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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철새와 텃새/함혜리 논설위원

    수억 마리의 새들이 계절에 따라 규칙적으로 날아오고, 또 날아가는 것은 흥미롭고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철새들의 출몰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는데 그 기록은 구약성서에도 남아 있다. 예레미아기 8장 7절에서는 “공중의 학은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킨다.”면서 지혜도 없고, 규칙도 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나무랐다. 우리나라는 시베리아 및 중국 동부와 만주 등지에서 번식하고 일본 남부 및 호주에서 월동하는 철새 집단의 주요 이동경로지이자 서식지다. 우리나라의 철새는 여름새, 겨울새, 통과새로 분류하는데 여름새는 봄에 우리나라에 와서 산란을 하고 부화하여 여름에 번식하고 가을이면 중국 남부나 동남아시아 등 따뜻한 남쪽 나라로 돌아간다. 백로, 왜가리가 대표적인 여름새다. 겨울새는 우리나라에 와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시베리아 등지로 돌아가 번식을 하고 새끼를 키워 겨울에 다시추위를 피해 우리 나라로 날아온다. 뿔논병아리, 황새, 청둥오리 등이 겨울새다. 통과새는 호주 등지에 살다가 봄이면 우리나라를 거쳐 시베리아에 가서 새끼를 번식하고 가을이면 우리나라를 거쳐 다시 호주 등지로 돌아가는 새들이다. 나그네새라고도 하는 통과새는 봄과 가을에만 우리나라를 거쳐 가는데 도요류와 물떼새류가 대표적이다. 철새와는 달리 참새나 까치처럼 사시사철 우리나라에 사는 새를 텃새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겨울새가 돌아가지 않고 여름에도 남아 있거나 여름새가 떠나지 않고 겨울에 우리나라에 있는 경우가 흔히 발견된다. 이동하지 않고 아예 둥지를 트는 통과새도 많다. 그런가 하면 과거에 관찰되던 조류는 사라지고, 미기록 조류가 새로 관찰되기도 한다.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에 따르면 최근 40년 동안 국내 조류 350종 가운데 64종이 사라졌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새롭게 관찰된 종은 총 69종에 이른다. 최근에는 아열대와 열대산림에서 서식하는 푸른날개팔색조가 제주 마라도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반도 조류지도가 바뀌는 원인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상승이다. 새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아마존의 복수/함혜리 논설위원

    아마존강은 남아메리카 페루의 안데스 산맥에서 발원해 적도를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간다. 브라질, 페루,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에 걸쳐 펼쳐진 이 강의 총 길이는 7062㎞에 이른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이 강은 지류만도 1000개가 넘고 아마존강 유역의 밀림은 지구의 열대우림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열대우림의 총 면적은 500만㎢로 지구전체 삼림면적의 3분의1에 해당한다. 규모가 이처럼 막대하다 보니 지구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매우 크다. 아마존강 유역 열대우림은 경이로운 자원의 보고일 뿐 아니라 지구 전체 산소공급량의 5%를 제공하는 산소공장이다. 동시에 인류가 생산하는 이산화탄소 등 오염물질을 흡수하고 걸러내는 역할도 한다.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아마존을 ‘지구의 허파’라고 부른다. 불행하게도 아마존 분지의 열대우림이 인간의 손을 타면서 급속히 파괴되고 있다. 아마존 개발에 따른 무차별한 삼림벌채, 화전농업과 목초지 조성, 댐 및 도로 건설 등으로 지난 15년간 24만 3000㎢의 열대림이 파괴됐다고 한다. 열대림 파괴의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지구의 허파였던 아마존이 이제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과학자들의 경고다. 과학잡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따르면 아마존은 난개발에 따른 무분별한 벌목에 맞물려 2005년 극심한 가뭄을 경험한 뒤 정화기능을 상실하면서 도리어 연간 30억t의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으로 나무들이 광합성을 할 때 흡수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방출하는 양보다 많지만 그 균형이 이동하게 된 것이다. 열대림의 파괴는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온난화는 다시 열대림 파괴를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심은 그칠 줄을 모른다. 급기야 페루에서는 아마존 지역을 개발하려는 정부와 이를 막으려는 원주민 사이에 유혈충돌까지 빚어졌다. 인간에 의한 파괴행위로 자연의 재해가 겹치고, 결국 인간끼리 뒤엉켜 싸우는 불행한 사건이다. 인간을 상대로 한 ‘아마존의 복수’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네버랜드로 간 앨리스, 이번엔 어떤 음악?

    네버랜드로 간 앨리스, 이번엔 어떤 음악?

