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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로다 “한국, 반일 4종세트로 상황 악화”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서울 지국장이 “한국이 ‘반일 4종 세트’를 만들어 한일 관계를 딱딱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펼쳐 또한번의 파문이 예상된다. 구로다 특파원은 산케이 14일자 국제면 칼럼을 통해 “한국이 중국의 반일 여론을 곁눈질하면서 즐거워 한다.”며 “야스쿠니,독도,교과서,위안부라는 다채로운 ‘반일 4종 세트’를 만들어 대일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고 밝혔다. 그는 ‘반일 4종 세트’에 대해 “독도는 50년간 한국이 지배하고 있으니 (한국은 더 이상) 떠들지 마라.”,“야스쿠니 문제는 일본과 전쟁중이지 않았던 한국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후소샤판 교과서는 전체 역사교과서의 1%에도 못미친다.”,“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정부가 몇번이나 사과했다.”고 차례차례 언급했다. 이어 구로다 특파원은 최근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일본방문에 대해 한국 언론들의 실망감(?)이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중국측의 대일 우호 자세가 한국에게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다는 것. 특히 그는 “조선시대에 명 나라가 망했는데도 명 나라를 우러르고 청을 무시한 과거”를 들먹이며 “한국의 실망감이 이와 연관 있다.”고 비꼬았다. 한편 지난달 14일 서울신문 온라인판에 가장 먼저 보도됨으로써 논란이 된 ‘한국,위안부 이슈화로 쾌감 즐겨’ 주장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구로다 특파원은 “기사가 보도된 뒤 한국 내에서 비난이 거세지며 위협을 느껴 한국정부에 보호를 요청했다”며 “인터넷상에서는 산케이 지국 추방 서명운동도 일어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한국이 변함없이 과거 위안부 문제로 반일을 즐기고 있다.”고 재차 강조한 뒤 “(노무현 정부가) 모처럼 일본에서 일어난 한류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혐한’을 펼치게 된 꼴.”이라고 주장했다. 디지털콘텐츠팀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Book Review]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 /채명석 지음

    일본 후소샤판 역사교과서에는 “조선반도는 일본 열도를 향해 돌출된 흉기”라고 씌어져 있다. 그렇듯 일본인들은 663년 백촌강 전투에서 패배한 이래 한반도가 일본 열도의 옆구리를 겨누는 ‘단도’라는 피해망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사실은 ‘활’처럼 구부러진 열도의 나라 일본이 백촌강 전투 이후 1300여년 동안 끊임없이 한반도를 공격했다. 약자일 때는 전수방어 운운하다가도 강자로 바뀌면 이익선, 생명선, 주권선 등 온갖 명분을 내세워 반도에 대한 전진방어, 즉 선제공격을 감행해 온 것이다. 최근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단도와 활-지한(知韓)과 혐한(嫌韓) 사이’(채명석 지음, 미래M&B 펴냄)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본분석서다. 저자는 시사저널 도쿄 주재 편집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한 일본통. 스스로를 반일도 친일도 아닌 ‘숙일파(熟日派)’라고 부른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 정치는 지금 ‘혼네(본심)의 정치’ 즉 ‘강자의 정치’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일본의 네오콘’으로 불리는 세습 정치가들은 이제 주변국의 눈치를 봐가며 과거사를 사죄하는 척하는 ‘다테마에(표면상의 방침)의 정치’ 즉 ‘약자의 정치’의 간판을 내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일본의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먼저 ‘극장국가(theatre state)’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로서의 일본이 어떤 습성을 갖고 있는가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극장국가는 문명국가의 반대 개념으로, 국가운영의 시나리오를 제 힘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장국가에는 반드시 ‘모범적 중앙’이 존재한다.1982년 ‘극장국가’라는 책을 펴낸 야노 도오루(矢野暢) 전 교토대 교수는 일찍이 일본이야말로 일왕, 즉 모범적인 중앙을 정점으로 한 극장국가라고 갈파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치 문화를 모방해 율령제 국가를 이룬 것이 제1기 극장국가 시대라면, 메이지 유신 전후 서양문명을 모방해 근대화를 이룩한 시기는 제2기 극장국가 시대다. 제3기 극장국가는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내건 ‘경무장, 경제우선´이란 기치 아래 미국을 모방,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시기. 일본은 지금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일왕을 정식 국가원수로,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한 ‘제4기 극장국가´로 전환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 책은 부제가 암시하듯 지한의 얼굴을 한 혐한의 계보를 밝히는 데 적잖은 지면을 내준다. 한국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 저자는 에도시대 유학자로 조선 멸시에 앞장 선 아라이 하쿠세키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시로 경성에서 한성순보를 발행한 이노우에 스미고로의 행적을 좇으며 구로다가 그들 혐한파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밝힌다. 오늘의 한류(韓流)에 대한 진단도 주목할 만하다. 고대 일본의 도래인(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붐,17세기 조선통신사 행차에 몰려든 ‘군왜(群倭, 왜나라 군중)’에 이어 최근의 한류는 역사상 세 번째 한류라는 게 저자의 말. 이 지점에서 저자는 다시 한번 반한파와 혐한파의 도발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일본은 편의에 따라 정한론(征韓論, 임진왜란, 일제의 식민통치)과 대한론(帶韓論, 삼한과의 교류, 조선통신사 환대)을 구사하며 우리를 괴롭혀 온 만큼 현재의 한류 붐이 멸한론과 정한론의 종언을 고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본이 뿌리 깊은 탈아론적 의식을 버리지 않는 한 아시아의 평화는 요원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관점에서 아시아 침략과 태평양 전쟁의 이론적 토대인 탈아론을 주창한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엄정한 평가를 주문한다. 침략주의자보다는 조선문명화론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듯한 후쿠자와는 “시나·조선 같은 악우(惡友)와는 사귀지 말라.”“돈 문제로 조선인을 상대해선 안된다.”고 한 인물. 저자는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을 모두 경계하며 500년전 신숙주가 남긴 유언을 결론으로 삼는다.“왜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되 우호친선을 끊지 말라.”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 seoul.co.kr
  • [한류통신] 日 교과서 배용준 사진 게재 ‘연예인 금기’ 깬 신선한 충격

    교과서, 그것도 역사교과서가 화제로 등장하면, 긴장감이 돈다. 한·일의 역사인식의 문제 등 이데올로기도 포함한 논의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3월말에 날아든 화제는 조금 다르다.2007년도부터 쓰이는 일본의 일부 고교 교과서에 배용준의 사진이 게재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싣는 것은 2개의 지리 교과서이다. 그 중 하나는 “일·한 우호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누가 보더라도 아는 사람”으로서 2004년 11월 나리타 공항 사상 최다인 3500명의 팬이 환영나온 배용준 방일때의 사진을 게재했다. 본문에는 한류에 관한 언급은 없고 양국의 역사적 경위나 한·일우호가 진행되는 현상을 전달한다고 한다. 일본의 교과서가 연예인 등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의 일로 역사가 짧고 드물다. 이 출판사가 내는 교과서에 연예인을 싣기는 배용준이 처음으로 게재를 둘러싸고 난항을 거듭했다고 한다. 편집담당자는 “연예인을 싣는 것은 교과서의 성격상, 그리고 초상권의 문제 등으로 어려웠다. 그러나 어떤 현상이 우호의 상태를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엔터테인먼트의 화제와 같은)생활에서 실감하는 것이라면 (학생들이)쉽게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같은 사진을 싣기로 한 다른 교과서에서는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 이웃나라들과의 공통성이나 이질성을 소개했다. 한류 붐에 관한 기술도 덧붙였다고 한다. 이들 교과서에 대한 교육현장의 반응은 교직원들에게 견본이 가는 이달 중순 이후에 나올 것이지만, 한류를 “미디어에 의해 날조된 붐”으로서 폄하하는 ‘혐한류’파의 블로그에서는 이미 문부과학성에 항의메일을 보내는 운동마저 시작됐다. 그리고 한·일의 역사문제를 엮어서 이들 교과서에 대해 항의하는 혐한파 인사들도 있다. 이런 반응에 대해 편집담당자는 “일·한우호의 객관적인 현상으로서 담담하게 소개했을 뿐”이라고 냉정한 반응을 보인다. 한류에 대한 찬부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거품경제 붕괴후 정체해 있던 일본인이 보여준 열광은 객관적으로 봐서도 분명히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연예인은 금기시’했던 일본 교과서업계의 상식까지도 바꿀만큼의 충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솔직히 놀랍다. 고교생들은 내년 봄 이들 교과서를 어떤 생각으로 볼 것인지 궁금하다.
  • [씨줄날줄] 한·일전/오풍연 논설위원

