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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기 바둑서 3억원 잃어…” 감금·고문 혐의 납치범 구속

    서울 중부경찰서는 5일 내기 바둑으로 3억원을 잃자 돈을 뜯어내기 위해 같은 기원에 다니는 건설업자를 납치·감금하고 고문까지 가한 이모(49)씨를 강도상해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오후 5시쯤 경기 수원시 H기원에서 건설업자 최모(57)씨를 차에 태워 납치하고 현금 67만원과 신용카드 2개 등을 빼앗은 뒤 6일 동안 모텔에 감금한 채 “3억원을 내놓으라.”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희망을 본 사람들] (7·끝) ‘개인회생’ 통해 재기 다지는 김철수씨

    [희망을 본 사람들] (7·끝) ‘개인회생’ 통해 재기 다지는 김철수씨

    “월급의 일부를 가져갈 수 있게 되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억원의 빚을 개인회생 제도를 통해 부분 탕감받고 재기 의욕을 다지고 있는 김철수(37·가명)씨. 그는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과 카드회사, 제3금융권, 지자체 등 14개 채권자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다. ●영국 유학생에서 2억원대 채무자로 “찜질방과 친구, 직장동료의 집을 전전긍긍했습니다. 최악이었죠.” 지금은 웃고 있지만 채권추심업자들에게 시달리던 2년 전을 생각하면 철수씨는 아직도 끔찍하다. 철수씨의 악몽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수씨는 2000년 7년간의 영국 유학생활을 접고 유럽에 많은 투자를 하던 국내 중소기업에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회사의 무리한 투자로 철수씨가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부도가 났다. 그나마 적금으로 모은 2000만원과 부모님의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3000만원으로 대학가의 호프집을 인수했다. 그러나 사업이라곤 전혀 경험이 없던 철수씨는 호프집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현금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카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급기야 연체를 막기 위해 사채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금융회사들의 빚독촉과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며 차라리 죽을까 하는 생각도 수십 번씩 했습니다. 돈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면서 노숙자로 지내겠다는 결심까지 했었죠.” ●살인적 빚 독촉에 가정도 파탄 호프집도 경매로 넘어간 철수씨는 2002년 한 자동차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매일 걸려 오는 빚독촉 전화와 회사로 찾아온 사채업자들은 빚을 갚기 위한 자동차영업마저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살인적인 빚독촉에 가정도 파탄상태에 이르렀다. 아내, 아이와 따로 떨어져 지내야 했다. 부모님은 아들 빚으로 인한 불화로 이혼에 이르렀다. 불과 5년 만에 철수씨 개인이 속한 가정이란 작은 사회는 ‘빚’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젠 적금 넣으며 미래를 설계해요” 하루하루 절박감 속에 생활하던 철수씨가 ‘희망’이란 끈을 잡게 된 것은 김관기 변호사의 상담 카페를 통해 알게 된 법원의 개인회생제도였다. 2005년 12월 2억원이 넘는 빚을 안고 살던 철수씨는 법원으로부터 매달 55만원씩 5년간 3300여만원만 갚으면 모든 빚이 사라진다는 결정을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보는 순간이었다. 빚독촉도 끊기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둘째 아이도 그 무렵 생겼다. 철수씨는 둘째를 복덩이라 불렀다.“그 녀석이 생기면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아요. 첫째는 아빠 엄마와 함께 고생해서 정이 가고 둘째는 좋은 일 생기면서 나와 좋고요.” 수입의 일정한 돈만 내면 나머지 돈은 생활비로 가져갈 수 있게 된 철수씨는 “열심히 일하면 많은 돈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됐어요. 이제 작은 집을 마련해 보려고 적금도 넣고 있습니다.”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샷] 해외 골프의 덫

    지난 19일 올 첫 눈이 오면서 경기도 인근 골프장들이 휴장에 들어갔다. 본격적인 동계 시즌을 알리는 신호다. 골퍼들 역시 국내 골프장에서 라운드할 기회가 줄어들면서 해외 골프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한 해 100만 명이 해외골프장으로 나가고 있고, 이 가운데 40% 이상이 겨울철 해외투어를 다녀 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위험의 덫’이 도사리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지난해 동남아 현지 가이드가 골퍼들의 여권과 돈을 가지고 사라진 일이 벌어졌다. 한국 여권은 한 개당 2000달러(약 184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범죄의 표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가 하면 섹스관광을 부추긴 뒤 이를 미끼로 협박해 돈을 받아내기도 하고, 사기꾼들이 포함된 고액의 해외 골프 내기까지 횡행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지난해 중국으로 골프투어를 떠났던 A씨는 처음엔 가볍게 내기를 하자고 해 친목 차원에서 시작했다가 수 천 만원을 잃고 돌아온 경험이 있다. 이들의 수법이 워낙 주도면밀해 현지에서 돈을 빌려 주고 한국에 와서 이를 받아내는 ‘덫’에 걸려 든 것이다. 함부로 신고하지 못하도록 섹스와 환각제 등으로 유혹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단체로 골프훈련을 떠나는 선수들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다. 현지로 떠나기 전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현지에 도착해서야 유령회사이었음을 알고 국내로 돌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해외로 골프투어를 떠날 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가능하면 본인이 직접 여권을 소지하고 믿을 수 있는 여행사를 이용해야 한다. 가격이 조금 싸다고 해서 결정했다가는 자칫 큰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여행 일정은 한 달 전에 예약해 놓는 것이 좋다. 임박해서 여행일정을 잡다가는 확인이 힘들어 피해를 볼 수 있다. 카드 개수를 줄이고 현금은 꼭 필요한 만큼 가져가야 한다. 잘 모르는 사람과의 내기골프는 피할 것. 또 몸에 좋다고 권하는 식음료를 넙죽 받아먹는 것도 금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지로 떠나기 전 여행사와 여행지, 숙박 시설 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여행보험은 필수. 골프투어는 의외로 안전사고가 많다. 물론 위의 사례들은 일부 몰지각한 여행관계자와 골퍼 및 현지인들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온전한 해외 투어의 목적은 한 해 국내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데 있다. 돌아오는 봄 잘 다스려진 실력과 정신으로 국내 필드에 나서기 위해서라도 돌다리를 두드리듯 꼼꼼하게 해외 투어 계획을 세울 일이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이명박후보 결국 기소될 것”

    마지막 총공세다.16일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씨가 서울에 도착했다. 김씨의 송환과 그 후폭풍은 대통합민주신당에 남겨진 사실상의 마지막 카드다. 통합신당의 핵심 관계자는 “역대 대선에서 후보 등록일 이후 순위가 뒤바뀐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제 통합신당에 남은 시간은 길어야 일주일이라는 얘기다. 통합신당 클린선거대책위 정책검증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종률 의원은 이날 “김씨의 귀국으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결국 기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또 “실제 기소가 되면 후보 자격 상실은 불가피하다. 검찰은 한나라당을 위해서라도 수사결과를 신속히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경준씨가 오늘 입국한다. 향후 쟁점은 무엇인가. -이 후보가 핵심 당사자로서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될 부분이 많다. 너무 많다. 예컨대 검찰은 도곡동땅 차명보유 의혹에 대해 이 후보의 친형 이상은씨의 지분은 제3자 소유라고 했다. 땅 매각대금은 이씨 계좌에서 다스로 흘러갔다. 또 다스는 BBK에 190억원을 투자했다. 이씨 계좌에서 돈을 출금한 사람은 이 후보 재산관리인들이다. 이 모든 게 같은 시점에 일어났다. 일반인의 상식에서 판단하면 된다. ▶이 후보측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는데. -이 후보의 심복 이모씨가 옵셔널벤처스 주식에 대한 주문, 계좌관리, 송금 등 주가조작 내지 자금흐름의 핵심적 업무를 맡았다. 현재 이모씨는 이 후보 선대위에서 비서로 근무하고 있다. 또 이 후보의 최측근 김백준씨는 BBK의 리스크매니저였다. 현재 옵셔널벤처스의 공동대표도 이 후보의 측근이다. 이 후보는 실질적으로 위 회사를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지금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차분히 지켜보는 게 적절하다. 이 후보도 검찰에 대한 협박을 중단해야 한다. 이제 사실과 증거로 말할 단계다. 정치적 공세를 할 시점이 아니다. ▶앞으로 상황에 대한 전망은. -이 후보의 다스 실소유 의혹 부분은 쉽게 기소 가능하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BBK 주가조작의 경우 이 후보와 김백준, 이모씨 등의 수사 협조 없이는 당장 결과가 나오기 힘들 수 있다. 물리적으로 후보 등록일 전까지는 수사일정이 너무 촉박하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최연소 이영경씨의 피랍생활

