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혐오 정치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정규직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원내대표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78
  • 佛 시위 3만여명 참가

    |파리 함혜리특파원|유대 혐오주의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유대인 청년 일란 알리미(23)를 기리는 시위가 26일(현지시간) 수만명이 모인 가운데 파리와 지방 도시들에서 열렸다. 파리의 가두 시위에는 일반 시민과 여야 정치인, 인권단체 등에서 3만 3000여명이 참여했다. 시위대는 시내 동쪽의 레퓌블리크 광장과 나시옹 광장 사이를 행진하며 인종차별주의와 반(反)유대주의를 규탄했다. 필립 뒤스트 블라지 외교장관은 “프랑스인 각자는 종교와 피부색이 어떻든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오늘 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과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제1서기,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도 시위에 동참했다. 이날 리옹과 보르도, 마르세유를 포함한 일부 지방 도시들에서도 유사한 가두 행진이 있었다. 한편 코트디부아르에서 검거된 주요 용의자 유세프 포파나가 곧 프랑스로 송환될 예정이다. 포파나가 주도하는 범죄 조직이 과거 ‘국경없는 의사회’의 창시자인 로니 브로망 등 몇몇 유력 인사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계 인사인 브로망은 LCI TV와의 회견에서 “2004년 협박 편지를 받은 뒤 집 마당에 화염병이 날아들었고 문에 총알이 발사됐었다.”고 말했다.lotus@seoul.co.kr
  • [마이너리티 리포트] “어느 직업이든 동성애자 5~10%”

    고교 교사 최준원(가명·32)씨와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인 박철민(가명·36)씨는 동성커플이다. 물론 주변에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긴다. 직장에 알려지면 `끝장´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아우팅´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다.“학교에 알려지면 대번에 학부모들이 `우리 애들을 저런 변태한테 맡길 수 없다.´고 들고 일어날 겁니다.”●알려지면 `끝장´ 인식… 性정체성 숨겨 동성애 단체 등은 통계적으로 전체 인구의 5∼10% 정도가 동성애자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사회 어느 곳에도 동성애자가 비슷한 비율로 존재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공무원, 교사, 판·검사, 의사, 정치인 등 어느 직능집단에도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있다. 워낙 쉬쉬해서 알려지지 않을 뿐. 레즈비언의 경우 여성과 동성애자라는 이중의 핸디캡 때문에 더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명문대 법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A씨.“내 주변, 정상적인 사람 가운데는 동성애자가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가장 문제”라면서 “내가 아는 현직 법조인만도 10명이 넘지만, 왕따나 승진 배제 등의 피해가 불보듯하니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말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아우팅의 공포에 늘 `위장´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위장결혼후 이중생활도 동성애자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탓에 결국 이성애자들에게도 피해가 돌아간다. 동성애자로 살아가기가 워낙 힘들다 보니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종로에서 게이바를 운영하는 천정남(36)씨는 “단골 손님 중에는 전문직을 가진 `주말 게이´나 `주말 기혼 게이´가 대다수”라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결혼´이 성공의 한 요인이다 보니 이들을 탓할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 결혼생활은 순탄할 수 없다. 타고난 욕구를 누르며 사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 이중생활을 하며 괴로워한다.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십수년을 살다가 결국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동성애 혐오증을 갖는 `다수´에게 항변한다.“범죄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피해를 주지도 않는데 왜 동성애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욕구를 죽여야 하나요.`너흰 우리랑 달라서 싫다.´는 건데, 이건 결국 우리 사회가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반증입니다. 나와 다르면 무조건 잘못됐다는 생각, 동성애자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소수자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죠.”(박철민씨) “당사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가장 진보적 공간인 대학에서조차 커밍아웃은 쉽지 않죠. 커밍아웃을 할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여전히 고민입니다.”(A씨)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한나라 ‘笑변인’ 이계진 파격논평 두갈래 평가

    한나라 ‘笑변인’ 이계진 파격논평 두갈래 평가

    ‘정치판의 어린왕자.’ 지난달 21일 한나라당의 ‘입’이 된 이계진 대변인.“소(笑)변인이 되겠다.”는 일성 뒤 ‘파격 행보’가 잇따랐다.‘새 정치실험’ 등 환호와 ‘오래갈까?” 등 회의도 공존한다. 그의 대변인 스타일은 프랑스 소설 ‘어린왕자’를 떠오르게 한다. 세속에 찌든 어른들에게 메시지로 던지는 신선함과 위태함이 그의 ‘정치 실험’에 따라 다닌다. 당 홈페이지에 연재하는 칼럼 제목도 ‘어린 왕자에게’이다. ●“이래서 신선-상대 존중과 낮은 톤, 생생한 비유” ‘어린왕자 대변인’은 야당 대변인으로서는 ‘무장 해제’에 가까울 정도로 목소리가 낮고 부드러웠다. 첫 공식 논평에선 추병직 건설교통부장관이 한현규 경기개발원장에게 5000만원을 빌린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도 “여당 의원들이 좋아했다.”며 놀랄 정도다. 생생한 비유도 화제다. 예산안 삭감의 당위성을 “국회의원과 목수는 깎는 게 직업”이라고 규정했다.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가 ‘변기 청소’로 인기를 얻은 경우에 빗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변기 청소’를 권하기도 했다. 박근혜 대표는 유비, 최고위원들과 원내대표는 관우, 사무총장은 제갈량, 전문성을 가진 의원들은 조자룡에 견주기도 했다. 그가 생산적 정치문화의 ‘싹’을 피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호평도 나온다. 한 당직자는 “고교 동창회에서 정치에 냉소적이던 친구들도 이 대변인을 보고 ‘참 잘하네, 신선하네.’라고 평해 놀랐다.”고 전했다. 한 동료 의원은 “국민들의 정치 혐오증을 가시게 하고, 부동층이나 당 비판세력을 안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래서 불안-야성(野性) 상실, 지지층 이탈” 그러나 회의·불안도 만만치 않다. 야당 본연의 기능인 정부 견제나 실정 비판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논점이 뚜렷하지 않고 현안에서 분명한 입장을 전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대변인은 당론을 전달하고 상대 당 논리의 허구를 비판해야 한다.”며 “굳이 정부를 칭찬할 필요는 없고 잘못한 부분을 날카롭게 비판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 대변인은 ‘실험 계속’을 고집한다.5일 기자에게 “어린왕자에게 정치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심정으로 정치를 했고 대변인 스타일도 유지할 것”이라며 “안 되면 그만둘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월드이슈] 이주자 급증…흔들리는 유럽

