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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함혜리 논설위원

    요즘 최고의 유행어는 단연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본다. 일요일 저녁 방송되는 KBS 개그콘서트의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 개그맨 박성광이 술에 취한 채 세상을 향해 내뱉는 대사다. 이 코너를 처음 접했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가족들이 모두 함께 보는 프로그램에서 남자와 여자 두 취객을 등장시켜 뭘 하겠다는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세 180도 바뀌었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실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바탕 웃게 만드니 그야말로 제대로 된 개그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박성광의 술 취한 개그가 인기를 끌고 혀 꼬인 대사가 유행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그 내용에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일등만 기억하고 최고만 대우를 해 준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취직하기도 힘들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더 힘들다. 끼리끼리 끌어 주고 챙겨 주기 때문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기도 어렵다. 기업들도 그 분야에서 최고만 알아준다. 책도 베스트셀러가 아니면 기억하지 않는다.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최고로 예쁘고 잘생기고 재능 있는 연예인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스포츠는 더욱 그렇다.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올림픽에서 은메달, 동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을 못 따면 눈물을 흘린다.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은 설 곳이 없다. 일등이 아니면 모두가 ‘루저(패배자)’고 흑싸리 쭉정이다. 그러니 모두들 일등이 되고, 최고가 되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일류대학 들어가겠다고 유치원생부터 사교육을 받는다. 조금 더예뻐지겠다고 성형외과 문을 두드린다. 남자들은 몸짱 소리 듣겠다고 헬스클럽에서 비지땀을 흘린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높은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패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더러운 세상’을 탓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욕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일등을 부러워한다. 어려서부터 비교하면서 자란 탓에 일등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최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친구를 짓밟고, 동료를 배신하기도 하며 심지어 법을 어기기까지 한다. 최근의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SAT 문제유출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요즘 인기를 끄는 드라마 ‘공부의 신’에서도 이런 일등 만능주의가 여실히 드러난다. 삼류고등학교인 병문고를 재건하기 위해 투입된 강석호 변호사가 제시한 첫 번째 목표는 학생들을 천하대(극중 최고 명문대학)에 보내는 것이다. 드라마에 따르면 천하대는 곧 기회다. 학문을 연마하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곳이 아니다. 특별반 학생들은 그 기회를 획득하기 위해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데 열중한다. 지극히 비교육적인 설정이다. 우리 사회가 처한 많은 문제들은 결국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뼛속까지 물든 일등 만능주의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친 학벌주의, 대학입시전쟁과 사교육비 문제, 특권층의 권력세습, 청년 실업, 외모지상주의 등.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그만큼 적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희망이 없다. 잠재력이나 발전 가능성이 있어도 일등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숨어 있는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꼴이다. 재능과 학식이 뛰어난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묻혀 버릴 수 있다. 다양성이 자랄 수 있는 공간은 그만큼 사라진다. 좋은 정치란 일등이 아닌 사람도 나름의 가치를 인정받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희망 예보/함혜리 논설위원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새해도 기록적인 엄청난 폭설과 한파로 시작됐다. 삼한사온은 사라졌고, 절기도 무의미해졌다. 또다시 한파가 올 것이라는 예보다. “어휴!”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 보니 아침 기온은 영하 10도 안팎인데 낮에는 많이 풀려서 영상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참 이상한 것이 아침에 나오는데 추위가 하나도 성가시지 않게 느껴졌다. 반나절만 지나면 풀릴 것이라는 희망 덕분이다. 겨울에 날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는 얘기를 하곤 했다. 축적된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일 테지만 한편으로는 기나긴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한 방편으로 짜낸 지혜가 아니었을까 싶다. 추위를 녹이는 데 풍년의 희망만큼 효과적인 게 어디 있었을까. 인생도 희망을 주는 예보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잠시 힘들겠지만 조금 지나면 확 풀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역경이나 고난도 담담하게 맞고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썰렁개그/함혜리 논설위원

