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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안 김양식장 황백화 심각

    전북 군산 앞바다 김 양식장에 황백화 현상이 발생해 생산량이 반토막 났다. 23일 전북도와 군산시에 따르면 2015년에 이어 올해 또다시 고군산 일대 김양식장에 황백화 현상이 발생해 어민들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황백화 현상은 김 엽체가 황백색으로 변하면서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다. 실제로 올해 1월 1일부터 15일까지 군산 비응항의 물김 위판액은 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5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품질도 떨어져 경매가격도 형편 없다. 평년에는 물김 가격이 포대(105㎏)당 10만원 이상 경매됐지만, 올해는 5만원을 밑돌고 있다. 군산시와 수협은 올해 황백화로 인한 군산지역 김양식 어가 피해가 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선유도 양식어민 임모(39)씨는 “지난해 1400책에서 7억가량의 수익을 올렸는데 올해는 황백화로 6000만원 정도에 그쳐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다”며 “이번주부터 황백화가 약해져 그나마 남은 기간 채취할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백화 현상의 정확한 발생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대책도 없어 어민들이 더욱 불안해 하고 있다. 신시도 양식어민 김모(57)씨는 “2015년 황백화가 있었고 올해도 발생했지만, 원인을 모른 채 뿌리까지 썩어가는 김을 마냥 바라보고 있다”며 “반복되는 황백화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조사 및 대책과 함께 약제 개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군산수협 관계자는 “국립수산과학원, 전북도, 군산시, 양식어민들이 실태조사를 했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용존 무기 질소 부족’이라는 이미 알려진 결과만 도출됐다”며 정부가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군산지역은 개야도, 선유도, 비안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 16개 섬 100여 곳에서 4094ha의 김양식을 고 있다. 김 양식어민들은 10월쯤 채묘를 시작해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7회 물김을 채취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낙향한 작가의 예의

    [정찬주의 산중일기] 낙향한 작가의 예의

    폭설이 내리면 산방 부근의 산길은 어김없이 끊긴다. 아침 체조를 하는 셈 치고 산방으로 오는 언덕길 한쪽의 눈만 치우는 데도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과격한 아침 체조는 더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삽으로 적설의 무게를 경험해 보니 그렇다. 힘을 무리하게 받은 오른쪽 무릎이 시큰거린다. 만류해도 오겠다는 손님이 있으니 언덕길이라도 터 준 대가다. 눈이 쌓이지 않는 고흥 땅 사람들은 폭설로 산길이 막혔다고 해도 믿기지 않았던 듯하다. 승용차로 오다가 끝내 운전할 수 없다면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니까. 나와 약속한 2월 초의 강연 행사가 다가오고 있으니 공무원인 그분들 마음이 급했던 것도 같다.안사람은 식당에 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그분들에게 떡국을 내놓았는데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산중 반찬으로 동치미와 김치밖에 없었지만. 그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비가 내려 응달의 눈까지 다 녹아 지금은 이른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겨울비가 제설 작업을 말끔하게 한 셈이다. 성에 차지는 않지만 가뭄도 어느 정도 해갈되지 않았나 싶다. 산방 마당의 연못에도 제법 빗물이 고여 있다. 놀랍게도 마당가에는 푸른 싹들이 점점이 돋아 있다. 눈 속에서 얼음새꽃처럼 스스로 발열이라도 했는지 파랗게 살아 있다. 손톱만 한 어린 질경이 잎도 보인다. 생명력이 질겨서 질경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봄날에 잡초를 뽑을 때 아무래도 녀석에게는 호미가 덜 갈지도 모르겠다.산길이 뚫린 뒤 첫 번째 손님은 보성읍에 사는 김아무개씨다. 작년에 탄원서를 써 주었는데 해가 바뀌었다며 날짜를 수정해 달라고 한다. 현재 영어의 몸이 된 김아무개씨의 직장 상사를 위해 재판장에게 호소하는 탄원서다. 김아무개씨의 상사는 나와도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전후 사정을 살펴보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텐데 명색이 작가로서 직접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모른 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요즘 나는 대서소 직원처럼 고향 사람들이 요구하는 글을 거절하지 못하고 대행하는 느낌이다. 사람들이 찾아와서 요구하는 글도 여러 가지다. 탄광에서 희생한 광부들을 기리는 화순탄광 위령비 비문부터 다산 정약용이 화순에서 2년 동안 ‘맹자’를 공부해 다산학의 바탕을 다졌던바 화순읍내 공원의 조형물에 새겨질 ‘화순과 다산 이야기’를 써 주었고,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어느 선각자의 공덕비 비문을 지어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다산 동상 옆에 소개한 ‘화순과 다산 이야기’와 천년고찰 쌍봉사에 세워진 시판(詩板), 즉 초의 선사와 고려시대 지식인 김극기 시 번역은 주관이 가미됐으므로 나를 밝혔지만 다른 글들에는 모두 내 이름을 뺐다. 지역민을 도운 선각자나 탄광 희생자를 위한 글에 내 이름이 들어가면 누가 될 것 같아서였다. 몇 해 전에는 난생처음으로 별세한 분을 애도하는 조사를 쓴 적도 있다. 물론 생전에 그분이 남긴 공덕을 충분히 헤아려 본 뒤에 쓴 글이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인연을 대며 내 산방을 찾아와 부탁하면 대부분은 외면을 못 하고 만다. 재작년에는 면사무소 앞의 커다란 입석에 새길 글을 지어 주었는데, ‘면민의 날’에 감사패를 받고 나서 쑥스럽기만 해 슬그머니 행사장을 나온 적도 있다. 내가 사는 이양면은 지리적으로 전라남도의 정중앙이다. 그래서 지은 문구가 ‘꿈꾸는 남도의 심장, 의로운 볕고을 이양’이었다. 의로운 볕고을이라고 한 까닭은 이양면 계당산에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한말 의병훈련 터인 ‘쌍산의소’(雙山義所)가 있고 양명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은 글은 고흥에도 있다. 임진왜란 때 조명연합수군이 처음으로 승전한 싸움이 절이도(거금도) 해전인데, 승전탑의 비문과 해전의 배경을 설명한 사각형의 돌에 새긴 글도 내가 작성한 것이다. 앞에서 나를 대서소 직원 같다고 표현했는데 무보수로 썼다는 점이 그분들과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고향 사람들이 부탁하는 글에는 고료를 청구하지 못할 게 뻔하다. 고향에 뼈를 묻으려고 낙향한 작가로서 최소한의 기부이자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 광명 중ㆍ고교생은 교복값 ‘0’원

