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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잔] ‘잊혀진 것들’ 펴낸 한국학연구원 김 원 교수

    [저자와 차 한잔] ‘잊혀진 것들’ 펴낸 한국학연구원 김 원 교수

    장기집권을 비극으로 마무리한 통치자, 그가 남기고 간 혼돈을 빚처럼 안고 출발한 1980년대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꽃 한 송이 피워 내지 못한 ‘서울의 봄’, 군부의 등장과 광주항쟁, 넥타이부대까지 불러낸 민주화운동…. 대학에는 절망과 분노가 타올랐고 시위와 분신이 이어졌다. 그 격랑 속을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절을 박제시켜 벽장 속에 감춰두고 싶어 한다. 그렇게 화석화된 ‘80년대’를 꺼내들고 씻김굿을 한판 펼치자는 이가 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매진 펴냄)을 낸 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 그는 이 책을 세상에 던짐으로써 자발적 치매라는 고치 안에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은 1980년대 대학생들의 궤적을 기록한 ‘학생운동에 대한 보고서’다. 그 시대를 몸으로 부딪쳤던 구술자들의 입을 통해 당시 대학생의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1999년에 출간했다가 12년 만에 방대한 보론(補論)을 덧붙여 새로 출간했다. 김 교수가 책을 새로 내놓으면서 화두로 삼은 것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다. “초판은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원에 초점을 뒀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는 80년대가 왜 상처로 남았고 다시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되새김질 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80년대는 비도덕적이고 반국가적인 패륜아의 역사’라는 오명이 덧씌워졌다는 데서 찾는다. 바로 대한민국 건국, 산업화를 이끌어 온 아비를 부정했던 불경스러운 아들·형제들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80년대를 증언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분명한 답을 내놓는다. “증언하지 않으면 망각되거나 왜곡된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를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대들도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기억듣기’는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사회의 지향점을 성찰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가 ‘운동권’이었지만 학생운동이 갖고 있었던 문제점에 대해서도 뼈아픈 지적을 한다. “학생운동이 소멸하게 된 외부적 요인은 군부정권의 퇴장이나 노골적인 폭력의 약화 등이겠지요. 더 큰 원인은 학생조직의 내부적 문제였습니다. 조직의 비대화, 대중을 소외시킨 엘리트주의, 분파와 갈등이 균열을 불렀습니다.” 유행처럼 정치권으로 몰려들었던 소위 ‘386세대’에 대해서도 “목적을 위해서 분명히 존재했던 것들마저 부정한 사람들”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1980년대를 천착해 온 그에게 2010년대 대학생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 “80년대에는 광주항쟁 같은 사회적 현실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었고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인식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실들을 현대사의 비극 정도로 인식할 뿐 ‘자기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대학이 취업을 향한 경쟁의 장으로 재편되면서 자신의 존재근거에 대해 질문을 던질 여지가 약해진 것이지요.” 그의 바람은 자신의 텍스트들이 80년대의 트라우마를 읽는 창 구실을 하는 것이다. “지금의 세대들이 이 책이나 비슷한 연구서를 보면서 끝없이 질문을 던지다 보면 언젠가 트라우마는 깨질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잊고싶어 하는 ‘과거’를 낱낱이 전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찾는 단초를 제공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이 엿보인다.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전북 공무원 1만5000명 “어르신 자녀 돼드려요”

    고령화, 핵가족화 등으로 고립된 혼자 사는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 전북도 공무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전북도는 도청과 14개 시·군 공무원 1만 5000여명이 독거노인들과 1대1 결연을 맺고 책임 관리를 하는 ‘독거노인·공무원 사랑잇기 사업’을 오는 6월부터 추진한다고 4일 밝혔다. 도와 시·군 공무원들은 결연을 맺은 독거노인들을 매주 1~2회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수시로 안부전화를 하는 등 자녀나 친인척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외로운 노인들에게 말벗 서비스를 제공하고 각종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이를 해결해 주는 일도 도맡게 된다. 틈나는 대로 각종 심부름을 해 주고 목욕, 식사제공, 청소 등 노인들의 손과 발이 되는 봉사활동도 펼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자치단체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공무원들이 나서 주민들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고 봉사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도청과 14개 시·군 공무원노동조합도 이 사업을 추진하는 데 흔쾌히 협조하기로 했다. 도내 공무원들이 혼자 사는 노인들과 사랑잇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고령화와 핵가족화, 자녀·형제·자매·친인척의 무관심으로 정서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거나 ‘고독사’하는 독거노인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에서 독거노인 보호 및 복리증진을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으나 이들을 세심하게 보호·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는 점도 공무원들이 나서게 된 주요인이다. 현재 도내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6만여명. 이중 현업에 종사하거나 가족이 돌보고 있는 1만 5000명을 제외한 4만 5000명은 안전확인 등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인들이다. 하지만 자치단체의 노인돌봄서비스와 응급안전서비스를 통해 정기적인 생활실태를 점검하는 노인은 2만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2만 5000여명은 사실상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도는 우선 공무원 1만 5000여명이 독거노인들과 사랑잇기 사업을 펼칠 경우 위급한 노인들이 어느 정도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도는 사랑잇기 사업이 성과를 거두게 될 경우 마을 이·통장과 부녀회장 등이 독거노인 1만여명과 1대1 결연을 맺는 사업으로 확대해 보호가 필요한 노인은 모두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공무원과 이·통장, 부녀회장까지 나서 사랑잇기 사업이 정착되면 혼자 사는 노인들의 정서적 고립과 고독사 예방에 상당한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30) 남해 난곡사 느티나무

