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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심 형량 ‘무원칙 감형’ 줄인다

    앞으로 1심 재판에서 사실 관계를 확정짓고,2심에서 1심 형량을 줄여주는 관행이 줄어들 전망이다. 대법원은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형사항소심 재판장 회의’를 열고 이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장윤기 법원행정처장은 “우리나라 형사 항소심이 1심의 판단을 전면적으로 재심사해 외국에 비해 높은 파기율을 보이고 이로 인해 온정주의적 양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항소심의 감형 사유를 엄격하게 해석해 온정주의적 양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이같은 현상을 막기 위해 1심 재판의 강화와 함께 항소심 파기 기준을 만들어 일정 범위안의 1심 판결은 양형을 이유로 한 파기재판을 줄이기로 했다. 또 무분별하게 제기된 항소에 대해서는 전체 형기(刑期)에서 미결 상태의 구금 일수를 공제해 주던 것을 엄격히 제한할 계획이다. 현행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도 이런 내용이 있지만 불구속 피고인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제대로 적용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또 이날 사법연수원에서 형사 1심 재판장이 된 부장판사 143명이 참석한 ‘형사재판장 연수’를 열고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이 자리에서 김용담 대법관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온정적 선고, 구두변론이 상당 부분 생략된 재판절차, 서류 중심의 왜곡된 형사재판 등을 사법 불신의 원인으로 꼽은 뒤 “고심 없이 적당한 편의주의적 사고에 따라 양형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무죄 공시제도’ 겉돈다

    ‘무죄 공시제도’ 겉돈다

    ‘무죄 공시제도’가 겉돌고 있다. 무죄 공시제도는 피고인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 침해당한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관보나 일간신문 등을 통해 무죄 판결 취지를 공시하는 제도다. 이는 형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제도지만 실제로 무죄 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제도 자체를 잘 몰라 명예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무죄 선고 받고도 명예회복 기회 놓쳐 법원의 재판 내규인 ‘판결공시 절차에 관한 지침’에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 확정 여부와 상관 없이 당사자 의사를 확인해 일간신문에 판결 요지를 게재하도록 돼 있다. 방법도 간단해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판사에게 무죄 공시를 원한다는 말만 하면 된다. 그러면 법원은 판결문에 “무죄를 선고하고 판결 취지를 공시한다.”고 밝히고 일간지 등에 당사자의 이름과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공고 형식으로 게재한다. 비용도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한다. 하지만 무죄 공시제도를 이용하는 비율은 2004년 5.27%,2005년 3.65%, 지난해 상반기 2.79% 등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산하 9개 수도권 지방법원도 지난해 상반기 무죄 공시율이 2.6%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 동부·북부·서부·춘천지법은 지난해 상반기 단 한 건도 없었다. ●서울 동부·북부지법 지난해 상반기 한건도 없어 반면 지난해 상반기 124건의 무죄 판결을 선고한 춘천의 경우처럼 전국 1심 법원의 무죄선고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2002년 1436명,2003년 2159명,2004년 2469명,2005년 2190명이 각각 무죄 선고를 받았다. 무죄 선고 건수는 늘고 있지만 오히려 무죄 공시 비율은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이같은 현상의 원인은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죄 공시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법원이 홍보에 소홀하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실제 1심 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하면서 무죄 공시제도가 있음을 알려주고 당사자의 의사를 묻는 재판부는 극히 드물다. 한 판사는 이에 대해 “무죄 공시제도를 설명해도 당사자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서”라고 설명했다. 비록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형사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신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경우가 많다. 무죄 선고가 많아지고 있고 강력범이나 파렴치범 등의 혐의를 받아 명예가 크게 손상됐거나 다른 사람들이 당사자가 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때 등이다. 때문에 재판부가 무죄 공시제도를 알려주지 않으면 이용하고 싶은데도 이용하지 못하는 예가 생길 수 있다. ●“재판부서 제도자체 적극 설명해야” 한 변호사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재판부가 무죄 공시제도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명예회복의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도 “당사자들이 이용을 꺼린다고는 하지만 법원이 무죄 공시제도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히 비판받을 점”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해마다 전국법원장 회의 등에서 무죄 공시제도를 활용할 것을 전국 법관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긴급조치 판사 명단 공개 파문] “용퇴·사과를” vs “뭘 어쩌자고…”

    3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사건에 유죄판결을 내렸던 판사들의 실명을 공개키로 한 것과 관련,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 등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사과해라” vs “여론재판될라”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부총장은 “당시 관련됐던 판사는 물론 공안검사도 몸가짐을 낮추고 공직에 나가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일부 법조인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도 없이 자리를 지키며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면서 “본인의 양심에 따르지 않고 정치적 구호나 권력에 따라 비(非) 양심적인 판결을 한 법조인들은 용퇴를 결심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용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도 “당시 정치권력에 사법부가 종속된 상황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재판에 참여한 법관들의 역사적인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당시 재판부가 사법부란 조직의 뒤에 숨어서 역사적 책임을 방기할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사과하는 것이야말로 사법부의 어두운 과거를 씻어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경근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판사 실명 공개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진실규명이라는 대의를 벗어나 자칫 여론 재판으로 흐르기 쉽다.”면서 “이는 현재의 법관들이 현행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리더라도 먼 훗날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희경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은 “명백히 밝혀져야 하는 불행한 역사인 것은 맞지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재판부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법관들이 매도당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판사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는 무리”라고 말했다.●법조계, 반성은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의 한 배석판사는 “대법관 네분이나 명단에 들어갔다고 공개했는데, 무슨 순기능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판결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켜 결과적으로 국가 시스템에 반감만 가져오게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명단에서 빠진 것은 광주 출신으로 형사재판을 맡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당시에는 사표 쓰는 것 외에는 법관이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는 위헌법률심판청구 등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는 제도가 완비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부가 먼저 과거사 정리에 앞장섰어야 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잘못된 당시 법에 한 명이라도 반대했던 법관이 있었다면 사법부가 얼마나 멋졌을까 생각해 본다.”면서 “사법부가 먼저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의 또 다른 판사도 “당시 법원은 의회나 행정부가 만든 법안에 대해 개입을 자제하고 기존의 판례를 존중하는 사법소극주의 양상만을 띠었다.”면서 “잘못된 법률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하는 사법적극주의가 아쉽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련 단체들은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유정 과거사청산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30년이나 지났고 역사적 평가 차원의 공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판사들이 다 물러나야 한다거나 무조건 비난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비록 판사로서 개인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판사 지위를 걸고 저항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운 점은 있으나 당시 공포 분위기 속에서 실정법 효력을 갖는 긴급조치에 따라 판결한 것 자체를 갖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형태 변호사도 “판결문 자체가 비공개도 아니니 공개할 수 있고, 판결문 형태로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헌변)의 임광규 부회장은 명단공개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임 부회장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나도 긴급조치에 반대하다가 징계도 당해본 사람이지만 30년이 지난 상황에서 명단을 공개해서 뭘 어쩌자는 것이냐. 현직에 있는 사람들을 내쫓고 과거 판사들을 망신주자는 것이냐.”면서 강하게 비판했다.임일영 임광욱기자 argus@seoul.co.kr
  • “공판중심주의 정착 저해” 법정 위증교사범 첫 실형