    경기 광명시가 전국 최초로 중·고등학교 신입생에게 교복비를 무상 지원한다. 광명시는 올해부터 중·고교 신입생 6192명을 대상으로 예산 18억 5760만원을 들여 교복비를 무상 지원한다고 22일 밝혔다. 현재까지 전국 지자체 중에서 고교생을 대상으로 교복을 무상지원하는 사례는 전무하다. 성남시 등 일부 지자체가 중학생에게만 무상 실시 중이다. 중·고교생에게까지 지원하는곳은 광명시가 유일한 것이다. 무상교복은 올해부터 학교 배정일 기준 광명시에 주민등록을 둔 신입생으로, 중학생 3055명과 고등학생 3137명이 혜택을 받는다. 1인당 동복은 21만 900원, 하복은 8만 5230원으로 총 29만 6130원 어치 혜택을 받는 셈이다. 다음달 보건복지부 심의절차가 남아 있으나 복지부는 지자체 자율과 책임 하에 무상교복 지원사업을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어서 심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시는 2018학년도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신청서를 학생에게 전달한 뒤 개학 후 학교를 통해서 신청접수할 예정이다. 오는 3월부터 중·고교 신입생은 해당 학교에 신청하면 된다. 지역외 중·고교 신입생은 학생증과 통장 사본을 가지고 주소지 동 주민센터에서 신청한다. 교복비는 개인 계좌로 4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자세한 문의는 시 교육청소년과(02-2680-2115)로 하면 된다. 양기대 광명시장은 “지난해 3월 광명이 부채를 모두 해소해 빚없는 도시가 되면서 재정형편이 나아진 만큼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과 미래세대를 위해 중·고교 신입생에 교복비를 무상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노인 최저임금 올라도 기초연금 지원한다

    부산에 사는 이모(67)씨는 심부전증 등 질병을 앓는 남편 병원비를 대기 위해 건물 환경미화원으로 하루 8시간 일한다. 지난해까지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 135만 2000원을 받았다.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급이 157만 3000원으로 오른다. 이씨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늘어나 기초연금 수급자에서 탈락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정부가 근로소득 공제액을 확대해 계속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이모(80)씨는 그동안 특별한 소득 없이 기초연금으로만 생활해 왔다. 올해부터는 국가보훈처로부터 생활지원금 33만 5000원을 추가로 받게 돼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로 기초연금 수급자격 박탈을 우려했다. 그러나 생활지원금은 소득에 산정하지 않게 돼 이씨도 기초연금을 계속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제도 개선사항을 담은 ‘기초연금 사업안내’ 개정을 완료했다고 22일 밝혔다.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노인이 소득인정액 이하 소득을 얻을 때 받을 수 있다. 올해 기초연금 대상자 선정기준액은 월 소득 노인 단독가구는 131만원 이하, 부부가구는 209만 6000원 이하다. 복지부는 우선 근로소득에 적용하는 근로소득공제액을 지난해 60만원에서 올해 84만원으로 올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하는 노인이 기초연금 수급자에서 탈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또 소득인정액 평가 때 임대소득의 경우 부동산 수수료, 감가상각비 등 임대사업에 필요한 경비는 제외하고 산정한다. 국가보훈처에서 생활형편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에게 올해부터 지급하는 생활지원금은 기초연금 소득인정액을 산정할 때 넣지 않기로 했다. 국가보훈처는 올해부터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면 월 46만 8000원을, 70% 이하면 월 33만 5000원을 지급한다. 복지부는 ‘기초연금 수급희망 이력관리제’를 도입해 이렇게 새로 바뀐 기준으로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노인을 찾아 기초연금을 신청하도록 안내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올해 수급희망 이력관리 노인 중 6만 5000명이 새로 기초연금 수급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광명시 ‘중·고교 신입생 대상’ 전국 최초 교복비 무상 지원

    광명시 ‘중·고교 신입생 대상’ 전국 최초 교복비 무상 지원

    경기 광명시가 전국 최초로 중·고등학교 신입생에게 교복비를 무상 지원한다. 광명시는 올해부터 중·고교 신입생 6192명을 대상으로 예산 18억 5760만원을 들여 교복비를 무상 지원한다고 22일 밝혔다. 현재까지 전국 지자체 중에서 고교생을 대상으로 교복을 무상지원하는 사례는 전무하다. 중학생에게만 성남시 등 일부 지자체가 실시 중이다. 중·고교생에게까지 지원하는 곳은 광명시가 유일하다. 무상교복은 올해부터 학교 배정일 기준 광명시에 주민등록을 둔 신입생으로, 중학생 3055명과 고등학생 3137명이 혜택을 받는다. 1인당 동복은 21만 900원, 하복은 8만 5230원으로 총 29만 6130원이다. 다음달 보건복지의 심의절차가 남아 있으나 지자체 자율과 책임하에 무상교복 지원사업을 실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시는 2018학년도 신입생 예비소집일에 신청서를 학생에게 전달한 뒤 개학 후 학교를 통해서 신청접수할 예정이다. 오는 3월부터 중·고교 신입생은 해당 학교에 신청하면 된다. 지역외 중·고교 신입생은 학생증과 통장 사본을 가지고 주소지 동 주민센터에서 신청한다. 교복비는 개인 계좌로 4월 중순부터 순차적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자세한 문의는 시 교육청소년과(02-2680-2115). 양기대 시장은 “지난해 3월 빚 없는 도시가 돼 재정형편이 나아져 보편적 교육복지 실현과 미래세대를 위해 중·고교 신입생에 교복비를 무상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비행기 놓쳐 화난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

    비행기 놓쳐 화난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 ‘버즈 올드린’

    ‘달의 또 다른 어두운 이면?’ 비행기를 놓친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였던 버즈 올드린(Buzz Aldrin·88)이 최근 항공사 직원에게 화를 내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19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지난 16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델타 항공사 데스크에는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비행기가 이미 출발했다는 답변을 들은 버즈가 흥분하며 델타 직원을 상대로 거세게 항의했다. 델타 직원은 다음 비행기를 탑승할 것을 제안했지만 버즈는 그녀의 태도에 더욱 분노하며 결국 앉아 있던 휠체어에서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버즈는 “당신들이 좀 곤란해질 거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며 “내가 여기 앉아서 2분짜리 문제 해결을 위해 20분 동안 기다렸기 때문이며 난 다음 비행을 원치 않는다!”고 소리쳤다. 이어 “이건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형편없는 운영”이라며 말한 뒤, 직원의 이름을 캐물었다. 영상 속 항공사 직원들이 그가 달에 착륙한 두 번째 우주비행사임을 인지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언론 대응 시 발생할 수 있는 곤란함에 대비해 경계하고 있는 눈치였다. 주변서 버즈를 지켜본 촬영자가 접근해 “델타 항공사 비행이 달 착륙만큼이나 어렵냐?”고 묻자 그는 “아니다. 내 아들이 델타에서 일했으며 난 사람들을 잘 알고 있다”며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자리를 피했다. 버즈 올드린은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도착해 닐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을 밟은 우주비행사로 알려졌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닐 암스트롱 달 착륙 영광의 순간과 역사적인 발자국 사진들은 원래 버즈의 것으로 드러났다. 달 착륙선 조종을 맡은 그보다 닐이 달 표면에 먼저 내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영원한 2인자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의 중인공 ‘버즈’ 또한 버즈 올드린의 이름을 따 만든 캐릭터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TMZ/MEGA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싱글와이프’ 서경석, 어린 시절 생활고 고백...“아내 유다솜에게 미안”

