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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폭력시위 사과없이 위로만

    中, 폭력시위 사과없이 위로만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서울 박창규기자|중국 정부는 서울에서의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과정에서 빚어진 중국인들의 폭력 행위와 관련,29일 한국인 부상자들을 위로한다고 밝혔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인들이 성화를 환영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격한 행동을 함으로써 경찰관과 기자 등이 부상했다.”며 “다친 한국인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 대변인은 사과나 유감의 뜻은 별도로 표명하지 않은 채 중국인들의 행위에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장 대변인은 이어 “중국 정부는 해외 거주 중국인들에게 현지의 법률과 규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가 사건에 연루된 중국인들을 객관적으로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은 중국인들의 반한(反韓)정서라는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재중국 선양(瀋陽)한국인회의 한 간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민족의식이 강한 중국인들 사이에서 혐한 또는 반한 정서가 분출되면 우리 교민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대사관측이 성화봉송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해 중국인 유학생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9일 “각국의 중국대사관이 베이징올림픽 성화봉송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해 현지 중국인 유학생들을 무더기로 동원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6일 나가노현에서 열린 성화 봉송 행사에는 5000여명의 중국인들이 일본 각지에서 집결했다. 그러나 도쿄에서 참가한 유학생들은 “모든 경비를 대사관측이 부담했다.1인당 2000엔인 교통비만 각자 부담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jj@seoul.co.kr
  • 日 최고의 ‘러브호텔 전문가’는 교포 3세

    한 재일교포 3세가 일본 제일의 ‘러브호텔 박사’로 언론의 조명을 받고있어 화제다. 오사카 출생의 재일교포 3세 김익견(金益見·28)씨는 지난달 20일 자신의 저서 ‘러브호텔 진화론’을 출간해 언론으로부터 ‘일본 제일의 러브호텔 연구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대학 재학시절부터 호텔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연구를 시작한 김씨는 대학 졸업논문 주제를 러브호텔로 할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다. 처음 김씨는 러브호텔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가졌으나 이후 깨끗하고 밝은 분위기의 러브호텔도 있다는 사실에 문화 충격(culture shock)까지 느꼈다. 또 사람마다 갖고있는 러브호텔에 대한 개념이 각각 다르다는 것에 흥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 관계자 인터뷰등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때때로 러브호텔 주변을 촬영하다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거나 호텔경영인으로부터 문전박대 받는 등 고생도 만만치 않았지만 연구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김씨는 “주변사람들이 러브호텔에 왜 다니냐고 이상하게 바라볼 때도 많았다.”며 “무시당하는 듯한 느낌이 싫었지만 그래도 연구를 계속했다.”고 밝혔다. 또 “모니터를 하다보면 러브호텔를 이용하는 남녀 차이도 알 수 있다.”며 “간사이(関西)지방의 여성들은 할인쿠폰을 쓰거나 이용료를 각각 계산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씨는 러브호텔 연구이외에도 ‘혐한류’(嫌韓流)에 대항하는 홈페이지(makikome.com)를 개설하는 등 일본내에 만연한 재일교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노력하고 있다. 사진=zakzak.co.jp·민단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임진왜란 때인 1598년 전북 남원에서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400년 이상 흘렀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6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뿌리찾기에 나섰다. 그는 규슈 가고시마현 미야마 마을에 정착, 지금도 14개 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조선도공들 가운데 박씨의 후손이다. 한·일관계는 물론 뒤엉킨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도고 교수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시게노리 2차대전 때 외무대신 역임 도고 교수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전과 패전시 외무대신을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다. 아버지도, 그도 고위외교관 출신으로 3대 외교관 집안이다. 도자기노예인 조선도공 박씨 집안 3대가 일본의 고위 외교직을 차례로 역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게노리는 원래 박무덕이었다. 부친 박수승 대까지 도자기노예 후예로서 모진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으로 차별이 심화됐다. 수승은 박씨란 성을 자신의 대에서 끊고 귀화했다.1882년생 시게노리가 5살 때이다. 수재 시게노리는 고향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학에 들어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그 뒤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독일 외교관시절 만난 그의 아내는 독일여자였다. 아이가 다섯 있던 그녀의 사별한 남편 게오르그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기본 설계한 건축기사다. 시게노리는 독일과 소련 대사를 역임한 뒤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인 1941년 외무상에 발탁되었다. 군부에 맞서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외무상을 그만뒀으나 종전 직전인 45년 4월 외무상에 재기용됐다. 그때 일왕에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라고 강력 주장, 조기종전으로 일본사람의 전멸을 피하게 했다는 칭송도 받았다. 시게노리는 A급 전범으로 20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개전 반대 노력 등을 전범재판소가 평가, 사형은 피했다. 도고 교수는 “다섯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막연한 기억밖에 없다. 어머니, 형과 함께 가끔 스가모형무소로 면회갔을 때 낭하에서 검붉은 환자복을 입고 걸어나오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시게노리는 미군병원에서 1950년 7월 숨졌다. 시게노리는 겉으로는 도공 박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겼지만 가보지 못한 조선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국장 시절 조선에서 최초로 외교관 시험에 합격, 일본 외무성 과장으로 부임했던 직원에게 자신도 조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토로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시게노리는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고, 무덤은 도쿄시내 아오야마묘지에 있다. ●DJ납치, 주한미군철수와 아버지 시게노리는 외동딸만을 두었다. 딸과 결혼한 자신의 비서관 출신 사위를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켜 도고 후미히코라고 하게 된다. 후미히코의 한국사랑은 유별났다.1973년 한일 각료회의 때 외무성 심의관으로 한국을 방문, 김대중납치사건을 처리했다. 문세광의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뒤 한국을 재방문, 사건수습에 진력했다고 한다. 외무성 차관 때도 한국과 인연을 맺었으며 차관 사임 뒤 부부가 한국을 다시 방문해 판문점과 휴전선 부근의 남침용 땅굴을 보고, 한국의 안보 상황을 체험했다.77년 카터 전 미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일본대사로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자 워싱턴 조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 한·일 공동외교를 폈다. 부친이 한국과 공동외교전을 폈다는 사실에 대해 도고 교수는 “거의 모르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아버지는 사무차관 때 중국 및 한국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오래 전부터(400여년전) 한국과 연결됐다.”고 독백처럼 말했다. 후미히코는 20여년 전, 부인은 10여년 전 숨졌다. ●남원의 박씨 집안 후손… 뿌리를 찾아나섰다 후미히코는 태평양전쟁 말기 노약자 소개정책에 따라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을 뒀다. 형 시게히코는 워싱턴포스트지 도쿄특파원을 하다 최근 퇴직했다. 특파원 시절에는 한국도 여러번 방문, 따뜻한 가슴으로 여러편의 기사를 작성해 신문에 실었다.“현재 퇴직후 공부중”이라고 한다. 도고 교수는 도쿄대학 출신 엘리트외교관이었다.17년간 러시아관계 일을 맡아 러시아어, 영어에 능통했다.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마디만 할 수 있다. 두 아들(각각 34·30세)은 현재 일본의 회사에 재직중이다. 형도 아들만 둘이다. 도고 교수는 “내 핏속에는 독일인 피도 4분의1이 흐른다. 일부 조선인의 피도 흐른다.”며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일본이 나의 유일한 조국”이라며 단호했다. 그러나 핏줄찾기 열의는 대단하다. 최근의 일본인들에게 핏줄의식은 없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하기 전 고향 미야마 마을을 찾았다고 밝힐 때는 고향·핏줄을 중시하는 조선도공의 영향이 느껴졌다. 그의 조상들이 남원서 왔다는 것은 형의 ‘조부 시게노리’라는 책에 실려 있다.“한국에 있는 4개월 동안 반드시 가보고 싶다.”면서 남원과 ‘춘향전’,‘광한루’ 등이라고 적은, 소중하게 갖고 온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형 시게히코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조선시대 도자기 사발을 가보로 모신다. 자신도 미야마의 조선도공 출신 심수관씨로부터 받은 몇 개의 도자기를 도쿄 미나토구 한국대사관 근처 자택에 “소중히 보관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연결된 끈들이다. ●현대사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도고 교수는 2002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촉망받던 고위 외교관리였다.1997년 유럽아시아 국장이었다.98년 11월 조선도공들의 가고시마 정착 400주년 기념식장에 당시의 한·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김종필 한국 총리 등과 동석하는 큰 영광도 누렸다. 그 해에 ‘시게노리 기념관’이 생겨나는 등 고향 미야마 마을은 온통 조선도공의 열기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양국 총리와 외무장관 등이 시게노리의 동상 등을 방문했을 때는 마을의 지도자와 한국측 참석자들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를 “아주 독특하고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복잡한 일본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측근인 외무성의 사토 마사루가 2차대전 뒤 일·러간 현안인 북방4개 섬 일본 반환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2002년 구속되면서다. 그도 네덜란드대사 부임 8개월 만에 해임돼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지난해 6월 사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까지 4년 이상 일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조국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4개 섬 일괄반환론 틀 안에서 4개 섬의 귀속을 인정해주면 러시아가 언제까지 보유해도 무방하다는 ‘가나와 제안’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안 되면 우선 2개 섬 반환을 확실히 하고,2개 섬은 다음에 교섭하는 단계론을 펴다 우익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맹렬한 공격에 사토가 구속되고 실무 추진 당시 상사였던 그는 해임됐다. 도고 교수는 “북방영토가 일본의 영토라는 원칙은 전후에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지 교섭 방법론이 문제였다.”며 당시에는 자신도 네덜란드에서 귀국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본행을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눌러앉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망명은 저널리즘적인 표현이다. 그저 일본이 싫어서 귀국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외무성을 퇴임한 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2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2년, 타이완 단코대 4개월,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 6개월 등의 교수를 거쳤다. 지난 7월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부인과 함께 일본 도쿄에 주민등록을 해 영주키로 했다. ●“한국학생들 매우 논리적” 그는 미국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번 학기 초빙교수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일주일에 3시간짜리 한 강좌를 맡고 있다. 한국 학생 20명과 외국학생 10명에게 한·일관계 등 동북아 외교 현안을 정면으로 가르친다. 도고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논리적이다. 이들이 한국지도부에 들어가는 날 한·일 양국관계는 매우 밝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학자, 시민단체 등 새로운 형태의 한·일 교류가 활발한 것도 반기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 정권이 한·일 관계를 잘 해갈 것이라며 급한 국내과제를 해결, 일본 내부 반발을 해소해 정권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최근 정치·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감이 북한·일본과의 관계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봤다. 대통령선거 뒤 한·일 양국이 정상간 셔틀외교를 재개하길 바랐다. 아울러 ‘일본은 없다’,‘혐한류’ 등 책이 출판돼 양국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도고 교수는 일본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 동북아시아 평화시대를 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사회가 우경화됐다지만 우경화되거나 반한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상으로 한반도는 통일될 시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도고 가즈히코 교수 ▲1945년 나가노현 출생(태평양전쟁말기 노약자의 소개정책으로 인해 모친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거주중) ▲68년 도쿄대학 교양학과 졸업 ▲68년 4월 외무성 입성 ▲72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근무(모두 3차례 대사관 근무를 포함 소련과장과 유럽아시아국장 등으로 17년간이나 러시아관계 일을 맡음) ▲91년 워싱턴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98년 외무성 조약국장 ▲99년 유럽아시아 국장 ▲2001년 네덜란드대사 부임 ▲02년4월 네덜란드대사 해임 ▲02년5월 일본을 떠나 유랑 ▲07년7일 5년 만에 일본 귀국 ●최근의 저서 ‘북방영토 교섭비록’(일어) ‘일본외교 1945∼2003’(영어)
  • “한국인은 범죄민족?” ‘혐한류3’ 출간 논란

