라는 성을 갖게 됐고,토머스는 루신다라는 9살난 딸만 두고 있다.루신다가 결혼하고 나면 베델 성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는 설명이다. 할아버지의 사진과 출생·사망기록 등 유품을 고이 간직해 온 수전은 “유품은 우리 베델 가족의 귀중한 역사이지만 한국인들에게도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면서 “한국인들이 이를 볼 수 있도록 전시공간이 마련된다면 기증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고베에서 발굴한 사진 한장 일본 서남부의 항구도시 고베에도 선생이 남긴 족적이 빛바랜 몇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특히 고베지역 외국인사회에서 가장 전통 깊은 고베 레가타 어슬레틱클럽(KRAC)에서 뚜렷했다. 취재팀은 이곳에 보관된 낡은 사진첩 3권을 샅샅이 뒤진 끝에 고베선발 축구선수 유니폼을 입은 선생의 25살때 사진 1장을 새롭게 발굴하는 소득을 올렸다.고베는 선생이 15살 때인 1888년 가족과 함께 건너가 1904년 한국행에 오르기 전까지 16년 동안 산 곳이다. 선생이 가족과 함께 산 고베외국인거류단지 42번지와,선생이 운영한 회사가 위치했던 69번지는 고베의 대표적인 상업중심지로 변해 있었다.42번지에는 다이마루백화점 고베점이 들어서 있고 69번지에는 12층짜리 다이이치세메이 빌딩이 서 있다.빌딩 북쪽에 쇼우간지(商館址)라는 비석이 서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폭동 교사’ 괴상한 죄목 선생이 1908년 6월18일부터 3주간 옥고를 치른 중국 상하이 영국조계 안 형무소는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선생은 당시 신문을 통해 폭동을 교사한 혐의로 3개월의 금고형 및 6개월 근신형을 선고받고 이곳에서 복역했다. 선생을 대한매일신보에서 손 떼게 하려는 일본의 흉계와 외교적 술책의 결과였다.선생은 복역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듬해 5월 세상을 등졌다.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상하이)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 [국제플러스] ‘소녀 9명 살해’ 佛 연쇄살인범 충격

    |파리 함혜리특파원|60대의 프랑스 남성이 지난 1987년부터 2001년 사이 9명의 소녀를 연쇄살해했다고 자백,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던지고 있다.프랑스와 벨기에 국경 지역인 아르덴에 사는 미셸 푸르니레(62)는 검찰 조사에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7명을 살해했으며,2000∼2001년에 2명을 더 살해했다고 자백했다.푸르니레는 지난 1987년 프랑스 법원에서 강간 등 혐의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구류기간 초과를 이유로 몇 달 뒤 풀려났다가 지난해 6월 미성년자 납치 등 혐의로 벨기에서 또다시 체포돼 수감 중 그의 아내의 제보를 받고 추궁하는 경찰에 연쇄살인 사실을 자백했다.˝
  • [함혜리 특파원의 파리지앵 스타일] 여름미인 유혹하는 갈색화장품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도 전에 파리의 거리에는 갈색으로 그은 피부를 자랑하며 매력을 뽐내는 여성들이 쉽게 눈에 띈다.어깨와 가슴,배꼽이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은 갈색 미인들에 비한다면 백옥처럼 하얀 피부를 지닌 여성들은 어딘지 좀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멋진 ‘갈색 미인’이 되고 싶은 욕심에 파리의 여성들은 햇살이 강하게 비치는 날이면 공원이나 야외 수영장에는 꼭 가려야 할 데만 남기고 몸을 드러낸 채 해바라기를 즐긴다.노천 카페에서도 햇볕이 강하게 드는 자리가 유독 인기를 끈다. 검게 그은 피부가 건강하고 활동적인 현대 미인의 상징으로 자리잡으면서 일부러 햇빛에 태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태닝 효과를 내는 화장품과 크림들이 파리의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 갈색 톤의 화장품은 사무실 등 실내에서 장시간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몸을 태울 시간이 부족한 여성들의 여름 필수품이다.‘태양빛을 머금은 화장품’,‘적도의 유혹’ 등 광고 문구를 동반하고 출시된 화장품들은 평상시 사용하는 기초 화장품에 비해 색상이 짙은 편이어서 피부가 자연스럽게 그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낸다.게를랭의 갈색 콤팩트 ‘테라코타’는 제품 출시 20년째를 맞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다른 화장품 제조사들도 자외선 차단제가 들어간 태닝 파운데이션 크림과 콤팩트,여기에 어울리는 색상의 색조화장품들을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에스테로더는 ‘앰버 브론즈’를 올 여름 전략 상품으로 내놓았고, 디오르는 ‘디오르 브론즈’‘비치 걸 001’ 등 갈색 톤의 가루 분과 무지갯빛의 볼터치,오렌지 빛 립 글로스를 선보였다.