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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활근로자 기 살리는 착한 편의점

    서울 원효로 용산전자상가에 지역의 자활근로자들이 일하는 ‘우리동네 편의점’이 문을 열었다. 27일 용산구에 따르면 올해 기업연계형 자활근로사업 중 하나로 GS리테일이 보증금, 임대료, 인테리어비 등을 지원한다. 앞서 지난 23일 편의점 우측 모퉁이에서 ‘GS25 내일스토어’ 현판 제막식이 열렸다. 이종만 용산지역자활센터장, 김재호 GS리테일 상생협력팀 부장 등이 참석했다. 내일스토어는 GS리테일이 운영하는 사회공헌형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되며 자활근로자 6명이 2교대로 근무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여주시, 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시험장 문연다

    여주시, 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시험장 문연다

    경기 여주시 수상센터가 오는 28일 조종면허시험장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조종면허 실기시험과 수상안전교육을 대행하게 된다. 여주도시관리공단에서는 지난해 12월 해양경찰청장으로부터 최종 ‘동력수상레저기구 조종면허시험 대행기관 및 수상안전교육 위탁기관’으로 지정 받았다. 조종면허는 1급, 2급, 요트면허로 종별이 나눠지고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에 통과하면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최종 면허가 발급된다. 그간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일반조종면허시험을 보기위한 응시자들이 서울과 가평에 있는 시험장을 찾아 응시인원 대비 조종면허시험장이 부족한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수도권 남부에 위치한 여주의 조종면허시험장은 많은 수상레저인들에게 환영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시 관계자는 “조종면허시험장이 남한강의 수려한 경관과 풍부한 물을 이용해 매년 증가하는 수상레저스포츠 수요에 부응함으로써 여주시가 수상레저의 메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략적 요충지 강릉에서… ‘김씨 왕국’ 원대한 꿈 품었을까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인천공항에서 서울과 평창을 거쳐 강릉을 잇는 경강선 고속철도가 개통됐다. 대관령국도에 의존하던 강릉과 영서(嶺西)의 교통은 앞서 1975년 왕복 2차로의 영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새로운 차원에 접어들었다. 이후 대관령고개를 넘는 대신 여러 개의 터널로 이은 4차로 확장공사가 2001년 마무리되면서 영동고속도로는 훨씬 편안해졌다.이제 서울역에서 KTX 열차에 올라 1시간 40분이면 강릉이다. 하지만 지하터널로 백두대간을 지나는 경강선을 타면 결정적인 여행의 재미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대관령 고개 너머에 펼쳐진 강릉시내와 동해바다의 장관이 그것이다. 대관령에서 강릉을 바라보면 산과 바다가 제법 멀리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영동지방에서는 드물게 토지는 넓고 비옥하다. 강릉 도심의 서쪽은 태백산맥의 준령이 가로막고 북쪽은 야트막한 산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겨울바람을 차단한다. 그 남쪽으로는 남대천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조선시대 강릉도호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길지(吉地)다. 그러니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발굴조사에서는 심곡리와 홍제동, 옥계면 현내리와 주수리 등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초당동을 비롯한 신석기시대 유적은 헤아리기 어렵다.강릉은 예(濊)의 옛 땅이었다. 이때부터 하슬라((河瑟羅)라는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곳에서 빈번히 맞부딪친다. 고구려에는 남쪽에 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이었고, 신라에도 북방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일 수밖에 없었다. 하슬라가 신라의 영역에 완전히 편입된 것은 진흥왕(재위 540~576) 시대라고 한다. 이후 하서소경(河西小京)과 명주(溟州)로 잇따라 이름과 지위가 바뀐다. 하서는 하슬라의 한자식 표기다. 고려시대에는 1263년(원종 4년) 강릉도, 1308년(충렬왕 34)에는 강릉부, 1389년(공양왕 1) 강릉대도호부로 변화를 겪는다. 오늘날에도 흔히 쓰이는 임영(臨瀛)은 공양왕이 붙인 강릉의 별호(別號)다. 대도호부 체제는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강릉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해변 휴양도시로 완전히 거듭나고 있다. 강릉은 태백산맥과 동해바다, 경포호만으로도 아름다움의 극치다. 여기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역사가 남겨 놓은 다양한 전통문화, 이 도시의 새롭고도 특별한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커피 문화’는 여행자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오늘은 강릉이 가진 흥미로운 역사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은 김유정과 김주원 부자(父子)다. 태종무열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모두 생몰 연대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통일신라가 하대로 접어드는 8세기 중·후반을 살았다. 김유정이라면 낯설어도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얽힌 설화라면 익숙한 분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남대천 월화정 설화’를 가장 자세히 적어 놓은 글은 ‘홍길동전’을 지은 강릉 출신 고산 허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라고 한다. 김무월랑은 강릉에 머무는 동안 연화부인과 사귀었다. 그런데 무월랑은 경주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연화부인은 편지를 써서 연못에 던졌는데 잉어가 물고 갔다고 한다. 어느 날 경주의 무월랑 집에서는 잉어를 시장에서 사 왔는데 배 속에 연화부인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결혼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고려사’ 악지(樂誌)에 나오는 ‘명주가’(溟州歌)의 배경설화이기도 하다. 강릉 남대천 남쪽의 바위 언덕 위에는 월화정(月花亭)이 있다. 무월랑과 연화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 지은 정자다. 1933년 강릉대도호부의 객사인 임영관의 부재를 가져다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의 월화정은 1936년 대홍수 때 남대천이 범람해 휩쓸려 간 것을 2003년 복원한 것이다. 연화부인의 집이 이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연화정은 남대천을 사이에 두고 강릉중앙시장과 마주 보고 있다. 중앙시장은 이제 강릉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명소가 됐다.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옛 동해북부선 다리는 최근 인도교로, 철로를 걷어낸 시장 골목은 ‘월화거리’로 새 단장했다. 김유정과 연화부인의 혼인은 중앙귀족과 상당한 세력을 가진 지방호족의 결합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아들이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이다. ‘삼국사기’를 비롯해 통일신라를 다룬 각종 사서(史書)에는 그의 이름이 예외 없이 등장한다. 선덕왕이 785년 후사(後嗣) 없이 죽자 군신(群臣)은 김주원을 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김주원이 때마침 홍수로 알천(閼川)이 범람해 건너지 못하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며 상대등 김경신을 추대했으니 곧 원성왕이다.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김주원은 명주로 낙향했는데, 원성왕은 786년 그를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했다. 식읍(食邑)은 강릉은 물론 오늘날의 통천·양양·삼척·울진·평해에 이르렀다고 한다.강릉 성산면 보광리 대관령 중턱에는 명주군왕 김주원의 무덤이 있다. 다만 당초의 무덤인지는 확실치 않은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무덤은 조선 명종 때 강릉 부사와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후손 김첨경이 복원한 것이다. 이름처럼 왕릉을 방불케 한다. 군왕이라는 호칭은 좀 낯설다. 원성왕은 당나라로부터 선덕왕의 ‘검교태위 계림주자사 영해군사 신라왕’(檢校太尉 鷄林州刺史 寧海軍使 新羅王)의 작위를 물려받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를 두고 비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른 원성왕이 스스로 황제국의 제후라는 것을 내보여 대외적 입지를 강화하면서 국내적으로는 특정 지역 세력을 군왕에 봉하는 일종의 봉작제(封爵制)로 황제적 지위를 행사하려 했다는 학계의 시각도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김종기는 김주원의 아들인데 작위를 물려받아 왕이 됐다. 김정여는 김종기의 아들인데 처음 조정에 벼슬해 상대등에 이르렀고, 명원공에 책봉됐다. 김양은 정여의 아들인데 김명의 난(亂) 때 신문왕을 도와 사직을 안정시켰고 명원군왕에 추봉됐다’는 대목이 보인다. 김주원 말고도 아들 김종기와 증손 김양이 군왕에 오른 것이다. 김주원 집안이 신라왕의 책봉을 받는 군왕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독립적인 국가를 추구했다는 연구도 있다. 김주원은 당나라의 수도를 모방해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의 수도를 정했는데, 오늘날 남대천 북쪽의 장안동이 그 흔적이라는 것이다. 당나라의 장안은 고유명사이면서 동시에 천자(天子)의 국도(國都)를 통칭하는 일반명사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김주원의 꿈은 원성왕의 그것보다도 컸다. 명주군왕묘는 강릉시가 제작한 관광지도에도 소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무덤 입구의 숭의재(崇義齋)는 김주원을 기리는 사당이다. 정문에는 삼왕문(三王門)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세 사람의 군왕, 곧 김주원, 김종기, 김양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겠다. 무덤 일대를 돌아본 전체적 인상은 이렇다. 강릉 김씨 종중의 기념물이라는 시각을 덜어내고 객관적 역사를 부각시키면 훨씬 더 진정성 있는 문화유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서울포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합동감시 및 지원상황실 개소식