    법원이 공판중심주의 정착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법정에서 위증을 교사한 50대 남성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법원이 공판중심주의를 직접적인 양형 이유로 들어 판결한 것은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한주 부장판사는 28일 폭력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증인에게 위증하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모(56)씨에게 추가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2004년 7월 서울 강남 구룡마을 철거현장에서 포클레인을 동원해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항소하는 과정에서 증인 김모씨에게 “당시 내가 현장에 없었다고 증언해 달라.”고 부탁해 사실확인서를 법원에 내게 하고 법정에 나와 허위증언을 하도록 유도했다.이 부장판사는 “공판중심주의는 법정에서의 증언을 기초 심증자료로 삼아 유·무죄와 양형을 정하는 형사재판제도이므로 진실한 증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위증은 사법불신을 초래해 공판중심주의 정착을 저해하기 때문에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임광욱기자 limi@seoul.co.kr
  • [‘판사 석궁테러’ 파문] 사법 불신 ‘해코지’ 심각

    오후 9시쯤 퇴근했는데 집이 깜깜했다.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안방문 손잡이를 돌리는데 ‘헉’하는 소리가 들렸다. 도둑인가 싶어 얼른 불을 켜자 방구석에 부인이 어린아이 둘을 끼고 울고 있다.“당신에게 조사받은 사람이라며 낮에 전화가 왔다. 집을 알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간부가 평검사 시절 겪은 일이다. 재판에 불만을 품어 법조인을 테러하는 일은 법치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범죄를 다루는 직업인 데다 이들의 결정에 여러 이해관계가 좌우되다 보니 판·검사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이 지검의 또 다른 간부도 평검사 시절 검사실로 온 전화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딸이 ○○국민학교 다니죠. 검사님, 조심하세요.” 익명의 전화 한통 때문이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형사재판 1심 선고에 불복한 한 중년 여성이 항소했다. 재판부는 항소 이유서를 보더니 그 자리에서 항소를 기각하고는 “이런 걸로 항소를 합니까.”라며 핀잔을 줬다. 여성은 “내겐 일생이 걸린 문젠데, 어떻게 그런 말을…. 판사를 못하게 하겠다.”며 옷을 홀딱 벗어버렸다. 재판부는 도망치듯 퇴정했다. 법원의 권위가 너무 높아 국민 위에 군림했던 시절 얘기다. 최근에는 당사자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쪽으로 공판 진행방식이 바뀌고 있지만, 재판부가 아무리 말을 끝까지 들어주려고 노력해도 패소한 측에서는 억울하기 마련이다. 증거입증이 충분하지 못해도 판·검사가 알아줬으면 하는 게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한 김웅 검사는 민사재판에 불복, 법조타운에서 ‘1인시위’를 하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당한 60대 노인을 네댓 차례 불러 그저 사연을 들어줬다. 노인은 “사건처리가 안 돼도 내 얘길 들어줬으니 여한이 없다.”며 시위를 멈추고 자신이 낸 맞고소도 취하했다. 법원과 검찰이 자세를 바꿔가며 진정한 권위를 쌓아가는 이런 사례는 아직 흔하지는 않다. 오히려 판·검사라는 이유만으로 공분의 대상이 되거나 익명의 협박을 받는 일도 있다. 90년대 중반 독신으로 혼자 자취하는 남자 검사 집 거실에 칼이 꽂혀 있었던 적이 있다. 수사 결과 범인은 단순절도범이었고 집안에 훔쳐갈 게 없자 칼을 꽂아두고 간 해프닝성 사건이었지만 검사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몇몇 판·검사가 익명의 소포로 칼을 받았다는 소문도 떠돈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판·검사들도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칼을 보내는 사람들은 수사를 받기 전에 법원과 검찰에 막연한 적대감을 가진 분들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전쟁범죄등 공소시효 배제 정부법안 국무회의 통과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 집단살해죄 등에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도록 한 정부 법안이 국무회의에서 가결돼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다. 법무부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건따라 본 법정방청석 풍경