    봄바람에 실려 온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먼 길을 떠났다. ‘마을 사람들이 마치 조상 모시듯 정성으로 보호하는 나무’라며 할아버지 댁이 있는 시골의 정자나무를 소개한 제자의 편지다. ‘송글송글’이라는 유쾌한 이름의 여(女)제자는 편지에서 “마을 사람들은 농사가 잘될지 아닐지까지도 나무를 보고 짐작한다.”며 나무가 농사를 비롯한 모든 살림을 관장하는 큰 어른 같은 대상이라고 했다. 송양은 여러 각도에서 손수 촬영한 사진까지 첨부했다. 나무가 있는 곳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인 은진 송씨 집성촌인 경남 남해군 난음리 난음마을이다. ●女제자가 보낸 편지 속의 느티나무 송양이 편지에서 그려낸 것처럼 느티나무는 마을 앞의 너른 논을 거느리는 듯한 마을 수호목의 융융한 위용을 가졌다. 나무의 풍광을 더 근사하게 하는 건 나무 곁에 서 있는 ‘난곡사’라는 한 채의 아담한 사당 건물이다. 난곡사는 고려 후기에 성리학의 체계를 완성한 유학자 백이정(1247∼1323)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유림들이 세운 사당이다. 난곡사와 느티나무, 그리고 그 앞으로 넓게 펼쳐진 들녘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난음마을이 정신과 물질 모두의 풍요를 누리는 아름다운 마을임을 짐작게 한다. 송양은 편지에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의 잎이 예쁘게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잎이 잘 나지 않으면 흉년이 들 것”을 예측한다고 썼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뤄진 믿음이겠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느티나무에 잎이 나는 계절은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곡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 이 즈음의 날씨는 한 해 농사를 쥐락펴락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느티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돋아난다는 건 곡식의 씨앗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을 만큼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다. 풍년을 예감할 수 있는 기미다. 그래서 이 같은 이야기는 난음마을뿐 아니라 큰 나무가 서 있는 농촌 마을에서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내내 나무를 바라보며 그 그늘 아래서 산다고 해도 되지요. 농사일이 바빠지면 모두 저 나무 앞에 모여들지요. 한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답니다.” 마침 느티나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노인이 나무 전체에 푸른 잎이 골고루 돋아나는 느티나무를, 풍년을 예감하듯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젊은 시절 대처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송동우(77) 노인이다. ●마을 생활의 중심인 정자나무 농사일과는 무관했을 송양도 마을을 생각할 때마다 맨 먼저 나무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릴 때 할아버지 댁에만 가면 사촌 형제들과 나무 곁에 나와서 놀았어요. 나무에 기대어 숨바꼭질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했지요.” 마을 어귀는 사람들의 모든 들고 남이 스쳐 지나는 곳이다. 나무는 아침저녁으로 들녘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마을을 찾아온 어린 아이까지 긴 세월 내내 모두를 품어 안았다. 느티나무보다 ‘정자나무’로 더 많이 불리는 나무는 얼핏 보아도 난음마을의 중심이자 가장 상쾌한 쉼터임을 알 수 있다. 크고 듬직해서만이 아니다. 나무 그늘 아래에 놓은 평상은 여느 마을의 평상과 달리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담겼다. 무성하게 펼친 느티나무 가지를 지붕 삼아 공 들여 지은 정자다. 평상 앞에는 은진 송씨의 조상인 우암 송시열의 흉상이 자존심처럼 꼿꼿하게 세웠다. 얼핏 보아도 이 자리가 마을의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대전 인근에 살던 조상들이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곳곳을 다니다가 여기까지 내려온 거죠. 이곳에 터를 잡은 게 700년은 됩니다.” 송 노인은 느티나무가 마을이 처음 이뤄졌을 때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나무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군청에서 세운 보호수 표석에는 나무를 650살로 표시했지만 실제 나이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700년이라는 긴 세월은 나무 밑동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정성껏 충전재로 메운 커다란 구멍이 나무가 지내 온 긴 세월의 풍상을 짐작하게 한다. 더 안타까운 건 나무 줄기의 윗부분이 부러졌다는 것이다. 하릴없이 나무는 더 이상 키를 키우지 못하고 옆으로만 널찍하게 가지를 펼쳤다.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편지에서 송양은 “할아버지는 옛날에 이 나무의 뿌리를 타고 개울을 건너서 이웃 마을로 마실 다녔다고 하셨다.”고 썼다. 물론 송양의 할아버지가 타고 넘었다는 나무 뿌리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여느 느티나무 못지않게 큰 나무를 놓고 누구라도 보탤 수 있는 말이지 싶다. 옛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나무는 무척 크다. 가지는 사방으로 20m쯤 펼쳐져 있고 키는 19m,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는 6m나 된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나무는 실제 크기보다 더 커 보인다. 700살 된 느티나무 곁에 200살은 족히 넘어 보이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한 뿌리에서 솟아나온 것처럼 붙어서 자라는 두 그루는 한 그루의 풍성한 나무처럼 보인다. 두 그루의 나무가 가까이에서 자라는 게 생육에 좋을 리 없다. 그러나 700년의 삶이 지어 낸 넉넉한 품은 젊은 나무를 너그러이 품어 안았다. 두 그루가 전혀 다툼 없이 서로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를 이뤘다. 나무를 한참 바라보자니 송양의 편지에 담긴 속뜻이 살아 오르는 듯하다.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마다 맨 앞자리에 떠오르는 나무의 존재감을 되새기면서 송양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를 짚어 보고 싶었던 것이다. 가슴에 품은 젊은 여제자의 편지에서 느티나무 잎새의 연초록 향기가 알싸하게 차올랐다. 글 사진 남해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그래서 오늘도 뜁니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그래서 오늘도 뜁니다.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지난 3년간 집에 있는 두 아들 얼굴보다 전단지 속 실종아동 얼굴을 더 많이 봤다. 경남 양산 지역 무연고 보호시설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우리 엄마는 밖에서만 볼 수 있다.”는 아들 핀잔에 미안해하다가도, 잃어버린 자식을 찾고 온몸으로 흐느끼는 부모를 볼 때면 “이래서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찾아야 한다.”고 눈시울을 붉힌다. 바로 ‘실종아동의 대모’로 불리는 양산경찰서 유필자(53) 여청계장이다. 3년간 14세 미만 아동 139명 발견, 2008~10년 실종아동 등 보호시설 일제 수색 연속 8회 1위(이 기간만 실종아동 12명 발견). 그는 3년을 그렇게 ‘눈 빠지게’ 사람을 찾으며 살았다. ‘혹시 실종아동이 섞여 있지 않을까.’ 문턱이 닳도록 요양시설을 훑었다. ‘내 자식이라면….’ 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찾았다. 그래서 수색 기간 1등도 했고, 칭찬도 들었다. 하지만 그 ‘격려’가 두렵단다. 찾은 아동 숫자를 밝히지 말아 달라는 부탁도 했다. 아직 아이를 못 찾은 부모에게 상처가 될까 봐서다. 날카로운 눈빛, 강단있는 표정과 달리 천생 여자이자 엄마인 그를 4일 양산서 사무실에서 만났다. →실종아동을 잘 찾는 비결이 있나. -수색기간 중에만 중점적으로 보호시설을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집처럼 수시로 드나들었다. 관계자 입회하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지문 찍고 면봉으로 구강 DNA를 채취해 매일같이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등에 보냈다. 결과가 한 달 정도 걸리니 그게 모이고 쌓여서 실적으로 나온 것뿐이다(유 계장은 14세 미만 아동 139명을 발견한 것에 대해서도 동료들과 직원들이 합심해 찾은 것들이 많아 다 내 공으로 돌릴 수 없다며 공을 팀에 돌렸다). →안타까웠던 사례는 없었나. -26년이나 지난 뒤 실종신고가 들어온 경우가 있었다. 2009년에 접수됐는데 1983년 당시 4세, 2세였던 형제가 없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친어머니는 이혼 뒤 집을 나간 상태였고, 재혼한 아버지는 2009년에 사망했다. 새어머니가 호적 정리 차원에서 신고한 것으로 안다. 아이들을 잃어버렸다는 양산시 원동면 지역 주변의 아동보호시설을 탐문했는데 소득이 없었다.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기관에 연락했더니 형제가 프랑스로 입양됐다는 기록이 있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재혼을 위해 애들을 (고아원이나 입양기관에) 보낸 것이었다. 이후 아이들은 프랑스로 입양됐다. 대사관에 연락해 애들 소식을 들으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프랑스법상 입양아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엔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나중에라도 아이가 부모를 찾을까 봐 엄마의 DNA를 실종아동 관련 기관에 등록했다. 그때 친어머니가 참 많이도 울더라. 아이들이 아버지와 잘 지내고 있는 줄만 알았다고. 참 나쁜 어미라면서 그리워하더라.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죽을 때까지 못 잊어 가슴 아픈 게 가족이다. →또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부산에 거주하는 한 할아버지가 1993년 3월 17일에 손자를 찾는다고 실종신고를 했다. 이혼한 어머니는 인천에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으로 입원 치료 중이었다. 지방의 한 고아원에서 엄마와 DNA가 일치하는 아이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부산에 사는 조부모에게 연락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데려다 키울 수 없는 입장이라 부모의 존재를 알리지 못했다. 결국 할아버지가 먼발치에서 손자 모르게 가끔씩 보고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평소엔 어떤 엄마, 어떤 경찰인가. -1979년 순경 공채로 들어와 경찰이 됐다. 지금은 24세, 27세 두 아들을 둔 엄마다. 그래서인지 실종아동이나 가출 청소년들을 찾으면 마음이 더 쓰인다. 특히 여자애들을 찾으면 사무실로 불러 꼭 상담을 한다. 왜 가출을 했는지, 집에서 어떤 점이 불만인지 등을 아이와 엄마를 같이 불러서 듣고 풀어준다. 그때 만났던 애들이 “선생님” 하고 달려와 종종 인사를 한다.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 내 자식 같기도 하고…. →실종신고가 들어오면 수사 과정은 어떻게 되나. -112나 지구대, 182센터로 실종신고가 접수되면 여성청소년계로 보고가 들어온다. 그 즉시 상황을 파악해서 실종 전담팀하고 여청계가 합동으로 현장에 나간다. 수색하면서 여건에 따라 기동대도 부르고 납치가 의심되면 수사 부서도 투입된다. 탐문수사, 전단지 배포, 수배, 보호시설 수색 등으로 이뤄진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동 실종 예방법을 소개해 달라. -신고가 빨라야 한다. 부모들이 찾다가 신고가 늦어지는 일이 많은데 신속하게 신고되면 기동대 등을 투입해 주변에서 바로 찾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또 아이들에게 평소 부모와 헤어지게 되면 ▲제자리에 멈춰서 기다리기 ▲이름·연락처를 암기하기 ▲낯선 사람 따라가지 않기 등을 가르쳐야 한다. 공중전화가 가까운 곳에 있으면 112에 신고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좋다. 인적사항이 적힌 이름표 등을 소지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글 사진 양산 백민경·김진아기자 white@seoul.co.kr
  • “내 사진 막 쓰다니!”…마라도나 초상권 사수 나서

