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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살 도구’ 번개탄 살때 용도 밝혀야

    경기도와 번개탄 제조업체, 번개탄 유통업체가 ‘자살 도구’로 사용이 급증하는 번개탄 판매 방법을 개선하는 캠페인을 추진한다. 이기우 경기도 사회통합부지사는 8일 이봉수 ㈜대명챠콜 대표, 강갑봉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장과 ‘경기도 생명사랑 번개탄 판매개선 캠페인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협약에 따라 경기도 유일의 번개탄 제조업체인 대명챠콜은 번개탄 포장지에 자살예방 문구와 상담번호를 표시하고,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소속 판매 업주는 구매자에게 용도를 묻고 번개탄을 판매하게 된다. 도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가게에 ‘생명사랑 실천가게’ 현판을 부착하고 경기도자살예방센터를 통해 캠페인 가이드라인 제공과 간담회 개최 등을 추진하는 등 캠페인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도는 우선 수원, 안산, 화성, 의정부, 시흥, 안성, 포천 등 7곳을 중심으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내년에 31개 모든 시·군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른바 ‘번개탄 자살’은 2008년 한 유명 연예인의 자살 이후 급증하는 추세로 2007년 전국 87명이었던 번개탄 자살 사망자가 2013년에는 1825명으로 21배 증가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동문 기획전 ‘칼로 새긴 사군자전’ 개최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동문 기획전 ‘칼로 새긴 사군자전’ 개최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동문회’가 매년 새롭게 선보이는 기획 전시회가 올해로 8회째를 맞았다. 금년의 기획 주제는 “칼로 새긴 사군자전”으로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서초구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기획전시관’에서 개최된다. 각자(刻字)란 목판이나 현판을 제작하기 위해 나무에 글자(혹은 그림)를 새기는 일을 말한다. 일부에서는 각서(刻書)나 서각(書刻)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刻字匠)’이라는 공식 명칭이 말해 주듯이, 이제는 각자(刻字)라는 용어로 통일해야 옳다. 각자를 하는 장인을 각자장 혹은 각수(刻手)라고 부른다. 1996년에 고 철재 오옥진(2014년 작고) 선생께서 초조(初祖)로 보유자 지정을 받았으며, 그 뒤를 이어 2013년 3월에 현 고원(故源) 김각한(金珏漢) 선생이 2대 보유자로 지정을 받아 국가 중요 전통 공예의 맥을 잇고 있다. 각자(刻字)는 오랜 연원의 우리 역사와 늘 함께 해 왔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바위나 동굴 등에 암각화나 벽화의 형태로 그 흔적을 남겼던 각자는, 불교와 유교의 이입 이후에 그들 철학을 전파하는 핵심 수단이 되어 전통 문화의 고갱이 반열에 올라섰던 것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비롯하여 광개토대왕비, 중원 고구려비,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지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 팔만대장경(국보 32호),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 등의 판각에로 나아간 우리의 전통 각자는, 우리 민족사에 이처럼 뚜렷이 지울 수 없는 족적을 각인하여 왔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현 ‘한국문화재재단’이 각자(刻字)를 비롯한 전통공예의 보급과 저변 확산을 목표로 1989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는 한국 전통공예 교육의 요람으로서, 모두 15개 전통 공예와 건축 분야에서 전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고원(故源) 김각한(金珏漢) 선생은 2004년부터 이 학교 각자전수반을 지도하며 후진을 양성해 오고 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각자전수반’에서 고원 선생의 지도하에 전통 각자 기예의 연찬에 노력한 졸업생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전수동문회>가 조직되었고, 지난 2008년부터 매해 동문 기획전을 열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군자란 곧 선비 정신의 정화(精華)인 것. 우리 문화사에는 사군자를 소재로 한 회화서부터 사군자의 정신을 노래한 서예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줄이어 왔다. 어몽룡, 강세황, 김정희, 김규진, 손재형, 김충현, 서희환 등 우리 문화사를 수놓은 고금의 예인들이 끼친, 이 숨결들을 재해석하여 나무에 아로새겨온 <각자전수동문>들의 고민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갑작스레 면모를 일신한 이즈음, 계절의 변전 못지않게 마음의 변화도 기다려진다. ‘칼로 새긴 사군자전’이 이런 관객들의 마음에 삽상한 쉼표를 찍어줄 것이다. 일별을 권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서동철 칼럼] 그들을 안달하게 만든 것이 방중 성과다