    [서울포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합동감시 및 지원상황실 개소식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5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합동감시 및 지원상황실 개소식에 참석해 심보균 차관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현판 제막을 하고 박수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금산→전주 침범 왜군 두 차례 격전… ‘곡창 ’ 호남 지킨 관군ㆍ의병들

    큰 대(大) 자에 이길 첩(捷) 자, 대첩이란 곧 크게 이긴 싸움을 이른다. 흔히 임진왜란의 3대첩이라면 1592년 8월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대첩과 같은 해 10월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그리고 이듬해 2월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을 들곤 한다. 꺼져 가던 목숨을 가까스로 이어 가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4일 발발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가 지휘하는 왜군 1만 8700명을 태운 배는 전날 밤 이미 부산진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 왜군은 이튿날 안개가 걷히자 상륙해 부산진성을 포위했고 첨사 정발이 이끄는 500명 남짓 조선군은 전원이 장렬히 전사한다. 이후 왜군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양도성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한다.북변 방비에서 용맹을 떨치던 신립 장군이 갑작스럽게 삼도순변사에 임명된 이후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처참한 패배를 당한 것이 그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은 4월 28일이다. 탄금대 패전 소식이 알려지자 조정은 우왕좌왕했고, 결국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로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이치 승리로 권율 전라도 순찰사 올라 행주대첩 한편으로 왜군은 곡창 호남으로 진출하려 안간힘을 썼는데 당연히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함이었다. 왜군이 장악한 부산진-한양 라인에서 호남으로 가는 방법은 수군(水軍)이 해로를 장악하거나, 보군(步軍)이 진주를 공략해 서진(西進)하거나, 지금은 충청도 땅이 된 전라도 금산에서 이치(梨峙)를 넘어 전주로 가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왜 수군은 5월 7일 옥포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의 조선 수군에 대패해 기세가 꺾였고, 보군은 곽재우, 김면, 정인홍 등이 이끄는 경상도 의병에 가로막혀 쉽사리 서쪽을 넘보지 못했다. 결국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이끄는 1만 병력으로 하여금 이치를 공략하게 했다. 배치재라고도 하는 이치는 오늘날 충청남도 금산군과 전라북도 완주군의 경계에 해당한다. 해발 340m의 고갯마루에 서면 완주 쪽으로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수려한 대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골짜기에 배나무가 많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광주목사 권율은 7월 8일 1500명 남짓한 군사를 지휘해 험준한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복병전으로 왜군을 격퇴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관군(官軍)이 거둔 첫 번째 대승이었다. 권율은 이치의 승리로 전라도 순찰사에 올랐고, 같은 직함으로 이듬해 행주대첩의 명장이 된다. 권율의 휘하에는 화순 동복현감 황진도 있었다. 세종시대 명재상 황희의 5대손이라고 한다. 황진 역시 이치 승리로 익산군수 겸 충청도 조방장에 올랐다. 이듬해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승진한 그는 경기도 죽산 전투 이후 패퇴하는 적을 경상도 상주까지 추격해 연전연승하기도 했다. 그는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을 막아내다 머리에 조총을 맞고 전사했다. ‘선조실록’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왜장(倭將)이 또 대군(大軍)을 출동시켜 이치를 침범하자 권율이 황진을 독려해 동복현의 군사를 거느리고 부장 위대기·공시억 등과 재를 점거해 크게 싸웠다. 적이 낭떠러지를 타고 기어오르자 황진이 나무를 의지해 총탄을 막으며 활을 쏘았는데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종일토록 교전해 적병을 대파하였는데, 시체가 쌓이고 피가 흘러 초목(草木)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황진이 탄환에 맞아 조금 사기가 저하되자 권율이 장수들을 독려했기에 이길 수 있었다. 왜적은 조선의 3대 전투를 일컬을 때 이치 전투를 첫째로 쳤다’●부친 순국 소식에 장ㆍ차남 참전 나섰다 모두 전사 당시 왜군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도 의병에게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이치 전투 당시 권율 장군의 휘하에도 적지 않은 의병이 가세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전라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킨 고경명은 7월 3일 관군과 합동으로 금산성을 공격하다 순국한다. 옥천의 조헌은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8월 18일 금산성을 공격했지만 모두 순절하고 만다. 금산의 칠백의총(七百義塚)은 이들의 무덤이다. 전라도 익산 유생 이보와 소행진은 금산에서 들려온 조헌 의병의 순절 소식에 400명 남짓한 의병을 규합한다. 이들은 금산으로 향하다 8월 27일 이치에서 왜군과 맞닥뜨렸다. 400명의 무명 의병은 급조한 활, 낫과 쇠스랑 같은 농기구를 들고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순국했다. 소행진의 큰아들 소계는 아버지 장사를 마치자 금산으로 달려갔고, 작은아들 소동도 형의 순국 소식에 금산으로 달려가 전사했다. 소동의 부인 민씨는 강화 친정에서 남편 소식을 듣고 자결했다.●권율 대첩비 1940년 왜경이 파괴… 1964년 재건 이치에 가려면 대전통영고속도로는 금산, 호남고속도로는 논산이나 전주를 경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치 전투라는 하나의 역사를 기리건만 유적은 ‘금산 이치대첩지’와 ‘완주 이치전적지’로 나뉘어 있다. 이치대첩지는 충남 기념물 154호로, 이치전적지는 전북 기념물 26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금산이 1963년 충남에 편입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굳어졌다. 완주 전적지는 이치 정상에 있다. 길가에 ‘이치전적지’라 새긴 비석이 있고, 그 안쪽으로 ‘무민공(武愍公) 황진장군 이현(梨峴)대첩비’가 보인다. 이치전적지 비석은 1993년, 이현대첩비는 2006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대첩비 뒤편에 숨어 있는 ‘이치대첩유허비’(遺墟碑)에서는 그래도 세월의 흔적이 조금은 느껴진다. 전적지 옆에는 휴게소가 있다. 탐방객은 휴게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게 마련인데, 전적지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휴게소와 주차장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으로 행정구역이 갈린다. 이곳에서 금산쪽으로 1.5㎞쯤 달리면 대첩지가 나타난다. ‘이치대첩문’이라는 한글 현판이 걸려 있는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권율 장군을 기리는 충장사와 대첩비각이 보인다. ‘도원수권공이치대첩비’(都元帥權公梨峙大捷碑)는 당초 금곡사(金谷祠)와 함께 1902년 건립됐다. 하지만 1940년 일본 경찰이 비석과 사당을 모두 파괴했고, 지금의 비석은 1964년 다시 세운 것이다.●무명 의병 희생 외면하다 2016년 ‘반성 비석 ’ 세워 이치전적지와 이치대첩지는 행정구역뿐 아니라 기리는 주체도 갈려 있다. 전적지는 황진의 기념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대첩지는 완벽하게 권율 중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념물이 승리한 관군의 역사만 기억할 뿐 무명 의병의 희생은 외면하고 있다는 반성도 뒤따랐다. 2016년 전적지에 400명의 무명 의병을 기리는 작은 비석이 세워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름하여 ‘임란순국무명사백의병비’다. 이런 글귀도 보인다. ‘관군의 주력부대가 승리를 거둔 7월 전투는 세상에 자세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병이 주도한 8월 전투는 제대로 기억되지 못한 채 묻혀지고 있다. 그것이 아쉬워 이 비를 세워 바로 알리고자 한다.’ 글ㆍ사진 dcsuh@seoul.co.kr
  • 인문교육특구 안양시, 379억원 들여 6개 특화사업 본격 추진.

    인문교육특구 안양시, 379억원 들여 6개 특화사업 본격 추진.