    “내 사진 막 쓰다니!”…마라도나 초상권 사수 나서

    왕년의 초특급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초상권 사수에 나섰다. 아르헨티나의 지방 산후안 주에선 최근 마라도나의 포스터가 홍수를 이뤘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등장하는 마라도나의 사진 아래에는 “축구공이나 (주)헌법이나 더럽혀져선 안 된다. 단호하게 NO라고 반대표를 찍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산후안 주에선 주헌법 개정을 놓고 주민 찬반투표가 곧 실시된다. 주지사의 연임제한 철폐가 쟁점이다. 현직 주지사와 그의 동생이 개정을 놓고 거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형은 무제한 주지사를 하겠다며 연임제한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동생은 권력에 눈이 멀었다며 반대하고 있다. 마라도나 포스터는 주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쪽에서 제작해 뿌린 것이다. 형제의 싸움에 엉뚱하게 마라도나가 끼어들게 된 셈이다. 마라도나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일에 초상권이 사용됐다.”며 법정투쟁을 시작했다. 마라도나는 “끝까지 투쟁해 승리할 것”이라고 전의를 불사르고 있지만 뜻대로 책임을 규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포스터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으로선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지사 동생 진영도 “우린 포스터를 만든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다. 마라도나는 누구를 고발할 것인가 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누가 제작했는지, 어떻게 만들었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4일 TV 하이라이트]

    ●행복한 교실(KBS1 오전 11시) 자녀가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는 선생님이 있다. 항상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던 어머니 강백향씨. 어머니 때문에 좋은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삶을 꿈꾸다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해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들 김환훈군. 모자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가시나무새(KBS2 밤 9시 55분) 병원 검사 결과 한별이 아닌 유경에게 문제가 있음이 밝혀지지만, 유경은 자책으로 병원 치료조차 미룬다. 한편, 정은(한혜진)이 영화 촬영으로 바쁜 사이 한별이 아파하자 유경이 간호를 하지만 한별은 엄마만 찾는다. 유경은 한별의 엄마가 자신이 아닌 정은임을 깨닫고 돌아서는 순간 그만 기운 없이 쓰러지고 만다. ●당신 참 예쁘다(MBC 오전 7시 50분) 안나와 치영은 강수(현우성)와 서회장의 관계를 계속 의심하고 뒷조사를 시작한다. 한편, 우주는 폐렴으로 위독해지고, 유랑은 눈물로 기도한다. 강수 역시 유랑과 함께 우주의 건강을 기도하면서 강수는 유랑에 대한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 유랑은 강수를 따라다니는 나영의 존재가 은근히 신경쓰이는데…. ●진짜 한국의 맛(SBS 오후 6시 30분) 진짜 한국의 맛을 찾아 휴전선과 인접한 경기도의 최북단 지역인 연천을 찾았다. 메밀가루로 반죽해 칼로 싹둑싹둑 썰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 ‘칼싹두기’에 들어가는, 연천의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는 고사리, 또 ‘칼싹두기’와 함께 먹으면 찰떡궁합이라는 ‘율무 짠지밥’까지. 과연 그 맛이 어떨지 함께 찾아가 본다. ●60분 부모(EBS 오전 11시) 형제 간의 갈등 어떻게 다룰까. 형제의 경쟁 심리, 엄마 손에 달려 있다. 하늘이 내린 벗인가, 인생의 첫 경쟁자인가.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우리 집 전쟁의 원인은 바로 형제·자매의 경쟁 관계이다. 왜 형제들은 그토록 질투하고 싸우는 것일까. ‘60분 부모’가 형제 출생 순위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계 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쳐 본다.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대한민국 해설계의 살아있는 전설. 수많은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축구의 대중화를 선도한 축구 해설위원 신문선, 그리고 뚝배기처럼 편안한 해설로 전 국민을 열광하게 했던 예측 해설의 1인자 야구 해설위원 하일성이 출연한다. 야구와 축구계 시청률 보증수표 신문선과 하일성이 직접 들려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최초 공개된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가수 임재범, 배우 손지창과 이복형제 또다시 화제

    가수 임재범, 배우 손지창과 이복형제 또다시 화제

    가수 임재범과 배우 손지창이 이복 형제라는 사실이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임재범이 지난 1일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 출연, 카리스마 넘치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입소문을 탔다. 임재범은 이날 20여년 만에 지상파 방송에 나왔다. 그는 가창력과 희소성 있는 목소리로 단연 화제의 출연자였다. 자연스레 그의 젊은 시절과 전성기 때의 모습, 가족사에 관심이 쏠렸다. 알려진대로 임재범은 손지창과는 이복 형제다. 손지창의 아버지는 전 MBC 아나운서 임택근씨로 임재범과는 어머니가 다르다. 이 사실은 손지창이 2009년 SBS의 ‘이재룡·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 어린시절 홀어머니 슬하에서 불우했던 과거를 고백하면서 알려졌다. 임재범은 2001년 2월 뮤지컬 배우인 송남영씨와 결혼식을 올렸으며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송남영씨가 최근 암투병 중인 사실도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결혼식 10일 플루티스트 한지희씨와

    정용진(43) 신세계 부회장이 오는 10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플루티스트 겸 대학강사 한지희(31)씨와 재혼한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결혼식은 가까운 친·인척만 초청해 완전히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라며 “이번 결혼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재혼 상대인 한씨는 대한항공 부사장이었던 고 한상범씨의 딸이다. 정 부회장은 외삼촌인 이건희 삼성 회장을 비롯해 사촌 형제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 친·인척을 모두 초청했다. 이건희 회장은 개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 부회장은 2003년 탤런트 고현정씨와 이혼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전주영화제 ‘오프 스크린’ 현장

    전주영화제 ‘오프 스크린’ 현장

    지난달 29일 밤 10시. 전북 전주시 고사동 전주CGV에 낯선 모습이 연출됐다. 중년의 한 사내가 통기타를 들더니 고(故) 김광석의 ‘일어나’와 ‘먼지가 되어’를 불렀다. 음 이탈이 있었지만 관객도, 본인도 개의치 않았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진보 논객인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였다. 우 교수가 한밤중 ‘되지도 않는’ 노래를 부른 까닭은 관객과의 소통에 고심하던 전주영화제 측이 새로 만든 ‘오프스크린’ 섹션에 초대됐기 때문이다. 연관된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영화의 시사점을 관객과 토론해 보자는 의도에서 신설된 코너다. 우 교수가 ‘꽂힌’ 영화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영화제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찰스 퍼거슨 감독의 ‘인사이드잡’. 왠지 믿음직스러운 맷 데이먼이 해설을 맡았다. 영화는 2008년 9월 15일 미국 리먼 브러더스 파산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실체를 좇는다. 20세기 초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내몬 ‘악당’을 찾기 위해 인터뷰를 활용했다.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은 인터뷰를 거부했다. 전직 고위관리나 일부 유명 경제학자들은 인터뷰 중 역정을 내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만 되풀이한다. 우리네 인사청문회의 데자뷔 같다. 퍼거슨 감독은 ‘시한폭탄’ 같은 파생상품을 설계해 뱃속을 채운 월가와 투자은행의 규제를 푸는 데 앞장 선 월가 출신 재무부 관료, 파생상품과 투자은행에 최고 신용등급을 매긴 신용평가사, 월가에서 컨설팅을 수임한 경제학자의 커넥션이 위기의 본질이며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말한다. 우 교수는 “영화를 진짜 재밌게 봤는데 100만명 이상 영화를 본다면 우리 사회가 덜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영화를 알리려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안 되면 물구나무라도 설 것”이라며 입담을 뽐냈다. 이어 “보수학자들은 한국은 파생상품이 발달하지 않아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하지만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을 고려하면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이후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할리우드의 메이저사인 소니 작품이라는 게 부럽다.”면서 “‘블러드 다이아몬드’ ‘아바타’ 같은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들을 충무로의 대형제작사들이 만들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도 말했다. 관객의 열기는 뜨거웠다. 금융민주화, 경제학의 위기부터 “미국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에 이를 수 있느냐.”까지 다양한 질문이 밤 늦도록 이어졌다. ‘오프스크린’이 영화제 흥행상품이 될 가능성을 내비친 셈. 전주에서의 12번째 영화의 봄은 그렇게 깊어 갔다. 전주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지구촌 반응