    “일본은 한국에 있어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과거 식민지 역사에서 비롯된 앙금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한·일간 문제는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 이성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최근 ‘부와 권력의 대이동’을 펴낸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미 전략경제연구소장은 몇해 전 두나라 관계를 이처럼 진단했다. 감정적 대응은 한국에 불리하다는 점을 시사한 대목이다. 극일(克日)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경제·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국민의 감정 역시 그렇다. 한국에 반일(反日)이 있다면, 일본에는 혐한(嫌韓)의 뿌리가 깊다. 지난해 7월 발간된 ‘만화 혐한류’(야마노 샤링)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만화는 “일본이 오늘의 한국을 건설했다.”는 식의 왜곡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일본 우익세력의 대대적인 판매공작 등 지원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오죽했으면 뉴욕타임스(NYT)가 이를 ‘비이성적’이라고 꼬집었을까. 여기에 보수·우익신문인 산케이는 NYT의 ‘반일’적인 논조를 공격하기도 했다. 5일 오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최종 3차전이 치러진 일본 도쿄돔. 우리 선수들은 3대2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둬 일본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수단의 이성이 그들의 감정을 압도한 경기였다. 이번에도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다. 오 사다하루(王貞治) 감독과 이치로, 마쓰자카는 ‘30년 망언’ 등으로 기선잡기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달랐다.9회말 박찬호가 이치로를 뜬공으로 잡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이진영의 호수비도, 이승엽의 2점 홈런도 이성적 판단과 다부진 각오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오 감독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5개)을 1개차로 갱신한 기록도 가지고 있는 이승엽이 단연 돋보였다. 그의 오기가 일본 야구 영웅들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순간이었다. 한·일전의 승리는 국민에게도 쾌감을 더해준다.13일부터 미국에서 열리는 WBC 2라운드도 주목된다. 일본과 다시 맞붙는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듣고 싶다. 우리 선수단 파이팅!.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열린세상] ‘특정 아시아’ 국가로 취급받는 한국/윤민호 일본 국제경제연구소 상임연구원

    2005년도 2주밖에 안 남았다. 올해를 정리하는 입장을 우리 자신이 아닌 일본 사람이 보는 한국이라는 내용으로 나와 막역한 H씨의 소견을 정리해 보았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순수한 일본의 목소리라고 보아도 무관하다. 올해 Amazon.co.jp에서는 ‘만화 혐한(嫌韓)류’를 일본서적 베스트셀러 1위로 발표했다. 만화인 이 책의 내용은 덮어두고 일본에서 한국 관련 서적이 이렇게 팔린 것은 아무도 상상할 수가 없었던 일이다. 만화의 내용은 대부분 한국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에게는 별로 새로운 사항도 없는데 왜 이러한 독자들의 지지를 얻었는지 주목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 책을 ‘혐-한류(Anti-Korean Culture Wave)’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혐한-류(Anti-Korea Movement)’로서 한국에 대한 감정의 악화를 나타내는 것이다. 일본인들 중에는 ‘한국은 알면 알수록 싫어진다.’라고 하는 의견이 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은 처음에는 일본과 다른 한국문화 등에 공감을 하면서 좋아하게 되다가 어느 날 이 감정이 반감으로 변해 버린다. 그 배경은 바로 한국사람이 외치는 큰소리에 있다고 본다. 이것이 일반화되어 버려 ‘한국’에 대한 네거티브 이미지가 굳어져 버리는 것이다. 2005년의 한·일 관계는, 독도(다케시마), 교과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로 큰소리가 들렸다. 다툼에는 항상 상대와 옳고 그름이 있지만 이에 관계없이 마지막에는 양쪽을 벌하는 사회적인 풍습이 일본에는 있다. 물론, 한·일 양국의 주장에 대해서 양쪽의 입장이 있다. 그러나 이 중에는 일본사람으로 이해할 수 없거나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외교전쟁’을 선포하거나, 외국을 방문해서 일본에 대한 비난을 되풀이하면 좋았던 사이도 나빠진다. 공식 명칭인 천황을 일왕이라고 하고, 일장기를 태우는 행동이 일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 것인가? 미뤄 알 수 있는 일이다. 교과서문제도 많은 일본 사람들은 내정 간섭이라고 느낀다. 한국의 일부 국정교과서 내용에도 승복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는 일본의 종교관을 이해하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쓸데 없다. 한국인은 36년간 상처 입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가 한국이다. 이웃 나라이기에, 사이가 좋을 때도 있으면 나쁠 때도 있다. 같은 한국 사람끼리도 주장이 달라 큰소리를 낸다. 더욱, 외국인 일본을 완전히 알아달라고 하면 생각하는 쪽이 이상하다. 이제 속 마음이 안 통하는 겉만의 우정은 의미가 없다. 정말 가까운 우정은 상대의 주장을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사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가 틀렸다면 지적하고, 때로는 싸움조차도 필요하다. 상대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틀린 점을 인정하는 것도 우정에는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는 진정한 우정을 육성해 왔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 답은 공교롭게도 ‘우정의 해’인 2005년에 최악의 결과를 보여 주었다. 지금, 일본의 유명 인터넷 게시판에는 ‘특정 아시아(특아)’라고 하는 단어가 유행 중이다. 특정 아시아를 한국, 북한, 중국으로 단정하고 있다. 이 3개국을 일본에 있어서의 다른 국제사회나 외교관계에서 떼어내어 생각하자라는 의미의 움직임의 하나이다. 시장경제나 민주주의 등 일본과는 체제가 일치하고 있는 한국이 왜 북한과 같은 일당독재국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와 같이 분류되고 있는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2005년은 일본·EU 시민교류과 독일의 해,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과는 외교관계 수립 50주년이며, 중미제국과는 외교관계 수립 70주년의 해였다. 그러한 가운데 가장 대대적으로 다룰 수 있었던 것이 ‘한·일 우정의 해’라는 것은 어느 일본 사람도 부정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윤민호 일본 국제경제연구소 상임연구원
  • 日서 ‘한국혐오’ 만화 시판 물의