    인문교육특구 경기 안양시는 선포식을 갖고 인문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특화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2일 밝혔다.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는 안양시를 전국 최초의 인문교육특구로 지정했다. 지역특화발전특구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특화사업계획을 자체 수립하고, 중앙정부가 선택적인 규제특례를 적용해 특화사업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다. 특구로 지정된 시는 앞으로 5년간 379억원을 들여 6개 특화사업, 13개 세부사업에 나선다. 특화사업은 시민 인문교육 인프라·콘텐츠 확충, 청소년·시민참여형 인문교육 운영, 인문교육 선도기반 조성, 글로벌 인문교육 강화 등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특구 위치와 면적은 동안구 관양동 1590번지 등 147필지로 143만 5242㎡ 다. 시는 이번 특구 지정으로 5건의 특례를 적용받고, 1114억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와 440명의 고용유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사업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시는 운영 중인 인문교육 인프라와 콘텐츠에 깊이를 더하고 다양화해 기반을 조성할 계획이다. 어린이, 청소년, 성인 등 계층에 맞는 인문교육 프로그램도 발굴·운영한다. 더불어 인문 소양과 전문 지식을 갖춘 복합형 인문리더를 양성하고, 안양이 국제인문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해외 교류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인구 감소와 기업 이전 등으로 도시 성장이 둔화한 안양시는 위기에 대처하고자 물리적 인프라 대신 사람에 대한 투자에 집중해 왔다. 이를 위해 인문도시를 목표로 설정하고 인문도시축제, 인문학 콘서트, 가족 인문캠프, 안양 국제청소년영화제 등 600여개의 인문 프로그램을 개최했다. 또 공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안양시 고유 교육브랜드 ‘안양 희망창조학교’를 운영하고, 학부모의 역량을 강화하는 학부모 아카데미, 청소년 진로체험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 지원 사업에 투자했다. 쾌적한 환경에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시설에 대한 투자도 병행했다. 툭구 선포식은 지난 1일 시청에서 개최됐다. 인문교육특구 주요사업 설명회와 ‘남에게서 배우는 행복의 인문학’을 주제로 특강이 열렸다. 시청 현관에서는 인문교육특구 지정과 제9회 방과 후 대상을 기념하는 현판식이 진행됐다. 이필운 시장은 “개인주의 심화와 과도한 경쟁으로 가족과 지역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다”며 “이런 시기에 안양시가 인문교육특구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사람 중심의 인문도시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역대급’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주 여성 손님 넷이 한국을 찾았습니다. 우리나라를 찾는 이들이 한둘일까만 이들은 좀 특별했습니다. 올해 처음 시도된 ‘코리안 투어리즘 앰배서더’였으니까요. 우리 식으로는 한국 관광 명예대사쯤 될까요. 이들을 초청한 한국방문위원회 측에선 ‘한국 관광 알리미’라 표현했습니다. 이들은 온라인 세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이른바 ‘인플루언서’들입니다. 4박 5일 일정으로 내한한 알리미들은 2박 3일에 걸쳐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원 강릉과 평창, 서울 등을 둘러봤습니다. 이들을 따라 강원과 서울 일대를 돌아봤습니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은 어떤 모습일지, 또 어떤 풍경에 심드렁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지요. 여성들로만 이뤄진 터라 이들이 외국인 관광객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여성 관광객의 시각은 확인할 수 있겠지요.# 강릉_영하 26도_미리 보는 평창 한국관광 알리미들이 강원도를 찾던 날. 평창의 기온이 영하 26도까지 곤두박질쳤다. 우리나라 사람조차 경험해 보지 못한 맹추위다. 한국관광 알리미들이 잘 견딜 수 있을지 우려의 시각이 많았다. 한데 이는 기우였다. 한국을 잘 알고, 잘 대비했던 알리미들은 외려 보기 드문 추위를 한껏 즐겼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일행은 모두 4명이다. 미국 중동부 오하이오주에서 온 스타 렌가스와 대만 타이베이 출신의 린완링(지나, 이하 괄호 안은 온라인 활동 이름), 태국 방콕의 파타라라위 바우수완(베스티), 그리고 일본의 미요코 오모모 등이다. 이들의 주요 활동무대가 온라인인 만큼 KT에서 ‘속도 갑’의 와이파이 공유기를 제공했고, 숙소는 ‘가성비’ 높다고 소문난 롯데호텔 L7강남에 마련됐다.이번 팸투어는 강원 강릉과 평창, 서울을 묶어 돌아보는 2박 3일 일정이다. 강원 지역은 K트래블버스 운행 코스대로 돌았다. K트래블버스는 각 지역의 명소를 1박 2일로 돌아보는 외국인 전용 여행상품이다. 교통과 숙박, 통역까지 포함됐다. 애초 한국방문위에서 운영하다 지금은 각 지방자치단체로 업무가 이관됐다. 코스는 모두 7개다. 서울에서 출발해 강원, 충청, 대구 등을 오간다. 외국인 전용상품이긴 하지만 봄, 가을 여행주간 등엔 한국인 친구들이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알리미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강릉의 올림픽홍보체험관이다. 올림픽 유치 과정의 자료와 경기장 시설 건립 현황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종목별 선수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입체조형물 전시장과 스키 점프를 실감 나게 관람할 수 있는 4D체험관 등이 마련됐다. 건물들의 건축미도 빼어나다.# 안목해변_파란바다_꺄아 >0< 초당순두부로 점심 요기를 하고 오죽헌에 들러 한국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을 엿본 알리미들은 중앙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시장은 강릉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낡은 시장이지만 뜻밖에 젊은이들의 발걸음도 잦다. 새 명물로 떠오른 아이스크림호떡, 감자옹심이 등의 먹거리를 찾는 이들이다. 이어 방문한 곳은 안목해변. 경포대가 강릉의 ‘고전’이라면 안목은 ‘신세계’쯤 되겠다. 예전엔 썰렁하기 이를 데 없던 곳이었지만 커피를 파는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일약 강릉 관광의 ‘핫 스팟’으로 떠올랐다. 일정을 소화하느라 다소 피곤한 듯했던 알리미들의 표정은 안목해변에 닿자마자 활짝 펴졌다. 미국 중동부 지역에서 온 스타는 그럴 수 있다. 코발트빛 바다를 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한데 베스티의 반응은 유별났다. 태국에도 우리 못지않게 빼어난 해변이 널려 있는데, 대체 왜? 그는 “바다 빛깔이 태국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태국의 바다는 대체로 연둣빛이다. 이에 견줘 한국의 동쪽 바다는 파란빛이다. 특히 겨울에는 잉크를 풀어놓은 것처럼 짙푸르다. 그는 이 빛깔이 마음에 든 거다. 물론 마음 한켠에는 TV드라마 ‘도깨비’를 촬영하느라 이 해변을 오갔을 배우 공유에 대한 상념이 단단히 자리를 잡았을 터다. 이어 평창으로 향한 이들은 올림픽 설상경기장을 돌아본 뒤 첫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금강교_‘도깨비’다리_공유♥ 평창 여정의 핵심은 월정사다. 겨울철엔 눈 덮인 전나무 숲길이 특히 볼거리다. 전나무 숲길은 일주문에서 금강문까지 이어진다. 채 1㎞가 못 되는 거리에 반듯하게 솟은 전나무가 빽빽하다. ‘천년의 숲’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숲에서 가장 나이 든 나무는 수령 370년 정도다. 대개는 수령 80년 안팎의 젊은 나무들이다. 숲은 오백 살 먹은 전나무 아홉 그루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들의 씨가 퍼져 지금의 숲을 이뤘다는 것이다.숲길의 들머리는 일주문이다. ‘월정대가람’ 현판 아래로 들어서면 전나무들이 빚어낸 수직세상이 펼쳐진다. 숲길은 곧지 않다. ‘S’자 모양으로 휘었다. 숲 가운데 모퉁이엔 성황각도 있다. 토속 신들을 모신 곳이다. 전나무 숲길의 끝자락은 금강교다. 다리는 그리 오랜 내력을 갖지 못했다. 당연히 고색창연한 맛은 없다. 한데 알리미들의 발걸음은 도무지 다리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한파가 살갗을 찢는 듯한데도 말이다. 이유는 스타의 인스타그램을 엿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의 인스타그램엔 배우 공유가 눈 덮인 전나무들을 뒤로하고 멋진 자세로 다리 위를 걷는 사진이 걸려 있다. 그 다리가 바로 금강교였던 거다. 전나무숲에서도 공유와 김고은이 엇갈린 운명을 슬퍼하는 장면이 촬영됐다. 일행들의 발걸음이 유독 이 일대에서 엿가락처럼 늘어졌던 것도 그제야 이해가 된다. 역시 한류 드라마의 힘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여성들에게까지 속속들이 미쳤던 게다. # S라인 전나무숲_월정사품격 ‘유난히’ 길었던 전나무 숲길의 끝은 월정사다. 절집 건물 대부분이 한국전쟁 이후 다시 세워졌지만 오대산을 병풍처럼 두른 모습에서 깊고 묵직한 품위가 전해져 온다. 월정사는 조선의 왕 세조가 자주 찾은 곳이다.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죄를 씻어내고 싶었던 게다. 대웅전 앞에 서면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이 객을 맞는다. 팔각의 2층 기단 위에 고려시대의 탑이다. 탑 앞의 맨바닥엔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이 부복해 있다. 무엇인가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이다. 불교 신자인 베스티 역시 뭔가 종교적 의례를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촉박한 일정 탓에 총총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용평면에 들어선 정강원은 전통 음식을 맛보고 조리 체험까지 할 수 있는 곳이다. 외국인들이 특히 자주 찾는다. SBS 드라마 ‘식객’의 촬영지였던 곳으로, 정문 앞 장독대에 늘어선 300여개의 옹기가 눈길을 끈다. 알리미들은 정강원에서 비빔밥 만들기, 기미상궁 등을 체험했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新남방정책 싱크탱크’ 아세안·인도연구센터 오늘 개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신(新)남방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연구조직인 아세안·인도연구센터가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에 처음으로 설치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전략 등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세우는 것이 목표다. 조병제 국립외교원장은 31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2월 1일 아세안·인도연구센터 현판식 및 개소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아세안·인도에 초점을 맞춘 센터가 국내 싱크탱크에 설립되는 것은 처음이다. 개소식에는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비롯해 입 웨이 키엣 주한 싱가포르 대사, 비크람 도래스와미 주한 인도 대사, 응우옌 부 뚜 주한 베트남 대사, 뚜라 땃 우 마웅 주한 미얀마 대사 등 아세안 주요국 대사들이 참석한다. 외교부는 “아세안·인도연구센터는 향후 추진될 신남방정책의 중장기 전략 수립, 아세안 및 인도양 지역 국가와의 외교 현안 분석, 국내외 아세안 및 인도 연구기관 네트워크 강화, 아세안·인도 국민의 이해 및 인식 제고를 위한 공공외교 활동 등을 수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노원구,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노원(NW)’ 발대식 개최