    오사마 빈라덴의 사망 소식에 서방과 중동 진영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스라엘은 서방진영 가운데 가장 먼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명의로 성명을 내고 “빈라덴의 사망에 대한 미국 국민의 기쁨에 동참한다.”면서 “정의와 자유,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의 공통의 가치를 위해 싸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를 함께 축하한다.”고 환영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빈라덴의 죽음은 전 세계에 크나큰 안도감을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기자들에게 “빈라덴의 죽음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길라드 총리는 “알카에다가 오늘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면서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치담바람 인도 내무부 장관은 빈라덴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인근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파키스탄이 테러리스트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무슬림 조직인 나흐타둘 우라마의 아길 시라지 대표는 “빈라덴의 죽음이 이슬람 전체를 폭력집단으로 보는 시각을 순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방세계와 달리 중동지역에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대다수 아랍인은 빈라덴의 사망을 ‘순교’로 받아들였다. 각종 아랍 언론과 관련 사이트에는 빈라덴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추모글과 사진이 속속 올랐다. 아랍권 위성 보도채널 알자지라의 아랍어 사이트 메인화면은 빈라덴의 사망을 알리는 기사로 도배됐다. 첫 보도 이후 몇 시간도 안 돼 이 기사를 60여명이 트위트해 갔고 230여명이 페이스북으로 퍼갔다. 또 500여명이 댓글을 달았다. 아무리 큰 이슈라도 평소 댓글과 트위트 규모가 10건 안팎에 머물던 것과 비교하면 빈라덴의 사망이 아랍 세계에 가져온 충격과 관심을 가늠케 한다. 댓글을 올린 20명 가운데 1명꼴로 빈라덴의 사망을 “잘된 일”로 받아들였다. ‘무함마드’라는 ID를 가진 네티즌은 “빈라덴 때문에 이라크에서 살해당한 수천명의 사람들이 보답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ID ‘아미리’는 “지구상의 악인 가운데 한 명이 죽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대다수 아랍인 네티즌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아바디’라는 이름의 요르단 네티즌은 “우리 형제가 무자헤딘으로 증명했다. 하나님께서 순교자와 함께 그것을 수용하실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단의 ‘빈라덴’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빈라덴은 살아 있다.”라는 댓글을 반복해서 남기며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아이만’이라는 아랍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신이여, 이슬람교의 승리를 위해 떠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댓글을 남겼다. 박찬구·김진아기자 ckpark@seoul.co.kr
  • 새 장편 ‘꺼져라 비둘기’ 낸 작가 김도언

    새 장편 ‘꺼져라 비둘기’ 낸 작가 김도언

    소년은 늘상 불안과 고독, 욕망과 공포를 붙들고 소설을 썼다. 그의 집착 대상은 찰나의 감정이면서도 인간의 삶에서 결코 털어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소년은 질투, 폭력, 파괴, 치정, 섹스, 살인 등 자극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앞세워 읽는 이를 불편하게 했다. 소년은 형식이건, 내용이건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것을 통해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미학을 쌓아 올리고자 했다. 1998년 등단한 이후 세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내놓는 동안 늘 그렇게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러다가 소년은 문득 파괴와 불안으로 순정하게 뭉쳐진 옷을 벗고, 고전적인 소설 문법, 그리고 거기에서 구사하는 전통적인 문체, 문장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고래(古來)의 것을 갖고 또 다른 파괴와 뒤틀림을 실험해보리라 마음먹는다. 소년은 나이를 먹어가며 ‘더욱 순정한 소년’이 되어간다. ●‘순정한 소년’ 티 벗고 도발적 문제 제기 ‘순정한 소년’ 김도언(39)이 새롭게 내놓은 장편소설 ‘꺼져라 비둘기’(문학과지성 펴냄)는 그렇게 쓰여졌다. 소설은 ‘선악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사적 견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부제를 달고 있다. 그런데 소설이 묘하다. 마치 희곡인듯 ‘주요 등장인물 소개’로 소설은 시작한다. 또한 소설의 중간과 마지막에 ‘소설 밖에서 모인 사람들’이라는 부분을 집어넣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소설가 자신과 함께 한 자리에서 대담을 나누며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각자의 모습과 소설 작품 자체에 대해 발화할 수 있게 한다. 소설의 서사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촉망받던 씨름 선수 ‘이산’과 젊은 시인 ‘영만’, 영만과 순결한 사랑을 나누는 젊고 예쁜 유실래, 그리고 한의사 고붕, 이산의 어머니와 아버지 등은 토담리라는 마을에 사는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다. 반면 타이어 공장이 들어선 뒤 토담리로 들어온 이산의 새어머니, 세탁소 박씨, 오토바이 상회 계씨 형제, 목욕탕 주씨 등은 탐욕스럽고 무례한 악인들이다. 식탐을 부리며 매일 사람들 머리 위에 똥만 갈겨대는 비둘기처럼, 악인들은 착한 사람들을 쉴 새 없이 괴롭힌다. ●어설픔과 낯선 느낌의 권선징악 전반부와 후반부의 화자는 이산과 영만으로 크게 나뉜다. 이산과 영만 등 늘 당하고만 살던 힘없고 착한 사람들은 의지를 꺾지 않고 힘을 하나로 모아 결국 악인들을 마을에서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기승전결이 딱딱 들어맞고, 권선징악이 분명하다. 김도언은 이를 계속 반복해서 강조한다. 의도적인 어설픔이 느껴진다. 김도언의 의도가 비로소 짐작된다. 읽는 이들이 선악의 기본적 대립에 대해 낯설게 느끼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등장인물 소개’나 ‘소설 밖에서 모인 사람들’과 같은 비소설적 장치를 내세움으로써 일종의 메타소설적 기능을 하게 함은 물론, 선과 악, 또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전형화-마치 고전소설의 권선징악적 구성처럼-시킨 것에 대한 또다른 전복을 꾀하는 역설인 것이다. ●근대적 가치에 대한 관대함·조롱 일반적으로 ‘평화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비둘기가 실제로는 탐욕과 게으름, 지저분함을 품고 있는 인간의 기생자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김도언은 마지막까지 이를 감추며 의뭉을 떤다. 그는 ‘작가의 말’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쉽고 친절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이 시대가 선과 악, 도덕과 부도덕, 정의와 불의, 왼쪽과 오른쪽이 마구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게 이 소설 구상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소설 텍스트 자체뿐 아니라 등장인물 소개, 등장인물의 소설 밖 발언, 심지어 ‘작가의 말’까지 모두 소설의 한 부분임이 점점 명확해진다. 소설은 이처럼 불필요할 정도로 관대하고, 친절함이 이어진다. 너무도 ‘반(反) 김도언스러운’ 단순명쾌함이기에 오히려 무람없이 선악을 구분지으려는 근대적 가치에 대한 김도언의 조롱으로 읽혀진다. 다음 작품에서 그의 의도는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더 분명한 사실 하나. 문학을 마주하며 사는 김도언의 실험과 파격, 해체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새달부터 국내외 투어 나서는 해금 연주가 강은일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새달부터 국내외 투어 나서는 해금 연주가 강은일 교수

