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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육조거리/함혜리논설위원

    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운 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경복궁과 도성, 궁성, 관아를 모두 완공한 것은 태조 7년(1398년)에 이르러서다. 그해 4월26일 태조는 새 도읍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신도팔경(新道八景)을 그린 병풍 한벌씩을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에게 내렸다. 신도팔경에서 기전산하(한양을 중심으로 한 산하의 형세), 도성궁원(성곽과 궁궐의 모습)에 이은 제3경은 바로 열서성공(列署星拱). 궁궐 앞의 여러 관아들이 북극성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두칠성 등 별들로 둘러싸여 배열된 모습을 읊은 것이다. 열서성공은 이후 육조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조선시대 주작대로의 모습을 가리킨다. 육조거리는 경복궁이 준공되던 해인 1395년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조성한 거리다.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현재의 광화문 사거리)까지 이르는 대로로 오늘날 세종로의 전신이다. 광화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우측에는 의정부와 이조·한성부·호조가 위치하고, 좌측에는 예조·중추부·사헌부·병조·형조·공조 및 사역원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었다. 여러 관아건물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졌던 육조거리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함께 화재 피해를 입었다가 조선 말 대원군 때 본격 재건됐다.19세기 말까지 육조거리는 관아를 출입하는 관료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러나 구한말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 주요 관공서들이 들어서면서 원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실시한 일제의 새로운 행정개편에 따라 육조거리는 광화문통으로 바뀌었다. 세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시공현장에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시대별 도자기 파편 등을 근거로 육조거리 토층은 19∼20세기(구한말∼일제 강점기),16∼18세기(임진왜란 전후),14∼15세기(조선건국 시기)로 확연히 구분된다. 서울시는 육조거리 토층을 떠내 새롭게 조성되는 광장내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역사를 다시 흙으로 덮어버린다는 계획이다. 그보다는 현장을 그대로 살리는 방법을 찾아줬으면 좋겠다.600년 도읍지라고 백번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교육적일 것이다. 함혜리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경기여고 개교 100주년/함혜리논설위원