    서울 노원구가 다음달 1일 블록체인 지역화폐 ‘노원(NW)’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31일 밝혔다. 이에 맞춰 같은날 노원구청 대강당에서 ‘지역화폐 노원’ 발대식을 개최한다. 발대식에는 김성환 노원구청장과 지역화폐 민관협의회, 지역화폐 가맹점주, 자원봉사자 등 주민 5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사업경과보고, 가맹점 지정서 및 현판 전달식, 지역화폐 출번 선언 순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지역화폐란 지방정부나 지역공동체가 발행해 특정 지역 주민들이 그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대안화폐를 뜻한다. 지역화폐 이름 ‘노원(NW)’은 돈 없이도 살 수 있는 마을(NO-WON)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노원(NW)’은 자원봉사를 하면 가상화폐를 획득하고 이를 음식점이나 미장원 등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지역화폐 1노원(NW)은 1원의 가치를 가진다. 지역화폐 자원봉사 시간 환가기준은 시간당 700노원, 미용, 수리 등 ‘품’은 1시간당 700노원이다. 자원순환을 위한 물품기증은 판매액의 10%, 기부는 기부액의 10%이다. 회원 개인 당 최대 적립 가능액은 50000NW으로, 유효기간은 3년이다. 주민들은 자신이 보유한 지역화폐를 가지고 물품을 사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다른 회원에게 선물할 수 있다. 앞서 구는 지난해 자원봉사에 참여한 주민에게 자원봉사 시간의 ‘노원(NW)’ 환가기준에 따라 지역화폐를 제공했다. 자원봉사자 1324명에 3375만노원(NW),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기부자 1482명에게 377만3289노원(NW), 노원푸드마켓뱅크 기부자 1265명에게 518만,600노원(NW) 등을 적립해줬다. 지역화폐를 받은 자원봉사자와 기부자들은 1일부터 지역화폐 가맹점에서 가맹점 기준율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 지역화폐 노원(NW) 앱은 스마트폰 스토어에서 ‘노원 지역화폐’ 검색 후 설치하면 된다. 자원봉사자로 노원코인을 채굴하려면 행정안전부 자원봉사자 포털에 가입해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후, 노원화폐 앱이나 노원화폐 사이트에서 회원가입하면 된다. 구는 앱 사용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지역화폐 카드도 발행한다. 노원(NW)을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도 늘렸다. 공영주차장 등 공공 가맹점 22곳뿐만 아니라 서점, 카페, 학원, 카센터, 미장원 등 82개 민간 가맹점을 모집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광화문 현판 본모습은 검정 바탕에 금박 글씨

    광화문 현판 본모습은 검정 바탕에 금박 글씨

    2010년 광화문 복원에 맞춰 제작된 현판이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에서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씨’로 바뀐다.●문화재청 1860년대 제작 현판 색상 고증 문화재청은 30일 지난 1년간 광화문 현판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연구를 거친 끝에 고종 연간인 1860년대에 제작된 광화문 현판의 원래 색상이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자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내년 상반기 중 새 현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일본 도쿄대가 소장한 유리건판 사진(1902년)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유리건판 사진(1916년)을 근거로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가 새겨진 현재의 현판을 제작했다. 그러나 1893년 9월쯤에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소장 광화문 사진이 2016년에 발견되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사진 속 현판의 바탕색이 글자색보다 진해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나 금색 글씨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재청은 중앙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현판의 원래 색상을 밝히기 위한 과학 실험을 진행해 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해 검은색, 옻칠, 흰색, 코발트색 4가지의 현판 바탕색과 금박, 금칠, 검은색, 흰색, 코발트색의 5가지 글자색을 입힌 실험용 현판을 제작하고, 옛 사진의 촬영 시기와 시간대에 맞춰 촬영하는 등 과학적인 분석을 거친 결과 현판의 원래 색상이 검은색 바탕에 금박 글자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단청 방식은 10월까지 모니터링 후 결정 문화재청은 최종적으로 아교와 전통안료를 사용해서 채색하는 전통단청, 아크릴 접착제와 화학안료를 사용해서 채색하는 현대단청 중 어느 방식으로 할 것인지 정하기 위해 오는 10월까지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 내년 상반기 광화문 현판을 부착할 예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꿈여울’ 무안·나주 휘도는 영산강 이야기