    [서동철 칼럼] 그들을 안달하게 만든 것이 방중 성과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여주 시내 한복판에 대로사(大老祠)라는 사당이 있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살아남았던 대로서원(大老書院)이 같이 있었던 만큼 규모는 제법 크다. ‘위대한 어르신’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대로’란 우암 송시열(1607~1689)을 가리킨다. 건물을 지어 주고 정조가 규장각 제학 김종수에게 현판을 쓰게 하여 내려보낸 것이 1785년이니 우암이 세상을 떠나고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뒤의 일이다. 정조가 여주에 우암의 사당을 지은 것은 효종의 무덤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세종의 무덤 영릉(英陵)과 나란히 있는 효종의 무덤 영릉(寧陵)은 가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에게 항복하는 치욕을 겪은 인조의 둘째아들 효종은 재위 기간 내내 청나라를 치는 이른바 북벌(北伐)을 부르짖었다. 우암은 그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대로사란 우암의 북벌대의론을 칭송하는 기념물이라고 할 수 있다. 노론의 영수 송시열이 살아생전 조정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우암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노론은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이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노론에게 죽임을 당하다시피 했음에도 현실 정치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대로사 건립은 앞으로도 노론과 함께 가겠다는 정치적 제스처나 다름없었다. 대로사가 우암을 기리는 사당이지만, 정조의 정치력을 보여 주는 상징물로 세상이 기억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우암의 북벌대의론은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구호에 불과했다는 인식도 적지는 않다. 하지만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조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대표적인 실학자의 한 사람인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다가 실소한 적도 있다. 우암의 유명무실한 북벌론에 반대해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배우자고 주창한 이른바 북학파의 대표 주자다. 하지만 배우러 떠난 길에도 청나라와 청나라 사람들을 한결같이 ‘오랑캐’로 서술하고 있었다. 우리 역사를 사대주의로 점철된 역사로 규정하는 것은 아베의 과거사 인식만큼이나 어이없다. 국어사전은 사대(事大)를 ‘주체성 없이 힘이 강한 자를 섬기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당시 청나라가 어떤 존재인가. 그럼에도 끝까지 복수설치(復讐雪恥)의 대상이었고, 백번 양보해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대상이었지 섬김의 대상이라고 생각한 조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우암의 존주대의(尊周大義)에도 이해가 필요하다. 존주대의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따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라를 따르겠다는 뜻이 아니라 사상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조선은 성리학을 명시적인 건국이념으로 내세운 세계 유일의 국가일 것이다. 존주대의란 가톨릭 국가의 구성원이 바티칸과 교황을 정신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일찍이 로마의 지배에서 허덕였고, 이후 오래도록 교회 권력의 영향권에 있었다. 존주대의의 핵심은 문화와 사상의 중심이었던 중화주의가 명나라를 끝으로 막을 내린 뒤 그 문화와 사상의 중심 역할을 조선이 물려받았다는 주체적인 인식이 아닐까 한다. 조선시대 지식인이 가졌던 의식의 흐름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사대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본 언론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사대주의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어쨌든 미안하지만, ‘이제야 우리 외교가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남북 분단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통수’에 걸린 채 사대를 강요당한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은 박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충분히 공감한다’는 메시지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조심스럽게 상황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외교적 수사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 조야(朝野)가 안달하는 것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박 대통령의 방중 성과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루브르 박물관의 만병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세계의 조형예술 龍으로 읽다] 루브르 박물관의 만병 /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조형언어에 대해 이제 말할 때가 됐다. 조형언어는 문자언어에 대응하는 용어다. 문자언어는 지역마다 다르나 최초의 문자는 대개 BC 3000~2000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에서 쓰기 시작했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 인간은 문자언어로 역사를 쓰고 문자언어로 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나라마다 문자언어가 다르므로 문자언어 소통에 문제가 많았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인류가 창조한 엄청난 조형예술품이 광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건축-회화-조각-도자공예-금속공예-복식 등 인류는 조형예술을 끊임없이 창조해 왔다. 조형언어로 쓴 것이 조형예술품이다. 그 ‘조형예술의 조형언어’를 해독하고 나니 조형성과 상징성을 지나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됐다. 미술사학 연구는 대체로 작품을 중심으로 한 역사적 접근이 대부분이었다. 작품 자체의 순수 조형언어를 해독한 지 10년째다. 필자는 이 연재에서 조형언어를 해독해 문자언어로 설명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 속에서 분투하고 있다. 조형언어란 말은 이미 학계에서 쓰고 있는데, 선·면·입체 등을 조형언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말하는 조형언어는 전혀 다르다. 인류는 40만년 전부터 조형예술을 창조해 왔는데 놀랍게도 처음부터 조형언어 문법의 엄격한 전개 원리에 따라 조형을 구성하고, 그 구성 요소인 제1영기싹, 제2영기싹, 제3영기싹, 보주 등으로 우주의 영원한 생명 생성의 깊은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모든 조형예술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의 세계 건축에서 이루어져 왔다. 그러한 조형예술을 지금 독자들과 함께 해독하며 조형성과 상징성을 밝혀 나가고 있다. 고등종교의 고차원 신앙과 사상을 파악하기를 강조한 것은 바로 조형언어로 신앙과 사상을 조형예술로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깊이 잠들어 있었고, 오랫동안 오해로 작품의 가치가 폄하돼 시련에 허덕이던 조형예술을 올바로 해독해 고귀한 자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인류 문화의 신기원을 여는 일이라 항상 새로운 기쁨과 흥분으로 매일 새로운 태양이 뜨는 듯하다. 이 작업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고, 인류의 역사를 새로 밝혀내는 작업이며, 새로운 미래의 창조 기틀을 마련하는 일이다. 인류의 문화가 새롭게 다시 씌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문자언어의 시대는 가고 조형언어의 시대가 오고 있다. 필자는 2000년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기 시작했다. 문자언어에 대한 절대적 신앙은 깨지고, 조형언어에 대한 절대적 신앙이 시작됐다. 문자언어는 조작이 가능하고, 거짓말로 쓸 수도 있으며, 사실을 왜곡해 고칠 수도 있지만 조형예술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조형언어를 해독함으로써 인류 문화의 지평이 무한대로 넓어진다. 인류는 국제적으로 공통의 조형언어를 지니어 왔음을 알게 됐으며 인류를 평등하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이 선다. 인류의 조형언어는 같으므로 각 나라에 맞게 조형언어를 번역할 필요가 없으므로, 배우기 쉬운 조형언어로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다. 조형예술에 관한 한 2000년은 신기원의 전후가 될 것이다. 용과 보주와 연꽃을 거쳐 마침내 만병(滿甁)을 만난다. 포항 보경사의 법당 불단에는 용의 입에서 연이은 제3영기싹이 양쪽으로 나오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용은 보주로 대치해 양쪽으로 연이은 제3영기싹 영기문이 생겨나는 것으로 단순화했다(①). 연꽃으로 알고 있는 그 바로 아래는 보주를 머금은 영기꽃 양쪽으로 역시 같은 영기문이 생겨나는 것을 보주로 단순화한 것이다(②). 결국 용과 보주와 연꽃(영기꽃)은 하나가 된다. 실제로 용의 입에서 만물이 나오는 조형을 모두 보여 주기는 어렵다. 보주도 마찬가지고 연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주와 닮게 만든 것이 만병이다. 보주는 구멍이 있으므로 입을 만들고 굽만 붙이면 항아리, 즉 만병이 된다. 만병은 보주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대생명력이 가득 찬 병이다. 이때 병이란 항아리나, 병이나, 정병이나, 승반이나 모든 그릇 형태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조형언어는 생명생성 상징성 나타내 용과 영기꽃에서 나오는 영기문을 보주로 대치해 단순화시켜 보았다. 그런데 좀 더 분명한 증거로 설득할 조형이 필요하다. 문득 서울 강남구 봉은사의 판전(板殿)을 떠올렸다. 대장경판이 봉안된 전각으로 추사 김정희가 71세 병중에 쓴 절필(絶筆) 현판이 있어서 유명하다. 사람들에게 판전 현판이란 걸작품은 보이나 그 양쪽으로 평방위에 만병이 각각 두 개가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기세 있게 잎으로 전개한 것을 선으로 간략화해 보니 보경사 것과 똑같다(③). 살인적으로 무더운 여름 그 만병을 촬영해 채색 분석하고 보니 이제 마음 놓고 만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가장 오랜 만병은 인도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얻는다. 즉 산스크리트어로 푸르나 가타, ‘가득 찬 병’이라 했을 뿐 무엇이 가득 차 있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우주의 대생명력, 혹은 영기, 혹은 그것을 가시화한 성스러운 물 등 여러 가지로 인식하도록 상징적·조형적 여유와 자유를 둔 것이다. 이 밖에 어느 나라에도 용어는 없다. 이름이 없으니 알아보지 못하고 동서양 모두 꽃병이라고 부른다. BC 2세기 산치 제2탑의 난간에 조각된 인도의 만병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④). ●만병은 우주 대생명력이 가득 찬 병 색이 한 가지인 사암에 조각했으므로 조형을 파악하기 어려우나 채색 분석하면 명료히 밝힐 수 있다. 즉 만병에서 활짝 핀 연꽃과 연봉과 연잎 등이 좌우대칭으로 전개하고, 중앙에 무량보주를 나타냈으며 중앙 맨 위에는 영기문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만병에서 화생하는 것은 현실에서 보는 것이 아니고 모두 보주를 발산하는 영기꽃과 관련 있다. 즉 만병에서 무량한 보주가 화생한다는 것을 BC 2세기부터 분명히 보여 준다. 같은 대탑의 다른 예를 보자(⑤). 만병에서 좌우대칭으로 영기꽃, 영기 봉오리, 연잎 등이 뻗어 나오고 있다. 만병 양쪽의 영조(靈鳥)는 만물을 상징한다. 실은 영수(靈獸)나 영조가 표현돼 있지 않더라도 만물이 화생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대인의 정신적 수준이 얼마나 고차원적인가. ●서양도 영기문 알았지만 명칭만 없어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만병을 보유하고 있는데 다양하기 짝이 없다. 같은 맥락에서 용의 입에서처럼 인도인이 창조한 만물 생성의 근원인 영수 마카라나 영화된 코끼리의 입에서 영기문이 생겨나는 예도 많다. 중국에도 만병이 많지만 중국화해 인도 것과는 다르다. 베이징 중심에 있는 명·청의 궁궐인 자금성 벽에 놀라운 모습의 거대한 만병이 있다(⑥). 부분을 확대해 보면 더이상 석류가 아니고 제1영기싹의 무수한 변주로 영기문을 전개시키고 있다. 씨방 안에는 보주가 가득 차 있다. 매우 절묘한 조형이라 감탄을 금할 수 없다(⑦). 중국에도 용어가 없으니 모두 꽃병에 석류를 가득 꽂아 놓았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씨방의 보주가 가득 찬 영기꽃이다. 만병에서 엄청난 보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인도의 만병과 맥을 같이한다. 그것을 단순화해 보았다(⑧). 만병에서 제3영기싹 영기문이 세 갈래로 뻗어 나가고 있으며, 각각 끝에 영기꽃이 있으나 그 밖의 만물이 화생할 수 있으므로 특정한 사물을 정할 필요가 없어 만물이라 적어 넣었다. 아름다운 곡선의 영기창에는 제3영기싹 영기문이 연이어져 있는데 이 영기창 안은 무한한 우주 공간을 보여 준다. 그 안의 만병은 우주에 충만한 영기를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도 고구려 무덤 벽화 이래 통일신라-고려-조선에 무수히 많지만 같은 맥락이어서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로마시대 그림 네 귀서 영기문 전개 그러면 서양에도 만병이 있을까. 6세기 로마시대의 것으로, 레바논의 성 크리스토퍼 대성당의 바닥 중심에 모자이크로 만들었던 510X410㎝ 크기의 거대한 만병이 있다(⑨).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전시하고 있다. 역시 이름이 없으니 꽃병이라 한다. 꽃병에서 영기문이 나오면서 만물이 화생하는데, 왜 이런 조형이 성립하고 있는지 루브르 박물관의 전공자들은 설명하지 못한다. 네 귀에는 만병이 있는데 각각 색을 달리해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을 내고 있는데 덩굴 모양으로 표현했으나 자세히 보면 작은 제1영기싹이 곳곳에 있으며 에너지의 파동이 있다. 서양인들도 영기문을 알고 있었지만 다만 명칭이 없었을 따름이다. 작품을 단순화하니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었는데, 중국 자금성 것과 원리가 똑같지 않은가(도 10). 주어진 공간과 중심을 향한 영기문 전개로 서로 만나지만, 제1영기싹 영기문이 끝나는 곳마다 온갖 영수와 영조와 인간이 영기 화생하는 장엄한 광경을 보여 준다. 중앙은 십자가, 즉 예수가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용의 입에서 나온 보주가 만병에 영기문을 내어 만물을 화생시키는 도상은 동서양이 똑같다. 우리는 이 중대한 진실을 수천 년 동안 알지 못했으므로 가장 근본적인 미술사학의 문제를 문제조차 삼을 수 없었다. 만병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은 용의 입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과 같다. 비록 서양에는 용의 입에서 보주가 나오는 도상은 없지만 동양 못지않은 갖가지 보주가 문명의 발상기부터 등장하며 무량보주도 창조하는 놀라운 조형도 있다. 만병은 용이다. 용의 입에서처럼 만병에서 만물이 화생하는 것은 동서양이 똑같다.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5]‘은진미륵’이라 불리는 관음보살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이야기 5]‘은진미륵’이라 불리는 관음보살