    “한국인은 범죄민족?” ‘혐한류3’ 출간 논란

    국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혐한류’(嫌韓流)만화 시리즈의 3편이 28일 새로 출간돼 다시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혐한류 시리즈는 독도 영유권 주장, 재일 한국인 차별, 반일 여론 등과 같은 문제를 통해 한국을 폄하하는 내용을 담은 만화로 지난 2005년과 2006년 1·2편이 발매돼 총76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저자인 야마노샤린(山野車輪)은 위안부와 역사 교과서 문제를 철저한 우익 시각에서 저술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작가로 이번에도 왜곡된 역사관을 꼬집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혐한류 3편을 출간했다. 이번 3편에는 ‘일본인을 괴롭히는 재일한국인과 한국인의 죄’, ‘자학사관’(自虐史観)에 입각한 한국의 역사관’, ‘범죄민족 한국인은 누구?’ 등과 같은 자극적인 타이틀로 한국을 심층 분석하는 내용이 실려있어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현재 일본 아마존닷컴(amazon.jp)에 올라온 ‘혐한류 3’은 판매순위 6위를 차지하는등 베스트셀러를 예고하고 있다. 혐한류 1·2편과 달리 이번 3편은 온라인 쇼핑몰뿐만이 아니라 편의점 및 서점 등지에서도 판매 중이어서 다양한 독자층이 구매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韓네티즌, 광복절 맞아 日 ‘2채널’ 사이버공격 선포