    ‘싱글와이프’ 서경석, 어린 시절 생활고 고백...“아내 유다솜에게 미안”

    ‘싱글와이프2’에 방송인 서경석-유다솜 부부가 출연한 가운데, 서경석이 과거 털어놓은 어린 시절 일화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지난 17일 첫 방송된 SBS ‘싱글와이프2’에서 방송인 서경석(47)은 아내 유다솜(34) 씨에게 “항상 미안하다. 연애할 때만 해도 매일 여행시켜줄 것처럼 했는데...”라며 미안함을 표했다. 이날 방송에서 두 사람은 결혼 후 겪은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서경석 아내 유다솜 씨는 “첫째를 낳고, 기다렸던 둘째에 대한 좋은 소식이 있었지만 결국 잘 되지 않았다”며 유산의 아픔을 전했고, 서경석은 그런 아내에게 “네 탓이 아니다”라고 위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이날 방송과 함께 과거 서경석이 한 예능에 출연해 어린 시절 어려웠던 형편을 고백한 것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서경석은 지난 2013년 SBS 예능 ‘힐링캠프’에 출연해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어린 시절 동네에서 유일하게 차를 가진 집이었다. 음악실이 딸린 3층 집에 살 정도로 부유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갑작스레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남의 집에 얹혀살게 됐다”며 하루아침에 달라진 생활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한밤중에 라면 하나 때문에 펑펑 운적도 있다”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어려운 어린 시절을 겪고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서경석은 지난 2010년 미술 전공 패션 디자이너 유다솜 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13살 차이가 난다. 사진=SBS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모른 척 ‘문고리 3인방’

    모른 척 ‘문고리 3인방’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19일 수의를 입고 법정에서 재회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1998년부터 가까이서 보좌했던 세 사람이 법정에 나란히 선 것은 처음이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영훈)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은 데 관여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국고손실 등)로 재판에 넘겨진 세 사람에 대한 공판을 열었다. 이·안 전 비서관은 지난해 11월 특활비 관련 혐의로 구속기소돼 3회째 재판이 이어졌다. 공무상 기밀 누설 혐의로 따로 재판받던 정 전 비서관이 특활비 관련으로는 뒤늦게 기소되며 같은 재판부 사건으로 묶였다. 안·정 전 비서관은 국정원 특활비 상납이 중단된 뒤인 2016년 9월 추석을 앞두고 2억원을 받아 박 전 대통령에게 건넨 혐의로 지난 10일 추가 기소됐다. 하늘색 수의를 입고 나란히 법정에 들어선 세 사람은 서로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알은척도 하지 않은 채 입을 굳게 닫았다. 안 전 비서관 측은 “전달자일 뿐 박 전 대통령과 뇌물수수 공범이 될 수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고 정 전 비서관 측은 “사실관계는 대체로 인정한다”고 했다. 이날 재판에는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특활비를 상납하는 과정에서 ‘전달자’ 역할을 한 오모 전 국정원장 정책특별보좌관과 박모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이 증인으로 나왔다. 남 전 원장은 재직 시절인 2013년 5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매달 5000만원을 박 전 대통령에게 상납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오 전 특보는 “청와대 요구를 받은 남 전 원장이 처음에는 ‘비서관들이 아무리 형편없고 나쁜 놈들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을 속이고 나를 농락하는 그런 짓을 하진 않겠지?’라며 대통령 지시가 맞는지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마이웨이’ 이경애, 어려웠던 형편...“시체 닦는 일까지 하려 했다”

    ‘마이웨이’ 이경애, 어려웠던 형편...“시체 닦는 일까지 하려 했다”