    [월드이슈] 이주자 급증…흔들리는 유럽

    |파리 함혜리특파원|‘소요, 범죄…공화국의 적들.’프랑스의 대도시 외곽 저소득층 집단거주지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이어지는 동안 파리의 곳곳에는 자극적인 붉은 글씨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공화국 수호연합’이란 극우단체가 제작한 포스터는 이민자들을 배척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프랑스 소요사태를 계기로 극우단체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들은 과거 사회당 정권은 물론 현 중도우파 정부의 정책이 모두 실패했음을 강조하며 공화국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업과 경기침체로 고전하는 독일에서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좌파연합이 지난 9월 치러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러시아에서는 국수주의를 고취하는 극우파들이 외국 혐오증과 반유대주의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안정과 평화’의 상징이던 유럽사회가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 이민자 문제, 가속화되는 세계화 등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극단주의가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목소리 높이는 극우세력 이민자들의 차별과 소외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프랑스 소요사태를 계기로 극우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 당수는 14일 저녁 파리도심 팔레롸얄에서 대중 집회를 갖고 “지난 30년간 좌·우파 정부를 막론하고 추진한 이민자 정책이 실패했음이 이번 소요사태로 입증됐다.”면서 “외국인들에 대한 모든 사회보장 혜택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뉴스전문채널 LCI의 토론프로그램에서도 “경찰에 돌을 던지고 학교를 불태우는 극단적인 폭력행위로 사회 신고식을 치르는 이민 2·3세들은 장차 테러리스트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들이 바로 시라크가 공들여 키운 자녀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자동적으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지만 자신들이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프랑스를 적으로 여긴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인으로 대우받아서는 안된다.”고 유화책을 비판했다. 역시 이민자 수용에 반대하는 다른 국수주의 우파정당인 ‘프랑스운동’(MPF)의 필립 드 빌리에 당수도 사태 초반부터 “20세 미만 청소년을 대상으로 통금령을 실시하고 파리 교외 지역에 군대를 투입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했었다.FN과 MPF는 지난 5월말 프랑스의 유럽헌법 국민투표 당시 프랑스를 보호하기 위해서 EU헌법이 부결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투표결과가 부결로 나타나면서 힘을 얻은데다 이번 소요사태로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정치분석가들 사이에 이번 소요사태로 시라크 대통령과 정부 입지가 약화된 틈을 타 극우정당이 다시 세를 얻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지난 200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 대신 르펜 당수를 선택, 르펜이 2차 결선투표에서 자크 시라크 후보와 맞붙는 이변이 발생했었다. ●뿌리내리는 유럽의 신좌파 한편 여야 정당간 뚜렷한 승자없이 끝난 지난 9월18일의 독일 총선에서 최대의 돌풍을 일으킨 정당은 좌파연합이었다. 좌파연합은 구 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과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해 분리해 나온 사민당 좌파와 노조 지도자들이 만든 ‘선거대안’이 통합한 정당이다.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지난 60년대 중반∼70년대 초반 이후 독일에서는 각 주 단위로 반급진주의 조례를 채택, 정치적인 극단주의를 지양해 왔다. 따라서 지금까지 극우·극좌파는 의회내 교섭단체 구성에 필요한 5% 이상의 지지를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총선결과 좌파연합은 총 54석을 확보하면서 8.7%의 지지를 받으며 의회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독일의 한 언론인은 “좌파연합의 정책들은 대부분 재정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실현가능성과 현실성이 거의 없지만 경제가 어렵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달콤한 약속’에 이끌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럽정치 지형에서 신좌파를 표방하는 정치운동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개혁이냐 사망이냐.’의 문제로 고민해 왔던 유럽공산주의가 그동안 우파 정책노선을 포용하는 개혁을 추구해 왔으나 영국의 노동당과 독일의 사민당이 우파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생긴 커다란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좌파 운동이 새로이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특히 반전운동과 반세계화운동, 반 신자유주의의 토양에서 독일의 좌파연합과 같은 신좌파 성향의 정당이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의 네오-코뮤니스트들과 신좌파들이 모여 지난해 조직한 유럽좌파정당(ELP)은 지난 달 29·30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첫 총회를 갖고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유럽의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와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를 재정립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채택했다. lotus@seoul.co.kr ■ 양극을 이끄는 대표적 인물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의 장마리 르펜과 독일의 오스카 라퐁텐은 극우·극좌 양 극단으로 치닫는 유럽정치상황을 상징한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가 곧 유럽 정치상황의 변화 방향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 맹비난…신좌파 상징 오스카 라퐁텐 독일의 좌파연합을 이끌고 있는 오스카 라퐁텐(62)은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는 신좌파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골수 좌파인 그는 신자유주의가 유럽 위기를 불러왔다며 비판한다. 대학생 때인 1966년 사민당에 가입하고 1976년 32세에 프랑스 접경 산업도시 자르브뤼켄의 최연소 시장이 된 그는 68세대 스타급 정치인으로 한때 게르하르트 슈뢰더, 루돌프 샤르핑(94년 사민당 총리후보)과 함께 독일 사민당 3두체제를 이루면서 당내 좌파를 이끌었다. 그는 우파에 가까운 중도좌파 성향의 슈뢰더와 정책적인 대립으로 1999년 3월 모든 정치적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슈뢰더 총리의 노선에 실망한 당원들과 노동계를 규합한 뒤 옛 동독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까지 끌어들여 좌파연합을 결성했으며 지난 9월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 노골적 인종주의…극우파 수장 장 마리 르펜 극우파 정치인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장마리 르펜(77) 당수.1972년 이후 FN당수를 맡고 있는 그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프랑스 정치사상 처음으로 극우파가 대통령 자리를 놓고 맞대결을 벌인 정치 파란을 일으켜 프랑스와 세계를 함께 놀라게 했다. 노골적인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기초로 한 극우파의 부상은 평등·박애·자유를 이념으로 하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위기론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르펜은 최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파리 교외 폭동이 시작된 이래 당으로 지지 e메일과 당원으로 가입하겠다는 요청이 넘치고 있으며 자신의 ‘제로 이민’ 정책에 대한 지지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2007년 대선에도 출마할 것이라고 밝힌 그가 또 다시 극우돌풍을 일으킬지 관심사다. lotus@seoul.co.kr ■ ’배우자 이민’도 언어시험 통과해야 유럽에서 무슬림들의 이민은 복지 제도의 부담 가중, 기독교 문화와의 충돌 등으로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으나 이제는 사회안정을 위협하는 문제거리가 되고 있다. 7·7 런던 테러와 프랑스 소요 사태 및 무슬림 청년의 네덜란드 반 고흐 영화감독 살인사건 등으로 무슬림은 유럽에서 위협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1960년대 이후 경제 활황으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북아프리카나 가난한 인접 이슬람 국가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경제가 침체하자 본국으로 돌아갈줄 알았던 이민자들은 도심 밖에서 그들만의 거주지나 ‘접시 도시’를 형성하면서 냉대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 접시 도시란 이슬람 커뮤니티에서 아랍 위성방송을 보기 위해 접시 모양 안테나를 집집마다 달아 붙여진 이름이다. 해마다 유럽연합으로 가는 합법 이민자는 130만명쯤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700만명 가량이 불법이민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로코나 튀니지 등에서는 매년 수천명이 스페인 카나리 제도나 이탈리아 람페투사 섬 등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때문에 유럽연합에서는 이들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공동경비정을 띄우는 지중해 해상 작전을 계획 중이다. 유럽의 이민은 망명, 가족의 재결합, 결혼이란 크게 세가지 법적 형태로 이뤄진다. 망명 조건은 까다로워져 해마다 탈락자가 증가추세다. 가족 결합이나 결혼도 네덜란드에서는 언어 시험을 통과해야 가능하도록 하는 등 점점 관문이 좁아지고 있다. 친척이나 배우자를 데려오기 위한 나이와 연봉 조건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유럽연합 시민이 아니거나 기술이 없을 경우 자국에 정착하는 길을 막는 이민 법안을 추진 중이다. 오직 투자자나 기술이 있을 경우에만 영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도 시민권을 따기 위한 시험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시민권을 받게 되면 미국처럼 국가를 연주하는 의식도 마련할 예정이다. 높아지고 있는 유럽의 ‘이민 장벽’은 미국 등 다른나라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세계적인 추세로 확산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자유주의자 언행불일치 책 출간

    ‘저명한 자유주의자들은 신념에 따라 살까.’‘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다.’ 미국 후버연구소의 피터 슈바이처 연구원은 최근 자신의 신간에서 “자유주의란 그것을 믿는 추종자들을 위선자로 만든다.”며 “재산과 가족 등이 걸려 있을 경우 그들은 보수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꼬집었다. 슈바이처의 새 책 제목은 ‘내 말대로 하시오(행동을 따르지는 말고):자유주의 위선자들의 프로파일’. 9일 랜덤하우스 신간안내에 따르면 이 책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정치인에서부터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반전운동가인 노엄 촘스키에 이르는 미국내 유명자유주의자들의 언행 불일치 사례들을 꼬집었다. 다음은 그가 지적한 대표적인 인사들의 사례. 마이클 무어 기업이 사악하다던 주장과는 달리 최근 5년 동안에만도 핼리버튼, 제너럴 일렉트릭, 머크, 파이저, 맥도널드 등 다양한 대기업 주식을 보유한 적이 있었다. 낸시 펠로시 노동조합의 든든한 후원자 중 한 명인 그녀는 최근 선거때 호텔과 레스토랑 노조로부터 의원 중 가장 많은 후원금을 받았다. 그런 그녀가 대주주로 있는 캘리포니아주 러더포드의 한 호텔에는 노조에 가입한 종업원이 한 명도 없다. 노엄 촘스키 미 국방부를 “지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기관”이라고 비난해온 그는 지난 40년간 국방부로부터 연구비 명목 등으로 수백만달러의 돈을 받아왔다. 알 프랑켄 에어 아메리카 라디오방송 진행자인 그는 보수주의자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해 왔으나 정작 자신이 지난 15년간 고용한 흑인 비율은 전체의 1%도 안됐다. 조지 소로스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은 버뮤다나 케이먼제도 같은 조세회피지역에 재산을 옮겨놓고 있다. 빌 클린턴 부부 재산세 제도를 선호한다고 말했으나 자신들이 사망한 뒤 상속세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는 약정 신탁을 설정해 놓았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생계비’ 확보를 위해 노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지만 그녀는 임금을 덜 줘도 되는 캐나다에서 영화 촬영이나 영화제작의 마무리 작업을 선호한다. 테드 케네디 재산세 제도를 옹호한 저명 정치인인 그는 세금 회피 수단의 존재에 반대의사를 표해 왔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번 복잡한 금전신탁과 개인재단을 세금 징수의 수단으로 삼으려 해왔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생각나눔] 주민투표의 ‘모럴 해저드’

    정부가 방폐장 유치 지역을 주민투표로 확정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제와서 돈으로 지방자치단체를 매수한 게 아니냐고 따지는 것은 ‘숲 대신 나무’만 보는 꼴이다. 방폐장을 혐오시설로만 간주, 집단 반발해 온 후보지역 주민들에겐 사실 어느 정도의 ‘당근’이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정책과 자원배분의 효율성이다. 경주가 후보지역으로 정해졌지만, 만약 군산이 됐을 경우에 방사성 폐기물을 운반하기 위한 추가적인 물류비용은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 가까이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상당수 건립됐거나 새로 건설되고 있어 폐기물 유통비용을 아낄 수 있다. 반면 군산의 경우 항만시설의 확장 등 추가비용이 필요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주민들이 국책사업에 반발해 주민투표로 결정할 경우 정책의 특성과 무관한 지역이 선정돼 국가적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제주가 방폐장 후보지로 선정됐다면 물류비용은 감당하기 벅차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정책적 비효율만 키웠을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도덕적 해이’도 꼽을 수 있다. 지자체로서는 국책사업을 유치할 후보지를 자청하면 나중에 탈락하더라도 ‘떡고물’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정부의 지원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만 봐, 주민투표는 일반 국민의 세부담을 증가시킬 수 있다. 따라서 방폐장 유치에 실패한 지역에 정부가 별도의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아주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정부시책에 적극 호응했다는 ‘대가성’ 차원이어서는 곤란하다. 중앙정부가 주민투표로 국책사업을 결정하는 것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 주민투표의 남발을 막아야 한다. 이번에도 드러났듯이 자칫 지자체 및 지역간 감정대립만 촉발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을 수가 있다. 정부가 정책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주민투표를 자주 활용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미국의 경우 2003년 유카 마운틴 지역을 방폐장 설립지로 선정했으나 그 이전에 중앙정부와 주정부, 환경단체 및 주민들이 20년에 걸쳐 꾸준히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았던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도 원전 폐기물의 이동루트와 지역발전책을 놓고 미국 정부는 주민들과 협의 중이다. 지역투표를 거쳤지만 결코 ‘전가의 보도’로 쓰지는 않고 있다. 제도상의 허점도 보완해야 한다. 주민투표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드러나도 국책사업으로 결정하는 데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 현행법 규정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이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주민투표에 이기면 된다는 인식을 지자체에 심어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자칫 정부가 부정선거를 부추긴다는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이번 주민투표는 국책사업의 경제·산업적 파급효과보다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과제라는 점을 잘 보여줬다. 지자체나 특정 정치인들이 선거철을 틈타 특정 국책사업마다 주민투표를 요구하며 주민들의 반발을 촉발시킬 경우 주민자치라는 당초의 취지는 엷어지게 마련이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儒林(422)-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7)