    한국 여성들이 유교적인 가부장제 체제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기 시작한 조선 말기. 북촌의 양반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찬양회(讚揚會)라는 단체가 조직됐다. 이 단체의 목적은 남녀 동등의 입장에서 여성인재를 배양할 여학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찬양회 회원 등 북촌의 양반가 부인 100여명은 1898년 10월11일 고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특별히 여학교를 설치하야 어린 계집 아해들로 하여금 학업을 닥사와 대한도 동양의 문명지국이 되옵고 각국과 평등의 대접을 받게 하옵시기를 업드려 바라옵니다.” 이 상소를 받은 고종은 학부로 하여금 관립 여학교를 설립토록 했고, 이듬해 정부는 예산에 여학교비 3750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관립 여학교의 설립은 정부회의에서 설립안 부결로 무산되고 만다. 그로부터 10년뒤인 1908년 4월 2일 순종 황제 칙령으로 고등여학교령이 반포되면서 비로소 최초의 여자공교육기관인 관립 한성고등여학교가 태어나게 된다. 경기여고의 전신이다. 다른 여자 사립학교들이 선교사나 개인 독지가에 의해 세워진 것과 달리 여성들의 자발적 움직임에 힘입어 설립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남녀 내외법의 관습이 엄격하던 시대에 관립여학교 설립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조선인으로 근대교육을 담당할 인사가 드물었고, 남녀 내외법의 관습이 공고한 지경이라 교사 구성도 어려웠다. 학생 모집은 더욱 힘들었다. 순정효황후가 같은 해 5월20일 휘지를 내려 여자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초대 어윤적 교장이 학생이 될 만한 규수가 있는 집을 찾아가 입학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정원 100명을 채우기 힘들었다.7월2일 읽기와 쓰기, 셈하기 정도의 입학시험을 치르고 첫 입학생 43명이 선정됐다. 이들의 나이는 8세에서 25세까지 다양했다.1908년 7월4일 한성부 서쪽 뒷골(종로구 도렴동)의 한옥에서 첫 입학식이 치러졌다. 시작은 어려웠지만 2년 뒤부터는 배움에 목마른 여성 수재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국 여성 공교육의 요람 경기여고가 15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과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의 산실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함혜리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라디오 연설/함혜리 논설위원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긴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마셜 맥루언은 명저서 ‘미디어의 이해-인간의 확장’(1964년)에서 “커뮤니케이션 수단들(미디어)은 그것이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더 많은 효과(메시지)를 지닌다.”고 했다. 매체의 기계적인 특성 자체가 감각을 확장시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바꾸고, 그 결과 우리 자신과 외부 세계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설명이다. 맥루언은 청각의 연장인 라디오를 핫미디어(hot media)로 분류했다. 청각과 시각, 촉각의 매체인 텔레비전에 비해 라디오는 직관적이고 감성적으로 관여하는 경향이 크다. 이런 매체적 특성 때문에 라디오는 오래전부터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라디오의 영향력을 가장 먼저 꿰뚫은 정치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다.1933년 미국 32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대공황의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뉴딜정책을 이해시키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라디오 연설을 갖기로 했다. 그의 라디오 연설은 대중 앞에서 하는 딱딱한 정치연설이 아니라 벽난로 앞에서 가족들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차분한 목소리 방식으로 한다고 해서 ‘노변정담(fireside chat)’이라고 했다. 루스벨트는 매주 일요일 저녁 30분간 진행된 라디오연설로 국민들에게 ‘희망의 리더십’을 각인시킴으로써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혼란을 극복하고 미국 역사상 4선 대통령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노변정담식 라디오연설은 국가적 위기를 맞은 후대 대통령에게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변정담식 국정연설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대공황 못지않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들과 소통하겠다고 하는 것은 나무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라디오를 선택한 것은 좀 뜻밖이다. 전국민의 71%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맞지 않는 것도 문제고, 목소리가 라디오연설을 하기에 그다지 적합치 않은 것도 문제다. 가뜩이나 우울한 출근길 시민들에게 괜히 짜증을 더해주는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공연단신]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폭풍의 언덕’(송현옥 각색·연출)이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4관에서 공연된다. 영혼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을 통해 이 시대가 잃어버린 강렬한 사랑을 보여준다.19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재현한 아름다운 의상과 무대도 볼거리다. 서태화, 서은경 출연.(02)741-0408. ●어린이 공연전문극단 사다리의 다문화체험 연극 ‘이가 흔들 세상이 들썩’이 26일까지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세모극장에서 선보인다. 주인공 봄이와 봄이의 다른 나라 친구들을 통해 젖니가 빠지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신나고 재미난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24개월 이상.(02)382-5477. ●연극 ‘이웃집 발명가’(최우근 작·남동훈 연출)가 30일까지 대학로 아츠플레이 2관에서 공연된다. 발명품이란 유일한 매개체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천재 발명가와 이웃집 여자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통해 현대인의 소통의 부재를 재치있게 그린다.(02)741-0408. ●코리아W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김남윤)가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건국 제60주년 기념음악회를 갖는다. 안익태의 코리아 환타지, 박범훈의 새산조(가야금 협주곡), 청산별곡, 천둥소리 등이 연주된다. 소프라노 김현정·체칠리라, 테너 신동호, 태평소 김경아, 가야금 박혜리나 등 출연.
  • [길섶에서] 나잇값2 /함혜리 논설위원

    나잇값에 대한 글을 읽고 지인이 ‘나잇값에 대한 단상’이라면서 이메일을 보내왔다.50대 초반의 공직자인 그는 “나잇값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하고, 본심을 가려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다. 우리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여러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희로애락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고, 심지어 옷도 마음대로 입지 못한다. 감정에 솔직하게 행동하면 주책없다는 소리를 듣기 일쑤다. 그런데 메일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글의 요지는 그게 아니었다. 본론으로 들어가니 나이가 들면서 편해지는 것도 많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좀 둔해져서 편하고, 더 많이 놓을 수 있어서 편하고, 남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서 편하고, 덜 먹어도 배고프지 않아서 편하고, 더 많이 참아줘도 힘들지 않아 편하고, 남들보다 덜 가지고 있어도 다른 것을 더 가지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어서 편하고, 져 줄 수 있어서 편하다.’고 썼다. 상당한 경지에 오른 내공이 느껴졌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노벨 물리학상/함혜리 논설위원