    사건따라 본 법정방청석 풍경

    ‘일심회’ 사건 첫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입장할 때 방청석은 박수와 “힘내세요.”라는 구호로 이들을 반겼다. 재판 진행이 능숙하기로 소문난 서울중앙지법 김동오 부장판사는 몇 차례 경고를 한 뒤 감치 재판 회부라는 강경책을 썼다. 방청객들이 재발 방지를 약속한 뒤 감치 재판은 취소됐다. 서울중앙지법 이효제 공보담당 판사는 24일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부에서 감치 명령이 내려진 경우는 3차례로 집계될 정도로 드물다.”고 말했다. 피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란 게 이 판사의 설명이다. 그는 “방청객이 법정모독죄로 처벌받는 모습을 보면,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받아야 할 피고인이 위축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초 법정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일어난 뒤 재판진행 세미나를 여러 차례 연 법관들이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일심회 사건에서는 지지자들이 문제가 됐지만,“한국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을 해 불구속 기소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 재판에서는 반대파가 “헛소리하지 맙시다.”라고 외치며 돌출행동을 해 감치 재판에 회부됐다. 재판부는 이 남성을 훈방조치하고 풀어줬다. 판사들은 공안사건뿐 아니라 여론의 이목이 집중되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을 재판할 때 방청석과 교감하는 법을 연구해 왔다. 정치인이나 재계 인사가 연루된 사건도 포함된다.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정치인들의 재판이 열리면, 방청객들이 번호표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다. 판결문을 읽는 동안 박수와 야유가 교차된다. 벌금형이 내려져 의원직이 유지되면, 함께 기쁨을 나누려는 지지자들 덕에 주변 설렁탕집이 때아닌 호황을 맞는다. 반면 지난 23일 대법원 선고를 받은 한화갑 민주당 대표처럼 정치인이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으면 지지자들은 반대 구호를 외치며 썰물처럼 법원을 빠져 나간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두산그룹 총수일가, 삼성 에버랜드 전·현직 대표 등 재계 인사들의 공판이 열리면 법정이 검정 양복 일색이다. 공판 분위기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일반 방청객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한 편법이기도 하다. 정·재계 인사들에 대한 사건이 법관들을 부담스럽게 한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많고 관계가 복잡한 사건은 법관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곗돈이나 다단계 사기사건 재판 증언 도중에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들이 “거짓말하지마.”라고 외치는 일이 다반사다. 이에 비해 항상 흥행에 실패하는 재판부도 있다. 마약사건 재판부가 한 예다. 한산한 탓에 이 법정이 법원 단체견학 코스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마약 전담 재판부 경험이 있는 모 부장판사는 “약식명령을 받고 벌금을 내는 게 아니라 재판까지 받게 되는 마약 사범들은 대부분 재범 이상”이라면서 “마약을 끊지 못하고 가족들까지 괴롭힌 탓에 부모·형제에게도 버림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족도 한명 안 온 방청석을 보면 피고인이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놨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사법개혁 ‘찻잔속 태풍’

    사법개혁 ‘찻잔속 태풍’

    대통령 자문기관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의 2년간 활동은 결국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다. 사개추위가 법조계와 사회 각층의 컨센서스를 모아 내놓은 25개 법률안 가운데 국회를 통과한 법률은 6개에 불과하다.20일 14차 위원회를 끝으로 공식활동을 마칠 때까지 사개추위 개혁안이 불러온 논쟁들에 비쳐볼 때 초라한 성적표다. ●주요법안 국회 장벽 못넘어 사개추위 논의 과정에서 공판중심주의 도입이나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둘러싸고 법원과 검찰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치·운영 법안의 파장은 법조계를 넘어 교육계까지 미쳐 대학들마다 로스쿨 도입을 위해 법조인 교수 채용 바람이 거셌다. 하지만 사개추위 개혁안은 국회라는 장벽을 뚫지 못했다. 로스쿨 도입이 주요 내용인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법안과 배심·참심제 도입을 담은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안은 정치적인 이유로 국회통과가 좌절됐다.4월17일 국회 교육위에 상정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법안에 대해 여야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후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법 재개정과 이 법안을 연계시키면서 소위 통과를 무산시켰다. 배심·참심제 도입안 역시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중이지만, 위원들이 교체되면서 논의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율사출신 법사위…법조윤리 강화 법안 상정도 안해 공판중심주의 확립·인신구속 제도 개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도 법사위 소위에 계류돼 있다. 법조윤리 실태를 상시 감시하는 법조 윤리위원회를 도입하기로 한 변호사법 개정안은 지난 3월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예 법사위에 상정도 되지 않았다. 이 법안 심의와 관련, 율사 출신으로 이뤄진 국회 법사위원들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기도 했다. 사개추위는 군의 반발을 무릅쓰고 군사법원과 군 검찰을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개편하기 위해 6개 법률의 개폐안을 제출했지만, 모두 계류중이다. 재판기록 공개를 확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가사소송법·소년법·가정폭력범죄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회 법사위에 상정도 되지 못했다. 이 법안들은 7월에 국회에 제출됐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집단살해죄·전쟁범죄등 공소시효 배제”

    대법원은 16일 ‘형사사법제도의 미래를 위한 협력’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특히 이날 심포지엄에는 국제형사재판소(ICC) 필립 키르시 소장과 우리나의 송상현 재판관 등 9명의 재판관도 참석했다. 심포지엄에서 황철규 법무부 국제형사과장은 법무부가 ‘ICC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법률안에는 집단살해죄,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에는 공소시효나 형의 시효를 모두 배제하며 외국인이 국외에서 집단살해죄 등을 저지른 뒤 입국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법적 근거가 담겨 있다. 또 법률안은 집단살해죄 등이 고소나 피해자의 요구가 없을 때는 처벌할 수 없는 친고제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더라도 공소 제기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ICC 재판관들은 우리나라의 법률안에 대해 외국인이 해외에서 저지른 범죄도 처벌할 수 있는 등 보편적 관할권을 도입한 것을 높게 평가했다. 고문 등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민·형사 공소시효 배제가 이번 법률안에 빠진 것에 대해 송 재판관은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가 여러 논의가 있었지만 관할범위에는 명확히 해당하지 않는다. 이행입법 제정 뒤에 더 논의해야 된다고 본다.”고 의견을 밝혔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필립 키르시 소장과 송 재판관 등은 지난 1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고 법무부 등 관련 기관도 방문할 계획이다.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ICC는 대량학살죄,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재판하는 국제 재판소로 각국의 재판관 18명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11월 비준 절차를 거쳐 당사국이 됐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국제형사재판소장 14일 내한 송상현 재판관등 9명과 함께

