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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회 현충일 국립묘지서 추념식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얼을 기리는 제45회 현충일 추념식이 6일 오전 10시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중앙추념식에는 3부 요인과 정부부처 장관,각계 대표 및 전몰군경 유족 등 5,000여명이 참석한다. 오전 10시 정각에 전국에 올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추어 1분간 묵념을 올린뒤 헌화 및 분향,추념사,헌시낭송,현충의 노래 제창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지방에서는 대전국립묘지를 비롯해 각 지역 현충탑이나 충혼탑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주관으로 열린다. 노주석기자
  • 어제 6·25 49주년 행사 다양

    6·25전쟁 49주년 기념식이 25일 전국에서 향군단체와 군부대 주관으로 다채롭게 열렸다. 재향군인회(회장 張泰玩)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에서 정부요인과 합참의장,육·해·공군 참모총장,참전용사,사회단체 대표,보훈가족,우방국 참전용사 등 7,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가졌다. 이에 앞서 향군 회원과 해외 참전용사 400여명은 오전 8시30분 서울 동작동국립현충원을 방문,현충탑에 헌화·분향하고 호국종 타종행사를 가졌다. 공군본부는 오전 11시40분 계룡대에서 공군장병 2,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주먹밥 먹기 체험행사에 이어 7.4㎞ 구간 행군행사를 가졌다.육군 특전사령부는 오전 10시30분 6·25 참전국인 필리핀과 태국의 주한대사와 국방무관,산업연수생 등 43명을 초청,특공무술과 고공강화 시범행사를 가졌다. 김인철기자 ickim@
  • [발언대] 순국선열 고귀한 뜻 외면 말아야

    힘겹게 IMF 위기를 극복하고 재성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가운데 뜻깊은 6월을 맞이해 나라와 겨레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 앞에 머리 숙여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싸우다가 망한 민족은 다시 일어서지만 싸우지 않고 항복한 민족은 영원히 망한다”고 했다.혼이 살아 있는 민족은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존속한다는 뜻이다.그 혼은 그 민족의 역사 속에서 나온다고 했다.따라서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은 영원히 망한다는 것이다. “나라는 잃어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역사는 잃으면 영원히 망하고 만다”고 했던 우국시인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6월이다.순국선열의 큰 뜻을 마음속으로 숭앙하고 고귀한 애국정신의 귀감으로 삼아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국민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6일은 제44회 ‘현충일’이다.현충탑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구국을 위한 외침을 들을 수 있다.현충일을 그저 하루 쉬는 공휴일쯤으로 여겨서는 안될 것이다.대신 순국선열과 국토방위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한 전몰장병들의 영령에 대해 생전의 위훈을 기리고 명복을 빌면서 유족에게 조의를 표하는 뜻깊은 날임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전후세대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제44회 현충일과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다시 한번 선열의 국난극복 정신을 되새기며 힘을 모아 경제위기의 현실을 슬기롭고 지혜롭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그렇게 한다면 밝아오는 21세기에는 우리가 충분히 선진국가로 진입해 새 천년의 장을 열 수 있으리라 믿는다.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 공훈을 남기고 가신 선열들과 조국을 소중히 지켜온 국가유공자들이 영광된 오늘을 이룩했음을 잊지 않고 경건히 추모하는 마음으로 6월을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황명자[서울 노원구 상계동]
  • 국군포로 송환 촉구/어제 ‘6·25’48주년/전국서 행사 잇따라

    6·25 48돌인 2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5,000여명의 유가족들과 참배객들의 찾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넋을 기렸다. 대한재향군인회(회장 張泰玩) 소속 참전용사 2,000여명은 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하고 호국종을 48번 울렸다.재향군인회는 이어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金鍾泌 총리서리 등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군포로 송환촉구 범국민대회’도 열었다. 300여명의 원불교 신도들도 현충원 무명용사탑에서 합동위령제를 가졌다. 전국연합(상임의장 李昌馥)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 기원제’를 개최하고 명동성당까지 촛불을 들고 행진했다.
  • 조각가 최기원(이세기의 인물탐구:163)

