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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마르는 여성 알몸 사진도 OK… 페북 ‘VIP 등급’ 은밀한 특별 대우

    네이마르는 여성 알몸 사진도 OK… 페북 ‘VIP 등급’ 은밀한 특별 대우

    30억명 이상이 가입한 세계 최대의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이 정치인,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의 계정을 ‘화이트 리스트’로 별도 관리하며 콘텐츠 심의 등에 특혜를 제공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페이스북이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 언론인 등 유명 인사들이 게시한 콘텐츠에 대해 검열 면제와 보호 등의 혜택을 주는 ‘크로스체크’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가짜뉴스, 혐오·선동·선정적 콘텐츠를 게시하거나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등 페이스북 규칙을 어기더라도 유명인에 대해서는 일반인들보다 삭제, 계정정지 등 제재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했다. WSJ는 “화이트 리스트 대상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미 상원의원, 브라질 축구스타 네이마르 등 지난해 기준 58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며 “당사자들 대부분은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페이스북의 은밀한 ‘VIP 관리’는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모든 이용자가 정치, 문화, 언론 등 엘리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우리의 운영 기준은 지위, 명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밝혔던 것과 크게 배치되는 것이다.WSJ는 축구 선수 네이마르를 일례로 들었다. 그는 2019년 한 여성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한다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여성의 실명과 알몸 사진을 올렸다. 이럴 경우 게시물이 즉각 삭제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게시물은 하루 동안 노출되고 뒤늦게 삭제가 이뤄졌다. 그사이 전 세계 5600만명의 이용자가 이를 봤다. 네이마르 계정에 대한 정지 등의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WSJ는 “페이스북이 사업 초기 유명인의 게시물을 건드릴 경우 회사에 나쁜 결과가 초래될 것을 우려해 크로스체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페이스북의 앤디 스톤 대변인은 관련 사실을 인정하며 “크로스체크에 대한 비판은 타당한 것이며 단계적으로 폐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반인들이 올린 것보다) 좀더 많이 고려해야 할 콘텐츠를 철저하게 검증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해명했다.
  • 권수정 서울시의원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사단법인 설립 불허는 차별적 행정”

    권수정 서울시의원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사단법인 설립 불허는 차별적 행정”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권수정 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은 지난 10일 제302회 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차별적 행정을 즉각 시정할 것을 촉구했다. 매년 서울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해 온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2019년 10월 서울시에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했으나, 약 2년이 지난 8월 26일 서울시로부터 불허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조직위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주무부서를 문화예술과로 배정하는 데 1년 2개월이 걸렸고, 그 후 6개월 동안 서류 보완을 요구받았으며, 지난 5월 12일 담당 부서로부터 모든 요건을 충족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요건이 다 갖춰진 후에도 서울시는 법무부에 의뢰한 유권해석에 대한 답이 오지 않아 허가를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통상 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받은 주무관청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20일 이내에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당시 서울시는 법무부에 ‘퀴어축제와 관련해 사회적 갈등이 있거나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을 추진하는 단체 활동이 허가요건에 저촉되지 않는지’에 대해 판단을 요청했고, 법무부 관계자는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의 경우 정관 등 형식적 요건만 갖추면 허가하는 ‘인가주의’를 따른다는 내용의 회신을 해 왔다. 권수정 의원은 이날 발언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년간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온몸으로 맞서 싸운 성소수자 시민과 지지자들의 투쟁의 역사“라며 “서울시는 부당한 차별적 행정을 중단하고, 모든 형식적 요건을 갖춘 조직위의 사단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즉각 허가하라”고 촉구했다.
  • 특수부대 6년 복무… 女격투기 승리한 트랜스젠더

    특수부대 6년 복무… 女격투기 승리한 트랜스젠더

    미 육군 특수 부대 출신의 남성이 성전환 수술 후 여성 종합격투기대회에 출전해 데뷔 경기에서 승리했다. 맥 러플린은 지난 11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여성 종합 격투기 대회에 페더급으로 출전해 자신보다 키 큰 상대의 목을 팔로 감싸 조르는 조크기술로 제압했다. 상대는 프로 1패를 기록하고 있던 셀린느 프로보스트(프랑스)였다. 프로보스트는 키 183cm의 장신으로 맥 러플린보다 13cm나 컸지만 근력으로 이길 수 없었다. 결국 2라운드에서 러플린에 무릎을 꿇었다. 이번 경기는 시작부터 공정성 논란이 있었다. 맥 러플린은 미 육군 특수부대에서 6년을 복무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병 근무 중 PTSD 진단을 받고 전역한 뒤 2016년에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이 때문에 남성의 근력을 가진 러플린이 여성과 겨루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 플로리다주 체육위원회는 호르몬 검사를 통해 맥러플린 선수를 여성으로 인정했고, 이에 따라 경기 결과는 공식 전적으로 남는다. 플로리다를 제외한 다른 주체육위원회에서도 러플린에게 출전 라이선스를 내줄지는 미지수다. 트랜스젠더도 경기를 할 권리가 있다며 러플린을 응원하는 의견도 있는 가운데, 러플린은 자신의 경기가 성전환자들도 스포츠에서 평범하게 활동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러플린 이전에도 트랜스젠더 파이터 팔론 폭스가 있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짧은 선수 생활을 했던 폭스는 5승 1패라는 화려한 전적으로 이목을 쓸었고, 러플린 역시 폭스의 활동을 보고 MMA 훈련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38세에 데뷔전을 치른 러플린은 “트렌즈젠더 혐오자는 나의 주먹을 더 강하게 만들뿐”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 “화장실 가는 소…개·고양이처럼 배설 훈련 가능”

    “화장실 가는 소…개·고양이처럼 배설 훈련 가능”

    소(牛)는 똥·오줌을 못 가려 아무 데서나 일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훈련을 통해 특정한 장소에서 배설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한 곳에서만 배설하도록 훈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는 청결하고 동물 친화적인 사육을 넘어 배설물에서 나오는 암모니아로 인한 간접적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기대돼 고무적이다. 독일 ‘농장동물 생물학연구소’(FBN)의 동물심리학자 얀 랑바인 박사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송아지를 대상으로 한 배설 훈련 실험 결과를 생물학 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저널 발행사 ‘셀프레스’(Cell Press)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연구팀은 우사 한 쪽에 ‘화장실’을 마련해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젖소 송아지가 이곳에서 배설할 때마다 이들이 좋아하는 당밀시럽을 줘 화장실 이용에 대해 보상했다. 반대로 화장실 밖에서 일을 볼 때는 불쾌한 경험을 갖게 했다. 처음에는 귓속 헤드폰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아주 혐오스럽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처벌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송아지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다음 방법으로 물을 끼얹어 화장실 이외 공간에서의 소변을 억제했다. 그 결과, 불과 15일에서 몇 주 만에 16마리의 송아지 중 11마리에서 성공적 결과를 얻었다. 이들 송아지는 유아보다는 뛰어나고 2~4세 아동 수준에 맞먹는 배설 처리 능력을 보였다. 연구팀은 동물도 개성이 있어 개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배설 훈련 기간이 길었다면 더 높은 성공률을 보였을 것으로 낙관했다. 이번 실험엔 배뇨만…“배변도 가능할 것” 다만 황소는 실험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배뇨만 대상으로 하고 배변 훈련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논문 책임저자인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교의 동물행동학자 린제이 매튜스는 소의 하루 배뇨량은 30ℓ에 달해 소똥보다는 오줌이 더 큰 문제라면서, 배뇨와 마찬가지로 배변도 특정 장소에서 배설하도록 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팀은 또 송아지의 배뇨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이 실험윤리 지침에 따라 제한됨에 따라 배뇨를 촉진하기 위해 이뇨제를 사용한 것으로 밝혔다. 연구팀은 소의 배설 훈련 방법을 터득한 만큼 실제 소를 키우는 우사나 방목장에서 활용할 수 배설 훈련방법을 개발할 계획이다. 랑바인 박사는 “소는 다른 동물이나 가축처럼 꽤 똑똑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화장실 이용법 왜 못 배우겠냐”면서 “앞으로 몇 년 안에 모든 소가 화장실을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소가 배설하는 똥오줌이 섞이면 암모니아가 생성되는데, 이 암모니아 자체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토양으로 스며들어 미생물을 만나면 아산화질소로 전환돼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을 잇는 위협적 온실가스가 된다. 암모니아 가스는 현재 농업 분야에서 가장 많이 방출되며 그 중 절반 이상이 가축 사육에서 나온다.
  • 커지는 이슬람사원 갈등 “안전한 나라”vs“똑같은 인간”[김유민의돋보기]

