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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천안함 추모 화환 명판 떼어낸 한국당 관계자 약식기소

    대통령 천안함 추모 화환 명판 떼어낸 한국당 관계자 약식기소

    검찰, 대전시당 관계자 벌금 200만원 약식기소 올해 서해수호의 날 대전 현충원 내 천안함 46용사 묘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추모 화환의 명판을 떼어 놓은 자유한국당 관계자에 대해 검찰이 약식 기소했다. 7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검찰은 한국당 대전시당 관계자 A씨에게 공용물건손상죄를 물어 벌금 20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렸다. 약식 기소(구약식)는 검사가 정식 재판 대신 벌금형을 내려 달라고 법원에 약식명령을 청구하는 것을 뜻한다. 위계 공무집행방해 부분에 대해선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A씨는 제4회 서해수호의 날인 지난 3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 앞에 세워져 있던 대통령 명의 추모 화환 명판을 떼어 화환 뒤편 땅바닥에 뒤집어 놓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명의의 추모 화환 명판도 함께 제거됐지만, 누가 그랬는지 특정되지 않았다. 명판 손상은 황교안 한국당 대표 일행이 도착하기 직전 벌어졌다. 명판은 황교안 대표 일행이 이동한 후 제자리를 찾았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의뢰로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A씨가 대통령 명판을 뗀 것으로 보고 검찰에 기소 의견을 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부고] 이석환씨 모친상, 정홍헌씨 모친상, 김능환씨 부친상

    ●이석민·석준·석환(롯데케미칼 경영지원본부장)씨 모친상, 10월31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7호실, 발인 3일 오전 7시30분, 장지 국립대전현충원 02-3410-3151 ●정홍헌(청주시 노인지원팀장)씨 모친상, 10월 31일 오후 3시, 음성군 금왕농협연합장례식장 국화실, 발인 2일 오전 11시. 043-883-9445 ●김능환(KB국민카드 부사장)·김준환(사업)·김윤희씨 부친상, 김종호(서울 강북구청 팀장)씨 장인상, 1일 오전 3시 41분께,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 발인 3일 오전 5시. 02-2227-7580
  • 새 유전자 검사로… 6·25 전사자, 발굴 10년 만에 가족 품에

    새 유전자 검사로… 6·25 전사자, 발굴 10년 만에 가족 품에

    호국영웅 귀환 행사… 재검사로 확인2009년 강원 인제군 일대에서 발굴된 6·25 참전용사의 유해가 10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 품에 돌아갔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31일 경기 부천 보훈회관에서 고 김영인 육군 결사유격대원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고 유가족에게 신원확인통지서 등을 전달했다. 행사에서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김 대원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국가보훈처장 위로패와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전했다. 김 대원은 1951년 1월 28세에 육군 결사유격대 제11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같은 해 2∼3월쯤 설악산 일대 침투 작전 중 매복한 인민군의 총격을 받고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대원은 1923년 경기 화성시 향남읍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18세에 결혼해 네 자녀를 두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입대했다. 김 대원의 유해는 2009년 9월 인제군 일대에서 완전한 형태로 발굴됐지만 당시에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국방부는 2013년부터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을 도입했으며 지난 6월부터는 2013년 이전에 검사했던 6·25 전사자의 유해를 재검사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초 아들 김해수(75)씨가 등록한 DNA를 통해 김 대원의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으로 유해를 재검사해 신원을 확인한 사례는 김 대원이 처음이다. 김 대원의 유해는 유가족과 협의를 거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항일 결사대 애국지사 방경한 선생 별세

    항일 결사대 애국지사 방경한 선생 별세

    일제강점기 만주 일대에서 항일 결사대로 활약했던 애국지사 방경한 선생이 27일 별세했다. 97세. 충남 홍성 출신인 방 선생은 1940년 중국 지린성에서 대종교 3대 교주 윤세복으로부터 독립운동의 거점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활동했다. 1945년 일본군 수송대를 기습해 전원을 살해하는 전과를 거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과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9일,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이다.
  • [서울포토] 박정희 40주년 추도식 참석 박근령 부부

    [서울포토] 박정희 40주년 추도식 참석 박근령 부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과 남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서거 40주기 추도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민족중흥회 주관으로 열린 추도식에는 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우리공화당 조원진·홍문종 공동대표 등 정치권 인사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교안, 文 겨냥 “대통령 리더십 상실…박정희 정신 배워야”