    ◎‘비상·탄생·열망’ 창조하는 예술가/국립묘지 현충탑·독립기념관 ‘추념의 장’ 대표작/작품마다 한국적 개성 독특… 미­유럽서도 호평 ‘문화란 특수층의 향유물이 아니며 모든 사람들이 고루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조각가 최기원의 신조다.그는‘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태어났는가,어떻게 머무르고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를 풀기 위한 방법으로 조각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의 예감대로 군중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공공장소에 대형조각품들을 설치할 수 있었다. 동작동 국립묘지의 현충탑,독립기념관의‘추념의 장’을 비롯한‘태초의 빛’‘비천상’등 기념물과 각종 상징탑,발전상과 성장탑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불꽃같은 정열과 확신에 찬 신념으로 그는‘비상’과 ‘탄생’과 ‘열망’을 일사불란하게 창조하는 시기다. ○국전 4회 연속 특선 그가 미술의 등용문인 국전을 통해 데뷔하던 56년에는 ‘추상조각’분야가 따로 없었으나 연속4회 특선으로 추천작가가 되자 자기 내면에 꿈틀거리던 상상속의 형상,상징적 주제들을자유롭고 분방하게 모색할 수 있었다.예를들어 불꽃과 꽃봉오리,나무와 새와 열매의 구상적 형상을 서로 통합시키거나 형태적 변주로 탄생을 계시하는가하면 앵포르멜적 성향에서는 ‘예리한 선조의 구조’로 섬세한 용접에 의한 평면투조를 추구하여 청동의 부식효과로 세월의 영욕을 표현해 내기도 했다. 평론가 이일씨에 따르면 63년,한국작가들이 파리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했을 때 오프닝에 참석했던 당시 프랑스 드골내각의 공보담당 국무상이었던 앙드레 말로가‘최기원의 동양적 사유가 깃든 작품에 관심’을 보인 것이 그가 화단의 주목을 받게된 계기다.이후 그의 작품성은 지난 92년에도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험프리 화인아트 초대전에서 화랑대표인 리처드 험프리씨가‘한국적 개성이 돋보이는 그의 청동조각품은 세계적인 미술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콜렉터들이 다투어 소장하기를 원한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작품 창작땐 ‘완벽’ 주의 결국 그가 끈질기게 파고든 ‘탄생’시리즈는 발전과 흥성을 상징하는 가운데 생명의 근원인 물과 불을 다루게 되었고 기하학적 패턴에 의한 추상적인 개념속에 다양한 형태를 변주시켜 인류의 개화나 창조적 미래를 암시하기도 한다.이른바 ‘우의적’형상에 따뜻한 휴머니즘이 감도는‘화합’의 ‘조율’을 성취해낸 것이다. 역시 미술평론가인 김복영은 ‘동양적 사유에 바탕을 둔 예술을 발현하기 위해 그가 얼마만큼 집념을 불태우고 있는 작가인가’를 설명하는 글에서‘그의 작품은 생명의 탄생을 해석하는 동양인의 마음을 한눈에 보여준다’고 말한다.그 한 예로 외환은행본점 정문 보도에 세워진 ‘영원한 불꽃’은 거대한 고층빌딩과 조화를 이룬 둥근 형태와 간결한 곡선,화살처럼 날카롭게 하늘로 치솟는 사선에 불꽃과 분수로 물과 불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낸다. 독립기념관의 ‘추념의 장’도 후면에 설치된 대형부조는 나지막한 능선의 양날개에 성화대를 배치하고 건물 전면에는 태극을 의미하는 둥근 원속에서 힘차게 치솟는 분수로 물과 불의 작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때마다 그의 소재는 언제나 청동이었고 지나친 청동집착에 대해 오광수는 ‘황금빛을 연상케하는 찬란한 동빛과 이끼가 낀 푸른 구성으로 자신의 조형을 드라마틱한 상황으로 몰아가면서 예각적인 선조와 구형의 공존,직선과 곡선의 대비로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고 평한다. 최기원은 순서울토박이다.종로구 연지동에서 은행원인 최용구씨의 아들 3형제중 막내.효제초등학교 후배이자 서양화가인 이만익에 의하면 ‘동이 지니고 있는 재료적 특성으로 한국의 미를 발굴하는 작가’로서 개성을 남발하지 않지만 작품에 임할 때는 철두철미하게 ‘완벽’을 기하는 주의다.서울의 문안사람답게 자화자찬을 싫어하고 남에게 폐끼치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정겨운 대인관계를 유지한다.문학과 술과 친구를 좋아하고 한때는 충신동에 있던 월탄댁이나 미당,김동리씨가 나오던 명동 청동다방에 드나들기도 했다.집안은 예술적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가 하고싶은 것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 그의 수많은 작품중에서도 ‘그림자 놀이’시리즈는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새의 눈을 만들고 새는 언제나 설화적인 알(난)을 품고 미래를 향해 똑바른 응시를 찬연하게 지속시킨다.그것은 승리와 탄생과 창조를 예고하지만 과불급이 없는 중용을 깨뜨리지 않는 것도 그만의 장점이다.이와 관련하여 그의 종교관을 엿볼수 있는 작품으로는 천안시 태조산 각원사에 세운 세계최대의 야외 청동좌불과 속리산 법주사 야외 청동미륵대불을 빼놓을 수 없다. 각원사 좌불청동상은 3년의 긴 역사끝에 얻어진 결과로 앉은 키만도 14m20㎝,일본 가마쿠라(겸창)의 불상보다 1m가 더 높은 대작이다.그는 이 작업을 맡기까지 불교관계자들과 ‘100번도 더 넘게’만나야 했고 ‘욕심이 없는 순수한 심성’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까다로운 절차가 번거로운 나머지 중도에서 그만두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불상을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킬 수있었다.가족은 전배구선수이던 부인 김성희씨와의 사이에 1남3녀,평소엔 짙은 남색셔츠에 정장을 즐기는 멋장이지만 흙공장을 연상케하는 목동 작업장에 들어서면 노동자로 변신해버린다. 그는 절차탁마끝에 예술가로서 가장 정상에 서서 주변의 존경과 흠모를 받는 위치다.그러나 ‘깨끗한 청년성’과 ‘불꽃’의 열정을 잃지않는 그는 자코메티가 말한대로 ‘하나를 만들면 천개가 연달아 나오는 샘물같은 영감’과 ‘형태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에서 과일이 열리듯이 열려져 나온다’는 것을 터득한지 오래다.그래선지 ‘예술은 미의 방법을 통해 진과 선의 문제를 포용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자신의 ‘불꽃’을 내면에 감춘채 다만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면서 제2,제3의 ‘탄생’과 ‘창조’를 지금도 끊임없이 모색하는 자세다. □연보 ▲1957년 홍익대 조각과 졸업 ▲1956­59년 국전 연속 4회 특선(문교부장관상 수상) ▲1960년부터 국전추천·초대작가 ▲1963년 파리비엔날레출품(프랑스 현대미술관 작품소장) ▲1967­69년 한국미술협회이사 ▲1969년 한국현대조각회창립 회장 ▲1972년 개인전(신문회관 화랑) ▲1982년부터 현대미술초대전 초대작가 및 운영위원 ▲1984년부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조각분과위원장,동아미술제심사위원 ▲1984­86년 독립기념관 ‘추념의 장’지명공모 당선,작품제작 ▲1985년 선화랑 초대개인전,서울신문사주최 서울현대조각공모전 심사위원,한국조각가협회 창립회장 ▲1988년 88올림픽예술축제한국현대미술초대전,도시의 환경조각전 홍익대 교수,한국조각가협회회장,한국미술협회고문 아시아반공연맹최고상(57년)문교부문예상(66년)국전초대작가상·예술원장상(81년)
  • 국민의 정부 출범­취임식 이모저모