    피터팬이 살고 있는 네버랜드에 간 이상한 나라(원더랜드)의 앨리스. 이러한 깜찍한 상상에서 나오는 음악은 어떤 것일까. ‘앨리스 인 네버랜드’가 1년 반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내고 라이브 공연을 갖는다. 앨리스는 2005~2006년 에스닉 퓨전의 신기원을 이뤘던 ‘두번째 달’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밴드. 2007년 중반 객원보컬이었던 린다 컬린의 고향 아일랜드를 방문한 뒤 아이리시 음악에 더욱 심취한 김현보(기타)와 박혜리(피아노)가 ‘바드’라는 프로젝트를 결성해 그룹이 분리된 뒤 박진우(베이스), 최진경(피아노), 백선열(타악기), 조윤정(바이올린) 등 나머지 네 멤버들은 앨리스란 이름으로 그해 연말 첫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이후 앨리스는 퓨전재즈 밴드 푸딩 출신 기타리스트 염승재를 영입해 5인조 체제로 라인업을 탄탄하게 만들었다. 1집이 두번째 달 멤버로서 낸 프로젝트 앨범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페스타 인 네버랜드’는 2집이지만 두번째 달의 꼬리표를 떼고 밴드 앨리스로서 본격적인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이다. 또 음악팬들을 네버랜드로 초대해 축제를 벌이는 집들이에 다름 아니다. 리더 박진우는 “1집은 개인적인 관심과 욕심이 담긴 노래들을 모음집 형식으로 담아 멤버들 개성이 각자 빛났다. 스트링도 많이 사용했고, 밴드 라인업에 있지 않은 악기도 많이 썼다. 표현력의 폭은 넓었지만 라이브로 보여줄 수 없는 노래도 많았다. 하지만 2집은 이러한 개성을 한데 모아 밴드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음악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장르 구분이 어렵기는 하지만, 여전히 앨리스가 하는 음악은 세계 여러 곳의 민속음악에 기댄 에스닉 퓨전이다. 좋은 음악을 위해 여러 나라 음악과 여러 나라 악기를 차용하는 점도 변화는 없다. 다만 두번째 달 시절에는 김현보-박혜리, 박진우-최진경 중심으로 곡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멤버 대부분이 곡을 만들기 때문에 음악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졌다는 게 박진우의 설명. 집시 스윙, 탱고, 재즈, 뉴에이지, 월드 뮤직 등이 밝고 생동감 있게 꿈틀대는 14곡이 2집에 담겼다. 첫 리메이크 곡인 영화 ‘스파르타쿠스’의 러브 테마와 유럽의 유명 재즈 보컬리스트 잉거 마리가 부른 ‘인피니트 러브’도 눈에 띈다. 박진우는 “10자평 이런 것을 보면 버릴 게 없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번 앨범은 우리 스스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 한곡 한곡 좋은 소리를 담으려고 공을 들였다.”면서 “이번 공연은 밴드 사운드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집 첫 공연은 오는 11~12일 이틀 동안 오후 8시에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다. 멤버들이 노래가 만들어진 배경을 설명하는 등 이야기와 영상, 음악이 어우러진 네버랜드발 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길섶에서] 날씨가 미쳤다/함혜리 논설위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럽 여행에세이 ‘먼 북소리’에는 날씨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3월 로마의 날씨 대목이다. 로마사람들은 3월을 미치광이의 달이라고 한단다. 날씨와 기온의 변화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따뜻해서 봄날 같다가 하룻밤 자고 나면 다시 한겨울로 돌아가는 그런 식이다. 미치광이라는 표현을 요즘 우리나라 날씨에 적용하면 딱 어울릴 것 같다. 추워서 옷을 챙겨 입었던 게 엊그제인데 어느 새 한여름이다. 한반도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이상 고온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영향으로 어느 나라보다도 심각하게 영향받고 있다니 더욱 걱정이다. 이 속도로 간다면 2050년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2000년보다 섭씨 3도 상승하고, 식물 북방한계선도 450㎞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생태계에 심각한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견한다. 더 이상 허튼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윤달까지 끼어 더욱 길어질 올여름, 정신줄이라도 온전하게 잡고 있어야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김치 효능설/함혜리 논설위원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착 농경생활이 보편화되면서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환경에서 채소류의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소금절임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김치가 등장한 것은 외래 채소들, 특히 결구배추가 도입돼 재배되기 시작한 1700년대이다. 고추가 김치에 사용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조선 후기. 이후 김치는 각 지역의 기후와 풍토, 각 가정의 생활환경 및 식습관에 따라 다양하게 발달했다. 중국과 일본에도 여러가지 야채절임이 있지만 맵고, 쓰고, 달고, 짜고, 신 다섯 가지 기본 맛에 담백(淡白)한 맛과 발효의 향을 더한 일곱가지 독특한 풍미를 갖춘 야채발효식품은 오로지 김치뿐이다. 배추를 소금으로 절인 후 파·마늘·생강·고춧가루·젓갈을 넣고 버무려 발효시킨 것이 김치다. 각 재료들은 고유한 영양소를 갖고 있다. 배추에 들어있는 케로틴은 체내에서 비타민A로 작용하고 대장암을 예방한다. 고추의 캡사이신은 대사작용을 활발하게 하며 식욕을 촉진시키고 체내의 지방 축적을 막아준다. 마늘의 알리신은 비타민B1의 흡수를 촉진시키며 알칼리를 공급해 체액의 균형을 조절해 준다. 이미 발효가 된 상태의 젓갈은 김치의 숙성을 촉진시키면서 아미노산 함량을 높여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각 재료에 포함된 영양소들이 김치가 발효하는 과정에서 서로 복합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김치는 숙성되면서 다양한 유산균을 만들고 각종 비타민의 함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김치는 소화촉진·면역성 강화의 생체조절 기능과 항암·항균·항돌연변이의 질병예방 기능, 항산화 등 노화억제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신종플루 발생이 많지 않은 것은 김치 때문이라는 김치효능설이 관심을 모은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 전세계를 떨게 만들었던 2002년에도 종종 언급됐던 김치효능설은 최근 한국식품연구원이 김치가 조류인플루엔자를 예방하는 데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힘이 실리고 있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많지만 김치가 웬만한 예방백신 못지않은 효능을 지닌 것만은 분명하다. 김치는 위대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울광장] 2009년 5월, 되새겨보는 ‘배려’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2009년 5월, 되새겨보는 ‘배려’ /함혜리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온 나라가 충격에 빠져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자각하게 하기 때문에 모든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헌정 사상 초유의 비극이라는 거창한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오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2009년 5월, 우리가 처한 역사적 불행을 되짚어 보는 가운데 떠오른 단어는 ‘배려’였다. 불가에서는 불이(不二)의 개념을 중시한다. 부처님과 내가 둘이 아니며 내 안에 부처가 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이상 나와 남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치게 나와 남을 구분한다. 네편, 내편을 가르면서 재물과 권력을 탐하고 자기 이익을 꾀한다. 역사적인 배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수도 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고 당쟁과 사화, 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민족의 유전자에는 자기 방어 본능이 너무 강해졌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사고방식이 팽배하다 보니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는 설 자리를 잃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라는 역지사지의 금언도 잊은 지 오래다. 잠재의식 속에는 상대방을 짓밟고 무너뜨려야 내가 설 수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함께 설 때에 더 힘이 생기고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배신도 너무 쉽게 하고, 독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 사소한 행동과 말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작가 한상복씨가 쓴 기업소설 ‘배려’에 ‘사스퍼거’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남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장애를 일컫는 아스퍼거 신드롬과 소시얼을 접목시킨 것이다. 사스퍼거, 즉 사회적 아스퍼거는 자신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남들에게는 무자비하며 이기적인 범주를 넘어 남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다. 남의 약점을 찾아내 집요하게 공격한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남이 어떤 어려움과 고통을 겪든 알 바 아니다. 배려할 줄을 모르는 사스퍼거들이 많은 사회는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바로 극단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의 막바지에서 일어난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의 책임론을 제기한다. 수사의 본질과 상관없는 곁가지 혐의로 전직 대통령의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주면서 압박하는 수사방식이 정도를 지나치게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누구는 검찰의 수사내용 흘리기를 그대로 옮겨적으며 망신주기에 앞장선 언론도 공범이라고 한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지적이 틀렸다고 결코 말하지 않겠다. 검찰이 수사를 할 때나, 기사를 쓸 때 노 전대통령이 받았을 모욕감과 상처를 그의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런 방식으로 수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자극적인 내용으로 기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배려의 부족이 낳은 비극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 한 줄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낳는 이유다. 고인은 갈등과 분열 대신에 화해하고 용서할 것을 권하고 있다. 죽음은 한 삶의 종말이지만 남은 자에게는 새로운 출발의 의미도 갖는다. 갈등은 봉합해야 한다. 그 출발이 배려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주역과 운명/함혜리 논설위원