    모임의 좌장이 퀴즈를 냈다. “아이스크림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죽었대. 왜 죽었게?” 아무도 맞히지 못하자 신이 난 듯 답을 말했다. “차가 와서”. 시쳇말로 썰렁개그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가장 큰 나라는? 인도네시아(넷이야).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 히트작도 있었다. 옛날에 할머니가 과거 시험 보는 손자를 위해 천지신명께 기도를 했다. 그런데 정화수 대신 죽을 놓고 기도를 하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잖니?”. 큰 고민 없이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썰렁개그가 열기를 더해간다. 최신 썰렁개그 한두 개 정도는 알고 있어야 대화에 낄 수 있을 정도다.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수첩에 적어서 갖고 다니기도 한다. 듣고 나면 씁쓸하고 얼굴이 화끈해지는 음담패설하고는 다르다. 박장대소를 할 만큼 우습지는 않지만 은근히 재미있다. 각자 아는 썰렁개그 한 가지씩을 내놓다 보면 모임의 분위기가 금방 화기애애해진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누군가 아무리 썰렁한 개그를 하더라도 열심히 웃어주자.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 산행/함혜리 논설위원

    산악회를 따라 몇 해 전 겨울에 소백산에 간 적이 있다. 추위도 추위였지만 아이젠이 자꾸 벗겨지는 바람에 고생을 제대로 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산 너머에서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정상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쳐서 잠시 서 있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어찌나 긴장하면서 산을 내려왔던지 온몸의 근육이 뭉쳐서 며칠 동안 고생했다. 그날 이후로 겨울 산행은 아예 하지 않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진짜 산의 속살을 보고 싶다면 겨울이 제격”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같은 산이라도 겨울에 가 보면 나뭇잎이 우거졌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능선 위로 솜털처럼 줄지어 선 나목들이 이채롭다. 흰 눈이 쌓인 산을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오르는 기분도 색다르다. 칼바람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산은 또 다른 얘기를 들려준다. 겨울 산의 감동을 놓치고 사는 게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겨울이 다 가기 전에 장비 제대로 갖추고 겨울 산행에 재도전해 볼 참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스타의 꿈/함혜리 논설위원

    깡마른 체구의 한민관을 주목받는 개그맨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스타가 되고 싶으면 연락해!”라는 유행어 한마디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에 출연 중인 그는 스타 지망생들에게 명함을 뿌리는 연예 매니저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그의 개그가 인기를 끄는 것은 우리 사회에 스타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용맹한 장군이나 정복자, 지혜가 뛰어난 현인들이 우상이었지만 20세기 들어서 매스미디어 보급이 일반화되고 대중문화가 발달하면서 대중 스타들이 우상이 됐다. 이들은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대중음악, 스포츠 등 대중 문화를 통해 빼어난 외모와 재능, 기량을 발휘하며 대중들의 열광과 흠모를 받는다. 대중스타의 우상화를 부추긴 것은 할리우드의 스타시스템이다. 1930∼40년대 스타들을 대량 확보한 할리우드의 영화제작사들은 이들의 이미지를 영화 흥행에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스타시스템이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스타들의 출연료를 지나치게 높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에서 시작된 우리 대중문화의 스타시스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 장르로 확산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류 열풍으로 TV드라마, 가요, 영화에서 고액의 출연료를 받는 한류 스타들이 등장하면서 우리 스타들의 몸값은 수직 상승했다. ‘겨울연가’의 한류스타 배용준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1회 출연료로 1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고 한다. 이병헌도 ‘아이리스’에서 편당 1억원을 받았다. MC 유재석과 강호동은 회당 출연료가 900만원에 육박한다. 가히 부러움의 대상이 될 만하다. 하지만 이는 극히 예외의 경우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 따르면 회당 50만원 이상을 받는 연기자는 10%에 불과하다. 회당 출연료가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스타들은 연기자협회에 등록한 1700여명의 연기자 가운데 0.01%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연기자들의 70%는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 무명배우들은 출연료가 회당 10만∼15만원에 불과하다. 엑스트라의 경우 생활고는 이들보다 더 심하다. 2008년 국세청에 소득세를 신고한 가수, 배우, 탤런트 등 연예인은 2만 7115명이라고 한다. 대중스타가 인간소외의 산물이라거나 소비적인 우상에 머물던 시대는 지났다. 스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는 이들도 언젠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기원한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반성/함혜리 논설위원