    ◎목메인 취임사 “지금은 땀·고통·눈물 필요”/16개 시도 흙·물 섞어 소나무 기념식수/보통시민 단상 초대 ‘국민의 정부’ 실감/“아 모범선진국 마지막 소원” 경축연 연설 25일 김대중 대통령의 첫날은 검소하면서도 엄숙하게 시작됐다.상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4만5천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15대 대통령 취임식은 경제난 속에서도 화합과 도약의 새출발을 선언하는 데 초점을 맞춰 성대하고 내실있게 진행됐다. ○“파탄책임 규명” 일순 긴장 ▷취임식◁ ○…상오 9시59분 김대통령이 참석자들의 박수속에 단상에 오르면서 시작됐다.김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대통령 전용승용차로 단상 뒤의 의사당 현관에 도착,국악 ‘방아타령’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단상에 오르자 단상과 단하의 참석자들은 모두 기립박수로 김대통령 내외를 맞았다. 김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통해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창달에 노력하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다짐했다.김대통령의 취임선서가 끝나자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면서 15대 대통령을 상징하는 1천500마리의 비둘기가 일제히 비상,취임식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이어 성악가 조수미씨가 등단,‘겨레의 노래’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오,동방의 나라’를 열창했다. 김대통령은 다시 연단으로 걸어 나와 ‘국난극복과 재도약의 새시대를 엽시다’라는 제목의 취임사를 22분간에 걸쳐 단호하면서도 호소력있는 음성으로 차분하게 읽어 내려갔다. 김대통령은 먼저 “정부수립 50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여야간 정권교체를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면서 온갖 시련과 장벽을 넘어 진정한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킨 국민여러분께 찬양과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현 경제위기를 지적하면서 “정치,경제,금융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에 물들지 않았던들,그리고 대기업들이 경쟁력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리지 않았던들,이러한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김대통령이 강한 어조로 ‘지도층’의 잘못을 지적하며 경제난 책임규명의지를 밝히는 순간 단상의 분위기는 다소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군장성·생도 일제히 경례 김대통령의 취임사가 끝나자 성악가 조수미,고성현씨와 연합합창단이 ‘내 나라 내 겨레’를 합창하는 가운데 김대통령의 군통수권을 상징하는 여단급이상 군기수단,전국 시·군·구기수단,63개국 해외동포 기수단 및 민간단체 기수단 등이 16개 시·도 및 이북5도 풍물패와 함께 의사당앞 광장에서 행진을 벌였다. ○…폐식선언이 끝나자 김대통령은 행진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단상에서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환송했다.이어 김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내외와 단상 아래로 내려와 잠시 악수하며 이·취임을 축하한 뒤 참석자들의 박수속에서 김전대통령 내외를 환송했다. 이어 김대통령 내외는 국회의사당 앞뜰의 국기게양대 뒷편에 ‘화합의 나무’로 명명된 12년생 소나무를 기념식수했다.기념식수에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모아 담은 합토함의 흙과 합수병의물을 사용,국민화합을 기원했다. ▷취임식장 주변◁ ○…‘화합과 도약’을 주제로 한 취임식은 국내외 귀빈뿐 아니라 환경미화원 택시기사 등 평범한 시민들도 단상에 초대돼 새정부가 ‘국민의 정부’임을 분명히 했다.취임식이 진행되는 동안 국회의사당 주변은 예년보다 3∼4도가 높은 영상 8도의 포근하고 화창한 날씨를 보여 ‘국민정부’의 출발을 축하했다. ○…취임식이 열린 국회의사당 주변은 행사 3시간 전인 상오 7시부터 줄을 이은 초청인사들로 분주했다.국회의사당 벽면에는 2개의 대형 태극기와 황금색 봉황이 날개를 펴고 날아 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엠블렘이 휘날렸다.행사장 정면에 마련된 단상은 부채꼴 모양의 내외 귀빈석과 전현직 대통령이 자리한 중앙단상으로 나뉘어 마련됐다.중앙단상은 이번 취임식의 주제인 ‘화합’과 ‘도약’을 상징하기 위해 원형으로 제작됐다.중앙단상에는 정면을 향해 오른쪽 중앙에 김대통령 내외,그리고 왼편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자리했다.또 뒤로 왼편에는 김수한 국회의장과 윤관대법원장,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대통령,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대통령이,오른쪽에는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김용준 헌법재판소장이 앉았다. 850명의 내외빈이 자리한 중앙단상 뒤쪽 부채꼴 단상에는 국민회의 조세형 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박태준 총재,국민신당 이만섭 총재 등 국내 정관계 인사들과 나카소네 야스히로,다케시타 노보루 전 일본총리,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장,팝 가수 마이클 잭슨 등 외국 축하인사들이 참석했다.이날 참석한 외국 축하인사들은 이들 외에 도이 다카코 전 일본중의원의장,피에르 모루아 전 프랑스 총리,토머스 맥라티 미국 대통령 특사를 비롯해 역대 최다인 2백40여명에 이르렀고 암치료 때문에 참석치 못한 미국의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축하메시지를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내 눈길을 모았다.당초 참석이 기대됐던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대통령등은 개인 일정 등의 이유로 참석치 못했다. ▷식전 행사◁ ○…취임식 1시간 전에 시작된 식전행사는 ‘DOC와 함께 춤을’‘젊은 그대’‘성주풀이’‘신뱃노래’ 등 대중가요와 국악,무용이 어우러지며 흥겨운 분위기속에 진행됐다.특히 지난 대선때 김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그룹 코리아나가 ‘빅토리’를 노래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기도 했다. 식전행사의 하이라이트는 국민 대화합과 민족의 도약을 상징하는 합토합수제.전국 16개 시·도의 흙과 물을 담은 합토함과 합수병을 남녀대표가 단상에 올라 보여준 뒤 국립무용단과 함께 화합의 축원무를 추면서 행사는 절정에 이르렀다. ○영광의 순간 대파노라마 ○…이날 취임식은 국내외 보도진 8백여명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인 가운데 국제적인 뉴스전문방송인 미국의 CNN이 취임식 행사를 생중계,김대통령 취임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도를 나타냈다. ▷일산자택 출발◁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새벽 5시40분쯤 잠자리에서 일어나 새정부 출범을 알리는 조간신문을 읽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의 하루를 열었다.김대통령은 부인 이여사가 “당신 축하해요”라고 덕담을 건네자 “당신도 축하해요”라고 화답했다고 박지원 공보수석이 전했다. 상오 8시 자택을 나선 김대통령은 주민 30여명으로부터 꽃다발과 함께 장도를 축하하는 인사를 받은 뒤 이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10여분 동안 석별의 정을 나눴다. ▷국립묘지 참배◁ ○…일산 자택을 출발한 김대통령은 곧바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상오 8시35분쯤 김중권 비서실장 등 청와대비서진 8명과 함께 국립묘지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는 현충탑을 찾아 헌화하고 1분간 묵념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현충문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서명한 뒤 상오 8시40분 청와대로 향했다. ○생애 처음으로 훈장받아 ▷청와대 집무◁ ○…김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의 박수속에 상오 9시 청와대 본관에 도착,15대 대통령으로서의 첫 집무를 시작했다. 김대통령은 김중권 비서실장 등 수석들과 2층 집무실에 올라가 잠시 환담한 뒤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심우영 총무처장관으로부터 무궁화대훈장을 전달받았다.김대통령이 국가로부터 받은 첫 훈장이다. 김대통령은 이어 김종필 총리와 한승헌 감사원장 지명자의 국회임명동의안 제출안에 서명하는 것으로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집무에 들어갔다. ○세종회간 1천여명 성황 ▷취임 경축연◁ ○…김대통령 내외는 하오 4시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정부 주최로 열린 대통령 취임 경축연회에 참석,대통령에 취임한 소회를 피력했다.30분동안 진행된 이날 경축연회는 정·관계,언론계,주한외교사절 등 국내외 각계 인사 1천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뤘으나 때마침 한나라당의 반대로 김종필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가 무산된 때문인듯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다. 김대통령은 인사말에서 “마지막으로 내게는 꼭 한가지 소원이 있다”며 “그것은 대통령임무를 성실하고 능력껏 잘 수행해 이 나라를 구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과 협력하고 자랑스러운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발전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축하 만찬◁ ○…김대통령은 이어 다시 청와대로 돌아와 6시30분부터 부인 이여사와 함께 본관 1층 충무실에서 취임축하 만찬을 가졌다. 이날만찬에는 3부요인와 정관계 주요인사 27명,취임축하외빈 57명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 김대중시대­김 당선자 첫날 표정