    “탈레반이 소지품을 다 뺏아 갔는데 아빠가 준 신용카드는 돌려 달라고 해서 가지고 있었어요. 힘들 때마다 신용카드를 보며 아빠를 생각했어요.” 피랍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이영경(22·여)씨는 2일 샘안양병원에서 아버지 이창진(51)씨를 만나 악몽 같은 피랍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아직까지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탈레반’의 ‘탈’자만 나와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안양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씨는 어학연수를 다녀 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아프간 봉사활동을 떠났다. 지난해에도 샘물교회 청년회 일원으로 인도 봉사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씨의 아버지는 “아직 정신적으로 충격이 많고, 말하는 것도 앞뒤가 잘 안 맞아서 오락가락하는 것들이 있다.”고 전했다. 이씨의 아버지를 통해 피랍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탈레반은 7월19일 봉사단원 23명을 납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4명씩 나눠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당시 탈레반은 피랍자들을 분산 수용하면서 “서울에 보내 줄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고, 봉사단원들은 이 말을 믿고 나이가 어린 이씨를 가장 먼저 가는 팀에 넣어 주었다. 그러나 탈레반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가장 먼저 떠난 4명은 제일 멀고 험한 곳으로 가게 됐다. 피랍 생활 동안 내내 풀어 주겠다는 거짓말을 수백차례 들었다. 매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기 때문에 풀려 나기 전 날에 민가에서 잘 때도 ‘이번에도 또 거짓말이겠지.’생각하고 믿지 않았다. 그는 적신월사 쪽에 인도되고 나서야 ‘아 진짜구나.’하고 생각했다. ●“첫날 소지품 모두 빼앗겨” 탈레반은 납치하자마자 소지품을 모조리 다 빼앗았다. 이씨는 디지털 카메라와 MP3 등을 모두 빼앗겼다. 탈레반의 협박에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 “아빠가 준 신용카드는 돌려 달라.”고 했고, 탈레반도 잠시 그를 보다가 신용카드만은 돌려 주었다. 신용카드는 이씨의 아버지가 여행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비상금’으로 준 것으로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유일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억류 내내 아버지의 이름이 쓰인 신용카드를 보며 아버지 생각을 했다. ●동굴과 움집에 가둔 후 밖에서 지켜 피랍생활 내내 4명은 산속에 있는 움집이나 동굴에 재우고 먹을 것은 빵과 홍차, 끓인 물 등을 주었다. 함께 있던 피랍자가 황달기가 있자 포도 등도 제공했다. 먹을 것은 항상 그 수준이었고, 동굴이나 움집 같은 곳에 살다 보니 온 몸에 벌레가 물어 성한 곳이 없었다. 동굴에 있을 때 탈레반들은 안에서 감시하는 것은 아니었고 움집이나 동굴에 가둔 뒤 밖에서 지키는 식으로 감시했다고 한다. 밤에 이동할 때는 오토바이에 태우고 데리고 다녔다고 이씨는 전했다. 계속 그렇게 지내다가 딱 하루 풀려 나기 전날 밤에 민가에 데려 가서 재웠다. 대화는 탈레반이 영어를 못해 손짓과 몸짓으로 했다. 피랍 내내 ‘죽이겠다.’는 협박보다는 반항하거나 도망을 갈까봐 거짓말하면서 주로 회유를 많이 했다. 안양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이명박 “검찰 협박말고 다 공개하라” 홍사덕 “수사결과 발표 동의서 내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16일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을 둘러싼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이 후보측은 “검찰이 출석 요구하면 나가겠다. 협박 말고 다 공개하라.”고 검찰을 반격했다. 검찰은 “자진 출석하면 수사하겠다.”고 응수했다. 박근혜 후보측은 “이 후보는 검찰에 협조하라.”고 훈수를 놨다. 여기에 검찰이 이 후보 큰형 상은씨의 재산관리인으로 지목한 이영배씨까지 기자회견을 자청, 검찰이 내린 결론을 부정했다. 이 후보와 이영배씨가 검찰과 대치하며 ‘전략적 제휴’를 꾀하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박 후보측과 검찰이 ‘수사내용 공개’라는 카드를 공유하며 한 배를 탄 모양새다. 특히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층이 12.6∼16.1%포인트가량으로 늘어나자 이·박 후보 양측은 부동층을 공략하고, 지지층의 투표율 높이기에 올인하면서 경선 후유증이 우려될 정도로 사생결단식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이 후보는 사실상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는 이날 오후 여의도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도곡동 땅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제 땅이 아니다.”면서 “검찰이 다른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협박할 것이 아니라 즉각 다 공개하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 후보측을 향해서도 “사퇴 요구는 경선 무산을 위한 기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영배씨의 태도도 강경했다. 그는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홍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 자신이 이상은씨의 재산관리인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이씨는 검찰이 수사를 재개하고 소환 통보하면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후보 캠프의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은 “이 후보가 검찰 발표를 가로막으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며 이 후보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또 “당장 큰형 이상은씨와 재산관리인 이영배씨 등에게 검찰이 지금까지 확보한 수사 내용을 발표해도 좋다는 동의서를 제출하게 하라.”고 촉구했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이날 이 후보 회견에 대해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추가 공개를 할 게 있으면 공개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후보의 경우 검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공개할 것도 없다.”라며 우회적으로 이 후보를 압박했다. 홍성규 박지연기자 cool@seoul.co.kr
  • [아프간 사태 분수령] 고민 깊어가는 우리 정부