    ‘꿈여울’ 무안·나주 휘도는 영산강 이야기

    꿈의 속삭임은 왕에게 승전을 안기고… 물살이 숨죽인 자리엔 어리석은 뱃사공의 애달픔이… 아리고 아른한 몽탄강이어라 몽탄강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전남 무안 몽탄면과 나주 동강면 일대를 흐르는 영산강을 달리 부르는 이름입니다. 부여 앞을 흐르는 금강을 백마강, 여주 앞을 흐르는 남한강을 여강이라 부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몽탄(夢灘)을 우리말로 풀면 꿈여울입니다. 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이처럼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됐을까요. 전설이 전하는 이야기를 따라 몽탄강 일대를 돌아봤습니다.몽탄은 꿈속에서 계시를 받아 건넌 여울이란 뜻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의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현지 주민들과 각종 자료 등이 전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 무안과 나주 인근의 영산강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한낮에 선잠이 든 왕건에게 신령이 나타나 “바람이 잠잠해졌으니, 이때를 놓치지 말고 강을 건너라”라고 호통을 쳤다. 놀라 잠에서 깬 왕건은 기습 공격을 감행했고, 견훤은 대부분의 군사를 잃은 채 구사일생으로 도망쳤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한다. 내용은 비슷하다. 장군 시절의 이성계가 왜구를 격퇴하기 위해 출전했을 때 꿈에 신령이 나타나 “지금 여울이 낮아져 건너갈 수 있으니 어서 건너라”라고 해서 한밤중에 영산강을 건너 왜구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두 인물이 현몽을 받아 승전보를 전한 곳이 바로 몽탄강이다. 왕건과 이성계 둘 다 나라를 세운 왕들이고 보면 아무래도 승자의 입장에서 각색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 이리저리 휘돌아 만든 비경 ‘느러지’ 영산강은 담양 용추계곡에서 발원해 광주와 나주, 무안 등을 적신 뒤 목포에서 바다와 합류하는 남도의 젖줄이다. 이리저리 휘고 굽으며 흐르는 동안 곳곳에 빼어난 풍경들을 만들었다. 몽탄강 유역에서 가장 풍경이 빼어난 곳은 느러지 일대다. ‘느러지’는 물살이 느려진다는 뜻이다. 강물이 이 일대에서 크게 휘어지며 조롱박 모양의 물돌이동을 만들었다. 경북 예천의 회룡포나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하면 알기 쉽겠다. 여기가 바로 ‘영산강 8경’ 가운데 2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국내 하나밖에 없는 강물 위 등대 ‘몽탄진등표’ 물살이 숨을 죽인 자리엔 으레 나루가 생기기 마련이다. 몽탄강 일대에선 주룡나루와 몽탄나루 등이 그중 규모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강을 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루는 삶의 터전이자 마을과 마을을 잇는 소통의 통로였을 것이다. 늙은 어부는 이른 아침부터 쪽배를 타고 그물질에 나섰을 테고 밤새 술추렴하느라 수세미 같은 머리를 한 뱃사공은 마을 사람들을 싣고 강 너머를 분주히 오갔을 것이다. 그 풍경은 다리가 놓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몽탄나루는 이름으로만 남았고, 주룡나루는 여름철 수상 레포츠의 메카로 변신했다. 여태 옛모습 그대로 남은 풍경도 있다. 키 작은 빨간 등대 몽탄진등표다. 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 세워졌다. 강물에 설치된 등대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산강이 하구둑으로 막히기 전 등대는 강물을 오르내리던 숱한 배들의 길잡이 노릇을 했을 터다. 몽탄대교와 소댕이나루 중간쯤에 있다. 등대가 딛고 선 작은 바위는 멍수바위라 불린다. 이 바위에도 애달픈 사연이 담겨 있다. 목포 쪽에 하구둑이 생기기 전 이 일대에선 굴이 많이 났다고 한다. 광양, 하동 등 섬진강 기수역에서 생산되는 ‘벚굴’과 같은 종류의 굴이다. 어느 날 한 노모가 굴을 따러 바위에 올랐다. 한데 밀물 때 사고가 나고 말았다. 진작 배를 몰아갔어야 할 아들 멍수가 술을 마시느라 제때 노모를 모시러 가지 못한 것이다. 결국 노모는 불어난 물에 휩쓸려 사라졌고, 이후 날마다 강가에 나와 목놓아 울던 멍수 역시 노모 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모양은 남았으되 제 소임을 잃은 등대는 이런저런 사연 탓에 더 애처로워 보인다. 몽탄진등표에서 맞는 풍경이 빼어나다. 물색은 파랗다. 하늘이 담긴 듯하다. 강변엔 부들과 갈대가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누인다. 강둑엔 자전거도로가 조성돼 있다. 둑방길을 따라 자박자박 걷는 재미가 각별하다. 강 너머는 나주와 영암 땅이다. 멀리 월출산이 불쑥 솟았다. 그 기세가 장하다. 주변에 크기를 견줄 산이 없으니 돌올한 기상이 한결 도드라진다. # 수백년 살아내며 하늘 끝까지 펼쳐진 푸조나무 몽탄나루 옆엔 팔작지붕의 정자 한 채가 날아갈 듯 앉아 있다. 식영정(息營亭)이다. 담양 식영정(息影亭)과 이름은 같지만 한자는 다소 다르다. 식영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임연(1589~1648)이 무안에 터를 잡은 이후 1630년 지은 정자다. 정자 안에 들면 마루 너머로 몽탄강과 느러지 들녘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영산강 유역에서 손꼽히는 정자라더니 과연 명불허전이다.팔작지붕 건물도 멋들어지지만 더 인상적인 건 주변을 둘러친 푸조나무들이다. 수백년을 살아낸 노거수들이다. 안내판은 나무들의 수령이 510년이라고 적고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1982년이 기준이다. 이후 36년이 지났으니 수령도 늘어 얼추 550년 가까이 됐다. 식영정이 지어졌을 당시에도 100년 이상 자란 거목이었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면 푸조나무는 나뭇잎을 틔워 낸다.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롭다. # 저물녘 눈부시게 타오르는 영산강 자태 정자 주변에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강변을 따라 어른 키만큼 웃자란 갈대와 부들 사이를 걷는 길이다. 산책 삼아 돌아볼 만하다. ‘동방의 마르코 폴로’로 불리는 최부(1454∼1504)의 묘와 사당도 이웃해 있다. 한반도를 닮았다는 느러지의 전경을 보려면 나주 쪽으로 넘어가야 한다. 몽탄대교 건너 동강면에 느러지 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영산강 1경은 영산석조(榮山夕照)다. 저물녘 붉게 물든 영산강의 자태는 목포와의 경계 어름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예전과 달리 주변 상황이 많이 바뀐 데다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저물녘 풍경이라면 외려 몽탄진등표 쪽이 낫다. 무안은 해안 풍경이 고운 곳이다. 무안읍에서 77번 국도를 타고 해제반도 쪽으로 가면 길 오른쪽은 함해만, 왼쪽은 탄도만이다. 이 길을 따라 톱머리, 홀통 등 독특한 풍경의 해변이 줄줄이 펼쳐져 있다. 조금나루도 인상적이다. 탄도만을 향해 바늘처럼 뾰족하게 솟은 반도다. 반도의 폭이라야 수십m쯤 될까. ‘반도’라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의 규모다. 현경면 쪽에도 달머리(月頭), 감풀 등 예쁜 마을들이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갯벌 습지 보존지역인 함해만이 이 일대에 펼쳐져 있다. 갯벌엔 연둣빛 감태가 한창이다. 해조류 특유의 비릿하고 상큼한 향기가 갯벌에 가득하다. 해제반도 끝자락엔 무안생태갯벌센터가 있다. 목재 데크를 따라 갯벌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무안 해안 따라 가다 보면 감태의 연둣빛 향기 무안 남쪽, 그러니까 목포와 경계를 이룬 지역에도 볼거리가 많다. 초의선사 유적지는 우리나라에 다도(茶道)를 정립한 초의선사의 생가터에 조성된 관광지다. 복원된 생가와 기념관, 다도관 등이 초록빛 차밭 주변에 펼쳐져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물은 용호백로정이다. 작은 연못인 초의지를 거느린 정자다. 안내판에 따르면 서울 용산에 있었다는 추사 김정희의 정자를 복원해 조성했다. 겨울이라 다소 을씨년스런 모습이지만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되면 보다 그윽한 풍경을 선사하지 싶다. 정자의 현판은 초의선사 친필이라고 한다. 초의선사 유적지 아래는 오승우미술관이다. 오 화백의 기증 작품을 전시한 상설전시장 등 3개의 전시 공간을 갖췄다. 이달 말까지 ‘한국화를 넘어’전이 열린다. 항도 목포의 옛 모습을 그린 수묵화 등 인상적인 작품들이 많다. 초의선사 유적지와 미술관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품바발상지도 멀지 않다. 품바 타령은 향토극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1981년 일로면 공회당에서 초연됐다고 한다. 영산강 1경 가는 길에 들러볼 만하다. 글 사진 무안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무안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간명하다. 몽탄강 일대의 볼거리는 무안 동쪽, 탄도만 등 바닷가 풍경은 서쪽에 몰려 있다. 초의선사 탄생지, 오승우미술관 등 무안 남쪽을 먼저 돌겠다면 일로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빠르다. ▶맛집: 무안 하면 역시 낙지다. 무안읍내 터미널 뒤에 낙지거리가 조성돼 있다. 관광지 느낌이 강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사실 무안 내에서 가장 싸고 싱싱한 낙지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혼밥족’이라면 산낙지 비빔밥을 ‘강추’한다. 산 낙지 한 마리 곁들여 먹어도 좋겠다. 요즘 세발낙지는 다소 귀해 마리당 7500~8000원 정도 받는다. 사창리 일대에는 짚불삼겹살을 내는 집들이 몇 곳 있다. 암퇘지 삼겹살과 목살, 목등심 등을 볏짚을 이용해 구워 먹는다. 삼겹살과 양파김치, 기젓(갯벌 게로 만든 젓갈)을 섞어 먹는다 해서 짚불삼겹살 삼합이라고도 불린다. 두암식당(452-3775)이 알려졌다. 몽탄면 소재지에 있다.
  • [그 시절 공직 한 컷]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는 어디 갔나…미세먼지 ‘매우 나쁨 ’ 환경부는 ‘매우 바쁨 ’

    [그 시절 공직 한 컷]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는 어디 갔나…미세먼지 ‘매우 나쁨 ’ 환경부는 ‘매우 바쁨 ’

    환경부는 자연환경, 생활환경 보전 및 환경오염방지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정부조직법 제39조에 명시된 역할이다. 환경부는 처음엔 보건사회부 안에 소속된 환경위생국에 불과했다. 그러다 1980년 1월 환경청으로 승격됐다. 사진은 1980년 1월 15일 환경청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현판식을 하는 모습이다. 당시 환경청은 보사부, 교통부 등 각 부처에 나누어져 있던 업무를 이관받아 환경보전과 공해 관련 업무를 전담했다. 1990년 환경처로 개편된 이후 1994년 12월 환경부로 승격됐다. 현재 미세먼지 대책을 담당하고 있는 환경부는 2014년 5월 미세먼지 예보의 정확성을 높이고자 국립환경과학원에 대기질통합예보센터를 신설했다. 지난해 9월에는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이상 감축하겠다는 내용의 미세먼지 관리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 1월 들어 1㎥당 초미세먼지(PM2.5) 일평균 농도가 ‘매우 나쁨’(일평균 101㎍ 이상)에 육박했다. 미세먼지 공습으로 환경부도 더욱 바빠지게 됐다. 국가기록원 제공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한벽루·석조여래입상…‘수몰’ 청풍도호부 역사·아픔 오롯이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한벽루·석조여래입상…‘수몰’ 청풍도호부 역사·아픔 오롯이