    커지는 이슬람사원 갈등 “안전한 나라”vs“똑같은 인간”[김유민의돋보기]

    대구에 생기는 이슬람사원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무슬림 간의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인근 경북대학교에 유학 중인 무슬림들이 기도처로 쓰던 가정집을 두 동짜리 이슬람 사원으로 증축하는 공사인데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주민들은 기도 소음과 향신료 냄새로 피해를 봤다며 민원을 내고, 국민청원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했다. 인근 주민 A씨는 지난 3일 ‘대한민국을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렸고 14일 오전 6시 기준 6만 157명이 동의한 상태다. A씨는 “8개월 넘게 이슬람사원 건축을 막으려고 분투하고 있다”며 “이슬람 복장을 하고 10~20명씩 거리를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데 위압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말했다. A씨는 “동네가 이슬람화 되는 건 한 순간”이라며 “이슬람 국가는 종교의 자유 말살, 인권 유린, 다양성을 파괴하면서 꼭 민주주의 국가에 와서는 종교의 자유 타령을 한다. 우리 주민이 역차별과 혐오를 받는 실정이다. 처음에는 재산권 때문에 시작한 싸움이었지만 우리 자녀들에게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주기 위해 함께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무슬림 학생의 편지 “생존의 문제” 그런가하면 지난 4월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무슬림 학생은 대현동 주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학생은 “이슬람 사원 문제 때문에 불편해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서도 “이슬람은 우리에게 의무이고 생존에 필수다”라고 적었다. 학생은 “대현동에 이슬람 사원이 생기는 건 희망”이라며 “저희도 권리가 있다.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존중해달라”고 애원했다. 무슬림 유학생들은 지역 주민들이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으로 공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부 주민들이 공사현장에 쓰레기를 모은 뒤 구청에 신고하고, 욕설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청과 시민단체가 중재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법원 “공사 재개” 결정… 마찰 계속 전국에 있는 이슬람사원은 20여개. 새 사원을 지을 때마다 비슷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무슬림 단체인 ‘다룰이만경북이슬라믹센터’와 경북대민주화교수협의회 등 6개 시민단체는 법원에 북구청이 내린 이슬람 사원 공사 중지 행정명령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과 함께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슬람 사원 공사 중단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대구 북구청의 공사 중지 행정명령의 집행정지를 결정했다. 이슬람 유학생들과 시민단체들은 “당연한 결과다. 부당한 행정으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북구청은 사과하고 앞으로 공정한 행정을 하길 촉구한다”며 “우리는 변함없이 지역사회와 평화로운 공존을 희망한다. 반대 주민들도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거두고 대화의 장으로 나서주길 희망한다”는 성명을 냈다. 법적으로는 공사를 바로 시작해도 되지만, 여전히 반발은 거세다. 곳곳에 ‘주거밀집지역 한복판에 이슬람 사원 건립 결사반대’ 현수막이 걸렸다. 다룰이만 경북 앤드 이슬라믹센터는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이 생각이 있고, 외모가 조금 다를 뿐이다. 저희도 권리가 있다”라며 평등권,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 “잠깐만요” 잘나가는 범인의 간담 서늘케한 ‘형사 콜롬보’ 50년

    “잠깐만요” 잘나가는 범인의 간담 서늘케한 ‘형사 콜롬보’ 50년

    1971년 9월 15일 미국 NBC 시청자들은 후줄근한 옷차림에 의미 없는 잡담을 늘어 놓아 돈 있고 힘 있는 범죄자들을 방심케 한 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한 방’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새로운 유형의 형사를 처음 만났다. LA 경찰청 강력계 반장인 ‘형사 콜롬보’. 2011년 치매 후유증 등으로 세상을 떠난 피터 포크가 시가 연기를 뿜어 대거나 덥수룩한 머리칼을 매만지며 생뚱맞은 얘기를 늘어놓다가 휙 돌아서며 “잠깐만요. 한 가지만 더”라면서 결정적 증거나 알리바이 조작을 드러내 범죄자를 옭아매는 모습은 그 시대 사람들에게 통렬한 재미를 안겼다. 첫 방영 50주년을 앞둔 이 드라마가 코로나19 봉쇄의 영향 덕에 새로운 세대의 팬층을 확보했다고 영국 BBC가 최근 전했다. 1978년까지 여덟 시즌이 제작됐고 1989년부터 2003년까지 간헐적으로 속편이나 스핀오프 ‘미시즈 콜롬보’ 등이 방영됐다. 최근 NBC의 클래식 재방 채널에서 주말 두 편씩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에서는 1974년 4월 6일 처음 방영돼 1982년 10월 1일까지 KBS에서 1984년 세상을 떠난 성우 최응찬의 목소리로 안방을 찾았다. 1994년 서울방송(SBS)에서 주말 심야 시간에 재개돼 이듬해 1월까지 계속됐는데 배한성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여느 범죄 드라마와 다른 점은 도입부에 범인과 수법을 미리 알려주고, 사회적으로 성공했거나 스스로를 똑똑하다고 여기는 범인의 완벽한 계획 범죄가 어수룩한 콜롬보에 의해 들통나는 과정을 보여줘 색달랐다. 매회 분량이 영화와 맞먹을 정도인 90~120분이었던 점도 특이했다. 진 배리, 잭 캐시디, 윌리엄 새트너, 안 백스터 등이 출연했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시즌1의 첫 회를 연출했고, 조너선 데미도 젊은 시절 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포크는 네 차례 에미상, 한 차례 골든글로브를 차지했다. 44개국에서 방영될 정도로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내에 콜롬보 동상이 세워졌고, 루마니아 공산 정부는 드라마 방영이 중단된 것이 엄격한 수입 규제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서 종영됐기 때문이란 사실을 포크 자신이 비디오로 녹화해 보내줄 것을 요청할 정도였다.윌리엄 링크와 리처드 레빈슨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란 인물에 영감을 얻고, GK 체스터턴이 이미 연극 ‘살인 처방(Prescription Murder)’에 등장시킨 콜롬보 반장에 캐릭터를 녹여냈다. 미스터리 반전의 묘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서 끌어왔다. 두 작가는 처음에 빙 크로스비에게 콜롬보 역을 제의했는데 이미 반쯤 은퇴했던 크로스비가 골프를 즐기겠다고 하는 바람에 포크에게 순서가 돌아갔는데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각본을 훑어본 포크는 평상복 차림이었는데 작가들에게 “죽여주게 그 경찰 연기를 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 번도 콜롬보의 성(姓)이 소개된 적이 없는데 각본에는 ‘프랭크’였다. 솔직한 사람이란 뜻에서였다. 늘 “우리 마누라가 그러는데 말이죠”라고 말하는데 한 번도 아내가 등장한 적이 없었다는 것도 재미있다. 데이비드 쾨닉은 “콜롬보 이전의 모든 형사는 강심장에 감정이란 없는 것 같으며 거친 사내들이었다. 모든 면에서 그는 정반대 인물이었다. 총을 싫어했고 폭력을 혐오했다”고 말했다. “날 성가시게 하는 게 뭐냐면”이란 그의 멘트는 범죄가 들통날까 싶어 붉으락 푸르락하는 범인들의 성깔을 돋워 실수를 유발하는 극적 장치로 작용했다. 이른바 ‘다윗과 골리앗’ 구도로 우리네 흔한 이웃 아저씨가 상류층, 식자층의 지능 범죄를 이겨낸다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 여전한 테러의 상처…두 아들 잃은 엄마 “10대 테러범 용서했다”