    韓네티즌, 광복절 맞아 日 ‘2채널’ 사이버공격 선포

    철없는 네티즌들의 빗나간 애국심? 8·15 광복절에 맞아 일부 한국의 네티즌들이 일본의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 ‘2채널’의 사이버 공격을 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일본 온라인뉴스사이트 ‘트래비언뉴스’(trebian.livedoor.jp)는 14일 “한국의 일부 네티즌들이 8·15 광복절 낮 12시 ‘2채널’에 공격을 선포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과거에도 한국 네티즌들이 이른바 ‘F5 attack’(사이트 갱신을 계속 반복시킴으로써 서버에 과부하가 걸리게 하는 것)으로 사이버 세상을 마비시킨 적이 있다.” 며 공격의 진원지로 추정되는 한국의 한 카페를 소개했다. 소개된 사이트는 한 유명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카페. 지난 12일 처음 개설되자마자 약 2000여명의 네티즌이 가입했으며 14일 카페 사이트를 옮겨 현재까지 3300여명의 회원들을 두고있다. 카페 첫 화면에는 독도와 태극기 사진위로 ‘8·15 광복절 기념, 일본 대규모 사이트 2ch 공습 대작전!’이라는 문구로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같은 소식이 공격대상인 ‘2채널’사이트에도 알려지자 일본 네티즌들도 순식간에 6백여개의 의견을 게시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관련기사] “한국 싫어” 日 2채널 댓글 청소년이 주로 단다 아이디 ‘0vBR5/Ca0’는 “2ch웹사이트 주소를 다른 홈페이지로 링크시켜 맞서 싸우자.”고 밝혔고 ‘DhLTXBlG0’ 는 “8·15의식 수준이 사이버테러라니…” 라고 적었다. 또 ‘wygVrgfY0’는 “지난해에 있었던 한국 네티즌들의 공격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 만큼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편 한국에는 대표적인 ‘혐한 커뮤니티’ 사이트로 잘 알려진 ‘2채널’은 일본을 대표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로 사회전반의 논쟁거리를 주제로 삼아 거침없는 설전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한국에 가보니 볼 것 없더라”

    지난 몇년 간 ‘겨울연가’와 ‘욘사마’로 대변되는 한류(韓流)열풍은 하루가 멀다하고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일제강점기 등을 지나며 약소민족으로서의 열등감과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한국인들을 일시에 황홀감과 통쾌함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한류 이면에 ‘혐한류(嫌韓流)’ 또한 엄존하고 있음을 외면해 온 것은 아닐까. 이는 보도를 소홀히 한 언론의 탓도 있지만, 부작용이나 비판 등에 대해서는 애써 귀를 닫아버리는 잘못된 습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다. 여기 일본 내 한류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책이 있다.‘일본 한류, 한국과 일본에서 보다’(주영하 등 지음, 한국학중앙연구원 펴냄)는 일본 한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 한류의 현황과 효과 등에 대해 다각도로 살핀 책이다. 책은 “욘사마의 모든 행동은 각본에 짜여 있다.”“한국에 가보니 볼 것이 없다.”는 등 거세게 일고 있는 한류 역풍 현상과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번지고 있는 ‘닛폰필(일본풍)’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국가 이미지 구축 사업을 연예산업에만 맡길 수 없다.”는 목소리도 귀기울일 만하다. 드라마, 영화, 가요 등이 한류의 선봉 역할을 했다면 이에 대한 뒷받침과 확산작업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담당해야 할 몫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최근 들어 전체 영상물 수출의 76%에 달하는 드라마가 지난해보다 37%나 떨어지는 등 한류에 냉기가 느껴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다시금 진정한 한류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문한다.‘겨울연가’‘쉬리’‘가을동화’‘대장금’ 등으로 한류의 사례가 한정돼 있는 점, 근래의 한류가 봉착한 문제에 대한 속시원한 해명이 부족한 점 등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한국 싫어” 日 2채널 댓글 청소년이 주로 단다

    “한국 싫어” 日 2채널 댓글 청소년이 주로 단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혐한’(嫌韓)커뮤니티 사이트로 알려진 ‘2채널(2ch)’의 이용자 중 댓글을 가장 많이 올리는 층은 주로 12~19세의 청소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경제일간지 니혼게이자이(日本經際. 이하 닛케이)는 “전체 네티즌의 77.4%가 2채널을 이용해 본적 있으며 그 중 11%가 댓글을 올린다.”고 26일 보도했다. 또 “의견을 개진한 11% 중 댓글을 가장 많이 올리는 층은 12~19세의 청소년들”이라고 전했다. 이 설문조사는 닛케이가 6월 중순 1만 3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다. 그러나 결과에 대해 일본 네티즌들은 “믿을 수 없는 조사결과”라며 입방아에 올리고 있다. 일본 온라인뉴스 ‘제이캐스트’는 28일 “니케이의 조사결과가 오히려 2채널 사용자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했다. 정작 2채널 네티즌들은 이용자의 대부분이 30대라고 생각한다는 것. 30대의 한 네티즌은 “나와 비슷한 연배의 네티즌들은 창피해서 솔직히 답변을 못했을 것”이라며 “이 나이에 2채널 네티즌이라고 하면 조롱거리가 된다.” 고 조사 결과를 불신했다. 2채널 사이트는 일본을 대표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로 사회전반의 논쟁거리를 주제로 삼아 거침없는 설전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일본어판 유튜브에 ‘한국비하 동영상’ 도 넘었다

    일본어판 유튜브에 ‘한국비하 동영상’ 도 넘었다

    세계적인 UCC사이트 ‘유튜브’(YouTube)와 지난 19일 오픈한 일본어판 유튜브에 한국과 한국인을 비하하는 내용의 동영상이 수없이 많아 한국의 실체가 왜곡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일본어판 유튜브에서 키워드 ‘한국’으로 검색된 동영상수만 무려 6만 7천개. 대부분의 동영상에는 한국의 사회문제와 한·일간의 정치적 논란거리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비하하는 네티즌들의 제작물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한국에 관한 좋지않은 뉴스등이 일본네티즌들에 의해 끊임없이 올려져 세계인들이 한국을 오해의 시선으로 바라볼 소지를 안고 있다. 일례로 한 일본인 네티즌이 올린 ‘오오타카 미키(大高未貴)가 한국에 고한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는 “한국은 자국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주변국에 도움을 청하다가도 ‘반미’· ’반일’을 외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와 같은 ‘혐한’(嫌韓) 발언만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 일본인 네티즌은 ‘한국성형트러블’이라는 제목으로 “18세 이상의 한국인 여성은 2명중 1명꼴로 성형을 한다.”는 과장된 자료를 올렸다. 한국에서 유학중인 일본인 나카무라 히토미(中村ひとみ,24)씨는 “왜곡된 동영상으로 한국의 실체를 일본인들이 오해할 수 있다.”며 “한국의 좋은 점도 보여주는 동영상이 많이 게재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진= 일본판 유튜브 홈페이지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혐한류에 맞서…” 재일교포 3세 홈피 개설