아르마니는 ‘브론즈 마니아’라는 제품라인을 선보이며 고급 색조화장품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식물성 소재의 중저가 화장품을 생산하는 이브로셰의 대표적인 올 여름 신제품은 짙은 갈색의 콤팩트 ‘트로피컬 템테이션’이다. 얼굴뿐 아니라 몸 전체가 그은 효과를 내 주도록 몸에 바르는 갈색 보디로션도 애용된다.최근에는 선탠 샤워가 등장,멋쟁이 여성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매직 탠’이라는 선탠 샤워는 분무기를 통해 알로에 베라,DHA,영양 크림을 온 몸에 뿌려주는 방식이다.약 10초 동안 4차례 정도 온 몸에 분무 샤워를 하고 난 뒤 몇 시간이 지나면 피부는 곱게 그은 색깔을 띠게 된다. 한번 샤워하는 데 드는 비용은 30유로(약 4만 2000원).비누 샤워를 하지 않으면 일주일 동안 태닝 효과가 지속된다고 한다. lotus@seoul.co.kr˝
  • 30대 ‘네오비아’ 임승준 사장 창업 2년만에 佛 증시 상장

    |파리 함혜리특파원|창업한 지 2년도 채 안 된 한국계 중소기업이 처음으로 프랑스 증권시장에 상장된다.LCD와 플라즈마 TV 등 평면 디스플레이를 전문으로 조립생산하는 한국계 프랑스 기업 ‘네오비아’(NEOVIA)는 오는 7일 기업설명회를 시작으로 주식공모에 들어가 15일쯤 프랑스의 2부 시장에 상장될 예정이다. 네오비아의 임승준(37) 사장은 “‘가격 대비 품질 만족도가 높은 제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프랑스 현지 고객과 투자자들로부터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 단기간에 본궤도에 오른 비결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등으로 대기업에 납품하지 않고 자체 브랜드로 프랑스 시장에 침투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단기간 내 시장진입을 위해 네오비아 외에 보급형 브랜드 ‘슬라이딩’을 별도로 상표등록하고 하이퍼마켓 등 대형 유통업체에 접근한 것이 주효했다. 슬라이딩 제품은 네오비아에 비해 값이 10%정도 싸지만 기본적인 성능은 나무랄데 없다. 평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이처럼 브랜드를 2가지 보유한 곳은 네오비아뿐이다. 그는 “평면 TV는 고가품이지만 음극관 TV를 대체하면서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시장의 가격변화에 얼만큼 능동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임 사장은 “이번 증시 상장을 통해 프랑스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보다 강화하고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대기업들도 들어오기 어려운 서유럽의 선진 시장을 중소기업도 공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게 돼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lotus@seoul.co.kr
  • 佛 집권당 ‘파워게임’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떠오르는 정치인인 니콜라 사르코지 경제재무장관 사이에 권력 게임이 본격화하고 있다.시라크 대통령은 지난 22일 오후 엘리제궁에서 사르코지 재무장관과 독대를 갖고 그에게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총재직과 장관직 중 하나를 택하도록 ‘최후통첩’을 내렸다고 일간 르몽드가 24일 보도했다.UMP 총재직을 맡기 위해서는 경제재무장관직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사르코지 장관은 UMP 총재 선거와 오는 2007년 대선 출마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으며 이는 오는 11월 UMP 총재 선출을 앞두고 UMP 내에서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UMP는 시라크 대통령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알랭 쥐페 전 총리가 현재 총재를 맡고 있으나,그는 UMP의 전신인 공화국연합(RPR) 불법 재정조달 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아 다음달 사임할 예정이다.이에 따라 UMP는 11월에 새 총재를 선출해야 한다. 그러나 사르코지 장관이 UMP의 당권을 장악하기 위해 경제재무장관직을 내놓을지는 불투명하다.재무장관은 총리에 이어 정부내 서열 2위로 장기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프랑스에서 정치인의 능력과 추진력을 시험하는 최대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집권 중도 우파 내 소수파에 해당하는 사르코지 장관이 차기 대선을 노리기 위해서는 불황 탈피라는 국가적인 선결 과제를 해결함으로써 대통령 재목임을 스스로 입증해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lotus@seoul.co.kr˝