    대법원은 13일 대량학살 등 국제 전쟁범죄 등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ICC) 필립 키르쉬 소장과 9명의 재판관 등이 14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번 방문단에는 2003년 임기 3년의 초대 재판관으로 선출된 뒤 올 3월 임기 9년의 재판관으로 재선된 송상현(65·서울대 법대 교수) 재판관도 포함됐다.대법원은 16일 ICC 재판관들을 초청해 ‘형사사법제도의 미래를 위한 협력’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우리나라의 형사사법제도 개혁과 인권 보호 개선 실태를 논의할 예정이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大法, 형사재판 이원화 추진

    대법원은 2일 공판중심주의에 맞춰 형사사건을 통상처리 절차와 신속처리 절차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도 신속처리 절차로 ▲즉시심판 절차 ▲서면 신속처리 절차 ▲출석 신속절차 등을 마련해 놓고 있다. 3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적용하는 즉시심판 절차는 현행 즉결심판 절차와 비슷하다. 다만 지금은 경찰서장이 기소하던 것이 일제의 잔재라는 지적에 따라 검사가 직접 기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 현행 벌금형을 받는 약식명령 제도와 비슷한 신속처리 절차는 피의자 동의없이 검사가 청구하고,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출석신속 절차로 이행하도록 돼 있다. 출석신속 절차는 실형 1년까지만 선고할 수 있는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로, 집행유예를 선고할 때만 본형이 1년을 넘을 수 있다. 출석신속 절차는 담당 재판부가 매일 법정을 개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피고인이 출석해 당일 재판을 종결할 수 있는 사안은 피고인이 동의하면 검사가 ‘당일재판 절차’로 기소, 늦어도 이튿날까지 선고까지 마칠 수 있다.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피의자 자기방어권 보장돼야

    피의자 자기방어권 보장돼야

    공판중심주의는 법정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피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정한 죗값을 치르게 한다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하지만 파문 속에 도입된 공판중심주의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를 시급히 마련해야 하고 법원, 검찰, 변호사 등 각 주체의 노력이 중요하다. ●법관들의 의지·노력 필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는 10일 폭행사건과 관련해 현장검증을 나간다. 형사사건은 경찰·검찰에서 이미 현장검증을 하기 때문에 법원 차원에서 다시 검증을 나가는 일은 드물다. 현장검증은 법정에 제한되지 않고 진실을 찾으려는 적극적인 재판방식 가운데 하나로 공판중심주의가 정착되면 중요성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 이효제 공보판사는 “수사기관이 보는 관점과 재판부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 법정에서 새로운 사실·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장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형사재판과 달리 민사재판에서 현장검증은 이미 익숙한 절차가 됐다. 민사사건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원·피고가 현장검증을 요청하고 비용을 지불한다. 최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조권과 소음피해 등과 관련된 소송에서 현장검증은 필수코스가 됐다. 건설소송을 주로 다루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3부 조영철 부장판사는 “매주 월요일마다 검증을 가야 할 정도다. 구술주의가 정착되면서 현장검증에 대한 요구도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다시 자신의 사건을 자세히 되짚어 주는 것에 피고인들은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빠듯한 재판일정 등 시간과 인력 문제가 현장검증·시연의 걸림돌이다. 재판을 진행하는 시스템 정비는 아직 완결되지 못한 진행형이다. 공판중심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검찰이 증거분리제출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하자, 법원도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위해 첫 기일 전 판·검·변 협의제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법관이 가진 소송지휘권에 따라 공판 기일 전에 재판장이 검사, 변호인과 함께 공판기일 진행 협의를 하도록 한 것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변호인들은 검찰의 기소 의도와 입증계획을 미리 알게 되고, 법원은 짜임새 있는 공판 밑그림을 준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도 적극 대응 필요 지난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인 참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공판중심주의 재판에서는 본인의 진술이 유무죄를 좌우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법정에서 진실을 말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다. 검찰은 현재 사법방해죄,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공판중심주의 재판에서는 위증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될 전망이다. 장주영 변호사는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수사기관으로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할 때는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정에서는 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 법정에서 검찰과 피고인은 동등한 지위에서 재판을 받기 때문이다. 또 예전의 조서재판과 달리 검찰이 제출하는 증거 등 재판내용이 공개되기 때문에 재판의 흐름과 쟁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재판부는 가장 먼저 피고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공판중심주의 법적 근거 필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공판중심주의가 정착되려면 현재 계류중인 사법개혁안이 통과돼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사법부는 형사소송법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현재 법체계에서는 상충되는 제약이 많다.”고 지적했다. 공판중심주의로 인해 변호사의 활동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임료가 오르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는 “공판중심주의가 도입되면 치솟는 변호비용과 재판비용 등이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법의 양극화’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부의 한 판사는 “그런 측면도 있지만 무능한 변호사들이 도태되는 측면도 있다. 원래 법의 취지대로 가기 위해 불가피한 비용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용이 부담된다면 국선변호사나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운영하는 당직 변호사를 이용하면 된다. 또 현재 통합을 추진중인 소송구조제도를 활용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선변호제도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전국 18개 지방법원 본원에서 활동하는 국선전담 변호사는 41명에 불과하다. 서울중앙지법이 7명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 법원은 많아야 4명 정도다. 전담변호사가 없는 지원도 13개나 된다. 당직 변호사 역시 하루에 2∼3명이 대기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장 변호사는 “아직 불완전한 제도인 것은 맞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도록 법원, 검찰, 변호사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재판혁명이 시작됐다] (上) 법정이 진실이다