    주역(周易)은 글자 그대로 고대 중국 주(周)나라의 역(易)이란 말이다. 역이란 ‘바뀐다’ ‘변한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하고, 이에 입각해 인간사를 풀이하고 길흉을 점치며 처방을 설명한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점서라는 말로 주역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내용이 워낙 광대하고 인간사와 천지자연의 이치를 하나로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우주 만물의 근원을 태극이라고 하고, 태극에서 음과 양의 양의(兩儀)가 비롯됐다고 한다. 음과 양이 상호작용을 해서 사상(태양·소음·소양·태음)을 낳고 사상은 다시 건·곤·진·손·감·이·간·태의 팔괘를 낳는다. 이 팔괘는 삼획괘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두 개씩 합쳐서 64개의 육획괘가 만들어진 것이다. 주역에서는 우주 만물에 흐르고 있는 의식과 에너지가 모두 이 64괘의 괘상으로 표현된다고 본 것이다. 우주의 한 부분인 인간도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삶의 극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정치철학자인 황태연 교수가 지난해 7월 출간한 ‘실증 주역’에서 소개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점괘가 화제다. 황 교수는 허리춤에 늘 점통을 차고 다닐 정도로 역술에 능한 인물이다. 재야 역술인이 뽑았다며 황 교수가 책에서 소개한 노 전 대통령의 점괘는 제36괘인 지화명이(地火明夷). 밝은 것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명이다. 제36괘의 초구는 이런 내용이다. ‘어둠이 드리우자 나는 새가 상처를 입고 날개를 늘어뜨리고 사라진다. 군자는 물러나서 사흘동안 먹지 못하고 가는 곳마다 관리들의 의심과 모함 소리만 들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맞았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그러나 주역은 이같은 상황적 운명을 얘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준다. ‘어둠이 깔렸는데 왼쪽 넓적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굳센 말을 몰고, 곧 빨리 가면 길할 것이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법도를 바르게 따르면 이롭다는 둘째 효의 풀이다. 운명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주역의 지혜인 것을 노 전 대통령이 알았더라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만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네루-간디 가문/함혜리 논설위원