    “혐한류에 맞서…” 재일교포 3세 홈피 개설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LOVE KOREA, HUG JAPAN’ 이죠.” 한 재일교포 3세가 홈페이지(makikome.com)를 개설해 ‘혐한류’(嫌韓流)에 대항하는 글들을 싣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홈페이지의 운영자는 오사카(大阪)출신의 재일교포 3세 김익견(金益見·27)씨. 현재 고베대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그녀는 재일교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내에 만연한 그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없애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홈페이지에 “서점에서 우연히 ‘혐한류’에 대해 쓰여진 책들을 봤다.”며 “한·일 양국에 대해 보도된 기존의 정보들은 왜곡된 것이 많아 묵인하고 싶지 않았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또 “일본 내에서 재일교포라 하면 왠지 ‘차별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떠올리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며 “진짜 재일교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그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작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0월 개설된 홈페이지에는 재일교포 출신 소설가, 신문사 편집장, 교수등 일본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인사들의 인터뷰들이 실려있어 하루 평균 800명 이상의 네티즌들이 찾고 있다. 그녀는 “나중에 지금까지의 인터뷰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도 내고 싶다.”며 “한·일 양국을 사랑하는 재일교포로서 ‘LOVE KOREA, HUG JAPAN’이라는 생각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사진=김익견씨 홈페이지, 재일한국인 온라인커뮤니티 ‘민단’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구로다 “한국, 반일 4종세트로 상황 악화”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서울 지국장이 “한국이 ‘반일 4종 세트’를 만들어 한일 관계를 딱딱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펼쳐 또한번의 파문이 예상된다. 구로다 특파원은 산케이 14일자 국제면 칼럼을 통해 “한국이 중국의 반일 여론을 곁눈질하면서 즐거워 한다.”며 “야스쿠니,독도,교과서,위안부라는 다채로운 ‘반일 4종 세트’를 만들어 대일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고 밝혔다. 그는 ‘반일 4종 세트’에 대해 “독도는 50년간 한국이 지배하고 있으니 (한국은 더 이상) 떠들지 마라.”,“야스쿠니 문제는 일본과 전쟁중이지 않았던 한국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후소샤판 교과서는 전체 역사교과서의 1%에도 못미친다.”,“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정부가 몇번이나 사과했다.”고 차례차례 언급했다. 이어 구로다 특파원은 최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일본방문에 대해 한국 언론들의 실망감(?)이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중국측의 대일 우호 자세가 한국에게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다는 것. 특히 그는 “조선시대에 명 나라가 망했는데도 명 나라를 우러르고 청을 무시한 과거”를 들먹이며 “한국의 실망감이 이와 연관 있다.”고 비꼬았다. 한편 지난달 14일 서울신문 온라인판에 가장 먼저 보도됨으로써 논란이 된 ‘한국,위안부 이슈화로 쾌감 즐겨’ 주장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구로다 특파원은 “기사가 보도된 뒤 한국 내에서 비난이 거세지며 위협을 느껴 한국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다”며 “인터넷상에서는 산케이 지국 추방 서명운동도 일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한국이 변함없이 과거 위안부 문제로 반일을 즐기고 있다.”고 재차 강조한 뒤 “(노무현 정부가) 모처럼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혐한’을 펼치게 된 꼴.”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콘텐츠팀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Book Review]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 /채명석 지음

    일본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는 “조선반도는 일본 열도를 향해 돌출된 흉기”라고 씌어져 있다. 그렇듯 일본인들은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래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활’처럼 구부러진 열도의 나라 일본이 백촌강 전투 이후 1300여년 동안 끊임없이 한반도를 공격했다. 약자일 때는 전수방어 운운하다가도 강자로 바뀌면 이익선, 생명선, 주권선 등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도에 대한 전진방어, 즉 선제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채명석 지음, 미래M&B 펴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본분석서다. 저자는 시사저널 도쿄 주재 편집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한 일본통. 스스로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숙일파(熟日派)’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정치는 지금 ‘혼네(본심)의 정치’ 즉 ‘강자의 정치’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일본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세습 정치가들은 이제 주변국의 눈치를 봐가며 과거사를 사죄하는 척하는 ‘다테마에(표면상의 방침)의 정치’ 즉 ‘약자의 정치’의 간판을 내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본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먼저 ‘극장국가(theatre state)’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로서의 일본이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극장국가는 문명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국가운영의 시나리오를 제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장국가에는 반드시 ‘모범적 중앙’이 존재한다.1982년 ‘극장국가’라는 책을 펴낸 야노 도오루(矢野暢) 전 교토대 교수는 일찍이 일본이야말로 일왕, 즉 모범적인 중앙을 정점으로 한 극장국가라고 갈파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를 모방해 율령제 국가를 이룬 것이 제1기 극장국가 시대라면, 메이지 유신 전후 서양문명을 모방해 근대화를 이룩한 시기는 제2기 극장국가 시대다. 제3기 극장국가는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내건 ‘경무장, 경제우선´이란 기치 아래 미국을 모방,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시기. 일본은 지금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일왕을 정식 국가원수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한 ‘제4기 극장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책은 부제가 암시하듯 지한의 얼굴을 한 혐한의 계보를 밝히는 데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 한국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저자는 에도시대 유학자로 조선 멸시에 앞장 선 아라이 하쿠세키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시로 경성에서 한성순보를 발행한 이노우에 스미고로의 행적을 좇으며 구로다가 그들 혐한파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오늘의 한류(韓流)에 대한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일본의 도래인(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붐,17세기 조선통신사 행차에 몰려든 ‘군왜(群倭, 왜나라 군중)’에 이어 최근의 한류는 역사상 세 번째 한류라는 게 저자의 말.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반한파와 혐한파의 도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일본은 편의에 따라 정한론(征韓論, 임진왜란, 일제의 식민통치)과 대한론(帶韓論, 삼한과의 교류, 조선통신사 환대)을 구사하며 우리를 괴롭혀 온 만큼 현재의 한류 붐이 멸한론과 정한론의 종언을 고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뿌리 깊은 탈아론적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시아 침략과 태평양 전쟁의 이론적 토대인 탈아론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주문한다. 침략주의자보다는 조선문명화론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듯한 후쿠자와는 “시나·조선 같은 악우(惡友)와는 사귀지 말라.”“돈 문제로 조선인을 상대해선 안된다.”고 한 인물. 저자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을 모두 경계하며 500년전 신숙주가 남긴 유언을 결론으로 삼는다.“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되 우호친선을 끊지 말라.”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 [한류통신] 日 교과서 배용준 사진 게재 ‘연예인 금기’ 깬 신선한 충격