    [재판혁명이 시작됐다] (上) 법정이 진실이다

    사법부가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10월부터 검찰도 증거 분리제출 방침을 결정하면서 형사재판에서 본격적인 공판중심주의 시대가 열렸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구술심리 강화 지시에 따라 민사재판도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닻이 오른 재판혁명을 3회에 걸쳐 살펴 본다. 9월27일 서울중앙지법 5층 한 법정. 지난 4월 공판중심주의 시범 재판부로 지정된 형사1단독 이한주 부장판사의 재판이 열렸다. ●사라진 검찰조서 오전 10시 첫 사건. 위장결혼을 통해 불법체류한 혐의로 기소된 조선족 여성의 속행공판이 열렸다. 증거분리제출 방침에 따라 첫기일에 검찰로부터 재판부가 받은 것이라곤 공소장뿐이다. 피고인이 자백한 것으로 돼있는 검찰조서는 법정에서는 볼 수 없었다. 사라진 검찰조서가 공판중심주의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다. 검찰은 곧 사실관계를 신문했다. 검찰이 피고인에게 “결혼한 게 맞느냐.”고 묻자 피고인은 “밥도 해주고 같이 생활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낮에는 따로 생활해도 밤이면 한 집에서 잠을 잤느냐.”며 보다 구체적으로 물었다. 공판중심주의에서는 법관이 심증을 굳히기 위해 검사와 변호인 못지않게 직접 피고인에게 많은 질문을 하게 된다. ●짧은 질문, 긴 대답 검찰이 “한국에서 얼마를 벌었습니까.”고 묻자 피고인이 “300만원 정도 벌었습니다.”고 답했다. 예전 같으면 이미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300만원을 벌었죠.”라고 묻고 피고인은 ‘예’,‘아니오’ 가운데 하나만 답하면 됐다. 변호인의 변론 역시 단답형이 아니라 피고인이 직접 자신의 사정이나 사실관계를 진술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이었다. 피고인은 억울한 듯 중국에서 만난 한 남자와 정식으로 혼인신고가 된 줄 알고 한국으로 들어와 식당 등에서 허드렛일을 했던 지난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기소내용이나 범죄사실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안이지만 일단 피고인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는 것도 공판중심주의가 바꿔놓은 법정풍경이다. 하지만 몇 군데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서류에 ‘코를 박은 채’ 장황한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검찰과 변호인 신문이 끝난 뒤 재판부는 검찰측에 증거목록을 요구했다. 검찰은 참고인들의 검찰진술조서를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변호인은 당사자들이 조서가 사실과 다르다고 한 만큼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맞섰다. 검찰은 “그렇다면 당사자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공판중심주의 재판에서는 이렇게 검찰조사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당사자들이 직접 법정에 나와서 진술해야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지게 된다. ●당당한 피고인들 오후 2시 사건으로 마약복용 혐의로 기소된 미군이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날은 피고인을 검거했던 증인이 법정에 나와 증언할 차례였다. 증인이 안전문제 등을 이유로 피고인과 마주하지 않겠다고 하자 검사와 변호사가 설전을 벌였다. 이때 피고인이 통역을 통해 “민주국가에서 나를 범인으로 지목한 사람과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내 권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증인이 거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변호인도 있고 나중에 묻고 싶은 내용을 재판부를 통해 묻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고인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위험요소 등 제반 사항을 고려할 때 피고인의 주장이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에도 맞는 말”이라며 증인을 출석시켰다. 검찰과 변호인은 증인이 마약거래가 있은 뒤 6개월이 지나 피고인을 범인으로 지목한 사실이 믿을 만한가를 두고 다퉜다. 현장에서 찍힌 사진이나 폐쇄회로TV 등 객관적인 자료가 없는 사건이었다. 검찰과 변호사뿐 아니라 피고인도 직접 증인에게 “6개월이나 지나 나를 알아볼 수 있느냐.”며 반박했다. 피고인과 증인과의 설전이 계속되자 검찰이 다음 기일에 하자고 제안했지만 재판부는 “소송지휘는 재판부의 권한”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다음 시간에 예정된 재판당사자들이 재판이 끝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법정을 들락날락거렸다. 결국 30분으로 예정됐던 재판은 2시간을 넘겼다. 결국 재판부는 “사건당 30분 정도로 예상했는데 재판이 길어져 죄송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재판부가 이날 처리한 사건은 모두 10건. 몇몇 사건은 결심이라 빨리 처리됐으나 수사식 재판이 진행되면서 오전 10시에 시작된 재판은 오후 7시가 돼서야 끝났다. 이 때문에 1∼2시간 동안 재판당사자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것은 일상이 돼버렸다. ●검찰 주장과 달리 무죄선고 한 건도 없어 시범재판부는 지난 4월부터 지난달까지 모두 181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무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검찰은 공판중심주의 도입으로 법정에서 검찰조서가 인정되지 않는 반면 피고인은 장황하게 거짓말이나 부인 등으로 일관, 범죄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시범이긴 하지만 공판중심주의를 통해 범죄를 엄벌에 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형사재판 진화는 계속된다 공판중심주의의 키워드는 ‘신뢰’다.‘보이는 재판’을 통해서 재판을 받는 사람은 재판결과에 승복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사법부의 신뢰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공판중심주의=‘보이는 재판’ 그동안의 형사재판은 한 변호사가 “우리나라만큼 서류위주의 재판이 이뤄지는 곳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할 정도로 재판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알기 어려운 재판이었다. 내 의견을 말할 기회도 적고, 어려운 법률용어에다 곳곳마다 “제출된 서류로 대신하겠다.”는 말로 대신해 재판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는 재판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연 재판부가 뭘 근거로 유·무죄를 결정했는지,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요소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판중심주의는 재판정에서 직접 이뤄지는 증언과 진술, 법적 공방을 통해 소송 당사자들이 “아, 이렇구나.”라고 재판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는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라며 이용훈 대법원장이 예를 들었던 독일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과거 나치시절 정권에 이용당한 독일 사법부는 2차대전 이후 잃어버린 신뢰를 적극적인 과거사 청산노력과 함께 공판중심주의 등을 통한 공정한 재판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공판중심주의는 현재 진행형 당장 다음달부터 검찰의 증거분리제출 전국 확대실시가 되지만 이를 통해 전면적인 공판중심주의가 실현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현재 국회에서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공판중심주의에 가깝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재출한 이 법률은 미국식 공판중심주의에 가깝다. 미국식 재판은 기본적으로 원고와 피고인의 대결이다. 적법한 증거만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물론 검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피고인의 위치를 아예 변호인 옆으로 옮겨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한다. 또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하면서도 사건관계가 단순하고 증거가 명백한 사건은 피고인이 원할 경우 한번 출석한 당일에 선고까지 끝나는 ‘경죄 처리절차’도 도입된다. 내년에도 또 한차례의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2012년 완전도입에 앞서 내년 3월부터 배심·참심 혼합형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다. 그동안 법률전문가인 법관이 진행하던 것에서 비록 살인 등 중요 범죄에 한해 매년 100∼200건에 불과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법률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공판중심주의는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민사도 구술주의?… 글쎄” 민사재판에 불어닥친 재판혁명은 재판장의 앉은 키만큼 쌓였던 서류뭉치들을 사라지게하고 있다.2002년부터 시행돼 정착되고 있는 신민사소송법에 따라 본격적인 변론 전 준비기일에 원·피고측은 서면공방을 통해 쟁점을 정리하고 있다. 때문에 법정에서 서류뭉치 속에 파묻혀 앵무새처럼 주장만 펼치던 변호사들의 예전 모습은 보기 드물다. 하지만 지난 4월 형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 강화에 발맞춰 추진해온 민사재판에서의 구술주의 실현은 아직은 갈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28일 서울중앙지법 5층 어느 민사법정에서는 아파트 앞 도로건설을 두고 벌어진 소송과 관련해 원·피고측 변호인의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변호인은 “당시 도로말고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없는 땅이었죠.”라고 물었다.“예, 그러니까…”라며 증인의 말이 길어지자 재판부는 “대답만 하세요.”라며 면박을 주었다. 그 뒤로도 재판부는 증인의 답이 길어질 때마다 서류만 응시한 채 “예.”라고 하며 말을 끊었다. 민사재판을 진행한 판사들이나 변호사들에게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서울중앙지법 민사부의 한 판사는 “재판장이 쟁점에서 벗어난 사안이라 중단시켰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민사재판은 준비기일에서 이미 쟁점들을 서면공방에 이어 구술로도 논의하기 때문에 재판부나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직접 공방을 벌이는 것을 수고스럽게 여기는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민사부 판사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측에서 법적 책임을 밝혀야 하고 법적으로 서면제출이 인정되기 때문에 구술주의가 보여주려는 치열한 법정공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도 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이 대법원장 ‘발언 파문’ 이후