    인도 ‘건국의 아버지’ 자와할랄 네루의 웅변은 지금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다. 그는 1947년 8월14일 자정 직전 이런 명연설을 남겼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세상 사람들은 잠들어 있겠지만 인도는 생명과 자유를 위해 깨어날 것입니다.” 인도 국민회의를 이끌던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전개한 것과 달리 강경한 투쟁을 벌이다 8차례나 체포되고 9년동안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던 네루는 독립 후 초대 총리에 취임해 1964년 죽을 때까지 지위를 고수했다. 인도 정치에 큰 영향력을 미친 ‘네루-간디 가문’의 영광은 이렇게 시작됐다. 네루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 카스트, 지역, 문화를 아우르는 범민족주의를 기본 통치이념으로 국가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미국과 소련 중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는 비동맹 외교로 제 3세계의 지도자를 자임하며 인도의 국익을 챙겼고 자주 국방에도 힘썼다. 인도의 자존심을 한껏 치켜세워 준 네루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물려받은 것은 네루의 무남독녀 인디라 간디다. 영국에 유학 중 페로제 간디와 결혼하고 귀국해 정계에 입문한 인디라는 1966년 당시의 총리 샤스트리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인도 최초의 여총리가 됐다. 녹색혁명을 성공적으로 실시하는 등 국민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권위주의적인 정치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비운을 맛본다. 1980년 재집권에 성공하지만 1984년 10월31일 시크교도 경호원들에 의해 총을 맞고 암살당했다. 연방의회는 만장일치로 인디라 간디의 아들 라지브 간디를 총리로 선출했으나 그 역시 1991년 선거를 지휘하던 중 암살당하고 만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라지브 간디의 아들 라훌 간디가 최근 인도 총선에서 국민회의당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단숨에 정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하버드대를 나와 인터넷 회사를 경영하던 라훌은 귀공자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빈민촌에서 밤을 지새우고 지구 두 바퀴에 이르는 거리를 누비며 총선유세를 펼쳐 젊은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이변이 없는 한 40세가 되는 2년 후 만모한 싱의 뒤를 이어 총리직을 맡게 될 전망이다. 네루-간디 가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속될지 관심거리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첫 데이트/함혜리 논설위원

    모든 것은 커다란 인과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또 생성소멸한다는 연기의 법칙이 어떤 의미인지 요즘 어슴푸레 이해하게 됐다. 아버지의 49재 장소를 정할 때의 일이다. 특별히 다니는 절이 없으니 어느 절에서 모실지가 막막했다. 난감해하고 있으려니 한 친구가 “마음이 가는 곳으로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을 했다. 이곳 저곳을 물색하다가 삼성동 봉은사로 정했다. 접근성도 좋고 주지이신 명진 스님을 몇 차례 친견한 적이 있다고 하니 가족들도 이견이 없었다. 예약을 하러 봉은사로 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그제서야 생각난 듯 말씀하셨다.“아버지를 만나 첫 데이트를 한 곳이 봉은사란다.” 알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였다. 벌써 60년 가까이 지난 날의 일이다. 그때는 뚝섬에서 배를 타고 와서 데이트를 했다고 하셨다. 옛 추억이 되살아나는 듯 입가에 미소까지 지으셨다. 첫 데이트 장소에서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49재를 지내게 된 것이 흐뭇하신 듯했다. 아버지는 그날의 설렘을 기억하고 계실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울광장] 한식 세계화와 노블레스 오블리주/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한식 세계화와 노블레스 오블리주/함혜리 논설위원