    코미디언 이경애가 힘들었던 가정사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려 시청자를 안타깝게 했다.18일 오후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코미디언 이경애(55)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이경애는 어려웠던 가정 형편을 털어놔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 난 사춘기도 몰랐고, 학창 시절에도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라며 “학교 매점에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학교가 끝나면 수세미를 파는 일을 했다. 수세미를 큰 가방에 넣고 집들을 돌아다니며 팔았다”고 말했다. 이경애는 “한번은 초등학생인 손을 잡고 아파트를 찾았는데 경비아저씨한테 들켜 물건을 다 뺏겼었다. 4시간 동안 울면서 빌었더니 그제야 주더라”라며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그렇게 지독한 어른은 처음 봤다. 세상에 오기가 생겼다. 수세미를 돌려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팔았다”고 전했다. 어려웠던 형편 탓에 어린 이경애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병원 시체 안치소에서 알코올로 시체를 닦는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하루에 7만 원이라고 하더라”라며 “그런데 나이 제한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내가 그거까지 하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누구한테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경애는 이날 “내가 뭘 하든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는 안 되고 그때 연예인이 되자고 생각했다”며 “연예인은 나이가 상관없으니까. 내가 (연예인이 되기를) 선택한 게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사진=TV조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인터뷰] 이옥선 할머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터뷰] 이옥선 할머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저는 이옥선입니다.” 지난 15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92) 할머니를 만났다. 이옥선. 한국인으로 태어나 인고의 세월을 견딘 이름이다. 할머니의 목소리는 작년과 달라졌다. 이제는 보행기 없이 거동도 쉽지 않다. 할머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하루빨리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2015년 12월 28일. 피해 할머니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일 간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합의됐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불가역적이라는 어려운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10억 엔을 내놨다. 이날에 대해 할머니는 “미칠 것 같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같은 여자이기에 더 잘 알아줄 거라 생각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결과는 할머니의 믿음과 달랐다. 이 할머니는 “우리는 무식한 생각으로 정부가 돈이 없어서 일본에 돈을 받고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당사자가 모르는 합의가 어디 있느냐”며 “완전히 잘못된 합의”라고 말했다. 지난 9일 문재인 정부는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일본이 내놓은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은 별도조성하고, 일본 정부로부터 진정성 있는 사죄를 받아내겠다고 발표했다. 또 이전(2015년 12월 28일)에 발표된 합의는 잘못됐지만, 재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발표에 대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전 정권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며 희망을 내비쳤다. 이 할머니는 “정권이 바뀌었다. 다시 협상해서 어떻게든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문 대통령에게는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 발표 후 일본은 “한·일간 위안부 합의를 1㎜도 움직이게 할 생각이 없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확인했다”며 펄쩍 뛰었다. 이에 할머니는 “11살, 12살, 13살, 14살 이런 아이들 데려다가 죽였다. 이래놓고 오늘날까지 안 그랬다고 한다. 사죄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이옥선 할머니는 192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언감생심 공부는 꿈도 못 꿨다. 1940년,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말에 울산에 있는 한 여관에서 노동을 시작했다. 2년 후. 할머니는 1942년 7월 29일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 노예가 됐다. 당시 그녀의 나이 만 열다섯이었다. 3년간 끔찍한 생활이 이어졌다. 그 시간을, 살아냈다. 해방 후, 할머니는 위안소가 있던 연변에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2000년 6월이 되어서야 58년 만에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에 대해 “사람 잡는 사형장”이라고 설명했다. “하루에 군인 40~50명을 상대했다. 아프면 죽였고, 길 밖에 내버렸다. 짐승들이 (아이를) 먹게 했다”고 증언했다. 이 할머니가 물었다. (죽은) 아이를 낳은 부모가 그 사실을 알면 어떻겠냐고. 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낳아서 10년, 20년 길러서 일본에 바치겠느냐고 말이다. 이 할머니는 “오늘날 자기들이 안 했다고 하면 누가 곧이듣겠느냐. (일본은) 꼭 사죄를 해야 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5일 위안부 피해자 임모 할머니가 별세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중 생존자는 31명이다. 지난해 7월 23일 나눔의 집에서 지내던 김군자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는 안 죽고 살았기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해보지만, 먼저 간 사람은 그 원한을 얼마나 품고 갔겠는지 생각해보라”며 “그 몫까지 우리가 다 해야 한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 할머니는 위안부에 끌려갈 당시를 떠올리며 직접 쓴 노래를 들려줬다. 씩씩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금세 촉촉해졌다. 아픈 기억이 할머니의 목울대를 뜨거워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아직 이 곡을 완성하지 못했다. 미완의 이 곡이 완성되는 날, 할머니가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문성호,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월드피플+] 中감동시킨 청년의 미국유학 스토리…꿈이 가난을 이기다

    미국 명문대는 ‘금수저’ 출신이어야 가능하다? 꿈에 그리던 미국 명문대에 합격했지만, 비싼 학비가 걸림돌이 되었던 중국의 한 가난한 청년이 꿈을 실현해낸 과정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015년 3월 덩린지에(邓林杰)는 평생 꿈에 그리던 미국 뉴욕의 시각예술학교(School of Visual Art)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글로벌 예술대학 10위권에 드는 학교인 데다, 그가 신청한 사회혁신디자인과는 전 세계에서 단 25명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에게는 학비와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지방에서 조금만 잡화점을 운영하는 가정 형편에 미국 유학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는 절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고심 끝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자신의 형편을 알리며, “여러분이 학비를 지원해주면 2년 뒤 원금에 20%의 이자를 보태서 갚겠다”고 청했다. ‘사기극’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난한 형편에 무슨 미국유학이냐’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230명은 자진해서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었고, 그는 1주일 만에 50만 위안(8300만 원)을 모았다.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 그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학업과 동시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를 눌렀다. 그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중국 전통서예를 한 장당 10달러씩 받고 돈벌이에 나섰다. 추운 겨울, 양손이 얼어붙어도 길거리에서 서예 작품을 팔았다. 이후에는 온라인상에 개인 브랜드 쇼핑몰을 개업했다. 차츰 많은 사람이 그의 서예 작품을 주목하고 주문하기 시작했다. 또한 미국 현지에서 배운 디자인 내용을 중국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온라인 강좌를 열었다. 200여 명이 수강 신청자를 위해 그는 매주 토요일에도 새벽 6시에 기상해 7시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미국에 도착한 지 첫 달부터 돈을 갚아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돈의 사용 내역과 상환 기록을 상세히 SNS에 공개했다. 심지어 본인의 성적표까지 낱낱이 공개하며, 도움을 준 분들에게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습을 확인시켰다. 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중고 매장에서 옷이나 생활용품을 해결했고, 식사는 학교 근처 저렴한 중식당에서 6달러로 해결했다. 팁이 없는 데다, 저녁 7시 이후면 1달러 더 저렴해져 매일 저녁 7시 이후에 와서 밥을 먹고, 한가지 반찬은 남겨두었다가 이튿날 먹었다. 숙소 비용도 아끼기 위해 브루클린 빈민가의 한 교회 피난처로 이사했다. 고군분투한 2년, 드디어 그는 지난해 5월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졸업 후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에게 진정한 ‘졸업’은 아직 마치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 8만 위안(1330만 원)의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230명에게 돈을 모두 갚기로 약속한 2017년 12월까지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주 정자은행에 정자를 기증해 1500달러를 받았다. 다행히도 미국의 기념일이 겹치면서 그의 디자인 작품은 많이 팔려 나갔다. 드디어 2017년 12월 30일, 그는 자신의 SNS에 도움을 준 분들께 원금과 이자를 합쳐 총 57만1192위안(9450만 원)을 갚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54명에게 2만4007위안을 돌려주지 못했다면서 54명의 명단을 올렸다. 일부 사람은 원금만 받고, 이자는 사양했으며, 일부 사람은 아예 돈을 받기를 거부하며 연락을 끊기도 했다. 결국 그는 2년 전 도움을 준 230명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2년 전 ‘가난하면 꿈을 이룰 자격이 없는가?’ 라고 세상에 물었던 23살 청년은 ‘가난이 꿈을 꺾을 수 없다’는 진실을 몸소 보여주었다. 수많은 사람은 젊은 청년의 성실성과 신의, 그리고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서울 사립초교 39곳 재정 현황 전수점검