    [아프간 사태 분수령] 고민 깊어가는 우리 정부

    “우리가 던질 카드는 극히 제한적이다. 납치단체측이 석방조건을 바꾸기만 바랄 뿐이다.”(정부 고위 당국자) 주 아프간 한국 대사관과 탈레반 무장세력이 전화통화에 이어 직접 대면접촉을 시도하면서 양측의 직접 협상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며칠째 접촉 장소 및 안전보장 문제 등을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접촉 자체도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탈레반측이 대사관과 인질간 전화통화를 허용하는 등 한국 정부와의 접촉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대면접촉이 이뤄질 경우 장기화 국면을 맞은 석방협상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대면접촉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아 보인다.“직접접촉에는 나섰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는 당국자의 발언이 이를 대변한다. 먼저 사태 초기부터 유지해 온 ‘납치단체와 협상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국제적 원칙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있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동참, 파병까지 한 상황에서 탈레반을 직접 만나 협상할 경우, 그들을 인정해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또 아프간 정부와 미국측이 수감자·인질 맞교환을 거부하고 있어 우리측이 독자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물밑으로 몸값 협상을 하는 정도다. 건강이 악화된 것으로 알려진 여성 인질 2명의 우선 석방을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아프간 정부와 미국측에 유연한 대응을 요청해 온 만큼 비밀리에 일부 수감자를 석방하는 등 맞교환 명분을 살려주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지만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이에 따라 대면접촉을 하더라도 결과에 따라 원치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탈레반측이 한국 정부가 별다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석방조건을 바꾸는 등 우호적으로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며 “다시 인질 추가 살해 협박 등 강경론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면접촉을 하더라도 장소 및 안전보장 문제가 관건이다. 정부 대표단의 안전이 보장되지 못할 경우,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또 아프간 정부 관계자 및 지역 원로들을 협상장에 대동하지 않고는 탈레반측과 통역 없이 대화를 하기 힘들기 때문에 아프간 정부측에 의존할 경우 또다시 협상이 공전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 소식통은 “대면접촉은 우리의 입장을 밝히면서 협상을 연장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만일 군사작전을 하더라도 준비에 3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직접접촉을 통해 시간을 벌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탈레반, 살해위협 재개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인질을 납치한 탈레반이 5일 인질들에 대한 살해 위협을 재개했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이날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와 전화통화에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불만족스럽다.”면서 “만약 오늘도 한국 정부의 노력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인질들을 살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디는 이날 한국정부측과의 접촉 사실을 밝히면서 “한국정부는 유엔의 안전보장도 받아내지 못했고, 유엔에 공식 요청도 하지 못했다.”며 언제든 인질들을 살해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한국정부와 대면 접촉을 위해 장소 등에 대해 협의해온 탈레반은 지난 3일 유엔이 한국정부와의 접촉과 관련한 안전을 보장하라고 요구했으나 유엔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살해 위협 재개는 6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리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정부 당국자는 “아프간 피랍자 중 한 명과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4일 직접 전화 통화를 했다.”고 5일 전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측과 납치단체 간 전화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4일 오후 피랍자 중 한 명과 짧은 시간동안 전화통화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 전화통화에서 피랍자 21명의 안전과 건강 등이 이야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 샤 아마드자이 가즈니주 경찰서장도 4일 로이터통신에 “협상장소를 둘러싼 협의가 계속되고 있다.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면 무력이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정부는 아프간 피랍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외교와 군사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창의적 해법’을 추진하고 나섰다. 정부는 이를 위해 하나의 조건이 아니라 2∼3개 이상 복수의 조건을 묶은 패키지 형식의 협상을 검토 중이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 주둔 연장이나 아프간 현지 동의·다산 부대의 즉각 철군, 아프간 대규모 경제 원조, 탈레반 수감자와 피랍자의 교환 노력 등 다양한 방안이 고려 대상에 포함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탈레반측과 다양한 경로로 접촉하고 있다.”면서 “‘피랍자-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카드는 미국과 아프간 정부의 몫으로 우리 정부로서는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전달했다.”고 밝혔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한국 정부가 탈레반과의 전화협상에서 “한국정부가 수감자 석방을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정부는 탈레반과 직접 협상을 위한 접촉장소가 정해지더라도 접촉 자체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등 현 시점에서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피랍자들의 건강과 관련, 정부 당국자는 “의약품이 피랍자들에게 전달된 듯한 정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도 “항생제와 진통제, 비타민제, 심장약 등 한국인들을 위한 의약품을 가즈니 주 카라바그 사막지역에 두고 왔다.”는 와하지 병원의 모하마드 하심 와하지 원장의 말을 인용, 의약품이 탈레반에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탈레반 대변인 아마디가 “인질들은 1명씩, 적어도 500m 떨어진 가옥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인질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4일 AFP통신과의 통화에서 “저들(탈레반)이 우리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고 울먹이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교황 베네딕토 16세 등에게 구명을 호소했다. 이춘규 박찬구 김미경기자 ckpark@seoul.co.kr
  • [아프간 피랍사태] 탈레반 다시 살해 협박 왜

    아프가니스탄의 반정부 무장세력 탈레반이 또다시 한국인 인질살해 협박카드를 들고 나왔다. 협상의 고비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왔던 이 카드를 한국정부와 대면 접촉이 난항을 겪자 여지없이 다시 꺼내든 것이다. 카리 유수프 아마디 탈레반 대변인은 5일 아프간 통신사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와 전화 통화에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사태 해결을 위해 충분치 않다며 이같이 위협했다. 아마디 대변인은 이날 한국정부측이 자신들을 접촉한 사실을 밝히면서 “한국 정부는 탈레반 죄수 석방 문제에 관한 미국의 동의를 받아내고 대면 협상을 위한 유엔측의 탈레반 안전 보장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한국정부는 유엔의 안전보장도 받아내지 못했고, 심지어 유엔에 공식 요청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만큼 언제든 인질들을 살해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 탈레반이 인질 추가 살해란 초강수 전술을 다시 쓰면서 인질 사태를 둘러싼 상황이 다시 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그동안 탈레반들은 살해 협박 이후 한국인 인질 2명을 살해하면서 살해 협박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보여준 바 있다. 탈레반이 다시 인질살해 협박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탈레반 동료 수감자 석방이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한국 정부에 대해 아프간과 미국정부를 더욱 강력하게 밀어붙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6일 정상회담에 나서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에게 군사작전과 같은 강공책을 만지작거리지 말 것을 경고하는 의미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강경파와 온건파가 혼재돼 있는 탈레반 내부에서 협상이 장기화되면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으로도 판단된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고비마다 ‘살해카드’ 꺼낼듯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고비마다 ‘살해카드’ 꺼낼듯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13일째인 31일. 탈레반은 8월1일 오후 4시30분(한국시간)으로 협상 시한을 다시 설정하면서 한국과 아프간 정부를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 동료 수감자의 석방 요구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으면 한국인 인질들을 추가 살해할 것이란 위협도 빼놓지 않았다. 탈레반은 이날 새벽에 한국인 가운데 두 번째로 심성민씨를 살해하며 그동안의 ‘추가 살해 위협’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탈레반의 일관된 요구인 ‘동료 수감자 석방’요구를 손에 쥐기 위해 협상 고비 때마다 ‘인질 살해’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1일 협상 시한까지 탈레반 수감자의 석방이 어려워 보여 희생자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여성 인질 안전도 위험속에 특히 대규모 인질 살해도 불사하겠다는 탈레반들의 태도는 탈레반 최고지도자를 거론하는 상황에서도 감지돼 불안감을 더했다. “새로 제시된 협상시한은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 최고 지도부가 내린 것”이란 30일 카리 유수프 아마디 대변인의 발언은 ‘결연한’ 탈레반측의 입장을 보여줘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인질 일부를 추가 살해하더라도 탈레반 수감자들에 대한 석방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수감자 석방을 끝내 이뤄내지 못하더라도 탈레반 지도부가 한국인 인질들의 희생을 통해 동료 수감자들을 잊지 않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이 점에서 한국인 인질의 추가 희생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또 재집권과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국가 건설이 목표인 탈레반이 목적 관철을 위해 ‘작은 희생’은 아무렇지 않게 여길 가능성까지 높아 남성은 물론 여성 인질들의 안전까지도 위험속에 들어간 상황으로 판단된다. 실제 아마디 대변인은 이날 “아프간 정부가 협상에 진지한 태도로 임하지 않아 한국인 인질 1명을 추가 살해했다.”면서 “남성 인질들은 차례로 살해하고 여성 인질이 다음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의 요구를 계속 거부하면 한국인 인질을 몇 단계로 나눠 순차적으로 살해할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대량 살해도 개의치 않을 듯 반면 인질 사태 해결의 직접적인 열쇠를 쥔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 수감자 석방에 반대 입장임을 감안할 때, 백종천 대통령 특사와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과의 2차 면담에서도 포로 교환문제가 진전을 보지 못하면 탈레반은 인질 추가 살해라는 ‘극약 처방’에 나설 확률이 높다. 탈레반은 동시에 친(親)탈레반 언론인 아프간 이슬라믹 프레스(AIP)와 알 자지라 방송 등을 통해 한국인 인질들의 육성과 동영상을 계속 공개하는 등 심리전도 강화하며 아프간 및 한국 정부를 더 압박할 전망이다. ‘테러리스트와 타협 불가’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아프간과 미국의 입장이 요지부동인 상황에서 한국인 인질들의 생명은 강한 바람앞의 등불인 상태다. 인질 사태를 장기화 국면으로 끌며 인질들을 하나씩 살해하면서라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탈레반의 벼랑끝 전술과 잇따른 초강수에 한국인 인질들의 안전 위기는 더욱 심연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종찬기자 siinjc@seoul.co.kr
  • [국내외 전문가가 제시하는 해법] “美 등과 협력… 탈레반에 명분줘야”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22명의 인질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선 탈레반 내부의 강경파를 만족시키는 카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리를 추구하는 온건파는 금전 제공 등 물밑 거래로 설득이 가능하고, 우리 정부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제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을 지상 과제로 삼은 강경파에게 명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두 번 다시 인질과 포로를 교환하는 일은 없다.’는 아프간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카르자이 정권을 쥐고 흔드는 미국을 설득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장은 “표면적으로는 아프간 정부가 당사자이지만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다.‘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는 미국을 설득하는 데 외교력을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또한 아프간 정부에 대해서도 “‘이런 식이면 향후 경제적 지원은 기대하지 말라.’는 협박에 준하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종택 명지대 인문대학장(아랍지역학과) 역시 “미국에 대한 외교적 노력이 중요하다.”면서 “테러범들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원칙이 확고하지만, 탈레반 역시 명분을 중요시하는 집단이다. 한 명의 탈레반 포로도 풀어주지 않으면서 해결을 보려고 하는 것은 안이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탈레반에 영향력을 지닌 유일한 국가인 파키스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분석도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이종화 경찰대 교수는 “아무리 뛰어난 협상가가 가더라도 현재 한국 정부가 내놓을 카드는 돈밖에 없다.”면서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파키스탄의 힘을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탈레반에 대한 파키스탄 정보국의 정보력과 공작능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며 유착관계 역시 공공연한 비밀”이라면서 “파키스탄 정부에 적극적인 협조와 정보를 요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질 1명이 숨진 상황이지만,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탈레반을 협상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준희 한양대 세계지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정부는 사건발생 초기에 탈레반을 테러단체쯤으로 보고 직접 접촉을 하지 않아 두 번 정도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 미국이나 아프간 정부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탈레반을 협상의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연구원은 또한 “탈레반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피랍된 한국인들을 분산 수용한 것처럼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부족 원로회의와 접촉해 지역 경제 원조 등을 명분으로 탈레반들을 직접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는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인질을 납치한 세력이 탈레반 무장 세력이라면 오래 끌지 않을 텐데, 현재 정황에 비춰 보면 각기 다른 부족 단위의 세력이 다른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납치를 당한 입장에서 초조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심리를 너무 드러내면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역이용당할 수 있다.”면서 “아랍쪽 관행을 보면 사고 자체가 급한 게 없고 느긋한 면이 많다. 이들의 생활양식을 이해하고 문제를 차분히 풀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서재희 이경주기자 argus@seoul.co.kr
  • [피랍 한국인 1명 피살] 탈레반 ‘포로 석방’ 고수… 협상 난항