    노벨상은 지적인 업적에 수여되는 상들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인정받는다. 물리학·화학·생리의학·문학·평화·경제학 등 6개 부문 모두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이 가운데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상은 노벨 물리학상이다. 물리학은 모든 자연과학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노벨 물리학상은 노벨이 유언장에 남긴 대로 ‘선구적인 발견과 개척적인 발명으로 과학발전에 공헌한 학자들’에게 수여된다. 독일의 빌헬름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공로로 1901년 처음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이래 183명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퀴리부인, 아인슈타인, 헤르츠, 톰슨 등 쟁쟁한 과학자들의 이름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 수상자의 국적을 보면 미국이 73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그 다음이 영국 19명, 프랑스 13명, 네덜란드 7명 순이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의 찬드라세카라 라만이 1930년 빛의 산란에 관한 연구로 첫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많은 수상자를 낸 나라는 올해 수상자 3명을 포함해 총 5명을 배출한 일본이다. 지난 7일 올해 노벨 물리학상 공동수상자가 모두 일본인 출신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열도는 열광했다. 주요 신문은 호외를 발행할 정도였다.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 등 3명의 수상 결정으로 물리·화학·의학생리학 등 노벨과학상을 받은 일본인은 12명으로 늘었다. 기초과학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결과다. 일본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소식은 지금까지 과학기술 투자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 한 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도 배출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부럽기만 한 일이다. 우리는 노벨과학상을 배출한 26개국의 대열에도 끼지 못한다. 흔히들 지난 1977년 교통사고로 타계한 이론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노벨상에 가장 접근한 한국인 과학자로 꼽는다. 이 박사가 세상을 떠난지 30년이 지나도록 세계적 수준의 과학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창의력과 거리가 먼 과학교육, 입시위주의 교육,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 등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30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나잇값/함혜리 논설위원

    나이에 어울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얘기할 때 흔히 ‘나잇값도 못 한다.’고 한다.‘나잇값 한다.’는 것은 그 반대의 경우를 빗댄 얘기일 터이지만, 최근들어 좀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어느덧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지금까지 살아 온 날보다 적은 나이가 되면서 몸의 여기 저기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나 자신도 그렇고, 또래 친구들도 그렇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새록새록 실감이 간다. 또래의 지인들로부터는 부모님이 위중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부모님 병환 때문에 병원 출입이 잦다는 친구는 “모두가 우리 나이에 겪어야 할 일들”이라고 말한다. 인생이 즐거움과 행복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요즘 부쩍 나이듦과 질병, 죽음의 문제들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그게 다 ‘나잇값’ 하느라고 그런다는 결론을 얻고, 인간이라면 모두가 겪는 일이니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래도 서글픈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직 수양이 덜 된 탓일 게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진실/함혜리 논설위원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얼마전 탤런트 안재환이 사채 빚 때문에 결국 자살의 길을 택했다는 뉴스를 들은 것은 병원에서였다. 불시에 난소암 선고를 받고 항암치료 중이던 30대 초반의 젊은 환자는 “이렇게 중병을 얻고 보니 ‘죽겠다’는 푸념도 함부로 못하겠다.”고 했다. 병원에 가보면 불치의 병에 맞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하루하루 줄타기를 하면서도 끝까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 그들은 살기를 갈망한다. 인기 탤런트 최진실이 어제 새벽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으면 사랑하는 두 자녀를 둔 엄마가 그런 극단적인 길을 택했을까. 그래도 의문은 여러가지가 남는다.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것이 무엇이었는지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진실은 그녀와 함께 묻힐 터이므로.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경단녀’/함혜리 논설위원