    조선 현종의 부인이자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의 관향(貫鄕)은 청풍(淸風)이다. 이 때문에 현종은 즉위한 1659년 청풍군(郡)을 청풍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킨다. 청풍은 고을 규모에 비해 읍격(邑格)이 높았고, 남한강 수운(水運)을 이용하면 육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같은 거리의 다른 고을보다 한양을 오가기가 크게 수월했다. 무엇보다 청풍은 읍치(邑治)가 남한강이 절경을 이루는 곳에 자리잡았으니 당대의 실력자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와 묵어 갔다. 자연스럽게 청풍도호부사는 관료들에게 크게 인기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청풍도호부는 고종의 189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군(郡)으로 낮아졌고, 청풍군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다시 제천군에 편입됐다. 도호부로 위세를 떨치던 청풍은 이후 일개 면으로 지위가 낮아진 채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청풍도호부는 오늘날 충북 제천시의 청풍·금성·한수·수산면에 해당한다. 그런데 청풍 고을의 핵심을 이루던 옛 읍치는 1985년 충주다목적댐이 준공되면서 물에 잠기고 말았다. 당시 충주·중원·제천·단양 등 4개 시·군의 11개면 101개 이·동에서 7105가구 3만 8663명이 동시에 삶의 터전을 잃었다.●4개 시·군 7105가구가 삶의 터전 잃어 전체 수몰 면적 7698만 8069㎡ 가운데 제천이 차지한 면적은 절반에 이르렀다. 제천에서도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이 청풍면이었는데, 25개 이·동이 물에 잠겨 1665가구, 9514명의 주민이 옛집을 떠나야 했다. 여기에 청풍면사무소와 파출소, 학교, 우체국 등도 모두 물에 잠겼으니 그야말로 ‘청풍 신도시’ 건설은 불가피했다. 새로운 청풍면소재지는 청풍도호부의 읍치이자, 청풍면의 옛 면소재지였던 읍리의 서남쪽 물태리에 세워졌다. 옛 읍치에는 청풍의 상징과도 같은 한벽루(寒壁樓)를 비롯해 문화재가 적지 않게 남아 있었다. 문화재 이주단지 또한 물태리에 조성됐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청풍문화재단지다. 한벽루는 물론 청풍도호부의 동헌(東軒)인 금병헌(錦屛軒)과 청풍향교, 황석리 고가(古家)를 비롯한 여러 채의 민가(民家)에 불상과 각종 선정비까지 옮겨 놓았다. 비록 제자리를 떠나기는 했어도 청풍 고을의 옛 분위기를 짐작게 하는 일종의 야외 박물관이다.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조선 후기 지도 ‘청풍부팔면’(淸風府八面)를 보면 옛 읍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상상할 수 있다. 관아를 중심으로 청풍 고을의 8개 면을 원형으로 배치한 지도다. 이 지도를 보면 청풍 읍치는 청풍호가 넓게 열린 청풍문화재단지의 서북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한강의 남쪽에 자리잡았던 청풍 면소재지 읍리(邑里)는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마을이었다. 강 상류 쪽에서 하류 쪽으로 읍상리, 읍중리, 읍하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청풍 고을의 관문이었던 팔영루(八詠樓)는 이제 청풍문화재단지의 정문 노릇을 하고 있다. 제법 규모 있는 문루(門樓)다. 물길 의존도가 높았던 청풍이다. 배를 타고 청풍 관아에 가려면 북진(北津)에서 내려 팔영루로 들어섰을 것이다. 팔영루 앞 사적비(史蹟碑)에는 1702년(숙종 28) 부사 이기홍이 현덕문(賢德門) 자리에 중건해 ‘남덕문’(覽德門)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팔영루는 서향이었지만, 지금은 남향이다.팔영루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경양 민치상이 청풍 부사 시절 청풍팔경을 읊은 팔영시(八詠詩)를 짓고 이곳에 내걸었기 때문이다. 고종의 부인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척족(戚族)인 민치상은 공충도(公忠道) 관찰사 시절에는 오페르트의 남연군무덤 도굴사건을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충청도는 순조와 철종 시대 각각 공충도라 이름이 바뀌어 불리기도 했다. 팔영시는 청풍호의 조는 백로(淸湖眠鷺·청호면로), 미도에 내리는 기러기(尾島落?·미도낙안), 청풍강에 흐르는 물(巴江流水·파강유수), 금병산 단풍(錦屛丹楓·금병단풍), 북진의 저녁 연기(北津暮煙·북진모연), 무림사 종소리(霧林鐘聲·무림종성), 한밤 목동의 피리(中夜牧笛·중야목적), 비봉의 해지는 모습(비봉낙조·飛鳳照)을 읊은 것이다. 청풍부팔면 지도를 보면, 과거 팔영루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감옥이 있었다. 지도에는 영어(囹圄)라고 적혀 있는데 둥그런 모습이다. 지금은 물론 팔영루로 들어서도 감옥은 보이지 않는다. 감옥은 댐 건설 당시 이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이곳에서 관람객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이어지는데, 청풍부의 아문(衙門)이었던 금남루(錦南樓)가 나타날 때쯤 오른쪽 솔밭 사이에 세칸짜리 맞배지붕이 보인다. 보물로 지정된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이다. 역시 읍리에서 옮겨진 것이지만 이름에는 ‘청풍’도 ‘읍리’도 간데가 없다. 요즘식 표현으로 ‘출신지 세탁’이 이루어진 꼴이니 부처님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청풍은 고려시대 이 고을 출신 승려 청공(淸恭)이 왕사(王師)에 오르면서 1317년(충숙왕 4년) 군(郡)으로 승격한 역사도 있다. 물태리 여래입상은 높이가 341㎝에 이른다. 비교적 날씬한 몸매여서 당당해 보이지는 않지만 규모는 제법 크다. 학계에서는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는 듯하다. 불교국가 고려의 청풍 고을에서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다. 금남루를 지나면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가 줄지어 복원된 모습이 보인다. 한벽루가 객사(客舍)의 누각이라면 응청각은 관아의 누각이다. 한벽루와 응청각은 과거에도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객사는 국왕의 위패를 모시는 시설이자 지방에 파견된 중앙관이 머무는 숙소다. 응청각은 별도의 숙소이자 연회장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객사와 한벽루로는 수요를 충족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홀히 할 수 없는 방문객이 많았으니 연회 수요도 그만큼 늘어났을 것이다. 한벽루는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처럼 본채 옆에 부속채가 딸려 있는 화려한 모습이다. 청풍 고을을 찾는 인물들의 정치적 비중도 그만큼 높았음을 뜻한다. 한벽루 내부에는 우암 송시열과 곡운 김수증의 편액과 추사 김정희의 현판이 걸려 있다. 우암은 조선 후기권력을 오로지했던 노론의 영수, 곡운은 역시 노론의 정신적 지주로 영화 ‘남한산성’에도 척화파의 대표로 등장했던 청음 김상헌의 손자다.●청풍문화재단지엔 수몰역사관도 한벽루 왼쪽에 솟은 해발 373m의 망월산에는 둘레 495m의 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처음 쌓은 것이라는데, 서남쪽과 남쪽 성벽은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망월산성은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청풍문화재단지 안팎에서 유일하게 진정성을 유지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금병헌과 망월산성 중간의 왼쪽 골짜기에는 청풍향교가 복원되어 있다. 옛 청풍 읍치와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던 교리(敎里)에 있었다. ‘명륜당 중수기’에 따르면 청풍향교는 고려 충숙왕 시절 물태리에 세워진 것을 조선 정조 시대 교리로 이건했다. 이것을 다시 물태리로 옮겼으니 이 동네와는 인연이 적지 않다. 문화재단지에는 수몰역사관도 있다. 물이 차오르는 강가에서 마지막 잔치를 벌이는 주민들의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청풍의 문화유산은 그나마 문화재단지에 일부가 남았지만, 사람들의 흔적은 몇 장의 사진 말고는 모두 물밑에 가라앉았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서울포토]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 정부합동지원단’ 현판식

    [서울포토]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 정부합동지원단’ 현판식

    16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 정부합동지원단’ 현판식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오른쪽 세번째) 등 참석자들이 현판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신영복 교수가 쓴 ‘대통령기록관’ 현판 교체 논란