    수필가 고(故) 피천득 선생은 5월에 대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모란의 달이다.’라고 노래했다. 여기에다 아카시아가 짙어지는 계절을 덧붙여 본다. 휘영청한 달밤의 그 향기는 목소리가 곱다던 꾀고리마저 기절시킨다. 천지 사방이 농염하게 유혹하는 계절이다. 그렇다면 5월의 소리를 어떻게 들어볼거나. 딱히 생각이 안 나거들랑 해금을 떠올려 보자. 왼손의 마디에서 심장을 타고 흘러 오른손 마디로 전해진다. 하여 가슴을 후벼 판다. 그래서 ‘어찌 해(奚)의 금(琴)’이다. 최근 들어 새롭게 창작된 퓨전음악과 대중음악 중에서 국악기를 사용하는 곡이 늘어나 해금의 소리가 자주 등장한다. ‘동이’와 ‘추노’ 같은 인기 드라마나 영화, 광고에서도 그렇다.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자유로운 음악적 조율도 있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음색이 단연 압권이다. 애절함이 있는가 하면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처럼 시원함도 갖추고 있다. 한의 눈물도 담겨 있다. 바야흐로 21세기는 해금의 시대다. 고려 시대인 1116년에 해금이 처음 등장한 이래 현대에 이르러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 여인이 있다. 손마디가 갸냘프다. 하지만 활대질(Bowing)은 천년의 한을 토해 낸다. 열정의 소리가 가슴 가득한 아카시아 향기로 울려 퍼진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쥐락펴락한다. ●감정을 자극하는 음색이 압권 국악계에서 가장 개성 넘치는 해금 연주가로 손꼽히는 강은일(44)씨. 요즘 뜨고 있는 신세대 해금 연주가 꽃별의 스승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교수이자 해금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그가 푸른 5월을 시작으로 해금을 들고 국내외 투어 공연에 나선다. 5월 20일 경북 울진 공연을 시작으로 26일 경기 고양, 6월 24일 경북 문경, 26일 서울, 8월 27일 경북 울주로 국내 공연이 이어진다. 또 9월 미국, 10월 터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의 해외 공연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6월에는 4집 앨범 ‘해금 랩소디’까지 나온다. 강씨는 자신이 이끄는 소리 그룹 ‘해금플러스’를 비롯해 미국의 가수 바비 맥퍼린, 일본의 전통 악기 샤미센 연주자인 요시다 형제, 일본 NHK체임버오케스트라, KBS국악관현악단 등 국내외 유명 연주자 및 오케스트라, 국악관현악단 등과 많은 협연을 해 오고 있다. 또한 영화감독 김기덕, 일본의 피아노 연주자 유키 구라모토 등과의 작업을 통해 해금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가느다란 두줄의 활대 움직임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아지경의 소리를 추구하면서 말이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포이동 연습실에서 강씨를 만났다. 우선 5월 공연의 의미를 물었다. “싱그러운 5월입니다.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주제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솔리스트인 저를 비롯해 ‘해금플러스’ 단원들과 함께 국악과 서양 악기가 합쳐진 동·서양의 크로스오버 음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악기들은 해금 외에 가야금, 장고, 꽹과리, 건반, 드럼, 기타 등이다. ‘해금플러스’는 창단 12년째다. ●장르를 넘나드는 국악기로 인정 받아 “요즘 들어 해금이 많이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공연할 때마다 찾아 주시는 관객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TV드라마에서도 그렇고 그림이나 사진 등에서도 해금이 자주 등장합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국악기로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금 연주가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있지요.” 1986년 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한양대에서 해금을 전공했으니 올해로 해금 인생 25년째를 맞는 셈이다. 대학에서는 4년 동안 장학생으로 다녔고 졸업 후 KBS국악관현악단을 거쳐 프로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등의 굵직한 행사에서 기념 공연을 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해금이란 무엇일까. “처음에는 갸냘픈 두줄의 해금이었다가 지금은 ‘해금플러스, 그리고 무엇’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위대한 악기로 존재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소중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해금은 천변만화(千變萬化), 즉 천번을 변하고 만번을 이룬다고 합니다.” 1990년 ‘타악기의 천재’로 불리던 음악인 김대환(2004년 작고)씨와 함께 한 일본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10여 차례 해외 공연을 가져 일본과 유럽에서는 그의 팬클럽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중동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 차례 이상씩 공연을 해 왔다. 강씨는 김씨를 추억하면서 “나의 멘토였다. 흑우(黑雨)라는 음반도 같이 냈다.”고 말했다. 해외 공연 때의 에피소드도 많을 터. 한두 가지만 얘기해 달라고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일본에서 바로크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텔레만 앙상블과 협연할 때였지요. 공연 시작 한 시간을 앞두고 연습하다가 줄 부분이 깨져 무척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부랴부랴 수소문해서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 관계자가 운영하는 상점에서 해금을 급히 구해 무대에 올랐지요. 그 사정을 관객들에게 미리 얘기해 주었고, 공연이 끝나자 한 관객이 다가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이 너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더군요. 사할린 공연 때는 관객들에게 ‘어떤 좋은 자동차라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해금의 소리는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프랑스 리옹오페라극장과 벨기에 유럽의회에서의 공연, 미국 디즈니홀 공연과 일본 도쿄돔에서 인기 배우 배용준과 함께한 공연 등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정악과 산조, 창작 음악으로 대별되는 전통 기악에서 그동안 해금의 위상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5년 들어 해금의 가능성은 확 달라졌습니다. 무용, 문학, 영화, 클래식, 재즈, 세계 민속음악 등과 접목해 세계화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 있지요.” ●창작곡 위주로 관객과 소통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공연 때마다 주제를 정한다. 예를 들어 ‘오래된 미래’ ‘불광불급’(不狂不及) ‘미래의 기억’ ‘활의 노래’ ‘나비가 되어’ ‘고요한 아름다움 愛’ ‘멘토’ 등이다. 그때그때의 관객층과 계절, 공연 장소에 맞는 음악적 특색으로 차별화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창작곡 위주의 공연이다. 우리의 전통 음계인 ‘황 태 중 임 남’을 통해 애간장을 녹이는 온갖 오묘한 소리로 신들린 듯 연주하면서 관객들과 무아지경에서 만난다. 원래 그는 연극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가야금을 배우고 싶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 성적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되는 가야금 과목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이 부르더니 “그러면 해금이나 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해금을 배우려는 학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야금보다 더 선호하는 인기 종목이 됐다고 말한다. 18~19세기에 거문고, 20세기에 가야금이었다면 21세기에는 ‘해금이 대세’라며 웃는다. 이는 강씨와 같은 해금 연주가들이 전국을 돌며 대중들과 부지런히 만나 온 결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그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해금 소리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한다.”며 보람을 찾는다. 2000~2003년에는 모색 단계였다면 2003년부터 크로스오버 등을 통해 본격적인 대중화와 세계화에 나섰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강사준 선생님을, 대학 때에는 김천흥과 심인택, 이기설 선생님 등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지금 박사 과정에서는 김영재와 이기설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그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의 파가니니가 되는 것입니다. 연주도 하고 작곡도 하면서 해금의 예술적 지평을 꾸준히 넓혀야 한다는 그런 소명으로 말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강은일 교수는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6년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나와 1990년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1990~1998년 KBS국악관현악단 단원, 경기도립국악단 해금 수석을 역임했다. 2006~2010년 숙명여대, 경희대 겸임교수로 있었으며 지난해 9월부터 서울예술대학 교수로 있다. 1998년 동아국악콩쿠르 일반부 대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에 국회 대중문화&미디어대상과 KBS국악대상 등을 받았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6년), 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2005년), 기독교 문화예술원 ‘기독교문화대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주요 앨범으로는 ‘오래된 기억’ ‘미래의 기억’ ‘선물’ 등이 있으며 그동안 미국, 유럽,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180여회 순회 및 초청 공연을 가졌다. 올해 들어서는 문화체육관광부 초청 공연으로 신년음악회를 열었고 지난달에는 대만국립극장에서 초청 공연을 했다. 다음 달 20일 울진 공연을 시작으로 전국 투어를 하며 미국, 멕시코, 온두라스, 터키, 에스토니아 등에서도 공연할 예정이다. 아쟁과 사물놀이 연주 실력도 수준급이다.
  • 어린이날 문화공연 가이드…주머니 가볍게, 동심은 꽉 차게

    어린이날 문화공연 가이드…주머니 가볍게, 동심은 꽉 차게

    살아 움직이는 그림? 요즘 대세라는 발레? 검증된 전통 애니메이션? 빨간 날이 몰려 있는 5월. 빈약한 아이디어와 호주머니 사정에 시달리는 가장에게는 부담스러운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큰돈 들이지 않고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즐길 수 있는 공연 한편 보는 건 어떨까. 가족 나들이에 걸맞은 문화 행사를 추려 봤다. ●“동심 유혹엔 애니메이션이 최고!” 애니메이션 개봉일은 어린이날인 5일에 맞춰졌다. ‘토마스와 친구들-극장판 3’은 씩씩하고 용감한 꼬마 기관차 토마스가 제일 열심히 일한 기차로 뽑혀 육지로 ‘포상 휴가’를 떠났다가 겪는 모험을 그렸다. 배우 지진희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썬더 일레븐 극장판: 최강 군단 오우거의 습격’은 지난해 일본에서 약 230억원의 수익을 올린 화제작이다. 축구를 사랑하는 주장 강수호의 열정 덕에 만년 꼴찌였던 천둥중 축구부가 ‘축구 프런티어’ 결승에 올라 수수께끼의 오우거 축구부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인기 캐릭터 ‘짱구’도 빠질 수 없다. 2009년 극장판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된 ‘태풍을 부르는 노래하는 엉덩이 폭탄’은 14만명을 불러모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짱구는 못 말려: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는 대목이다. 위기에 빠진 미래의 자신과 약혼녀를 구하기 위해 짱구가 시간 여행을 떠난다. ●“클래식, 어려운 것만은 아니란다” ‘김지호와 함께하는 2011 예술의전당 어린이음악회’가 5월 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초등학생 딸을 둔 탤런트 김지호의 해설로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와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등이 연주될 예정이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여자경)가 연주를 맡고 김규희, 손은정(피아노)이 협연한다. 1만~3만원. 국립무용단은 4~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프린세스 콩쥐’를 올린다. 국립무용단이 어린이용 작품을 내놓는 것은 처음이다. 콩쥐팥쥐 이야기를 기본으로 삼되 한국적 얘기를 고집하기보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섞어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했다. 5000~7만원. 국립발레단은 8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코펠리아’를 공연한다. 19세기 낭만 발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려한 작품으로, 어린이들은 물론 발레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상세한 해설을 곁들였다. 전막 발레이며 공연 시작은 4월 30일이다. 1만~4만원. ●“무대에서 신나게 흔들어 봐요” 4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엔 가족 뮤지컬 ‘알라딘’이 오른다. 아역 배우 서신애와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김동준이 주역이다. 3만~5만원.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를 원작으로 삼은 ‘브레멘 음악대’도 빠질 수 없다. 지난 5년간 유료 객석 점유율 75%에 동원 관객 35만명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5월 29일까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3만~5만원. 5월 5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충정로 문화일보홀에선 음악극 ‘모차르트 원정대’가 오른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베르트, 살리에르라는 이름을 지닌 주인공이 힘을 합쳐 음악회를 연다는 내용으로 그 과정 속에서 관객에게 타악기 연주를 들려준다. 관람료는 전석 2만원이며 3인 가족 패키지는 3만원이다. 서울 역삼동 LIG아트홀은 어린이날 전후인 4~8일 해외 작품 두편을 올린다. 요술 카펫을 타고 호주의 대자연을 누비는 ‘솔트부쉬’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는 ‘앨빈 스푸트니크의 모험-심해탐험가’다. 2만~3만원. 한국국악교육원이 5일 서울 홍은동 서대문문화회관에 올리는 국악동화극 ‘혹부리 영감과 노래주머니’도 있다. 1만 2000원. ●“헉, 그림이 살아 움직여요” 6월 26일까지 서울 구로동 테크노마트 신도림점에서 열리는 ‘2011 트릭아트 서울 특별전’은 착시 효과를 이용해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명작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눈속임 회화에 관심이 큰 일본 회사의 원작을 그대로 들여왔다. 1만 2000원. 수원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은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앤서니 브라운 원화전’을 연다. 앤서니 브라운은 ‘미술관에 간 윌리’ ‘마술피리’ 등을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그림책 작가다. 한국의 엄마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그의 작품 250여점을 원화로 만날 수 있다. 1만 2000원. 체험 행사도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경기 양주 장흥아트파크에서는 7월 10일까지 어린이 체험전 ‘쑥쑥’이 열린다. 5000~7000원. 조태성·임일영·김정은기자 cho1904@seoul.co.kr
  • 금호아시아나 관련 차명계좌 10여개 추적