    |도쿄 이춘규특파원|‘한·일 공동주최의 2002 월드컵은 한국측이 반칙과 오심 등으로 더럽혔다.’‘한국은 독도에 등대와 헬기장 등을 건설, 경비대를 상주시키며 불법점거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을 비하·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일본 만화 ‘혐한류(嫌韓流)’가 26일 시판에 들어갔다. 앞서 일본의 대형 인터넷 서점 등에서 일본 서적부문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며 한·일 네티즌간에 논란을 일으킨 만화책이다. 이 만화가 시중에 판매되면서 광복 60주년을 앞두고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 등 향후 큰 논란이 예상된다. 대대적인 판매공세를 펼쳐 대형서점들의 인기 판매대에 자리잡고 있는 이 만화가 앞으로 얼마나 팔려나갈지 주목된다. 표지에는 “위험천만하다며 출판사들이 출판을 거부한 문제작”이라고 표기, 우익들을 선동하는 듯했다. 이 책은 월드컵축구, 전후보상문제, 재일한국인,‘일본문화를 도둑질하는 한국’, 반일 매스컴의 위협, 한글·한국인, 외국인참정권문제, 한일합병의 진실, 독도문제 등 9개 주제별로 한국을 비난하거나 비하하는 내용 일변도이다. 이와 함께 ‘밖이 보이지 않는 가련한 민족’이라는 평론가의 칼럼 등 4편의 칼럼도 함께 실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했다. 특히 한국언론 비난에 집중, 만화와 칼럼 등을 통해 “식민지 시절 등에 대한 날조보도를 일삼는다.”고 억지를 폈다. 한글에 대해서는 저주를 퍼부었다.“한글이 세계 최우수 문자냐?”고 비아냥거리면서 한글 창제 뒤 반포까지 3년이 걸린 것에 대해 “종주국인 중국으로부터 반역이라고 여겨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깎아내리려 했다. 특히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기 이전에는 조선인의 문자해독률이 10% 정도에 머물렀지만 합병(1910년) 뒤 일본은 학교교육에서 조선어(한글)를 필수과목으로 해 한글 보급이 급속히 진행됐다.”고 주장했다.taein@seoul.co.kr
  • [열린세상] 2005년의 한류와 반일은?/임춘웅 언론인

    이른바 ‘한류(韓流)’와 관련해서 요즘 일본에서 전해오는 뉴스들은 한국사람들까지 놀라게 한다. 그래서 가끔 우쭐해지는 느낌을 갖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하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19일 일본의 NHK 위성방송은 무려 8시간에 걸쳐 한류특집방송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어떤 교수는 한류가 일본인, 특히 일본여성들을 ‘꿈의 포로’로 만들어 버렸다고 쓰고 있다. 이제는 미국·캐나다는 물론 유럽에서까지 일본의 한류바람을 보도하고 있다. 동남아 여러 지역에서 한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일이다. 한데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여러 면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는 나라이고 또 일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반적으로는 한국을 매우 비판적으로 보았던 나라이기 때문이다.60∼70년대 일본 지식사회에서 한국은 차라리 혐오의 대상이기도 했던 것이다.‘혐한론(嫌韓論)’이 그것이다. 혐한에서 한류까지, 반전이 채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참으로 극적이다. 그 배경으로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대체로 바뀌고 있는 변환의 시점임을 지적하는 이가 있다. 그것은 2001년 도쿄 지하철역에서 일본인의 목숨을 구하고 죽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군의 의로운 행동이 일본인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고, 한국의 경제발전과 2002년 월드컵때 길거리 응원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결집력과 활력에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던 터에 ‘겨울연가’가 다시 일본인들의 마음에 산뜻한 감상을 안겨주었다는 얘기다.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본의 ‘욘사마 열풍’을 설명하는 데는 60여년 전 미국의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보다 적절한 설명은 없을 듯하다. 일본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 쓴 ‘국화와 칼’은 아직도 일본문화를 이해하는 데 그만한 책이 없을 만큼 일본연구의 고전에 속한다. 베네딕트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명예를 매우 중시해서 자기 명예를 더럽혔다거나 상대로부터 모욕을 받으면 기필코 복수를 하거나 죽음으로라도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 갓푸쿠(割腹)가 많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45년 일본의 항복을 받아 본토에 상륙한 미군은 일본에서 패전의 굴욕을 참지 못한 나머지 집단 자결이 이어지고 요즘 이라크에서처럼 미군에 대한 대대적인 테러가 계속될 것이란 우려에서 맥아더 사령부는 한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사람들은 미군을 따뜻하게 환영해주었다. 미군 혼자 길거리를 다녀도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미군 당국은 이런 뜻밖의 현상에 한동안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을 제대로 몰라 혼동이 있었을 뿐 일본인들은 일본인의 방식대로 일관성을 유지했고 명예를 지켰다고 베네딕트는 지적하고 있다. 당시 일본이 명예를 지키는 길은 미국을 환영하고 미국을 배움으로써 가능하다고 일본인들은 즉각 발상을 전환했다는 것이다. 졌으면 깨끗이 승복하고 승자에게서 배우는 게 일본문화의 뿌리라는 설명이다. 지금 일본에서 일고 있는 한류를 이해하는 데 베네딕트의 연구를 상기시키는 일이 적절한지는 의문이 없지 않지만, 그의 연구는 한류로의 반전을 이해하는 데는 참고가 될 것이다. 현실을 있는 대로 즉각 받아들이는 일본문화의 개방성과 현실성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2005년은 한·일관계에서 매우 의미있는 한해가 될 것 같다. 광복 60년이 되는 해이고 을사조약 100년이 되는 해이다. 또 한번 캘린더 저널리즘이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광복과 을사조약을 되새기자면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2005년이 시작됐다. 올해 한국에서 일본을 되돌아보는 일과 일본의 ‘욘사마 열풍’은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게 될지 궁금하다. 임춘웅 언론인
  •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日 여성들 왜 ‘겨울연가’에 빠져드나] ‘거친 韓國’ 이미지 개선

    |요코하마 이춘규특파원|신세대 학자 오구라 기조 도카이대 조교수(한국철학)는 겨울연가 열풍 효과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 기여할 것으로 봤다.다만 역사 문제가 다시 부각될 내년에는 고비를 맞을 것으로 봤다. 자택 인근 요코하마 시내 한 호텔에서 오구라 교수를 만났다.많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 중에서 하필 왜 겨울연가인가.그는 겨울연가가 일본인의 향수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중년 여성들의 20∼30년 전 순수한 사랑을 되새기도록 자극했다는 얘기다.일본인에게는 억제당하는 직설화법도 신선했단다.한국어에 대한 분석은 독특했다.일본인들은 한국어가 강하고,거칠고,폭력적이란 이미지를 가졌었단다.학생운동·반일시위 등의 영향 때문이라고.그런데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말이 부드럽고,사랑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언어라는 이미지가 정착됐다나.말이 음악같기도 해 한국어 바람으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한국,한국어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현상이 ‘무서울 정도’라고도 표현한 그는 일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겨울연가처럼 이상적인 사회로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역시 우려했다.드라마 촬영지 방문도 독특하게 분석했다.약 1100년 전부터 수백년간 일본인들은 순례를 집단으로 행해 종교적 해탈감을 맛보았다고 한다.그런 잔재들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남이섬을 찾는 것도 비슷하단 주장이다. 오구라 교수는 겨울연가 돌풍을 1회성으로 보지는 않았다.역사적 배경이 있단다.일본이 한국을 배울 만한 나라로 여긴 것은 두 차례.첫번째는 7세기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간을 만들 때 이른바 백제 신라의 귀화인들이 문화를 갖고 일본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가 제도와 문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 시대다.도쿠가와는 7년의 전화를 봉합하기 위해 “나는 도요토미와는 완전히 다르다.주자학의 선배로서 조선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해 국교를 재개하며 조선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번이 세번째 한국 배우기란다.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 때 한·일 파트너십 선언,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 언론들이 한국에서 배우자는 바람이 일었다는 것이다.겨울연가 종영 이후에도 “한국의 작품들이 일본인에게 계속 매력있게 남아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겨울연가는 잊고 지낸 이웃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 촉매제였다는 분석이다. 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며 갑자기 젊은 여성들이 홍콩에서 한국으로 발길을 돌렸고,월드컵 등 축구를 통해서 젊은 남성이 한국에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마지막 남았던 중년 여성들이 겨울연가를 통해 한국알기에 나서 일본 전체 세대가 한국알기에 동참했다.물론 서울올림픽 때 한국바람이 일다가 독도·위안부 문제 등으로 반일,혐한 분위기로 돌변했듯이 이번에도 역사인식 문제나 한국의 친일파 진상 규명 등 넘어야 할 변수가 많다고 우려했다.그 고비가 내년이란 분석이다. 재일동포들의 소외감도 우려했다.한·일 가교역을 담당했던 동포들이 직접교류 확대로 역할이 축소되는데다,재일교포의 고난은 잊어버리고,겨울연가의 영향 때문에 역사 문제는 외면하고 여행·소비 위주의 교류 확대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는 얘기다. taein@seoul.co.kr
  • 北송금 파문/정치권 해법 논란 ‘비공개 증언’ ‘특검’ 기싸움