    ‘악몽과도 같은’ 5시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이 발생한 지 7일 만인 25일 한국 및 아프간 정부측과 납치단체인 탈레반측이 하루 종일 밀고 당기는 ‘벼랑끝 협상’을 진행했다. 결국 피랍자 8명이 풀려나게 됐다는 ‘낭보’가 먼저 일부 외신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곧이어 탈레반측이 한국인 남성 1명을 살해했다는 슬픈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전날 탈레반측이 죄수 8명과 피랍자 8명을 맞교환하자고 밝힘에 따라 이날 피랍자들에 대한 조기 석방 기대감이 커졌다. 맞교환설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정부는 납치된 23명 한국인을 모두 푸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선별 석방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만큼 협상을 본격화해 피랍자 전부를 석방시키겠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기대감과 달리 오후 4시30분쯤 탈레반측이 “(협상)시한은 이미 만료됐다.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오늘 오후 2시(현지시간·한국시간 6시30분)까지 한국인 인질 중 일부를 죽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협상 분위기는 최악의 상황으로 돌변했다. 오후 7시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측에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 수감 중인 탈레반 요원 8명의 석방을 약속하면서 죄수와 인질 교환이 준비되고 있다는 교도통신 보도가 나오면서 탈레반이 살해 협박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커지면서 안도감이 감돌았다. 정부가 인질 석방을 위해 ‘모든 카드’를 던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정부는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외신보도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신중함을 보였다. 이어 오후 9시쯤 피랍 한국인 8명이 곧 석방된다는 보도에 이어 남성 1명이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부측은 “확인 중”이라고만 밝히며 입장 발표를 유보했다. 이어 외신을 통해 “1명은 사망했으나 22명은 억류 중”이라는 엇갈린 소식이 전해졌지만 정부측은 이에 대해서도 확인하지 못했다. 정부는 겉으로는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물밑으로는 계속되는 급반전 상황에서 사실 여부를 파악하느라 분주히 움직였으나 오후 10시30분쯤 예정됐던 조희용 외교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도 지연되는 사태를 빚었다. 정부 당국자는 앞서 이날 탈레반측이 요구 사항을 한국 및 아프간 정부측에 제시했다며, 본격적인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탈레반측의 협상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아프간 포로와 한국인 인질 8명씩 맞교환 ▲인질 직접 전화·대면에 10만달러 제공 ▲1인당 석방 대가로 거액의 돈 지불 ▲요새 이동 등 안전 확보 등에 대해 협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부측은 몸값 등 경제적 보상 조치에 매달린 반면, 탈레반측은 죄수·인질 교환을 주장하면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면서 8명은 풀려났으나 죄수 석방은 합의되지 못해 인질 1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협상의 주도권을 잡지 못했을 뿐더러 오후 늦게 인질 8명 석방 및 1명 살해설로 일대 혼란이 이는데도 침묵으로 일관, 정보력 부재에 대한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정부 소식통은 “거액의 몸값에 죄수 석방까지 상당한 조건을 제시했으나 협상 조건에 대한 탈레반 내부의 이견도 있었던 것 같고, 요구 사항을 더 높이려는 전략에 따라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을 보인다.”며 “탈레반측이 추가 협상을 제시한 만큼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으로 보여 향후 전망도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결국 피랍자 23명 전원을 한꺼번에 조속히 구출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했던 한국·아프간 정부측은 8명 구출여부를 뒤로 하더라도 이같은 정보력 부재속에 피말리는 협상에 다시 나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편 당초 청와대는 이날 저녁 “(한국시간으로)오후 8시까지 납치단체에서 모종의 액션이 나올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다 인질 8명의 석방 소식이 전해지자 “바로 이것이다. 이제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고 반색했다. 사전에 납치단체측과 우리 정부 사이에 ‘8명 석방’에 관한 협상이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하지만 곧이어 ‘1명 살해’가능성이 높아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한번 두고 보자. 사실이라면 ‘8명 석방’보다는 ‘1명 살해’가 훨씬 크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고 당혹해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인질 석방의 대가로 현금을 직접 주고 받는 것은 우리 정부의 위상으로나 탈레반의 명분으로나 맞지 않다.”면서 “부족의 의료·보건시설 등을 우리가 지원하는 형식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아프간서 한국인 피랍] 한국인 납치 무얼 노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등 무장단체들이 외국인을 납치한 뒤 해당 국가의 주둔군을 철수하라고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권좌에서 밀려난 탈레반들은 외국인 인질을 정치적·전략적 목적을 위해 써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영향력 회복을 시도하면서 이같은 ‘철군 카드’를 위한 외국인 납치는 더 빈번해지고 있다. 그동안에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국가들의 민간인을 집중적으로 목표물로 삼았다. 또한 석방 교섭에서 주둔 군대의 철수를 어김없이 요구했었다. 지난 18일 독일인 2명 납치, 그리고 지난 3월 이탈리아 아프간 주재 기자 납치 등에서도 그랬다. 20일 탈레반을 자칭하는 무장단체 대변인의 아프간 주둔 한국군 철수 요구는 이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됐다. 탈레반은 납치한 민간인들을 해당 국가에서 철수 여론을 증폭시키고 정치적 불안을 야기시키는 ‘무기’로 사용했다. 실제 지난 3월 이탈리아 마스트로자모코 기자 납치 때 이탈리아 내각은 야당의 거센 공세로 벼랑 끝에 몰렸다. 여기에서 재미를 본 탈레반이 이를 악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쉽지 않은 협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도 이런 점에서다. 이와 함께 구금된 탈레반 동료의 석방 등도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인질들을 풀어주는 대신 그만큼 또는 그 이상의 탈레반 동료들을 석방하라는 요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이탈리아 기자 납치 때에도 민간인 한 명을 풀어주는 대신 동료 탈레반 5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자 이탈리아 기자와 함께 동행한 아프간 운전 기사를 살해하면서 협박했다. 아프간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인질 5명을 풀어주었다. 또 외국인에 대한 대거 납치활동을 벌이고 있는 데에는 외국인 및 기독교 등 외래종교에 대한 반감의 증가도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최근 급격히 변하고 있는 아프간 민심도 탈레반에게는 외국인 납치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그 사내가 ‘발가벗고’ 도둑질을 하는 까닭은