    여전한 테러의 상처…두 아들 잃은 엄마 “10대 테러범 용서했다”

    웨니 안젤리나 후도호의 큰아들 에반은 살아있었다면 15살이 됐다. 지난달 29일 그의 생일에는 무덤에 꽃이 놓여졌다. 지난 2018년 5월 13일 인도네시아의 두번째로 큰 도시 수라바야에서 벌어진 자살폭탄 테러로 13명이 사망하고 41명이 부상을 입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2일 졸지에 큰아들 에반과 작은아들 나탄을 잃은 엄마 웨니를 인터뷰했다. 웨니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나의 천사 에반, 생일 축하해. 천국에서 나탄과 함께 언제나 행복하기를”이라고 썼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을 아들과의 소중한 기억을 나누고 고통을 가라앉히는데 쓰고 있다. 웨니는 “어떻게 엄마가 자식을 잃고 슬프지 않을수 있겠는가. 나는 더 이상 내 아들들을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다”고 슬퍼했다. 일요일 교회로 가던 길에 당시 11살과 8살이었던 웨니의 두 아들을 앗아간 테러범은 10대 소년 두 명이었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서 만든 폭탄을 터뜨렸다. 폭발로 웨니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두 아들은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진 두 소년은 끝내 숨을 거두었다.웨니는 “나는 오직 두 아들밖에 없었는데 그 아이들이 내 눈 앞에서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웨니는 테러 발생 3일 뒤에 가해자를 용서한다고 밝혔다. 용서만이 자식을 잃은 엄마의 짐을 덜고, 아이들이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살폭탄 테러범도 아버지의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피해자라고 봤다. 테러범인 유스프 파딜(18)은 온라인 게임을 좋아하고 학교에서 풋살을 하는 평범한 10대였다. 유스프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는 그를 밝은 사람으로 기억했지만, 그의 아버지 디타 외프리아토는 아들을 자살 폭탄 테러범으로 키웠다. 디타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IS)가 인도네시아에 세운 계열 단체인 JAD의 일원이었다. 디타는 18살 큰아들 유스프를 비롯해 16살, 12살, 9살이었던 네 명의 자녀들에게 2015년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를 포함한 자살 폭탄 테러 영상을 보여줬다. 5월 13일 테러에서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폭탄을 터뜨려 자신들을 빼고 5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들 사망자 가운데 웨니의 두 아들이 포함됐다. 디타의 아내와 두 딸도 다른 교회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생명을 잃었다. 아버지 디타는 가장 마지막에 차를 이용해 세번째 교회에서 폭탄을 터뜨려 사망했고, 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90분 동안 세 곳의 교회에서 폭탄이 터졌고, 디타의 모든 가족은 사망했다. 18살에 자살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유스프의 친구는 그가 ISIS를 혐오했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유스프의 사망 이후 친구들은 그가 인스타그램에 불안함을 털어놓은 여러 장의 사진과 글을 발견했다. 유스프는 “떠날 수 없다” “나는 아무 것도 못 가질 것”이란 말을 인스타그램에 남겼다. 유스프뿐 아니라 형과 함께 사망한 둘째 역시 자살폭탄 테러 직전에 모스크에서 흐느껴 우는 것이 목격됐다. 수라야바의 자살폭탄 테러 이후 필리핀 남부와 스리랑카에서도 비슷한 테러가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ISIS가 가족들이 순교를 하면 천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가족 대신 커플이나 부부가 테러를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올해 3월에는 JAD로 의심되는 신혼부부가 교회 밖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벌였다. 신부는 임신 중인 상태였다. 필리핀에서는 2017년 이후 가족들이 벌인 자살 테러가 5건이나 발생했다. 가족테러범은 발각될 위험이나 정보가 새나갈 우려가 적으며, 스스로 테러범을 모집해 훈련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9·11 테러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극단적 이념에 따른 테러의 공포와 상처가 지구촌에 살아있다.
  •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했을 때 서방 세계는 그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철저한 억압과 잔인한 통치가 꽤 규모 있는 나라에서 부활할 것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이역만리 타국의 격변이 서방 세계 전체를 흔드는 이유는, 그것이 서구인들이 강고하게 갖고 있던 어떤 믿음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간의 상실로 서구인들 신념 ‘흔들’ 그 믿음은 3세기 전 즈음에 북대서양에서 태동한 계몽주의와 진보의 신화인데,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끝없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교리를 핵심으로 한다. 그 믿음은 북대서양 네트워크를 통해 탄생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꽃을 피워 세계를 제패했다. 한편 믿음의 신봉자들에게 중앙아시아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자리한 아프가니스탄은 북대서양에서 발원한 그 신화가 아직도 도달하지 않았던 ‘암흑의 심장’이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의 상실이 서구인들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은, 단순히 전략적이거나 재정적인 손실의 차원이 아니라 신념이 흔들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서구식 계몽주의는 패배한 것일까? 세계 최강의 군대와 가장 효율적 기업으로 무장한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을 쓰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더 긴 시간축 속에서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카불이 함락되기 100년 전, 서쪽의 터키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무슬림 세계에서 전통적 권위를 인정받던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멸망하려 하고 있었다. 연합국 주도로 이루어지는 제국의 분할에 맞서서, 청년 장교단과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외세에 맞서는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반외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전통과 구습에 묶인 제국을 구하기보다는, 근대 계몽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인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1921년은 그렇게 모인 터키 독립전쟁의 주역들이 최초로 헌법을 통과시킨 해였다. 터키의 새로운 엘리트들은 가톨릭 교회를 억누르고 세속주의를 확립시킨 프랑스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신헌법은 여러 개정을 거쳤고, 마침내 터키의 국체는 세속주의 공화국으로 확정됐다. 그 지도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딴 이념인 ‘케말주의’가 공식화되는 순간이었다.●이란·이라크 등 근대화 프로그램 시작 터키에서 시작된 케말주의는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세계는 19세기 이래로 ‘유럽을 압도하던 우리가 왜 지금은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됐는가’라는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케말주의가 제시한 답은 간명했다. 서구 계몽주의를 따르자. 종교와 구습에 얽매인 노인들을 몰아내고, 무지몽매한 대중을 계몽해 근대적 공화국을 건설하자. 