    대북 비밀 송금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당선자측과 여권에서 관계자들의 비공개 국회 증언에 이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對)국민 해명·사과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나서 주목된다. 이같은 ‘선(先)증언-후(後)해명론’이 제기된 데는 남북교류·협력의 성과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대북 지원 내역을 전면 공개할 수밖에 없는 특검제를 도입하기보다는 먼저 진상부터 비공개로 살펴보자는 논리다.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사건 은폐 시도”라며 이번 파문을 ‘초유의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선(先)증언-후(後)해명’ 민주당과 노 당선자측에서 거의 동시에 제기됐다.청와대도 ‘비공개라면….’이라며 싫지 않은 눈치다.때문에 청와대와 노 당선자측,민주당이 지난 5일 김 대통령의 담화를 기점으로 뭔가 물밑 조율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는 6일 “(김 대통령의 ‘전모 공개 불가’ 언급에 대해)뒤집어 생각하면 비공개로는 얘기할수 있다는 것 아니냐.”며 “비공개라면 대통령의 사람들이 얘기할 수 있고,대통령은 나중에 대미를 장식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김원기 의원은 “대통령이든 다른 당사자들이든 국민 정서로 봐서 좀더 진솔하고 자세하게 해명해야 한다.”며 문 내정자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정균환 총무도 이날 아침 KBS 라디오에 출연,“국회 관련 상임위에서 관련자를 증인,참고인으로 불러 공개할 것은 공개하고 비공개할 것은 비공개해야 한다.”며 국회 증언 방식을 주장했다. 청와대는 여야가 관련 당사자의 국회 출석 비공개 증언 방안에 합의하면 이에 응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은 비공개 증언은 가능하다는 입장 표명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해 이같은 예상을 뒷받침했다. ●칼자루 쥔 한나라당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그러면서도 연일 민주당에 대한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이번 일을 계기로 대선에서 실추된 명예를 만회하고 내년 총선 승리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이날 민주당과 당선자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강력 반발했다.이규택 총무는 “어떤 일이 있어도 특검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김영일 총장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박희태 대표권한대행도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이번 사건은 10개 이상의 현행법 위반 등 범죄적 수법이 개입돼 있는 만큼 특검이 아니고서는 밝힐 수 없게 됐다.”며 여권과 청와대를 압박했다. 결국 해법의 열쇠는 한나라당의 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국회 과반수 이상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다수결로 특검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여권으로서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기 때문이다. 김재천기자 patrick@kdaily.com ★박희태 대행 국회연설 안팎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의 6일 국회 연설은 ‘상생의 정치’를 강조했지만,현 정치상황을 놓고 보면 여권에 대한 경고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박 대행은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제 수용을 강력히 요구했으며 대미·대북관,외교관 등 노무현 당선자의 상황 인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나아가 “새 정부가 국민적 의혹을 덮으려 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분명히 해둔다.”고 못박았다.박 대행은 특히 상생의 정치를 언급하면서 “야당을 파괴한 정권은 성공한 적이 없다.”거나 “(상생에 대한) 약속을 먼저 지키라.”고 강조,여권에 먼저 자세 전환을 촉구했다.대표 연설 준비기간이 짧았음에도 주요 현안을 대체로 잘 짚었다는 평가다. ●대북 송금 박 대행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해 교류협력법이나 경협기금법을 마련했고,지난해 자금이 4000억원이나 남아서 올해로 이월됐다.”면서 “이를 통해 종교단체나 기업 등이 쌀도 주고 금강산 관광도 하는 등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데 왜 대통령만 유일하게 불법이 아니면 할 수 없느냐.”고 반문했다.이어 노 당선자에게 “진실을 고백하라고 김 대통령에게 조언해야 하며 그 길이 상생하는 길”이라고 주문했다. ‘통치행위’논란에 대해서는 “‘왕의 말이 법’이 되는 전제군주시대의 낡은 개념”이라면서 “민주주의가 발달하고 법치주의가 심화된 오늘날은 재직시 재판에 회부되지 않는 일시적인 특권만 있을 뿐,대통령의 행위도 성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그럼에도 “국민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 대통령의 독단에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 박 대행은 “노 당선자는 세계가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북한과 국제사회를 중재하겠다.’고 했지만,북핵에 있어 우리는 제3자가 아닌 당사자”라면서 “이에 대한 찬반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강조했다.또 “미국 내에서 반한(反韓)·혐한(嫌韓) 분위기가 확산되고 주한미군 철수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다.”면서 “국내의 반미 여론과 함께 이를 가라앉히고 미군철수 절대불가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박 대표는 김대중 정권이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찾다 동향 출신의 ‘끼리끼리 정권’으로 전락했는데,노무현 정권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만 찾다가 ‘외곬 정권’이 될 수 있다.”면서 다양한 인재 등용을 주문했다. 이지운기자 jj@
  • [열린세상] 월드컵, 한일관계, 동아시아 공동체

    월드컵 대회 덕분에 일본의 궂은 장마철을 잊게 한 열광의 한 달을 보냈다.그러나 잔치가 끝나면 뒤치다꺼리도 해야 하고 복잡한 현실이 성큼 다가온다.축제의 막판에 터진 서해교전 사건은 우리가 처한 현실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북·미 대화의 재개 가능성이 후퇴하는 가운데 ‘악의 축’인 이라크에 대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반도를 중심한 동북아시아 정세도 긴장격화를 피할 수 없다.한국과 미국이 선거의 계절을 맞고 있고,중국도 지도자의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일본도 정치적 리더십 결여로 인한 국내정치의 혼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외교의 국정화(國政化)’,즉 국내정치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대중여론이 외교에 큰 영향을 미치고,외교가 정쟁의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구도가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냉전 종결 이후 명확한 대립관계가 소멸하고,국경을 초월한 정보혁명이 확산되는 현재의 글로벌화 시대에는 외교의 성패도 상대방 국가의 정부가 아니라 일반 시민의 마음을 어떻게사로잡는가가 관건이 된다.월드컵 대회에서 보여준 한·일관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서,우리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과제인 동아시아 공동체의 실현을 향해 지혜와 노력을 모을 때다. 이번 월드컵 대회는 동아시아의 가능성과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한·일 양국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공동의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에도 커다란 공헌을 했다.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의 거리가 부쩍 좁혀진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일본 체류 20년 가까이 되지만 일본 사회에 이처럼 한국이 깊숙이 파고들고 또 크게 부각된 예를 기억하지 못한다.개막 이전에는 공동 개최국이라는 형식적 동기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보도들이 눈에 띄었다.그러나 대회 기간 중에는 한국사회의 변화와 역동성이 생생하게 전달됐다.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외국 관련 뉴스는 정치나 경제면에 집중된다.한국에 대해서도 국내정치의 파당대립과 지역주의,남북긴장이 되풀이되는 이미지였다.간헐적인 소개는 있었지만,이번 대회가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로 크게 변모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일본 대중에게 각인시켰다는 의미는 매우 크다. 물론 매스컴의 보도대로 ‘4강’이라는 한국 선수단의 위업에 대해 일본 국민 대다수가 박수를 보내고 같이 환희하며,‘붉은악마’ 현상에 감동한 것은 아니다.몇몇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한국에 오히려 반감을 표현하는 비율도 절반 가까이 존재한다.젊은 세대와의 솔직한 접촉에서 얻는 체험적 비율은 이보다 높고,또 감정적이기도 하다.필자도 협력을 요청받은 ‘뉴스위크 일본판’(7월10일자) 특집기사 ‘혐한(嫌韓)무드가 비치는 공동개최의 모습’이 일본의 속마음에 오히려 가깝다.경쟁심과 질시는 자연적 반응이기도 하며,오히려 다수는 아니더라도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진심에 가깝게 한국을 응원하고 감동한 현상이 주목해야 할 변화다.이같은 변화가 지난 10여년간진행된 한·일교류와 접촉의 성과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이제 한·일관계의 개선은 국가나 정부 차원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량이 중심이 돼야 할 단계다.또 그 길이 보다 효율적이기도 하다.과거사의 틀에서만 한·일관계를 접근하는 것은 한국의 입장을 ‘피해자’로 왜소화하고 특수화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역사문제의 원칙을 국가적 차원에서 확고히 견지함과 동시에,일본보다도 개방적이고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좁은 일본을 바꾸는 첩경이다.일본을 한국내에 끌어들이고 또 일본 사회 안에 뛰어들어서 일본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금의 한국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작년우경화된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이 0.4%에 머무른 것이 그간의 한·일 민간교류의 성과라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한·일관계의 심화는 양국관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의 디딤돌로서의 의미가 보다 크다.중국의 대두 등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위협의식 속에서 일본은 동아시아라는 틀에의 거부감을 증폭시키며 미·일 안보 강화로 크게 기울고 있다.일본 정부와 사회의 대북한 강경화도 이같은 전략구도와 무관하지 않다.방황하는 일본을 끌어들여 동아시아의 지역협력 틀을형성하는 것은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다. 이종원/ 日 릿쿄대 교수
  • [오늘의 눈] 권희로씨 사건이 남긴것