    황교안, 文 겨냥 “대통령 리더십 상실…박정희 정신 배워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제40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7일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해 “대통령 리더십이 상실된 지금 대한민국은 좌표를 완전히 잃어버렸다”면서 “박정희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을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독보적인 성취와 성공의 기적을 일구어낸 분으로서 박정희 정신을 배워야 한다”면서 “지도자의 실존적 고민이 필요한 시간”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해 “정치, 경제, 안보, 민생 등 국정은 망망대해에서 방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 뒤 “한국당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책임지며 이끌어 왔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실천하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일궈왔다”고 강조했다. 황 대표는 “이제 그 역사에 부여된 책임에 더욱 충실해야 하고, 우리 스스로 혁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정 난맥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으로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당위성을 부여했다. 황 대표는 전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제40주기 추도식에 참석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0주기 추도식… 묵념하는 황교안·나경원

    [포토]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0주기 추도식… 묵념하는 황교안·나경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0주기 추도식에서 박 전 대통령 묘소에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2019.10.26 뉴스1
  • 노신영 전 총리 별세 정치권 애도 물결… 반기문 전 총장 “고인은 스승 같은 분”

    노신영 전 총리 별세 정치권 애도 물결… 반기문 전 총장 “고인은 스승 같은 분”

    지난 21일 89세로 별세한 노신영 전 국무총리에 대해 정치권이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22일 페이스북에 “저에게 고인은 외교부 선배를 넘어 스승 같은 분이었다”며 “오늘날 외교관, 공직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조금이라도 내세울 점이 있다면 대부분은 고인 덕분이다”고 했다. 노 전 총리는 반 전 사무총장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페이스북에 “고인이 외무장관과 국무총리로 일하셨던 기간에 저는 담당기자였다. 감사드린다.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노 총리는 제5공화국에서 요직을 두루 역임했고, 특히 외교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1955년 외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 노 전 총리는 5공 정권이 들어선 1980년에 고시 출신 외교관으로서 처음으로 외무부 장관 자리에 올랐다. 이후 국가안전기획부장, 국무총리 등을 거쳤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로 발인은 오는 25일,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서울포토] 제99주년 한국독립군 3대대첩 기념식

    [서울포토] 제99주년 한국독립군 3대대첩 기념식

    21일 서울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99주년 한국독립군 3대대첩 기념식에 참석한 조영진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을 비롯한 독립지사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2019.10.21 박지환기자 popocar@seoul.co.kr
  • [부고] 최외홍씨 모친상, 장정욱씨 장모상, 김환기씨 장모상, 정길훈씨 장인상

    ●최외홍(삼성전자 고문)·최영택(최영택 신경정신과 원장)·최종한(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씨 모친상, 배순대(건우중기 대표)·송동훈(경원고등학교 교사)씨 장모상, 19일 오전 6시46분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20일부터 17호실), 발인 22일 오전 6시, 장지 대전현충원. 02-3410-6915(20일부터 6917) ●최민호(전 제일제당 법인영업팀장)·최민희·최정희·최주호(전 오크밸리 식음팀과장)·최평호(영신디엔씨 미래전략본부장)씨 모친상, 양광석(전 LG투자증권 지점장)·장정욱 (KTB 투자증권 커뮤니케이션실장)씨 장모상, 채선희(서일국제경영고 교사)씨 시모상, 19일 오후 1시30분께,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 특3호실, 발인 22일 오전 11시. 02-2650-2743 ●김환기(경인일보 북부2권 취재본부장)씨 장모상, 19일 오후 7시, 광주광역시 천지장례식장, 발인 22일 오전 8시. 010-5336-5113, 062-527-1000 ●정길훈(KBS광주총국 보도국장) 씨 장인상,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만평장례식장 301호, 발인 22일 오전 9시. 062-611-0000
  • 초상화 속 6·25 전사 부친, 68년 만에 찾아