    ◎회견·국립묘지 참배 등 숨가쁜 하루/미·일 정상과 전화통화… 외교정책 등 제시/주한 미 대사 면담뒤 DJT 부부동반 만찬 19일 대통령 당선자로서 첫날을 맞은 김대중 당선자는 자신이 약속한 경제·외교 대통령의 실천을 위해 숨가쁜 하루를 보냈다.‘대국민 감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DJT 부부동반 만찬까지 야당 지도자가 아닌,예비국정 책임자로서의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가는 곳마다 승리의 기쁨보다는 구국의 책임감을 느끼는듯 비장감이 배여 있었다. 특히 클린턴 미 대통령과 하시모토 일본수상과 우방 수뇌부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향후 미·일 외교정책과 대북관계의 틀을 제시,‘준비된 대통령’임을 과시했다. ○국민전폭 협조당부 ○…김당선자는 이날 국회 의사당 본청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당선자로서 공식일정을 시작했다.상오 9시 국민회의 자민련 양당 당직자 50여명이 도열한 가운데 김당선자는 “국민 여러분도 아낌없는 지원을 주시고 고난을 함께 나눌 준비도 필요하다”며 전폭적인 국민적 협조를 당부. 이어 의원회관 대회의실로 자리를 옮긴 김당선자는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열어 나가자’는 내용의 회견문을 낭독한 후 국정 운영방향과 당면한 경제난 타개방향에 대한 비전을 제시. ○‘만세귀향’ 휘호 남겨 ○…회견후 김당선자는 곧바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았다.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박태준 총재 등 양당 당직자 50여명과 함께 현충탑에 분향한 김당선자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업을 인식하는 듯 시종 엄숙함이 배여 있었다. 참배후 김당선자는 방명록에 ‘만세유향’이라는 휘호를 남겼다.수행했던 한 관계자는 “훌륭한 정치를 펴 반드시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겠다는 의지표현”이라고 귀띔을 했다.이어 국립묘지 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 참배한 뒤 하오엔 수유리 4·19 묘역을 찾았다. ○청와대 경호진 투입 ○…이날 청와대 경호진 40여명이 처음으로 김당선자의 경호업무에 투입됐고 이날 저녁부터 경호 관계상 일산자택의 공개도 금지키로 결정,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한편 김광석 청와대 경호실장은 이날 상오 국회 총재실로 김당선자를 찾아 경호업무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그러나 김실장은 배석자를 물리치고 김당선자와 단둘이서 10분간 밀담을 나눠 관심을 모았다. 한 측근은 “20일 청와대 오찬회동에 앞서 김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라고 밝혔으나 내용에 대해선 함구. ○대북관계의 틀 제시 ○…김당선자는 상오 11시47분 클린턴 미대통령과 하시모토 일본수상과 연 이은 전화통화를 가졌다.17분간의 통화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정치의 진보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신 김당선자께서 위대한 순간을 맞이한데 대해 축하와 함께 존경을 보낸다”고 축하인사를 했다.이에 김당선자는 간단한 사의를 표한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전통적인 안보경제 협력의 유지·강화 ▲남북 대화지지 요청 등 5가지의 대미정책의 틀을 제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귀하의 역정과 민주화 과업에 대한 헌신적 노력에 비춰 한국은 어떠한 정치 지도자도 할수없는 과업을 해낼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며 기대감을 표출했다고 정동영 대변인이 전언.하시모토 일본수상에게도 전통적인협력 관계의 강화를 당부하면서 IMF가 위기의 한국경제에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한편 하오 4시 보스워스 주한미국 대사와 일산자택에서 면담을 갖고 “IMF협약에 대해 신정부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뒤 “미국정부도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며 지원을 요청했다. ○…당선자로서의 첫날은 이날 저녁 DJT 부부동반 만찬으로 끝을 맺었다.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자민련 박태준 총재 부부를 일산자택으로 초청,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3일간 인터뷰 사양 이에앞서 이날 새벽 당선이 확정된 후 일체의 축하전화를 사양한 채 정책구상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졌다.정동영 대변인은 “앞으로 3일간 일체의 인터뷰를 사양한다”며 “김당선자가 이 기간동안 국정운영 구상에 몰두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당선자는 이날 7시 40분쯤 당선직후 처음으로 국민에게 모습을 드러냈다.이희호 여사와 나란히 자택 뜰앞에서 나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례하면서 “이번 승리는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경제와 민주주의를 똑같이 중시하는 정책으로 변화하게 됐음을 의미한다”며 이번 대선승리의 의미를 부여했다.
  • 김 대통령 보훈의 달 안보챙기기

    ◎현충일 추념식 참석·보훈병원 환자들 위로/오늘 군 주요지휘관과 오찬… 경계강화 당부 김영삼 대통령은 6일 제42회 현충일 맞아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데 이어 둔촌동 소재 보훈병원을 찾았다.7일에는 군 주요 지휘관들과 오찬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지난 5일 서해상에서 북한경비정이 도발하는 등 북한의 최근 동향이 심상치않다고 보고 「안보」를 바짝 챙기고 있다. ○…김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국론결집,대동단결」을 강조했다.김대통령은 『말로만 하는 애국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진정한 애국심이 어느 때보다 소중한 오늘』이라며 『조국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김대통령은 『경쟁력을 갖춘 나라,선진된 통일민주국가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의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김수한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 등 3부요인들과 국가유공자 단체 및 유족대표 그리고 학생대표와 함께 현충탑에 헌화·분향했다.각계 인사 5천여명이 참석한추념식은 헌화분향과 김대통령의 추념사,헌시낭송 등의 순으로 20여분간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추념식 참석에 이어 보훈병원을 방문,6층 병실 두 곳을 들러 입원치료중인 환자들을 격려했다.김대통령은 척추 협착증 수술을 받은 최귀복씨(70) 등 보훈환자들의 손을 잡으며 『용기를 가지십시요.나으실겁니다』고 위로했다.김대통령은 병원관계자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정성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 황장엽씨/순국열사앞에 고개 숙여/국립현충원 참배