    지난해 외무고시 합격자의 67.7%가 여성이었고 행정고시와 사법 시험의 여성합격자 비율은 각각 49%,35%나 됐다. 중앙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은 50%에 육박한다. 양성평등 사상의 확산과 함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신감과 도전 정신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무늬만 화려한 여풍(女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6년 기준으로 54.8%로 미국 69.3%, 덴마크의 76.7%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들의 고용률은 58.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성의 고용상황은 더 비참하다.2008년 3월 현재 우리나라 여성 임금 노동자는 정규직 233만명(34.5%), 비정규직 416만명(65.5%)이다.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임금에서도 차별은 여전하다. 임금수준은 남성대비 0.61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여성 경제활동 분야에서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부분은 결혼과 출산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들 문제이다. 결혼이나 출산을 앞두고 자발적으로 퇴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여성 근로자들이 결혼과 출산 등으로 퇴직을 강요당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청년들도 직장을 갖기 어려운 마당에 한번 경력 단절을 겪은 여성이 다시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나마 제공되는 일자리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던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의 노동시장 재진입에 정부가 최근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이 최근 제정됐고 내년도 예산안에도 사업계획이 반영됐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다시 일하고자 할 때 재취업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시일하기센터’ 운영에 73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며 직업지도, 직업훈련, 취업알선, 고용유지를 위한 사후관리까지 담당하게 된다. 여성 인적자원 개발이 성장 잠재력 확충과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미국식 자본주의/함혜리 논설위원

    1938년 8월30일. 시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일련의 경제학자들이 파리에 모였다. 당시 많은 국가들에서는 계획 경제로 방향을 선회하는 상황이었다. 발터 오이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레이몽 아롱, 월터 리프먼 등은 쇠퇴하던 자유주의 이념을 구하기 위해 ‘월터 리프먼 콜로키움’을 결성했다.19세기 자유방임주의와 대별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e)’는 이렇게 태동했다.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신자유주의 모임을 재건한 사람은 하이에크였다. 그는 1947년 스위스의 몽펠르렝에서 지식인 39명을 초청해 학회를 열고 자유주의적 세계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했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은 후에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산실 역할을 한 ‘시카고 학파’를 만들었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핵심이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시장개입 필요성을 강조하며 1930년대 이후 미국 경제정책을 주도해 온 케인스 이론이 1970년대 서구 선진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계기로 후퇴하면서 경제학의 신주류로 등장했다.19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적극 채택하면서 유례없는 장기호황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후 신자유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로 불리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미국은 전세계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설파하며 금융시장 개방과 무한경쟁을 독려했다.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가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식 자본주의의 종말, 신자유주의의 종언이라는 분석과 함께 자본주의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는다. 각국의 정상들은 미국식 탈규제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새로운 시장질서의 구축을 적극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국책은행 민영화와 금산분리 완화, 글로벌 투자은행 육성 등 금융규제 완화라는 기존의 시장만능주의적 정책 틀을 고수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단성사/함혜리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처음 영화가 소개된 시기는 의견이 분분한데 1903년 황성신문에 ‘동대문 내 전기회사에서 활동사진을 돌린다.’는 기사가 소개된 것으로 미뤄 이를 시초로 보기도 한다. 활동사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고 일본인들의 조선 진출이 늘어나면서 서울에는 전문적인 상설관들이 하나둘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중의 하나가 종로3가에 있는 단성사(團成社)다. 1907년 좌포도청이 있던 자리에 2층 목조건물로 세워진 단성사는 일반 연회장으로 부침을 거듭하다 1918년 광무대(光武臺)의 경영자인 박승필(1875∼1932년)이 인수하면서 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탈바꿈했다. 박승필은 판소리 탈춤 등 구극(舊劇)을 전문으로 하는 광무대와 영화 위주의 단성사를 동시에 운영함으로써 당시 일본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흥행계에서 한국인으로는 독보적인 위치를 확립했다. 극장운영을 통해 축적한 자본으로 영화제작에도 뛰어들었는데 그가 신파극단 신극좌의 대표 김도산과 손잡고 만든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활동사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義理的仇討)’이다. 당대 최고의 흥행사 박승필 제작에 김도산 각본·연출, 그리고 일본의 촬영기사까지 동원된 ‘의리적 구토’는 1919년 10월27일 단성사에서 처음 공연돼 10만명이나 관람하는 흥행 성공을 거뒀다. 이후 단성사는 ‘장화홍련전’(1924년), 나운규 원작 및 주연의 ‘아리랑’(1926년),‘춘향전’(1935년)을 상영하며 한국영화의 개척기를 지켰다. 단성사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이다.‘역도산’(1965년),‘겨울여자’(1977년),‘장군의 아들’(1990년),‘서편제’(1993년) 등이 단성사에서 상영돼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한국 영화의 역사를 지켜 온 101년 역사의 단성사가 23일 최종 부도처리됐다.2005년 총 10개관 1800여석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재개관했으나 무리한 재건축에 따른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극장을 임대해 운영하고 있는 ㈜씨너스 측은 건물주가 바뀌어도 영화상영은 계속할 것이라고 하지만 왠지 얼마 되지도 않는 우리 문화의 살점이 뚝 떨어져 나간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메리골드/함혜리 논설위원