    점심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시청앞 지하도를 나서는데 계단에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오들오들 떨면서 앉아 있었다. 할머니 앞에 놓인 분홍색 플라스틱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참 안됐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속으로 온갖 핑계를 대면서. ‘날씨도 춥고, 시간도 없고, 지갑 꺼내기도 귀찮고….’ 그 순간 ‘찰랑’하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젊은 외국인 여성이 바구니에 동전 몇닢을 넣어준 뒤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주머니 속의 지갑만 만지작거리다 그냥 지나친 내가 부끄러웠다. 한 사진작가가 들려준 인도 바라나시의 꽃 파는 소녀 이야기가 생각났다. 길에서 만난 소녀가 “나의 꽃을 사지 않으면 당신은 후회하고 말 거예요.”라며 간절하게 부탁했지만 갈길이 바쁘다며 뿌리쳤던 그는 지금껏 그 일을 후회하고 있다고 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잠시 멈추기를 주저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는 그 얘기가 그제서야 진실로 가슴에 와닿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정신 못차린 기상청…“1·4폭설 가치 8300억” 주장

    ‘1·4폭설’ 등을 엉터리로 예보해 ‘오보청’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는 기상청이 지난 4일 서울 등 중부 지역에 내린 폭설의 경제적 가치가 8300억원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눈총을 받고 있다. 기상청은 4일 중부지역(서울·인천·경기·강원)에 내린 눈의 경제적 가치는 약 8300억원으로 지난해 곡우(4월20일) 때 내린 비에 따른 가뭄 해갈의 경제적가치(4600억원)보다 1.8배 높은 수치라고 12일 밝혔다. 기상청은 ▲댐 저수량 증가에 따른 수자원확보(40억원) ▲미세먼지 농도 감소에 따른 대기질개선(253억원) ▲겨울 강설에 따른 봄가뭄 피해경감(7958억원)·산불방지(4000만원) ▲인공눈 살포 감소로 스키장운영비 절감(3억원) 등을 주요 근거로 들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번 강설로 일부 지역에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으나 강설의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해 경제적 가치를 평가했다.”면서 “계량화가 가능한 일부 항목에 대해서만 적용했기 때문에 실질적 경제적 가치는 8300억원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번 폭설이 기상청의 한발 늦은 예보로 피해를 더 키웠던 만큼 기상청이 더욱 자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YMCA 시민중계실 김혜리 간사는 “폭설로 발생한 농작물피해나 배달업을 하는 자영업 및 요식업자들의 손실, 예측 못한 눈 때문에 일어난 교통사고와 출근길 지각 사태 등의 경제적 손해는 전혀 감안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오보를 감추기 위한 자료 같다.”면서 “천재지변까지 예측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지만 기상청이 시민들이 폭설에 대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길섶에서]처음 그대로/함혜리 논설위원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면서 여느 때와는 다른 각오를 다졌건만 아직도 획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어영부영 세월을 보내느니 생활 속에서라도 작은 변화들을 꾀하기로 다짐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법. 30분 일찍 일어나기, 아침에 기지개 활짝 켜고 5분 이상 스트레칭 하기, 세수한 뒤 거울 보고 활짝 웃기,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운동하기, 주말에 약수터 가기, 한 번 이상 붓글씨 쓰기, 가족들에게 자주 안부전화하기, 전화 친절하게 받기, 약속시간보다 5분 일찍 가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기, 내가 먼저 정답게 말걸기…. 노자의 도덕경에 신종여시(愼終如始) 즉무패사(則無敗事)란 말이 나온다. ‘마지막에도 시작할 때처럼 신중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란 뜻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의 마음가짐을 갖고 끝까지 주의를 기울이고 정성을 다하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그러질 못하니 뜨끔하다. ‘처음 그대로의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기’도 변화 목록에 추가해야겠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역이민/함혜리 논설위원