    儒林(422)-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7)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7) 하루는 경춘(景春)이 맹자에게 물었다. 경춘은 종횡가에 속했던 세객. 따라서 경춘은 왕도정치만을 부르짖고 있는 맹자에 대해서 은근히 반감을 갖고 있었다. “공손연(公孫衍)과 장의(張儀)야말로 진실로 대장부가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한번 화를 내면 제후들이 두려워하고, 편안히 조용해지면 천하가 잠잠해집니다.” 경춘의 말은 이상주의를 부르짖는 맹자보다 뛰어난 말솜씨와 계책으로 제후들을 설득하여 서로 공격하여 정벌하게 함으로써 막강한 실권을 가지고 있었던 종횡가들을 대장부라고 평함으로써 은근히 맹자를 마음속으로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속셈을 모르고 있을 맹자가 아니었다.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니다. 이를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예를 배우지 않았는가. 장부가 관례(冠禮)를 행할 때 아버지가 훈계를 하고, 여자가 시집을 갈 때에는 어머니가 훈계를 하는데, 갈 적에 문 앞에서 전송하면서 말하기를 ‘너희 시댁에 가거든 반드시 공경하고 반드시 조심하여 남편을 어기지 말라.’고 하니 순종함을 정도(正道)로 삼는 것은 첩부(妾婦)의 도리인 것이다.…” 관례란 ‘남자가 20살이 되었을 때 갓을 쓰게 하는 성인식’으로 20살이 넘어 성인이 되면 시집가는 딸에게 어미가 훈계를 하듯 예로써 남을 공경하고 나라에는 충성해야함이 마땅한 정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바른 도리를 행하며,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것을 행하여 부귀가 방탕하지 못하고 빈천(貧賤)이 뜻을 바꾸지 못하게 하며, 위무(威武)가 절개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것. 이를 대장부라고 하는 것이다.” 맹자가 장의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실권자들이었던 종횡가들을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제후들의 야심을 충족시키는 책략을 제시함으로써 이 세상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악인이자 변절자라고 질타하는 이 명백한 대답은 맹자가 얼마나 ‘호연지기의 대장부’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산증거인 것이다. 육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은 부귀를 얻으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없으므로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되며, 빈천하게 되면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없으므로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며,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으므로 위협이 있을 때에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갖은 비굴한 짓이라도 하게 되는데, 종횡가들은 오로지 부귀와 권력에만 집착함으로써 절의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소인배이지 절대로 대장부일 수는 없다는 것이 맹자의 답변이었던 것이다. 이미 순우곤과의 설전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맹자는 세치의 혓바닥으로 천하를 농락하고 있는 세객들과 종횡가들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었던가를 알 수 있는 장면인 것이다. 이는 맹자의 스승인 공자도 마찬가지였다. 공자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이래서 나는 말만 번지르르한 자는 싫어한다.(是故惡夫者)”
  • 儒林(421)-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6)

    儒林(421)-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6)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46) 주자의 해석이나 정약용의 주석이 모두 맹자의 ‘호연지기’에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호연지기’의 뜻이 난해함을 알 수가 있고, 그만큼 ‘호연지기’의 뜻이 중요함을 알 수가 있다. 맹자 스스로도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던 ‘호연지기’. 따라서 오늘날의 우리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겠지만 ‘호연지기’란 의와 도가 쌓여 충만함으로써 저절로 생기는 것이므로 오직 정도를 행하여 절도를 지키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대장부(大丈夫)의 기상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저 공명정대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호방한 마음이나 또한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는 도덕적 용기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지만 군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인 ‘호연지기’야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지향해야 할 ‘인간의 길’일 것이다. 스승 맹자가 스스로 말하였던 자신의 장점 ‘말을 아는 것(知言)’과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는 대답 중에서 우선 호연지기에 대해 질문하였던 공손추는 다시 두 번째로 맹자에게 묻는다. “무엇을 지언이라 합니까.” 맹자가 대답한 말을 아는 것, 즉 지언이란 말은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을 아는 것’은 확연히 구별된다. 맹자가 살던 시대에는 주로 말을 잘하는 세객들이 큰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맹자와 두 번이나 맞서 싸워 두 번 다 패배하였던 전국시대 최고의 세객인 순우곤의 예를 들어서도 잘 알 수 있겠지만 사기에 나와 있는 대로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연횡에 미쳐 날뛰어 전쟁하고 공격하는 것을 현명한 일로 알고 있었던 광기의 시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세치의 혓바닥으로 나라를 연합하여 약소국을 치고 이간질시키는 종횡가(縱橫家) 등도 판을 치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의 정치도 마찬가지여서 세가 불리하면 서로 연합하고 유리한 세력을 좇아 이념이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합종(合從)하는 풍토는 바로 이러한 종횡가의 술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합종연횡’은 전국시대 때의 뛰어난 유세객으로 6국이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자고 주장한 소진(蘇秦)의 ‘합종책(合從策)’과 장의(張儀)의 ‘연횡책(連衡策)’에서 나온, 전국시대를 움직인 대표적 책략이었다. 장의는 일찍이 초나라에서 화씨벽(和氏壁)이란 구슬을 구경하다가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얻어맞은 후 집에 돌아와 울고 있는 아내에게 갑자기 혀를 쏙 내밀고 ‘내 혀를 보게, 있나 없나(視吾舌尙在不).’하고 물었던 바로 그 사람. 아내가 ‘혀가 붙어있다.’고 하자 장의는 ‘그럼 되었네.’라고 안심하면서 ‘지금 몸이야 어찌되었든 내 혀만 있으면 충분히 천하를 움직일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던 최고의 유세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맹자는 이러한 유세객들을 경멸하고 있었다. 특히 장의에 대해서는 남편을 배신하는 처첩(妻妾)으로까지 비유하면서 맹비난하였던 것이다. 맹자가 얼마나 세치의 혓바닥으로 말을 잘하는 유세객들을 혐오하였던가는 맹자의 ‘등문공하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문화마당] 너나 잘해?/방현석 소설가

    독일에서 열린 문학행사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워 애를 먹었다.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고급호텔에서도 객실에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전화요금은 짐작했던 것보다도 훨씬 비쌌다. ‘앞으로 3년 안에 독일의 IT산업이 한국 수준을 따라잡도록 하겠다.’ 독일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이라고, 독일의 작가가 우리에게 전해준 말이다. 한국에서는 여관에도 초고속인터넷이 깔려있다며 투덜거리던 우리 일행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콧대 센 유럽에서 그런 말을 듣기 쉬운 일인가. 한국 기업이 생산한 휴대전화 단말기는 유럽에서도 최고급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확보한 자리의 상당부분은 한국기업들이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기업들은 할 말이 많다. 일개 기업만도 못한 시스템과 역량을 지닌 정부에 대해서. 기업의 공로를 폄하하는 시민단체와 국민들에 대해서. 선진강국의 틈바구니를 헤치고 한국기업이 세계수준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해준 일이 뭐냐? 국민들이 도와준 것은 또 뭐 있느냐? “니들이나 잘해.” 지금 여론의 표적이 되고 있는 기업집단도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 정부라고 할 말이 없을까. 지난달 평양-백두산-묘향산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대회의 실무를 맡아 북에 머무는 동안 북쪽 사람들의 남쪽에 대한 분위기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남쪽의 정부와 국민 다수가 북쪽의 불행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불바다로 만들 대상이 남쪽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 이은 백두산관광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 아무것도 없다며 사찰을 받겠다고 했던 ‘이라크’가 겪고 있는 비극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핵’이 있다고 선언한 북을 안고 있는 한반도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다. 평화를 잃는 순간 경제와 자유,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형편에서 보면 정부는 가장 중요한 역할에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동네북이다. 아마 나라가 만들어지고 나서 지금처럼 권력이 시세가 떨어진 적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도 교통순경이 신호위반 하나 봐 줄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위세 떨다가는 동사무소에서조차 망신당하기 ‘딱’이다. 대통령과 정부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언론은 연일 정치권력과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 사이에서 벌어진 ‘부도덕’에 대한 기사로 도배를 하고 있다. 국민들은 다시 한 번 정치집단과 기업에 대한 염증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이제 한국 사회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과거에 권력의 불법행위가 지금보다 적었고, 기업의 부정한 거래가 덜했는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덮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지금, 여기서 한국의 사회문화를 한 단계 더 높이는 일이다. 집권세력과 기업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은 한국사회가 현재 도달한 문화의 수준을 이해하는 일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만능주의는 더 이상 한국의 문화적 수준일 수 없다. 절차의 정당성, 과정의 투명성은 우리 기업과 정부가 진정한 세계 일류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들이다. 정부와 기업이 “너나 잘해.”라고 말할 때는 아니다. 국민들도 우리 정부와 기업들을 단순히 혐오하거나 우리 자신의 능력을 비하할 일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과제 앞에 섰을 뿐이다. 한국사회는 이제 과거가 아닌 미래와 경쟁해야 할 단계에 진입했다. 힘의 논리가 아닌 문화적 설득력을 요구받고 있다. 정치와 경제, 사회전반의 문화적 차원이 높아져야 할 때다. 방현석 소설가
  •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빌링 허스트 지음