    서울 은혜초교가 학생수 감소를 이유로 기습적으로 폐교 신청을 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교육청이 시내 사립초 39곳 전체의 재정 현황 파악에 나섰다. 15일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교육청 ‘학생수 감소에 따른 사립초 배치 여건 종합검토 태스크포스(TF)’는 은혜초처럼 학생수가 정원에 미달하는 학교를 중심으로 관할 사립초 전체의 재정 상태를 분석할 계획이다. 사립초는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로 학교를 운영하기 때문에 교육청의 예산지원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교육청은 자세한 재정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 서울교육청이 사립초교의 재정 형편을 들여다보기로 한 건 학생수 감소에 따른 재정난이 은혜초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서울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1997년 75만 6542명이었던 서울 초교생은 2016년 43만 6121명으로 약 42.4%(32만 421명) 줄었다. 사립초 신입생도 덩달아 감소해 2000년 5057명에서 올해는 3810명까지 줄었다. 또 올해부터 초등학교 1·2학년 방과후 영어 수업이 금지돼 영어 교육에 강점이 있는 사립초가 타격을 입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편 은혜초는 지난주 교사 전원에게 2월 말일자로 해고하겠다고 통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는 재학생 중 단 1명이라도 은혜초에 계속 다니길 원하면 폐교 인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학교 측은 폐교 강행 의사를 명확히 한 것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버린 주인, 30킬로 달려 2번 찾아간 개

    버린 주인, 30킬로 달려 2번 찾아간 개

    한 반려견이 자신을 포기한 주인 가족에게 32㎞를 달려서 2번이나 찾아갔지만, 전 주인이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전 주인과 살 수 없게 됐다고 미국 피플지(誌)가 지난 12일(현지시간) 전했다.6살 된 그레이트 피레니즈 믹스견 ‘캐슬린’은 행복한 반려견이었다. 하지만 원래 주인의 가족이 미국 오클라호마 주(州) 세미놀 시(市)로 이사 가면서, 더 이상 캐슬린을 키울 수 없게 됐다. 전 주인은 오클라호마 주 프레이그 시에 사는 지인에게 캐슬린을 입양보내기로 결정했다. 전 주인의 집에서 20마일(약 32㎞) 떨어진 곳이다. 하지만 캐슬린은 주인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 주인을 많이 좋아한 캐슬린은 32㎞를 달려서 세미놀 시에 사는 전 주인 집을 찾아갔다. 그것도 2번이나 찾아갔다. 전 주인은 어떻게 캐슬린이 길을 알고 찾아왔는지 놀랐다. 그리고 가슴이 매우 아팠다. 하지만 캐슬린을 키울 수 없는 형편이라, 또 다시 힘든 이별을 해야 했다. 그런데 또 캐슬린이 돌아온 것. 결국 세미놀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전 주인과 캐슬린 사이에 개입해, 새 주인을 찾아주기로 했다. 세미놀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캐슬린의 사연을 올리면서, 새 주인 모집에 나섰다. 사진 속에서 캐슬린은 전 주인과 다시 만나 기뻐했지만, 전 주인은 캐슬린을 키울 수 없는 사연이 숨어있다고 전했다. 충성스러운 캐슬린은 “건강하고, 배변훈련도 잘 돼있고, 목줄을 잡아당기지도 않고, 먹는 것을 좋아하고, 내성적이며, 아이와 다른 개들을 좋아하는 다정한 개”라고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소개했다. 캐슬린의 슬픈 사연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캐슬린을 입양하겠다고 나섰다. 세미놀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지난 12일 캐슬린이 자신에게 딱 맞는 새 주인에게 입양됐다는 기쁜 소식을 알렸다. 노트펫(notepet.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청복을 누리소서!

    [백승종의 역사 산책] 청복을 누리소서!

    얼마 전까지도 새해에 연하장을 주고받는 풍습이 있었다. “청복(淸福)을 누리소서.” 이런 글귀로 끝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청복이라니? 맑은 복은 과연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명재상 월사 이정구의 글 한 편이 생각난다(‘월사집’, 제47권). 글의 주인공은 해주 목사를 지낸 이응기로 청복을 누린 선비였다. 복의 근원은 배우자 숙인 나씨였다. 부인은 잦은 제사에도 불구하고 늘 깨끗한 제수물품을 넉넉히 마련했다. 집안의 노복을 거느리는 데도 능숙했다. 재산 관리에도 빈틈이 없었다. 나씨 부인은 도리에 어긋난 일로 남편의 마음을 괴롭힌 적이 없었다. 집안 형편이 곤란할 때도 있었으나, 함부로 바가지를 긁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공의 마음은 늘 평안하다 못해 느긋하였다. 이공은 곤경에 빠진 친구와 친척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였다. 자연히 집안에는 여축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청백함을 숭상하여 관청의 재물을 집으로 가져오는 일이 없었다. 자연히 그 집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정의 높은 벼슬아치가 초대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바깥주인이 재산을 늘리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아 집안에 식량이 떨어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 집안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관직에 있는 동안 이공은 늘 청렴하고 공평한 마음으로 사무를 처리했다. 특히 판결을 공정하게 잘하였다. 그러나 윗사람에게 아부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선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인해 화려한 명성은 없었다. 옛 사람들은 이공처럼 사는 것을 청복이라 일컬었다. 분수를 지키고, 함부로 명예와 재산을 탐하지 않는 삶이었다. 그리 사는 건 우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일까. 아마도 녹록한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세상을 휘둘러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역대 정권의 부정부패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가. 고위 공직자의 임명동의 절차에 불과한 국회 청문회 역시 큰 잡음 없이 통과한 이가 거의 없다. 욕심 없이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청복의 첫 번째 조건은 훌륭한 아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혜강 최한기는 아내를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인정’, 제3권). 최상의 아내는 행동이 아름답고 성격이 자애로우며 가계경영에도 능숙한 사람이란다. 중등의 아내는 언행에 약간의 실수는 있을지 몰라도, 성격이 쾌활하고 좀체 불만을 쏟아내지 않는 이다. 하등의 아내는 성품이 편협하고, 좋은 이웃과 사귀기를 싫어하며, 밖으로 돌아다니며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상등의 아내가 있다 해도, 선비는 수신(修身)에 큰 정성을 들여야 했다. 헛된 욕심을 끊고, 언행이 순수하고 성실할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7세기 서울의 선비 윤황도 청복을 누릴 만하였다(‘택당선생집’, 제10권). 윤공의 조부는 모든 재산을 큰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윤공은 장손이라서 그 많은 재산을 홀로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네 명의 동생들과 나누어 가졌다. 또 윤공은 부인 이씨의 성품과 능력을 높이 평가해 전적으로 신뢰했다. 모든 살림살이는 부인의 몫이었다. 마음이 한가해진 윤공은 바둑과 낚시 등으로 세월을 보낼 뿐, 혼탁한 조정에 나아가 한 자리를 차지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친척들은 그를 효자라 불렀고 마을 사람들은 공손한 선비라 칭찬했다.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선비 윤황, 이응기 부부처럼 향기로운 사람들이 우리 곁에 있었으면 한다.
  • [단독] 기무사도 움직인 ‘1987’