    1902년 12월22일 제물포항. 남자 56명과 여자 21명, 어린아이 27명 등 104명을 태운 증기선 갤릭호가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했다. 3주 뒤 이들이 도착한 곳은 하와이 오하우섬의 호놀룰루. 우리나라 첫 해외 이민의 역사다. 하와이 이주는 을사보호조약 체결 후 일본이 한국 정부에 이민중지 압력을 행사하면서 중단되지만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는 식민지 시대에도 계속됐다. 1947년 미군정청 외무처의 발표에 따르면 당시 외국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인은 191만 7500명으로 집계됐다. 해외이주가 보다 나은 교육기회와 일자리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 각광받으면서 이민자는 해방 이후 지속적으로 늘었다. 외교통상부 집계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재외동포 수는 전세계 176개국 682만 2606명에 이른다. 주목할 점은 재외동포 수가 지난해에 전년 대비 3.15%(22만 2110명)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해외로 이민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역이민자가 이민자 수를 넘어선 결과다. 지난해 외교통상부에 영주귀국을 신고한 역이민자는 전년보다 14.3% 늘어난 4301명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참고용 숫자일 뿐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고 봐야 한다. 외국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고 국내에 거주하거나 양쪽을 오가며 사는 사람, 가족이 외국과 한국에 나눠져 사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역이민자들 중에는 1970∼1980년대 이민을 떠났던 이민 1세대들이 노후를 고국에서 보내려고 유턴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 다음은 경제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다. 한국은 국력 신장으로 기회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얻어 귀국하는 이민 2세대들이 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역이민자들 중에는 다시 이민을 떠나는 역역이민자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주거비용도 비싸고 교육비도 비싸다. 자녀들은 한국 교육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불화를 겪는 가정도 많다. 사회 물정을 잘 몰라 돈을 날리거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이민의 60 ~70%가 이런저런 이유로 역역이민을 선택한다. 주요 이민대상국의 이민요건 강화와 우리 경제 수준의 지속적인 향상으로 이민 감소와 역이민 증가세는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외국생활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역이민자들을 사회발전 동력으로 이끌 수 있는 방안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사제지간/함혜리 논설위원

    해남의 미황사에서 해넘이·해맞이 템플스테이를 했다. 폭설에도 불구하고 땅끝 마을의 미황사까지 새해를 맞으러 온 사람들은 60여명이나 됐다. 모든 일정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컸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새해 아침에 절 마당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여섯명의 젊은이들은 양산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서 공부했던 친구들로 올해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을 텐데 하필 절에서 자원봉사를 한 이유가 궁금했다. 중2 때 담임선생님이 미황사에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함께 하자고 권했기 때문이란다. 올해 30대 초반인 선생님에게 양산중학교는 첫 부임지였고, 그 해에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이라 각별한 애정이 여태껏 지속되고 있다. 좋은 일을 함께 하자고 제안한 선생님과 그 뜻에 선뜻 따라나선 제자들. 모든 사제지간이 이 정도만 된다면 세상이 참 따뜻할 텐데.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희망/함혜리 논설위원

    내일이면 2010년이다. 엊그제가 연초인 것 같은데 또 다른 한해가 시작된다니. 그뿐인가. 2000년이 시작된 게 바로 얼마 전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났다. 세월유수(歲月流水)라는 말이 실감난다. 앞으로의 세월도 이만큼 빠르게 흐를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무릎을 꿇을 만도 한데 새해가 다가오니 또 다시 마음이 설레는 것은 웬 조화인지 모르겠다.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희망과 용기를 느끼면서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올해엔 꼭!’ 하면서 다짐을 하게 된다. 장자는 인생을 빛이 작은 틈새를 잠시 비추다 홀연히 사라지는 것처럼 짧고 무상하다고 했다.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날들, 정성을 다해 현재를 살라는 교훈이다. 과거에 매달려 후회해 봐야, 오지 않은 미래를 동경하거나 두려워해 봐야 소용없다. 힘든 일들, 괴로운 기억들을 모두 털어 버리고 희망찬 새해를 맞자.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믿어 보자. 가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희망을 품는다는 것,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역시 행복한 일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길 위의 삶/함혜리 논설위원

    몹시도 추웠던 날 인사동에서 저녁모임이 있었다. 종종걸음을 치며 약속 장소로 향하는데 골목길의 어두운 담 너머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갈 곳 없는 고양이가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기 힘들어서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들여다 봤지만 어둠 속에서는 찬바람만 쌩하고 불어 나올 뿐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임을 마치고 다시 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고양이는 여전히 울고 있다.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가여운 고양이…. 그날 밤 덕수궁 앞 지하도를 지나가게 됐다. 커다란 박스로 바람을 막고 새우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찬 기운이 올라와서 잠시 앉아 있기도 힘들 텐데 이런 데서 이 추운 날 잠을 자야 하다니 얼마나 괴로울까. 가슴이 짠했다. 길 위의 삶은 모두에게 고달프다. 고통의 정도만 다를 뿐. 몸 건강하고, 등 따뜻하게 잘 수 있고, 내 능력을 발휘할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추운 겨울에 새삼스럽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울광장] 광화문 광장에서 國格을 생각한다/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광화문 광장에서 國格을 생각한다/함혜리 논설위원