    충남 논산의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은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린다. 높이 18.2m의 고려시대 거대불상은 오래전부터 미륵으로 굳게 믿어졌다. 지금도 석불을 배례하는 전각에는 ‘미륵전’이라는 현판이 내걸려 있으니 장차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라는 확신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한가지 오해가 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이라면 오늘날 시각에서는 글자 그대로 문화적 유산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창건되거나 조성된 시기에도 문화적인 이유로 이뤄졌는지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표적인 조선시대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경복궁과 숭례문을 비롯한 궁궐과 한양성곽의 각종 구조물은 문화적 이유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은진미륵 또한 신앙의 대상으로만 조성된 것은 아니다. 고려 같은 불교국가에서 대형 불사(佛事)는 너무나도 당연히 정치 행위였다.  은진미륵은 그동안 존호를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았다. ‘미륵보살이냐 관음보살이냐’ 하는 논쟁이었다. 그런데 은진미륵은 미술사학자들이 잘 쓰는 표현대로 관음보살의 도상적 특징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갖추고 있다. 조성 당시 이마에 화불(化佛)이 새겨졌고, 손에는 연꽃가지를 들고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학계 일부가 미륵이라는 전칭(傳稱)에 미련을 두었던 것은 정치적 역학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때문으로 짐작한다.  은진미륵은 고려 광종 19년(968) 조성을 시작해 목종 9년(1006) 완성했다. 광종은 잘 알려진대로 과거제를 도입해 지방호족의 자제가 칼 대신 붓을 잡게 만든 인물이다. 그렇게 중앙집권국가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후백제와의 결전지였던 논산에 거대 석불을 조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과거 적국 및 변방의 주민들에게 조정의 위세를 보여주면서 관음보살의 권능처럼 현세의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일종의 약속을 담은 것이다.  그럼에도 미륵으로 믿어진 것은 왕실의 정치적 회유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왕실은 고통을 견디며 권력에 순응하라는 상징성을 담아 관음을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민초는 그 관음조차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혁명의 지도자로 믿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은진미륵이라는 존호는 무지에 따른 오류가 아니라 관음도 미륵으로 믿으며 의지하고 싶은 민초의 적극적 해석에 따른 의도적 오류라 할 수 있다. 논산 사람들과 은진미륵 뿐이겠는가. 오늘날에도 민초는 누구나 마음속에 은진미륵 하나씩을 품고 있다.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빈틈 없는 동대문 복지

    동대문구의 ‘보듬누리사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역 병·의원과 사설 보습학원, 중소상인 등이 참여하는 나눔사업이다. 어려운 지역 주민들은 의료비 감면과 학원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구는 민간 자본으로 과중한 복지비 등 어려운 재정 여건의 파고를 넘을 수 있어 좋다. 더구나 참여 병원들과 학원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모델로 부각됐다는 점에서 일석삼조의 사업이다. 동대문구는 저소득 주민들이 마음 편히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경희대병원, 성바오로병원 등과 협약을 체결했고 지역 보습학원 연합회와 삼육어학원 등과도 교육비 할인 협약을 맺는 등 동대문 보듬누리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경희대병원과 성바오로병원, 삼육서울병원 등에서는 지역 취약계층에 의료비를 10~40% 할인해 주고 전담창구를 지정하는 등 여러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삼육어학원과 동대문구 33개 학원에서는 수강료를 50% 할인해 주는 등 예산 사정으로 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돕고 있다. 구는 희망복지위원이 운영하는 가게 앞에 더나누리(희망나눔가게) 현판을 570여개 부착, 이들이 재능기부에 동참했음을 알리기로 했다. 이어 어린이집과 교회 등에 부착할 더나누리(참좋은 이웃) 현판도 이달 중 제작해 보듬누리사업 홍보에 적극 활용할 예정이다. 보듬누리 현판이 부착된 음식점 등에서 홀몸 어르신이나 저소득층에 추가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취약계층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자립을 돕는데 동대문구형 복지공동체 보듬누리사업이 한몫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민관 협력을 확대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데 더욱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동작, 줄잇는 기부천사

    동작, 줄잇는 기부천사

    동작구 흑석동에 일명 ‘1% 천사’들이 연이어 탄생,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구는 매월 가게 수익금의 1%를 기부하는 ‘1% 나눔운동 후원의 집’ 24호점으로 ‘우소아과’(병원)가 선정됐다고 3일 밝혔다. 지난 6월 9일 1호점 올리브밥 등 4곳으로 출발한 나눔가게가 두 달도 안 돼 20곳이 더 늘어난 것이다. 1% 나눔운동은 흑석동 주민들로 구성된 ‘흑석동 징검다리 복지협의체’를 중심으로 추진된다. 나눔운동 동참 가게는 징검다리 복지협의체와 나눔협약을 체결하고 간단한 현판식을 연다. 가게 앞에는 나눔의 집을 알리는 작은 현판이 부착된다. 이후 매월 수익금 1% 내외를 사전에 지정된 계좌로 입금하게 된다. 복지협의체는 이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매월 말 지정기탁한다. 이렇게 모인 금액은 흑석동 독거노인을 비롯한 위기 가정을 위해 사용된다. 기부내용은 동 주민센터 홈페이지, 소식지, 흑석동 블로그 등을 통해 공개되고, 참여업체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기부금 영수증이 발행된다. 흑석동 주민센터는 짧은 기간에 많은 가게가 동참함에 따라 애초 올해 목표인 30곳을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수익금 1% 이내라는 부담 없는 금액과 그 돈이 다시 흑석동의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 등이 호응을 이끌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참여 가게는 음식점이 13곳으로 가장 많다. 이외에도 떡집과 커피숍, 약국, 병원, 은행 등 다양한 곳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우리의 작은 나눔이 지역을 더욱 아름답고 살맛 나는 곳으로 바꾸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동작지역 곳곳에 사랑의 온기가 전해질 수 있도록 1% 나눔운동을 전폭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지역 어르신에게 삶의 즐거움을] 종로는 음식값 할인

    [지역 어르신에게 삶의 즐거움을] 종로는 음식값 할인

    지역 어르신들에게 음식값을 할인해주는 착한 음식점이 선을 보인다. 종로구는 다음달부터 노인 복지 증진을 위해 ‘효(孝) 사랑 실천 음식점’ 사업을 시범 운영한다고 20일 밝혔다. 지역의 70세 이상 노인에 대해 일부 음식값을 17%에서 절반까지 할인해주는 사업이다. 효 문화 확산과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실시된다. 현재 28곳의 음식점 선정이 완료된 상태다. 구는 지난달 한국외식업중앙회 종로구지회로부터 자발적인 참여 업소를 추천받았다. 오는 29일에는 구청에서 외식업회 종로구지회와 관련 업무 협약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협약식에서는 사업설명과 교육, 현판 전달식 등이 진행된다. 외식업회는 참여 대상업소를 추천하고 구는 음식점 현판 제작 및 안내문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구는 연말까지 사업을 시범 운영하며 점검키로 했다. 월별 운영 현황을 파악하는 등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반영해 내년에 지정업소를 확대 운영할 방침이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효 사랑 실천 음식점 운영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웃음꽃을 드리길 기대한다”며 지역민들의 많은 동참을 촉구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현장 행정] 동작은 맞춤형 복지 설계사

    [현장 행정] 동작은 맞춤형 복지 설계사

    “건강도 체크하고 복지 프로그램도 알려드리려 들렀습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30일 복지플래너 및 방문간호사와 함께 일일 어르신 복지플래너로서 대방동에 사는 이모(65·여)씨를 찾았다. 어르신 복지플래너는 구 안의 모든 65세를 방문해 건강을 체크하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 구청장은 소독제로 손을 닦는 것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우선 정주희 간호사는 혈압, 혈당을 쟀고, 치매 검사를 했다. 이 구청장은 약간 높게 나온 혈압을 보며 건강을 물었다. 주민 이씨는 “3년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했고, 뇌졸중 전조 증상을 겪은 바 있다”고 말했다. 정 간호사는 사전 전화 상담을 통해 미리 준비한 요오드를 제한하는 식이요법 등 자료를 건넸다. 김현자 복지플래너는 기초연금, 노인 교통카드, 주민센터 프로그램 등에 대해 소개했다. 여가 활동을 위한 자원봉사나 주민센터 프로그램도 알렸다. 주택 보수가 필요한지, 상·하수도 문제 등 구청에 건의할 점이 있는지 꼼꼼히 물었다. 이씨는 “집에서 건강과 복지프로그램에 대해 모두 알 수 있으니 편해서 좋다”고 전했다. 사실 어르신 복지플래너는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사업 중 하나다. 주민들이 찾아와 증명서를 떼고 각종 복지 상담을 하던 것과 달리 공무원과 간호사가 복지 및 맞춤형 건강서비스가 필요한 주민을 찾아간다. 구는 이날 대방동 주민센터에서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 현판식을 열었다. 올해 상도1동과 대방동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전 동으로 확대한다. 어르신 복지플래너는 65세, 66세, 70세인 노인을 찾아간다. 65세는 공무원과 마을간호사가 자택을 찾고, 66세는 건강검진 결과를 상담해주며, 70세는 마을간호사가 방문한다. 우리아이 복지플래너는 방문간호사와 사회복지사가 임신 20주부터 출산 후 4주 이내 임산부와 만 2세가 되는 출생 아기를 방문해 건강관리와 보육 상담을 해 준다. 기준이 되면 출산지원금, 양육수당, 바우처 등을 받을 수 있다. 이외 빈곤위기가정 복지플래너가 숨은 취약계층을 발굴하고 우리동네 주무관이 마을을 순찰하며 복지, 안전, 보건 등 생활 전반을 살피게 된다. 동 주민센터에는 신규 복지인력 14명이 충원됐다. 이 구청장은 “어르신 복지플래너를 해보면서 반겨주는 주민들을 보니 꼭 필요한 사업임을 알았다”면서 “다만, 질문 방법의 향상 등 향후 현장점검을 통해 미비점을 보완해 가겠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어서 들어오시게, 내려놓을 것이 있다지?

    어서 들어오시게, 내려놓을 것이 있다지?