그렇다면 민족은 얼마든지 강력하게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이 같은 비전은 이름을 달리한 채, 시차를 두고 여러 국가에서 시도됐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케말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아 나름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계몽주의는 이집트의 영웅 나세르, 이라크와 시리아의 바스당 당원들, 파키스탄의 국부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모두 공유하는 신념이었고, 자민족을 부강하게 만들 약속된 도구였다. 신세대 엘리트 주도하의 근대화 프로그램은 여러 성과를 내었다. 근대적 고등교육과 기술교육의 혜택을 많은 이들이 누렸고, 그중에는 교육에서 오랜 기간 배제돼 온 여성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슬람 전통법인 샤리아 대신 서구식 법체계가 자리를 잡았고 영화나 가요를 비롯한 현대적 도시 문화도 태동했다. 이 국가들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러 미국, 소련, 유럽에서 날아온 고문단은 이런 발전상을 보며 흡족해했다. ●‘이슬람주의’라는 이념 태동 하지만 근대적 발전상 이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계몽주의에 기초한 서구 근대성은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서구의 힘에 굴복하고 전통과 신성을 내팽개친 새로운 엘리트를 혐오했고, 무기력하게 전통을 답습하는 전통 엘리트도 경멸했다. 이슬람 신학, 법학과 서구 학문과 공산주의 혁명론 등에 정통한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근대적인 단체를 설립했고, 학술적 탐구와 정치적 구호를 담은 책들을 간행했으며, 세속주의 엘리트를 향한 저항을 선동했다. 세속주의가 이슬람 세계를 휩쓰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표에 따라 ‘이슬람주의’라는 이념이 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슬람 세계의 바깥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세속주의 엘리트가 추진하는 근대화가 충분히 진행되면 그런 ‘반동적’ 이념들은 금세 사그라들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1979년에 이란의 샤(황제)가 혁명의 물결에 밀려 퇴위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근대화라는 숙제를 착실히 이행하는 우등생으로 인식되곤 했다. 어쩌다가 근대화의 결과로 사라졌어야 할 이념이 새롭게 헤게모니를 잡게 됐을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를 주창한 엘리트들의 근대화는 사회를 충분히 바꾸어 놓기는커녕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극심한 반발만을 야기했다. 근대화의 혜택이 대부분 발전한 도시 지역에 집중되는 가운데, 내륙의 농촌에는 여전히 전통적 사회 질서와 문화가 잔존했다. 근대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빈곤은 뿌리 깊은 문제였으나 도시 엘리트들은 촌락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한편 1945년 이래로 시작된 급속한 인구증가, 그에 따른 생태적 위기는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를 부추기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주요 도시의 화려함과 부유함, 그리고 서구식 생활양식은 도시에 유입된 빈민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문명적’ 생활양식을 향유하는 서구적 엘리트들은 여전히 종교라는 구습에 얽매이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들을 깔보고 무시했다. 엘리트에게 빈민들은 ‘계몽의 빛’을 거부하며 무지에 속박된 이들이었다. ●이란 혁명, 파키스탄 이슬람화 자극 이슬람주의자들은 상황을 다른 각도로 보도록 도와주었다. 서구화된 엘리트들은 문명화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것이었다. 미국은 소비자본주의와 성적 방종으로 문화를 더럽히는 국가였고, 소련은 무신론을 내걸고 이슬람을 탄압하는 국가였다. 따라서 타락한 엘리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외세를 몰아내는 투쟁을 시작하는 것만이 알라가 제시한 성스럽고 올바른 길이었다. 혜택이 편향됐던 서구식 근대화는 도시와 농촌, 엘리트와 대중의 분열을 부추겼다. 마침내 1970년대를 거치며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근대화 프로그램의 초라한 성적이 드러나자, 힘의 균형은 이슬람주의 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분개한 대중이 보기에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언어는 계몽주의가 아니라 이슬람주의였다. 따라서 1979년 이란 혁명은 홀로 떨어져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아랍 세계의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란의 시아파 혁명을 불신했으나, 유사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에 고무됐다. 그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극단적 무장 단체가 메카의 대(大)모스크를 점거하고 타락한 사회에 대한 정화를 촉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충격을 받은 사우디 왕실은 대내적 불만을 잠재우고자 자신들 판본의 종교적 보수주의인 ‘와하비즘’을 더 강하게 선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란 혁명은 인접한 파키스탄이 이미 1977년부터 추진하고 있던 이슬람화를 더욱 급격하게 밀어붙이도록 자극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아 울 하크 장군은 이슬람주의 정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79년의 마지막 나날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격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놀라운 속도로 진척됐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파키스탄은 소련군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맡으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은 지정학 이상이었다. 석유 파동 덕택에 부유해진 사우디는 파키스탄에 경제적 지원을 해줌과 동시에 이념적 지원도 해주었다. 사우디가 지원한 마드라사(신학교)가 파키스탄 각지에 세워졌으며, 이곳은 급진 이슬람주의 전사들을 키우는 훈련소가 됐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양편에 거주하는 파슈툰족은 이런 공통의 경험을 통해 급진화됐다. 한편 사우디는 아랍 세계 각지의 지하드 전사들이 ‘무신론 제국’인 소련을 상대하러 아프가니스탄에 집결하는 것도 지원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의 계곡에 들어간 전사 중에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부유한 집안의 청년인 오사마 빈라덴도 있었다. 지역에 근거한 이슬람 무장 세력과 글로벌 테러리즘을 주창하는 성전주의자들 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은 현지의 이슬람주의 전사들은 소련군이 물러난 뒤에도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신념으로 뭉치며 ‘탈레반’이 됐다. 탈레반은 꾸준히 시골을 공략했다. 그들은 도시의 부패와 ‘타락’을 몰아내고 마을 주민에게 질서, 안정, 이슬람의 회복이라는 언어로 호소했다. 탈레반의 힘은 무기와 아편 판매로 모은 돈만큼이나, 그들 고유의 언어와 약속에서도 나왔다.●미군이 탈레반에 패배한 이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미군은 왜 탈레반에 패배했을까? 그 이유는 탈레반의 신념을 형성하는 긴 역사와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세속주의 엘리트들은 배후지의 농촌, 혹은 도시의 빈민과는 유리된 삶을 살았으며 그들 사이의 문화적 분리는 크나큰 정치적 불만을 촉발했다.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 것은 도시 바깥에 뻗어 있는 광활한 대지, 거기에 펼쳐진 수많은 마을의 동향이었다. 그 마을의 주민들은 애초에 계몽주의에 근거한 비전에 공감하지 못했으며,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누적돼 온 관습과 그와 유사한 깊이의 신앙에 오히려 더욱 공감했다. 카불과 헤라트에서 일어난 계몽주의의 패배는 그렇기에 일찍이 1979년의 이란과 2013년 무렵의 터키에서 벌어진 패배와도 일정하게 흡사한 점이 있다. 카불의 함락은 서구적 근대화라는 비전이 이 지역에서 국민적 발전을 가리키는 빛이 아니라 도시와 시골, 엘리트와 대중을 가르는 단층선에 불과했다는 고질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또다시, 아주 극적인 모습으로 남긴 셈이다. 임명묵 작가
  • [어린이 책] 80년 전, 가난도 슬픔도 다 견딘 ‘우리 누나’