    최근 일어난 권희로씨의 살인미수 사건은 여러모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국민들 가슴에 일본의 차별대우에 항거한 ‘애국지사’로 아로새겨진 그가 하루아침에 내연의 처와 살인을 공모한 ‘현행범’으로 전락했다. 99년 9월,그의 석방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많은 국민들,한국 생활정착을 위해 물심 양면으로 도왔던 지인들 역시 이번 일이 생기자 허탈한 마음을 가눌길 없을 것이다. 현해탄 너머 일본에서도 이번 권씨 사건은 화제가 되고 있다.대부분신문들은 서울 발 주요 기사로 실었고 산케이 신문은 사회면 톱으로사건 전말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의 이런 반응 행간에는 그동안 ‘살인자 권씨를 애국지사로 부각시켰던 한국 보도행태’에 대한 불만이 쉽게 감지된다.일부일본 언론들이 ‘거 봐라, 우리 말이 맞지 않았느냐’는 식의 쾌재도부르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권씨 사건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처리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권씨 석방 와중에서 벌어졌던 한일 양국의 신경전이 다시 재현되지나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씨 석방과정을 통해 우리 언론이 지나치게 ‘애국지사’로 부각시켜 일본인의 혐한(嫌韓) 감정을 부추겼던 점은 분명 반성할 대목이다. ‘권씨를 반일(反日)의 영웅으로 무비판적으로 미화’함으로써 그의불미스런 일부 행적을 고의로 외면하지나 않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사건이 국민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한쪽으로만 치닫는 한국 매스미디어의 특유의 ‘냄비식 보도’,균형감을 잃은 한국의 언론때문이라는 지적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일본 언론 역시 해방 후 켜켜이 쌓여 온 ‘민족차별 문제’를 애써외면,권씨를 단순한 ‘범죄자’로 취급하려했던 ‘축소지향의 보도’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권씨를 반일감정을 부채질하기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일본의 과잉반응 역시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남게하는요인이 될수 있다. 껄끄러운 한·일 관계를 온몸으로 상징했던 권희로씨.30여년의 감옥생활로 희박해진 현실 감각과 믿었던 사람(옥중 결혼했던 돈모씨)의배신, 그리고 이번의 철창행….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한 인간의굴곡된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오일만 정치팀 기자 oilman@
  • 日극우 논객들의 한국 嫌惡론 비판서

    20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한일 두 나라는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지난 65년 국교정상화로 외형적인 상처는 치유됐지만 양 민족간 내면적인 민족감정은 여전히 응어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일제말기 국민학교를 다닌 저자는 기본적으로 일본인의 대한자세를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나 몰역사적인 한국 지도층의 대일자세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치 않고 있다.혐한론을 펴는 일본내 극우보수 논객들의 주장과 그 심리적 모태를 상식인의 입장에서 접근한 사회비평서다.도서출판 창암,값 8,000원.
  • [대한시론] 국가적 명분의 허와 실

    “기무치는 김치가 아니다” ‘김치’는 소금에 절인 배추에 젓갈을 넣고 발효시킨 것이지만 ‘기무치’는 그렇지 아니한 ‘아사즈케’(淺漬)라는 ‘겉절이’ 김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Kimchi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인정한 김치의 국제적 표기이므로 일본의 아사즈케는 2001년부터 Kimuchi로 표기해 수출해야지 김치로 표기할 수 없다. 이렇게 되자 일본은 기무치를 김치의 국제규격에 포함시키려는 방향으로 물꼬를 트려고 하며,우리는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문제는 일본 시장의 80%를 기무치가 차지하며 기무치가 이미 세계 김치시장의 78%를 선점하고 있다는 점이다.기무치가 국제규격을 갖추지 못한다 하더라도 세계시장에서 김치가 기무치를 극복하여 이기지 못한다면 기무치가 배추를 원료로 한 반찬의국제적 대명사로 되고 김치는 한국 등 일부에서만 선호하는 국지적 먹거리로 전락할 것이다. 세계인의 입맛을 김치로 먼저 길들여놓는 것이 실(實)이고 김치의 원조가이러하며 규격이 저러하다 하는 것 역시 중요한 사안이지만 실은 허(虛)임에도 불구하고 우린 명분의 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1603년 일본은 교토(京都) 천왕은 그대로 인정하면서도 실권을 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일본 통치의 대권을 잡고 에도(江戶·지금의 도쿄)에 막부(幕府)를 세워 260년 이상 지속한다.천왕이 상징하는 정당성과 쇼군(將軍)이 ‘칼’로 보여주는 실효성의 균형이 팽팽하게 이어져 온 것이다.신적인 존재로까지 떠받들어진 쇼군의 치세는 그러나 1853년에도 근방 우라가(浦賀)에 무쇠덩어리로 만든 미국 페리제독의 흑선(黑船)의 함포 앞에 무력하게 스러진다. 지구의(地球儀)에서 본 먼 곳의 저들을 올 수 있게 한 흑선을 만든 서양오랑캐의 기술이 칼잡이 무사들의 마음을 깊은 곳에서부터 흔들어놓았다.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세계는 넓으며 육지보다 더 광대한 부분을 차지하는 바다를 통해서 쉽게 이동할수 있는 서세의 동점(東漸)에 굴복하지 않을수 있는유일한 길은 선진기술의 습득,이를 가능케 하는 교육,사회 전체가 뒷받침할수 있는 체제의 개편 등이었다. 그 몫을‘지사’라고 불리는 일군의 개혁가들이 담당하였고 그들 대부분은 칼을 업으로 하는 무사들이었다.기득권으로서 칼을 버리고,신분을 버리고,그리고 자기를 버렸다.명치유신은 이로써 이루어졌다.그들에게 명분은 천왕과 쇼군이었겠지만 흑선 제조라는 실질,즉 국가적 명분을 위해 버렸다. 우리의 김치가 이름에서 기무치를 이겼음을 일간지가 반은 대견하고 반은호기심으로 보도했을 때 적어도 인터넷으로 뒤져 본 일본의 중요 일간지에서는 이를 찾기 어려웠다.명분의 실은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명치유신을 이끈 일군의 지사라 불리는 자들은 혐한파(嫌韓派),정한론자(征韓論者)들이 많았다.페리제독이 했던 수법과 똑같이 운양호라는 흑선을 몰고 와 속칭 ‘강화도조약’을 체결케 하고 그들 중 질이 나쁜 낭인은 우리의명성황후를 자살(刺殺)하였다.국가란 무엇이고 국익은 또 무엇이며 국부는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이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지식인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북한 대포동 미사일에 온 일본이 2년여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면서미·중의 원격조정까지 유도하는 등 민감하게 대응하여 결국 자위대의 세력을 키워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태연자약한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일본 방위청 장관인 니시무라 신고(西村眞悟)의 핵무장과 대동아공영권 발언에대범한 그런 우리들이야말로 일본 문화의 전면 개방이 임박한 21세기 한국의 진로를 어렵게 한다. 김치에 관하여 끝을 맺자면,오늘의 컴퓨터 시대를 주도하는 n세대,햄버거와 샐러드를 즐기는 신세대들은 혹 소금으로 절여 젓갈로 삭힌 김치보다 겉절이로 매콤하게 만든 ‘기무치’를 샐러드와 함께 더 찾을지도 모르겠다. 姜 京 根 숭실대교수·헌법학
  • 金 대통령 訪日 결산­전문가 특별 대담