    ‘여자에게 가는가? 그렇다면 회초리를 잊지 말게.’ 흔히 여성 혐오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니체의 책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니체는 아마도 여성이란 남자를 타락시키는 위험한 존재이며, 그렇게 때문에 마땅히 통제되어야 하는 경계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오스트리아의 천재적 사상가 오토 바이닝거는 그의 주저 ‘성(性)과 성격’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웅변한다. 완벽한 합리성과 창조성의 구현인 남성상과는 대조적으로 성적인 희열을 갈구하는 충족될 수 없는 음탕한 충동의 화신이 바로 여성이라는 것이다. ●성적 희열 갈구하는 ‘음탕한 충동의 화신´ 비단 이뿐인가. 유대인의 민담에서 아담의 첫번째 여자로 등장하는 릴리트에서부터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역사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묘사된 수많은 ‘요부’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신화와 역사, 근대 이후의 대중문화 속에서 그려진 것처럼 남성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개인과 나라를 파멸로 이끈 위험천만한 존재들이었을까? 하지만 인도 출신의 여성 작가 빌링 허스트는 이에 대해 “지극히 왜곡된 시각의 산물”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같은 요부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은 오히려 남성의 욕망과 시대·정치적 필요성이라고 주장한다. 빌링 허스트의 저서 ‘요부, 그 이미지의 역사’(석기용 옮김, 이마고 펴냄)는 이처럼 모순되는 시대의 가치관 속에서 등장해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는 요부의 변천사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즉 요부의 이미지가 등장한 것은 바로 남성들의 성적인 욕망과 함께 반대쪽 성을 배제하는 배타적 권력 독점의 의지에서 비롯된 정치적 역학관계에 있다고 분석한다. 정상 체위의 성생활에 권태를 느끼며 좀 더 자극적인 성적 유희를 즐기기 위해 에덴동산과 아담을 떠나는 릴리트. 뱀과 공모하여 금단의 열매를 맛봄으로써 인류에게 원죄와 죽음의 고통을 겪게 하는 이브. 탁월한 정치감각과 국가 관리능력이 있었지만 코의 높이만 강조돼 희대의 요부로만 등장하는 클레오파트라. 남자를 도구로 이용하는 성적 포식자 팜므파탈, 관능적 천진함으로 뭉친 백치미로 남자들을 유혹한 섹스 키튼 등등. ●남성의 권력을 탐내는 잠재적 권력찬탈자 이같은 이미지들 속에서 저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옮기고 다닌 남성 이야기꾼들의 불순한 속내를 읽어낸다. 이들에게 여성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성적 욕망의 대상이다. 동시에 혹시 그같은 남성들의 욕망을 거꾸로 이용하여 남성의 권위를 무너뜨리겠다고 나설지도 모를 잠재적 권력 찬탈자이기도 하다. 이같이 상반된 이중적 이미지의 소유자인 여성 앞에서 남성들은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런데 이 딜레마를 벗어나기 위해 마련한 묘수가 바로 여성에게 소위 ‘요사스러운’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었고, 그 결과 탄생된 것이 바로 ‘요부’라는 것이다. 이렇게 나온 요부는 시대배경과 사회적 맥락 속에서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먼저 사회가 남성들에 의해 안정적으로 통제된다고 여겨질 때는 마릴린 먼로, 진 할로 같은 유혹적 섹스심벌이 등장한다. 혹은 영국 넬슨 제독의 여자였던 엠마 해밀턴처럼 아름답고 재기넘치는 정부(情夫)가 강조된다. 이들은 성적 매력을 내세우고 남자를 이용해 부와 안전을 보장받기는 하지만, 남자의 권력을 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회가 격변기에 있고 남성들의 주도권이 위태롭게 느껴질 때면 파괴자로서의 요부 이미지가 번성한다. 무희이자 고급 창부에 첩보원이었던 마타 하리는 남성 특권의 구역에서 무모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던 모험가였다. 경제공황과 2차 세계대전의 기운으로 시절이 불안했던 시기 필름 누아르에 등장한 팜므파탈은 남자를 도구로 이용하는 성적 포식자로 그려진다. 결국 위험하고 음습하게 그려진 요부라는 이미지는 바로 그같은 남성들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에 다름 아님을 책은 보여주고자 한다.1만 7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전주·완주 통합논의 다시 고개

    한동안 잠잠하던 전주·완주 통합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전주시의회 주재민 의장은 지난 11일 열린 제224회 정례회 개회사에서 “청주시와 청원군이 최근 시·군을 통합하기로 한 데 이어 전남 보성군 벌교읍 주민들도 순천시로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전주권의 미래를 감안할 때 전주·완주 통합논의도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일고 있는 시·군 통합바람에 전주·완주 통합도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며 “이 기회에 정치권은 물론 전주권의 발전을 염원하는 시민단체와 유관기관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통합논의를 공식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전주시의회 일부 의원과 시청 공무원, 시민·사회단체가 전주·완주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한 일은 종종 있었으나 시의회 의장이 의회 본회의장에서 시·군 통합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이같은 주장에 대해 전주시민 대부분은 찬성하는 분위기이고 생활권이 전주인 완주군 이서와 금구, 상관, 용진면 지역 주민 역시 통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 지역이 통합하면 현재 별개의 학군으로 되어 있는 전주·완주가 하나가 돼 완주지역 주민의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완주지역 사회단체와 일부 주민들은 “전주·완주가 통합되면 세금만 올라가고 쓰레기 매립장 등 혐오시설만 늘어나게 된다.”며 통합에 부정적이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민선 지방자치 10년] (7) 21세기형 지방자치

    1일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10년을 맞았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주민참여가 확대됐다는 ‘고전적’ 성과가 무색하게 전시행정, 지역이기주의 등으로 얼룩졌다는 평가 또한 만만찮다. 지방자치의 걸림돌과 발전방향 등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온 3선 단체장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고 순리일 것 같다. 설문조사에는 전국의 3선 단체장 34명 가운데 출장 등으로 자리를 비운 박재영 부산 사하구청장 등을 제외한 26명이 응했다.‘행정의 달인’들의 입을 통해 선진 지방자치의 해법을 모색해본다. 3선 단체장들의 답변은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았다. 지역의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현장행정이란 상통한다는 것을 방증했다. 재임중 어려웠던 일이나 지방자치 걸림돌을 묻는 질문에 절반 이상이 지역이기주의를 들었다. 대부분 지역내에 이른바 혐오시설을 지으려다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힌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쓰레기매립장과 공설묘지를 설치하려다 난관을 겪은 심기섭 강릉시장은 “혐오시설은 안 된다는 님비현상은 물론 유리한 시설은 자기 지역에 와야 한다는 핌피(PIMPY)현상도 심각했다.”고 밝혔다. 열악한 지방재정을 드는 단체장들도 많았다. 곽인희 전북 김제시장은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반면 재정은 한정돼 민원처리에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김규택 대구 수성구청장은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중앙과 지방간 세원의 재배분이 필요하며 지방양여사업의 조정 등 재정조정제도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세웅 전북 무주군수는 지역토호들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현실을, 조건호 인천시 옹진군수는 감사원·행정자치부·광역단체 등의 감사가 빈번한 것을, 김관용 경북 구미시장은 충분한 준비없이 시작된 지방자치와 전문행정가 부족 등을 각각 걸림돌로 꼽았다. 황대현 대구 달서구청장은 “선심성 행정에 대한 최종 판단은 주민몫임에도 특수시책으로 발굴 추진하는 일에 대해 선심행정으로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며 뼈있는 말을 던졌다. 중앙정부 등 상급단체에 바라는 것을 묻는 질문에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대부분의 권한이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고 간섭이 심해 ‘반쪽자치’라는 점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했다. 직원 한명을 채용하려 해도 행정자치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방·외교 등 국가적 차원의 기능 외에는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하고 특별행정기관을 자치단체에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자치입법권, 자치조세권이 확대되고 자치경찰제, 교육자치 등도 실현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문성 강원도 속초시장은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내놓지 않으려 하고, 전통적으로 지방을 못 믿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꼬집었다. 정영섭 서울 광진구청장은 “행정사무들이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위임되었지만 결정권을 아직 중앙정부가 장악하고 있어, 단체장 직선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병로 경남 진해시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수평적 관계를 주문했다. 나아가 지방자치 성숙을 위한 제도적 보완책도 다양하게 제시됐다. 유승우 경기도 이천시장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2 정도인 만큼 세원구조를 개편해 지자체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하며, 부단체장 임명권을 광역단체에서 갖는 시스템도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문용 서울 강남구청장은 “무엇보다 기초단체장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3선 연임제한과 정당공천 폐지, 중복·정치성 감사 지양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규택 대구 수성구청장은 선출직에 대해 주민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 도입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지방자치의 ‘뜨거운 감자’인 지역이기주의 해소방안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유지하면 지역이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김근수 경북 상주시장을 비롯, 계획수립 단계부터 정보공개와 주민참여(이상조 경남 밀양시장), 주민과의 대화 및 설득(송은복 경남 김해시장) 등 ‘원칙론’이 많았다. 하지만 협의체 구성을 통한 통합조정(박대석 부산 영도구청장), 주민재산권 보호를 위한 대폭적인 인센티브(박대해 부산 연제구청장), 갈등지역간의 공정한 이익배분(박팔용 경북 김천시장) 등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반면 심기섭 강릉시장은 “지방자치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앞으로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주민 스스로도 민주의식과 양식을 높여야 한다.(조건호 옹진군수)” “역지사지적 사고와 민주적인 절차의 수용(심대평 충남지사)” 등 주민들의 사고전환을 주문하는 견해도 있었다. 정리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3선 단체장 퇴임후 구상연임제한 규정으로 3선을 끝으로 물러날 단체장들은 대체로 “그동안의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겠다.”는 ‘모범답안’을 내놓았다.3선을 가능케 한 일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영섭 서울 광진구청장은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지방자치 발전에 작은 밀알이 되고자 한다.”고 밝혔고, 권문용 서울 강남구청장은 “3선에 걸친 자치행정 경험을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박팔용 경북 김천시장은 “정계개편이 끝나는 연말쯤 향후 거취를 밝히겠다.”고 말해 정치에 뜻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임수진 전북 진안군수는 전문성과 행정 노하우를 살려 퇴직 후에도 지역농촌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그동안 일에 얽매여 소홀했던 가정을 돌보겠다는 단체장들도 많았다. 김규택 대구 수성구청장은 “그동안 가정에 소홀했으므로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갖고 자녀들의 삶을 조언하겠다.”고 했고, 박대석 부산 영도구청장도 “가족과 함께 자유로운 생활”을 약속했다. 김근수 상주시장과 심기섭 강릉시장은 “평범한 시민으로 노후를 보내겠다.”고 간략하게 밝혔고, 김병로 진해시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회고록을 집필하겠다는 뜻을 비췄다. 한편 이의근 경북지사는 “누구나 미래의 희망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꿈이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알쏭달쏭한 선문답을 던졌다. 또 관내 전체가 섬으로 구성돼 ‘섬 사랑’이 대단한 조건호 옹진군수는 “퇴임 후 섬주민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못다한 얘기를 나누겠다.”며 낭만 어린 소회를 밝혔다. 정리 김학준기자 ■ 3선단체장 보람과 아쉬움3선 단체장들은 긴 재임기간만큼이나 보람과 아쉬움이 많았다. 김세웅 전북 무주군수는 지난해 세계태권도공원을 유치한 것을 상기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고 한다. 부가가치가 3조원에 달해 지역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지만, 경주·춘천·강화 등 쟁쟁한 경쟁도시를 따돌리고 승자가 된 것을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한다. 때문에 지역에서는 연임제한만 없으면 “4선도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유승우 경기도 이천시장 역시 여주·광주를 물리치고 ‘2001세계도자기엑스포’를 유치한 것을 보람으로 들었다. 이 행사는 84개국이 참가하고 600여만명이 관람해 도자기 전시행사로는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다. 고재득 서울 성동구청장은 “시책으로 인한 변화를 알아주는 구민들이 지역에서 친근감 있게 인사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이밖에 이의근 경북지사는 지역산업 구조개편을 위한 성장동력사업을 육성하고 ‘동북아 자치단체연합’을 주도적으로 창설한 것을, 김관용 구미시장은 2004년 지자체 최초의 수출 200억달러 달성을, 김흥식 전남 장성군수는 삼성전자·기아자동차 부품공장을 유치한 것을 각각 성공작으로 꼽았다. 아쉬움에 대해서는 심대평 충남지사가 할 말이 많다. 국회까지 통과돼 확정된 ‘신행정수도’ 건설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정으로 뒤집어졌다가 다시 우여곡절끝에 ‘행정중심 복합도시’로 축소된 것에 대해 심 지사는 지금도 불만을 토로한다. 자연재해로 인해 가슴앓이를 한 단체장들도 적지 않다. 김원창 강원도 정선군수는 태풍 ‘루사’ ‘매미’가 잇따라 강타해 주민들이 큰 피해를 입었을 때 단체장으로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관내에 큰 산불이 발생한 동문성 속초시장과 심기섭 강릉시장도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어도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정리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특별취재팀 : 서울 이동구기자 경기 윤상돈차장 인천 김학준기자 강원 조한종기자 충남·대전 이천열기자 전북 임송학부장 전남 남기창기자 경북 한찬규·김상화차장 대구 황경근차장 경남 이정규부장 부산 김정한차장
  • 필리핀 ‘민주화 아버지’ 신 추기경 하늘로