    오랜만에 집 뒤의 매봉산에 올랐다. 정상까지 30분도 채 안 걸리는 낮은 산이지만 운동삼아 산책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정상을 지나 산을 끼고 내려오는 길 양 옆으로 주황색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팻말에는 서툰 글씨로 ‘메리골드’라고 쓰여있다. 몇 달전 산에 올랐을 때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한 할아버지가 모종판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꽃을 심고 계셨다. 한뼘 정도 되는 높이의 모종들을 길을 따라 심고는 땅을 다독여 주었다. 목에 걸쳤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그 할아버지는 “메리골드는 꽃 피는 기간이 아주 길어요.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줄기차게 피니까 4개월 정도는 예쁜 꽃을 볼 수 있을 게야.”라고 하셨다. 그 모종들이 이렇게 튼실하게 자라 예쁜 꽃을 피울 줄이야. 초가을의 스산한 바람 탓에 잠시 가라앉았던 기분이 메리골드를 보니 금세 밝아졌다. 꽃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냥 피어있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주는 꽃…. 산을 찾는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나누려고 정성들여 꽃을 심고 가꾸신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송일국 “최정원에게 맞고 김혜리에게 또 맞고”

    송일국 “최정원에게 맞고 김혜리에게 또 맞고”

    KBS 특별기획드라마 ‘바람의 나라’(연출 강일수 지병현·극본 정진옥 박진우)에서 주인공 ‘무휼’역을 맡은 송일국이 하루 촬영 분에 두 명의 여인에게 뺨을 맞았다. 송일국은 18일 방송된 ‘바람의 나라’에서 철 없는 청년 시절의 ‘무휼’을 연기하다가 부여의 공주인 연 역의 최정원과 고구려의 왕비인 미유부인 김혜리에게 연이어 뺨을 맞는 수난을 겪었다. 이날 제 4회 방송분에서 무휼은 위기에 빠진 연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오해를 사게 돼 뺨을 맞은 데 이어 미유부인에게도 뺨을 맞는 등 무휼의 수난시대를 연기했다. 송일국은 촬영 전 최정원에게 “난 괜찮으니 연의 감정대로 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최정원은 미안한 마음에 강하게 때리지 못해 되려 많은 NG를 일으켰다. 반면 왕비 역의 김혜리는 강렬한 감정을 실어 송일국의 뺨을 강타하고 단 한번에 O.K 사인을 받아내 “역시 왕비님이다.”라는 칭찬에 민망함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바람의 나라’는 MBC ‘베토벤 바이러스’와 정면 맞대결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 1% 대의 간소한 차이로 수목극 최강자의 자리에 등극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광장] ‘사회적 자본’을 아시나요?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회적 자본’을 아시나요? /함혜리 논설위원