    ◎“과거사 종결,미래 협력체제 구축을”/戰後 차세대 지도자 인적교류 시급/‘구조조정’ 日 역할 위해 ‘장벽’없애야/日 문화 자정능력 키워야 개방땐 유익 金大中 대통령의 국빈 방일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21세기를 새롭게 열어갈 ‘신(新)한·일 공동협력 방안’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지난 한세기 동안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머물렀던 한·일 두나라 관계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吳淇坪 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와 金兌基 단국대 교수(경제학)의 특별대담으로 짚어본다. ▲吳淇坪 교수=외교라는 것은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을 얻어내는 것이다. 이번 金대통령의 방일 외교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 만큼 얻었다고 볼 수 있다.한·일 공동선언의 가장 큰 의미는 양국간 과거청산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다원주의 사회다.과거와 같은 망언·돌출발언도 나올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제 한국이 정치력과 지도력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방일을 계기로 과거사 문제는 이번에 완전히 종결을 짓고 미래지향적으로,21세기적 발상으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래 포럼’ 설립 절실 ▲金兌基 교수=이번 방일이 미래지향적 관계설정에 상당한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분야에서 ‘말 잔치’와 ‘수사 외교’라는 과거 외교관행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다.실무진들의 준비부족으로 대통령의 의지와 비전을 뒷받침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미래가 없을 땐 과거가 발목을 잡게되지만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해결방법이 다양해진다.이러한 의미에서 ‘한일 미래포럼’의 설립은 절실하다.앞으로 경제 문화 협력 방안 등 ‘21세기 동반자 관계구축’을 위해선 한·일 미래포럼 등의 상설기구가 주축이 돼야 한다. ▲吳교수=일본의 이번 사과는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과 문건으로 명문화시켰다는 점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앞으로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유익할 것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과거사 청산은 양국 협력의 기초를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더욱이 한·일 양국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만큼 공동협력 관계가더욱 절실한 상태다. 하지만 현정권이 미국이나 일본 등 어느 일방으로 기우는 외교정책을 펴서는 안된다.내심 일본은 정권출범 이후 현정권이 미국에 편향되고 있지 않나하는 우려감도 표시했다.이번 방일이 일본의 이런 기우를 확실하게 잠재운 효과가 있다.앞으로 한국­미국­일본의 3국협력 체제를 큰 틀로 일본과의 협력방안을 공고히 해야 할 것이다. ▲金교수=과거사 해결을 위해선 진정으로 반성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만 다원 사회인 일본의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사죄할 것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많은 일본 국민들은 지난 65년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과거사 문제가 일단락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일본이 이번에 과거사 사죄를 명문화한 것은 큰 진전으로 받아들이고 과거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양국 정치인들이 과거사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이 많았다.일본 극우파는 ‘혐한(嫌韓) 의식’을,일부 한국 정치인들은 ‘반일(反日)감정’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침소봉대(針小棒大)한 측면이 있다.이번 방일을 계기로 양국 지도층들이보다 성숙된 리더십을 키워야 할 것이다. ○對北 동북아 공동대처를 한·일 양국관계는 전후세대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방향이 돼야 한다.전후세대들이 양국의 중추세력으로 성장한 만큼 차세대 정치·경제 지도자와의 끊임없는 인적교류가 시급하다. ▲吳교수=최근 타결된 어업협정에 다소 불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우리도 적지않은 실익을 챙겼기 때문에 국민적 설득력을 갖는다.하지만 어업협정의 실효성은 앞으로 두나라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대응은 양국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중국과 일본 미국 러시아 등 동북아 관련국들의 공동협력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며 이런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양국의 공동대응이 이뤄져야 한다.다만 이번 북한 미사일 발사가 일본의 극우파들을 상당히 자극했다.이런 측면에서 金대통령이 우리의 대북정책 등 햇볕정책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다. ▲金교수=최근 타결된 한·일 어업협정은 시간적으로 대통령의 방일 일정에 맞췄기 때문에 실익 측면에서 적지않은 손해가 있었다.수년간 끌어왔던 협상치고는 실망스런 측면이 있다. 대북 대응은 무엇보다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대처가 선행돼야 한다.앞으로 있을 일본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아 양국의 의지를 천명해야 할 것이다. ▲吳교수=이번 30억달러의 차관 등 경협 보따리는 우리에게도 유리한 조건들이다.과거처럼 옵션이 적기 때문에 IMF체제 극복을 위해서 유용하게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金교수=이번 방일에서 일본이 풀어낸 ‘경제 보따리’는 사실 기대 이상의 선물은 아니다.오히려 한국의 경제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을 위해 앞으로 일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고 있다.일본이 한국의 제조업체 인수 등 구조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각종 투자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吳교수=일본 문화개방은 단기적으로 문제점도 일어날 수 있다.하지만 폐쇄·고립된 상태에서 살 수 없는 것이 현재의 국제사회다.자정능력을 능동적으로 키우면서 일본문화를 소화할 경우 문화개방은 결과적으로 문화발전에 유리하게 작용될 수도있다. ▲金교수=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전환기로 삼아야 한다.단순히 행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실무 교류·협력이 아니라 스포츠와 문화교류 등 양국 국민들이 참여하는 이벤트를 계속해서 만들어야 한다. ○안보리문제 실익 얻도록 ▲吳교수=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일본이 한때 제의했던 ‘거부권 없는 상임이사국’ 정도는 오히려 환영할 수 있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金교수=‘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편협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일본이 유엔 안보리에 진출하도록 돕고 우리도 이에 상응하는 실익을 얻으면 된다.이것이 ‘윈­윈 전략’이다.한국은 세계 강대국을 꿈꾸는 중국과 일본의 조정역할을 수행하면서 양자의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동북아 전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 일 우익 망언과 또다른 「폭발」/최두삼 국제부장(데스크 시각)