    며칠 후면 2010년이 시작된다. 경술국치를 맞은 지 100년이 되는 내년에는 지방선거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남아공 월드컵 등 빅 이벤트들이 대기하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G20 정상회의가 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국격이 높아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뀔 것이라며 내년을 ‘국격 향상 원년’으로 지목했다. 국격은 사전에 없는 단어이지만 어느 사이 우리의 중요한 어젠다로 자리 잡았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품격이 있는데 이를 국격이라고 한다. 나라의 품격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 경제력, 국가 이미지, 공적개발원조(ODA)의 규모 등을 거론할 때 국격이 흔히 사용되지만 이때는 위상이라는 단어가 더 적확한 표현이다. 한국은 선진국의 유무상 원조를 받은 수혜국에서 눈부신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바뀌었다. 국제사회에서 위치는 확실히 높아졌다. 국민의 생활 수준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다. 그렇다면 국가의 품격이 그에 비례해 높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품격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하드파워뿐 아니라 의식과 문화와 같은 소프트 파워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두 가지가 잘 조화를 이뤘을 때 국가는 품격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소프트 파워를 논할 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자본이다. 신뢰, 사회 규범, 네트워크, 사회구조 등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무형 자산을 가리킨다. 한국 사회는 대체로 사회적 자본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22위로 이탈리아와 비슷하다. 비합리적인 법과 규제는 국민들로 하여금 ‘법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의식을 갖게 한다. 지도층의 위·탈법, 욕설을 주고받으며 몸싸움을 하는 국회의원들은 국가에 대한 신뢰 상실과 냉소를 낳았다. 폐쇄적인 연고주의, 배타적인 집단 이기주의, 지역갈등은 또 어떤가. 시급하게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다. 사회적 자본보다 더 중요한 소프트 파워는 바로 문화다. 문화란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통해 이뤄진 정신세계와 가시적인 성과물들을 아우른다. 당연히 한국과 한국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은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울시가 조성한 광화문 광장은 문화에 대한 몰이해의 단면을 보여준다. 광화문 광장의 치명적인 결함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간이라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미적 수준과 행정 수준, 정책 결정권자의 의식수준을 보여줄 뿐이다. 시는 좁은 공간에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해치와 같은 상징물들을 중복 설치해 광장의 격을 떨어뜨렸다. 분수와 꽃밭도 모자라 스케이트장까지 만들었다. 오천년 역사의 무게를 새겨 넣어 한국의 품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줘야 할 장소가 산만한 놀이 공간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 고유의 정체성은 실종됐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광장뿐 아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보이지 않는다. 정체성 없는 국격은 무의미 하다. 국격을 높이기에 앞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2009년을 보내며 광화문광장에 서서 내린 결론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빛 공해/함혜리 논설위원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하는 구약의 창세기 1장 3절은 태초의 빛을 이야기한다. 만물의 시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바로 빛이다. 하나님은 태초의 빛을 어둠으로부터 분리해 낮과 밤을 만들었다. 생명체는 그 이후에 생겨났다. 신의 구원, 선을 가리키는 빛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반대로 어둠은 죄악이나 무지와 같이 물리쳐야 할 요소로 여겨진다. 문명이란 인간이 지혜를 이용해 어둠에서 벗어나게 됐음을 뜻하는 것이다. 문명의 혜택 가운데 으뜸 가는 것은 인공조명의 발명이다. 인공조명은 사람들의 활동시간을 연장시켰을 뿐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인류는 빛의 파장을 분석해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눈부신 도시의 야경은 발전과 번영의 상징으로 통했다. 그러나 모든 현상이 그렇듯이 빛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밤을 밝히려는 인간의 욕심은 밤하늘의 별을 삼켜 버렸다. 무분별한 야간 조명과 네온사인 등 자연 현상을 거스르는 인공조명은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건강을 해치게 만들었다. 과도한 빛은 눈부심 현상을 일으켜 교통사고나 불쾌감을 유발한다. 지나친 인공조명이 에너지 낭비의 원인이 됨은 물론이다. 이처럼 필요 이상의 빛이 야기하는 문제들을 빛 공해라고 한다. 빛의 또 다른 얼굴이다. 빛 공해를 처음 거론한 사람들은 천문학자들이다. 천문학자들은 ‘인공조명에 의해 밤하늘을 관찰할 수 없는 상태’를 빛 공해라고 정의했다. 이탈리아 파두아 대학 연구팀이 제작한 빛 공해 지도에 따르면 세계인구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밤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인의 3분의2, 유럽인의 절반은 밤하늘 은하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밤하늘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도시미관 등을 이유로 화려한 조명이 도시를 밝히고 있다. 그만큼 무분별한 조명으로 인한 부작용과 악영향도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시가 공해수준에 이른 과도한 조명을 규제하기 위해 ‘빛 공해 방지 및 도시조명관리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미국이나 일본보다 20여년 늦기는 했지만 그나마 시민들의 환경권을 생각해 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자비쇼핑/함혜리 논설위원