    세계은행은 ‘국부는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보고서에서 한 나라의 국부(國富) 창출에 있어서 핵심 중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의 국부창출 기여도는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경우 81%에 달했다. 반면 후진국과 중진국은 50%,68%에 불과했다. 각 국가의 국부 수준 차이가 결국은 사회적 자본의 수준차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자연자본·생산자본과 함께 국부를 창출하는 3요소로 꼽히는 사회적 자본은 물적·인적 자본과 대별되는 무형의 자산이다.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시민의식, 기업윤리 등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규범을 가리킨다. 지난 2000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경영경제학회에서는 신뢰성, 진실성, 단결성, 개방성을 사회적 자본의 4대 구성요소로 꼽았다. 실체는 없으나 민주주의 발달과 경제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검증되면서 사회적 자본은 21세기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국격(國格)이나 국가 매력지수와도 직결된다. 우리나라 사회적 자본의 현주소는 어떤가. 세계은행이 조사한 국민 1인당 사회적 자본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118개국 중 26위에 머물렀다.OECD 국가 평균 사회적자본의 크기는 1인당 35만 3339달러인 데 비해 우리는 10만 7864달러로 선진국의 3분의1에 그치고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문휘창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화지수에서 OECD 30개 국가를 포함한 세계 주요 40개국 중 종합 30위에 머물렀다. 우리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면서도 왜 선진국으로 대접받지 못하는지 이들 통계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사회적 자본은 경제적 성장이나 민주주의 발달 정도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취약하다.1970,80년대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80,90년대 민주화운동 덕분에 민주주의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자본은 그에 걸맞게 축적되지 못했다. 이러한 불균형의 결과는 우리가 날마다 겪고 있는 그대로다. 불법시위가 난무하고 떼법이 판을 친다. 뇌물이 횡행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득세한다.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이로 인한 사회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 자본의 취약성이 우리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선진화에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신뢰의 구축이다. 법과 질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정치권과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믿고 따르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의 부재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함으로 작용하는지는 지난 몇달간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이나 해명에는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괴담과 설(說)이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도 모두 신뢰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신뢰는 하루아침에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벽돌을 쌓듯이 진정성을 담아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리더십의 출발은 믿음이다. 믿음이 소망·사랑보다 앞서 있는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열정/함혜리 논설위원

    가깝게 지내는 교수 한 분이 메일을 보내 왔다. 여름이 끝나가는 아쉬움을 달래자면서 연극에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지인이 썼다는 시 한 편을 첨부하셨다. “그날/여름은 떠나기 전/나와 오랜 이별식을 했다/다시 만날 때까지/잘 살아있기로 약속하였다/그는 돌아와서먼나라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그렇게 여름은 갔다/하지만 벌써 그는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모든 이별이 그러하듯이…” 교수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동숭아트센터에서 연극을 봤다.‘39계단’이라는 스릴러 코미디였다. 출연배우는 단 4명.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에 얽힌 주인공이 누명을 벗기 위해 ‘39계단’이라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출연배우들이 수십가지 역할을 해내며 정말 열심히 무대 위를 누볐다. 연극의 내용 자체가 크게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연극의 감흥은 오랜 시간 지속됐다. 배우들의 열정 때문이었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친형처럼 놀아 줄게 가족처럼 도와 줄게”

    “친형처럼 놀아 줄게 가족처럼 도와 줄게”