    필리핀 ‘피플 파워’의 구심점이었으며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해온 하이메 신 추기경이 21일 오전 6시15분(현지시간) 선종했다.76세. 2003년 11월 마닐라 대주교에서 은퇴한 신 추기경은 신장 질환과 당뇨병 등을 앓아왔으며 지난 4월 차기 교황을 뽑기 위한 추기경단회의(콘클라베)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변인인 훈 세스콘 신부는 신 추기경이 지난 19일 저녁 고열로 카디널 산토스 메디컬센터에 입원했으며 장기장애로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교계 지도자들은 추기경 가족과 장례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시신은 마닐라성당으로 옮겨졌다. 중국계 상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16자녀 중 14째로 태어난 신 추기경은 11살때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종교인의 길에 들어섰다.26세때 고향인 중부 아클란지방에서 사제를 서품한 뒤 주교·대주교를 거쳐 48세 되던 지난 1976년 마닐라 교구장을 맡아 8000만 신도를 거느린 필리핀 가톨릭계를 28년 동안 이끌어왔다. 그는 정치적 문제뿐 아니라 산아제한, 빈곤과 이라크전쟁 반대에 이르기까지 직설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아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 지도자로 꼽혀 왔다. 지난 86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과 결별을 선언한 피델 라모스 군 참모차장과 후안 폰세 엔릴레 국방장관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마닐라시 경찰과 군 본부를 포위하라고 요구하면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강론은 평화적으로 마르코스를 축출한 피플 파워로 연결됐고 아시아와 남미 전역에서 부패·독재정권에 대항하는 평화적 운동으로 승화됐다. 2001년에도 부패와 실정을 일삼은 조지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기여했으나 이 문제로 에스트라다를 지지하는 빈민층과 갈등을 겪었다. 개신교도였던 라모스 대통령과는 인공 산아제한 문제로 대립하기도 했다. 신 추기경은 특히 부패를 혐오했고,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설교 등을 통해 도덕적으로 문제있는 정치인을 공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의 힘은 2003년 7월 수백명의 군 장병이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에 대해 일으킨 반란을 무산시킴으로써 다시 입증됐다. 그는 같은해 은퇴성명에서 “황혼녘에 드는 이때 하느님과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내가 잘못 이끌었거나 상처준 모두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지금 지방에선] 청주·청원 통합 ‘윈윈발전’ 급물살