    [단독] 기무사도 움직인 ‘1987’

    이석구 사령관 “자성 계기로” 李총리도 관람 후 눈시울 붉혀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및 축소·은폐 사건과 1987년 6월 시민항쟁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1987’이 5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체 부대원들이 사령관 특별 당부에 따라 이 영화를 모두 관람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이낙연 총리도 ‘1987’을 관람, ‘1987’이 흥행 몰이를 하면서 사회 전반에 신드롬이 일고 있다. 14일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무사 부대원들은 부대가 정한 ‘월간 문화의 날’(매월 둘째주 수요일)인 지난 10일 오후 소속 부서 단위로 서울 용산, 경기 안양 등의 영화관에서 ‘1987’을 단체관람했다. 영화 관람은 이석구 사령관의 당부에 따른 것이다. 먼저 영화를 관람한 이 사령관은 “과거 인권침해의 과오를 떠올리며 자성과 반성의 계기로 삼자”며 모든 부대원들에게 영화 관람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는 경찰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졌지만,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도 당시 이른바 ‘서빙고 별관’을 운영하며 운동권 학생과 민주인사 사찰, 불법구금, 고문을 일삼았던 터여서 이 영화를 제3자처럼 외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대다수 기무부대원은 고문 장면 등을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 세대의 일이지만 마치 자기 일인 듯 부끄럽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일부 부서는 영화관람 직후 다시 모여 기무사의 어두웠던 과거사를 주제로 토론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의지를 되새겼다고 한다. 서빙고 별관은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독재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고문시설이다. ‘서빙고 호텔’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한번 끌려가면 성한 몸으로 나오기 어려워 민주인사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4년 폐쇄돼 지금은 아파트로 변해 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영화관에서 페이스북 친구 20명과 함께 ‘1987’을 본 이 총리는 영화 관람 후 소감을 묻자 눈시울을 붉힌 채 한동안 침묵한 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한시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무거운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리는 “권력이 광기에 휩싸이면 영화에 나온 그 정도 폭력도 자행한다. 그런 위험성을 줄여 가는게 민주화”라고 덧붙였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저소득 독립유공자 손자녀에 첫 지원금

    보훈처 오늘 3007명 우선 지급 독립유공자의 자녀나 손자녀 가운데 생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국가가 생활지원금을 지급한다. 14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15일 처음으로 지급되는 생활지원금 수혜 대상은 3007명으로 집계됐다. 가구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50% 이하이면 월 46만 8000원, 70% 이하에게는 월 33만 5000원이 지급된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15일 독립운동가 이동녕 선생의 손녀 이애희(82)씨 자택을 방문해 직접 생활지원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 가운데 선순위자 1명에게만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던 기존 방식을 개선해 생활 형편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자녀와 손자녀는 누구나 생활지원금을 받게 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현충일 추념사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인식을 없애고 “애국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으며 이에 따라 보훈처는 올해 생활지원금 예산으로 526억원을 반영했다. 지난해 말까지 1만 3640명이 신청했으나 보훈처는 생활수준 조사가 필요 없는 기초수급자 등 3007명을 가려 우선 지급하고, 나머지 신청자들은 생활수준 조사를 거쳐 지원 기준에 해당하면 추후 1월분을 소급 지원할 방침이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단독] 영화 ‘1987’ 기무사도 움직였다, 사령관 특별 당부로 전 부대원 관람

    [단독] 영화 ‘1987’ 기무사도 움직였다, 사령관 특별 당부로 전 부대원 관람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및 축소·은폐 사건과 1987년 6월 시민항쟁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 ‘1987’이 500만 관객을 돌파한 가운데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체 부대원들이 사령관 특별 당부에 따라 이 영화를 모두 관람한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군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무사 부대원들은 부대가 정한 ‘월간 문화의 날’(매월 둘째주 수요일)인 지난 10일 오후 소속 부서 단위로 서울 용산, 경기 안양 등의 영화관에서 ‘1987’을 단체관람했다. 영화 관람은 이석구 사령관의 당부에 따른 것이다. 먼저 영화를 관람한 이 사령관은 “과거 인권침해의 과오를 떠올리며 자성과 반성의 계기로 삼자”며 모든 부대원들에게 영화 관람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박종철군 고문치사는 경찰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졌지만, 기무사 전신인 보안사도 당시 이른바 ‘서빙고 별관’을 운영하며 운동권 학생과 민주인사 사찰, 불법구금, 고문을 일삼았던 터여서 이 영화를 제3자처럼 외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대다수 기무부대원은 고문 장면 등을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선배 세대의 일이지만 마치 자기 일인 듯 부끄럽고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일부 부서는 영화관람 직후 다시 모여 기무사의 어두웠던 과거사를 주제로 토론하며 ‘다시는 이런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의지를 되새겼다고 한다. 서빙고 별관은 ‘남산 안기부’, 남영동 대공분실과 함께 독재정권 시절의 대표적인 고문시설이다. ‘서빙고 호텔’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 보안사 서빙고 분실은 한번 끌려가면 성한 몸으로 나오기 어려워 민주인사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2004년 폐쇄돼 지금은 아파트로 변해 있다. 기무사는 민주화 이후 민간인 사찰을 비롯한 인권침해적 행위를 일절 금지하는 등 환골탈태를 모색했지만 지난 9년간의 보수정권 시절 사이버 댓글 활동을 통해 불법적으로 정치에 관여한 사실이 최근 또다시 드러났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개혁작업을 벌이는 기무사가 영화 ‘1987’ 단체관람 이후 진정을 담은 자성과 반성의 개혁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백지연의 생각의 창] 만두 빚는 시간