    ‘한섬지 천리길’(로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이하 관리공단)이 조성한 걷기 길이다. 한려해상, 섬진강, 지리산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표현이다. 말 그대로 산과 강, 바다를 잇고, 영남과 호남을 씨줄날줄로 엮는다. 그 길이가 얼추 1000리를 훌쩍 넘는다. ‘한섬지 천리길’을 조성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지역 경제 발전, 둘은 국립공원 탐방객 분산 유도다. 한 해 국립공원을 찾는 탐방객 4700만명 거의 전부가 정상 정복을 노리는 수직탐방형이라고 한다. 이를 평탄한 길을 도는 수평탐방형으로 분산시키겠다는 것이다. ‘한섬지 천리길’ 가운데 경남 남해의 바래길과 전남 구례의 지리산 둘레길 일부 구간을 돌아봤다. ‘한섬지 천리길’은 지리산 국립공원과 섬진강, 그리고 한려해상 국립공원을 이어 주는 길이다. 새로 만든 길이 아니라 있던 길을 재정비해 조성했다. 관리공단 산하 5개 국립공원사무소와 지자체, 사회단체가 연계해 운영한다. 길은 크게 세 코스로 나뉜다. 지리산 둘레길이 중심이 된 지리산길, 섬진강을 따라 걷는 섬진강길, 그리고 남해 바래길과 이순신 바닷길, 바다백리길 등 남해안 일대에 조성된 길을 이은 한려해상길이다. 현재 조성된 구간은 42개로, 총 52개 구간 조성이 목표다. 거리는 450㎞쯤 된다. 지리산 국립공원 코스가 270㎞로 가장 길고, 경남 남해와 통영 일부를 포함한 한려해상 국립공원 코스가 130㎞, 섬진강 구간이 50㎞ 정도 된다. 개별적으로 ‘한섬지 천리길’을 돌아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이다. 프로그램은 10월까지 8회에 걸쳐 운영된다. 지역 예술인의 문화공연, 가이드 해설 등 다양한 이벤트가 곁들여진다. 이번 여정에선 남해바래길 2코스인 앵강다숲길과 지리산 둘레길 화엄사~운조루 구간 중 일부를 걸었다. 앵강다숲길의 들머리는 남해 가천의 다랭이마을(명승 제15호)이다. 논 갈던 소가 한눈팔면 곧바로 바다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가파른 설흘산 자락 위에 고만고만한 논들이 층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길은 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해 바닷가를 따라 원천마을까지 14.6㎞ 구간에 펼쳐져 있다. 한데 아직 주변 산길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걷는 데 어려움이 많다. 가급적 구간 정비가 완전히 끝난 뒤 찾거나, 다랭이마을 주변만 돌아보는 게 좋겠다. 구례 화엄사~운조루 구간의 들머리는 ‘지리산에 깃든 꽃’ 화엄사다. 544년 인도 승려 연기가 세운 이후 여러 차례 중창을 거쳐 현재 이른다고 ‘사적기’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절집 대부분의 가람 배치가 대웅전 중심인 것에 견줘 화엄사는 각황전(국보 제67호)이 중심이다. 그 탓에 ‘국보급’의 규모와 건축미를 가진 대웅전이 ‘여러 전각 중의 하나’로 저평가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면 보제루다. 단청이 없는 소박한 건물이다. 무엇보다 외벽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 이채롭다. 하나같이 이리 휘고 저리 굽었다. 리듬에 맞춰 춤이라도 추는 듯하다. 기둥은 키가 작다.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탐방객들이 건물 옆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기둥을 높이고 아래 공간을 개방해 대웅전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여느 절집의 보제루와 사뭇 다르다. 이는 절집의 내밀한 공간을 가벼이 드러내지 않고, 중심 영역인 각황전과 대웅전, 그리고 석탑들이 펼쳐 내는 장엄한 경관을 보다 극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건축적 배려라고 한다. 어느 선인이 이 같은 심모원려의 한 수를 펼쳐 놓았는지 알 길은 없으나, 그의 의중이 적중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보제루를 끼고 돌면 너른 마당이다. 뒤로는 지리산이 너른 품을 벌려 대가람을 감싸고 있다. 마당에는 두 개의 탑이 서 있다. 동쪽 탑 너머는 대웅전이, 서쪽 탑 위쪽엔 각황전이 그림처럼 앉아 있다. 각황전은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물 가운데 최대 규모다. 정면에 매달린 ‘각황전’ 현판은 1702년 중건 당시 숙종이 이름을 지어 하사했다. 건물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안겨 준다. 거대한 규모에서 우러나는 장중함으로 먼저 객을 압도한 뒤, 목조건물 특유의 소박하고 단아한 자태로 객의 놀란 가슴을 어루만진다. 밖에서 보기에는 2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툭 트여 있는 통층 구조다. 이런 양식의 사찰 건물은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 부여 무량사 극락전, 공주 마곡사 대웅전 등 몇 개에 불과할 정도로 귀하다고 한다. 각황전 앞에는 국보 제12호로 지정된 석등이 있다. 높이 6m가 넘는 거대한 석등이다. 각황전 위쪽의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은 수리 중이어서 볼 수 없다. 화엄사를 나와 상사마을을 향해 걷다 보면 ‘쌍산재’란 현판을 내건 솟을대문과 만난다. 대문이라고는 하나 권문세가의 그것처럼 크고 고압적이지는 않다. 늘씬하면서도 단아하다. 멋을 아는 고졸한 선비가 세웠을 법한 자태다. 쌍산재는 현 해주 오씨 주인장의 6대조 할아버지가 처음 터를 잡은 뒤, 보수와 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른 고택이다. 햇수로는 200년쯤 됐다. 고조부 때 서당채인 쌍산재가 세워진 이후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됐다. 1만 6500㎡(약 5000평) 남짓한 터에 살림채와 별채, 서당채 등 부속 건물, 대숲, 잔디밭 등이 들어서 있다. 쌍산재 대문 오른쪽엔 당몰샘이란 우물이 있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샘으로, ‘지리산 산삼 썩은 물’이라고도 불린다. 가뭄에도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며,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당몰샘에서 물 한 모금 들이켠 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 보고, 오른쪽에 건너채가 있다. 안채 한편에 있는 뒤주는 이웃에 대한 배려의 흔적이다. 지금은 그리 쓸모가 없지만 예전엔 이웃들이 춘궁기 때 필요한 만큼 곡식을 꺼내 가고, 가을에 수확해 가져간 만큼 되돌려 놓는 식량 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물론 이자는 넣지 않았다. 쌍산재 최고의 볼거리는 집터 가장 높은 곳에 숨어 있는 서당채다. 가는 길부터 운치가 남다르다. 안채와 별채 사이의 돌계단을 지나는데, 대숲과 동백숲이 우거져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다. 동백숲 짙은 그늘을 빠져나오면 빛의 세상이다. 오솔길 좌우의 텃밭과 잔디밭이 파란 하늘과 조화롭게 어울렸다. 가정문(嘉貞門)이란 중문을 지나면 놀라움은 찬탄으로 바뀐다. 동백나무가 정돈된 좁은 길 끝에서 서당채가 정갈한 자태로 객을 맞고 있다. 한때 서당으로 쓰였던 건물인데 널찍한 대청마루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대청마루 위에는 쌍산재라 쓰인 현판이 선명하다. 서당채 오른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밖으로 난 작은 문을 나서면 사도지라 불리는 저수지와 만난다. 맑은 날엔 물빛이 푸른 비취빛으로 빛난다고 한다. 저수지로 난 문의 이름도 그래서 영벽문(映碧門)이다. 팁 하나. 구례까지 간 김에 노고단(1507m)도 빼놓지 말고 돌아보자. 천왕봉(1915m)·반야봉(1734m)과 함께 지리산 3대봉으로 꼽히는 곳이다. 구례에서 뱀사골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정상인 성삼재(1090m)에서 1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7~8월이면 원추리 등이 만개해 천상정원을 이룬다. 글 사진 구례·남해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관리공단은 한섬지 산, 바다 문화주간을 7~8월 중 운영한다. 산은 지리산 달궁야영장, 바다는 거제 학동야영장에서 열린다. 기타 한섬지 프로그램은 홈페이지 참조(www.knps.or.kr). ‘한섬지 천리길’을 총괄 운영하는 곳은 지리산 국립공원 남부사무소다. (061)780-7700. →잘 곳: 관리공단에서 지리산 생태탐방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연수원에서 운영하는 생태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에만 숙박할 수 있다. 가격도 4인실 5만~6만원 선으로 저렴한 편이다. 화엄사 초입에 있다. 연수원 운영관리부 (061)780-8700. 쌍산재도 모든 건물이 숙소로 꾸며져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다. 개별 화장실과 샤워 시설도 갖췄다. 홈페이지(www.ssangsanje.com) 참조. (061)782-5179, 010-3635-7115.
  • 해외여행 | 일본 속의 또 다른 왕국 오키나와