    교과서, 그것도 역사교과서가 화제로 등장하면, 긴장감이 돈다. 한·일의 역사인식의 문제 등 이데올로기도 포함한 논의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3월말에 날아든 화제는 조금 다르다.2007년도부터 쓰이는 일본의 일부 고교 교과서에 배용준의 사진이 게재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싣는 것은 2개의 지리 교과서이다. 그 중 하나는 “일·한 우호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누가 보더라도 아는 사람”으로서 2004년 11월 나리타 공항 사상 최다인 3500명의 팬이 환영나온 배용준 방일때의 사진을 게재했다. 본문에는 한류에 관한 언급은 없고 양국의 역사적 경위나 한·일우호가 진행되는 현상을 전달한다고 한다. 일본의 교과서가 연예인 등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의 일로 역사가 짧고 드물다. 이 출판사가 내는 교과서에 연예인을 싣기는 배용준이 처음으로 게재를 둘러싸고 난항을 거듭했다고 한다. 편집담당자는 “연예인을 싣는 것은 교과서의 성격상, 그리고 초상권의 문제 등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어떤 현상이 우호의 상태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엔터테인먼트의 화제와 같은)생활에서 실감하는 것이라면 (학생들이)쉽게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사진을 싣기로 한 다른 교과서에서는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 이웃나라들과의 공통성이나 이질성을 소개했다. 한류 붐에 관한 기술도 덧붙였다고 한다. 이들 교과서에 대한 교육현장의 반응은 교직원들에게 견본이 가는 이달 중순 이후에 나올 것이지만, 한류를 “미디어에 의해 날조된 붐”으로서 폄하하는 ‘혐한류’파의 블로그에서는 이미 문부과학성에 항의메일을 보내는 운동마저 시작됐다. 그리고 한·일의 역사문제를 엮어서 이들 교과서에 대해 항의하는 혐한파 인사들도 있다. 이런 반응에 대해 편집담당자는 “일·한우호의 객관적인 현상으로서 담담하게 소개했을 뿐”이라고 냉정한 반응을 보인다. 한류에 대한 찬부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거품경제 붕괴후 정체해 있던 일본인이 보여준 열광은 객관적으로 봐서도 분명히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연예인은 금기시’했던 일본 교과서업계의 상식까지도 바꿀만큼의 충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솔직히 놀랍다. 고교생들은 내년 봄 이들 교과서를 어떤 생각으로 볼 것인지 궁금하다.
  • [씨줄날줄] 한·일전/오풍연 논설위원

    “일본은 한국에 있어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비롯된 앙금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일간 문제는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이성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부와 권력의 대이동’을 펴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미 전략경제연구소장은 몇해 전 두나라 관계를 이처럼 진단했다. 감정적 대응은 한국에 불리하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극일(克日)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국민의 감정 역시 그렇다. 한국에 반일(反日)이 있다면, 일본에는 혐한(嫌韓)의 뿌리가 깊다. 지난해 7월 발간된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링)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만화는 “일본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는 식의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대대적인 판매공작 등 지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NYT)가 이를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었을까. 여기에 보수·우익신문인 산케이는 NYT의 ‘반일’적인 논조를 공격하기도 했다. 5일 오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최종 3차전이 치러진 일본 도쿄돔. 우리 선수들은 3대2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일본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수단의 이성이 그들의 감정을 압도한 경기였다. 이번에도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과 이치로, 마쓰자카는 ‘30년 망언’ 등으로 기선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9회말 박찬호가 이치로를 뜬공으로 잡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이진영의 호수비도, 이승엽의 2점 홈런도 이성적 판단과 다부진 각오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오 감독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5개)을 1개차로 갱신한 기록도 가지고 있는 이승엽이 단연 돋보였다. 그의 오기가 일본 야구 영웅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순간이었다. 한·일전의 승리는 국민에게도 쾌감을 더해준다.13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WBC 2라운드도 주목된다. 일본과 다시 맞붙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듣고 싶다. 우리 선수단 파이팅!.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열린세상] ‘특정 아시아’ 국가로 취급받는 한국/윤민호 일본 국제경제연구소 상임연구원

    2005년도 2주밖에 안 남았다. 올해를 정리하는 입장을 우리 자신이 아닌 일본 사람이 보는 한국이라는 내용으로 나와 막역한 H씨의 소견을 정리해 보았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순수한 일본의 목소리라고 보아도 무관하다. 올해 Amazon.co.jp에서는 ‘만화 혐한(嫌韓)류’를 일본서적 베스트셀러 1위로 발표했다. 만화인 이 책의 내용은 덮어두고 일본에서 한국 관련 서적이 이렇게 팔린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가 없었던 일이다. 만화의 내용은 대부분 한국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에게는 별로 새로운 사항도 없는데 왜 이러한 독자들의 지지를 얻었는지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 책을 ‘혐-한류(Anti-Korean Culture Wave)’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혐한-류(Anti-Korea Movement)’로서 한국에 대한 감정의 악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은 알면 알수록 싫어진다.’라고 하는 의견이 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처음에는 일본과 다른 한국문화 등에 공감을 하면서 좋아하게 되다가 어느 날 이 감정이 반감으로 변해 버린다. 그 배경은 바로 한국사람이 외치는 큰소리에 있다고 본다. 이것이 일반화되어 버려 ‘한국’에 대한 네거티브 이미지가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2005년의 한·일 관계는, 독도(다케시마), 교과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큰소리가 들렸다. 다툼에는 항상 상대와 옳고 그름이 있지만 이에 관계없이 마지막에는 양쪽을 벌하는 사회적인 풍습이 일본에는 있다. 물론, 한·일 양국의 주장에 대해서 양쪽의 입장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는 일본사람으로 이해할 수 없거나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외교전쟁’을 선포하거나, 외국을 방문해서 일본에 대한 비난을 되풀이하면 좋았던 사이도 나빠진다. 공식 명칭인 천황을 일왕이라고 하고, 일장기를 태우는 행동이 일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미뤄 알 수 있는 일이다. 교과서문제도 많은 일본 사람들은 내정 간섭이라고 느낀다. 한국의 일부 국정교과서 내용에도 승복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는 일본의 종교관을 이해하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쓸데 없다. 한국인은 36년간 상처 입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가 한국이다. 이웃 나라이기에, 사이가 좋을 때도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주장이 달라 큰소리를 낸다. 더욱, 외국인 일본을 완전히 알아달라고 하면 생각하는 쪽이 이상하다. 이제 속 마음이 안 통하는 겉만의 우정은 의미가 없다. 정말 가까운 우정은 상대의 주장을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사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틀렸다면 지적하고, 때로는 싸움조차도 필요하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틀린 점을 인정하는 것도 우정에는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진정한 우정을 육성해 왔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공교롭게도 ‘우정의 해’인 2005년에 최악의 결과를 보여 주었다. 지금, 일본의 유명 인터넷 게시판에는 ‘특정 아시아(특아)’라고 하는 단어가 유행 중이다. 특정 아시아를 한국, 북한, 중국으로 단정하고 있다. 이 3개국을 일본에 있어서의 다른 국제사회나 외교관계에서 떼어내어 생각하자라는 의미의 움직임의 하나이다. 시장경제나 민주주의 등 일본과는 체제가 일치하고 있는 한국이 왜 북한과 같은 일당독재국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 같이 분류되고 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2005년은 일본·EU 시민교류과 독일의 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는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이며, 중미제국과는 외교관계 수립 70주년의 해였다. 그러한 가운데 가장 대대적으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이 ‘한·일 우정의 해’라는 것은 어느 일본 사람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윤민호 일본 국제경제연구소 상임연구원
  • 日서 ‘한국혐오’ 만화 시판 물의