    『한국인들은 모기를 보고도 칼을 빼든다(견문발검)』­이 말은 남모 전 국회의원이 한국인의 성품을 두고 한 말이다. 요즘 일본인들은 이 말을 자주 떠올린다고 한다.일본 우익정치인들이 뭔가 한마디 내뱉고 지나칠 때마다 한국인들은 또 망언을 토해낸다고 핏대를 올리며 흥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또 이런 말을 자주한다.『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한국에 사죄하며 살아가야 하는가.국왕을 비롯해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 등 역대 수많은 총리들이 사과하고 사죄했는데도 또 계속 사죄해야 한다는 말인가.그러니 일본에서 혐한론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같은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인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자.삶의 자유를 짓밟고 부모형제의 목숨까지 앗아간 원수에 대한 원한이 한두차례의 사과만으로 확 풀리겠는가.그것도 그들이 가만히 입을 봉하고 있으면 모르되 계속 자기들에겐 잘못이 없다며 우리의 속을 뒤짚는 망언을 되풀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잘못없다” 되풀이 지난 53년 한일회담대표였던 구보다 간이치로가 『일본의 식민통치는 한국에 유익했다』며 시작된 일본우익의 망언은 패전 50주년인 지난해 『한일합방은 합법적이었다』(무라야마 전 총리)로 극에 달한후 최근들어 다시 쏟아지고 있다.가장 가관인 것은 외국요인들에게 야스쿠니신사(정국신사)를 참배토록 하자는 최근의 주장이다. 도대체 야스쿠니신사가 어떤 곳인가.다른 나라에서처럼 외국의 침략으로부터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해 숨져간 영령들이 모셔진 곳이 아니지 않은가.그곳에는 조선침략의 수괴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와 2차대전 전범 도조 히데키(동조영기) 등 A급 전범들을 비롯,청일전쟁,노일전쟁과 만주침략 등 대부분 외국 침략에 나섰던 약2백50만명의 위폐가 안치된 곳이다.일본은 그동안 외국을 침략만 해왔을뿐 침략을 받아본적이 없기 때문에 일부 내전 희생자를 빼면 대부분이 침략군 소속일 수밖에 없다. 일본우익의 망언을 들을 때마다 항시 생각나는 것은 독일이다.그들에겐 망언이 없기 때문이다.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은 85년 『과거에 눈을 닫는자는 현재도 볼수 없다』고 말했는가 하면 콜총리도 지난해 『독일국민의 이름으로 자행된 나치학살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죄했다.독일지도자들이 나치묘소에 참배하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독일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왜 망언이 계속 쏟아지고 있는가.일부 학자들은 일본인들이 명치유신이후 서구화하면서부터 아시아인을 깔보기 때문이라고 한다.그것보다는 2차대전이후 등장한 냉전체제 때문에 군국주의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사실을 꼽는 학자도 있다.전후 경제발전기에도 주역을 맡게된 군국주의 주역들이 스스로 자기의 과거를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태도와 대조적 그러나 이같은 일본인들의 망언배경보다 더 경계해야할 일이 있다.그것은 재일동포 수학자인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인들이 50년을 주기로 국민적 에너지를 축적·폭발시켜왔으며,그 가장 큰 희생양은 항상 한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일본은 1543년 조총 두자루를 수입해다가 약 50년후 전유럽보유량보다 많은 조총을 만들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19세기 중엽 명치유신에 성공한후 약 반세기만에 조선을 삼켰고 그후 반세기도 안돼 2차대전을 일으켰다가 패전했다. 2차대전후 또다시 50년이 흘렀다.그동안 일본은 오직 경제건설에만 매진하더니 결국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에 올라섰다.그러더니 최근 들어서는 경제대국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속셈을 보이기 시작했다.경제수준에 걸맞는 군사대국,정치대국도 돼야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그러면서 개도국들에 대한 정부개발원조(ODA)를 대폭 늘리고 유엔평화유지군(PKO)에도 참여하면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넘보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 빈발해지고 있는 망언들을 고려하면 지난 반세기동안 경제를 중심으로 축적된 에너지가 또다시 폭발직전의 발화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이제 일본인들의 망언에 대해 조건반사적으로 흥분하기보다는 일본의 또다른 폭발에 대응해 어떻게 해야 큰 피해를 모면할 수 있을지 통찰해볼 시기인 것 같다.
  • 정상회담을 보는 일 언론 논조

    ◎도쿄신문­월드컵 계기 미래지향 관계 구축해야/요미우리­역사인식·통상문제 시각차 해소 시급 어렵사리 성사된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일본 언론들은 사설등을 통해 「한·일관계가 어렵게 전개된 경위」를 지적하면서 양국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했다. 최근 한·일관계에 대해 요미우리신문은 22일자 사설에서 『한·일관계는 전혀 호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인의 반일감정,일본인의 혐한감정은 증가해 왔다』고 지적했다.또 도쿄신문도 21일 한·일관계만을 보면 역사인식과 통상관계등 입장이 서로 다르고 이해가 상반되는 현안이 적지않다며 비슷한 견해를 제시했다.특히 요미우리신문은 지난해 「한·일합방조약의 유효발언」,「에토총무청장관의 발언」,「독도 영유권 문제」등이 일어나 악화일로를 걸어왔다고 지적하면서도 김영삼대통령이 대일강경자세를 취한 것도 관계악화에 박차를 가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지난 94년 7월 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의 방한이후 2년동안 일본총리의 방한이 성사되지 못했다.이와관련,요미우리신문은 하시모토 류타로총리가 한국방문에 대해 대단히 신중했다고 말했다.또 산케이신문은 하시모토총리가 열의가 없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한일 양국은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 결정과 북한지원문제등으로 관계개선이 절실한 과제로 등장했다고 이들 언론은 분석했다.일본언론들은 이번 방한이 한국측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는가 하면 김대통령으로서도 북한지원을 둘러싸고 한·미·일 3국의 입장차이가 표면화하고 있어 일본과의 연대강화가 필요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월드컵 공동개최와 관련,도쿄신문은 미래를 향한 공동작업을 계기로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했다. 또 요미우리신문은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일 양국의 연대가 불가결하다면서 앞으로도 한충 긴밀히 연대해 나간다는 점을 확인하는 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종군위안부문제와 과거사문제등과 관련,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등은 사죄나 해명의 회담이 되면 생산적이지 못하다면서 미래지향적 관계를 내세웠으나 도쿄신문은 「아시아속의 한·일관계」와 「세계속의 한·일관계」라는 폭넓은 시점으로부터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했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에토 망언」 향방은…

