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내각 선진선거 값진 결실/“유례없는 공정” 14대 대선
◎정권정통성 둘러싼 오랜 시비 불식/법적용 엄격… 정책대결 가능성 제시
14대 대통령선거는 역대 어느 대통령 선거보다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러진 것으로 평가된다.선거막판 각 후보진영의 상호비방,흑색선전및 일부 금품공세등이 재현되기도 했지만 종전의 과열·혼탁양상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이는 각 후보진영은 물론 대다수 유권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개표결과 주요후보자의 경우 출신지역이 득표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적어도 선거운동기간중에는 극도의 감정적 대립과 갈등양상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같은 선거문화의 개선은 노태우대통령의 9·18결단에 따른 중립내각의 출범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데는 이론이 없을 것 같다.청와대는 6·29선언으로 개막된 민주화시대가 9·18결단을 계기로 완전한 결실을 맺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정부가 관권개입의 소지를 차단하면서 끝까지 중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함으로써 차기 정권의 정통성·도덕성 시비여지를 없애는등 정치발전을 위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분석이다.
현승종총리의 중립내각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관변단체의 선거관여를 금지했고 선심성 정부사업을 억제했다.또 군의 영외투표제를 도입,부재자투표에 대한 부정시비를 근절시켰다.
특히 중립내각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불법선거운동에 대해 적극적인 단속에 나서 각후보진영의 탈법기도를 위축시켰다.이에따라 단속건수는 13대 대선과 비교할때 오히려 대폭 증가했다.형사입건자는 13대때 8백27명이었으나 이번에는 1천8백41명으로 늘어났다.
단속된 선거사범을 유형별로 볼때 금품제공은 13대 당시 3.1%에 비해 33.9%로 현격히 늘어났으나 상호비방은 43.4%에서 4.0%로,폭력은 27.6%에서 1.4%로 각각 줄어들었다.
이번 선거 중반 최대이슈가 김권선거공방이었던데서도 드러났듯이 이같은 수치는 이번 선거의 부정적 측면으로 김권선거대목을 꼽을수 있다는 점을 반영해 주는 것이며 이에따라 당국의 감시와 단속도 금권선거방지에 집중됐다.이는 과거와 달리 기업자금을 선거자금으로 빼돌리는등 특정재벌기업의 조직적인 선거개입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선거의 또하나 특징은 정치적 쟁점에서 탈피해 정책대결로의 이행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지난 13대 대선의 경우 민주와 반민주,독재와 반독재,군정종식등 정치적 문제가 핵심이슈로 부각되었었다.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문제,통일문제,교육,민생치안등 정책적 현안들을 둘러싸고 후보간에 공방이 치열했다.특히 금융실명제,물가,농어촌부채탕감,「아파트반값공급」등 경제문제를 둘러싼 공약경쟁이 뚜렷이 나타났다.하지만 각 후보자별로 정책적 차이가 두드러지지 못해 정책적 쟁점이 유권자들에게 분명히 어필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각 후보가 유세일변도의 선거운동방식을 지양하고 TV등 언론매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도 선거문화의 선진화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각 후보들은 종전의 세몰이식 대규모 집회대신 유권자를 직접 찾아다니는 「소매상식 유세」에 주력했다.각당은 대규모 유세가 유발하는 부정적 측면을 감안,이를 스스로 자제했다.
정부 당국은 이번 대선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안정기조가 그대로 유지되는등 경제적 부담이 최소화됐다는데 대해 안도하고 있다.지난 13대 대선 당시에는 경제가 과열된 상태에서 통화증발,물가앙등,소비증가등 갖가지 부작용과 후유증이 초래됐었다.
총통화량증가율에서는 지난달 가짜 CD사건여파로 정부목표수준 18.5%보다 높은 19.2%까지 올라갔으나 이달 들어서는 18.8%로 다시 안정되고 있고 현금통화비중도 8%이내의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다.소비자물가는 11월에 0.5% 하락하여 전년대비 4.4% 상승에 그침으로써 최근 3년간 가장 안정된 추세를 보이고 있고 주택가격도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다만 「현대파문」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앞으로 이에대해 적절히 조치해 나간다면 13대때와는 달리 이번 선거로 경제안정기조가 영향을 받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번 선거의 막판 「옥의 티」는 부산기관장 회식모임파문이었다.그러나 정부는 이사건이 정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적 모임일 뿐이며 관련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히 처벌할 방침임을 강조함으로써 분란의 소지를 없앴다.
근착 미국의 뉴스위크지는 13대 대선때와는 달리 이번 선거에서 주요후보자들에 대한 지지열기가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점차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어떤 후보도 민주화과정을 역행시킬 수 없다는 국민적 신뢰가 증대하면서 상대적으로 투표열기가 쇠퇴했다는 것이다.
관권개입의 차단,지역감정의 약화,선거운동방법의 선진화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번 대통령선거는 우리 선거문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며 이는 6공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민주화의 값진 결실임은 분명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