    [지금 지방에선] 청주·청원 통합 ‘윈윈발전’ 급물살

    청주시와 청원군의 통합 문제로 충북이 시끄럽다. 지난 1995년 당시 내무부가 ‘시·군이 너무 많고 군 지역이 시를 도넛처럼 감싸고 있어 행정이 비효율적이다.’는 이유로 전국의 시·군을 통합할 때 청원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곳이다. 이후에도 통합문제를 놓고 논쟁이 끊이지 않았으나 최근 갑작스럽게 양 지자체의 통합론이 급물살을 타면서 향후 전망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원군 5개 조건 청주시 수용 분위기 오효진 청원군수는 지난 달 31일 “군민과 군의회가 찬성하면 통합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 군수는 그동안 주민여론을 들어 줄곧 반대입장을 표명했었다. 이와 함께 그는 5개항의 전제조건을 제시했다.▲군민이익 보장 ▲양 지역 의원 동수구성 ▲통합시청 청원군 이전 및 청원구청 신설 ▲청원군 공무원을 위한 안정적 제도 마련 ▲청원군이 통합문제를 주도할 것 등이 그것이다. 이는 청주시와 시의회가 이날 ‘통합이행 결의문’을 보낸 데 따른 답변이었다. 이행결의문은 ‘대규모 위락단지를 청원에 조성하고 통합 후 절감되는 예산은 청원에 투자한다.’는 등 청원군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대수 청주시장은 청원군의 요구에 대해 즉각 “전제조건 등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모두 수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에 따라 전제조건 가운데 법률적으로 걸림돌이 되는 의원동수 구성 문제 해결과 청원주민 및 군의회의 찬반 여부만 남게 됐다. ●청원군민 통합찬반 여론 팽팽 청원군 미원면 미원리1구 주민 민경만(48)씨는 “통합을 개인적으로는 찬성한다. 그러나 청원군의 주요 계층인 농민과 노년층의 경우 통합되고 나면 찬밥신세가 되고 재산세가 청주 수준으로 오를까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청원군도 당초 이런 이유 외에 혐오시설이 청원지역으로 모두 온다거나 예산이 청주 중심으로 투자된다는 등의 우려 때문에 반대해 왔다. 이 때문에 1995년 전국적으로 이뤄진 시·군 통합 때 주민 67.5%가 통합에 반대표를 던졌다. 청원지역 통합 찬반에 대한 주민여론의 향배는 쉽게 점치기 어렵다. 지난해 말 청주MBC에서 청원지역 주민 5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44.3%와 44.4%로 호각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2일 청주방송(CJB)이 여론조사기관 리서치 & 서베이와 함께 청원지역 주민 3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찬성이 54%로 반대 35%보다 훨씬 많았다. 이는 오창·오송산업단지 아파트 주민을 중심으로 찬성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이번 조사 결과 청주 시민들은 74%가 찬성, 압도적으로 시·군 통합을 바라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주시는 예산의 중복투자가 줄고, 개발과 광역행정이 원활해진다는 등의 이유로 통합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하지만 청주시가 청원에 둘러싸여 도시발전이 한계에 다다랐고, 급발전하는 천안·대전·행정도시 등 주변 도시와의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통합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통합실무위, 의원동수 구성등 논의 청주시와 청원군은 조만간 ‘통합 실무협의회’를 구성, 협의를 통해 행정절차 및 쟁점 등을 차근차근 풀어갈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의원동수 구성 문제다. 청주의 인구는 63만여명으로 청원의 12만명에 비해 훨씬 많다. 현재 청주시 의원은 28명이고 청원군 의원은 14명이다. 이런 실정에서 청주와 청원의 기초의원을 똑같은 수로 선출할 수 있을까. 청원군 관계자는 이와 관련,“청주에는 의원 1명을 선출하는 인구 제한선인 5만명이 안되는 동이 많기 때문에 2∼3개 동을 합쳐 1개 선거구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주시 관계자는 “법률적으로 어려워 다른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며 다른 의견을 보였다. 문제는 집행부 합의만 이뤄진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청원군 의원을 늘리면 문제 없지만 청주시 의원을 줄이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면 이들 의원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 군수는 “청주시에서 제시한 이행결의문과 약속을 100% 믿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의원을 동수로 구성하는 것은 청주시가 약속을 저버리는 행위 등을 할 때 저지하고, 청원 지역과 주민들의 이익을 지켜낼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말했다. 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골리앗’ 청주 vs ‘다윗’ 청원 청주와 청원에 대한 각종 통계는 전형적인 도시와 농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인구는 청주가 63만명이고 청원이 12만명으로 ‘골리앗과 다윗’이다. 65세 이상 노인은 청주가 전체 인구의 6.2%밖에 안되지만 청원은 14.4%로 급격히 노령화되고 있어 우리 농촌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반면 면적으로는 청원이 814.3㎢로 청주 153.3㎢에 비해 훨씬 넓다. 충북의 최대 도시인 청주는 면적에서 도내 2.1%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42%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크다. 예산에서도 올해 청주가 6293억여원으로 청원의 2292억원에 비해 3배 가까이나 된다. 행정단위는 청원 1읍 13면, 청주가 29개 동이다. 당초 두 지역은 오래 전부터 행정구역이 같았다. 지금도 청원군 청사가 청주시 북문로1가에 있다. 두 지역이 갈라진 것은 해방 이듬해인 1946년. 하지만 청원이 청주를 도넛처럼 감싸고 있어 주민들의 불편이 크고 지역발전을 저해했다. 청원군 학생들이 교육환경이 더 나은 청주로 진학하고, 시내버스를 타도 청주지역을 벗어나면 추가요금을 내야 하는 불이익이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2년 9월에는 두 지역 택시영업권이 통합되기도 했다. 생활권이 같은 데도 행정구역이 분리돼 이같은 불편이 계속되자 두 지역간 통합 문제는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이 돼왔다. 청원에는 현재 오창·옥산면 일대 300만평에 오창과학산업단지, 강외면 140만평에 오송생명과학단지가 각각 조성 중이다. 이처럼 지역발전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청주 테두리에 있어 시너지 효과는 적다는 평가다. 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자치단체장 속셈 ‘3인3색’ 청주·청원의 통합론은 두 자치단체장에게 ‘윈­윈 전략’이 될 수 있지만 충북지사로서는 껄끄러운 문제다. 오효진 청원군수는 “주민여론이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면서 갑작스러운 통합추진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아파트단지가 크게 늘어나는 등 급속히 도시화되고 농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또 오창·오송산업단지가 팽창하면서 별도로 시승격이 가능하고 부용면 등은 인근 행정도시에 편입될 가능성이 커 청원군의 독자적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도 통합을 서두르는 이유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통합론의 배경이 다른 데에 있다고 보고 있다. 오 군수가 개인적으로 통합시장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대수 청주시장도 “지사나 통합시장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총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는 시장 당선 이전인 2000년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적이 있다. 반면 충북지사에게는 달갑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청주시와 청원군이 통합되면 충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해 11개 시·군이 기형적 구조로 변하고 지금도 취약한 충북도의 위상이나 도지사 역할이 더욱 약화될 게 뻔하다. 한 시장이 도지사 불출마 약속을 뒤엎고 출마할 경우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원종 지사는 지난 1일 직원 조회에서 “통합 문제는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지역발전 차원에서 순수하게 접근해야 한다.”면서 “내년 지방선거와 연계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통합추진의 급진전에 대해 경계심을 나타냈다. 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사설] 한나라당의 열린 실용주의 선언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그동안 당이 내세운 ‘개혁적 보수’라는 노선을 폐기하고 ‘열린 실용주의’ 또는 ‘유연한 실용주의’로 전환할 것을 선언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 아니할 수 없다. 제1야당인 한나라당이 개혁노선인가, 보수노선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이념투쟁과 관념정치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조짐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내세운 개혁적 보수라는 노선은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었다. 개혁이면 개혁이지, 개혁적 보수란 말은 말장난일 뿐이었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개혁의 본류인 양 처신하면서 개혁과 실제 정치를 접합시키지 못하기는 한나라당과 진배없다. 우리 정당의 차이점을 개혁과 보수로 나누기는 아직 덜 성숙한 상황이다. 그래서 여당은 개혁을 독점한 양, 야당은 개혁의 모순을 찾아내 공격일변도로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정말 국민이 뭘 원하는지는 뒷전이기 일쑤였다. 여야가 민생정치니, 상생정치니 외쳤지만 참여정부 출범이후 이뤄논 개혁은 별로 없다. 집권여당은 아직도 아무 실익없는 실용과 개혁노선을 놓고 당내갈등을 빚고 있다. 이제 여야 가릴 것 없이 개혁이니 보수니 하면서 편을 가르고, 상대를 몰아붙이는 양극정치를 지양해야 한다. 개혁이든 보수든 국민의 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다. 개혁이니 보수니 편을 가르는 것 자체가 정치혐오를 부추긴다. 국민들은 개혁피로증과 보수피로증을 함께 느끼고 있다. 민생을 챙기는 실용정치가 진정한 정치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이념의 공허함을 인정하고, 늦게나마 실용으로 전환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 나의 정치학 사정 / 강준만 지음

    직설적·공격적 글쓰기로 한국의 내로라하는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비판해왔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스스로의 표현대로 하면 ‘차가운 머리’를 위한 책을 냈다. 타이틀은 ‘나의 정치학 사전’(인물과 사상사 펴냄). 한국인은 가슴을 뜨겁게 덥히는 일에 있어선 천재에 가깝고 다혈질적 국민이기에 이제 그 열기를 좀 식혀주는 일이 필요한, 역사적 사이클에 한국사회가 접어들었다는 게 저자의 변이다. 그는 또 머리말에서 “최근 정치적, 정확히 말하자면 당파적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이제 초당파적 입장에서 정치에 대한 지식을 공급하고 싶다.”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상호소통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책은 이같은 저자의 소망을 담은 ‘살아있는 교양, 살아 있는 정치 이야기’를 부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한 테두리에 갇힌 이야기보다는, 국내와 국외의 경계, 다양한 학문간 경계 뛰어넘기를 통해 ‘사회과학의 현실화’에 충실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한일·한중관계에서부터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요 현안들을 국제적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아울러 정치와 경제·문화의 경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분석한다. 또 오늘날 우리 지식계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아나키즘을 비롯해 마키아벨리즘, 민족주의, 포퓰리즘 등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정치이론과 사상을 펼쳐 보인다. 그는 한국인이 정치에 이중적이라고 비판한다.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 대통령이 못 되어서 안달인 반면 정치혐오주의는 더욱 심해지는 현상도 이 때문이다. 권력의 횡포가 심했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의 몫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정치’만이 살 길이었고, 모두 정치인이 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정치에 근접하길 원하면서도 그걸 비난하는 이중적인 심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은 또 오랜 독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지, 승자 독식주의가 한국인을 얼마나 치열한 삶으로 내모는지 보여준다. 개혁물신주의, 권력중독, 정치혐오주의 등 정치와 권력을 둘러싼 주제들 속에서 우리도 몰랐던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반미주의의 이중성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침공후 세계적으로 반미주의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상은 일면만 그럴 뿐이다. 멕시코의 반미주의는 강하지만, 그들 국민의 40%는 미국에서 살고 싶어하고, 미국을 싫어하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미국의 대중문화는 사랑한다. 적대와 동시에 선망의 대상이 곧 미국인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반미주의를 정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문화·경제적인 문제로 지평을 넓혀 해석한다. 또한 문화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오리엔탈리즘 등 세계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이론과 사상들을 통해 국제정치와 문화, 경제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명쾌하게 소개한다. 강준만의 글은 대체로 직설적이고 단문이면서 논리가 명쾌해 칼럼이든 에세이든 속도감이 느껴지는게 특징이다. 생생한 현실이 녹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책도 예외는 아니다. 복잡한 사회현상과 이를 둘러싼 인간심리를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 있게 들려주는 강준만의 글쟁이로서의 미덕이 돋보이는 책이다.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儒林(340)-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40)-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그러나 퇴계가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들러 아버지의 신위 앞에 홍패를 올리고 인사를 올린 다음 어머님 앞에서 큰절을 올리자 박씨부인은 이제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나라의 공복이니 받을 수 없다고 서로 맞절하여 예의를 갖춘 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언행록은 기록하고 있다. “너의 벼슬은 주나 현과 같은 지방이 마땅하니 절대로 높은 벼슬에 나아가려 하지 마라. 세상이 너를 용납하지 않을까 두렵다.” 일찍이 퇴계는 젊은 시절 성균관에 유학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 성균관은 태학(太學)이라 하여 그 무렵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 퇴계는 23세 때인 청년시절 성균관에 유학하였고 또다시 33세 때에도 잠깐 동안 성균관에서 주로 수행론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는 기묘사화가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극도의 혼란기였으므로 어지러운 정치의 영향으로 성균관에서까지도 도학을 기피하는 풍조가 생겨 소학(小學)과 같은 도덕적인 기초학문을 무시하고 사장(詞章)만 숭상하는 경박한 사습(士習)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장이란 ‘시가와 문장’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근본도리를 탐구하는 도학보다는 현란한 기교에 치우치는 일종의 수사학이었던 것이다. 성균관의 유생들은 옛 성현의 도학보다는 시를 짓고 문장을 놓는 풍류에만 더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는 이러한 풍조에 물들지 않고 일상의 언어와 행동을 소학의 규범에 벗어남이 없게 하니 그 당시 동료학생들 가운데에는 퇴계를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이 많았다. 다만 퇴계보다 9살이나 연하인 김인후(金麟厚)만이 퇴계를 존경하고 상통하여 친하게 지낼 뿐이었다. 훗날 문과에 급제하여 뛰어난 문인이 되었던 김인후는 일찍이 퇴계의 사람됨을 꿰뚫어보며 퇴계를 부자(夫子)로까지 칭송하였다. 부패한 그 선비사회에서도 드물게 군자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퇴계야말로 덕행이 높아 만인의 스승이 될 만한 부자라고 칭송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선생은 영남에서 빼어난 분이시다. 문장은 이백과 두보와 같으시며 글씨는 왕희지와 조맹보를 비긴다.” 김인후의 시처럼 퇴계는 마침내 등용문에 오름으로써 ‘영남에서 빼어난 사람(夫子嶺之秀)’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퇴계 자신이 고백하였던 ‘집안의 곤궁을 타파하는 유일한 생계책이었으며, 특히 늙은 어머니의 권유’때문이었지 그 자신이 원하던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우선 퇴계는 혼란한 정치와 부패한 관료들의 어지러운 정계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는 평소에 조광조를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있었다. 조광조는 퇴계보다 19살 연상으로 퇴계가 19세 때 기묘사화로 억울하게 죽은 사림파의 거두였다. 퇴계는 행동하는 정치가로서의 조광조와는 달리 현실의 부정과 부조리에 정면으로 도전, 대결하는 개혁가가 아닌 정치란 제왕의 수덕에 의한 위민정치여야 한다는 유가 본래의 덕치, 즉 국민을 중심으로 하는 왕도정치를 주장하면서 임금의 모범적인 정심수기(正心修己)를 강조하고 있는 소극적인 경세론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퇴계는 정치가가 아니었으며 어디까지나 학문의 진리를 탐구하는 선비의 표상이었다.
  • 미국인 “정치 신물난다”