    “사내가 발가벗고 도둑질을 하는 까닭은? 뭐,말할 필요도 없이 ‘일’을 신속하게 끝내기 위해서겠죠.” 중국 대륙에 한 남성이 발가벗거나 사각 팬츠만 입고 남의 집을 짓쳐 들어가 도둑질을 하는 것은 물론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까지 하다 덜미를 잡히는 바람에 주변 사람들이 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동남부 푸젠(福建)성 난핑(南平)시 옌핑(延平)구에 사는 한 사내는 새벽에 발가벗거나 트렁크만 입고 남의 집에 들어가 돈이나 물건을 훔치거나 예쁜 여성이 있으면 성폭행까지 하는 ‘변태 도둑’이 붙잡혀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고 중국법원(中國法院)망이 6일 보도했다. 중국법원망에 따르면 ‘변태 도둑X’은 천웨이타이(陳爲泰).그는 지난 2005년 5월21일 새벽 1시쯤 난핑시 라이저우(來舟)진의 한 회사 기숙사에 몰래 들어갔다.그것도 사각 팬츠 바람으로….이때 마침 동탕하고 화사한 모습의 랴오(廖·여)모씨가 천지를 모르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랴오씨의 아리잠직한 모습을 보자마자 천은 마치 망치를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 속이 하얗게 비는 바람에 물건을 후무리려는 생각은 아예 잊어버렸다. 곧바로 사추리가 뜨거워지며 불두덩이가 달아오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그녀의 배에다 칼을 들이대며 “조용히 해라.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조용히 속삭였다.깜짝 놀란 라오씨는 반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첫번째 ‘작업’에 성공한 천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이 바람에 그는 양경장수 노릇보다는 여성 싱글들의 기숙사를 먹잇감으로 눈을 돌렸다.이를 위해 동분서주했다.그 결과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불과 3개월도 안된 짧은 기간에 모두 7건의 강절도와 성폭행을 자행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천은 창문을 넘어들어가거나 IC카드를 이용해 문을 따고 들어가 현금과 물건을 훔치거나 아리따운 여성이 있으면 욱대겨 성폭행을 저질렀다.이 때문에 라이저우진 일대 여성들은 엄청난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같은 천의 범죄 행각으로 사회 문제화하는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난핑 공안(경찰)당국은 ‘변태 도둑’ 검거에 총력전을 펼쳤다.하지만 그는 공안당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미 중남부 구이저우(貴州)성으로 범죄 무대를 이미 옮겨버린 뒤였다. 이미 구이저우성으로 범죄 무대를 옮겼다는 첩보를 입수한 난핑 공안당국은 곧바로 구이저우성에 TF팀을 급파,구이저우성 공안당국과 공동 범인 색출에 나섰다.이 덕분에 난핑 공안당국은 천의 덜미를 잡았다. 푸젠성 난핑시 옌핑구 법원은 천웨이타이에게 여성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폭력과 협박을 통해 성폭행을 자행한 혐의로 강간죄,불법으로 남의 물건을 점유한 죄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李·朴 햇빛에 내놓으면 마를것” “비열한 공갈”

    ‘이명박 X파일’과 ‘박근혜 XCD’는 과연 존재하나.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가 14일 소문으로만 떠돌던 한나라당 ‘빅2’에 대한 검증자료를 갖고 있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X파일 존재를 시사하는 듯한 그의 발언이 단순한 엄포용인지, 대선 정국에 파란을 몰고 올 정도로 가공할 위력을 지녔는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지난 2002년에 이어 ‘제2의 김대업’ 논란으로 이어져 진흙탕 폭로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장 원내대표는 이날 “다른 세 후보(원희룡·홍준표·고진화)는 몰라도 두 후보(이명박·박근혜)는 음침한 지난날이 있기 때문에 태양빛에 내놓으면 국민의 태양빛에 말라 경선을 해볼지 말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12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박 후보측은 물론 한나라당은 ‘정치공작의 망령’‘비열한 공갈·협박’‘국민 기만의 꼼수’ 등 격정적인 표현을 써가며 강력 비난했다. 두 후보측은 즉각 성명을 내고 “국민들은 더이상 저들의 비열한 정치공작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한 뒤 “공갈·협박만 일삼지 말고 터트릴 게 있다면 터트려 보라.”며 한목소리로 반발했다. 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소속 대선주자들을 겨냥한 범여권의 검증파상 공세를 ‘정치공작’으로 규정한 뒤 “공작정치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에는 많은 시민단체들도 뜻을 같이할 것”이라며 ‘장외 투쟁’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범여권의 행태는 대정부질문을 악용한 흑색선전과 공작정치”라면서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이런 부분에 대해선 초전박살을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와 이명박 후보측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검증 배후설’을 놓고 날선 대립각을 세웠다. 청와대는 ‘법적 대응’ 카드로 이 후보를 정조준했고, 이 전 시장측은 ‘선거 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청와대와 이 후보간 극한 대치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 후보와 관련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의혹 제기를 청와대 지시에 의한 정권 차원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한 것은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이고, 무책임한 정치공세”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이 후보측 장광근 대변인은 “청와대의 이명박 후보 사과 및 법적 조치 운운은 적반하장의 극치”라며 “청와대야말로 집권연장 공작혐의로 국민들에 의해 고발될 것”이라고 청와대의 사과 요구를 거부했다. 이 후보측은 이 후보가 처남 명의로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신문사에 대해서도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그 결과에 따라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측 이혜훈 대변인도 “박 전 대표가 사학재단 비리에 대해 사주하고 묵인했다고 하는데 그런 의혹을 제기하려면 근거를 명확히 대야 한다.”면서 “그런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데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박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상상초월 보이스 피싱 수법… 당신을 노린다

    상상초월 보이스 피싱 수법… 당신을 노린다

    타이완·중국을 통한 국제 ‘보이스 피싱’(전화사기)이 극성을 부리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31일 전화사기로 거액을 가로챈 중국인 불법체류 금융사기단 17명이 경찰에 검거됐고,30일에는 아들(24)을 납치하고 있다는 전화 한 통에 한 지방법원장이 수천만원을 송금하는 사기를 당한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법장,6000만원 사기 검찰과 법원은 31일 지방법원 A법원장이 지난달 28일 오전 전화사기범으로부터 “아들을 납치하고 있다.”는 전화에 속아 6000만원을 뜯겨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A법원장은 사건 당일 오전 11시쯤 국회 초청 업무관계로 서울로 와 자택에 머물고 있던 중 “당신의 아들을 납치하고 있으니 돈 500만원을 입금하라.”는 협박전화를 받았다. 사기범은 “경찰에 알리거나 아들에게 통화를 하면 아들이 위험하게 될 테니 알리지 말라.”면서 아들의 목소리를 가장한 가짜 비명소리 등을 들려주었다. 다급해진 A법원장은 휴대전화로 급히 근무지 비서실로 연락해 500만원과 1000만원을 각각 두 차례,3000만원 한 차례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송금했다. 사기범은 같은 날 오후 2시까지 기다리면서 돈이 입금되자 추가로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 사건 당시 법원으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검찰은 사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주민등록 조회를 통해 법원장 아들의 휴대전화를 알아냈고, 같은 날 오후 2시쯤 통화를 하면서 사기임을 확인했다. A법원장은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 아들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며 검찰에 아들의 휴대전화를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범인들이 여러 계좌로 돈을 입금하도록 한 뒤 서울 근교에서 돈을 찾았으며 전화 발신지는 중국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구에서도 17명 검거 대구 동부경찰서도 이날 경·검찰 및 금융감독원, 금융권 관계자 등을 사칭해 노인, 부녀자 등을 상대로 금융사기를 벌인 B(21)씨 등 중국인과 타이완인 불법 체류자 10명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은 또 유학생 자격으로 입국해 국내 금융기관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예금통장 35개를 일괄 개설한 뒤 1개당 25만원씩 받고 B씨 등에게 넘긴 C(23)씨 등 중국인 유학생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통장 25개, 현금 등 3000여만원, 현금 인출카드 및 체크카드 90개, 대포(가짜 전화번호) 휴대전화 16개, 위조 여권 등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대구 한찬규·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9)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19) 심하전역과 인조반정 Ⅰ