    해외여행 | 일본 속의 또 다른 왕국 오키나와

    일본이지만 일본 사람들도 가고 싶어하는 휴양지 오키나와. 드라마에 비춰지고 책에서 들여다본 오키나와는 그저 바다와 모래 빛이 아름다운 휴양지지만 그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살펴보면 그저 찬란하게 빛나기만 하는 섬이 아니다. 오키나와의 속살은 일본이 아니야 오키나와沖繩는 한때 류큐왕국琉球王国이라 불렸다. 말 그대로 왕국이다. 일본 최남단에 위치해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와의 교역이 편리한 지리적 조건 덕분에 450년간 독립된 국가로 자리를 지켜 왔다. 각 나라로부터 새로운 문물을 가져와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류큐왕국은 일본의 지속적인 침략으로 결국 강제로 통합1879년되었고 현재의 오키나와로 존재한다. 일본에 통합됐지만 일본이라 할 수 없었던 오키나와의 아픔은 태평양전쟁1945년을 거치며 더 확실해졌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에 군 사령부를 둔 일본군은 집중적으로 미군의 공격을 받았고, 당시 12만명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사망했다. 수많은 류큐왕국의 문물은 물론 거리도 집도 성도 모두 잿더미가 됐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총 사령부가 있었던 곳은 오키나와의 슈리성首里城 지하. 슈리성은 류큐왕국의 전성기 시대 왕궁으로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 기록은 없지만 류큐왕국의 1대 왕조의 혈통인 쇼 하시오의 왕족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중국과 동남아, 일본은 물론 한국까지 이어지던 무역의 중심지로 귀한 물건은 모두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하지만 슈리성 역시 전쟁을 피하지는 못했다. 지하에 주둔했던 일본군 총사령부로 인해 미국의 폭격을 받은 슈리성은 한순간에 사라져 흔적만 남게 됐다. 전쟁이 끝난 후 슈리성은 꾸준히 복원됐고 1992년, 일부를 관광객에게 개방했다. 류큐왕국 시절의 중국과 일본의 건축기술이 섞여 있으며 태평양전쟁의 가슴 아픈 기록이 남아 있는 슈리성은 2000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슈리성으로 향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슈레이문守禮門이다. 중국풍의 아치 모양인 슈레이문 위에는 ‘슈레지방守禮之邦’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는데 ‘예절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라는 의미다. 슈레이문을 지나면 나오는 칸카이문歡會門은 슈리성의 정문으로 다른 문에 비해 입구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슈레이성에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사신이라도 예의상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라는 의미였다고. 슈리성 안쪽의 봉신문을 지나면 일반적인 일본 전통 건축물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을 볼 수 있다. 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정전을 중심으로 좌측이 북전, 우측이 남전인데 특히 북전은 과거 평정소라고 불렸던 중요한 기관이었다. 류큐왕국은 새로운 국왕이 취임하면 중국에서 책봉사라 불리는 황제의 사절이 국왕의 취임을 인정하곤 했는데, 그때 파견됐던 책봉사를 환대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전시장과 매점,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류큐왕국이 사라진 지도 130여 년. 하지만 여전히 오키나와에서는 ‘류큐’라는 이름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버스 회사의 명칭이나 상점의 이름 등 여전히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류큐는 친숙하고 뗄 수 없는 존재다. 슈리성공원 1 Chome-2 Shurikinjocho Naha, Okinawa Prefecture, Japan 903-0815 휴관일 | 매년 7월 첫째 주 수·목요일 성인 820엔, 고등학생 620엔 초·중학생 310엔 +81 098 886 2020 oki-park.jp/shurijo 류큐문화에 어깨춤이 들썩 오키나와에서 전통적인 류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오키나와월드おきなわワールド다. 오키나와에 있는 최대 테마파크로 류큐왕국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민속마을이 자리해 있고, 공방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오키나와월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교쿠센도다. 100만개 이상의 종유석으로 이뤄진 천연 동굴로, 오키나와가 미국의 통치를 받던 시기1967년에 최초로 발견돼 세상에 알려졌다. 총 길이가 5km에 달하지만 관광객이 볼 수 있는 구역은 890m. 인공적인 요소를 최대한 자제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동굴 속에는 여전히 물이 떨어지고,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다. 아직도 종유석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고. 30분 정도 교쿠센도를 돌아보고 나오면 바로 열대과일농원으로 이어진다. 과일농원을 지나야 본격적으로 민속마을이 펼쳐지는데 마을 곳곳에는 전통 찻집부터 류큐왕국 시대의 옷을 입고 촬영할 수 있는 사진관, 유리공예나 염색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에이사 광장에서 펼쳐지는 ‘슈퍼에이사공연’은 절로 어깨춤이 들썩일 정도로 흥겹다. 오키나와 전통 공연인 에이사는 매년 음력 7월15일에 조상이 내려온다고 생각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조상을 기리기 위해 시작했다. 오키나와에서는 매년 이 시기에 맞춰 에이사축제도 개최하지만 굳이 축제가 아니더라도 오키나와 곳곳에서 에이사공연을 볼 수 있다. 일본 전통의 현악기와 타악기 소리에 맞춰 젊은 무용단들의 춤사위가 이어지고, 오키나와의 상징인 시사의 탈을 쓴 공연단이 시사춤도 곁들인다. 오키나와월드의 에이사공연은 오전 10시30분, 12시30분, 오후 2시30분, 4시에 진행된다. 오키나와월드 1336, Tamagusuku Maekawa, Nanjo-city, Okinawa Prefecture 901-0616 9:00~18:00(입장은 17:00까지) 프리패스 성인 1,650엔, 어린이 830엔(교큐센도 입장권은 따로 구매) +81 098 949 7421 www.gyokusendo.co.jp/okinawaworld 흑조가 만든 바다의 꽃들을 한곳에서 오키나와에는 흑조黒潮라고 불리는 난류가 흐른다. 이를 쿠로시오해류라고 하는데 물색이 검푸른 색이어서 ‘흑조’라 불린다. 이 따뜻한 바닷물 덕분에 오키나와 주변에는 수많은 종류의 산호와 바다생물이 존재한다. 오키나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인 오키나와 추라우미 수족관沖縄美ら海水族館에서는 이 흑조를 그대로 끌어와 수족관을 만들었다. 오키나와 바다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을 직접 보고 만져 볼 수도 있다. 4층 건물로 이뤄진 추라우미 수족관은 일본 최대 규모다. 4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며 내부를 돌아보는 코스인데 1층을 나오면 건물 건너편에 돌고래 공연을 볼 수 있는 오키짱 극장도 갖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수조는 3층의 ‘산호초로의 여행’이다. 오키나와 바다에서 자생하는 70여 종의 산호를 둘러볼 수 있고 입구에는 불가사리, 해삼 같은 바다 생물들을 직접 만질 수 있는 터치풀도 자리했다. 이어지는 열대어 바다 수조에는 200종류나 되는 열대어가 헤엄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눈이 가는 곳은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흑조의 바다’. 깊이 10m, 폭 35m, 길이 27m의 대형 수조는 추라우미 수족관의 자랑이다. 수조에는 고래상어 3마리와 70여 종의 바다 생물 1만6,000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몸길이가 15m 내외인 고래상어는 몸무게가 최대 40톤에 달한다. 현재는 멸종위기 상태라고. 흑조의 바다 뒤쪽으로는 오키나와 바다에 사는 생물들을 HDTV로 볼 수 있는 추라우미 씨어터가 있으며 왼쪽으로는 상어 관련 전시물은 물론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상어박사의 방도 있다. 추라우미 수족관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30분 정도 남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이름의 유래가 재밌는 만좌모万座毛가 나온다. 류큐왕국 시절, 쇼케이왕이 고향에 가기 전 잠시 들렀던 곳으로 왕이 “만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잔디 초원이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 나오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는데 그중에서도 융기한 해안의 부분이 마치 코끼리 얼굴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코끼리 바위가 인기다. 만좌모 앞 바다에는 부부암이라 불리는 바위도 있다. 이 바위는 바다쪽에 있는 바위가 남편바위, 육지쪽에 있는 바위가 아내바위인데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돌아오라는 뜻에서 부인이 새끼줄로 남편을 당기는 모양이라고. 오키나와 추라우미 수족관 424 Ishikawa, Motobu, Kunigami District, Okinawa Prefecture 905-0206 8:30~18:30(10~2월) 8:30~20:00(3~9월) 휴관일 | 12월 첫째 주 수요일과 그 다음날 성인 1,850엔 학생 1,230엔(초·중생 610엔) +81 0980 48 3748 oki-churaumi.jp 번화하면서도 차분한 국제거리 오키나와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나하에서도 국제거리国際通り는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태평양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를 오키나와 사람들의 힘으로 빠르게 성장시켜 ‘기적의 1마일’이라고도 불린다. 예전에는 1.6km 정도의 메인 거리에 술집, 영화관, 클럽 등이 발달했지만 지금은 술집이나 클럽보다는 오키나와 특산품을 살 수 있는 쇼핑센터부터 레스토랑, 옷가게 등 다양한 상점이 들어서 있다. 평일에도 낮에는 일반 차량을 통제하고 버스전용 차선만 이용할 수 있다. 주말에는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 모든 차량을 완전히 통제한다. 통제된 도로에서는 하루에 몇 번씩 에이사공연과 젊은 학생들의 창작공연 등이 펼쳐지며 아이들과 관광객이 함께 도로 위에 앉아 그림을 그리거나 비누방울을 부는 등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 국제거리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전통 재래시장과 아기자기한 공방이 모여 있는 도자기거리가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재래시장을 빠져나오면 도자기 공방이 늘어선 쓰보야 야치문 거리가 나오는데 약 300년 전부터 류큐왕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도자기 공방들이 모여 터전을 잡았던 곳이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메인 거리보다 한적해 한결 느긋하게 공방들을 둘러볼 수 있다. 국제거리 대부분의 상점은 10:00 이후 오픈 +81 098 863 2755 kokusaidori.jp 쓰보야 야치문 거리 메인거리인 국제거리에서 남쪽에 위치한 평화거리를 지나면 한적한 도자기 거리인 쓰보야 야치문 거리가 나온다. ▶travel info AIRLINE 서울-오키나와 노선을 운항하는 항공편이 다양해져 저렴하고 쉽게 오키나와를 오갈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부터 저비용항공사인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항공까지 인천-오키나와 노선을 운항한다. 인천에서 오키나와 나하 국제공항까지 2시간 30분 소요. Food 오키나와 특산품 소금과 흑설탕이 유명한 오키나와. 오키나와 소금은 다른 지역 소금에 비해 미네랄이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오키나와의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블루씰Blue Seal 아이스크림에는 오키나와 소금 쿠키Okinawa Salt cookies 맛이 있을 정도. 소금을 첨가한 주전부리에 소금박물관도 있다. 천연 흑설탕으로 만든 과자도 인기 만점이다. Theme park 미하마 아메리칸 빌리지Mihama American Village 오키나와 차탄의 아메리칸 빌리지는 일본도 미국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테마파크다. 미군이 많이 거주하는 차탄지역에 생긴 쇼핑 단지로 그들이 즐겨 찾는 상점들이 모여 있는 것이 특징. 구제옷 전문점부터 생활 잡화점, 볼링장, 영화관 등 먹고 놀고 살 수 있는 것은 다 갖췄다. 일본 음식이 아닌 서구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장점. 대 관람차를 타며 야경을 즐기는 것도 좋다. Symbol 오키나와의 상징, 시사Shisa 사자의 모양을 한 시사는 액운을 물리친다는 오키나와의 상상 속의 동물. 일반적으로 도자기로 구워 지붕 위에 올려 놨다고 하는데 입 모양에 따라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한다.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은 수컷, 다문 것은 암컷이라고. 지붕 위뿐만 아니라 길 옆 조각물, 작은 액세서리 등 오키나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Tour 케이브 카페Cave Cafe & 간가라 투어Gangala Tour 오키나와월드 건너편에 위치한 케이브 카페는 이름처럼 동굴 속에 만들어진 카페다. 종유석이 무너지고 솟아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동굴 안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수로 내린 커피와 오키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케이브 카페 | 아메리카노 350엔, 아이스크림 싱글 330엔, 더블 530엔 동굴을 지나면 수백 그루의 가쥬마루 나무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예약을 해야만 갈 수 있는 간가라 계곡 투어를 할 수 있다. 자연이 만든 우거진 숲길을 걷는 힐링투어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약 1시간 20분 소요되는 투어는 일본어로만 진행되고 예약은 전화로만 가능하다. 한국어 음성안내와 책자를 제공한다. 간가라 투어 | 성인 2,200엔, 학생(15세 미만) 1,700엔 출발시각 10:00 12:00 14:00 16:00(1일 4회) Maekawa Tamagusuku Nanjo-shi, Okinawa-ken 901-1400 9:00~18:00 +81 98 948 4192 Beer 오리온맥주Orion Beer 별 세 개가 그려진 것이 특징인 ‘오키나와산 맥주’. 오리온맥주 공장은 오키나와 북부 나고Nago에 위치해 있는데 맥주의 공정 과정을 직접 볼 수 있고 시원한 맥주를 시음할 수도 있다. 가장 대중적인 오리온 드래프트Orion Draft부터 스페셜XSpecial X, 제로라이프Zero Life 등 시즌별 한정판 맥주도 출시된다. 글·사진 양이슬 기자 취재협조 오키나와관광컨벤션뷰로 kr.visitokinawa.jp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95세 할머니 평생 모은 재산 팔아 삼육대에 장학금 총 10억원 기부