    [백지연의 생각의 창] 만두 빚는 시간

    나이가 들어 새롭게 알게 된 음식 중에 납작만두가 있다. 대구 지역의 별미라는 납작만두를 처음 본 순간 ‘이것을 무슨 맛으로 먹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름 그대로 만두 안에 당면 몇 가닥 외에는 거의 속 재료가 없었다. 얇고 반들반들하게 구워진 납작만두는 파와 양파, 고춧가루, 양념간장과 함께 먹어야 한다. 납작만두는 만두 속이 바깥의 싱싱한 채소와 양념으로 대체되는 독특한 맛을 갖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별것 없는 듯한 그 허전한 맛이 나름 중독성이 있어서 대구에 갈 일이 있으면 으레 교동 시장의 납작만두 가게를 찾게 된다. 가게의 할머니들이 구워 주시는 기름진 납작만두는 집에 가져가면 좀처럼 재현되지 않는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다. 철판에 진한 기름을 두르고 여러 장의 만두를 빠르게 굽는 할머니의 손맛은 직접 가서 먹어야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독특한 풍미의 납작만두를 좋아하게 됐지만 만두를 생각하면 여전히 그 속에 풍성하게 들어 있는 김치, 두부, 고기, 부추, 당면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이 대체로 그렇듯이 김치와 만두, 잡채나 송편은 여러 가지 노동을 필요로 한다. 만두만 하더라도 두부와 김치의 물기를 꼭꼭 짜고 재료들에 간을 적절히 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만두피까지 따로 만들면 일은 더 늘어난다. 만두소 역시 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자칫하면 굉장히 싱거워지거나 입안에서 여러 재료의 맛과 간이 겉돌기 쉽다. 잘 빚어 놓고 한번 쪄서 식혀 놓지 않으면 터져 버리기 쉬운 은근히 까다로운 음식이 바로 만두다.만두 빚는 이야기를 하면 슬며시 떠오르는 소설의 한 장면이 있다.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2014)에는 김장철이 다가오기 전 묵은 김치를 비우는 연례행사로 사람들이 모여 만두를 빚는 장면이 나온다. 만두를 빚는 사람은 모두 네 사람이다. 집주인인 순자와 아들 나기, 그리고 예전에 세입자로 한 공간에 살았던 소라와 나나 자매다. 이렇게 가족과 세입자 이웃이 함께 어울려 해마다 만두를 빚게 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이들의 만두 빚기에는 곡진한 사연이 담겨 있다. 소라와 나나 자매는 어린 나이에 끔찍한 산재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낯선 곳으로 이사 간다. 어머니 애자는 남편을 잃고 난 후 삶의 의욕을 놓아 버리고 딸들을 돌볼 힘을 갖지 못한다. 이사 간 집에는 공동 세입자로 과일 행상을 하는 순자와 그의 아들 나기가 살고 있었다. 배고픈 소라 자매가 쉰 떡을 쪄서 먹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순자는 자신의 부엌에 데려와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 준다. 순자는 아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말없이 도시락을 싸서 신발장 위에 놓아 둔다.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생계를 잇는 고단한 형편이면서도 순자는 매일 도시락 싸는 것을 잊지 않는다. 김장철이 오기 전 순자와 함께 묵은 김치로 만두를 빚는 시간은 자매가 은근히 기다리는 연례행사가 된다. 성인이 된 소라 자매가 엄마를 대신해 사랑을 준 순자와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일은 “즐겁고 애틋하고 두렵고 외롭고 미안하고 기쁜 마음”을 벅차게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라 자매가 순자의 이름 한 글자를 따서 붙인 ‘순만두’는 특별한 레시피가 없다. 만두소는 “고기 듬뿍, 두부 듬뿍, 김치를 듬뿍 사용해 만드는데 듬뿍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아주머니의 손어림”에 따르고, 만두피는 나기가 정성껏 반죽해 만든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 땀 흘리며 만두를 만들고 찌고 쟁반에 놓고 만둣국을 끓여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누군가와 스스럼없이 나누는 따뜻한 음식만큼 마음을 녹이는 것은 없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인사로 ‘언제 한번 만나서 밥 먹자’라는 말을 종종 건네곤 한다. 습관처럼 미래를 기약하는 이 말이 형식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밥을 먹자’는 말만큼 정답고 폭넓게 쓰이는 말도 없을 것이다. 부디 새해에는 반복적인 노동에 지친 의례적인 식사만이 아닌, 편안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는 귀한 시간들이 조금씩이라도 늘어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 의정부 직동ㆍ추동공원 민자개발… 60년 만에 ‘시민 품으로 ’

    의정부 직동ㆍ추동공원 민자개발… 60년 만에 ‘시민 품으로 ’