    한식 세계화 사업이 한창 탄력을 받고 있다.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고, 민·관 합동의 한식 세계화 추진단이 출범했다. 2017년까지 한식을 세계 5대 음식으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청사진도 제시됐다. 일본이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일식 세계화를 추진했고 태국도 상무부 수출진흥국 중심으로 2001년부터 태국 음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가동한 것에 비하면 때늦은 감이 있다. 한식은 그 우수성과 상품성이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동안 이를 발전시키고 알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던 정부가 이제라도 그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한식 세계화는 정부의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 한식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집단이 힘을 실어 주고 손발처럼 움직여 줘야 한다. 각국의 VIP급 인사들이 주로 찾는 특1급 호텔들과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국인들이 가장 쉽게 한식을 접할 수 있는 장소는 그들이 잠시 머무는 호텔이다. 그런 까닭에 전 세계 최고급 호텔들은 반드시 자국 음식을 요리하는 식당을 갖추고 메뉴뿐 아니라 식기부터 실내장식까지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와 너무 대조적이다. 서울 시내 특1급 호텔 19곳 가운데 한식당을 운영 중인 곳은 소공동 롯데, 메이필드, 강남 르네상스, 쉐라톤 워커힐 등 4곳뿐이다. 국빈급 귀빈들이 머무는 신라나 웨스틴조선, 그랜드인터컨티넨탈 등은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한식당 문을 닫았다. 특1급 호텔에 머물 정도라면 그 나라에서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경우 엄청난 파급효과를 거둘 수 있건만 그 기회를 아예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특 1급 호텔들이 한식을 푸대접하는 것처럼 대기업들로부터도 한식은 찬밥 신세다.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하고 해외의 외식업체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사들인다. 내국인들의 입맛을 차지하려고 현란한 광고를 퍼붓고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서도 한식에는 돈 한 푼 안 쓴다. 특급호텔이나 대기업들이 한식을 외면하는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식은 다른 요리에 비해 조리시간이 길고 식재료가 많이 들어간다. 상차림 그릇은 또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가.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남는 장사가 아니다. 하지만 매출과 비용을 따지고, 이득이 없다고 팽개쳐 버리기에는 한식이 갖는 의미가 너무나 크다. 한식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우리의 자연 환경과 역사, 전통과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는 것이 한식이다. 한식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다면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국가 브랜드 파워에도 큰 도움이 된다. 국내 한식산업은 대부분 영세한 규모다. 27만여개의 국내 한식당 중 5인 미만 업소가 90% 이상이다. 해외에 있는 한식당도 마찬가지다. 약 1만개에 달하는 한식당의 대부분이 교민이나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영세업체들이다. 맛도 인상적이지 않고, 인테리어는 국적 불명이며 청결함과도 거리가 멀다. 이런 구멍가게로 세계를 공략한다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한식당의 고급화·대형화가 필요하며 이를 주도할 적임자는 특1급 호텔과 대기업들이다. 그들이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사회환원 차원에서 한식 세계화에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가지 않은 길/함혜리 논설위원

    사월 초파일에 절 세 군데를 가면 좋다고들 한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새벽부터 길을 나선 덕분에 문경 봉암사, 봉화 현불사, 정선 정암사까지 하루에 돌아봤다. 서울로 가는 일만 남은 상황에서 어느 길을 택할지가 문제였다. 정선에서 영월∼제천을 거쳐 중앙고속도로를 타는 방법과 진부로 가서 영동고속도로를 타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친구와 나는 진부 쪽을 선택했다. 그런데 산길이라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고속도로도 정체여서 한밤중이 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운전을 하면서 내내 영월 쪽으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경치가 아무리 좋은들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순간마다 선택을 하게 되고, 항상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다고 회한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후회하느라 아름다운 경치를 모두 놓쳐 버렸듯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내 인생에 펼쳐진 가치있는 것들을 모른 채 살아온 것은 아닌지.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명함/함혜리 논설위원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명함은 필수품이다. 간결하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자신을 알리는 것이 명함인 까닭이다. 작은 종이 한 장 안에는 이름과 직함, 연락처까지 한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가 압축돼 담겨 있다. 명함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자신의 명함이 없을 때는 정말 난감해진다. “죄송하다.”거나 “다음에 드리겠다.”고 순간을 넘기지만 상대방에게 예의를 안 갖춘 것 같기도 하고,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해서 영 찜찜하다. 그러나 그런 기분도 잠시뿐이다. 돌아서면 그냥 잊어버리고 마는 일이 다반사다. 얼마전 사석에서 인사를 나눈 분의 경우는 좀 달랐다. 그분은 그날 명함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내 명함을 건네고는 농담처럼 “선생님 명함은 다음에 보내 주세요.”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하셨지만 빈말이겠거니 했다. 며칠 뒤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 안에 그 분의 명함이 들어 있었다. 명함에 대한 약속을 이렇게 철저하게 지켜준 그분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왠지 자신의 직책에 충실하고, 반듯한 삶을 사는 분일 것 같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마무리/함혜리 논설위원