    #1.7년째 만성신부전증과 간암으로 병상에 누운 아버지와 사는 11살 경수(가명)군과 동생은 누나가 생겼다. 성적, 성격 모두 좋은 송현아(16·창덕여고 1)양에게 영어도 배우고 영화를 보거나 맛난 식사를 함께한다. 이제 아이들은 1년 전 생활고로 가출한 엄마 얘기도 스스럼없이 할 만큼 친해졌다. #2. 일본인 엄마를 둔 대호(9)군과 새로운 형인 대학원생 김복진(27·경희대)씨는 ‘6월의 멘토’로 선정될 정도로 열심이다. 이제는 대호뿐만 아니라 동생 헌호(8)까지 공부에 빠졌다. 어머니 아사히 히로코(38)씨는 “얼마전 넷째를 낳아 자녀 양육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구청 덕에 만난 멘토가 아이들을 잘 돌봐줘 너무 고맙다.”며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4일 송파구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생 44명과 저소득 가정의 초·중학생 40명을 연결해주며 시작한 ‘송파구멘토링봉사단’이 멘토-멘티 프로그램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 ●마음을 나누는 아름다운 동행 송파구멘토링봉사단에는 조언자 ‘멘토’와 도움을 받는 ‘멘티’, 전문가 그룹으로 동반자 역할을 하는 ‘멘토팰로’까지 모두 2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멘토는 대학생·대학원생·지역 외국어고등학교 학생들이, 멘티는 한부모·다문화·저소득 가정의 아이들이 중심이다. 멘토와 멘티로 엮인 이들은 단순히 사제(師弟)의 연을 넘어서 가족의 정을 나눈다. 멘토인 임성수(16·가락고1)군과 어머니 강미정(43·송파동)씨, 멘티인 동현(14)군은 이미 한 가족이다. 낮시간에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동현군은 임군의 집에서 공부도 하고, 놀이도 배운다. 중학교 영어교사 출신인 강씨는 “동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할 계획”이라면서 체계적인 학습계획·관리는 물론 작가를 희망하는 동현이를 위한 독서교육까지 병행하고 있다. 최근 멘토링봉사단은 경기 안성시 너리굴 문화마을에서 25명의 멘토,42명의 멘티 등 80여명이 첫 캠프를 떠나며 활동 범위를 확대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던 아이들도 물놀이, 금속공방, 천연비누만들기 등을 하면서 가족 이상의 끈끈한 결속력을 다지기도 했다. ●멘토-멘티 500명 결연 목표 2000년대 초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멘토링 프로그램은 기업, 대학, 학원 등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 지금은 21세기 신개념 교육서비스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단순한 역할 놀이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멘토링봉사단에서 멘토-멘티 프로그램은 학습지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멘토와 함께 롯데월드나 잠실야구장, 연극 관람 등 다양한 외부활동도 하고 있다. 다른 멘토-멘티 프로그램은 20여만원에 이르는 활동지원금을 주기도 하지만 멘토링봉사단은 지역 내 기업의 후원으로 활동을 보조받고 있다. 최근 정치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멘토링봉사단의 순수한 의도가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멘토링봉사단은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복지정책과 박혜리 서비스연계팀장은 “앞으로 500여명이 참여하는 대표적인 봉사활동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씨줄날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 북촌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곳에 위치한 소격동은 고려시대 도교 수련과 제사를 지내던 소격서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조선시대에는 사간원과 규장각, 종친부가 자리했다. 유서깊은 이곳의 군사시설 전용은 1913년 일본군의 수도육군병원 건립에서 비롯됐다. 한국 근대건축의 거두로 불리는 박길룡이 설계한 병원 건물은 1928년 5월부터 경성의학전문 부속병원으로 쓰이다가 증측을 거쳐 경성육군 위수병원으로 용도가 바뀌었다.1971년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가 이전했으며 10·26 직후엔 신군부 권력의 산실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소격동 165번지 일대 ‘기무사 부지’가 역사적인 변신을 앞두고 있다. 어떤 모습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청와대는 오는 10월 기무사의 과천 이전과 때를 맞춰 대통령 전용병원인 서울국군지구병원을 폐쇄한 뒤 8300평의 부지를 문화공간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경복궁 원형복원 사업 및 국가상징거리 조성과 연계해 기무사 부지를 경복궁 관람객을 위한 로비 겸 주차장으로 쓰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문화예술계의 생각은 다르다. 기무사 부지에 국립미술관을 지어 21세기 문화 한국을 상징하는 복합문화시설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리적 접근성에서 취약한 과천 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기무사 부지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은 미술계와 문화예술인들의 숙원이다. 기무사의 과천 이전도 미술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1995년부터 요구한 데 따른 결실이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지난 1일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총회를 가졌다. 기무사 부지를 문화예술로 ‘채움’으로써 아픈 기억을 치유하겠다고 밝혔다. 미술관은 한 나라의 모든 문화가 집약된 장소이다. 그 나라를 알기 위해선 국립미술관을 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엔 제대로 된 미술관이 하나도 없다. 인사동과 북촌 한옥마을, 삼청동과 사간동의 화랑 밀집지역,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으로 이어지는 문화벨트를 갖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품격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아기의 웃음/함혜리 논설위원