    금호석유화학의 비자금 조성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 차맹기)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계좌를 적발,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27일 “비자금 조성 의혹을 확인하고자 금호석화 본사와 계열사, 협력업체 등의 계좌를 조사하고 있다. 의심스러운 계좌를 들여다 보고 있고 차명계좌도 확인 중이다.”고 밝혔다. 검찰은 금호석화 수사과정에서 금호아시아나 자금 흐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호석화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2009년 박삼구, 박찬구 회장이 경영권 다툼을 벌이기 전 금호석화 협력업체가 개설한 차명계좌 10여개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측 자금이 오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상한’ 돈의 액수는 계좌당 5억~6억원씩 60억~1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누구 돈일 것이라고 예단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 아니다. 처음 그린 큰 그림에서 이제 절반 정도 수사가 진행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검찰 수사가 금호석화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지난 13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검찰의 압수수색과 관련해 “죄지은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다. 누구인지는 알아서 판단하라.”라며 비자금 조성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관련됐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금호석화 관계자도 “비자금 부분은 처음부터 자신 있었다. 검찰에서 조사받고 온 사람들 말을 들어봐도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금호석화를 뒤지다가 안 나오니까 수사 방향이 틀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금호석화와 같은 날 압수수색 받은 협력업체 G사 관계자도 “압수수색 이후 임직원들이 참고인 조사를 받았지만 나올 게 없으니 더 조사도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그룹측은 “지금까지 검찰에서 조사받은 바가 없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금호석화 쪽에서 그렇게 주장한 건지, 정말 검찰 조사에서 그런 내용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금호그룹은 2009년 6월 박삼구·박찬구 회장의 형제 간 경영권 다툼으로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쪼개졌다. 두 회장은 형제의 난 당시 동반퇴진했다. 이후 박찬구 회장은 지난해 3월 금호석화 대표이사로, 박삼구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한편, 검찰은 지난주 금호석화 지분 78.2%를 보유한 계열사 금호피앤비화학의 온용현 대표를 포함 협력업체 임직원을 소환, 거래 과정에서의 비용 부풀리기 의혹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양진·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NPB] ‘형제 대결’ 태균 2안타…승엽 2루타

     형과 아우는 1루에서 잠시 엇갈렸다. 짧은 순간 무언의 걱정과 격려가 오갔다. 팀은 다르지만 한국인 선수들의 우애는 애틋했다. 7회 말이었다. 2사1루에 타석에 들어선 김태균. 볼카운트 2스트라이크 1볼에서 몸쪽 역회전공이 들어왔다. 전이 지나치게 걸리면서 오른쪽 팔꿈치를 때렸다. 피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미묘한 부위, 가장 아픈 곳에맞았다. 김태균은표정을찡그리며투수 가모시다다카시를 쳐다본 뒤 1루로 향했다. 지바롯데 니시무라 감독과 트레이너가 모두 뛰어나왔다. 부상 부위를 살피는 사이 오릭스 이승엽이 다가왔다. 김태균 엉덩이를 한번 툭 쳤다. “괜찮냐.힘내라.”는 얘기다. 김태균은 슬쩍 웃었다. “고맙다.”는의미다. 한국산 거포들은 함께 일본 무대에서 싸우고 있었다.  26일 지바QVC마린필드에서 열린 오릭스-지바롯데전. 오릭스 이승엽과 지바 롯데 김태균은 둘 다 나쁘지않았다. 나란히 2루타를 기록하면서 타격감을 조율했다. 특히 아우 김태균의 페이스가좋았다.  김태균은 7번 타자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4회 선제 결승타 포함해 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사구도 하나 얻었다. 올 시즌 3번째 멀티히트 경기다. 2회 말 첫 타석부터 좋았다. 상대 선발 기사누키히로시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좌전안타를 때려냈다. 살짝 빗맞았지만 코스가좋았다. 4회말1사 1루에선 기사누키의 3구째 슬라이더를잡아당겼다. 한번 크게 튄 타구는오릭스3루수 아롬 발디리스의 키를 넘어갔다. 1타점 2루타. 시즌5타점째였다.  이승엽도 훨씬 나아진 타격감을 보였다. 3타수 1안타에 그쳤지만 타석에서 선구안이 훨씬 좋아진 모습이었다. 떨어지는 변화구를 커트해내는 모습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여유가 생겼고 바뀐 타격자세에도 많이 적응한 걸로 보인다. 4회 초 2사1루 두번째 타석에서 상대 선발 나루세 요시히사의 바깥쪽 직구를 정확히 끌어당겼다. 오른쪽 펜스를 직격하는 대형 2루타. 다만 발이 느린 1루주자 T-오카다가 홈에서 아웃돼 타점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경기는 지바 롯데가 6-0으로 이겼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나와 통일] (9) 현정화 前 탁구국가 대표팀 감독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 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 선수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의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 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봤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와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 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하고 싶은 얘기는.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 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 거라고 했다. 둘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의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은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했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쥔을 이길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한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는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 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 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 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면 등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 되지 않나.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 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 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 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 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 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밖에 못 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현정화 “1991년 세계탁구 金 따고 작은 통일 느껴”