    “이번 일로 대법원장 개인으로서는 이만저만 상처입은 게 아니다. 그러나 법원을 위해서는 새로운 빛을 봤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은 법조계 파문이 법원 조직의 결속을 다지고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용훈식 개혁’이 탄력을 얻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대법원장의 취임 1주년을 기념한 일선 법원 순회 방문은 결국 공판중심주의와 구술주의로 대변되는 사법부 중심의 사법개혁을 이뤄내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대법원장은 26일 서울고·지법을 방문한 자리에서 줄곧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했다. 대법원장은 공판중심주의란 검찰 수사기록 대신 법정에서 법관이 조사한 증거만으로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형사재판에서 주도권을 검찰이 아닌 법원이 쥐겠다는 것이다. 검찰의 증거분리제출 방안과 민사재판에서 수사기록 배제 방침을 환영한다는 뜻도 밝혔다. 겉으로는 검찰과 화해하는 분위기지만 그동안 영장을 신중하게 발부하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검찰과 영장을 둘러싼 마찰이 심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법원장은 자신이 포퓰리즘을 지향한다는 내부의 비판을 일축했다. 자신의 방침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는 이번 법조 비리를 국민들의 시각과 달리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려는 내부 분위기를 꼬집었다. 그는 “구술주의를 하자고 하면 여러분의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이 길로 안 가면 국민들이 재판을 신뢰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사법부의 희생을 피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민사재판에서는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존하지 않는 구술변론이 정착되고 정식 판결 대신 당사자간의 화해·조정이 권장되고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또 법정에서의 판사들의 언행도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장은 이날 ‘법조3륜’이란 말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법원과 검찰, 변호사는 역할이 다르며 유착관계가 있으면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하는데 절대 제 기능을 다 할 수 없다. 검찰과 변호사와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대법원장은 또 “공판중심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한 법조비리는 근절될 수 없다. 재판절차가 법정이 아닌 판사실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판사실에 접근해보고 싶은 것이다.”며 공판중심주의의 대의명분을 거듭 강조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檢의 역습-증거분리 제출 전국 전격확대