    신영복 교수가 쓴 ‘대통령기록관’ 현판 교체 논란

    진보 진영 석학인 고(故)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교수가 쓴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 옛 현판과 지금의 현판. 신 교수의 현판은 2008년 기록관이 처음 문을 연 때부터 사용되다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2월 폐기됐다. 국가기록관리혁신 태스크포스(TF) 측은 “당시 1개 민간단체의 민원 제기였음에도 대통령기록관리전문위원회가 전례 없이 이를 안건으로 상정했다”면서 “두 차례에 걸친 논의 과정 중 일부 위원이 신 교수에 대해 ‘대한민국 전복운동을 한 게 확실한 분’, ‘(신 교수가) 전향서를 쓰긴 썼지만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상황’ 등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가기록관리 혁신TF 제공
  • 금천, 베스트 이ㆍ미용실 선정

    서울 금천구는 지역의 이·미용 업소 632개소를 대상으로 공중위생서비스 평가를 실시해 6개소를 최종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평가는 지난해 10~11월 미용업 546개소, 이용업 86개소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평가 기준은 위생관리에 대한 법적 준수사항, 서비스 향상을 위한 권장사항 등이다. 구는 이를 통해 최우수업소 225개소, 우수업소 223개소, 일반관리업소 199개소를 선정했다. 선정된 최우수업소 가운데서도 평가점수가 가장 높은 업소를 대상으로 관련 협회 심의 등을 거쳐 이용업 2개소, 미용업 4개소를 추렸다. 유남성 금천구청 위생과장은 지난 5일 직접 6개 업소를 찾아가 우수서비스를 인증하는 현판을 전달했다. 구는 해마다 공중위생 영업소의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평가를 실시하고, 선정된 업소에 현판을 제작·수여한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말 많고 탈 많은 ‘광화문 현판’, 올 하반기 교체 유력

    말 많고 탈 많은 ‘광화문 현판’, 올 하반기 교체 유력

    2010년 광복절에 복원된 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광화문 현판이 올 하반기 교체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광화문에 걸린 현판은 그동안 균열문제, 색상오류 등 고증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5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문화재청은 최근 마무리된 연구용역결과를 토대로 최종 자문위원회를 거쳐 올해 하반기 현판을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한국전쟁을 거치며 파괴됐으나 지난 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복원됐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한글친필로 제작된 광화문 현판은 2010년, 현재의 모습인 한자 현판으로 다시 제작돼 걸렸다. 하지만 복원 3개월 만에 현판에 균열이 가더니 색상오류 지적까지 나오며 논란에 휩싸였다. 현재 광화문 현판의 모습은 흰 바탕에 검은색 글씨의 형태를 하고 있으나 색상이 뒤바뀌었다는 문제제기가 복원 당시는 물론 수년간 계속해 이어진 상황이다. 특히 문화재청이 2010년 복원 당시 참고했다던 1916년과 1902년(촬영추정) 사진자료보다 더 오래된 1893년 9월에 촬영된 사진이 발견됐다. 이 사진에서 광화문 현판은 현재와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어 고증 부실 논란에 더욱 불이 붙었다. 당시 현판오류를 제기한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된 광화문 사진은 검은색 바탕위에 광화문(光化門)이라고 쓰여진 것으로 확인됐다”며 “문화재청 주장과 달리 현재 광화문 현판의 고증오류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 관계자 역시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색상자문위원회를 거쳐 최종결과가 나올 예정”이라며 “이후 결과를 가지고서 올 하반기에 교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현판 교체작업을 위해 지난해부터 중앙대학교 산학협력단과 연구용역을 진행해왔다. 해당 연구용역은 지난해 26일 종료됐다. 그동안 ‘고증실패’라는 질타가 이어지자 문화재청은 정밀한 연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었고 실제 연구도 기존 계획보다 10일 정도 더 소요되기도 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충무공파 종회장 “박정희도 임금…현판 내리려면 현충사 부숴야”

    충무공파 종회장 “박정희도 임금…현판 내리려면 현충사 부숴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의 소유주인 이순신 종가가 현충사 본전에 걸려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철거해달라고 문화재청에 요구했다. 이순신 종가는 문화재청이 그 현판을 내릴 때까지 난중일기를 현충사에 전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러자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에서 현판 교체에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는데, 인터뷰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을 ‘임금’이라고 하는가 하면 사회자에게 “이 양반아”라고 말해 비판을 받고 있다.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의 이종천 회장은 3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현충사 본전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내리고 조선 숙종 임금이 사액(임금이 사당, 서원, 누문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액자)을 내린 현판으로 원상 복구해달라는 이순신 종가의 요구에 “숙종만 임금인가. 박정희 대통령도 임금”이라면서 “그 현판(박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을 내리려면 현충사를 다 부숴야 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현재 난중일기의 소유주인 15대 맏며느리와 15대 종부는 박 전 대통령 친필 현판 대신 현충사가 처음 세워진 1706년 숙종이 직접 내린 현판을 걸어야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 사액 현판은 현재 옛 현충사 건물에 걸려있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은 1966년 박 전 대통령이 ‘현충사 성역화 작업’을 진행하면서 지금의 현충사 본전에 걸리게 됐다. 이 회장은 “현판을 내리려면 현충사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 놓은 현판이나 현충사나 마찬가지 아니냐”면서 “그리고 그 현충사에는 숙종이 내린 현판은 보이지도 않는다, 너무 작아서”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사회자가 ‘숙종의 사액 현판을 걸면 이순신 종가가 난중일기를 다시 전시한다는 것이고, 그러면 염려는 해소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 회장은 “현판을 이 양반아, 어른 건물에 애들 현판마냥. 그거 보이지도 않는다. 어디에 갖다 붙여”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종부도 아니고 호적에만 있는 여자인데 그 사람 말만 놓고서 현판을 내려라 말아라?”라고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우리는 현판 내려도 안 되고 지금 가처분 신청해서 유물 못 나가게 지금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에 15대 종부이자 난중일기의 소유주인 최순선씨는 “현충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정치적인 논란에 너무 많이 휩싸여서 그동안에 문제가 있었다”면서 “숙종부터 현충사 현판을 내려받았다. 그래서 종가에서 전승돼 왔고, 일제 강점기에 현충사를 다시 세우면서 종가에서 그걸(숙종 사액 현판) 다시 걸었다. 종가 입장에서는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보인 난중일기를 볼모로 삼아서 개인의 사익을 추구하려고 한다’는 종회 측 지적에 대해 최씨는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유물은 이미 1960년대에 현충사에 위탁해 왔고 공공기관에서 관리를 해 왔다”면서 “한 번도 난중일기를 현충사에서 움직여본 일이 없다. 앞으로도 국가기관에 위탁 보관할 예정이다. 상징적으로 소유권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이순신 종가 ‘난중일기’ 전시 중단 “박정희 현판 내려달라”

    이순신 종가 ‘난중일기’ 전시 중단 “박정희 현판 내려달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전쟁 상황을 직접 기록한 ‘난중일기’의 전시가 내년부터 중단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보 76호인 난중일기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지정된 기록물이다.29일 노컷뉴스 보도에 따르면 난중일기의 소유주인 이순신 종가는 앞서 충무공을 기리는 현충사 본전에 걸려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을 철거하고 조선 숙종임금의 사액현판으로 원상복구해줄 것을 문화재청에 요구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난중일기 원본 소유주인 이순신 종가는 “현충사 현판 교체를 비롯해 여러가지 적폐청산에 대해 2017년 12월 31일까지 개선방안을 제시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간곡히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을 받지 못했다”고 노컷뉴스에 밝혔다. 결국 이순신 종가는 이같은 내용과 함께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유물 일체는 내년 1월 1일부터 현충사에 전시될 수 없음을 엄중히 통지한다”면서 전시불허서류를 문화재청에 전날 제출했다. 앞서 지난 9월 이순신 종가와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현충사 본전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현판을 내리고 조선 숙종임금의 사액현판으로 원상복구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초임 군 장교, 경찰공무원이 임관 전 충무공을 참배하러 오는 의미 깊은 공간인 현충사 본전에 있던 숙종 사액현판이었지만, 1966년 박 전 대통령이 ‘현충사 성역화작업’을 진행하면서 그 자리를 박 전 대통령의 친필현판에 내줘야했다. 15대 종부 최순선씨는 “3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숙종 현판을 복구해 현충사가 올바른 역사의 의미를 생각해야할 때”라면서 “여러차례 문제제기했으나 상응하는 어떠한 답변조차 못 받았다”고 토로했다. 현재까지도 문화재청은 박 전 대통령 현판에 대해선 어떠한 계획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달 초 ‘현충사 숙종 사액현판 교체 관련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했지만 결론은 내지 못했다는 것이 노컷뉴스의 설명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계속해 폭넓게 의견을 받으려는 상황”이라면서 “금송 이전은 현재 이행하고 있는 상황이며 현판도 국정감사에서 언급된 만큼 후속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종가 측은 “여러차례 문제제기에 지난 9월 진정 이후로도 어떠한 답변조차 없는 상황”이라며 성토했다. 난중일기 원본 전시가 중단되면서 결국 문화재청은 복사본으로 현충사 내 전시를 이어갈 전망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어린이집 40% 석면 사용… 구멍 보수·안전점검땐 위험 ‘뚝’