    |도쿄 이춘규특파원|‘한·일 공동주최의 2002 월드컵은 한국측이 반칙과 오심 등으로 더럽혔다.’‘한국은 독도에 등대와 헬기장 등을 건설, 경비대를 상주시키며 불법점거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을 비하·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일본 만화 ‘혐한류(嫌韓流)’가 26일 시판에 들어갔다. 앞서 일본의 대형 인터넷 서점 등에서 일본 서적부문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한·일 네티즌간에 논란을 일으킨 만화책이다. 이 만화가 시중에 판매되면서 광복 60주년을 앞두고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 등 향후 큰 논란이 예상된다. 대대적인 판매공세를 펼쳐 대형서점들의 인기 판매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만화가 앞으로 얼마나 팔려나갈지 주목된다. 표지에는 “위험천만하다며 출판사들이 출판을 거부한 문제작”이라고 표기, 우익들을 선동하는 듯했다. 이 책은 월드컵축구, 전후보상문제, 재일한국인,‘일본문화를 도둑질하는 한국’, 반일 매스컴의 위협, 한글·한국인, 외국인참정권문제, 한일합병의 진실, 독도문제 등 9개 주제별로 한국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내용 일변도이다. 이와 함께 ‘밖이 보이지 않는 가련한 민족’이라는 평론가의 칼럼 등 4편의 칼럼도 함께 실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했다. 특히 한국언론 비난에 집중, 만화와 칼럼 등을 통해 “식민지 시절 등에 대한 날조보도를 일삼는다.”고 억지를 폈다. 한글에 대해서는 저주를 퍼부었다.“한글이 세계 최우수 문자냐?”고 비아냥거리면서 한글 창제 뒤 반포까지 3년이 걸린 것에 대해 “종주국인 중국으로부터 반역이라고 여겨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깎아내리려 했다. 특히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이전에는 조선인의 문자해독률이 10% 정도에 머물렀지만 합병(1910년) 뒤 일본은 학교교육에서 조선어(한글)를 필수과목으로 해 한글 보급이 급속히 진행됐다.”고 주장했다.taein@seoul.co.kr
  • [열린세상] 2005년의 한류와 반일은?/임춘웅 언론인

    이른바 ‘한류(韓流)’와 관련해서 요즘 일본에서 전해오는 뉴스들은 한국사람들까지 놀라게 한다. 그래서 가끔 우쭐해지는 느낌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19일 일본의 NHK 위성방송은 무려 8시간에 걸쳐 한류특집방송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어떤 교수는 한류가 일본인, 특히 일본여성들을 ‘꿈의 포로’로 만들어 버렸다고 쓰고 있다. 이제는 미국·캐나다는 물론 유럽에서까지 일본의 한류바람을 보도하고 있다. 동남아 여러 지역에서 한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다. 한데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여러 면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는 나라이고 또 일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반적으로는 한국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던 나라이기 때문이다.60∼70년대 일본 지식사회에서 한국은 차라리 혐오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혐한론(嫌韓論)’이 그것이다. 혐한에서 한류까지, 반전이 채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참으로 극적이다. 그 배경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대체로 바뀌고 있는 변환의 시점임을 지적하는 이가 있다. 그것은 2001년 도쿄 지하철역에서 일본인의 목숨을 구하고 죽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군의 의로운 행동이 일본인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고, 한국의 경제발전과 2002년 월드컵때 길거리 응원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결집력과 활력에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터에 ‘겨울연가’가 다시 일본인들의 마음에 산뜻한 감상을 안겨주었다는 얘기다.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본의 ‘욘사마 열풍’을 설명하는 데는 60여년 전 미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보다 적절한 설명은 없을 듯하다. 일본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쓴 ‘국화와 칼’은 아직도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데 그만한 책이 없을 만큼 일본연구의 고전에 속한다. 베네딕트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명예를 매우 중시해서 자기 명예를 더럽혔다거나 상대로부터 모욕을 받으면 기필코 복수를 하거나 죽음으로라도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갓푸쿠(割腹)가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45년 일본의 항복을 받아 본토에 상륙한 미군은 일본에서 패전의 굴욕을 참지 못한 나머지 집단 자결이 이어지고 요즘 이라크에서처럼 미군에 대한 대대적인 테러가 계속될 것이란 우려에서 맥아더 사령부는 한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사람들은 미군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미군 혼자 길거리를 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미군 당국은 이런 뜻밖의 현상에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을 제대로 몰라 혼동이 있었을 뿐 일본인들은 일본인의 방식대로 일관성을 유지했고 명예를 지켰다고 베네딕트는 지적하고 있다. 당시 일본이 명예를 지키는 길은 미국을 환영하고 미국을 배움으로써 가능하다고 일본인들은 즉각 발상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졌으면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에게서 배우는 게 일본문화의 뿌리라는 설명이다. 지금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류를 이해하는 데 베네딕트의 연구를 상기시키는 일이 적절한지는 의문이 없지 않지만, 그의 연구는 한류로의 반전을 이해하는 데는 참고가 될 것이다. 현실을 있는 대로 즉각 받아들이는 일본문화의 개방성과 현실성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2005년은 한·일관계에서 매우 의미있는 한해가 될 것 같다. 광복 60년이 되는 해이고 을사조약 100년이 되는 해이다. 또 한번 캘린더 저널리즘이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광복과 을사조약을 되새기자면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2005년이 시작됐다. 올해 한국에서 일본을 되돌아보는 일과 일본의 ‘욘사마 열풍’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게 될지 궁금하다. 임춘웅 언론인
  •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요코하마 이춘규특파원|신세대 학자 오구라 기조 도카이대 조교수(한국철학)는 겨울연가 열풍 효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기여할 것으로 봤다.다만 역사 문제가 다시 부각될 내년에는 고비를 맞을 것으로 봤다. 자택 인근 요코하마 시내 한 호텔에서 오구라 교수를 만났다.많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 하필 왜 겨울연가인가.그는 겨울연가가 일본인의 향수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중년 여성들의 20∼30년 전 순수한 사랑을 되새기도록 자극했다는 얘기다.일본인에게는 억제당하는 직설화법도 신선했단다.한국어에 대한 분석은 독특했다.일본인들은 한국어가 강하고,거칠고,폭력적이란 이미지를 가졌었단다.학생운동·반일시위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그런데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말이 부드럽고,사랑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언어라는 이미지가 정착됐다나.말이 음악같기도 해 한국어 바람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한국,한국어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현상이 ‘무서울 정도’라고도 표현한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겨울연가처럼 이상적인 사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역시 우려했다.드라마 촬영지 방문도 독특하게 분석했다.약 1100년 전부터 수백년간 일본인들은 순례를 집단으로 행해 종교적 해탈감을 맛보았다고 한다.그런 잔재들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남이섬을 찾는 것도 비슷하단 주장이다. 오구라 교수는 겨울연가 돌풍을 1회성으로 보지는 않았다.역사적 배경이 있단다.일본이 한국을 배울 만한 나라로 여긴 것은 두 차례.첫번째는 7세기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만들 때 이른바 백제 신라의 귀화인들이 문화를 갖고 일본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가 제도와 문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 시대다.도쿠가와는 7년의 전화를 봉합하기 위해 “나는 도요토미와는 완전히 다르다.주자학의 선배로서 조선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해 국교를 재개하며 조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번이 세번째 한국 배우기란다.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파트너십 선언,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언론들이 한국에서 배우자는 바람이 일었다는 것이다.겨울연가 종영 이후에도 “한국의 작품들이 일본인에게 계속 매력있게 남아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겨울연가는 잊고 지낸 이웃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 촉매제였다는 분석이다. 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며 갑자기 젊은 여성들이 홍콩에서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고,월드컵 등 축구를 통해서 젊은 남성이 한국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았던 중년 여성들이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알기에 나서 일본 전체 세대가 한국알기에 동참했다.물론 서울올림픽 때 한국바람이 일다가 독도·위안부 문제 등으로 반일,혐한 분위기로 돌변했듯이 이번에도 역사인식 문제나 한국의 친일파 진상 규명 등 넘어야 할 변수가 많다고 우려했다.그 고비가 내년이란 분석이다. 재일동포들의 소외감도 우려했다.한·일 가교역을 담당했던 동포들이 직접교류 확대로 역할이 축소되는데다,재일교포의 고난은 잊어버리고,겨울연가의 영향 때문에 역사 문제는 외면하고 여행·소비 위주의 교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는 얘기다. taein@seoul.co.kr
  • 北송금 파문/정치권 해법 논란 ‘비공개 증언’ ‘특검’ 기싸움