    ‘도시공원일몰제’ 시행이 2년 앞으로 다가왔다. 도시공원일몰제는 도시계획시설(공원) 용지로 지정해 놓고 2020년 6월 30일까지 수용 보상하지 않을 경우 그다음달 1일 도시계획시설에서 자동 해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1999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도입됐다. 전국적으로 이에 해당하는 도시공원 면적은 5억 1600만㎡에 달한다. 서울 전체 면적의 80%를 넘을 정도로 엄청난 면적이다. 일몰제가 시행되면 토지소유자가 공원용지를 자유롭게 개발이 가능해져 난개발이 예상된다.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매입하면 그만이지만 막대한 비용이 들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충분한 재원마련 대책 없이 공원을 과다하게 지정한 후폭풍이다. 공원 이외에 도로, 학교, 유원지, 광장 등으로 지정만 해 놓고 10년 이상 손을 못 대고 있는 다른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도 상당수에 이른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은 2016년 현재 152곳으로 서울시 전체면적의 16% 이상을 차지한다. 전국적으로는 전 국토(10만 188㎢)의 약 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를 사업비로 환산하면 2014년 현재 139조 2238억원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1억 1201만㎡로 가장 많고, 경북(1억 384만㎡), 경남(1억 346만㎡), 전남(8284만㎡), 충북(7207만㎡), 부산(6852만㎡), 서울(5956만㎡) 등 순이다. 도시계획시설별로는 공원이 5억 1639만㎡로 전체의 절반 이상(55.5%)을 차지한다.경기 의정부시에는 모두 183곳 320만㎡의 공원이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돼 있으나, 이 중 공원으로 개발이 완료된 곳은 약 25%에 불과하다. 특히 면적이 가장 큰 직동과 추동근린공원은 1954년 공원부지로 결정고시했으나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의정부시가 60년 넘도록 공원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사이 공원부지 안에 있던 건축물들은 낡고 허물어져 갔다. 재개발이 안 되고, 새로 건물을 지을 수도 없게 되자 불법 건축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토지소유자들은 매매를 못 하는 등 재산권 행사에 큰 제약을 받아 왔다. 이보다 규모는 작지만, 같은 형편에 있는 공원부지가 의정부시에만 49곳이 더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의정부시가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60년간 묵혀 온 공원조성사업을 추진해 주목을 받고 있다. 공원부지 면적의 70%는 공원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30% 이하에는 아파트를 지어 투자비를 회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도시공원일몰제에 대비하기 위해 2009년 12월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특례조항을 신설, 법적 근거를 마련해 가능해졌다. 민간자본을 유치해 공원 조성을 추진 중인 곳은 직동과 추동근린공원이다. 직동근린공원은 의정부동·호원동·가능동 일대 86만 4955㎡ 규모로 1954년 5월 공원으로 결정고시됐으나 그동안 절반만 공원으로 개발했다. 의정부시는 2012년 6월부터 민간자본 1163억원을 끌어들여 나머지 공원부지 매입을 추진했다. 34만 3617㎡는 공원시설로 개발해 기부채납받고, 8만 4000㎡에는 아파트 1850가구를 신축 분양해 민간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기도로부터 도시기본계획 변경을 승인받은 지 4년 만인 2016년 3월 마침내 공원 조성 및 아파트 신축공사를 시작했다. 위치가 좋아 아파트 분양경쟁률은 6대1에 가까웠다. 추동근린공원은 의정부 외곽인 신곡동·용현동에 걸쳐 있고 개발 규모는 직동근린공원의 2배이다. 71만 3496㎡는 공원시설로, 15만 4308㎡에는 3400가구의 아파트 등 비공원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민간업체는 2014년 10월 부지 매입비의 80%에 해당하는 1100억원을 현금 예치한 후 이듬해 의정부시와 협약서를 체결, 2016년 8월 공원 및 아파트 신축공사에 들어가 2020년 8월 입주를 앞두고 있다.의정부시는 민간투자 방식의 두 공원조성사업 추진으로 토지보상비와 공원 공사비 약 2500억원을 절약하고 약 30억원의 취득세를 벌어들이게 됐다. 또 직동에서 7000억원, 추동에서 9800억원 아파트 공사가 진행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됐다. 어려움도 많았다. 민간사업자 공모에서 탈락한 업체가 각종 민원을 제기해 담당 공무원이 검찰수사를 받고 20건 이상의 토지보상비 증액 소송 등이 잇따랐다. 사업 초기에는 보상금을 둘러싼 토지주들의 오해로 공원 근처에 사업추진을 반대하는 현수막 100여장이 걸리기도 했다. ‘표’를 먹고 사는 민선 시장으로서는 작지 않은 부담이었다. 의정부시는 한국감정평가협회에 토지수용보상 평가업체 선정을 의뢰하는 방법으로 토지주들의 신뢰를 얻어 두 달 만에 80% 가까이 보상협의를 완료할 수 있었다.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장기 미집행으로 행방불명된 토지주를 제외하면 사실상 연락 가능한 토지주들은 모두 쉽게 보상협의에 응해 주셨다”고 말했다.아파트 공사장 인근 빌라에 사는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슬럼화될 것을 우려하며 공동개발을 요구하기도 했다. 소음 및 비산먼지로 인한 피해보상 요구도 높았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솔직히 전국 최초로 이런 사업을 하다 보니, 비공원시설과 인접한 지역의 여건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현행 법률로는 인접 지역을 같이 개발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인근 빌라 주민들의 반발은 곧 수그러들었다고 시 관계자들은 말한다. 당초 주변 토지 값이 3.3㎡당 500만~600만원에 불과했으나 공원 조성 및 아파트 건설이 진행되면서 1000만원대로 올라 재개발 사업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황주성 민자유치과 주무관은 “다른 지자체에서는 환경성 문제와 인접지역 반대로 사업 초기단계에서 막히는 경우를 종종 본다”면서 “사업 진행 전에 비공원 시설의 적정 위치와 주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민간업체가 투자를 꺼리는 지방이나, 공동주택과 같은 사업성 높은 개발이 어려운 지역에 대해 황 주무관은 “공원부지가 외곽에 있는 경우에는 고급 빌라나 타운하우스, 펜션단지, 실버타운 또는 요양시설도 가능할 것”이라면서 “입지에 따라 다양한 비공원시설로 투자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정부시의 성공사례를 뒤따르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으나, 환경파괴와 공공성 훼손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반발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의정부에 이어 수원, 용인 등 8개 지자체가 민간자본을 유치해 공원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나, 평택 모산골평화공원 등에서 공공성 훼손을 주장하는 등 잡음이 일고 있다. 인천도 12곳에서 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민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다. 인천녹색연합 등은 “인천시가 충분한 검토 없이 대상지 선정부터 서두르는 등 임기응변식 대응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주장한다. 부산시에서는 1년 전 ‘민간공원 조성 특례사업 자문회의’를 열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30% 개발부지에 아파트, 호텔 등이 들어서면 70% 공원부지 역시 연쇄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공공성이 강한 공원시설을 민간건설업체 자본을 끌어들여 개발하기 때문에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우려할 수 있으나, 시를 신뢰하도록 하면 문제 될 게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의정부시의 경우는 사업을 진행하기 전 사전 타당성 조사용역 단계 때부터 비공원 시설(아파트 등)의 위치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여론을 수렴해 환경성 문제를 피해 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생활고로 1억원 넘는 금목걸이 100여점 훔쳐 달아난 30대 한달만에 자수

    경남 창원시 한 귀금속 상가에서 손님으로 가장해 1억 2000여만원어치 상당의 금목걸이가 들어있는 목걸이 진열판을 통째로 갖고 달아났던 30대가 범행 한달만에 경찰에 자수했다. 창원중부경찰서는 8일 창원시 성산구 한 금은방에서 지난달 8일 금목걸이 100여점이 들어있는 진열판을 통째로 훔쳐 달아난 혐의(절도)로 최모(32·김해시 진영읍)씨를 붙잡아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이 도난피해를 당한 금은방을 상대로 확인한 결과 최씨가 훔친 목걸이 진열판안에 있던 금목걸이는 총 무게 1500g(400돈)으로 금액은 1억 2000만원에 이른다. 최씨는 이날 오전 부산 사하구에 있는 공중전화를 이용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창원중부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불안한 심리상태를 내비치며 범행사실을 털어놓고 자수할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부산 사하경찰서와 공조해 사하구 한 공중전화 박스안에 있던 최씨를 검거했다. 경찰조사에서 최씨는 “아기가 곧 태어날 예정인데 집에 돈이 없고 형편이 어려워 범행을 했으며 훔친 금목걸이 가운데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2000여만원을 받고 팔았고 나머지는 집에 보관해 놓았으며 판매대금은 한푼도 쓰지 않고 은행에 맡겨놓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최씨가 “범행을 하고 난 뒤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해서는 안될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어 금목걸이 판매 대금과 남은 금목걸이를 피해자에게 모두 돌려주기 위해 보관하고 있다”면서 뒤늦게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앞서 최씨는 지난달 5일 한 금은방에서 반지를 사겠다며 계약을 한 뒤 3일 뒤인 지난달 8일 오후 3시 30분쯤 다시 이 금은방을 방문했다. 모자와 목도리 등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로 금은방을 방문한 최씨는 진열된 제품을 구경하다 계약금을 인출해 갖고 오겠다며 나갔다가 들어와 금목걸이가 진열돼 있는 판을 통째로 들고 달아났다. 경찰은 정확한 사건경위와 피해금액, 최씨를 상대로 자세한 범행동기 등을 조사한 뒤 최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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