    95세 할머니 평생 모은 재산 팔아 삼육대에 장학금 총 10억원 기부

    90대 여성이 평생 모은 재산을 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삼육대는 이종순(95)씨가 최근 현금 9억원을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학교에 기부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씨는 2012년에도 삼육대에 1억원을 기부한 적이 있어 총 10억원을 기부한 셈이다. 이씨는 삼육대와 같은 재단에 속해 있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어릴 적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못 나왔던 이씨는 평생 장학사업에 뜻을 두고 재산을 모았다. 화장품과 군복 등을 팔아 돈을 모은 이씨는 10여년 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오피스텔 건물을 사 임대사업을 시작했고 최근 이를 처분해 장학금을 마련했다. 삼육대는 이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교내 보건복지교육관을 ‘이종순 기념홀’로 명명하고 지난 23일 현판식을 가졌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주민들에게 활짝 열리는 경로당] 어르신·주민 1~3세대 함께 어울려요

    서울 서대문구는 21일 북가좌동 삼호아파트 경로당에서 제1호 ‘개방형 경로당’ 현판식을 갖는다고 19일 밝혔다. ‘서울시 경로당 시책’ 사업의 하나다. 경로당을 드나드는 어르신뿐 아니라 지역 주민에게 경로당 공간을 개방해 1~3세대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1~3세대가 함께 특화 프로그램에 참여해 소통하고 화합하자는 취지로 추진됐다. 구는 지난 3월 삼호아파트 경로당을 개방형 시설로 지정했다. 지난달부터 2층을 개방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한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했다. 현판식 이후에는 제막, 시설라운딩, 간담회 등이 이어진다. 매주 목요일 오후 2~4시 친환경비누 만들기, 건강체조, 요리, 목공예 등 특화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문석진 구청장은 “개방형 경로당은 지역 주민과 어르신들이 윈윈하는 사업”이라며 “사업이 조기에 안착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세월호 후속조치 총괄 추진본부 발족

    신속한 세월호 선체 인양과 세월호 사고 희생자 배·보상 등을 전담할 ‘세월호 사고 후속조치 추진본부’가 발족됐다. 해양수산부는 12일 선체 인양이 확정됨에 따라 그동안 개별적으로 운영돼 왔던 세월호 관련 부서들을 통합해 김영석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세월호 사고 후속조치 총괄 추진본부(이하 추진본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추진본부 산하에는 세월호 선체 인양 태스크포스(TF)를 확대, 개편한 ‘세월호 선체 인양 추진단’과 희생자 및 피해자들의 체계적인 배·보상을 진행할 ‘배상 및 보상지원단’을 뒀다. 세월호 선체인양 추진단은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유기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현판식을 갖고 공식 활동에 착수한다. 15일에는 전남 진도 서망항에 현장사무소(진도해양교통시설사무소)를 열고 지난해 11월 철수했던 인력들을 재배치, 현장 업무도 지원할 예정이다. 김 차관은 진도 사고해역도 방문해 선체 인양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를 구할 계획이다. 세월호 희생자 3명의 유족에 대한 배·보상액도 이날 처음 확정된다. 해수부는 다음주쯤 인양업체 선정 입찰 공고를 내고 7월 초 업체를 선정해 9월 중 해상작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신라호텔 ‘국내 최초 5성급 호텔’

    신라호텔 ‘국내 최초 5성급 호텔’

    7일 서울 중구 서울신라호텔에서 열린 국내 최초의 5성급 호텔 현판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한인규 호텔신라 부사장,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호 한국관광공사 사장직무대행, 유용종 한국관광호텔업협회장. 서울신라호텔은 지난 3월 전문가 3명이 참여한 현장 평가에 이어 전문가 1명과 소비자 평가요원 1명이 각각 시행한 암행평가를 모두 통과해 첫 5성급 호텔이 됐다. 호텔 등급 제도는 기존 무궁화 등급 제도에서 국제적 관례에 맞는 별 등급 제도로 올해부터 변경됐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 호텔신라 국내 최초 ‘5성 호텔’ 선정

    호텔신라(사장 이부진)가 별 등급표시제 시행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5성(星) 호텔에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28일 “호텔신라가 지난 3월 중 전문가 3인이 참여한 현장 평가에 이어 전문가 1인 및 소비자 평가요원 1인이 각각 실시한 암행평가를 모두 통과함에 따라 대한민국 최초의 5성 호텔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관광호텔 최고 등급인 5성 등급은 현장평가 700점, 암행평가 300점 등 1000점 배점의 90% 이상을 획득하면 주어진다. 전국의 관광호텔 중 호텔 등급심사를 받아야 하는 호텔은 총 760개(2015년 2월 말 기준, 제주특별자치도 제외)이며, 현재까지 신등급(별) 평가신청을 한 호텔은 50개에 달한다. 지난 40여년간 호텔 등급 표지로 사용됐던 ‘무궁화’ 문양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함에 따라 지난해 말 외국인 관광객이 알아보기 쉽도록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별’ 문양으로 대체됐다. 호텔신라의 최초 5성 호텔 현판식은 오는 7일 오전 10시에 호텔신라에서 열린다. 이번 현판식에는 새로운 별 등급표지 현판이 부착될 예정으로, 이는 관광호텔 등급을 별로 표시하는 국제적 관례에 따른 것이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돌강이 흐른다…세월을 빚는다