    광해군은 노회한 명과 사나운 후금 사이의 대결 속으로 말려들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가 정보를 수집하고, 기미책을 강구하며, 자강 능력을 배양하려 애썼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정세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비록 외교적 노력을 통해 누르하치와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누르하치가 명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그 때문에 양자의 관계가 갈등으로 치닫는 한, 조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1618년(광해군 10) 누르하치가 푸순성을 함락시킨 이후 벌어졌던 일련의 상황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병 여부를 둘러싼 갈등 명은 관응진(官應震) 등이 주장한 이이제이책(以夷制夷策)에 따라 조선도 병력을 내어 후금을 공략하는 데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1618년 윤 4월, 명의 병부시랑(兵部侍郞) 왕가수(汪可受)는 조선에 보낸 격문(檄文)에서 병력을 뽑아 별도의 기별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요청했다. 형식은 요청이지만 사실상 ‘지시’였다. 명의 통첩을 받았을 때 조선 조정의 의견은 확연히 갈라졌다. 광해군은 파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먼저 조선의 군사적 역량이 미약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그는 1618년 5월1일, 신료들에게 내린 교시(敎示)에서 ‘병(兵)과 농(農)이 분리되지 않은 조선의 병력을 동원해 봤자 후금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므로 굳이 병력을 보내야 한다면 수천명 정도를 의주(義州) 등지에 대기시켜 기각(角)의 형세를 이루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사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국경 바깥으로 출전시킬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광해군은 명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그는 후금의 군사력이 막강하므로 명의 원정군이 일거에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오랜 동안 후금 관련정보를 수집함으로써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자 판단이었다. 광해군은 명에 보내는 회답서신 속에 “경솔하게 정벌에 나서지 말고 다시 생각하여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내용을 첨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비변사(備邊司) 신료들은 반발했다. 그들은 명에 보내는 서신에 명에 대해 ‘충고’의 성격을 담은 문구를 삽입하는 것 자체를 비판했다. ‘조선은 소방(小邦)이자 명의 번국(藩國)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국(大國)인 명의 군무(軍務)에 간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저 명의 지휘에 따라 진퇴를 결정해야 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비변사 신료들은 또한 ‘명은 조선에 부모의 나라’이며 ‘임진왜란으로 조선이 망할 뻔했을 때 나라를 다시 세워준 은혜를 베풀었다.’며 이른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상기시켰다. ‘자식’의 처지에서 ‘은혜를 베푼 부모’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면 그저 있는 힘을 다해 구원하려 노력해야 할 뿐, 자신의 강약(强弱)이나 처지를 따지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광해군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대제학 이이첨(李爾瞻)조차 춘추대의(春秋大義)를 지키고, 재조지은에 보답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채근했다. ●굴레가 돼버린 再造之恩 ‘명이 재조지은을 베풀었고, 조선은 그에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조선 지배층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왜란 초반, 일본군에게 일방적으로 밀려 나라의 존망 자체가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명군의 참전은 그야말로 한줄기 ‘복음’이었다. 더욱이 1593년 1월, 명군이 평양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전세가 역전되면서부터 ‘재조지은’은 조선이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지고(至高)의 은혜’로 굳어졌다. 아예 ‘임진왜란’을 ‘재조(再造)’라고 부르는 인물조차 등장할 정도였다. 비록 명군이 일본군과 싸우는 것을 회피하고, 조선 백성들에게 엄청난 민폐를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조지은’의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같은 분위기를 이끄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은 선조(宣祖)였다. 선조는 임진왜란을 끝낼 수 있었던 모든 공로를 명군의 역할 덕분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조선 관군이나 의병의 역할은 평가절하했다. 임진왜란 최고의 영웅 이순신은 두개의 적과 맞서야 했다. 하나는 일본군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선조다. 이순신이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할수록, 따라서 그에 대한 국민적 신망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선조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초라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의병장 곽재우와 선조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끝난 뒤 논공행상 과정에서 선조는 이순신을 제치고, 정곤수(鄭崑壽)를 1등 공신이자 원훈(元勳)으로 책봉했다. 그가 명군을 불러오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나마 곽재우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재조지은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조선군 영웅들의 위상은 낮아지고, 선조의 실추된 위상이 다소나마 회복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지식인들은 조선 내부의 그 같은 분위기에 반색했다. 푸순성 함락 이후 등장한 ‘주요석획(籌遼碩)’에서 요동을 수복하는 데 조선을 이용하자고 주장했던 인물들이 내세운 논리는 거의 똑같았다. ‘임진왜란 때 우리는 모든 힘을 기울여 변변찮은 조선을 도왔다. 이제 그 은혜를 갚으라고 요구해도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의 신료와 명의 지식인을 막론하고 ‘재조지은’을 강조하고 있던 분위기를 광해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명에 보내는 회답서신에 ‘혈기를 갖고 있는 조선 백성은 누구라도 황제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문장을 잘 다듬을 것을 지시했다. 외교를 위해 겉으로라도 ‘재조지은’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되다 ‘재조지은에 보답하려면 출병하라.’는 안팎의 공세에 맞서 광해군은 외교적 ‘카드’를 총동원했다. 광해군은 먼저 조선에 출병하라고 요청한 주체가 명의 황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자문을 보낸 왕가수는 명의 신료일 뿐, 황제가 아니므로 번국의 입장에서는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명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조선의 어려운 사정을 황제에게 직접 알리기 위해 사신들을 줄줄이 베이징으로 보냈다. 황제에게 조선 사정을 제대로 보고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았다. 사신들이 소지한 국서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조선은 아직 왜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의 미약한 군사력을 동원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등이었다. 명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명 조정은 후금에 대한 군사적 응징을 총괄할 경략(經略)으로 양호(楊鎬)를 낙점해 랴오양(遼陽)으로 보냈다. 임진왜란 때도 총사령관으로 참전했던 그는 조선 사정에 밝았다. 양호는 조선 사신들이 소지한 국서의 내용을 문제 삼아 베이징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조선이 은혜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사신 왕래를 통해 요행을 바란다고 질책했다. 광해군은 양호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황제의 칙서가 없는 상황에서는 파병할 수 없다고 버텼다. 양호는 조선 사신 박정길(朴鼎吉)에게 “북관과 연락하고 조선을 고무하라.(聯絡北關鼓舞朝鮮)”는 문구가 담긴 황제의 칙서를 보여주었다. ‘북관’은 당시 누르하치의 후금에 밀리고 있던 해서여진의 예허(葉赫)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양호는 또한 당시 요동지역에 ‘조선이 후금, 일본과 내통하고 있으며 후금군 가운데 3000명이 조선인’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음을 들어 협박했다. 박정길 일행은 양호의 협박에 밀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조선 영내로 돌아오고 말았다. 1618년 10월.‘조선은 병력을 동원하여 오랑캐를 치는 데 협조하고, 양호의 지휘를 받으라.’는 내용의 명 황제의 칙서가 날아들었다. 광해군의 입장에 반대했던 비변사 신료들은 힘을 얻었고, 출병하라는 채근 또한 더 심해졌다. 안팎으로 곱사등이가 된 처지에서 광해군은 소신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시기 명군의 참전을 통해 떠오른 ‘재조지은’은 17세기 초에도 조선 정치와 외교 전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전기봉·80억 요구’ 법정공방 예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보복폭행’ 사건이 또 다른 ‘진실 게임’에 돌입했다. 경찰은 김 회장이 직접 납치 및 감금을 지시하고 전기충격기 등 흉기를 사용했다는 혐의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섰지만, 한화 측은 이를 부인하면서 오히려 피해자들이 ‘80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과 김 회장 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으로 향후 보강 수사 과정은 물론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어떤 혐의가 인정되느냐에 따라 처벌 수위가 크게 달라진다.●80억원 합의설 진위는? 김 회장 측이 ‘합의금 80억원’에 대한 카드를 새롭게 꺼낸 것은 피해자들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해 여론을 바꿔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회장 변호인 측은 “대개는 몇백, 몇천만원이면 (합의가) 되는 것인데 오죽하면 안 됐겠냐. 수사기관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인은 80억원이라는 액수를 제시한 인물에 대해 “북창동 S클럽 조모 사장보다 윗선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수사담당자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 회장 측과 피해자들 모두 합의금에 대해 거론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경찰 관계자는 13일 “80억원 요구설이 나온 뒤 피해자들에게 확인했지만 전혀 모른다고 하더라. 경찰 조사 때는 한화 측도 얘기가 없었다.”면서 “변호사들이 물타기 용으로 흔히 쓰는 수법이 아닌가 싶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희곤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은 “(만약 사실이라면) 80억원을 요구할 때 정확한 정황이나 행위에 합당한 요구였는지 등을 조사해봐야 한다. 문제가 되면 (협박 등) 여러 가지로 조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전기충격기 휘둘렀다” vs “안 했다” 지난 12일 발부된 김 회장 구속영장에 따르면 김 회장은 3월8일 오후 10시쯤 청계산 빌라 신축공사장에서 피해자들의 무릎을 꿇게 한 상태에서 조모씨와 김모씨의 머리와 목에 전기봉으로 각 1회씩 전기 충격을 가했다. 또 “네가 내 아들을 때렸냐.”며 주먹과 발로 조씨를 수차례 때리고 150㎝ 길이의 쇠파이프로 등을 1회 때렸으며, 김씨와 정모씨, 다른 조모씨 등의 얼굴을 주먹과 발로 10회 이상 폭행했다. 김 회장이 앞서 이들을 청담동 G가라오케에서 청계산으로 데려갈 것을 직접 지시하고 아들에게 폭행을 지시하는 등 범행을 총지휘한 구체적 정황도 영장에 포함돼 있다.영장에는 또 김 회장이 아들의 피해 사실을 보고받은 뒤 직접 보복하기로 마음먹고 한화그룹 김모 부속실장과 진모 경호과장을 통해 범서방파 출신 오모씨와 G가라오케 사장인 장모씨,D토건 김모 사장 등과 범행계획 및 역할분담을 모의했다고 적시돼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지난 11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경호원을 동원해 종업원들을 청계산으로 끌고가 폭행한 혐의는 인정했으나 쇠파이프 및 전기충격기로 폭행한 혐의와 조직폭력배 동원에 대해서는 부인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위압적 분위기에서 대환대출 보증