    ◎북 만행 설명엔 “그러고도 남는다” 서울 도착 나흘째인 황장엽씨와 김덕홍씨는 23일 상오 6시20분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현충탑에 도착해 엄숙한 표정으로 헌화,분향한 뒤 호국영령 앞에 참배했다. 황씨는 이어 방명록에 「조국과 민족을 위해 한 생을 바친 애국열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그 뜻을 따라 배우며 민족앞에 지은 죄를 씻고서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합니다」라고 기록한 뒤 『현충원의 경관이 참 좋으며 옛날식 건물로 잘 지어놓았다』고 말했다. 황씨는 지난 70년 6월에 북한이 현충문을 폭파해 다시 복원했다고 한 관계자가 설명하자 『북한은 그렇게 하고도 남는다.60년대 서울침투(68·1·21 청와대 기습)사건이나 최근 잠수함 침투사건들이 다 그런것 아니냐.북한은 일을 저질러 놓고도 절대 시인을 하지 않고 덮어씌우는 어거지를 부린다』고 답했다. 이에 앞서 현충원으로 가던 차속에서 황씨는 『부산까지 갔다오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고 안내자가 『도로가 막히지 않으면 고속도로로 5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고 설명하자 『아침에 가면 저녁에 돌아올 수 있겠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한편 미국 뉴욕에서 열린 남·북한,미국간의 4자회담 설명회 후속협의회(4·14∼21일)를 끝내고 돌아온 외무부 유명환 북미국장은 『회담에 나온 북측 대표에게 황장엽씨 입국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황가요?」라는 한마디로 일축했다』면서 황씨사건을 외면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 모범용사 국립묘지 참배/62명 5박6일간 산업시찰

    ◎본사 손사장과 오찬 황보훈처장과 만찬 서울신문사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마련한 「제33회 국군 모범용사 초대」행사가 24일 전군에서 선발된 62명의 모범용사와 배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5박6일 일정으로 시작됐다. 모범용사들은 이날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에 참배하고 손주환서울신문사장의 초대로 오찬을 가진뒤 조순서울시장과 이종률국회사무총장을 예방했다. 손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국토수호의 성스런 임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군용사들의 헌신적이고 실천적인 조국애에 경의를 표한다』며 노고를 위로했다. 황창평 국가보훈처장도 워커힐 선플라워룸에서 만찬을 베풀고 모범용사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모범용사들은 25일 독립기념관과 대전 엑스피아월드를 관람하며,26일 광주시내 고적지 답사,27일 광양제철소 견학 등의 행사가 이어진다.각 시·도기관장을 만나 대화하는 시간도 갖는다. 28일 경주를 거쳐 서울에 도착,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한뒤 29일 국가안전기획부를 방문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을 마친다.〈박용현 기자〉
  • 김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오늘 우리는 마흔한번째 현충일을 맞아 나라를 위해 신명을 바치신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그 분들의 위훈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전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의 영전에 다 함께 머리 숙여 안식과 명복을 빌고 감사와 경의를 표했습니다.온 국민은 지금 이 순간 조국의 의미를 새롭게 헤아리고,진정한 나라사랑,참다운 겨레사랑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슴속 깊이 되새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애국선열들은 빼앗긴 나라의 광복을 위해 낯선 이국땅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을 위한 투쟁에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는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자존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6·25전쟁때는 수십만 용사들이 이땅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위해 장렬히 산화했습니다.우리는 애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민주주의와 정의가 바로 선 나라를 만들기위해 그동안 참으로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민주주의와 번영은 애국선열과 호국용사들이 뿌린 희생의 씨앗을 우리의 피와 땀으로 가꾸어낸 소중한 열매라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열과 호국용사들의 충의를 현창하고 그 후손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것은 역사를 바로세우는 첫걸음입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기위해 우리는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해외에 흩어진 애국선열의 유해를 이곳에 옮겨 모시고,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는 동시에 독립운동유적지를 복원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국가유공자와 그 후손들이 명예와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4·19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를 회복하고 12·12군사 쿠데타를 단죄하는 것도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입니다.역사가 바로서야 법과 정의가 구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정의와 법이 살아있어야 나라를 바로세우고 미래를 올바로 열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그분들의 충의와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온 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합니다. 순국선열과 전몰용사들이 몸바쳐 다시 찾고,지킨 이 나라를 물려받은 우리는 그 분들이 못다이룬 뜻을 펴나가야하는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온 겨레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자주독립국가의 건설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활약하는 일류국가,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적극 기여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호국영령들의 유지를 받드는 길입니다.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있는 나라,세계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통일국가를 만들어 선열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룩해야 합니다. 애국영령들의 영전에서 21세기 세계 중심국가를 건설하여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열어 나갈 것을 다함께 다짐합시다.오늘 뜻깊은 현충일을 맞아 저는 다시 한번 선열들의 영전에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온 국민의 이름으로 삼가 추념사를 올립니다. 호국영령들이시여,부디 안식을 누리소서.
  • 김 대통령 추념식 직접 참석 의미