    허리 디스크 때문에 몇 달째 휴직 중인 후배가 하소연을 했다. 친구들을 만나서 수다도 떨고 싶고, 맛있는 것도 찾아다니며 사먹고, 쇼핑도 하고 싶은데 집에서 꼼짝도 못하니 너무 답답하다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건강이 나빠진 이유가 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본 후배가 내린 결론은 착한 일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단다. 마침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 스님이 주관하는 북한어린이돕기운동이 눈에 띄기에 모금에 동참하기로 했다. 미혼모를 위한 자립센터 기금모금도 의미 있는 일 같아서 기금을 내기로 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이것저것 사들이는 대신 자비를 베풀었다니 정말 현명한 후배다. 경기가 회복세인데도 개인과 기업의 기부금 모금실적이 저조하다고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지난해에 오히려 기부금 액수가 늘었다니 신기한 일이다. 모두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자비쇼핑에 나선다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좀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을 텐데.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귀인(貴人) /함혜리 논설위원

    귀인을 만나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막혔던 문제가 순식간에 풀리기도 하고,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귀인이 주는 기회와 도움, 격려와 지혜의 말 한마디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중국의 갑부 리카싱은 “긴 여행을 떠날 때 짐을 꾸려줄 사람, 비바람을 만났을 때 우산이 되어줄 사람, 성공의 고지가 코앞에 있을 때 마지막으로 뒤에서 밀어줄 사람. 그런 존재가 바로 귀인”이라고 했다. 귀인을 만난다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기회이며, 그것은 바로 인맥에 달렸다는 게 리카싱의 지론이다. 귀인이 되어줄 사람은 결국 내 주변에 있다는 얘기일 게다. 좀 볼 줄 안다는 분이 내게 올해 음력 10월에 귀인이 나타난다고 귀띔했다. 큰 기대를 품고 초하루을 맞고 한 달 내내 기다렸는데 귀인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친구에게 푸념을 했더니 “이미 수많은 귀인들이 가까이 있는데 미처 못 알아 봤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내 주변의 모두가 한결같이 귀한 존재인 것을….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OECD룰/함혜리 논설위원

    골프에 ‘OECD룰’이라는 게 있다. 내기를 좋아하는 한국 골퍼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인데 내기 돈이 잘 치는 사람에게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출입처에서 알고 지내던 분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날씬하고 건강해진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최근 4개월만에 8㎏을 감량했단다. 비결은 ‘OECD룰’이라고 했다. 젊고 건강한 삶을 위한 ‘OECD룰’이다. ‘O’는 산소(Oxygen)다. 걷거나 뛰면서 산소를 많이 마시는 게 좋다는 뜻. ‘E’는 에너지를 통제하라는 것인데 적게 먹을 것을 권장한다. ‘C’는 유산소운동과 근육운동의 적절한 조화(Combination)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마지막 ‘D’는 나눔(Donation)과 비움(Delete)의 생활철학을 가지라는 것이다. 나눌수록, 비울수록 정신건강에 좋다. 욕심을 버리고 남을 배려하면서 살 때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매일매일이 즐겁다. 젊고 건강한 삶은 모두의 희망이다. 이제부터라도 ‘OECD룰’을 생활화해 볼 참이다. 특히 마지막 ‘D’를.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동창생/함혜리 논설위원

    중학교 동창생을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나를 먼저 알아본 것은 그 친구였다. 인사를 나누고 나더니 내게 “낯이 익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초면인 것 같았다. 그러다 중학교 이름을 대는 순간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어머나!”하며 탄성을 질렀다. 중학교 동창인 것은 확인했지만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다. 졸업하고 30여년 동안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추첨으로 걸린 중학교는 서울 변두리에 있었다. 만원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그것도 모자라 종점에서 내려 20분 넘게 걸어가야 했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먼 길을 힘겹게 걷던 기억만 가득한데 그 친구도 중학교에 대한 추억이 별로 유쾌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생소하기만 했던 얼굴이 낯익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하게 과거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키가 크고 성격도 활달했었지. 머리는 반곱슬이고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잇몸을 드러낸 채 호탕하게 웃곤 했지.’ 그 친구는 내게서 어떤 기억들을 건져올렸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울광장 ]퍼플 잡에 주목하라/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퍼플 잡에 주목하라/함혜리 논설위원