    Q결혼해 1남 1녀를 두었으나 남편이 1999년 6월 가출해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고 살고 있습니다. 주변 분의 도움을 받아 연립주택을 마련하였는데, 가출한 남편의 카드빚 독촉이 최근에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사용한 카드를 사용한 적도 본 적도 없었지만, 카드 회사 직원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빚을 갚으라고 전화하고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건장한 체격의 두 사람이 찾아와서 저를 바깥으로 불러내서 남편의 카드 대금을 갚지 않아도 되니 대출금약정서에 서명해 달라면서 회유해 저는 겁도 나고 상황을 면하기 위해 승용차 안에서 서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오고 있고, 살고 있는 연립주택도 가압류 되었습니다. 돈 한 푼 받은 것 없이 집을 잃고 거리로 나가게 생겼습니다. 억울합니다. -박정순(가명·52세) A남편의 카드 빚 상환을 위한 대환대출 보증을 서 주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최근 금융실무상 흔히 사용된 대환대출은 기존의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그 당시까지의 채무 원리금에 상당하는 새로운 대출을 하여, 그 대출금을 현실적으로 채무자에게 지급하지 않고 채무자의 원래 빚을 상환한 것으로 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존의 채무자가 대환대출을 받는 것은 특히 문제가 되는 사항이 없습니다. 문제는 대환대출을 실행하면서 관계 없는 제3자를 보증인으로 추가하는 경우입니다. 보증이라고 하는 것은 주채무자가 이행하지 않은 채무를 보증인이 이행하겠다고 하는 채권자와 보증인 사이의 약정입니다. 주채무자가 갚지 않아서 보증인이 이행하고 나면 보증인이 갚은 금액을 주채무자가 보증인에게 상환하게 되니 실질적으로는 주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액면가에 보증인에게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경상적으로 결제되는 카드 이용대금에 관하여 대환대출을 실행한다는 것은 주채무자인 신용카드이용자가 이미 변제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주채무자가 이미 연체에 빠져 있어 그 회수가 의문인 상황이라면 주채무자에 대한 채권은 액면금액과 상관 없이 실질가치는 0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가치가 없는 채권을 액면금액에 파는 것은 결국 그 금액에 상당하는 가치를 무상으로 이전 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증인으로부터 카드회사로 무상의 가치 이전은 물론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증인이 주채무자를 위하여 대신 빚을 갚아 주어 새 생활을 시작하게 하기 위하여 주채무자에게 증여를 할 의도일 수도 있고, 주채무자에게 새로 돈을 빌려 주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보증인은 그럴 만한 자력이 충분히 있을 것이라는 것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정당화 사유 내지는 대가가 없는 대환대출 보증은 일반적으로 그 정당성에 의문이 있습니다. 개인의 소유권 보호와 의사결정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계약의 체결에 의한 재화, 용역의 교환을 수단으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실정법상으로도 몇 가지 사유로 대환대출보증의 효력을 다툴 수 있습니다. 첫째, 민법 제104조에 의하면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현저하게 공정을 잃었다고 한다고 함은 당사자가 자신의 가치를 제공하고 받은 반대급부가 너무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을 뜻합니다. 대환대출 보증의 실질을 위와 같이 변제가치를 잃은 채권을 보증인이 액면가에 사는 것으로 이해하면 당연히 이와 같은 불균형이 있습니다. 문제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인데, 50세까지 아이 둘 데리고 혼자서 힘들게 살아 온 주부가 집요한 빚독촉을 받아 온 상황에서라면 궁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민법 제110조 제1항에 의해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습니다. 즉 속이거나 협박을 한 것입니다. 이 사기, 강박은 경우에 따라 선택적으로 주장할 수도 있고 같이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남편의 카드 대금을 갚지 않아도 되니 서명하라고 한 것은 사기로 해석할 수도 있고 서명하지 않으면 계속 독촉을 하여 괴롭게 하겠다고 위협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3조에 의하면, 카드회사는 대출을 시행하면서 보증을 받아내는 사업자로서 고객인 박정순 씨에게 약관의 내용을 계약의 종류에 따라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방법으로 명시하고, 당해 약관의 사본을 교부하여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하며 약관에 정하여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였어야 합니다. 이 부분을 이행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정순씨의 경우, 채무부존재확인의 소송을 제기하고 가압류에 대하여는 이의신청을 내는 방법으로 권리의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김관기 변호사가 담당하는 ‘채무상담실’의 상담신청은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14) 광해군과 누르하치,그리고 명나라Ⅰ