    [어린이 책] 80년 전, 가난도 슬픔도 다 견딘 ‘우리 누나’

    외가에 맡겨진 양순이는 대기근 때문에 만주로 떠난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열병으로 두 눈을 잃은 무당집 딸 끝순이와 한센병을 앓던 어머니를 둔 대복이, 지역 유지였던 할아버지를 여의고 정신병이 생긴 정님이에게 양순이는 누구보다 의지할 수 있는 언니이자 누나, 동생이다. 8·15 해방을 맞이하자 양순이는 이제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엄마에게 소식이 없다. 정미소집에서 아기 돌보미를 하게 된 양순이는 결국 엄마와 재회하지만, 돌아온 엄마 뱃속에는 동생이 자라고 있었다. 신동엽문학상·동인문학상 등을 휩쓴 문단 원로 송기원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 ‘누나’는 혼란스러웠던 1940년대를 배경으로 밑바닥 삶을 이어 가는 가메뚝 마을 사람들의 삶을 그렸다. 작가는 저마다 슬픔과 가난을 품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 시대 민중들의 삶을 속속들이 돌아본다. 특히 주인공 양순이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아픈 동네 동생들을 품어 안을 뿐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이복동생 혹부리의 목숨까지 지켜내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끝순이, 대복이, 양순이 등 듣기만 해도 정겨운 인물들이 어떻게 절망 속에서 살아남고 성장하는지를 보여 주며 우리 민족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았다. 혐오와 멸시 속에서도 시련을 이겨내는 이들의 심지는 세상 누구와 견줘도 결코 약하지 않다. 이 책은 80년 전 민중의 삶을 통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 [책꽂이]

    [책꽂이]

    황현산 전위와 고전(황현산 지음, 김인환 외 10인 엮음, 수류산방 펴냄) 불문학자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의 3주기를 맞아 그가 생전에 시민을 대상으로 남긴 프랑스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 강의를 지인과 제자들이 엮었다. 베를렌의 ‘가을의 노래’,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등이 어떻게 우리 문학계에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648쪽. 2만 9000원.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읽기(박철 지음, 세창미디어 펴냄) 국내 최초로 스페인 고전 ‘돈키호테’를 완역한 박철 전 한국외대 총장이 작가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문학 세계와 소설의 의미를 독자들이 알기 쉽게 펼쳐 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귀족들의 세습 제도를 비판하고, 남녀평등을 외치며 인간의 자유와 명예를 수호하는 유토피아를 그렸다. 220쪽. 9000원.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최규화 지음, 산지니 펴냄) 포항 사투리로 자신의 생애를 풀어 가는 1929년생 김두리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자 출신 손자가 기록했다. 일제강점기 수탈에서 6·25전쟁으로 군대에 끌려간 남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은 딸 등 참혹한 현대사를 견뎌 낸 가족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240쪽. 1만 6000원.이전 세계의 연대기(존 맥피 지음, 김정은 옮김, 글항아리 펴냄) ‘미국 논픽션의 대가’로 꼽히는 존 맥피 작가가 지리학자들과 미국을 횡단하며 쓴 지구 지질학에 대한 보고서를 엮었다. 1999년 퓰리처상 수상작인 이 책은 뉴욕 센트럴파크의 운모, 샌앤드레이어스 단층 등 다양한 지질의 변화 과정을 산문을 감상하듯 보여 준다. 960쪽. 4만 9000원.슬로다운(대니 돌링 지음, 김필규 옮김, 지식의날개 펴냄) 영국 지리학자인 저자가 지난 160여년간 인류의 급속한 발전상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발전 속도는 예전보다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마트폰이 혁신적이라도 전화, 컴퓨터가 처음 출현했을 때와 비교하면 소소할 뿐이다. 대신 인류는 더욱 평화로운 세상에 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568쪽. 2만 9000원.57번 버스(대슈카 슬레이터 지음, 김충선 옮김, 돌베개 펴냄) 미국 저널리스트의 시각으로 2013년 11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벌어진 ‘혐오 범죄’를 집중 조명했다. 57번 버스 안에서 흑인 소년 리처드가 백인 성소수자 소년 사샤의 다리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리처드는 성인범으로 기소되나, 저자는 사법 당국의 형평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364쪽. 1만 5000원.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77년 게이 찬가 부른 칼 빈과 2011년 레이디 가가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1977년 게이 찬가 부른 칼 빈과 2011년 레이디 가가