    일요일인 26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의 발레 ‘라 바야데르’ 마지막 공연이 펼쳐졌다. 원작이 훌륭하기도 하지만 피나는 훈련의 결과물인 발레리나들의 화려한 테크닉과 완성도 높은 무대는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이어진 뒤 갑자기 ‘빠바방!’ 소리와 함께 은색 테이프들이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던 한 남자 무용수를 향해 쏟아졌다. 주역 ‘솔로르’로 무대에 올랐던 발레리노 황재원이다. 이날 공연은 황씨가 주역으로 오른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1993년 세종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유니버설발레단에 입단한 뒤 지난 16년간 발레단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그가 어느덧 40살을 바라보게 됐다. 발레리노에게는 환갑이나 다름없는 나이다. 남자 무용수라는 흔치 않은 길을 택해 언제나 최선을 다했던 그다. 지도자로서 새로운 모험을 떠나기에 앞서 마지막 열정을 무대에 쏟아부은 그에게 문훈숙 단장은 감사의 꽃다발을 안겨줬다. 후배들은 ‘브라보’를 외쳤다. 정말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배설과 베델/함혜리 논설위원

    어네스트 토머스 베델은 영국의 항구도시 브리스틀에서 1872년 11월3일 태어났다. 동양을 상대로 무역업을 하던 토머스 핸콕과 선교사의 딸인 마서 제인 홀름의 사이에서 태어난 네남매 중 장남이었다. 머천트 벤처러스스쿨 고등부에서 과학과정을 마친 베델은 1888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베를 근거지로 무역업을 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젊은 베델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러·일 전쟁이었다. 그는 러·일 전쟁 직후인 1904년 3월 데일리크로니클의 특별통신원에 임명돼 한국에 파견된다. 서른두 살의 혈기 넘치는 베델은 사업가적 기질을 발휘해 서울에서 새로운 신문을 만들기로 하고 양기탁·박은식·신채호 등과 함께 1904년 7월18일부터 대한매일신보(현재의 서울신문)와 영문판 코리아데일리뉴스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하고 일본의 침략을 반대하는 논조를 펴면서 베델에 대한 견제와 압박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세 차례나 재판을 받는 사이 건강을 해친 그는 1909년 5월1일 서른여섯 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국이 애도의 눈물로 넘쳤다. 이튿날 서대문에 있던 그의 자택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수천명이 모였고 양화진 외국인 묘역까지 가는 운구행렬에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뒤를 따랐다. 동대문 밖 영도사에서 열린 추도식에는 안창호와 양기탁을 비롯해 400여명이 모여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당시의 운구행렬과 추도식 사진 등 많은 사료들은 런던 교외지역인 에지웨어의 하트랜드 클로즈 3번지 베델의 손녀 수전 베델 여사의 집에 보관돼 있다. 베델의 부인 마리 게일이 베델 사망 후 어린 아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돌아오면서 트렁크 속에 소중하게 챙겨 온 것들이다. 1965년 마리 게일이 사망한 뒤 며느리 도로시가 지니고 있던 사진들을 수전이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거실의 장롱서랍 속에 보관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자료들이다. 몇년 전 취재차 찾아갔을 때 낱장으로 여기저기 꼽혀있는 자료들을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영국인 베델이 아니라 항일투사 배설로 이 땅에 뼈를 묻은 그의 일생을 역사로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텐데.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신록/ 함혜리 논설위원

    남아메리카의 어느 나라에서는 상대방의 나이를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이렇게 묻는단다. ‘신록이 찬란한 봄을 몇 번이나 맞았나요?’ 아침 출근길에 남산을 지났다. 남산 길은 하루가 다르게 푸름을 더하고 있었다. 물이 오른 나무들에서 돋아난 연초록 잎사귀들이 햇살을 받아 찬란하게 빛을 발했다. 계절마다 자연은 우리에게 다양한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신록이 돋아나는 요즘이야말로 그 아름다움이 절정이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신록을 보면서 희망과 기대보다는 ‘눈물나게 아름답다.’는 표현이 더욱더 와 닿았다. 내가 맞이할 수 있는 봄이 이미 보낸 봄보다 많지 않은 아쉬움 때문인지 모른다. 이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휴대전화 메시지가 왔다. 증권사의 고객사업부에서 보낸 것이었다. “하시는 일 잘 되시라고 해님 편에 힘을 쏘아 보냈습니다.” 물론 나만을 위한 메시지는 아닐 테지만 기분을 이해해 준 것만 같아 위로가 됐다. 이제 힘도 선사받았으니 신록의 봄을 맘껏 즐겨야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미술관과 갤러리/함혜리 논설위원