    대북 비밀 송금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당선자측과 여권에서 관계자들의 비공개 국회 증언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對)국민 해명·사과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나서 주목된다. 이같은 ‘선(先)증언-후(後)해명론’이 제기된 데는 남북교류·협력의 성과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대북 지원 내역을 전면 공개할 수밖에 없는 특검제를 도입하기보다는 먼저 진상부터 비공개로 살펴보자는 논리다.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사건 은폐 시도”라며 이번 파문을 ‘초유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선(先)증언-후(後)해명’ 민주당과 노 당선자측에서 거의 동시에 제기됐다.청와대도 ‘비공개라면….’이라며 싫지 않은 눈치다.때문에 청와대와 노 당선자측,민주당이 지난 5일 김 대통령의 담화를 기점으로 뭔가 물밑 조율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6일 “(김 대통령의 ‘전모 공개 불가’ 언급에 대해)뒤집어 생각하면 비공개로는 얘기할수 있다는 것 아니냐.”며 “비공개라면 대통령의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고,대통령은 나중에 대미를 장식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원기 의원은 “대통령이든 다른 당사자들이든 국민 정서로 봐서 좀더 진솔하고 자세하게 해명해야 한다.”며 문 내정자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정균환 총무도 이날 아침 KBS 라디오에 출연,“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관련자를 증인,참고인으로 불러 공개할 것은 공개하고 비공개할 것은 비공개해야 한다.”며 국회 증언 방식을 주장했다. 청와대는 여야가 관련 당사자의 국회 출석 비공개 증언 방안에 합의하면 이에 응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은 비공개 증언은 가능하다는 입장 표명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해 이같은 예상을 뒷받침했다. ●칼자루 쥔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그러면서도 연일 민주당에 대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이번 일을 계기로 대선에서 실추된 명예를 만회하고 내년 총선 승리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이날 민주당과 당선자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강력 반발했다.이규택 총무는 “어떤 일이 있어도 특검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김영일 총장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박희태 대표권한대행도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번 사건은 10개 이상의 현행법 위반 등 범죄적 수법이 개입돼 있는 만큼 특검이 아니고서는 밝힐 수 없게 됐다.”며 여권과 청와대를 압박했다. 결국 해법의 열쇠는 한나라당의 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국회 과반수 이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다수결로 특검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여권으로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기 때문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kdaily.com ★박희태 대행 국회연설 안팎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의 6일 국회 연설은 ‘상생의 정치’를 강조했지만,현 정치상황을 놓고 보면 여권에 대한 경고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박 대행은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제 수용을 강력히 요구했으며 대미·대북관,외교관 등 노무현 당선자의 상황 인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나아가 “새 정부가 국민적 의혹을 덮으려 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고 못박았다.박 대행은 특히 상생의 정치를 언급하면서 “야당을 파괴한 정권은 성공한 적이 없다.”거나 “(상생에 대한) 약속을 먼저 지키라.”고 강조,여권에 먼저 자세 전환을 촉구했다.대표 연설 준비기간이 짧았음에도 주요 현안을 대체로 잘 짚었다는 평가다. ●대북 송금 박 대행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해 교류협력법이나 경협기금법을 마련했고,지난해 자금이 4000억원이나 남아서 올해로 이월됐다.”면서 “이를 통해 종교단체나 기업 등이 쌀도 주고 금강산 관광도 하는 등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데 왜 대통령만 유일하게 불법이 아니면 할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이어 노 당선자에게 “진실을 고백하라고 김 대통령에게 조언해야 하며 그 길이 상생하는 길”이라고 주문했다. ‘통치행위’논란에 대해서는 “‘왕의 말이 법’이 되는 전제군주시대의 낡은 개념”이라면서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법치주의가 심화된 오늘날은 재직시 재판에 회부되지 않는 일시적인 특권만 있을 뿐,대통령의 행위도 성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그럼에도 “국민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대통령의 독단에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 박 대행은 “노 당선자는 세계가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북한과 국제사회를 중재하겠다.’고 했지만,북핵에 있어 우리는 제3자가 아닌 당사자”라면서 “이에 대한 찬반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강조했다.또 “미국 내에서 반한(反韓)·혐한(嫌韓) 분위기가 확산되고 주한미군 철수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면서 “국내의 반미 여론과 함께 이를 가라앉히고 미군철수 절대불가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박 대표는 김대중 정권이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찾다 동향 출신의 ‘끼리끼리 정권’으로 전락했는데,노무현 정권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찾다가 ‘외곬 정권’이 될 수 있다.”면서 다양한 인재 등용을 주문했다. 이지운기자 jj@
  • [열린세상] 월드컵, 한일관계, 동아시아 공동체