    초상화 속 6·25 전사 부친, 68년 만에 찾아

    2011년 강원 평창군 일대에서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8년 만에 확인됐다. 딸이 사전에 등록한 유전자(DNA) 시료와 유전자 검사기법의 향상 덕택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11년 5월 6일 강원 평창군 면온리 일대에서 발굴한 유해에 대해 김홍조 하사(그림·현 계급 일병)로 확인됐다고 20일 밝혔다. 김 하사의 신원은 딸 김외숙(69)씨가 등록했던 DNA를 통해 최종 확인됐으며,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을 적용해 가능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김 하사 유해의 신원확인은 2000년 4월 유해 발굴을 시작한 후 136번째이며, 향상된 유전자 검사기법으로 신원확인을 한 두 번째 사례다. 국방부는 2013년 이전에는 DNA 검사에서 개인 식별이 가능한 유전자 정보인 좌위 16개를 분석했으나, 최근에는 23개를 분석해 신원을 확인한다. 이에 따라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는 지난 6월부터 2013년 이전에 검사했던 6·25 전사자 유전자에 대해 재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김 하사는 1950년 27세에 국군 제7사단 8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이듬해 2월과 3월에 강원 평창군 면온리 일대에서 벌어진 속사리·하진부리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하사는 1923년 경남 울주에서 태어나 19세에 결혼해 네 자녀를 낳았다. 김 하사가 전사하자 부인은 사진을 본뜬 초상화를 액자로 만들어 방에 걸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초상화 속 아버지를 68년 만에 만난 딸 김씨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이 순간을 맞이하시면 좋을텐데 지금에서야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국방부는 추후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그분을 상면하니 저런 분이 어찌 왜놈의 군인과 맞서 선두 지휘를 하시며 혈전을 하셨나 할 정도로 외모가 잘생기셨고 그 풍채가 관후 유덕하시며 인자한 풍기가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주실 뿐 아니라 인정이 철철 넘쳐 흐른다. 그분이 무기형을 받고 마포로 수감된 후 왜놈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나 불허하므로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처음 15일간은 물도 한 잔 안 먹었다. 소장이 병동에다 수감하고 왜놈 간수에게 감시를 하게 하고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매일 변기를 검사하였다. 물 한 모금도 안 먹었으니 소변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창(이회영의 아들)은 회고록에서 서울 마포형무소(경성감옥)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한 오동진 선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평가받는 오동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건국훈장 다섯 가지 가운데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30명인데 오동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김구,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없다. 옥중에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번 단식투쟁을 했다. 마포형무소에서 한 단식 기간은 무려 48일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악랄한 일본인 형무소장도 그런 선생에게는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으며 ‘가미사마’(神)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태어난 선생은 생후 반년 만에 생모를 잃고 후모(後母) 백씨의 손에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게 강했던 선생은 기쁨과 슬픔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9세에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선생은 고향에 일신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1919년 3월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선생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3월 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安子溝)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평생 온몸을 내던진 선생의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됐다. 선생은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는 한편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만주에 이탁을 파견해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는데 선생은 총영장(總營長)이 됐다. 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에서 장총 240여정과 탄약을 입수해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마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일행이 1920년 8월 14일 서울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총영은 결사대원을 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어 미 의원단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파괴 공작을 펴 이목을 끌기로 했다. 안경신 일행은 안주경찰서의 일제 경찰과 친일 조선인 경찰을 사살했으며 평양의 경찰서 신축 건물을 폭파했다. 신의주 철도호텔에 폭탄을 투척했고 선천경찰서도 파괴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됐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의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단체 통합 제안으로 발족한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돼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 와해 후 새로 통합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가 출범했는데 선생은 군사위원장과 총사령을 겸임했다. 선생이 이끌던 무장 독립군은 국내에 침투해 일제와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압록강 일대 삭주, 벽동, 후창, 초산, 무산 등의 경찰 주재소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독립군 결사대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일제 평북경찰부의 통계에 따르면 선생은 1927년까지 부하 1만 4149명을 지휘해 일제 관공서를 143회 습격하고, 일제 관리 149명과 밀정 765명을 살상했다.그러나 무장 항쟁을 이끌던 선생은 밀정의 덫에 걸려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독립군 부하들의 양식 조달을 위해 지린에 농업공사를 만들었는데 운영난으로 그와 부하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이를 본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三成) 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믿은 선생은 1927년 12월 16일 창춘 시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일제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김에게 유인당한 선생은 잠복해 있던 신의주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선생은 일제의 취조에 자신이 지휘한 무장 투쟁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당하면서도 부하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선생의 활동만큼 일제가 붙인 죄목은 방대했고 수사·재판 기록은 쌓아두었을 때 높이가 5m가 넘어 3·1운동 이후의 만주 독립운동사와 같았다. 선생은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1929년 11월부터 33일이나 단식을 하는 등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 “한번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 개인의 집안일을 돌보고 걱정하고 그리워할 수는 없다”며 아내는 물론 어떤 면회도 거절했다. 부인과 아들은 옥 밖에서 통곡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1928년 4월에는 부하 2명이 선생을 구하려고 경찰서로 잠입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재판이 열린 신의주 지방법원 법정에는 선생의 모습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쇄도했다. 선생은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라고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또 “하느님의 명령”이라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선생의 광적인 행동은 일부러 미친 척함으로써 일제와 일인(日人)의 재판에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 의사는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선생은 정신을 차려서는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징역살이를 하며 또한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희 일본놈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932년 3월 9일 선생은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 선고도 무기징역이었다.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으며 장기수를 수감하던 마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공주형무소로 다시 옮겨졌다. 한 달이 넘는 단식도 이겨냈던 선생은 17년이 넘는 세월의 모진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광복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그해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55세였다. 선생을 체포하고 옥사하게 한 김덕기는 노덕술, 하판락과 함께 조선인 3대 악질 형사였다. 김은 16년 동안 일제 경찰로 일했고 평북경찰부 고등형사과장 자리에 올라 수많은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그가 검거해 송치한 독립군이 1000명이 넘었고 그중 20%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광복 후 김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반민특위 해체로 감형된 뒤 6·25전쟁 중에 횡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오동진이 숨을 거둔 땅 충남 공주의 공산성 주차장 한쪽에 선생의 추모비가 덩그렇게 서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순국선열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30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데 선생의 위패도 있다. 선생의 묘소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북한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가 왜 북한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인의 행적도 알 길이 없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부고] 한기현씨 모친상, 이화원씨 장인상, 박영철씨 별세