    돌강이 흐른다…세월을 빚는다

    비슬산(琵瑟山, 1084m)은 흔히 ‘대구의 어머니 산’이라 불린다. 대구를 상징하는 팔공산에 빗댄 표현이지 싶다. 산정에는 옹골찬 바위들이 시립해 있고, 비탈을 따라서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암석들이 널려 있다. 말잔등 같은 능선 위엔 참꽃(진달래) 군락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부드럽게 팔을 뻗은 지맥들은 대구의 들녘과 굽이치는 낙동강을 깊게 껴안는다. 그 위로 석탑 한 기가 다소 힘겨운 듯한 자태로 서 있다. 대견사지 삼층석탑이다. 어렵사리 세월의 강을 건너오느라 외모는 다소 남루해졌지만, 꼿꼿한 기상만은 잃지 않은 듯하다. 비슬산은 4월이 되면 늘 산꾼들의 머릿속을 맴돈다. ‘참꽃’ 때문이다. 해마다 봄이면 정상 아래 너른 고위평탄면에 참꽃이 만든 연분홍 세계가 펼쳐진다. 이 모습 보려고 산꾼들이 그야말로 장사진을 친다. 하지만 비슬산이 산꾼을 불러 모으는 이유는 이뿐 아니다. 세월의 흔적 켜켜이 쌓인 암석들이 펼쳐 낸 ‘장사진’도 꽃 못지 않게 볼 만하다. 비슬산을 ‘암석 전시장’이라 부르는 건 이 때문이다. ●산비탈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듯… 비슬산은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다. 비슬산 휴양림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암괴류(岩塊流, 천연기념물 제435호)가, 왼쪽으로는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암괴류는 둥글거나 각진 바위덩어리들이 산비탈이나 골짜기를 따라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일컫는다. 바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어 ‘돌강’ 또는 ‘바위강’이라 부른다. 비슬산 암괴류는 해발 약 1000m의 산정에 터를 잡은 대견사 인근부터 시작된다. 여러 개의 암괴류가 각기 다른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다가 해발 750m 지점에서 합류해 450m 지점까지 이어지는데 길이 약 2㎞, 최대 폭 80여m에 달한다. 세계 최대 규모다. 기이한 형태의 암석들을 병풍처럼 두른 대견사는 개창 연대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연스님이 고려 고종 4년(1227) 22세 때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한 뒤 초임 주지로 22년간 주석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사찰이기도 하다. 대견사는 일제강점기 때 폐사됐었다. 경내 일곱 건축물의 가람배치(칠당가람, 七堂伽藍)가 일본의 대마도를 바라보는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산정에 높이 앉은 대견사가 째려보는 탓에 일본인의 기가 꺾인다는 것이다. 이후 흔적으로만 남았던 ‘대견사지’ 위에 현재의 대견사가 중창된 건 지난해 3월 1일이었다. 일제에 항거해 만세운동을 벌였던 3·1절에 산문을 열어 강제 폐사의 수모를 씻겠다는 뜻이 담겼다. ●100여년 만에 복원된 신라시대 대견사 절집 앞은 절벽이다. 이 깎아지른 암봉 위로 석탑 한 기가 서 있다. 신라시대 세워진 대견사지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42호)이다. 수차례의 전란과 강제 폐사에 이어 지난 2009년 낙뢰를 맞아 탑 일부가 훼손되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옛 모습를 잃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탑 주변은 그야말로 암석 전시장이다. 앞으로는 암괴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특이한 형상을 한 ‘토르(tor)’도 곧잘 눈에 띈다. 토르는 부분 침식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잘한 물질은 제거되고 특이한 형태의 모습만 남게 된 대형 화강암이다. 석탑 주변의 거북바위, 부처바위, 형제바위, 스님바위 등이 토르다. 특히 톱(칼)바위는 토르이면서도 비슬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너덜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대견사 위에서부터 비슬산 정상 아래까지는 고위평탄면이 펼쳐져 있다. 봄이면 참꽃이 무리 지어 피어 방문객을 경탄케 하는 곳이다. 해마다 4월 하순께 절정을 이루는데, 올해는 18일부터 참꽃 축제가 열린다. ●문익점 후손들이 절터에 일군 인흥마을 비슬산의 지맥이 안온하게 감싼 땅 화원읍에 남평 문씨 세거지지인 인흥마을이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인흥사 절터 자리에 일군 마을이다. 인흥사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전해지는 절집이다. 마을에 들면 날아갈 듯한 처마의 한옥들과 세월의 흔적이 더께로 쌓여 있는 돌담길,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이 단박에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 주는 살림집과 재사, 문고 등이 돌담을 경계로 빼곡하게 들어찼다. 대부분의 집들은 문이 잠겼다.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을 이겨 만든 돌담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한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관광객을 위해 문을 연 집은 종가인 죽헌종택과 수백당이다. 특히 노송과 어우러진 수백당의 정취는 정말 일품이다. 주로 손님을 맞거나 일족의 모임 장소로 이용됐던 곳으로, ‘우물 정’(井)자 형태의 우물과 대나무로 경계를 이룬 뒷간 등이 옛 건물과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 터를 잡은 광거당(廣居堂)에도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 등 볼거리가 많지만 아쉽게도 자물쇠로 굳게 잠겨져 있다. ●천리마 한 쌍의 전설 깃든 마비정 벽화마을 인흥마을에서 산자락을 거슬러 오르면 마비정(馬飛亭) 벽화마을이다. ‘비무’와 ‘백희’ 등 천리마 암수 한 쌍의 애달픈 전설이 깃든 마을이다. 대도시 대구에 속해 있지만, 대중교통이라곤 하루 8번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고작일 정도로 도심 속 오지로 꼽히기도 한다. 마을에 들면 토담을 따라 그려진 벽화들이 외지인을 맞는다. 쟁기질하는 황소, 난로 위에 도시락을 빼곡하게 올려놓은 옛 교실 풍경 등 향수를 자극하는 벽화들이다. 200년 된 초가집과 동네 할머니들이 음료수와 과자 등을 파는 이른바 ‘점방’도 시선을 끈다. 화원읍 낙동강 변의 사문진나루터는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장소다. 마비정 벽화마을에서 15분 남짓한 거리다. 안내판은 1900년 3월 대구에 온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 부부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를 배편으로 사문진나루터까지 싣고 온 뒤 대구 시내 사택으로 옮겼다고 적고 있다. 당시 피아노 소리를 처음 들은 지역 주민들은 빈 나무통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신기하게 여겨 ‘귀신통’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를 기념해 ‘귀신통 납시오’란 조형물과 피아노 장승 등도 세웠다. 사문진나루터는 1932년 나운규 주연의 ‘임자 없는 나룻배’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3대 명화’로 꼽히는 ‘임자 없는 나룻배’는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정신과 리얼리즘이 결합된 우리 영화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기념하는 조각상이 나루터 초입에 세워져 있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3) →가는 길 : 비슬산 대견사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나들목으로 나가 현풍·비슬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된다. 인흥마을, 마비정 마을 등을 먼저 보겠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인 화원·옥포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낫다. 직선거리로는 남대구나들목이 가깝지만 대구 시내를 관통해야 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비슬산 휴양림에서 대견사까지는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오른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입구까지 5.8㎞를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편도 30분으로 길다. 급경사와 급커브가 반복되는 산길이라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요금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이상 편도)이다. 비슬산 자연휴양림 614-5481. 휴양림에서 걸어서 대견사까지 오르는 건 편도 1시간 30분 이상 소요된다. 대견사 뒤편의 능선에 진달래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는 이달 말부터는 교통 체증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맛집 : 달성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현풍면의 곰탕이다. 현풍면 성하리 인근에 원조 현풍할매집곰탕(614-2031) 등 곰탕집들이 몰려 있다. 화원읍 천내리의 교동면옥(634-9222)은 진주식 냉면을 내는 맛집이다. 대구 시내 쪽에선 안지랑 곱창골목이 유명하다. 푸짐한 돼지곱창구이를 내는 집들이 길 양쪽으로 40여곳이나 늘어서 있다. 이곳의 가게들은 재료를 공동으로 구매한다. 구입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 덕에 매콤한 양념의 돼지곱창 한 바가지를 불과 1만원 안팎에 맛볼 수 있다. 북성로 철물 공구 골목은 밤이면 포장마차촌으로 변한다. 얇게 저민 돼지고기를 연탄에 구워 먹는 불고기집들이 많다. →잘 곳 : 달성 쪽에선 비슬산자연휴양림을 추천할 만하다. 다양한 형태의 숙소가 진달래 핀 산자락 속에 조성돼 있다. 가창면 삼산리, 성서공단 등에 모텔들이 있지만 낡거나 유흥가와 인접해 만족도는 떨어질 수 있다. 가족단위 여행객이라면 대구 시내에서 숙소를 찾는 게 낫다. 호텔인터불고 대구, 노보텔앰배서더 대구 등 특급호텔을 비롯해 엘디스리젠트호텔, 호텔대구, 대구그랜드호텔, 프린스 호텔 등 수준급 숙소가 있다.
  • 모교 국민대 ‘남윤철 강의실’ 만든다

    모교 국민대 ‘남윤철 강의실’ 만든다

    세월호 참사 당시 마지막까지 제자들의 생명을 구하다가 세상을 떠난 남윤철(당시 35) 경기 안산 단원고 교사의 희생 정신을 기리기 위해 모교인 국민대에 ‘남윤철 강의실’이 생긴다. 국민대는 6일 서울 성북구 북악캠퍼스 북악관 건물 708호 강의실을 ‘남윤철 강의실’로 지정하고 8일 명명식을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명명식에는 고인의 부모를 비롯해 학교 관계자 및 학생 대표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남 교사는 국민대 영어영문학과 98학번이며 708호 강의실은 대학 졸업 전 마지막으로 전공강의를 듣던 강의실이다. 강의실 벽면에는 ‘불의의 선박 사고 속에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교사로서의 사명과 제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신 고 남윤철 선생님(2005년·영어영문학과 졸업)의 고귀한 뜻을 여기에 새겨 기리고자 합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현판이 걸린다. 앞서 지난 2월 남윤철 장학금을 신설한 국민대는 강의실 명명식 때 장학금 수여식도 함께 열어 학생 1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장학금 대상자는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생계가 곤란한 교직과정 이수 중인 학부 재학생으로, 한 학기 등록금이 지급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벚꽃만 담기엔 아쉽더라