    검찰이 25일 공판중심주의의 한 방편인 증거분리제출 제도를 다음달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법부에 대한 역공의 성격이 짙다. 검찰의 발표는 공판중심주의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에 천명한 것이기는 하지만 법원과 검찰의 갈등 와중에 시행 일정을 앞당김으로써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는 데서 촉발된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증거분리제출, 법원에 대응 수단으로 이용돼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하지 않는 것은 공판중심주의의 취지와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증거분리제출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오직 공소장 하나만을 제출하고 다른 증거물을 제출하지 않는 공소장 일본주의와 통한다. 이는 검찰이 제출한 수사기록과 증거물을 보고 법관이 예단과 선입견을 갖는 것을 방지하자는 데 목적이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공판중심주의의 주요 내용인 공소장 일본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검찰은 공소장과 함께 수사기록을 모두 제출해 왔다. 따라서 검찰의 발표는 표면적으로는 공소장 일본주의, 즉 사법부가 강조하는 공판중심주의를 충실하게 따르겠다는 뜻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수사기록과 증거를 재판 전에 제출하지 않으면 법관의 예단을 막아 피고인에게 유리하다고 하겠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피고인과 변호인이 증거서류를 미리 열람해 파악하지 못한다면 재판에서 방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법관도 사건의 개요를 미리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검찰은 이런 배경에서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것을 법원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실제로 지난해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대법원의 판례 변경에 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남기춘)는 서울 강동시영아파트 재건축 비리사건에서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 ●형사재판부 대폭 늘려야 그러나 증거분리제출, 즉 공소장일본주의는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검찰의 제도 확대에 따라 앞으로 재판 횟수나 재판에 참석하는 증인들의 수가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재판시간도 길어지고 서류보다는 법정 진술이 중심이 되는 재판이 된다. 지금은 “제출한 서류로 대신하겠다.”로 끝나던 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공판중심주의를 제대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우선 형사 재판부 수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야 한다. 대법원은 2002년 157개에서 2004년 220개로 40% 늘렸지만 아직도 형사재판부가 부족하다. 검사도 재판에 매달리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검사 수도 늘려야 한다. 이에 검찰은 우선 18개 지검에서 운영해 왔고 점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었다. ●檢, 민사소송에 형사기록 송부 불리할 것 없어 민사소송 재판부에 제출하는 형사기록 송부 심사를 강화하는 것도 검찰로서는 불리할 것이 없다. 지난해 검찰의 고소사건 기소율은 16.2%에 불과했다. 특히 고소사건 중에서도 사기·횡령·배임 등 돈과 연관된 사건이 36만 5070명으로 전체 고소사건 중 87.8%를 차지했지만 기소율은 12.2%에 불과했다. 민사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형사고소를 남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용훈 대법원장이 판사들에게 “민사사건에서 검찰의 형사사건 기록을 집어던져라.”고 말을 한 것은 검찰로서는 그야말로 “울고 싶은데 빰을 때려주는 격”이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공판중심주의 검찰 조서와 변호사 의견서 등 서류에 의존하지 않고 법정에서 증언과 피고인 신문을 토대로 진실을 밝히고 이를 근거로 유ㆍ무죄를 가리고 형량을 정하는 제도. 법적공방이 말로 이뤄진다는 구두변론주의 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 증거서류 분리제출 검사가 기소하면서 사건에 대한 법관의 선입관을 방지하기 위해 공소장 외에 기타 수사기록이나 증거물을 일괄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공소장 일본주의와 같은 말이다. 검찰은 증거서류는 내지 않더라도 증거서류 목록은 제출해야 한다. ■ 문서송부촉탁 재판에 증거가 될 문서를 가지고 있는 상대방에게 문서를 제출할 것을 명령하는 제도. 이번에 논란이 된 민사재판의 형사기록의 문서송부촉탁의 경우, 민사재판에서 재판부가 형사사건의 증거나 기록 등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 서울중앙지법 수석부장 “검찰·변호사 동료아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에 대해 검찰과 대한변호사협회가 반발하는 가운데 법원 내부에서 이 대법원장을 물밑에서 지지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어 법조 3륜간 갈등양상이 계속되고 있다. 24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 이상훈(50·사시19회) 형사수석부장은 이 법원 형사부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대법원장이 법관과 법원 직원을 상대로 말씀하신 것을 갖고 외부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부터가 옳은 일이 아니다.”며 검찰와 변협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국내 법관의 14% 정도인 280여명의 판사가 근무하고, 대형 사건 1심 재판 대부분을 처리하는 곳이다. 이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의 고교 후배다. 또 형사재판부를 총괄하는 차관급 인사로 대법원장의 발언파문 이후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힌 최고위 법관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장의 말 외부사람들 반발 옳지 않아” 이 부장판사는 “검찰의 상대방은 피의자나 피고인이다. 변호사는 당사자의 대리인이거나 변호인일 뿐이다. 다른 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동료의식을 내세우는 표현 같아 불쾌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 부장판사는 “부장검사 출신 피고인은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구속한다고 위협해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고 법정에서 주장한다. 부장검사였던 사람까지 그런 주장을 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며 검찰을 꼬집었다. 그는 또 “공개되지 않고 변호인이 참여하지 않은 조사실에서의 조사를 인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검사는 수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공판정에서 입증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수사는 공소유지를 위한 검찰의 준비작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형사소송체계는 원래 국가의 기능이었던 소추와 심판을 검찰과 법원에 배분한 것이며 검찰은 국가 형벌이라는 공익적 차원을 실현하는 곳이다. 법원이 우위에 있다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전히 검찰이나 경찰에서는 조서를 ‘꾸민다.’고 한다.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아니라 ‘산다.’고 한다. 이것이 국민들의 의식이고, 그런 의식을 갖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며 검찰·변호사협회 모두를 질타했다. 그는 “법관은 스스로 오해받을 만한 재판을 해왔는지 항상 반성해야 한다. 재판 잘하면 된다. 검사, 변호사에게는 맡은 일을 잘하게 해야 한다.”며 법관들의 자성을 촉구하며 글을 마무리했다. ●현직 경찰서장도 같은 취지의 글 올려 앞서 대전고법의 이동연 판사는 23일 간담회에서 대법원장의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됐다는 내용의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 고양지원의 정진경 부장판사는 “현재 변호사협회의 모습은 지나친 직역이기주의에 기울어 있는 것 같다.”,“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함께 갖고 있는 한 공익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며 변협과 검찰을 비판했다. 한편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이었던 황운하 대전서부경찰서장은 경찰 내부통신망에 23일 정 판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정 판사에 동조하는 글을 올렸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법원·검찰 상반된 반응

    이용훈 대법원장의 발언을 두고 법원은 취지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며 신중한 모습이지만 검찰은 국가기관을 무시한 처사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대법원장의 지방순시에 참석했던 한 판사는 “대법원장이 민사재판과 관련해 한 이야기는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던져버리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맞지만 법원 내부에 자극을 주기 위한 특유의 화법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재판 이야기로 넘어갈 때 대법원장은 검찰과의 마찰이 생기니까 간단히 넘어가겠다고 전제한 뒤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검찰을 무시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장의 순시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앞뒤 맥락 고려 없이 짜깁기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면 안 된다. 표현을 순화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전체적인 취지로 볼 때 차분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법원장의 발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의견도 있다. 한 부장판사는 “검찰은 피해자를 대신해 피고인·변호인과 다투는 위치다. 당사자들 사이의 다툼을 재판하는 법원과 검찰·변호인들은 원칙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관행 등에 대해 대법원장이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겪어본 바가 있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두둔했다. 일선 검사들은 대법원장의 발언 하나하나를 꼬집으며 불만을 드러냈다. 한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참여계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변호사 접견권을 보장한 채 수사한다. 밀실수사라니…. 와서 보고 그런 말을 하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다른 평검사도 “법정에서 일방의 주장을 제한된 시간 동안 듣는 게, 증거를 확보해 며칠이고 집중하는 검찰 조사보다 우월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며 반발했다. 홍희경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사설] 대법원장의 “수사기록 던져버려라”