    ●한상인·한숙희·한영희·한선미·한은미·한기현(iMBC 이사)씨 모친상, 안성호·김만태·손태섭씨 장모상, 13일 오전 7시, 김천 태찬장례예식장 1층 2호실, 발인 15일 오전 8시. 054-435-6119 ●강인석(KT평택Biz영업)·강정옥씨 부친상, 이화원(기아타이거즈 대표이사)씨 장인상, 14일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6호실, 발인 16일 오전 8시30분, 장지 국립현충원. 031-787-1500 ●박영철(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씨 별세, 이혜정씨 남편상, 박세연(NHN 디자이너)·박상연(화이팅 통증의학과 의사)씨 부친상, 김주연(디에이 성형외과 의사)씨 장인상, 14일 오전 1시30분,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202호실, 발인 16일 오전 8시. 070-7606-4213
  • 국립 괴산호국원 11일 개원

    국립 괴산호국원 11일 개원

    국가유공자들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추모공간이 될 국립 괴산호국원이 11일 문을 열었다. 괴산군 문광면 호국로에 위치한 괴산호국원은 632억원이 투입돼 89만7639㎡ 부지에 조성됐다. 현재 봉안담과 자연장(잔디장) 등 2만447기 규모의 안장시설을 갖췄다. 잔디 아래에 자연 분해되는 유골함을 설치하는 방식의 자연장이 국내 국립묘지에 조성된 것은 처음이다. 국가보훈처는 향후 안장시설을 10만여기까지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호국원은 참전유공자, 군에 10년이상 복무한 장기복무제대군인, 전몰·순직 군경, 전·공상 군경, 무공수훈자 등이 안장대상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가유공자 고령화에 따른 안장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중부권에 거주하는 보훈가족 편의제공을 위해 마련됐다”며 “국가유공자의 마지막을 보다 품격있게 예우해 그분들에 대한 무한책임을 실현하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개원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해 보훈단체장, 보훈가족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현재 국가유공자를 위한 전국의 국립묘지는 대부분 포화 상태다. 현충원 2곳, 호국원 4곳, 민주묘지 3곳, 선열공원 1곳 등 전국에 있는 10곳 국립묘지의 총 안장능력은 총 33만기에 달하지만, 여유분은 3∼4만기에 불과하다. 보훈처는 제주국립묘지, 국립연천현충원 조성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괴산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빨리 다녀온다던 참전용사 아버지… 66년 만에 아들 품에

    빨리 다녀온다던 참전용사 아버지… 66년 만에 아들 품에

    아들 자택서 ‘호국영웅 귀환행사’ 개최유품 등 담긴 ‘호국의 얼함’ 가족에 전달지난 5월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굴된 김기봉 이등중사의 유해가 66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방부는 8일 “경남 거제시 동부면에 위치한 김 이등중사의 아들 김종규(70)씨의 자택에서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서 허욱구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장은 유가족에게 김 이등중사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경과에 대해 설명한 뒤 신원확인통지서, 국방부 장관 위로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함’을 전달했다. 또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1954년 김 이등중사에게 수여했던 ‘무성화랑무공훈장’에 대한 훈장수여증명서 및 ‘정장, 금장, 약장’을 유가족에게 다시 한번 전달했다. 아들 김씨는 “‘종규야, 군대 빨리 갔다 올게. 집에 들어가레이’라고 하신 아버지의 약속이 유해로 지켜져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김 이등중사는 1952년 12월 13일 제2사단 31연대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이듬해 6월부터 치열하게 전개된 화살머리고지 4차 전투에서 교전하던 중 7월 10일 전사했다. 그의 유해는 66년 만인 지난 5월 다수의 국군 및 유엔군 추정 유해가 발굴된 화살머리고지의 ‘a고지’에서 발굴됐다. 발굴 당시 유해는 좁은 개인호에서 아래팔이 골절되고 온몸을 숙인 상태였다. 정밀 감식 결과 두개골과 몸통에서 금속파편이 확인된 것으로 미뤄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다 적의 포탄에 의해 다발성 골절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용하지 못한 탄알이 장전된 M1 소총과 직접 사용한 수류탄 안전핀 등도 함께 발견됐다. 김 이등중사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부고] 권양원씨 장인상, 윤성호씨 부친상, 김성래씨 장모상