    어린이집 40% 석면 사용… 구멍 보수·안전점검땐 위험 ‘뚝’

    가볍고 불에 타지 않아 한때 ‘기적의 광물’로 인식됐던 석면이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가 됐다. 석면은 크기가 작아 몸에 쉽게 침투하는데 일반 먼지와 달리 배출이나 몸속 분해가 안 된다. 잠복기가 10∼40년이며 악성 중피종과 폐암, 석면폐증 등을 유발한다. 건물이나 배관 등을 수리하거나 벽에 구멍을 뚫을 때 배출되지만 외부 충격이 없으면 공기 중으로 새지 않게 관리를 잘하면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석면은 그리스어로 ‘불멸의 물질’이란 뜻을 가진 섬유 모양의 규산화합물이다. 직경이 0.02㎛(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1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2500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단열·보온·흡음 등의 기능이 뛰어나 1960~1980년대 개발 시기 건축자재와 공업용 원료로 많이 쓰였다. 슬레이트 지붕과 실내 천장재인 텍스, 벽체와 화장실 칸막이 등에 많이 쓰이는 밤라이트 등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석면을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하면서 위험성이 확산됐다. 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했지만 이전에 만들어진 건축물 등에는 석면 자재가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충북 증평의 A어린이집은 2002년 문을 열었다. 슈퍼마켓으로 쓰던 공간을 어린이집으로 개조해 사용 중인 데 현재 원생 33명이 생활하고 있다. 면적이 220㎡로 석면안전관리법상 안전관리 의무대상은 아니지만 환경부의 취약계층 석면안전진단을 신청했다. 어린이집을 방문한 한국환경공단 조사요원들은 실내 공간을 육안으로 확인한 뒤 석면 의심 자재가 없는 곳으로 아이들을 이동시키고 건축 자재에서 시료를 채취했다. 천장에 설치된 텍스와 벽체에 여러 개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 석면이 날아서 흩어질(비산) 가능성이 감지됐다. 시료를 채취하는 과정을 긴장한 채 지켜보던 B원장은 “위험한가, 석면이 검출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조바심을 감추지 못했다. 시료 채취는 간단하지만 신중하게 진행됐다. 틈이나 구멍 등에서 시료를 채취한 뒤 연번을 적어 테이프로 촘촘하게 봉합했다. 유대연 조사관은 “석면 자재의 99%가 천장재와 지붕재 벽체, 칸막이 등으로 쓰이는데 손상되지 않으면 비산 가능성이 적다”면서 “석면이 검출되면 실내 공기 질 조사를 한 뒤 관리에 필요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천장재인 텍스는 충격에 약해 쉽게 부서지고, 리모델링 시 기존 텍스를 제거하지 않고 석고보드 등으로 덧붙여 시공해 표면에 노출되지 않아 관리 및 제거 시 주의가 필요하다. 균열이나 전기설비 설치를 위해 뚫은 구멍이나 틈새 등 석면 건축자재를 손상된 채로 장시간 방치하면 노출된 석면이 진동·기류 등의 영향으로 비산될 가능성이 높아 즉각 적절한 보수를 해야 한다.도배(시트지)나 페인트칠 등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틈이나 구멍이 크면 전문업체를 통해 손상 부위를 고착화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빈 공간을 채운 뒤 메움제로 마무리하는데 시트지 등과 접목하면 비산 차단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어린이뿐 아니라 교사의 건강을 위해서도 석면 관리는 중요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석면이 검출되지 않으면 안전시설 인정(현판)을 받을 수 있고, 미리 보수해 대비할 수 있는 효과가 있지만 비용 부담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B 원장은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 안전진단을 신청했지만 결과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영세 어린이집에서 자부담으로 보수가 쉽지 않고, 의무시설도 아니기에 건물주가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건축물 석면관리 강화… 기준 위반땐 과태료 건축물에 대한 석면 관리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석면 조사 대상 학원 건축물 면적을 1000㎡ 이상에서 430㎡ 이상으로 확대하는 석면안전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돼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소유주는 내년 12월 31일까지 석면 조사를 해야 하며 위반 시 2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중이용시설 외에 석면건축물인 어린이집(430㎡ 이상) 등도 석면 농도 측정이 의무화됐는데 관리 기준을 위반하면 10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환경공단이 2013년부터 하고 있는 석면안전진단사업은 석면안전관리법을 적용받지 않는, 2008년 12월 31일 이전 착공 신고된 소규모 시설에 대해 실시된다. 석면 관리의 ‘사각지대’를 없애자는 취지다. 석면안전진단은 어린이집 등에 쓰인 천장재·바닥재·내외장재·내화피복재 등 석면 함유 의심 건축자재에 대한 시료 채취 및 분석 등을 통한 조사와 컨설팅이다. 석면건축자재란 석면을 1% 넘게 함유하고 있는 자재다. 진단은 전문성을 요하기에 환경공단 본부 조사요원들이 직접 한다. 석면건축자재가 확인되면 관리 안내와 해체·철거 등을 위한 컨설팅을 제공한다. 석면 조사 결과는 종합정보망에 데이터베이스화해 안전 관리에 활용하고 어린이집에 제공해 자율 관리를 유도하고 있다. 석면환경관리팀 정세영씨는 “석면의 심각한 위해성 때문에 현장에서 섣부른 판단은 절대 금물”이라며 “석면 불안감을 고려해 시설 분석 결과는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국 학원 97%, 석면안전관리 의무시설 아냐 영·유아는 만지고, 기는 습성으로 석면에 노출될 기회가 많은데다 체중당 호흡량이 성인보다 높아 위험성이 높다. 그러나 현행법에 어린이집은 연면적 430㎡ 이상만 석면안전관리체계가 적용되는데, 전체(4만여개)의 14%(4553개)에 불과하다. 학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전국 학원 8만 5000여곳 중 97%가 연면적 430㎡ 미만으로 의무시설이 아니다. 환경공단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어린이집 1850개소, 2015~2016년 2년간 학원 800개소를 진단한 결과 어린이집의 41%(755개), 학원은 54%(430개)에서 석면 자재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석면 자재를 사용한 시설은 실내 공기 질을 측정한 뒤 보수용품 등을 공급한다. 공기 질 측정 결과 비산기준(0.01개/㏄)을 초과한 시설은 없었다. 올해는 160여개 어린이집에 대해 부분 보수를 처음 지원한다. 내년 석면조사 대상이 확대됨에 따라 올해 사업을 확대해 어린이집과 학원, 지역아동센터, 교습소, 장애인 거주시설 등 2500곳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했다. 환경부 생활환경과 김태연 서기관은 “장기적으로 어린이 활동공간은 면적에 상관없이 석면 관리를 의무화할 계획”이라며 “의무시설 확대와 함께 열악한 어린이집 등에 대해서는 자재 철거 및 설치를 차등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감취약계층에게는 석면안전진단을 무료로 하고 있지만 의무 대상이 아닌 소규모 시설들은 안전 진단에 소극적이다. 환경공단은 어린이집의 경우 보건복지부 보육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공고문을 배포하고, 지역아동센터와 장애인거주시설은 정부 관련 단체를 통해 신청을 유도하고 있다. 또 원장 연수회 등을 방문해 설명회를 진행한다. 학원 및 교습소에 대해서는 교육지원청을 통해 공지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참여가 저조하다. 신청 편의를 위해 석면관리종합정보망과 이메일, 팩스 등을 통해 접수하고 노후 건축물과 접수 상황을 고려한 선정 및 미선정 시설은 다음 연도에 반영하는 등 참여율을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진단을 신청해놓고 정작 조사요원이 방문하면 조사를 거부하는 곳도 많다. 대부분 시설이 오래됐거나 파손이 많아 비산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의심되지만 거부 시 강제할 수 없어 안내서 정도만 제공할 수밖에 없다. 환경공단 관계자는 “의무시설이 아니기에 사업주 입장에서는 굳이 관심이 필요없다”면서 “검출 시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용 부담과 원생 회피 등 불이익이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현욱 가톨릭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설 개량을 지원하는 체계가 바람직하다”면서 “석면 관리가 강화됐지만 석면 관리인이나 업체 등의 전문성, 수입 물품에 대한 관리 등 갈 길이 여전히 멀다”고 지적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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