    이용훈 대법원장이 엊그제 “재판이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려면 검사의 수사기록은 던져버려야 한다.”고 뼈있는 말을 했다. 법관들이 민사재판에서도 당사자의 고소를 통해 나온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지만, 이 대법원장의 인식은 형사재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공판중심주의, 구술주의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법정에서 검찰과 피고인 또는 변호인간 공방을 통해 사건의 실체를 확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성될 수밖에 없는 검찰의 수사기록에 의존해 심증을 형성해온 데 대한 비판이었다. “구속되거나 압수수색을 당한 사람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며 영장발부를 신중히 해달라는 주문도 편의주의적인 법 운용에 대한 경고이다. 우선 강제처분을 하고, 아니면 그만이지 식의 생각이 당사자들이나 기업을 풍비박산나게 만들 수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사람에 대해 굳이 구속영장을 발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구속영장 발부율은 지금도 8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0년대 법정에서 신발 던지던 사람들이 지금 국정을 움직이고 있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법원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은 ‘국민재판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 대법원장은 올 초에 “재판은 국민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지, 판사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며 국민 속으로 들어갈 것을 강조했다. 국민으로부터 재판권이 나오는 것인데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면 검찰이나 사법부는 존재 의의가 없다는 뜻이다. 그의 지적은 모두 옳다. 다만 그같은 말들이 검찰이나 정치권 등을 자극해 사법개혁의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 ‘비위 판·검사’ 사표 못낸다

    비위 의혹을 받고 있는 판·검사들이 사표를 제출할 경우 내부 징계절차를 밟지 않은 채 사표를 수리해 준 법조계의 ‘제식구 감싸기 관행’이 전면 금지된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8일 국회에서 ‘법조비리 근절’ 당정 협의회를 열고 비위조사 및 수사를 받고 있는 판. 검사의 사표는 수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비위공직자 의원면직 특별법’을 추진키로 했다. 당정은 특별법 적용대상을 판·검사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와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독립기관 소속 공무원도 포함시키기로 해 사실상 모든 공무원들은 징계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표를 제출하는 일이 금지된다. 문병호 제1정조위원장은 국회 브리핑을 통해 “현행 비위공직자 의원면직처리 규정에 따르면 행정부내 일반 공무원은 징계절차가 진행 중일 때는 사표가 처리되지 않는다.”며 “특별법을 통해 판·검사에게도 이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당정은 비위가 확인된 일반공무원의 경우 직무정지나 직위해제를 통해 대기발령 상태에 있다가 징계조치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 검찰청법에 직위해제나 직무정지 조항을 신설키로 했다. 법관의 경우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용 절차를 달리하는 방안을 추후 논의키로 했다. 문 위원장은 “특별법이 처리되면 대한민국 모든 공무원은 비위가 확인될 땐 사표 수리가 중지된다.”고 말했다. 당정은 또 법조비리 근절책의 일환으로 ▲검사·법관 징계법에 파면·해임 등 중징계 조항 신설 ▲징계위원회 외부인사 참여 확대 ▲금전수수 징계시효 3년으로 연장 ▲검찰내 감찰윤리위원회 및 법원내 윤리위원회(가칭)에 징계건의권 부여하고 ▲징계위원회의 기관장 의견청취조항 삭제 ▲변호사 등록거부 사유 및 시기 정비 등도 추진키로 했다. 당정은 이와 함께 사법절차의 법조인 독점구조 탈피, 전관예우 척결을 위해 국민형사재판 참여법안, 공판중심주의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안, 현직 판·검사의 형사사건 수임제한 관련 변호사법 개정안 등 사법개혁 관련법도 조속히 처리키로 했다.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전범 테일러 라이베리아 前대통령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로 이관

    서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한 혐의로 이 나라 수도 프리타운의 전범재판소 법정에 서온 찰스 테일러 라이베리아 전 대통령이 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프리타운을 떠났다. 피터 앤더슨 ICC 대변인은 이날 오전 테일러 전 대통령이 프리타운 전범재판소에서 유엔 헬리콥터에 태워져 프리타운 공항으로 이동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솔로몬 베레와 시에라리온 부통령도 이를 확인했다. 앤더슨 대변인은 테일러 전 대통령의 행선지를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지난주 제3국에서 재판이 진행된다면 테일러를 수감할 수 있다고 영국 정부가 밝힌 데 따라 재판은 헤이그의 ICC에서 받고 신병은 영국에서 책임질 가능성이 높다고 통신은 덧붙였다.시에라리온 전범재판소는 테일러 전 대통령을 계속 프리타운에서 재판받게 할 경우 이 나라의 불안정을 초래할 우려 때문에 ICC측에 신병 인수 의사를 타진해 왔다.그러나 재판 장소가 옮겨지더라도 시에라리온 전범재판소 재판관들이 심리를 주관하며 ICC측은 법정과 감옥만을 제공하는 데 그칠 것으로 알려졌다. 테일러 전 대통령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계속된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의 민간인 팔다리 절단을 방조, 부추기는 등 11가지 전범 혐의를 저지른 혐의로 그동안 재판을 받아왔다.지난 1989년 라이베리아에서 반군 활동을 시작해 97년에 선거를 통해 집권한 테일러 전 대통령은 3년 뒤 또 다른 반군에 의해 축출돼 2003년부터 나이지리아에 머물러 오다 지난 3월29일 체포돼 프리타운 전범재판소내 특별 감옥에 수감돼 있었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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