    벚꽃만 담기엔 아쉽더라

    옛 진해(경남 창원)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역사가 100년을 헤아린다. 여기엔 까닭이 있다. 진해는 1908년 창원부에 통합된 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때 이름도 웅천현에서 진해로 바뀌었다. 진해우체국, 일제 해군병원장 관사 등 현재 진해의 명소로 꼽히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이때 세워진 것들이다. 벚나무는 다소 다르다. 일제가 도시를 만들 때 심은 왕벚은 광복 뒤 대부분 베어졌다. 그러다 왕벚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게 밝혀지면서 1976년부터 다시 심기 시작했다. 현재 수량은 대략 39만 그루에 이른다. 4월의 창원은 단연 벚꽃이 ‘갑’이다. 한데 꽃놀이도 좋지만, 벚꽃 아래 잠든 근대사도 살펴 보는 건 어떨까. 진해 구도심의 ‘팔거리’는 ‘과거로 난 창’이다. 잔디가 심어진 원형의 공간을 중심으로 찻길 여덟 개가 방사형으로 뻗어 나간다. 현지에선 흔히 ‘중원로터리’라고 부른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로터리가 위(북원로터리)와 아래(남원로터리)에 하나씩 더 있다. 자세히 보면 ‘팔거리’는 일본 군기인 욱일기(旭日旗)를 닮았다. 태양 주위로 16개의 햇살이 퍼지는 문양이 일반적이지만, 8개나 12개 등으로 그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일제가 이 일대를 인위적으로 조성했다는 설이 생겼다. 여기에 여좌천이 덧대지며 설은 사실처럼 굳어진다. 여좌천은 곧다. 일직선이다. 원래 이리 굽고 저리 휘며 흘러가던 것을 일제가 다림질하듯 쫙 펴놨다. 이게 깃대다. 여좌천과 팔거리를 합치면 깃대 끝자락에서 욱일기가 휘날리는 모습이 완성된다. 팔거리 뒤편의 제황산 진해탑에 올라 보면 이 설이 상당히 그럴싸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진해탑이 있는 제황산 공원은 풍경 전망대다. ‘1년 계단’으로 부르는 365개의 계단이나,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내린다. 편도 2000원. 진해탑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설은 설을 낳는다. 1952년, 북원로터리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졌다. 주민들은 이 충무공 동상을 통해 일제의 기운을 누르겠다는 뜻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남원로터리에 세워진 김구 선생의 친필 시비도 이와 비슷하다. 이 모두가 ‘소설’이 아니라면, 우리는 여태 일제와 치열하게 격돌하고 있는 셈이다. 팔거리 일대엔 근대문화유산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른바 ‘뾰족집’이라고 불리는 중국풍의 팔각누각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지어졌다. 이 누각의 건너편에는 1956년 문을 연 중국집 ‘원해루’가 있다. 화교 1세대가 운영하는 집이다. 대만의 장제스 총통이 다녀갔고, 영화 ‘장군의 아들’의 촬영장소로 쓰였을 만큼 명소다. 원해루에서 여좌천 방향으로 두 블록 위에는 1955년 문을 연 ‘흑백다방’이 있다. 지금은 다방 영업은 하지 않고, 연주회 등을 여는 ‘문화공간’으로 변했다. 로터리 건너편엔 진해우체국이 남아 있다. 1912년 세워져 2000년까지 우편 업무를 취급하던 러시아식 건물이다. 같은 해에 지어진 일제 해군병원장 관사(현 선학곰탕)와 일제 장옥(長屋·나가야)거리 등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옛 마산 쪽에선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을 가볼 만하다. 성호동 달동네의 452m 골목길을 벽화로 다듬었다. 좁디좁은 골목이지만 어디서나 마산항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오션 뷰’다. 벽화마을 아래엔 옛 임항선(臨港線) 철길이 남아 있다. 진해구 소사동으로 넘어가면 시인 김달진의 생가와 문학관을 만난다. 생가 뒤편은 ‘김씨박물관’이다. ‘고물 수집가’를 자처하는 김현철(61)씨가 사비를 털어 조성한 공간이다. 이 골목, 참 희한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1960, 70년대 언저리로 되돌아간 듯한 풍경이다. 골목에 들면 ‘예술사진관’ ‘부산 라듸오’ 등 옛 간판을 내건 낡은 건물이 이방인의 시선을 붙든다. ‘예술사진관’엔 빛 바랜 사진들과 고물 카메라 등이, ‘부산 라듸오’에는 옛 라디오들이 진열돼 있다.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구식 영화포스터가 나붙은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김씨박물관’이다.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다소 옹색한 규모지만, 일제강점기 이후 생산된 온갖 ‘고물’들이 어지러이 전시돼 있다. 골목 건너는 ‘꽁트’라는 이름의 커피숍이다. 옛 가수들의 낡은 레코드판을 보며 쉬어가기 맞춤하다. 집 뜨락에는 옛 만화방도 있다. 창원해양공원은 창원의 새 랜드마크로 떠오르는 곳이다. 작은 섬 음지도에 연륙교를 놓고, 테마파크로 조성했다. 소박한 명동포구와 바벨탑처럼 치솟은 136m짜리 솔라타워가 SF영화 같은 풍경을 펼쳐낸다. 솔라타워에 오르면 사방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전망대 바닥 일부엔 투명유리를 깔아 모골이 송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바닷속 생태계를 전시한 해양생물테마파크, 퇴역함(강원함)을 활용한 군함전시관 등 주변 볼거리도 쏠쏠하다. 해양공원 뒤는 우도다. 보행자 전용 보도교를 통해 해양공원과 연결돼 있다. 바다 위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우도는 작다. 30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해양공원 옆 동섬은 초등학교 축구장만 한 크기의 무인도다. 썰물 때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진해 군항제는 10일까지 옛 진해 곳곳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동안 여좌천과 안민고개, 중원로터리 등 벚꽃 명소에서 차량 전면통제와 부분 통제가 반복된다. 홈페이지(gunhang.changwon.go.kr)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야 낭패를 피할 수 있다. 군항제 기간엔 진해해군기지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 등이 문을 활짝 연다. 누구라도 들어가 아름드리 벚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방문지 목록 가장 윗줄에 올려 두길 권한다. 글 사진 창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자면 중부내륙고속도로 내서분기점까지 간 뒤, 남해고속도로 제1지선으로 갈아타고 서마산 나들목으로 나와 진해 방면으로 좌회전, 어린교 오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해 2번 국도를 타고 가면 진해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동마산 나들목으로 나와도 된다. KTX는 창원역, 창원중앙역, 마산역에서 각각 선다. →맛집 :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길 하나 사이로 ‘아귀찜거리’와 복 요리집들이 늘어선 ‘복거리’가 조성돼 있다. 아귀찜은 1960년대 오동동에서 갯장어식당을 하던 ‘혹부리할머니’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옛날우정아구찜(223-3740), 오동동진짜초가집원조아구찜(246-0427), 마산아구찜(222-8916) 등이 이름났다. 복거리엔 전문 복요리집만 20개 정도 몰려 있다. 남성식당(246-1856), 고성복집(221-5848), 광포복집(242-3308) 등이 알려졌다. 애주가라면 ‘통술거리’를 찾아도 좋겠다. 통술은 싱싱하고 푸짐한 각종 해물 안주가 한 상 통째 나오는 술상을 말한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맛있는 안주들이 계속 나온다. 안주와 맥주 3병이 기본. 업소마다 다르지만 보통 4만원쯤 받는다. 1970년대엔 오동동과 합성동 골목이 주류였지만 지금은 신마산 쪽에 통술거리가 생겨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수림(223-1569), 강림식당(245-2710), 석민통술(243-5155) 등이 알려졌다. 남성동 수협 어판장 일대엔 장어거리가 조성돼 있다. 운치 있는 마산항 야경은 보너스다. 장어국수도 별미다. 마산장어구이(242-0992), 신포장어(221-3630), 합포장어구이(224-5206) 등이 이름났다. 부림시장 먹자골목은 6.25떡볶이, 비빔당면 등을 저렴한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창동사거리 인근에 있다. 콩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진해콩’은 100년을 이어온 과자다. 진해가 막 조성되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벚꽃빵은 벚꽃 진액을 섞어 만든 빵이다. 한 입 베어 물면 희미한 벚꽃 향이 입 안에 맴돈다. →잘 곳 : 호텔 사보이(247-4455)는 한국관광공사의 호텔 체인인 베니키아 가맹점이다. 가족들이 묵어도 좋을 만큼 깔끔하고 저렴하다. 7만~10만원 선. 팔용산 가기 전 마산 수출자유지역공단 근처에 있다. 온천욕을 겸하고 싶다면 마금산 근처 북면온천 단지를 찾으면 된다. 다만 관광지가 몰린 마산합포구 등과 떨어져 있어 오가는 데 시간이 적잖이 소요될 수 있다. 시내에선 돝섬유람선터미널 주변에 깔끔한 모텔이 많다.
  • 고령군 ‘대가야읍’ 선포식

    고령군 ‘대가야읍’ 선포식

    2일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읍사무소 앞에서 열린 대가야읍 선포식에 참석한 곽용환 고령군수 등이 현판 제막식을 하고 있다. 군은 1600년 전 대가야국 도읍지로서의 역사성을 브랜드화해 지역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고령읍의 행정구역 명칭을 대가야읍으로 변경하고 이날 선포식을 했다. 경북 고령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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