    1991년 4월 29일 남북한 7000만명의 시선이 지름 40㎜짜리 흰색 공 하나에 집중됐다. 일본 치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 ‘코리아’로 출전한 리분희·유순복(이상 북한), 현정화팀의 여성단체전 결승전. 3시간40분에 걸친 숨막히는 접전 끝에 우승 금메달을 따낸 이 시합은 아직도 탁구사(史)의 명승부로 꼽힌다. 20년이 지난 2011년 그날의 감동과 선수들의 우정을 영화로 제작한다. 영화 ‘코리아’의 시나리오 작업부터 출연배우들의 연기지도까지 애정을 아끼지 않고 있는 현정화 당시 국가대표를 만났다. 그는 금메달을 땄을 때 “아,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영화배우 하지원이 본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 -하지원씨는 내가 추천했다. 시크릿 가든이 막 끝날 때쯤이었는데, 하지원씨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었고, 주변에서도 “너랑 닮은 것 같다.”고 했다.(웃음) 리분희 역할은 배두나씨다.   이번 영화에서 새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영화에는 연애 에피소드가 추가됐다. 북한 남자선수와 남한 여자선수가 애정전선이 형성되지만, 대회가 끝나면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없었다.   벌써 20년전 일인데 영화로 만든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당시 영상을 다시 보게 됐다. 경기하던 장면, 리분희 선수와 만났을 때, 헤어지던 모습 등을 다시 보니까 가슴이 울컥했다. 불현듯 리분희 선수도 보고싶고.   리분희 선수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가? -1993년 국제대회에서 보고 못봤다. 최근에 듣기로는 2010 광저우 장애인 아시안게임에 왔다고 한다.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활동을 할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가 뇌성마비여서 이쪽으로 더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리분희 선수를 만나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 -세월이 20년이나 흘렀고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각자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낳았고, 지도자를 했다. 다시 만나면 수많은 얘기를 쏟아놓을 것 같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있는지 물어보고 도와주고 싶다.   리분희 선수와 원래 친했나? -1986년 국제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워낙 라이벌이었지만 내가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다. 만날 때 카세트 테이프나 한국 드라마 테이프를 건네주곤 했다. 한국이 어떻게 사는지, 가요,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다. 돈은 얼마나 버는지도 궁금해 했다. 당시에도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코리아’는 남북 단일팀의 합숙기간 30일, 시합 16일 등 총 46일간의 기록이다. 남북한 선수들은 46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때로는 동료로 때로는 형제, 자매처럼 살가운 시간들을 보냈다. 긴 시간 함께 지내면서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다. -사실 여자 선수들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없었다. 각자 방에 찾아가서 놀고 수다를 많이 떨었다. 이십대 초반의 여자들이다보니 남자 친구가 공통의 화제가 됐다.(웃음) 리분희 선수는 동료선수인 김성희와 사귀고 있는데 결혼할 거라고 했고, 나는 김성만 선수와 결혼할거라고 했다. 둘 만 아는 비밀이었다. 마지막 날에 엄마가 챙겨주신 반지를 줬다. 내 이름이랑 리분희 선수 이름이 쓰여진 한 돈 짜리 금반지다. 영화에서는 내가 끼고 있던 반지를 주는 것으로 나온다.   일본에서 합숙생활은 어땠나? -일본이 매우 미묘한 곳이다. 우리 덕분에 처음으로 민단과 조총련이 만났다고 한다. 우리가 일본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합숙을 했는데 지역마다 민단과 조총련이 환영회, 환송회를 열어주었다. 헤어질 때는 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학생들이 한반도기 모양의 수를 놓아서 가져오거나 한반도 모양의 떡을 만들어 가져오면 잘라서 먹고 웃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1991년 2월 12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분단 후 46년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탁구 단일팀이 어떻게 구성됐나? -어떻게 구성하게 됐는지 그 배경은 모른다. 통일부에서 주선해서 급하게 진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스포츠 교류를 통해 물꼬를 트려고 했던 것 같다.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중국과의 결승전 게임스코어 2대2였다. 마지막 게임에서 유순복 선수가 가오준 선수를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경기 전에 유순복 선수한테 가오준을 이길 자신이 있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아, 이젠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유순복 선수가 1세트를 19점으로 이기고 2세트에서도 21대 19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얼마나 가슴이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이겼을 때 기분은 어땠나? -이번에 영상을 보니 탁구 테이블 하나에 쏠린 관중석의 눈들이 보이더라. 한꺼번에 환호하고, 이긴 순간 기자들이 확 뛰쳐 나오는 것도 보였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 땐 너무 많이 울어서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경기하면서 한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 때는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울었나? -내가 경기를 끝냈으면 그렇게 안 운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게 있었던 것 같다. 남북한 7000만 동포가 지켜보고 있었고, 기자들이나 단장님, 남북 관계자들이 그런 사실을 많이 주입시켰었다. 특이한 상황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해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시상식 때 아리랑이 나왔는데 기분이 어땠나? -아리랑이 사실은 가락이 매우 슬픈 노래다. 희비가 교차했다. 기쁘다기 보다는 슬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끝나면 우리는 헤어질 것이고 단일팀은 연속적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약간 미묘한 감정이 있었다. (당시 남북 합의 하에 국기는 흰 바탕에 파란색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 국가는 ‘아리랑’을 연주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하나된 남북이 세계 정상에 섰다.’고 대서 특필을 했다. -그 시합을 계기로 남북한 스포츠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질 거라고 기대했다. 정말로 “아, 통일이 되는구나.” 했다. 그러나 남북 청소년 축구 단일팀이 단 한번 이뤄진 후 그 다음 부터는 교류가 없었다. 나중에서야 정치적으로 반짝했던 이벤트였구나 생각했다. 나중에 리분희 선수를 다시 남북간 선수로 만났다. 나는 태극기, 그쪽은 인공기를 달았다. 나는 남북 단일팀 했던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시에 우리가 하나라는것을 느꼈었다. 그런데 다시 적으로 맞붙게 되니까 기분이 미묘했다. 나는 남북 분단을 몸으로 느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고통을 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인 이벤트를 할 바에야 차라리 단일팀 같은 거 하지 말고 각자 국가를 인정하고 사는 게 낫다고 마음이 굳혀졌다.   아이들한테도 그런얘기 하나? -우리 딸이 11살인데 이런 얘기는 잘 모른다. 이번에 영화가 나오면 통일에 대한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를 내심 기대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잊고 사는 세대 아닌가. 나는 통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세대지만 아이들 세대는 나름의 인생계획이 있고, 그 삶을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아 하는 세대다. 누구를 도와주고 끌고가겠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그런 생각을 가르쳐주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그건 영화사도 마찬가지다.   영화 제작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1년전쯤 감독님한테 영화 얘기를 들었다.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감사했다. 전쟁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적인 아픔을 주는 것이고 문화적인 소재는 간접적이지만 더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영화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고, 남북한 선수로 나오는 20명에게 매일 3시간씩 탁구를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도 탁구 장면을 찍을 때 디테일한 기술적인 것 모든 것들을 가르쳐 줄 예정이다. 하지원씨가 운동신경이 좋아서 자세도 좋고 잘 따라온다. 당시 촌스러웠던 내 커트머리를 그대로 했다.(웃음)   통일이 되기를 바라나? -나는 사실 반반이다. 원하는 것도 있고 그냥 ‘안했음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장기적으로는 준비를 해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나빠져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도와줘야 한다. 정말로 손을 떼어버리는 상태까지 가면 안되지 않나.   스포츠인으로서 통일에 기여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스포츠만큼 (남북간)물꼬를 트기에 좋은 게 없다. 정치적 배경없이 순수하게 교류하고, 남북을 오가면서 시합을 하다보면 종목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지 않겠나. 스포츠도 이제는 마케팅이다. 관심있는 기업도 생기고, 북한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생긴다. 북한 친구들은 실력은 있는데 돈이 없어 대회에 못나온다. 차비가 없어 스무시간 넘게 차를 타고 중국 대회 밖에 못나가고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조건 돕겠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나란히 장편소설 낸 쌍둥이 작가 장은진·김희진의 ‘유쾌한 수다’