    월드컵 대회 덕분에 일본의 궂은 장마철을 잊게 한 열광의 한 달을 보냈다.그러나 잔치가 끝나면 뒤치다꺼리도 해야 하고 복잡한 현실이 성큼 다가온다.축제의 막판에 터진 서해교전 사건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북·미 대화의 재개 가능성이 후퇴하는 가운데 ‘악의 축’인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반도를 중심한 동북아시아 정세도 긴장격화를 피할 수 없다.한국과 미국이 선거의 계절을 맞고 있고,중국도 지도자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일본도 정치적 리더십 결여로 인한 국내정치의 혼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외교의 국정화(國政化)’,즉 국내정치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대중여론이 외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외교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구도가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냉전 종결 이후 명확한 대립관계가 소멸하고,국경을 초월한 정보혁명이 확산되는 현재의 글로벌화 시대에는 외교의 성패도 상대방 국가의 정부가 아니라 일반 시민의 마음을 어떻게사로잡는가가 관건이 된다.월드컵 대회에서 보여준 한·일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서,우리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과제인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향해 지혜와 노력을 모을 때다. 이번 월드컵 대회는 동아시아의 가능성과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한·일 양국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공동의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에도 커다란 공헌을 했다.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부쩍 좁혀진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일본 체류 20년 가까이 되지만 일본 사회에 이처럼 한국이 깊숙이 파고들고 또 크게 부각된 예를 기억하지 못한다.개막 이전에는 공동 개최국이라는 형식적 동기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보도들이 눈에 띄었다.그러나 대회 기간 중에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역동성이 생생하게 전달됐다.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외국 관련 뉴스는 정치나 경제면에 집중된다.한국에 대해서도 국내정치의 파당대립과 지역주의,남북긴장이 되풀이되는 이미지였다.간헐적인 소개는 있었지만,이번 대회가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로 크게 변모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일본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 물론 매스컴의 보도대로 ‘4강’이라는 한국 선수단의 위업에 대해 일본 국민 대다수가 박수를 보내고 같이 환희하며,‘붉은악마’ 현상에 감동한 것은 아니다.몇몇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에 오히려 반감을 표현하는 비율도 절반 가까이 존재한다.젊은 세대와의 솔직한 접촉에서 얻는 체험적 비율은 이보다 높고,또 감정적이기도 하다.필자도 협력을 요청받은 ‘뉴스위크 일본판’(7월10일자) 특집기사 ‘혐한(嫌韓)무드가 비치는 공동개최의 모습’이 일본의 속마음에 오히려 가깝다.경쟁심과 질시는 자연적 반응이기도 하며,오히려 다수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진심에 가깝게 한국을 응원하고 감동한 현상이 주목해야 할 변화다.이같은 변화가 지난 10여년간진행된 한·일교류와 접촉의 성과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제 한·일관계의 개선은 국가나 정부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량이 중심이 돼야 할 단계다.또 그 길이 보다 효율적이기도 하다.과거사의 틀에서만 한·일관계를 접근하는 것은 한국의 입장을 ‘피해자’로 왜소화하고 특수화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역사문제의 원칙을 국가적 차원에서 확고히 견지함과 동시에,일본보다도 개방적이고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좁은 일본을 바꾸는 첩경이다.일본을 한국내에 끌어들이고 또 일본 사회 안에 뛰어들어서 일본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금의 한국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작년우경화된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이 0.4%에 머무른 것이 그간의 한·일 민간교류의 성과라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한·일관계의 심화는 양국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디딤돌로서의 의미가 보다 크다.중국의 대두 등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위협의식 속에서 일본은 동아시아라는 틀에의 거부감을 증폭시키며 미·일 안보 강화로 크게 기울고 있다.일본 정부와 사회의 대북한 강경화도 이같은 전략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방황하는 일본을 끌어들여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틀을형성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이종원/ 日 릿쿄대 교수
  • [오늘의 눈] 권희로씨 사건이 남긴것

    최근 일어난 권희로씨의 살인미수 사건은 여러모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국민들 가슴에 일본의 차별대우에 항거한 ‘애국지사’로 아로새겨진 그가 하루아침에 내연의 처와 살인을 공모한 ‘현행범’으로 전락했다. 99년 9월,그의 석방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많은 국민들,한국 생활정착을 위해 물심 양면으로 도왔던 지인들 역시 이번 일이 생기자 허탈한 마음을 가눌길 없을 것이다. 현해탄 너머 일본에서도 이번 권씨 사건은 화제가 되고 있다.대부분신문들은 서울 발 주요 기사로 실었고 산케이 신문은 사회면 톱으로사건 전말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의 이런 반응 행간에는 그동안 ‘살인자 권씨를 애국지사로 부각시켰던 한국 보도행태’에 대한 불만이 쉽게 감지된다.일부일본 언론들이 ‘거 봐라, 우리 말이 맞지 않았느냐’는 식의 쾌재도부르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권씨 사건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처리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권씨 석방 와중에서 벌어졌던 한일 양국의 신경전이 다시 재현되지나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씨 석방과정을 통해 우리 언론이 지나치게 ‘애국지사’로 부각시켜 일본인의 혐한(嫌韓) 감정을 부추겼던 점은 분명 반성할 대목이다. ‘권씨를 반일(反日)의 영웅으로 무비판적으로 미화’함으로써 그의불미스런 일부 행적을 고의로 외면하지나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사건이 국민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한쪽으로만 치닫는 한국 매스미디어의 특유의 ‘냄비식 보도’,균형감을 잃은 한국의 언론때문이라는 지적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일본 언론 역시 해방 후 켜켜이 쌓여 온 ‘민족차별 문제’를 애써외면,권씨를 단순한 ‘범죄자’로 취급하려했던 ‘축소지향의 보도’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권씨를 반일감정을 부채질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일본의 과잉반응 역시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남게하는요인이 될수 있다. 껄끄러운 한·일 관계를 온몸으로 상징했던 권희로씨.30여년의 감옥생활로 희박해진 현실 감각과 믿었던 사람(옥중 결혼했던 돈모씨)의배신, 그리고 이번의 철창행….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한 인간의굴곡된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일만 정치팀 기자 o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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