    미국인 “정치 신물난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국민의 정치 혐오증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54%가 의회의 업무수행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지지한다는 응답은 38%에 불과했다. 갤럽은 이같은 수치가 지난 2000년이후 최저라고 밝혔다. 의회의 업무수행에 대한 지지율은 지난 2001년 9·11 테러 사건 직후 84%까지 오른 바 있다. 이에 앞서 실시된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 공화당 의원에 대한 업무 만족도는 39%, 민주당 의원에 대한 만족도도 37%에 불과했다. 이같은 수치는 역대 재선 대통령 가운데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업무수행 지지도 48%(4월)보다도 훨씬 낮은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테러와의 전쟁만 57%로 절반을 넘었고 이라크(43%), 경제(41%), 사회보장(35%) 등 대부분이 과반에 못미치는 평가를 받았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미국인의 부정적인 시각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대통령선거 이후에도 공화·민주 양당이 대부분의 정치현안을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처리하며 정쟁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dawn@seoul.co.kr
  • [데스크시각] 극단은 피해야 한다/손성진 사회부 차장

    한국인들이 유별난 것 중의 하나가 극단(極端)을 따르고 극단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에 오르는 자살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한 이들의 사연은 읽기도 언짢다.10년 만에 자살률은 두 배로 높아져 45분에 한 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끔찍한 세상이 됐다. 지도층의 자살이 잇따르자 국회의원에게서 자살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는, 해외토픽감의 웃지 못할 캠페인도 벌어진다. 이혼도 부부임을 포기하는 극단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이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몇 번째 안에 든 자살률보다도 더 부끄러운 세계 최고 기록이다. 연 증가율이 15%에 이를 정도로 초고속으로 늘어나는 이혼이 사회 기반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단식투쟁은 뜻을 이루기 위해 가장 손쉽게 선택하는 수단이 됐다. 정치인들의 저항 수단으로 인식되던 단식이 노조위원장이나 시민운동가에서 고위 공무원, 학생에게까지 전염병처럼 번졌다. 천성산을 살려야 한다는 지율 스님의 뜻에는 찬동하더라도 죽음을 담보로 한 단식투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방송대 이필렬 교수가 환경 운동가들의 극단적인 투쟁 방식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그런 연유다. 그렇게 해서 목적을 이룰지는 모르나 멀리 보면 환경 운동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이 교수는 경고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교수의 말처럼 부안 핵폐기장, 새만금, 천성산, 사패산 등의 환경 문제에서 운동가나 주민들은 모두 극단적인 방법으로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그러나 이런 투쟁방식은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시민들까지 점점 외면하도록 만든다. 실제로 환경단체의 회원 수는 최근 들어 줄고 있다고 한다. 극단, 또는 극의 추구는 환경보다는 이념 문제에서 더 심각하다. 반대 정파에게도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는 모습을 우리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관용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이념논쟁가나 정치인들은 이기심으로만 똘똘 뭉쳐진 아귀 같다. 극단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중도적인 단체로 돌파구를 찾아 침묵하는 다수의 대변체가 되려 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시변(市辯)’이 생겼고 중도 성향의 ‘바른 교육권 실천행동’이 출범했다.‘신중도 포럼’‘자유지식인선언그룹’ 등의 단체들도 극단에 반감을 표시한다. 극단을 외치는 건 최소한이라도 얻으려면 최대한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인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얻으려면 무리한 요구라도 해야 한다는 그릇된 욕심 탓인가. 그렇지 않다면 자살을 하고, 단식투쟁을 벌이고, 좌우 이념에 지나치게 집착하도록 저들을 내모는 잘못된 사회구조 때문인가. 극단적인 선택과 양보 없는 충돌은 정이 메말라 버린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정이라는 끈으로 서로를 보듬었던 우리들이 아니던가. 그 시절의 낭만과 정을 그리워하는 것은 춥고 건조해진 마음에서 나오는 반작용이다.50,60년대 시인들의 낭만적 생활을 극화한 EBS ‘명동백작’에 보낸 남녀노소의 박수는 아직도 가슴은 뜨거움을 보여준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웃들에게 언제든 십시일반의 위력을 보여줄 준비가 우리는 돼 있다. 극단을 피하고, 피하게 할 따스함이 우리 피부 속에, 살 속에 스며 있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 양보가 있는 곳에서는 극단이 존재하기 어렵다. 극단을 피하려면 사회 안전장치의 확대와 제도 개선을 통한 병인(病因) 치유가 급하다. 그보다 더 급한, 정과 낭만이 넘쳐 나는 사회는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성진 사회부 차장 sonsj@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왜 계룡산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왜 계룡산인가