    국내 문단에 작가 부부는 꽤 된다. 얼핏 떠올려 봐도 구중서(평론)-김윤희(시), 조정래(소설)-김초혜(시)부터 시작해 남진우(시)-신경숙(소설), 홍용희(평론)-한강(소설) 등을 거쳐 김도언(소설)-김숨(소설) 등에 이르기까지 금세 여러 쌍들이 꼽아진다. 그렇다면 형제 작가는? 김원일(소설)-김원우(소설), 황현산(평론)-황정산(시), 박용재(시)-박용하(시) 등 흔하지는 않지만 드문 것 또한 아니다. 여기 쌍둥이 자매 소설가가 있다. 희귀한 예다. 스스로 “우리는 싱크로율(일치율) 95%예요.”라고 깔깔거리는 서른다섯 살의 장은진, 김희진이다. 30분 먼저 세상에 나와 언니가 된 장은진이 200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먼저 등단하면서 혹여 헷갈리지 말라고 성을 ‘김’에서 ‘장’으로 바꿨다. 문장(文章)의 ‘장’이거나 장편소설의 ‘장’(長)이라는 뜻이란다. “장이라는 성도 어울리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천연덕스레 거드는 동생 김희진은 200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이들은 지난해 같은 인터넷 웹진(인터파크)에서 나란히 연재했던 작품을 나란히 같은 출판사(자음과모음)를 통해 내놓았다. 언니의 작품은 ‘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동생의 작품은 ‘옷의 시간들’이다. 지난 20일 책이 나온 직후 쌍둥이 소설가들과 만나 나눈 유쾌한 대화를 옮겨 본다. 장은진(이하 은진) 광주 집 한방에서 같이 살고, 같이 소설 써요. 속옷하고 신발 빼고는 다 함께 쓰죠. 소설 구상과 창작 과정조차도 나누죠. 김희진(이하 희진) 그래도 소설 쓰는 장소는 달라요. 얘-두 사람의 호칭은 ‘야’, ‘너’다. 자매라기보다 친구에 가깝다-가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엄청 크거든요. 난 안 써져서 괴로운데 그 소리까지 들으면 더 기분 나빠져요. 그래서 얘는 방에서 쓰고, 저는 거실에서 써요. 은진 제가 좀 세게 치는 편이긴 해요. 헤헤. 희진 얘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좀 엉뚱해요. 학교(목포대 국문과)에서 단편소설 써 오라는 과제가 있어서 끙끙거리는데, 얘가 쳐다보더니 ‘꼴 같지 않은 짓을 하고 있네.’ 하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래서 “너도 써봐.”라고 권했죠. 은진 전공(전남대 지리학과)은 달랐지만 바로 그날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희진 여차저차 설명한 뒤 그 소설을 대학 교수님(유금호)께 보여 드렸더니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보니까 제가 쓴 것보다 낫더라고요. 위기감을 느꼈지요. 은진 지금도 위기감 느끼는 것은 아니고? 하하. 장은진은 소설집 한 권과 장편소설 ‘앨리스의 생활방식’,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등 세 권의 소설을 이미 낸 상태다. 2009년에는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기도 했다. 반면 김희진은 등단이 늦은 만큼 장편소설 ‘고양이 호텔’이 유일한 작품이다. 뼈 있는 농담으로 들린다. 진짜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까. 희진 지난해 연재하는 동안 숫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댓글 숫자, 조회 수 등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더라고요. 은진 서로 눈치 보고 했죠. 하나라도 제 댓글이 많으면 희진이는 기분 안 좋아했고, 저는 조금 미안하고 그랬고요. 희진 얘는 이미 책을 3권 냈으니까, 뭐, 그럴 수도…. 그래도 속으로는 쟤 소설이 내 것보다 뭐가 낫다고 그래 하는 생각은 여전했지요. 은진 초기 작품들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각자 길을 찾아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희진 (상대방의 장점은 뭐냐고 묻자) 은진이는 문장이 맛깔스럽고, 작품이 단정해요. 은진 희진이는 에피소드가 신선하고, 대사도 유머러스하고, 사유하는 스타일도 저보다 나아요. 저희는 소설 창작 과정에 대해서도 늘 상의해요. 서로 첫 독자죠. 희진 설령 내가 쓴 게 아무리 형편없어도 다른 사람이 지적하면 기분이 안 좋잖아요. 근데 우리끼리는 가차 없이 말해도 괜찮아요. 상대방 컴퓨터 비밀번호까지 다 알고 있어요. 은진 성장과정도 같고 성격, 취향, 심지어 좋아하는 이상형까지 같으니까요. 싸울 일은 없겠다. 과연 그럴까. 희진 한번 다투면 일주일에서 한달까지 서로 말도 안 하곤 해요. 한번은 너무 화가 나서 ‘노트북에 있는 소설을 몽땅 지워 버리면 쟤는 끝장이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차마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는데, 화해하고 난 뒤 내가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하려고 했더니 바로 말을 가로채더라고요. 은진 제가 그랬어요. “너, 내 소설 다 지워 버리려고 했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동글동글한 얼굴에 짧은 단발머리, 까만 뿔테 안경, 전라도 사투리 담긴 음색까지 거의 비슷하다. 외모만으로는 영 구별이 쉽지 않다. “그냥 복제인간이 다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라고 김희진이 말하자 “공동 창작 소설은 쉽지 않겠지만 나중에 영화 시나리오는 한번 같이 써보려고요.”라고 장은진이 덧붙인다. 서로 거들고 다투며 성장하는 사이가 분명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月 600만원 일자리 代이어” 노동귀족의 탐욕

    “月 600만원 일자리 代이어” 노동귀족의 탐욕

    “현대차 노조 정규직 세습요? 이건 자본주의도 아니고 그냥 조선시대죠.” 진보논객 진중권씨가 21일 현대차 직원 자녀 정규직 세습 논란과 관련,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장기근속자 자녀에게 입사 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자 각계각층에서 ‘고용세습’ ‘일자리세습’ ‘현대판 음서제’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20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를 채용규정상 적합하면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단체협약안을 채택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단협안에 대한 역풍이 거세게 일자 현대차 노조는 “우리뿐 아니라 기아차, 한국지엠, 쌍용차 등도 이 같은 조항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이 ‘사회 기득권층에 고용 세습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인사의 친·인척이나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처럼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자녀 특채는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의 요구와 같은 ‘일자리 세습’이 일부 민간기업이나 공기업에서 단협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D제강은 최근 비공개로 직원 가족이나 친·인척 등을 특채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공개 채용 공고를 하지 않은 채 직원들에게만 채용 계획을 알린 것이다. 이 회사는 대(代)를 이어 공장에 근무하거나 형제나 친척이 10명이 넘게 근무하는 가족도 있다고 한다. 또 한국지엠, 쌍용차, 기아차도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 가족 1인 혹은 정년 퇴직자와 장기 근속자의 자녀에 대해 적합하면 우선 채용’을 단체협약에 명시했다. 에쓰오일, 현대중공업도 ‘동일 조건하에 직원 자녀 우대’를 단협으로 정했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1980년대 노조 활동이 왕성할 때 할 수 없이 합의해 준 것”이라면서 “상징적일 뿐 한번도 이 같은 사례로 입사한 사람은 없다.”고 강조했다. 노동전문가들은 이러한 ‘고용 세습’을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한 노동 귀족의 횡포로 규정했다. 설용수 중앙노동경제연구원장은 “공장의 파업 등 사용자 못지않은 권력을 가진 노동 귀족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직장’을 물려주고 싶은 욕심에서 빚어진 일”이라면서 “사용자들도 노조의 힘에 이끌려 타협하기보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차 생산직의 한달 평균 임금은 600만원이 넘는다. 이는 동종 업계보다 30%, 금속노조 평균 임금보다는 두 배 가까이 많다. 이뿐 아니라 연말 성과급을 합치면 현대차 생산직 노조원들의 임금은 이 수준을 훨씬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 원장은 “이런 기득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면서 “하지만 ‘노동조합’이라는 투명한 조직에서 이 같은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프로농구] 이겨도 져도 웃는 ‘절친 許·姜’

    [프로농구] 이겨도 져도 웃는 ‘절친 許·姜’

    허재(왼쪽) KCC 감독과 강동희(오른쪽) 동부 감독은 “우리 둘이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나면 정말 좋겠다. 꼭 결승에 오르자.”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다. 상상만 해도 흐뭇한 그림이었다. 중앙대·기아자동차를 거치며 13년간 한솥밥을 먹었고, 코트 안팎에서 친형제처럼 자랐던 둘이 프로농구 챔피언을 다투는 모습은 선수 시절부터 그려온 오랜 로망이었다. 그러나 막상 결승에 올라 ‘장군 멍군’을 부르는 상황이 되자 생각처럼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고. 이기면 좋으면서도 미안하고, 지면 속상하면서도 내심 상대가 대견하다. 챔프전에 오른 둘은 ‘잠시만 안녕’을 외쳤었다. 2년 전 강 감독이 동부 사령탑에 오른 뒤 항상 경기 전날 식사를 같이하던 두 감독이 챔프전 때 ‘절연’을 선언한 것. 경기에 집중하고 서로를 배려하자는 이유였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전주에서도, 원주에서도 둘은 만났다. 승부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각별한 우정이었다. 지난 20일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동부가 이기면서 ‘동생’ 강 감독이 먼저 2승(1패)을 챙겼다. 강 감독은 통화하기가 머쓱해 허 감독에게 위로문자를 보냈다. 득달같이 허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야, 계집애처럼 무슨 문자냐. 잘했어. 고생했어. 다음 경기에서 두고 보자.” 왠지 미안하고 조마조마하던 동생 강 감독의 마음은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둘이 워낙 돈독하다 보니 벤치풍경도 확 바뀌었다. 휘슬 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무대지만, 심판판정에 대한 항의는 없다. 허 감독은 얼굴만 빨개지고, 강 감독은 손수건을 꺼내 땀만 닦는다. 참 밋밋하다.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외국인 선수들만 야속한 눈길로 ‘우리 감독님이 변했어요.’를 외칠 뿐이다. 강 감독은 “형하고 얘기해서 딱 2번씩만 항의하든가 해야지, 원. 그런데 보기 좋지 않아요?”라며 웃었다. 서로를 각별히 생각한다지만 승부에는 양보가 없다. 특히 ‘도전자’ 입장인 강 감독의 눈빛은 뜨겁다. “허재형은 대한민국 농구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선수다. 그런데 감독으로는 내가 꼭 이겨보고 싶다. 이번 아니면 기회가 또 있을까.”라고 욕심을 내비쳤다. 물론 “우리가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박수 쳐 줄 수 있다.”고 덧붙였지만. 둘의 비밀협약(?)도 공개했다. 국가대표팀에서 한 배를 타자는 약속이다. 챔피언팀 감독이 5월 소집되는 국가대표팀을 맡아야 하는데, 지는 감독이 대표팀 코치를 맡자는 얘기다. 강 감독이 ‘형’ 허 감독을 코치로 부릴 순 없겠지만 그만큼 뜻이 통했다. 강 감독은 “허재와 강동희가 ‘장군 멍군’ 외치면서 명승부 펼치는 게 재밌지 않나?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승컵을 향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정은 깊어진다. 원주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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