  • [국제플러스] 미테랑 아들 돈세탁혐의로 구금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아들인 장크리스토프 미테랑이 돈세탁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에 구금됐다.장크리스토프 미테랑은 23일 경찰에 출두했으며 경찰은 그가 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운영 중인 수산업 기업의 자금 출처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경찰은 이 자금이 앙골라에 대한 불법 무기판매에 따른 수수료에서 나왔는지 집중 조사 중이다.미테랑 전대통령의 아들로 지난 86년부터 92년까지 부친 밑에서 아프리카 담당 보좌관을 지낸 적 있는 장크리스토프 미테랑은 앙골라에 대한 불법 무기 판매와 관련해 이미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 [국제플러스] 佛 동성애 혐오 불법화법안 승인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 정부는 동성애 혐오를 불법화하는 법안을 승인했다.정부는 23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 주재로 각료회의를 열어 동성애 혐오 불법화법안을 통과시켰다.이 법안은 성이나 성적 성향을 이유로 타인에게 차별,증오,폭력 등을 선동했을 때 1년 이하 징역,최고 4만 5000유로(약 6000만원)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또 이 법안은 동성애 혐오를 인종 차별이나 유대인 박해와 유사한 범죄로 간주했다.˝
  • [김선일씨 살해] 국제여론 비난 한목소리

    |파리 함혜리특파원·서울 황장석기자|유엔(UN)과 국제인권단체 등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이 “잔혹한 범죄행위”라며 김씨를 살해한 단체를 비난하며 처벌을 요구했다.해외 주요 언론들도 이번 일을 긴급뉴스로 다루며 한국의 추가 파병에 미칠 영향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유엔 “정당화할 수 없는 잔혹행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이번 일을 접하고 “경악했다.”면서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냉혹한 범죄행위를 가장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그는 성명에서 “(숨진)김씨의 가족과 한국 정부에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면서 이라크에 억류돼 있는 모든 인질들의 즉각적이고 안전한 석방을 호소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긴급 성명을 통해 “정치적 강요나 다른 어떤 명분으로도 인질로 붙잡는 것은 극악한 국제법 위반이며 김씨를 납치·살해한 범인들은 스스로 최악의 범죄자라는 것을 드러냈다.”며 이라크 당국에 범인 처벌을 촉구했다. ●외국언론 “추가 파병 어찌되나” 외국 언론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한국사회의 애도 분위기를 전하면서도 사건이 한국의 추가 파병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3일 추가 파병을 둘러싼 납치단체와 한국 정부의 협상 과정이 원만하지 않았다는 점이 김씨 피살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한국 현지 보도 내용을 전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한국 내의 파병 반대 여론이 고조될 것으로 전망했고,NHK방송은 한국 정부가 김씨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추가 파병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언론들은 22일 저녁(현지 시간) 이번 사건을 긴급뉴스로 전했다.르몽드와 르피가로,리베라시옹 등 주요 신문들도 22일 저녁(현지시간) 김씨 피살 소식을 일제히 인터넷판 주요 뉴스로 다뤘다.신문들은 “한국 정부가 이라크에서 최소 인원만 남기고 자국민을 조만간 철수시킬 계획이지만 추가 파병 방침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은 23일 김씨의 죽음이 해외 분쟁경험이 거의 없는 한국에 충격을 주고 있다며 그의 죽음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 노무현 대통령에게 정치적 타격이라고 전했다.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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