    ◎현충일/국민단합의 재전으로 자리매김/유공자위상 정립·문민정통성 재천명/야 등원거부로 입법부대표 배석 못해 김영삼대통령은 관례를 깨고 6일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했다.추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80년을 제외하고는 75년이래 이번이 처음이다.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식 참석은 주변상황과 관련,중요한 뜻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 추념식에는 3부요인중 입법부대표인 국회의장이 참석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김수한 국회의장내정자가 야당의 저지로 정식 선출되지 못해 의원자격으로 단하에 자리했기 때문이다.여야 정당대표들도 초청됐으나 김대중 국민회의·김종필 자민련·이기택 민주당총재 등 야당측은 모두 불참했다. ○…지난 70년 북한 공작원의 소행으로 보이는 현충문폭파사건이 발생,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위해를 입을뻔한 사건이 있었다.그뒤 경호상의 문제가 제기되어 75년부터 국무총리가 추념식을 주재해왔다.83년부터 87년까지는 행사가 국립극장에서 간소하게 진행되기도 했다. 현충일은 순국선열과 전몰 호국영령의 충절을 기리는 범국가적 제전의식이다.이제까지 정부 스스로 의식의 격을 떨어뜨림으로써 국민들도 현충일의 의미를 실감치 못했던 측면이 있다. 지난해까지 김대통령은 현충일 하루전쯤 국립묘지를 참배했으나 추념식에는 총리를 참석시켰다.이번에 김대통령은 추념식 주재를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군의 올바른 자리매김 등 역사바로세우기 추진이후 현충일을 사회분위기 일신과 국민단합을 도모하는 범국민적 제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소신에 따른 것이란게 청와대관계자들의 설명이다.취임초부터 순국선열 유해봉환을 추진해온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안보상황과 목전에 다가온 통일에 대비,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도 현충일의 의미를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김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국가유공자위상의 재정립과 함께 문민정부 정통성을 다시 과시한다는 뜻도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한데 이어 강동구 둔촌동소재 보훈병원을 방문해 국가유공보훈환자들을 위로했다.김대통령은 이날 상오10시 황창평 보훈처장과 함께 승용차편으로 국립묘지에 도착해 이양호 국방·김우석 내무장관,김시복 보훈처차장의 영접을 받고 현충문앞 옥외행사장으로 이동해 윤인 대법원장을 비롯,국가유공자단체대표및 유족대표들과 함께 현충탑에 헌화·분향했다 이날 추념식에는 이홍구 신한국당대표 및 국무위원과 유족,시민등 각계대표 5천여명이 참석했다.〈이목희 기자〉
  •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현충일(송정숙 칼럼)

    21년만이다. 『…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우리는 대통령의 육성으로 읽는 현충일 기념사를 들었다.다 읽고난 끝에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독!」하고 덧붙이는 소리를 듣지않아도 되는 기념사였다.분초를 쪼개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행사에 다 대통령이 참석하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그러나 그자리서만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꼭 보고싶은 자리가 있고 대통령의 육성으로 꼭 듣고싶은 기념사가 있다.현충일은 그런 날이다. 왜냐하면 이날은 국가의 근본을 생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목숨을 총탄삼아 나라위해 바친 영령들이,빛나게 발전해가는 조국을 못잊어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날이기도 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됨』을 강조하며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자고 호소하는 기념사를 듣게된 올해 현충일은 각별했다. 그래서 『온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결의에 뜨거운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56년에 훈충일이 제정된 뒤 꼭 40년이 지났다.70년 북한 공작원의 박대통령 위해폭파사건이었던 현충문사고 이후 현충일 추념제전의 의식은 국무총리 참석을 전례로 해왔다.그 의식이 올해로 격상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밀림에서 전사한 전우를 밤마다 보는 괴로움때문에 정신을 앓는 영화가 있다.불타는 밀림에서 피투성이가 된 전우가 손을 저으며 『나를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절규하는 악몽이다.그 역시 베트남 베테랑인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위싱턴에 있는 베트남전 기념공원을 찾아간다.그곳의 그 장엄하고도 비장한 검은 기념비에서 깨알처럼 새겨진 전우의 이름을 확인하고,울며 쓰다듬어보고 그리고 소리높이 이름불러 그 전우가 돌아왔음을 느껴보고 나서야 정신증세를 가라앉히게하는 장면이 있다. 전장에 버려진 전쟁용사들을 위해 조국은,그 이름을 확인하고 울며 쓰다듬어보고 소리높이 불러서 위로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우리는 그런 일에 소홀해 왔다.현충일마저 그저 전몰군경 유가족의 제삿날정도로 생각하거나 더러는 그냥 쉬는날로 생각하여 행락인파가 혼잡을 이루는 날로 여기게도 되었으며 조기같은걸 다는 일은 아예 잊고 지내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세월에 퇴색하기 쉬우므로 이런 현상은 적건 많건 나타난다.그러나 제전의 의식이 약해짐으로써 그것을 촉진시키는 허물까지 우리는 저질러온 것이다.게다가 우리는 어쩐일인지 많은 진보연하는 지식인들의 폄하까지 곁들여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싸운 용사」를 기리는 일을 주눅들게 만들기도 한 혐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잡혀야 한다.그런 계기를 이번의 「의식 격상」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맛보게 한다.그것은 과거 지향의 것이 아니므로 희망이다.사회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국가 목표를 향해 가야 할 지금에 바로 맞는 희망이다.21세기 세계중심국가 건설,한민족 통일국가 이룩,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등 나라의 진운을 걸어야 할 하고많은 과제들을 성취하는 원동력을 그곳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다.국민안보의식과 애국심 고취는 올바른 시민정신 함양의 기저를 이루기때문이다.「바로 세워지는 역사」의 출발점도 그곳에서 비롯된다. 4반세기 만에야 「격하」를 회복하고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 삼가 국민의 이름으로 추념사를』를 올리고 호국영령들앞에 「빛나는 미래」를 다짐하는 대통령을 보는 일은 안도와 기쁨이다.〈고문〉
  • 대전국립묘지에 1천5위모셔

    ◎6·25때 전설의 유격대/켈로부대원 위패 봉안/휴전가지 4,445차례 전투/기습작전으로 7만여명 살상 6.25전쟁때 군번도 계급도 없이 북한 및 38선 접경지역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다 숨져간 유격대원 1천5위에 대한 위패봉안식이 대전국립묘지 현충탑에서 15일 하오 「한국유격군전우회 총연합회」회원및 국방부관계자 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 「한국유격군전우회 총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50년6월 북한군이 남침하자 공산집단에 맞서 일어선 청년,학생등 유격대원들은 4만여명에 이른다.이들은 38선 접경 동·서해연안 30여개 도서에서 해상침투와 적후방교란 등 기습작전에 참여했다. 이번에 봉안된 1천5위의 혼령들은 이들중의 일부다. 이들은 그동안 시신이 없으면 국립묘지에 봉안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그대로 방치돼오다 40여년만에 안치됐다.지난해 6월 2천4백10위의 위패가 대전국립묘지에 봉안된데 이어 두번째다. 흔히 「켈로부대」라고 불린 유격부대중 「돈키부대」와 「울프 팩」등이 특히 유명했다.이들 부대는 백령도와 강화·교동도에 각각 1만2천여명,속초·주문진에 6천여명,영도·덕소에 1천여명이 활동했으며 지역별로 「구월산」 「백호」 「백마」 「커크랜드」 「타이거여단」 「활민」 등 별도의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이들은 휴전때까지 모두 4천4백45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여 7만여명의 적을 살상했다. 유격부대원들은 휴전후인 54년2월 7백53명이 장교로,1만2천여명이 사병으로 입대하는 등 우리 육군에 편입됨으로써 발전적으로 해체됐다. 권승훈 유격군전우회총연합회 사무국장은 『6.25기간중 모두 1만여명의 유격대원들이 전사 또는 실종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때늦은 감이 있지만 국립묘지에 안장돼 고인들에 대한 짐을 던 것같다』고 말했다.〈구본영 기자〉
  • 고속도 시속 140㎞ “과속귀향”/전씨 소환 불응­합천행 스케치