    1977년에 ‘아이 워즈 번 디스 웨이’란 제목의 디스코 노래를 모타운 레코드에서 발표한 칼 빈이 77세를 일기로 지난 7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사망한 장소나 사인은 밝히지 않고 오랜 질환 끝에 숨졌다고만 했다. 레이디 가가의 2011년 노래 ‘번 디스 웨이’에 영감을 준 노래다. 가가는 빈의 노래가 “설교 강론처럼 들린다”고 했다. 눈치채셨겠지만 게이들에게 국가처럼 여겨지는 노래란다. 가사 후렴구를 보자.“난 행복해, 난 괜찮아, 난 이런 식으로 태어났어” 가가가 자신의 노래에 영감을 받은 노래를 발표했다는 소식에 “목숨을 살리는 일이 계속된다”며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노래는 내 인생에 은총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가가가 다시 만든 노래를 통해 다른 세대의 삶에 또다시 은총이 되고 있다”고 반겼다. 음악 경력의 최정점이었을 때 빈은 디온 워윅,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버트 바카락, 마일스 데이비스 등과 함께 작업할 정도로 상당한 입지를 갖고 있었다. 모타운 레코드 사는 그에게 상업적으로 달큰한 사랑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지만 대신 그는 에이즈 환자 권리 운동가로 나선 뒤 나중에 성적소수자(LGBT) 교회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유니티 펠로십 교회운동연합은 성명을 내 “빈 추기경은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LGBTQ의 해방을 위해 끊임없이 일했고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영혼과 믿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게 도왔다”고 밝혔다. 1944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고인은 어머니가 낙태 도중 세상을 뜨자 이웃집에 맡겨져 자라났다. 일찍이 교회 일을 열심히 했고, 흑인 민권운동에도 어린 나이에 참여했다. “난 예수를 일을 벌이는 민중 선동가로 소개받았다. 아웃사이더로서 예수의 이미지는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것이어서 내게 뭐든 받아들이라는 교훈으로 다가왔다.” 10대 시절 이웃 소년들에게 끌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후견인의 형제에게 겁탈을 당했다. 위탁 가정에 솔직히 두 사실을 털어놓았더니 오히려 쫓겨났다. 극단을 택했다가 실패해 큰 병원의 정신병동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병원은 전기충격 요법으로 그를 치유했다고 주장했지만 빈은 독일인 여성 상담의와 얘기를 나누며 성적 정체성을 확인했다. “그녀는 ‘너 같은 사람 많아. 네 부모들이 원하는 것처럼 널 이성애자로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네가 어떤 사람이고, 네 꿈을 좇을 수 있도록 받아들이게 도울 수는 있어’라고 말하더라”면서 “그 말은 내게 빛이 됐으며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기회가 됐다. 다른 의사를 만났더라면 난 아마도 다른 짐승이 됐을지 모른다.” 퇴원한 뒤 음악이 위안이 됐다. 볼티모어 일대의 가스펠 가수로 데뷔한 뒤 열여섯 살 때 뉴욕으로 이주해 할렘 교회들 무대에 섰다. 로스앤젤레스로 옮겨와선 그룹 ‘칼 빈과 유니버설 러브’를 결성했으나 얼마 안 있어 해체됐다. 그의 말마따나 “너무 시류를 앞서 있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리듬 앤드 블루스와 가스펠의 경계를 허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밴드의 1974년 노래 ‘갓타 비 섬 체인지’가 모타운 레코드의 프로듀서들 귀에 꽂혀 버니 존스가 가사를 붙인 ‘아이 워즈 번 디스 웨이’를 레코딩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프로듀서들은 가스펠 느낌을 살리고 싶어 빈을 떠올린 것인데 빈 역시 자신에게 완벽히 들어맞는다고 느꼈다. 가사는 요즘 들어도 뜨악할 수 있는데 얼마 뒤 빌리지 피플이 디스코를 동성애와 결부시키곤 했다. (그런데 동성애를 혐오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빌리지 피플의 ‘YMCA’ 같은 노래에 맞춰 어색하게 몸을 흔드는 것 같은 웃기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모타운을 떠나 1982년부터 교회를 세우기 시작했다. 모토는 “하나님은 사랑이며 사랑은 모두에게 내려온다”였다. 미국 뿐만아니라 카리브해 연안에도 비슷한 교회를 세우자는 요청이 빗발쳤다. “그들에게 ‘열 명의 흑인 게이와 레즈비언만 모이고 커밍아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설교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몇년 동안 많은 도시들을 돌아다니느라 LA에는 1995년에야 돌아왔다.” 에이즈란 질병에 무지했던 흑인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단체를 1985년 만들어 활동한 것도 기억해야 할 일이다.
  • “선생님 페미죠?” 여성 교사 10명 중 4명이 학교에서 겪은 일[이슈픽]

    “선생님 페미죠?” 여성 교사 10명 중 4명이 학교에서 겪은 일[이슈픽]

    여성 교사 10명 중 4명은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조롱이나 공격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30대 여성 교사의 경우 10명 중 7명이 외모 비하 등 성희롱과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9일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교사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7월 14~23일 전국 유초중고 교사 11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설문조사다. 조사 결과 최근 3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보복성 공격(백래시)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 피해 경험이 하나라도 있다고 답한 여성 교사의 비율은 37.5%, 남성 교사의 비율은 19.6%로 집계됐다. 피해 경험 중에는 ‘메갈’, ‘페미’냐며 조롱하듯 묻는 행위가 17.4%로 가장 많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혐오 표현 발언(16.6%),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비난 및 공격(12.8%), 성평등 수업에 대한 방해 및 거부(8.2%)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연령대가 낮을수록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높았는데, 20대 여성 교사의 경우 43.9%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혐오 표현 발언을 들었고 32.5%가 ‘메갈이냐’, ‘페미냐’ 등 조롱 섞인 질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래시 피해 경험 교사들은 행위자(복수응답 가능)로 학생(66.7%)과 동료 교사(40.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최근 3년간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교사도 여성은 41.3%, 남성은 21.3%로 나타났다. 특히 20~30대 여성 교사의 경우 66.0%가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가장 많은 피해 경험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였다.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본 이들의 25.2%는 학교 관리자를 행위자로 꼽았다. 전교조는 “교육부는 학교 내 페미니즘 백래시와 성희롱·성폭력 실태에 경각심을 갖고 학교 구성원들의 성차별적 인식을 해소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을 즉각 시행하고 지속해서 점검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 국경 맞댄 美텍사스는 “낙태 불법”… 멕시코 대법 “낙태는 합법”

    멕시코 대법원이 낙태하는 여성과 관계자들을 형사처벌하는 건 위헌이란 판단을 내렸다. 이달부터 미국 텍사스주에서 6주가 넘은 태아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반면 텍사스와 국경을 맞댄 멕시코에선 여성의 인권과 신체권 보호에 방점을 찍는 사법부 판단이 나와 대비를 이뤘다. 멕시코 대법원은 7일(현지시간) 텍사스와 접한 코아일라주가 임신 12주 내 낙태에 대해 징역 1~3년형을 부과하게 한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대법원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몸과 삶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며 낙태 처벌을 금지시켰다. 아르투로 잘디바르 대법원장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역사적 한 걸음”이라고 자평했다. 멕시코 인구의 89%는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가톨릭 신자다. 이에 그동안 멕시코시티, 오악사카, 이달고, 베라크루스 등 4곳을 제외한 주가 강간 피해를 당했거나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곤 임신중절을 금지해 왔다. 이에 낙태 처벌을 피하기 위해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불법으로 임신중절 시술을 받았다. 이 같은 불법 낙태 수술이 멕시코에서 연 100만건 이뤄진다는 추정도 나왔다. 불법 낙태 과정에서 여성들은 합병증, 나아가 사망 위험에 노출됐을 뿐 아니라 수감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 결정이 나옴에 따라 임신중절 혐의로 처벌받은 여성들의 석방, 무혐의 결정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날 대법원 결정은 멕시코 여성단체들이 10년 넘게 펼친 여성인권 증진 활동의 결과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멕시코 여성들은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 보장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인 지난해 9월 28일 멕시코시티에서 임신중단 합법화 요구 집회를 열었다. 여성단체들은 또 미투 운동, 여성 혐오살해 반대 운동을 벌여 왔다. 멕시코 대법원의 결정이 가톨릭 신자가 많은 남미의 이웃국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중남미 대부분 국가가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출한 아르헨티나에선 임신 1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교계는 이 같은 움직임에 언짢은 기색을 드러냈다. 가톨릭 주교 모임인 멕시코 성공회는 트위터를 통해 “삶의 가치를 확신하는 사람들에겐 이번에 인정받은 살인법(낙태를 의미함)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위헌 결정을 내린 대법원 건물 바깥에선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 [단독] 인구 줄면 ‘상복 근무’…“이건 아니지 않나요”

    [단독] 인구 줄면 ‘상복 근무’…“이건 아니지 않나요”