    누르하치를 치는 데 동참하라는 격문을 받았을 때 광해군(光海君)이 보인 반응은 신중했다. 아니 냉정했다. 그는 누르하치가 ‘천하의 강적’이기 때문에 미약한 조선군의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왕가수가 격문을 보낸 것은 조선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명의 요구를 호락호락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비변사(備邊司) 신료들의 주장은 달랐다. 그들은 격문에서 대의(大義)를 내세워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보답하라고 했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적어도 7000명 정도의 병력은 보내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자 광해군이 일갈했다.‘곧 장마철이 다가오는데 대병을 동원하여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모험을 벌이려는 명군 지휘부의 수준을 알 만하다.’는 것이었다. 파병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광해군 정권의 존폐, 나아가 조선의 운명에 영향을 줄 만큼 격심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한반도에 강대국 입김 커질때마다 ‘부활´ 몇해 전, 모 방송사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을 대상으로 우리 역사에서 다시 평가해야 할 인물들을 꼽아보라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교사들은 ‘다시 평가해야 할 대상’으로 광해군을 가장 많이 거론했다. 광해군이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폐위된 뒤 ‘폭군(暴君·포악한 군주)’ ‘혼군(昏君·어리석은 군주)’ 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것을 고려하면 뜻밖의 일이었다. 광해군(1575∼1641)은 16세기 말엽과 17세기 초반을 살다간 인물이지만 오늘날 그는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지정학적 조건에서 외교문제와 관련된 현안들이 불거질 적마다 그는 ‘부활’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이라크에 파병하는 여부를 놓고 국론이 분열되었을 때도 반대론자들은 그를 불러낸 바 있다. 한반도에 미치는 강대국의 입김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에 대한 관심 또한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광해군은 선조의 둘째 아들이었다. 선조는 정비(正妃)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었다. 대신 후궁들과의 사이에 13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공빈(恭嬪) 김씨와의 사이에서 얻은 왕자가 임해군(臨海君)과 광해군이다. 선조는 54세 때인 1606년, 늘그막에 새로 맞이한 정비 인목왕후(仁穆王后)에게서 다시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얻었다. 하지만 선조가 죽은 뒤, 그의 아들들 가운데는 비명횡사하는 왕자들이 속출한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 임해군과 영창대군이 역모 혐의를 받아 죽었다. 광해군은 인빈(仁嬪) 김씨의 손자인 능양군(綾陽君-정원군의 아들, 인조)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났다. 인조대에는 인성군(仁城君)이 역모죄에 걸려 죽었고, 이괄(李适)에 의해 국왕으로 추대되었던 흥안군(興安君)도 반란 실패후 비명횡사했다. 선조는 과연 이같은 상황을 예측했을까? 여하튼 첩자(妾子)이자 차자(次子)인 광해군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왕은 물론 왕세자가 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사료들 가운데는 ‘광해군이 총명하고 학문에 힘쓴다.’고 유년 시절의 그를 칭찬하는 내용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총명’과 ‘면학’ 만으로 적자(嫡子)도 장자(長子)도 아닌 그의 태생적인 한계가 극복될 수는 없었다. ●“총명하고 학문 좋아해 세자 책봉” 광해군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임진왜란이었다.1592년 4월28일, 충주에서 배수진을 치고 일본군과 맞섰던 신립(申砬) 휘하의 조선군이 참패했다는 소식이 서울로 날아들었다. 일본군이 곧 들이닥칠 것이란 소문에 도성의 분위기는 공황 상태에 빠졌고, 조정 신료들은 선조에게 파천(播遷)할 것을 건의했다. 뾰족한 대책이 없었던 선조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파천하기로 결정한 직후 우부승지 신잡(申)은 선조에게 빨리 왕세자를 책봉하여 민심을 수습하라고 건의했다. 그는 충주에서 전사한 신립의 형이었다. 선조는 대신들을 선정전(宣政殿)으로 불러모았다. 선조가 ‘왕세자로 누가 좋겠냐?’고 물었을 때 대신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그것은 전하께서 스스로 결정하실 문제입니다.” 선조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대신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신하된 처지에 ‘미래의 주군(主君)’을 선택하거나 추천하는 것은 엄청난 불충(不忠)이기 때문이다. 선조의 고민과 대신들의 침묵은 낮부터 한밤까지 이어졌다.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지쳤는지 자리를 피하려 하자, 신잡이 ‘오늘 끝장을 봐야 한다.’고 잡아끌었다. “광해군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니 세자로 삼고 싶은 데 경들의 뜻은 어떠한가?” 선조의 이 한마디에 대신들은 “종묘 사직과 생민들의 복입니다.”라고 외쳤다. 광해군이 엉겁결에 왕세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4월30일, 선조와 광해군은 북으로 파천 길에 올랐다. 이윽고 조정이 평양에 머물고 있던 5월, 선조는 광해군에게 분조(分朝)를 맡아 함경도로 떠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의 북상을 막아낼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선조는 최악의 경우, 의주(義州)를 거쳐 명나라로 귀순할 것을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는 순간, 선조는 더 이상 ‘조선의 왕’일 수 없었다. 분조란 바로 그같은 상황에 대비,‘조정을 쪼개’ 광해군에게 넘기는 것이었다. 광해군은 왕세자가 되자마자 ‘나눠진 조정’을 이끄는 왕이 되었다. 그에게는 전쟁으로 지친 민심을 위무(慰撫)하고, 근왕병을 모집하여 전란을 수습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조명연합군 승리뒤 明의 힘 통감 광해군의 분조 활동은 1592년 6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12월까지 평안도·함경도·강원도·황해도 등지를 옮겨다니며 민심을 수습하고, 일본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했다. 그가 순행(巡行)했던 지역의 주변에는 곳곳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어 경호 문제가 심각했다. 때로는 험준한 산악과 고개를 넘거나 노숙을 하는 것도 피하지 않았다. 광해군의 분조 활동이 남긴 성과는 컸다. 국왕 선조가 궁벽한 국경 도시 의주에 머무는 한, 황해도 이남의 사서(士庶)들에게 조정의 존재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 당시 의주의 조정은 강화도를 매개로 서해(西海)를 통해 삼남지방과 겨우 연결되고 있었다. 따라서 일본군이 할퀴고 간 내륙지역의 백성들 가운데는 나라가 이미 망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바로 그때 광해군이 분조를 이끌고 나타나 조정이 건재하고 있음을 알렸다. 광해군의 출현은 백성들에게 ‘충성을 바칠 대상’이 아직 살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592년 12월, 이여송이 이끄는 명의 원군이 들어오고 이듬해 1월, 평양전투에서 조·명연합군은 승리를 거두었다. 전세가 역전되고 일본군이 후퇴하자 전쟁이 곧 끝날 것이란 기대가 넘쳐났다. 하지만 명군이 벽제(碧蹄) 전투에서 일본군에 참패하면서 상황은 다시 꼬이기 시작했다. 패전 이후 명군 지휘부는 입장을 바꾸었다. 일본군과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조선을 위해 피를 흘릴 수는 없다고 했다. 지루한 강화(講和)협상이 시작되었다. 협상 시작 이후 명군 지휘부는 조선 조정에 대해 일본군을 공격하지 말라고 강요했다. 일본군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명군 지휘부는 자신들의 명령을 어기고 일본군을 공격한 조선군 장수들을 잡아다가 매질을 하기도 했다. 조선군의 작전통제권은 명군 지휘부에 의해 박탈되었다. 선조가 명군 지휘부의 방침에 격렬히 반발하자, 명나라 조정에서는 국왕을 교체하겠다는 협박이 흘러나왔다. ‘무능한 선조를 퇴위시키고 유능한 광해군을 즉위시킨다.’는 것이다.‘광해군 카드’로써 선조를 길들여 자신들의 강화 방침을 관철시키겠다는 심산이었다. 이에 선조는 ‘광해군에게 양위(讓位)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광해군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임진왜란을 통해 명나라의 실체와 권력의 속성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되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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