    우리나라의 핵심 생산가능인구(25∼49세)가 2011년에는 2000만명 아래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저출산·고령화의 결과다. 핵심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잠재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다. 저출산·고령화의 파급효과는 다른 분야에서도 이미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청년층 인구감소로 국방의 의무를 지닌 현역자원의 부족이 우려된다. 지방에서는 학생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한 대학들이 부지기수다. 가족 계획을 장려하던 것이 불과 40여년 전의 일이다. 소수점 아래 몇자리 숫자의 변화가 이처럼 엄청난 파급력이 있으리라고 그때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1.19명이라는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이 이처럼 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는 만큼 출산율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모두가 고민하고 있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초저출산 현상은 우리 사회 문제의 총체적인 표출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손에 잡히는 것부터 하는 게 정답이다.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부정적인 인식부터 전환시키는 것이다. 일·가정 양립을 위한 ‘퍼플 잡’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퍼플 잡(purple job)은 탄력 근로제, 시차 출퇴근제, 재택근무 등 유연하고 탄력적인 근무형태를 유지해 가정과 일의 병행이 가능하도록 한 일자리를 가리킨다. 백희영 여성부 장관이 직접 만든 용어로 자신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시간만큼 일하되 직업의 안정성 및 커리어는 풀타임 근로자와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여러 기업들이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소니는 육아휴직기간 중 본인이 원하면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했으며 파나소닉도 재택근무, 모바일 근무, 스폿 오피스 등 e워크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의 퍼스트테네시뱅크는 근로자의 60%가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있다. 시차 출퇴근, 교대근무, 파트타임 등 탄력적인 근무시스템 덕에 고객만족도가 50% 상승하고 근로자 이직률은 85% 감소하는 성과를 거뒀다. 국내에서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국민은행, 한국IBM, 유한킴벌리 등이 퍼플 잡의 선봉에 서있다.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의 경우 낮 고정근무 간호사 외에 밤에만 근무하는 야간전담 간호사를 따로 뽑아 운용하고 있다. 낮 고정근무 간호사들은 오전·오후 2교대 근무로 임신·출산·육아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낮 시간 활용을 원하는 간호사들은 밤에만 전담하는 직종을 선택할 수 있다. 58명의 야간전담 간호사들은 격일제로 하루 8시간씩 월 120시간을 근무하는데 이 제도 도입으로 전체 간호사들의 직무 만족도와 조직 몰입도가 동시에 높아졌다고 한다. 출산과 육아부담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경우 취업 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 ‘일과 가정의 양립’ 가능성을 꼽는 만큼 저출산 대책으로 퍼플 잡의 개발과 확산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여성의 정규직 탄력근무제가 도입되면 합계출산율이 당장에 1.38명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한국인구학회의 연구도 있다. 퍼플 잡은 여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치관의 변화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직장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아이를 맡아 키워야 하는 싱글대디들도 적지 않다. 일과 삶의 조화를 이루는 퍼플 잡 종사자들이 늘어날 때 저출산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청정(淸正)/함혜리 논설위원

    공자는 사달이이의(辭達而已矣)라 했다. 말과 문장은 뜻을 전달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뜻이다. 말은 듣기 좋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진실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다. 지인들에게 책을 선사하면서 ‘받아 간직해 주십사’하는 뜻의 혜존(惠存)이라고만 썼는데 알고 보니 좋은 단어들이 참 많았다. KDI의 김동률 박사는 저서를 보내면서 돈수(頓首)라고 썼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다는 뜻으로 편지 말미에 적는다. 절하고 올린다는 배상(拜上)과 같은 말이다. 어떤 분은 상재(上梓)라고 적은 봉투를 건네며 내 책의 출간을 축하해 주었다. 책을 내기 위해 인쇄에 부친다는 뜻이다. 최창일 시인은 자신의 시집을 선사하면서 청정(淸正)이라고 적었다. 사전에는 ‘맑고 바르다’는 뜻 외에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궁금증이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 글을 보니 촉촉한 봄비를 맞은 듯 무척 기분이 좋았다. 맑고 바르게 살라는 뜻이겠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단어들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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