    경기도 원당 근처에 볼 일이 있어 전철을 탔다. 노약자석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초로의 부부가 앉아 있고, 그들 앞에는 여자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한대 있었다. 손녀 딸을 데리고 어딘가로 나들이를 가는 것일 게다. 귀여운 손녀 딸을 바라 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얼굴에 사랑이 그득했다. 겨우 걸음마를 뗄 정도가 된 아기는 토실토실 건강해 보였다. 울지도 않고 잘 놀고, 낯가림도 없었다. 건너 편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가 손을 잼잼하면서 어르자 금방 조막만한 손을 옴찔옴찔하면서 방긋방긋 웃었다. 이내 두 손을 맞부딪쳐 짝짜꿍을 하면서 흥에 겨워 까르르 웃는다. 전철 안에서 달리 눈 둘 곳이 없어 아기를 바라보던 사람들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전동차 안이 금세 환해졌다. 천진무구한 아기의 웃음이 세상을 밝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마술을 부린 것처럼. 문득 2017년 한국여성 1인당 출산 아이 수가 한명에 그칠 것이라는 암울한 내용의 미래예측보고서가 떠올랐다. 이 뜬금없는 직업의식을 어찌할지….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신(新) 냉전/ 함혜리 논설위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과 러시아 간의 그루지야를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EU) 중재로 평화협정에 서명하면서 일단 총성은 멎었지만 전략적 요충지인 흑해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함대들이 대거 진출해 러시아의 흑해함대와 뱃머리를 겨누며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신(新) 냉전’ 체제가 구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새로운 냉전 기류를 두고 국제 사회에서는 옛 소련의 붕괴로 미국 쪽으로 기울었던 파워의 축이 국제유가 상승 덕에 화려하게 부활한 러시아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번 그루지야 사태도 궁극적으로 옛 소련의 파워를 되살리고 싶어 하는 러시아와 이를 경계하는 미국 간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란 분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하면서 과거 소련에 필적하는 정치·경제적 안정을 찾은 러시아는 독립국가연합(CIS) 소속 국가들을 규합하는 데 외교적 총력을 모았다. 냉전 종식 후 슈퍼 파워로 부상한 미국은 나토를 통해 러시아의 제국주의 회귀를 막으면서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등 CIS 일부 국가들을 서방에 가깝게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나토의 동진(東進)과 CIS 일부 국가들의 친미성향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의 한판 대결은 이미 예견된 터였다. 신냉전 기류의 또 다른 특징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전략이다. 세계 2위 석유생산국인 러시아는 유럽원유 소비량의 4분의1, 천연가스 소비량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해 유럽의 대(對)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높이려는 야심을 이번 그루지야 사태를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현재로선 과거와 같은 냉전체제로의 회귀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군비 경쟁을 불러와 달러 약세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공통된 견해를 내놓는다. 신냉전 기류가 침체국면에 있는 세계 경제의 또 다른 위협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새로운 냉전의 기류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할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화해/ 함혜리 논설위원

    당숙이 한 분 계신다. 작은할아버지의 외아들인데 할머니가 친아들처럼 아끼고 거두셨던 까닭에 우리 집과는 무척 가깝게 지냈다. 명절 때에도 시골 본가에 내려가지 않으면 우리 집에 와서 차례를 지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제사 등 대소사에도 거르지 않고 참석하셨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몇해 전부터 우리 집으로 오는 발길을 끊으셨다. 선산 문제로 감정 상할 일이 있었노라고 어머니께 전해들었다. 당숙이 요즘 다시 우리 가족에게로 돌아오셨다. 아버지의 병 문안을 오시면서부터다. 당숙은 어느새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라고 하셨다. 공군 복장을 하고 휴가 나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드리고 우리 형제들하고 어울려 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옛날 얘기를 하면서 밝게 웃다가도 누워 계신 아버지를 보시고는 눈물을 훔치셨다. 누구도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다시 끈끈해지는 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눈을 꼭 감은 채 누워만 계셨지만 그렇게 우리 가족을 화해로 이끌어 주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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