    고윤환 문경시장 “인구 7만명 사수못 지키면 상복 입을 각오로 정책 추진”공무원 “전국 현상… 민원인에 혐오감”市 “책임감 갖고 매진 메시지” 해명 상주시 2019년 전 직원 ‘근조’ 출근도“우리는 상복(喪服) 차림으로 근무 못합니다.” 갈수록 더해지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인구 증가 독려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8일 경북 문경시에 따르면 지난 7일 고윤환 시장은 시 간부 공무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 시는 전날 기준으로 문경의 인구가 7만 1002명으로, 자칫 연내 7만명 사수가 힘들 수 있다고 자체 평가했다. 특히 고 시장은 “인구(7만명)를 지키지 못할 경우 상복을 입는다는 각오로 인구증가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하자”며 독려했다. 이에 시 공무원들은 “전국적인 현상인 인구 감소로 공무원들이 불쾌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복을 입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상복은 민원인에게도 혐오감과 불편감 만을 줄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무원의 반발이 거세자 시 관계자는 “(시장의 상복 언급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7만명 선 붕괴 우려에 대해 공직자들이 다시 한 번 책임감을 갖고 재도약을 위해 매진하자는 강한 메시지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시는 2017년부터 전국 최고 출산장려금(첫째아이 340만원~넷째아이 3000만원), 다자녀 장학금(초등학생 30만원~대학생 300만원), 전입 지원금 지급 등 인구 증가 시책을 추진했으나 인구 고령화 등으로 해마다 200명 정도가 감소하고 있다. 문경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 제2의 탄전지대를 자랑하며 인구가 16만 1000여명에 달했다. 앞서 상주시는 2019년 2월 전 직원에게 “21일 출근 때 검은색 옷에 근조(謹弔)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이는 이날을 ‘공직자 성찰과 다짐의 날’로 정하고, 인구 10만명 붕괴를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애도하는 의미에서였다. 시와 군을 구분하는 여러 잣대 중 하나가 인구수 10만 명이란 점에서 상주시는 당시 10만명 붕괴를 크게 우려했다. 하지만 시 공무원들은 “공무원 사기를 떨어뜨리는 이런 상복 차림 근무가 득될 게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주연 상주시 미래전략추진단장은 이날 서울신문과 통화에서 “하루 잠깐 상복을 입고 근무한 것이 인구 증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반문한 뒤 “이후에도 계속 인구가 감소해 현재 9만 6000명선 마저 붕괴가 눈 앞에 닥쳤다”고 걱정했다.
  • “너는 나랑 성관계하게 될 걸?” 제자들 희롱한 홍대 미대교수

    “너는 나랑 성관계하게 될 걸?” 제자들 희롱한 홍대 미대교수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인권유린을 자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홍익대 학생 등으로 구성된 ‘홍익대 미대 인권유린 A교수 파면을 위한 공동행동’은 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교수가 지난 3년 동안 학생들을 성희롱하고 교권을 남용했다고 폭로하며 교수직 박탈을 요구했다. 공동행동이 공개한 피해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A교수는 2018년부터 최근까지 학과 수업과 사적인 자리에서 다수 학생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했다. A교수는 지난해 초 텔레그램 성착취물 제작·유포 사건인 ‘n번방’이 화제가 되자 한 여학생에게 “너는 작가를 하지 않았으면 n번방으로 돈을 많이 벌었겠다”고 폭언하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사실은 제일 밝힐 것처럼 생겼다”고 하는 등 성희롱을 지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A교수는 또 다른 학생에게 “너랑 나랑 언젠가는 섹스를 하게 될 거 같지 않냐”며 위계 관계를 이용해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A교수는 나아가 구체적으로 날짜를 정하자며 학생에게 휴대전화 달력 앱을 실행하게 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이 밖에 “학부 시절 무용과 학생들과 성관계를 하고 다녔다”고 했으며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공유하는 등 성적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반복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피해자들은 A교수가 강의 시간에 교육을 빙자한 혐오 및 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못생긴 애들은 보면 토 나와서 얼굴도 못 쳐다보겠다”, “○○이는 진짜 패 주고 싶다”며 학생들의 인격을 수차례 모욕했다는 것이다. A교수가 미술계 영향력을 과시하며 대학원생들에게 본인의 사적 심부름과 업무에 참여하도록 강요했다는 제보도 있었다고 공동행동은 전했다. 양희도 홍익대 미술대 학생회장은 “위계질서 아래에 있는 구성원을 권력으로 찍어 누르고 인격적으로 모독한 사람은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학교 측에 파면요구서를 전달한 공동행동은 다음달 경찰에 A교수를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홍익대 관계자는 “사실 확인 뒤 대응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너랑 성관계 하게 될 것”…홍대 미대 교수 인권유린 의혹

    “너랑 성관계 하게 될 것”…홍대 미대 교수 인권유린 의혹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성희롱과 폭언 등 인권유린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홍익대 미대 인권유린 A교수 파면을 위한 공동행동’은 8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과 교권 남용 등을 지속한 A교수를 파면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A교수는 2018년부터 최근까지 학과 수업과 사적인 자리에서 다수의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반복했다. A교수는 최근 ‘N번방 사건’이 화제가 됐을 당시 한 여학생에게 “너는 작가를 하지 않았으면 N번방으로 돈을 많이 벌었겠다”며 범죄를 희화화했다. 또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사실은 제일 밝힐 것처럼 생겼다”고 하는 등 성희롱을 지속했다. A교수는 또 학생에게 “너랑 나랑 언젠가는 섹스를 하게 될 거 같지 않냐”며 위계 관계를 이용해 성관계를 가지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A교수는 구체적으로 날짜를 확정하기 위해 휴대전화 달력 앱을 키는 행위를 하는 등 학생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했다. 이밖에 “학부 시절 무용과 학생들과 성관계를 하고 다녔다”고 했으며,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공유하는 등 성적 불쾌감을 주는 언행을 반복했다. 그는 수업시간 내 교육을 빙자한 혐오 및 차별적인 언어 폭력도 했다. A교수는 “못생긴 애들은 보면 토 나와서 얼굴도 못 쳐다보겠다”, “○○이는 진짜 패 주고 싶다”고 하는 등 학생들의 인격을 모욕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A교수는 미술계 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대학원생들에게 본인의 사적 심부름과 업무에 참여하도록 강요하고, 학생들에게 “오지 않은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며 실제로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을 색출해 추궁하기도 했다. 공동행동은 학교 측에 A교수의 파면을 요구하고 다음 달 경찰에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양희도 홍대 미술대 학생회장은 “자신보다 위계질서 상 아래에 있는 구성원을 권력으로 찍어 누르며 부당한 지시를 하고 인격적으로 모독하며 한 명의 인격체로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다”며 “학교는 이번 사건을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진상조사에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리는 상복 차림으로 근무 못 합니다”…인구 증가 드라이브에 공무원 반발