    ●김준혁(군포 상록운수 과장)·김주희(단국대 교무처 과장)씨 부친상, 권양원(머니투데이 광고마케팅국 부장)씨 장인상, 6일 오후 8시43분, 용인 보정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8일 오전 30분, 장지 국립대전현충원. 070-8858-9409 ●윤성호(경향신문 명륜 지국장)씨 부친상, 7일 오전 7시,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대로 1763 새고창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7시 30분. 063-563-1001 ●김경현·김경혜·김수연·김기림·김태욱(LG전자 과장)씨 모친상, 김성래(더불어민주당 직능국장)·남정희·신성현·다비드씨 장모상, 7일 오전 7시33분,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 4층 특실, 발인 9일. 043-644-4422
  • [서울포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하는 유엔참전용사

    [서울포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하는 유엔참전용사

    유엔참전용사 및 가족들이 30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을 찾아 참배한 뒤 나오고 있다. 2019. 9. 30.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미스터 션샤인’ 황기환 선생 96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다

    ‘미스터 션샤인’ 황기환 선생 96년 만에 조국에 돌아온다

    일제강점기 유럽과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애국지사 황기환 선생의 유해가 9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뉴욕총영사관은 27일(현지시간) 최근 국가보훈처와의 협의를 거쳐 미국 뉴욕 퀸즈 플러싱의 마운트 올리베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는 황 지사의 유해를 국립현충원으로 봉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23년 마흔의 나이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황 지사의 묘지는 2008년 뉴욕한인교회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뉴욕 현지 법원이 파묘와 이장을 결정하는 대로 보훈처의 실무대표단이 파견돼 구체적인 봉환 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다. 평안남도 순천 출신인 황 지사는 10대 후반이던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간 후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지원병으로 입대해 유럽 전선에서 중상자 구호를 담당했다. 전쟁이 끝난 후 김규식 선생의 제안에 따라 1919년 프랑스 파리강화회의 한국대표부에 합류해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을 맡았다. 그해 러시아와 북해를 거쳐 영국까지 오게 된 한인노동자들이 일본으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황 지사가 영국 정부를 설득해 이들 중 35명을 프랑스로 이주시키는 데 성공했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황 지사는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부고] 서혁준씨 장모상, 허길영씨 모친상, 황준호씨 부친상

    ●장용범(삼광프린팅 대표이사)씨 모친상, 서종호·서혁준(NH투자증권 Equity솔루션부장)씨 장모상, 27일,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 특3호실, 발인 29일, 장지 시안가족추모공원. 02-2650-2743 ●허길영(보은군청 행정팀장)씨 모친상, 27일 오전 6시 20분, 보은농협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9일 오전 8시 30분. 043-543-3360 ●황민호(어반스페이스 대표)씨·황준호(더피알커뮤니케이션 부사장)씨 부친상, 27일 오전 3시, 서울 중앙보훈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9일 오전 6시30분, 장지 국립서울현충원. 02-2225-1400
  • [소식] 롯데건설 임직원·가족, 현충원 묘역 단장 봉사

    [소식] 롯데건설 임직원·가족, 현충원 묘역 단장 봉사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은 롯데건설이 지난 21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묘역 단장 봉사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롯데건설 임직원과 가족으로 이뤄진 65명의 ‘샤롯데 봉사단’은 국군의 날을 맞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참배를 하고, 자매결연을 한 24번 묘역에서 헌화, 묘비 닦기, 잡초 제거 등 묘역 단장 활동을 했다. 봉사활동이 끝난 뒤에는 현충원 내 전시관을 관람하는 등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2013년부터 올해까지 7년째 국립서울현충원의 묘역 단장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누적 참여 임직원 및 가족은 800여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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