    왕족과 귀족,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예술품을 대중이 향유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8세기 말의 시민혁명이다.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넘어가면서 유럽의 대부분 궁궐들은 왕과 시민이 함께 즐기는 공공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도 혁명정부가 궁전의 일부를 ‘예술 박물관’으로 만들어 왕실 소유 미술품, 성직자 및 종교단체와 망명자 재산에서 압수한 예술품을 시민들에게 공개한 것이 그 시작이다. 당시 박물관은 단순한 미술 전시관의 차원을 넘어 ‘학교’로서 공적인 성격이 강했다. 프랑스의 박물관에 대한 이같은 접근방식은 구미 각국에 곧바로 전파돼 국립박물관 및 미술관 설립을 촉발시켰다. 미술관·박물관을 시민들의 여가활동 및 교육을 위한 공공재로 가장 충실하게 활용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보다 많은 시민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모든 국립 박물관 및 미술관을 무료로 운영한다. 국립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를 보면 얼마나 그 원칙에 충실한지를 쉽게 알 수 있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유럽의 대표적 회화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내셔널갤러리는 런던의 중심부 트라팔가 광장에 위치한다. 런던의 부유한 지역인 웨스트엔드와 가난한 지역인 이스트엔드의 한가운데에 미술관을 두어 신분, 교육, 수입, 거주지의 구애 없이 모든 시민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술관이 비영리적이고 교육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갤러리는 판매를 위해 그림을 전시하는 상업화랑을 가리킨다.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이나 작품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지만 갤러리는 작품을 발굴해서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미술 마케터의 역할을 한다. 상업적인 갤러리들이 한데 모여 여는 미술장터가 아트페어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소격동 기무사터에 들어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첫 전시로 아시아 대학생·청년작가들의 아트페어인 아시아프(ASYAAF)를 열겠다고 밝혔다. 기무사터를 미술관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섰던 시민들과 미술계는 극구 반대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정약용의 안경/함혜리 논설위원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원나라에서 관직을 맡았던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원나라의 늙은 신하들이 거북의 등껍질로 만든 볼록렌즈 안경을 끼고 있다고 썼다. 중국이 안경 발명국이라는 주장의 근거다. 그러나 대부분의 논문들은 안경이 1280년경 베니스의 유리공들에 의해 최초로 제작됐고 수도승들에 의해 중국 원나라까지 전해졌다고 본다. 우리나라에 안경이 처음 소개된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 즉 16세기 말로 추정한다. 안경알은 유리가 아닌 수정을 갈아서 만든 것이었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1600년대 초부터는 경주에서 안경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렌즈가 마치 ‘게눈’처럼 생겨서 체신이 안 선다는 이유로 초창기에 안경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18세기 들어 실용성을 중시하는 실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안경이 보편화되면서 안경은 선비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말년의 정조도 안경을 착용했을 정도였다. 정조실록에 보면 정조는 정조 23년(1799년) 7월에 안경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는 안경 다리를 비단실로 만들고 테는 옥으로 된 옥안경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의 나이는 당시 47세였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정조를 도와 개혁을 주도했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순조가 즉위하면서 생애 최대의 전환기를 맞는다. 소론과 남인 사이의 당쟁이 신유사옥이라는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하면서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받아 유배형을 받는다. 포항 장기에서 1차 유배생활을 마치고 47세에 강진의 귤동에 있는 초가에서 다시 유배생활을 했다. 정약용이 10년 동안 머물면서 역사에 빛나는 학문적 업적을 남긴 곳이 다산초당이다. 전남 강진군이 다산초당에 설치할 새로운 초상화를 공개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김호석 교수가 치밀한 고증을 거쳐 완성한 새 초상화에서 다산은 안경을 끼고 있다. 방대한 독서량과 저술로 인해 시력이 많이 약화됐다는 기록에 근거한 것이라고 한다. 조선후기 최고의 르네상스형 지식인으로 꼽히는 다산이 근엄함을 벗어던진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안경을 쓴 모습이 눈에 익으려면 아무래도 좀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닌텐도의 역발상/함혜리 논설위원