    “우리는 상복 차림으로 근무 못 합니다”…인구 증가 드라이브에 공무원 반발

    “우리는 상복(喪服) 차림으로 근무 못합니다.” 갈수록 더해지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인구증가 독려에 대해 공무원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8일 문경시에 따르면 지난 7일 고윤환 시장은 시 간부 공무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비상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회의에서 시는 전날 기준 시 인구가 7만 1002명으로 자칫 연내 7만명 사수가 힘들 수 있다고 자체 평가했다. 특히 고 시장은 “인구(7만명)를 지키지 못할 경우 상복을 입는다는 각오로 인구증가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하자”며 독려했다. 이에 시 공무원들은 “전국적인 현상인 인구 감소로 공무원들이 불쾌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상복을 입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어 “상복은 민원인에게도 혐오감과 불편감 만을 줄 뿐”이라고 했다. 이에 시 관계자는 “(시장의 상복 언급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7만 명 선 붕괴 우려에 대해 공직자들이 다시 한 번 책임감을 갖고 재도약을 위해 매진하자는 강한 메시지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시는 2017년부터 전국 최고 출산장려금(첫째아 340만원~넷째아 3000만원), 다자녀 장학금(초등학생 30만원~대학생 300만원), 전입 지원금 지급 등 인구 증가 시책을 추진했으나 인구 고령화 등으로 해마다 200명 정도가 감소했다. 문경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국 제2의 탄전지대를 자랑하며 인구가 16만 1000여명에 달했다. 앞서 상주시는 2019년 2월 전 직원에게 “21일 출근 때 검은색 옷을 입고 근조(謹弔)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이날을 ‘공직자 성찰과 다짐의 날’로 정하고 인구 10만 명 붕괴를 막지 못한 것을 자책하고 애도하는 의미에서였다. 시와 군을 구분하는 여러 잣대 중 하나가 인구수 10만 명이란 점에서 상주시는 10만명 붕괴를 크게 아파했다. 하지만 시 공무원들은 “공무원 사기를 떨어뜨리는 이런 상복 차림 근무가 득될 게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상주시 인구수는 2019년 1월 말 10만 38명으로 겨우 10만명 선을 유지했으나 다음 달 들어 54년 만에 인구 1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김주연 상주시 미래전략추진단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하루 잠깐 상복을 입고 근무한 것이 인구 증가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반문한 뒤 “이후에도 계속 인구가 감소해 현재 9만 6000명선 마저 붕괴가 눈 앞에 닥쳤다”고 걱정했다.
  • [단독] 중수본에 책상조차 없는 ‘방역 인권팀’

    코로나 사태 1년 반 지나 뒤늦게 설치팀장·팀원 2명 모두 다른 업무와 겸직전담 직원 없어 인권보호 방향 못 잡아외국인 혐오·시설 인권 등 여전히 방치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발발 1년 반이 지나서야 뒤늦게 ‘방역인권보호팀’을 신설했지만 인권을 보호할 실질적 권한과 인력을 두지 않아 ‘보여주기식 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방역인권보호팀은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인권문제에 대응하는 팀으로 지난 6월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설치됐다. 팀장은 복지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겸직하고 있고, 팀원 두 명도 다른 과 업무를 겸하고 있다. 전담 직원은 한 명도 없는 셈이다. 책임지고 일할 사람이 사실상 팀장뿐이다 보니 팀을 만든 지 3개월이 돼 가도록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인권보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 과장 한 명, 팀원 두 명으로 구성된 코로나19 인권 관련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으나 3개월 만에 해체됐다. 접촉자의 과도한 동선 공개 등으로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자 부랴부랴 팀을 만들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케이스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인권단체들이 청와대 기모란 방역기획관을 만나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권문제를 살필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 면담을 계기로 갑자기 만들어진 조직이 중수본의 방역인권보호팀”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역인권보호팀이 생기자 청와대에서 이제 인권문제는 방역인권보호팀과 얘기하라고 하더라”면서 “그러나 이 팀은 중수본 사무실에 책상조차 없다. 팀 성원들의 열정과는 무관하게, 어떻게 일하게 해야 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방역의 긴급성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인권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해 왔다. 서울시·경기도 등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해 근거 없는 혐오를 키웠고 지난해 5월 이태원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성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혐오와 낙인을 불러왔다. 몇몇 환자의 경우 동선 공개로 사생활 침해를 겪고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감염 자체보다 혐오와 낙인이 두려워 숨는 결과를 불러왔다. 아동복지시설 아동들은 과도한 방역 지침 때문에 1년여간 사실상 감옥생활을 해 왔다. 방역 정책에 인권침해 요소는 없는지 사전 점검하는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 코로나19 발생 1년 5개월 만에 만들어진 조직은 이를 검토할 인력도, 권한도 없다. 유정미 방역인권보호팀장은 “방역 관련 인권침해 요소를 검토하려면 중수본보다는 주무부처인 질병관리청에 해당하는 인력이 세팅돼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 뒤늦게 만든 ‘코로나 방역인권보호팀’, 전담직원은 0명…‘보여주기 행정’ 눈총

    뒤늦게 만든 ‘코로나 방역인권보호팀’, 전담직원은 0명…‘보여주기 행정’ 눈총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발발 1년 반이 지나서야 뒤늦게 ‘방역인권보호팀’을 신설했지만 인권을 보호할 실질적 권한과 인력을 두지 않아 ‘보여주기식 행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방역인권보호팀은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인권문제에 대응하는 팀으로 지난 6월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설치됐다. 팀장은 복지부 양성평등정책담당관이 겸직하고 있고, 팀원 2명도 다른 과 업무를 겸하고 있다. 전담 직원은 한 명도 없는 셈이다. 지난달까지는 겸직 팀원조차 1명에 불과했다. 책임지고 일할 사람이 사실상 팀장뿐이다보니 팀을 만든지 3개월이 돼가도록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인권보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성조차 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도 국가인권위원회에 과장 1명, 팀원 2명으로 구성된 코로나19 인권 관련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으나 3개월 만에 해체됐다. 접촉자의 과도한 동선 공개 등으로 인권침해 문제가 제기되자 부랴부랴 팀을 만들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케이스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인권단체들이 청와대 기모란 방역기획관을 만나 코로나19 상황에서 인권문제를 살필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 면담을 계기로 갑자기 만들어진 조직이 중수본의 방역인권보호팀”이라고 말했다. 그는 “방역인권보호팀이 생기자 청와대에서 이제 인권문제는 방역인권보호팀과 얘기하라고 하더라”면서 “그러나 이 팀은 중수본 사무실에 책상조차 없다. 팀 성원들의 열정과는 무관하게, 어떻게 일하게 해야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방역의 긴급성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인권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서울시·경기도 등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의무화해 근거 없는 혐오를 키웠고 지난해 5월 이태원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은 성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혐오와 낙인을 불러왔다. 몇몇 환자의 경우 동선 공개로 사생활 침해를 겪고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결국 감염 자체보다 혐오와 낙인이 두려워 숨는 결과를 불러왔다. 아동복지시설 아동들은 과도한 방역 지침 때문에 1년여간 사실상 감옥생활을 해왔다. 방역 정책에 인권침해 요소는 없는지 사전 점검하는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내 코로나19 발생 1년 5개월만에 만들어진 조직은 이를 검토할 인력도, 권한도 없다. 유정미 방역인권보호팀장은 “인권영향평가 등을 검토하려면 중수본보다는 주무부처인 질병관리청에 해당하는 인력이 세팅돼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 [포토]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향해’ 오체투지 행진

    [포토]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향해’ 오체투지 행진

    7일 서울 동작구 대방역 인근 여의대방로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이들은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차별금지법 법안 통과할 것을 요구하며 9박 10일간 오체투지 행진을 이어간다. 2021.9.7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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