    ●태조 이성계와 계룡산 1392년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의 옛 귀족이 건재한 개성이 싫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이 있듯 이 태조는 충신으로 가득한 새 수도에 새 왕조의 터전을 닦고 싶었다. 이때 가장 유력한 후보지로 부상한 곳이 계룡산이었다. 이 태조는 1393년 음력 정월 직접 계룡산에 행차해 산세를 휘둘러 보았다. 그해 3월부터 왕도 건설의 삽질 소리가 계룡산 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일설에 따르면 계룡산이란 명칭도 그때 비롯됐다. 이 태조를 수행해 현지로 내려온 무학대사는 신수도 예정지 신도안의 좌우 산세를 살핀 다음 이렇게 평가했다고 전한다. 계룡산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빛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날아 하늘로 오르는 형상)이다. 여기서 말한 ‘금계’는 부의 상징,‘비룡’은 현명한 임금을 의미한다. 즉, 이곳에 도읍하면 풍요한 태평세월이 보장된다는 말이다. 무학대사는 금계의 ‘계’와 비룡의 ‘룡’을 차용해 산 이름을 계룡산이라 부르자 했고 그 말대로 됐다 한다. 계룡산 신도안에 한창이던 천도 사업은 1393년 연말 문신 하륜(河崙)의 맹렬한 반대로 파국을 맞는다. 하륜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계룡산을 반대했다. 첫째, 남쪽에 너무 치우쳐 한반도의 동쪽·서쪽·북쪽과 교통이 불편하다. 둘째, 주변에 큰 강이 없어 세금은 물론 물산을 운반할 큰 배가 드나들지 못한다. 셋째, 계룡산의 풍수는 중국의 풍수가 호순신(胡舜臣·송나라)이 말한 이른바 ‘수파장생쇠패입지(水破長生,衰敗立至)’의 땅이다. 즉, 흘러나가는 물이 땅의 기운을 약화시켜 나라가 곧 쇠망할 곳에 해당한다. 조정 대신들은 공방 끝에 하륜의 주장을 채택해 계룡산 천도 계획은 결국 백지화되고 말았다. 뜻밖의 결정에 남부지방 사람들은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수년 뒤 태종은 마이산(전북 진안군)이란 명산에 친림해 천도 백지화에 대한 산신(山神)의 뜻을 점쳤다 한다. 물론 산신은 그 결정이 옳다는 답을 줬고, 이에 민심도 안정됐다 한다. 한낱 전설에 불과하지만 계룡산 천도에 기대를 걸었던 남도 민심이 여실하다. ●18세기 말부터 계룡산의 인기는 급상승 수도가 한양으로 결정되자 계룡산 천도설은 한동안 잊혀졌다. 계룡산의 풍수에 대한 평가도 신통치 않았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계룡산은 웅장하기가 개성의 오관산에 미치지 못하고, 수려함도 서울의 삼각산만 못하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계룡산 신화는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민심은 조선왕조를 이반하기 시작했고 그로 말미암아 천도설이 다시 고개를 든 것 같다. 홍만종은 1678년에 지은 ‘순오지(旬五志)’에 조선 태조가 계룡산 아래 새 수도 건설을 시작했을 때의 전설을 수록했다. 태조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서 계룡산은 전읍(尊邑 즉,鄭)이 들어설 곳이라며 당장 계룡산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한다. 이 설화는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이로 보면 계룡산에 정씨가 도읍한다는 이야기는 양반들 사이에도 널리 퍼졌던 것 같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감록’이 널리 인기를 끌었다. ●바위에 새겨진 비밀 19세기 후반 계룡산에서 신비한 각석문자(刻石文字)가 하나 발견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연천봉 바위에 “방백마각구역화생(方百馬角口或禾生)”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아무도 해석을 못하다가 사람들은 드디어 한 가지 해석에 도달했다. 방(方)은 4방이요, 글자도 4획이라 4를 뜻한다. 마(馬)는 오(午)인데 오라는 글자는 八十을 더한 것이라 80이다. 각(角)은 뿔이다. 모든 짐승이 두 개의 뿔이 있으므로 2가 된다. 이를 모두 더하면 482란 숫자가 된다. 구(口)와 역(或)은 국(國)자가 되고, 화(禾)와 생(生)을 합치면 禾生인데 이것은 이(移)의 옛글자다. 전체를 다시 조합하면 ‘四百八十二 國移’란 구절이 된다. 요컨대 조선은 개국 482년째 되는 1874년에 망한다는 뜻이다. 이런 뜻이라면 그것을 몰래 바위에 새긴 사람이 누굴지는 뻔하다. 그는 조선왕조의 몰락을 염원한 사람이다. 어쩌면 ‘정감록’의 신봉자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각석의 풀이는 한동안 민심을 동요시켰다. 그 때는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는 소문이 연달았던 시절이다. 마침 ‘정감록’에는 위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 계룡산에서 정진인이 나타나 새 나라를 세운다고 돼 있어, 많은 사람들은 계룡산이 새 수도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조정대신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19세기 말 권좌에 오른 대원군은 계룡산으로 천도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천도를 통해서라도 이미 달아난 민심을 조선왕조에 매어 두고 싶었던 것이다. ●명산 중의 명산 계룡산 계룡산은 최고봉의 높이가 845m로 별로 큰 산은 아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국중(國中)의 손꼽히는 명산이었다.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엔 나라에서 법으로 정한 명산대천이었다. 해마다 국왕은 제관을 보내 계룡산 산신에게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을 정도다. 내가 만나본 현지 주민들은 우선 계룡산이란 이름의 뜻이 각별하다고 말했다.‘계’ 즉, 닭은 사람과 가장 가까운 가축인데다 새벽을 알리는 매우 특별한 역할을 하므로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풀이했다. 그런가 하면 ‘용’은 전설 속의 영물로 기린, 봉황 등과 함께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 믿어졌다. 용은 성스러운 지배자를 뜻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 ‘계룡’에는 성스러운 통치자의 출현 또는 새 세상의 시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명산인 계룡산은 풍수지리설에 힘입어 더욱 독특한 이미지를 갖게 됐고, 오랫동안 풍수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요컨대 계룡산은 유서 깊은 명산인데다 조선 초기 도읍 후보지가 되기도 했고, 그 뒤에도 풍수가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곳이었다. 게다가 정씨가 도읍한다는 전설도 있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정감록’에서 계룡산이 새 왕조의 도읍지로 예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풍수로 본 계룡산 ‘정감록’에는 천하의 지맥이 흘러가는 큰 줄기가 언급돼 있고 그 가운데 계룡산이 나온다. 그에 따르면, 천하의 산맥은 곤륜산에서 발원해 백두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흐른다고 했다. 금강산에 옮겨진 내맥(來脈)의 운은 다시 태백산(太白山)과 소백산(小白山)으로 내려가며 산천의 기운을 받아 지기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계룡산(鷄龍山)으로 들어감으로써 장차 정씨(鄭氏)가 도읍하여 800년을 누릴 길한 땅이라 했다. 근세의 풍수가들은 계룡산의 특징을 회룡고조(回龍顧祖),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3가지 개념으로 평했다.‘회룡고조’란 계룡산이 그 조산(祖山 조상에 해당하는 산)인 대둔산을 되돌아보는 모습이라 나온 말이다. 풍수지리에서는 보통 조산이 너무 높으면 명당을 내리눌러 명당 기운이 죽는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조산인 관악산(629m)이 진산인 백악(342m)보다 수백m나 높다. 서울의 풍수가 이런 탓에 서울을 떠나지 않는 한 한국은 외세의 압박에서 좀체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풍수상의 해석이다. 그러나 계룡산은 전혀 그렇지 않다. 조산인 대둔산(878m)은 높이는 계룡산(845m)과 30m밖에 차이가 없다. 게다가 조산과 진산의 거리도 멀기 때문에 계룡산의 기세가 대둔산에 눌릴 리가 만무하다고 본다. 지맥의 흐름으로 볼 때 계룡산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큰 줄기가 진안의 마이산까지 내려오다 다시 갈라져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온 형세다. 마이산에서 반전된 산세가 대둔산과 천호산을 향해 달음박질하다 공주 동쪽에서 C자를 뒤집은 모양으로 꺾였다. 산세의 이런 흐름은 마치 태극과 같아 풍수가들은 ‘산태극’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계룡산의 둘째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계룡산의 물길 또한 산세와 마찬가지로 ‘수태극’을 빚어냈다. 전북 장수읍 신무산(神舞山) 아래 수분리(水分里) 뜸샘(또는 물뿌랭이)에서 시작된 금강의 도도한 흐름은 무주, 영동, 대청호, 부강, 공주, 부여, 강경을 차례로 휘감아 돌다 장항을 거쳐 서해로 들어간다. 이런 금강 물줄기에 합류하는 것이 계룡산 명당수인데 그 모양이 태극과 같다. 계룡산의 명당수는 신도안 용추골에서 시작되어 우청룡을 휘감아 흘러들어가 금강과 만난다. 풍수설만 가지고 보면 계룡산은 도읍터로서 매력적인 곳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미 하륜이 정확히 지적했듯 한나라의 수도를 정하는 데는 교통, 행정 및 경제적인 요건이 풍수설보다 더 중요하다. 정감록은 계룡산 도읍설을 펴고 있지만 그것은 조선왕조 자체를 부인하는 데 초점을 둔 것이지 계룡산이 정말 도읍할 만한 곳인가를 따진 것은 아니다. 정감록에 담긴 메시지는 민중은 새 세상을 원한다는 그 말이다. ●계룡산 바위가 희어질 때 계룡산에 큰 의미를 부여한 때문일 테지만 정진인이 왕으로 등극하기 직전 여러 가지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다고 한다. 정치 사회적 변화 못지않게 자연계에 큰 변화가 예언돼 있는데 계룡산이 관련된 한두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선 계룡산의 바위가 흰색으로 변한다고 했다. 바위 색깔이 희게 변하는 일이 보통은 불가능하다. 흥미롭게도 우리 풍습엔 예부터 흰색 바위를 미륵불의 상징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국 당나라에도 똑같은 풍습이 있었다. 흰 바위는 미륵불의 출현, 달리 말해서 복된 새 세상의 시작을 알리는 상서로운 표징이다. 여러 해 전 현지조사 때 직접 주민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조선 후기부터 계룡산의 바위가 조금씩 하얗게 변했다고 한다. 내 육안으론 그런 변화를 확인할 수 없었다. 진인왕이 올 때가 되면 계룡산 아래 있는 초포(草浦)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가 들락거린다는 예언도 있다. 초포는 금강과 계룡산 사이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인데 먼 옛날엔 거기까지 작은 배가 드나들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엔 금강의 토사가 많이 쌓여 배가 통행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랬는데 1990년 금강하구 제방공사가 완공되자 강물이 불어 이제 초포에도 다시 작은 배들이 다닐 만하게 되었다. 어떤 주민은 이를 두고 ‘정감록’ 예언은 반드시 들어맞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맞선 다른 견해도 있다.‘정감록’에 바닷물이 초포까지 들어온다고 한 것은 해수면이 높아지는 해양 생태계의 대변화를 예고한 거라는 현대적 해석이다. 정감록에 또 예언하기를, 말세엔 생선과 소금 값이 아주 떨어진다고 돼 있는데, 이 역시 생태계의 일대변화를 예고한 것이란다. ●말세엔 계룡산으로! 정감록에 예고된 급격한 환경 변화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말세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사흘 동안 움직이지 않는다는 예언은 최근 몇 년 동안 여름철이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을 온통 뒤덮는 짙은 연기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구제역 등 전염병을 몰고 오는 황사현상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가올 재난은 황사 이상이다. 냇물이 마르고, 산이 무너진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두고 어떤 이는 수자원의 고갈, 녹색환경의 파괴를 예언한 것으로 읽었다. 말이 나온 김에 좀더 알아보면 정감록의 일부인 ‘서계이선생가장결’엔 이런 섬뜩한 내용이 있다.‘9년에 걸친 흉년,7년간의 수재(水災), 그리고 3년 동안의 역질(疫疾)이 닥칠 것이다. 열 집 중 한 집만 겨우 살게 될 것이다. 이상하구나, 세상의 재난이여! 전쟁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구나. 가뭄 아님 물난리, 흉년이 아니면 돌림병이로다!’ 정감록은 새 세상이 밝아오기 전 민중이 넘어가야 할 마지막 고난의 문턱이 다름 아닌 자연재해, 전염병, 그리고 경제대란이라고 못박았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1821년,1822년,1858년,1886년, 그리고 1895년에도 전국에 콜레라가 유행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1858년 한 해만도 50만명이 쓰러졌다. 조선 후기엔 독감, 장티푸스 등 전염병이 창궐해 사망자수가 수만을 헤아렸다.5∼6년이 멀다하고 찾아든 홍수와 가뭄으로 흉년이 끊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1807년엔 서해안 일대에 해일이 발생하여 많은 인명을 앗아갔다.1815년과 1817년의 대홍수 역시 처참한 피해를 안겨줬다. 이런 예에서 확인되듯 ‘정감록’이 예언한 말세의 조짐은 그저 막연한 공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역사상 민중이 겪은 집단적 고통의 기록이었다. 이런 식으로 과거의 역사는 미래의 예언과 만나는 것이다. 대환란이 닥쳐오면 어떻게 피할 것인가? ‘정감록’은 특출한 10개의 명당 즉,‘십승지(十勝地)’로 들어가라고 말한다. 여러 지역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계룡산이 최고의 피난처로 손꼽힌다는 점이다. 계룡산 인근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사이도 또한 길지라고 했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그 지역에 신행정수도가 예정된 것은 흥미롭다. 현지에서 만난 노인들은 ‘정감록’을 직접 인용해 가며 이 지역으로 반드시 새 수도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계룡산,600년 전엔 조선왕조 건국 세력이 정한 도읍지였다.300년 전엔 조선왕조를 혐오하던 민중의 희망이었다. 지금 또다시 그 계룡산은 신 행정수도 논란의 와중에 서 있다. 우리에게 계룡산은 과연 무엇인가? (푸른역사연구소장)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