    1981년 닌텐도가 비디오 게임 ‘동키콩’을 내놓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게임을 혹평했다. 외계인을 레이저 광선으로 물리치는 게임이나 카레이싱이 유행하던 때에 주먹코를 한 우스꽝스러운 외모의 배관공 ‘마리오’가 소녀를 유괴한 고릴라를 뒤쫓는 유치한 게임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야마우치 히로시 당시 사장과 이 게임을 개발한 미야모토 시게루는 달랐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이 게임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닌텐도의 신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동키콩 성공에 이어 일본 최초의 게임전용기 패미컴과 슈퍼패미컴을 통해 10년 가까이 전세계 비디오 게임시장을 지배했다. 포켓몬과 게임보이 시리즈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도전을 너끈히 막았고 2004년 선보인 휴대용 게임기 DS와 2006년 말 내놓은 위(Wii)의 성공으로 세계를 제패했다. 닌텐도의 성공비결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역발상 정신에 있다. 야마우치 히로시 회장의 철학이다. 교토 출신으로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중퇴한 야마우치 회장은 증조할아버지가 창업한 화투와 트럼프 생산업체 닌텐도골패의 3대 사장에 오른다. 22세였던 1949년의 일이다. 그는 주력 업종을 바꾸려고 즉석식품 사업, 호텔, 택시회사까지 손을 댔다가 도산위기에 직면하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사업방향을 ‘놀이’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재미와 건전한 놀이를 겸비하고 단순한 점은 닌텐도 게임의 최대 강점이다. 다른 게임회사들은 더욱 스케일이 크고 성능이 좋은 게임기를 만들기 위해 경쟁했지만 닌텐도는 저렴하면서 조작이 쉬운 게임기를 출시했다. 주부나 중장년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최근 삼성전자 수뇌부가 교토의 닌텐도 본사를 방문했다고 한다. 사업구조 재편의 방향타를 잡기 위해서라고 한다. 야마우치 회장의 뒤를 이어 2002년 취임한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닌텐도는 경쟁사와 싸우는 게 아니라 게임에 대한 외면과 싸우자.”고 강조한다. 이런 치열한 정신이 새로운 산업을 선도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았기를 바란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진달래 꽃/함혜리 논설위원

    사방에 온갖 꽃이 만발했다. 갑자기 찾아온 더위 때문인지 올봄에는 꽃들이 순서도 없이 피고 지고 있다. 매화가 지기도 전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는가 싶더니 어느 새 목련과 벚꽃이 활짝 피었다. 아직 철이 이른데 라일락까지 피어 버렸다. 화려함을 자랑하던 목련과 벚꽃은 열흘도 채 못 가서 꽃잎을 바람에 날려 버리고 있다. 청계산에 올랐다. 산에도 진달래 꽃이 한창이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진달래가 흐드러진 산길을 따라 걸었다. 봄이면 으레 피는 진달래이거늘 올해엔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야들야들한 꽃잎이 너무 가련해 보였다. 진홍빛깔 꽃 색깔은 슬퍼 보이기까지 한다. 김소월이 예쁜 진달래를 보면서 왜 그런 애처로운 느낌의 시를 썼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슬픔을 겪고 난 그의 가슴은 이별의 정한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보름 전 장호원에 있는 진달래 공원묘지에 아버지를 모셨다. 진달래만 보면 괜스레 가슴이 아프다. 애써 외면하려 해도 진달래꽃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식약청장의 눈물/함혜리 논설위원

    감정을 드러내는 눈물은 언제 어떻게 흘리느냐에 따라 그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어떤 눈물은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놓는다. 그 솔직함이 보는 이의 가슴에 공명을 울리는 까닭이다. 하지만 자칫 눈물을 잘못 흘렸다가는 그 덫에 걸려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한번 잘못 흘린 눈물이 한 인물의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경우도 있다. 황산성 변호사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황 변호사는 1993년 2월 문민정부 출범 첫 조각에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당시 환경처 장관에 발탁됐다. 취임 초인 93년 4월 수돗물 자료의 부실을 지적하는 기자들의 지적에 흥분한 나머지 눈물을 보였다. 언론은 그를 ‘울보 장관’ ‘눈물 장관’으로 불렀고 결국 황 변호사는 이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해 12월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눈물이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까닭에 남자의 눈물은 여자의 눈물과 비교할 수 없는 상징성과 파괴력을 지닌다. 비근한 사례로는 올초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보였던 눈물이 꼽힌다. 윤 장관은 자식 잃은 부모의 황망함을 내색하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셔 주변을 숙연하게 했다. 눈물을 흘렸다가 본전도 못 찾고 질책만 받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는 ‘머스키의 눈물’이라는 관용어구가 있는데, 1972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지명전에 나선 에드먼드 머스키 후보가 대중 앞에서 엉엉 울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터진 눈물보 탓에 그는 ‘나약하고 감정 컨트롤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혔고 결국 정치적 대망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기획되고 연출된 거짓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라고 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숨겨뒀던 사실을 발표하면서 흘린 눈물, 김태정 전 검찰총장이 검사들의 전별금 수수관행에 대해 대국민사과문을 낭독하다가 흘린 눈물이 이 범주에 속한다. 최근 석면 탤크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식품의약품안전청 윤여표 청장이 13일 국회 답변 중 눈물을 흘렸다. 머스키의 눈물일지, 악어의 눈물일지 알 수 없지만 보기에 좋지 않았다. 괴로움을 이해는 하지만 4000만 국민의 건강은 눈물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잊은 것 같아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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