    ◎“국민위해 일했다” 선영입구 즉석 연설/영장발부 소식에 측근행동 오락가락 전두환 전 대통령은 2일 검찰의 「12·12」재수사에 결코 협조하지 않는 것은 물론 현정권과 정면대결도 불사한다는 강경한 대국민담화문을 전격 발표하고,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 ○…전씨는 이날 상오9시 검정색 오버코트에 흰 목도리 차림으로 1백50여명의 취재진이 대기중이던 연희동 자택 앞길에서 측근들이 밤새 작성한 담화문을 낭독.전씨는 이원홍 허문도씨 등 측근이 둘러싼 가운데 8분남짓 계속된 발표 중간중간 입을 굳게 다무는 심각한 표정을 보이며 시종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발표문 낭독을 마친 전씨는 장세동,안현태씨 등 20여명의 측근·수행원과 함께 강경순국립묘지 관리소장의 안내를 받아 현충탑에 헌화·분향.5분여 참배를 마친 전씨는 방명록에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이라고 서명한 뒤 9시38분쯤 승용차를 타고 고향인 합천으로 쫓기듯 황급히 출발. ○…전씨의 대국민담화문은 1일 하오 2시쯤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고 16시간동안 군 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대적인 준비작업 끝에 나왔다.전씨의 법률고문인 이양우변호사는 소환통보를 받고 장세동씨 등 측근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며 측근들은 택시 등을 이용,스위스 그랜드호텔에 집결.가명으로 예약된 호텔의 방에 모인 이변호사,장씨,안현태 전 경호실장,허문도 전 문공장관,정관용 전 총무처장관,이학봉 전 의원,박영수 전 청와대 비서실장,민정기비서관 등은 소환에 응할지를 토론한 끝에 「불응」쪽으로 결론.성명서 작업 「실무팀」은 사안별로 초안에 관한 윤곽을 제시하는 공동집필 형식으로 담화문을 작성. 이 가운데 김대통령의 역사관 제시 요구 등 「좌파운동권」 부분은 허씨가 기초적인 틀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밤 10시까지 개별적으로 연희동 전씨집에 복귀한 뒤 2일 새벽 1시30분까지 전씨와 담화문의 강도를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묘지를 떠나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을 통과한 전씨의 승용차는 7대의 수행차량의 경호를 받으며 평균시속 1백40㎞의 과속으로 질주. 전씨는 하오 2시30분쯤 합천군 율곡면 기리 선영에 도착,5백여명의 주민들과 친인척들의 마중을 받고 『최근 정치상황이 복잡해져서 잘못하면 고향을 찾아보지 못할 것 같아 오늘은 선영에 인사나 하고 귀경할 생각』이라며 고향방문 배경을 설명.고향마을 청년단체인 율곡청년회 등이 내건 플래카드가 나붙은 선영입구에서 즉석 연설에 나선 전씨는 관광버스 등으로 미리 대기하고 있던 환영인파에 다소 고무되기라도 한 듯 『나는 합천 출신으로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친형인 전기환씨 등과 함께 선친 묘소에 성묘를 마친 전씨는 이어 핵심측근들을 거느리고 내천리 생가에 도착,5촌 장조카인 규명씨 집에 여장을 풀었다.측근들이 합천읍내로 나간 사이 전씨의 동생 경환씨가 하오 10시20분쯤 형의 숙소로 들어가 밀담.이날밤 11시30분쯤 장씨는 읍내에서 전씨에 대한 영장발부 소식을 듣고 『역사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는 등 김영삼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말을 하고 기자들에게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제의했다가 『그냥 잠이나 자자』고 말하는 등 오락가락.
  • 만델라 대통령 방한 첫날 이모저모/서울대서 명예철박학위 받고 연설

    ◎한­남아공 압제 이겨낸 공통 역사­만델라 김영삼 대통령의 초청으로 6일 하오 공식 방한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서울공항 환영식 참석에 이어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서울대에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이날 저녁에는 이홍구국무총리가 주최한 비공식 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공항행사◁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하오 1시 알프레드 은조 외무장관등 15명의 공식수행원과 함께 팔콘 900A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는 가운데 특별기에서 내린 만델라 대통령은 영접나온 공로명 외무부장관 내외 및 문동석 외무부의전장과 악수를 나눈 뒤 공장관에게 스와질랜드 국왕의 동생과 결혼한 딸 제나니 만델라 들라미니씨(37)와 각료급 수행원등을 소개. 만델라 대통령은 이어 도보로 3군 의장대를 사열한 뒤 문의전장 안내로 우리측 환영인사와 인사를 나누고 딸과 함께 박재준군(상명사대부국 5년)과 조은정양(신동국 5년)으로부터 화환을 전달받았다. 이어 승용차편으로 국립묘지에도착한 만델라대통령은 국립묘지관리소장의 안내로 일행과 함께 현충탑으로 이동,헌화하고 묵념. ▷박사학위 수여식◁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하오 3시30분 서울대 문화관대강당에서 이수성 서울대총장으로부터 인류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만델라 대통령은 학위 수락 연설에서 『대한민국 땅을 밟은지 불과 3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한국인들의 호의를 물씬 느낄 수 있다』고 말문을 연 뒤 『본인과 남아공 모든 국민에게 영광스러운 명예박사학위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어 『한국과 남아공은 식민지 지배와 압제를 이겨낸 공통된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이에 양국은 저항과 대립의 자세에서 벗어나 탐구와 발전을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서로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학문을 통한 인재양성, 국가발전, 인류번영에의 기여라는 서울대의 교육목표는 세계 각처에서 지식에 굶주리는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총장,윤천주·권이혁·조완규·김종운전총장,김재순동창회장 등 서울대측 관계자들과 만델라대통령의 공식수행원 등 4백50여명이 참석했다. ▷만찬◁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숙소인 신라호텔 23층 에뜨왈룸에서 이총리가 마련한 만찬에 참석했다. 이날 만찬은 이총리가 만델라 대통령의 카운터파트가 아닌 관계로 비공식으로 진행됐으며 『만찬사도 없는 글자 그대로 저녁을 나누며 우의를 다지는 환영만찬이었다』고 총리실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우리측에서는 이총리 외에 공외무장관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 최상덕 주남아공대사 송태호 총리비서실장 이양 외무부서아시아아프리카국장이 참석했고 남아공측에서는 은조 외무장관 마뉴엘 상공장관 에반스 외무차관 네시텐제 공보실장 환세일 주한남아공대사가 참석했다.
  • 「삼풍」수습현장 지휘후 국립묘지참배/조순 민선 서울시장 취임이틀째