    ◎서울의 입장/일정부·당사자 양심에 “마지막 기대”/공외무 일정 비워두고 「도쿄측 조치」 주시 이번 주말을 고비로 한일 관계는 중대한 기로를 맞게 될 것 같다.정부는 11일 『식민지배 시대에 한국에 좋은 일도 했다』는 망언을 한 에토 다카미(강등륭미) 총무청 장관이 사임하지 않으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인 오는 18일로 예정된 김영삼 대통령과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 간의 정상회담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일본측에 통보했다. 정부는 아직도 일본 정부와 에토 장관의 마지막 양심에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양국 외무부 간의 막후 접촉도 계속 중이다.물론 일요일이기도 하지만 공로명 외무부장관은 12일의 일정을 완전히 비워두고 있다.현시점에서는 ▲11,12일 사이에 에토 장관이 자진 사임하고 ▲고노 외무장관이 일요일인 12일 방한,공장관을 만나 무라야마 총리와 자신의 과거사 발언을 해명하고 ▲13일 김대통령을 예방한뒤 일본으로 돌아가 ▲18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것이 양국 외교 당국자들이생각하는 최선의 시나리오이다. 이 정도로까지는 되지 않더라도 공장관이 APEC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15일 전후까지는 에토 장관이 결단을 내리기를 양국 당국자들은 희망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두가지 고려 사항이 있는 것 같다.우선 일본 정부도 에토장관의 사임으로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본의 정당,즉 국내정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에토가 사임하기 어려울 전망이다.APEC 정상회의가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19일,바로 그날 일본 사가현에서는 참의원 보궐선거가 열린다.하시모토 류타로가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뒤 처음 맞는 선거다.하시모토로서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따라서 자민당은 최근 보수주의로 흐르는 여론을 유혹하기 위해 에토 장관의 망언을 유도했다는 분석도 있다.설득력있는 분석이다.그런 차원이라면 절대 에토가 자진사퇴할 이유가 없다. 양심과 정략 사이에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우리정부의 입장은 명확하다.일본측의 움직임을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다. ◎도쿄의 대응/“「주의」외 추가조치 불가” 유화책 포기/사임 등 후속 움직임 없어 조기매듭 힘들듯 한·일관계가 고비를 맞고 있다.국교정상화뒤 양국은 김대중 납치사건,문세광사건,80년대 초 교과서·경제관계 마찰등 몇번의 기복을 겪었지만 이번 에토 장관 망언파문도 그에 못지않은 파고를 그리고 있다. 일본정부는 우리정부가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의 방문을 거부해 버리자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이다. 에토장관 망언파문을 둘러싸고는 일본 정부안에서도 처리 방안을 놓고 의견이 대립돼 왔다.외무성등은 다음주 오사카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등을 앞두고 이의 성공을 위해 한국과의 관계를 유화시키기 위해 고심해 왔다.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총리 발언 파문과 북·일접근에 대한 한국측의 불만을 가라앉히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그러나 에토장관의 망언은 이런 잔잔한 노력을 중단시켜 버렸다. 에토장관은 자민당내 「종전 50주년 국회의원연맹」의 부회장이다.이 연맹은 보수적인 자민당안에서도 보수적인 극우그룹이다.이번 발언도 확신범 차원의 망언인 것이다. 이번 파동으로 일본정부로서는 미국,중국,프랑스에 이어 한국과도 외교적 마찰을 겪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오는 APEC회담에서 의장국으로서 원만한 진행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엄중주의 조치를 취한 이상 더 이상의 조치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위기의 한·일관계는 복구에 시간이 걸릴 것을 각오한다는 것이다.본인의 사임 또는 망언내용의 추가 확인등 진전된 사태가 없으면 공방은 주말을 넘기게 될 것으로 보인다.일본 정부는 휴무일이자 토요일인 11일 아무런 대응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한일관계 악화의 결자여서 해지의 책임을 지고 있지만 신속하게 마무리지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일본인들조차 자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도쿄신문 11일자 사설/대한 감정대립은 불신만 증폭… 일은 해소에 전력을 식민지지배를 둘러싼 일본정부의 애매한 대응이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정부는 한·일간의 알력이 이이상 에스컬레이트 되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에토 다카미 총무청장관의 오프 더 레코드 발언과 관련,노사카 고켄 관방장관은 『한국의 동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각료의 임면을 외국의 동향에 맡기는 발언을 했다.한국이 엄하게 반응을 하지 않으면 유야무야로 끝내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애매한 발언이 한국측의 엄한 대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총리가 판단해야 하는 것은 「국책을 그르쳐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제국의 인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는 8월15일 담화에 비춰 에토 발언이 그 역사관에 부합하는가 아닌가라는 점이다.무라야마 정권의 각료로서 어울리지 않는다면 경질해야 한다. 총리가 말한 것처럼 「문제의 발언은 오프 더 레코드(보도하지 않는 조건)하의 이야기로 내용도 소상하지 않다」면 불문에 부쳐야 한다.내용이 확실치 않은데 엄중주의를 주고 외상이 방한해 해명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에토장관은 발언을 전면 취소했다.일본에 의한 학교,철도,항만의 정비는 식민지 지배를 위한 것으로 한국인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니다.또 국가주권을 빼앗고나서 한 짓일 뿐이다.장관의 발언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한국측의 강경자세에 반발해 일본국내에는 「언제까지 한국은 과거를 트집잡는가」라는 혐한 감정이 강해질 우려가 있다.정부는 이 이상 마찰이 불거지지 않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감정대립은 불신감을 증폭시킬 뿐이다.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 한·일양국의 연대는 필요불가결하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혐한감정” 부추긴 소매치기단/도쿄 이창순(특파원코너)

    ◎일 원정범죄 근절책 시급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24일자 1면에 한국인의 얼굴을 뜨겁게 하는 컬러사진 한장을 실었다.「한국인 무장소매치기단 체포」라는 큼지막한 제목을 붙여서.요미우리신문은 이어 1면과 사회면에 걸쳐 23일 체포된 한국인 소매치기단에 대한 기사를 상세히 보도했다.여타 신문들도 사회면 두번째 큰 기사로 다뤘으며 NHK를 비롯한 TV방송들도 한국인 소매치기관련 기사를 일제히 불어댔다. 일본경찰통계는 올해 소매치기범죄로 11월23일 현재 38명의 한국인이 검거됐으며 이 숫자는 지난해 체포된 19명에 비해 두배로 늘어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이같은 검거건수는 외국인 전체의 30∼50%를 차지하는 것이어서 한국인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한국인 소매치기단은 특히 나이프,생선회칼,최루스프레이 등을 소지,경찰에 적발될 경우 칼을 휘두르며 대항하는 등 범행수법이 대담하고 흉포화하고 있다는게 일본경찰의 말이다.이같은 범죄는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치안상태를 유지하는 나라로 정평이 나있는 일본에서 적지 않은 파문을일으키고 있다. 일본경찰은 이같은 「무장」 소매치기범죄의 증가에 대비,지난 5월부터 소매치기 전담수사반을 편성해 비상근무에 들어갔으며 경찰의 무장도 강화했다.일본경찰은 종래 2인1조이던 소매치기검거수사조를 4인 이상으로 늘리고 책임자에는 권총을 지급,불가피한 경우 발포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그렇지 않아도 불법입국및 외국인범죄 증가로 골치를 앓고 있다.일본사회에는 이때문에 「외국인 혐오증」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속에서 증가하고 있는 한국인 소매치기는 일본사회에 있는 「혐한감정」을 부채질 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한국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한국인 소매치기의 증가는 이같은 왜곡된 한국인 묘사와 오버랩돼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많다.그래서 한국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일본에서의 한국인 범죄 근절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 주식회사 일본(외언내언)

    최근 일본서 베스트 셀러가된 고약한 책의 하나가 「미니쿠이 칸코쿠진」(추한 한국인)이다.주일특파원도 했다는 필명 박태혁의 한국인 평론가란 자가 서울서 썼다는 한국인비판서다.주로 이조말의 한국인·한국사회를 비판하면서 일제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있다.최근 일본의 혐한분위기에 편승해 잘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너무도 악랄한 내용이어서 분노보다 어이가 없게 하는 책이다.모두 사실이라도 한국인이 어떻게 이런책을 일본서 낼수 있을까 의심케 된다.그래서 필자는 한국인이 아닐거란 인상을 받는다.후문을 쓴 가세(가뢰영명)란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그는 한국을 잘아는 군주주의신봉 극우지식인의 한사람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악랄한 비판이 아니라 소상한 내용이다.황당무계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역사와 사회현실은 물론 한국인 개개인의 버릇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그렇게 시시콜콜 잘도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알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인 것이다. 임진왜란을 앞둔 일본의 소상한 조선정탐은 유명하지만 한국병합당시의 일제또한 예외는 아니었다.그 결과가 이책을 가능케했을 것이다.오늘도 마찬가지다.정보동물소리를 들을 만큼 오늘의 일본도 정보수집에 열심이다.누구의 통제를 받는 것도 아닌데 외교관 특파원 상사원 해외여행자할것 없이 소속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세계를 감시하고 정보를 모아들이는 일본주식회사의 첩자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시노하라사건도 그 연장선상에 있으며 일본이 우리를 어떻게 감시하고 있나를 보여주는 상징적사건의 하나라 할수 있다.군사기밀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도 일본같은 정보동물근성을 빨리 배우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그렇지 않고는 대일무역적자해소나 기술추월같은 것은 백년하청일수 밖에 없다.정보대국이 되지 않고는 극일은 물론 경제대국도 기술대국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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