    ◎병원들러 부상자·유가족 일일이 위로/“국무회의서 서울 살림살이 관련 건의” 조순 서울시장은 취임 둘째 날인 2일에도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등 바쁜 일정.그는 지난 1일 0시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에서 시장 직무를 시작했다. ○…조시장은 이 날 삼풍백화점 현장에서 한 시간 가량 구조작업을 지휘한 뒤 9시쯤 김의재 기획관리실장 등 간부들과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했다.점퍼 차림으로 도착한 조시장은 준비한 양복으로 갈아입고 현충탑에 헌화 분향.이어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역과 수유동 4·19 국립묘지도 차례로 참배. 조시장의 측근은 『취임 첫날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이 관례이나 삼풍 사고로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늦췄으며 김구 선생 묘소와 4·19묘지 참배는 민선 시장으로서 새로운 관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시장은 4·19 묘지의 영정이 모셔진 유영봉안소에서 아산 현충사에 있는 「취의정충 광어단성」(의로움으로 정성을 다 해 충성을 다하는 것은 단군성인보다 거룩하고 빛난다)이라는 문구로 묘역을 찾은 심경을 피력. ○…조시장은 광화문 부근 대중 음식점에서 간부 및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전날 김영삼 대통령과의 대담 내용에 화제가 모아지자 『별 얘기는 없었다』며 『국무회의에 참석해 서울시의 살림살이와 관련해 건의할 것이 있으면 하겠다』고 말했다. 조시장은 음식점에서 김두한 전 의원의 딸로 동대문구에서 시 의원에 당선된 탤런트 김을동(여)씨를 우연히 만나 기념촬영을 하기도. ○…하오에는 전날 김영삼 대통령의 사고현장 방문 안내로 취소한 중대부속병원과 순천향병원에 들러 부상자와 사망자 유가족을 일일이 위로한 뒤 사고 현장을 또다시 방문하는 등 사고 수습에 안간힘. ○…그는 취임 첫 날인 1일 하오 5시 쯤 법적으로 시장이 된 지 17시간 만에 시장 집무실에 도착.시청 직원들은 『넥타이를 매지 않은 노 타이 차림에 모자를 쓴 모습으로 부임한 시장은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
  • 호국의 넋 기려…/어제 제40회 현충일 추념식 엄수

    ◎동작동 국립묘지 참배객 줄이어 제40회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현충일 추념식은 이날 상오 10시 이홍구 국무총리·황낙주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 등 3부요인과 전몰군경 유족,시민 등 2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묘지 현충탑 앞뜰에서 국가보훈처주관으로 엄수됐다. 이 총리는 이날 추념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들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의 성스러운 희생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라고 호국영령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한편 이른 새벽부터 손에 꽃을 든 참배객들이 몰리기 시작해 이날 하룻동안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참배객 20여만명이 다녀갔다. 이날 상오 10시30분쯤에는 지난 83년 2월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 공군대위 출신 이웅평 중령(41·공군대학 교관) 등 귀순자 30여명이 국립묘지를 참배,눈길을 끌었다.
  • 조창호씨 위패 삭제/이국방에 중위진급 신고/보국훈장받고 오늘 전역

    김영삼대통령은 25일 하오 북한을 43년만에 탈출,지난달 조국으로 돌아온 조창호씨(64)를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같이하며 격려한뒤 보국훈장 통일장(1등급)을 수여했다. 보국훈장 통일장은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올해 국군의 날 해·공군참모총장 및 육군 2군 사령관에게 수여됐었다. 조씨는 이에 앞서 이날 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호국영령들에게 헌화·분향한뒤 자신의 위패를 제거하고 국방부에서 이병태국방장관에게 중위 진급신고를 가졌다. 조씨의 진급신고는 26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릴 전역식에 앞서 이루어진 것으로 조씨는 43년만에 소위에서 한 계급 진급한 중위신분으로 군을 떠나게 됐다. ○…북한탈출 후 첫 외출을 나온 조창호씨는 이날 상오10시 소위 계급장을 단 정복차림으로 국립묘지에 도착.조씨는 장태완 재향군인회장등 관계자와 모교인 경기상고 학생등 1백여명과 함께 의장대 사열을 받은뒤 현충탑에 「조창호 소위」라고 적힌 대형 화환을 헌화하고 묵념. 조씨는 이어 현충탑 지하영현봉안관실 검은 대리석에 흰 글씨로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준비해간 검은 테이프로 가리는 것으로 위패삭제식을 대신.
  • 조씨 국립묘지에 위패 봉안중/「전사자규정」에 따라 77년 사망처리

    ◎생존자로 밝혀져 「위패삭제」 첫 기록 6·25 참전중 포로로 잡혀 납북됐다 43년만에 탈출한 전 육군소위 조창호씨(64)는 지난 77년이후 전사자로 처리돼 동작동 국립묘지 위패실에 봉안돼 있는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이에따라 조씨는 국립묘지에 위패가 봉안된 사람 중 생존자로 밝혀져 위패를 삭제하게된 최초의 인물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국립묘지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6·25 참전 군인이나 경찰·군무원중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경우,「전사자 처리규정」에 따라 실종된지 25년이 지나면 전사자로 처리돼 위패를 봉안하게 되는데 위패가 봉안된 사람중 살아돌아온 경우는 조씨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조씨의 위패는 국립묘지 현충탑 지하에 설치된 위패실 좌측 대리석에 「육군 중위 조창호」라는 명단으로 새겨져있다. 조씨의 위패 카드번호는 47­8­052로 이 카드에는 성명과 함께 육군 중위로 추서된 계급,소속 사단,군번,사망일자,유가족 이름과 주소 등이 기록돼 있다. 조씨의 위패카드에는 육군 9사단 소속 육군 중위,군번 211366,사망일자 51년9월10일이라고 적혀 있다. 또 유가족난에는 부친 조영국씨의 성명과 서울 종로구 효자동 165라는 조씨의 당시 주소가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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